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한국 정치 타락과 한국당의 책임

노동일 경희대 교수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조국 인사청문회대책TF 유공 의원과 당직자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조국 인사청문회대책TF 유공 의원과 당직자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직업으로서의 정치'(막스 베버)는 잘 알려진 책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정치 관련 서적이지 싶다. 책을 통해 베버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을 설명하고 있다. 무려 100년 전인 1919년, 독일을 배경으로 한 책이 아직도 우리에게 통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정치인들은 권력도 없고 책임도 없으며 동종 직업집단인 '길드'와 같이 단지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고 파벌 본능에 빠져 있다." 베버가 진단한 독일의 무기력한 정치 상황이 우리와 흡사한 때문일 것이다.

베버는 그런 상황을 타개할 정치 지도자의 덕목으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적 판단을 제시했다. 대의명분에 헌신하는 열정,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책임의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판단하는 덕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이 대의에 헌신하지 않고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을 상실했을 때 정치 타락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통해 국민들이 목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의 타락'이다. 국민과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의에 봉사하는 정치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모두 동종집단인 정파적 이해관계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권력자가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책임의식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어제까지 칭찬해 마지않던 검찰을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정치인들의 권력 남용이 도를 넘었다. 베버가 "정치 지도자가 책임의식이라는 자질로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않으면 지극히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 대로다. 균형감각의 상실은 또 어떤가. 정치인들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들도 궤변과 요설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우리 모두 진영 논리 속에 이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 정도다.

조국 장관 사퇴 후 조금씩이나마 회복의 기운이 돌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표창원 두 초선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정치 전반에 대한 실망도 있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며 느꼈던 좌절감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두 의원 모두 가장 공방이 치열한 법사위에서 조국 옹호에 앞장서야 했던 정신적 분열상을 토로하고 있다. 역시 초선인 조응천 의원도 "조국 사태로 지옥을 맛봤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의원은 소위 '계엄령 문건'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지도부를 향해 "낡은 정치이고 사라져야할 정치 문법"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20명이 넘는 여당 의원들이 불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

그와 비교되는 한국당의 반응은 지켜보는 지지자들마저 당혹스럽게 한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조국 TF' 의원들이 모여 표창장을 주고받은 것부터 어이없다. 혹시 조국 패밀리의 표창장 의혹에 대한 패러디인가 싶기도 했지만 진짜(?) 표창장 수여식이었다. 50만원 상품권까지 곁들여 박수 치며 웃고 환호하는 장면은 총선 승리 축하 자리를 방불케 했다. 그동안 고생한 의원들과 격려하는 자리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자리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

"국민 여러분께서 직접 거리로 나와 표출해 주신 뜻을 엄중하게 받들겠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기득권과 불공정을 시정해 나가는 데 지금부터 한국당이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 조국 사태 속에서 보수 야당이 발견했어야 할 대의는 그런 것이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기득권과 불공정을 타파하고 상식을 회복해 달라는 외침 말이다. 상장과 상품권을 돌리고 공천 김칫국을 마시는 모습에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인을 찾기는 어렵다. 하긴 자신들이 모시던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는 수모를 당해도 의원직 사퇴 등 확실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이다. 친박 혹은 친이 정치인들 모두 마찬가지다.

광화문의 시민들은 상식을 망각한 정치에 분노한 것이지 한국당을 지지해서 나온 게 아니다. 그 사실을 잊고 잠시 반짝한 지지율에 취한다면 내년 총선 결과는 보나마나다. 한국당은 여당보다 더 처절한 쇄신 경쟁에 나설 때만이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살릴 수 있다. 출발은 책임지는 정치인들이 줄을 잇는 것이어야 한다. 역시 베버가 강조한 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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