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거짓말'의 참 의미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나무 위에 앉은 까치를 가리키며 "저기 까치가 앉아 있다"라고 하는 말은 화자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말을 하는 순간 아직 사실로 입증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가령 친구를 기다리다 "차가 막히는가 봐"라고 추측하기도 하고, "내년엔 돈 더 많이 벌어"라고 기원하기도 한다. "3시까지 이 일을 끝내야만 해"라고 의무를 지울 수도 있고, "선진국이 되려면 꼭 통일이 돼야만 해"라고 당위(當爲)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뛰어와!"라고 명령하기도 하고,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라고 질문할 때도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추측·기원·의무 등으로 표현하므로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 우리 언어생활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영역이다.

거짓말은 화자가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거짓말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장해야 할 '착한' 거짓말이 있다. 이것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대화 현장에서 금방 드러나는 말'이다. 손님을 위해 잘 차려 놓고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고 겸양법을 쓸 때, 잘 차려진 상과 "차린 것이 없다"라는 말의 불일치가 거짓임을 즉각 드러낸다. 커피잔을 엎어버린 아이에게 "자~알 했다"라고 반어법을 쓸 때도 잔을 쏟은 행위와 표현의 불일치, 그리고 진짜 잘했을 때와는 다른 부모의 말투와 표정이 거짓임을 드러낸다. 이 외에 각종 유머나 "남자는 늑대다"와 같은 은유적 표현에서도 착한 거짓말은 유용하게 쓰인다.

'나쁜' 거짓말은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인 것처럼 꾸며 상대로 하여금 거짓임을 눈치챌 수 없도록 하는 기만행위'이다. 보통 "거짓말하지 마라"라고 할 때 바로 이 나쁜 거짓말을 뜻한다. 이것은 사기이며 십계명의 아홉 번째를 위반하는 중죄이다. 이토록 나쁜 짓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것을 하는 사람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가? 자신, 가족, 친인척 또는 자기 집단의 부당한 이익을 위해서 이것을 일삼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짐승도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익은 챙길 줄 안다. 따라서 작금에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동물의 왕국을 연상시키며 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당연히 모범을 보여야 할 분들조차 나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교육자, 종교인, 관료, 의료인, 기업인은 물론이고 법을 만드는 사람과 법을 집행하는 사람까지 이것을 일삼는 자들이 있다. 이 땅의 착한 딸과 아들들, 그리고 건전한 시민들은 기만당한 믿음에 좌절한다. 그렇게 쌓은 부 아닌 오물, 명예 아닌 오욕, 위엄 아닌 허장성세가 신기루임을 모르는가? 되물어 보자. 그리하여 행복해지셨습니까?

올해가 저물기 전에 비라도 흠뻑 내려 탐욕과 부정, 반칙과 불법, 특혜와 차별이라는 때를 씻어가 주면 좋겠다. 마라도에서 철원군 동송읍까지, 호미곶에서 태안반도 끝자락 안면도까지, 그리고 독도에서 연평도까지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더불어 잘살게 되는 날은 너무 먼 꿈이란 말인가? 작가 전우익의 말이 생각난다.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니더.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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