정의연 전신 정대협, '정신대'와 '위안부' 왜 구분 않았나

1990년대 정대협 활동으로 김복동 할머니 피해 공표, 당시 '위안부' 더 부각되기도
'정신대' 이름 걸고 '위안부' 활동, '성노예제' 이름 걸고 '정신대' 지원은 또 어디로?

정의연의 불투명한 회계 의혹을 제기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정의연의 불투명한 회계 의혹을 제기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일본군 성 노예제('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들이 정의기억연대의 전신 정대협의 정신대 지원 활동에 이용당했다는 등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정대협 대표였던 당시 "위안부와 근로정신대는 다르다"면서도 "일제가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피해자를 끌고 가 단체명에 정신대가 들어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지난해 2월 미디어오늘은 '정신대는 위안부와 같은가' 보도에서 윤미향 당시 정대협 대표가 "위안부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서로 상처를 입기도 하고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면서 그와 같은 윤 당선인 발언을 인용했다.

보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대표 시민단체 이름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인 것만 봐도 한국사회는 일본군 성노예로 착취당한 위안부를 정신대와 같은 말로 인식하고 있다. 위안부와 정신대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심각한 상황이 펼쳐졌다"고 지적했다.

여성 근로정신대(정신대)는 일제가 1944년 8월 태평양전쟁에 뛰어들며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려 '여자정신근로령'을 공포하고 조선 여성을 중심으로 모집하거나 강제 동원한 일꾼이다. 12~40세의 배우자 없는 조선 여성이 대상이었다.

정신대 여성 다수는 노역을 했으나, 그 가운데는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착취된 조선 여성, '위안부'가 되어 끌려간 이들도 있었다. 일제는 1940년대 당시 근로정신대와 위안부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

1946년 서울신문 보도에서 ""이 땅의 딸들을 여자정신대 혹은 위안부대라는 미명으로 일본은 물론 멀리 중국 남양 등지에 강제로 혹은 기만해 보냈다"는 설명이 나왔고, 친일연구자 임종국도 "한국 처녀들이 정신대로 본격 증발되기 시작한 건 1942년 1월 이후지만 누구도 그녀들이 일본 군대의 위안부가 되리란 것을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사회에선 40년 가까이 '정신대'와 '위안부'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은 채 일제에 의한 여성 강제동원을 가리켰다.

정대협이 1990년대 일제에 착취된 피해 여성신고를 받을 때도 강제노역 피해자와 성적 피해자가 모두 신고했다. 한국인은 물론 피해자들 인식 속에서도 정신대는 두 종류의 피해를 포괄하는 개념이 돼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대협의 운동 결과로 '위안부' 피해자 목소리가 더 부각되는 예상 외의 결과도 나왔다. 1993년 김복동 할머니가 유엔인권위원회와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자신의 '위안부' 피해 사례를 실명으로 증언하면서다.

김 할머니를 시작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정작 정신대 피해자는 오히려 기가 죽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에 이르렀다. 정신대가 곧 위안부로 인식되던 가운데 강제노동 피해자까지 성폭력 피해자로 오해받았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성폭력 피해자를 부정적으로 보던 사회 분위기로 인해 정신대 징용 사실이 알려진 피해자들은 결혼을 못하거나 파혼당하는 등 피해가 컸던 터다. "위안부와는 다르다"고 항변해야 했고, '위안부' 피해자들과 불필요한 오해를 쌓거나 자신의 경험조차 숨기기에 이르렀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018년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대표를 취재해 그가 "근로정신대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 오해를 바로 잡으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면서 "예술작품 등에서도 위안부 문제는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근로정신대를 다룬 소설·연극도 없고 제대로 된 연구물도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대표는 "사회가 방치, 무시하던 가운데 한국 정부마저 강제동원 피해자 규모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혼동을 부채질하거나 방조해 왔다"고 지적했다.

정신대 피해자 9명은 철저히 민간 영역에서 이뤄진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에 소송한 결과 2009년 피해자 9명이서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선고 당시 약 1천300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1944년 화폐가치 수준으로 계산한 결과다.

2015년에도 일본 재판부는 피해자 3명에게 후생연금 탈퇴수당 199엔(선고 당시 약 1850원) 지급 판결을 내렸다.

정의연의 불투명한 회계 의혹을 제기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정의연의 불투명한 회계 의혹을 제기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정대협의 활동 결과로 '위안부'의 피해 실체가 오히려 명확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이 할머니 말처럼 정대협이 '위안부'를 이용만 했다고 보기에는 구체적 사실관계를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을 전망이다.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 조차 알리기 힘들었을 이들을 '정신대'라는 비교적 중립적 단어로 보호하려 했을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이날 이 할머니 기자회견에서처럼 "정신대 단체가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점, 정대협이 2018년 뒤늦게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과 통합하고서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으로 '성노예제'를 포함해 개칭한 점 등은 여전히 의혹을 남긴다.

이 할머니 회견을 계기로, 정대협이 그간 활동가로서 피해자를 지원하면서도 명확한 목표의식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커진다. 개칭한 단체명에서 오히려 '성노예제'만 남고 '정신대'는 오간데 없다는 문제 역시 충분히 나올 법하다.

앞서 이 할머니는 이날 오후 2시 40분쯤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대 단체가 '위안부' 할머니를 모금행사 등에 동원하고도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이용만 해 왔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관련기사

AD

사회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