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사를 가르치는 학생의 질문

유영애 대구중앙중학교 교감

유영애 대구중앙중 교감 유영애 대구중앙중 교감

초등학교를 마치고 갓 입학한 중학생들의 얼굴은 그래도 맑다. 대한민국 초등생이 겪는 학업 스트레스가 위험 수준에 이른다고 해도 말이다. 중학교에서 1학년은 아직 어설프고 뭔가 잘 모르는,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쪼르르 달려와 이르거나 매달리는 떼쟁이. 뭐 그런 존재로 생각된다.

문학 수업을 진행하면 삶의 갈등을 다룰 때가 많다. 이럴 때 기본적으로 깔고 시작하는 것이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강론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이유는 말이야!" 영원히 살지 않는다는 것, 미래를 모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상상이 위대하다는 것, 그래서 문학이 아름다운 것까지 한데 묶어 열변을 토한다.

이런 이야기가 자주 반복되다 보니 하루는 한 학생이 손을 들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다. "선생님! 그럼 우리는 어디서 완전함을 찾아야 하나요?"

순간 교실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고 다수의 집중된 눈에서 나온 파란 광선이 정적을 타고 내 얼굴에 마구 꽂혔다. 모두 '맞아! 그게 뭐지?'라는 표정이었다. 머리가 찌르르해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질문이 나올 거라 생각지 못했기에 당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조금 뜸을 들이며 속으론 버둥거렸다. "그래! 정말 멋진 질문이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국은 존재에 대한 이타심이 아닐까?"라고 대충 얼버무린 것 같다.

한참 지나고 보니 그 아이는 가볍게 털어버린 것 같은데 나는 그 질문을 매달고 지낸 것 같다. 이제 성인이 되었을 그 학생도 지금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동분서주하지 않을까 싶다.

최일남의 단편소설 '노새 두 마리'를 수업할 때의 일이다. 이 작품은 가난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말하기 영역을 마무리 활동으로 정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소개하는 '1분 스피치'로 진행했다. 켄트지를 주고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것을 무엇이든 그려 넣고 여백에다 발표할 내용을 적으라고 했다.

한창 발표가 무르익어 갈 때 'NO'라는 글자로 켄트지를 가득 채운 학생이 사연을 얘기했다. 아버지께 뭔가를 요청하면 대부분 "하지 마!"라는 답변이 돌아오니 힘이 좀 안 난다고 했다. 힘이 안 난다는 것을 고백하면 어떠냐고 했더니 그 학생은 대답 같은 질문을 했다.

"내가 아버지 말만 잘 들으면 'NO' 할 일이 없지 않을까요?" 그 순간 뭔가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뒤늦은 깨달음이랄까. '아! 그래, 나는 왜 항상 상대방을 바꿀 생각만 했을까!' 습관이 다른 남편에게 열을 올릴 때마다 개의치 않던 남편의 덤덤한 눈빛과 학생의 건조한 눈빛이 스르르 겹쳤다.

학생이 무슨 의미를 갖고 한 질문인지, 아니면 그냥 무심코 던진 질문들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감탄사에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얻곤 한다. 여전히 떼쟁이지만, 그래도 나를 환히 비춰주는 맑은 거울들을 감사하게도 매일매일 만난다.

참고로 학생들의 켄트지 속 아버지는 아쉽게도 소주병, 담배, 소파, 텔레비전 등으로 많이 그려졌다. 하지만 아버지가 끓여주는 심야의 라면, 검은색으로 물든 러닝셔츠, 끈 풀린 낡은 구두, 할머니께 입양된 아버지를 위한 커다란 하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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