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한국은 '조선'이 아니고, 고통은 탈(脫)일본을 촉진한다

신뢰가 없어도 물건 파는 게 장사
일본은 아예 가게를 걸어 잠가
물건을 못 사는 고객도 힘들지만
고객을 잃은 가게는 문을 닫아

이성환 계명대 교수(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이성환 계명대 교수(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유치원생 손자가 "할아버지, 일본이 왜 우리나라를 못살게 해요" 했다. "한국이 미운가 봐"라고 하자, "왜 미워하는 데?" 더 이상 대화를 잇지 못했다. 어린아이 눈에도 일본의 급작스러운 수출규제 조치가 걱정스러운가 보다. 일본은 왜 이럴까.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 때문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나 일본 정부는 아니라면서도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외교로 풀어야 할 과거사 문제를 경제력으로 덮으려니 대답이 궁색하다. 아베 총리는 한일 간의 신뢰 문제라고 했다. 신뢰가 없어도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장사인데, 일본은 아예 가게를 걸어 잠갔다. 물건을 팔지 않겠다니 누가 그 가게를 믿을까. 이제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만은 '신뢰'라는 단어를 쓰지 못한다. 어쨌든 쌓인 불만을 못 이긴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서의 군사 침략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왜 물건을 팔지 않는가. 안 팔아서 생기는 손해보다 고객의 손실이 더 클 터이니 백기 투항할 것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필요한 물건이 그곳에만 있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물건은 없다. 발품이 들고 질이 조금 떨어질지 모르나 못 구하지는 않는다. 가게는 어떻게 될까. 손님이 다시 찾지 않으니 폐업하게 될 것이다.(일본 전체는 아닐지라도 그 물건을 파는 가게는 그럴 것이다)

일본을 분노케 한 불만은 무엇일까.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는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의 책임이 인정되었고,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은 중국과 미국에 책임을 인정했고,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점은 일본도 인정해 온 것이었다. 이 때문에 과거사 문제는 이번 사태의 빌미이지 본질이 아니다. 한마디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불만은 총체적이다. 식민 지배의 연장선에서 과거에 말 잘 듣던 한국이 언제부터인가 자기 목소리를 내니 얄밉고, 분통이 터진다. 한국도 되돌아보니 과거에 당한 것이 너무 부당하고 억울해 따져야겠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수직적인 한일 간의 역학(力學)이 수평적으로 바뀌고 있는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 한국을 '조선'이라 여기고 과거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본질이다.

게다가 미래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다. 일본은 한반도가 언젠가는 통일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에 물결이 더 빨라졌다. 그런데 자기 '관할'이었던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은 닭 쫓던 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정은에게까지 러브콜을 보냈지만, 욕설만 돌아왔다. 일본은 핵무장을 한 통일 한반도, 그리고 중국에 경도된 통일 한국이 두려워진다. 일본에 대해 역사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통일 한국과 중국이 스크럼을 짜면 일본은 어떻게 될까. 존재감이 커진 한국과 중국이 버티는 아시아에서 일본은 미국에만 매달려 생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일본은 한국을 계속 말 잘 듣는 '착한 조선'으로 두고 싶어 한다. 75년 전에 소멸한 '대일본제국'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영광의 일본이다.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가격을 올리겠다고는 해도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의 이번 조치는 경제 행위가 아니고 '침략'이다. 물건을 팔지 않으면 고객은 잠시 힘들지 모르나 고객을 잃은 가게는 문을 닫는다. 지금 한국의 기업과 국민은 힘들다. 그러나 지금의 고통에 비례해 한국의 탈일본화가 촉진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조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금의 한일 관계가 최악의 위기라고 한다. 기존의 한일 관계 틀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최악도 위기도 아니다. 과거의 조선과 일본제국의 관계가 현재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로 바뀌는 산통일 것이다. 견디면 반드시 이기고,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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