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깨끗한 소리, 가슴 떨린 울림" 이경훈 2·28기념학생도서관장

조금 색다른 '오디오 수집' 취미

이경훈 관장이 자택 서재에 보유하고 있는 오디오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다. 서재에 있는 기기는 극히 일부로, 옷장, 현관, 베란다 등 집 곳곳에 기기를 놓아뒀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이경훈 관장이 자택 서재에 보유하고 있는 오디오 기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다. 서재에 있는 기기는 극히 일부로, 옷장, 현관, 베란다 등 집 곳곳에 기기를 놓아뒀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제가 갖고 싶었던 리시버(receiver)가 있었습니다. 하나의 기기에 앰프, 라디오의 기능을 모아놓은 리시버는 1970~1980년대 당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음악다방 같은 공개된 공간에서 사용되다보니, 지금에 와서 상태가 좋은 것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죠.

그러다 몇년 전 부산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자신이 갖고있던 그 리시버를 판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30여년간 집에서만 사용했다니 상태는 말할 것도 없었겠죠. 퇴근 후 한달음에 부산으로 달려가 그것을 업어(가져오는 것을 표현)왔습니다. 사용자가 아무리 조심히 정성스레 다뤘어도, 부품과 성능을 체크할 필요가 있어 자주 가는 음향사에 의뢰를 했습니다.

며칠 후 그곳에 찾으러 가니 외국산 대형 스피커에서 옛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나훈아의 '고향역'으로 기억됩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아, 음악이 이렇게 좋은 것이라니…. 깨어있는 동안 음악이 꺼져있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항상 음악을 곁에 두시던,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들으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제 가슴을 떨리게 한 그 울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살아계셨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저 리시버, 스피커, CD를 사서 아버지와 함께 이 음악을 들었을텐데, 라는 안타까움이 컸죠. 그 때 음향사에서 사용한 리시버가 제가 맡긴 것이었다는 건 한참이 지나고야 알았습니다."

그는 요즘도 가끔 아버지를 생각하며 고향역을 듣는다. 오디오는 그와 음악을 이어주는 매개체. 언제라도 그 시간, 그 장소로 데려다주는 '추억의 타임머신'과도 같은 것이다.

이경훈 관장의 서재에 보관하고 있는 오디오 기기들. 평소에는 자주 듣는 제품을 제외하고는 에어캡으로 꽁꽁 싸둔다. 수납장도 오디오 기기의 무게를 버틸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짜맞춘 것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이경훈 관장의 서재에 보관하고 있는 오디오 기기들. 평소에는 자주 듣는 제품을 제외하고는 에어캡으로 꽁꽁 싸둔다. 수납장도 오디오 기기의 무게를 버틸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짜맞춘 것이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듣는 이에 따라 '좋은 오디오' 기준 달라

지난 17일 찾은 대구 2·28기념학생도서관(동구 신암동) 관장실. 반가운 얼굴로 기자를 맞은 이경훈 관장이 관장실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창틀 양 끝에 놓인, 몸통만한 2개의 스피커가 눈에 띄었다. 스피커에서는 동요와 재즈, 피아노 연주곡이 잇따라 흘러나왔다. 깨끗한 음질이 오롯이 귀로 전해졌다. 가만히 앉아 창 밖으로 가벼이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음악을 들으면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상황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죠. 가령 영화 OST를 들으면 인상 깊었던 장면과 영화를 볼 당시의 느낌이 떠오르고, 동요를 들으면 손잡고 뛰놀던 어린시절 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스피커 그릴(보호망)에 붙은 파란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국산 브랜드의 로고를 가려놓은 것. 사무실을 찾은 이들이 '음악이 참 깨끗하게 들린다, 스피커가 좋은가보다'라고 얘기하다가도, 로고를 보고는 의아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 관장은 "브랜드에 대한 편견이 귀를 가린다"며 "음악을 귀로 듣지, 생각으로 듣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그는 "진정한 오디오 매니아들은 굳이 비싼 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것은 주관적이기에, 적은 돈을 투자하고도 수십 배의 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음악 소리를 조금 낮춘 이 관장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보편적으로 아무래도 비싼 것이 기술적으로 좋긴 하겠지만, 오디오는 듣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청력에 따라, 평소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집니다. 제가 듣기에 좋다고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꼭 좋은 오디오는 아니라는 말이지요.

또한 국산 오디오는 외국산에 비해 가격대가 낮지만, 조금만 튜닝을 하면 매우 훌륭한 기기로 변신합니다. 대구에도 '튜너 박사'급의 기술을 가진 분이 있습니다. 그분께 튜닝 받은 앰프와 튜너는 다른 기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한 소리를 들려줍니다."

이경훈 관장은 휴대폰에 자신이 보유한 오디오 기기 103개를 제품별로 정리, 메모해뒀다. 이연정 기자 이경훈 관장은 휴대폰에 자신이 보유한 오디오 기기 103개를 제품별로 정리, 메모해뒀다. 이연정 기자

◆103개 오디오 기기 매력 제각각

오디오는 기본적으로 앰프와 스피커에 라디오, CD플레이어, 턴테이블 등을 서로 조합해 소리를 낸다. 이 제품들을 어떻게 세팅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이다.

그가 보유한 오디오 단품은 총 103개. 개인이 갖고 있기에 적지 않은 수다. 크기와 무게도 만만찮을 것. 한데 모아놓으면 어마어마한 '포스'를 자랑할 것들일텐데, 아쉽게도(?) 집 서재와 진열장, 옷장, 현관, 베란다, 골방 곳곳에 흩어져있다. 대부분 박스에 담겨져 있거나 에어캡으로 꼼꼼하게 싸여진 채로.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기기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가, 우문(愚問)임을 곧 깨달았다.

"예쁘지 않은 오디오는 하나도 없습니다. 곳곳에 숨은 오디오를 골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전기만 연결하면 금세 '내가 여기 있노라'고 알려주죠. 빨갛고 파란 신호로, 때로는 호박색 불빛으로 각각의 매력을 뽐냅니다. 오디오를 모으면서, 아이들이 인형이 있는데도 또 사고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됐죠."

오디오 중에는 독일·미국·일본 등 외국산은 물론, 최근 5년간 온라인 장터에 한번도 나온 적 없는 희귀품도 있다. 출시 당시의 사용설명서를 그대로 보관한 제품, 오래됐지만 방금 박스를 개봉한 듯 반짝반짝 빛나는 것도 있다.

이 관장은 "오디오 기기를 매입할 때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찍힘 등 흠집이 없고 외관이 깨끗한 것"이라며 "아무래도 잘 관리된 것이 전 주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 않겠나. 찌그러져도 소리만 좋으면 된다는 이들과는 생각이 조금 다른 편"이라고 했다.

오디오를 좋아하기에, 꼭 듣는 단골 질문이 있다. 어떤 음악을 주로 듣냐는 물음이다.

그가 자주 듣는 것은 FM 라디오. 주로 KBS 제1FM 클래식 방송을 듣는데, 이 중에서도 오후 6시 '세상의 모든 음악'을 좋아한다. 샹송부터 러시아 민요, 라틴 음악 등 여러 나라의 독특한 음악을 통해 문화를 느낄 수 있단다. 이외에 대구원음방송의 오전 9시 '내 마음의 클래식', 오후 2시 '조은형의 가요세상'도 자주 듣는다.

"라디오는 여러 장르의 좋은 음악을 고르게 엄선해서 들려줍니다. 또 계절이나 날씨에 맞게 선곡을 해주기도 하죠.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게 되는 셈입니다. 또 집에 있을 때면 거실과 방 어디서나 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이어 이 관장은 "사무실에 틀어놓은 음악을 들은 이들이 대부분 '나도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딱 거기까지다. 언젠가 해봐야지 하고 망설이지 말고, 집에 먼지 앉은 오디오가 있다면 깨끗이 닦아서 전기를 넣어보라고 권하고 싶다"며 "오디오는 듣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기에, 굳이 비싼 기기를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당장 마련할 수 있는 기기로 음악 듣기를 시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경훈 관장이 자신이 보유한 오디오 기기 103개를 제품별로 정리해놓은 휴대폰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이경훈 관장이 자신이 보유한 오디오 기기 103개를 제품별로 정리해놓은 휴대폰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음악 듣기는 본연의 나를 찾고자 하는 방법

그의 소망은 (오디오 수집가면 누구나 그렇듯)보유한 오디오를 넓은 공간에 세팅해놓는 것. 음악과 오디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오디오 세트를 비교 청음할 기회를 주고, 함께 감성을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다.

그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라는 곡이 있다. 만약 그런 공간이 주어진다면 오후 8시에는 어김없이 그 곡을 틀고, 화면 가득 눈길을 뚫고 기적을 울리며 열차가 달리는 영상을 보고 싶다. 매일 듣는 음악이라도 매번 느낌이 색다를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게 마지막 우문을 던졌다. 왜 음악을 듣습니까.

"신규 공무원들에게 교육할 때 전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익을 우선하는 공무원의 삶을 살다보면 본연의 나를 잊고 살게될 때가 있죠.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을 지킬, 마음을 채울 영양분을 찾아야합니다. 그 영양분은 곧 세상을 살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이기도, 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함을 되찾을 수 있는 연결고리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마음 속 양분을 공급받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음악을 듣는 것이 하나의 방법입니다. 음악을 들으며 과거와 미래를 떠올리고, 가보지 못한 나라들도 머릿 속으로 여행하면서 평정심과 고요함, 여유로움을 찾으려하죠."

이 관장과의 인터뷰 내내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 대화 사이사이를 채웠다. "같은 기기, 같은 음악이라도 사람에 따라 날카롭거나 뭉툭하게 느껴진다. 옳고 그름이나 정답은 없지만, 종일 틀어놔도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는 기기가 있다. 어떤 음악이든 귀에 와주는 것이 분명 있다"는 그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관련기사

AD

사회기사

제21대 국회의원선거
D-7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