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종교칼럼] 가상현실

인터넷은 가상세계를 열었다. 우리는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간다. 꿈의 세계가 열린다. 손끝으로 터치만 하면 전 세계의 폭포가 눈앞에 와 있고, 꽃이란 꽃은 다 감상할 수 있고, 웬 나비가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음악세계가 열린다. 손끝으로 터치하면 우리의 목소리가 광장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 세상에 퍼져 나간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가 우리의 손바닥에 와 있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났다. 한 친구가 시국에 관해 열을 토하며 말했다. 그는 가짜 뉴스로 만들어진 가짜 세계에서 온 듯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연실색하며 할 말을 잃었다. 재치 있는 친구가 화제를 급하게 다른 데로 돌리고 나서야 어색한 분위기가 해소되었다. 나는 이 사건 이후로 가짜 뉴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이 있다. 때로는 이 말이 얼마나 멀리 갔다가 돌아오는지 3년 전의 가짜 뉴스가 토씨 하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올 때도 있다. 가짜 뉴스는 오해로 인해서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의도를 가지고 치밀한 기승전결을 만든다. 상징과 함축과 비유, 구호를 적절하게 이용한다. 누군가 이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어떤 유익을 얻으려는 의도다. 거짓말이 선할 리가 있는가? 거짓말을 사용하여 대상을 혐오스러운 색으로 칠하고, 이념의 낙인을 찍고, 비인간화하고, 악마화하고 증오한다. 가짜 뉴스의 간단한 판별법은 '긴급뉴스, 무슨 파를 사수하자. 무슨 파를 박멸하자'는 구호, 증오와 조소의 내용이 있는가이다. 목사로서 한 교회를 지키기에도 힘이 벅찬데, 무슨 파를 사수하라니 나로서는 역부족이다. 성직자에게 증오의 메시지를 보내는 용기도 발칙스럽다. 나는 개인적으로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 내게 가짜 뉴스를 세 번 이상 보내면 나는 가차없이 그를 차단한다.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구차스레 보일까를 염두에 두라. 내가 가짜 뉴스를 싫어하는 이유는 가장 먼저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나를 어떻게 보았기에 이런 가짜 뉴스를 읽고 동조하거나 키득거리며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가짜 뉴스로 내게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가?' 거짓말로 내 마음속에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주입하려고 했다면 내 마음의 도둑이다. 내 마음의 주머니에 슬쩍 들어온 검은손이다. 결국 나는 범행 대상이 된 것이다. 가짜 뉴스는 나 개인의 자존심뿐만이 아니라, 내 페르조나(사회적 자아)의 품격에도 손상을 줄 것이다. 거짓말을 가지고 성직자에게 증오와 미움을 부추긴다면 말이 되는가? 성직자에게 거짓말이라도 사랑과 평화와 화해의 말을 하고, 자비의 시늉이라도 보여야 예의가 아닐까? 우리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와 미디어를 통해서 가상현실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 가상현실이 천국 같은 현실이면 좋겠는가? 지옥 같은 현실이면 좋겠는가? 당연히 천국 같은 현실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가상현실이 현재는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꽃피울 찬란한 미래를 미리 보여주면 어떨까? 가짜 뉴스를 가지고 아름다운 현실을 만들 수 없다. 편 가르고 증오를 심는 가짜 현실에 속지 말자. 인터넷 게시판 댓글로 인해 상처 받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증후군의 공간이 아닌 치유의 공간으로 가꾸자. 격려와 용기를 북돋워주는 회복의 공간으로 가꾸자.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광장으로 만들어보자. 이해와 화합의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가상현실을 악몽의 세계가 아닌 꿈의 세계로 가꾸자. 가상현실을 희망찬 세계로 가꾸자! 얼마 후 현실이 될 것이다. 가상현실을 가짜 현실로 만들지 말자. 가상현실을 최상의 현실로 만들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4-07 00:05:00

[포토뉴스] 부활절 미사와 예배

부활절인 1일 대구경북 성당과 교회에서는 부활절 미사와 예배가 잇달아 열렸다. 천주교대구대교구 주교좌 범어대성당에서는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위)를, 대구스타디움에서는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주최로 '2018 기독교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려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참뜻을 기렸다.

2018-04-02 00:05:00

[종교칼럼] 열반절 아침

남도여행을 다녀왔다. 암자에 돌아오니 산길에 온통 진달래꽃이 가득했다. 꽃 소식은 남쪽에서 먼저 올라온다. 꽃이 없는 봄은 봄이 아니다. 꽃이 피기 때문에 봄이다. 봄이 되면 시선이 문밖으로 고정되고 방안의 사물들은 낡아 보이고 허접스럽게 느껴진다. 나그네는 머물 수 없으면 떠나라고 재촉한다. 바람에 일렁이는 청정한 대나무 숲과 정겨운 토담들, 그리고 장독대의 신성함, 노란 산수유와 하얀 목련, 매화꽃, 더구나 붉은 동백꽃이 피었을 때 그 집은 가난하게 보이지 않는다. 꽃이 피고 훈김 나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고 내 집 같다. 해남에서 완도까지, 그리고 순천에서 벌교와 고흥까지 내려갔다. 바닷가 마을은 조는 듯 낮은 지붕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촌의 풍경들이 꽃 대궐을 이루며, 남도 특유의 향토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고흥안의 방조제에서 해 넘어가는 장엄한 일몰은 눈시울을 붉히게 하였다. 대서정류장에서 마중 나온 제석 스님과 조우했다. 제석 스님은 30년 넘게 고흥 봉황산에서 차밭을 일구고 도량을 가꾸며 요가와 밭농사를 짓는 농부 스님이다. 혼자 사는 수행자의 산중생활이 만만하지 않을 터지만 의연하고 건강한 생활에 머리가 숙여진다. 온돌방은 군불을 미리 지펴놓아 꽃샘추위에도 열기로 후끈거렸다. 차를 마셨다. 찻잔과 종류가 다른 차를 바꿔가며 밤늦도록 마셨다. 차를 마실 때마다 수행의 공력이 출렁거렸다. 새벽이 되었다. 창문을 열어젖히니 짙은 매화 향이 훅하고 방안 깊숙이 스며든다. 혼자 또 차를 마셨다. 차 맛이 없다. 저녁 늦게까지 차를 마셨기 때문일까? 매화 향기 때문일까? 차흥이 도망가고 차가 식어 버렸다. 멀리 바다가 아득하게 나타났다. 차에 취한 불면의 밤이 비로소 전해왔다. "어째서 푸른 산중에 혼자 사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하지 않고 그냥 웃는다. '마음 한가하여 도화꽃이 물에 떠서 표연히 흘러가니 여기는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유천지라네'(산중문답) 아침 공양을 마치고 또 차탁에 앉았다. 식은 차가 생각나서 무심히 찻잔을 들었다. 앗! 맛있다. 이 맛이다. 감로처럼 달달했다. 어째서 식은 차가 나를 비로소 차 맛에 이르게 하였을까? 경봉 큰스님 법문집에 '바다에 보물이 있으니 천연산 김이다. 해풍 씻겨서 자연산 김이 제일 좋다. 그러나 맛이 있으면 참 맛이 없고, 맛이 없는 가운데 참 맛이 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참 맛인가, 그냥 맛이다.' 차를 마시고 있으니 제석 스님이 맨발로 차실에 들어왔다. 차밭에 새순이 나오기 전에 덩굴과 잡목을 제거하고 서리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제석 스님! 네가 어째서 건강하고 매사에 당당한지 오늘 알았다. 그리고 시골에 살아도 스님이 부자처럼 살고 있는지"라고 칭찬하며 둘이서 크게 웃었다. 흙 묻은 작업복과 거친 손, 그은 얼굴 등은 무소유로 가는 비구가 연상된다. 무소유는 완전한 거지가 된다는 것이다. 비구는 필추에서 왔지만 큰 거지 또는 밥을 비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정신과 육신이 있지만 무소유로 가는 수행자는 거지처럼 몸에 걸친 것이 없어야 한다. 가지고 있는 것이 한 가닥이라도 있으면 비구는 아니다. 그러므로 비구의 무소유는 너무나 무서운 말이다. 고타마 싯타르타처럼 맨발이 소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무소유에 얼마나 가까이 갔을까? 식은 차가 맛있다.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3-31 00:05:00

[종교칼럼] 프로파간다

선전(Propaganda)이라는 말은 로마 교황청의 기구인 '포교성성'(Sacra 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에서 기원한다. 교황 클레멘스 8세는 1599년 '포교성'을 설립하면서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를 처음 선보였다. 이어서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한동안 활동이 멈춰져 있던 이 기구를 포교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재가동하면서 프로파간다는 역사의 전면으로 떠오른다. 포교성성의 주 임무가 가톨릭 신앙의 확산을 촉진하고 비가톨릭 국가들에서의 가톨릭 선교 상황을 관리하는 데 있었던 만큼, 프로파간다는 곧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활동을 뜻했고, 가톨릭 선교사들과 함께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도 세계 각지로 퍼져 갔다. 여기까지만 해도 프로파간다는 종교적 의미로 통용되었을 뿐, 특별히 정치적인 뜻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프로파간다가 오늘날의 정치적 의미를 얻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부터다. 각국이 국수주의적인 프로파간다 캠페인을 펼치면서 프로파간다는 종교적 선교활동에서 정치적 주장의 선전과 선동 활동을 뜻하는 말로 쓰임새가 달라졌는데, 여기에 오명을 덧붙인 주범은 아무래도 나치의 선전상 파울 요셉 괴벨스일 것이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며 기세를 올렸던 괴벨스는 선전 선동에 악마적 재능을 발휘한다. 제3제국의 허세 다분한 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복무한 괴벨스의 프로파간다는 가톨릭교회로 하여금 더 이상 이 단어를 쓸 수 없게 했다.(포교성성은 현재 전 세계 교회의 일치와 선교 활동을 주 업무로 하는 인류복음화성으로 개칭되었다) 괴벨스에 따르면 선전은 본질상 일종의 예술이었고, 선전원은 민중 심리 예술가였다. 집단 대중의 심리 파악에 능통했던 그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전의 가장 큰 적은 '지식인주의'이다"라고 외치던 그는,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고 일갈하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과 왜곡도 가리지 않는 대담함을 드러냈다. 과연 괴벨스의 선전 선동, 즉 프로파간다는 일반적인 정보 전달이나 교육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정보 전달이 청중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라면, 선전은 일정한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그런 사실들을 '가공'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한 방울의 잉크가 깨끗한 물 한 잔을 더럽히듯, 교묘하게 편집되고 맥락 없이 삽입된 거짓은 진실을 압도한다. 또 교육이 사람들에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것이라면, 선전은 사람들에게 특정한 내용이나 시각만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정보 전달과 교육이 청중의 시야를 넓히고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데 역점을 두는 데 반해, 선전은 대롱을 통해 세상을 보듯 한정된 시야와 닫힌 마음을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오늘날 언론이나 여러 종류의 매체를 통해서 이런 선전 선동이 기승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 특정한 경제 세력이나 이윤, 또는 파당적 이익에 이끌린 나머지, 진실을 왜곡하고 단편적인 시각을 강요하는 움직임이 도처에서 목격된다. 사회의 공기(公器)여야 할 언론뿐만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이런 혼란상은 쉽게 감지된다. 그렇게 쏟아지는 프로파간다에 숱한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타격을 입는 것은 당연히 따라오는 현상이다. 시민사회가 건전한 상식과 진실에 기반을 둔 건강한 의견을 키워가자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분별의 기준을 분명히 세우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 기준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지금 내가 들은 이 정보가 내 시야를 좁히고 마음을 닫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공동선을 지향하는 넓은 시야와 열린 마음을 불러일으키는가. 이 한 번의 물음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3-24 00:05:00

[종교칼럼] 마음의 장애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TV에서 스포츠 중계를 찾는 나에게는 대부분의 방송이 빈 채널과 같았다. '이제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나니 재미있는 것이 없네.' 그러던 중 지난 주말에 패럴림픽이 개막되었다. 미디어가 패럴림픽에는 관심이 없을 거라는 미디어의 부정적 자기 예언에도 불구하고 경기 중계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나는 관심을 갖고 패럴림픽 중계 채널을 찾아 몇 경기를 보았다. 내 눈에는 경기에 출전한 모든 선수가 영웅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잘할 수가!' 한결같이 장애를 훌쩍 뛰어넘은 승리자의 모습이었다.황민규 선수가 출전한 알파인스키 남자 대회전 시각장애 경기는 선수를 앞서서 인솔하는 가이드러너를 따라 시각장애 선수가 경주하는 경기였다. 선수가 청각과 기타 감각을 이용해서 가이드러너를 따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탄했다. 장애인과 정상인이 어우러져 함께 만드는 작품이었다. 시각장애 선수는 가이드러너를 완벽하게 보고 있었다. 가이드러너의 안내가 바로 시각장애인을 보게 하는 하나님의 기적이 아닐까? 우리가 일상에서도 이렇게 기적같이 살 수는 없을까?수년 전 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장애인학교 신축 예정지 옆 아파트 주민들에게 큰절을 하는 장면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아파트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은 아파트값 상승의 장애물이란다. 장애인학교는 혐오시설이란다. 내가 달려가 절하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 사회를 대신해서 용서를 빌고 싶었다. 마음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육신의 장애인들을 괴롭히는 형국이다.아파트 앞 장애인 주차 구역에 한 정상인이 주차했다. 이것을 본 아내가 물었다. "저 사람은 왜 장애인 주차 구역에 차를 세우지?" 내가 대답했다. "아마도 마음에 장애가 있겠지."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한 정상인은 마음의 장애인이다. 장애인의 삶의 현실을 잘 보지 못하는 마음의 장애인이다. 육체적인 장애인은 자신의 삶을 힘들게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의 장애인은 타인의 삶을 힘들게 한다.소위 정상인이라는 사람들이 도리어 타인을 향해 장애물을 쌓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잘 달리는 장애인, 잘 듣는 장애인, 말 잘하는 장애인, 잘 보는 장애인이 한결같이 마음의 장애인이다.하나님은 마음의 장애인도 고치시길 원하신다. 이번 패럴림픽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많이 일어나길 바란다.사람들은 장애를 장애인과 동일시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장애인에게 투영한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장애인을 피하고 싶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병든 마음이 만들어내는 악마적 허상에 더 이상 속지 않으리라.세상의 모든 인류는 서로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다. 각자는 서로에게 타인이다. 장애인이란 그저 다른 사람들 중의 한 사람 아닌가? 장애인 중에는 뛰어나게 다른 사람도 있다. 며칠 전에는 세계적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별세했다. 향년 76세. 21세 때 몸의 근육이 위축되는 '루게릭병'을 얻었지만 그는 발군의 업적을 남겼으며, 유머러스하고 정열적인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과 달라도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타인은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경계의 대상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편견을 부수어야겠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부수자.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한 명의 타인에 불과한 것을 알자. 나 역시 다른 사람의 배려가 필요하고, 친절이 필요한 사람이다. 때로는 긴박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 역시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존재다.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타인으로서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나부터 내 마음속의 타인에게 친절히 다가가야겠다. 우리 집 반려견을 잘 다루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듯이, 자기 마음을 잘 다루어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겠다. 내 마음속의 장애인이 문제이지, 길에서 만나는 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속의 장애를 더 잘 보살피자.

2018-03-17 00:05:00

[종교칼럼] 매화가 필 때

매화는 춘삼월에 피웠다. 꽃 한 송이 피어날 때 그 꽃은 우주의 생명을 만들어 낸다. 봄은 달팽이처럼 더디고 느리다. 나무들은 서서 잠을 자고 있지만 성급한 개구리들은 연못에서 떼창으로 울었다. 바람은 어느새 겨울 산을 넘었다. 봄은 어젯밤에 보았던 별빛처럼 다시 돌아 땅 위에 복수초를 피우고 화단에 영춘화를 장식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바람은 아직 잠자는 꽃을 조심스럽게 깨우며 추위를 떨쳐내고 꽃송이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겨울나무들도 동안거를 마치고 잎 푸른 상록수들은 대부분 동상에 멍들어 있었다. 금년에도 영취산 통도사에서 혼자 수행하는 도반인 청강 스님이 카톡으로 봄을 보내왔다. 자장홍매가 만개하였다고. 작년 일기를 확인하니 2017년 2월 10일에 꽃이 만개했었다. 금년은 추위가 길어져서 20일 정도 늦게 피었다. 통도사 자장매는 수령 350여 년이나 되었다. 조사영각을 지을 때 나무도 함께 심었다. 통도사 개창주인 자장정율 스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 자장매라고 명명한 것이다. 주변의 다른 매화보다도 빨리 피고, 꽃이 곱고 짙은 향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날도 모든 사람들은 사진기를 들고 나무 주위에 몰려 있었다. 물론 봄의 전령은 영춘화가 봄볕을 먼저 맞이했다. 선종과 함께 전래되었던 매화는 항벽 스님의 오도송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티끌세상 벗어나는 일이 쉬운 일 아니다. 화두 단단히 붙잡고 애쓸지어다. 찬 기운 한 번 뼛속에 사무쳐야만, 짙은 매화향을 얻을 수 있으리요." 가까운 통도사 매화는 절경이다. 법당 앞마당에 홍매화가 만발하니까, 야위고 마른 선암사 담장의 70그루 터널 풍경들과 구례 화엄사의 추녀와 푸른 하늘이 맞닿은 듯 눈이 부시고 시려서 누구나 도취되게 하는 것이다. 매화는 그 생태적 특성이 장미과 낙엽수로 추운 겨울을 이기며 꽃을 피우는 오래 사는 나무이다. 중국의 700년 찰미과와 일본의 400년 수령의 와룡매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600년의 선암매와 정당매가 고매로 남아 있다. 범성대는 "매화나무는 천하에서 으뜸가는 꽃으로 지혜롭거나 어리석은 사람 그리고 어진 사람과 어느 사람도 매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매화를 그리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몸은 늙어서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은 듯하며, 둘째는 굵은 나무가 뒤틀려 기괴하여야 하며, 셋째는 쇠처럼 곧은 가지가 맑아야 하며, 넷째는 어린 가지는 튼튼해야 하며, 다섯째는 꽃이 기이하고 아리따워야 한다"고 하였다. 매화나무를 자르지 않는 바보와 벚나무를 자르는 바보가 있다고 한다. 매화는 적당히 잘라주어야 나무가 잘 자라고, 벚나무는 가지를 자르게 되면 그 자리가 썩어들어가기 때문에 잘 자르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설중 삼우인 매화, 동백, 수선화 가운데 매화가 가장 먼저 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3월에 오는 비는 매우(梅雨)라 한다. 5월에 오는 비는 송매우(送梅雨)이다. 매실이 노랗게 익는 6, 7월에 오는 비는 황매우(黃梅雨)라고 한다. 매화 가지에 앉은 새가 향기를 듣는 매조문향은 한 차원 높은 문향을 말하기도 한다. 봄을 기다리며 눈 내리는 날 탐매는 매화를 찾아가는 심매의 길이다. 그림으로는 조희룡의 '매화서옥도'가 있다. 그는 매화를 좋아해서 자신이 그린 병풍을 치고, 벼루에 벼루시를 새기고 먹에 매화를 사용하며, 매화시를 즐겨 낭송하였다. 목이 마르면 매화 차를 달여 마셨다. '진기'의 '매화초목도'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눈 덮인 하얀 초당에 문 열어 놓고 찾아올 친구를 기다리는 훈훈한 풍경이 묻어나는 그림이다. 봄의 산뜻함과 즐거움이 느껴진다. 오늘날, 지리산을 지나서 남쪽 섬진강의 섬진마을의 드넓은 10만 그루 매화 숲과 해남의 보해매실 농원, 그리고 칠곡 송광설중매원 등은 매실 산업과 탐매하기 좋은 매화 마을이 되었다. 선암사 매화 터널과 화엄사 원통사전 사이의 매화는 붉고 고혹적인 풍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게 하는 곳이다. 매화를 찾아가는 발길에는 조심스럽게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의 봄이 되고 싶다.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2018-03-10 00:05:00

[종교칼럼] 슬픈 시기를 지내십니까

1549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선교로 시작된 일본 가톨릭의 역사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인해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뒤이어 도쿠가와 막부가 박해를 가한 결과, 가혹한 탄압과 세금의 이중고를 견디다 못해 4만여 천주교인들이 농민 봉기를 일으켰다가 학살되고 만다. 시마바라의 난이라 불리는 이 봉기로 인해 박해는 극한으로 치닫게 되었고, 가톨릭 신앙인들은 지하로 숨어서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고자 했다. 이들을 일컬어 '가쿠레 키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당시 순교자 중의 한 사람인 '바스찬'은 7대가 지나면 신앙의 자유를 얻으리라 예언했는데, 이 예언처럼 250여 년이라는 박해의 시간을 견뎌낸 가쿠레 키리시탄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 1865년의 일이었다. 일본 당국이 개항을 단행하면서 외국인들을 위한 성당 건축을 허가하자, 파리 외방전교회의 쁘띠쟝(Bernard Thadée Petitjean) 신부는 나가사키의 언덕 위에 오우라 천주당(현재 정식 명칭은 일본 26성 순교자 천주당)을 지어서 숨어 살던 그리스도인들을 불러내고자 했다. 하지만 워낙 길고 가혹한 박해를 겪은 탓인지 찾아온 일본인들이라고는 서양식 성당을 보러온 구경꾼뿐이었고, 쁘띠쟝 신부도 낙담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던 1865년 3월 17일, 이사벨라 유리와 가족을 비롯한 십수 명의 가쿠레 키리시탄들이 천주당을 찾아왔다. 경계심을 풀지 못한 그들은 구경꾼을 가장한 채 쁘띠쟝 신부에게 다가와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먼저 성모님을 공경하는지, 사제가 결혼했는지, 끝으로 '슬픈 시기'를 지내는지 물었던 것이다. 이에 쁘띠쨩 신부가 성모님을 공경하고 사제는 결혼하지 않으며 '슬픈 시기'를 지낸다는 점을 확인해 주자, 비로소 가쿠레 키리시탄들은 '저희 마음도 신부님과 같습니다'라며 신앙을 드러내고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가톨릭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핵심 질문이 '슬픈 시기'의 준수 여부에 달려 있었던 셈이다. 가쿠레 키리시탄들이 말하는 '슬픈 시기'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서 사순 시기를 말한다. 사순 시기는 말 그대로 40일간의 성찰과 회개의 때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기 전 40년을 광야에서 떠돌며 정화의 과정을 거쳤던 히브리 사람들처럼, 그리고 40일간 광야에서 유혹과 맞서며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였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순 시기 동안 거짓으로 감출 수 없는 광야의 삶을 자처하면서 거룩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과연 가리지 않은 인간의 민낯을 보는 일은 슬픈 일이다. 허세와 거짓으로 분칠되어 있는 일상을 파헤쳐서, 그 두터운 위장막 아래에 숨어 있는 뒤틀린 욕망과 이기심의 깊은 상처를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숨기려고 허세를 부리거나 남 탓을 하고 분노하는 악습 속에 있다. 그렇게 죄와 죽음으로 한계 지어진 자신을 보는 일은 인간에게 슬픈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순 시기를 슬픈 시기로 지내는 참뜻은 단지 자기 연민과 비관의 악순환에 빠져드는 데 있지 않다. 천주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인간의 죄와 죽음을 대신 떠맡는 것으로 이해했고, 따라서 스승의 모범을 따라 세상의 죄와 고통을 대면하는 것을 제자 된 도리로 삼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죄와 고통과 죽음은 분노와 책임 전가의 계기가 아니라 연민과 연대의 계기였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고 연민하며 함께 슬퍼할 줄 아는 것은 천주교식으로 말하자면 빠스카의 신비를 삶 속에서 체험하는 첫 단계이다. 그리스도인은 남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슬퍼할 줄 알고, 남을 위해 대신 울어줌으로써 구원의 희망에로 나아간다. 이웃의 고통에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면, 구원은 요원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런 슬픈 시기를 지내고 있는가.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3-03 00:05:04

[종교칼럼] 사랑으로 기억하자!

평창동계올림픽대회가 내일이면 막을 내린다. 올림픽 때문에 몇 년 만에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에는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전력 질주하고 도전하고 경쟁하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게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금메달리스트에게 박수를 보내고, 은메달 동메달을 따고 해맑게 미소 짓는 아름다운 모습에 더 큰 환호를 보낸다. 여자 컬링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과 겨루었던 덴마크 대표팀이 7엔드가 끝나고 9대3 스코어에서 '굿 게임'을 선언했다. 한국이 기권승을 거두었다. 예선전을 1위로 끝낸 한국 대표팀에서는 당연히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카메라가 지나가면서 보여진 한 장면이 나를 감동케 했다. 덴마크 선수단 4명 모두의 표정이 일반적인 패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오늘 게임 참 좋았어. 한국선수들 정말 대단해. 우리는 졌지만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해.' 이런 표정이었다. 모든 시선과 환호가 한국팀에 집중되는 순간, 박탈감과 허탈감을 느껴야 당연할 것 같은 순간, 이들은 조금도 아쉬움이 없는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덴마크 여자 컬링 대표들이 나에게 아름다운 평창동계올림픽 기억을 선물해 주었다. 우연히 올림픽 기간 중에 설이 있었다. 많은 가정에서 온 가족이 함께 올림픽을 시청했다고 한다. 정치가들이 쟁점화되기를 바랐던 정치적 이슈조차 올림픽의 열기에 힘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설도 지나갔고, 올림픽도 내일이면 끝난다. 가족의 만남도 올림픽의 명장면도 모두 기억의 창고로 들어간다. 기억은 과거의 현재화다. 사람은 기억을 통해서 과거를 새롭게 한다. 과거의 사건은 바꿀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의 기억은 바꿀 수 있다.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기억은 없다. 기억에 색깔을 칠하고 배경음악을 넣는 일은 현재의 몫이다. 설과 추석 명절에 사람들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차례를 지내고, 추모예식을 거행한다. 부모님을 새롭게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기억하기 위해서 기념한다. 기념을 하면 기억이 새로워진다.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부모님과의 섭섭한 기억보다 고마운 기억이 더 많아진다. 웬일인지 나는 아버지께 섭섭한 기억이 많았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도 나는 극단적인 가난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하고 싶었던 일 중에서 상처가 남을 정도로 하지 못한 일도 없다. 모두 아버지 덕이 아니겠는가? 지금 내 나이와 같은 때의 부모님의 모습은 나보다 훨씬 성숙한 분이었다. 같은 부모님인데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부모님을 어떻게 기억하는가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우리가 축복을 기억하면 축복이 현재화된다. 우리가 감사한 일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지속적인 감사의 현재화다. 그래서 행복한 기억은 큰 축복이다. 곧 다가올 3'1절 99주년을 잘 기억하고 기념하자. 기념은 어떻게 하나? 우리는 기념비를 세우고, 예식을 거행하고, 사건을 재연한다. 축제와 연극을 한다. 그 속에는 노래, 춤, 증언, 선언이 있다. 이와 같이 기념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현재화한다. 사랑으로 과거를 기억하자. 사랑의 기억이 미래를 연다. 우리의 상처가 너무 깊으면 우리가 치유받기 전에는 현실과 미래를 살 수 없다.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이 아이는 미지의 세계로 탐험에 나설 수 있다. 충분한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으면 그 사랑이 충족될 때까지 아이는 불안해서 엄마의 품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사랑과 행복을 경험한 사람이 미래를 믿고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사랑과 행복의 기억이 필요하다. 사랑과 행복의 기억이 미래로 나갈 수 있는 동력을 준다. 평창동계올림픽대회도 부모님도 3'1운동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자. 인류사랑, 부모사랑, 민족사랑의 모습으로 기억하자.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2-24 00:05:00

각정 스님·청련암 암주

[종교칼럼] 겨울 세한도

겨울 북서풍 한파가 매섭게 불었다. 온대성 식물들이 추운 겨울을 나기에는 강수량도 부족하고 건조하다. 이 혹독한 추위를 이기며 나무들은 잘 견디고 있었다. 자연은 사람과 솔기 없이 이어져 있다. 자연 정원이 사계절 아름다운 것은 자연성이 인공의 시간을 이겨낸 결과이다. 아침, 조성진의 드뷔시 피아노곡을 듣는다. 방안 가득한 여리면서도 섬세한 색채를 간직한 조용한 건반 두들기는 소리들. 숲속을 걷는 속도로 연주될 때 매우 느리게 안단테로 이어졌다. 드뷔시는 프랑스 생 제르망 앙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프랑스풍이 아니다. 오히려 이질적인 '가믈란' 음악에 심취했었고, 서양미술과 다른 모네와 여백의 미를 중시하는 동양화를 좋아했다. 그는 피아노 시인이었다. 모네가 사랑한 '수련'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대며 그 아우라를 흡수하려 했다. 연못에 수련이 피면 꽃잎에 부서지는 햇살을 포착하며 피아노 건반 위에 그대로 옮겨서 연주했다고 조성진은 말한다. 그의 음반은 시가 되었고 상상력의 정원에 연꽃을 피워 올린다. 차분한 아침 햇살과 오후의 따뜻한 햇볕은 연극 무대 조명만큼 경이롭기만 하다. 겨울에는 꽃을 보기 어렵고 그나마도 색채감이 부족한 계절이다. 그렇다고 아주 색채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갈색의 수피와 키 큰 상록수들은 겨울 정원의 골격을 세우고 감각적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겨울 정원에는 꽃이 피는 찰나와 꽃가루를 모으는 꿀벌들의 부지런함이 없지만, 아침 햇살에 투영되는 창호지의 불투명한 따뜻함이 영혼의 심지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봄의 정원이 생명이 움트게 하는 축복이라면, 여름은 혈기 방장한 청춘의 에너지가 되리라. 가을의 그것들은 단풍의 컬러와 원숙함의 여유가 있다. 겨울 추위는 추위대로 내쉬는 숨길에 하얀 김이 서리고 나무는 나무끼리 부딪치는 그 몸짓과 소리들에 모든 것이 차갑게 얼어버렸지만 생명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안으로 치열하게 봄이 오는 생명의 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안으로 갈무리하며 고요하고 깊은 호흡으로 대지와 함께 숨 쉬고 있다. 산책로를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면 붉은 백당나무 열매와 망개 열매가 푸른 이끼 사이에서 그 붉음을 간직하고 있다. 어쩌다 쑥부쟁이 마른 꽃대 사이에서 먹이를 찾다가 추운 몸을 내보이며 고라니가 후다닥 눈앞에서 도망가기도 한다. 겨울 정원은 어떤 계절보다 깨끗하고 아름답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봄과 여름은 꽃으로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무채색으로 즐기는 겨울의 정원은 단순히 겨울 정원이 아니다. 겨울 정원은 겨울의 풍경화이다. 이미 공산 무인도를 즐기고 세한도를 완성시켰다. 사철 푸른 호랑이가시나 태산목 같은 상록수의 그 푸르름을 겨울에도 감상할 수가 있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길로 들어갈 때 소나무와 바람은 풍입송(風入頌)을 악보 없이 연주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 혼자서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보라. 물론 우리는 환경의 차이로 영국의 윈터가든과 같은 겨울 정원을 연출하기 어렵지만 가까운 대구수목원이나 동명의 경상북도 지정 1호 민간 정원이 20년의 노력으로 최고의 정원이 되었다. 금년 겨울에는 하루 두 끼만 먹는다. 오후에는 차를 마시거나 손님이 오면 시늉만 내는 것이다. 마음도 한가하고 몸이 가벼워진다. 옛 선인들이 "말이 적고 일이 없어서 배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고 하였다. 홀로 있는 사람은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집을 며칠 비웠더니 우물의 배관이 꽁꽁 얼어 버렸다. 폭설이 내려서 길이 없어지고 폭우에 귀가 먹먹해졌다면, 차라리 한 사나흘 고립되었다면 오히려 반가웠으리. 며칠 큰절에서 물을 길어다 차를 마시고 있다. 일상적인 사소한 일은 불편함과 부족함에서 배우기도 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고마움과 기쁨을 누릴 줄 안다면 그곳에도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홀로 있을 때 더 진리와 멀어질 수 있다고 한다. 사는 일이 즐거워야 한다. 행복한 삶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간다.

2018-02-10 00:05:00

[종교칼럼] 더 빠르게 더 힘차게 더 높이

1840년 프랑스 알프스 끝자락의 르 뚜베에서 태어난 앙리 디동(Henry Didon)은 론도라는 소도시의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소신학교는 신학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공부하는 초중등 교육과정을 말한다. 한창 혈기 왕성한 남학생들이 모여 사는 기숙학교이다 보니 여러 가지 운동 경기가 곧잘 열렸는데, 그중에서도 학생들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론도 올림픽'이었다. 서기 393년을 끝으로 옛 헬레니즘 문화의 결정체였던 고대 올림픽은 막을 내렸지만, 다툼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공통의 가치를 위해 일시적이나마 화합을 도모했던 올림픽의 이상은 군데군데 그 이름을 빌려주고 있었고, 론도 올림픽도 그중의 하나였다. 아무튼 디동은 열다섯 살 때 이 대회에 나가서 삼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소신학교에서 건강한 신체와 명민한 지성을 갈고닦아 로마의 교황청립 안젤리쿰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무사히 철학과 신학 과정을 마친 끝에 사제 서품을 받고 프랑스로 돌아온 디동 신부는 당대의 설교가로 이름을 떨치면서 신학자요 교육자로서 활동하게 된다. 강건한 신체와 격정적인 음성, 그리고 고전 학문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춘, 그야말로 지덕체를 겸비한 교육자였던 디동 신부는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체육 활동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운동 경기를 교육과정에 도입했다. 그리하여 디동 신부는 1891년 아퀘이(Arqueil)에서 청소년 운동대회를 열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명설교가답게 인상적인 권고로 장내를 뒤흔든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citius, fortius, altius)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행사를 후원했던 디동 신부의 친구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이 말을 기억했다가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첫 회의에서 올림픽의 모토로 제시하여 이후로 올림픽 하면 떠올리는 구호가 되었다. 그런데 디동 신부가 제시했던 모토가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서 살짝 변형되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처음 디동 신부가 제시했던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더 높이'가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로 순서를 바꾼 것이다. 단지 단어 순서의 차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다르다. 디동 신부가 '더 높이'를 강조하면서 구호의 마지막에 놓은 뜻은, 신체를 단련하고 정정당당하게 겨루면서 화합하는 운동 경기를 통해 더 높은 이상에 다다르자는 다분히 윤리적인 권고에 있었다. 반면 쿠베르탱 남작은 '더 강하게(힘차게)'를 강조하면서 올림픽이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마당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으리만치 좋은 뜻이 담겨 있지만, 아무래도 천주교 신부 입장에서는 디동 신부의 모토가 좀 더 솔깃하다. 특히 이번 평창올림픽에 걸린 시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칼럼을 쓰는 오늘도 CNN 뉴스는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주한 미대사로 내정되었던 빅터 차라는 분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가 내정 철회되었다는 해설이 뒤따른다. 미 대선 기간에 벌어졌던 '러시아 스캔들'로 특검이 진행되고 있는 워싱턴 정가에서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일종의 충격 요법으로 대북 강경책이 모색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을 평화를 갈구하는 마지막 기회로 삼으려는 시도는 가벼이 폄훼될 것이 아니다. 대결과 갈등을 넘어서 평화를 희구하는 세계인의 대축제, 평창올림픽이 그런 기대를 채울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더 빨리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더 강하게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이라는 더 높은 이상에 도달하는 기회가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하다.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8-02-03 00:05:00

[종교칼럼] 인사하며 삽시다!

각종 학교의 졸업식이 다가온다.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번의 졸업을 했지만 졸업식 때 교장 선생님과 총장님의 훈사가 어떤 내용인지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도 더 넘게 지난 딸아이의 중학교 졸업식 때 하신 교장 선생님의 훈사 주제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주제는 '인사 잘 해라' 였다. 교장 선생님은 별다른 예화도 없이 인사 잘 하라는 주제로 30분의 지루한 화법을 이어갔다. 어린 졸업생들은 힘들게 훈사 시간을 버티어 냈다. 성인이 된 나로서는 '인사만 잘 해도 밥은 먹고 산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지만, 이제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그 주제가 그토록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택시 이용객이 택시를 타면서 '어서 오세요. 어디 가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이 세 마디 인사를 정확히 듣는 것은 기본적인 일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까지 포함하여 네 마디가 된다면 더 좋겠다. 나는 대구에서 10년을 살면서 이 세 마디 인사를 하는 기사를 만난 적이 드물다. 나만의 불행일까? 내가 택시를 탔을 때의 상황을 시나리오로 적으면 이렇다. (택시 문 열고 손님 탐) 기사: (침묵). 손님: 안녕하세요. 00동 00아파트 가주세요. 기사: (침묵). (아파트 도착) 손님: 감사합니다. (손으로 요금 건냄) 기사: (침묵하며 자동기계처럼 거스름돈 내줌) 손님: (하차 후 차 문 닫음). 택시 기사들의 너무나 한결같은 반응에 어느 날은 택시 탑승 후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 침묵했다. 자동기계처럼 출발하던 택시가 속도를 늦추더니 짜증과 공격성이 섞인 한마디가 투포환 경기의 포환처럼 묵직하게 뒷좌석으로 날아온다. "손님, 어디 간다고 말을 해야지요." '어디 가는지 자기가 먼저 물어보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두려움 때문에 황급히 꼬리를 내렸다. 기사와의 기 싸움에서 내가 졌다. 하루는 일정도 바쁘고 마음도 바쁜 날이었다. 택시 기사가 인사를 하건 말건 "동대구역 가주세요" 한마디 후 일에 골몰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올 무렵 "박병욱 목사님이시죠? 목소리가 그런 거 같아서, 제가 목사님 방송을 잘 듣고 있습니다". 깜짝 놀랐다. '그래, 지금까지 다른 기사들도 다 나를 알아보고 내 행동을 관찰했는지도 모르겠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불편한 기색이 백미러를 통해 비추어지지는 않았을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기사가 진상 손님을 한 번 만나고 나면 핸들 잡기도 싫을 거야. 기사가 친절한 인사보다도 목적지에 잘 데려다 주기만 해도 소명을 이룬 것 아닌가?' '여러 인생을 위로하며 동행하는 목사나 먼 길을 인도해주는 택시 기사나 여러 사람의 길동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상황도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 현실이 다르게 흘러가지 않는가? 같은 대상도 관계 맺기에 따라 다른 관계가 되지 않는가?' 두서없는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실명 공개의 힘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가 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열심히 인사하며 감사하게 택시를 이용한다. 기사들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인사만 잘 해도 밥은 먹고 사는데, 인사 못 해도 밥을 잘 먹으면 좋겠다. 그래, 어차피 만남의 끈을 가꾸려면 굳이 남에게 기댈 이유가 없지 않은가? 너와 나의 만남이라면, 비록 돈을 주고받을지라도, 잠시라도 한 차를 타고 가는 길동무라면 반가운 만남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각자가 참 대단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사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고, 침묵을 통해서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다. 행복한 만남의 끈을 내가 먼저 가꾸자. 일상의 사사로운 만남 속에서도 축복이 넘치면 좋겠다. 행복의 아우라, 미소의 아우라를 비추며 살자. 칼럼의 끝에 추신을 달고 싶다. 졸업생들, 택시 기사들뿐만 아니라, 내가 자주 가는 병원의 김 박사, 자주 만나는 최 사장에게도 꼭 이 말을 해야겠다. 우리 인사나 제대로 하면서 삽시다.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2018-01-27 00:05:00

[종교칼럼] 조주의 신발

햇살 천지였다. 노랗고 하얀 아침 햇살이 마침내 차실 창호지 깊숙이 닿고 있었다. 아침 햇살은 보석처럼 눈이 부시고 이마와 찻잔 위에 쏟아져 내렸다. 눈이 밝아지고 방 안이 따뜻해졌다. 시계 소리는 이어서 아홉 번을 쳤다. 투명한 창호지를 사이에 두고 바깥에서는 추운 고라니가 울었다. 그날그날 햇볕이 조금씩 천천히 길어지고 있다. 종문(宗門)에는 차 향기가 가득했다.조주 스님은 120세까지 사신 고불이다. 남전 선사의 제자가 돼 스승을 모시고 안목을 갖춘 선사의 정법안장을 이었다. 남전 선사의 회상에 700여 명의 많은 대중들이 모여서 정진하고 있었다. 선원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어 동서 양쪽의 선원 스님들이 서로 자기네 선원 고양이라고 주장하며 시비로 떠들썩했다. 그때 남전 선사가 운집종을 치고 대중들을 강당에 모이게 했다. 선사께서 시자에게 "고양이와 칼을 가져오라" 하니 시자가 그것을 법상 위에 올려놓았다. 남전 선사께서 고양이를 치켜들었다. "이 고양이로 인해 시비가 분분하니 오늘 그간의 공부를 점검하겠으니 한마디 말해보라. 제대로 말하는 자가 있으면 고양이를 살려 두겠거니와 만약 이르지 못한다면 단칼에 고양이를 두 동강 내버리겠다. 속히 일러보라!" 이렇게 세 번을 재촉했다.아무도 벙어리가 되어 말하는 자가 없었다. 700명의 대중은 그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남전 선사는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버렸다. 그리고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다.방장실에서 쉬고 있을 때 출타 중이던 조주 스님이 돌아와서 인사를 올렸다. 남전 선사께서 오늘 일을 들어서 말씀하셨다."조주 너라면 무엇이라 답하겠는가?"조주 스님은 곧바로 일어나 벗었던 짚신을 머리에 이고 방장실을 총총히 나가 버렸다. 남전 선사는 그 광경을 보고 "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렸을 것을…"하고 혼자 중얼거렸다.이는 이전에 달마 대사가 신발 한 짝을 들고 웅이산으로 돌아가라고 일갈하셨다. 절대의 순간에서 처음부터 논리가 봉쇄되어 애초부터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뛰어들어 말하는 것이 선의 본질이 된다.조주 스님은 120세를 살았다. 누구나 관음원에 찾아오면 차를 마시게(喫茶去) 하고 차를 권했다. 80세가 되어서 비로소 행각을 그치고 처음으로 관음원 주지를 하시며 40년 동안 신도 집에 도움의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았다.스승 남전 선사의 '평상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씀을 쉬운 말과 비유로 중생을 제도하셨다. 스스로에게 경계하시길"일곱 살 먹은 어린 사미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세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조주 스님은 친절하셨다.서양 기자가 달라이라마에게 물었다.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나의 종교는 친절(Kindness)입니다."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차 한 잔에 무량락이 있으니 서로 눈을 마주하며 만복! 만복! 하고 축원했다. 영설 차인은 차회 일기를 21년째 기록하고 있다. 흥이 나면 동다송 긴 문장 전문을 암송하기도 한다. 모든 일상의 하나하나가 일상 속에서 공감하며 생활이 되며 수행이 되는 것이다. 차인의 마음에는 하찮고 소소한 기억이 모두 기록되고 그 마음에는 아름다움의 정토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16일 내가 좋아했던 이승훈 교수가 작고했다. 그는 자유로운 아방가르드 시인이었다. 문득 이 교수의 시가 생각이 나 옮겨 본다."식탁엔 마늘 파 하얀 마늘 푸른 파가 나를 부르네,천성이 아둔한 내가 마늘 먹는 늦은 봄마을 앞엔 사람 하나 없고 지나가는 바람이 묻는다.어디서 오시오?그대 떠난 봄 하얀 마늘 먹으며 식당 구석 작은 방에 누워쉬고 싶어라.문득 창문 넘어온 햇살이 말하네,너를 만나려고 여기까지 왔어."-이승훈의 봄날 오후

2018-01-20 00:05:00

[종교칼럼] 큰 손해가 아니라면

지난 11월,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준비하는 출장을 가서 겪은 일이다. 캄보디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150만원쯤 되는 극빈국이다. 대중교통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가까운 거리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차로 다니고 먼 거리는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굴러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차들이다.30℃가 넘는 더위 속에 긴 회의를 하고 진료 예정지들을 답사하다가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불렀다. 두 시간쯤 걸리는 거리를 25달러에 흥정하고 길을 가다가 기사 아저씨가 잠시 차를 세우고 급한 일을 해결하는 참이었다. 순간 지나가던 화물차가 리어뷰 미러를 들이받고 지나간다. 갑자기 거울이 논바닥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급히 따라붙었다. 맹렬한 추격전 끝에 가해차량을 붙잡았는데, '여기서 동남아 킥복싱을 실황으로 보겠구나' 했던 기대와는 달리 두 사람이 조곤조곤 대화를 하더니 30달러를 받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되었다.오는 길에 30달러로 수리가 되는지 물었다. 40달러는 줘야 한단다. 하루 일해서 10달러를 벌기가 힘든데 홀랑 날린 셈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데 기사 아저씨 대답이 이랬다. "보다시피 나나 저 기사나 다 가난하다. 없는 처지에 다 물어주고 나면 화물차 기사도 밥 먹고 살기 힘드니 이쯤에서 그만 하는 것이 옳다."결국 공항에서 택시비 25달러에 10달러를 얹었다. 사고가 나긴 했어도 이 정도면 손해는 안 보실 거라고 드렸더니 아저씨 입이 귀에 걸린다. 서로 땡큐를 몇 번씩 주고받다가 왔는데 여태 그 아저씨 말씀이 여운으로 남는다. 나나 저 사람이나 힘들게 사는 처지에 어떻게 다 받겠느냐는 말씀 말이다.캄보디아 국민소득이 1천500달러를 좀 넘는 수준인 데 비해서 우리나라 국민 소득은 3만달러에 이른다. 단순히 비교해도 스무 배가 넘는 차이다. 전 세계 국가 242개 중에서 우리 경제규모가 대충 11위쯤 되니까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충분히 이야기할 만하다.그런데 우리는 저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보다 스무 배쯤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걸까. 내가 받을 것 다 받으면 저 사람은 어떻게 살겠느냐고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가. 조금도 피해를 봐서는 안 되고 한 푼도 손해를 봐서는 안 되겠다는 강퍅한 마음을 우리는 칼날처럼 갈아가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그렇게 준비했던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마치고 이제 대구로 가는 버스 안이다. 다섯 개 진료과목 열세 명의 스태프들과 스물한 명의 의대생, 간호대생으로 구성된 봉사단원들이 캄보디아의 시골 마을을 순회하는 일정은 녹록지 않았다. 삼복더위 못지않은 날씨 속에 흙길을 달렸다. 만성 질환을 수년 간 앓으면서도 의사를 만나보지 못한 노인부터, 일자리를 찾아 이웃 나라로 떠난 부모를 그리워하며 조손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이들을 만나야 했다. 병원 봉사 동아리에서 바자회로 모아주신 성금을 아껴 현지 진료소에 승합차도 한 대 기증할 수 있었다.작지만 보람 있는 성과와 함께 귀갓길에 오른 단원들의 얼굴을 살핀다. 피로한 기색은 감출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얼굴이다. 극한의 경쟁사회에서는 맛보기 힘들었던 내적인 충만함이 엿보인다. 긴장을 늦추면 따라 잡히지 않을까 조급해하던 경쟁의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난 결과가 그러하다. 큰 손해가 아니라면, 살면서 겪는 손해와 피해에 조금 덜 예민해져도 되지 않겠는가. 극빈의 사회에서도 배려와 역지사지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2018-01-13 0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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