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석탄 캐시던 광부님들 감사했습니다

월동준비의 우선 순위였던 연탄의 추억
석탄광부들의 노고 잊을 수 없어

1981년 11월 22일 대구경북연료공업협동조합이 연탄 사용 가정주부 50명과 함께 강원도 태백시 장성광업소를 찾아 찍었던 사진. 독자 이기호 씨 제공 1981년 11월 22일 대구경북연료공업협동조합이 연탄 사용 가정주부 50명과 함께 강원도 태백시 장성광업소를 찾아 찍었던 사진. 독자 이기호 씨 제공

대구 수성구에 살고 있는 이기호(67) 씨의 타임캡슐이다. 대구경북연료공업협동조합이 연탄 사용 가정주부 50명과 함께 1981년 11월 22일 강원도 태백시 장성광업소를 찾아 찍었던 사진이다. 다음은 이 씨가 사진과 함께 전해준 글이다.

'장성광업소는 국내 석탄광산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었다. 1980년대 후반까지 탄광은 최고 호황기를 누렸다. 탄광촌에는 개도 1만 원 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사택 제공과 학자금 지원 등 복지 혜택도 괜찮았다. 특히 급여가 많은 대형 탄광은 대기업 못지않은 선망의 직장이었다. 대통령도 취임하면 탄광을 가장 먼저 찾았다.

석탄이 연료로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초부터다. 가정용 연료인 연탄으로 제작, 사용된 것이었다.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대표적인 겨울철 연료였다. 그 시절의 연탄은 취사, 난방의 핵심 연료였다. 연탄불이 꺼지면 모든 작업이 중단됐다. 그야말로 야단이 났다. 그랬기에 밤잠을 설치며 새벽에 일어나 연탄을 갈아야 하는 건 예사였다.

월동 준비도 연탄 확보가 우선이었다. 누구나 집에 연탄을 쟁여놓고 쓰는 건 아니었다. 퇴근길 새끼줄에 연탄을 한두 장씩 꿰어 귀가하는 가장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추운 겨울 하루 두 장이면 온 방을 따뜻하게 감싸주었기에 당장 며칠을 날 수 있는 몇 장의 연탄으로도 마음은 부자였다.

날이 차가워지면서 산업역군으로 불리던 국내 석탄광부들이 떠올랐다. 상상할 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피땀을 흘리며 석탄을 캐냈던 광부 여러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타임캡슐'은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진, 역사가 있는 사진 등 소재에 제한이 없습니다. 사연이,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라면 어떤 사진이든 좋습니다. 짧은 사진 소개와 함께 사진(파일), 연락처를 본지 특집기획부(dokja@imaeil.com)로 보내주시면 채택해 지면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소개는 언제쯤, 어디쯤에서, 누군가가, 무얼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채택되신 분들께는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사진 원본은 돌려드립니다. 문의=특집기획부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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