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창] 중남미에서 민주주의를 배우다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학과 교수 임수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학과 교수

깨어있는 시민·책임있는 정치인

함께 만드는 대화와 타협의 문화

보수·진보 편싸움 바쁜 한국 사회

선거때만 민주주의 외쳐선 곤란

우리의 중남미에 대한 인식은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특히 정치에 대해서는 정치인들과 학자들조차도 중남미를 정치 후진국 혹은 '중남미식' 정치 불안정이라고 비하하며 우리도 중남미처럼 될 수 있다거나 중남미만도 못하다거나 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부적절한 표현이다.

중남미 33개국에는 다양한 나라가 존재한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도 있지만, 한국보다 높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국가들도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8년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우루과이와 코스타리카가 20위 안에 들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고, 한국은 21위에, 그리고 칠레가 23위에 올랐다.

중남미에서 민주주의 지수가 높은 이들 세 국가는 대통령제와 다당제 국가이면서도 정당 연합을 통해, 또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합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안정된 국정 운영을 지속해 왔다.

우루과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Jose Mujica) 전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의 월급 기부 목적에서 나타나듯 우루과이에서 정치는 모두가 행복한 정치, 정당 간 컨센서스, 시민의 공무원에 대한 견제, 평등한 시민, 사회적 연대, 즉 공화주의의 실천을 말한다.

이를 위해 1917년 국가 차원의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하여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를 시행하고 있다. 국민발안은 유권자의 10% 서명, 국민투표는 유권자 25%의 서명을 충족해야 국민투표로 이어질 수 있는데, 제도 도입 이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시민 주도의 국민투표가 있었다. 유권자 서명을 받고 국민투표를 시행하기까지 2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고 국민투표에서 패배할 때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시민들은 결과를 받아들일 줄 안다. 서명 기간 동안 다른 시민들을 만나 입법 과정에 참여하고 토의하면서 일상의 정치를 즐겼기 때문이다.

우루과이의 직접민주주의는 강한 대의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세 개의 주요 정당 중 홍당과 백당은 미국 민주당과 영국 보수당에 이어 1836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창당됐으며, 이것은 세계 최초로 복수의 정당이 정당 경쟁을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여당인 광역전선은 반독재 민주화 세력의 정당 연합이다. 직접민주주의 과정에서 시민들은 늘 정당과 연대하였고, 그만큼 유권자의 정당에 대한 신뢰는 크다.

코스타리카도 시민의 정치 참여와 합의를 강조한다. 1964년부터 시작된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해하고 이행하는 시민을 국가의 교육 목표로 하여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이고 참여하는 성숙한 시민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권리와 의무를 교육한다. 유치원 때부터 시작하는 민주주의 교육을 통해 시민은 절차와 제도를 넘어 내 삶의 가치가 되는 민주주의를 체득하여 책임 있는 시민으로 성장함으로써 국가의 근원이 된다. 시민 주도의 자치와 공고한 민주주의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코스타리카가 민주주의와 평화의 나라가 된 것은 1948년 군대를 폐지하면서부터다. 정당 간 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나 3천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군대를 없애고 국방비를 교육 예산에 쏟았다. 그렇게 시작한 민주주의 교육은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상징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와 같은 시기 군사독재를 겪었고 민주화를 이뤄낸 중남미 국가들은 대통령제라는 공통점도 있다. 중남미 정치에는 반면교사로 삼을 일도 있지만, 깨어 있는 시민과 책임 있는 정치인이 함께 만들어 가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도 있다.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커져 가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는 선거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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