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예술은 습관에 반대한다

천영애 시인

천영애 시인 천영애 시인

지인들과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가끔 시를 쓰는데 그럴 때마다 동행했던 지인들에게서 받는 질문이 있다. 너는 어떻게 그것을 보았느냐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왔지만 사실은 다른 공간에서 다른 것을 본 셈이다.

예술은 습관을 거부한다. 흔하디흔한 소주병 뚜껑으로 러브 기호를 만들어 놓은걸 본 적이 있다. 소주병 뚜껑으로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나 싶어서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예술이란 이런 것이다. 주변의 흔하디흔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건져 올리는 것은 탁월한 예술가의 예에서만은 아니다. 예술가란 위대한 예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물들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루스트는 섬세하고 긴 문장으로 유명하다. 현학적인 그의 문장은 '전 잉글랜드 프루스트 요약 경연대회'가 열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는 "우리는10시에 모였습니다"라고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사소한 것들, 가령 어느 역에서 누구와 악수하고, 어떤 소리가 들렸으며, 날씨의 느낌은 어땠는지, 상점에서 파는 빵 냄새는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원한다. 그는 사태에 대해서 대충 설명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섬세하고 세밀하게 상황과 대면하기를 원했다.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기차역의 풍경, 봄날 아침의 날씨, 바람의 살랑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등에서 예술가는 예술을 만든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습관을 반대한다. 예술가에게 습관보다 더 무서운 적은 없으며, 그들은 날마다 반복되는 것에서 새로운 느낌,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예술가는 다른 것을 보고 느낀다. '본다'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습관적이면서 무엇보다도 창조적이다.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탐매에 나서는데 해마다 보았던 곳의 매화를 차례대로 순례하듯이 탐방한다. 그럼에도 매화는 해마다 다르고, 지난해와는 다른 기분으로 다가온다. 섬진강변의 소학정 백매를 시작으로 통도사 홍매,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 산청3매, 화엄사 홍매를 끝으로 탐매의 길은 막을 내린다. 해마다 거의 돌아보는 매화지만 해마다 색이 다르고, 향이 다르며, 스치는 바람의 느낌이 다르다. 매화는 때마다 다르게 보여지고, 나는 늘 다른 매화를 본다.

같은 곳을 여행하면서도 다른 것을 보는 이유이다. 예술은 그 지점에서 꽃을 피운다. 천영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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