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누가 염소가 가는 길을 두려워하는 가

김주영 소설가. 객주문학관 명예관장

김주영 소설가 김주영 소설가

지자체 갖가지 명분 현금복지 혈안

곳간 바닥나 이도저도 못하게 될 때

국민이 겪을 금단 현상에 가슴 답답

어떤 핑계대며 책임 회피하려는가

상거래의 패턴이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커피 한 잔을 위한 거래에도 카드를 쓰거나 모바일로 처리하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이런 시대에 지난날과 같이 현금 거래의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다. 첫째는 도박판이고, 그다음은 오일장의 쇠전마당이다. 이들 두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현금 박치기'란 거래 관행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원매인(願買人)이 점퍼 안주머니에서 현금다발을 꺼내 들고 흔들어대면, 멱살잡이까지 하며 살벌하게 다투던 흥정은 순식간에 결판난다. 도박판 역시 묵직한 현금다발을 호기 있게 판돈으로 던지는 순간, 밑천이 쪼들려 전전긍긍하던 상대는 기가 팍 죽어 판세는 금방 뒤집힌다. 시쳇말로 현금 박치기란 그처럼 머리 없는 닭처럼 우왕좌왕하던 흥정에 치명적인 결정력을 안긴다. 흥정 과정에서 치닫기만 하던 갈등을 단숨에 무력화하는 살상력을 갖는다. 결말은 언제나 돈다발을 손에 쥔 사람의 기선잡기로 끝난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들이 갖가지 명분을 만들어 도박판처럼 현금 복지를 펌프질하고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혹은 자기 과시욕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일수록 이런저런 명분을 내건 현금 복지에 혈안이 되어 있다.

몇 해 전 중국 이웃에 있는 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나라는 광산 채굴권을 외국 회사에 넘겨주고 받은 거액의 보상금을 그대로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때 만났던 그 나라의 한 교수는 위정자를 가리켜 한심하고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상스러운 말로 폄훼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위정자가 당장은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칭송을 들을 만하다. 그러나 한 잔의 우유를 마시기 위해 소를 잡는 실수를 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평가절하로부터 비켜나지 못했다. 그것처럼 무분별하게 현금을 뿌려대다가 나중에 곳간이 바닥나서 이도저도 못하게 되었을 때, 국민들이 겪는 금단 현상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때는 또 무엇을 핑계하며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것인가. 누가 그건 내 탓이오 하고 나설 것인가. 쏟아지는 질책과 비난에도 필경 시치미를 떼고 책임을 전가하거나,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남의 등 뒤에 숨어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빈약한 재원 때문에 현금 복지의 생색을 낼 수 없는 대다수 지자체의 책임자는 가만히 앉아서 무능력한 행정가라는 지탄을 받게 되었다.

사막에서 양떼를 기르며 살아가는 유목민들이 터득한 지혜를 기억하자.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수백 마리의 양떼를 유심히 관찰해보면, 그 가운데 몇 마리의 염소들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양떼는 그냥 두면 한자리에서만 맴돌며 풀을 뜯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염소는 새로운 식량원이 기다리는 싱싱한 목초지를 찾아 계속 자리를 옮겨 다니는 습성을 가졌다. 양떼는 습관적으로 염소의 뒤를 따라다닌다. 결국 양떼들을 좋은 목초지로 데려가는 것은 뒤를 따르는 목동이 아닌 앞장선 염소들이다.

그냥 두면 목초지는 얼마 가지 않아 황폐화되어 목초지로서의 역할을 끝장내고 말 것이다. 뿌려대고 있는 지자체들의 현금 재원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금임이 분명하다. 양떼들처럼 손쉬운 세금만을 파먹다 보면 머지않은 장래에 곳간은 거덜나고 말 것이다. 물고기가 먹고 싶으면 냇가로 가지 말고 집으로 달려가 그물을 짜라는 말이 있다. 현금 복지에 앞서 그 재원이 고갈되지 않는 방도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세금은 어디서 발생할까. 두말할 것도 없이 기업체에 성장 동력을 실어줌으로써 재원의 지속성이 유지되리라 믿는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 현금 살포만 계속할 것이 아니다.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내는 염소의 지혜에 주목할 일이다. 쌓여 있는 돈 바가지로 퍼 나르기는 삼척동자나 철부지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범람하는 강물은 빠르고 거칠다. 그래서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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