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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잘 지내기] '정치, 그 가능성의 예술'을 보고 싶다

대구시의회 개원 첫 날인 지난 2일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대구시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 보이콧 속에 임시회를 열고 전반기 의장 1명, 부의장 2명을 뽑는 단독 투표를 강행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대구시의회 개원 첫 날인 지난 2일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대구시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 보이콧 속에 임시회를 열고 전반기 의장 1명, 부의장 2명을 뽑는 단독 투표를 강행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정치 관련 레토릭(rhetoric'미사여구) 중 하나인 '가능성의 예술'은 정치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통제하고 조화시킨다는 관점이다. 프로이센을 강대국으로 키워낸 19세기 독일 정치가 비스마르크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가 있으면 정치적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썼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견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에서는 이 말이 종종 엉뚱한 상황에 등장한다. 정치판에선 어떠한 일도 벌어질 수 있다는 합리화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초점은 '가능성'이란 단어에만 맞춰지고 '예술'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그 가능성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때가 잦다는 점이다. 지난 5월 말 출범했어야 할 후반기 국회는 원 구성 협상에만 40일 넘게 걸렸고, 6'13 지방선거로 출범한 새 지방정부'의회는 출발선에서부터 삐걱대고 있다. 가능성의 예술을 보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의 바람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화주의 정신
17일은 제70주년 제헌절이다.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적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공포를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하지만 여야가 지난 10일 20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에 가까스로 합의하지 못했다면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 없이 경축식이 치러질 뻔했다.


제헌절 행사가 국회의장 없이 진행된 사례는 15대 국회 후반기 의장단 선출을 앞둔 1998년에 있었다. 의장단 선출 방식을 놓고 여야가 대립, 원 구성을 하지 못했고 직전 국회의장인 김수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경축사를 했다. 15대 후반기 박준규 의장은 그해 8월 3일에야 선출됐다.

20년이 지났지만 국회 공백 사태는 전반기와 후반기, 2년 주기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유도 거의 똑같다.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단을 놓고 서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정당 간 밥그릇 싸움에다 정국 현안을 둘러싼 힘겨루기 과정에서 원 구성이 협상 수단으로 전락하는 탓이다.

이런 구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형식적으로는 군주제도 전제주의 국가도 아닌 만큼 민주공화국이라고 강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헌법정신이 추구하는 바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국어사전에 '두 사람 이상이 공동 화합하여 정무(政務)를 시행하는 일'로 풀이된 '공화'(共和)는 공적 가치가 핵심이다. 그러나 올바른 도리에 따라 공공을 위해 봉사하기는커녕 시대착오적인 계파 정치로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이 된 정치권은 유권자의 심판을 받기 마련이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화주의가 결여되면 민주주의도 제대로 설 수 없다"며 "다수결에서 반영되지 못하는 소수자, 약자들의 목소리를 정치권이 담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8대 대구시의회 개원을 앞두고 지난달 26일 시의회 직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초선의원 26명의 명패를 배치하고 있다. 대구시의원은 자유한국당 소속 25명과 더불어민주당 5명이다. 매일신문 DB
제8대 대구시의회 개원을 앞두고 지난달 26일 시의회 직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초선의원 26명의 명패를 배치하고 있다. 대구시의원은 자유한국당 소속 25명과 더불어민주당 5명이다. 매일신문 DB

◆당리당략보다 공공선을 위해 경쟁해야
우리 사회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거대한 정치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대구경북(TK) 역시 시대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6'13 지방선거에선 민심 변화가 뚜렷하게 확인되면서 역대 지방선거 사상 가장 많은 진보 계열 정당 소속 지방의원이 탄생했다.


이는 지역사회의 미래를 생각할 때 반길 만한 일이다. 공화주의는 다양한 세력이 공공선을 두고 경쟁할 때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이번이야말로 지방의회가 견제와 균형의 외형적 틀을 갖췄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특정정당 독점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아직 갈 길은 요원하다. 광역'기초 가릴 것 없이 대구경북 대부분 지방의회 의장단, 상임위원장 자리를 자유한국당이 '힘의 논리'로 독식하다시피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논평을 통해 "대구에서 유일하게 민주당 의석이 과반인 수성구의회는 최초로 민주당 소속 의장이 탄생했고 협치를 통해 원활하게 원 구성을 마무리한 반면 대다수 지방의회는 의장단을 한국당이 독점해 논란이 되고 있다"며 "유권자 민의를 무시한 처사이자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혼란을 겪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 수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다당제 속에서도 옛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당론이란 미명(美名) 아래 협의를 거부하고, 관행이란 핑계 뒤에 숨어 짬짜미하는 짓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혜정 대구시의회 부의장(재선)은 이와 관련해 "관행에서 탈피해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가겠다"며 "당의 입장을 떠나 오로지 시민 중심으로 현안들을 판단하겠다"고 다짐했다.

◆관용과 토론 문화 정착 시급
18세기 프랑스 계몽사상가인 볼테르는 "당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는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지켜내겠다"는 명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의견에 반대할 수는 있지만 다른 생각을 말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다. 관용이야말로 나와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일 줄 모르는 우리 정치권이 유념해야 할 가치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불렀다. 토론이 사라진 조직에서, 상명하달에만 익숙한 풍토에서 창의성이 발현되기는 어렵다. 특히 대구경북처럼 유교문화가 뿌리깊게 남아있는 지역에서는 같은 당 소속이라 하더라도 선수(選數), 나이 등에 따라 발언권이 은연중에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사회에서든 토론이 중요한 까닭은 쟁점을 분명히 밝히고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을 통해 정치'정책 조정력이 길러지면 사회 전체에 불필요한 비용 발생을 막을 수 있다.

김영철 대구시 2030비전위원회 공동위원장(계명대 교수)은 "보수적이고 혈연'지연'학연을 중히 여기는 대구경북은 위계(位階)에 따른 폐해가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에도 만연하다"며 "토론 과정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새로운 합의를 모색하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구시의회 개원 첫 날인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의원 5명이 자유한국당 대구시의원들의 상임위원장 '독점'에 반발하며 전반기 의장단 투표 보이콧을 선언하자 의회 사무처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매일신문 DB
대구시의회 개원 첫 날인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의원 5명이 자유한국당 대구시의원들의 상임위원장 '독점'에 반발하며 전반기 의장단 투표 보이콧을 선언하자 의회 사무처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매일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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