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209곳 동시다발 도시정비…쫓겨나는 주거빈곤층

강제퇴거 조치, 빈곤층 하루아침에 길거리 생활
집주인, 이주비 받는 시기 이전에 재계약 거부

대구 시내 한 주택재개발 지역 내 세입자 김기천(67), 이영선(52)씨 부부가 조합으로부터 이주비 보상도 없이 퇴거 당해 집 앞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시내 한 주택재개발 지역 내 세입자 김기천(67), 이영선(52)씨 부부가 조합으로부터 이주비 보상도 없이 퇴거 당해 집 앞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오갈 데가 없어 열흘 넘도록 천막에 살고 있습니다."

7일 오후 대구 서구에서 만난 김기천(67)·이영선(52) 씨 부부는 지난달 25일 거주지를 잃었다. 둘은 살던 집 앞에 천막을 치고 살고 있었다. 기초수급자인 이 부부는 8년 전 서구의 한 주택에 보금자리를 얻었으나 살던 곳이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면서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전세금 2천만원은 돌려받았지만 전세금 대출을 갚는 데 썼고, 거주기간 요건을 충족지 못해 이주비 보상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가지고 있던 짐마저 대부분 용역업체에 뺏겨 솜이불 하나로 버티고 있는 부부는 "점점 날은 추워지는데 걱정"이라고 했다.

주거환경 개선 명목으로 시행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강제퇴거를 동반하면서 세입자 등 주거 취약계층이 길거리로 나앉고 있다.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쫓겨난 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잠잘 곳마저 마련하지 못한 채 빈곤과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현재 대구의 도시정비사업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2020 대구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도심에서 진행 중인 정비사업은 209곳에 달하며, 전제 면적은 994.82㏊에 이른다. 정비 예정구역만 해도 152곳이다. 대구시 전역에서 재개발·재건축·도시재생·현대화사업 등 다양한 이름으로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업들은 토지나 건축물 등 소유자의 소유권을 중심으로 진행돼 세입자의 주거권은 위협받고 있다. 반빈곤네트워크에 따르면 대구를 비롯한 대도시 정비사업의 경우 세입자 비율이 60%에 이르지만, 정비사업 과정에서 세입자가 사업의 진행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특히 정비구역 지정부터 철거·이주가 시작되는 관리처분 인가까지 평균 4.7년이 걸린다는 점도 세입자의 주거권이 박탈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현행법상 세입자는 계약기간을 2년만 보장받을 수 있다 보니 집주인들은 이주비를 받는 시기 이전에 미리 세입자와의 재계약을 거부하거나, 계약을 새로이 체결하거나 갱신하더라도 '이주비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독소조항을 삽입한다는 것.

최병우 주거권실현대구연합 사무국장은 "세입자는 집주인이나 조합에 도의적으로 이사비 보상을 바라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행정기관은 세입자 주거이전 계획을 형식적으로 진행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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