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56>담장

 

 

남평문씨 세거지 담장 남평문씨 세거지 담장

2천 년대 초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4년부터 대구에서 '담장 허물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삼덕동의 한 가정집이 담장을 허물었는데, 예쁜 정원을 공유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였다. 정원이 담장 때문에 늘 그늘이 질 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만이 보고 즐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담장을 허물고 난 뒤 한동안 불안감이 없지 않았으나,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담장을 허물자 새로운 '골목공원'이 생겼다. 이웃의 주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놀이터가 되었다. 또한 담장 옆에 세워두던 차량들이 사라졌고, 대문 앞 쓰레기도 깨끗이 치워졌다. 삭막하던 골목이 조금씩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대구시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마침내 시민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먼저 행정기관부터 동참하였으며, 공공기관을 비롯한 도심에 자리 잡은 공원이며 대형 병원도 담장을 허물었다. 도시공동체 운동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담장은 농업사회에서 활발하게 발달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크게 발달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온돌이라는 특유의 난방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온돌 때문에 건물을 단층으로 지어야만 하였다. 단층 건물로 지으니 건물이 낮고 넓게 깔릴 수밖에 없고, 방이 필요하면 별채로 짓는 구조가 되었다. 자연스레 좁고 긴 건물 여러 채가 있는 구조가 되었고, 흩어진 건물들 사이에 마당이 많은 공간적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그 같은 마당은 외부인들이 들어오기 쉬운 구조라서, 그런 불편을 막기 위해 담장을 둘러쌓았다.

남평문씨 세거지 담장 남평문씨 세거지 담장

담장을 높이 만들면 공사비가 더 들게 마련이다. 또한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땅이 물러져서 담장이 쓰러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담장을 최소한의 높이로 만들어 영역을 나누었다. 그로 해서 낮은 담장과 골목길이라는 우리네 특유의 주거 형태가 조성되었다. 오래된 전통 마을에 가보면 그 같은 정취를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이 같은 모습은 1970년대 2층 양옥집을 짓던 시절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담장이 만들어 주는 공간인 골목길에서 만나고 머무르고 이야기하며 오순도순 살았다.

현대 도시에서 담장은 집단 이기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남과 나를 구분한다는 의미에서 담장은 분리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아파트 단지는 담장을 둘러쌓고 일반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런 경우 담장은 허물어야 마땅하지만, 아파트의 담장과 주택의 담장은 성격이 다르다. 주택의 경우 도로에서 거실이나 안방이 들여다보이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람살이의 내밀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신도시에 가보면 담장은 없지만 주택을 요새처럼 만들어 놓은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담장을 허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아니겠는가.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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