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세월의 흔적] <57>설 세시풍속

설이란 음력으로 한 해의 첫날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다른 말로 원단(元旦),원일(元日),세수(歲首),정초라고도 한다. 설이란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확실한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정월 초하루를 뜻하는 '설'이라는 말이 고대부터 널리 쓰였을 뿐 아니라, 새롭게 출발한다는 신선한 의미로 전해져 내려왔다.설날 음식으로는 일반적으로 떡국을 꼽을 수 있다. 설날의 세찬(歲饌) 가운데서 어느 집이나 만드는 것이 흰떡이다. 떡국은 차례상에 오를 뿐 아니라 설날 아침에 먹는 음식이므로 나이를 대신하여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떡국은 원래 꿩고기 국물에 끓이지만, 꿩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닭이나 쇠고기의 국물로 끓이기도 한다. 그로 해서 '꿩 대신 닭' 이란 속담이 생겼다. 또한 우리나라의 북쪽지방에서는 떡국 대신 만둣국을 먹기도 한다.설날 이른 아침에 웃어른들께 큰절을 한다. 이를 두고 세배(歲拜)라 하는데, 윗사람을 존경하고 예의를 귀중하게 여기는 데서 생긴 풍습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마을의 웃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고, 그 자리에서 덕담을 주고받는다. 또한 섣달 그믐날에 묵은세배를 다니기도 하는데, 웃어른들이 계시는 집에 찾아가 "과세 평안하십시오" 하면서 큰절을 한다. 우리네 고유의 미풍양속이다.어느 집 없이 아이들의 관심은 세뱃돈에 있다. 그런데 세뱃돈이란 돈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절교육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뱃돈은 봉투에 넣어서 주는 게 좋고, 교훈이 될 만한 짧은 글귀를 적어서 함께 넣어주면 더욱 좋다. 더러는 가게에서 물건 값을 치르듯 돈을 주~욱 나누어 주는데, 이런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며느리에게는 마땅히 주어야 하고, 출가한 딸에게도 주는 게 좋다. 그러나 성년이 된 자녀들에게는 주지 않아도 무방하다.집집마다 섣달 그믐날 밤에 쌀을 이는 조리를 새로 장만하였다. 그것을 '복조리'라 하며 붉은 실을 꿰매어 부엌이나 문 위에 걸어두는 풍습이 있었다. 한 해 동안 많은 쌀을 일 수 있을 만큼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믐날 자정 이후부터 초하룻날 아침 사이에 조리장수들이 "복조리요, 복조리∼" 하고 외치며 다녔다.설날 놀이로는 남녀노소가 대중적으로 즐기는 윷놀이,연날리기,널뛰기 같은 게 있다. 윷놀이는 척사(擲柶) 또는 사희(柶戱)라고도 하는데, 나무토막 넷의 뜻인 윷과 놀이라는 말이 합쳐진 것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농사의 풍·흉을 점치거나 개인적으로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 점술도구로 시작되었다. 그 뒤 고려와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점차 놀이로 변화하여 우리 고유의 민속놀이로 자리 잡았으며,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즐기는 놀이다.연날리기는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아이들의 세시풍속 놀이로 발전하였다. 연을 날리는 시기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가 제철이라 할 수 있는데, 연의 종류로는 꼭지연,반달연,치마연,동이연,박이연,발연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가오리연․방패연 같은 것이 널리 알려졌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20-01-20 18:05:25

김태선 경일대 디자인학부 부교수

[김태선의 디자인, 가치를 말하다] 디자인, 참 운이 좋다

올해는 어떤 운이 있나? 누군가에게 새해는 신년 운세를 따져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운세가 꼭 맞아서가 아니라 잘 준비하기 위한 바람일 것이다. 같은 바람에서, 나의 새해는 새 다이어리의 준비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번 해는 열흘 늦게 시작되었다. 2020년이 시작되고도 열흘이나 지나서 다이어리를 샀기 때문이다. 2020년도 열흘만큼 익숙해졌지만, 포장에서 다이어리를 꺼내는 순간 나는 가슴속에서 묘한 설렘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새 거라서? 처음 쓰는 브랜드라서? 아니면 디자인이 맘에 들어서? 사실 나는 매년 새 다이어리를 처음 꺼낼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한다.경험이란 무엇일까? 경험과 비슷한 체험도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경험은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이며, 체험은 '자기가 몸소 겪음, 또는 그런 경험'으로 정의된다. 사전적 정의에서 차이를 읽어내기는 어려울 듯하다. 심지어 영어에선 모두 'Experience'로 번역된다. 하지만 독일어에도 이 두 단어는 존재하고,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체험'(Erlebnis)은 '원자화되고 불연속적인 일련의 순간'이며, '경험'(Erfahrung)은 '의식조차 되지 않는 자료들이 축적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기억의 산물'이다. 즉 체험이 일상에서 겪어내는 수많은 순간의 자극이라면, 경험은 그런 체험들이 응축된 산물로, 내면화 과정을 거쳐 주관적으로 기억되는 내용이다.'경험'은 디자인에서도 중요 이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 하면 '예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경험이 상품의 핵심 가치로 인식되면서, 디자인은 '차별적인 경험'의 창출을 위한 포괄적인 활동으로 변화했다. 그래서 디자인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시각 요소나 브랜드 이미지를, 또는 프로세스를, 혹은 이 모두를 활용해 경험을 창출한다.디자인은 사물의 외면을 다루는 스타일의 디자인에서, 디자인적 사고 과정을 통한 문제 해결의 디자인으로 외면을 확장, 진화하고 있다. 이제 디자인의 대상은 유형적 제품, 시설 환경은 물론 무형적 서비스와 정책을 포함한다. 우리는 매일 제품·서비스의 구매·사용자로서, 그리고 정책의 수요자로서 수많은 디자인을 체험하고, 무의지적으로 동반된 체험의 파편들이 수렴된 디자인 경험을 소유한다.내가 겪어낸 하루, 한 해가 모여 내 삶이 되는 것이면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정책 등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의 내용이 내 삶의 정체성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디자인 영역이 확장됨은 삶에 대한 영향력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지 '경험 창출의 도구로서의 디자인'이 아닌 '디자인의 디자인' '디자인에 대한 디자인'이라는 성찰적 차원의 디자인이 필요함을 시사한다.지금의 디자인에 대해 생각해보는 메타인지적 디자인은 결국 '가치'의 문제이다. 디자인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디자인은 무엇을 향한 '진정성'을 담아야 하는가. '디자인 가치에 대한 논의'는 순간의 관계들을 더 특별하게 인지시켜, 미래를 열어가야 할 이 시대에 요구되는 디자인의 방향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게 할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라고, 참 운이 좋게도 말이다. 김태선 경일대 디자인학부 부교수

2020-01-20 18:00:00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세종, 출산 휴가를 부여하다

최근 조카가 아이를 출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 요즘처럼 출산율이 떨어지는 시대에 큰일을 했다며 아낌없는 축하를 해 주었다. 조카의 남편은 출산 휴가를 받아서, 아내의 산후 조리를 지원해 주고 있었다. 조카와 그 남편에게, 출산 휴가를 부여한 원조가 세종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지금부터 거의 600년 전에 관청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출산 후에도 일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출산 휴가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도록 했다. 『세종실록』의 1426년(세종 8) 4월 17일의 기록에는 "형조에서 전지(傳旨)하기를, 경외공처(京外公處)의 비자(婢子)가 아이를 낳으면 휴가를 100일 동안 주게 하고, 이를 일정한 규정으로 삼게 하라"고 한 기록이 보인다.중앙과 지방의 관청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100일 동안의 출산 휴가를 지시한 내용으로 세종의 의지가 정책으로 구현된 것이다. 비자(婢子)는 조선시대 여성 노비들을 지칭하는데, '노비'는 남자 종인 노(奴)와 여자 종인 비(婢)를 합한 용어이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 여성들은 직업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관청에서 일하는 여성 대부분은 노비의 신분이었다. 그래서 노비 여성의 휴가 규정을 만든 것이다.세종은 출산 한 달 전에 미리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옛적에 관가의 노비에 대하여 아이를 낳을 때에는 반드시 출산하고 나서 7일 이후에 복무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이를 버려두고 복무하면 어린아이가 해롭게 될까봐 염려한 것이다. 일찍 100일간의 휴가를 더 주게 하였다. 그러나 산기에 임박하여 복무하였다가 몸이 지치면 곧 미처 집에까지 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다."만일 산기에 임하여 1개월간의 복무를 면제하여 주면 어떻겠는가. 상정소(詳定所)에 명하여 이에 대한 법을 제정하게 하라"는 1430년(세종 12) 10월 19일의 기록에서는 현실에 맞게 출산 여성들에게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한 세종의 배려를 읽어 볼 수가 있다. 1434년(세종 16) 4월 26일에는 아내의 출산을 도와야 하는 남편에게도 휴가를 부여하라는 세종의 지시가 기록되어 있다.중앙과 지방의 여성들이 아이를 배어 산삭(産朔)에 임한 자와 산후(産後) 100일 안에 있는 자는 사역(使役)을 시키지 말라 함은 일찍이 법으로 세웠으나, 그 남편에게는 전연 휴가를 주지 아니하고 그전대로 구실을 하게 하여 산모를 구호할 수 없게 되니, 한갓 부부가 서로 구원하는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 때문에 혹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어 진실로 가엾다 할 것이다."이제부터는 사역인(使役人)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도 만 30일 뒤에 구실을 하게 하라"고 한 내용이 그것이다. 출산 여성의 남편에게도 휴가를 부여하여 아내를 돕게 한 세종의 조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시대를 앞서간 탁월한 정책이었다. 세종 시대에 그 틀을 완성한 출산 휴가 규정은 성종 때에 완성한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에 아예 법으로 확립되었다.『경국대전』의 형전에는 "입역(入役)하고 있는 비(婢)는 산기(産期)를 당하여 30일, 산후에 50일 휴가를 준다. 그 남편은 산후에 휴가 15일을 준다"고 규정하여, 출산 여성에게는 80일의 휴가를, 남편에게는 15일의 휴가를 보장했음을 기록하고 있다.훈민정음의 창제 서문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세종은 자주, 민본, 실용이라는 시대정신을 표방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간 왕이었다. 사회적 약자인 천민 여성들에 대한 배려 정책으로 출산 휴가 정책을 처음 실시했고, 이것이 조선의 헌법에까지 기록된 점은 현재에도 큰 의미를 주고 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널리 유행했던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2020년의 오늘. 저출산 문제는 21세기 한국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다. 세종이 600년 전에 선구적으로 취했던 출산 장려 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갈 수 있는 적절한 방안들이 수립되었으면 한다.

2020-01-20 18:00:00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日常중국] 위조지폐가 사라졌다

중국에 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요즘엔 놀람을 넘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아졌다.원래부터 중국에선 신용카드 결제를 할 수 없는 곳이 많아 중국에 갈 때마다 위안화로 환전해서 '현금'을 갖고 다니는 일이 불편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모바일페이 결제가 일반화되면서 편리해진 반면, 난감한 경우를 당하게 된 것이다.현금을 받지 않는 상점이 하나둘씩 생기더니 아예 모바일페이로만 결제하는 가게가 부쩍 늘어났다. 아예 현금을 받지 않다 보니 모바일페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위챗페이'(微信支付)와 '알리페이'(支付寶) 같은 중국 모바일페이 앱을 설치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적잖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게 요즘 중국이다.우리나라에선 신용카드보다 현금을 더 선호하는 곳이 많지만 중국에선 아예 현금을 받지 않는 곳이 많다 보니 음식을 주문할 때나 물건을 살 때 결제수단을 물어보는 것이 버릇처럼 되고 있다. 물론 필자는 오래전부터 '위챗'과 위챗페이를 사용하고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요즘 중국'을 만끽하고 있었다.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결제은행 계정 인증 문제로 페이 계정이 갑자기 정지됐고, 그걸 모른 채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다가 결제가 되지 않았다. 오전에도 결제했는데 점심 때에 정지되다니, 심각한 금융사고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식당은 신용카드와 현금으로는 결제할 수 없는 모바일페이 전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종업원의 모바일 계정으로 결제를 마치고 현금을 대신 주는 방식을 찾아낼 수 있었다.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치엔먼'(前門)이 있는 베이징 시내로 나갔다가 '루이싱'(瑞幸·Lukin coffee)이라는 커피 전문점에 들어갔다. 여기서도 위챗페이와 알리페이 등 두 가지 모바일페이로만 주문을 받았다. 결국 커피를 주문도 하지 못한 채 돌아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하긴 거지들도 QR 코드를 걸어 놓고 구걸하는 곳이 중국이다. 이미 길거리 음식이나 과일을 파는 노점상들도 QR 코드로 결제한 지 오래다. 공항이나 기차역, 터미널 등의 공공장소에 설치된 음료 자판기나 짧은 시간 동안 안마를 받을 수 있는 자동안마기도 동전 투입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QR 코드가 차지하고 있다.중국의 위챗페이 시스템은 소비자가 현금을 페이 연결계좌에 먼저 예치시켜 놓은 후, 상품을 소비할 때 결제하면 이를 판매자나 상점에 즉시 대금을 이체해 준다. 신용카드 결제의 경우, 밴회사와 카드사가 각각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떼어 수익을 확보하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소비자와 판매자의 계좌를 운용하고 있는 은행의 수익은 거의 확보할 수 없는 구조다.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은행의 눈치를 볼 필요도, 각자의 신용도를 고려할 필요 없이 즉시결제를 하는 것이다.결국 해외 신용카드를 등록해서 충전할 수 있는 알리페이 계정을 새롭게 개설, '난관'을 돌파할 수 있었다.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위조지폐가 사회문제화될 정도로 골칫거리였다. 100위안짜리 위안화를 받으면, 지폐에 인쇄된 마오쩌둥의 옷깃을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위폐' 여부를 감별하곤 했다. 은행에서도 '위폐감별기'를 통해 두세 번 검사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을 찾더라도 위폐 여부를 확인해야 할 정도로 위폐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했다.모바일페이 결제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위조지폐가 거의 사라졌다.위폐에 대한 공포감이 사라지면서, 중국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모바일페이를 사용해온 것처럼 생활화됐다. 중국의 모바일결제 이용률은 71.4%. 우리나라 26.1%의 2.7배에 이른다.(2019년 한국무역협회 상하이지부 자료) 중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69.0%로 우리나라 94.1%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스마트폰 사용자는 모두 모바일페이 결제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중국 내 위챗페이 계정은 8억 개(2019년). 사용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알리페이까지 감안하면 텐센트의 모바일메신저 위챗과 모바일결제 앱은 위폐까지 사라지게 하면서 중국인의 일상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중국은 없다.'

2020-01-20 18:00:00

이성환(계명대학교 일본학전공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새로운 길, 평양에 갈 수 있을까 - 이성환 교수

정부 대북 개별 관광 정책 성공 위해북 호응·미 협조·국민 지지 맞물려야남북 관계 개선 북미대화 견인 기대올해 미지의 땅에 한번 가보고 싶다해리 해리슨 주한 미국 대사가 지난 16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의 남북협력 구상에 대해 제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미국과 먼저 협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이 미국 정부의 의향을 담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지 외교관의 자율성이 거의 없는 현대 외교의 환경을 고려하면 개인적인 견해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대사가 주재국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외교관의 기본 자세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정부 여당이 그를 향해 비판을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외교관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외국에 파견되어 거짓말을 하는 정직한 인사이다." 17세기 초 베니스 주재 영국 대사 위튼 경의 메모에서 나온 말이다. 달리 표현하여 외교관은 '명예로운 간첩' 또는 '공식적인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영국의 니콜슨 경은 직업 외교관의 필독서인 '외교론'(Diplomacy)에서 자신의 경험을 담아 외교관의 자질을 이렇게 말했다. 강경한 내용도 상대를 흥분시키거나 실례가 되지 않게 신중한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본국뿐 아니라 주재국에도 충성해야 하는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자라야 한다고. 그래서 외교 사절의 파견에는 반드시 사전에 상대국의 의향을 확인하는 아그레망(agrement)이 관례화되었다.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해리슨 대사는 니콜슨 경이 말하는 바람직한 외교관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명예로운 간첩이나 공식적인 거짓말쟁이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한국 정부와 친밀성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정책 의도를 파악해 본국에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해리슨은 40여 년간 해군에 복무하면서 이라크 전쟁 등 8개의 전쟁에 참전했다고 한다. 외교보다는 군사전략에 익숙해서 북한 문제를 피아를 구분하는 군사적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정부는 해리슨 대사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혔듯이, 북미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도로 북한에 대한 개별 관광 의지를 더욱 분명히 했다. 그러면 정부는 왜 지금 개별 관광을 들고 나왔을까. 김정은 위원장이 작년 신년사에서 조건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자고 했을 때에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개별관광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면 남북 및 북미관계가 달라졌을지 모른다.정부의 의도는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남북관계에서 점수를 따자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외교는 여론이다. 아무리 훌륭한 외교도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면 쓸모가 없다. 정부의 남북협력론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4월 총선에서 나타날 것이다.또 하나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교착상태에 있는 북미관계를 견인하려는 것이다. 북미대화에 올인한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서 1년 반이나 속고 시간을 잃었다"(김계관 외무성 고문 발언)며, '새로운 길'이라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한국 정부도 북미관계가 풀리면 남북관계도 개선된다는 수도거성(水到渠成)의 자세로 전적으로 미국에 보조를 맞추어 왔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2월의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아무 성과가 없다. 대통령 선거에 정신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관계에서 올해 안에 현상 유지 이상의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북미관계가 요동칠지도 모르는 유동적 상황이다.성과 없음과 불확실성에 대한 조바심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것은 남북한이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트럼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며, 한국도 안보의 축인 미국을 벗어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관건은 제재라는 미국의 대북정책 틀 속에서 남북한이 자주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 그리고 남북한의 관계 개선이 북미대화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모름지기 외교뿐 아니라 모든 일에는 상대가 있다. 정부의 대북 개별 관광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호응과 미국의 협조, 그리고 국민의 지지라는 삼자가 맞물려야 한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한국 외교의 '새로운 길'이다. 실패하면 북한 미국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다. 올해 평양에 갈 수 있을까, 미지의 땅에 한번 가보고 싶은 호기심은 있다.

2020-01-20 11:22:43

김선칠 계명대 교수

[기고] 병원 찾기 Vs 맛집 찾기

국내 정보통신 산업계의 숙원이었던 데이터3법이 통과되었다. 이로 인해 개인정보 등의 활용으로 질 높은 정보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 가정집 냉장고 벽에는 동네 음식점 스티커가 가득 붙어 있었고, 개업을 알리는 전단지는 주인이 없는 틈에 출입문에 늘 붙어 있었다.이러한 과거 아날로그식 정보 제공과 저장의 한 방법이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맛집 정보를 넘어 배달까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지갑을 가득히 채웠던 각종 쿠폰과 현금도 스마트폰으로 결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지난 2018년 정부는 데이터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데이터 경제 활성화 정책을 적극 펼쳐 왔다. 아울러 세대 간 또는 사용자 간 디지털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디지털 포용 정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이러한 정보 서비스 변화는 삶의 질을 높이고 정보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해석할 수 있다. 정보의 격차와 불균등이 가장 심한 의료 분야도 중심추가 병원에서 고객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방대한 의료 지식은 인공지능(AI) 기술로 보완되고 있으며, 개인의 건강도 빅데이터를 이용한 정밀의료로 더 정확한 예측과 치료로 변모하고 있다.다시 말하면 의료 서비스의 주체와 선택권이 병원에서 고객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터넷 정보 검색과 매체를 통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치료와 검사 과정을 사전에 이해하며, 관련 전문의와 최첨단 의료기기 및 치료 후기를 검색하여 병원을 선택하는 환자가 늘어가고 있다. 또한 의료진도 과거 유사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해당되는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통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로 환자를 상담하고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동네 맛집을 찾는 소비자는 음식 종류, 전문성 여부, 음식점과의 거리, 위치, 리뷰 평가, 가격, 예약 유무, 주차장 유무 등 다양한 정보를 통해 취사선택한다. 정보의 오류나 리뷰의 문제점이 있다면 온라인을 통해 음식점 또는 다른 고객과 소통하면서 적절한 피드백 조정을 하고 있다.우리가 방문하는 병원도 예약 여부, 전문의, 항생제 사용 분석, 의료기기 보유 여부, 가능한 진료 시간, 평균 치료 기간, 수술 후 평균 회복 기간, 동일 질환 치료비, 건강검진 항목, 예방접종 항목, 병원 위치, 거리, 주차장 유무 등 사전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앱들이 최근 많이 출시되어 사용되고 있다.더 나아가 사용자는 개인이 평생 어떤 약을 먹었는지, 어떤 진단을 받았는지 등과 같은 개인의 의학 정보를 금융 정보처럼 기록 저장하고 검색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개인의 평생 의무기록이 될 것이다. 아직 원격의료처럼 제도적인 제약이 있는 것도 있고, 개인 의료정보가 병원별로 분산되어 있는 면도 있어 정보의 활용이 쉽지 않지만, 올해부터 방문 왕진 의료, 당뇨 환자의 관리 데이터 전송 등 다양한 의료 시범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국내 의료 데이터의 생성과 보유량, 질적인 면에서는 우수하지만, 의료 데이터의 활용은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 이제 관련 법의 통과로 의료사회와 고객의 요구 사항을 잘 파악해서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의료 데이터 산업이 활성화된다면 우리의 삶의 질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물론 민감한 정보의 보안과 운영, 사용자 간 정보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디지털 포용 정책도 함께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2020-01-20 11:22:20

김득주 대구예술발전소 운영팀장

[매일춘추] 색으로 쓰는 감정노트

여러분은 하루에 몇 가지 감정을 느끼나요? 아침에 일어나서 바쁘게 출근 준비로 서두르다 차까지 막히면 혹여나 지각할까봐 소심해지기도 하고, 여유롭게 사무실에 도착해 따뜻한 커피 향을 맡으면 순간 짧은 행복에 젖기도 한다. 하루 종일 숨 가쁜 업무에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실망감에 힘들어하다가도 누군가 건네는 말 한 마디에 피곤함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과 마주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가기 일쑤다.하지만 여행을 가거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면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행복감이 물밀 듯 밀려온다. 새해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며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희망에 부풀어 오르고, 지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에 감동한다. 매일 마주하는 일출과 일몰도 그저 지나가는 일상에 불과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감사하고 행복한 일들로 가득 찬 하루가 펼쳐진다.유명한 철학자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정의한 48가지 인간의 감정을 세계 문학작품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감정으로 풀어 쓴 '감정수업'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몇 년 전 머릿속에 사는 다섯 감정들이 주인공 라일리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인기를 끌었다.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까칠이, 버럭이의 다섯 감정이 머릿속에서 벌이는 놀라운 일들로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감정을 재미있게 풀어낸 영화다. 매 순간 느끼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감정을 이해하고, 알아가면서 이 모든 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라는 것을 영화는 이야기해준다.어린 아이들은 기쁘거나 슬프거나 혹은 화가 나는 순간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화나고, 슬프고, 실망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혼자 속으로 삼키는 경우가 흔하다.하지만 머릿속에서 울리는 감정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받아들이면 내면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고, 나 자신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범위에 따라 삶은 더욱 풍요해질 것이다.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는 나만의 감정노트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 건넨 공감의 말 한마디에 행복의 노란색, 나와 발맞추어 일상을 함께 해준 동료에게는 감사함의 파란색, 어제보다 오늘 더 열심히 하루를 보냈다면 열정의 빨간색, 힘들고 지친 하루였다면 회색 등 나만의 감정색깔로 일상을 기록한다면 나의 감정을 잘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감정이 색으로 채워질수록 나의 하루가 색으로 드러나고, 지난 하루를 들여다보면서 내일은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핑크색으로 채우려는 바람도 생기지 않을까 한다.

2020-01-20 11:11:04

박민석 계명대 산학인재원 교수

[매일춘추] 내겐 값진 기억 '고물'  

나에게 고물이란 오래된 가치를 먹고 배부를 수 있는 값진 양식과도 같다. 예전 우리가 익숙하게 보았던 골목을 누비며 외치는 고물장수의 고물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집에 있는 고물을 이것저것 챙겨서 강냉이와 바꿔먹을 수 있는 정도의 가치를 가졌던 고물! 우리 일상에서 고물이란 그 언젠가 새 박스에 예쁘게 포장되어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줬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고물은 빈 공터에 몰래 버려야 하는 쓰레기와 같지는 않았는가!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중고 물건들은 누가 사용했는지 알 수 없기에 재사용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문화가 있었다. 이러한 특유한 문화로 인해 아마 우리나라에는 벼룩시장이 우리생활 속에 가까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예전 독일 유학시절 매주 수요일이면 길거리에 버려진 다양한 가구, 전자제품 등을 지나가던 독일인들이 자연스럽게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골라가는 것을 보았다. 말로만 듣던 독일인들의 검소함을 직접 체험했다.누구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어 버려진 물건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가지고 싶은 소중한 물건이 되는 것이 아마도 중고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독일에서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게 되면서 나에게 남는 고물, 중고에 대한 깊은 추억은 바로 벼룩시장을 다녔던 기억들이다. 매주 주말에 열리는 벼룩시장을 가기 위해 일주일을 어린아이와 같이 기다리며 새벽에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그것으로 향하던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아득하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독일의 벼룩시장은 다양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 구수한 닭고기 굽는 냄새, 터키인들의 향신료 냄새가 기억으로 남는다. 그 속에 줄줄이 열을 맞춰 들어서 있는 가판대와 다양한 물건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물건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채로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그 속에서 눈을 크게 뜨고 보물 찾기를 하는 사람들!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들! 또한 지나가다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서로를 격려해주는 동질감의 문화! 이렇게 다양한 색깔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벼룩시장의 풍경들이다.그때 나에겐 벼룩시장은 모자란 유학 생활비를 벌게 해 준 좋은 친구와도 같은 곳이었다.귀국 후 한국에서 아프리카인들이 고물상에서 TV, 냉장고 등의 고물을 사기 위해 고물상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 이런 경험 때문이다. 나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귀한 보물을 다시 한국 또는 독일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팔아 마련한 생활비가 나에게는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들이었는지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소중한 고물에 대한 기억은 세상살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나를 지탱하는 귀한 경험의 선물이 되고 있다.

2020-01-20 06:30:00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모든 권력은 절제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헌법은 제1조에서 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 조문이 없어도 대의민주주의의 당연한 원리를 이처럼 명시해 놓은 이유가 있다. 국민만이 모든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며 국민으로부터 유래된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 등은 제한적이고 상대적 권력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최대한 절제해야 한다는 원리가 이에서 나온다. 국민의 위임 범위 내에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권력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든, 검찰이든 다를 바 없다. 무절제한, 자의적 권력 행사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나오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도, 검찰의 수사권도 본래 그들의 권력이 아닌 국민의 권력이기 때문이다.대통령제의 원조인 미국에서 지금까지 헌정 체제의 기본 골격을 유지할 수 있는 비밀이 바로 권력 행사의 절제와 관용이라는 분석이 있다. 대통령제 헌법은 입법, 사법, 행정권의 상호 견제와 균형을 기본으로 한다. 헌법에 담긴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상호 관용과 자제라는 불문율이 필요하다. 헌법 체제의 이상과 그 체제가 작동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우는 규범이 상호 관용과 자제라는 말이다. 대통령제 기반의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권력기관이 그들에게 주어진 제도적 특권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자제의 규범이 무너질 때 권력균형도 무너지며, 권력자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힘을 행사할 때 민주주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정부의 검찰 인사를 두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폭적인 검사장 인사에 이어 중간 간부급 인사가 있을 경우 더 큰 파열음이 예상된다. 검사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맞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대로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한다. 하지만 실제 인사권 행사 과정은 상당한 정도의 자제와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헌법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자제와 관용이라는 불문율이 필요하듯 말이다. 정기인사철도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 업무도 제대로 파악하기 전이다. 거의 모든 검찰 지휘부를 한꺼번에 '유배 보내듯' 한 것은 맨주먹의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이다. 권력층 관련 사건 수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노골적인 권력남용 행태이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규정 준수 여부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형식적 의견 청취가 아닌 실질적 협의를 위해 전임 장관까지 지켜온 관행을 '초법적 권한 행사'라는 말로 일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 줄로 규정된 헌법과 법률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권력 행사의 자제와 상호 관용이라는 불문율이다.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취임사를 내놓았다. 권력 행사에 자제와 관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언급이다. 먼지털이식 수사, 무분별한 압수수색, 별건 수사, 망신주기식 소환 조사. 그동안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인권보호에 소홀했던 점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추 장관의 언급처럼 정밀하게 칼을 휘두르는 명의가 되어야 한다.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수사권 행사 과정에 대한 반성이라면 당연하다. 일부의 관측처럼 현재 권력에 대한 수사 자체를 절제하거나 자제하려는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 범죄 혐의가 있어 진행 중인 수사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절제가 아니다. 검사의 직무유기로서 그 자체 범죄를 구성하게 된다.흔히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한다. 현재의 청와대만이 아니라 과거 모든 대통령들의 인식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이 아니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국민을 위해 행사하도록 국민으로부터 대통령의 임기 동안 잠시 위임받은 권력이다. 검찰권도 국민이 권력의 원천이다. 대통령이든 검찰이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마찬가지다.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관용과 자제를 잃을 경우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다시 상기시키고 싶다.

2020-01-19 15:45:07

김요한 대구시 청년정책과장

[기고] '청년희망공동체'로 나아가야

1971년 '이코노미스트'는 시애틀을 '절망의 도시'라고 표현했다. 보잉은 1980년대 초반까지 여러 차례 불황을 겪었고, 스타벅스는 당시 점포 세 곳을 가진 작은 현지 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시애틀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 지역에서 4만여 명을 고용하고 있고, 아마존은 전체 종업원 5만여 명 가운데 3분의 1이 시애틀에 있다.마이크로소프트는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1975년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창업했고, 1979년 1월 1일 시애틀로 이사했다. 회사 이전 결정은 사업상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게이츠와 알렌은 둘 다 시애틀 출신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그들이 배우고 자랐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비록 당시에는 매출 100만달러, 종업원 13명의 창업기업이 시애틀로 이전한 것이 대수롭지 않아 보였지만, 시애틀을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혁신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변모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게이츠가 회사를 이전한 지 15년 뒤 앨버커키 출신의 베조스가 아마존을 시작할 때 시애틀은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는 자석이 되어 있었다.도시는 인재를 키우고, 인재는 도시의 운명을 바꾼다. 어떤 도시가 희망이 있는가? 청년과 지역이 함께 희망을 키우는 곳이다. 대구는 지난해 12월 19일 '청년희망공동체 대구'를 선언했다. 지역사회가 청년과 함께 밝은 미래를 열어가자는 전국 최초의 사회적 협약이다. 청년이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찾고 맘껏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지역만이 미래가 있음을 재확인하고 범사회적 차원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공동체 대구로 혁신할 것을 선포한 것이다. 2020년에는 사회주체별 실천 과제를 발굴하고 실행하며 매년 추진 사례를 공유하고 확산하고자 한다.'청년희망공동체 대구'는 이미 여러 곳에서 움트고 있다. 지역 대학과 연구 기관, 지역 기업들이 함께 휴스타(Hustar)사업으로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 혁신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또한 생활실험실인 리빙랩(Living Lab)을 통해 청년들은 도시를 실험의 장으로 활용하고, 소통과 협업,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고 있다.지역사회도 함께 하고 있다. 한 신문사는 '청년응원기업'을 발굴하고, 기업의 임직원들은 청년들의 진로 탐색과 취업 준비를 위한 일대일 맞춤상담에 나섰다. 지역의 몇몇 라디오 채널은 '청년응원라디오'로 청년들에게 본인의 삶과 도전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참여한 청년들은 우리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따뜻한 격려를 느꼈다고 한다.한국의 1990년대생은 공무원을 선택하고, 중국의 1990년대생은 창업을 선택한다. 중국의 창업 문화에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성공한 선배 기업가가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지원해 주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 청년들의 롤 모델인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대표적이다. 중화권에 100만 창업자를 양성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창업사관학교인 '후판대학'을 설립했다. 중국의 민간 기업들이 후배들을 이끌어 주는 이유는 '공동체주의' 때문이다.이제 지역사회와 국가는 청년들에게 다양하고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한 보상의 사다리를 놓는 '청년희망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청년은 스스로 삶의 주체이자 공동체의 미래를 실현하는 주역임을 인식해야 한다. 새해에는 '청년희망공동체'가 대구에 정착되고 전국으로 확산되길 소망한다. 여러분이 함께 하면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

2020-01-19 15:34:15

[금융칼럼] 새해 바뀌는 주택임대 소득 사업자 등록

2020년 새해 들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주택임대 소득자의 사업자등록과 관련한 질문이다. 그동안 세금신고를 하지 않던 집주인들에게 새로운 의무가 부과되면서 본인이 과세대상인지 알쏭달쏭해하는 이들이 상당수다.이번 주택임대 소득자 신고는 이달 21일까지 세무서에 사업자 신고를 하고, 다음달 10일까지 사업장 현황신고를 마쳐야 한다. 이후 5월에 개인소득세 신고 및 납부를 해야 한다. 사업장 현황신고는 부가세 면세 사업이기 때문에 매년 신고해야한다.문제는 지난해 이미 임대사업 활성화를 위한 민간임대주택특별법이 시행되고 있다보니, 소득세 부과를 위해 올해 새롭게 시행하는 주택임대사업자 등록과 차이점을 헷갈려하는 이들도 많다.쉽게 표현하면 지난해 주택임대 사업자 등록은 전문적으로 임대업을 하시는 '전문가 리그'였다. 주택양도와 관련된 세제혜택(취·등록세, 양도세, 소득세 등)을 받고 제도권내에서 임대사업을 하게 하기 위한 입법이다.반면 이번 주택임대소득자의 사업자등록은 '아마추어 리그'라 할 수 있다. 전문적으로 임대업을 하지 않더라도 세제형평을 위해 임대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기 것이다.전문가 리그는 지방자치단체의 주택과와 세무서 두 곳에 등록해야 하지만, 아마추어 리그는 세무서나 국세청 홈텍스를 통해 한 곳에만 등록하면 된다.이 때 모든 월세 소득자와 주택전세 보증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1주택자(부부합산)이면서 기준시가가 9억 이하의 주택을 소유하고, 2019년 한 해 동안 월세합산 소득이 2천만원 이하면 비과세 된다. 3주택자 이상이 아니면 전세보증금을 받고 있다고 해도 비과세다.아마추어 리그인 임대소득 사업자는 세금 납부 시 분리과세와 종합소득세 신고를 선택해서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간 임대소득 금액이 2천만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그 50%를 필요경비로 인정해 주고 기본공제금액 2백만원을 차감한다.결국 나머지 800만원이 과세표준금액이 되고, 이에 15.4%의 세금을 납부하게 되는데 대략 123만원 정도를 내게 된다. 임대소득 외에 다른 소득이 있을 경우에는 대부분 분리과세 신청을 하는 경우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반면 같은 금액을 전문가 리그인 임대주택 사업자에게 적용할 경우 필요경비와 기본공제가 60%와 400만원으로 크기 때문에 세금측면에서 조금 유리해 보이지만, 단기와 장기의무임대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납부해야 하고 월세인상 상한선도 지켜야 하는 등 단점이 있다.이번에 바뀐 임대소득 사업장 신고는 앞으로의 주택가격과 투자성향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임대소득이나 연금자산으로 노후를 준비하고 싶다면 재무전문가와 상의해보길 권한다. 이미 지도에 나와 있는 섬이 암초가 되어선 안된다.박동훈 인투자산관리&재무설계 대표

2020-01-19 14:42:27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최북(1712-1786?) '서설홍청'

2020년 경자년 쥐해이다. 옛 그림에서 쥐가 단독 주연으로 나오는 그림으로 쥐 한 마리가 붉은 순무를 갉고 있는 '서설홍청(鼠囓紅菁)'이 있다. 쥐, 다람쥐, 햄스터 등 '이를 가는 부류'인 설치류(齧齒類) 동물은 앞니가 계속 자라므로 어떤 물건이든 갉아 이를 닳게 하는 생태적 특징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갉아대는 쥐를 굳이 그림으로까지 그린 까닭은 그 소리가 돈 세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부를 가져다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쥐는 평생 이를 가는데, 평생 돈을 세시라는 뜻을 그림으로그린 것이다. 십이지(十二支) 중에 1등인 쥐는 재물을 상징한다.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놓는 습성과 새끼를 많이 낳는 번식력 때문일 것이다. 붉은 무는 홍복(紅蔔)인데 큰 복인 홍복(洪福)과 발음이 비슷해 큰 복을 누리시라는 뜻이 된다. 심사정도 이런 그림을 남긴 것을 보면 어떤 본(本)이 있었던 것 같다.작은 그림인데 인장을 4방이나 찍었다. 오른쪽 위에 주문타원인 '호생(毫生)'이 있고, '좌은재(坐隱齋)'로 서명한 아래로 '반월(半月)', '최씨(崔氏)', '칠칠(七七)'이 일렬로 찍혀 있다. 붓으로 먹고산다, 붓이 생동한다는 호생은 최북의 잘 알려진 호이고, 반월은 애꾸눈이었던 최북이 눈이 반 밖에 없다는 뜻을 이렇게 나타낸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칠칠은 이름인 북(北)을 둘로 쪼개 파자(破字) 해 스스로 못난이, 바보라고 한 것이다. 북으로 이름을 바꾼 것, 자(字)를 칠칠이라고 한 것은 자신을 온전히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과의 불화를 나타내는 것일 테다. 신분을 앞세우는 사회였고, 군자라는 윤리적 인간형 이외의 타입은 인정받기 어려웠던 시대였다.이 그림은 최북의 호 좌은재를 알려준다. 옛사람들은 고상한 소일거리인 바둑을 손으로 하는 말 없는 대화라고 해서 수담(手談)이라고 했고, 바둑 두는 일을 좌은(坐隱)이라고 했다. 최북은 바둑 고수였다. 남공철(1760-1840)의 '최칠칠전(崔七七傳)'에 최북이 서평공자(西平公子)와 백금(百金)을 걸고 바둑을 두다 공자가 한 수 물러달라고 하자 바둑돌을 흩어버리고 다시는 그와 대국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성여도봉화염(性如刀鋒火焰)'이라고 한 칼끝 같고, 불꽃같은 뻣뻣한 성품은 왕실의 종친인 귀인(貴人)이라고 해서 물러서지 않았던 것이다.12지는 원래 고대 천문학에서 시간을 표기하기 위해 만든 별자리 단위로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네팔 등 여러 나라에 있다. 12마리 동물이 우주동물원을 구성하며 십이지의 징표로 대입된 것은 불교의 십이신장(十二神將), 도교 방위신앙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더 멀리는 인간이 동물을 숭배하던 토템사회의 흔적이라고 한다. 곰을 숭배하는 부족은 곰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었고, 다람쥐를 신으로 모시는 부족은 다람쥐를 조상으로 여겼다. 띠는 "그 사람의 심장에 숨어있는 동물"이다. 미술사 연구자

2020-01-19 06:30:00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진시황 묘를 지나며(途經秦始皇墓) - 허혼

기세등등 산 같은 무덤 나무만 수북하니 / 龍盤虎踞樹層層(용반호거수층층)권세가 구름을 찔러도 아 결국은 죽는구나 / 勢入浮雲亦是崩(세입부운역시붕)푸른 산 가을 풀에 묻힌 것은 같지마는 / 一種靑山秋草裏(일종청산추초리)길손들은 한 문제의 무덤에만 절을 하네 / 路人唯拜漢文陵(로인유배한문릉)전국칠웅(戰國七雄)! 전국시대에 중국의 패권을 놓고 맞장을 떴던 7개의 강대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가운데 하나였던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는 나머지 여섯 나라를 순식간에 각개격파하고, 중국 최초로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던 인물이다.천하의 문자를 통일하고, 천하의 도량형을 통일하고, 천하의 수레 궤도까지 통일한 것도 바로 그였다. 한 마디로 말하여 진시황은 오늘날 거대 중국의 초석을 다진, 중국사 전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세상 사람들이 중국을 '차이나(China)'로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이나(China)'라는 말 자체가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Chin) 나라에서 유래한 것이니까.하지만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사람들의 입에다 재갈을 물렸고, 기분 내키는 대로 그 막강한 권력을 마구 휘둘렀던 희대의 폭군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아방궁과 만리장성 축조 등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일으켜, 백성들의 삶을 완전 도탄에 빠뜨렸던 몹쓸 황제이기도 했다. 자신의 무덤을 조성하는 일도 상상을 초월하는 파천황(破天荒)의 대공사였음은 현재 발굴 중인 그의 무덤의 입이 딱 벌어질 규모를 통해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문경지치(文景之治)! 한나라 문제(文帝)와 그를 이어받은 경제(景帝) 시대의 이상적인 정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하여 문제는 진시황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태평성대를 구가한 사람이었다. 그는 농업을 장려하는 데 솔선수범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세금을 대폭 삭감하고,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여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한 현군(賢君)이었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무덤이 진시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지나가는 길손들은 문제의 무덤에만 절을 하고 간다.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독재자가 한둘이 아니듯이, 폭군이면서 현군의 탈을 쓴 통치자도 많다. 그러나 살아서 펄펄 뛰던 권력이 무덤 속으로 이사를 하고 나면, 그 때는 죄다 판명 날게다. 백성들이 무덤에 절을 하고 가면 현군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닐 테니까.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20-01-18 06: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케렌시아, 마음의 고향

작가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수록된 첫 작품이 '퀘렌시아'(Querencia)인데 '자아 회복의 장소를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국어사전엔 '퀘' 대신 '케'로 등록되어 있으므로 '케렌시아'로 부르기로 한다. 이 말은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를 뜻하며 투우장에서 투우가 투우사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잠시 쉬는 곳을 가리킨다.'케렌시아'를 '자아 회복의 장소'로 번역하면 너무 길고, '피난처'나 '안식처'로 해석하면 다소 건조하게 들린다. 김형석 교수는 '고향'이라는 수필에서 고향이라는 단어를 케렌시아처럼 썼는데, 고향은 '태어난 곳'이라는 뜻이므로 그것을 케렌시아로 보는 데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심향'(心鄕), 즉 '마음의 고향'으로 옮기기로 했다.심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곳에선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마음은 편해지고, 몸엔 힘이 솟으며, 없던 자신감도 생겨나고, 선택의 기로에서는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심향이라 해서 특별한 곳이 아니라 집 안의 작은 방일 수도 있고, 거실 내의 소파일 수도 있다. 주택에 거주하는 지인이 그 집의 반지하 공간을 소개한 적이 있다. 독서·음악·영화 등을 즐길 수 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분이 방의 이름을 고심하고 있어서 '심향'을 추천해 주었다.필자에겐 심향이 많다. 셋만 꼽으면, 첫째는 경북대 꽃시계 옆의 숲, 둘째는 문경새재, 셋째는 영천호(湖)다. 학교에서 시간이 나면 백양로를 따라 걷다 꽃시계 옆의 숲속 벤치에 앉는다. 고개를 들면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주변엔 소나무와 물푸레나무가 에워싸고 있으며, 바닥에선 부엽토의 온기가 전해온다. 복잡한 일도 이곳에 앉으면 단순하고 수월하게 느껴진다.종일 시간이 나면 새재로 간다. 1관문인 주흘관에서 2관문인 조곡관을 거쳐 3관문인 조령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명품이다. 소나무, 잣나무, 박달나무가 조화롭게 숲을 이루고 곳곳엔 역사와 전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좌측의 조령산과 우측의 주흘산으로 난 등산로도 일품인데 특히 주흘산의 주봉, 관봉, 영봉과 6개의 부(釜)봉은 비경이다. 그간 수도 없이 방문했지만 갈 때마다 몸과 마음이 새 기운을 얻는다.세 번째는 영천호다. 공식 명칭은 영천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영천호'라고 부른다. 순환로가 산기슭을 따라 나 있으므로 자동차로 굽이굽이 도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호수 안으로 내달리다 멈춰선 듯한 키 낮은 산 능선, 이어 놓은 표주박처럼 물 위로 봉긋봉긋 솟은 봉우리들을 바라본다. 호수의 동쪽은 운주산, 북쪽은 꼬깔산과 기룡산이 있는데 서너 시간의 산행 코스로 아주 멋지다. 4월 초순엔 순환로를 따라 벚꽃이 끝없이 만발한다. 벚꽃이 질 때 눈송이가 되어 흩날리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위의 심향들과는 달리 우리 모두가 갖는 마음의 고향이 있다. 명절이면 찾아가는 곳이다. 부모님이 계신 집일 수도, 큰집이거나 작은집일 수도 또는 시가나 처가일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좋은 시간만을 보내면 좋겠지만, 너무 반가운 나머지 예기치 못한 사소한 일로 마음이 상한 채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번 설에는 형편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동근생'(同根生)끼리, 즉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자매들'끼리 따뜻한 정을 나누는 명절이 되길 바란다. 자신을 찾고 소중한 추억 하나 만들 수 있길 기원한다.

2020-01-17 19:47:53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시대산책] 이란과 북한에 대한 차별 대우

핵개발 뚜렷한 증거가 없는 이란 트럼프, 솔레이마니 암살 무리수 노골적으로 핵보유 선언한 북한 경제제재 외 일체의 강경책 없어연초에 미군의 솔레이마니 암살로 촉발된 중동 사태가 싱겁게 일단락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도 어느 정도 체면에 손상이 있었지만 이란이 입은 상처는 엄청나게 컸다. 일단 솔레이마니의 암살은 무리수이자 불필요한 일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그가 이란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인 것은 맞지만 낡은 전술과 불필요한 강경책을 고집하는 등 그를 제거하는 것이 이란에 타격을 가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명분에서도 밀리고 필요성도 의문이 들고 오히려 이란인들의 결집을 가져오면서 역효과만 큰 공격으로 끝날 뻔했다. 이란 정부의 더 치명적인 실수들이 아니었다면.이란은 미국의 이런 공격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듯했다. 내정의 실패와 심화되는 제재 때문에 이란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어가는 와중에 이란에서 가장 유명한 장군이 오랜 적인 미국에 의해 암살되는 사태가 터지자 갑자기 국민적 단결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솔레이마니 딸의 등장과 그녀의 선동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달구었다.솔레이마니의 암살을 보복하기 위해 이란이 미군 기지에 가한 미사일 공격이 이란과 미국이 짜고 친 쇼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오랜 기간 반미투쟁의 선봉장을 자처해 오고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미국에 대한 처절한 보복을 외치던 이란 정부가 이란 국민을 속이기 위해 쇼를 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그런데 이보다 더 큰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란이 보복 공격 쇼를 하는 와중에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시켜 176명이 사망했는데 승객 대부분은 이란인이거나 이란계 캐나다인이었다. 보복 공격을 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미군은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자국인이나 자기 민족만 대거 죽인 것이다. 이 사건 직후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태도 때문에 더욱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이란 정부는 국제적으로도 유구무언이 되고 국내적으로는 반정부 분위기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솔레이마니 암살을 계기로 국민적 단결을 기대했던 이란 정부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고 말았다.최근의 이런 사태들을 보면 영화 제목 '덤 앤 더머'(dumb and dumber: 어리석은, 그리고 더 어리석은)가 생각난다. 누가 더 바보인지 경연대회를 하는 것 같다.최근의 이란을 둘러싼 사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는 것이 있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하고 핵보유를 선언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노골적으로 개발하는데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는 아주 부드럽게 대하고 핵개발을 하고 있는 것인지 뚜렷한 증거가 없는 이란에 대해서는 아주 거칠게 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그 이유는 첫째, 한반도는 서울, 도쿄, 베이징, 상하이 등 세계 경제의 중심적인 도시들이 바로 그 주위에 즐비한 곳이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군사적 충돌은 동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 엄청난 경제적 충격을 줄 것이지만 이란 이라크는 경제 중심지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이란이나 이라크에서 전쟁이 벌어지거나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국제유가에 매우 큰 충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미국 셰일가스의 시장 탄력성이 매우 높아 큰 충격은 없으리라는 예상이 더 많다.둘째, 이란은 종교적 이유 때문에 미국이 아무리 관대하게 대하고 공을 들여도 결국 미국 편으로 돌아오거나 최소한 중립화될 가능성도 없다고 보지만 북한은 제2의 베트남이 될 가능성이 꽤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종교적 배경이 없고 6·25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대부분 사망하면서 미국에 대한 원한도 점차 그 깊이가 얕아지고 있다.셋째, 이란 이라크 등에 전쟁이나 전쟁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중국이나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이 낮지만 북한은 중국의 핵심이해지역으로 보기 때문에 북한에 어떤 사태가 벌어지면 중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치권이 중국에 대한 강경책을 외치고는 있지만 중국과 전쟁할 엄두를 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이러한 사정들을 미국 지도부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는 경제제재 이외에는 일체의 강경책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북한은 그동안의 태도로 볼때 경제제재 외의 그 어떤 강경책을 사용하더라도 절대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지만.

2020-01-16 15:04:35

박천 독립큐레이터

[매일춘추] Veni Vidi Vici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몇 해 전부터 '워라밸'이라는 말이 이슈이다. 이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를 우리말로 줄인 신조어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유럽에서는 1970~80년대부터 등장한 단어인데, 과도한 산업화의 영향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야근이 당연시되는 관행과 퇴근 후 SNS로 업무지시를 하는 등 갖가지 이유로 여가 생활을 할 시간이 극도로 줄어들면서 발생하게 되었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유럽보다 한참 늦게 등장한 이유는 빠른 경제성장을 추구했던 경향이 크다. 이제 한국은 GDP 10위의 국가로서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은 휴식 없는 사회라는 아픈 이면을 만들게 되었다.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생활양식에 있어 '놀다'라는 말은 무척이나 부정적이다. 소위 말하는 '성공'을 위해서는 노는 시간에 일을 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효율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서 여가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나아가 '놀이', '재미있음' 등이 사회적 키워드로써 작동하고 있다. 그 예는 곧 다가오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아마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예전의 개표방송은 딱딱하게 필요한 정보만을 제공하였지만, 최근에는 위트 있는 표현으로 각 후보자들의 특징을 살려 재미있게 표현함으로써 후보자들을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함과 동시에 정보 전달의 집중도를 높인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놀이적 요소는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요한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라는 저서에서 놀이를 두고 자유, 탈일상적 활동, 환상의 공간, 질서를 창조하며 질서 그 자체인 완벽성을 가져다주는 활동 등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놀이의 개념은 예술의 요소와도 닮아있다. 예술은 스스로 질서를 구축하고 다시 벗어나고 다른 질서를 구축하는 형식, 즉 놀이적 방법을 추구해왔다. 그리고 예술은 놀이로서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문화를 구축하였다.이 같은 예술을 통한 놀이의 사유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가 있다. 봉산문화거리에 위치한 우손갤러리에서는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타이틀로 이명미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다. 작가는 회화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여 예술적 표현으로 놀이를 한다. 사물에 대한 시각적 기호와 언어라는 기호, 두 경계를 넘나들며 기존의 틀에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한다.오늘날 사회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아직은 그 경계에 있는 탓인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지만, 늘 그랬듯 우리는 변화를 수용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것이다. 스스로의 시각과 방법을 통해 하나의 놀이(질서)를 만드는 이명미 작가의 전시를 통해 지금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볼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사유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2020-01-16 13:39:41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의 아침놀] 어쩌랴, 내 마음속의 '쥐'를

상주 출신의 유학자 소재 노수신(1515~1590년)의 시를 읽는다. 그는 진도에서 19년간 귀양살이하며 아픔을 달래는 많은 시를 썼다. 올해가 '흰 쥐의 해'여서일까, '생쥐'(鼷)라는 시가 눈에 띈다."머리를 쳐들고 등경 뒤쪽을 냄새 맡다가/ 멀리 밥상 가를 타고 다니곤 하네/ 요즘 들어 내가 잠을 잘 이룰 수 있어서/ 요놈이 구멍 뚫는 것을 거듭 살피지 못했더니만/ 벼루를 지나다가 먹물을 적셔 가지곤/ 책을 헤집고 다니며 성현의 문자를 더럽히기까지 하네/ 무심하게 말없이 웃노니/ 네 놈의 목숨 또한 하늘에 달려 있노라!"한밤 중의 깜깜한 시골집 천장과 방구석으로 으레 찾아들던 불청객. 어릴 적 나도 그걸 경험해 봤다. 쥐는 자유분방하다. 인간들의 윤리나 룰 따위엔 아랑곳 않고 온 방을 헤집는다. 벼루의 먹물을 몸에 묻혀 성현의 문자가 적힌 책장에다, 왕희지가 처음 만들어 썼다는 서수필(鼠鬚筆·쥐 수염 붓)인 양 찔끔 낙서까지 한다. 우스꽝스러우나 요놈은 참 운도 좋다. 대학자의 시에 캐스팅돼 이날까지 살아남았으니. 쥐는 욕쟁이의 입에 담기면 '쥐새끼'로 바뀌나 가끔 '양상군자'(梁上君子) 같은 멋진 칭호도 얻는다.시 황제를 도와 진나라의 통일에 공을 세운 이사(李斯). 그는 초나라 사람으로 하급 관리였는데, 어느 날 관청의 변소에서 쥐가 오물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나타나면 깜짝 놀라는 것을 본다. 또 다른 날, 창고에 있는 쥐들이 곡식을 먹어대면서도 사람이나 개를 겁내지 않는 것을 보고 깨달아, 탄식한다. "사람의 현명함과 현명하지 않음은 쥐와 같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달려 있구나!" 호화로운 곳에 살면 고급 음식을 누리고, 지저분한 곳에 살면 추잡한 것을 먹어야 하듯, 쥐는 처한 여건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결국 그는 부유한 집의 쥐처럼 살기 위해 초나라를 떠난다.서양 고대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흑해 연안의 도시 시노페에서 은행원의 아들로 태어나, 사기를 치고 죽은 아버지에게 충격을 받아 아테네로 도망친다. 빈털터리의 구차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는 주변을 돌아다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한다. 밤이 와도 개의치 않고 음식물도 건드리지 않는 쥐를 보고 그는 깨닫는다. 궁핍 속에서도 만족을 느끼고, 어떤 구속도 없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쥐에게 배워, 그는 생명유지에 필요한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맨몸으로 무소유의 삶을 누린다. 견(犬) 유학자가 아닌 쥐 같은 학자로 산다.옛날 중국에서 생겨난 '자-축-인…'의 십이지(十二支). 이 열두 마리 우주 동물원 속에서 쥐는 서열 1위다. 보통 자시(子時)에 하늘이 열리고, 축시(丑時)에 땅이 열리고, 뒤따라서 인시(寅時)에 사람이 생겨났다고들 한다. 우리 설화에는 쥐의 앞 발가락이 4개, 뒷발가락이 5개인 것을 이렇게 풀이한다. "앞발이 짝수(陰), 뒷발이 홀수(陽)인 것은 자정을 축으로 앞쪽은 음기의 시간, 뒤쪽은 새로 하루가 시작되는 양기의 시간을 가졌다는 뜻. 그래서 열두 때에 자시가 제일 앞에 온다!" 앞발은 깜깜한 야(夜)자시, 뒷발은 새벽이 오는 조(朝)자시이리라. 위 다섯 효(爻)는 전부 음이나 맨 밑바닥에 한 가닥 양 효가 꿈틀대는 지뢰복괘(☷☳)가 떠오른다. 깜깜한 어둠에서 한 줄기 빛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 따신 기운이 들어서는 때다. '불경'에는 호랑이에 쫓기다 구덩이에 뛰어들어 가까스로 붙잡은 넝쿨을 갉아 먹는 쥐 두 마리가 등장한다. 밤낮이라는 시간의 은유이다. 송곳니로 쥐가 물건을 갉아대듯 해도 달도 차면 기운다. 아울러 쥐는 새끼를 많이 낳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이것을 서산(鼠算)이라 하며, 풍요의 근거가 된다.사도 바울은 로마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육신이 있어 죄가 깃들었다'고 번민했다. 육신의 숲에는 쥐뿐만 아니라 개・돼지, 악마도 숨어 산다. 인간은 그들과 밀회하며 흉내를 낸다. 우리가 말하는 쥐 이야기는 모두 인간 자신의 그늘이거나 빛이다. 쥐띠 해에 마음속의 쥐를 사랑할지 잡을지 공부했으면 좋겠다.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2020-01-15 18:43:09

김태훈 대구 영남중 교사

[대구 옛 이야기] 대구 의병장 우배선

화원현 월촌리에서 태어난 우배선(禹拜善·1569~1621)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걸쳐 100명가량의 의병을 이끌며 왜군에 맞서 항전했던 의병장이었다.학업에 몰두하며 고향에서 생활을 이어가던 중, 1592년 5월 23일(양력, 이후 모든 날짜는 양력)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를 선봉장으로 앞세운 왜군 20만 명이 조선에 상륙하여 부산진과 동래성을 차례로 함락하고 파죽지세로 북상하였다. 왜군이 대구에 다다르자, 대구부사 윤현(尹晛)은 관민을 데리고 공산성으로 퇴각하였고, 드디어 왜군은 1592년 5월 31일 대구읍성을 점령하여 그들의 주둔지로 삼았다.왜군의 침략으로 삽시간에 조선의 영토가 유린당하자, 우배선은 곧바로 비슬산 장수동에서 용맹하고 건강한 자 50여 명을 선발하여 의병부대로 편성함과 동시에 무기를 제작하고 군량을 확보해 군사훈련에 돌입하였다. 그는 1592년 7월 2일 화원현과 그 인근에 격문을 배포한 후 비슬산 아래 주요 길목, 낙동강변, 원월산 아래에서 왜군과 격전 끝에 수십 명씩 척살하였다.1592년 9월 즈음에 그는 하빈현에서 초유사(招諭使· 난리가 발생했을 때, 백성을 타일러 경계하는 일을 맡았던 임시 벼슬) 김성일을 만나 그로부터 화원현 가장(假將·전쟁터에서 어느 장수의 자리가 부재했을 경우, 잠시 그 직무를 대신 맡았던 임시 장수)에 임명되었다. 이와 함께 그의 의병부대는 형식적으로 합천·성주 지역의 의병장 정인홍의 지휘하에 들어갔다.우배선 의병진은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11월부터 12월까지 대구를 비롯하여 화원현 조암·감물천, 화원현 성평곡, 심천사·달천, 하빈현 마천현·이천·북면·서면, 현풍현 쌍산역, 화원현 성평동에서 왜군과 교전하여 군공을 세웠다. 1593년 1월부터 6월에 이르는 시기에도 대구뿐만 아니라 송림리, 화원현 감물천, 오동원, 화원현 월배·조암, 달성 등지에서 왜군과 격전을 펼쳐 전공을 거두었다.이 과정에서 우배선은 의령 출신 의병장 곽재우를 만나 왜군 토벌 작전을 논의하였고, 진주성 전투에 참여하려다가 곽재우의 만류로 중단하기도 하였다. 한때는 경상우도 병사로부터 팔거현에 주둔한 왜군을 격퇴하기 위해 합동작전을 요청받았던 적도 있었다.1597년 4월 7일에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우배선은 관찰사 이용순과 신녕 의병장 권응수와 합세하여 달성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고, 다음 해에도 성산·금호진·어느 강가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왜군이 전쟁을 멈추고 철병을 감행하자, 우배선은 예하 의병들을 귀향시켜 생업에 종사하도록 조처하면서, 우배선의 의병투쟁은 끝을 맺었다.우배선 의병진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배선은 예하 부대에 별장들을 각각 임명하여 독립적인 전투 단위로 구성하였다. 또한 그는 병사들을 기병·보병·사수·창수·포수 등으로 편성하였고, 매복·추격·접전·야습·첩보 등의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였다. 다만 우배선은 대구 다른 일부 지역에서 거병했던 의병부대와 연대하지 못한 채 거의 독자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우배선 의병진은 대구와 청도의 접경지를 오가며 왜군의 주둔지를 공격하거나 그들의 이동경로를 차단하여 그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 이에 힘입어 정유재란이 마무리되자, 우배선은 선조에 의해 선무원종 일등공신에 책봉되었다.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에 자리 잡은 월곡역사공원은 단양 우씨 문중에 의해 건립되었는데, 우배선을 기리는 낙동서원(洛東書院), 그가 낙향하여 학문을 강론했던 열락당(悅樂堂), 그의 동상 및 창의유적비, 파리장서비, 월곡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월곡역사박물관 안에는 그의 자료, 농기구와 생활용품, 단양 우씨를 대표하는 인물(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한 우경동·우성동·우승기·우찬기·우하교·우하삼, 산남의진·대한광복회·주비단에서 활약했던 우재룡)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배선을 비롯한 단양 우씨 문중에서 애국정신을 깨닫는다.

2020-01-15 18:00:00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새론새평]정부의 혁신성장, 무엇이 문제인가?

집권 초기부터 정책 순위서 밀려 올해는 '혁신동력강화'라고 명칭 내용은 그대로인데 포장만 바꿔 여기 넣었다가 저기로 옮겨 놓아굳이 슘페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 경제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국가 전체 실질성장률이 2017년 3.2%에서 2019년 2%로 거의 절반 가까이 추락하기도 했지만 경북지역은 그보다 훨씬 상황이 나빠서 2017년에 이미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대구도 조만간 그리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어느 지역보다도 혁신성장이 시급한 곳이 대구경북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만약 서둘러 혁신성장이 되지 못한다면 대구경북지역은 10년이 안 되어 고령 세대로 가득 찬 거대한 슬럼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가장 눈 빠지도록 기다리는 곳도 대구경북지역이다.집권 직후 나온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보면 다섯 가지 경제 정책(5대 전략이라 불렀음) 중에서 혁신성장은 최후순위에 두었었다. 가장 머리에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일자리 정책을 둔 다음 그다음으로 공정경제, 서민중산층을 위한 민생경제, 4차 산업혁명, 그리고 창업과 혁신성장을 배치했다. 그리고 혁신성장의 내용도 '창업을 응원하는 창업국가 조성'이나 '중소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매우 축소된 의미로 국한하여 설정한 것이다.몇 달 뒤인 2017년 12월에 나온 '2018년 경제 정책 방향'에서는 5대 전략을 3대 전략으로 압축한 뒤 일자리-소득주도 전략에 이어 혁신성장을 두 번째로 두었으며 공정경제를 제일 뒤에 배치했다. 여전히 소득주도성장보다는 뒤에 놓여 있지만 공정경제에 앞서 놓였으니 혁신성장의 위치가 상당히 올라왔다. 아마도 청와대의 거부 기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 혁신성장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인데 ①8대 핵심 선도사업을 선정하는 것과 ②'전방위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온갖 부문에다 혁신이라는 이름만을 갖다 붙였다. 예를 들자면 교육훈련 혁신, 기존 산업 혁신, 노동시장 혁신, 중소기업 혁신, 서비스업 혁신, 전 방위 금융 혁신 등이다. 나머지 하나가 ③규제 혁신과 혁신 인프라 구축인데 기존 규제의 적용을 탄력적으로 면제시켜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이나 혁신성장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이런 계획을 야심 차게 추진하기 위하여 정부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혁신성장지원단'을 출범시키고 기획재정부 차관과 함께 이재웅 다음 창업자를 공동본부장으로 영입했다. 김동연 부총리의 2018년 혁신성장 정책은 거기까지였다.2018년 혁신성장 정책의 실패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는 임명된 지 4개월 만인 2018년 12월 "혁신성장이 한 발짝도 못 나갔다"는 비관적인 진단을 남기면서 '혁신성장지원단' 민간인 본부장이 사퇴한 것이다. 물론 혁신성장이 안 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하긴 했지만 200명에 가까운 혁신성장본부 민간자문위원도 거의 같은 한계를 느꼈다. 다른 하나는 2019년 경제 정책 방향에 혁신성장이라는 말이 아예 빠져버렸다. 대신에 '경제체질개선과 구조개혁'이라는 대과제가 들어왔다. 그 안에는 핵심규제 혁신과 제조업 혁신 전략을 포함하는 주력 산업 육성 대책들이 들어갔다. 8대 선도사업 지원 추진, 서비스 산업 획기적 육성과 같은 것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이들은 이미 2018년 계획에 들어가 있던 것이라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 2019년은 새로운 혁신성장 정책 없이 지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지난해 12월 19일에 나온 2020년 경제 정책 방향에는 혁신성장이라는 말 대신 혁신동력강화라는 새로운 단어가 들어왔다.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빅3(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자율주행차),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2019년 경제 정책 방향과 대동소이하다. 핵심규제 혁신은 혁신동력강화에서 따로 떼어내 경제 체질개선이라는 큰 테두리 안으로 옮겨 넣었다. 말하자면 내용은 거의 그대로인데 포장만 바꾸어 여기 넣었다가 저기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혁신성장단의 비판과 한계를 느껴서인지 정부는 새로운 기구인 관계부처 합동 '혁신성장추진기획단'을 만들어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집권 처음부터 혁신성장은 정책 순위에서 밀려 있다가 2019년에는 정책과제에서 아예 빠져버렸다. 2020년에는 혁신동력강화라는 말로 바꿔서 들어왔다. 이 정부에서 혁신성장이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0-01-15 13:56:02

동진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 귀를 막고 종을 치다

긴 겨울 만물은 뿌리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성숙시킨다.겨우내 오지 않던 비가 내리고 며칠 날이 따뜻해지자 뒤뜰 매화나무 가지가 파릇해지고 움이 맺혔다. 움이 꽃을 피우고 눈이 내리면 눈 속의 꽃인 설중매가 된다. 다른 꽃나무들은 아직도 겨울인 양 깊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일컬어지는 매화는 계절을 알리기 위해 맹추위를 뚫고 봄을 준비하고 움직인다.산책을 위해 망월사 주변을 걷다 보면 낙화담의 청둥오리들이 물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편대비행을 하더니 수면에 내려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자맥질을 하며 은빛 날개로 물살을 가른다. 물 위에 앉은 오리 떼를 바라보며 보케리니의 첼로 협주곡 9번 2악장을 들으며 나라를 생각한다.'여씨춘추'(呂氏春秋)에 범씨가 다스리던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한 백성이 혼란을 틈타 범씨 집안의 종을 훔치려고 했다. 종이 너무 커서 도둑은 망치로 종을 깨 가지고 나가려 했다. 그 도둑은 종소리가 크게 울려 펴져 다른 사람이 올까 봐 두려워서 자기의 귀를 막고 종을 깼다.자기가 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의 비난이나 비판이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엄이도종·掩耳盜鐘). 송나라 주희는 이 일화를 인용해 "종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귀를 막는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문재인 정부가 보복인사를 통해 검찰총장의 손발을 잘라내고 탄압하고 부정을 덮으려는 짓이 위와 같다. 정권의 비리가 드러날까 봐 수사를 막고 무력화하려는 것은 귀를 막고 종을 깨는 행위이다. 권력의 힘으로 정의를 뭉개고 가겠다는 정권의 시도는 반드시 국민의 분노와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공정을 외치며 반칙과 특권을 일삼는 측근들을 물리치지 않는 한 정의의 종소리는 더욱 크게 울려 펴지고 성난 민심은 개혁되지 않으면 정권을 무너트릴 것이다. 이제 겨우 임기 반환점을 넘긴 이 정권은 측근들의 부패가 심각하다. 문 정권은 역사에서 부침(浮沈)을 배우며 읍참마속하는 지혜를 자연에서 얻어야 한다.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어린 동승이 개구리와 뱀, 물고기를 잡아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트리며 실로 돌에 매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자고 있는 동승의 몸에 돌을 묶어 동일한 업보로 보상을 받게 한다.부처님은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라 하시면서 "부끄러워할 줄 알고 마음으로 행동을 삼가면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김수환 추기경은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 걸렸다"고 했다.인간의 삶은 수많은 행위의 집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에 의해 그 사람의 귀함과 천함이 나눠진다. 보람과 가치가 있는 삶인지 후회만 남는 삶인지 결정된다. 좋은 행위를 한다면 점점 귀해지고 나쁜 행위에 길들여지면 점점 천해진다.인생(人生)이란 바로 이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한 조각 구름이 아닌가. 일순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순간 사라져버리는 것들. 고정된 실체 없이 찰나생멸(刹那生滅)하는 이 세상에 단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갈 뿐. 왜 위정자들은 나눔과 평화의 상생을 연주하지 못할까?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어둡고 마음이 밝으면 세상이 밝다.

2020-01-15 13:54:20

문상부 회장

[기고] 잘못된 선거구, 이번엔 바로잡아야 한다

제21대 총선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국회의 진행 상황을 보면 전체 지역구 수 253석이 유지되면서 경북 지역은 지역구 수 13석으로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회의 4+1협의체에서 인구 하한 기준을 13만9천470명으로 유력하게 검토 중이고, 이 안이 확정될 경우 경북에는 영양영덕봉화울진 선거구가 인구 하한에 미달되어 현재 포항남울릉 선거구에서 울릉군만 떼어 여기에 붙이는 획정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경북 지역의 경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로 다수의 선거구가 2개 이상의 시군을 합쳐 획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4년 전의 선거구 획정을 보면 특정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구가 기형적으로 획정되어 주민들의 의사가 무시되고 주민들의 생활문화권과 동떨어져 있어 이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지난해 10월 한국도시행정학회가 경북 북부 지역 4개 권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에 의하면 현행 선거구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사유는 시군 간 생활권이 다르고(35.3%) 이해관계가 다르다(30.4%)는 이유가 65%를 넘었다. 이것은 바로 경북 북부 지역 선거구가 기형적으로 획정되었음을 입증한 것이다.또한 경북도청, 경찰청, 교육청이 이전한 도청신도시를 품고 있는 안동시와 예천군이 서로 다른 선거구로 나누어져 있어 향후 경북 발전을 주도하기 위한 정책 추진이나 예산 집행 등 여러 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행정기관 이전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상황이 이러한데도 현행 선거구 중 인구 하한에 미달하는 영양영덕봉화울진 선거구에만 땜질식으로 울릉군을 갖다 붙이자는 정치인의 주장은 지역 실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울릉군 주민들은 배편이 가장 많은 포항시로 자녀들을 유학 보내고 파도가 높은 겨울철에는 포항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다시 울릉도로 들어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활문화권을 무시하고 다른 선거구에 편입시키는 것은 교통과 생활문화권을 고려하여 지역구를 획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제25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국회나 정치권에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어 선거 때마다 땜질식으로 획정해 왔는데, 과거의 사례를 보면 지루한 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선거를 40여 일 앞두고서야 선거구가 획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직도 총선을 3개월이나 남겨둔 시점이므로 선거 일정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또다시 땜질식으로 획정해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이번에는 정치인의 의사보다 지역구민의 의사를 더욱 존중하여 지난번 획정 시 정치인의 지나친 개입으로 주민의 생활문화권과 불일치하는 잘못 획정된 선거구를 바로잡아야 하겠다.이번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의 독립기구로 출범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공정하게 선거구를 획정할 수 있도록 정치권력이 획정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이 또다시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구가 졸속으로 획정되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획정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현행 선거구 중 잘못된 선거구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시민단체를 결성하고 '선거구 바로잡기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 획정 과정에 개입하여 사익을 취하려는 나쁜 정치인이 있다면 이 정치인에 대한 강력한 낙선 운동을 벌여야 하겠다. 그래야만 잘못된 선거구를 생활문화권과 일치하고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선거구로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20-01-15 13:52:21

이지영 교육극단 아트피아 대표

[매일춘추] 인공인간의 감정  

얼마 전 삼성전자가 극비리에 개발해온 인공인간(Artificial Human)프로젝트 '네온(NEON)'을 공개하였다. 스크린 속에서 다양한 인종과 생김새를 지닌 몇 명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말투와 표정, 손동작, 목소리까지 정말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가상의 아바타라고 한다.누가 진짜 인간인지 구별이 쉽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한 아바타를 보면서, 뭐 워낙 과학이 발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보니 자연스러운 모습 중 하나라 여겨졌고, 정교함을 잘 살려서 만들었구나 했다.하지만 이들은 수백만 가지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며, 게다가 감정과 지능, 학습 능력까지 갖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깊은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과 그 학습이 쌓이면 지능이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분은 너무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감정이란 어떤 상황을 대할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을 말하는 것인데 어떻게 이것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기분은 제각각일 텐데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를 학습하고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행동한다는 것인가? 그럼 이것은 살아있는 감정이 아닌 '죽은 연기(演技)'인가? 만일, 인공인간이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면 상황에 따라 감정기복이 심한 특이한 인공인간도 있을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질문은 여기서 멈추었다.'서브텍스트(sub-text)'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생각, 느낌, 판단 등의 내용을 뜻하는 개념으로, 말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가끔 사용하는 '쫌!' 이라는 사투리는 가장 많은 서브텍스트를 가진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상황과 분위기, 감정 상태에 따라 뜻은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관계에서 오가는 언어뿐만 아니라 언외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참 어렵고 중요한 일 중 하나이기 때문에 헷갈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영화 'A.I.'보면 꿈과 희망, 사랑이 학습된 충격적인 로봇이 나오지만 서브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것은 분명 '진짜' 감정이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기에 학습에 의한 경우의 수로 표현하기란 한계가 있어 감독은 이러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감정'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 때도 있고, 이로 인해 서로 다투고 미움을 만들기도 하지만 교감하며 '희망'과 '사랑'을 나누게 하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아무리 과학이 발전하여도 인공인간이 사람의 서브텍스트를 이해하고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지며 진짜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다가올 시대는 분명 인간과 인공인간이 공존할 것이다. 그 공존할 시대의 가치를 지금보다 '인간다움',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좀 더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0-01-15 11:27:31

이응규 EG 뮤지컬 컴퍼니 대표

[매일춘추] 이미 정해져 있던 주인공

연습실 마룻바닥 위에는 대학생 배우들과 코칭 스태프들의 뮤지컬 연습이 한창이다. 낯선 이의 방문에 이목이 집중된 터라 총총걸음으로 연출석 테이블을 가로질러 구석에 잽싸게 자리를 잡는다.끼와 흥으로 무장한 학생 배우들은 또래로 보이는 낯선 소년을 의식이나 한 듯 더 격렬한 춤사위로 자신의 재능을 뽐낸다. 과장된 몸짓과 노랫말로 대사를 주고받는 장르를 난생 처음 보게 된 소년은, 특유의 무뚝뚝함을 팔짱에 장착한 채 오그라드는 몸을 숨기느라 애꿎은 혀를 어금니로 깨무는 듯해 보인다. 스승은 소년에게 다가가 귀에다 대고 성악 발성으로 음가를 넣어 조용히 한마디 거든다. "중요한 대사는 노래로 해야 해. 왜냐면 이건 뮤지컬이니까~""웩!"처음으로 소년에게 주어진 일은, 소리가 나는 장비를 조작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Sound Operator이다. 이 일은 배우들의 대사에 따라 음악을 재생하는 아주 단순한 노동이지만 연습 내내 콘솔 옆에 죽치고 앉아있어야 하는 아주 곤욕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연습이 없는 오전 시간에는 무대 제작 일을, 연습을 마친 늦은 밤에는 로드 매니저 일을 병행하며 뮤지컬 공연 외적인 일들까지 맡아 오고 있다. 소년은 늘 소망한다. 주인공들을 보조하는 삶이 빨리 끝나기를.그토록 기다린 공연 날이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긴장 속에서 배우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여 음악을 재생하다 보니 10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이다. 커튼콜을 마친 배우들이 무대를 빠져나가는 순간 긴장이 풀린 듯 소년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에 맺힌 땀을 털어낸다. 더 이상 무대 세트 가시에 찔리는 일도,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노래를 트는 일도, 배우들을 집에 태워다 주는 일도 소년에게는 추억이 되어버린 감격스러운 순간이다.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객석에 불이 밝혀지자 갑자기 1천여 명의 관객들이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소년에게 일제히 줄을 지어 다가온다. 당황스러운 소년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려보는데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관객들이 그에게 다가와 한마디씩 건네며 객석 밖으로 유유히 사라진다."정말 멋진 음악 재생 능력이예요!" , "당신의 견고한 못질로 세트가 넘어지지 않았군요"이 일만 끝나면 스승을 떠나 소년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려고 마음 먹었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무대 세트 제작실에서 혼자 안무 동작을 따라 하고, 주인공을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목놓아 노래를 부르며, 배우들의 호흡에 맞춰 스페이스바를 누르며 기뻐했던 소년은 이미 정해져 있던 주인공이었을지도 모른다.쏟아지는 환청에 어안이 벙벙하다. 마치 오케스트라 마에스트로가 된 것만 같은 소년은 우아하고 기품 있는 자세로 남은 한 곡을 향해 스페이스바를 누르며 외친다."Exit Music, 큐~!"

2020-01-14 11:36:06

장현우 법무법인 두우 변호사

[경제칼럼] 인공지능(AI)은 공정한가

인간이 쌓아온 수많은 데이터를 선택과 결정에 반영하는 것이 AI 축적 데이터가 공정하지 못하면 AI 판사'변호사도 공정하지 않아"인간 판사, 변호사보다 인공지능(AI)이 빠르고 공정할 것 같다." 최근 주위에서 자주 듣곤 하는 말이다.실제 유럽 에스토니아에서는 소액재판(소송가액이 적은 민사재판)에서 AI 판사 도입을 추진 중이라고 하며, AI 작가가 그린 그림이 5억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우리 정부도 작년 말 AI 국가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 경쟁력 세계 3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등 디지털 혁명은 정부, 개인과 기업들에 더 나은 효율성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이미 인간과 AI 간에는 대결이 진행 중이다. 바둑의 이세돌 9단이 대표적이다. 알파고에 이어 작년 12월 바둑 AI 한돌과 은퇴 대국을 했고, 변호사가 법률 자문 대결을 해 AI 변호사에게 우승을 넘겼다는 소식도 들린다.인간계 대표 선수들이 AI와 대결을 펼쳤지만 승전보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AI는 강력하고 빠르다. 인간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스피드 있게 계산하고 처리한다.제조·유통업계는 AI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자율주행차 관련 소식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드론이 집 문 앞까지 택배를 하는 세상이고, 스마트폰으로 쇼핑과 구매를 하면 로봇이 소비 성향을 파악하고 추천 상품을 제시한다. 손안에서 해외 송금, 환전도 가능한 세상이다.나아가 가까운 미래에 인간이 차를 운전하면 불법이 되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인간은 난폭·졸음·음주운전 등을 하여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양산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최근 '윤창호법'으로 음주운전의 처벌 기준이 대폭 강화되는 것을 보면 그런 예상을 부인할 수도 없다. 실제 서울의 신분당선은 운전석이 없는 무인전동차이다. 이렇게 운전까지 넘겨줄 정도로 인간은 AI에 패배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AI가 인간보다 신속하며 공정할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기업의 채용 과정에 AI를 도입한 결과, 기존 남성 중심적 데이터를 학습해 여성에게 부당한 감점을 주었고, 미국 범죄 예상 시스템에서는 백인보다 흑인에게 2배 이상 부정적인 범죄 발생 결과를 예측했다고 한다.AI가 인간의 차별적인 데이터를 학습해 성차별 및 인종차별적인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AI도 살아온 인간을 닮는 것이다. 그럼 AI도 공정하지 못한 것인가.결국 인간이 쌓아온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는 것이 AI이다. 우리의 살아온 모습이 데이터로 AI에 반영되는 것이다. AI 판사와 변호사가 공정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우리의 사법 관련 데이터는 공정한지, 전관예우는 없었는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상 데이터는 공정한지, 소위 말하는 갑질은 없는지, 학연·혈연·지연이 없는 판단과 결정을 하였는지, 우리가 살아가며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렸는지, 내가 속한 지역·기업과 가족 속에서 공정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공정한 소비와 생산을 하며 공정한 판단을 하고 있는지.공정하지 아니하고 차별이 많은 사회에선 이를 학습한 AI도 공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AI의 신속함과 공정함은 우리의 미래 세계를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끌어 주는 도구이다.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고, 경제적 번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고 어떤 모양새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숙제는 결국 인간의 책임이다. AI는 우리를 꼭 닮은 모습이기에 그러하다.새해에는 차 운전을 하면서 과속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횡단보도 정지, 신호등 지키기 등 기본에 충실하려 이전보다 더 노력해 본다.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하고, 가족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며, 스마트폰 검색어에 신중을 기하고, 기사 보기도, 투표도 신중해야 할 것이다.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데이터를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2020-01-14 11:23:49

퇴행성 관절질환과 수술 후 세포 재생과 통증 경감을 위해 레이저 치료가 적용되고 있다. 동물이 편안하게 안겨서 레이저 조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령동물과 허약한 동물에게 적합하다.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제공.

[박순석의 동물병원24시] 노령동물의 가정재활운동과 레이저치료

반려견도 나이가 들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몸이 약해지고 퇴행성 관절질환이 발생한다.공주(페키니즈, 15세)가 기저귀를 차고 내원하였다. 공주는 어릴적 슬개골 탈구 수술을 받았었고 척추유합(척추가 융합되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현상)을 앓으면서 최근들어서는 뒷다리를 딛지 못하고 소변마저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야하는 상태였다. 가족들은 수술을 해서라도 회복하기를 바랬지만 나는 "나이 많은 공주에게는 수술이 아닌 재활 치료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노력으로 공주는 두달 뒤, 스스로 보행이 가능해졌고 이전 보다 더 건강해지고 있다.공주가 뒷다리 보행 장애를 이겨낸 사례는 노령동물과 골관절질환을 앓고있는 모든 반려동물에게 쉽게 적용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령의 반려동물이 퇴행성 골관절질환으로 보행이 불편해질 때 효과적인 가정에서의 재활 운동을 소개한다.노령동물의 퇴행성 관절질환 치료의 대원칙은 통증관리와 근육량 증가에 있다.통증 관리는 전적으로 수의사의 처방에 의존해야 한다. 수의사는 동물의 혈액검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적합한 진통제와 영양요법을 병행한다. 통증이 어느정도 관리되는 시점부터는 근력증가를 위한 재활 운동이 이뤄져야 한다. 정신적으로 쉽게 위축될 수 있는 노령동물의 특성 상 통증의 개선 없이 무리한 재활운동은 역효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노령동물의 노화는 근육량에 반비례한다. 근육과 인대가 건강하면 관절의 손상을 막아주고 혈류량이 증가하면서 염증과 통증을 완화시킨다. 반면에 통증이 지속되어 보행을 기피하면 근육과 인대는 급속히 위축되어진다. 노령동물에게 근육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근감소증(Sarcopenia)을 의미하며 사망에 이르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노령동물의 재활 운동은 자발적인 보행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보행의지를 키워주기 위해서 먹거리나 애착어린 장난감을 이용할 수 있다. 사료는 한곳에 담아 주기 보다는 한 알씩 흩뿌려주거나 수건 아래에 감추어 줄 수도 있다. 특정 보호자를 의존하는 동물이라면 보호자가 자주 이동하며 동물이 안겨오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동물이 자발적으로 이동하려는 동기를 만드는 것이 재활운동의 첫 단계이다. 동물이 스스로 이동하려는 의지를 보일 때 간식이나 칭찬이 보상으로 주어지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이동할려는 의지가 있지만 제대로 서는 게 불가능해서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경우라면 허리 또는 양측 뒷다리를 붕대나 수건으로 견인하여 도와줄 수 있다. 단, 최소한의 도움이 효과적이다.체중의 감량이 필요하다. 뒷다리 보행이 어려운 만큼 상대적으로 앞다리로 몸무게를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중이 과할수록 앞다리로는 체중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며 동물의 보행의지는 감소한다. 치료 목적이던 예방 목적이던 과체중은 반드시 감량돼야 한다.보호자는 발목, 무릎관절, 엉덩이 관절을 부드럽게 마사지하거나 회전시키며 근육과 인대가 굳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ROM). 발바닥이 지면에 닿아 체중을 받치듯이 보호자가 손가락으로 발바닥을 밀쳐주면서 발목 뒷부분의 비복근(종아리근육)과 아킬레스건이 단단하게 신장되도록 반복하여야 한다.바닥재는 미끄럽지 않은 재질을 깔아준다. 푹신한 담요는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발바닥 패드 관리도 중요하다. 동물들이 핥더라도 해가 되지않는 코코넛오일을 패드에 자주 발라주며 보습상태가 유지되도록 관리한다. 발톱은 깎기 어렵다면 갈아줘야 한다. 발바닥 패드가 지면과 밀착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발톱은 항상 잛게 유지돼야 한다.최근에는 퇴행성 관절질환과 수술 후 빠른 회복을 위해 세포 재생과 통증 경감을 위한 레이저 치료가 적용되고 있다. 동물이 의사에게 편안하게 안겨서 레이저를 쬐기 때문에 노령동물과 허약한 동물에게 적합하다.디스크질환은 재활운동을 시도하기 전에 수의사와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 척추 신경의 압박 정도에 따라서는 재활 운동이 신경손상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020-01-14 09:19:11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인류의 후계자 쥐

'금년은 무자년이다. 무자년은 '쥐'년이라고 한다. 도대체 쥐를 해에다 부치는 것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쥐는 인류 생활상 거의 대부분이 유해하며~작년에 북조선 일대에 창궐하여 38선을 넘어 남조선에 침입한 흑사병의 공포는 기억에 생생하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1월 1일 자)1948년은 올해처럼 쥐띠 해였다. 새해 첫날 '인류의 후계자 쥐'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12가지 띠 동물의 첫 번째인 쥐. 인류의 후계자라고 하면서도 덕담 한마디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제강점에서 해방되어 3년이 되었지만 민생고는 여전했다. 게다가 수시로 전염병이 돌았다. 전염병을 옮기는 매개 중 하나가 쥐였다. 그런 마당에 쥐띠 해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해방 이듬해에 번진 콜레라의 후유증이 그대로인데 이내 흑사병 공포에 휩싸였다. 흑사병은 쥐에 붙어사는 쥐벼룩이 옮기는 페스트균이 원인이었다. 전염되면 살이 썩어서 검게 된다고 흑사병으로 불렸다. 이미 중세 유럽에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던 흑사병이 북조선 일대에 번졌다고 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38선 인근의 양양 등에서는 실제로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러니 흑사병을 옮기는 쥐가 원수처럼 여겨졌다. 쥐 가죽으로 추위를 막고 쥐 수염으로 붓을 만들어 썼다는 선조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민망했다. 새끼를 많이 낳고 쥐구멍 안에 먹거리를 확보해 둔다고 다산이나 물질적 풍요로 연결 지어 말하는 것도 꺼림직했다.병균을 퍼뜨리는 쥐는 씨를 말려야 하는 박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쥐잡기가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끼니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쥐잡기는 그야말로 사치에 가까웠다. 오죽했으면 해방 직후 구서(驅鼠) 주간을 정해 쥐 한 마리를 잡아오면 5원씩 현금이나 물품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했겠나. 구서는 쥐를 잡아 없앤다는 뜻이다.'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는 식량이 부족한 시대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구호였다.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쌀을 축내는 쥐를 그냥 둘 수 없었다. 6·25전쟁이 끝난 가을에 경상북도는 쥐 170만 마리를 잡았다고 발표했다. 숫자를 어떻게 세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쥐잡기는 큰 뉴스였다. 쥐약을 놓는 시간까지 당국에서 정해줬다. 쥐를 잡은 증거로 쥐꼬리를 학교에 들고 가는 일도 벌어졌다. 애완 쥐를 키우거나 인간의 유전자와 닮은 쥐가 주는 의학적 혜택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경자년 쥐띠 해의 첫 달도 절반이 흘렀다. 다만 과거에 띠가 바뀌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입춘은 스무날 남짓 남았다. 올해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수시로 쥐 소탕을 벌일 게 뻔하다. 쥐들은 의심할지 모른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분풀이로.

2020-01-13 18:00:00

김문환 세명대 교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명을 거역한" 이순신과 검찰 인사

'일본 침략 대비'를 뭉갠 무능한 선조와 집권 동인 파당한국인 다수가 일본 여행을 자제하면서 대마도 관광산업은 초토화됐다. 대마도에 여러 차례 탐방하며 느꼈지만, 대마도는 한국 관광객이 없으면 쓰러진다. 대마도 중심 도시인 남부 이즈하라 박물관에 가면 귀한 그림이 탐방객을 맞는다. 「조선통신사 일행」. 부산과 대마도를 거쳐 오사카로 가던 통신사의 모습을 담았다. 1590년 일본의 조선 침략 정보가 돌자 조정은 황윤길 정사, 김성일 부사로 조선통신사를 구성해 오사카로 보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온 정사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부사 김성일은 반대로 가능성 없음을 아뢴다. 선조와 집권 파당인 동인 세력은 부사 김성일의 그릇된 의견에 방점을 찍는다. 이유는? 김성일은 동인이요, 옳은 정보를 낸 황윤길은 서인이었던 탓이다. 당파에 찌든 조정과 무능한 왕은 국가의 안위를 뒤로한 채 사사로운 감정으로 국사를 그르친다. 류성룡, 파벌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으로 이순신 발탁국보 132호 징비록(懲毖錄)을 펼쳐보자. 서애 류성룡이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양란을 겪으며 적은 뼈저린 반성록이다. 이재호가 번역한 「징비록」(위즈덤하우스)을 보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성을 쌓던 관리를 조정에서 상 대신 벌을 주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일본이 1592년 4월 13일 부산으로 침략해 들어왔고, 불과 20일도 안 돼 한양을 빼앗긴다. 선조와 파당 세력은 백성을 일본 군사 수중에 팽개친 채 명나라와 가까운 의주로 도망간다(몽진). 무능한 선조가 잘한 일 하나는 류성룡을 좌의정 겸 이조판서(인사 담당)로 임명한 거고, 류성룡이 잘한 일은 임란 직전 평범한 지방 수령인 정읍현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발탁해 일본 침략에 대비토록 한 거다.이순신의 연전연승 국란 극복의 초석이 되다일본에 대비한 남해안 앞바다는 4개의 수군이 맡아 지켰다. 부산 앞바다 경상 좌수영, 그 오른쪽 거제 앞바다 경상 우수영, 여수의 전라 좌수영, 목포의 전라 우수영. 임란이 터지자 경상 좌수사 박홍은 그길로 달아났다. 경상 우수사 원균도 군선과 무기를 대부분 수장시키고 이순신 부대에 기대는 형국이었다. 이런 기막힌 상황에 이순신의 분전은 눈부시다. 전란을 예견해 거북선을 만들고 군사를 조련한 덕에 5월 7일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연전연승을 거둔다. 조정은 직제에 없던 삼도수군통제사직을 이순신에게 주며 경상, 전라, 충청의 수군 총괄 임무를 맡긴다. 이순신 전성시대가 열리며 나라는 위기 극복의 힘을 얻는다.간신들의 무고로 파직된 이순신, 무너진 수군침략군으로 조선에 쳐들어온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순신 제거 없이 승리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공작을 편다. 간첩 요시라를 보내 고니시 유키나가의 경쟁자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을 재침할 것이니 상륙하기 전에 그를 치라는 정보를 경상 우병사 김응서에게 흘린다. 보고를 접한 조정은 이순신에게 가토 기요마사를 치라는 출전 명령을 내린다. 일본의 정보 공작을 의심한 이순신이 합리적 판단으로 출전을 미루자 원균이 이순신을 비방하는 소를 올린다. 조정의 북인 패거리와 선조는 "임금의 명을 거역했다"는 구실로 이순신을 파직한 것도 모자라 의금부로 압송해 혹독한 고문을 가한다. 북인의 견제를 받던 류성룡도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이순신을 대신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대패한 뒤에야 조정은 이순신을 복직시키고 이순신은 12척 배로 명량해전 대승 신화를 쓴다.왕명을 거역한 이순신과 명을 내린 파당 세력 평가"검찰총장이 내 명을 거역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정권의 핵심 친문 세력을 가차 없이 수사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내뱉은 말이다. '거역'. 왕조시대도 아닌 21세기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생뚱맞은 아니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크다. 이순신 장군은 비합리적인 왕의 명을 따르지 않아 나라를 구해냈다. 명을 거역한 이순신은 후대에 영웅으로 남지만, 명을 내린 선조와 파당 세력은 나라를 그르쳤다는 쓰디쓴 비판을 받는다.

2020-01-13 18:00:00

남평문씨 세거지 담장

[세월의 흔적]<56>담장

2천 년대 초반,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4년부터 대구에서 '담장 허물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삼덕동의 한 가정집이 담장을 허물었는데, 예쁜 정원을 공유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였다. 정원이 담장 때문에 늘 그늘이 질 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만이 보고 즐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담장을 허물고 난 뒤 한동안 불안감이 없지 않았으나,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담장을 허물자 새로운 '골목공원'이 생겼다. 이웃의 주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놀이터가 되었다. 또한 담장 옆에 세워두던 차량들이 사라졌고, 대문 앞 쓰레기도 깨끗이 치워졌다. 삭막하던 골목이 조금씩 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대구시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마침내 시민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먼저 행정기관부터 동참하였으며, 공공기관을 비롯한 도심에 자리 잡은 공원이며 대형 병원도 담장을 허물었다. 도시공동체 운동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담장은 농업사회에서 활발하게 발달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크게 발달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온돌이라는 특유의 난방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온돌 때문에 건물을 단층으로 지어야만 하였다. 단층 건물로 지으니 건물이 낮고 넓게 깔릴 수밖에 없고, 방이 필요하면 별채로 짓는 구조가 되었다. 자연스레 좁고 긴 건물 여러 채가 있는 구조가 되었고, 흩어진 건물들 사이에 마당이 많은 공간적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그 같은 마당은 외부인들이 들어오기 쉬운 구조라서, 그런 불편을 막기 위해 담장을 둘러쌓았다.담장을 높이 만들면 공사비가 더 들게 마련이다. 또한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땅이 물러져서 담장이 쓰러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담장을 최소한의 높이로 만들어 영역을 나누었다. 그로 해서 낮은 담장과 골목길이라는 우리네 특유의 주거 형태가 조성되었다. 오래된 전통 마을에 가보면 그 같은 정취를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이 같은 모습은 1970년대 2층 양옥집을 짓던 시절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담장이 만들어 주는 공간인 골목길에서 만나고 머무르고 이야기하며 오순도순 살았다.현대 도시에서 담장은 집단 이기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남과 나를 구분한다는 의미에서 담장은 분리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아파트 단지는 담장을 둘러쌓고 일반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런 경우 담장은 허물어야 마땅하지만, 아파트의 담장과 주택의 담장은 성격이 다르다. 주택의 경우 도로에서 거실이나 안방이 들여다보이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람살이의 내밀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신도시에 가보면 담장은 없지만 주택을 요새처럼 만들어 놓은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담장을 허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아니겠는가.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20-01-13 18:00:00

아우슈비츠 유대인 모습을 대리석 조각에 올린 청동 종

[세상속의 종소리]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슬픔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는 그리스어로 전체(hólos)를 태운다(kaustós)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동물을 잡아서 태우며 연기를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인 번제(燔祭)에서 유래하였다. 1933~45년 사이에 있었던 홀로코스트 결과 유럽의 유대인은 600만 명이 죽고 350만 명 정도가 살아남았다.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나치의 유대인 절멸캠프에는 20만 명의 생존자가 있었다. 소련군이 동부에서 진격해오자 나치는 수용소를 폐쇄하고 수용자를 이동시켜 후일을 도모하고자 했다. 1945년 1월 18일 엄청나게 추운 겨울밤에 6만 명의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은 서부에 위치한 우지슬라우로 향한 야간 행진으로 내몰린다.수천 명은 이미 며칠 전에 학살되었다. 대부분은 얇은 옷차림에 신발도 없었고, 쓰러지거나 따라올 수 없는 사람들은 즉시 사살되었다. 도보로 예정지에 도착한 수감자들은 난방이 없는 기차로 다시 독일로 옮겨진다. 이미 영양실조나 질병을 앓던 상태인 이들에게 물과 식량도 제공되지 않았다. 이 겨울밤의 '죽음의 행진'에서만 1만5천 명이 죽었고, 그해 봄까지 5만 명 이상이 총살당하거나 사망하였다.유대인들은 강인하였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 이름을 바꾸고 출생지를 속여 타 민족 주거지에 숨어들었고, 가끔 선한 이웃의 도움을 받았다. 해방된 나치의 수용소에서 생존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가족과 집을 잃었고, 그들 고향의 반유대인 정서로 귀환할 곳도 없었다. 5만 명의 동유럽 유대인들은 2차대전 승전국가가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지역에 설치한 재배치캠프에 수용되었다.이들의 수는 점차 증가하여 1946년 당시 독일의 18만5천 명을 비롯하여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캠프에 25만 명이 수용되었다. 여기서는 살해의 위험은 없었으나 생활은 고달팠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중동부 유럽 출신자를 중심으로 13만여 명이 고국으로 떠났다. 나머지는 유럽 국가나 미국으로 떠났다. 소련의 유대인들도 소련이 해체되며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홀로코스트에서도 살아남았던 생존자들은 또 다른 고통을 마주하였다. 우선 지독한 가난을 극복하여야 했다. 종교적인 민족 유대인들에게 지옥과 같은 상태에서도 신의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엄청난 영적 좌절이었다고 한다. 생존자들은 홀로 살아남았다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는 생존자증후군을 겪었고 자살자가 속출했다. 그들은 수용소에서 목숨을 부지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했기에, 사랑하거나 살해당한 동료를 애도하는 감정조차도 없었다.직접 참극을 겪지 않았던 생존자의 후손에게도 정신과 환자가 많았다. 타인과 교감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떨어졌던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가 유전자로 전달된 것이다.1940년대 후반 유대인 생존자가 만들었다는 아우슈비츠 유대인 모습의 대리석 조각을 올린 청동 종을 만났다. 긴 수직 줄이 쳐진 얇은 옷차림의 깡마른 사내가 초점을 잃은 모습으로 무감각하게 시선을 주고 있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만났던 사진 속 수용자의 바로 그 모습이다. 동유럽의 어느 생존자는 아우슈비츠의 아픈 기억을 잊으려, 아니 잊지 않으려 이 종을 만들었다. 말로서는 전할 수 없는 아픔이 담긴 종소리가 퍼져나간다.

2020-01-13 16:51:23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세계의 창] 육지보다 4배 넓은 대구경북 바다 - 김인현 교수

내륙의 중심인 대구에 집중시킨 대구경북인 시야는 육지바라기 긴 해안선을 갖고 있는 대구경북 해양 자원 충분히 이용해야 번영대구경북은 긴 해안선에 면해 있다. 대구경북지역이 갖는 육지 면적보다 바다 면적이 4배가 더 넓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략 생각해보자. 포항의 해변가에서 충청남도 경계선까지는 약 100㎞이다. 우리나라의 영해가 3마일까지였던 때에는 바다 면적이 오히려 육지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1982년 유엔 해양법(이하 82년 해양법)이 적용되는 지금은 기선(해안선)에서부터 200해리(약 370㎞) 바다를 가질 수 있다. 바다가 육지보다 약 4배가 더 많다.공해에는 항해의 자유가 있어 왔다. 영해가 넓어지면서 공해는 줄어들어 연안국의 힘이 세어지고 자유 항해는 제약을 받게 됐다. 82년 해양법 체제에서는 영해가 3해리에서 12해리로 늘어났다. 또한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졌다. 기선에서 200해리까지 연안국이 어로, 환경 등에 대한 제한적인 관할권을 가진다. 선박이 항해할 자유는 보장되면서도 생물자원의 보호, 환경, 안전적인 측면에서만 연안국에 배타적 관할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유엔 해양법의 적용을 받는다. 82년 해양법 체제하에서 동해안은 그 전에 가지지 못했던 넓은 바다의 주인이 되었다. 과연 이렇게 4배나 넓어진 우리의 바다를 우리가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바다는 오랫동안 어업인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각 군에는 1, 2개의 단위수협과 어촌계가 존재하고 바닷가에서 김이나 미역 등을 채취하여 왔다. 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수산물을 획득했다. 오징어를 건조하거나 꽁치나 청어를 과메기로 건조하여 판매하는 수산물 가공업도 발달했다.이제 우리가 조업할 수 있는 수역이 EEZ로까지 확대되었다. 다른 국가의 어선들은 우리의 허가 없이는 들어와서 조업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작년 러시아의 EEZ 허가권을 14억원에 사서 오징어를 잡아왔다. 이렇게 바다는 재산적 가치를 창출해 낸다.바다를 이용한 상품의 이동, 즉 해운업은 바다 위에서 이루어지는 운송 활동이다. 포항의 바다는 미국이나 중국으로 포스코의 철강제품을 수출하는 데 중요한 수로가 된다. 후포와 같은 경우 국내 해운의 항구로서 기능을 해오고 있다. 울릉도로 향하는 여객선이 다닌다. 포항항이나 후포항, 축산항은 어선의 건조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크루즈 산업도 이런 기능 중 하나이다.위 전통적인 수산업과 해운업 이외에 바다를 활용한 해양 산업이 떠오르고 있다. 바닷속의 심층수 개발, 심해 양식의 상용화, 바닷속 자원의 개발 등이 그 좋은 예이다. 울릉도와 독도의 심해 절경을 관광자원화할 수도 있다. 바다를 이용한 레저 활동의 증가, 연안을 따라 천천히 항해하면서 축산항 등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연안 크루즈도 가능하다. 과거 3해리까지만 관할권을 행사하던 것과 달리 이제는 20마일 떨어진 바다에 심해 양식장을 만들 수 있다.바다의 개발과 활용은 기본적으로 중앙정부의 사무이다. 그렇지만 군이나 도에서 이와 병행하여 개발할 수 있는 여지도 크다. 최근 들어 지방정부도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변화를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다. 경상북도가 바다에 면한 포항에 경북 환동해지역본부를 설치·운영하는 것, 동해안 바다 관련 연구기관으로 환동해산업연구원을 운영하는 것도 바다를 중시하는 탁견이다.대구경북인들은 시야를 내륙의 중심인 대구에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어 왔다. 육지바라기였다. 이제는 시야를 육지에서 바다로 넓혀야 한다. 신라 시대 문무왕이 자신의 무덤을 동해에 만들라고 했다. 그만큼 바다를 중요시했다. 신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수산부인 선부(船府)가 존재했고 번성했다. 해방 이후 동해를 건너 미국으로 인력들이 건너가 선진문물을 익히고 무역대국을 이룸으로써 오늘날 우리나라의 번영이 이루어졌다. 바다를 충분히 이용할 때 우리에게 번영은 찾아왔다. 4배나 넓어진 해양 영토를 충분히 활용하여 해운, 수산, 해양의 중심지로 경북 동해안이 거듭나도록 하자.

2020-01-13 15: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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