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천고마비(天高馬肥)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

요 며칠간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파란 하늘이 보였다. 하늘이 파랗고 높아 보이는 것은 공기 중에 공기 이외의 입자들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가시광선이 아주 작은 공기 입자와 부딪히면 파장이 짧은 보라색이나 파란색 쪽이 더 많이 산란이 되기 때문에 푸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루한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파란색 가시광선이 산란이 잘 되는 아주 맑은 가을날을 이야기할 때 흔히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아주 맑은 가을날을 이야기하려면 하늘이 높다는 뜻을 가진 '천고'만 이야기하면 될 텐데 말이 살찐다는 '마비'를 함께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여름에 잃었던 식욕이 돋으니까 말이 살찌듯 사람도 살이 찔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해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예상과는 달리 천고마비는 원래 흉노족들과 접경하고 있었던 변방 중국인들의 공포를 이야기할 때 쓰던 말이었다. 흉노족들은 기마병이 주력 부대였기 때문에 말이 활동하기 좋은 시절에 집중적으로 중국 본토를 침략했었다. 가을날에는 날씨가 적당하기 때문에 말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고, 말들마다 적당히 살이 올라서 충분히 뛸 수 있는 체력도 비축해 둔 상태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왔다는 것은 흉노족들에게는 전쟁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는 것이고, 중국 변방 사람들에게는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절이 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천고마비와 연관이 있는 사자성어로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에 대한 탄식이라는 뜻의 '비육지탄'(髀肉之嘆)이라는 말이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가 말을 타고 전쟁을 나갈 때는 넓적다리에 살이 없었는데,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을 보고 탄식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유비의 탄식은 자기가 한 일이 없이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는 생각에서 온 탄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것이 제일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아무튼 유비도 천고마비의 계절에 열심히 말 타고 전쟁을 했으면 살이 빠졌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흔히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독서와 연관을 많이 시킨다. 앉아서 독서를 하면 살이 찌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천고마비는 독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살이 찌는 것과는 더더욱 관련이 없다. 반대로 야외에서 활동하기에 적합한 계절이어서 살을 빼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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