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4주년 특별 인터뷰] 정세균 국무총리를 만나다

"나는 TK 사위이자 쌍용그룹 출신" TK와 인연 꽤 깊은 의성 정씨 정세균 총리
"산업화 이뤄낸 박정희 전 대통령? 공과를 제대로 평가해야"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중앙ㆍ지방정부 정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내가 기초생활보장법 입안한 사람...정치 하면서 가장 큰 보람...함께 잘 살아야"
"제왕적 대통령제? 국회 있을 때부터 개헌 주장...그 소신 지금도 변함 없어"

정세균 국무총리. 이무성 객원기자 정세균 국무총리. 이무성 객원기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업무 일정이 많았다. 그나마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은 휴일이었고, 일요일이었던 5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집무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휴일 찾아온 손님이라 불청객이라 할 수 있지만 '미스터 스마일(Smile)'이란 별명은 틀리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싱긋이 웃으며 꽤 오랫동안 인터뷰 시간을 할애해줬다. 인터뷰 전에 질문지를 미리 넘겨주긴 했지만, 일체의 사전 답변자료도 내지 않고, 책상 앞에 종이 한 장 놓지 않은 채 기자의 질문에 막히지 않고 즉문즉답으로 답을 풀어내려 갔다.

이날 인터뷰 내내 들어보니 정 총리는 전북 진안 출신이지만 TK(대구경북)와 인연이 깊었다. 본관이 의성이고 아내가 포항 출신으로 TK 사위인 동시에, 군대 생활도 안동에서 했다.

올 초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은 TK현장 지휘관을 자원, 20일간 대구 근무 경험까지 하면서 코로나19 극복 전선의 첨병이 됐던 정 총리.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던 대구에서의 20일에 대해서는 "대구의 품격과 경북의 의연함을 봤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최종결정이 미뤄진 통합신공항에 대해서는 "군위·의성 공동유치로 가도록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서울-지자체와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서울-지자체와 영상으로 연결해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구 달성 출신 성곡 김성곤이 창업한 쌍용그룹에서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쌍용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1978년 입사인데 당시 재계 순위를 매기면 삼성, 현대, 대우, 쌍용, 선경(지금의 SK) 순이었다. 쌍용이 꽤 컸다. 대학시절 정치를 꿈꿨는데 인권변호사가 될까, 기자가 될까를 저울질하다 기업으로 갔다. 당시 세계화·국제화가 화두였는데 종합상사에 근무해보고 싶었다. 김성곤 회장은 내가 다닌 고려대 교우회장이었는데 총학생회장을 하다가 고대 교우회장상을 받았다. 그 인연으로 쌍용을 지원했고 김 회장님과는 연대의식이랄까, 그런 것이 있었다.

- 부인(최혜경 여사) 고향은 포항이라는데, 당시로써는 호남·영남 커플이 쉽지 않은 분위기 아니었나?

▶대학 미팅에서 만났다. 지역주의라는 것이 있지만 벗어나야 한다. 나는 젊은 시절에도 지역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우리집 어른들은 당연히 좋아하셨고 포항 사람인 장모님께서도 나를 마음에 들어 했고 장인도 승낙했다. 장인은 경주 최씨인데 청년시절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5년형을 받았던 분이다. 3년 반 옥고를 치르다 광복이 됐다. 독립운동을 하셨던 장인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고 경북 영일군에서 3번 출마를 하셨다. 3등·2등·2등을 해 모두 낙선했다. 1995년 세상을 뜨셨는데 내가 1996년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니, 사위가 당신 대신 정치인의 꿈을 이뤄준 것을 보지 못하고 가셨다. 군대 생활도 안동 36사단에서 했는데 에피소드가 있었다. 수도경비사령부에 차출돼 학원사찰을 하는 임무를 맡을 뻔했다. 어떻게 동료 학우를 사찰하는 보직을 맡을 수가 있겠나? 통사정을 해서 대구 5관구 산하 36사단에서 근무를 할 수 있었다.

- TK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일궈냈는데 우리나라 성장기를 몸으로 겪은 세대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모진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념사업을 시작하면서 비서실장을 TK 인사(김중권)로 발탁하는 등 영남과 호남의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했는데, 동서화합은 어느 정도 진전됐다고 보나?

▶대학 시절 나는 박 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생각했다. 정치적으로는 반감이 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업화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도 나는 그의 공이 크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지금의 상황을 볼 때 동서화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흡하다. 지역주의를 정치에 이용하는 탓이다. 정치가 지역주의를 악용하면서 지역주의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여전히 지역주의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느냐'고 묻자) 그렇다. 이를 이용하고 있다. 선거 때 지역주의를 발동시킨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 지난 2월 18일 코로나19 31번 확진자가 대구에서 나오면서 TK 확진자가 폭증하자 대구 근무를 하겠다며 대구로 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누구 결정이었나?

▶31번 확진자가 나온 뒤 대구를 몇 번 왔다갔다했었다. 직접 와보니 심각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고민에 휩싸였다. 코로나19가 정말 심각했던 중국 우한은 지역이 초토화되는 상황이었다. 대구가 제2의 우한이 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 내 소신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현장 중심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거다. '내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장인데 현장으로 가자' '내가 가서 몸으로 막자'고 결심했다. 문재인 대통령께 전화를 드리니 내 걱정을 했다. '거기서 나오려면 상황이 좋아져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가겠다고 했다. 언제 나올 수 있을지 기약도 없었다. 대구 가서 잘 해결할 거라는 자신감은 솔직히 없었다. 당시 코로나19의 정체도 잘 모르는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명감 하나만 갖고 대구로 갔다.

- 대구에서의 집무를 시작한 뒤 상황의 변곡점이 왔다고 느낀 것은 언제였나? 어떤 결정이 주효했다고 보나?

▶열흘쯤 되니까 정점이 지난 것 같았다. 그때 '조심스럽지만 변곡점을 지났을 거 같다는 희망을 가진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 말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대구 상황이 수습되는 기미가 보인 시점이었다.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던 초반엔 병실 확보가 관건이었다. 영남·호남·충청까지 가능한 모든 곳을 찾았다. 내 고향 전북 진안의료원에까지 부탁해 확진자를 보냈다. 입원대기 확진자가 한때 2천명에까지 이르면서 생활치료시설이란 신개념 시설을 만든 것도 주효했다. 입원을 다 못 시키니까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생활치료시설 확보 과정에서 반대도 많았지만 공기업·공기관은 물론, 사기업까지 연수원을 확보한 뒤 경증환자들을 그쪽으로 보냈다. 의사 2명·간호사 8명·행정요원 9명으로 구성된 20여명의 세트인원을 파견, 생활치료시설에서 경증환자를 돌봤다. 생활치료시설 개원은 정말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의료 체계 붕괴를 막아냈던 결정타였다. 병실 복도에 환자가 누워 있는 미국을 한번 보라. 우리는 한때 하루 900여명의 확진자가 나왔지만 의료시스템 붕괴가 일어나지 않았다. 감동적인 일이었다.

- 대구에서 총리가 의사결정을 해도 전국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비결은 무엇인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화상회의 체계가 완벽하게 구축돼 있다. 중대본 회의를 하면 전국이 연결된다. 발언은 장관과 광역지자체장만 하지만 전국의 기초지자체가 이 상황을 동시에 본다. 중앙정부 및 광역·기초지자체가 한꺼번에 회의로 연결되는 것이다. 대구에서 결정을 내리면 바로 연결되는 시스템이다. 전국 단일망 행정 체계가 완벽한 소통을 이뤄냈고 실시간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내가 국회의장 할 때도 이 시스템이 있는지 몰랐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정보화 시스템 구축을 본격화했다고 한다. 위기 상황에서 큰 역할을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에 대한 전면 봉쇄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이 많았다. 후회 없는 정책 선택이었나?

▶국익 때문이었다. 방역도 중요하지만 코로나19 극복 후 경제를 생각해 야했다. 오늘 말고 내일도 봐야 했다. 우리 수출품 1/4이 중국으로 가고, 총수입품 1/5이 중국에서 온다. 우리 기업 1만여 곳이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데 국내에서 만들어진 막대한 양의 부품, 소재가 우리 기업이 만들어놓은 중국 생산기지로 간다. 생산기지만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 산업현장과 수출로 연계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왕래가 안 된다고 생각해보라. 우리 기업의 타격이 너무 심각해진다. 코로나19 확진자 통계를 보면 해외유입 누적자가 1천666여명인데 이 가운데 중국에서 들어온 경우는 19명밖에 안 된다. (초기에 급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났던) 후베이성은 봉쇄를 했다. 중국에 대한 조치는 적절했다고 본다.

-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초유의 정책 집행이 이뤄졌다. 평가를 해본다면?

▶성과가 있었다. 성과에 대해서는 행정안전부가 10월쯤 연구발표를 할 것이다. 저소득층에 도움이 됐고 골목 상권도 살아났다고 본다. 국가는 위기 국면에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개인도 위기가 닥치면 빚을 내러 가고, 굶을 형편이면 옆집에 가서 돈을 빌리지 않나? 재정건전성 얘기를 하는 데 이 부분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지출 구조조정을 하고 국세 수입을 늘리려 한다.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주장도 있다'고 묻자) 곳간 상황을 봐야 한다. 지금은 2차 지원보다는 정말 어려운 곳을 챙겨야 한다. 재정 여력이 있지 않다. 올해 100조원 가까이 빚을 냈다. 가성비를 고려해야 한다. ('올해 이뤄진 3차례 추경 외에 추가적 추경이 있느냐'는 질문에) 추가적 추경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 추경 재원은 7, 8, 9월, 3개월 동안 75%를 집행할 방침이다. 3차 추경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내년 예산에 반영할 예정이다.

- 국회에 오래 있었고 국회의장까지 했는데 총리가 적성에 맞나, 국회 쪽이 더 맞나? 그리고 정치를 일찍부터 꿈꿨다는데 이유가 뭔가?

▶국회의원도 적성에 맞고, 총리도 맞는데, 개인적으로는 행정이 더 맞는 것 같다. 뭔가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직접 위기관리를 하는 것이 더 좋다. 정치 왜 하려고 했냐고? 어린 시절, 굶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도 많이 굶었고 하루 2끼를 먹고 고구마로 때우기도 했다. 가난했기에 공부도 못했다. 가난을 떨쳐내기 위해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정치를 시작하고 가장 잘했다고 평가하는 업적이 있다면?

▶1999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지시하셨던 사안이었다. 전문가들과 함께 기획단을 꾸려 20여 차례가 넘는 자문회의를 거쳐 이 법을 입안했다. 정치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 더불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함께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 대기업 임원, 산업부 장관까지 한 경제 전문가인데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준비가 소홀하다. AI와 드론, 로봇 등의 산업에서 우리가 선두에 있지 않다. 우리 산업이 성숙 단계를 지나서 고도성장도 어렵다. 인구문제도 심각한 지경이다. 노동력이 부족해 외국인 200만명이 들어와 있다.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요인이 많다. 잠재성장률이 7, 8% 되어야 하는데 2%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과거 우리 경제는 추격형 경제였는데 이제 선도경제로 가야 한다. 빨리 쫓아가는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스스로 창조적이 돼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선도해내야 한다. 이 연장선에서 코로나19를 뒤돌아보자. 우리는 충격도 겪었지만 새로운 소득을 얻어냈다. 국민의 자신감이다. 예전에는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만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단키트·드라이브 스루를 만들어내는 등 K방역을 일궈냈다. '아, 이제는 우리도 선도할 수 있구나'하는 자신감이다. 우리가 코로나19에서 큰 소득을 얻었다. 선도형 경제도 우리가 할 수 있다. 베끼지 않고 스스로 창조하는 분야에서도 이제 우리는 할 수 있다.

- 정치가 경제 발전을 발목 잡는다는 여론도 많은데,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도 여전히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대통령들을 옆에서 봐왔는데 대통령은 어떤 역량이 가장 중요한가?

▶우리 정치가 여전히 개발연대 시스템에 머물러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도 그렇다. 나는 국회에 있을 때부터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기 위해 개헌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지금도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역량은 2가지다. 하나는 위기관리능력이다. 태평성대만 지속되면 누가 대통령을 못하겠나? 위기관리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미래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 집값 때문에 국민들도 걱정스럽고, 정부도 같은 처지다. 부동산, 어떻게 해야 하나?

▶과도한 부동자금이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범이다. 이 엄청난 돈이 기업 등으로 선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는 보호하되 집을 투기 수단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을 것이다. 주거수단으로 집을 두면 불편하지 않게 정부가 하겠지만 돈벌이 수단으로 만든다면 정부가 이를 반드시 멈추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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