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설탕 그리고 단맛의 함정

김주영 소설가·객주문학관 명예관장

김주영 소설가 김주영 소설가

이 세상에 완전한 공짜 존재 않아
달콤한 얼굴 안쪽에 독소도 잠복
정치인 건네는 단맛에 현혹되면
올곧은 판별력·창의력 훼손 우려

1945년 미군이 남한에 군정 실시를 선포하고 난 뒤의 일이다. 그때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아이들은 난생처음 키꼴이 껑충하고 코가 유난히 큰 서양 사람들과 조우하게 된다. 필자의 나이 6살이 되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작은 군용 트럭 한 대가 느닷없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와 마을 면사무소 정문 앞에 멈추었다. 희거나 검은 얼굴의 미군들이 덮개 없는 트럭에 타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웅기중기 모여들었다. 미군들은 모여든 우리들에게 느닷없이 껌을 던져 주기 시작했다. 6살의 산골 아이였던 필자가 난생처음 배운 영어가 "추잉검 기브 미"였다. 그 껌을 통해서 나는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단맛과 동맹을 맺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6·25전쟁이 터진 이후에는 농촌 가정에까지 구호품들이 전달되었는데, 그 여러 가지 물건들 중에 분유와 설탕이란 낯선 품목도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배급받은 설탕 그릇을 신주 단지 모시듯 다락에 감추어두고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경계하였다. 그러나 훔친 설탕을 입안에 툭 털어 넣으면 난생처음 경험한 치명적이고 노골적인 단맛이 나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 그처럼 단맛은 기분 좋아지는 수준을 넘어 상당한 시간 동안 정신적 쾌락까지 제공해주었다. 공짜로 얻은 추잉검과 분유와 설탕의 단맛이 나를 매혹시키면서 보리밥과 조밥, 메밀묵이나 부추전과 시래깃국, 그리고 나물 반찬같이 지금까지 먹어왔던 음식들은 하찮은 먹거리로 취급되었다. 공짜로 얻은 단맛은 나를 지배해버렸고 그 최면에 노출되어 좀처럼 헤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사이 들어 몇 가지 주목해야 할 일이 생겼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간 라면 소비량이 세계 제일이라는 통계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식품들을 생산하는 라면 생산업체들이 요사이 들어 나트륨 범벅이라는 부정적 오명을 벗기 위해 나트륨을 줄이는 대신 당분을 첨가한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생과일 주스가 탄산음료들보다 건강에 좋은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생과일 주스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당분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제 설탕은 성인병을 유발시키는 치명적인 식품으로 판명 나고 말았다. 채식위주의 식단에 길들여졌던 동양 사람이 서양식 먹거리로 일관한다면 멀지 않아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학적 통계도 있었다. 필자 역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기성세대 혹은 정치인들이 건네는 공짜 혜택의 단맛에 현혹되기 시작하면, 특히 젊은이들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에 상처를 입기 쉽고, 묽은 진흙처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력도 훼손되어 나약한 젊음을 살아갈 위험성이 있다.

원인이 불확실한 공짜 보상에는 선의라는 달콤한 얼굴이 있기 때문에 그 속에 독소가 있는지 없는지, 혹은 어떤 음모가 있는지 없는지, 소금인지 설탕인지 올곧은 판별력을 가지기 어렵다는 함정조차 있다. 그러나 늑대와 어울리면 늑대처럼 울게 되듯이 우선 입에 달다 해서 공짜 혜택에 연속적으로 붙들려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젊음이 가져야할 정체성이 흐려지고 가치 없고 나태한 삶으로 기울어질 우려가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려는 긍정의 힘과 창업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면, 지금 안고 있는 실의와 고난에 고개 숙이지 않는 기백과 분별력을 유지해야 한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이 세상에 완전한 공짜는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있다 해도 그 속에는 필경 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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