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먼산의 아지랑이

전 대구적십사 병원 원장

'염불보다 잿밥'이라고 가끔 운동경기보다 치어리더들이 경쾌하게 춤추는 모습을 보거나 팬들이 불러대는 신나는 응원가 소리 듣기가 더 좋을 때가 있다. 응원이라면 "연고(延高)전'이다. 서로를 '신촌 참새(독수리)', '안암동 고양이(호랑이)'라고 놀리며 함성 지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올림픽과 월드 컵 때는 범국민적 응원과 노래에 몇날 며칠이고 흥분되어 업무도 옳게 못 볼 지경이었다. 그 후로는 집단 응원가로'아리랑 동동'을 부르다가 최근에는 운동장에 가도 관객이 제창을 하는 노래가 없다.

몇 년 전에 경부선 KTX를 탔는데 옆 자리 남여 한 쌍이 계속 신문지를 찢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정신은 온전한데 대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말을 맞아 고향 부산에 가는데 롯데 야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신문을 찢는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 더 어려워졌다. 그들의 말은 TV를 보면서 뜻을 알게 되었다. 부산 구덕운동장을 가득 메운 응원단들이 머리에는 물건 싸는 비닐봉투를 뒤집어쓰고 손에는 찢어진 종이로 만든 먼지떨이를 흔들며 '부산 갈매기'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응원문화는 부산에만 남아있다.

 

대구경북에는 시민들이 함께 부르는 응원가가 없다. 아니 있었는데 없어졌다. ‘먼 산에 아지랑이 품 안에 잠자고, 산골짜기 흐르는 물 또다시 흐른다. 고목에도 잎이 피고 옛 나비도 춤을 추는데, 가신님은 봄이 온 줄 왜 모르시나요?’

5,60년대 대구, 영천, 고령, 영주, 봉화, 점촌 등에서는 운동회만 하면 반드시 불러지던 응원가가 이 노래이다. 신기하게도 경북 외에는 이 노래를 부르는 지방은 없다. 같은 노래지만 지역에 따라 약간씩 가사가 다르다. 운동장에 모여 낯모르는 사람끼리라도 어께 동무하고 불렀다.

 

이 노래는 일본인이 작곡한 가요다. 1932년 8월 10일 '베니스의 뱃노래'라는 재목으로 발표되었는데 '타카기 아오바(高木靑葉)'가 작곡하고 '고토 시운(後藤紫雲)'이 작시한 노래로 '츠치도리 토시유키(土取利行)'와 '바이쇼 치에코(倍賞千惠子)'가 불렀다.

‘봄은 베니스의 밤의 꿈, 눈물에 꿈도 탄식에 젖어, 조약돌 진주와 덧씌워지는 파도거품, 슬프게 떠나는 배를 사모하노라.’

이 노래가 히트를 하자 1936년 6월 '핫토리 료이치(服部良一)'편곡, '이하윤(異河潤)' 작시하여 대구출신으로 최초로 유행가수가 된 장옥조(蔣玉祚, 예명-미스 리갈)가 '애수의 해변'이란 재목으로 노래를 부른다.

‘부두의 밤바람은 나그네 한숨, 물결 위에 달그림자 세여 지는데, 먼 길을 떠나가신 님의 배는 어디로 가나, 오늘밤도 그리움에 눈물 짓노라.’ 사실 이 노래는 1930년 3월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홍문희'가 노래를 부르고 콜롬비아 관현악단이 반주를 해 일본축음기상회가 조선 소리반으로 발매했다.

‘먼산의 아지랑이는 품에 잠자고, 산 곡간에 흐르는 물은 다시 흐른다. 고목에도 닢이 피고 옛 나비는 춤을 추는데, 가신님은 봄 온 줄도 모르시는가./뜰 앞에 나린 봄은 녯 봄이건만, 뜰 앞에 흐른 물은 녯물이 아니네, 모진 바람 소낙이도 봄날이면 사라지건만, 녯적에 흐른 가삼은 아직도 그대로./ 도다오는 금잔듸를 알고누어서, 끝없는 푸른 하날이 품에 안긴다. 녯꿈을 꿈꾸려고 부질없이 눈을 감노라, 사랑하는 너에게도 봄은 왔겠지?’

60년대, 누가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인지도 모르며 한참 부르던 노래 '사랑해 당신이' 나중에 정식 음반으로 출반된 것과 같이 먼 산의 아지랑이도 그렇게 '추억'이란 제목으로 정리되어 재탄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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