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망각만이 능사는 아니다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망각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니체는 말했다. 이 때 인간이란, 아마도 고통이나 불행속에 갇혀있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히스클리프라든지,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콜리니코프라든지, 안나까레니나에 나오는 안나라든지 하는 인물들처럼 고통에 괴로워하는 사람 아닐까. 아니면 사기나 폭행 등의 억울한 경험으로 커다란 상처를 지니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심에 빠져 살아가는 의욕마저 잃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나도 젊었을 때는 연인과 이유도 모른 채 이별하고, 나이가 든 지금은 긴 세월을 사랑해오던 가족들을 잃고 너무 힘들 때가 있었다. 산 사람과의 이별도 죽은 사람과의 이별도 힘들었다. 존재를 지우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힘들었다. 오죽하면 돈키호테가 한 말, '시간이 지울 수 없는 기억은 없고, 죽음이 희석할 수 없는 고통도 없다'는 말을 의지하려 했을까? 견디기 어려운 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이런 고통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나를 내려놓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각이 신의 선물이라는 니체의 말이 더욱더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망각만 믿고 세월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나(我)라는 존재는 까닭도 없이 우주에 던져진 존재, 즉 피투체라 하고 그런 피투체이지만 그러나 우주(세상)를 향해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투체라고도 한다. 즉 본질은 무의미하고 나약하고 고독한 피투체이지만 실존은 의미를 향해 행동하고 그래서 결코 외롭지가 않은 기투체라는 것이다. 억울하기 짝이 없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실망하거나 두려워 할 수 있지만 그런 세상을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아 따뜻한 곳으로 만들 수도 있다.

까뮈의 소설에 나오는 '시시포스'처럼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할 수도 있고 '타루'처럼 자신이 옳다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내(我)'가 세상의 중심이고 우주의 중심이 아닌가. 그러니 나와 세상 모두를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언제나 우리의 삶은 어렵고 우리의 존재도 어려울 뿐이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존재, 그것이 인간이지만 사랑하는 동안은 모두 숭고한 가치적 존재로 남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이나 타인의 많은 것을 이해하고 삶의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아내어한다. 우리는 아는 만큼만 인식하고 인식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인식을 앞서기 때문이다.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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