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사법부는 신뢰회복을 포기했는가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압수수색 영장 신청 90% 이상 기각

'재판거래 의혹' 수사 과정 국민 불신

법원 행태는 진정성·논리·공감 없어

외부 힘 부르는 자충수 되지 않아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프랜시스 프레이 교수는 신뢰의 구성 요소로 세 가지를 든다. 진정성(authenticity), 논리(logic), 공감(empathy)이 그것이다. 처음 신뢰 구축을 위해서나 무너진 신뢰를 재구축하기 위해서도 세 가지 요소는 필수적이다.

누구든 상대가 진정성이 있다고 느낀다면 그를 신뢰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의 언행이 엄격한 논리에 따른 것이면 역시 신뢰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나와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느끼면 쉽게 신뢰할 수 있다.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질 때 완전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고, 어느 하나라도 흔들리면 신뢰는 위협을 받게 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의회는 돈지갑이 있고, 정부는 칼이 있는데, 사법부는 3권분립의 한 부분이라 해도 의회나 정부에 견줄 만한 권력이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법부가 국가의 한 축을 맡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존중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미디어가이드북'에 실린 당시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의 발언이다. 한마디로 국민의 신뢰와 존중을 잃은 사법부는 존재할 토대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이미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재판거래 의혹' 등 드러난 사실만 보아도 어이가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를 자청한 것도 신뢰 회복을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법원 안팎의 반대를 무릅쓴 결정이었다. 이후 진행된 수사 경과는 다 아는 대로다.

검찰이 전·현직 법관 등을 상대로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90% 이상이 기각되었다. 통상적으로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90%대인 것과 대조적이다. 수사에 전폭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대법원장의 공언은 허언이 되었다. 무너진 신뢰나마 회복하려는 진정성부터 보이지 않는다. 법관들이 아무리 강변해도 국민은 알고 있다. 조직보호 이기주의의 논리가 앞서고 있음을.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말 그대로 순식간에 상대가 진정성을 가지고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는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프레이 교수의 말이다.

단순한 조직보호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국민이 사법부에 바라는 게 무엇인지 공감은커녕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는 분노마저 자아낸다. 국민을 의식한다면 어떻게 퇴직한 법관이 무단반출한 수만 건의 재판 관련 문건을 파기하고 컴퓨터를 분해해 버렸다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담당 판사는 영장을 나흘씩이나 방치함으로써 증거인멸을 방조하는 동료애를 발휘할 수 있는가. 빗나간 엘리트 의식과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국민은 그래도 법원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었다. 혹시 잘못이 있다면 법원이 스스로 문제를 반성하고 신뢰를 재구축할 수 있게 되기를 말이다.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사법부가 그 정도 역량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법원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원칙을 밝힌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지금까지 법원의 행태는 기대를 완전히 배반하고 있다. 진정성도 논리도 공감도 없는 사법부가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는가 싶다. 스스로 할 수 없다면 더 강력한 외부의 힘을 부르는 자충수가 될 뿐이다. 내키지 않지만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이미 나오고 있다. 법관 탄핵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사법부 70주년 행사에서 김 대법원장과 문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발언이 나온 후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었다. 문제는 이후부터다. 법원 스스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사법부가 신뢰 회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법관들부터 신뢰의 세 가지 요소를 곰곰이 반추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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