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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뒷담] 이언주·황교안·강효상…정치인 삭발, 성과 못 내면 쇼?

영상ㅣ안성완 asw0727@imaeil.com
이언주, 황교안, 강효상. 매일신문DB, 연합뉴스
이언주, 황교안, 강효상. 매일신문DB, 연합뉴스

요즘 '삭발'이라는 단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삭발이 이어져서다.

그러면서 '삭발=쇼'라는 언급도 나오고 있다. 조국 사태가 정치권의 쟁점이긴 하지만, 총선을 불과 반년 정도 앞두고 있어 정치인들이 삭발을 통해 얼굴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해석이 바탕이다. 그러니까 '겸사겸사'로 말이다.

그래서 삭발 그 자체보다는 삭발 이후 거둘 성과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나중에 봤을 때 성과가 없으면 과거의 삭발식은 한낱 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사후 평가다. 성과가 반드시 있어야 그 신호탄이었던 삭발도 의미 있게 기억될 수 있다는 것.

이 같은 주장의 바탕이 될만한 선례가 있다.

야구선수 박찬호의 '삭발 투혼'이 대표적이다. 딱 20년 전인 1999년 LA다저스 시절 박찬호는 성적이 부진하자 스스로 머리를 짧게 깎았고, 이는 언론에 '배수의 진'으로 언급됐다. 신통하게도 삭발 후 박찬호는 7연승을 기록했고, 3년 연속 10승 기록도 쓰며 박찬호의 이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다만 당시 사진을 살펴보면 삭발 수준까지는 아니고 스포츠 머리이긴 하다.

'삭발 투혼'의 대명사 박찬호. 온라인 커뮤니티
'삭발 투혼'의 대명사 박찬호. 온라인 커뮤니티

고려대도 1999년 농구최강전 예선에서 라이벌 연세대에 패한 후 4학년들이 삭발을 했고, 결국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가장 맏형들이 정신무장을 새롭게 하며 후배들을 이끌어 성과를 냈고, 그 상징이 바로 삭발이었던 셈.

역시 1999년에는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대해 현행 유지를 요구하던 영화인들의 삭발이 이슈였다. 스타 배우 및 감독들이 잇따라 삭발을 하는 모습(비주얼) 자체가 화제였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스크린쿼터를 두고 '영화인들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도 제기했는데, 이게 2006년까지 제도가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불식됐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영화인들의 삭발은 어쨌든 원하는 결과를 얻었고, 후대에 쟁취의 서사로 전해졌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현재 삭발 릴레이에 참여하면서 내거는 요구사항을 향후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그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삭발쇼'를 한 정치인들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편, 최근 조국 사태 관련 삭발은 이언주, 박인숙, 김숙향 등 여성들이 먼저 했고, 뒤늦게 황교안을 시작으로 남성들이 따라가는 모양새다. 종교적 이유 등을 제외하면 삭발이 남성들만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여겨진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20년 전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신문 기사가 하나 있다. 1998년 8월 10일 한겨레신문의 '머리모양 등 외모표현은 기본적으로 개인권리'라는 박우용 씨 기고('편집자에게' 코너)를 살펴보면, 1998년 8월 7일자 한겨레신문에 등장한 '삭발한 젊은 여성들 눈살, 연예인 모방풍조 대책을'이라는 기사에 대해 지적했는데, 여기서 박우용 씨는 "자신의 외모와 행동거지에 대한 책임을 가장 크게 지는 것은 결국 자기자신이기 때문에, 단지 보기 싫다는 이유로 제3자가 간섭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당시만해도 언론부터 꽤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고, 이에 대해 이의가 제기된 것이다. 요즘은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여성 유명인들의 삭발 소식을 전할 때 '눈살' 같은 단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영화와 드라마 같은 대중작품에는 삭발 헤어 스타일의 여성들이 곧잘 등장해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멋있다'는 표현이 주로 붙던 게 이제는 '예쁘다'는 표현이 붙기도 한다. 긴 생머리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에 주인공인 여전사 퓨리오사 역으로 등장한 샤를리즈 테론. 네이버 영화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에 주인공인 여전사 퓨리오사 역으로 등장한 샤를리즈 테론.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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