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항지진 2년] 텐트 생활 "비참한 삶, 잊힐까 두려워요"

"왜 우리는 이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건가요" 포항지진 이재민들의 생생한 목소리
"산 목숨이라 밥을 먹고 연명하는거지 이건 사는게 아냐"
"재난이 닥쳤을 때 국가가 도와줄 것이란 생각 꺾지 말아 달라"

포항 지진 당시 큰 피해를 입은 흥해초등학교 학생들이 12일 컨테이너 교실 밖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우태욱 woo@imaeil.com
포항 지진 당시 큰 피해를 입은 흥해초등학교 학생들이 12일 컨테이너 교실 밖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우태욱 woo@imaeil.com

12일 오후 포항지진 이재민 90가구 205명이 세 번째 겨울을 맞는 포항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과 같은 지역 '11·15 지진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 이재민들은 정부와 정치권, 포항시에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털어놨다.

40대 이재민 A씨는 "정부의 잘못으로 지열발전소가 포항에 들어와 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이 밝혀졌으면 그에 합당한 대책이 빨리 나와야 하는데, 아직도 대책은커녕 잘잘못만 따지고 있으니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며 "국민으로서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가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70대 이재민 B씨는 "여·야당 당대표나 각 당의 국회의원들이 이재민들을 찾아와 사진을 찍고 악수를 하고, 빨리 대책을 세워주겠다고 말하며 뻔질나도록 왔다가고선 대체 지진 특별법은 왜 빨리 만들어주지 않는 거냐"며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흐르다가 포항지진도 우리 이재민도 모두 잊힐까 봐 두렵다"라고 토로했다.

80대 이재민 C씨는 "포항시도 지열발전소를 포항에 유치하는데 한몫을 했으면 지열발전소가 어떤 것이고, 위험한지 여부 등을 파악했어야 했다"며 "더욱이 시민들이 곤경에 처하면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우리(한미장관맨션 이재민)를 이처럼 방치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90대 이재민 D씨는 "젊은 사람들이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어딜 찾아가 직접 하소연하고 일을 추진할 수도 있지만, 우리 같은 노인들은 쉽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당연히 국가가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분통이 터진다"라고 했다.

이재민들은 언론에 대한 불만도 내비쳤다.

또 다른 80대 이재민 E씨는 "100일, 1년, 2년 등만 되면 우릴 찾아와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어가는데 이게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지진'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면서 다리가 풀린다"며 "연례행사처럼 우릴 찾아와 같은 것만 물어보는 언론을 보면 속이 상한다"라고 했다.

60대 이재민 F씨 역시 "우릴 도와주려고 하는 취재인지, 단순히 기사를 위한 취재인지 이제는 구별을 못하겠다. 우리를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지 말아 달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재민들이 생떼를 쓰며 정부 돈을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들도 있다. 만약 지방이 아닌 수도권에서 지진이 났어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라며 "자신이 당한 일이 아니라고 우리를 거지 취급하지 말아 달라"고 울분을 토했다.

70대 이재민 G씨는 "산 목숨이라 밥을 먹고 연명하고 있을 뿐, 이건 살아도 산 게 아니다. 어차피 했던 말들 또 하는 거 아니냐.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느냐"며 "그래도 우리가 국민이고 시민인데, 우리를 계속 이대로 방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란 한가닥 기대는 하고 있다. 재난이 닥쳤을 때 국가가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를 꺾지 말아 달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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