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경교수의 프랑스 수도원 탐방기]⑦세낭크 수도원(Sénanque Abbey): 그리스도의 신비를 품은 수도원

세낭크수도원 위치 세낭크수도원 위치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동남부 프로방스 지방을 향해 떠나야 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사이 콩크가 가슴 깊이 내려와 있었나보다. 하지만 순례자는 떠나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콩크에서 세낭크까지 한 걸음에 달려갈 수는 없었다. 길이 멀기도 했지만 길목에 자리잡은 몽펠리에와 아를, 아비뇽, 엑상프로방스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를에서 하루를 머무른 다음 아비뇽을 들렀다 가기로 했다. 프로방스는 한국인들이 동경하는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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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색의 신비를 찾아 이곳에 온다. 이곳에선 7월이 되면 라벤더가 익는다. 선명한 보라색 라벤더는 프로방스 발렝솔(Valensole) 평원을 수놓고,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색에 취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답고 작은 마을들, 그곳의 맑은 공기와 온화한 빛은 예술의 혼을 불러일으켰다. 이곳은 빈센트 반 고흐와 폴 세잔, 마르크 샤갈이 사랑한 곳이다. 피카소는 생의 마지막 시간을 고향인 말라가가 아니라 이곳에서 보냈다. 우리는 아를(Arles)의 구석구석을 돌면서 반 고흐를 만났다.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테라스'의 장소인, 포룸 광장의 모퉁이 카페에 앉아 그가 보낸 아를에서의 시간을 반추해보았다. 그는 왜 아를에 왔을까? "나는 다른 빛을 보고 싶었다. 맑은 하늘 아래서는 자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조용하게 느끼며 묘사하고 그려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남쪽으로 왔다."고 고흐는 말했다. 우리는 자유와 빛을 찾아 어디로 가야 할까?

아를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국도로 내려서자 곧 시골길이 나타났다. 길가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동차는 작은 평원을 지나 알프스 서쪽 고지대를 향해 달렸다. 앞에서 다른 차가 나타날까 두려울 정도로 길은 매우 좁았다. 높은 산 정상을 넘어 곧장 계곡을 향해 내려가자 깊은 계곡 속에 아담한 세낭크 수도원(Sénanque Abbey)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 앉아 있었다. 주차장엔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로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이곳엔 수도원과 계곡, 그 속에 활짝 핀 라벤더, 인간이 빚은 정성과 신이 내린 축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여름이면 세낭크수도원 주변은 온통 보라색 라벤더로 물들인다.라벤더는 거친 모래와 돌밭에서 자라지만 맑은 향기로 우리를 치료한다,수도사들은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수행을 통해 세상을 밝힌다. 여름이면 세낭크수도원 주변은 온통 보라색 라벤더로 물들인다.라벤더는 거친 모래와 돌밭에서 자라지만 맑은 향기로 우리를 치료한다,수도사들은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수행을 통해 세상을 밝힌다.

세낭크 수도원은 1148년 7월 9일 피에르 드 마장(Pierre de Mazan)이 12명의 수도사들과 함께 이 계곡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수도원 건물은 까바이용(Cavaillon)의 주교 알팡(Alfant)의 지원과 시미안느(Simiane)와 고르드(Gordes) 영주들의 보호 하에 60여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1178년에 교회당이 건축되었고, 13세기의 시작과 함께 세낭크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세낭크는 프로방스 전 지역에 걸쳐 토지와 목장, 숲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몬살리에(Montsalier)에 성(Castle)을 소유했고, 다른 지역에도 5개의 숙박소(Hospices)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1544년 종교전쟁 기간에는 내분을 겪었고, 급기야 프랑스 혁명으로 수도원은 국가에 팔리고 말았다. 수차례에 걸친 복원과 철수를 거듭하던 세낭크는 1988년 시토수도회의 전통을 회복하면서 정상적인 수도생활을 하게 되었다.

세낭크 수도원의 교회당은 단순함과 검소함이 매력이다.달랑 나무 십자가 하나가 제대 곁에 서 있다. 세낭크 수도원의 교회당은 단순함과 검소함이 매력이다.달랑 나무 십자가 하나가 제대 곁에 서 있다.

시토수도사들은 왜 가장 척박한 계곡에 수도원을 세웠을까? 그 이유는 세낭크라는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세낭크의 역사와 고고학에 정통한 수도원장 무안(Moyne)은 세낭크(Senanque)란 말은 라틴어 'sine aqua'(물 없이) 혹은 'sane aqua'(건강한 물)에서 나왔고, 켈틱(Celtic) 문장 'Sagn-anc'(늪가의 긴 길)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시토수도회를 설립하는 데 크게 공헌한 베르나르두스(Bernardus)는 "계곡의 바닥은 가장 습한 땅을 품고 있고, 그곳이 덕을 계발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축축한 습기가 배어 있는 척박한 땅은 수도사들이 겸손을 배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척박한 땅이 엄격하고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시토수도사들의 묵상 공간이 된 것이다.

한여름 프로방스는 뜨거웠다. 햇볕을 가리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고역이었다. 수도원 내의 방문객 숙소는 교회당 출입구와 마주보고 있었다. 연로한 수도사가 맑은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하지만 영어를 할 수 있는 수도사가 없었다. 봉사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숙소를 안내받았다. 2층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예배당으로 향했다. 1층 현관 앞에서 왜소한 동양인과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목례만 하고 지나갔다. 그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던 중국인 신부였다. 며칠 함께 지내면서 친해졌지만 깊은 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파리 근교의 중학교 영어선생인 카터린(Catherine)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녀는 우리가 왜 이곳에 왔으며, 얼마나 머무는지를 물었다. 한국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던 그녀는 사흘만 머물 것이라는 말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녀는 매년 여름 이곳에 와서 두 주씩 봉사를 하고 돌아간다고 했다. 여행을 위한 방문이나 수도원 체험을 위한 체류가 아니라 봉사를 위해 이곳을 찾는다는 그녀의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자신을 내줘 본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여름이면 세낭크수도원 주변은 온통 보라색 라벤더로 물들인다.라벤더는 거친 모래와 돌밭에서 자라지만 맑은 향기로 우리를 치료한다,수도사들은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수행을 통해 세상을 밝힌다. 여름이면 세낭크수도원 주변은 온통 보라색 라벤더로 물들인다.라벤더는 거친 모래와 돌밭에서 자라지만 맑은 향기로 우리를 치료한다,수도사들은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수행을 통해 세상을 밝힌다.

여름이면 세낭크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중세의 정취가 가득한 건축물과 수도사들의 손길이 묻어나는 라벤더가 사람들을 부른다. 라벤더 꽃은 시시각각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아침엔 이슬을 머금은 연하고 청초한 보라색 라벤더, 갓 떠오른 태양을 받아내는 연보라색 라벤더, 그리고 오후의 강렬한 태양에 익어가는 라벤더. 나는 수도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라벤더를 묵상했다. 라벤더는 건조한 모래 땅이나 척박한 돌 틈에서 잘 자란다. 이곳은 온통 석회암과 거친 모래뿐이다. 라벤더와 수도사는 무척 닮았다. 라벤더의 라틴어 어원 'lavo'는 '깨끗하다'는 뜻이다. 라벤더는 거친 모래와 돌밭에서 자라지만 맑은 향기로 우리를 치료한다. 수도사들은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수행을 통해 세상을 밝힌다. 그뿐만 아니라 라벤더의 보라색은 하늘과 땅을 중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보라색의 의미를 가장 순수하게 구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이다. 사순절의 보라색 망토가 그것을 대변한다. 세낭크의 수도사들은 라벤더를 심고 꽃을 가꾸면서 무엇을 상상했겠는가?

세낭크 수도원 세낭크 수도원

시토수도회는 베네딕트 규칙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실천할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엄격한 수도공동체다. 세낭크 수도사들은 예배와 렉시오 디비나, 노동을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성무일도를 통해 하루하루를 성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수도사들이 1988년 레렝(Lerins) 수도원에서 이곳으로 온 것은 시토회 선배 수도사들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세낭크의 건물은 그 자체로 시토회의 정신을 드러낸다. 교회당과 회랑, 챕터 하우스, 식당 그 어디서도 화려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단순함과 검소함이 오히려 매력이었다. 로마네스크형의 교회당은 차분하고 평온했다. 제대 맞은편 벽 어디에도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전면의 돌벽 자체가 하나의 장식이었다. 달랑 나무 십자가 하나가 제대 곁에 서 있을 뿐이었다.

세낭크 수도원 세낭크 수도원

저녁기도(Vespers) 시간엔 30여명의 방문객이 함께했다. 수도사들이 올리는 시편송과 찬송이 교회당을 감싸고 있었다. 단지 다섯 분의 수도사가 드리는 예배였지만, 찬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성경을 낭독하는 목소리엔 맑은 영성과 오랜 경륜이 묻어나고 있었다. 솔렘의 예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었던 것에 비한다면, 종종 연세든 수도사가 전례집을 넘기는 손동작은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성경을 찾는 어색한 손동작과 큰 돋보기를 더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세낭크 수도원 회랑.단순하면서도 검소함이 매력적이다. 세낭크 수도원 회랑.단순하면서도 검소함이 매력적이다.

예배시간은 짧았지만, 수도사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무릎을 꿇거나 좌대에 걸터앉은 수도사들의 침묵기도가 이어졌다. 청중들도 떠날 줄을 몰랐다. 교회당엔 짙은 어둠이 내

유재경 교수 유재경 교수

렸고, 침묵과 기도가 교차하고 있었다. 우리도 수도사들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시간은 채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딱딱한 나무판자가 무릎에 심한 고통을 주었다. 수도사들은 달랐다. 30분, 40분이 지나도록 무릎을 꿇은 자세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수도사가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수도사가 된 느낌이었다. 수도사들의 기도에서 프로방스의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의 말이 떠올랐다. "풍경은 나의 마음 속에서 인간적인 것이 되고, 생각하며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나는 나의 그림과 일체가 되고 우리는 무지개빛의 혼돈 속에서 하나가 된다."

글·사진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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