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한국인의 집단 착각, 평화

양동안(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양동안(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CVID 빠진 싱가포르 회담 합의
국내에선 평화 기류 더 공고히 돼
정부 언론 집단 착각 유도는 위험
정권 아닌 국가적 적대 해소돼야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도널드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내용은 공허한 정치 쇼였다. 그뿐만 아니라,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한반도 평화 확보에 부정적인 작용을 할 요인들마저 잉태하고 있다. 이 회담이 잉태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확보에 부정적인 작용을 할 요인들이란 합의문에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된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란 용어 대신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란 용어를 사용한 것과,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관련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과 관련하여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전자는 한반도 평화 실현의 핵심적 장애물인 북한의 핵무기 제거를 한없이 지연시킬 구실을 미국이 제공한 것을 의미한다. 후자는 북한의 조속한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해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수단을 포기한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싱가포르 회담이 한반도 평화 기류를 더욱 공고히 만든 '세계사적인 회담'으로 긍정 평가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 확보에 부정적인 사건을 긍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이상한 현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 나라 국민들이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집단적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다. 사람들이 집단적 착각을 하게 되면 착각의 방향에 거슬리는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마비된다.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집단적 착각은 북한의 김정은이 금년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그 후 남북한 사이에 감상적 통일 희구를 북돋우는 대중가요 공연단이 오가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간에 특사가 오가면서 그 집단적 착각이 확산되다가 4월 27일 남'북한 정상회담 개최로 그 착각은 바람 만난 들불처럼 우리 사회를 덮쳤다. 휴전선에서는 소총 한 자루도 감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적 착각이 널리 확산되었다. 그 바람에 주식시장에서는 '남북 경협주'들의 주가가 폭등하고, 휴전선 접경 지역의 토지 가격이 급등했다.

김정은의 신년사에서부터 싱가포르 회담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이 한반도의 평화 확보에 기여하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그로 인해 지금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한반도의 평화는 이제 모색되고 있을 뿐이다.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기본적 적대성이 일정 수준 이하로 완화되어야 한다. 이는 문재인 정권과 김정은 정권 간의 적대성 해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국가적 차원의 기본적 적대성 완화 없이 정권 간의 적대성 해소만으로 이루어진 평화는 남북의 정권 중 어느 한쪽이 조국을 배신함으로써 이루어진 변태적 평화일 것이다.

둘째는 한반도의 평화를 저해하는 최대 장애물인 북한 핵무기의 완전하고 영구적인 제거 또는 대한민국의 핵무장이다. 이 조건이 갖춰지지 않고 이루어지는 평화는 남한이 북한에 굴복하는 평화일 뿐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평화 노력은 이 두 가지 기본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 나라 국민 사이에 확산된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인식은 큰 집단 착각이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국가에서 국민 다수가 이런 집단적 착각을 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가 운영된다는 것은 마치 지하가 동공화된 차도 위를 달리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다. 정부와 언론 매체들은 큰 재난을 초래할 수 있는 국민의 집단 착각을 유도조장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

양동안 합동통신 기자. 경기대 조교수. 저서 '벼랑 끝에 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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