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기고]언택트 시대, 재택근무와 농촌관광의 조화

[기고]언택트 시대, 재택근무와 농촌관광의 조화

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를 역임한 프랑스 사회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1998년 그의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21세기 사람들은 디지털 장비를 갖고 떠도는 디지털 유목민이 될 것이다"면서 "2030년이 되기 전에 어느 곳에서나 초고속 통신망에 접속하여 일을 하고, 소통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디지털 유목민은 사무실 등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무선 기술을 이용하여 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최근 코로나19로 기업체들의 재택근무(홈워킹)가 늘어남에 따라 이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좁은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근무하거나 대인 접촉이 많은 기업의 경우에는 감염으로부터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면서도 출퇴근 시간을 줄여 일상에 여유까지 누릴 수 있는 재택근무제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 추세다.더구나 재택근무지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일의 집중도를 높이면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정 그린밸리 농촌마을은 최근 이곳으로 이주해 오는 도시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어 주목받고 있는 지역이다. 여느 농촌 마을과 다를 것이 없는 이곳은 비어 있는 건물을 시민단체가 매입, 새 단장을 하고 공유사무실을 만들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곳 공유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은 일본 IT기업 직원들, 예술가, 창업을 꿈꾸는 청년 등으로 다양하다.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는 사람들과의 비대면(언택트) 문화가 어느덧 일상 속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구매하여 사용할 수 있고, 회사의 각종 업무나 회의, 학생들의 수업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하여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이로 인해 농촌을 바라보는 시선도 새롭게 변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무선 인터넷이 가능해 일을 할 수 있고,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며,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일 수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이미 관광 분야는 해외여행 수요가 국내로 눈을 돌리면서 단체보다는 개별 가족 단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보다는 조용한 농촌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경북도는 이러한 관광 트렌드에 맞춰 '365일 경북에서 놀자' 농촌관광 활성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농업농촌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불편하고 부족한 관광 인프라는 지속적으로 확충하면서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지난해에는 농촌 지역에 무료로 온라인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농촌체험마을을 중심으로 무선 인터넷망을 구축해 편의를 제공하고, 체험·숙박비 50% 할인과 사이소 농특산물 쿠폰(1만~3만원)을 지급하는 '전 국민 기운 up' 프로젝트를 추진해 농촌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올해도 경북도는 농촌 관광지 정보검색에서부터 구매까지 쉽게 할 수 있도록 모바일 홈페이지를 구축,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등 '가고 싶고 찾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곳'으로 농촌이 탈바꿈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재택근무가 늘어가고 있는 요즘 편안한 휴식과 따뜻한 정을 느끼면서도 업무의 능률을 높이고, 창조적인 영감도 얻을 수 있는 농촌이 비대면 시대 재택근무의 새로운 장소로 자리매김하면서 농촌관광과 조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해 본다.

2021-02-04 11:28:08

[매일춘추] 화합(和合)의 달

[매일춘추] 화합(和合)의 달

전통적 농경사회에서는 날씨와 자연의 변화가 중요했다. 농민들은 낮과 밤의 길이, 달의 크기 등을 통해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유추하였고 나라에서는 달력·책력 등의 연구가 중요한 과제이자 힘이었다. 시대에 따른 역법은 다양하게 변화하였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음력은 태양력과 태음력을 보완하고 24절기가 결합된 태음태양력이다.일제강점기 을미개혁의 하나로 고종 32년(1895년) "태양력을 쓰되, 개국 504년(1895) 11월 17일(음력)을 개국 505년(1896) 1월 1일로 삼으라"고 공포하여 근대화를 위한 양력(그레고리력)을 도입하였다. '건양(建陽·양력을 세운다)'이라는 연호를 통해 태양력 채택을 기념하기도 했다.일본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단발령과 함께 음력 1월 1일은 미신적이고도 전근대적인 낡은 관습으로 치부하여 구정(舊正)이라고 부르고,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 하여 새로운 시대에 따라야 할 것임을 강요하였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력설을 보내자 명절 음식을 하는 곳들의 영업 중지, 조퇴 금지령 등 각종 통제와 제재를 가하였다. 양력설과 음력설을 쇠는 이중과세(二重過歲)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크고, 공휴일 수가 많다는 등의 이유로 음력설 폐지정책은 1984년까지 유지되었다.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음력설이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1989년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으며 3일 연휴로 개정되었다.음력설은 고수되었지만 지속적인 억압의 영향으로 민속문화는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섣달그믐(음력 12월 31일)은 '작은 설'이라 하여 한해를 잘 마무리하는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어른이나 조상신 등에게 '묵은 세배(그믐세배)'를 하였다. 수세(守歲)는 한해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지킨다는 뜻으로 집안 곳곳의 등잔을 환하게 켜두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 자지 않았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신으로, 잠이 든 사람의 눈썹에 흰 가루를 묻히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설날 이른 아침 복조리를 구매할수록 길하다고 여겼고, 장수와 재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벽이나 출입문 위에 걸어두었다. 연날리기는 섣달그믐부터 시작하여 대보름까지 즐겼다. 보름날의 연은 액연(厄鳶)이라 하여 멀리 날려 보내고, 대보름 이후에는 연을 날리지 않았다.음력 1월은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가족과 공동체가 화합하는 달로 이 시기를 올바르게 보내야 일 년을 무사히 지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정월(正月)이라 부른다. 신축년(辛丑年)의 새로운 시작, 설날을 맞아 포용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의 안녕과 번영을 이루는 풍요로운 해가 되길 염원한다.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2021-02-04 11:27:22

[기고]사각지대, 이웃공동체 회복이 답

[기고]사각지대, 이웃공동체 회복이 답

얼마 전 죽은 엄마를 5개월이 지나도록 방치한 발달장애를 가진 노숙인과 한파 속 내복 차림 아동 방치의 안타까운 뉴스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각지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라면 형제 화재 사건으로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게 불과 몇 달 전이다.IMF를 전후하여 제기된 위기·사각지대 조기 발견과 지원은 모든 정권이 표방한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였다. 현 정부는 읍면동 단위에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구성, 운영하도록 한 것도 모자라 작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50명에 달하는 명예 사회복지공무원을 별도로 위촉하여 운영하도록 했다. 나아가 행정안전부는 인적·물적 안전망 구축, 운영과 공공서비스 연계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찾아가는 보건복지 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하고 그 계획과 결과를 제출하도록 해 평가하고 있다. 복지시스템으로는 촘촘한 그물망을 설치한 셈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제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어쩌면 애초부터 예견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사각지대 문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반성과 지속가능한 해결 방안에 대한 숙고 없이 단기간의 대증적 처방으로 일관하는 행태의 반복이 그 원인이라 할 것이다. 보여주기식 행사와 정량적인 실적 지상주의가 계속되는 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민들이 현실적으로 경험하는 문제보다 전문가, 자원과 권한을 가진 자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 제공자 중심의 사업 행태가 계속되는 한 똑같은 문제는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이웃사촌복지', 경북도 민선 7기 이철우 도지사가 야심 차게 도전하는 사회복지 분야 정책 목표다. 이웃사촌복지는 산업화, 도시화의 폐해를 극복하고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경북도의 정책적 노력이다.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적 돌봄 문화를 조성하고, 이웃 간의 친밀한 신뢰 관계를 토대로 제도적 사회보장체계가 가진 한계를 보완해 마을 중심의 평생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경북도는 2019년 하반기부터 4개 시군에 중간 지원 조직인 이웃사촌복지센터를 설치해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안동시 이웃사촌복지센터는 농촌 지역 마을을 대상으로 6, 7가구가 서로의 안부와 안전을 확인하고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는 '동아줄'이란 이름의 사촌 맺기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함께 시범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공동체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어 주민 중심 공동체 돌봄 문화의 지속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성주군 이웃사촌복지센터의 '두루두루봉사단', 의성군 이웃사촌복지센터의 '정성담아', 해결되지 않은 숙원 민원이었던 무허가 건물을 주민들의 논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소통과 공동체 돌봄공간으로 리모델링한 포항시 이웃사촌복지센터의 '마을관리소, 희망나루터' 등이 그 예이다.이러한 사업들이 더 적극적인 주민 주도의 근린안전망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도시와 농어촌을 불문하고 철저히 주민의 생활과제에서 의제를 찾고, 주민의 뜻과 힘을 모아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가꾸는 문화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면 팍팍한 삶이 빚어내는 우리 사회의 비극들을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근본적으로 긴 호흡으로 주거 지역을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 마을살이 문화를 되살려 놓는 이웃사촌복지, 이웃공동체 회복이야말로 평생 사회안전망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2021-02-03 11:32:59

[홍성걸의 새론새평] 이재명을 말한다

[홍성걸의 새론새평] 이재명을 말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선 후보 적합도가 30%를 훌쩍 넘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은 물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텃밭이라는 호남에서도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고, 6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결과야 알 수 없지만 현재 이 지사만큼 차기 대권에 가까이 다가간 후보도 없을 것이다. 이제 대통령감으로서의 이재명을 분석해 볼 시간이 되었다.많은 유권자들이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선명하고 시원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과거 성남시장 시절부터 다른 지방정부 수장들과는 차별화된 정책을 통해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이는 분명 그의 리더십이나 자질을 드러내는 큰 장점이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코로나19 대응에 가장 먼저 전 도민 10만원 재난지원금 지급을 들고나온 것이 이 지사이다. 결국 망설이던 다른 기초 및 광역단체는 물론 중앙정부까지도 보편적 지원으로 그를 따랐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서민들이 아우성치자 이 지사는 경기도 공무원 인사에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사람들을 배제시키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러면서 공직자가 임대사업을 하여 돈을 버는 것은 범죄라고까지 선언하며 서민들의 마음을 달랬다. 경기도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어느 청년이 과거 특정 웹사이트에 성희롱이나 장애인 비하 글을 여러 차례 올린 의혹이 있다는 청원이 있자 사실 확인 후 즉시 인사위원회를 통해 임용 취소를 결정했다. 모두 공정과 정의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즉각적인 대응을 통해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유권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사례들이다.이 지사는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들 중 가장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 어떤 사건이라도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적합하게 대응하고 이슈를 선점해 가고 있다. 기본소득과 관련한 그의 주장은 일관성과 함께 변화하는 미래에 반드시 검토해야 할 이슈라는 점에서 막말과 구태에 빠져 있는 정계에서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인다. 중앙정부가 보편적 지원과 선별적 지원을 두고 말싸움만 하고 있을 때, 그는 홀로 눈이 펑펑 쏟아지는 광주 5·18묘역을 방문해 참배하여 그 사진이 보도되도록 했다. 감성정치의 귀재라 해도 틀림이 없다. 거기에 정확한 논리와 빠른 판단력을 겸비해 토론이나 논쟁도 서슴지 않으면서도 약점이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성장 과정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했다는 점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을 떠오르게 한다.하지만 대통령 이재명에 대한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가족 간의 갈등과 의혹은 차치하더라도 이 지사의 행적에는 치명적 한계가 보인다. 선명성을 강조하다 보니 자신을 반대하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남양주시장이 전 도민 보편적 재난지원금에 반대하자 남양주만 빼고 지급했고, 이후 경기도의 감독 권한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려 했다. 남양주시가 다른 시와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왜 시장이 반대하는지를 경청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다른 기초단체장들도 이견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남양주시와의 갈등을 보고 편한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사례는 이것뿐이 아니다. 지역화폐로 지급한 재난지원금의 경제적 효과가 낮다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는 즉각적으로 반발하면서 정치적 의도까지 의심하며 연구자들을 매도했다. 재정 능력을 우려한 의견에는 국가부채 비율이 45%에도 못 미친다면서 일방적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재정학자들은 우리의 국가부채 규모는 공공 부문 부채와 공무원 및 군인연금 부담금까지 합쳐 이미 GDP 대비 80%를 넘었고, 가계부채도 2020년 3분기에 이미 1천682조원을 넘어 위험한 상황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차기 대권 후보들 중 독보적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지사는 분명 차기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의 거침없는 언변과 과단성은 장점이지만 지나치면 히틀러나 두테르테 같은 지도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 지사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을 더욱 낮추고 다른 입장을 포용하는 관용의 리더십을 길러야 한다.

2021-02-03 11:32:04

[매일춘추] 소설가의 도구

[매일춘추] 소설가의 도구

글을 쓰는 작가들은 별다른 도구가 필요하지 않아서 종이와 연필, 누구나 사용하는 컴퓨터 키보드, 그런 평범한 도구만 있으면 그만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몸 하나 만으로도 창작을 할 수 있다. 작가의 기원이라 할 옛 음유시인들은 자신의 목소리 하나로 서사시를 읊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암송에 의해 그들의 문학은 구전되었다. 몸으로 출판하고 기억으로 읽은 셈이다.작가의 몸에 고인 상상이 일상의 미디어를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 소설이다. 언젠가 TV에 출연한 한 소설가는, 글 쓰는 사람들의 도구가 하나도 신비롭지 않은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연주자는 일반인들이 흔히 볼 수 없는 고색창연한 악기를 꺼내며 아우라를 내뿜는다. 늙은 목수가 손때 묻은 연장을 펼쳐 놓을 때 알지 못할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싼다. 하다못해 의사들의 흰 가운과 목에 걸친 청진기 하나도 그의 전문적인 직업을 드러내는 훌륭한 소품이다.그런 면에서 볼 때 소설가의 연필은 누구나 사용하는 흔하디흔한 일상 속의 오브제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의 재능과 놀라운 상상력을 어필해 줄 수 있는 소품이 그에게는 없다.아, 생각해 보니 하나 있긴 하다. 타자기. 담배를 비스듬히 꼬나물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타닥 탁탁 드르륵, 탁 탁 타닥 드르륵… 하지만 타자기는 기자들도 썼고, 비서들도 사용했다. 요즘은 타자기의 변형인 컴퓨터 자판을 누구나 두들겨 댄다. 무엇보다 이제 타자기는 골동품이자 수집대상이 되어버렸다.화가 중에는 소설가처럼 볼펜 한 자루, 연필 한 자루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현대미술에서는 뒤샹의 변기처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오브제가 작품이 되기도 한다. 미디어 아트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C언어 프로그램까지 작업에 동원한다. 미디어의 사전적 의미는 사실 '정보를 전송하는 매체, 중간에 자리하여 사이를 매개하는 것' 이다. 그러니 예술가의 도구도 미디어라 할 수 있고,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나 감정 또는 객관적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수단'인 미디어를 물감 하나에 묶어둘 필요는 없다.무릇 화가라면 테레핀과 린시드오일 향을 맡으며 이젤에 캔버스를 세우고 붓과 나이프로 칠하고 긁어가며 가늘게 눈을 뜨고 바라봐야 할진대,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여기에서 도구의 역설이 시작된다. 달인의 카리스마는 특별한 도구에서 오지 않는다. 어떤 도구든 그의 손에서 특별함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포정(庖丁)의 칼! 뛰어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성배는 평범한 나무잔이다.소설가의 보석 같은 단어들은 그의 몸속에서 영근다. 그의 영감이 흔한 도구로 쓰여 손톱만한 USB 하나에 다 들어간다 해도 그의 작품이 하찮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찮은 도구가 그의 뛰어남을 반증해준다. 작품 값을 도구나 재료비로 측정한다면 소설가의 작품은 볼펜 한 자루 값이다. 훌륭한 도구가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탁월한 결과를 내기 위해 반드시 특별한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리우 영상설치작가

2021-02-03 11:29:19

[종교칼럼]정승 같이 키우면 정승

[종교칼럼]정승 같이 키우면 정승

요즘 인터넷이나 언론에서 가끔 어린아이의 학대에 대해 심심치 않게 뉴스가 나오며 눈으로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2, 3살 되는 어린아이를 마치 물건 다루듯이 감정으로 대하는 사람을 볼 때, 저 자신이 어른이라는 사실이 민망하기까지 한다.아직 반항조차도 어려운 아이에게 어른의 욕망이 화를 이겨내지 못해 어린아이에게 포악을 한다는 것은 부모든 부모가 아니든 어린이를 대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릴 땐 예쁘지 않는 아이가 없고 어른에게는 마냥 기쁨을 선사한다. 아이의 불만표출이 어른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폭행을 일삼는다면 그 아이가 자라서 어떤 성격의 소유자가 되며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 감히 걱정스럽다. 아이의 불만도 알고 보면 어른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법구경에는 "어리석어 지혜가 없는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일이 오히려 근심거리를 불러들인다. 자기 욕망에 따라 악을 행하여 스스로 큰 재앙을 받고 악업을 지은 뒤에 그 갚음을 받아 스스로 뉘우치며 눈물을 흘려 슬퍼하나니 그 결과는 어디서 온 것이냐?"라고 되어 있다.지혜가 없어 어리석음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는 자신의 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표출된 나쁜 악의 표현이다. 결국에는 그 과보를 자기가 받게 될 것이다.아주 옛날 산골에 가난한 집에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먹을 것이 부족해 종일 우는 것이 일이었고 부모는 아이에게 회초리로 울음을 멎게 하였다. 아이를 위한 교육은 전무하고 오직 먹고사는 것에 목적을 두고 우는 아이를 매질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지나가는 스님이 그 광경을 보고 매를 맞는 아이에게 넙죽 절을 하였다. 큰절을 하는 스님을 보고 부모는 깜짝 놀라서 여쭈어 보았다. 스님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자신보다 높은 사람은 임금뿐 이고, 그 한 사람을 제외한 백성은 모두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는 뜻) 정승이 되실 분이니 소승이 어찌 절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곱고 귀하게 키우셔야 됩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부모는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니다 라는 생각에 지나가는 객도 저런 말씀을 하시니 부모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하고 크게 뉘우쳐 그 후로는 매를 쓰지 않고 공들여 키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자란 후 후대에 진짜 영의정이 되었다. 부모는 생각하기를 그 스님이 아이의 일생을 용하게 잘 맞추는 사람이라 여겨 어렵게 그 스님을 찾게 되었다. "스님, 어찌 그리 용하신지요. 우리 아이가 영의정이 되는 것을 어찌 알고 계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스님은 마시던 차를 건네면서 말씀하시기를 "소승이 어찌 아이의 미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물은 귀하게 보면 한없이 귀하지만 하찮게 보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법이지요. 아이를 정승같이 키우면 정승이 되고 머슴처럼 키우면 머슴이 되는 것은 세상의 이치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 그 외, 보고 듣고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은 개개인의 자아가 있기 때문에 오로지 존귀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어른의 욕심으로 미리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앞으로 낳을 아이가 피부가 검고, 난청의 불치병이며, 폐렴도 있고, 장 질환이 끊이질 않으며, 일찍 사망할 것이라는 아이라고 한다면 낳고 싶은 생각이 없을 것이다. 만약 어른의 잘못으로 그 아이를 없애 버렸다면 우리는 전무후무한 훌륭한 교향곡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토벤이라는 사실이다.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은 이 다음 어떤 훌륭한 사람이 될지 모른다. 모든 어린이들은 바로 부처님과 같은 존재이다. 부처님을 섬기듯 진심으로 대한다면 이 세상은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불국정토가 될 것이다.칠곡 동명 정암사 주지

2021-02-02 14:36:37

[경제칼럼] 집 값 올리는 부동산 대책 내지마라

[경제칼럼] 집 값 올리는 부동산 대책 내지마라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더 강력한 (부동산) 대책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밝혔다.문 대통령은 "지난 정부 동안 우리 서민들을 괴롭혔던 미친 전세 미친 월세, 이런 높은 임대료의 부담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가격 안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이 역대에 없던 강력한 대책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부동산 가격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결과는 암담했다. 현 정부는 지금까지 24번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지만 효력은 없었다. 최근 경실련 자료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무려 82% 상승했다. 공동주택 실거래가 지수로도 60% 이상 상승했다.이러한 상황에도 현 정부는 매번 대국민 메시지에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자신 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투기는 근절하겠다는 것이 확고한 원칙이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결과적으로,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저금리(기준금리 0.5%)를 단기간에 실행해 다주택자의 부를 증식시키고, 세금으로 일부를 환수해 가겠다는 정책으로 전락했다.그렇다면, 왜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이 올랐을까?첫째, 공급을 억제하면 집값이 상승한다. 현 정부 들어 '분양가상한제'와 '고분양가관리지역 지정'으로 공급이 감소한 것이다. 3년 전 분양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라고 하면 누가 사업을 할 수 있겠는가. 공급이 감소하면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둘째, 전매를 제한하면 집값이 상승한다.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의 분양권 전매 제한은 5~10년, 지방의 투기과열지구는 5년이다. 조정대상지역은 소유권 이전 등기일까지 매매할 수 없다.새집이 귀하니 매매 가능한 새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른다. 주변 새 아파트 시세 대비 신규 분양가는 턱없이 저렴하니, 당첨만 되면 로또다. 공급을 하면 뭐하나. 전매를 제한한 신규 공급 물건은 회전되지 않으니 일부 공급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셋째, 취득세율을 인상하면 집값이 상승한다. 거래세인 취득세는 과거 취·등록세로, 매매가의 5%를 납부했다. 거래세는 가격을 상승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1%까지 인하되었지만, 현 정부가 대폭 인상했다. 6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서 단계별로 3%,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에게는 8%, 3주택자에게는 12%를 부과했다.거래를 못 하게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종국에는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취득세뿐만 아니라 공시가격 현실화 90%가 되면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등이 모두 거래세로 이전돼 매매가격 상승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넷째, 양도소득세율을 인상하면 매매 거래가 위축돼 집값이 상승한다. 오는 6월부터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는 20% 할증으로, 58~62%의 양도소득세를 부담하게 된다. 매도자가 "세금 다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며 물건을 거두어들이면, 부동산 물건이 줄고 거래가 위축되니 자연스럽게 집값은 상승한다.다섯째, 임대차보호법에 정부가 개입하면 집값은 상승한다.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 개정으로 임차인의 임차 갱신율은 당연히 높아졌다. 2년 전 가격을 더 보장받게 됐으니 그대로 눌러사는 것이다. 형편이 좋아서 더 좋은 집으로 옮겨 갈 수도 있고 줄여 가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지만, 전세 구하기가 힘들고 새로 전세를 구하자면 가격이 너무 올라 우선 눌러앉고 본다.갱신율은 높아졌으나 시장에 나오는 거래 물건은 줄어들게 되고, 임대가 만료되는 물건은 4년 기간을 반영해 임대가격이 급상승했다. 전세를 못 구한 세입자들이 어쩔 수 없이 집을 사려는 매수자로 돌아서면서 매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서민과 젊은이들을 위한다는 부동산 정책이 집값 올리는 정책이 돼 오히려 서민과 젊은이들을 울리는 부메랑이 됐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미래 세대의 희망을 앗아갔으며, 세대 간의 장벽을 더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는 결자해지(結者解之)로 반시장적인 규제의 벽을 허무는 부동산 정책을 부탁한다.

2021-02-02 14:01:15

[밝은 눈 클리닉]  눈 앞에 날파리가 떠다니는 비문증

[밝은 눈 클리닉] 눈 앞에 날파리가 떠다니는 비문증

'눈 앞에 날파리가 떠다니는 듯하다'는 증세를 호소하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게 40~50대가 되면 눈 앞에 점이나 실오라기, 먼지, 아지랑이가 보이는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하늘이나 흰 벽을 보면 증상이 심해진다. 이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일상생활에 불편까지 초래해 병원을 찾는 이들도 있다.'비문증'이라 일컫는 이 증상은 눈 안을 구성하고 있는 투명하고 탄력성이 있는 유리체라는 조직이 노화되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생선 눈알을 가르고 보면 나오는 젤리 같은 물질을 떠올리면 된다. 40대가 넘어서게 되면 이 유리체에 물 성분이 많아져 액화되고 눈의 가장 뒤쪽인 신경망막에서 분리되면서 부유물과 혼탁물 등이 생기면서 눈 앞에 뭔가가 아른거리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보통은 자연적인 노화 현상으로 병으로까지 여길 필요는 없다. 또 고도 근시인 사람은 안구의 길이가 앞뒤로 길기 때문에 10대 후반이나 20대에도 이런 증세가 발생 가능하다.하지만 이런 변화의 와중에 유리체가 신경망막을 잡아 당기게 되면 망막에 구멍이 생기는 망막열공이 동반될 수 있다. 만약 이 구멍으로 유리체의 물 성분이 유입되게 되면 실명에 도달할 수 있는 망막박리로 진행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망막열공이 경우 며칠 상간에 비문증 개수나 크기가 급작스럽게 증가하고 광시증(주변부가 불빛처럼 번쩍이는 증상)이 잘 동반된다. 심할 경우 망막박리에 이르게 되면 주변부 시야가 커튼이 쳐지거나 물이 찬 것처럼 가려 보이기도 한다.이럴 경우에는 빠르게 병원을 찾아 적절한 치료나 수술을 받아야만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뇨망막병증, 망막혈관폐쇄, 포도막염, 유리체 출혈 등 다양한 질환에서 비문증이 나타날 수 있어 연령에 관계없이 만약 비문증이 생겼다면 안과 진료를 통해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일반적인 노화로 인한 비문증이라면 치료는 필요치 않다. 눈의 기능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천천히 적응해가면 되지만, 너무 불편함을 느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에는 수술적 제거가 가능하다. 그 밖에 따로 예방법이나 도움이 되는 약, 음식 등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다만 외상으로 인해 망막 열공이 생길 수 있으므로 물체가 눈에 부딪힐 수 있는 환경(작업이나 운동)에서는 보안경을 착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특히 넘어지거나 머리 부위를 부딪히고 나서 생긴 비문증은 반드시 안과적 확인이 필요하다. 고도 근시이거나 아토피, 망막박리 가족력이 있거나 일전에 백내장 수술을 받았던 가족력이 있다면는 열공이나 박리의 위험성이 일반인보다 높기 때문에 비문증이 있을 경우 정기적인 안과적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이승현 대구 삼성안과 원장

2021-02-02 13:24:49

[의창] 전염병과 자유론

[의창] 전염병과 자유론

전염병 유행시기에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 제한될 수 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격리와 폐쇄가 건강 위험에 대해 스스로 선택을 할 수있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전염병 대유행 시기 이런 '내 몸, 내 선택'이라는 반(反)격리 주장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세기 성홍열·디프테리아·발진티푸스·콜레라·결핵·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으로 매년 수만명이 사망했지만, 공중보건 의사들은이를 막기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방 접종은 천연두만 가능했고, 다른 임상시험은존재하지 않았으며 휴식과 수분 공급 외에 효과적인 치료법은 없었다.수십 년에 걸쳐 선구적인 과학자와 의사들은 격리·소독 및 접촉 추적과 같은 공중 보건 전략이 많은 질병의 확산을 줄일 수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흐와 파스퇴르는 전염병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 된 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증명했다.그 옛날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사람들은 이런 격리 조치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강력하게 저항했다. 1890년 미국 노팅엄에서는 1만6천명의 전염병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는 조치에 대해 "스스로 병을 간호하고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박탈하는 감옥"이라는 청원이 제기됐다. 1832년 영국에서도 콜레라 환자를 집에서 병원으로 옮기려는 의사의 시도에 대해 리버풀을 포함한 많은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개인권리보호협회 및 시민단체를 결성했고 '질병의 위험을 선택할 자유'를 외쳤다.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건강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 만큼, 다른 시민들 역시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병든 사람을 격리하고, 예방 접종을 실시하고, 전염병 위험을 줄이기위한 조치를 취할 권한이 필요했다.존 스튜어트 밀조차 그의 자유론에서 "개인의 자유는 신성하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칠때는 제한돼야 한다"는 '위해 원칙'을 명시했다. 19세기 영국의 최고 의료 책임자였던 조지 뷰캐넌은 이런 주장을 근거로 "공동의 위생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법률적 개입으로 영국에서는 많은 전염병 감염비율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지난 해 3월 대구는 코로나19 유행으로 15.4%의 초과사망이 발생했다. 초과사망에는 코로나19와 직접 관련된 원인 외에도 의료 이용 부족과 같은 간접원인도 포함하고 있다. 응급실·중환자실이 코로나19 환자로 채워지면서 심장병과 뇌졸중 등 응급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사회적거리두기를 무시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쇼핑몰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종교활동 모임을 하면서 '자유의 상실만큼 큰 악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행위는 건강하게 살고 싶은 수천 수만명의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욕구'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이다.이런 인간의 다양한 욕구가 서로 충돌할 때 필요한 것이 윤리학이다. 윤리학은 이 두 욕구 중에 선한 욕구와 악한 욕구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고, 칭찬과 비난을 통해 선한 욕구를 추구하고 악한 욕구를 단념하도록 이끈다.'건강 위험을 선택할 자유'가 악한 욕구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그들이 향유하는 자유 속에는 바이러스에 의한 안타까운 죽음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기회가 포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21-02-02 13:23:47

[매일춘추] 작지만 강한 카메라의 권력에 대해

[매일춘추] 작지만 강한 카메라의 권력에 대해

카메라는 권력이다. 다소 거칠고 도발적인 표현이지만 분명히 카메라로 찍는 행위는 권력의 속성이 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의 반대편에는 필연적으로 피사체가 존재한다. 자신의 의도에 맞게 피사체의 모습을 기록하는 행위는 촬영자가 주도적 권력을 가지게 됨을 전제한다. 촬영을 위한 카메라는 일종의 무기와도 같다. 총을 발사하는 것과 촬영하는 것이 동일한 단어(shot)를 공유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찍는다는 것은 매우 민감한 행위다.촬영자가 가지는 권력은 또 있다. 본 것을 촬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편집을 하고 사운드를 입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들의 주관이 개입한다. 가장 사실적으로 보이는 다큐멘터리조차 현실을 완전하게 재현해내지는 못한다.편집의 과정을 거치며 피사체는 더 파편화되고 때로는 본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재창조되기도 한다. 실제 시간을 생략하고 압축하는 편집의 과정을 거치며 현실의 시간과 사건은 더 드라마틱해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사실과 현실이 소거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또 한 번 강조하지만 카메라는 권력이다. 그렇기에 카메라를 든 자는 녹화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선택된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하며 그 결과물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한다.스마트폰으로도 손쉽게 촬영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시대가 되면서 찍는다는 행위가 가지는 진지한 의미가 빠르게 희석되는 것 같아 조금 우려스럽다. 클릭 유도를 위해 소형카메라를 숨겨 비공개로 치러지는 장례식에 잠입해 촬영하거나, 코로나 방역을 소재로 시민을 놀라게 했던 몰래카메라 콘텐츠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부 유튜브 채널의 행태는 촬영자의 책임을 망각한 대표적 사례다.사실 이것은 비단 1인 미디어만의 문제도 아니다. 알권리라는 방패 뒤에 숨어 억측과 가십을 사실인 양 보도하는 황색언론도 있고, 성폭력을 고발한다면서 성폭력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수준 이하의 영화도 있다. 카메라의 크기나 성능과는 무관하게 카메라를 든 자의 철학이 문제다.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뾰족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어려운 문제다. 그나마 몇 해 전부터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이 해결책이 될지도 모른다. 가짜뉴스의 판별, 비판적인 미디어 소비 방법 등을 알려 주는 기존의 교육에 더해서 창작자의 윤리와 철학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다뤄주었으면 좋겠다.콘텐츠 생산자의 자각과 자정만을 기대할 수 없으니 찍는 자의 철학 부재와 우매함을 강하게 질타할 수 있도록 사회구성원 다수를 스마트한 비평가로 만드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감시 없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흉포해지기 때문이다.

2021-02-02 11:17:38

[기고]코로나시대 K-면역 식품서 답 찾아야

[기고]코로나시대 K-면역 식품서 답 찾아야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고 있다. 치료제, 백신 개발에 우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쉽게 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면역 기능을 높이는 건강기능식품에도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로나19에 직접 작용해 효과를 내는 신약 개발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탓에 당장 우리 몸을 보호해 면역 기능에 도움을 줄 건강기능식품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실제 충분한 휴식, 숙면과 같은 생활 습관 외에 건강기능식품은 면역세포의 활성을 증가시키거나 그 기능을 조절해 면역 능력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진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삼과 홍삼 등 6종의 고시형 기능성 원료와 당귀 혼합추출물 등 16종의 개별인정형 기능성 원료를 건강기능식품으로 지정하고 있다.예를 들어 인삼과 홍삼은 진세노사이드(Ginsenocide)라는 물질이 면역 조절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다. 당귀와 천궁, 작약의 추출물을 농축해 정제한 당귀혼합추출물은 림프구 증가 등에 도움을 줘 면역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경북 북부 지역은 백두대간 중심에 위치해 깨끗한 자연환경, 우수한 기후 조건으로 약성이 좋은 한약재가 생산되고 있다. 국내 약용작물 55개 품목 가운데 41개 품목이 생산되고 그중 31개 품목은 전국 1, 2위의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특히 면역 증진 건강식품의 원료로 사용되는 천궁과 산약(마), 작약, 생강 생산량은 각각 전국의 90%, 79%, 71%, 54%로 1위에 해당한다. 당귀와 길경(도라지), 감초는 각각 29%, 19%, 15%로 2위를 점유하고 있다.경북이 전국 최고의 면역 소재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북농업기술원은 K-면역 활성화를 위해 약리 성분이 높은 약재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재배 적지의 선정부터 최적 수확 시기, 유효성분 증진 재배법 등 고기능성 천연물 소재 원료 생산 기술을 개발해 왔다.도내 종가와 장류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발효식품 데이터베이스 구축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된장, 청국장과 같은 장류에 포함된 아미노산인 폴리감마글루탐산은 면역력 증진에 도움을 주는 개별인정형 건강기능식품으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장류와 김치에 존재하는 발효 균주의 면역 기능이 밝혀지고 있는 만큼 전통식품의 면역식품화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농촌형 외식 공간인 '농가맛집'도 관련 사업의 하나다. 이곳은 지역 식자재를 활용한 향토 음식과 지역의 문화를 접목한 농촌형 외식 공간이다.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며 일반음식점과 차별화된 맛을 제공한다. 도내 운영 중인 곳이 35개소에 달한다.K-면역식품 활성화를 위한 경북농업기술원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면역식품 산업화를 위해 경북농업기술원은 경북대 약학대학, 한국한의약진흥원, 천연물 기업 등과 함께 원료 생산과 연구개발, 기술협력의 네트워크를 구성, 지속 가능한 천연물 소재 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이를 통해 K-메디푸드, K-면역식품 개발 등 천연물 소재 산업화에 노력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2021년 신축년 흰 소의 해를 맞아 죽을 고비에서도 살길을 찾는 사중구생(死中求生)의 간절한 마음으로 K-면역식품의 산업화를 소망해 본다. 백두대간의 천연 소재가 생활 속에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귀한 음식이 되길 기대한다.

2021-02-02 11:16:44

[매일춘추] 한국 최초가곡의 비밀이 서려 있는 청라언덕

[매일춘추] 한국 최초가곡의 비밀이 서려 있는 청라언덕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누구든 이 노래를 한 번쯤 불러보았을 것이다. 이 노래는 중학교 음악 교과서가 개정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실린 우리나라 최초 가곡이다. 노래 첫 부분이 '봄'으로 시작하는 가사로 인해 새 학기를 맞는 봄에 부르도록 앞쪽에 실려있다. 이 곡은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사우(思友)'로 우리말인 '동무생각'으로 알려져 있다.필자는 중학교 시절 이 곡을 부르면서 제목이 '동무생각'이니 동성 간 우정을 표현하는 것이겠지 하면서 불렀다. 세월이 지난 후 이 곡이 동성이 아닌 이성 간의 그리움을 표현한 것임을 알고 찬찬히 가사를 훑어보았다."나는 흰 나리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이 얼마나 연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표현인가. 이 곡을 작곡한 박태준은 계성중학교 시절 대구 남성로에서 청라언덕을 넘어 등하교했다. 때마침 백합처럼 고운 얼굴에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당시 교복)를 입은 신명여학교의 한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박태준은 말도 못 붙여 보고 졸업했다. 이후 마산 창신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그곳에는 비슷한 연배의 이은상이 근무하고 있었다.이은상은 박태준에게 곡을 붙여 보라며 박태준의 짝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계절로 된 시를 써주었다. 박태준이 쓴 곡은 전반부에 여유 있게 부르다가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부터 재촉하듯 8분의 9박으로 변박되어 절정을 이룬다. 감출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곡에 잘 반영되었다. 만년의 박태준은 당시 이 곡을 작곡할 때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본인도 놀랐다고 회고했다.한편 지난해 음악계는 한국가곡 100주년을 기념했다. 홍난파의 '봉선화' 탄생을 기점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봉선화'의 작곡 과정을 보면 수긍하기 어렵다. 홍난파는 자신이 쓴 단편소설 '처녀혼' 서두에 1920년 작곡한 피아노곡인 '애수(哀愁)'의 악보를 실었다. 이후 1925년 피아니스트 김형준이 나라없는 신세를 봉선화에 비유하여 '애수'에 3절의 가사를 써넣고 제목을 '봉선화'로 바꾸었다. 그리고 홍난파는 1926년 이 악보를 '세계명작가곡선집'에 실었다.오늘날 '봉선화'의 작곡 시기를 '애수'의 작곡 연도인 1920년으로 보고 있으나 '애수'가 피아노곡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은 맞지 않다. 가곡은 반드시 가사가 수반되어야 하므로 가곡으로서 '봉선화'의 작곡 연도는 1925년이 된다.따라서 최초 가곡은 1922년 박태준이 작곡한 '동무생각'이다. 시급히 제자리를 되찾아야 하겠다. 기회가 있으면 계산오거리 근처 청라언덕에 올라가 보자. 그곳에는 '동무생각' 노래비가 있다. 대구 출신 작곡가의 곡으로 한국 최초 가곡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동무생각'을 크게 한번 불러보자.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2021-02-01 11:38:13

[기고]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요구하는 이유

[기고]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요구하는 이유

내가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임명받은 것은 2016년 6월 9일이었다. 얼마 후 나는 대통령께 당시 건설업자로부터 9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한명숙 전 총리의 사면을 건의했다.그해 4월 20대 총선 직후 민주당 지도부는 곧 있을 8·15 광복절 사면에 이미 1년 정도 복역하고 있는 한 전 총리를 포함시킬 것을 나에게 요구해왔다. 박 대통령 역시 정치인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국민 여론이 긍정적이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그러나 국민의 60% 이상이 사면에 반대했다. 정치 지도자가 감옥에 가서도 또 특권을 누리느냐는 논리였다. 여론에 소극적으로 돌아선 대통령을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이후 세월은 잔인하게 흘러갔다. 탄핵, 구속이 이어지고 감옥에 갇힌 박 전 대통령은 살아서는 옥문을 나서기 어렵게 되었다.올 초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다'며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 건의했다. 얼마 후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두 전직 대통령이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국민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아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슬쩍 여론을 떠보고 거둬들인 것이다.그러나 문 대통령만은 두 전직 대통령을 반드시 사면해야 한다.문 대통령은 탄핵으로 집권했다.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 보수 진영을 궤멸시켜 집권 기반을 공고히 하고 정치적인 반사이익을 독차지했다. 후세의 역사는 이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기록할지 모른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관련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되었고, 모두 합해 징역 22년 벌금 180억원이 확정되어 복역 중이다. 청와대 예산에는 특수활동비로 매년 150억원 이상이 계상되어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은 특수활동비 예산 상당액을 남겨서 반납했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10억원가량을 사용하고,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그 액수 이상 남겼다면 왜 국고 손실인지 아직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백번을 양보해 죄가 있다 하더라도, 살아생전에 감옥 문을 나설 수 없는 '사실상' 종신형을 선고한 것이 합당한 판결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판결이 확정되었으니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은 사면밖에 없다. 미국 대통령과 주지사에게 광범하게 사면권을 인정하는 것은 잘못된 판결을 민주적 권력이 바로잡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나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재인의 공화국은 두 동강 난 나라일 뿐이다.취임하자마자 적폐 청산의 이름으로 전 정권에 몸담은 사람들은 줄줄이 감옥으로 갔다. 숱한 사람들은 가혹한 적폐 몰이에 견디지 못하고 피를 뿌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조국 사태'에서 보듯 정의를 독점한 양 위선의 극치를 보여줬다. 울산시장 부정선거 사건, 라임·옵티머스펀드 사기 사건,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온갖 범죄는 수사 검사를 내쫓고 덮으려 했다. 정권의 충견으로 공수처를 출범시키지만 장담하건대 그들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이제 전 정권 적폐 몰이는 끝나고 현 정권 적폐만 쌓여간다. 역사는 유전(流轉)한다. 사화, 환국이 어찌 조선 왕조에서만 머물러 있겠는가?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해원(解冤)해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진보한다. 문 대통령이 나서야 하는 세 번째 이유이다.

2021-02-01 11:21:30

[세계의 창] 대기업 경영권 승계, 새로운 사회적 합의 필요

[세계의 창] 대기업 경영권 승계, 새로운 사회적 합의 필요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 과정에 있어 기업집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개발도상국의 기업집단은 다각적 사업 전개, 피라미드형 소유 구조, 동족에 의한 소유 경영 지배라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기업집단을 '동족기업'(Family firms)이라고 부른다. 동족기업의 생성, 발전, 존속은 법 제도, 정부 정책, 국민적 공감대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을 제외하고, 동족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로 멕시코와 일본을 들 수 있다.우선 멕시코의 경우를 살펴보면, 멕시코에서 동족기업의 유지와 번영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인은 상속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동족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한 자금 마련 때문에 동족이 가진 주식의 감소나 경영권의 상실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또한 의결권 제한 등의 조건을 덧붙인 복수 의결권 제도와 동족이 가진 주식을 관리하는 지주회사의 존재도 동족기업의 유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1961년 상속세를 폐지한 이후 재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고, 대규모 기업집단이 출현하기 전에 도입된 복수 의결권 제도나 지주회사에 대한 법률은 기업가들의 설득에 의해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멕시코의 상위 20개 동족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고, 동족기업 간의 경쟁도 심하지만 경영권 승계에 관한 잡음은 없다.한편으로 일본의 상속세는 최고 55%까지 높고, 미국에서조차도 허용하는 복수 의결권 제도를 허용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피라미드형 소유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멕시코와 같이 소유와 경영을 같이하고 있는 동족기업이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중 1천200사 정도 있다. 최근에 교토산업대학의 심정욱 교수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이 동족이 소유한 주식 지분은 5% 미만임에도 경영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전체 상장기업 중 7.4%이고,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토요타 자동차, 스즈키 자동차, 카시오 등과 같은 동족기업이 있음을 밝혔다.일본은 법 제도와 정부 정책에 있어 멕시코와 아주 극적으로 대비됨에도 동족기업이 유지 존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최대 기업인 토요타 자동차 사장에 창업자의 손자인 토요타 아키오 씨가 취임할 때 아무런 반대도 없었고, 오히려 기대와 찬사가 쏟아졌었다. 일본의 동족기업은 전문 경영인이 경영하는 회사보다도 성과가 더 낫고, 경영이 어려울 때 노동자를 해고 정리하는 확률이 낮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동족기업은 미국형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보다도 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좋은 이미지가 일본 국민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본의 동족기업은 경영권 상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주식 공개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선택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소유와 경영을 완전히 장악한 전통적인 동족기업에서 경영권만 가진 동족기업으로, 결국 소유와 경영이 완전히 분리된 비동족기업으로 변해 간다. 심정욱 교수의 연구 결과는 일본에서 동족기업에서 비동족기업으로 바뀌는 요인은 동족 내의 전략적 자원의 감소에 있음을 밝혔다.한국에서 재벌이라 불리는 기업집단도 동족기업의 한 형태이다. 한국의 재벌기업은 상속세가 높고, 복수 의결권 제도를 허용하지 않는 면에서는 일본과 비슷하고, 피라미드형 소유 구조를 허용하는 면에서는 멕시코와 비슷하다. 두 나라의 동족기업들과 비슷하게 기업의 성과는 비동족기업보다 좋음에도, 동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영권 승계에 있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최근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삼성전자의 돈으로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이라는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되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경영권 승계가 창업자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면, 기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시키려는 인센티브가 낮아져 한국의 경제성장과 고용 창출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결국 우리 안에서 우리가 키운 기업이 경영권 승계의 논란으로 어려워지면, 우리 모두가 피해의 당사자가 된다. 동족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1-02-01 11:11:54

[매일춘추] 책 읽어주는 부모들에게 박수를!

[매일춘추] 책 읽어주는 부모들에게 박수를!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내 문학의 원천은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밤마다 아들이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 동화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항상 이야기의 결말 부분은 말하지 않고 어린 괴테에게 완성해 보도록 요청했다. 아들이 이야기의 뒷부분을 상상하면서 창작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했던 것이다. 지금도 책 읽어주는 부모들 사이에서 괴테의 어머니가 했던 '잠자리 독서'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필자도 괴테 어머니처럼 '엄마표 독서'로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두 아이는 일곱 살, 네 살이었다. 매일 퇴근 후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큰 아이에게 집중해서 읽어주다 보면 작은 아이는 삐치며 떼를 썼다. 서로 자기 책을 먼저 읽어 달라며 보채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주말부부였다. 남편은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였기에 혼자서 고군분투했다. 주말에 집에 오는 남편에게 책을 읽어주기를 요청하면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하다며 투덜거려 가끔씩 부부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요즘 공공도서관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주로 유아와 초등 저학년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다. 아빠와 동행하는 가족들이 많아 평일보다는 주말에 이용자가 더 많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근무하는 도서관에는 평일보다 주말의 도서 대출량이 서너 배 많은 편이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이용자들은 한꺼번에 많은 책을 빌려가는데, 아예 큰 장바구니나 쇼핑 수레를 끌고 온다. 대출한 책을 반납하고, 원하는 책이 있는지 검색하며,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서 세심하게 내용을 살핀다. 서가를 다니며 책을 고르는 역할은 주로 엄마들의 몫이다. 그 시간에 아빠들은 주로 구석진, 한적한 곳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 엄마들이 쇼핑하듯 고른 책을 가방이나 수레에 담아 차로 옮기는 역할을 아빠가 담당한다.지역 공공도서관에 가족 단위 이용객이 북적이게 된 것은 2007년 도입된 '북스타트 운동'의 영향이 컸다.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하자'는 취지의 운동이었다. 북스타트 운동은 도서관의 어린이 자료실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아이들을 위해 짙은 갈색 서가는 알록달록 굴곡형 서가로 바뀌었고, 책상과 의자는 원형과 마름모꼴의 책상과 편안한 쇼파로 교체되었다. 특히 독서공간이 따뜻한 난방이 들어오는 온돌마루로 바뀌면서 발길이 더욱 늘어났다.부모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을 때 나타나는 효과는 많다. 아이들의 독해력, 어휘력, 상상력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부모와 정서적 친밀감까지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최고의 자녀 교육 중 하나가 바로 독서 교육이다.작년부터 코로나19로 도서관 이용 시 지켜야 할 수칙이 많아졌다.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은 물론이고 발열체크 후 방문기록도 남겨야 하고 자료실에 착석해 책을 보기 위해서는 번호표도 받아야 된다.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모두 감내하며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바쁜 시간에 짬을 내어 도서관을 방문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부모들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제갈선희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독서문화과장

2021-02-01 06: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법관 겁박용 탄핵 안 된다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법관 겁박용 탄핵 안 된다

우리 헌법은 법관이 탄핵 소추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다. 법관은 징계 처분으로 파면할 수 없도록 한 대신 국회 탄핵으로 견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졌을 때 나는 법관 탄핵 추진이 정도라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검찰 수사 대신 법원의 조사로 진상 파악을 우선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조사 결과에 따라 법원 징계나 국회가 탄핵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법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나쁜 선례가 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법원의 재판 과정이 검찰 수사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 의뢰를 선택했다. 문재인 정부의 기대(?)대로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숱한 법관들이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되었다. 현재까지 결과는 신통치 않다. 기소된 법관들이 대부분 무죄로 판명나고 있다. 당연히 사법 적폐 청산을 외쳤던 여권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이 임성근 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이르면 오늘 탄핵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한다. 법관 탄핵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 과반의 찬성으로 가결된다. 야당은 존재가 없고 반대 여론은 무시하면 그만이다.그러나 같은 편의 환호와 박수가 요란할수록 반대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선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을 다시 탄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임 판사를 무죄로 판단한 1심 판결문에서 '헌법 위반' 사실을 적시했다는 게 탄핵 추진의 명분이다. 탄핵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 있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판례를 감안할 때 판결에서 말한 대로 경미한 헌법 위반은 탄핵 사유가 되기 어렵다. "탄핵 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는 헌법 조문을 보아도 실익이 없다. 2월 말 예정된 임 판사의 퇴직 전 헌재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탄핵을 강행하는 것은 다른 이유를 의심케 한다.최근 여권에 불리한(?) 판결 때마다 여권 지지자들의 법관 탄핵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탄핵이라기보다 판결에 대한 불만 표출이다. 최강욱 의원의 유죄 판결,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판결, 정경심 교수 유죄 판결 등이 그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에 대해 잇따라 제동을 건 법관들도 이들에게는 사법 적폐의 대상이다.멀리 가면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법관들을 대상으로 한 유무형의 압력도 마찬가지다. 김 지사 유죄 판결 후 법정구속한 성창호 판사를 기소하여 법정에 서게 한 것이 오비이락인지 의구심이 든다. 실익이 없는 임 판사에 대한 탄핵 추진이 다른 법관들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한 게 아닌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검찰개혁'이 '사법개혁'으로 옮겨가는 것도 이상 조짐이다. 지난 재판들보다 향후 예정된 재판을 더 의식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국 전 장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에 대한 재판 등이 대기 중이다. 어떤 명분에서건 법원과 법관에 대한 겁박을 위한 탄핵 추진은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 씨 등에 중형을 선고한 것은 현명한 법관들이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하는 경우는 적폐 판사들이란 말인가.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상원의원 결선 투표를 앞둔 조지아주를 방문하였다. 지지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개혁 추진을 뒷받침하기 위해, 혹은 공화당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민주당 후보를 뽑아 달라고 하지 않았다.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충성하도록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충성할 것은 오직 헌법과 법률 그리고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조지아주 연방상원 2석을 모두 민주당이 석권한 것이 바이든 대통령의 지원 덕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은 의원들이 충성할 대상이 대통령도 정당도 아닌 국민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탄핵을 추진하는 우리나라 의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그것이다. 당신들이 충성할 대상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당도 지지자들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 그리고 전체 국민입니다.

2021-01-31 21:30:00

[기고] 소(牛公)에 관한 전설적인 실화

[기고] 소(牛公)에 관한 전설적인 실화

경북 구미에는 소(牛公)에 관한 전설적인 실화가 있다.구미문화원 산동분원은 해마다 소(牛公) 위령제를 지낸다. 소의 무덤은 의우총(義牛塚)으로 경북도 민속문화재 106호로 지정됐다.전국에서 유일하게 시행되는 소에 대한 제사이기에 시민과 언론의 관심을 갖게 한다.농경사회였던 우리에게 소(牛)는 단순한 짐승이 아닌 농가에서 재산목록 1호이자 가족과 다름없는 일원이었다.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의우총을 단순한 소의 무덤이 아닌 의(義)와 충효(忠孝)라는 전통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교훈의 장으로 여겨야 한다.조선 후기, 구미 산동면 문수마을(현 인덕리)에 사는 김기년 씨가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있을 때 난데없이 숲에서 사나운 호랑이가 나타나 소에게 덤벼들었다.이를 본 소 주인이 괭이를 들고 고함을 지르며 호랑이를 치려 하자 호랑이는 소를 뒤로하고 사람에게 덤벼들어 공격하기 시작했다.이를 본 소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날카로운 뿔로 호랑이의 허리와 등을 무수히 떠받아 쫓아버렸다. 쇠뿔에 받혀 피를 흘리며 달아난 호랑이는 몇 리 못 가서 죽고 말았다.주인은 다리를 여러 군데 물려 상처가 있었으나 정신을 차려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주인은 호랑이에게 물린 상처가 깊어 20일 만에 운명했고,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겼다. '내가 호랑이의 밥이 되지 않은 것은 우리 집 소 덕택이다. 내가 죽은 후에라도 이 소를 절대로 팔지 말 것이며, 늙어서 죽더라도 그 고기를 먹지 말고 내 무덤 옆에 묻도록 해라'고 했다.주인이 죽던 날 소는 큰소리로 울부짖었고 쇠죽을 먹지 않고 3일 만에 죽고 말았다.말 못 하는 짐승의 충성스럽고 갸륵한 모습에 감동을 받은 주민들은 주인의 유언에 따라 우공(牛公)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조찬한(선산 부사)은 우공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겼고 이 소의 무덤을 의우총이라 칭했다. 1994년 경북도는 의우총을 다시 깨끗이 단장해 교육용으로 정비했다.소가 주인의 생명을 구한 것은 평소 피붙이처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준 것에 대한 보은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에 기록된 의우총 이야기가 허구적이며 소설같이 들릴지 모르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우공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져야겠다.오늘날 우리 사회는 도덕불감증의 시대를 맞고 있다. 물질문명이 빚어낸 정신적 공해로 인해 사회의 병폐 현상이 늘어만 가고 있는 현실이다. 경건한 사회생활이 위대한 역사를 만들고 추락한 정신문화는 비참한 역사를 만든다고 했다.장마기에 홍수로 소와 말이 동시에 떠내려갈 때 헤엄을 잘 치는 말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다 힘이 빠져 익사하는 반면 소는 물살을 타고 조금씩 강가로 밀려나와 목숨을 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이와 같이 우직한 소는 순리에 따르는 침착성과 다소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짐승이다. 올해는 근면과 우직함을 상징하는 흰 소의 해다. 힘찬 기운이 물씬 일어나는 멋진 해이다. 우공은 비록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우리 인간에게 삶의 도리에 대한 교훈을 남겨 주었다. 이러한 의롭고 아름다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 투영돼 의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21-01-31 15:56:57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장욱진(1917-1990), ‘1991년 새해 그림’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장욱진(1917-1990), ‘1991년 새해 그림’

장욱진이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절필작이다. 장욱진은 1990년 12월 27일 74세로 작고했고 이 그림은 1991년 1월 5일자 '동아일보' 새해 축화(祝畵)로 실렸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렸고 "신미(辛未) 원단(元旦) 욱(旭)"으로 서명했다. 장욱진의 욱은 '돋는 해 욱(旭)'이다. 새해맞이 그림에 빠질 수 없는 붉은 해가 '욱'자 아래 있고 그 옆에 산봉우리 두 개가 있다. 해가 아래에 있고 산이 이렇게 작게 거꾸로 그려진 것은 날개를 한껏 펼친 새가 하늘 높이 날며 아래로 내려다 본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새의 위치가 되어 종이를 거꾸로 돌려놓고 붓질을 했을 것 같다.새는 마침내 생의 과업을 완수하고 창공을 날아 하늘로 간 그 자신일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2년, 서울대학교 교수로 6년 직장을 가졌던 외에는 평생 돈 되는 일을 한 일이 없이 그림에 몰입한 삶이었다. 나이 육십에 이르러 그의 그림은 돈이 되기 시작했다. 전업의 화가로서 "나는 붓을 놓아본 일이 없다"고 했던 장욱진의 유화는 전작(全作) 도록인 '장욱진 카탈로그 레조네 유화'(2001년)에 720점이 실려 있다. 유화 외의 먹그림, 매직화, 수채화, 판화, 도화(陶畵) 등도 상당히 있지만 그의 소재는 몇 안 된다. 이 그림의 새, 산, 해 등을 평생 그렸다. 시골에서 주로 살았던 그의 눈에 늘 보이는 새이고 산이고 해였다. 그는 주변에서 보이는 것을 그렸지만 그 형상은 현실과 자연의 실체와 맥락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생각과 정신이 세상과 멀리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거주한 곳은 무형의 세계인 예술의 영토였고 화면이라는 사각형 구조물 속이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세계다.많이 그리지 않았고 작은 그림을 그렸던 그는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항상 내가 되풀이 해서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 말 가운데 한마디지만 또 한 번 이 말을 큰소리로 외쳐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의 심플(simple)은 욕망을 덜어내는 구도(求道)의 길이고 흔적을 덜 남기고 살기 위함이다. 의식주를 비롯해 인간관계까지 덜어냈던 그에게 새는 세계와 고립되어 자족하는 화가인 자신이다.그의 주문(呪文)인 '심플'은 조형적으로는 간결미로 정제된 모더니즘의 심미성이다. 장욱진의 회화는 극도로 예민하게 단도직입으로 군더더기 없이 구성된다는 점에서 '선화(禪畵)'이고, 회화적 관습이나 유파와 무관하게 예외적으로 자신의 조형을 창안해냈다는 점에서 '문인화(文人畵)'이며, 길상의 뜻과 해학의 맛이 있는 쉽고 즐거운 그림이라는 점에서 '민화(民畵)'이며, 일상에서 추출한 영원이며 미(美) 속에 선(善)이 있다는 점에서 '성화(聖畵)'이다. 정성(定性)적으로 평가하자면 민족적인 형상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한국사람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그림, '한국화(韓國畵)'라고 할 것이다.미술사 연구자

2021-01-31 06:30:00

[광장] 코로나 시대, 옛 선비들 정원산책 생각나

[광장] 코로나 시대, 옛 선비들 정원산책 생각나

코로나바이러스 시대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방역의 최선책으로 권장하고 있다. 외국 전문가에 의하면, 이런 정책 지침은 몇 년간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고밀집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그 답답함과 우울함을 풀기 위해 집 주변에 있는 공원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아름다운 꽃과 푸른 나무를 감상하면서 머물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재의 공원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효과적으로 실시하기에는 힘든 공간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원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일 것을 염려하여 일단 공원을 폐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충분히 예상되는 바다. 현재의 공원은 많은 사람이 동시에 모일 수 있는 광장형, 집합형이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폐쇄 정책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전무후무한 코로나바이러스 시대를 맞이하여 세계 모든 나라들은 공원의 이상적인 공간구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방법을 지키면서 어떻게 공원 본연의 기능을 달성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해법을 내놓기 시작하고 있다. 도시민의 위락과 건강을 주제로 하는 공원은 도시의 꼭 필요한 시설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간은 가족 단위와 친구 단위의 바비큐를 즐기는 모습도, 동호회별로 축구를 하거나 단체 운동을 하는 모습도 공원에서 볼 수 없을지 모른다.최근 외국 사례를 보면 가장 중요한 공원의 요소는 산책길이다. 공원 설계가는 남들과 마주치지 않고 20분에서 30분 정도의 산책길을 만드는 것을 제안했는데, 그들은 이것을 손가락에 있는 '지문형 산책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산책길 끝에 군데군데 화려한 화단이나 분수와 같은 물의 공간, 그리고 혼자서 쉴 수 있는 벤치를 조성해 두는 공간구성을 제안하고 있다.공원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전통 정원에서 선비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에서 찾는 것도 흥미로운 방안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통 정원은 내원과 외원으로 구별된다. 내원은 집 주변의 정원이며, 외원은 선비가 산책하는 길로 정원 형태가 아닌 자연경관으로 집에서 10리쯤 되는 먼 거리를 포함하는 공간이다. 즉 외원은 선비들의 산책 영역인 것이다. 선비들은 자연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자연의 모습을 시로 남겨 두었는데, 영양 서석지를 조성한 정영방 선생은 본인이 산책하는 장소를 시로 남겨 두었다.이웃과 만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적어도 닭장과 같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공원에 나와 자연의 공기를 마시며 건강과 힐링을 위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자유만은 가지기를 원한다. 지금이라도 지방자치단체는 공원을 다중이용시설로 인식하여 전면 폐쇄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일부라도 개방하여 시민들이 건강을 위하여 사색과 산책하는 것을 허용하여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도시의 산들에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산책길을 조성하여야 한다. 그래서 외국처럼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장기전에 대비해 가야 할 것이다.코로나 시대, 공원은 옛 선비의 정원처럼 도시민이 자연 속을 산책하면서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산책길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이 동시에 모이더라도 혼자 사색하고 혼자 생각하는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꽃과 나무가 많은 산책길과, 물의 공간과 벤치, 그리고 운동 공간이 일정 간격으로 배치되어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는 당분간 옛 선비들이 정원을 거닐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그 모습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어서 씁쓸하기 그지없다.

2021-01-30 06:30:00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우혁좌초(右革左草)

[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우혁좌초(右革左草)

'우혁(右革)'은 오른발에 가죽신이고, '좌초(左草)'는 왼발엔 짚신이란 뜻이다. 임제(林悌1549~1587)는 대문장가로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붕당 폐해를 신발로 풍자했다. 임제의 본관은 나주(羅州)요 호는 백호(白湖)로, 교속(敎束)에 매임이 없다고 '연암집(燕巖集)'에 전한다.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진(晉)의 아들로 조부(祖父) 붕(鵬)은 승지부윤(承旨府尹)을 지냈으며, 중부(仲父) 복(復)은 선초에 박사(博士)로 백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백호는 1577년 어머니가 그토록 바라던 과거에 급제하여 제주목사 아버지를 찾아뵈었다.예조정랑(禮曺正郞)과 지제교(知製敎)를 거쳐 31세에 평안도사(平安都事)로 임명됐다가 임기를 마치고 병증으로 객사에 머물렀다. 문인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열었는데 '부벽루상영록'이다. 기록에는 사대부가 황진이 묘 앞에서 시를 읊어 벼슬을 거두었다고 나오는데 사실과 다르다. 백호는 호방한 성격에 '스스로 바르지 못한 마음은 자신을 해친다면서, 쇠의 녹이 쇠에서 생긴 것이지만 쇠를 먹듯 나쁜 생각은 스스로를 해친다' 했다. 임찬일은 '임제 소설'에서 바람이 그냥 스쳐가는 것 같지만 산야의 생명을 길러 내고, 물은 땅위의 많은 생명을 성장시켜 놓는다. '하늘이 나를 불러 세상에 보낼 적에 몇날 며칠만 다녀와라. 몸 받아 살 때 사랑부터 하라. 미움까지도 사랑으로 접어 살라. 삶을 꽃으로 피워 살고, 죽은 뒤엔 향기로 남으라. 눈꺼풀이 내려지면 이승에서 깨달을 수 없는 잠을 까치가 입에 물고 하늘로 오르리라' 하였다.당시 '소중화(小中華)' 사상에 휩싸여 '천자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백호는 '중국 상고에 태어났다면 그까짓 돌림천자(輪番天子) 쯤은 몇 번도 했다'면서 오호(五胡)와 북적(北狄), 남만(南蠻), 서융(西戎)이 각각 황제라 칭하는데, 우리 조선(朝鮮;東夷)만 못했다. 반도에서 옹졸하게 살 바에야 산들 무엇하며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느냐? '내가 죽은 뒤에 곡을 하지 말라' 사후불곡(死後不哭)을 당부했다.백호는 보수철학에 갇혀 기득권이 신음하는 백성들을 못 본체 하자, 작품을 통하여 검은 구름사이로 쏟아내는 햇살처럼 붕당의 빗장을 걷어내라고 외쳤다. 막 입문한 유생들까지 붕당에 뛰어들자 정으로 바위를 쪼개듯 '수성지'와 시문을 통해 피맺히게 호소했다.어느 날 백호가 말을 타고 외출을 하는데 오른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왼발엔 짚신을 신는 것이었다. 마부가 이를 보고 깜짝 놀라서 말했다."신발이 제짝이 아닙니다."그러자 백호가 조용히 말했다."모르는 소리 마라. 오른쪽에서 본 사람은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고, 왼쪽에서 본 사람은 짚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누가 짝이 맞지 않는 신을 신었다고 하겠느냐?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는데 그것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다."가죽신은 동(東)인, 짚신은 배고픈 서(西)인이다. 짚신은 오합혜(五合鞋)와 촘촘하게 삼은 십합혜(十合鞋)가 있다. 십합혜는 큰길을 걷고 오합혜는 느슨하여 산길을 걸을 때 벌레가 밟혀 상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기득권자들의 마음은 하층민에 대한 배려가 그림의 떡이었다.(사)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2021-01-30 06:30:00

[책] 세상의 골목

[책] 세상의 골목

세상의 골목 / 세계테마기행 지음 / EBS BOOKS 펴냄2008년 2월 25일 첫 방송 이래 1천500여회에 걸쳐 세계 곳곳의 이야기를 소개해온 현지 체험 여행기이자 교양 다큐멘터리 EBS '세계테마기행'을 책으로 만난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세상 곳곳의 골목길을 들여다본다. '세상의 골목'은 세계테마기행에서 그동안 다룬 여행지들 중 골목 이야기를 모아 소개하는 사진집이다.이 책엔 그동안 둘러본 각 도시 골목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포르투갈의 몬샌토 마을은 거대한 화강암 때문에 큰 길을 낼 수 없어 아예 그 돌에 기대어 집을 짓고 길을 냈다. 그래서 이곳의 집들은 실제로 돌 옆에 붙어 있다. 중국 광시좡족자치구의 소수민족 마을은 고지대에 위치해 계단식 다랑논을 만들었고 그 사이로 좁은 골목이 생겼다. 이란의 마술레 지역은 좁고 높은 곳에 마을이 생기면서 집 위로 길이 나는 구조가 되었다. 마술레에서 골목을 걷는다는 건 누군가의 집 지붕 위를 걷는다는 뜻이기도 하다.독특한 모습으로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눈길을 끄는 골목에는 각자의 역사가 담겨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낭만을 얘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보카 지구는 사실 가난한 항구 노동자들이 이주해 살면서 배에 칠하고 남은 페인트로 집도 칠하면서 지금의 다채로운 색감을 지닌 골목으로 변모했다. 탄자니아의 잔지바르의 구도심은 오랜 기간 포르투갈, 오만, 영국의 지배를 받다 독립했던 영향이 남아 있어 골목길을 걷다 보면 아랍과 인도, 유럽의 혼재된 건축양식을 두루 볼 수 있다. 그렇게 각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역사를 담은 골목들은 한 가지씩 교훈을 가지게 되었다.세상의 많은 골목들이 침략과 핍박을 피해 생긴 공간이기도 하다. 이란의 아비아네 사람들은 조로아스터의 믿음과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모여 자신들만의 작은 낙원을 만들어 1,000년의 세월을 보냈다. 이란의 사르아카세이드 역시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사이에서 안전한 곳을 찾아 첩첩 산골로 찾아들어 그곳에 좁고 복잡한 골목을 만들었다. 몽골군의 침략을 피하고 싶었던 이란의 칸도반 사람들은 화산 폭발로 원뿔 바위가 생긴 지역에 굴을 파 마을을 만들었다. 이들은 땅 한 뼘도 아껴가며 산비탈에 집을 짓고 길을 냈다. 그 골목에서 아이들은 놀고, 어른들은 일을 한다. 그래서 골목은 통로인 동시에 삶의 터전이다. 176쪽. 1만4천500원

2021-01-30 06:30:00

[책CHECK] 힘 빼고 스윙스윙 랄랄라

[책CHECK] 힘 빼고 스윙스윙 랄랄라

정보와 공감, 위로, 재미까지 선사할 골프 에세이가 출간됐다. 골프에 대한 특별한 취미나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꾸밈없는 날것의 재미를 선사하는, 집콕이 불가피한 요즘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줄 만하다.이 책은 프로 골퍼가 저술한 골프 가이드북 같은 책이 아니다.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평범한 30대 아저씨인 저자가 반 강제로 골프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와 3개월간 연습장에서의 연습을 거쳐 처음 필드에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솔직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나이스샷'을 꿈꾸는 초보 골퍼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미화도, 과장도 없이 유쾌한 문체에 실려 꾸밈없는 재미를 전한다. 운동을 계속하면서 느끼게 되는 삶의 변화와 부자(父子)간의 끈끈한 정까지 이야기 속에 녹여내고 있다. 200쪽. 1만2천원

2021-01-30 06:30:00

[안동을 걷다, 먹다] 18. 영남 3대 누각 영호루(映湖樓)

[안동을 걷다, 먹다] 18. 영남 3대 누각 영호루(映湖樓)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18번째 이야기 안동 영호루 이야기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는 세상을 다스리는 '치세(治世)의 기본이었다. 그래서 수리(水利)의 도는 치세법(治世法) 중 으뜸이었고 둑을 잘못쌓는 등 물을 잘못 다루었다가 홍수가 나고 흉년이 나면 왕이 쫓겨나거나 수백 년 된 왕조도 뒤집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후진타오 전 중국 주석이 대학시절 칭화대학교 수리공정과에서 하천시설발전소 등을 전공한 것도 그가 중국 최고지도자가 되는 길에 적잖은 도움이 됐다는 후문이다.'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태초에 강을 따라 문명이 형성되었다. 중화문명도 황하(黃河)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장강(長江)을 따라 중화문명이 꽃을 피웠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문명도 한강과 낙동강이라는 두 줄기의 강이 우리 문화의 원류다.그래서 도도히 흐르는 강은 역사의 흐름을 상징한다. 강이나 호수에 세워진 악양루와 등왕각을 비롯한 중국의 누각들이 웅장하고 위압적인 면모를 자랑한다면 우리의 누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단아하고 수려한 풍모로 특징지을 수 있다.수년 전 두보(杜甫)를 비롯한 수많은 당대 시인문인들이 찾아 나섰던 웨양루(岳陽樓, 악양루)를 찾았다. 동정호(洞庭湖)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잡은 악양루는 시대에 따라 중수되면서 모습이 바뀌기도 했지만 지금의 악양루와 같은 전형적인 청나라양식의 3층 누각이었다. 누각 입구에 걸려있는 두보의 시 를 필사한 마오쩌둥의 필사본이 먼저 눈에 띄었다. 두보의 시보다 범증엄의 가 더 유명하지만 마오의 두보시 필사본이 더 두드러지게 들어왔다.昔聞洞庭湖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예부터 동정호는 들어 왔었지만, 이제 그 악양루에 오르니,오와 초 땅은 동남으로 탁 트이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물에 떠 있구나.친척과 벗은 편지 한 장 없고, 늙어 병 든 몸 외로운 배로 떠돌다니.고향 산 북녘은 아직 난리판이라,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마침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악양루와 눈앞에 보이는 동정호의 풍경은 두보의 시정(詩情)를 더욱 떠올렸다.악양루에 오르니 동정호의 또 다른 자랑거리라는 작은 섬 '군산도'가 보였고 빗속에 배들이 오가는 모습이 화들짝 놀라게 했다. 배는 놀잇배가 아니라 대형화물선이었다.마오쩌둥은 왜 두보의 시를 필사했을까 지금도 궁금하다.악양루는 우리나라에도 두 곳에나 있다. 토지의 주무대인 경남 하동 악양면에 있는 악양루와 함안의 악양루가 그것이다. 두 악양루 모두 동정호의 악양루에서 비롯된 것이다.낙동강 물길 천 삼백 리. 구비쳐 흐르는 낙동강은 한반도 문명의 기둥이자 영남의 젖줄이었다. 강을 따라 마을이 생기고 역사가 축적됐을 터.그래선가 낙동강에는 이름난 누각들이 꽤 있다. 가장 상류인 안동에 '영호루'가 있다면, 중류의 의성 관수루가 있고 밀양의 영남루와 진주 남강의 촉석루가 영남의 이름난 누각으로 꼽혔다. 영남루를 제외한 다른 누각들은 6.25 전쟁 때 소실되거나 홍수로 훼손되는 바람에 새롭게 중수한 누각이라 문화재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영호루안동 영호루는 안동 신시장 등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영호대교 옆 낙동강변 언덕에 있다. 원이엄마 이야기가 짙게 밴 능소화 거리가 시작되는 영호대교와 시민운동장으로 갈라지는 사거리 바로 옆에 있어 누각에 오르면 낙동강이 흐르는 모습과 영호대교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풍광으로야 안동댐 좌측에 안동댐 건설과 함께 지은 '안동루'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는 풍광보다 더 멋진 '뷰'는 없다. 특히 저녁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안동루에 올라 바라보는 낙조는 천하제일이다.그러나 영호루의 낙조도 안동루 못지않다. 혹은 강 건너에서 바라보이는 영호루의 야경은 안동야경의 또 다른 명소로 꼽힌다.'영호루'(映湖樓)의 건립시기는 특정되지 않는다. 고려 때 라는 것 외에는 어느 문헌에서도 건립연대를 찾아내지 못한 모양이다. 다만 강을 바라보는 쪽에 걸린 한자 현판 '映湖樓'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라는 점에서 고려시대에 건립됐다고 짐작할 뿐이다.고려시대에 건립된 오래된 누각이지만 여러 차례 홍수피해를 입어 훼손됐고 결국 공민왕의 친필 현판 외에는 누각이 사라졌다. 그러자 이를 안타까이 여긴 안동시민들이 나서 강물에서 찾아낸 현판을 바탕으로 1969년 옛 모습을 되살려 중수한 것이 지금의 영호루다. 한자 현판 뒤쪽에는 한글로 쓴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현판글씨가 걸려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하긴 상류라고 해도 큰 홍수가 여러번 났다면 누각이라고 온전할 수가 있었을까. 능소화거리가 시작되는 그 길에서 천천히 강쪽으로 난 오솔길을 접어들면 영호루가는 길이다. 가다가 보면 오른쪽 언덕에는 충혼탑이 보인다. 민가를 지나 바로 옆에 있는 돌계단이 정겹다. 바짝 마른 겨울나무 사이로 누각이 보이기 시작했고 한글로 적은 영호루 현판도 보였다. 누각에 걸려있는 '한글 현판'은 아무래도 낯설었다.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 전 대통령은 전국 곳곳에 직접 한글로 현판을 하사해서 걸도록 했다. 일제총독부의 잔재를 씻겠다며 광화문을 만들어 한글로 광화문 현판을 게시하도록 한 것부터 순시하는 곳곳에 한글현판을 직접 써서 하사했다. 군사독재문화의 잔재라기보다는 한자와 왜색문화에 젖어있던 당시에 우리 문화에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기 위한 절절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그래선가 그 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동 영호루의 '박정희 영호루' 현판은 떼어내지 않았다.누각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꽤나 운치가 있었다. 자주 가던 곳이었지만 '잔설'내린 누각으로 가는 길은 미끄러웠다.아쉬웠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누각의 기둥이 콘크리트였다. 지금 옛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중수(重修)한다면 고증을 통해 최대한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겠지만 홍수로 완전히 훼손돼 형체가 사라져버린 누각을 새로 지은 1969년 당시에는 다시는 홍수피해를 입지 않도록 튼튼하게 짓는 것이 우선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콘크리트 기둥은 유감이다. 진주 촉석루도 6.26때 소실된 것을 새로 지었는데 옛 모습 그대로 잘 지었지 않은가.누각에 오르면 시 한 수 저절로 나올 정도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세 개의 다리다. 맨 왼쪽은 안동역이 송현동 신역사로 이전해가면서 기차가 다니지 않아 폐선이 된 철도교다. 맨 오른쪽은 구시가지로 이어주는 영호대교다. 그리고 나란한 다리는 영호대교 개통이후 인도교로 활용되고 있는 안동교다.누각 기둥이 구분짓는 그림 속에는 강과 다리와 건너편 안동시가지의 아파트들이 가지런하게 자리잡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모습은 달라진 것이 없을 터였다.관리가 잘 되지 않던 예전에는 안동시민들이 누각에 올라 짜장면도 시켜먹고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들여온다. 그들도 아마 이 영호루룰 찾은 당대 이름난 시인묵객처럼 주안상을 펼치고 시 한 수 지어보려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누각 중앙 좌우로는 '낙동상류 영좌명루'(洛東上流 嶺左名樓)라고 쓴 큰 현판이 걸려있다. 1860년 훼손된 영남루를 중수한 당시 안동부사 김학순(金學淳) 이 쓴 현판이다. 그리고 누각을 사방으로 둘러가면서 퇴계와 정도전, 정몽주 권근 우탁 이현보 주세붕 김종직 선생 등 당대 내로라하는 문인 학자 세도가들의 한시가 편액으로 빼꼭하게 걸려있다.그 중에 퇴계 이황 선생의 시 한 수 옮겨본다.映湖樓(영호루) 퇴계客中愁思雨中多 況値秋風意轉加獨自上樓還盡日 但能有酒便忘家慇懃喚友將歸燕 寂寞含情向晩花一曲淸歌響林木 此心焉得以枯槎나그네 시름 비 만나 더한데가을바람이 더욱 심란하게 하는구나,홀로 누각에 올라 하루를 다 보내도술잔들어 능히 집에 돌아갈 그리움 잊는다,은근히 벗을 불러 돌아가는 제비는쓸쓸하고 적막한 정을 품고 지는 꽃을 향하네한 곡조 맑은 노래 숲속을 울리는데이 마음 어쩌다 삭정이가 되었을꼬해질녘 영호루에 올라 낙조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이른 새벽 운동삼아 강변을 걷다가 누각에 올라도 좋다.낙동강의 고즈넉한 풍광을 기대한다면 안동루에 올라보기를 권한다.안동루는 오래된 옛 누각은 아니지만 풍광하나는 뛰어나다. 안동루는 안동댐 건설과 함께 세워진 누각으로 안동댐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만들어내는 낙동강과 월영교까지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뷰맛집'이다. 발아래는 요즘 뜨고 있는 안동의 핫플레이스 지베르니의 정원으로 불리는 '낙강물길공원'이다. 낙강물길공원에서 놀다가 위쪽으로 10여분 걸어 오르면 안동루에 오를 수 있다. 누각에 오르는 도중에 만나는 철제계단이 다소 불안해보일 수도 있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1-30 06:00:00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가시나무가 있어 대구의 겨울이 더 푸르다

[이종민의 나무오디세이] 가시나무가 있어 대구의 겨울이 더 푸르다

"중앙로에 있는 나무에 도토리 같은 게 열리는데 겨울에도 잎이 무성하다"며 "이게 도대체 무슨 나뭅니까?"하고 열매를 내밀며 지인이 물었다. 가시나무 종류의 열매 '가시'라고 대답하자 "가시도 없는데 가시나무라 캅니까?"며 고개를 갸우뚱한다.가시나무 이름은 가서목(哥舒木) 혹은 '가사목(加斜木)에서 나왔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이 참석하는 조회나 연회, 왕의 행차 때 기를 매던 긴 막대기인 가서봉(哥舒棒)을 주로 가시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서목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남해안이나 제주도에 자라는 난대성 참나뭇과의 교목으로 상록활엽수라서 겨울철 푸른 생기를 더해준다. 높이 10~15m까지 자라며, 나뭇잎은 반들반들하고 길쭉한 타원형이다. 줄기에 날카롭고 삐쭉한 가시는 없지만 잎 가장자리에 거친 톱니가 있는 종도 있다. 도토리를 닮은 열매를 가시라고 부르며 9~11월에 진한 갈색으로 익으면 도토리처럼 묵을 쒀 먹을 수 있다. 난대성 나무라서 당연히 추위에 약하여 제주도 또는 남해안의 따뜻한 계곡에서 자란다. 가시나무 무리에는 참가시나무, 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붉가시나무, 개가시나무, 졸가시나무 등 다양하다. 대구에서도 가시나무나 종가시나무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시립중앙도서관 서편, 범어네거리 남쪽 동대구로 중앙분리대, 공평로의 교동네거리, 대구시립미술관 주차장 주변, 황금고가교 주위, 현대백화점 뒤편이나 엘디스리젠트호텔 앞 가로수 등 곳곳에서 겨울에도 대구 도심을 푸르게 감싸고 있다. 대구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가시나무 무리가 언제부터 가로수로 등장했을까?1980년대 이상희 대구시장이 대대적인 나무심기를 계획했다. 이후 1990년대 민선 문희갑 시장이 적극적인 숲을 조성하면서 가시나무, 후박나무, 녹나무 등 남해안이나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상록수를 시험재배 했다. 그러나 겨울철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대구 추위를 견디지 못했으나 그중에서 가시나무, 목서, 종가시나무는 꿋꿋이 적응해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이정웅 전 대구시녹지과장은 "제주도에서 종가시나무를 들여와 동대구로 등에 심었다"며 "종가시나무는 장차 대구를 더 푸르게 할 나무다"고 강조했다. 대구에 가시나무 종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구로 편입된 달성군 현풍초등학교에는 높이가 10m, 나무둘레가 2.5m나 되는 오래된 종가시나무가 있다. 정확한 나무 나이가 궁금해서 학교에 문의하니 "예전 사람들 말로는 70년 전에도 아주 큰 나무였다고 회상 한다"며 "심겨진 시기는 정확히 모르지만 상당히 오래된 것 같다"고 말했다.가시나무 열매를 스페인에서는 돼지 먹이로 쓴다. 유명한 햄 '하몬 이베리코'는 호랑잎가시나무의 열매를 먹여 키운 돼지의 고기로 만든다. 이 돼지는 하루에 가시를 5~6kg이나 먹어치운다고 한다.「내 영혼의 북가시나무」라는 시를 쓴 최승호 시인은 정치적 폭압과 폭력적 현실을 꿋꿋하게 견디며 순수한 영혼이 담긴 시를 쓰고자하는 의지를 북가시나무(붉가시나무)에 비춰 잘 드러냈다.'하늘에서 새 한 마리 깃들지 않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를/ 무슨 무슨 주의(主義)의 엿장수들이 가위질한 지도/ 오래 되었다/ 이제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엔/ 가지도 없고 잎도 없다/ 있는 것은 흠집투성이 몸통뿐//(중략)// 깨어나면 다시 국도변에 서 있는 내 영혼의 북가시나무/ 귀 있는 바람은 들었으리라/ 원치 않는 깃발과 플래카드들이/ 내 앙상한 몸통에 매달려 나부끼는 소리,/ 그 뒤에 내 영혼이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소리를(이하 생략)'1980년대 상황이나 그 시절 민주화 운동 주역들이 집권한 지금이나 이념과 패거리에 따라 편 가르고 '원치 않는 깃발과 플래카드들'이 여전히 난무하는 현실 속에 가시나무를 볼 때마다 이 시가 머리에 떠오른다. 선임기자 chungham@imaeil.com

2021-01-29 14:55:00

[기고]경상북도여, '새바람'을 노래하라

[기고]경상북도여, '새바람'을 노래하라

이철우 경상북도지사가 민선 7기 도정 슬로건으로 '새바람 행복 경북'을 내건 지도 어언 2년여가 지났다. 이 슬로건 속에는 이철우 경상북도지사의 '변해야 산다'는 도정 철학과 혼이 담겨 있어 대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았다.2년여가 지난 지금, 경상북도의 새바람은 험준한 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새바람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바람이 멈추거나 정체 상태에 있으면 바람으로서의 수명 즉 생명력을 잃은 것이며 그것은 바람이 아니라 공기라 할 것이다.경상북도의 도정에 변화와 혁신의 새바람이 강조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면 첫째,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자신의 철학과 열정으로 경상북도의 새 시대를 열고, 경상북도를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날 경상북도가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 그 이면에는 불합리한 관행과 비정상 등 부정적인 잔재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오랜 관행과 비정상을 청산하지 않고 답습하는 것은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만약 경상북도가 과거와 결별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한다면 결국 민심을 잃게 되고 도민들의 따가운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제는 새바람으로 경상북도를 변화시키고, 새바람으로 경상북도를 혁신할 때다.둘째,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대유행인 팬데믹(pandemic) 시대를 맞아 도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 줄 필요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우리의 일상을 잃어 버렸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 새바람은 결코 멈출 수 없다고 할 것이다.변화와 혁신은 관심이 많은 것을 우선하고, 가까이에서 찾아야 하며,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사례로, 인사는 과거 낙점, 낙하산 인사 등을 타파하고 실질적 권한을 갖는 인사위원회가 운영되어야 한다. 정책은 이름과 무늬를 바꾸고 새로운 정책이라며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새로운 생각과 가치 그리고 미래를 담아야 한다. 각종 위원회는 신진 인물로 대폭 수혈하고, 그 운영을 활성화하도록 하여 소위 권력의 시녀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 또한 변화와 혁신은 인적 쇄신을 수반하여야 하며, 인적 쇄신을 수반하지 않는 변화와 혁신은 수식어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혁신의 담대한 긴 여정에는 많은 저항과 반대에 부딪치는 등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다고 주저앉거나 방조한다면 그 조직은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말 것이다.우리는 역사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진리를 새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변화와 혁신은 만고불변의 생존 법칙이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관행과 고정관념이라는 보호막에서 내일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벗어날 때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 변화와 혁신이 경상북도의 새바람이다. 경상북도가 마지막까지 생존하기 위해서 변해야 하고, 치열하게 경쟁하기 위해서 변해야 한다.경상북도의 발전이 곧 대한민국의 발전이다. 경상북도가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서 새바람으로 변화와 혁신을 이끌 때 경상북도의 발전은 물론 대한민국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는 300만 도민과의 약속인 '새바람 행복 경북'을 결코 저버려서는 아니 될 것이며, 도민들에게 변화와 혁신으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2021-01-28 11:46:26

[춘추칼럼] 100년이 지났어도

[춘추칼럼] 100년이 지났어도

"전염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학교·극장·상점은 폐쇄되고 모임도 금지되었다. 마스크 착용은 의무화되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도 대중교통 이용도 할 수 없었다. 경찰은 심지어 담배 피우려고 마스크 벗는 사람까지 체포하여 벌금을 부과하거나 구류에 처했다. 장례식은 15분 내에 끝내도록 제한되고 도시마다 관이 동나고 묘 파는 인부와 장의사가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다. 도로에 화학약품이 살포되고 일부 도시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증명서 없이는 출입할 수 없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자 자원봉사자, 군의관을 동원했으며 급기야 의과대학 3, 4학년 과정을 중단하고 학생을 병원에 투입해 의료 업무를 맡겼다."익숙해 보이는 이 장면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겪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100년 전 16억 세계 인구 중 6억 명 감염에 5천만 명이 사망한 스페인 독감 당시 상황이다. 지금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스페인 독감.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이 정식 명칭이지만 보통 '스페인 독감'으로 부르고 있다. 사실 스페인은 억울하다.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미국 캔자스에서 시작돼 인근 신병 훈련소로 확산된 독감은 1차 세계대전 중 유럽에 파견된 미군을 통해 유럽 전역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전쟁이 한창이던 참전국들은 적국에 이로운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피하고 아군 사기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 검열을 강화하는 등 독감 관련 보도를 철저히 통제하였다. 하지만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에서는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스페인에서만 8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자 독감과 그 영향에 대해 깊이 있게 보도하였다. 여기에 더해 국왕 알폰소 13세까지 감염되면서 스페인은 오명을 뒤집어썼다.예년 독감과 달리 스페인 독감은 폐렴으로 빠르게 진행하여 걸린 지 2, 3일 만에 사망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았다. 밤늦도록 카드 게임을 같이 한 여성 4명 중 3명이 다음 날 아침에 죽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또한 특이한 점은 젊은 인구의 높은 사망률로 희생자 대부분이 65세 이하였으며 특히 20~45세가 전체 사망자의 60%를 차지하였다. 세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1차 세계대전 희생자보다 3배나 많아지자 전쟁은 서둘러 매듭지어졌고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고 독감은 자취를 감추었다.그리고 100년이 지난 2019년 12월, 중국 어느 도시에서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하였다. 처음에는 그다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고 그저 중국의 한 도시에서 생긴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교통의 발달과 사람의 이동이 많다 보니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국경을 봉쇄하였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100년 만에 다시 겪는 대유행! 워낙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지만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 보니 100년 전 상황이 그대로 재연되었다. 이동 제한, 모임 금지, 상점 폐쇄, 도시 봉쇄 그리고 마스크와 거리두기, 손 씻기.하지만 우리는 지난 100년을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2018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가 발표한 스페인 독감 100주년 기념 구호 '우리는 기억하고 대비한다.'(We remember. We prepare)처럼 인류는 전염병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왔다. 역학 조사를 통해 환자를 조기에 발견·격리하여 감염 전파를 최소화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밝혀내고 신속한 진단 기술을 개발하였다. 음압 병상, 인공호흡기 등으로 중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100년 전 같았으면 죽었을 환자도 이제는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축적된 의학 기술의 발달 덕분에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항체 치료제와 백신 개발로 코로나19를 물리칠 날이 머지않았다.우리나라에서도 다음 달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고 한다. 일 년간 힘든 날을 견뎌온 우리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손 씻기, 거리두기, 그리고 마스크.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는 그날까지!

2021-01-28 11:45:36

[매일춘추] 평생교육기관, 대학박물관

[매일춘추] 평생교육기관, 대학박물관

대학박물관과 미술관은 대학의 문화적 수준과 격조를 나타내는 기관이다. 세계 최초의 대학박물관이자 영국 최초 공공박물관은 1683년 개관한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애쉬몰리언 박물관'이다.미국 대학의 미술관은 건국 이후 자국의 문화를 선도했다. 1832년 예일대 트럼벨미술관, 1866년 하버드대 피바디 고고민속박물관, 1882년 프린스턴대 미술관 등 미국 유수 명문대학들이 대학박물관 발전을 선도하였으며, 국가적 자부심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9년 2월 미국 코넬대 허버트 F. 존슨 미술관은 미국의 미술관들 중 처음으로 대지미술(Earth Art)을 선보이며 문화의 질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우리나라 대학박물관의 시작은 1924년 건립된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언더우드 홀이다. 이를 시작으로 보성학교(현 고려대), 이화여대, 경희대 박물관 등이 설립되었다.1967년 대학 설치 기준령에 대학교 내 박물관 설치가 의무사항으로 개정되어 전국 대학 내 박물관들이 본격적으로 생기게 된다. 법령은 특히 종합대학에 더욱 많은 부속시설을 요구했다. 당시 법 조문에는 '종합대학교에는… 박물관·과학관과 기타 문교부령으로 정하는 부속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여기에 그치지 않고 강력한 부칙으로 '시설 미보완 시 학생 정원 감축, 학과 폐지' 등 고강도 조치를 더하고, 등록금의 일정액을 '박물관비(費)'로 징수해 자체적으로 박물관을 설립·운영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도 마련했다.1982년 관련 조항이 삭제될 때까지 전국 70여 대학에서 박물관이 개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는 2020년 기준 전국에 등록된 박물관·미술관 전체 120곳의 58%가량을 차지한다.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은 그러나 관련 법령 개정 이후 꼭 필요한 기관은 아닌 것으로 인식되고, 위상도 약화되었다. 지난해 6월 대학 재정난으로 울산대 박물관은 폐관 절차를 진행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앞서 2017년 2월에는 전국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충청대 박물관이 폐관하였다.대학박물관은 평생교육기관이자 교양교육의 현장이다. 대학 내 연구자원과 박물관 문화자원을 활용한 프로그램 개발, 연구·전시·교육 등으로 전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문화예술 향유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이와 더불어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을 등한시하고 취업률만을 평가의 잣대로 삼는 고등교육 현장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인문학의 보고(寶庫)인 대학박물관이 이러한 제도적인 문제와 인식 개선의 열쇠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2021-01-28 11:45:00

[기고]농어촌 안전, 선제적 재해대비로 지켜야

[기고]농어촌 안전, 선제적 재해대비로 지켜야

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 속에서 전 세계인이 혼란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여름에는 200년 빈도를 상회하는 규모의 기록적인 장마와 연이은 태풍이 한반도를 덮쳤다. 유례없는 이상기후와 전염병으로 가장 안정적으로 보장돼야 할 먹거리마저 위협받고 있다.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을 '블랙스완'이라고 일컫는다. 선제적 재해 대비 체계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다음 번의 블랙스완도 예측하기 힘들 것이다.집중호우와 태풍에 따른 침수 피해를 최소화하고, 안전한 농어촌 먹거리를 지켜내기 위해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업용수관리자동화 시스템'과 '비상전원 구축'이라는 두 가지 카드를 통해 재해를 예방하는 안정적인 농업용수 공급체계를 구축·운영하고 있다.먼저 농업용수관리자동화(TM/TC·Tele-Metering/Tele-Control) 시스템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먹거리에 대한 걱정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한 애그테크(AgTech)의 한 분야다. 애그테크란 농업(Agriculture)과 4차 산업혁명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분야로 정보통신기술(ICT), 사물인터넷(IoT)을 용수 관리에 적용해 구축한 시스템이다.TM/TC 시스템은 관리자가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중산간지(중간 농업지역과 산간 농업지역을 포함한 지역의 총칭)의 수문이나 원격지의 양·배수장 등의 수리시설을 원거리에서도 감시하고 조작할 수 있어 신속한 재해 대응이 가능하다. 또 관리자의 안전도 지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현재 한국농어촌공사 경북지역본부의 배수장 112개소 중 절반가량에 TM/TC 시스템 구축을 완료했으며 전 시설물 TM/TC 구축을 목표로 설치 개소를 늘려가고 있다.무인자율제어 시스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TM/TC 시스템의 진화된 형태인 무인자율제어 시스템은 관리자가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심야 시간이나 비상 상황에도 수위 값을 자동으로 감지해 배수펌프가 스스로 가동되도록 할 수 있다. 비상 상황 시 초기 대응력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어 설계상 반영 가능한 모든 배수장에 설치를 마친 상태다. 이는 경북본부가 관리하는 배수장의 절반에 해당한다.비상전원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전원은 펌프를 가동할 수 없는 상시전원의 정전 등 위기 상황 발생에 대비해 배수펌프장에 필수적으로 구축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경북본부 관리 배수장 112개소 중 22개소에 비상전원이 구축돼 있으며 연내 10여 개소를 추가 구축할 계획이다.이 밖에도 공사는 시기별 맞춤 점검에 힘을 쏟고 있다. 상시적인 가뭄과 집중호우의 교차 발생 등 예측 불가능한 기상에 대비해 수리시설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유지관리하는 것이다. 점검은 농업기반시설 운전 조작 및 정비, 장애물 제거를 위해 분기별로 하고 관개기 점검 및 비관개기 점검은 기능 유지를 위해 매월 실시한다. 긴급 점검은 안전에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진행하며 기기의 운전과 관련된 기능 상태 확인을 위한 가동 점검은 수시로 하고 있다.우리는 코로나19와 이상기후를 겪으며 위기 상황에 대한 선제적 대응책 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우리 공사는 주변이 편안해 보일 때에도 위태로움을 걱정하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자세를 마음에 새기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해에 대비해 자체 비상 조직, 유관 기관, 협력 업체의 비상 연락 체계를 긴밀하게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농업기반시설물 상시 가동 체계 구축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21-01-27 11:23:58

[오정일의 새론새평] 인구(人口) 문제

[오정일의 새론새평] 인구(人口) 문제

작년 우리나라의 출생아는 사망자보다 2만 명 적었다.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했다. 작년에 28만 명이 출생했는데 이는 1990년 출생아 65만 명의 43% 수준이다. 한 나라의 출산 능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가 합계출산율이다. 합계출산율이 2.1명 이상이면 인구가 감소하지 않는다. 작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9명이었다. 금년에는 0.8명대가 될 것이라 한다. 인구 감소는 지역에서도 확인된다. 포항시 인구는 1995년 51만 명에서 작년 50만3천 명으로 감소했다. 금년에 50만 명대가 무너질 수 있다.우리나라는 인구가 줄면 경제가 축소되고 인구가 증가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인구가 줄면 걱정하고 인구가 늘면 안심하는 이유는 이러한 생각 때문이다. 이 생각이 확장된 결과가 '인구는 국력'이라는 슬로건(slogan)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5천만 명이어서 내수시장이 작다. 그래서 성장에 한계가 있다." 이 말 속에는 인구는 수요라는 잘못된 개념이 들어 있다. 인구는 수요가 아니다. 인구 중 일부가 수요다. 케인스(Keynes)는 이를 유효수요라고 했다. 우리 경제는 5천만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가? 보장할 수 있다면 인구는 증가해도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인구가 감소해야 한다. 국민들의 의식주를 겨우 감당하는 수준까지 인구가 증가해야 할 이유는 없다.최근 한 언론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 국내총생산이 감소한다. 생산가능인구 1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하니 소비도 감소한다.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드니 복지 시스템이 붕괴된다." 이 기사는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 국내총생산이 감소한다'는 주장을 과장한 것이다. 생산에서 소비와 세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옳은가?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국내총생산이 감소하는 나라가 있는가?생산을 못 할 정도로 생산가능인구가 부족하면 임금이 오른다. 임금이 오르면 국민 일인당 소비와 세금도 증가한다. 또한 임금이 오르면 기업은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한다. 물론, 무한정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기업은 노동을 덜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도 국내총생산이 감소하지 않는다.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투자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기업이 투자를 줄인다. 유효수요가 작아지기 때문이다. 경제가 축소되지 않으려면 국민 일인당 소비가 증가해야 한다. 소비 성향은 상류층에 비해 중산층 이하 국민들이 높다. 소득재분배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 경제에서는 분배가 성장을 견인(牽引)할 수 있다.같은 해 태어난 사람들을 출생 코호트(cohort)라고 한다. 작년에 태어난 28만 명은 하나의 출생 코호트가 된다. 동일한 출생 코호트에 속한 사람들의 생애주기(life-cycle)는 비슷하다. 비슷한 시기에 입학과 졸업을 하고 결혼하며 취업과 은퇴를 한다. 이들은 입시, 결혼, 취업에서 경쟁자이지만 세금과 병역을 함께 부담한다. 1990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출생 코호트가 크기 때문에 경쟁이 심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무를 함께 부담한다. 작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출생 코호트가 작아서 경쟁이 덜하지만 각자 부담해야 하는 의무가 클 것이다. 출생 코호트가 작은 것은 개인에게 축복도 저주도 아니다. 많이 가져가고 많이 부담하면 된다.정부는 인구 문제를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출산율은 충분히 감소했다. 향후 우리나라 인구가 급감(急減)하지는 않는다. 평균수명이 상한(上限)에 접근하고 있어서 고령화도 멈출 것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인구는 현 수준을 유지하면서 작은 붐(boom)과 버스트(bust)가 반복될 것이다. 인구가 증가해야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끝없는 성장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부는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혼과 출산은 개인 또는 개별 가구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다. 전남 해남군 사례에서 확인되듯이 정부보조금은 다른 지역의 인구를 뺏어올 뿐이다. 현재의 인구 버스트 또한 지나갈 것이다. 버스트가 지나가면 붐이 온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攝理)이다.

2021-01-27 11:23:07

[매일춘추] 쏘가리는 생선인가

[매일춘추] 쏘가리는 생선인가

작년 전시회 때 황금물고기를 든 사이보그 작품을 보고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쟤는 왜 생선을 들고 있어요?"생선? 헉. 생선이라니, 생선이 아니라 물고기지! 순식간에 자연속의 푸른 생명이 마트에 누운 생선이 되어버렸다. 웃긴데 슬펐다. 나는 당황하여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작품 속의 사이보그가 왜 생선을 들고 있었는지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2014년 여름 손가락 인대를 다쳤다. 작업은 물 건너갔고 붕어낚시를 시작했다. 그 후 어렴풋이 알고 있던 루어낚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플라이낚시 비슷한 거라 생각하면 된다. 젤리같은 웜과 정교하고 아름다운 미노우, 갖가지 장비와 낚시 요령을 공부하며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우리나라 강에 그렇게 아름다운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근육질 몸매에 날카로운 이빨, 매끈한 피부에 표범무늬, 홀로그램 같은 금색 바탕에 활짝 피어난 매화 문양. 금테를 두른 까만 눈에 하얀 배. 높게 솟은 등가시의 아름다운 위용.깨끗하고 산소가 풍부한 계류에 매복하고 있다가 여울을 거슬러 사냥을 나가는 강계의 왕자. 살아있는 물고기만 먹고사는 야생의 사냥꾼. 그리고 겨울이면 용궁같은 깊은 소의 바위동굴에 들어가 꼼짝 않고 은신하는 신비주의자.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쏘가리 낚시의 고단함을. 하동, 구례의 섬진강에서부터 산청을 거슬러 남한강, 강원도 동강까지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 강가, 검은 짐승처럼 흐르는 밤의 강심에서,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내리고 바위를 넘나들며 황금물결 이는 강물 속을 한 없이 들여다보았다. 웨이더로 무장하고 강에 들 때면 온전히 나를 잊었다.그렇게 헤매다 청령포 물가에 섰을 때,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에 바짝 마른 몸, 유령처럼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유유자적 시작한 낚시가 도박처럼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머릿속엔 오로지 쏘가리를 잡고야 말겠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먹는 것도 잊고 자는 것도 잊고 이렇게까지 해야할 일인가 싶었다. 그러다가도 홀린 사람처럼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패배감이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독한 패배감. 실낱같은 희망을 얇은 합사 줄에 실어 던졌다. 닿지 않을 희망이었다. 투둑 툭툭툭… 문득 팽팽해진 줄 너머 묵직한 생명이 느껴졌다. 태아의 발길질처럼 내 심장을 두드려대는 생명의 고동이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지친 몸이 살아났다. 사냥하는 호랑이처럼 무서운 집중이 나를 집어삼켰다. 스피닝 릴을 감으며 강가로 나왔을 때, 그토록 바라던 쏘가리가 내 눈앞에 퍼덕이고 있었다.믿어지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쏘가리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금맥을 발견한 광부처럼, 산삼을 찾은 심마니처럼. 다음날 아침 밤새 묶어둔 쏘가리를 쓰다듬고 보듬으며 강으로 돌려보낼 때, 작업과 쏘가리 낚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생선이 아닌 쏘가리, 황금빛 아름다움을 잡았던 거다.리우 영상설치작가

2021-01-27 11: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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