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국민의 자존심도 국익이다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지소미아(GSOMIA)? 그게 뭐지?", 대개의 반응은 이랬다. 그러다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라 하면 "아! 그거"라고 하다가도 이내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일본과 무슨 군사 협정이냐는 거였다. 그것도 그렇게나 급하게', 사실이 그랬다. 지난 정부가 국민정서상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협정을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치워버렸다. 일본이 우리에게 요청하고 실무자회의 달랑 두 번하고 협정까지 체결하는데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그게 지소미아였다.

반대 여론도 물론 있었고 여기저기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오래 세간의 관심을 끌진 못했다. 2016년 11월 23일,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 집권당이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당론으로 결정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튼 그때의 지소미아는 지금과 좀 달랐다. 국가안보를 위해 세계 각국과 맺은 30여 개의 지소미아 중 '추가된 하나'였다. 다만 상대가 일본이라는 게 문제였다. 광복 이후 처음 맺는 일본과의 군사 협정, 그걸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무조건 고울 순 없었다.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말이다. 지난여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의 맞대응 카드로 지소미아를 거론하자 '해선 안 될 협정이었으니 이참에 아예 끝내자'고도 하고 '함부로 그래선 안 된다'고도 했지만 대략 그 정도였다. 지소미아는 우리 안보의 근간이자 핵심이니 없으면 큰일 난다고까지 하지 않았다. 그저 일본에 대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 다행이라 여겼고 여론이 그랬듯 언론과 정치권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지소미아는 일본이 아쉬워서 우리에게 먼저 맺자고 한 협정, 그러니까 우리에게 유리한 카드였다. 따라서 '일본이 안보상 우리를 믿지 못해 백색국가에서 배제하고 수출규제를 하겠다는데 우린들 왜 그런 국가를 상대로 지소미아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정부의 주장은 하나 잘못된 게 없어 보였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그런데 돌연 상황이 급변했다. 이 지소미아가 우리에게 유리한 카드가 아니라 놓치면 죽는 카드가 되었다. 그런 만큼 지소미아 종료를 예고한 정부 또한 단박에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리 급해도 건드릴 게 따로 있지 어떻게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가지고 도박을 하느냐?"는 질책이 쏟아진다. 지소미아 종료는 미국의 뜻에 반하는 행동이고 그렇게 되면 한미 동맹이 깨질 것이고 결국 우리의 안보는 파국을 맞게 될 거란 이유에서다. 지소미아의 역할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필요한 하나의 연결고리에서 전체 전략을 지탱하는 중심축, 또는 기둥으로 급진전했다. 어떨 땐 반세기 훨씬 넘게 이어온 한미상호방위조약보다 더 중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 지소미아 카드를 꺼내든 정부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게 되었다.

그런데 지소미아가 그렇다 치면 그럼 우리가 일본에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선 별 말들이 없다. 그래서 불현듯 궁금해진다. '미국이 한일 간의 지소미아 종료를 싫어하는 건 맞지만 그것 하나로 한미 동맹이 끝장나고 진짜 나라가 망하기까지 할는지?' '그럼 지소미아가 없었던 그 긴 세월을 우린 어떻게 살아낸 건지?' 자꾸 따져보게 된다. 일본이 강제 동원 노동자를 여전히 '조선반도 노동자'라 부르며 시종일관 거짓말을 일삼아도 우린 그저 가만히 참고만 있어야 하는지도 묻고 싶어진다.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발표한 청와대도 참 이해하기 힘들다. 국민에게 말 한마디 없다가 일본 정부가 '한국이 완전히 항복한 것'이라고 하자 "쟤네들이 또 거짓말했어요"라고 이른다. 불매 운동하느라 고생한 국민에게, 그렇게 하면 나라가 곧 망할 것같이 이야기한 사람들로부터 사과조차 받지 못한 국민에게, 늘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며 훈계를 받던 그 감정적이기만 한 국민에게 다시 기댄다. 국민의 자존심을 다치게 해놓고 국익을 위해 그랬으니 또 참으라고 한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면 국민의 자존심도 국익이다. '그 덕분에 대일 협상이 잘 되었다'며 야당 대표를 찾아 인사를 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기대에 못 미쳐 미안하다'고 해야 하고 국민에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해야 한다. 매번 급할 때만 국민을 찾아 뒤치다꺼리해 달라고 하면 안 된다. 그건 염치없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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