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선악의 문제와 상황의 문제

천영애 시인

천영애 시인 천영애 시인

인간이 근원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를 두고 여러 가지로 설왕설래하지만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보면 모두가 선량한데 다른 쪽에서 보면 그렇지 않기도 하고, 악한가 싶기도 하다가 또 선한 면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근원적인 선악을 구분해 보려는 오랜 노력은 그래서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므로 인간의 성품에 대해서 근원적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너무나 규정적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악하거나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것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타고 난 성품이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라 나와 성향이 맞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타인은 각자의 성향이 있고 그 성향이 나와 어떻게 어울리느냐가 문제인데 우리는 자기와 잘 맞으면 선하다고 하고, 잘 맞지 않으면 악하다고 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나이가 들어도 관계 맺기는 여전히 힘들다. 나는 선명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답답하다 못해 피하고 싶다. 반대로 선명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상대가 뭐든지 선명하게 드러나길 원하면 몹시 피곤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선인인지 악인인지를 구분하고 싶어한다. 타고난 성향이 있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드러나는 것이 전부인 사람은 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양한 자신의 성품이 드러날 것이다.

작가로 오랜 세월을 살면서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가 더러 있다. 어떤 때는 불의와 타협해야 하고, 어떤 때는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름의 기준은 명확하다. 합리적인 명분이 있는지를 따지고, 미래에 그 일이 내 발목을 잡지 않을까를 생각한다. 어떨 때는 온순한 타협가보다 결기 있는 비타협가가 되어야 할 때도 있다.최근에 어떤 일을 겪으면서 작가로서 내가 타협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있었다. 무명작가지만 작가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 거라면 선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게 드러났다. 강골의 시인, 나는 이 이름이 좋다. 결국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문제였던 것이다. 천영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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