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 교실 주임교수

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

 

올 봄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명석한 두뇌만큼이나 강렬한 삶의 의지를 불태운 사람이었다. 평생 동안 그를 따라다닌 루게릭병을 처음 진단받고 한두 해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호킹의 나이는 스물 하나였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박사 학위를 받고 여러 업적을 남기며 쉰다섯 해를 더 살았으니 강철 같은 정신력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 호킹 박사도 감당하기 어려워 한 사람이 있었는데, 재혼한 아내 일레인 호킹이 그랬다. 일레인은 호킹 박사의 간호사였다가 부부의 연을 맺었고, 혼자 힘으로는 고개도 채 가누지 못하는 호킹 박사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모습을 통해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동정을 받았다. 그러나 호킹의 아들과 이웃의 고발로 드러난 일레인의 숨겨진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남들이 보지 않는 데서 호킹을 학대하고 폭행한 다음, 다친 상처를 치료하고 돌보는 헌신적인 모습만을 대중 앞에 노출하는 가증스런 이중생활은 결국 폭로되고 말았고, 일레인은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Münchausen Syndrome By Proxy·MSBP)으로 진단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신체적인 징후나 증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타인의 관심과 동정을 이끌어 내는 정신적 질환을 말한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꾀병을 부리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과는 달리,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는 구체적인 목적 없이 타인의 관심을 끌고자 아픈 척하거나 허언을 내뱉는다. 일레인 호킹이 진단받은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은 예컨대 자신의 아이나 애완동물이 아프다며 타인의 관심과 주목을 끌려는 것을 말한다. 정도가 심하면 자신이 돌보는 대상을 실제로 아프게 만든 후에 극진히 간호하는 모습을 연출하는데,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그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했다가 훗날 사실이 밝혀진 후에 머쓱해지곤 한다.

조지아 주립대학의 네이트 베넷 교수는 뮌하우젠 증후군이 조직과 단체를 파괴하는 사회적 형태로 출현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조직과 단체 내에서 이간질과 모략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키고 난 다음에 자신이 해결사로 나서면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경우가 그러하다. 베넷 교수가 'Münchausen at Work'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 따르면 조직 내에서 뮌하우젠 증후군은 다음과 같이 발현한다. 먼저 누군가가 다른 조직원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한 후, 자신이 해결사로 나서는 척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상사나 동료는 그 사람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실은 이런 갈등을 거치면서 조직의 사기는 떨어지고 결속력이 약화되며 효율성은 침식당한다는 것이다.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뮌하우젠 증후군을 통해서 일종의 방어기제를 발동시키듯, 타인의 인정을 정도 이상으로 갈망하는 이들이 갈등과 분열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다.

뮌하우젠 증후군이든, 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이든 그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인 셈인데, 끝 간 데 없이 욕망을 채우라고 부추기면서 정작 그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오늘의 우리 사회가 이런 증후군을 배태하고 있는 듯하다. 욕망은 스스로 다스리지 않으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잡아먹을 수 있는 무서운 힘이다. 종교적 영성이 강조하는 겸양과 절제가 요청되는 까닭은 여기에도 있다.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 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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