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쾌락과 미혹에 빠져 허덕이는 나라

한국 경제 눈부신 활로 열어준 한류
국민소득 3만달러 일궈낸 일등공신
일부 K팝 스타 추악한 스캔들 연루
그간 이룬 세계적 결실 물거품 위기

김주영 소설가 김주영 소설가

오래전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로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연달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도시에 도착한 이튿날 우리 일행은 국립대학의 여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체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한류를 사랑하는 모임의 구성원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들에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물론 이구동성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들이 너무나 절실했으므로 한국을 방문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예상 못 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피부 관리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외국의 유명 사립대학 졸업을 앞두고 유학생이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했다. 서울에 도착한 바로 그날, 여행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부랴부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 버렸다.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도무지 오리무중이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자정을 넘긴 새벽 3시쯤이었다. 어디 갔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홍대 앞을 다녀왔다고 했다. 거긴 왜 갔느냐고 다그쳤더니, 대답이 걸작이었다. "재미있잖아요."

서울에 있는 올림픽공원에 가보면 거의 끊임없이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열린다. 공연이 있는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동남아를 비롯해 먼 나라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긴 대열을 만들며 삼삼오오 노숙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여행용 가방은 물론이고 간이 침대와 가벼운 이부자리, 몇 끼니를 때울 식품까지 갖추고 있다. 그리고 공연을 보고 나면 옆도 돌아보지 않고 귀국길에 오른다.

탈북한 여성들이 출연하는 좌담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탈북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남한의 젊은 연기자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함이었다는 고백이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참말인지 웃자고 하는 흰소린지는 모르겠으나 그 여성은 남한의 인기 연예인 아무개의 실물을 보기 위해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탈북을 감행한 것이었다. 나이 먹은 사람으로선 도저히 이해 못 할 일에 요즘 젊은이들은 목숨조차 걸 수 있구나 싶었다.

그 눈부신 성과에 대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류는,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란 어둠 속에서 우박처럼 쏟아진 행운이었다. 싸이나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아이돌 가수들이 획득한 대중적 성과는 세탁기에 들어간 봉제 인형처럼 방향감각을 잃고 곤두박질치던 우리 경제에 눈부신 활로를 열어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찌그러진 동냥 그릇을 손에 들고 좌왕우왕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류의 성과에 힘입어 우린 희망의 경이를 목격하게 되었고, 국민 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게 되었다. 놀라운 일이다. 이집트 인구의 95프로가 나일강가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한류가 이루어 놓은 산업적 성과에 기대어 살아가는 시대가 도래했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탈북 여성의 발언이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성과를 거둔 K팝 스타들이 저지른 스캔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받은 충격이 크다. 그들은 심지어 공직자와 결탁해서 뇌물 혹은 탈세와 같이 노회한 범죄자들을 뺨치는 지저분한 비리를 저질렀다. 똑같이 생긴 칼이라 하더라도 어머니가 들고 있을 때와 도둑이 들고 있을 때가 확연히 다른 것처럼, 연예인들이 인기에 도취되어 방만한 일탈에 젖다 보면 그때까지 거둔 성과는 바람 부는 날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사람이 시대가 낳은 미혹과 풍기를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쾌락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악령의 손짓에만 무분별하게 쫓아가다 보면, 양녕대군처럼 따 놓은 왕의 자리를 제 발로 걷어차는 치명적인 불상사를 저지르게 된다.

한국인의 애환을 달래 온 국민 가수 이미자 씨가 자신의 노래 인생 60년을 회고하면서 악보대로 노래하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젊은 연예인들이 오늘날과 같이 절제력을 잃게 되면, 필경 오만해지며 나아가서는 범죄 의식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교훈으로 기억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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