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북성로, 개발 붐에 임대료 들썩…가난한 세입자 갈 곳 없어"

[개발·역사 보전 갈림길 놓인 대구 북성로] <하>재개발과 도시재생사업이 함께 진행
북성로 보존가치 높다고 기록된 56곳 중 14곳 재개발부지 포함돼 철거
젠트리피케이션 우려하는 주민들 "개발되면 갈 곳이 없다"

대구 중구 북성로의 근대 목조 건물 카페 삼덕상회. 삼덕상회는 1930년대 건축된 목조건물이다. 2011년 '북성로의 재발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호로 개보수됐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 중구 북성로의 근대 목조 건물 카페 삼덕상회. 삼덕상회는 1930년대 건축된 목조건물이다. 2011년 '북성로의 재발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호로 개보수됐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 중구 북성로의 근대 목조 건물로 지어진 시간과공간연구소와 코이 커피숍. 1936년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로 개보수를 거친 뒤 북성로 공구박물관으로도 사용됐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 중구 북성로의 근대 목조 건물로 지어진 시간과공간연구소와 코이 커피숍. 1936년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로 개보수를 거친 뒤 북성로 공구박물관으로도 사용됐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북성로는 건축물의 90%가 1950년 이전에 만들어져 70년이 넘은 근대 건물들이 700m가량 이어진 전국적으로도 드문 도심경관에 속한다. 나지막한 블록조 건물이 퍼져 있는 가운데, 핵심 도로변을 따라 드문드문 3, 4층 규모의 근대 양식이 독창적으로 가미된 상업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대구 중구청은 2012년 예산 8천450만원을 들여 '대구 도심건축자산의 보전적 재생을 위한 실태조사 및 기록화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북성로 일대의 보존 가치가 높은 건축물을 기록화했다.

3차에 걸친 조사 끝에 북성로에는 모두 56곳의 건축물을 기록에 남겼는데, 이 중 주상복합 재개발 부지에 포함돼 철거된 건물만 14개에 달한다. 북성로에 마구잡이식 개발이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불거지는 이유다.

◆근대 건축물의 보고 북성로

도현학 영남대 건축학과 교수가 주도한 '기록화 용역연구팀'은 중구 북성로·서성로 지역 건축물 1천900여 채를 2012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6개월 동안 3차에 걸쳐 조사해 기록했다. 대구 구도심의 건축자산 실태조사를 통해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을 선별해 자료로 남기고 이에 따라 도시재생 지침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구팀은 문헌자료조사, 현지조사 등 1차 조사를 거쳐 200여 개의 건물을 가려낸 뒤 ▷원형성 ▷장소성 ▷정책성 ▷전형성 ▷독창성 등을 따져 점수화한 후 가장 점수가 높은 건물부터 상위 50%에 든 건물들을 실측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북성로 일대에서는 근대건축물 56채(가로형 49채, 창고형 2채, 목조여관 5채)에 대해 보존가치가 크다고 판단돼 실측조사가 이뤄졌다.

연구팀에 따르면 북성로의 가로형 건축물은 상당수가 박공 양식(여덟 팔자 모양의 지붕이나 벽)으로 무리지어 있을시 독특한 도시경관으로 작용한다. 2층 규모가 가장 크고 일식과 서양식 디자인이 복합적으로 가미돼 외관 디자인이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수록됐던 건물 중 재개발 부지에 포함돼 철거된 연립상가건물(북성로 1가 21-15번지)은 1916년 대구기업(大邱起業)주식회사로 만들어진 후 최근까지 상가로 사용됐다. 북성로에서는 가장 기다란 건축물로, 8개의 상가가 입점한 희귀한 사례다. 연구팀은 조사 당시 "이곳이 2가지의 마감재를 섞은데다 수직형태 목조 오르내리창이 가미돼 장식성과 건축미가 뛰어나다"고 기록했다.

창고형 건물(태평로2가 17-5 번지)은 1918년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사들여 상점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조사 당시 다소 훼손이 있긴 했지만, 내부공간의 지붕 골조와 벽체가 양호해 북성로 ·태평로 일대의 전형적인 창고형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건축물들이 대책 없이 사라진 데 대해 기록화 작업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근대 건축물 기록화 작업은 중구청이 도시재생 뉴딜 공모사업에 선정되는데 일조했다. 하지만 구청은 이 작업을 단순 선정만을 위해 이용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개보수를 거친 건축물은 5년간 보존할 의무가 있지만 이미 4채가 헐리고 행정기관은 건물주와 책임공방을 벌이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대구 중구 북성로의 근대 목조 건물로 지어진 여관 내부. 이 여관은 지난 2012년 대구 도심건축자산의 보전적 재생을 위한 실태조사와 기록화 연구용역조사 당시 1911년 지어진 건물임이 파악됐다. 100년이 넘게 여관, 여인숙으로 사용돼 기록화, 보존 가치가 높은 편이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 중구 북성로의 근대 목조 건물로 지어진 여관 내부. 이 여관은 지난 2012년 대구 도심건축자산의 보전적 재생을 위한 실태조사와 기록화 연구용역조사 당시 1911년 지어진 건물임이 파악됐다. 100년이 넘게 여관, 여인숙으로 사용돼 기록화, 보존 가치가 높은 편이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주민들은 도미노 개발 우려

한쪽에는 49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지만, 이와 동시에 북성로 다른 한편에서는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다. 대구 중구청은 올해부터 오는 2023년까지 5년간 300억원을 투입해 북성로 일대 도시재생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구청은 지난 4월 북성로 일원 도시재생활성화 계획 수립 용역을 발주하고 지난 7월 북성로 일원 도시재생활성화 계획 보고회를 열었다. 앞으로 북성로 일대에는 ▷청년창업클러스터 ▷역사생활가로 ▷북성로 투어스테이션 ▷신 우현학숙 ▷문화플랫폼 도시 브랜딩 ▷진입광장 ▷마을 사랑방 등이 조성된다.

중구청은 이와 함께 건축자산 통합관리센터도 건립한다. 관광자원화로의 가능성이 큰 근대건축물의 무분별한 증·개축을 막고 보존과 활용을 통해 도심기능 활성화와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중구청 관계자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북성로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개발을 진행하는 묘안을 모색하겠다"며 "이 일대는 이번 재개발 부지를 제외하고 8만3천㎡가 건축자산진흥구역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건설사업에 제약이 많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무분별한 개발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중구청의 이런 구상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발이 결국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를 계속하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A(68) 씨는 "손님 대부분이 돈 없는 노인들인데 개발붐에 벌써 집주인들은 임대료를 올리려고 한다"며 "49층 주상복합에 사는 사람들이 이런 오래된 식당을 찾지는 않을 거 아니냐. 평생 해온 거라곤 이것밖에 없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재개발 부지 안에 있던 여인숙이 철거되면서 거처를 옮긴 주민 B(81) 씨는 "개발이 되면 땅을 가진 집주인이나 젊은 사람들은 좋겠지만, 나 같이 늙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 중구 북성로의 근대 목조 건물로 지어진 믹스카페 내부에는 다다미방이 남아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대구 중구 북성로의 근대 목조 건물로 지어진 믹스카페 내부에는 다다미방이 남아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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