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수능 국어 31번 문제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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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신문을 넘기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가 실린 걸 보고선 책상 한편에 접어두었다. 유독 국어가 어려웠다기에 슬며시 호기심도 생긴 데다 은근히 '어려워 봤자 국어잖아!' 하는 자신도 있었다. 그래서 재미 삼아 한번 풀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자 그 신문 위로 다른 신문과 종이가 쌓이고 찰나에 일었던 호기심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물론 게으른 탓이겠지만 이래저래 시간도 나질 않았다.

그런데 수능, 특히 국어 영역을 둘러싼 논란이 자꾸만 커져갔다. '지나치게 어렵다'에서 '이건 국어 문제가 아니라 과학 문제다'까지, '뭐 그러다 말겠거니' 할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논란의 여파와 사회적 파장이 점점 늘어나더니 급기야 수능과는 까마득히 먼 거리에 있는 나에게까지 영향이 미쳤다. 급작스레 책상 위를 뒤적여 예의 그 국어 31번 문제만 찾아서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봤다. 그리고 몇 초 뒤엔 눈에 힘을 주고 봤으며 다시 몇십 초인지 아니면 1분 정도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하마터면 신문을 집어던질 뻔했다.

꽤 이름이 알려진 한 인사는 이 문제를 두고 올해 수능 국어 31번 문제는 "과학 문제가 아니라 국어 문제가 맞다"고 했다. 국어 시험의 목적은 독해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니 평소에 책을 많이 읽은 수험생이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라고도 했다. 그래서 다시 봤다.

지문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골라내는 문제, 그 핵심 내용인 만유인력에 관한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1. 만유인력은 두 질점이 당기는 힘이다. 2. 만유인력의 크기는 두 질점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3. 어떤 천체가 자신의 밖에 있는 어떤 질점을 당기는 만유인력의 값은 그 천체를 잘게 나눈 부피 요소들이 각각 어떤 질점을 당기는 힘(이 힘도 만유인력이다)을 모두 더한 값과 같다. 단, 이때의 조건은 지구를 포함하는 천체들이 밀도가 균질하거나 구 대칭을 이루는 구라야 한다.'이다.

정리해봐도 여전히 어려운 이 내용을 국어 31번 문제는 새끼줄 꼬듯 이어 붙여 2개의 문장으로 늘어놓았다. 이렇게 말이다. "이때 가정된 만유인력은 두 질점이 서로 당기는 힘으로, 그 크기는 두 질점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지구를 포함하는 천체들이 밀도가 균질하거나 구 대칭을 이루는 구라면 천체가 그 천체 밖 어떤 질점을 당기는 만유인력은, 그 천체를 잘게 나눈 부피 요소들 각각이 그 천체 밖 어떤 질점을 당기는 만유인력을 모두 더하여 구할 수 있다."

국어를 이렇게 쓰면 안 된다. 우리말은 아름답고 명료하다. 국어 31번 문제의 지문은 지시대명사 '그'를 남발하고 '만유인력은 만유인력을 더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식의 문장 구성으로 보는 이를 헷갈리게 한다.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늘어진 문장에 복잡한 어순으로 초점마저 흩트린다. 이건 국어 문제냐 과학 문제냐를 떠나 국어사용법상 함량 미달의 문제다. 그리고 난이도와도 관계없고 독해 능력과도 상관없는 문제이다. 국어시험은 국어에 관한 것을 물어야 한다. 수능 첫 시간, 문제지를 받아들며 국어 생각으로 가득했을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대입 수능 국어 31번 문제는 시험이라기보단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한 정신적 폭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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