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두통삼매경

두통의 진원지를 찾아 병원을 다녔습니다.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진행되는 중일까? 삶은 몰라도 되는 일에 애써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도 합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매번 괴롭고 힘들어 합니다. 두통의 원인과 두통의 근원을 모른 채, 두통의 진행에 복무하며 혹은 대립하며 자신만의 퍼즐을 맞추어 나갑니다. 복무하지 않고 대립하지 않아도 삶은 짓궂게 답 없는 질문을 자꾸 던지겠지만요.답을 쉽게 찾을 수 없을 땐 눈을 감습니다. 잠을 청합니다. 두통이 꿈속에 흰 길을 내는 듯, 답을 찾을 수 없으니 잠이 올 리 만무합니다. 잠을 다독여줄 '다정한 것'은 잠자리 어디에도 없습니다. 불면의 불편을 관찰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잠을 침잠시키는 두통, 고통의 모험이 시작되면서 잠의 도착을, 잠의 귀가를, 잠의 푸른 신호를 기다립니다.기다림이 길어지니까 쇠구슬이 왼쪽머리에서 굴러다니는 것 같습니다. 헬멧을 쓴 듯 머리전체가 압박(협박)에 시달립니다. 이 고통이 진짜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가 싶다가도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갚아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찰나에도 회로 선택을 잘못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엉뚱한 맥을 짚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두통의 진원이 아니라 기원을 찾는 게 먼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체에서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정신을 의심해 봐야 할 일입니다. 만병의 근원이 대체로 육체보다 정신이듯, 만병의 통치도 몸 치료보다는 마음 치료가 더 먼저이니까요. 감기처럼 흔하게 오고, 쉽게 찾아옵니다. 약을 먹어도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데 자꾸만 괴롭습니다.우리에게 닥친 일이 좋은지 나쁜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다고 류시화 시인은 말합니다.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고도 합니다. 실패와 고통 속에는 삶의 깨달음과 사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실패라고 하지만 그것은 불행이 아니라, 더 나은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하듯 깨달음으로 가기 위한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침표를 찍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 하는 것'처럼 두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해 봐야 할까요? 두통(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시킨처럼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이 틀리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잘 놀고, 보다 열심히 살며, 전에 없는 다정함을 발휘해야 할까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2-17 11:13:29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개의 분리불안, 해결책은?

빌(3·비글)이 병원을 찾았다. 보호자는 빌이 분리불안이 심해 혼자 있으면 온 집안을 어지럽히고 짖는다고 했다. 어제는 퇴근 후 빌의 구토 흔적을 발견했는데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피와 전선줄이 섞여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빌은 수술을 받지 않고 회복되었지만 보호자는 빌이 또 이물을 먹을까 걱정했다.개의 분리불안을 쉽게 이해하려면 사람의 불안장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불안장애를 가지는 사람은 이미 예민하고 짜증을 잘내며 닥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걱정하고 부정적인 상상을 하는 경향이 있다. 분리불안이 있는 개도 예민하고 부정적인 성향이 있어서 주인의 외출 후의 상황을 미리 두려워한다. 두려움이 지속될수록 신경계는 극도로 흥분되며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강박상태에서 다양한 이상행동을 하게 된다.개의 분리불안은 개의 평상 시 행동을 관찰하면 소인을 예측할 수 있다.1. 개가 혼자 있을 때의 행동을 관찰하자.CCTV를 통해 보호자가 없을 때 개의 행동을 관찰하자. 문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거나 문을 긁는다던가, 신발을 물고 다니거나 물건을 어지럽히는 행동, 하울링을 하거나 집요하게 핥는 등의 행동들은 불안증에 의한 이상행동일 가능성이 높다.2. 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관찰하자작은 소리에도 귀를 쫑긋거린다면 경계심을 가지는지 관찰하자.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데도 과민하게 움찔하거나 피하는 경향이 있는지를 관찰하자. 편안한 휴식과 깊은 수면을 취하지 못한다면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3. 주인의 외출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관찰하자.문을 열고 나간 후 곧바로 돌아온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외출 시간을 늘려보자. 그러면서 어떤 상황, 어느 정도의 시간을 외출했을 때부터 개가 불안해하는지를 체크하자.4. 주인에 대한 분리불안일까, 고립불안일까?혼자 있는 것 자체가 두려운 개도 있다. 주인과의 이별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집 밖의 오토바이 엔진음 등에 더 큰 두려움을 가지기도 한다.5. 주인에게 얼마나 집착하는지 관찰하자.어린이 분리불안은 엄마의 과잉보호가 주 원인이다. 개도 주인의 과잉 보살핌이 주인에 대한 의존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아무리 짧은 시간의 외출이라 하더라도 주인에 대한 의존증이 강한 개는 분리불안이 심할 수 밖에 없다.6. 개의 활동량이 많은지 관찰하자.활동적이며 호기심이 많은 개를 얌전하게 교육시키는 것은 학대일 수 있다. 스파니엘, 비글, 닥스훈트, 웰시코기를 비롯하여 산책을 좋아하고 달리기를 좋아하는 개는 넓은 들판을 달리며 에너지를 발산해야 행복하다. 활동적인 성향의 개를 얌전하게 지내기를 강요할 수록 개의 불안감은 높아진다.분리불안의 소인을 알아봤다면 불안증이 있는 개의 정서 안정에 도움되는 방법들을 알아보자.1. 착한 개는 피곤한 개다.개는 근육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심장이 벅찰 정도로 뛰어다니는 등 활동량이 많을 때 체내에서 건강한 호르몬이 분비되며 정서적으로 편안해진다.2. 실내에서는 탐색놀이가 좋다.외출이 어렵다면 실내에서라도 다양한 탐색놀이를 마련해주자. 장난감은 매일 새로운 것을 제공하고 가능하다면 더 오래 집중할 수 있는 장난감을 제공한다. 먹이탐색 놀이도 가능하다.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탐색하는 과정이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뇌의 민감도를 완화시켜준다.3. 외출을 긍정적으로 각인시키자.주인의 외출 후에는 즐거움과 보상이 따른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외출 전 개의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이별 인사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짧은 시간 문을 열고 외출 후 곧바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며 돌아온 후에는 개와 즐겁게 놀아주면서 외출에 대한 부정적인 두려움을 줄여나간다. 외출 시간을 늘려나가다 보면 개의 외출에 대한 부정적인 두려움이 완화된다.4. 은신처를 만들어 주자.모든 개는 두려울 때 구석지고 어두운 곳을 찾는 경향이 있다. 평상시 개가 휴식을 즐기는 공간에 개가 좋아하는 촉감의 담요를 깔아주고 아늑한 은신처를 만들어준다. 혼자있는 개가 두려움을 느낄 때 아늑한 은신처는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5. 집착증이 있는 개는 투명강아지처럼 대하자.개가 주인에게 집착을 보이며 안아달라며 짖거나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면 투명강아지처럼 대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표현을 무시당한 개가 잠시 어리둥절해 할 때 안아주는 습관이 중요하다. 외출 후 귀가했을 때도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는 투명강아지로 대하여야 한다. 흥분된 상태에서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개는 더 흥분하기 때문이다.아로마 요법과 어미견의 페르몬을 등을 이용하여 개의 정서적 안정을 유도하는 다양한 제품들이 나와있지만 임상 경험상 효과는 미약했다.이미 분리불안이 심하여 이물을 섭식하거나 자해 등의 위험이 있는 개에게는 신경안정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신경안정제 처방은 신경의 민감도를 완화시키는 효과는 즉각적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개가 분리불안으로 발전할 소인이 있음을 예측하고 불안감을 완화시키려는 노력들이 중요하다. 정서적 불안감을 완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은 피곤할 정도로 산책이나 운동을 시켜주는 것임을 명심하자.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12-17 09:30:39

송필용 박 무제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타다'가 가련하다

'타다'의 문제를 접하다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관점의 차이겠거니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보기도 했다. 그러나 관점의 차이가 아니었다. 결국은 무지하기 때문이다. 무지가 어떻게 '타다'의 문제까지 연결되는가. 우리가 보통 안다고 말할 때의 '앎'은 '어떤 것에 대하여 지식을 갖는 것'이라고 하나, 그것으로는 '앎'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앎'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일'이다. '앎'은 지식이 아니라 오히려 '발버둥'이다. 이 발버둥은 어디를 향하는가. 아직 이해되지 않은 곳,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을 향한다. 이 발버둥을 통해서 앎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한다. 즉 미래를 여는 것이다. 미래를 향하는 사람들은 항상 아는 것에 멈추지 않고, 아는 것을 근거로 해서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친 사람들이다. 아는 자는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고, 모르는 자는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주물러 자기 성을 쌓는다. 아는 자는 미래를 열지만, 무지한 자는 멈춰 서서 과거의 것들을 지킨다. 제대로 훈련된 지식인이라면, 미래를 여는 정방향에 서서 발버둥을 친다.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자기가 쌓은 성 밖으로 감히 나서지 못한다. 성을 나서지 않고 성 밖의 변화에 반응하려는 삶은 힘이 든다. 그런 사람들은 이 힘든 과정을 억지로 견디면서, 그것을 열심히 사는 것으로 포장하거나 심지어는 자신을 헌신하는 자로 각색한다. 어쨌든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아는 사람'이 있는 나라는 효율적이었고, 거기서 무지가 판을 치면 비효율적이었다. 이치는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다. 효율적인 일이 계속 이어지면 흥하고, 비효율이 계속 이어지면 망한다. 아는 자, 즉 발버둥을 칠 줄 아는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현상적인 차원에서 감각되는 것', 그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발버둥을 쳐서 감각을 넘어서는 차원으로까지 인식을 확대할 줄 안다. 시간을 돌려 조선 시대로 가보자. 어디선가 조총이 새로 발명되어 조선에까지 들어왔다. 물론 조총도 앎의 발버둥을 칠 줄 아는 누군가가 만들었다. 앎의 발버둥은 발명할 때 한 번만 행사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후로도 사용의 과정에서 계속될 기회가 생긴다. 앎의 발버둥을 치는 사람에게 조총은 보이고 만져지는 현상적 차원의 것이 다가 아니다. 보이고 만져지는 차원을 넘어서서 '구조'적인 차원까지 이해의 전선을 확장한다. 현상적 이해를 넘어 구조적 이해에 도달한다. 조총 이전의 것이면서 조총에 비견되는 것은 활이다. 조총은 활보다 사거리가 멀고 파괴력이 크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능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조총을 주력으로 구성할 전투의 양식이나 대오의 형성이나 훈련의 방식 등은 활이 구성하는 그것들과는 전혀 달라진다. 총체적으로 전쟁의 구조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럼 그 구조는 어떻게 해서 달라지는가. 바로 재료가 달라지고, 제조법이 달라지고, 작동 메커니즘이 달라지면서 다른 구조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조총은 활과 다른 구조로 확장되면서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든다. 이것이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해한다는 뜻이다. 보이고 만져지는 현상적 차원에 대해서 '앎의 발버둥'이 쳐져야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구조의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 무지하면, 이런 인식 차원의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이고 만져지는 단계의 현상적 인식에 갇혀 있으면 조총과 활의 차이는 크지 않다. 활에 화살을 걸어 쏠 준비를 하는 것에 익숙해 있는 사람에게는 조총에 화약을 쑤셔 넣어 쏠 준비를 하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게 보일 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조총이 무슨 대단한 신무기냐? 별것도 아니면서 수선스럽기만 하다. 차라리 활이 더 편하다." 조선 시대에도 조총이 들어온 초기에 이런 흐름이 있었다. 이것이 현상적 인식에 머무르는 무지한 방식이다. 구조에 대한 인식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현상적인 단계의 기능에 파묻힌 인식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기능'만 보일 뿐이다. 기능만 보면 기능적인 차이로만 그 혁신의 가치를 매기고, 혁신을 별 것 아닌 것으로 과소평가한다. 과소평가하면, 적응이 늦고, 적응이 늦으면 뒤처진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활과 조총은 전혀 다른 물건이다. 무엇인가를 발사하여 사람을 죽이는 기능은 같지만, 각각이 펼치는 구조적인 변화와 맥락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기능적인 차이를 넘어서서 구조와 맥락의 차이를 아는 정도가 되면, 조총에 적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장전하기에 들어가는 시간을 전술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고안할 것이다. 즉 열을 지어 서서 앞줄에서 발사를 마치면, 그 시간에 화약을 채우던 뒷 줄에서 이어서 사격을 하는 방식으로 전혀 다른 전투 대오를 개발하는 것이다. 전장의 또 다른 세계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조총과 활을 너무 긴 시간 같은 차원에 놓고 비교하며 물고 늘어지다가는 전장의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없다. 조총과 활이 기능적으로는 유사하지만, 구조적으로 전혀 다른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다. 미래를 여는 자와 과거에 닫힌 자 사이의 차이다. '타다'와 택시는 기능적으로 보면 유사하게 보일 수도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두 가지이다. 작동 시스템이 다르고 운영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조총과 활의 차이와 유사하다. '타다'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들이다. "택시보다 별로 혁신적이지도 않다." 조총이 새로 등장했을 때, 활에 익숙한 사람들이 조총에 대해서 하는 말과 똑같다. '타다'는 택시가 아니다. 자동차는 마차가 아니고, 택시는 인력거가 아닌 것과 같다. 심각한 일은 '타다'를 허용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단순히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새로 등장한 것을 환영하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들을 지키는 일에 더 익숙하도록 훈련되어 있고, 미래를 여는 일보다는 과거를 지키는 일에 더 익숙하도록 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끔찍한 올가미나 덫에 갇힌 형국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환영하거나 미래를 여는 시도를 하는 것보다 이미 있는 것을 보호하고 과거를 따지는 일에 몰두해야 진실한 삶을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도록 훈련되어 있다. 이는 질문보다는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것과 연관이 있다. 대답은 이미 있는 이론과 지식을 그대로 담아 두었다가 누가 요구할 때 그대로 뱉어내는 일이다. 이때 승부는 누가 더 빨리 뱉어내는가, 누가 더 많이 뱉어내는가, 누가 더 원래 모습 그대로 뱉어내는가에 좌우된다. 대답에 빠지면, '원래 모습'을 중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원래 모습은 시제로 과거에 해당한다. 그래서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인재들이 채우는 사회는 모든 문제가 과거 논쟁으로 빠지고, 과거를 파헤치는 일에 빠져 있어야 진실한 삶을 사는 느낌이 들게 되어있다. 질문은 궁금증과 호기심이 튀어나오는 일인데, 이 궁금증과 호기심은 본질적으로 아직 해석되지 않은 세계 즉 미래를 향한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질문하는 힘은 매우 약하고 대답하는 능력은 매우 강하다. 이 말의 의미는 간단하다. 우리에게는 과거에 갇히기 쉬운 경향이 있고, 미래를 열기에는 매우 어려운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갇힌다는 뜻이 제도적으로는 규제에 갇히는 것으로 나타날 뿐이다. 새로 등장하는 것에 적극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산업화 시기였다. 산업화를 지내고 나서 민주화를 거치며 지금까지는 다시 과거에 갇혀버렸다. 과거에 갇힌 관료들은 규제를 앞세운다. 모든 새로움은 규제에 갇혀 싹을 틔우지 못하고 고사한다. 드론이 그랬다. 규제를 앞세운 한국의 드론 산업은 처음에는 기술력이 중국보다 앞섰지만, 이제는 존재감이 없어졌고, 규제를 적용하기 전에 먼저 허용을 선택한 중국의 드론 산업은 후발주자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제패하였다. 여기서 발생했어야 할 이익을 놓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운 바가 없다. 대통령이 나서서 아무리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발표해도 인공지능의 토대인 데이터를 모으는 일이 규제에 갇혀 순조롭지 않다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를 모으지 못하면 4차 산업혁명은 없다. 당연한 일 아닌가. 생명공학은 어떤가. 수많은 규제에 갇혀 새로운 시도는 아예 엄두를 못 낸다. 새로운 기술력으로 가능해진 원격의료도 불가능하다. 이 혁명의 시기에 혁명의 흐름에 맞춰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4차 산업 혁명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가 '공유 경제'이다. '타다'의 문제는 단순히 '타다'에 한정되지 않는다. 새로운 형태의 공유 경제를 경험하느냐 못하느냐와 직결된다. 이런 경험의 정도가 점점 쌓이면서 4차 산업 혁명의 적응 능력을 기르는 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타다'의 금지는 이 적응 능력의 축적을 금지하는 것과 같다. 2년 전에 워싱턴에 갈 일이 있었다. 가기 전부터 나는 '우버'를 타볼 계획을 세웠다. '우버'을 타면서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 속으로 진입한 느낌을 받았다. 그 편리함도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소비자의 선택이 매우 강한 주도권을 행사하며 작동되는 매우 특별한 느낌도 받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타다' 논쟁에서 가장 우스운 일은 소비자(이용자)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왜 소비자에게는 묻지 않는가. 고정된 제도의 틀만 다루다 보니,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소비자를 고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진실은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소비자에게서 확인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경험과 이용의 주체는 소비자이다. 나중에는 결국 소비자가 결정한다. 문명의 흐름에 맞는 새 일을 시도하는 일 자체도 어려운데, 과거에 갇힌 규제로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더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의 국가는 철저하게 과거에 갇혔다. 격려는 못 할망정 방해는 말아야 한다. 다른 나라들과 경쟁해야 할 사람들을 규제와 싸우게 하여 진을 빼는 일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일을 꿈꾸는 사람이 허가권을 가진 관청을 떠올리기만 해도 우선 가슴이 답답해진다면, 이는 발전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최대의 격려는 허용하는 일이다. 국가의 발전은 규제에 있지 않고 허용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미래는 규제할 수 없다』는 구태언의 책 제목이 절규처럼 들려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국가를 관리하는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은 한 번 읽어봤으면 하는 시 한 토막을 적는다. "얼마 전에 새로 번지가 생긴 땅에/한 채의 집을 지은 나는/세 식구의 가장으로서/나의 하늘과/별과/구름과/시에게 이르노니/너희 마음대로/떴다 지고/흐르다 멈추고/왔다 가거라!(이창기 '즐거운 소라게')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건명원 초대원장) ifston@daum.net

2019-12-16 18:00:00

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이야기가 있는 겨울밤

이야기가 울리는 방은 마법의 공간이다. 신화와 전설과 삶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상상력과 마음과 영혼을 키운다. 긴 겨울밤이면 어린 시절, 할머니는 수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셨다. 이야기귀신 이야기, 여우누이와 같은 전래동화와 삼국지 이야기, 설화와 전설과 민담들. 여우누이 이야기에서 할머니의 여우 울음소리가 너무 무서워 "제발 그냥 말하듯이 이야기해줘!" 하곤 했었다.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들이었다. 혼자 일본으로 건너갔던 일, 태풍이 불어 양철 지붕에 목이 날아간 이웃집 여자 이야기들. 나는 이야기에 취해 방 밖의 찬바람과 어둠 속 귀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야기 속에서 하늘과 땅과 사람들의 삶은 연결되어 하나이고, 죽음도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저절로 알게 되었고, 그때 온 평화가 지금까지 나에게 있다.문자로 읽는 독서가 아니라 소리의 울림이 있는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다정하고 편안하게 한다. 안전한 공간에서 삶과 죽음과 배반과 복수, 폭력과 파괴의 이야기들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준다. 게다가 친밀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지는 이야기는, 작은 방 안에서 마을과 세상 밖으로 우리를 안내한다.지금 여기 이전의 인연의 세계로 이끌며, 현실 저 너머의 세계, 잉여현실의 세계로 듣는 이들을 데려간다. 숨결을 통해 울리는 소리의 진동과 음성의 고저와 장단은 리듬을 만들어낸다. 숨결과 리듬에 얹힌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의식과 감정의 세계, 그 아래 그림자 진 욕망과 얼어붙은 감각들을 어루만지고 살아나게 한다.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 지식도 쌓이고 간접 경험을 해 인성도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별로 그렇지 않다. 찬바람이 마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으스스한 밤이면, 이불 속에 다리를 묻고 둘러앉아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시라. 특히 불안과 두려움이 많은 아이들에게는.

2019-12-16 18:00:00

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 (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인수일 교수의 과학산책] 이세돌 vs AI (인공지능)

우리 사회에 인공지능(AI)이라는 화두를 던진 가장 큰 사건은 단연코 알파고(AlphaGo·구글 딥마인드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일 것이다. 지난 2016년 3월 총 5회에 걸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97년 IBM에서 만든 인공지능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인 가리 파스파로프(러시아)를 상대로 승리하였을 때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이 바둑으로 인간을 넘어서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뒤에도 컴퓨터가 세계 최고 기사 중 한 명인 이세돌 9단을 넘어설 것이라고는 감히 예단하지 못했다. 기술의 진보가 상당했음에도 인간에게 거는 기대가 더 컸던 것이다. 대국 당사자인 이세돌 기사도 자신의 압승을 예측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이세돌 본인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대국 전날 알았다고 한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구글 CEO 에릭 슈밋은 '누가 이기든 인류의 승리'라는 명언을 남겼다.이세돌의 승리로 싱겁게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알파고가 내리 이기자 사람들을 TV 앞으로 끌어모았고 연일 화제가 되었다. 3월 13일에 진행된 제4국에서 이세돌 9단의 첫 승리는 인류사에 남긴 놀라운 반전으로 기록되었다. 알파고 팝업창으로 "AlphaGo resigns. 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이라는 메시지를 보이며 패배를 선언했다. 이날 순간 최고 시청률은 14.3%를 기록했다.이세돌의 78수는 '신의 한 수'라 지칭되며 인류에 희망을 주었고 알파고 개발자들은 버그로 인한 컴퓨터의 실수에 당황했다. 알파고와 대국 이후 한국에는 인공지능 광풍이 불어왔고 AI 교육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얼마 전 이세돌 9단의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아직도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할 젊음과 실력이 있음에도 돌을 던진 것이다. 6세 때부터 바둑을 배웠고, 바둑에 대해 두 사람이 반상 위에서 만들어가는 예술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이세돌 9단은 인터뷰에서 인간이 아닌 AI로부터 바둑을 배우는 현실 앞에서 매우 당황했다는 것이다.우리가 AI라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접하면서 미래에는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의 창작 영역인 시나 소설에까지도 진출했다. 심지어 가짜 뉴스를 생산하기도 하고, 잡아낼 수도 있으며 무인자동차, 스마트 팩토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인공지능이 필수적인 기능과 역할을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주눅 들거나 후퇴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는 인류에게 더 큰 행복과 상상 이상의 재미를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다만 인공지능 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도자들의 선택이 중요한 변수일 것이다.18일부터 열리는 3차례의 은퇴 기념 대국의 상대는 국산 바둑 프로그램 '한돌'이다. '알파고 쇼크' 이후 인공지능의 바둑 실력은 더 발전했다고 한다. 이번 은퇴 대국은 이세돌 9단이 두 점을 깔고 시작하는 '치수 고치기' 방식으로 치러진다. 첫 대결에서 이세돌이 이기면 2국은 호선(互先)으로 치르고, 지면 석 점을 까는 방식이다.바둑의 신이라는 이세돌 9단이 AI를 상대로 치수 고치기 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쉽지만 3번의 대국에서 인류가 어디까지 선전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2019-12-16 17:29:50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堅忍不拔(견인불발): 참고 견뎌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달성할 수 있다

소동파(蘇東坡)로 더 잘 알려진 북송의 시인 소식(蘇軾)이 조조를 평한 '조조론'(晁錯論)에는 대업을 이룬 자는 "뛰어난 재주만이 아니라(不唯有超世之才) 굳게 견디며 마음이 빼앗기지 않는 의지가 있다(必有堅忍不拔之志)"는 구절이 있다. 조조(晁錯)는 한나라 문제(文帝)와 태자(太子)의 신임을 받은 지낭(智囊·지혜 주머니)이었으나 각박한 성격으로 주위의 미움을 샀다. 문제가 죽고 태자가 경제(景帝)에 즉위하자 많은 계책을 실현했다. 경제 2년, 어사대부(御史大夫·최고 감찰관)에 오른 후 그는 세력이 커진 제후들의 봉지를 줄이는 삭번책(削藩策)을 실시했다. 제후의 세력을 약화시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조조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황상이 막 즉위했고 너는 어사대부로서 조정을 위해야 하거늘 제후들의 봉지를 삭탈하여 종친끼리 골육상잔(骨肉相殘)하게 만들었으니 저들은 너를 원망할 것이다. 왜 그리하였느냐?"고 하니, "그들이 강하면 천자의 권위가 드러나지 않고 나라가 안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 했다. 아버지는 "유씨 집안이 편안해지니 우리 조씨 집안이 위태로워지는구나"라고 한탄하며 목숨을 끊었다.제후들 중 반 이상이 유씨(劉氏) 황친이었다. 이들은 "간신 조조를 처단한다"며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조조는 정적 원앙(袁盎) 등의 참소(讒訴)로 관복을 입은 채 참살당했다. 조조는 제후들의 반발을 예견하면서도 나라를 반석에 올리기 위해 견인불발했던 것이다. 그의 삭번책으로 왕권이 강화되고 나라는 안정되었다.중국 한(漢)나라 문제(文帝)와 경제(景帝) 시절 선정을 베풀어 백성의 민심을 크게 안정시킨 치세를 '문경지치'(文景之治)라 하는데 당나라의 '정관지치'(貞觀之治)와 함께 중국 역사상 태평성대를 상징한다. 참고 견뎌 목표를 이룬다는 견인지종(堅忍至終)도 같은 말이다.기해(己亥)년도 저문다. 국가든 개인이든 못 이룬 일들이 더 많을 것이다. 견인불발의 의지로 2020년 경자년(庚子年·쥐띠)을 맞이하자.

2019-12-16 17:28:29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병자호란과 최명길의 선택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추웠던 겨울은 언제일까? 373년 전인 1636년 12월 15일부터 47일간 지속된 남한산성의 겨울이었을 것이다. 남한산성의 겨울은 강추위는 물론이고 온 국토와 백성이 철저히 유린되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겨울로 기억된다. 12월 9일 압록강을 넘은 지 6일 만에 청나라군은 한양에 입성하였고, 인조는 강화도 피난길마저 끊기자 제2의 피난처인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전 국토가 청나라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수많은 백성들이 희생당하는 현실 속에서도 인조를 비롯한 남한산성의 수뇌부는 여전히 척화(斥和)를 외치고 있었다. 무력에 의한 멸망이 가시화되었을 무렵, 그래도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주화(主和)를 주장한 관료가 있었다. 최명길(崔鳴吉·1586~1647)이었다. 최악의 위기 상황 속에 현실적인 타개책을 찾았던 최명길의 선택은 인조는 물론이고 조선을 살리는 길이었다.최명길의 실리적인 선택에는 당시 주류인 주자성리학에만 매몰되지 않고, 지행합일을 강조하는 양명학 사상을 접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많다. 전세가 계속 불리해지자 인조는 마침내 최명길에게 항복을 청하는 국서의 작성을 명했다. 최명길의 국서를 본 김상헌은 그 자리에서 이런 치욕을 당할 수 없다면서 국서를 찢어버리며 통곡했다. 최명길은 "대감이 찢었으니 우리들은 마땅히 주워야 한다"며 답서를 다시 썼다.주화와 척화라는 다른 신념을 가진 두 사람의 대립은 2017년 영화 남한산성에서 영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삼전도(三田渡·현재의 서울 석촌호수 부근)에 마련되어 있던 수항단으로 내려가 청나라 태종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림)라는 치욕적인 항복 의식을 하였다. 그리고 정축화약(丁丑和約)이 맺어졌다. 청과 조선과의 사이에 군신 관계를 맺고 명나라 연호 대신 청나라 연호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두 왕자를 청나라에 인질로 보낼 것 등이 화약의 주요 내용이었다. 하나같이 굴욕적인 조항들이었다.삼전도 굴욕 후인 1637년 4월 사신으로 청나라 심양에 간 최명길은 이들의 징병 요청을 거절하고 조선인 포로 수천 명을 속환(贖還)하는 데도 기여하는 등 전후 수습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642년 8월 영의정으로 있을 때 명나라와 연락을 도모한 일이 발각되어 청나라로 압송돼 심양의 북관(北館)에 억류되었다. 1643년 4월에는 남관(南館)으로 옮겨졌는데 이곳에서 이미 심양에 잡혀와 있던 김상헌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다.최명길과 김상헌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국 땅 감옥에서 만났다. 남한산성에서는 주화와 척화를 놓고 대립했지만 심양의 감옥에서는 시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했다고 한다. 1644년 명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킨 청나라는 조선과 명나라의 연결고리가 확실히 사라지자 1645년 2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귀국을 허락하였고 최명길도 이때 귀국했다.1647년 62세를 일기로 사망한 최명길의 졸기(卒記)에는 "추숭(追崇·인조의 아버지 원종 추숭)과 화의론(和議論)을 힘써 주장함으로써 청의(淸議)에 버림을 받았다. 남한산성의 변란 때는 척화를 주장한 대신을 협박해 보냄으로써 사감(私感)을 풀었다"고 그의 주화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위급한 경우를 만나면 앞장서서 피하지 않았고 일에 임하면 칼로 쪼개듯 분명히 처리하여 미칠 사람이 없었으니 역시 한 시대를 구제한 재상이라 하겠다"고 적어 '한 시대를 구제한 재상'으로 높이 평가한 부분도 있다.흔히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한다고 한다. 병자호란이라는 최대의 국난을 맞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국가와 민생의 안정에 헌신했던 최명길. 위기의 시기, 이념과 명분보다는 국익과 실리를 찾았던 그의 모습은 현재에도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2019-12-16 17:26:07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예술경영은 필요한가?

매일춘추를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3개월에 접어들었다. 대부분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한 고민거리를 공유했던 것 같다. 이제 마지막 3회 차를 나의 오랜 고민거리를 이야기하는데 할애하려고 한다. 긴 이야기가 될 것이고 쓸데없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진정성을 의심받는 일은 없으면 한다. 대구는 공연을 제작하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극장과 기술스테프, 또 소극장이 밀집되어 있는 대명공연거리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공연제작을 해보면 공연을 찾는 관객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단순히 마케팅의 문제일까?예술은 뭘까? 예술경영은 필요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요와 공급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효과적인 관계를 위해 마케팅은 발전해왔고 이제 예술경영, 문화경영 등의 이름으로 예술생산물에 깊이 관여하는 문화산업시대를 맞이했다. 경영의 목적은 이윤추구에 있으며 이윤을 남기기 위해 많은 소비자가 찾는 생산물을 만들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필립 코틀러, 조앤 셰프의 저서 '전석매진'에서는 마케팅 지향을 시대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20세기 무렵 상품의 질과 쓰임의 가치를 갖는다면 충분하다고 여긴 상품 지향적 마케팅에서 공격적인 광고, 대인판매, 판촉활동 등 수요를 자극하는 판매 지향적 마케팅을 거쳐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과 요구, 선호와 만족을 연구하여 고객에서부터 시작하는 고객 지향적 마케팅으로 변화되었다. 결국 예술도 이윤의 도구가 되어 관객들의 기호와 취향을 쫓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그렇다면 예술가는 관객을 위한 예술을 해야 하는가? 관객을 위한 예술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럼 반대로 관객이 찾지 않는 예술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는가? 연극 연출가인 나는 이러한 질문 앞에 딜레마가 생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관객의 수가 예술의 가치와 비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터파크티켓 판매 1순위의 공연이 예술적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예술의 가치는 무엇이며 누가 판단하느냐' 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예술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모더니즘을 거쳐 포스트모더니즘, 패러디와 혼성모방(pastiche), 임의성과 우연성, 무질서에 대한 강조, 다양한 의미의 추구, 탈장르화, 자기반영성, 해체주의, 데카르트의 절대자아는 라캉에 의해 해체되었고 모나리자의 미소는 팝아트에 의해 변형, 재현되었다. 이제 예술비평은 이론자들의 유물이 되었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었다.만약 예술은 가치를 매길 수 없으며 그 대상이 될 수 없다면 가치를 판매해야하는 마케팅은 예술과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과연 예술 안에 경영의 개념이 적용될 수 있을까?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2-16 11:32:14

곽우은 대구보건고 교사

[기고] 한 줄의 힘

국민들의 건설적인 정책 참여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민 제안제도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국민공감 정책에 대해 보다 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안 방법과 제안 양식을 더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일명 '한 줄 쓰기 아이디어' 방안을 제안한다.한 줄이지만 여기에 구체적인 모든 표현을 다 담을 수 있으며, 중복되거나 군더더기 없이 압축하여 핵심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현재 제안 양식은 대부분 현황 및 문제점, 개선 방안, 기대 효과 등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요건과 분량으로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위 양식의 모든 내용을 포함한 '한 줄 아이디어 쓰기' 방법을 제안해 본다.필자는 올해 행정안전부에 명절 기간(설날, 추석) 타지에서 고향을 방문하는 분들이 이동 시 행안부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자신이 원하는 지역(동별로)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학교, 교회, 관공서, 지역 공용 주차장, 그외 개방을 허락한 기관의 장소 등을 문자로 무료로 안내해주는 제안을 해 채택이 되었다. 제안 시 주어진 양식인 현황 및 문제점, 개선 방안, 기대 효과 순으로 글을 적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한 줄로 압축해서 얼마든지 표현할 수도 있다. 바로 '명절 기간 무료 주차공간 무료 문자알림 행안부 콜센터 서비스 실시'로 압축하여 제안할 수 있다.얼마 전에는 중소벤처기업부에 제조기업의 스타트업 제품 제작 비용이 과다하다고 하여 스타트업의 창업제품 제작 지원을 돕는 엔젤 제조기업 리스트를 선정하고 중기부에서 검증되고 착한 엔젤 제조기업을 분야별로 스타트업들에게 안내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채택이 된 적이 있다. 그래서 위 제안 내용도 한 줄로 표현해 보고자 한다. 바로 '스타트업 제품 제작을 돕는 엔젤 제조기업 리스트 안내'라는 문구로 압축하여 핵심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이처럼 한 줄 아이디어 제안하기 활성화를 추진하게 되면 제안서 양식에 따른 많은 요건과 분량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며 간편하고 편리하게 보다 더 많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한 줄 아이디어 제안을 직종별, 가구별, 주제별 등 다양하게 구성하여 매월 특색 있게 운영할 수도 있다. 그러면 보다 더 광범위한 계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그리고 만약 한 줄 아이디어가 내용이 부족하여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 내용 추가가 필요하다면 토론방을 개설하여 담당 공무원과 제안자가 추가로 의견을 더 나눌 수도 있다.아이디어 참여를 위해 사이트 회원 가입과 아이디어 제안 방법의 절차 등도 더 간편해져야 한다. 사이트 회원 가입 등도 최소한의 휴대폰 번호만 입력하도록 하여 누구나 쉽고 편리하고 가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제안 방법 등도 로그인만 하면 또 다른 인증을 거치지 않고 바로 아이디어를 한 줄 입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디어 제안 결과 안내 시 용어의 전환도 필요하다. '채택, 불채택'이라는 양면성의 용어에서 '수용, 공감'이라는 용어로 변경하여 국민들의 제안을 하나하나 소중하게 경청한다는 마음을 국민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앞으로는 단순 비판과 무관심을 넘어 모든 국민들이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이다. 한 줄 쓰기 아이디어 운동이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진주 같은 아이디어를 많이 캐내 우리 사회의 따뜻한 마중물이 되길 기대해본다.

2019-12-16 11:31:31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법학박사(국제법)/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 창] 잃어버린 이름 '동해', 어떻게 되찾을 것인가?

많은 나라가 '일본해' 표기한 바다'동해' 병기 위해 25년 넘게 노력각종 지도 병기 비율 40% 선 추정정부'기관'국민 꾸준한 성원 필요지난 주말 동해연구회가 주최한 '독도동해 워크숍'에 다녀왔다. 대다수 외국 지도가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한 바다에 우리 이름 '동해'(East Sea)를 되찾아 넣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지 25년이 넘게 지났다. 워크숍은 '동해' 이름을 되찾기 위한 그간 우리의 노력을 되짚어 보고, 향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국제사회에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인식한 우리 정부는 1992년 제6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에서 '일본해' 단독 표기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제기한다. 이에 앞서 정부는 관계 부처 회의를 통하여 '동해'와 '일본해' 병기 추진 방침을 결정한다. 이후 "동해 명칭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키고 그에 필요한 학술 연구와 사업들을 조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994년 외무부(현 외교부) 주도로 동해연구회를 설립한다. 창립 이후 동해연구회는 연구·출판 사업에 더하여 국제 세미나와 워크숍을 개최하고, 유엔지명회의와 국제수로기구(IHO) 등 국제회의에 참석, 정부 대표단에 대한 자문 역할을 수행해 왔다.이번 워크숍에서는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동해'와 '일본해' 병기 방침이 과연 옳은지에 관한 근본적 문제 제기부터, 동해의 영문 표기 방식('East Sea' 혹은 'Donghae') 등 다양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동해' 혹은 '한국해' 단독 표기 주장이나, '청해'나 '평화의 바다' 등 제3의 이름을 붙이자는 주장 등도 검토되었다. 그러나 결론은 '동해' 병기를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었다.그 첫째 논거는 UNCSGN 및 IHO 결의다. UNCSGN 결의 III/20과 IHO 기술결의 A.4.2는 2개국 이상이 공유하는 지형에 대하여 각국이 다른 이름을 갖고 있을 경우, 관계국은 협상을 통하여 단일 이름을 갖도록 노력하되,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에는 각국이 사용하는 이름을 병기토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 양국은 단일 이름 채택을 위한 협상을 하되, 양국이 합의하기 전에는 '동해/일본해'를 병기하는 것이 UN과 IHO 결의에 부합하는 것이다.둘째로 '동해/일본해' 병기가 아닌 '동해' 단독 표기 주장에 대해서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연유가 어찌 되었던 '일본해'란 이름이 지난 100년 이상 국제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를 모두 '동해'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과연 현실적 타당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어떤 주장을 할 때에는 합리성과 논리적 타당성, 그리고 무엇보다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셋째, 제3의 이름을 채택하자는 주장은 IHO나 UNCSGN 결의 취지와 부합하는 면도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일본도 '일본해'만 고집하지 않고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향후 사태 진전에 따라 검토될 수도 있겠다.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일관성 유지 필요성이다. 정부는 1992년 '동해(East Sea)/일본해(Sea of Japan)' 병기 추진을 결정한 이후 각종 국제회의나 지도제작사, 지리교사 등을 대상으로 동해 병기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여 왔다. 그 결과 1992년 당시 2.8%에 불과하였던 '동해/일본해' 병기 비율이 2009년에는 28%를 넘었다. 이후 정부는 병기 비율을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지금은 40% 정도까지 올라가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해 단독 표기를 주장한다든지, 영문 명칭을 바꾼다든지 혹은 제3의 이름을 주장한다든지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1992년 이래 4반세기가 넘도록 동해 단독 표기도 아닌 병기조차 이루지 못했느냐는 질책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한 세기 이상 지속되어 오던 관행을 바꾸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이름 '동해'를 되찾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인내를 갖고 정부를 비롯한 관련 기관·단체의 노력을 꾸준히 성원할 필요가 있다.

2019-12-16 11:31:21

황치동 대구 동부소뱡서 예방홍보주임

[기고] 내 가족을 지키는 소방안전교육

차가워진 날씨에 잦은 화재를 접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평소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공간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기본적인 화재예방 요령과 안전의식, 화재 시 행동 요령을 익힌다면 더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화재를 먼저 방지할 수 있다면 물론 가장 좋다. 그러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사는 공동주택 화재의 경우 더 그렇다.공동주택은 아래에서 위로 타는 불의 성질과 높이로 인한 인명구조의 어려움 때문에 화재에 더 취약하다. 2010년 발생한 부산 마린시티 화재 사고는 공동주택 화재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4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38층까지 타고 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이었다. 다행히 이 사고는 5명의 부상으로 끝났지만, 73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74명이 다친 런던 그린펠타워 화재 사고가 먼 나라의 일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최근 5년간 공동주택 화재로 인한 재산 피해는 3.5%에 불과했지만, 인명 피해는 2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다른 집에서 불이 났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채 아예 대피하지 못하거나 비상구를 비롯한 피난시설을 못 찾아 피해를 입는 사상자들이 많았다.공동주택 화재가 특히 더 무서운 이유는 이렇게 큰 피해를 입히면서도 매우 사소한 이유로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최근 5년간 공동주택에서 2만4천85건의 화재가 발생, 이로 인해 285명이 숨지고 1천996명이 다치는 등 모두 2천281명의 사상자가 나왔다.이 가운데 단순한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한 것이 61.8%(1만4천872건)로 가장 많았다. 음식물 조리 중에 자리를 비웠거나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가 대부분이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셈이다.화재가 일어난 사실을 알더라도 피난시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2016년에는 지상 13층 아파트에서 불이 나자 당황한 나머지 발코니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다 추락한 사건도 있었다.반면 2016년 부산에서 일어난 화재에서는 불길이 현관문까지 번져 큰 위험에 몰렸음에도 침착하게 아파트 발코니에 있는 경량 칸막이를 통해 일가족 3명이 옆집을 통해 대피에 성공했던 사례가 있었다. 피난시설에 대한 정보 제공이 중요한 이유다. 하인리히는 도미노 이론을 통해 "안전교육을 통해 인간의 불안전한 행동을 수정하면 사고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대구 동부소방서는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찾아가는 공동주택 자율 소방안전교실'을 운영하며 대피의 중요성과 초기 대처 방법에 대한 영상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실제 소화기를 활용하여 체험하는 교육을 운영, 관계자 및 입주민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공동주택 입주민들의 생사는 기본적인 화재 예방 수칙 준수는 물론, 평소 교육과 실습을 통해 화재 시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평소 꾸준한 교육을 받더라도 예상치 못한 화재나 응급상황에서는 배운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자주 화재 예방 교육과 심폐소생술 등 실습을 받고, 주거지역 내 소방시설이나 화재 대비책 등을 미리 확인하는 것만이 예기치 못한 화재 사고에서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2019-12-15 14:58:13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트로트와 오페라는 평등하다

대중적인 것은 저급하다는 인식 문화예술 대하는 정부의 현주소 모든 정책의 중심에 국민을 놓고 국민의 음악을 더 소중히 여겨야'국민 MC'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데뷔했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아침 생방송에도 나와 반짝이 옷을 입고 메뚜기 춤을 추며 자신을 어필했다. 그의 깜짝 등장에 시청자들은 손뼉을 쳤고 나중에 알게 된 사람들도 놀라워했다. 특히나 트로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유재석이 트로트 중흥에 불씨를 댕겼다며 반색했다."트로트는 돌려서 얘기 안 하거든요." 그의 말처럼 트로트는 직설적이다. 당신이 부르면 태평양을 건너서라도 무조건 달려갈 거라고 속 시원하게 말해준다.출근길 버스부터 돌아오는 월급날까지, 내내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에게 음악은 느긋하게 기다리며 음미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먹고사느라 숨 가쁜 이에게 음악을 듣고 이해하려면 먼저 학습과 훈련을 통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속 모르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트로트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듣고 즐기면 된다. 듣고 있으면 위로가 되고 함께 부를 땐 하나가 되며 혼자 흥얼거릴 땐 맺힌 것이 풀리기도 하는 그런 국민의 음악이다. 그래서 '국민 MC'와 트로트는 꽤 잘 어울린다.사실, 이전부터 트로트는 세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두와 잘 통했다. '소녀시대' 서현은 주현미와 듀엣 곡 '짜라자짜'를 발표했고 '레드벨벳'은 TV에 나와 배호의 '안녕'을 노래했다.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은 록밴드인 '트랙스'의 김정모와 함께 '울산바위'를 불렀고 태연도 '사랑밖엔 난 몰라'를 그만의 감성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걸 그룹 '티아라'의 수많은 히트곡에도 '희자매'와 닮은 듯한 이른바 '뽕필'이 있었다.이렇듯 트로트는 우리 음악 곳곳에 영감을 불어넣고 세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감동을 전해주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예술이 아니다. 이는 대중음악의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다. 팬, 음반 제작사, 연예 기획사, 그리고 방송국에서까지 모두 대중음악을 예술이라 하고 대중가수를 '아티스트'라 칭하지만 정부는 그러지 않는다. 앞에 '대중'이 붙는 건 예술이 아니고 그걸 창작하고 표현하는 사람 또한 예술인이 아니다.얼마 전 방탄소년단의 군 입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나라가 부르면 가면 되고, 우리는 기다리면 되고'라며 팬들이 일찌감치 멋지고 현명한 답안을 내놓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논란은 아무 현실성 없는 헛된 것일 뿐이다. 정부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방탄소년단이 병역특례의 대상이 되려면 일단 '예술인'부터 되어야 한다. 국위 선양을 얼마만큼 했느냐는 그다음의 문제다. 즉, 그들은 그들의 춤이 아니라 이를테면 발레를 춰야 하고 힙합이나 랩 대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불러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정해 놓은 예술인에 속하게 된다.그런 다음 병역특례의 대상이 되려면 '그래미'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아니라 유럽의 어느 이름 모를 콩쿠르라 할지라도 클래식 경연대회에 가서 상을 받아 와야 한다.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문화예술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정책이자 시스템이다. 그야말로 대중적인 것은 곧 저급한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가장 대중적인 음악인 트로트는 가장 낮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건 결국 대중도 저급한 존재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이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범죄 전력이 있는 연예인을 종신토록 방송에 못 나오게 하자는 내용이다. 범죄가 조장될 수 있으니 그걸 막자는 취지에서란다. '직업 수행의 자유'에 관한 위헌 소지는 차치하고서도 어이없고 황당하다. 대중과 대중문화를 업신여기는 인식의 전형처럼 보인다.그럴 거면 세금으로 사는 자신들에게 먼저 그런 제재를 가하는 게 맞다. 음주운전이라도 하다 걸리면 평생 출마를 못 하도록 말이다. 더불어 자신들이 함부로 여기는 그 연예인들만큼이라도 국민을 기쁘게 해 준 적이 있는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그리고 이젠 문화예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관련된 모든 정책의 중심에는 국민이 있어야 한다. 트로트와 오페라를 평등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하고 그래도 굳이 한 가지를 고르라면 국민을 존중하듯 국민의 음악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2019-12-15 14:56:26

비단에 담채, 16.5×13.3㎝, 간송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권용정(1801~1861) '부상휴식'

'부상휴식(負商休息)'의 소재나 화풍은 조선후기 화원 풍속화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관풍찰속(觀風察俗)의 감상용이라기보다 동시대 한 직업인을 그렸다는 다큐의 느낌을 준다. 생업이나 놀이를 전시하는 방식의 장면이 아니라 지게를 진 채 잠시 다리쉼을 하는 가감 없는 모습인데다, 측면에서 포착한 옆모습이어서 표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배경 없이 인물만으로 화면을 구성한 점, 부드럽고 구불구불한 필선, 담채로 은은하게 생기를 준 채색법 등 김홍도의 풍속화와 닮았다.백문방인 '의경지장(宜卿之章)'이 찍혀 있어 자를 의경이라고 했던 권용정의 그림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세창 선생은 『근역서화징』에서 "산수를 잘 그렸고 화법이 자못 굳세고 건장하며 맑고 깨끗한 기운이 있다."고 하여 '경건청쇄(勁健淸灑)'를 권용정 필치의 특징으로 꼽았다. '부상휴식'이 권용정의 그림으로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권용정은 호가 소유(小游)이며 청풍부사를 지냈고 「한양세시기(漢陽歲時記)」를 비롯해 7권의 유고를 남겼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권용정의 「한양세시기」는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32개 항목으로 그가 직접 관찰한 서울의 연중 풍습과 놀이를 기록한 글이다. 내용은 간략하지만 다른 세시기류가 중국의 세시기, 고사(故事), 한시 등을 인용하며 우리 풍속을 중국과 연관시키려 한데 비해 실상이 충실하고 객관적이라고 한다. 이 '부상휴식'처럼 자신이 직접 본 현장을 기록한다는 관점은 저술에도 일관되었던 것 같다.이 부상은 우리 살림살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었던 옹기를 파는 장수이다. 넓적한 독 뚜껑 겸용 자배기 두개를 마주 포개고 그 위로 자배기를 크기 순서대로 겹쳐 쌓았다. 독 뚜껑과 자배기는 특히 잘 깨트려먹는 그릇이라 늘 수요가 많았다. 이렇게 재어서 지게에 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집을 찾기도 하고, 장시가 열리는 장날에는 장터에서 고객을 기다리기도 했을 것이다. 이 때 지게는 운반도구인 동시에 진열 장치이다. 여자들에게 옹기가 그랬던 만큼이나 양반 이외의 많은 조선 남자들에게 지게는 생필품이었을 것이다. 사람과 동물을 비롯해 거의 모든 것을 날랐던 지게의 운반력에 놀란 서양인들은 처음 보는 이 도구의 모양이 영어 알파벳 에이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에이 프레임(A-frame)'이라고 불렀다.콧수염과 턱수염이 듬성한 한 상인을 화면에 꽉 차게 그렸다. 노란 모자는 보부상들이 썼던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결어 만든 패랭이이다. 짧은 곰방대를 쭈글쭈글해진 낡은 패랭이에 꽂고 다니던 모습, 폭이 넓은 한복 바지를 종아리에 행전을 쳐 걷기 좋게 싸맨 모습, 벗겨지지 않게 발등 위로 들메끈을 동여맨 모습 등 당시 행상의 차림이 실감난다. 미술사 연구자

2019-12-15 06:30:00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 삽화('소년', 1909. 2.)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조선의 로빈슨 크루소

서구 문물이 몰려들던 개화기. 중국과 일본 이외,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당시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조선어로 서툴게 번역된 서양소설은 큰 도움이 됐다. 줄거리 중심의 어린이용으로 번역된 서양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이름조차 낯선 새로운 나라와 그 나라의 문화를 배워갔다.소설 주인공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영국, 프랑스, 독일, 아프리카, 브라질을 방문하기도 하고, 바다 밑을 여행하기도 했다.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새로운 법체계를 접하기도 하고, 상인이 힘을 지닌 놀라운 세상을 경험하기도 했다.딱딱한 지리책이나 역사책과 달리, 소설은 세계지리와 역사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쉽고 재밌게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었다. '로빈슨 크루소'(1791)를 번역한 최남선의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無人絶島漂流記, 1909)도 그 중 하나였다. 28년에 걸친 한 남자의 무인도 표류기를 다룬 이 소설에는 조선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새로운 세계의 모습이 듬뿍 담겨 있었다.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선원이자 타고난 장사꾼으로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유럽에서 만든 공산품을 아프리카에 팔고, 대신에 아프리카의 상아, 곡물을 유럽에 가져다 팔아 큰 이윤을 남긴다.배를 타고 영국과 아프리카, 브라질을 넘나드는 해상무역업자 로빈슨 크루소의 행보를 읽으면서 조선 독자들은 세계 지리와 문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익혀갔다. 그렇다고 최남선이 지식 전파에만 목적을 두고 번역을 진행한 것만은 아니었다. 조선어로 번역된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가 발표된 것은 한일병합조약을 1년 앞둔 1909년. 조선의 운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달해 있던 때였다. 최남선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해상무역을 통해 '재화를 축적하고 그 재화로 세계를 제패'한 대영제국의 힘을 배우기를 바랐다. 그 힘은 전통적으로 조선이 천시하고 간과해 온 것이었다.아울러 최남선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를 읽으면서 그 힘을 배우고 키워 자주적이며 강력한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가기를 바랐다. 사농공상의 신분적 위계질서가 깊이 뿌리 내리고 있던 조선에서 상인의 가치와 해상 무역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강건한 뿌리를 흔드는 역할을 개화기 조선에서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를 비롯한 번역 소설이 담당해내고 있었다.'걸리버 여행기', '해저 이만리', '엉클 톰스 캐빈', '레미제라블' 등등, 최남선을 비롯한 젊은 선각자들은 '소년'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해주고자 서구 소설 번역에 힘썼다. 비록 일본어 번역된 것을 다시 조선어로 번역하는 데 불과했지만 그들은 열심히 조선 소년들에게 유용한 지식을 전해줄 수 있는 서구 소설을 번역하고, 또 번역했다. 이미 조선은 식민지상태로 전락해가고 있었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개화기 조선에서 서구 번역소설은 그런 그들의 희망을 담고 있었다.

2019-12-14 06:30:00

권영희 작 '그리움'

[내가 읽은 책]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오기와라 히로시. 김난주 옮김/알에치코리아/2017

어린 날의 싱그러움도, 젊은 날의 화려함도, 어중간한 날의 안정감도 차츰 그리워지고 익숙해지고 있을 때 운명처럼 다가온 책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오기와라 히로시는 1956년 사이타마현에서 태어났다. 이 책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여섯 편의 단편으로 가족의 이야기를 잔잔하고 담백한 감성으로 써내려갔다.여섯 편의 단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가족을 잃거나 가족에게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느낄 수 있는 가족 간의 관계일 수도 있고,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가족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작가는 흔하디흔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만의 잔잔한 감성으로 차근차근 풀어냈다. 열다섯 딸을 잃은 아빠가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딸의 성인식을 치르는 작품 '성인식'."다들 스즈네를 까맣게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타인이니까."(24쪽)하지만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람. 타인이 아닌 그와 아내.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딸의 성인식을 치른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딸의 스무 살을 기억하고자. 마음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지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이들의 생채기는 아물어질지…….사그라질 듯 병원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며 생각한다.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언젠가 내가 그녀의 딸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엄마는 이제 내 엄마 일 적의 모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난 언제나 "엄마!"라며 자신 있게 부르기가 겁이 난다. 존재하지 않는 딸의 성인식을 치른 그와 그의 아내처럼 나도 이제 기억 속에 내 엄마를 각인시켜 둔다.두 번째 단편 '언제가 왔던 길' 또한 치매에 걸린 엄마와 찬란했던, 엄마의 나이만큼 먹은 딸이 다시 만나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이야기이다."오래 떨어져 사는 중에 그 옛날의 엄마 나이를 지나버린 나는 지금은 그런 것들을 내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그런 엄마의 일부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85쪽)여려진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애쓰는 엄마의 흔적이 내내 아팠다. "또 올게."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 차곡차곡 담겼다. 앙상한 엄마의 손을 잡고 나도 자그맣게 말했다."또 올게. 나도."책 제목이기도 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읽는 내내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 찾아온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손님."자, 얼굴을 다 시 한 번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앞머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었는지 신경이 쓰여서." (142쪽)차마 그냥 떠나보낼 수 없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마지막 문구다. 가슴이 아렸다. "엄마, 나 한 번 더 쳐다봐." 병실 문을 나서기 전에 서너 번은 더 엄마를 재촉했다. 힘겹게 팔을 흔드는 엄마를 보며 언젠가 겪게 될 먼 이별을 생각한다.지나간 날들, 그토록 그리운 날들은 이제 하나하나 기억 속에 머무르고 있다. 언젠가 그 기억 속에 머무를 또 다른 나를 생각하면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그렇게 우리에게 지나간 날들, 그토록 그리웠던 날들을 다시금 떠오르게 만든다.권영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2-14 05:30:00

이상일 시인·수필가

[광장]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다

매주 한 편씩 방송하는 KBS '인간극장'과 일요일 점심 때마다 전국에 울려 퍼지는 '전국노래자랑'을 보면서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고 값지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극장'은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까지 5부작으로 잔잔하게 우리의 이웃들이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전국노래자랑'은 일요일 낮마다 전 국민이 즐겨 들을 수 있는 이웃의 노래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매주 휴먼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한결같은 공통점은 묵묵히 자기 직분에 화려하지 않지만 성실하고 진솔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더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긴 인생을 비록 5편으로 보여주기에는 한계도 있지만 그래도 TV란 창을 통해 그분들이 살아온 삶의 흔적과 그 과정에서 겪은 갖가지 고통과 갈등 등이 엮여 한 편의 인간드라마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을 가진다.'인간극장'을 통해 보여주는 매주 1편씩의 이야기는 다소 극적인 감동은 없을지 몰라도 정말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삶을 보여주기에 오래 장수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배움과 남녀와 세대를 떠나 공통적으로 흐르는 따뜻한 인간애와 헌신과 봉사의 가족애는 이웃과 자연에 대한 깊은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가슴이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의 스토리이기 때문이다.짧은 인생에 있어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습들을 어찌 다 보고 경험해 볼 수 있으리오? 이런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분야나 곳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진실은 통하는 법이기에 이들이 엮어내는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보면서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느끼게 한다.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또 하나는 '전국노래자랑'이다. 우리의 이웃들이 지방 축제의 장에 모여 같이 쉽게 어울리며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세대 간, 남녀 간, 지역 차이의 갈등이 심한 요즘이지만 이 모든 것을 허물고 한자리에 온 세대가 어울려 무슨 노래를 부르던 간에 같이 들어주며 웃고 호흡할 수 있는 화합의 장(場)이기 때문이다.지역사회에서 저마다 숨은 끼와 장기를 가지고 나와 가족은 물론 이웃에게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에 수십 년을 이어오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도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 압축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소 작위적인 설정은 있을지언정 전체적으로 보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진실성의 위대함이 이런 장수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는 이유라고 본다. MC 송해 사회자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이 장점이자 약점이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아 온 프로그램이 세계사적으로도 없을 정도이다.위대하고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들의 강연이나 토론도 물론 유익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 이웃의 평범한 이야기에 더 공감하고 애환을 함께할 수 있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인간극장'과 '전국노래자랑'이라고 본다. 이 두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이웃의 웃음과 애환과 삶의 진솔된 모습에 진정한 격려와 박수를 보내며,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가야 할 진정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열광하는 삶보다는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고 값지다고 본다.

2019-12-13 19:29:56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누구를 위한 리허설 무대?

최근 한 무용가 공연의 공연비평문을 쓰기 위해 일찍 공연장을 찾았다. 이번 공연이 1회 공연이라 한 회 공연을 보고 글을 쓸 때 아쉬운 점이 있어서, 리허설 할 때 미리 한 번 더 보려고 일찍 간 것이다.깜깜한 객석을 더듬어 한 쪽에 앉으니, 피날레 장면을 체크 중 이었다. 주제 속에 꽃이 나오니 무대 상부에서 거대한 화관(가랜드)이 내려오고 있고, 무용수들이 꽃비를 받듯이 조용히 팔 벌려 화관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웠다.최종 리허설이 시작되고 흐름을 파악하고 싶은데, 공연 도중 안무자의 무대, 조명, 위치 등을 수정하는 마이크 소리로 어수선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무대장치는 자리를 정하지 못해 오르락내리락 헤매고, 조명은 주인공과 바뀌어야 할 당위성을 찾지 못해 산만하게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다. 소도구들은 조명 아래 훤히 드러나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조력자들은 아직 정리 중이었다. 최종 리허설인데 이렇게 산만할까 맘이 불평으로 불편했다. 필자도 마음을 바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을 찾아보기로 했다.본 공연이 시작되면, 관객들의 숨소리와 시선, 호기심 등이 올라가는 무대 막과 더불어 공연에 합세하게 된다. 관객은 공연의 또 다른 출연자이다. 관객이 있기 때문에 무대는 빛이 나고, 응원의 에너지로 공연자들은 힘을 받고 혼신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리허설과 전혀 다른 공연이 펼쳐졌다. 소재는 같을지라도 분위기와 흐름이 다른 새로운 공연을 보는 것 같아 감동이 됐다. 조명은 고즈넉하게, 때로 천상에서 내려오는 듯한 강렬한 빛으로 무대를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었다. 장치는 제 자리를 찾아 조용히 역할을 감당하고, 눈치 못 채게 아름답게 장치들이 변화되어 나갔다. 무대 소품들이 조명의 힘으로 무대 밖으로 감쪽같이 사라지고, 보여줘야 할 것은 훤히 드러냈다.리허설은 본 무대를 위해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무대이다. 사전의 뜻에 의하면 '실제 공연 전의 연습'에 불과하고, 막이 올라가기 전, 무대에서 해보는 마지막 연습인 것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지인들이 공연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개인사정으로 리허설을 보러오기도 하고, 공연을 본 것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리허설을 보고 싶다면, 본 공연을 본다는 전제 하에 봐야 한다. 전혀 다른 감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안무자나 공연관계자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극장 문 닫고 리허설을 하세요." 특히 공연문화를 아는 예술가들이 리허설 때 잠시 들렀다 가는 태도는 관계자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그냥 인사만 하고 가야한다. 리허설은 본 공연 관객을 위하여 준비하는 연습 무대이기 때문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2-13 10:28:28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진정한 힐링

자연 상황서 안빈낙도 현실선 불가 방송 보며 대리만족 착각은 아닌지차라리 책하고 노는 게 진정한 힐링 독서는 마음만은 부자로 만드니까별생각 없이 리모컨을 돌린다. 유독 자주 나오는 프로가 있다. 동시에 무려 다섯 개 채널에서 나온다. 하도 자주 나오니 조금이라도 보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처럼 연속성이 없으니 부담도 없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내가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된다. 나처럼 그 프로를 '자주 본다'는 분을 꽤 만났다. 보면서도 스스로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왜 저것을 보고 있는 건가? 재미라고는 있을 수가 없잖은가. 출연자는 달랑 두 명뿐이다. 예능인이 산속에 홀로 사는 나이 든 남성(아주 가끔 여성도 있지만)을 찾아가 2박 3일을 보낸다. 산속 사람만 달라질 뿐 대동소이하다. 나물이나 약초나 버섯을 채집한다. 나무를 하거나 오르거나 옮긴다. 밭에 무엇을 심거나 풀을 맨다. 잡거나 낚시하거나 사냥한다. 그리고 푸짐하게 먹는다. 샤워라고 말하면 적당하지 않은 것 같은 목욕신도 툭하면 나온다. 산속인의 기이한 언행? 독특하다는 것 말고 무슨 느낌을 가져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분들이 날것 연기를 참 잘한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 글로벌한 자연이 등장하는 프로들에 비하면 참 소박한 풍경이다.모든 힐링(치유)을 표방하는 프로그램의 짜깁기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참된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프로그램'들 말이다. 세계를 찾아다니는 글로벌 여행으로 유명한 두 프로그램도 3분의 1은 오지를 찾아다닌다. 세계의 오지에서 산속인과 비슷한 이들을 만난다. 무수한 '먹방' 프로와도 궤를 같이한다. 밥 해먹는 장면만 떼어 보면 '세끼'류와 판박이다. 시골 가서 시골 사람 만나는 '고향'류와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산속인이 힘든 일을 할 때는 '체험'류를 방불케 한다. 시련 이야기가 꼭 나오니 '인생'류와도 상통한다. '동물'류 예능과 비슷한 장면도 적잖다. 숱하게 제작, 방영되었던(중인) 소위 '힐링' 프로의 클리셰(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장면)만 모아 가장 저렴하게 만든 듯하다. 그러니까 방송인들이 말하는 힐링은 '시골 가서 맛있는 거 해먹고 일도 좀 하고 놀다가 이야기하는 것'이다.'자주 본다'는 자체가 착각이 아닐까. 여러 채널에서 무수히 재방송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가 많아서 그것이 자주 나오는 게 아니다. 실은 돈 문제. 무수한 채널은 자체 제작으로 24시간을 채울 수 없으니 저렴한 프로를 사다가 수시로 틀어줘야 한다. 그처럼 저렴한 콘텐츠는 없을 테다. 싸게 만든 것이니까 싸게 사서 마구 틀 수 있다. 연출된 촬영과 선정적 편집과 그에 따른 조작 의혹과 비판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조작이든 왜곡이든 사실이든, 아무튼 '힐링'류가 시청자의 마음을 자극한다면, '자연에서의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일 테다.사람은 문득문득 꿈꾼다. 사회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 무인도 같은 곳에서 홀로 유유자적 살고 싶다. 구차하고 궁색하면서도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런 삶은 도시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고 오로지 자연에서만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힐링 프로는 자연을 찾아간다.그런 동경은 말 그대로 동경일 뿐이다. 현대인의 생존 필수품(스마트폰, 텔레비전, 컴퓨터, 자동차 등)이 없는 자연 상황에서 하루 이상 안빈낙도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신해 주는 방송이라도 본다. 그런데 나는 정말 '힐링'하고 있는 걸까? 하고 있다고 그저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지난한 삶에 즐거움과 감동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힐링일 테다. 대부분의 사람이 '힐링'하지 못하는 건 자연에 못 가서가 아니다. 끝없이 가난하고 힘이 없고 끝없이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휴식이 불가능하다. 굳이 자연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차라리 책하고 노는 게 진정한 힐링일 테다. 독서는 노동을 멈추게 하고, 마음만은 특권층·부자로 만들어주니까.

2019-12-12 14:47:42

이진국 (사)자연생태연구소 소장

[기고]상원천에 물고기가 노니는 그날까지

금호강 권역을 바탕으로 생활하는 대구 시민에게 대구를 관통해 흐르는 신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1980, 90년대에 비해 수질이 크게 좋아진 신천은 현재 다양한 물고기·새·수달 등의 서식처이자 시민들의 휴식 및 힐링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친숙하다. 둔치에는 수영장, 썰매장 등 계절별 테마 놀이시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도 잘 모르는 산업화의 그늘이 숨겨져 있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의 대구텍과 중석타운 자리는 과거 대한중석이 있던 곳이다. 대한중석은 무기의 주원료인 중석을 생산하는 소위 방위산업체로, 달성광산에서 중석을 캐냈다.한때 중석 단일광종 세계 생산량 3위를 차지할 만큼 세계적인 광산이 달성광산이었다. 월남전을 끝으로 냉전시대로 접어들자 달성광산은 중석 시세의 하락과 더불어 국제 중석 생산량 급감의 여파로 인해 휴광을 거쳐 폐광에 이르게 됐다.문제는 생산량이 많은 만큼 폐석도 많았으며, 지금은 환경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에 있는 달성폐광산 인근은 과거 광산촌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전원주택이 속속 들어서 있다. 여름철이면 폐갱에서 나오는 시원한 (황산)바람을 쐬기 위해 굴 앞에 장사진을 치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폐광산은 폐석·광미·폐갱 등으로부터 AMD(산성광산배수)가 발생된다. 이 속에는 중금속을 비롯한 다양한 오염물질이 함유돼 있다. 반영구적인 오염원인 것이다. 발생된 AMD는 상원천으로 바로 유출돼 신천에 합류된다.또 달성폐광산지역의 토양은 국내 다른 폐광산에 비해 고농도의 중금속으로 오염된 것으로 조사됐다. 달성폐광산과 그 인근 지역의 토양은 광산의 광화작용 시기에 광범위하게 오염돼 토양의 산성도가 높고, 중금속 함량이 높다. 그뿐만 아니라 폐석 등에서 발생된 황산 가스는 대기질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상원천의 상류와 중류는 생태적 건강성이 높고, 생물종다양성도 높다. 그러나 달성폐광산의 AMD가 합류된 지점에서부터 신천 합류 전까지 약 1.7㎞ 구간에는 물고기는 물론이고 식물성 플랑크톤조차 서식하기 어렵다. 반면 동물성 플랑크톤인 부착규조는 관찰된다. 특이하게도 중금속 오염도가 높은 곳에서만 사는 특정 종만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AMD 처리를 비롯한 폐광산의 관리는 광해공단이 맡고 있다. 달성폐광산에는 1998년 인공소택지라는 처리장이 조성돼 AMD를 처리해 왔지만, 초기를 제외하면 처리 효율은 극히 낮다. 특히 최근에는 관로의 폐색으로 인해 침출수가 처리장으로 유입되지 않고 하천으로 직접 배출되고 있으며, 오염된 물은 고스란히 상원천을 거쳐 신천으로 흘러든다.이에 대해 광해공단은 달성폐광산 침출수 처리장을 개보수할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으며, 조만간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중금속으로 오염된 침출수는 상원천과 신천을 오염시키고, 물생태계를 교란시킬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상원천과 신천은 대구의 하천이자 생명이다. 신천에는 사시사철 물고기와 수달이 노닐고, 여름이면 아이들도 수영을 한다. 우리는 이런 자연환경을 보다 안전하게 지키고 관리할 의무가 있다.깨끗한 환경을 위해 대구시는 깨어 있어야 한다. 달성폐광산과 상원천을 제대로 관리함으로써 '생태도시 대구'의 위상은 한단계 높아질 것이다. 상원천에 물고기가 돌아오는 그날을 꿈꾼다.

2019-12-12 10:42:28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상상의 자유, 감상

우리는 '감상'이라는 행위를 떠올릴 때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고 평가하는 행위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 감상이라는 행위를 위해 풍경이 아름다운 자연을 찾기도 하고,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보기도 한다. 수많은 미술관 중, 어느 미술관을 방문하여 감상을 할 것인가? 그것은 취향의 문제이다. 그런데 현대미술의 영역에서는 이 감상이란 행위는 아름다운 어떤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게 되었다.사진기가 발명되고 산업혁명 등의 급격한 사회 변화를 맞이하면서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개성과 주관을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다양한 미술양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현대미술의 세계에서 우리가 감상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더 이상 아름다운 것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아름다움 보다는 어떠한 개념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고, 감상은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마르쉘 뒤샹의 '샘'이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남성 소변기에 R.MUTT 라는 이름으로 서명을 한 뒤 미술전에 출품하였다. 당시 평론가들과 큐레이터들은 '이게 무슨 예술이야'라는 평을 하여 작품을 전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뒤샹은 본인 작품임을 밝히지 않은 채 이것도 예술이라는 싸움을 하였고, 이후 '샘'은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레디메이드 개념을 최초로 예술에 도입한 사례인 것이다.미술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필자의 감상은 아름다운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 작품에 담겨 있는 개념을 이해하는 쪽으로 바뀌어 갔다. 미술이란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때론 영감을 주는 장르가 분명했다. 그러다 현대미술을 소재로 쓴 연극 대본을 만나게 되었고 연말에 드디어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이 공연은 현대미술의 개념과 미술 시장 등 미술의 전반적인 내용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한국이 낳은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작을 적확하게 해석하는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긴다. 해석을 하는 세 자녀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작품을 해석해 나간다. 주어진 기회는 단 두 번이다.이 작품은 장황하게 미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현대 미술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가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만 '이렇게 해석해야 한다'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왜냐면 보는 이의 관점에 따른 다양한 해석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 그 중에서도 현대미술을 만나고 친숙해지기를 바란다. 거기에는 고정관념을 깨는 신선한 발상들이 많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유롭게 느끼고 상상하는 체험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 연극이 그러한 경험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2-12 10:31:03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우리 시대의 유리천장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있다. '능력과 자격이 충분한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외국인이거나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고위직을 맡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 생소한 이 단어는 1970년대 미국의 한 경제 일간지에서 처음 사용했다. 보이지만 갈 수 없고, 보이지 않지만 분명 막혀 있는 유리천장 앞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쓴맛을 봤을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야'라고 자조도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유리천장은 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장에서 고위직에 가지 못하는 불합리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과연 유리천장이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말일까?작가 이문열 씨는 '선택'이라는 소설을 통해 현대 여성에게 현모양처를 강요했다. 이런 불합리함은 시대를 제대로 보지 못한 강요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꼭 여성이 현모양처로만 살았어야 했나? 그것이 과연 모든 여성에게 적용됐어야 했는가?라는 문제제기도 없이 여성의 삶은 오로지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제대로 된 삶인 것처럼 왜곡했다. 남존여비의 사회가 만들어낸 유리천장을 지금 시대에 적용시킨 예다.젊은이들에게 유리천장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면허취소 수준의 음주운전을 하고 교통사고까지 냈는데도 귀가 조치를 하고, 수십억원의 신종 마약을 밀반입했는데도 어리다는 핑계로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뉴스 뒤에는 국회의원이 있었고 상류층인 그들의 부모가 서 있었다. 만약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자식들이었다면 법의 판결은 어땠을까?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도 거기에서 출발한다.우리 시대의 유리천장은 불합리하고 박탈감에 빠지도록 강요한 사회 그 자체다. 정의니 평등이니 자유니 하는 말들이 교과서에서만 존재하는 말처럼 박제되고 돈과 권력이라는 새로운 계급관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부딪혀 추락하는 사회, 버드세이버 같은 장치 하나로 유리천장을 극복했다는 정치인들의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진짜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한 사회가 돼야 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유리천장에 가로막혀 눈물 흘리는 하루가 될 것이다.

2019-12-11 18:00:00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라떼는 말이야(Latte is a horse)!

'라떼는 말이야'(Latte is a horse)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커피와 우유를 섞은 맛있는 라떼가 말(horse)이라니, 말(wording) 같지도 않은 말처럼 들린다. '라떼는 말이야'는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의 풍자적 표현이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과거 자신의 경험과 가치를 확신하면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며 훈계하는 사람들을 희화화한 표현이다.선배가, 어른이, 유경험자가 도움을 주기 위한 조언을 해주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하지만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후배를, 나이 어린 사람을,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을 자기의 뜻대로 바꾸려거나 자신의 가치를 강요하는 데서 문제는 시작된다. 그런 사람일수록 인지편향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지편향'은 개인이 자신, 타인, 상황, 환경에 대한 해석과 판단에 있어서 잘못된 방식으로 현실을 지각하는 현상을 일컫는 심리학 용어이다.우리는 살면서 수천 가지의 결정을 한다.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자신의 일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결정을 한다. 그런데 의사결정을 할 때, 우리의 인지(認知)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못하다. 현실을 지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우리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데, 정보 처리 과정에서 현실을 왜곡해서 인식하고 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인지편향이라고 한다.인지편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사람들은 자기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 사고 체계, 믿음, 생각 등과 일치하는 정보만 듣고 믿으려는 편향이 있는데, 이를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자신의 신념과 판단, 기대에 합치하는 확증적인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인지하는 편향된 인식 방식을 말한다.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부합하는 증거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반대되거나 부정하는 증거는 적극적으로 무시하거나 부인한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정보나 전혀 새로운 정보를 잘못된 정보로 인식하고 무시해버린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확증편향의 원인은 자기만의 논리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개인도, 집단도, 국가도 확증편향에 빠질 수 있다.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부정도, 다른 정치 진영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도, 특정 연예인에 대한 악플과 조롱도 일종의 확증편향이다. 2019년 1월 필자가 매일신문 칼럼을 시작하면서 쓴 첫 칼럼의 주제는 '말의 잔치'였다. 대표적인 보수와 진보의 논객인 홍준표와 유시민의 유튜브 방송이 칼럼 주제였다. 우리 사회가 자신과 입장이 다른 타인과 집단을 이해하고 대화가 가능해질 수 있는 말의 잔치를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지금 인터넷 공간은 확증편향의 1인 매체들이 유튜브 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가 몇 번 검색만 하면, 유튜브는 나의 성향을 분석하여 이전에 보았던 내용과 유사한 방송이나 프로그램들을 친절하게 리스트업해서 준비해놓는다. 공중파도, 종편도 이제 더 이상 정보의 제공과 해석의 근원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내가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을 걸러서 알아서 제공해주니 보고 있노라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1인 매체라는 방송의 특성상 더 자극적인 정보와 판단이 재생산되면서 더 많은 확증편향들이 확대된다.심리학자 니커슨(R. Nickerson)은 확증편향은 매우 강력하고 침투성이 좋아서 개인, 집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논쟁과 오해, 갈등을 조장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판을 치는 한국 정치와 사회를 정확하게 갈파하는 표현이다.'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라는 이해인 시인의 말을 기억하자.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지 말고 라떼, 커피, 홍차, 주스 중 어떤 것을 원하는지 먼저 물어보자. 가치, 신념, 취향이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2020년에는 많아지길 바라며 2019년의 칼럼을 마무리한다.

2019-12-11 17:19:13

김경덕 (재)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문화콘텐츠진흥단 단장

[김경덕의 스타트업 스토리] 실패의 미학

12월이 되면 투자 유치를 원하는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행사인 '데모데이'가 전국 각지에서 개최된다. 필자도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스타트업들을 만날 수 있는 데모데이 행사에 참석했다.마침 지역 출신이면서 창업 2년 만에 100억원이 넘는 투자 유치에 성공한 유명 스타트업 대표와 자리를 함께했다. 행사 시작과 함께 후배 스타트업을 위한 격려를 건네는 순서가 오자 스타트업 대표는 연단에 올라가 놀라운 고백을 했다. "저는 그동안 4번의 실패를 거쳤으며 이번이 5번째 도전입니다."'스타트업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필자는 주로 '실패의 미학'이라는 단어로 비유하곤 한다. 여러 번의 창업 실패를 통해 기업을 경영하고 성장시킬 능력이 모자란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실패의 미학'을 통한 아름다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혁신적인 기업들도 창업 초기에는 '실패의 미학'을 거쳐 현재에 도달한 사례가 대부분이다.세상 모든 혁신의 흑역사를 대표하는 '실패의 미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추천한다. 2년 전 출간되었지만 지금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새파란 표지의 '블루 스크린'이라는 책이다. 이름부터 실패의 의미가 가득한 이 책은 너무 이른 혁신으로 실패한 사례부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아이템이었으나 시장의 외면을 받은 비운의 제품까지 다양한 '실패의 미학'을 다루고 있다.모토로라, 블랙베리 등 왕년의 스타 브랜드는 물론이고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네이버 등 현재를 대표하는 IT 기업들의 숨기고 싶은 실패까지 언급하며 실패는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교훈이라는 시각을 보여준다.한 해를 정리하고 다시 새해를 향해 달려가야 할 스타트업들에게 일론 머스크의 말로 덕담을 전한다. "가능성이란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2019-12-11 17:13:15

영화 '아내를 죽였다' 스틸컷

[김중기의 필름통] 새 영화… '아내를 죽였다', '매리', '속물들'

◆아내를 죽였다감독:김하라출연:이시언, 안내상, 왕지혜동명의 웹툰을 영화로 옮긴 스릴러. 회사 사정으로 권고사직을 당한 정호(이시언 분). 일확천금을 꿈꾸며 도박장을 찾지만 가진 돈을 모두 잃는다. 어느 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와 술을 마신 후 곯아떨어진다. 다음 날 아침 별거 중이던 아내 미영(왕지혜 분)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자신의 옷에 묻은 핏자국과 피 묻은 칼을 발견한 정호는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친다. 알리바이를 입증하고 싶지만 간밤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 상태. 아내를 죽인 남편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정호는 어젯밤의 행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아이들'(2011),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의 이시언이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안내상이 그를 쫓는 지구대 대원으로 출연했다. 97분. 15세 이상 관람가◆매리감독:마이클 고이출연:게리 올드만, 에밀리 모티머뱃사람을 유혹하는 마녀 사이렌과 배와 비행기가 사라지는 불가사의의 버뮤다 삼각지대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 관광객을 대상으로 레저업을 하는 데이비드(게리 올드만)는 무언가에 홀린 듯 딸의 이름을 가진 매리라는 배 한 척을 사게 된다. 뱃머리에 사이렌 흉상을 한 50년 된 낡은 범선. 어딘가 미심쩍어 하는 아내 사라(에밀리 모티머)와 달리, 그는 설레는 마음을 안은 채 두 딸과 선원들을 태워 첫 항해에 나선다. 승선한 이들은 점점 기묘한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매리 호에 얽힌 숨겨진 진실들이 점차 드러나면서 이 가족의 목숨을 위협하는 정체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버뮤다 삼각지대를 지나던 그들에게 놀라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명배우 게리 올드만이 가장으로 출연한다. 85분. 15세 이상 관람가◆속물들감독:신아가, 이상철출연:유다인, 심희섭, 송재림2007년 신정아 사건 당시 미술관 불법 비자금 발견, 미술품으로 회삿돈 횡령 등 미술계 비리가 잇따라 터졌다. 이 영화는 이를 소재로 미술계의 비리를 그리고 있다. 애인 김형중(심희섭)과 동거중인 미술작가 선우정(유다인)은 동료 작가의 작품을 베끼다시피 모사한 작품을 차용미술이란 말로 포장해 팔아먹고 산다. 원작자들로부터 소송이 끊이지 않는 그녀에게 큐레이터 서진호(송재림)는 촉망받는 작가들만 참여한다는 유민 미술관 특별전을 제안하며 잠자리까지 갖는다. 이런 우정 앞에 고등학교 동창 탁소영(옥자연)이 나타난다. 소영은 우정의 양다리 비밀을 빌미로 우정의 애인을 꼬셔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세 사람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뻔뻔하고, 이기적인 네 남녀의 속물성을 그린 블랙코미디다. 107분. 15세 이상 관람가

2019-12-11 13:58:49

강효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특별 기고] 페놀의 도시에서 물의 도시로

물클러스터'물기술인증원 잇단 유치대구, 대한민국 물산업 전진기지로시민 똘똘 뭉쳐 이뤄낸 기적 스토리정부 예산·정책적 지원 끌어내 완성여기 대구시민이 똘똘 뭉쳐 이뤄낸 기적의 스토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물 이야기'입니다.상수원이 거대 산업단지 하류에 있는 대구는 제 어린 시절부터 유독 수질 오염사고가 잦았습니다. 특히 대구 수돗물 사고를 세계적으로 알린 1991년 페놀 사태 때는 수돗물을 마신 임산부들이 유산했고, 작년 과불화 화합물 유출 사고 때도 대형마트마다 생수가 동나는 통에 마치 전시상황을 방불케 했습니다.하지만 이제 '페놀의 도시'는 '물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입니다. 대구 달성군에 물산업클러스터가 들어선 데 이어 한국물기술인증원 유치에도 성공해 지난 26일 개원식을 했습니다. 대구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물산업 전진기지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 완성된 것입니다.물기술인증원은 물 기술과 시제품의 국외 수출을 위한 인·검증절차 등을 주관하는 전문기관으로, 내로라하는 물 기업들이 모이는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기관입니다.국회 환경노동위원으로 물기술인증원 유치를 위해 뛰어다녔던 저로서는 개원식을 보니 감개가 무량할 뿐입니다. 인증원이 물산업클러스터가 조성되어 있는 대구로 오는 것이 인지상정이었지만 현 정부 들어 대구경북이 국책사업에서 밀리는 경향 속에 유치를 장담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당 자치단체장을 두고 있고, 물 기업이 밀집해 있는 강력한 경쟁도시 인천의 도전으로 발표날까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하지만 대구시민의 유치 염원과 대구시 관계자들, 지역 국회의원들이 일치단결해 노력한 결과 물기술인증원 유치라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당연하다지만 당연한 것을 현실화 하는 데 수많은 노력과 땀이 숨어 있었습니다.이 글을 빌어 감사할 분이 많이 계십니다. 허수영 롯데케미칼 부회장은 TK출신 기업인으로서 고향 산업단지에 500억원이 넘는 투자를 결심하셨습니다. 출향 기업인의 모범적 향토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인종 물산업클러스터 입주기업협의회장을 비롯해 다른 모든 입주기업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TK의 영웅인 이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줘야 고용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도 뒤따를 것으로 생각됩니다.또한 본 의원의 지적을 합리적으로 수용해 인증원 입지에 있어 공정한 심사로 행정의 귀감이 된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박천규 차관도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물산업은 선진국이 각축을 벌이는 '블루오션'입니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세기가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의 시대"라 강조한 바 있으며, 한국수출입은행도 중동과 중국 등이 견인한 세계 물 시장은 2025년까지 900조원 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습니다.초기 단계인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가 세계적 물산업 인프라로 발돋움하려면 정부의 지원프로그램이 잘 작동해야 합니다. 실제로 세계 시장 석권을 노리는 프랑스와 싱가포르는 자국 물 기업을 육성하고 외국진출에 정부 예산과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또한 이는 시민의 뜻이기도 합니다. 앞서 본 의원이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대구시민은 "물산업클러스터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중앙정부의 예산 및 정책지원이 필요하다"는 항목에 40.7%에 달하는 답을 주신 바 있습니다.실제로 물산업클러스터 기업 대부분은 중소기업입니다. 사업화와 기술개발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재정능력이 부족해 체계적 기술개발이 힘듭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중·단기 대책이 예산 지원과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클러스터 초기단계 연착륙을 위해 정부 예산 지원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 때문에 본 의원도 11월 14일 651억원의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 '3종 예산'의 상임위원회 증액 통과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10일 집권여당의 예산안 날치기로 유체성능시험센터 예산 등 일부 증액안만 반영되는 데 그쳤습니다. 참으로 유감입니다. 이에 대해서 환경부 산하기관의 다른 R&D 자금을 전용하는 등 다각적으로 대안을 모색하겠습니다.부디 국가 물산업클러스터의 성공으로 경제가 어려운 대구에 물 산업이라는 새 시대의 경제 지평이 열리길 기대합니다.강효상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2019-12-11 11:36:14

김부섭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

[기고] 천년의 꿈, 신라왕경 다시 꽃피다

경북도민이 그토록 바라던 '신라왕경 핵심 유적 복원 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11월 19일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문화관광 웅도를 표방하는 경상북도의 목마름이 어느 정도는 해갈됐으리라. 더불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천년 도읍지 경주의 관광 경쟁력이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2017년 5월 김석기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별법의 골자는 신라왕경의 핵심 유적을 복원, 정비하는 것이다. 이제 국가 차원에서 본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결실을 보게 되었다. 천년간 잠자고 있던 찬란했던 신라 역사 유적이 빛을 보게 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신라는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로 눈부신 문화 번영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역사 유적은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되지 않고 부분적인 발굴과 복원에 그쳤다. 다행히 200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 기본 계획을 수립해 2006년부터 신라왕경의 주요 유적을 복원 정비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신라왕경복원정비사업은 경북도에서 문화재청, 경주시와 함께 2025년까지 총 9천45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신라왕경의 핵심 유적을 복원 정비하는 사업이다. 신라 왕궁인 월성, 9층 목탑으로 유명한 황룡사, 외교 사절을 접견하던 동궁과 월지, 원효 대사와 요석 공주를 맺어준 월정교,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고분군인 쪽샘지구, 서라벌의 도시계획인 신라방, 신라왕들의 무덤인 대릉원, 천체를 관측하던 첨성대 주변 등 8개 핵심 유적을 복원하는 일이다.경주는 불국사와 석굴암, 양동마을, 옥동서원 등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한 천년 역사를 품은 세계적인 역사 유적 도시이다. 그리스·로마 문화가 서구 문화의 원류이듯이, 신라 천년의 찬란한 문화 유적을 복원하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다시 찾는 일이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현재 경주시)은 전성기에 인구 100만이 넘는 세계 4대 고대 도시(서라벌, 중국 장안, 동로마 콘스탄티노플, 이라크 바그다드)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그 규모를 자랑한다.신라왕경복원정비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직접 신라 왕궁을 거닐며 과거 삼국통일에 대한 신라인의 염원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신라의 화랑정신은 1천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소중한 정신 문화이자 훌륭한 자산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경주 신라왕경복원정비사업은 미래 세대를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도리이다.정부는 이번 특별법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고 빠른 시일 내에 신라왕경 복원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 실효성 있는 복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시행령 등 관계 법령을 만들 때 관계 전문가, 지방자치단체 등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정성을 기울여 특별법이 더욱 실효성 있게 추진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신라왕경복원정비사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디지털 재현, 수요자 중심의 복원 등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는 의미 있는 복원사업이 되도록 추진돼야 한다. 지난해에 복원된 월정교와 같이 복원된 유적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천년간 숨어 지낸 귀중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금강경에 '신화장구지'(新花長舊枝)라는 말이 있다. 새 꽃은 묵은 가지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문화유산이 왜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제 천년 신라의 역사 문화가 신라왕경특별법을 통해 새로운 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2019-12-11 11:35:30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눈물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못 본다는 말이 맞겠다. 15년이라는 세월의 단절은 요즘 젊은 연예인이 누가 누군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연예계 깜깜이가 되고 말았다. 간혹 식당에 켜놓은 화면에서 어딘가 본 듯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부자연스런 얼굴에서 세월 따라 마음대로 늙을 수도 없는 여자 연예인들의 직업적 고충을 읽을 수가 있다. 성형수술로 인해 주름과 함께 표정도 없어져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그게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예전에는 '환갑노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60대는 노인 취급을 받았다. 막상 그 나이가 되었지만 청춘으로 착각을 하다가 거울을 보고서야 깨어나기도 한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테스토스테론이 감소되어 여성화 된다는데 대표적인 현상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눈물을 잘 흘린다는 점이다. TV를 접하지 않으니 내겐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전 드디어 누선(淚腺)을 자극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게 노화 탓인지 인간 본연의 보편적인 감정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지난 주 토요일은 전주를 다녀왔다. 고교 동기 자녀의 혼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전북 전주 출신이면서 대구에서 대학을 나와 교편생활을 하던 사람과 결혼을 했다. 처가가 전주에 있는 전형적인 영호남 커플이었다. 큰 아이도 외가가 전주에 있어서인지 대구에서 고교까지 다녔지만 전북대학교로 진학을 했고 학교를 같이 다니던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오명의 88고속도로는 광주대구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시원하게 확장개통 되어있었다.식이 진행되고 아이들 성장 과정의 영상이 화면에 비춰지자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부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친구의 부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큰 아이가 고교 1학년,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암으로 세상을 떴다. 터울이 많이 진 동생이 형의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고, 뒤로는 아이들과 같이 찍은 생전의 엄마 모습이 화면으로 떴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한다. 사연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겨우 초등학교 1학년짜리 늦둥이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고인은 숨을 거두기 몇 달 전부터 아이가 상처받을 것을 걱정해 곁에 못 오게 했다고 한다. 정을 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렸을까. 실제로 장례식장에서 만난 작은 아들은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엄마의 배려가 담긴 천진난만한 그 모습이 오히려 우리를 더 슬프게 했었다. 예식장에서는 엄마를 기억하는 모든 이가 울었지만 축가를 부르는 작은 아들만은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객관화된 슬픔이 더 서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결손에도 잘 자란 아이들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배로 행복하기를 빈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2-11 11:31:51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하는 김건모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연예인 관찰카메라 시대의 빛과 그림자

지금 지상파에서 최고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진 예능 프로그램은 MBC '나 혼자 산다'나 SBS '미운 우리 새끼'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김건모 사태를 보면 연예인 일상을 들여다보는 관찰카메라의 맹점이 보인다.◆김건모 논란으로 후폭풍 맞은 '미운 우리 새끼'SBS '미운 우리 새끼'는 최근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는 예능프로그램이다. 나이가 들었지만 미혼으로 살아가는 중년들의 철없는 일상을 그 부모들이 관찰하는 콘셉트로 주목받았다. 김건모는 이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 개국공신으로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괴한(?)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다.집에다 정수기에 물 대신 소주를 가득 담아 이른바 '정술기'를 만들기도 하고, 소주 기행을 떠나기도 하는 그런 모습들은 시청자들에게 때론 불편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이를 상쇄시켜준 건 다름 아닌 엄마들이었다. 스튜디오에 나와 자신의 아들이 하는 일상의 '해괴한 짓들'을 보면서 혀를 쯧쯧 차거나 "뭐하는 짓인지"하며 한탄 섞인 한 마디를 던지는 모습은 시청자들이 가진 불편함을 대신 털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미운 우리 새끼'의 초반 전성기를 만든 주역들은 출연자들보다는 그 엄마들이었다.하지만 엄마들의 아들이 결혼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때론 과하게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의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엄마의 시선으로 자식 챙기는(?) 그 멘트들도 점점 호응을 잃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운 우리 새끼'는 자식만이 아니라 자식 같은 다른 연예인들의 일상을 엄마들이 들여다보는 연예인 관찰카메라를 더하기 시작했다.최근 생활고를 토로했던 슬리피가 이상민을 만나 선배(?)로서의 조언과 위로를 듣는 광경이나, 배정남이 이성민과 함께 화보를 찍는 장면, 임원희와 정석용이 해돋이를 보러 정동진에 가서 펼쳐지는 짠내 가득 여행이 '미운 우리 새끼'에서 소개됐다. 그렇게 초반의 인기를 이어가는 듯싶었다. 김건모 논란이 터져 나오기 전까지는.강용석 변호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 김건모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고 피해주장 여성을 대리해 고소장을 제출했다. 아직 사실관계가 밝혀진 사안이 아니지만 이런 의혹제기는 공교롭게도 '미운 우리 새끼'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마침 김건모의 결혼소식이 전해졌고, '미운 우리 새끼'는 그의 프로포즈 장면이 나갈 거라는 예고를 내보낸 상황이었다.논란이 터진 후 '미운 우리 새끼'는 방송을 내도, 또 내지 않아도 곤란한 처지가 됐다. 내지 않는다면 마치 김건모 논란이 사실인 것처럼 비춰질 수 있고, 낸다면 시청자들의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운 우리 새끼'는 편집 없이 방송을 강행했다.◆김건모 사태가 끄집어낸 관찰카메라의 맹점해외의 리얼리티쇼가 국내에서 '관찰카메라'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리얼리티쇼는 말 그대로 리얼한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는 프로그램 형식이다. 해외의 리얼리티쇼들은 일반인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고 때론 폭로에 가까운 자극적인 영상을 내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우리네 정서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관찰'이라는 다소 유화된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담는 내용도 폭로라기보다는 그 일상을 공감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중요해진 게 관찰의 주체다. 누가 관찰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장면도 달리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MBC '나 혼자 산다'가 한 때 15%가 넘는 시청률을 내며 승승장구했던 건 출연자들이 스튜디오에 앉아 관찰 영상에 대해 이런 저런 멘트를 덧붙이면서다. '나 혼자 산다'의 관찰 주체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그 시선으로 영상을 보며 던지는 짓궂은 농담들은 프로그램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미운 우리 새끼'에서 관찰의 주체는 엄마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밉게 보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애정이 담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관찰카메라는 관찰 주체의 호감과 애정이 기본 전제가 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김건모 사태는 이런 관찰 주체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호감이 일순간 가짜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만들었다. 아직 사건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런 구설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랬다. 그간 엄마의 시선이 상쇄시켜줬던 김건모의 갖가지 기행들은 호감이라는 필터가 치워짐으로써 달리 보일 수도 있게 되었다.이런 문제는 '미운 우리 새끼'만이 아니라 '나 혼자 산다'나 MBC '전지적 참견 시점'같은 관찰카메라들도 벌어졌던 일들이다. '나 혼자 산다'는 기안84의 기행들이 호감의 시선으로 그려지며 웃음을 줬지만, 때때로 그의 작품이나 행동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전현무와 한혜진의 연애와 결별도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의 색깔과 부딪히며 구설이 되기도 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연예인에 대한 매니저의 과한 관리(?)가 오히려 논란을 일으켰다. 본래는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가 관찰의 초점이었지만, 그것이 결국은 매니저의 연예인 띄우기가 아니냐는 시점으로 바뀌면서 시청자들의 호감은 조금씩 식어버렸다.◆연예인 관찰카메라 득만큼 실도 커연예인 관찰카메라는 그 일상을 공감하는 것으로 해당 연예인의 호감을 키운다는 점에서 특별한 끼나 예능감이 없는 연예인들도 인기를 끌 수 있는 형식이다. 출연자는 그저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이를 관찰하는 이들의 호감어린 멘트들이 덧붙고, 자막과 편집까지 마술을 부리면 그 연예인은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올리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하지만 관찰카메라는 결국 그 일상을 담아내기 때문에 그 호감어린 시선이 지워지는 어떤 사건이 터질 때 고스란히 그 후폭풍을 맞게 된다. 관찰카메라를 통해 커진 호감은 그것이 거짓이었다는 게 드러날 때 더 큰 실망감으로 돌아간다. 그건 해당 연예인에게도 큰 타격이지만 그에게 호감의 시선을 만들어낸 프로그램에도 직격탄이 된다.'미운 우리 새끼' 김건모 사태는 그래서 지금 예능의 트렌드로 자리한 연예인 관찰카메라가 가진 빛과 그림자를 드러내는 면이 있다. 한껏 집중된 관찰카메라의 조명을 그 연예인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지만, 조명이 꺼져버리고 드러나는 또 다른 실체는 더더욱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든다. 이것이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출연만 하면 존재감을 확 키워줄 것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의 실체다.대중문화평론가

2019-12-11 11:31:00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종교칼럼] 일상 같은 성탄절

교회 집무실 창가에 성탄 촛불을 켰다. 흰색 양초 모양의 램프 열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전등이다. 켜고 끄는 것이 그저 스위치를 한 번씩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도 기분은 켤 때와 끌 때가 사뭇 달라진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시선이 창가로 가면 성탄 촛불이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지금이 성탄의 계절임을 기억한다.교회 봉사부 교인들은 이미 김장을 하여 필요한 이웃에 나누었다. 수고 하는 중에도 다들 즐거운 표정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양념을 버무렸다.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과일과 금일봉도 드릴 예정이다.시내 중심가에는 대형 트리가 세워졌고, 불빛 찬란한 포토존에서 너도나도 셀카 촬영에 열중이다. 한결같이 환한 표정이다. 거리에는 빨간색의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구세군이 종을 치며 관악기를 연주한다. 상점마다 캐럴이 울려 퍼지고, 방송에서도 캐럴이 자주 나온다. 빨간 코트, 빨간 머플러, 빨간 모자가 어울리는 계절이다.연말연시의 아름다운 리추얼이다. 리추얼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회행위이다. 때로는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퇴근하여 저녁을 먹고 그냥 눕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직업과 직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출근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냥 시계추가 흔들리듯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하루 세 끼 먹는 것은 그냥 끼니때가 되어 먹는 것이다. 세 끼가 걱정거리가 된다거나 가치와 의미를 반드시 물어보고 감격하여 눈물 콧물 쏟아가며 먹는 식사라면 아마도 행복한 형편은 아닐 것이다.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경우이다. 그래서 대단히 중요한 일도 리추얼의 반복인 것이 더 행복한 삶의 증거일 때가 많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 행복이 있다.우리가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운 삶이지만, 선을 베푸는 일을 아무것도 아닌 양, 그저 반복되는 일상인 양 여긴다면 이것이 행복한 삶이다. 의미와 가치를 물을 것도 없이 그냥 해야 되는 일이니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한다면 아름다운 것이다.올해도 작년처럼, 아니 작년보다 더 태연히 성탄절을 보내자.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듯, 서로 도우며 사는 삶이 너무나 당연한 리추얼로 살아가자. 이것이 더 성스러운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구세주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다. 구세주는 특별한 곳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평범한 삶의 자리에 오셨다. 예수님은 특별할 것 없는 목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목수 청년이었다. 매일 열심히 일하여 생계를 꾸리는 일상적 삶이 성스러운 것이다. 이렇게 의미를 묻지 않는 곳에 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내가 피하고 싶은 비참한 현실로서가 아니라,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일상의 현실로 여기자. 아무렇지도 않게 자비를 베풀고, 특별하지 않은 마음으로 봉사하고, 즐겁게 남의 짐을 지고, 기쁘게 섬기자.연말이 되면 마음속에 우울한 바람이 불어 겨울을 더욱 춥게 만든다.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절은 겨울의 우울을 떨쳐버리고 새 시간을 맞는 리추얼이다. 성탄의 불빛이 거리마다 밝혀져 있다. 마음까지 환해지면 좋겠다.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올린다.

2019-12-11 10:33:29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첫눈을 기다리며

네거리 신호를 기다릴 때 첫눈을 맞으면 좋겠습니다. 마땅하게 기다릴 것이 없어 첫눈을 기다립니다. 그렇다고 첫눈 같은 세상을 기다리는 건 만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약속이 있어서만도 아닙니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듯 오지 않는 첫눈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들은 대체로 더디게 옵니다. 말라붙은 상상력을 애 태우며 와야 진정한 기다림입니다.흰색이 좋습니다. 눈이 멀 것 같은 흰색의 아득함이 좋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공중에 귀를 대고 들어볼 만한 '소리 없음'을 들어봅니다. 비가 아니라 빗소리를 좋아하는 것처럼 눈이 아니라 눈이 오는 풍경이 좋습니다. 눈이 오는 풍경 속에는 들어볼만한 조용함이 있습니다. 조용함 속에 들끓는 함박웃음이 들립니다. 누군가 사랑스러운 웃음을 허공에 흩어놓습니다. 고달픈 불빛이 반짝거립니다.'닥터지바고'와 '러브스토리'의 테마 음악을 듣고 '첫눈이 온다구요'를 따라 부릅니다. 첫눈에는 보편성과 관념을 뛰어넘는 마법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마법의 힘으로 정치를 하면 성군이 되고 글을 쓰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말합니다. 이 마법의 근육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고 떠나간 사람을 되돌아오게도 합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기어이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기다림이 지쳐 노여움이 될 때까지.'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기는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문정희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사방이 온통 흰 것으로 뒤덮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묶였으면, '눈부신 고립'을 외치는 시의 행간에 동참할 수 있는 첫눈이 오면 좋겠습니다. 눈이 내리는 지상낙원을 눈으로 그려봅니다. 구름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 눈으로 내리는 게 아니라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눈을' 자꾸자꾸 뿌려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생을 헐어 뿌려 주는 걸까? 궁금합니다. 눈이 된 생은 그래도 잘 살았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낯선 곳을 떠돌아 몸을 누이며 눈은 금방 녹아내립니다. 일체의 잡음이나 군더더기 없이, 흰 눈이 텅 빈 허공을 가득 메워주면 좋겠습니다. 손등에 입술에 달라붙은 눈에게 하하, 호호, 온기를 전해 주고 싶습니다. 눈이 내려도 뛰어 내려도 허공은 제자리에 있습니다. 눈이 오지 않을 때에도, 눈이 왔다가 갈 때에도 허공은 제자리를 지킵니다. 머지않아 눈이 올 허공의 눈부심이 좋습니다.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2-10 1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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