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82년생 김지영'과 4차 산업혁명

영화 '82년생 김지영' 영화 '82년생 김지영'
김수용 편집국 부국장 김수용 편집국 부국장

성(性) 역할과 차별에 대한 논란은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에서 크고 작은 차이가 있었을 뿐 늘 존재해 왔다. 역사 속에서 대륙과 국가에 따라 적잖은 편차가 있었지만 약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쪽으로 변화를 거듭해왔다. 아울러 그 속도도 암흑의 중세를 거쳐 근대로, 다시 현대로 넘어오면서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다. 물론 '빨라지고 있다'는 표현조차도 여전히 사회의 약자로 남아 있는 편에선 '강자적 시각'으로 여겨진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아울러 그 논쟁과 갈등이 기성세대보다 10대, 20대에서 더 격하다는 사실은 젠더 갈등, 나아가 사회적 약자의 권익 확대가 속도의 문제에서 기울기의 문제로 넘어갔음을 시사한다. '충분히 (여성 쪽으로) 기울었다'와 '여전히 (남성 쪽으로) 기울었다'는 시각 사이의 접점은 보이지 않는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10, 20대는 이를 기득권 유지와 박탈의 문제로 본다.

그런데 이런 논쟁이 한 세대를 지났을 때에도 여전히 의미있을지 의심스럽다. 일자리, 사회적 지위, 경제력 등을 두고 벌이는 성별 간, 세대 간, 국가 간 경쟁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국경이 사라지고 경제 블록으로 묶이나싶더니 브렉시트가 등장했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 국경은 다시 높아지고, 자국 이기주의는 한때의 우방조차 하루아침에 적으로 돌릴 정도다. 공유경제와 블록체인이 가져올 경제의 변화는 자본주의의 격변, 심지어 붕괴를 예언할 정도지만 아직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여기에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이 힘을 합친 '4차 산업혁명'이 닥쳐왔다. '4차'와 '산업혁명'이 주는 문자적 모호함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이전 산업혁명처럼 급진적 변화인 동시에 훨씬 파괴적이고 무자비하며, 방향성을 가늠하기 힘들다. '알파고'로 널리 알려진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가져올 변혁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사라진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돕거나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을 '무용(無用) 계급'으로 전락시킨다. 단순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뿐 아니라 가수, 화가, 작가도 예외가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새 일자리는 평생교육, 재교육 따위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도의 전문적 영역일 것이다.

일자리가 없는 인간은 경제력을 잃게 된다.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의 역할조차 상실한다.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로봇에게서 인간과 일자리를 지키려고 힘겹게 버티며 싸우는 정부도 조만간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인류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이데올로기를 얻지 못했고, 정부는 기업의 이윤 추구를 가로막거나 늦출 명분을 갖지 못했다.

생산자 기능을 잃은 인간에게 소비자 역할만이라도 남겨두기 위해 정부가 나설 수 있다. 다양한 명목의 소득을 주는 것이다. 청년수당, 노인수당 등은 이미 시작됐고, 나중엔 임신과 가사노동 수당이 주어질 수도 있다. 가사와 육아는 당연히 여성 몫이고, 그에 대한 보상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금기처럼 여겨졌던 시대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그때는 참 순진하고 무지했지'라며 쓴웃음을 지을 때가 올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논쟁이 얼마나 감정적이었고, 대입의 정시 확대와 수시 유지를 둘러싼 다툼이 얼마나 유치했으며, 좌우 편가르기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돌이켜볼 때가 오리라. 30년 뒤에 얼마나 많은 직업이 인간의 몫으로 남겨져 있을까. 무지막지한 변화의 속도를 볼 때 '30년 뒤'라는 가정조차 순진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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