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우리 것도 아름답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손호석 극작가, 연출가 손호석 극작가, 연출가

대구미술관에서 박생광 회고전이 진행되고 있다. 선생은 한국적인 정체성이 담긴 회화가 무엇인지 고민하셨고 그 고민을 작품에 담아 내셨다. 단색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민화와 불교, 무속 신앙 등에서 발견한 화려한 오방색을 활용하여 강렬한 색채의 작품들을 그려내셨다. 미술관에서 선생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결코 우리 것이 남의 것에 비해 부끄럽거나 수준 낮은 것은 아니다' 라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가지고 작업을 하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지난 5월 대구연극협회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막심고리키 극장의 문화 교류를 위해 진행된 해외 초청 공연에 작, 연출로 참여했었다. 처음에 의뢰를 받고 재외동포가 아닌 외국인 관객들에게 어떤 공연을 보여주면 좋을까 많은 고민을 하였다. 체홉, 톨스토이,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대문호를 배출한 나라, 문화적 자부심이 대단히 높은 러시아의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모습의 공연을 준비해야 할까 부담도 되었다.

고민 끝에, 그들의 문화도 우수하지만 우리의 문화적 유산도 그에 못지않게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니 그들에게 익숙한 형식이 아닌 우리만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흥부전을 각색한 뒤 판소리, 마당놀이, 탈춤 등 우리 민족의 극예술에서 형식을 빌려 와 작품을 준비했다. 둘러앉은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당놀이의 조금은 과장된 연기와 발성, 암전 없는 장면 전환, 배우와 악사 그리고 관객 사이의 즉흥성, 퇴장하지 않고 무대 주변에 앉아있는 배우들. 우리에게는 흔하고 익숙한 이러한 형식들이 그들에게는 새롭고 독특한 문화로 보여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곳의 문화부와 극장 관계자들, 블라디보스토크 한국 영사 등 많은 분들과 관객들이 호평을 해 주셨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러시아 어린이 극단 친구들을 만난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이었다. 그 아이들은 한국어로 '흥부와 놀부' 연극을 연습하고 있었고 무대 위에서 우리에게 깜짝 공연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러시아어도 아닌 우리말로 연극을 준비하는 모습이 너무 놀라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 문화의 우수성이 세계에 전해지고 있구나 싶어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날 이후로 필자는 늘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작업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 것도 아름답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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