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의료계 명견만리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교수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교수

바둑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세돌 9단이 최근 은퇴를 선언하고 마지막 대국을 인공지능(한돌)과 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2017년 구글 딥 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을 펼쳤고 이 대결에서 인간이 패했다.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바둑은 너무나 복잡하고 경우의 수가 많아 인공지능이 인간의 벽을 넘지 못 할 것으로 예측했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최고의 바둑 고수도 인공지능 바둑을 이기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처럼 사회 변화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겪어보지 않은 세상이 밀려오고 있는 지금, 미래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 개인도 국가도 만 리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10년, 20년, 30년은 내다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대비해야 할 때이다.

필자는 다사다난했던 2019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의료계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별하는 여러 가지 객관적인 잣대가 있다. 국민소득, 문화생활, 평등, 공정, 정의, 복지정책, 의료정책 등 다양한 기준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의료 정책과 복지정책은 선진국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빚더미만을 넘겨줄 것인가 아니면 현재보다 나은 의료 및 복지 서비스를 넘겨 줄 것인가 귀로에 있다.

현 정부 들어 의료 초음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 건강보험을 새롭게 적용하는 등 건강보험 보장 범위가 크게 확대되면서 건보 재정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 내년 2월부터는 콩팥, 방광, 항문 등 초음파 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정부가 '문재인 케어' 정책을 통해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면 당장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 위기가 발생하면 다음 세대에게 부담이 커질 위험이 있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문재인 케어' 도입 후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꾸준한 적자로 악화해 5년 뒤 2024년부터 고갈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연간 건강보험 적자 규모는 올해 4조1000억원에서 2028년 10조70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그 폭이 심화할 것이란 분석했다. 정부 대책이 반영된 재정절감모형으로 건강보험 재정수지를 들여다봐도 적립금 고갈 시점을 약 4년가량 늦추는 수준의 효과만이 기대됐다.

문 케어 시작할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그래도 보장성 강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료 과잉이 일어나고, 의료전달 체계의 붕괴로 인해 대학병원 위주 고비용 의료가 증가하고, 쏠림으로 환자도 고달프고, 지방과 중소병원이 사라질 위기다. 누구를 위한 문 케어냐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의료 수요가 급증하는 초고령사회가 다가온다. 문 케어 과속을 멈추고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명견만리 즉 오늘의 변화 속에서 내일을 꿰뚫어 보기 위한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한해였다.

최근 대한민국 경제 추락, 청년실업, 사회갈등 심화 등 올 한 해도 국민 모두 힘든 시기였지만, 한 해를 잘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뜻 깊은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다가오는 2020년 경자년 '쥐띠 해' 모든 국민이 좀 더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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