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학생'의 참 의미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학생(學生)은 '배우는 사람'이고 영어의 student는 '공부하는(study) 사람(-ent)'이다. 인간은 배움과 공부를 통한 앎·깨침을 사랑하는 동물이다. 길을 가면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저기 왜 사람들이 몰려 있지?" "저 강아지는 종(種)이 뭐지?"와 같은 의문을 던지게 된다. 연구와 사색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하는 일이며, 그것을 통한 깨침은 열락(悅樂)을 준다. 이런 뜻에서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모두가 학생이다.

학생의 본래 뜻이 이러하지만 보통은 학생을 '학교에 다니는 사람'으로 본다. 이러한 정의는 좁은 의미의 학생이다. 넓은 의미의 학생은 우리 모두이다. 교육자도 학생이다. 학자로 불러도 마찬가지이다. 학자(學者)도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기 분야에서 깨침의 경험을 더 쌓았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깨침의 길로 안내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된다.

첫째, 배웠느니 못 배웠느니 하는 심리적인 차별이 없어질 것이다. 넓은 의미의 학생 개념으로 보면 살아온 세월만큼 누구나 학생이었다. 더불어 노인들에 대한 존경심도 자연히 생길 것이다. 지나온 세월만큼 지혜가 켜켜이 쌓인 분들이 아닌가?

둘째, 공교육의 질을 높여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자가 수업 내용과 방법에서 어떻게 사교육자에게 뒤처질 수 있는가? 임용되는 순간부터 공교육자의 지위만 누렸고 학생·학자의 신분임을 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공교육자도 갈고닦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학생·학자이기 때문이며 갈고닦음 없이 수업과 강의의 질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교실의 분위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업과 강의는 교육자가 학생들에게 깨치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들을 깨닫게 하는 행위 예술이다. 깨치는 과정과 깨친 것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앎을 사랑하는 인간의 또 다른 욕구이다. 깨친 것을 자랑하는 아이의 신난 눈망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수업은 신명나는 잔치판이 될 것이고 수업이 힘들다거나 학생의 태도가 나쁘다는 푸념도 사라질 것이다.

넷째, 대한민국을 초일류 국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학생·학자의 자세로 연구와 사색을 한다면 최고의 문화·문명국가가 될 것이고 부강한 나라도 될 것이다. 앞선 나라의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면 책을 읽고 있는 시민들을 더 많이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끝으로, 졸업과 퇴직을 이유로 책을 놓아서도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평생교육, 독서의 생활화 등도 자연히 실현되며 노년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시험의 계절이다. 수험생 누구나 깨침의 환희를 체험하기 바란다. 작든 크든 새로운 것을 스스로 깨쳐보라. 세상이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연구와 사색을 해보라. 깨친 기쁨의 눈물을 흘려보라. 눈물이 당신의 책장을 적시면 문을 열고 새벽을 맞아보라. 신선한 공기가 밤의 피로를 씻어주는 순간, 이 길을 가다 죽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두려워말고 나아가라. 가다 죽어도 된다는데 어떤 장애가 당신을 막겠는가? 꿈은 이루어진다. 힘이 들거든 기억하라. 시련이 크면 당신의 깨침도 커지고, 따라서 꿈도 커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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