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영화 '산상수훈'을 감독한 대해스님이 지난해 12월 6일 열린 제38회 황금촬영상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하고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매일신문DB

대해스님 미국 예일대 등에서 영화 '산상수훈' 시사회

대해 스님(유영의 감독)이 2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미국 동부에 머물며 예일대 등에서 자신이 메가폰을 든 영화 '산상수훈' 시사회 및 강연을 한다.27일 진보기독교 최고의 지성 유니언신학대, 28일 예일대, 30일 미국성공회 롱아일랜드교구 머서신학교, 31일 대한불교조계종 뉴저지 원적사에서 영화 '산상수훈'을 상영하고 강연, 관객과 토론을 한다.대해 스님은 "이번 시사회와 강연을 통해서 영화 '산상수훈'이 학생들이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두 자신의 본질을 찾아서 삶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각자의 삶을 아름답게 연출하기를 바란다"고 했다.영화 '산상수훈'은 불교의 스님이 각본·감독한 그리스도교 영화로 특별한 주목을 받으며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베오그라드 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초청받아 감독상, 최우수예술가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등 19관왕을 수상했다.또 불교·기독교·천주교·이슬람교 세계 4대 종교 영화제에 초청받아 '예수님 복음 상' ,'새로운 시선 상' 등을 수상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으로 로마 교황청 시사회가 개최되는 등 영화를 통해 종교화합과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있다.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자 미국의 CNN과 영국의 BBC 등에서 대해스님과 영화 '산상수훈'을 집중조명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감독 대해스님은 세계평화단체 피스메이커에서 '황금평화상'을 수상했다.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에서 영화 '산상수훈'을 상영하고 감독 대해스님이 강연을 해 달라는 요청이 잇따랐다.지난해 8월 미국의 조지아 주립대학교와 에모리대학교를 시작으로 그동안 이탈리아 살레시안 교황청 대학교,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에서 이 영화 시사회 및 강연이 성공적으로 열렸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연세대 등에서 했다.대해스님은 향후 독일 등의 대학교 순방을 끝마치고 나면 차기작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미 칸느영화제에서 대해스님의 차기작을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영화 '산상수훈'은 예수의 가르침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담고 있어 '성서중의 성서'라고 불리는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7장)을 소재로 예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달하고자 제작했다. 이 영화는 비유로 되어 있어 난해한 성경을 논리적으로 풀이해 사람들이 성경으로 중심가치관을 잡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작했다.이 영화는 현재 서울 대한극장(토요일 상영)과 메가박스 코엑스(일), 부산 메가박스 해운대(토), 대구 롯데시네마 만경(토)에서 상영 중이다.대해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대해사 국제선원(서울 강남구 논현로, 경산시 대학로) 선원장이며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위한 교육연구소 이사장, 유네스코 C.I.C.T. 국제영화기구 UNICA 세계연맹 한국대표, (사)영화로 세상을 아름답게 이사장, UNICA KOREA 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2019-03-24 09:33:24

[유재경 교수의 프랑스 수도원 탐방기]⑪화해와 나눔,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비전을 꿈꾸는 공동체 떼제(Taizé Community)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도다."(Ubi caritas et amor, ubi caritas Deus ibi est)이태석 신부의 사랑과 삶을 그린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신 분들은 이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단순한 가사와 단조로운 멜로디임에도, 얼마나 큰 감동과 울림이 있는지 영화를 본 사람이나 노래를 들어본 이들은 느낄 것이다. 이 '사랑의 나눔'(Ubi caritas)이나 '찬미하여라'(Bless the lord) 같은 찬양을 부르면 어느덧 노래는 기도가 되어 우리 영혼을 맑게 한다. 단순한 가사와 쉬운 멜로디가 세속에 찌든 우리의 영혼을 얼마나 고양시키는 지 알 수 없다. 천병석 교수와 함께 이 음악이 태어난 작은 마을 떼제를 찾았다. 한국에서 떼제는 수도 공동체라는 이미지보다는 '떼제 음악', '묵상과 관상', '로제 수사', '화해의 장소' 등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클뤼니 수도원을 떠나 떼제로 향했다. 떼제는 걸어서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지척에 있었다. 하지만 떼제로 가는 길은 멀었다. 클뤼니를 지나 떼제의 작은 언덕을 오를 때, 자동차로 몇 시간이나 달려온 느낌을 받았다. 떼제 공동체와 우리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마음의 간극이 있었다. 사실 우리의 관심이 온통 중세 수도원에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신생 수도 공동체나 다름없는 떼제를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 천교수의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에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떼제의 작은 언덕을 오르자 오른쪽으로는 캠프장 같은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서 있었다. 차에서 내렸을 때 우리는 광활한 대지 위에 한 점이 되어 서 있는 느낌이었다. 한 여름 태양은 대지를 삼킬 듯 내리쬐고 있었고, 몸을 피할 그늘 한 점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동쪽에 있는 큰 건물을 향해 도망치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떼제 공동체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떼제 공동체를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공식적 접수 장소인 카사(Casa)를 찾을 겨를도 없이 우리는 가장 큰 건물로 들어섰다. 떼제는 우리의 상상 너머에 있었다. 우리가 선 곳이 바로 떼제 공동체의 상징이자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영적인 고향인 '화해의 교회'였다. 우리는 그곳이 예배당인지도 모른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오후 기도회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청소년들을 보고서야 그곳이 교회인 줄 알았다. 떼제는 부르고뉴 지방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큰 마을 하나 찾기도 쉽지 않은 한적한 시골의 작은 언덕 위에서 수천 명의 청소년들이 예배당에서 물밀 듯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는 한 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이들은 왜 이곳에 왔을까? 이들은 모두 어디에서 온 것일까? 세계의 청소년들을 끌어당기는 떼제 공동체의 힘의 원천은 무엇이란 말인가? 잠시 동안 나는 수많은 질문에 휩싸였다. 그동안 방문했던 역사와 전통, 중세의 문화와 학문을 꽃피웠던 거대한 수도원들이 지금은 깊은 잠에 빠진 듯 느껴졌었다. 그런데 한 여름 이곳 떼제에서는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 희망찬 봄 기운이 힘차게 솟구치고 있었다. 떼제 공동체는 로제 수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40년 8월 20일, 그가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남부 부르고뉴 지방 작은 마을을 찾아와 정착했던 곳이 바로 떼제다. 이곳에는 젊은 청년, 로제가 도착한 그날부터 생의 마지막 날까지 복음의 정신에 따라 한결같이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로제 수사는 1915년 5월 12일 스위스 개혁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역시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 뿌리를 둔 개혁교회 출신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청소년 시절 종종 자연 속에서 깊은 묵상에 잠기곤 했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로잔 대학과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4년 동안 신학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마지막 학년을 보내고 있을 때 2차 대전이 일어났고, 프랑스의 많은 지역이 독일의 손에 넘어갔다. 전쟁의 참화가 가져온 피해는 엄청났다. 전쟁 고아와 난민들은 물론, 많은 유대인들이 부르고뉴 지방으로 도망쳐 왔다. 로제는 전쟁으로 생활 터전을 잃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던 사람들에게 강한 연민을 느꼈다. 그는 고난 중에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강렬한 사랑에 이끌려 떼제로 왔다. 이곳에 터전을 잡은 그는 1940년 12월부터 전쟁 난민과 피해자들을 돕는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하루 세 번 기도를 했고, 피난 온 유대인과 전쟁 포로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돌보았다. 당시의 생활을 그는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날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노동과 휴식에 활기를 불어넣으라. 무엇을 하든 마음을 고요하게 지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팔복의 정신, 즉 기쁨과 단순함과 자비로 충만해지라." 1944년 프랑스가 나치의 지배에서 해방되었지만, 마을과 도시는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로제는 용기를 잃지 않고 힘써 그들을 도왔다. 막스, 피에르, 다니엘이 로제를 돕기 위해 떼제에 합류했다. 1949년 부활절에 프랑스 수사 세 사람이 동참한 가운데 7명의 수사가 마을의 작은 성당에서 전통적인 수도 서약을 했다. "독신생활과 공동소유, 그리고 로제 수사를 원장'으로 섬기며 권위에 순종하겠다는 서약이었다. 이 서약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7명의 수사로 시작된 수도원, 교회 역사상 최초의 개혁교회 수도원의 이상이 실현된 것이다.떼제 공동체를 찾는 사람들은 2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곳이 청년들을 위한 공간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그곳에서 만난 몇몇 한국인도 모두가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일주일 예정으로 이곳을 찾지만, 종종 장기간 체류하면서 봉사를 하기도 한다. 수많은 청년들이 이곳을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론 로제와 공동체의 정신이 젊은이들의 이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떼제의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독일 청년들이 가장 많이 이곳을 찾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왜 프랑스 땅에 독일 젊은이들이 몰려오는 것일까? 이 이야기는 전쟁과 더불어 시작된다. 프랑스는 독일의 지배에서 해방되었지만, 당시 반독일 정서가 팽배했다. 심지어 떼제 인근 마을에서 여성들이 수용소에 있던 젊은 독일인 가톨릭 신부를 살해하기도 했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분노, 극심한 적대감 한 가운데서 로제와 떼제 공동체는 독일인 포로들까지도 정성껏 돌보며 화해와 용서의 삶을 실천했다. 떼제에서 이루어진 화해와 사랑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독일 젊은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를 만들게 했던 것이다. 해마다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떼제로 몰려오고 있다. 많을 때는 10만 명의 청년들이 떼제를 찾는다. 로제 수사는 떼제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에서 더 이상 기도회로 모일 수 없었다.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이 사실을 알았는지 '속죄'와 '화해'라는 뜻을 가진 독일의 '악취온 쥐네짜이헨'(Aktion Suhnezeichen)이라는 기관에서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할 수 있도록 인력과 자원을 보내왔다. 희망과 화해의 비전을 품은 독일 청년들이 수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화해의 교회'를 지었다. 로제와 떼제는 화해와 용서를 통해 새로운 봄을 열었던 것이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자기와 세상, 그리고 하느님과의 화해를 통해 새로운 존재, 화해와 희망의 존재로 거듭난다. 떼제의 영성은 어떤 색깔일까? 떼제의 영성은 기도와 노동 그리고 침묵에 있다. 수사들은 하루에 세 번 모여 기도를 한다. 떼제를 찾는 사람들도 수사들과 마찬가지로 아침과 점심, 저녁에 세 차례 기도를 한다. 하지만 수사들은 이른 새벽과 늦은 밤, 심지어 낮에 노동을 하는 시간에도 틈틈이 기도를 한다. 기도회는 설립 당시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시작 찬송과 성경 봉독, 응송, 침묵, 중보기도, 성찬식(아침 기도 시간에만), 그리고 마무리 찬송으로 진행된다. 떼제 찬송을 두 세 곡 부르고 난 후에는 주로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로 성경이 낭독되지만, 모인 사람들의 국적에 따라 다양한 언어로 낭독되기도 한다. 성경 낭독은 적은 분량을 읽되, 2-3분을 넘기지 않고, 낭독한 구절을 청중들이 마음에 새기고, 말씀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떼제의 예배는 매우 독특하다. 예배 순서에는 기도가 있고, 성경 봉독도 있으며 찬송도 있지만, '설교'가 없다. 어째서 설교가 없는 것일까? 오래 전 영국의 소설가 안토니 트롤롭(Anthony Trollope)이 "현대 자유 문명국에 사는 사람에게 가장 괴로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설교를 듣는 일일 것이다."라고 했던 말 때문일까? 하지만 떼제에는 설교가 없는 것이 아니라, 형식이 다른 설교가 있다. 성경 낭독이 끝난 후 짧게는 6-7분, 길게는 12-13분간 이어지는 침묵이 그들에게는 설교의 시간이다. 로제 수사는 예배를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요, 침묵 속에 하느님이 우리 영혼을 관통하도록 내놓은 시간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침묵이 기도의 전부가 될 때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 영혼에는 침묵의 시간에만 작동하는 고유한 언어가 있다. 태초에는 언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침묵이 있었다는 막스 피카르트의 말처럼, 인간은 침묵 가운데서 우주를 창조하신 초월자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다. 떼제 사람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침묵 가운데 하나님이 하시는 설교를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빈 마음으로 떼제를 찾았지만, 떼제는 우리 가슴에 희망과 새로운 비전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무엇이 떼제를 떼제로 만들었을까? 떼제의 수사들은 생계를 위한 기부금은 받지 않는다. 수사들이 가족들로부터 유산을 받더라도, 그 돈은 전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다. 수사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이 한 노동의 대가로만 살아간다. 수사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도자기와 펜던트 같은 목걸이 등의 수공예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한다. 떼제의 심장이 아직도 박동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AI 시대에도 그들은 여전히 '하늘의 소리'를 듣고, '작은 예수'로 세상을 살찌우고 있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입술을 닫고 영혼을 열면, 우리의 심장이 하느님께 이야기한다."(성 어거스틴)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2019-03-22 18:30:00

수성4가동 대구동성교회에서 공설경로당 어르신들을 위해 백미를 전달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에서 두 번째 김종균 담임목사)

동성교회, 경로당 쌀 전달

대구동성교회(담임목사 김종균) 성도들은 21일 공설경로당 3개소(신천·미수·수성4가)를 방문해 경로당별로 각각 백미 5포씩(총 15포, 50만원 상당)을 전달했다. 평소에도 500여 성도들과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김종균 담임목사는 "많은 성도분의 정성을 모아 어르신들이 따뜻한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지원해 드렸다"면서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지역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나눔활동을 펼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2019-03-22 11:28:41

대구가톨릭대학교는 2011년부터 안중근연구소를 중심으로 매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을 맞아 추모식를 갖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안중근 의사 순국일 추모식. 매일신문 DB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기 추모미사 행사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9주기 추모미사가 23일 오전 11시 주교좌 계산성당에서 열린다.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함으로써 조선의 독립과 동양 평화의 의지를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이후 안 의사는 다음해 2월 14일 일제 재판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고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됐다.이번 미사의 목적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기념일에 추모미사를 거행함으로써 독실한 가톨릭 신앙인이었던 안중근 의사의 이웃사랑과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나아가 한'중'일 국민들에게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환기시키는 것이 목적이다.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와 대구지방변호사회가 공동 주관하는 이날 미사는 안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천주교대구대교구 조환길 대주교의 주례로 거행된다. 특히 이날 미사에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참석할 예정이며 미사에 이어 오후에는 '제2회 평화연대 걷기대회'도 열린다.대구 효성여고와 경화여고, 대구고 학생들이 준비한 이 행사는 안 의사의 평화정신과 더불어 2'28운동의 민주정신과 국채보상운동의 저항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마련된다. 걷기대회는 이날 오후 2시쯤 계산성당을 출발해 국채보상기념공원까지 평화걷기를 하며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게 된다. 또 이 대회에서 모금된 성금은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한편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연구소(소장 박주 교수)는 순국 당일인 26일 교내 이바오로관(중앙도서관)앞에서 교직원과 학군단 및 학생들이 참석하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기 추모식'을 갖는다. 이날 추모식에서는 박주 교수의 안중근 의사 약전 봉독에 이어 학군단 대표의 최후의 유언 낭독과 김정우 대구가톨릭대 총장의 추모사와 시낭송 및 헌화 순으로 진행된다. 안중근 연구소는 2011년부터 매년 순국일을 맞아 추모식을 갖고 있다.

2019-03-22 11:28:03

대구불교호스피스센터는 작년 10월 동화사에서 센터 소속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다. 대구불교호스피스센터 제공

"자리이타 보살심으로 호스피스 환자 돌봐요"

"불교의 동체대비, 자리이타의 보살심으로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평안한 임종을 맞게 하고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처한 가족에게 위안을 베풀고 있습니다."대구불교호스피스센터(센터장 만경 스님)는 2010년 대구불교사원연합회 부설로 설립됐다. 2011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육성을 시작해 본격 병원에 파견했다. 센터는 운영 책임자인 센터장 1명, 법회 활동 법사단 7명, 자원봉사자 80명으로 구성돼 있다. 활동 장소는 경북대학교 칠곡병원, 첨단요양병원, 대구한의대병원, 대구의료원, 동화사자비원 등 4곳이다.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여성들로 나이는 50~70대다. 호스피스병동과 일반병동으로 나눠 매주 1, 2회 병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한다. 환자 돌봄에서 이·미용, 목욕, 마사지, 병실 청소까지 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병원별 상황에 맞춰 기본 6시간 봉사하고 있다. 법사단 소속 스님들은 매주 1회 병원법회, 병상수계, 임종기도 등 영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법당에서 환자와 가족, 직원에게 위로 법회를 진행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직접 병상을 찾아 개인 기도를 집전하고 있다."자원봉사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수행자의 마음으로 봉사해요. 환자를 내 가족처럼 보살펴주며 자비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요."석가탄신일과 성도절에는 법사단 스님, 자원봉사자 모두 봉사 병원을 찾아 봉축법회를 열기도 한다.대구불교호스피스센터는 처음에 스님 기부금으로 운영하다 지금은 일반인들의 후원금도 받아 충당하고 있다. 자원봉사자에게는 봉사의식 함양을 위해 성지순례, 템플스테이, 보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센터에서는 병원포교 활성화를 위해 법회 운영비, 홍보물 제작 지원을 하고 있다."병원에서 법회를 진행하면 환자들이 아주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스님이 오면 반가워 박수치는 환자도 있고 스님을 찾다 돌아가신 환자도 있어요. 그땐 정말 마음이 아프죠."센터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자격은 봉사자로서의 마음 가짐, 자세만 있으면 된다. 센터에서 기초교육(3, 4일간)을 받고 병원 자체 교육을 받은 후 현장에 투입된다. 올해는 4월 중으로 봉사자 20명을 신규 모집할 계획이다. 교육은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를 초빙해 이론과 실기 위주로 한다. 자원봉사자는 불자뿐만 아니라 시민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다.만경 스님은 작년 6월부터 대구불교호스피스센터장을 맡고 있다. 올해는 센터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우선 자원봉사자를 현재 80명에서 120명으로 늘려 봉사 확대를 꾀하겠다는 것. 법회 활동 법사단 스님도 더 많은 동참을 유도할 방침이다. 특히 '소원 앰뷸런스'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환자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소원으로 방문하고 싶은 곳을 앰뷸런스에 태워 여행시켜주는 것이다.만경 스님은 2012년 경주시장애인복지관 명상지도교사를 거쳐 2015년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2017년 팔공총림 동화사 율학승가대학 연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팔공총림 동화사 호법국장, 보병 50사단 민간성직자, 조계종 감은사 주지로 있다. 문의 대구불교호스피스센터 053)629-0408.

2019-03-22 11:27:46

[포토뉴스] 조계종 '비구니 명사 법계 품서식' 봉행

15일 오후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열린 '비구니 명사(최고 명예)법계 품서식'에서 비구니 스님 11명이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으로부터 법계 품서를 받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박노익 기자

2019-03-15 18:07:10

3.1절 100주년을 맞아 대구경북 지역 3.1운동 발상지를 탐방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3.1절 100주년 맞이 배위량길 순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구경북지역 3.1운동 발상지를 돌며 기독교적 민족정신을 되새기는 학술대회가 열렸다.'3.1절 100주년 맞이 대구 경북지역 삼일운동발상지 탐방과 배위량 길 순례위원회'는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대구 경북지역 운동발상지 탐방과 배위량 선교사의 전도여행 126주년을 기념한 학술대회를 가졌다고 밝혔다.경북노회, 대구동노회, 대구서남노회, 대구동남노회 주관으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26일 대구교회를 시작으로 27일 구미 선산 은파재 영성수련원, 상주교회, 안동교회, 28이레는 포항 기쁨의교회 등에서 진행됐다. 이상규 박사(전 고신대 부총장), 배재욱 교수(영남신학대), 김명배 박사(숭실대), 이교남 목사(예천전원교회), 박진석 목사(포항 기쁨의교회), 이상준 선생(포항독립운동사 집필자), 김재현 박사(한국고등신학원) 등이 강사로 나서 ▷삼일절과 영남지역 교회 ▷대구경북지역의 삼일만세운동과 그리스도교 역사와 문화 ▷삼일절과 한국 기독교 ▷경상북도 북부지역 기독교인 3.1운동 독립의 역사 ▷포항 3.1운동사 등을 주제로 발제했다.배재욱 교수는 "1919년 3.1운동은 대구와 경북지역 개신교 선교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기독교인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어났고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희생을 당했다. 그 영향으로 지역사회가 교회를 신뢰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박진석 목사는 "3.1운동에 담긴 핵심 정신과 가치를 분석하여 개념화하고, 그것을 계승하기 위한 현대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2019-03-15 10:47:30

우학 스님

불교대학大관음사 화요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한국불교대학大관음사(회주 우학 스님)는 12일 오전 11시 옥불보전 4층 대법당에서 화요일 주간반(251기~256기) 신입생 법우들의 오리엔테이션을 가졌다.이날 신입생 법우들은 지도선배단 법사들의 도움으로 찬불가 연습 시간을 갖고 축가에 이어 영상물을 통해 27년 불교대학의 역사와 발자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 남단아 총동문 신도회장의 인사, 지도법사님들의 소개도 함께 있었다.우학 스님은 법어를 통해 "신입생 법우들에게 진정한 마음공부는 지금부터 시작이니 참으로 의미있는 날이다. 불망초심(不忘初心), 오늘 오신 그 마음, 초심을 잊지 말고 다음생까지 가져갈 수 있는 지혜공부에 정진해 삶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고 대자유의 삶을 누리기 바란다" 고 설파했다.

2019-03-15 10:46:56

지휘자 요한 로즈

주교좌 범어대성당 사순시기 맞아 네덜란드 두독 앙상블 내한 공연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주제로 한 마태수난곡은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걸작이자 J.S 바흐가 남긴 불후의 명곡이다. 바흐는 마태오 복음 26장과 27장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마지막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 음악에 담고 있다.천주교대구대교구 주교좌 범어대성당은 사순절 기간을 맞아 4월 14일(일) 오후 2시 범어대성당 대성전에서 네덜란드 두독(DUDOK) 앙상블 내한공연으로 바흐의 마태 수난곡(지휘자 요한 로즈)을 공연한다.두독 앙상블은 1999년 현 지휘자인 요한 로즈가 창단했으며 네덜란드 북부 도시 힐퍼숨의 유명 건축가인 빌렘 마리누스 두독(1884~1974)을 기리고자 그의 이름을 땄으며 30여명의 기악 앙상블과 60여명의 혼성 4부 합창을 아우르는 종합 연주단체이다.두독 앙상블은 매년 봄마다 세계 각지에서 초청받아 바흐의 마태 수난곡, 요한 수난곡 등을 연주하는 투어 시리즈로 이름이 나 있다.이번 내한 공연은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의 후원아래 서울과 부산에 이어 대구 범어대성당에서 연주를 하게 됐으며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전역에서 온 최상급 솔리스트들이 대거 참여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들과 더불어 대구대교구 소속 뿌에리깐또레스도 출연해 곡 중 어린이 합창 부분을 노래한다.마태 수난곡은 제1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미리 알려주는 장면과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 최후의 만찬과 겟세마니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며, 제2부에서는 잡혀가는 예수와 신문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고 무덤에 묻히는 모든 상황을 애절하게 그려진다. 전곡 연주에 두 시간 반이 소요되며 두 개 합창단, 두 개 오케스트라와 여섯 명의 솔리스트 및 소년합창단 등 모두 100여명이 무대에 오른다. R석 2만원, A석 1만원.예매 티켓링크 www.Beomoe-art.com. 13세 이상 관람가. 문의 053)744-1394

2019-03-15 10:19:48

대구불교사원연합회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선재공덕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급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앞줄 왼쪽 두 번째가 강정규 운영위원장. 김동석 기자

자비의 손길로…소외 어르신 150명에 점심 공양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대구 달서구 송현동에 있는 무료급식소 선재공덕회. 식당 안의 배식구 위에는 '공양게'가 붙어있다. 중생들이 밥 한 끼를 먹으면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조금이라도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무료급식소 선재공덕회는 대구불교사원연합회가 2012년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상구보리 하화중생과 자비 실천의 장으로 지역 65세 이상 어르신과 최저생활 이웃들에게 한 끼 점심 공양을 올리기 위해 뜻있는 스님들과 신도들의 발원으로 문을 열었다.급식일은 매주 수, 목요일 점심 공양이다. 밥과 함께 국, 고기볶음, 나물, 김치 등 1식 6찬이 제공된다. 급식 인원은 매회 150명 내외다. 명절에는 떡국, 동지에는 팥죽을 내고 때로는 짜장면, 떡, 과일 등 특식도 제공한다."급식일에는 어르신들이 오전 9시만 되면 급식소 마당에 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급식소 문을 열면 식당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먼저 점심을 먹기 위해서죠. 식사를 기다리며 어르신들끼리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아주 아름다워요."배식봉사는 사찰 신도회를 주축으로 10여개 단체가 돌아가며 참여하고 있다. 매회 봉사자는 15명 정도로 급식날 오전 9시에 나와 나물을 무치고 고기를 볶고 국을 끓이고 밥을 짓는 등 점심 공양을 준비한다. 식재료 준비는 급식소 김화자(59) 사무장이 책임지고 있다. 점심 배식은 오전 11시에 시작해 낮 12시 쯤 끝난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이 밥을 먹고난 뒤 설거지를 하고 바닥 청소를 끝내고 식사를 한다. 봉사자들은 어르신들이 점심 공양을 드시고 조금이라도 밝은 마음을 가지기를 바라고 있다."어르신들이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데 여기와서 따뜻한 밥을 먹으니 좋다. 그리고 공양 드시고 가면서 맛있는 밥 잘 먹었다는 인사 한마디에 큰 보람을 느껴요."무료급식소는 정기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님, 신도 등 150여 명이 현금이나 물품 후원한다. 공양미는 사찰, 구청 등에서 기증하고 있다. 작년 6월에는 급식소 건립과 운영에 도움을 준 분들을 기리기 위해 급식소 마당 앞에 선재공덕비를 세웠다. 급식소는 통천사 주지 선지 스님이 주도해 건립됐다. 급식소 위층에는 작은 법당도 마련해 급식날 어르신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올해부터 강정규(57) 신도가 선재공덕회 운영위원장을 맡아 급식소를 책임지고 있다. 대구불교사원연합회 신도회장, 대구불교총연합회 신도회 수석부회장인 강 위원장은 급식날 이갑덕 사무처장과 함께 급식날 나와 배식을 돕고 있다. 강 위원장은 작년 4월 네팔을 방문해 불교단체 담모다야와 MOU를 체결, 대구-네팔 신도교류에도 앞장서고 있다.강 위원장은 "이웃들의 점심 공양을 위해 후원하는 스님, 신자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며 "이곳 급식소가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 실천의 도량이 되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2019-03-15 10:19:25

중세 수도사 아벨라르와 수녀 엘로이즈의 숭고한 사랑이야기가 묻어있는 클뤼니 수도원.

[유재경교수의 프랑스 수도원 탐방기] <10> 수도원 개혁의 중심 '클뤼니 수도원'

'나는 당신의 한 마디로 지옥의 불구덩일 향해서라도 당신을 따라나섰을 것이며, 또 앞서기도 했을 것입니다! 나의 마음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는 까닭입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에 담긴 중세 수도사 아벨라르와 수녀 엘로이즈의 숭고하고도 슬픈 사랑의 이야기다. 아벨라르는 20대에 프랑스 최고의 철학자 반열에 올랐고, 중세의 '보편논쟁'을 평정한 인물이 아닌가! 그리고 엘로이즈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두루 섭렵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이 아니었던가! 결혼을 통한 세속적 사랑엔 실패했지만, 그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수도사와 수녀가 되어서도 결코 식지 않았다. 천병석 교수와 나는 중세의 천재 아벨라르가 의탁했던 곳, 두 사람의 전설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묻어 있는 클뤼니 수도원(Cluny abbey)으로 향했다. 우리는 중세 신앙인들의 영적인 세계를 엿보고 싶었다. 그들의 기도와 침묵, 종교적 헌신을 경험하고 싶었다.그런데 왜 프랑스 수도원인가? 프랑스는 중세 유럽 수도원 개혁의 중심이었다. 아니안의 베네딕트 개혁을 시작으로 클뤼니 수도회와 시토 수도회, 카르투지오 수도회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수도원을 개혁했다. 특히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은 11-12세기 유럽의 종교 지형을 바꾸어 놓을 만큼 그 영향력이 컸다. 우리는 중세 프랑스 수도원의 개혁과 새로운 수도회의 탄생에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개혁 정신을 찾고 싶었다. 라 투레트 수도원의 아침은 조용했다. 우리는 옛 수도사들이 사용하던 방을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왔다. 막상 떠나려 하니 라 투레트에서 만난 수도사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지난 밤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클뤼니 수도원은 자동차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 한 여름 부르고뉴의 하늘은 맑았고, 태양은 강렬했다. 자동차는 평원과 낮은 구릉을 반복해서 달렸다. 주변으론 온통 포도밭과 목초지였다. 종종 해바라기밭이 나타났을 뿐이었다. 클뤼니가 다가오자 그곳 지형이 무척 궁금했다. 한 때 유럽에서 가장 큰 수도원은 과연 어떤 곳에 자리하고 있을까? 우리의 목적지는 클뤼니 수도원이었지만 자동차는 중세를 고스란히 담은 클뤼니 타운을 관통하고 있었다. 클뤼니 타운은 작은 마을이지만 길 양옆엔 가게들이 수백 미터나 늘어서 있었다. 클뤼니 수도원이 세워지자 그 주위에 생겨난 마을이 클뤼니가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클뤼니 타운 동쪽 한 모퉁이에 중세의 수도원 하나가 서 있는 것 같았다.클뤼니 수도원은 910년 경 아키텐 공작이자 마콩(Macon) 백작 기욤(Guillaume)이 클뤼니 지역에 땅을 기증함으로써 건립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도원의 진정한 창시자는 초대원장인 베르노(Berno)라 할 수 있다. 그는 기니의 수도원을 설립하고 봄 수도원을 개건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도원장을 역임한 경험도 있었다. 한 때 그는 로마로 달려가 교황을 알현하고, 수도원 개혁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의 수도원 개혁을 향한 이러한 열정과 더불어 클뤼니는 시작부터 수도원 개혁에 주력했다. 당시 수도원 개혁의 화두는 세속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였다. 귀족과 국왕, 그리고 황제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수도원의 독립을 획득하고, 베네딕트 규칙에 따른 수도생활을 준수하는 것이 바로 수도원 개혁이었다. 기욤은 클뤼니 수도원에 땅을 기증하면서 다음과 같이 문서로 서약했다. "이곳에 모인 수도사들은 어떠한 세속 권세의 멍에에도 매이지 않을 것이니, 심지어 나라 권세에도, 내 친족의 권세에도, 국왕 폐하의 권세에도 매이지 않을 것이다." 클뤼니 수도원의 재산은 오직 "성 베드르와 성 바오로에게 " 즉 로마교회에 속한다는 것을 명시했다.주차장에 차를 댄 우리는 수도원 입구로 향했다. 마치 거인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건물이 동서로 뻗어 있었다. 건물의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선 우리는 옛 교회당을 찾았다. 동쪽 입구로 들어서서 서쪽으로 걸었다. 오른쪽으로 회랑이 있었고, 왼쪽으로는 다양한 강당이 서 있었다. 웅장한 건축물과 그 속에 수놓듯 자리한 아름다운 조각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정수를 보는 듯했다. 한 장면이라도 더 카메라에 담고 싶어 분주히 움직였다. 우리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수도원 교회당을 찾았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에서 12세기 말 전성기 때의 클뤼니 수도원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클뤼니의 수도원 교회당은 일반적으로 클뤼니 I와 II, 그리고 III로 불린다. 클뤼니 II는 953년 헝가리의 침입으로 파괴된 후 다시 건축된 것이고, 마지막으로 지어진 교회당이 클뤼니 III이다. 1088년 수도원장 후고가 시작한 클뤼니 III는 1130년에 완공되었다. 이 거대한 로마네스크 건물은 1200개의 기둥과 조각으로 이루어졌고, 무려 1만 명의 수도사들이 함께 모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다. 평수사들과 수도사들은 채석장에서 바위를 캐고 다듬어 거대한 수도원 교회당을 건축했다. 그들이 건축재료로 바위를 고집했던 것은 오로지 튼튼한 교회당을 짓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바위를 통해 하나님과 신앙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느님의 속성은 '반석'처럼 강할 뿐만 아니라 변함이 없으시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이름에 담긴 뜻이 바로 반석이 아닌가!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태복음 16:18)고 하지 않으셨던가. 이뿐이 아니다. 교회당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도록 동서로 길게 세워져 있다. 빛이 동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둠의 세력을 이기는 상징이요,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낸다. 수도원의 건축과 수도사들의 삶에는 어디에나 영적인 지표가 있다. 우리는 몇 시간이나 수도원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창문과 기둥에 새긴 문양이든 수도원에 세워진 어떤 조각이든 예술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방대한 수도원 건물 전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내부를 빠져나와 입구 반대쪽을 향하니 수도원 뜰이 나왔다. 수도원 앞쪽엔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작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뒤쪽으로는 낮은 언덕이 수도원을 감싸고 있었다.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한 곳에 수도원이 앉아 있었다. 남쪽으로 수백 미터를 걸어가자 수도원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변방에 위치한 클뤼니 수도원이 이탈리아와 영국, 스페인으로까지 확장되고, 교황을 배출한 것은 물론 십자군을 조직할 정도로 찬란했던 역사와 위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12세기 전성기 때에는 2000여 개의 수도원이 클뤼니에 소속될 정도였다. 클뤼니에 주어진 '수도원 개혁'이라는 영광스런 이름과, 최초로 수도회(Ordo or Congretatio)라는 조직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은 정치적 개혁과 불입권(immunity)과 면제권(exemption) 같은 특권에 의해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베네딕트 규칙에 대한 그들만의 독특한 해석과 그에 따른 개혁이 클뤼니를 만들었다. 베네딕트 수도생활의 3대 요소는 기도(oratio)와 노동(labor), 독서(lection divina)이다. 그런데 클뤼니 수도원은 노동에 대한 해석을 달리했다. 베네딕트가 '영혼의 적을 쫓아내던 노동', '신성한 일'로 숭고하게 여겼던 노동이 독서로 편입되고 말았다. 클뤼니 수도사들은 전례 예배에 수도생활의 모든 것을 바쳤다. 따라서 예배 의식은 당연히 복잡해지고, 수도원 음악이 꽃을 피울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일'인 전례 기도가 수도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수도사들은 매일 138편의 시편을 낭송했고, 성무일도를 엄숙하게 지켰으며, 때에 따라서는 하루에 두 번 공식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수도사가 사망하면 그날 밤에 시편 전체가 낭송될 정도로 장례 예식이 발전하기도 했다. 클뤼니 수도사에게 독서는 노동이었다. 그들은 하루에 몇 시간씩 성경과 신학 서적을 읽었다. 부활주일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독서에 집중했고, 사순절 기간에도 매일 1시간씩 독서를 할 정도였다.클뤼니에서의 예배의 발전과 신학의 장려는 예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1-12세기에 발전한 로마네스크 건축과 조각, 음악 등은 모두 클뤼니가 중심이었다. 클뤼니 수도사들과 장인들의 영성이 예술로 표현된 것인가? 깊은 내면에서 흘러 나온 언어가 시가 되고, 아름다운 심상이 그림과 조각이 되었다. 수행자에게 예술은 자기 영성의 표현이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이다. 수도원을 돌아 나오는 길은 왠지 씁쓸했다. 클뤼니는 한때 유럽 역사를 움직인 곳이다. 수많은 영웅호걸이 찾던 곳이다. 수도사만 400명씩 거주하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영광은 어디로 가고, 한 명의 수도사도 없이 반쯤 허물어진 건물만 외로이 서 있는가? 세속사에서의 성공과 번영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시편 103편)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유재경 교수

2019-03-08 19:30:00

대구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가 28일 내일교회에서 지도자 간담회를 열고, 교계 지도자들에게 위촉장을 전달했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제공

대구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 지도자 간담회

대구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가 지난달 28일 내일교회에서 '2019 대구기독교부활절연합예배 준비위원회 지도자 간담회'를 진행했다.간담회 전 예배에서 박병욱 대구기독교총연합회 박병욱 대표회장은 "부활은 서서히 이루어지거나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에 홀연히 이루어진다. 대구지역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때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간담회에서는 준비위원회 지도자들에게 위촉장을 전달하고, 준비위원장 이관형 목사(내일교회)가 준비 경과 등을 보고했다. 준비위원회는 이달 20일부터 매주 수요일 부활절연합예배를 위한 수요 중보기도회를 4주간 진행한다.2019년 대구부활절연합예배는 4월 21일 오후 3시 대구 스타디움에서 대구지역 1천600여개 교회가 참여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2019-03-08 11:09:21

대구장로회총연합회가 지난 1일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예배와 함께 시가행진 및 재연행사를 진행했다. 한국기독공보 제공

대구장로회총연합회, 3.1절 기념예배 및 시가행진

대구광역시장로회총연합회(회장 이용희)는 지난 1일 대구제일교회(박창운 목사 시무)에서 제 12회 대구 3.1만세운동 100주년 기념예배를 가졌다. 계성고등학교 언더크로스의 찬양으로 시작된 이날 예배는 이용희 장로의 인도로 박영해 장로가 기도하고,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여전도회연합회 회장 마영숙 권사의 성경봉독, 대구장로합창단의 특송, 장영일 목사(범어교회)의 설교, 제2군작전사령부 군악대의 축주와 박창운 목사의 축도 등으로 진행됐다.총 147개 단체 5천여명이 참여한 이날 예배에서 장영일 목사는"100년 전 만세운동을 일으켰던 33명 중 16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품은 기독교인 이었다. 100년 전 선조들의 꿈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리스도의 계절이 다시 올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예배에서는 3.1정신계승과 민족복음화, 대구시정 발전과 다음세대 등을 위해 합심기도했다. 또 3.1절 노래와 만세삼창을 제창 한 후에는 대구제일교회를 시작으로 청라언덕, 매일신문사, 서성네거리, 한일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에서 시가행진 및 3.1절 재연행사도 가졌다.

2019-03-08 11:09:08

보성선원 유물 보호각. 보성선원 제공

보성선원 보물 보호각 낙성식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선학원 보성선원은 최근 숙원 사업이었던 보유 유물 보호각 낙성식을 봉행했다.보성선원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과 복장전적은 2013년 각각 보물 1801호와 1802호로 지정됐다. 이들 보물은 1647년 제작 당시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삼존좌상은 가운데에 석가여래좌상이 있고 본존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문수보살좌상, 왼쪽에 보현보살좌상이 배치돼 있다. 복장유물은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에서 을해자본 '능엄경(楞嚴經)' 1종과 목판본 '인천안목(人天眼目)' 등 3종의 전적이 원형 그대로 발견됐다.보호각은 2016년 국비 20억원의 예산을 들여 건립불사 2년여 만에 완공했다. 보호각은 연면적 373㎡ 규모에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1층 요사채, 2층 유물 전시실과 수장고로 구성돼 있다.낙성식에는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을 비롯해 스님, 신도 5백여 명이 참석해 봉축했다.

2019-03-08 11:08:52

BUD 유스 오케스트라단.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제공

불교대학 大관음사 BUD 유스 오케스트라단 창단식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회주 우학 스님)는 17일(일) 오전 11시 옥불보전 4층 대법당에서 BUD 유스 오케스트라단 창단식을 갖는다.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는 학생들에게 1인 1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불교계 최초로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50여 명의 인원으로 BUD 유스 오케스트라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개인 악기만 구비하면 되고 운영에 사용되는 일체의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지도는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성인 오케스트라단인 BUD 챔버 오케스트라단 멤버들이 직접 수업하며 지도 경험이 풍부한 연주자들로 교사진을 구성했다. 올해는 2월에 유스 오케스트라단 1기생을 모집했고 2기생, 3기생도 차례로 모집해 단원을 배출할 예정이다.BUD 유스 오케스트라단은 한국불교대학 부설 이서중·고등학교의 이서청소년오케스트라단, BUD 챔버오케스트라단과 연 1회 협연공연을 할 예정이다. BUD 유스 오케스트라단은 1년에 두 차례 감포 해변힐링마을에서 1박 2일간 합숙하며 세미나를 가질 계획이다. 첫 세미나는 8월 10, 11일 양일간 열릴 예정이다.수업은 주 1회로하며 토요일 오전 9시 30분, 일요일 오후 1시 30분 중 택일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단은 포교 목적으로 운영되며 불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문의 053)474-8228.

2019-03-08 11:08:18

선진 스님이 불복장 의식과 접목한 설치미술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선진 스님 "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 설치미술해요"

"올해 설치미술 전시회 주제는 '유희삼매'(遊戱三昧)로 잡았어요. 선(禪)의 정신을 유희하자는 것이죠. 삼매는 너와 나를 나누는 이분화된 것이 아니고 또 생각, 감정, 느낌 이전의 조작하지 않은 마음을 의미합니다."대구 수성구에 있는 보현암 주지 선진 스님은 불복장 의식 전문가이자 현대 설치미술가다. 불복장 의식을 현대미술에 접목해 시각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스님이 설치미술 활동을 한 지도 10년 넘었다. 2006년 우주의 소리를 미술로 표현한 '옴'전을 시작으로 2013년 '천강월'(千江月) 전, 2017년 '지금 여기'(卽時現今) 전까지 총 12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불복장 의식은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진 불상을 점안하기 이전에 각종 물건을 불상 안에 넣는 성서러운 의식을 말한다."불복장 의식은 성스럽고 장엄한 종교 의식이고요. 현대 설치미술은 아주 자유롭고 파격적이고 해체할 수 있는 미술이잖아요. 장엄한 불교 의식을 가지고 현대미술과 접목해 대중과 소통해보겠다는 실험정신이나 실험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제 컨셉입니다."스님은 교과서적이고 정형화된 것을 싫어한다. 전시회를 열기 전에 주제부터 정한다. 대부분 선의 정신, 조사선의 정신과 관련된 주제가 많다. 그런 후 설치 작품에 올릴 대상물을 정하고 재료를 준비한다. 불상, 부처님 손, 복장물과 아크릴판, 철판 등이 주로 사용된다. 스님은 올해 전시회를 위해 설치 재료를 구상하고 있다."나의 설치미술 원동력은 내가 기거하는 황토방입니다. 도심 빌딩 속에 작은 황토방 자체가 의미가 있지요. 창호문, 아궁이, 다기 등등. 이런 자연스러운 황토방이 부처님의 복장같기도 하고요."스님은 불복장과 접목한 설치미술이 주려는 궁극적 메시지는 일심과 연민의 정신이라 한다. 스님은 조선시대 조상경에 의거해 불복장 의식을 하고 있다. 발원문, 연기문, 다라니 등 물품을 넣는 용기도 있다. 불복장 의식의 예술성과 조형성 자체가 후세에 하나의 작품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요즘 우리 사회가 심각한 갈등과 대립을 겪고 있는 것은 삼매를 바탕으로 한 중도의 마음이 없어서 일어납니다. 각자 본원자리인 청정심으로 돌아가 선과 악, 좌와 우, 남과 북, 네편과 내편, 옳고 그름, 시비와 차별심을 다 놓고 가야 합니다."스님의 인생 철학은 자연 그대로 사는 것이다. 반찬도 김치, 나물, 된장이면 충분하다. 잠자리도 생사에 전쟁을 치르는 마음으로 이불 없이 요 하나로 지내고 있다. 조작하지 않는 삶, 즉 청정심을 잃지 않고 살려고 노력한다. 무시선무처선(無時禪無處禪) 즉,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지금 여기 이 순간에, 현존하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고 있다. 만나는 사람은 모두 부처고 내가 하는 일이 모두 불사다. 순간순간 정성고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스님은 고령 출신으로 1981년 통도사 금강계단 자운율사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1986년 운문사 승가대학 대교과 졸업을 거쳐 2000년부터 팔공총림 동화사 말사인 대구 보현암 주지를 맡고 있다.선진 스님은 영남불교문화연구원 이사장도 맡고 있다. 10년 넘게 운영되는 영남불교문화연구원은 불복장 의식을 연구하고 영남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매달 셋째 주 일요일은 시민들과 함께 전국 사찰, 고분, 문화재 등 역사탐방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019-03-08 11:07:38

대구기독교총연합회가 2월 22일 충성교회에서 대구 기독교 독립운동사를 되돌아보는 3.1절 100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제공

대구기독교총연합회, 3.1절 특별세미나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성도여! 3.1 정신으로 깨어나라!'라는 주제로 3.1절 100주년 기념 특별세미나를 개최했다.2월 22일 대구충성교회에서 열린 이번 세미나는 대구 기독교의 독립운동사를 되돌아보기 이해 마련됐다. 예배와 특별찬양 이후 진행된 세미나에서는 서만철 한국문화재보존학회 회장(전 국립공주대 총장)이 '100주년에 돌아보는 한국 의 기독교 선교유적과 3.1 독립운동'이라는 주제로, 박창식 목사(달서교회)가 '영남지역 기독교계의 3.1운동 참여 개황'이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서만철 회장은 "100년전 이 땅에 자주독립을 선포했던 33인 대표자 중 16인이 기독교인으로 결국 3.1독립운동 정신은 기독교인이 앞장선 애국운동"이라며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 분연히 앞장선 기독선열들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식 목사는 "대구 청라언덕에서 시작된 대구지역 3.1독립운동과 시가행진은 대부분 계성고등학교와 신명여자고등학교 학생과 기독교신자들이 참여한 대구지역 기독교역사였다. 지금도 그 정신이 대구기독교정신으로 매년 3.1운동 재현행사를 기독교 주관으로 추진했다"고 했다. 세미나 후에는 아직도 과거의 잔악성을 인정하지 않고 독도의 망언을 일삼는 일본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박병욱 대구기독교총연합회장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구국정신을 오늘 우리도 본받아 나라사랑 기도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9-03-01 11:41:52

일본 만행으로 부순 사명대사석장비를 다시 붙여 세웠다. 해인사성보박물관 제공

해인사성보박물관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

"해인사 홍하문 앞에서 나라의 독립을 부르짖던 스님들의 항일 독립운동의 정신을 느껴보세요."해인사성보박물관(관장 서봉)은 3월 1일(금)부터 6월 30일(일)까지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 '號國호국, 나라의 독립을 부르짖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일본의 만행을 보여주는 해인사사건과 사명 스님의 항일 구국사상을 계승한 해인사 지방학림 스님들의 독립활동, 해인사 홍하문 앞에서의 3·1만세운동, 기사로 본 해인사 스님들의 독립활동, 백용성 스님의 업적 및 유품, 해인사 인근 지역의 3·1운동 및 파리장서운동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전시품은 용성 스님 소장 유물 및 고경 스님 진영 등 20여 점이다. 해인사 지방학림 스님들은 1919년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등사판을 모아 독립선언서 3천100벌을 인쇄해 출가사찰을 중심으로 배포했다. 해인사 홍하문 앞에서도 홍태현 스님과 지방학림 스님들 주축으로 3월 31일 200여 명의 군중이 봉기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했다. 해인사 인근 3·1운동은 광복회(경상남도북부연합지회)의 도움으로 이뤄졌다.해인사사건은 1942년 고경 스님과 환경 스님이 학인들에게 임진왜란 승병장이었던 사명대사의 애국적 일화를 가르쳤다는 것을 빌미로 일본 경찰이 사명대사비를 파손하고 스님들을 체포해 투옥시킨 사건이다.백용성 스님은 독립선언서 민족대표 33인의 중 불교계를 대표했던 독립운동가이자 불교개혁을 통해 불교 근대화와 대중화의 기틀을 확립하고, 일제하 선지식으로 전통불교 수호 활동을 펼친 고승이다.서봉 해인사성보박물관 관장은 "생각만으로 와닿지 않는 생소한 100년 전 그날이, 자유와 독립을 열망하며 해인사 홍하문 앞에서 나라의 독립을 부르짖던 그들의 간절함이 이 전시를 통해 우리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와닿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9-03-01 11:41:36

혜문 스님

"마라톤은 동중 수행…민중들과 함께해 더없이 좋아요"

"인생살이와 수행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마라톤에서도 서둘면 일찍 지치고, 그렇다고 너무 여유를 부리면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끈기 있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도달하는 마라톤의 끝 지점처럼 불제자들의 수행이나 인생사도 매한가지다."대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상락선원 선원장 혜문 스님은 마라톤 예찬론자다. 20세에 출가한 스님은 출가수행의 과정으로 2006년 마라톤에 입문했다. 그동안 승복을 입고 하프 100회, 풀코스 20회 이상 완주했다. 최고기록이 하프는 1시간 47분, 풀코스는 3시간 55분으로 '서브-4' 기록을 갖고 있다. 무박 2일에 걸친 108km 울트라 마라톤에도 도전해 성공하기도 했다. 그래서 스님은 도반에서 '마라톤 스님'으로 불린다."마라톤은 나에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다가왔어요. 1992년 30대 초반의 나이에 가야산 해인사 소림선원에서 화두 하나를 부여잡고 좌복을 땀으로 적시던 시절이었죠. 선배 스님 한 분이 '혜문 스님! 화두 공부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야! 평생을 두고 해야 할 마라톤인 게지'란 말을 속삭이듯 던지지 않겠서요. 그 순간 화두라는 중압감에서 비롯된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청량한 느낌을 받았어요."스님은 그 후 걸망을 메고 명산대찰을 돌고 돌아 2006년 뜻을 품고 대구에 상락선원(常樂禪院)이란 이름을 걸고 정착했다. 출가자에게 있어서 은둔은 수행의 과정일 뿐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출가자의 신분으로 육신의 수행을 위해 딱히 할만한 운동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달랑 팬티 한 장 걸치고 운동화만 신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라고 하던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처음에는 '출가한 스님이 무슨 마라톤이냐?'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심지어 같이 뛰는 주로에서 다른 마라토너들로부터도 조롱 섞인 말까지 듣기도 했다. 하지만 달리기를 통하여 나름대로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수행에도 정중(靜中)공부와 동중(動中)공부가 있다. 스님은 마라톤을 동적인 수행으로 여기고 민중들과 함께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행이 됐다고 한다."인간의 몸뚱이는 내버려 두면 한없이 게을러지고, 다그치면 그만큼 강인해지기 마련이에요. 천성적으로 안정을 추구하여 게을러지는 몸뚱이의 투정에 휘둘리지 말고, 한 번쯤은 극한 상태로 몸뚱이를 내몰아 길들여 보는 것도 삶에 아주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스님은 나이가 60세가 됐다. 마라톤 선수로 뛰는 것은 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라톤을 경험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단축코스에서 페이스 페트롤 활동을 시작했다. 마라톤 참가자에게 완주의 추억을 심어주는 도우미 역할이다. 기록과 관계 없지만 참가자와 함께 뛰다보면 완주의 기쁨은 남다르다는 것. 스님은 신천둔치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쯤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마라톤 수행에 나선다는 각오다.이밖에 스님은 소외이웃에 사랑나눔도 하고 있다. 선원 주변 홀몸노인을 모시고 따끈한 곰탕을 끓여 점심봉양을 10년째 실천하고 있다. 또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 5년 동안 1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상락선원은 2006년 대구 파동에서 12년간 운영하다 작년 12월에 봉덕동으로 이전불사해 불자들의 참선과 명상을 돕고 있다.

2019-03-01 11:41:06

라 투레트 수도원 모습

[유재경교수의 프랑스 수도원 탐방기] <9>아름다운 원색과 빛이 어우러진 현대 수도원 건축의 최고봉, 라 투레트 수도원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 했던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1965년 8월 27일 지중해 연안에서 사망했다. 거장에 대한 예를 표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국장을 준비하던 중 그가 써두었던 유서 같은 메모가 발견되었다.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의 시신을 라 투레트 수도원 교회에 하룻밤 안치해 둘 것을 부탁했다.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 교회에서 보았던 하느님의 형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생 무신론자로 살았던, 그가 마지막 밤을 보낼 곳으로 라 투레트를 선택한 것이다. 빛의 흐름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운 원색과 빛의 향연, 라 투레트 수도원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그르노블에서 라 투레트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아침 일찍 짐을 꾸렸다. 하지만 순례 여정에는 예기치 않은 일이 종종 일어나기 마련이다.부킹닷컴을 통해 이틀 예약을 했는데, 확인을 한다고 한 번 더 클릭을 한 것이 그만 두 번 예약을 한 모양이다. 본사에 전화를 걸어 환불을 약속받았지만, 주인은 기어이 하루 분을 더 받겠다고 시간을 끌었다. 프랑스인들도 돈 앞에서는 젠틀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르노블을 떠났다.라 투레트 수도원은 리옹(Lyon)에서 30km 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에브 쉬르 아브렐론'(Eveux-sur-Arbresle Rhone)은 언덕 속에 꼭꼭 숨어 있었다.이정표도 인적도 없는 시골 길, 나지막한 산 능선을 몇 번이나 돌고서야 간신히 언덕 위에서 수도원을 만날 수 있었다. 산 중턱을 돌자 줄을 지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는 울창한 상수리 나무 너머로 직사각형의 콘크리트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라 투레트는 볼품없는 콘크리트 덩어리의 나신(裸身)이었다. 세상과의 단절을 상징하는 높은 담벼락은커녕 낮은 울타리조차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한 걸음에 수도원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무게 때문인지, 수도원이 주는 엄숙함 때문인지, 쉽게 수도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천병석 교수와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라 투레트를 마음에 깊이 담았다. 길은 수도원 건물 3층과 연결되어 있었고, 출입구는 길옆에 서 있었다. 라 투레트 수도원(Monastery of Sainte Marie de la Tourette)은 리옹의 도미니크회에서 세웠지만, 알랭 쿠튀리에 수사가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다.1930년대부터 프랑스 종교예술(L'Art Sacré) 운동의 주역이었던 그는 1952년 리옹의 도미니크회 참사회를 설득하여 르 코르뷔지에에게 건축을 맡겼다.1953년 설계를 시작한 수도원은 3년이 지난 1956년에야 비로소 첫 삽을 뜰 수 있었고, 1960년 10월 19일에 완공되어 성대한 헌당식을 거행했다.쿠튀리에 신부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건축을 맡기면서 "조용하며,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달라"는 단 한 가지만을 부탁했다.르 코르뷔지에는 수도사도 가톨릭 신자도 아니었다. 그는 스위스 쥐라 산맥에 자리잡은 라쇼드퐁의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란 무신론자였다.그런 그가 어떻게 현대 수도원 건축의 최고 전당을 이 땅에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그는 쿠튀리에 신부의 권유로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르 토르네(Le Thoronet) 수도원을 방문했다. 그곳은 폐허로 남아 있는 수도원이었지만 천재 건축가에게 놀라운 영감을 불어넣었다.그는 빛과 그림자의 진실, 수도원 벽에 떨어지는 빛을 활용한 채움과 비움의 공간적 효과를 재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건축가로서의 인생의 절정기에 수도원을 만난 것이 아니었다.그는 20대 초반이던 1908년에 피렌체 근처 에마의 샤르트르회 수도원을 방문했는데, 그곳을 잊지 못해 1911년 다시 찾았다.20대를 갓 넘긴 나이에 그는 그리스 아토스산에 일주일간 머물면서 수도사들의 생활과 그곳의 풍광,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그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도사들이 살던 작은 방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 수도원 주위를 돌았다. 나지막한 언덕 위, 경사면에 올라앉은 수도원, 그 아래 남서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시골 풍경, 그 뒤로 흐르는 잔잔한 등고선. 수도원을 둘러싼 자연의 조화와 아름다움은 마음에 평화와 신비를 안겨주었다.르 코르뷔지에가 이곳을 처음 방문한 순간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을 짓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다." 2차 대전 후 프랑스에서 일어난 수도원에 대한 붐으로 인해 수도사를 양성할 공간이 부족했던 도미니코 수도회는 이곳에 라 투레트 수도원을 건축하여 시대의 요청에 응답했다. 한 때는 80여명의 수도사들이 이 아름다운 곳에서 기도와 묵상, 공부, 깊은 사색을 통해 하느님께로 나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6-7명의 수도사들만이 은폐된 공간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있다.이곳에 있다 보면 이곳이 수도사들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그것은 수도사들의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이 엄밀히 구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문객들은 수도사들의 삶을 동경하지만 그들의 사적이고 은밀한 세계를 들여다 볼 수는 없다. 북적이는 방문객들에도 불구하고 라 투레트는 언제나 조용하고 평온했다. 바닥에 떨어지는 바늘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수도원은 늘 고요에 묻혀 있었고, 그 고요가 방문객들의 마음에 쉼을 주고 있었다.수도사들은 예배하는 사람들이다. 라 투레트의 성무는 오전 8시에 아침기도를 시작으로 정오 예배와 오후 7시의 저녁기도로 이어진다.다른 수도원에 비하면 기도와 예배의 횟수도 적었고, 시간도 짧았다. 지친 몸으로 저녁기도에 참여했다. 문을 열고 교회에 들어선 순간 눈을 의심했다. 예배당 안은 교회가 아니라 생동하는 조각품이었다. 세상을 새롭게 하는 느낌의 백색을 바탕으로 빨강과 파랑, 노랑, 초록이 하나가 된 공간, 실로 하나님이 머무시는 곳이었다. 엄숙하고 장엄하면서도 평안이 깃든 예배는 우리의 마음을 열었고, 어느덧 내면의 작은 기쁨이 되었다. 우리는 예배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독특하게 지어진 기하학적 공간을 빠져나와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20명도 채 되지 않았는데, 식사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이곳 식당에는 솔렘의 전통과 세낭크의 단아함도 보이지 않았다. 대 여섯 명씩 한 테이블에 앉아 자유롭게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폴란드에서 온 중년 부부와 미시간에서 온 대학생이 함께 했다. 미국 청년들은 역시 말도 많고 자신감이 넘쳤다. 파리에서 유학을 하다 이곳에 들른 이야기며 여자 친구 이야기까지 끝이 없었다. 하지만 폴란드 부부는 서로 간에도 말이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나는 오래 전 방문했던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와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밤이 깊어가자 우리는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라 투레트는 역설적인 수도원 정신을 가지고 있다. 대중성을 추구하는 도미니코 수도원이 대중과의 단절을 추구하는 시토 수도원의 정신을 담은 것이다. 평생 인간을 위한 건축을 추구했던 건축가가 이곳에서 인간이 아닌 하느님을 향한 건축을 한 것이다. 라 투레트는 수도사의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사적 공간은 4층과 5층이며, 나머지 세 개 층에 크고 작은 예배당과 식당, 회의실 도서관 등이 몰려 있다. 그리고 수도원 중앙 로비에 사방으로 연결된 불규칙한 십자가 형태의 길이 나 있다. 수도사들의 방은 가장 높은 곳에 있고, 그들의 개인 예배실은 가장 낮은 곳에 있다. 수도원의 가장 낮고, 깊은 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공간이 바로 개인 예배실이다. 수도사들은 매일 아침 이곳에서 자신의 재단에 무릎을 꿇고 침묵으로 예배를 드린다.이곳은 구약시대 성막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至聖所)와 같은 곳이다. 제단은 6개의 플렛폼이 하늘로 상승하는 블록과 테이블 형태로 되어 있다. 이것은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상징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을 나타낸다. 수도사들은 매일 아침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천국의 이슬을 머금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장 위층에 있는 방은 수도사들이 잠을 자고, 독서와 사색, 묵상을 하는 공간이다. 방안에는 독거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있다. 테이블과 책장, 침대, 작은 옷장과 테라스가 전부다. 자유롭게 숨 쉬고 살 정도의 작은 공간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청년 시절 방문했던 에바의 샤르트르회 수도원을 회상하며, 사람이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이 방에 적용했을 것이다. 그는 아내 이본느와 함께 4평의 작은 통나무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그 작은 통나무집은, 대규모 도시를 기획하고, 국제회관을 설계했던 건축의 거장이 던지는 삶과 인생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우리에겐 과연 얼마만큼의 공간이 필요한가! 라 투레트 수도원은 르 코르뷔지에의 예술혼과 쿠티리에 신부의 영성이 만나 세워졌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곳에 인간을 위한 거처가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50년 세월 동안 그 많던 수도사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났지만, 라 투레트는 여전히 그 때 그 모습, 하느님의 거처로 남아 있다.조선 시대 송한필의 시 "우연히 읊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간밤 비 맞아 꽃을 피우곤/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누나./ 슬프다 한바탕 봄날의 일이/ 비바람 가운데서 오고 가노매"(花開昨夜雨 花落今潮風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글·사진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영성학 교수

2019-02-22 19:30:00

윌리엄 베어드. 숭대시보 홈페이지

3.1운동 100주년…배위량길 순례행사 26~31일까지

미국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배위량)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3.1운동 발생지역 탐방 및 배위량길 순례행사'가 26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행사는 26일 오전 9시 대구제일교회 역사관에서 기념예배와 3.1절 학술대회를 가진 뒤, 구미, 안동, 포항 등 대구경북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역을 순회한다.행사를 준비한 배재욱 영남신학대 교수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3.1운동이 일어난 곳을 돌아보며 잊혀져가는 역사와 기독교적 민족정신을 바르게 세우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오셔서 함께 한국교회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기독교인들이 피로써 지킨 강토를 순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의)010-5812-0898

2019-02-22 11:00:15

전국교정교역자협의회, 신임 회장 김준호 목사

전국교정교역자협의회는 최근 대구 라온제나 호텔에서 제48차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신임회장을 선출했다.전국교정교역자협의회는 법무부에서 위촉한 교정위원 950명이 활동하는 모임으로, 전국 54개 교도소와 구치소에 있는 5만7천여 명의 재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1972년 설립돼 매주 교도소내 1만9천여명이 정기집회에 참석하고 있다.교정교역자협의회는 이번 정기총회에서 임원선출을 통해 회장에 김준호 목사(대구교도소 주민교회)를 선출하고 신임원을 구성하는 등 회무를 처리했다.

2019-02-22 10:59:40

천주교대구대교구 장학증서 수여식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회복지회는 21일 교구청 내 꾸르실료 교육관에서 '교구'요한'정운현 요한 장학생 장학증서 수여식'을 가졌다.이날 장학증서 수여식에선 대학생 25명에게 1년 분 장학금을 지급했다. 또 이들 대학생 가운데 요한 장학생 13명에게는 졸업 때까지 장학금이 지급된다.교구 사회복지회는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대학생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학업에 전념해 건실한 사회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난 2000년부터 장학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교구 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장학회는 모두 5개로 안셀모 장학회와 바오로 장학회, 성모의 계순 장학회, 정운현 요한 장학회, 요한 장학회가 있다.올해는 이들 장학회 외에 교구 사회복지회가 한시적으로 만든 특별 장학회인 '밀알 장학회'도 장학사업에 동참해 대학생 3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2019-02-22 10:59:19

[포토뉴스]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라"...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앞두고 생가 기념공원에 추모객 발길 이어져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 10주기(16일)를 앞두고 14일 군위군 용대리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을 찾은 추모객들이 김 추기경 상징 조형물을 살펴보고 있다. 김 추기경은 선종을 며칠 앞두고"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라" 고 유언했다. 14일 김 추기경 생가가 자리한 군위군 용대리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 기념관을 찾은 추모객들이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김수환 추기경을 껴안아 보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적힌 실물 크기의 동상을 만져보고 있다. 14일 군위군 용대리 김 추기경 생가를 찾은 한 추모객이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있다.

2019-02-14 19:15:14

샤르트뢰즈 수도원은 해발 1,300m 알프스의 깊은 산속에 자리한 봉쇄수도원이다.3~4m 높이의 담장너머로 수도원과 알프스산이 보인다.

[유재경 교수의 프랑스 수도원 탐방기] ⑧ 영성의 성지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 또한 그 침묵으로부터 겨울이 그리고 여름과 가을이 온다."(막스 피카르트의 '시간과 침묵' 中에서)필자는 '기도'와 '묵상', '영의 분별' 등의 기독교적인 수행을 다루는 '영성훈련'이라는 과목을 맡고 있는데, 그 과정 중에는 '침묵'도 포함되어 있다.침묵에 대한 강의 후에는 항상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Into the Great Silence)을 학생들과 함께 보고 있다. 벌써 10년째다. 이 영화는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숨겨진 그랑드 샤르트뢰즈(Le Grande Chartreuse) 수도원을 카메라에 담았다.이곳은 한번 들어가면 죽어서도 나오지 못하는 봉쇄수도원이다. 샤르트뢰즈는 해발 1,300m, 알프스의 깊은 산 속에 자리한 후,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1960년 수도사들을 촬영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도원만을 담은 사진이 전부였다. 그런데 필립 그로닝 감독은 2005년 '위대한 침묵'을 통해 처음으로 이 수도원을 세상에 보여주었다.음향이나 조명도 없고, 대사는 짧게 자막으로 처리된 영화, 162분의 상영시간 내내 흐르는 깊은 침묵은 '수도복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나 '성경을 넘기는 소리', '숲에서 들리는 바람소리'마저 소음으로 만들었다. 필름 속 익숙한 장면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천병석 교수와 나는 세낭크를 떠나 샤르트뢰즈 수도원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그르노블(Grenoble)로 향했다.몽뗄리마흐와 발랑스를 지나는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자동차로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세낭크에서 출발해 가프(Gap)를 돌아 그르노블로 향했다. 프랑스 동남부 알프스산의 속살을 보고 싶었다.해발 1,000m를 넘나드는 도로, 알프스의 위용과 아름다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싱그러운 여름 햇살과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과 함께 쏟아지는 소나기, 알프스는 환희와 두려움의 두 얼굴을 가진 것 같았다."적과 흑"의 저자 스탕달(Stendhal)의 고향 그르노블은 몽라셰산 남쪽 기슭, 수천 미터의 산속에 꼭꼭 숨어 있었다.그르노블에서 지친 하루를 보낸 우리는 다음날 이른 아침 샤르트뢰즈를 향했다. 그르노블에서 샤르트뢰즈까지는 30km, 40-5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그르노블에서 가파른 산 모퉁이를 넘어가자 레스토랑 앞 길가에 수십 대의 자동차와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자전거로 산을 오르려는 사람을 붙들고 물었더니 그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까닭은 물론 샤르트뢰즈 수도원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3-4m이나 되는 높은 담장 때문에 내부를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봉쇄 수도원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맞은 편 산속 길을 따라 샤흐멍 쏭(Charmant Som)산 정상에 올라가 보라고 했다.1,500미터가 넘는 좁은 산길을 조심스럽게 헤쳐 나가자 산 중턱에는 소들이 떼를 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속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1,876미터 산 정상에 외로이 서 있는 철제 십자가, 그 아래 천 길 낭떠러지 저편, 웅장한 알프스 자락에 샤르트뢰즈 수도원이 앉아 있었다.샤르트뢰즈의 라틴어 표기 카르투시아(Cartusia)에서 카르투지오 수도회가 나왔고, 이곳이 수도회의 본산이다.카르투지오 수도회는 거의 1,00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설립자 성 브루노(Bruno, 1032경~1101)의 정신이 살아있었다.지금도 한국을 비롯하여 유럽과 아메리카, 등 전 세계 25개의 수도원에서 수도사와 수녀들이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브루노는 거대한 수도원을 꿈꾸지 않았다.그는 독일 쾰른의 귀족 가문의 영예도, 랭스(Reims) 교구의 학자 자리도, 대주교 자리도 뒤로한 채 고독과 가난의 장소를 찾아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는 처음 두 명의 제자와 함께 퐁텐(Seche Fontaine) 숲 속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은 수도생활에 적합하지 않았다.마침내 그르노블 주교 위그(Hugues)의 도움으로 그는 해발 1,300m의 숲속 작은 샘가에 터를 잡고, 6명의 제자와 함께 수행을 시작했다.1084년에 돌로 쌓은 작은 교회당 하나와 나무로 만든 움막이 수도원의 시작이었다. 알프스의 겨울은 혹독했다.1년에 6개월은 사람이 출입할 수조차 없었다. 이곳이 브루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알프스의 사막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가난한 자들'이라고 칭하면서 고요와 평화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샤르트뢰즈도 시련을 피해 갈 수 없었다. 1132년 1월 30일 토요일은 재앙의 날이었다. 알프스의 눈사태는 끔찍했다.건물은 눈 더미에 휩쓸렸고, 6명의 수도사는 눈에 파묻혔다. 살아남은 수도사들은 평수도사들의 생활공간이었던 2km 아래 저지대로 내려가 다시 수도원을 세웠다.5대 수도원장이었던 귀고 1세는 돌로 교회당을 세우고 나무로 수도사들의 거처와 수로를 만들었다. 그가 건축한 수도원 회랑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시련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1320년에 일어난 화재는 수도사들이 평생에 걸쳐 필사한 책들을 한 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는 전도자의 말이 가슴을 울렸다. 화재와 약탈, 파괴가 끊이지 않았지만 샤르트뢰즈는 굴복하지 않았다. 다시 일어섰고, 다시 건설했으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걸었다.카르투지오 수도원 건물은 똑 같은 원리에 따라 건축되었다. 많은 건축물 가운데 가장 독특한 공간은 수도사의 방(cell)인데, 카르투지오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그 방에는 직사각형의 궤짝 같은 나무 침대, 기도대, 창문에 달린 작은 식탁, 겨울을 위한 작은 난로, 그리고 책상과 몇 권의 책이 전부다.수도사들은 하루의 세 차례의 공동기도를 제외한 모든 일과를 서너 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진행한다. 벨이 울리면 일어서고, 무릎을 꿇고, 절하며, 후드로 머리를 감싸며 기도와 예배를 드린다. 수도사들의 찬양과 기도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수도원 전체가 거대한 교회로 변한다.카르투지오 수도사들은 초기에는 두 명이 한 방을 사용했으나, 1250년 이전에 독방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동생활을 했지만, 이집트 사막 수도사들의 '독거' 생활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들은 '세상과의 단절'과 '독거', '철저한 마음의 고독'을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갔다.샤르트뢰즈의 수도생활에서 구송기도와 묵상, 관상, 독서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그러나 수도사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였다.그들은 교회와 독방에서 매일 기도와 예배를 드렸다. 온전하게 드려지는 새벽기도(Martins)와 아침기도(Lauds), 2-3시간 계속되는 밤예배는 기도와 예배를 사랑한 그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전례는 간소하고 절제되어 있다.성가에 데스칸트(descant)와 악기는 금지되었다. 그들은 노래의 아름다움보다는 단순함과 진실성을 추구했다. 수도사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독서다.카르투지오회의 노동은 필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수도원 도서관을 성경과 교부들의 저서로 가득 채우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다. 성경 해석의 최고 권위자였던 브루노는 독서를 이렇게 강조했다."당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아는 지는 그가 무엇을 행하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샤르트뢰즈의 9대 수도원장 귀고 2세(Guigo II)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4단계 렉시오 디비나를 정형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샤르트뢰즈 수도사들은 예배와 기도의 단순함과 신실함에 집중했고, 엄격한 수행생활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쉼의 소중함도 잘 알고 있었다.수도사들은 방(cell)을 나오면 외부로 나가지 않고도 바로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일상의 고된 영성훈련은 노동과 산책을 통해 조화와 균형을 이루었다.주일이면 모든 수도사들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오락 시간을 가졌다. 매주 한 차례 알프스를 산행하며 영적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활을 너무 세게 당기면 부러진다"는 브루노의 정신이 여기에도 녹아 있다. 우리는 담벼락을 돌아 옛 수도원 흔적을 찾아 산길을 걸었다. 브루노와 제자들이 걸었던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에 잠겼던 위대한 수도사들을 떠올렸다.12세기에 위대한 수도사들이 길을 걷다가 잠시 쉬었다는 '전나무 의자'는 어디쯤 있었을까? 위대한 영성가가 아니면 앉을 수 없었다던 그 존귀한 의자! 젊은 시절 여기서 지냈던 위그는 후일 링컨의 대주교가 되고 나서 다시 이곳을 찾아 그 의자에 앉아 감격해 했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쯤 그 의자'에 앉을 수 있을까?"신은 충족해주고, 이끌고, 자기 작품을 완성한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 세워지는 침묵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알렝 코르뱅의 '침묵의 예술' 中에서)

2019-02-08 19:30:00

대구지역 교회들의 이웃돕기 온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순복음대구교회는 대구시에 사랑의쌀 400포를 전달했다. 대구시 제공

대구지역 교회, 이웃돕기 온정 이어져

대구지역 교회들의 이웃사랑이 이어지고 있다.대구 남구 성도교회는 7일 남구청을 찾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성금 100만원을 전달했다. 이날 전달식에는 성도교회 노홍균 담임목사를 비롯해 박윤기 부목사, 김종열 장로 등이 참석했으며, 기탁한 성금은 지역의 저소득 주민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대구 달성군 논공읍은 논공교회도 최근 논공읍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라면 240박스를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기탁했다. 이날 전달받은 라면은 달성복지재단을 통해 논공지역의 홀몸어르신, 장애인 등 복지사각지대 저소득 계층 240가구에 지원될 예정이다.순복음대구교회는 최근 대구시청에서 이건호 순복음대구교회 담임목사와 권영진 대구시장, 이희정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천만원 상당의 사랑의 쌀을 전달했다. 전달된 사랑의 쌀 400포는 대구 전역의 소외된 계층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앞서 순복음대구교회는 지난해 초에도 쌀 500포를 기탁하는 등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이건호 순복음대구교회 담임목사는 "대구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꾸준히 나눔을 실천 중"이라며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19-02-08 10:39:41

대구기독교총연합회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최근 대구내일교회에서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제공

대기총,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와 장기기증 협약

대구기독교총연합회(이하 대기총)가 생명나눔운동에 앞장서기로 했다.대기총은 최근 대구내일교회에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와 '장기기증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가졌다. 사랑의 장기기증은 사후 혹은 뇌사 시에 장기나 인체조직을 대가없이 남에게 기증함으로 꺼져가는 생명을 다시 살리는 숭고한 생명나눔운동이다.대기총은 이번 협약을 통해 지역교회와 성도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사랑의장기기증캠페인을 운동본부와 공동으로 전개함으로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예정이다.구체적으로 양 기관은 상호 협약 사실을 홈페이지 및 각종 행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대기총 소속 교단과 교회가 '생명나눔서약예배'를 통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한다. 또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대기총이 추진하는 사업과 행사가 사회 운동으로 퍼져나갈 수 있도록 홍보하고, 생명나눔 예배 진행 등을 통해서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박병욱 대기총 대표회장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에 대구의 전교회가 참여하는 생명나눔운동으로 확산되어 부활의 역사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은 "이번 협약식을 통하여 대구기독교총연합회가 생명나눔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을 매우 감사하며 대구에 생명부활의 새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2019-02-08 10:39:06

예멘 내전 참전국인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4일(현지시간) 아부다비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UAE 군주와 고위 정치인, 귀족, 이슬람과 유대교 등 종교 지도자 등을 만난 자리에서

교황, 이슬람 발상지서 첫 미사 집전…17만명 운집

프란치스코 교황이 5일(현지시간) 오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신자 17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미사를 집전했다.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은 이슬람 발상지인 아라비아반도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이(異)종교간 화해와 전 인류의 박애를 강조했다.특히 이슬람국가(IS)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이 다른 종교를 적대하고 살상하는 참극이 벌어지는 중동 한복판에서 열린 이날 가톨릭 미사의 메시지는 더욱 의미가 깊었다.교황은 '산상수훈'으로 불리는 복음서의 팔복을 중심으로 설교하면서 온유한 자와 화평케 하는 자를 부각해 갈등과 불화, 무력이 아닌 다른 이를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다.교황은 "예수께서 사는 방법을 말씀하실 때 우리가 거대한 일을 이루거나 다른 이의 주의를 끌기 위해 별난 행동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며 "단지 자신의 삶이라는 작품 하나를 만들라고 하셨고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설교했다.그러면서 "팔복은 우리 삶의 길잡이"라면서 "팔복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행동이나 극적인 행위가 필요한 게 아니라 예수를 일상에서 닮아가는 일이다"라고 해설했다.이어 예수를 뿌리로 삼아 오염된 공기를 흡수해 산소를 매일 되돌려주는 나무와 같은 이가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설교가 끝난 뒤 한국, 인도 등 6개 국가의 신자가 대표로 나와 각국 언어로 교황과 주교들을 위해 짧게 기도했다.UAE에 거주하는 가톨릭 신자는 필리핀, 인도 국적자를 중심으로 약 100만명으로 추정된다.이날 미사에는 100여개 국적의 신자가 모였으며 무슬림도 약 4천명 참석했다.미사 장소인 아부다비 자예드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의 4만여 관중석과 운동장에 신자가 가득 찼고, 입장하지 못한 신자는 주변 보조경기장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미사에 참여했다.교황이 오픈카를 타고 등장하자 신자들은 열렬히 환호성을 지르고 교황청 깃발을 흔들며 환영했다.미사는 오전 10시 30분께부터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UAE 두바이 정부 소유의 에미레이트 항공은 운항 중인 여객기에서도 승객이 미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생중계했다.올해를 '관용의 해'로 선포한 UAE 역시 초대형 가톨릭 미사를 유치함으로써 다른 이슬람권 국가보다 종교적으로 포용하는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성과를 얻었다.외국인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90%에 육박하는 UAE는 중동에서 비(非)이슬람권 문화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다. 무슬림이 신자가 예배할 수 있는 종교 단지를 허용하는 등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선교는 엄격히 금지한다.교황은 '종교의 자유'에 대해 전날 "예배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주께서 자유롭게 하신 모든 형제, 자매, 자녀를 신의 이름으로도 억압하지 않고 진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교황은 이날 미사를 마친 뒤 바티칸으로 돌아간다.

2019-02-05 21:49:41

세낭크수도원 위치

[유재경교수의 프랑스 수도원 탐방기]⑦세낭크 수도원(Sénanque Abbey): 그리스도의 신비를 품은 수도원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동남부 프로방스 지방을 향해 떠나야 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사이 콩크가 가슴 깊이 내려와 있었나보다. 하지만 순례자는 떠나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콩크에서 세낭크까지 한 걸음에 달려갈 수는 없었다. 길이 멀기도 했지만 길목에 자리잡은 몽펠리에와 아를, 아비뇽, 엑상프로방스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를에서 하루를 머무른 다음 아비뇽을 들렀다 가기로 했다. 프로방스는 한국인들이 동경하는 여행지다.어떤 이들은 색의 신비를 찾아 이곳에 온다. 이곳에선 7월이 되면 라벤더가 익는다. 선명한 보라색 라벤더는 프로방스 발렝솔(Valensole) 평원을 수놓고,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색에 취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작은 마을들, 그곳의 맑은 공기와 온화한 빛은 예술의 혼을 불러일으켰다. 이곳은 빈센트 반 고흐와 폴 세잔, 마르크 샤갈이 사랑한 곳이다. 피카소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고향인 말라가가 아니라 이곳에서 보냈다. 우리는 아를(Arles)의 구석구석을 돌면서 반 고흐를 만났다.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테라스'의 장소인, 포룸 광장의 모퉁이 카페에 앉아 그가 보낸 아를에서의 시간을 반추해보았다. 그는 왜 아를에 왔을까? "나는 다른 빛을 보고 싶었다. 맑은 하늘 아래서는 자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조용하게 느끼며 묘사하고 그려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남쪽으로 왔다."고 고흐는 말했다. 우리는 자유와 빛을 찾아 어디로 가야 할까?아를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국도로 내려서자 곧 시골길이 나타났다. 길가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동차는 작은 평원을 지나 알프스 서쪽 고지대를 향해 달렸다. 앞에서 다른 차가 나타날까 두려울 정도로 길은 매우 좁았다. 높은 산 정상을 넘어 곧장 계곡을 향해 내려가자 깊은 계곡 속에 아담한 세낭크 수도원(Sénanque Abbey)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 앉아 있었다. 주차장엔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로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이곳엔 수도원과 계곡, 그 속에 활짝 핀 라벤더, 인간이 빚은 정성과 신이 내린 축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세낭크 수도원은 1148년 7월 9일 피에르 드 마장(Pierre de Mazan)이 12명의 수도사들과 함께 이 계곡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수도원 건물은 까바이용(Cavaillon)의 주교 알팡(Alfant)의 지원과 시미안느(Simiane)와 고르드(Gordes) 영주들의 보호 하에 60여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1178년에 교회당이 건축되었고, 13세기의 시작과 함께 세낭크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세낭크는 프로방스 전 지역에 걸쳐 토지와 목장, 숲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몬살리에(Montsalier)에 성(Castle)을 소유했고, 다른 지역에도 5개의 숙박소(Hospices)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544년 종교전쟁 기간에는 내분을 겪었고, 급기야 프랑스 혁명으로 수도원은 국가에 팔리고 말았다. 수차례에 걸친 복원과 철수를 거듭하던 세낭크는 1988년 시토수도회의 전통을 회복하면서 정상적인 수도생활을 하게 되었다.시토수도사들은 왜 가장 척박한 계곡에 수도원을 세웠을까? 그 이유는 세낭크라는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세낭크의 역사와 고고학에 정통한 수도원장 무안(Moyne)은 세낭크(Senanque)란 말은 라틴어 'sine aqua'(물 없이) 혹은 'sane aqua'(건강한 물)에서 나왔고, 켈틱(Celtic) 문장 'Sagn-anc'(늪가의 긴 길)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시토수도회를 설립하는 데 크게 공헌한 베르나르두스(Bernardus)는 "계곡의 바닥은 가장 습한 땅을 품고 있고, 그곳이 덕을 계발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축축한 습기가 배어 있는 척박한 땅은 수도사들이 겸손을 배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척박한 땅이 엄격하고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시토수도사들의 묵상 공간이 된 것이다.한여름 프로방스는 뜨거웠다. 햇볕을 가리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고역이었다. 수도원 내의 방문객 숙소는 교회당 출입구와 마주보고 있었다. 연로한 수도사가 맑은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하지만 영어를 할 수 있는 수도사가 없었다. 봉사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숙소를 안내받았다. 2층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예배당으로 향했다. 1층 현관 앞에서 왜소한 동양인과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목례만 하고 지나갔다. 그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던 중국인 신부였다. 며칠 함께 지내면서 친해졌지만 깊은 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파리 근교의 중학교 영어선생인 카터린(Catherine)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녀는 우리가 왜 이곳에 왔으며, 얼마나 머무는지를 물었다. 한국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던 그녀는 사흘만 머물 것이라는 말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녀는 매년 여름 이곳에 와서 두 주씩 봉사를 하고 돌아간다고 했다. 여행을 위한 방문이나 수도원 체험을 위한 체류가 아니라 봉사를 위해 이곳을 찾는다는 그녀의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자신을 내줘 본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여름이면 세낭크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중세의 정취가 가득한 건축물과 수도사들의 손길이 묻어나는 라벤더가 사람들을 부른다. 라벤더 꽃은 시시각각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아침엔 이슬을 머금은 연하고 청초한 보라색 라벤더, 갓 떠오른 태양을 받아내는 연보라색 라벤더, 그리고 오후의 강렬한 태양에 익어가는 라벤더. 나는 수도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라벤더를 묵상했다. 라벤더는 건조한 모래 땅이나 척박한 돌 틈에서 잘 자란다. 이곳은 온통 석회암과 거친 모래뿐이다. 라벤더와 수도사는 무척 닮았다. 라벤더의 라틴어 어원 'lavo'는 '깨끗하다'는 뜻이다. 라벤더는 거친 모래와 돌밭에서 자라지만 맑은 향기로 우리를 치료한다. 수도사들은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수행을 통해 세상을 밝힌다. 그뿐만 아니라 라벤더의 보라색은 하늘과 땅을 중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보라색의 의미를 가장 순수하게 구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이다. 사순절의 보라색 망토가 그것을 대변한다. 세낭크의 수도사들은 라벤더를 심고 꽃을 가꾸면서 무엇을 상상했겠는가?시토수도회는 베네딕트 규칙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실천할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엄격한 수도공동체다. 세낭크 수도사들은 예배와 렉시오 디비나, 노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성무일도를 통해 하루하루를 성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수도사들이 1988년 레렝(Lerins) 수도원에서 이곳으로 온 것은 시토회 선배 수도사들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세낭크의 건물은 그 자체로 시토회의 정신을 드러낸다. 교회당과 회랑, 챕터 하우스, 식당 그 어디서도 화려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단순함과 검소함이 오히려 매력이었다. 로마네스크형의 교회당은 차분하고 평온했다. 제대 맞은편 벽 어디에도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전면의 돌벽 자체가 하나의 장식이었다. 달랑 나무 십자가 하나가 제대 곁에 서 있을 뿐이었다.저녁기도(Vespers) 시간엔 30여명의 방문객이 함께했다. 수도사들이 올리는 시편송과 찬송이 교회당을 감싸고 있었다. 단지 다섯 분의 수도사가 드리는 예배였지만, 찬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성경을 낭독하는 목소리엔 맑은 영성과 오랜 경륜이 묻어나고 있었다. 솔렘의 예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었던 것에 비한다면, 종종 연세든 수도사가 전례집을 넘기는 손동작은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성경을 찾는 어색한 손동작과 큰 돋보기를 더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예배시간은 짧았지만, 수도사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무릎을 꿇거나 좌대에 걸터앉은 수도사들의 침묵기도가 이어졌다. 청중들도 떠날 줄을 몰랐다. 교회당엔 짙은 어둠이 내렸고, 침묵과 기도가 교차하고 있었다. 우리도 수도사들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시간은 채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딱딱한 나무판자가 무릎에 심한 고통을 주었다. 수도사들은 달랐다. 30분, 40분이 지나도록 무릎을 꿇은 자세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수도사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수도사가 된 느낌이었다. 수도사들의 기도에서 프로방스의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의 말이 떠올랐다. "풍경은 나의 마음 속에서 인간적인 것이 되고, 생각하며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나는 나의 그림과 일체가 되고 우리는 무지개빛의 혼돈 속에서 하나가 된다."글·사진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2019-01-25 19:30:00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지난해 해외원조 내역 공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공식 국제개발협력기구인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이 지난해 해외원조 지원내역을 공개했다.지원내역에 따르면 한국카리타스는 지난해 해외원조 50개 사업에 모두 39억7천만원을 지원했으며 이에 따라 1993년 해외원조를 시작한 이래 지난해까지 26년 만에 누적 지원금은 532억원을 기록했다.사업 유형별로 보면 긴급 구호가 23개 사업에 20억3천만원, 개발협력이 27개 사업에 19억4천만원이다.긴급구호사업은 급증하고 있는 난민들에 대한 집중 지원과 가뭄 피해, 식량 위기, 자연재해 구호를 포함하고 개발협력사업은 구조적인 빈곤 극복과 지역사회 역량 강화를 위한 중장기 사업을 포함하고 있다.지원금 재원은 매년 해외원조주일에 전국 성당에서 모금하는 특별 헌금, 후원회원과 단체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된다.

2019-01-25 11:42:35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