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습니다] 성정분 씨의 고교 은사 김희조 선생님

노래 지도해주신 선생님께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려…

 

저는 올해 70살이 된 청도 이서고등학교 3회 졸업생 성정분 입니다. 벌써 50여년 전 이야기 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원래 대구에서 사셨는데 토지개혁 때문에 우리 논밭이 모두 소작인들한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남은 일부라도 지키려고 급히 고향 청도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남은 토지만 농사지어도 각남면에서는 부자 소리를 듣고 살았습니다.

우리 형제는 6남 3녀, 9남매중 제가 6번째 입니다. 큰 언니는 저보다 17살이 많은데도 대구에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시집을 갔고, 제일 큰오빠는 서울에서 한 사립대학교 공대를 다녔습니다. 등록금 하숙비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중풍에 걸렸습니다. 그 후 7년을 고생하시다 돌아 가셨습니다. 엄마 혼자서 8나매을 공부시킨다고 죽을 고생을 하셨습니다. 저는 엄마를 도우다보니 제대로 학교도 못 다닐 정도였지만 억지로 다녔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1년 쉬고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당시 제 특기는 노래였습니다. 그때 계명대 음대를 갓 졸업한 총각 김희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눈에 저의 실력을 인정해 주셨고, 틈틈이 지도도 해주셨고 노래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스승의 날이 오면, 그때 스승의 날 노래는 지금과는 다른 "수레에 두바퀴를 휘몰아치면 이끌어 주시는 분 우리 선생님......" 이 노래를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교단에 나를 올라가게 하여 마이크를 들고 노래할 수 있게 해주시고 선생님은 지휘를 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나는 아무리 높은 음이라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노래로 꼭 성공 해야지 하는 큰 꿈을 가졌습니다. 교내 음악대회 때는 "동무생각"을 부르라고 곡을 지정해 주셨고 지도도 해주시는 덕분에 잘 부를수 있었습니다. 그 뒤의 행사 때는 "선구자"를 부르라 했습니다. 정분아, 너는 높은 음도 잘 낸다고 칭찬도 해주시고 음악실에서 지도도 해주신 바람에 전교에서 노래 잘 하는 아이로 소문이 났습니다.

 

제가 고3때 선생님이 교실 창문 밖에서 손짓을 하길래 나갔드니 정분아, 너 올해 계명대 음대 특차에 지원을 하면 선생님께서 최대 한 도와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선생님 못갑니다. 안 됩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엄마한테 잘 말씀드려서 대학 가도록 해 보라고 저한테 사정을 했습니다. 며칠뒤 또 선생님께서 우리교실에 오셨습니다. 그때는 고개를 푹 숙이고 울먹이며 못간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 하며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사실 엄마한테는 이야기도 못 꺼냈습니다. 고등학교도 간신히 다니는데 대학진학 얘기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졸업 후는 선생님을 한 번도 못 만났습니다.

 

40년 동안 서문시장에서 열심히 해서 성공한 사람으로 살던 중 서문시장 4지구 대화재를 만났습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차츰 극복하고 지금은 잘 지냅니다. 그간 노래, 장구, 스포츠댄스, 기타, 하모니카, 매탑 아카데미, 언론인 아카데미, 수필대학 등을 다녀서 올해 1월에 계명대 평생대학원 음대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열흘후면 입학인데 하며 기대에 부풀었는데 코로나19가 발생 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학기 연기를 하였습니다. 등록하면서 김희조 선생님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면 꼭 연락한번 주십시오. 스승의 날이면 더욱 생각나는 선생님, 그땐 너무 어려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하였습니다. 늦었지만 보답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꼭 기다리겠습니다.

 

 

2020년 5월 15일 스승의 날 못난 제자 성정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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