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수의 길] <5> '젊은 보수'로 체질 개선

현 상태론 보수정당에서 ‘40대 기수’ 못 내놔
낙하산 공천·대선후보 국민경선은 당원사기 ↓
풀뿌리 일꾼·의원 보좌진·사무처 당직자가 대안

지난해 7월 경북 영천에서 열린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당원 교육 현장. 지난해 7월 경북 영천에서 열린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당원 교육 현장.
지난해 6월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경북도당이 주최하는 '2019 경북여성정치아카데미' 회원들이 경북도의회와 경북도청을 방문했다. 지난해 6월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경북도당이 주최하는 '2019 경북여성정치아카데미' 회원들이 경북도의회와 경북도청을 방문했다.

한국의 보수정당이 제20대 총선에서 참패하고 수렁에서 허우적대던 지난 4월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에게 미래통합당에 대한 총체적인 수술이 맡겨졌다.

김 이사장은 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는 분위기 속에 "40대 경제전문가를 새로운 대권주자로 키우겠다"는 파격 발언으로 국민적인 관심을 보수당으로 쏠리게 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보수진영에선 김세연·홍정욱 전 국회의원 등을 언급하며 국내에서도 지난 2017년 39세에 국가 정상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같은 보수당의 젊은 지도자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아울러 시대변화를 읽지 못해 유권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통합당이 세대교체를 통해 노쇠한 당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국민들도 '그 정도면 2년 뒤 대통령선거도 해볼 만하겠다'고 호응하는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8월이 될 때까지 통합당은 이렇다 할 '40대 기수'를 내놓지 못했다. 나아가 당 운영과 관련한 전권을 쥔 비상대책위원장이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임에도 스스로 40대 기수가 되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다.

통합당 내부에선 현재와 같은 당의 인재육성시스템 하에서는 40대 기수의 탄생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나라를 제대로 이끌기 위해선 적어도 정치영역에서 20년 정도는 훈련을 쌓으면서 국정운영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하는데 국내 정치풍토에서는 아직 그런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체계적인 당원교육과 인재육성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국내 정당의 현실을 고려하면 외국과 같은 40대 국가지도자는 나타나기 힘들다"이라며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후 정당의 영입제안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정계에 입문하는 관행 속에선 국내 40대 정치인에게 국가운영을 맡길 정치적 관록을 기대하기 힘들고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보수당이 자체적으로 사람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일정기간 시간과 노력을 쏟고 났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고 우리나라는 아직 그와 관련해선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주 원내대표는 지난 5월 취임 일성으로 '기본'을 강조하며 ▷당원 교육 강화 ▷직능별 조직 정비 ▷당내 청년당 신설 등의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선거 때만 지지를 호소하는 행태를 통합당의 한계로 지적하고 풀뿌리 조직을 정비해 내실을 다지겠다는 뜻이다.

정희용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지난 4·15 총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 기뻐하고 있다. 정희용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지난 4·15 총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 기뻐하고 있다.
김병욱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지난 4·15 총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 기뻐하고 있다. 김병욱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지난 4·15 총선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 기뻐하고 있다.

◆30·40대 정상 배출하는 국가들은?

유럽의 48개국 가운데 절반 가까운 23개국 정상이 3040세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해 초 세계 최연소 정부 수반이 된 세바스티안 쿠르츠(34) 오스트리아 총리 등이다. 유럽 외에도 3040세대 정상은 많다. 쥐스탱 트뤼도(49) 캐나다 총리, 저신다 아던(40) 뉴질랜드 총리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10~20대부터 정당에 가입해 밑바닥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지방 의원에서 출발해 경력을 쌓은 뒤 중앙 정치 무대에 데뷔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다. 남이 아닌 자기 스스로 '깃발'을 들고 능력을 검증받은 뒤 지도자로 성장했다. 나이는 30~40대이지만 정치 경력이 20년 안팎인 '준비된 리더'들이다.

구체적으로 20대 초반에 정당 활동을 시작한 마린(35) 핀란드 총리는 시의원과 시의회 의장 등을 거쳐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도 20대 초반 국민당 청년조직 대표를 시작으로 빈 시의회 의원을 지낸 뒤 27세에 외교부 장관에 발탁됐다. 베텔(47) 룩셈부르크 총리는 26세에 지방 의원에 당선돼 정치 경험을 차곡차곡 쌓은 뒤 38세에 룩셈부르크 시장, 40세에 당 대표를 거쳐 정부 수반에 올랐다.

대구경북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석호 전 국회의원은 기초의회·광역의회 의원을 거쳐 3선 국회의원으로 성장했지만 다소 늦은 서른여섯 살에야 정계에 입문했다.

허대만 더불어민주당 포항남울릉 지역위원장은 지난 1995년 26살에 전국 최연소 시의원에 당선돼 정치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높은 지역주의의 벽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정치 선진국의 정당들은 성인이 될 때부터 최고수준의 정치인에 이를 때까지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단계별 당원교육·인재육성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

정치원론 수준의 강연으로 구성된 아카데미나 저명인사의 특강으로만 채워져 있는 교양강의 수준 정치인 양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현실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을 가르쳐주는 과정들이다.

이와 함께 정치권에선 그동안 보수당이 제대로 훈련된 '예비군 자원'인 국회의원 보좌진과 사무처 당직자들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틀을 갖춘 자체 인재육성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풀조차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학졸업 후 '정치'를 직업으로 선택하고 현장에서 10년 이상 실력을 쌓은, 이른바 선진국형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한 자원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보수정당들은 상대적으로 개혁·진보 성향 정당들보다 보좌진에게 성장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른바 '스펙'(화려한 경력)을 강조한 인재충원 관행 때문이다.

보수당 국회의원만 20년 이상 지근에서 도운 한 보좌관은 "국회의원은 간판, 실무는 보좌진과 당 사무처 당직자들이 맡는 관행은 보수당은 물론 나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구조"라며 "대구경북에서 보좌진 출신 2명이 국회의원을 선출된 이번 총선을 계기로 사실상 당의 배려 속에 현장에서 10년 이상 정치를 훈련한 보좌진과 당직자들에게 좀 더 다양한 성장의 기회가 주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대구 수성구청 앞에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수성갑 당원들이 2020년 총선 승리를 위해 지역민심을 외면하는 무능력한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지난해 7월 대구 수성구청 앞에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수성갑 당원들이 2020년 총선 승리를 위해 지역민심을 외면하는 무능력한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낙하산 공천 등이 당 체질 약화 원인

국내 보수정당이 자체 인력 육성에 소극적인 이유는 '시스템'이 아닌 '인물' 중심의 당 운영 관행과 '당장 눈앞 선거에서의 성과'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여기에 투명하지 못한 공직후보자 공천과정도 한몫을 하고 있다.

정당 구성원들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동기는 주요 당직으로의 승진과 추후 공직선거에서의 공천 여부인데 지금까진 당권을 쥔 대표가 당에 대한 묵묵한 헌신보단 자신에 대한 충성을 기준으로 당직을 배분하고 공직후보자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당직 인사 전횡과 낙하산 공천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선 평소 당의 정강정책에 홍보하며 지역구에서 당의 외연을 확장하기보다 당 대표가 유력한 인사에게 줄을 대는 것이 정치적으로 성장하기에 더욱 효과적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진국의 경우 정치의 가장 말단 조직부터 차츰 성장해나가는 구조"라면서 "정당에서 당직 활동을 한 게 굉장히 중요한 경력사항"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상향식 공천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당의 풀뿌리 조직에서 때를 기다리며 헌신해 온 '진성당원'들이 제 몫을 차지할 수 없고 이 같은 전례는 결국 당의 말단조직부터 붕괴를 가속하게 된다. 당의 밑바닥에서 시작하더라도 노력만 하면 결국 당을 대표하는 국가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줘야 미래당원 발굴도 가능한데 지금은 여러 가지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와 함께 당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차기 대통령 후보를 완전참여형 국민경선제도로 결정하자는 주장도 당원들의 사기를 꺾는 주요 요인이다. 당원이 가질 수 있는 사실상의 가장 큰 권한이 당의 공직후보자 결정하는 것인데 당원이 아니라 무작위로 선정된 국민들에게 그 권한을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렇게 선출된 당의 대선후보가 당내 공식기구가 아닌 외부정책조언팀을 중심으로 선거운동을 진행하고 집권 후 논공행상도 이른바 '과외그룹'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당이 설 자리가 더욱 빈약해진다.

통합당 관계자는 "교육에 대해서만 공교육 정상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대선국면에서도 공적 조직인 당이 중심에 서고 성과도 당이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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