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영의 새論새評] 북미회담과 '책임윤리'

김대영 (사)대한민국지식중심 이사장, 서울대 정치학과 박사.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실장.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김대영 (사)대한민국지식중심 이사장 김대영 (사)대한민국지식중심 이사장

남북미 3자 종전 선언에 집착하면
文대통령 협상력 약화시킬 수 있어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 떠맡겨질 듯
책임윤리 입각 구체 협상 준비해야

우여곡절 끝에 북미 정상회담이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북미 정상회담의 추진 과정에서 정치인의 '책임윤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막스 베버(Max Weber)에 따르면 정치인에게 필요한 윤리는 사상이나 가치관에 따른 도덕윤리가 아니라 결과를 내놓는 '책임윤리'인데, 북미 정상에게는 선한 의지를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결과를 획득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이 돋보였다.

북미 정상회담은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결과에 따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정세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디테일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회담 자체의 무산을 우려할 정도로 벌어져 있는 북미 간 상황 인식의 간극을 넘어 협상을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3개국에서 동시 협상이라는 특별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까지 미국과 판문점, 싱가포르에서 동시에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협상이 진행되었다. 뉴욕과 워싱턴에서는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회담의 열렸고, 판문점에서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가 의제와 관련해 협상했고, 동시에 싱가포르에서는 북한의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미국의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경호와 의전 문제를 협의했다. 이로써 3개국에서 동시에 사전 협상을 진행하는 진기한 일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회담에 크게 기여했다.

사전 협상이 진행됨에 따라 정상회담의 방식과 일정도 구체화하였고 그 내용에도 진전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야당 민주당은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 이전에 대북 제재를 해제해서는 안 된다는 서한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함으로써 미국의 협상력을 강화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빠른 속도로 북한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도 자국의 기술과 재원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남북미 3자 종전 선언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미 판문점 선언을 공표한 마당에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 선언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의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지금은 평화협정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인 협상 대책을 강구할 때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 협상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에는 우리에게 북미 회담을 방해할 수 있는 지렛대가 있었기 때문에 대북 협상이 수월했던 반면에 북미 회담 이후 북한의 태도는 표변할 것이고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예상된다. 주변국과의 협조 없이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미국과의 협상은 더 어려울 것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했듯이 우리에게는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이 떠맡겨질 것이다. 과거 북미 간에 체결된 제네바 협정이 미국 의회의 비준을 받지 못한 일차적 원인도 비용 문제에 있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결코 비용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을 끌어들여 4자 종전 선언을 하고 비용도 분담하는 방안이 나쁘지 않다. 구체적인 협상 과정에서는 러시아와 일본을 참여시키는 대책도 나올 것이다.

협상의 과정은 어렵겠지만 예상치 못한 성과도 나올 수 있다. 과거 고려 성종 때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3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했을 때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담대한 협상을 통해 화친을 맺고 강동 6주를 획득한 서희 장군을 본받아야만 한다. 국민들이 평화무드 속에서 행복해 할 때 소신 있는 정치인이라면 '책임윤리'에 입각해 구체적인 협상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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