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 최인훈 선생, 노회찬 대표를 조문함

김구철 전 아리랑 TV 미디어 상임고문 김구철 전 아리랑 TV 미디어 상임고문

냉전 분단 상황 극복하려 한 최인훈
한국 정치 인간미 물씬 풍긴 노회찬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 화해로 살아
증오 갈등의 우리 사회 관용 계기로

문단의 거목 최인훈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대표작 '광장'은 가장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고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인쇄(205쇄 공인)된 불후의 명작이다.

작가 최인훈이 1960년 쓴 '광장'을 읽으며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1979년이 생각난다. 분단과 이념적 굴레 속에 갇힌 지식인의 고민과 방황을 그린 '광장'은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함께 대학생의 필수 교양서적이었다. 균형 잡힌 제3자적 시선으로 남북한을 바라보며 냉전 이데올로기와 분단 상황을 극복하려 시도한 작품이었다.

평론가 김인호는 '광장'에 대해, "우리 문학사는 지금도 '광장'의 문제의식에서 더 멀리 나가고 있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문학적 성취"라고 평가했다. 최인훈 선생은 희곡과 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개척할 정도로 실험 정신이 충만했고, 한글 전용을 실천한 자주적 사고의 소유자였으며, 9차례나 광장을 개작 발표할 정도의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박경리 선생과 함께 한국 문학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거인이었다.

진보 정치의 기둥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세상을 버렸다. 여유 있는 풍자로 항상 심각하기만 하던 한국 정치에 인간미를 불어넣던 그가 떠났다. 경기고 재학 시절 이화여고 축제에서 첼로 공연을 하고, 개봉 영화를 모두 본 영화광이었고, 운동도 즐기는 재주꾼. 그만큼 조숙해서 고교생 신분으로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졌고, 대학 재학 중 노동판에 뛰어들었다.

노회찬은 다른 이념과 가치를 비판하되 증오하지 않았다. 내 이념과 가치가 소중하기에 주장하고 설득하며 때로 그 가치 때문에 생명을 던질지언정 타인의 이념과 가치도 존중하는 정치인이었다. 분열과 대립, 대결과 투쟁의 정치에 청량제 같은 존재였던 그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쓰고 떠났다. 아쉽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뻔뻔하게 무죄를 외치는 여타 쓰레기 정치인과는 비교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자신 때문에 한국 정치가, 진보 정치가 좌절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기억한다. 노회찬 덕분에 우리 진보 정치가 한 걸음 더 전진했고, 한국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했음을. 펜대와 혀끝만 놀리던 한국 정치에, 감성과 현장성이 살아 숨 쉬게 된 것은 노회찬의 공이 클 것이다.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인종과 민족을 과감히 기용해 한 팀이 된 프랑스, 벨기에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인종주의를 토대로 편협한 순혈주의를 고수한 전통적인 축구 강국 독일은 몰락하고 이탈리아는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축구만이 아니다. 인류 역사가 그렇다. 관용적인 자세로 피부색과 종교, 이념이 다른 민족을 포용하고 개방적으로 엘리트를 충원한 민족은 크게 일어섰다.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칭기즈칸, 중국 한당청 왕조들…. 역으로 폐쇄적인 국가는 항상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20세기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 그리고 소련이 대표적인 패망 국가들이다.

최인훈 선생, 노회찬 대표의 철학과 인생 역정은 크게 보면 나와 이념과 가치가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이요 관용이었다. 한국 사회의 관용과 화해, 한반도의 평화통일, 두 분이 이승에서 못다 한 일이며, 남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숙제이기도 하다. 그들의 타계가 증오와 갈등으로 얼룩져 온 우리 문화계와 정치권, 우리 사회 전체가 관용과 화해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최인훈 선생님, 노회찬 대표님. 남은 일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하늘에서 평안하게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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