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우리가 자초한 일인가?

일제 군수산업 현장서 강제징용
피해보상금 지급은 당연한 판결
한국 사법부가 재판한 민사소송
내정간섭·반민주적 발언 해서야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배가 고파요.' 홋카이도의 한 탄광에서 발견된 한글이다. 삐뚤삐뚤하면서도 또박또박한 글씨가 까까머리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어두운 벽엔 '고향에 가고 싶다'와 '어머니 보고 싶어'란 글귀도 함께 써져 있다. 그는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까?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일제는 이른바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했다. 말 그대로 국가는 무엇이든 동원할 수 있고 그래도 된다는 파시즘식의 전시통제법이었다. 이를 토대로 39년엔 '국민징용령'이란 걸 공포했다. 전시노동력 확보를 겨냥한 보다 구체적인 시행령이었다. 이때부터 수많은 한국인이 강제로 동원당하거나 일제의 획책에 속아 각지로 끌려갔다. 서울 사는 어떤 이의 아들은 홋카이도의 탄광에서, 또 대구 사는 어떤 이의 아버지는 오사카의 철공소에서, 그리고 또 경북에 사는 어떤 이의 남편은 사할린의 한 공장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했다. 모두 일제의 군수산업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한국인이 혹독한 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리다 죽어갔고 그 시신마저 불태워지고 버려진 이들은 죽어서조차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여운택, 신천수 두 할아버지는 지옥 같은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지도록 일했지만 임금조차 받지 못했다.

지난 1997년, 두 사람은 일본 오사카의 지방재판소를 찾아 자신들을 감시하고 부렸던 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보상금이 아니라, 미지급 임금이 아니라, 회사가 저지른 불법행위로 인해 받아야 했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달라는 거였다. 내용으로 보나 소송 주체로 보나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갈음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일 양국이 맺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확정했고 이들은 결국 최종 패소했다.

터무니없는 판결이었지만 당시 우리는 지금의 일본처럼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수긍되지 않았지만 한 나라의 사법부가 내린 민사소송에 관한 판결을 두고 '행정부가 나서라'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식의 내정간섭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반민주적이기까지 한 발언을 한 적도 없다. 물론 다른 식의 보복도 가하지 않았다.

2018년, 일본의 사법부가 그들의 판결을 한 것처럼 우리의 사법부는 우리의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한·일 간 청구권협상에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피해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법적 근거도 조목조목 밝혔다. 뭐가 잘못되었는가?

1991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 있고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가 발간한 백서에도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더구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는 별개의 사안임을 분명히 했다.

일본인들이 우리 땅에 두고 간 재산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해도 된다. 단, 그 대상은 남의 땅이 제 것이라도 되는 양 자신들을 기망하고 오도한 그들의 황실과 정부가 되어야 한다. 만일 한국 기업에 강제로 끌려와 노동을 착취당하거나 죽임을 당한 일본인이 있다면 당연히 한국과 한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게 맞다. 그런 일이 있다면 말이다.

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소를 낼 땐 김규수, 이춘식 할아버지까지 원고가 모두 4명이었다. 그러나 3명이 세상을 뜨고 이젠 이춘식 할아버지 혼자만 남았다. 지난 1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이 있은 다음 날 일본은 기습적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겠다며 요식행위에 불과한 절차를 일방적으로 밟고 있다. 아베 총리는 급기야 '한국은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와야 할 것'이라며 일성을 날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정도면 거의 윗사람이 아랫사람 꾸짖는 모양새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 일각에선 그래도 생존이 먼저이니 일본을 달래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한쪽에선 이번만큼은 물러서선 안 된다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나라가 온통 난리라도 난 듯 들끓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라며 미안해 했다고 한다. 열일곱의 나이에 그 고통을 당하고도 자기를 지켜주지 못한 나라에 다시 미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순 없다. 95세의 할아버지를 다시 고개를 숙이게 해선 안 된다. 할아버지를 지켜내야 한다. 나라가 왜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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