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의 흔적]<44>도장

정부의 중요한 문서에는 국새를 눌러 찍는다. 관청에서 발행하는 중요한 문서에도 관인을 찍는다. 왕조시대에는 옥새(玉璽) 또는 어보(御寶)라 하였으며, 중요한 문서에 눌러 찍었다. 그것은 나라 또는 관청의 표상으로서 권위를 지닌다. 그런가 하면 회사에는 법인인감이 있고, 개인에게도 인감이 있다.

도장이란 돌․나무․옥․금속 등에 글자를 새겨 칼로 판 것을 말한다. 인감 또는 인장이라고도 한다. 정치적 신의를 표시하기 위한 신표가 될 만한 물건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또한 그것은 신석기시대 질그릇에 문양을 찍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단순한 문양의 성격이 강하였다.

우리나라 도장의 역사는 단군신화에 환웅이 천부인(天符印)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뒤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어 온 인장의 역사와 그 흐름을 같이 하였다. 그 용도는 백성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의 믿음을 전하는 표시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인장이 서화사의 일대 변혁을 가져온 추사 김정희와 그의 제자인 소산 오규일에 의해 예술로서 상당한 수준까지 발달하였다.

인장은 전각(篆刻)의 한 표현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동양 예술의 꽃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문학이나 글씨, 그림이나 조각을 두루 아우르며, 비단 문자에만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문양과 사람의 감성까지 표현할 수 있는 종합 예술이다. 인감도장을 새길 때 그 사람의 운세며 관상을 참고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글씨나 그림을 그린 뒤 이름이나 아호 등을 쓰고 도장을 찍는다. 이를 두고 낙관이라 하는데,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다. 서화작품을 완성하고 마무리를 짓기 위해 제작 연월일이며 시문 따위를 기록하는 행위다. 넓은 의미에서 도장을 찍는 것도 포함이 된다.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계약을 하거나 문서를 작성하고 서명 날인을 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 하겠다. 아무튼 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뒷감당을 하는 일이다.

도장은 일종의 신표(信標)이다. 이름난 사람에게 찾아가서 새기는가 하면, 옥이나 수정이나 상아 같은 고급스런 재료에다 새기기도 한다. 내게는 여러 개의 도장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상아에다 새긴 것이 인감도장이다. 소중하게 간수하고 있을 뿐더러 오래 동안 사용하였다. 혼인신고를 할 때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터를 살 때도, 은행에 계좌를 열 때도 이 도장을 찍었다. 지금은 인주가 배어서 불그스름하고, 글자 또한 닳아서 또렷하지 못하다. 그래도 애지중지하는 물건 가운데 하나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도장의 효용성이 크게 떨어졌다. 그런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위조 또는 변조할 수 있고, 그것을 문서에 찍어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로 해서 법정에 드나들기도, 잘난 체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한다. 과학과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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