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나는 토끼인가? 라이카인가?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나는 토끼인가? 라이카인가?

동창 한 명은 부부 금실이 좋다. 나이가 들어서도 부부간에 스킨십이 너무 많으니까 불륜관계로 여긴 한 파파라치가 사진을 찍어서 협박하는 일까지 있었단다. 아내를 향해 늘 '산소 같은 여자'라고 칭찬한다. 다른 동창 부인들로부터 "그럼 우린 이산화탄소 같은 여자냐"라고 항의받기도 했다. 아내만 곁에 있으면 생동감이 넘친다. 그런데 나는 '산소 같은 아내'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오직 '산소'에 관심이 있을 따름이다.

영화의 추억이다. 어릴 때 학교에서 단체 영화를 관람하면 나는 으레 졸기 바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두통약을 먹어야 했다.

기독교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상영할 때였다. 이 영화는 기독교인으로서는 꼭 봐야 하는 영화였다.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반은 졸고 반은 영화를 보았다. 얼마 후 다시 그 영화 관람에 도전했다. '졸지 말고 명화를 감상해야지!' 이번에는 신경 써서 준비했다. 전날 잠도 충분히 자고 점심 먹고 식곤증도 사라진 시간에 '비장한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또다시 졸음 귀신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차의 공기가 너무 답답하여 승무원에게 공기 순환 장치를 어떻게 운용하느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승무원은 눈만 껌벅거릴 뿐 대답을 못 한다. 머뭇거리다가 하는 말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자신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따뜻한 공기나 시원한 공기가 아니라, 신선한 공기다.

독일에서 ICE 고속열차를 타면 공기의 신선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까지 가면서 책을 한 권 독파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차는 어떤가? 승차 후 책장이 두세 번 넘어가면 벌써 무릉도원에 간 듯 정신이 몽롱해진다.

우리 주택의 베란다 창호도 밀폐와 열 차단에만 신경을 썼지, 공기 유입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간단하게 공기 유입을 할 수 있는 작은 환기 구멍들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이제 추석 명절을 앞두고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자동차 실내도 알고 보면 큰 통이다. 운전하는 것이 큰 상자 속에 앉아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랫동안 운전하면서 산소 공급에 신경을 쓰기 바란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이웃이요 국민이기에 이렇게 부탁을 드린다.

오늘 박 목사의 칼럼은 온통 하소연이다. 요즘 정부는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나같이 산소에 민감한 소수의 인권을 보호해주면 더없이 고맙겠다.

최초로 우주여행을 경험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었다. 미국은 1948년 V2 로켓에 원숭이 '알버트'를 실어 보냈으나 질식사했다. 1957년 11월 3일 카자흐스탄의 우주기지에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되었다. 무게 508㎏의 작은 캡슐에는 '라이카'라는 개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소련 정부는 태양광선과 온도와 압력 등을 점검하는 간단한 기기들과 라이카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생명유지장치와 먹이 공급장치를 인공위성에 장착했다고 밝혔다. 발사 엿새째 라이카는 산소가 바닥나 숨졌다. 동물의 우주 생존 실험에서도 고온 고압을 견디는 일보다 산소공급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드러났다.

잠수함의 초기에는 토끼를 태우고 관찰했다. 공기의 변화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토끼에게 먼저 이상 징후가 생기면 곧이어 잠수함을 부상하여 공기를 교체했다. 소설 '25시'의 저자 게오르규는 지성인의 역할이 잠수함의 토끼와 같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고상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 집회 장소에서 내게 산소를 달라는 것이다. 나야말로 영락없는 잠수함의 토끼다.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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