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그건 '멋진 한마디 찾기'가 아니다

작은 명함서 큰 옥외광고물까지
CI·BI 순서, 운용 규칙 준수 중요
태극기 함부로 대하면 안 되듯이
도시 상징 브랜드 정체성 지켜야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일에는 순서가 있다. CI(Corporate Identity, 기업 이미지 통일화), BI(Brand Identity, 브랜드 이미지 통일화)도 그렇다. 먼저 바라보고, 마음을 다해 바라보고, 생각을 다해 바라보고, 그리고 질문하고, 다시 죽을힘을 다해 처음 보듯 바라보고, 바로 그때 보이는 다름에 천착하고, 마침내 본질에 집중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듯 기업이나 단체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브랜드를 시각화하는 작업은 꽤 까다롭고 엄격한 과정과 절차를 요구한다. 동시에 감성의 몰입과 집중도 필요하다. 이에 더해 CI와 BI 둘 사이의 관계에도 일정한 순서와 규칙이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올바른 흐름'이라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법으로 치면 CI는 하나뿐인 헌법, BI는 최상위법인 헌법의 철학과 가치 체계 안에 존재하는 하위법이다. 다시, CI를 성씨나 가문이라 치면 BI는 그 가문을 구성하는 개인 또는 가족 구성원에 해당한다. 그러니 이래저래 CI가 BI의 상위 개념이고 선후로 따져도 먼저가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CI가 튼튼하면 BI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CI가 힘이 세면 BI도 그 덕을 보기 쉽다. 물론 집 나와 독립을 하듯 가끔 모기업 CI와는 별개로 전개되는 브랜드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브랜드 이미지 보호나 리스크의 분산 등 기업의 특별한 의도와 상황에 따른 예외적 사례일 뿐이다.

대개의 BI는 CI를 떠나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 행여 CI로부터 분리되거나 버림받기라도 한다면 그 브랜드는 살아남기 힘들고 때론 그것만으로 존재의 이유가 없어지기도 한다. 특히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처럼 비영리 기관의 브랜드는 그럴 개연성이 더 높다. 도시와 분리되는 순간 그 브랜드는 이미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 브랜드가 아무리 돈을 번다 한들 그 돈을 들고 나가 다른 도시를 세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도시 브랜드가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와 궁극적인 목적은 도시의 정체성 확립과 지속 가능한 공동체 구현에 있다. 따라서 개별 브랜드는 철저하게 도시의 아이덴티티(CI) 전략과 체계 안에서 도시 브랜드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해야 한다.

지난 글에서 브랜드는 만드는 것이 '1'이라면 그다음에 있을 일이 '99'라 했다. 그 '99'는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규칙이 없으면 디자인이 아니다. 규칙이 없으면 브랜드가 아니다. 즉 브랜드의 힘은 규칙을 지키는 데서 온다. 그것도 긴 세월에 걸쳐 아주 조금씩 온다. 작은 명함에서 큰 옥외광고물까지 CI와 BI의 순서를 지키고 CI·BI의 운용 규칙을 끈질기게 지켜가야 한다. 그게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고 확산하는 일의 모든 것이다. 특히, 도시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명함은 CI 프로그램을 헌법처럼 따라야 한다. 그들의 명함은 그 도시를 보여주는 움직이는 간판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1만 개의 명함이 사람들의 생각을, 그것도 정확하게 같은 자리를 1만 번 반복해 두드릴 때 한 뼘씩 도시의 정체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약 명함에서부터 CI나 BI의 순서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1' 다음에 올 '99'는 영영 없다고 봐야 한다.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축구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가로로, 세로로 저마다 다르게 붙이고 있거나 아예 떼고 경기를 한다고 상상해 보시라. 말이 되는가? CI 프로그램을 따르지 않은 명함은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설령 좋은 의도였다 한들 결국 그 명함에 대한 포폄은 시와 시민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잠재의식의 발로, 또는 무지의 소산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잘되는 기업, 잘되는 도시는 그러지 않고 그런 걸 용납하지도 않는다.

대구의 CI처럼 기본이 튼튼한 경우라면, 그리고 필요하다면, CI를 시대에 맞게 얼마든지 리뉴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태극기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되듯 도시의 상징도 함부로 다뤄선 안 되고 그 체계를 임의로 깨뜨려서도 안 된다. 태극기 없는 붉은 악마가 있을 수 없듯이 CI 없는 도시 브랜드도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도시 브랜드는 규칙이다. 도시 브랜드 개발은 CI의 체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다. 즉, 도시 브랜드 개발은 '멋진 한마디 찾기'가 아니다.

관련기사

오피니언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