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기고] 지역 건설사업 활성화 대책 시급

[기고] 지역 건설사업 활성화 대책 시급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건설 산업이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특히 제조업 기반이 약한 대구경북은 건설 경기가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 침체로 지역 경제가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건설인의 한 사람으로서 코로나19 극복과 지역 경제 조기 활성화를 위해 몇 가지 특단의 대책을 정부에 건의하고자 한다.먼저 한시적이나마 신규 사업 타당성 면제가 필요하다.경상북도개발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이 신규 투자 시에는 지방공기업법 등에 따라 500억원 이상 신규 사업은 타당성 검토를 받아야 한다.하지만 서울과 수도권 지역을 제외한 지방(특히 경북)의 경우에는 평가의 근간이 되는 경제성 분석(BC분석: Benefit-Cost analysis) 항목에서 통과 기준을 충족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우리 공사는 부채 비율이 27%로 공기업 최고 수준의 재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지역 특성상 신규 사업 타당성 검토에서 경제성 부족으로 신규 투자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따라서 지금은 비상시국인 만큼 절차와 기준에 얽매이지 말고 한시적이나마 과감하게 타당성 검토 면제를 건의한다.우선 500억원 이상 1천억원 이하의 신규 사업은 타당성 검토를 즉시 면제해 사업기간 단축과(타당성 평가 후 사업 확정 시까지 소요기간: 1년 6개월) 투자 저해 요소의 제거가 필요하다. 1천억원 이상의 신규 사업은 타당성 검토 시 단순히 경제성만 따지지 말고 이 사업의 결과로 얻어지는 재무성, 정책성 등을 종합평가하도록 검토 기준을 완화해 지방에도 신규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다음으로 지역 건설업체의 입찰 참여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첫째, 건설공사 입찰 시 적용되는 지역 제한 금액을 현재(종합공사: 100억원 미만, 전문공사 10억원 미만) 수준보다 2배 이상 상향해야 한다. 지방의 소규모 공사까지 수도권 업체가 독식하는 실정이다 보니 지역 건설업체는 수도권 업체의 하도급 업체로 전락한 게 현실이다.둘째, 건설공사 적격심사 시 지역 업체의 참여 비율 확대에 따른 인센티브 적용, 주계약자 공동 도급제도의 확대 시행을 위한 실질적 법(지방계약법) 개정이 요구된다. 지자체별로 확대를 위한 다양한 조례를 만들어 권고하고 있지만 관련 법이 개정돼 강제하지 않을 경우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 아울러 이와 관련해 건설업체, 관련 협회 등에서 즉각적으로 필요한 제도 개선 의견을 청취해 관련 법령 개정에 적극 나서줄 것을 건의한다.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건설업체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건설업체, 광역시·도, 시·군, 개발공사, 국가 공공기관이 협력해 건설 경기 회복과 코로나19 극복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경북개발공사는 경북 23개 시·군과 협업해 도내 전 지역에 산업단지, 아파트, 청년주택, 택지개발, 전원주택, 문화마을, 소방서, 컨벤션센터, 테마파크 등 다양한 분야의 26개 건설사업에 약 3조3천억원을 투자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아울러 민선 7기 이철우 도지사의 도정철학에 맞춰 각종 건설자재와 건설장비의 지역 업체 의무 사용을 확대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지역 업체 선정, 소규모 사업자, 여성기업, 장애인기업, 사회적기업 등에 소규모 수의계약 등을 적극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경북개발공사는 임직원 급여 일부를 반납했고 예산을 절감, 재해 극복 성금을 기탁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도민을 위한 공기업으로 기여해 나갈 예정이다.

2020-04-23 15:44:08

[춘추칼럼] 뉴노멀사회와 수축사회

[춘추칼럼] 뉴노멀사회와 수축사회

우리는 과거의 일상(Normal)을 잃어버렸고,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하는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뉴노멀이 일종의 트렌드라기보다는 인류의 삶을 통째로 바꾸는 중요한 개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상황은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분야,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문제라는 점에서 총체적 대변동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그렇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떤 삶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과거를 회상하거나 추억하는 것은 그것이 사라져서 지금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의 삶터를 바꾼 '신도시'와 '아파트'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살던 동네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몇 년 후 그 자리에는 뉴타운이나 신도시가 들어서곤 했다.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렇게 우리의 삶과 사회는 바뀌어왔다. 그럼에도 지금의 대변동은 전혀 다른 충격을 던지는 것이 분명하다.최근 김호기 교수는 이중적 뉴노멀의 미래를 전망했는데, 경제 영역의 불확실성과 국가의 귀환, '제3의 자리'로 이동하는 사회였다. (국민)국가와 경제의 변화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회에서 '제3의 자리'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개인적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이러한 흐름이 함의하는 바는, 코로나 광풍이 그치면 우리가 돌아갈 자리는 옛날의 자리가 아닌 제3의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제3의 자리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연결이 강화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더욱 중첩되는 공간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혹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연결되거나 중첩되는 공간으로서 제3의 자리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두 세계 사이에서 어떤 대안이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이 문제는 국가와 경제(시장)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이번 사태로 분명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지만, 여전히 세계화와 지역화는 치열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단기적으로 국가의 귀환은 당연해 보이지만 국가의 역할과 기능, 시민의 역할과 정체성의 문제는 또 다른 논의를 필요로 한다.그런 점에서 2018년 말 출간된 '수축사회'(홍성국 지음·메디치)는 중요한 문제 의식을 준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 '낯선 세계의 문턱에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가 '팽창사회'였다면,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 '수축사회'로 진입하면서 제로섬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축사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기주의, 모든 분야에서의 투쟁, 현재에만 집중하는 태도, 팽창사회를 지향하는 집중화, 심리적 문제 등.수축사회는 어쩌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수축사회를 돌파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인류 모두가 이타적으로 바뀌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타적으로 바뀐다는 것은 시스템의 문제이기 이전에 마음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어떤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사회는 달라진다. 따라서 경제적자본 이전에 사회적자본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팽창사회에서 붙잡고 있던 효율성과 합리성이 아닌 도덕과 윤리를 통한 사회적자본의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우리는 '낯선 세계의 문턱'에 서 있다. 결국 각자의 삶을 살펴야 한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삶이라는 일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이것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해야 하는 물음이다. 개인의 질문이 우리의 질문으로 바뀔 때 출구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순서를 잊지 말자. 시장과 국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다음은 앞이 보이지 않는 이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만하다."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그림자를 스스럼없이 당신 머리 위로 던져 주겠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두운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 안에서 당신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끄집어내십시오."(나쓰메 소세키 '마음' 중)

2020-04-23 15:36:00

[매일춘추] 미니멀 라이프

[매일춘추] 미니멀 라이프

몇 해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가 선풍적인 붐을 일으켰다. '미니멀 라이프'란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 등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이다.SNS에는 가구만 몇 개 놓인 집을 찍어 '미니멀 라이프'를 인증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등장했고, 단순한 인테리어의 카페나 디자인 용품들이 각광받았다. 이러한 흐름은 필자의 삶에도 영향을 끼쳤다. 무언가를 채우기에 급급했던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된 게 첫 번째다. 이후 버리고, 비우는 것에 무게를 두고 바라보니 주변이 정리됨은 물론 삶도 조금씩 가벼워졌다.21세기는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환경이다. 사람들은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를 파악하고 선택하는 데 피로감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단순하고 쉬운 것이 선호의 대상이 됐다. 인터넷 환경만 해도 그렇다. 검색창만 보여 주는 구글 이트가 인기를 끄는 것은 복잡함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숨은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이러한 미니멀리즘 열풍은 예술 분야에서부터 출발했다. 현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 예술 운동 중 하나인 미니멀리즘은 '최소주의'로 꾸밈이나 기교를 자제하고 근본적인 아름다움 혹은 의미를 표현하려는 시도다. 이는 순식간에 미술, 음악, 디자인, 건축, 패션 등 모든 문화 전반을 관통하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시켰고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소개되어 지고 있다.대표적인 예로 미니멀리즘 음악은 최소한의 음악적 재료로 최대의 음악적 효과를 얻는 것을 의미하고, 미니멀리즘 미술은 채워짐보다 여백이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흔히 미니멀리즘을 '단순함' 그 자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단순함'의 이면에 숨은 의미는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하나의 표현 방식이기 보다는 하나의 정신이자 마인드에 가깝기 때문이다.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둘 때, 미니멀 라이프란 단순히 물건의 양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없앰으로써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아닐까. 최대한 많이 버리고, 비우고, 단순화하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은 '모두 버린다'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남겨둔다'에 있다.그러고 보면, 편리함을 위시한 나의 삶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고, 지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사소한 행위나 동작에 도움을 줄 법한 수많은 도구들은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자극한다. 무언가 버려낸다는 것은 어렵고 또한 소비 욕심을 억제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삶이 복잡해진 나는 함박웃음과 빈손으로도 하루를 알차게 보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상념에 자주 빠진다. 젊음이라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도, 채우고 싶은 것도 많지만, 외형의 목표를 채우기보다는 비움으로써 근본과 마음이 채워지는 날들이 되면 어떨까. 비울수록 채워지는 미니멀리즘의 효과를 일상에서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2020-04-23 14:10:08

[찬란한 예술의 기억] 예술로 행동한 대구의 예술가들

[찬란한 예술의 기억] 예술로 행동한 대구의 예술가들

지난 일요일, 서울에서 열린 4·19혁명 60주년 기념식에서 '상록수 2020' 뮤직 비디오가 공개됐다.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전 세계 의료진에게 헌정한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된 이 뮤직 비디오에는 강산에, 이은미, 홍진영 등 30여 명의 가수가 참여했다. 영상 후반부에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의 '보건의료인들의 헌신과 방역에 협조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음성이 깜짝 등장해 더 화제를 모았다.국가보훈처는 "이 영상이 60년 전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했던 그날처럼 모든 국민이 함께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밝혔다. 굳이 이런 설명이 없었더라도 어떤 연설문보다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 노래 한 곡이 더 큰 메시지와 감동을 전해 준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 영상이었다.지금은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희망이라도 보이지만,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대구의 상황은 심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지만, 문화예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예술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힘들어했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 문화예술의 가치를 설명하거나 주장할 틈조차도 없어 더 절망스러웠다.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그때, 대구의 예술인들이 조용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뮤지컬 배우, 인디밴드, 성악가, 연주자 등 60여 명이 참여해 뮤직비디오 '대구 문화예술인 하나 되어 어게인'을 제작‧공개한 것이다. 영상 속 예술인들은 텅 빈 달서구 코오롱야외음악당, 수성구 대구스타디움,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등에서 힘차게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봄을 맞아 각종 공연이 활발하게 진행됐을 장소다. 프리랜서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재능기부로 출연하고 제작해 이 도시에 울려 퍼진 '하나 되어'는 예술이 가진 '치유'와 '희망'의 힘을 보여줬다.시간을 거슬러 4·19혁명이 일어났던 1960년 대구로 돌아가 보자. 1960년 2월, 3·15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장기 집권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던 자유당 정권은, 야당의 유세장에 청중이 몰리는 것을 방해하려 대구 시내 8개 공립학교에 일요일에 등교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일요 등교 방침에 항의하던 학생들은 2월 27일 결의문을 작성하고 28일, 가두시위를 시작한다. 학생들의 용기에 힘을 얻은 대구 지역 언론은 '2·28민주운동'을 크게 보도했고 전국적인 학생운동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에 의해 시작된 2·28민주운동은 3·15의거,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같은 시기 매일 저녁 향촌동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예술과 사회를 이야기하던 대구의 예술인들도 어떻게든 행동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당시 대구관현악단(대구시향의 전신)을 이끌던 이기홍 지휘자를 필두로 각 분야 예술인들이 모였다. 6·25전쟁 직후부터 시작한 교향악 운동을 이어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을 위해 노력하던 때였다. 이들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4·19혁명 기념 음악회를 기획했다.대구관현악단은 그해 7월 19일 3회에 걸쳐 계성학교 대강당에서 4·19 기념 음악회를 열었다. 준비 기간 동안 대구의 시인들이 시를 짓고 음악인들이 곡을 붙였다. 참가 시인은 신동집 전상렬 박훈산 김장수 서정희 이민영 등이며, 이들의 시에 하대응 안종배 박기환 백남영 이기홍이 곡을 붙이고 신경진 남정희 백남영 신경흥이 노래했다. 신동집의 '빛나던 사월', 전상렬의 '하늘이 안다', 박훈산의 '민주전사', 김장수의 '아- 4·19', 서정희의 '사월은 진달래', 이민영의 '사월의 꽃' 등이 이날 연주된 곡들이다.이 내용은 이기홍 지휘자가 보관하고 있던 4·19 기념 음악회 프로그램을 음악문헌학자 손태룡 선생이 발굴하면서 알려졌다. 특이한 것은 이날 음악회를 녹음한 SP음반이 제작됐다는 점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시인이 보관하고 있던 음반 한 장을 서울의 수집가가 소장하게 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그런데 이기홍 선생이 돌아가신 후 공연 프로그램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SP음반도 이미 그 수집가의 손을 떠나 찾기 힘들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금은 손태룡 선생이 찍어둔 프로그램과 음반 사진이 4·19 기념 음악회의 기록을 이야기해 주는 유일한 자료다. 소중한 유물들을 발굴한 손태룡 선생 덕분에, 우리는 예술로 행동한 대구 예술가들의 정신을 기억할 수 있다.

2020-04-22 18:00:00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대구의 아나키스트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대구의 아나키스트

'지배자가 없다' 혹은 '권력이나 정부가 없다'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의 아나코(anarchos)에서 파생된 아나키즘(anarchism)은 개인의 자유 실천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여 국가에 의한 억압을 타도하고 모든 개개인의 자유의지의 연합을 바탕으로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상이다.아나키스트들은 민족주의 운동에 대해,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자본주의 계급의 착취적 지배 구조를 확립하고자 민중을 동원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 동시에 그들은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서도, 프롤레타리아(무산자)가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함으로써 권력 기구를 독점하려는 술책을 드러낸 것뿐이라고 비난하였다.일제강점기 속에서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은 일본 제국주의를 박멸하고 민족 해방과 조국 독립을 위해 여러 단체들을 결성하였다. 그중 일본에서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등이 1922년 12월경에 흑우회(黑友會)를 조직하여 기관지 '후데이센징'(太い鮮人)을 발간해서 제국주의, 민족주의, 공산주의를 배격하며 아나키즘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한편 그들은 1923년 4월에 불령사(不逞社)를 설립하여 일본 황태자 결혼식에 폭탄을 투척하려고 폭탄을 구입하려다가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구금되어 대역사건으로 비화되는 고초를 겪었다.국내에서는 불령사 기자였던 서동성이 대구로 돌아와서, 1925년 9월 29일 대구노동공제회 회관에서 방한상, 서학이, 신재모, 정명준 등과 함께 아나키즘을 연구하는 합법적인 학술단체로서 진우연맹(眞友聯盟)을 결성하였다. 방한상은 그해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아나키스트들과 접촉하여 진우연맹과의 상호 협력 문제를 논의하였다. 또한 방한상은 이치가야 형무소를 방문하여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면회한 후에 귀국해서 의연금을 모아 송금하기도 하였다.진우연맹은 부호들로부터 독립자금을 받아 향후 2년 이내에 대구의 도청, 경찰부청, 우편국, 지방법원 및 복심법원을 포함하여 주요 관서와 일본인 점포를 파괴함과 동시에 도지사, 경찰부장, 법원장, 기타 수뇌부를 암살할 파괴단(破壞團)을 조직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암살과 파괴 활동을 위해 중국 상해에 있던 유림(柳林·1894~1961) 또는 김관선과 평양의 김원에게 폭탄 구입을 의뢰하였다.이 중 안동 출신인 유림도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로서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대표로 중국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유림은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에 대구와 안동을 오가며 부흥회(復興會)와 자강회(自强會)에 몸담은 적도 있었다.그러나 1926년 5월에 안달득이 체포되어 취조를 받던 중 일본 경찰은 조직원들을 검거하였고 가택수사를 실시하였다. 일본 경찰이 물증을 밝혀내지 못했음에도 대부분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대구 교풍회 회장, 대구 자제단 발기인, 국민협회 대구지회장 등을 지냈던 친일 인물인 윤필오(1860~1924)의 아들인 윤우열(1904~1927)은 조선청년총동맹, 철도인부조합, 제4청년회 등에서 활동하며 사회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이후 윤우열은 조선공산당 창당을 둘러싼 갈등에 회의감을 품고, 1925년 7월 즈음에 동갑내기 박흥곤과 함께 과격한 파괴 행위로 조선 혁명을 이루기로 합의하여 그해 11월 초 허무당을 만들고 허무당선언서를 작성하였다. 그 핵심 내용은 폭력적 방법을 통해 조선의 혁명을 이룩하자는 것이었고, 폭력 노선 이외 다른 투쟁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윤우열은 허무당선언서를 인쇄하여 1926년 1월 3일 조선의 신문사, 통신사, 은행 및 일본의 각 정당, 잡지사 등지에 발송하였다. 그러나 윤우열은 광화문우체국을 방문한 행적이 일경에 의해 포착되어 소격동에서 체포되었다. 윤우열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복역 중 지병인 늑막염이 악화되어 풀려났다가 24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가려졌던 아나키즘 독립운동이 대구에서도 이루어져 왔다.

2020-04-22 18:00:00

[새론새평] 4·15 총선이 남긴 것

[새론새평] 4·15 총선이 남긴 것

선거는 끝났다. 결과는 190대 110이라는 유례없는 보수우파의 완패였다. 항상 정권심판론이 작동했던 집권 3년 차 선거에서 보수 야당은 궤멸적 참패를 당했다. 막판 통합을 이루었음에도 유권자의 반응은 매정했다. 조국이냐 경제냐의 선택을 주장하며 기대했던 결집 효과도 없었다. 역대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모든 권력을 하나의 정치 세력에 몰아주지 않는 균형 감각을 보여주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달랐다. 이토록 유권자들이 야권을 엄중히 심판한 이유는 무엇일까?사람들은 코로나19의 영향을 지적한다. 방역을 잘한 우리나라를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이제야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음을 느꼈고, 그것이 유권자들이 집권여당을 지지하게 만든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미래통합당의 공천 파동이나 후보들의 막말, 황교안 전 대표의 리더십 부재 등을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지엽적인 것일 뿐 본질은 아니다. 보수 정치세력 몰락의 근본 원인은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기득권에 집착한 수구세력이었기 때문이다.보수주의는 자유와 민주, 공정과 포용을 핵심 가치로 하며 명예와 품격, 경쟁과 창의,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봉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실천하기 위한 남다른 도덕성을 근본으로 한다. 총선 과정에서 보인 미래통합당 지도부와 후보들의 행태는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온갖 꼼수를 부리며 의석 확보에 혈안이 되면서도 사과는커녕 이것이 당연하다고 강변했다. 자신들이 가진 알량한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고 원칙 없는 언행과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선거 막판에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공천자를 바꾸었고, 스스로 그토록 비난해 왔던 현금 살포를 주장하며 돈으로 표를 사려고 했다.그러면서도 왜 보수 정당에 표를 주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정권심판론을 주장하다가 먹혀들지 않자 견제론으로 돌아섰고, 그것도 안 되니 읍소 작전을 택했다. 통합만 하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정권을 심판하자고 하면 반(反)문재인, 반조국, 반더불어민주당 유권자들이 동참해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등 정책 실패의 폐해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야당에 표를 주지는 않았다.유권자들은 미래통합당을 선택하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을 선택하면 또 기득권에 안주하여 국민을 무시하고 국민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정치를 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국민의 아픔에는 공감하지 않고 자리 싸움과 부패 스캔들, 특권의식으로 거드름을 피울 것을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미래를 밝힐 비전이나 철학, 리더십과 감동 없이 이름만 미래로 포장한 정당을 끝내 버리고 만 것이다.영남자민련으로 쪼그라든 미래통합당이 앞으로 보수 유권자들을 대표할 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된다면 가능하다.보수 정치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려면 수구적 태도를 버리고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원칙과 도리를 버리는 지금까지의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보수 정치세력의 발목을 잡는 세월호 조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세월호 사건은 사고일 뿐이고 그 사고의 처리 과정에서 잘못이 있다면 낱낱이 밝혀 책임을 지우면 된다. 남북관계나 한미, 한일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 있어 무조건적 반대나 찬성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친기업과 친노동 중 어느 것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무엇이 국익에 부합하느냐를 판단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양극화가 심각하지만 우리가 어렵다고 미래 세대에 막대한 부담을 넘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심각한 재앙이 될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해 젊은 세대의 부담을 국민 모두가 분담하는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권력은 국민을 위해 모두 함께 잘 살게 만들기 위한 수단임을 인지할 때, 보수 정치세력은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4-22 16:08:12

[기고] 코로나 극복과 경북 경제의 새로운 길

[기고] 코로나 극복과 경북 경제의 새로운 길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불확실성지수(WUI)는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베트남전쟁 때보다도 높다.지금의 경제위기와 침체가 90여 년 전의 세계 경제 대공황에 비견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V' 자 급반등부터 완만한 'U' 자 반등, '나이키형' 느린 반등에서 'L' 자형 장기 침체까지 다양한 경기 전망이 나오고 있다.도내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경영 실태 조사에서도 지역 기업의 93.33%가 경영 상황 악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하며 '코로나 확진자'라는 말에 빗대어 '부도 확진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특히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생계까지 위태로운 위급한 상황이다. IMF 때보다 훨씬 더 어렵다. 기업 경영 30여 년에, 장사 시작한 이래로 지금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다. 수없이 듣는 눈물 짙은 호소와 하소연 앞에 경북 경제정책의 방향과 책임감을 생각할 때 무거운 엄중함을 느낀다.당장 가뭄을 해결할 단비 같은 응급 대책이 시급하다.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근로자들이 벼랑 끝에 내몰리는 위기 상황에서 버티고 살아남도록 코로나 극복 긴급 경제 살리기 대책과 지원 사업들을 최대한 확대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이를 위해 경북도는 사각지대에 처한 취약계층에 대해 '재난 긴급생활비' 2천89억원을 지급 중이며 기업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특별경영자금' 1조원을 투입해 1년간 대출이자 4%를 지원하고 있다. 소상공인에게는 무보증료, 무이자, 무담보료, 이른바 3무 처방이라 불리는 '소상공인 특별경영자금' 1조원을 긴급 투입했다. 또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게는 긴급지원자금 50만~1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며 이 외에도 240억원의 '카드 수수료 지원 사업'을 시행, 영세업자의 부담을 덜고자 한다.이러한 응급 처방 후에는 경북 경제를 종합 진단하고 정밀한 경제 수술을 통해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체질 개선과 더 강한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필자는 30년 넘는 삼성 근무 시절에 수많은 경제 격변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는 '오로지 변화와 혁신만이 살길이다'라는 교훈과 신념을 깊이 가지고 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전부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방침에 따라 과감한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삼성이 세계 최고 기업이 되는 과정과 성과를 직접 경험하고 함께했다.코로나 발생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만큼 사회·경제 분야에서 유례없는 변곡점을 맞이한 이 시기에 우리 경북은 직면할 경제 환경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중장기적 발전 어젠다와 경제 활성화 대책을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기존의 반복적인 경제정책과 복잡한 사업, 경직적인 예산 사업은 미련 없이 과감하게 구조조정하고 새롭게 전개될 '포스트(POST) 코로나 환경'에 부합하는 조직 혁신과 과감한 재정지출이 새로운 발전 어젠다에 집중돼야 한다. 그리고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는 법률이나 규정 등은 한시적으로 유예하거나 조속히 개정돼야 한다.우리 일상의 행복을 빼앗은 코로나 터널은 생각보다 길고 어둡다. 하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희망의 불씨를 간직한 채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영광의 순간은 언제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위기 상황을 타개한 선례를 생각하자. 긴 어둠의 터널 속에 갇힐 것인가, 뚫고 나올 것인가. 선택은 단 하나다. 빛은 언제나 터널 끝에 있다.

2020-04-22 15:03:12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처음 탄생한 찰보리빵은 어떤 맛일까?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처음 탄생한 찰보리빵은 어떤 맛일까?

경주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빵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신데 필자의 책을 읽고 한번 뵙고 싶다는 전화였다. 빵집 광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터라 호기심이 발동했다. 빵이라는 주제는 단어의 어감도 재미있고 기발하게 만들만한 거리가 많은 주제였다.미팅 날, 경주에서 필자의 사무실까지 오신 사장님은 지극히 평범함 50대 아저씨셨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큰 반전이 있었다. 그 사장님이 바로 경주 찰보리빵을 최초로 개발하신 분이셨다.경주하면 찰보리빵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경주 시내를 5분만 운전해도 숱한 찰보리 빵집을 볼 수 있다. 사장님이 가져오신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자신이 최초로 개발한 찰보리빵을 남들이 따라 하면서 원조의 개념이 퇴색한 것이다.필자는 'OOO 찰보리빵'이 그 원조라는 것을 광고에서 강하게 어필하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사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그분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경쟁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말자는 말씀이었다. 순간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역시 많은 매장을 운영하시는 데에는 그만큼 넓은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장님은 필자에게 더 어려운 숙제를 주신 셈이다. 경쟁자에게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지 않으면서도 원조의 느낌을 줘야 했으니까. 대구로 돌아온 뒤에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필자의 경험상 브랜드는 그 브랜드를 만든 사람을 닮아간다. 그리고 광고 역시 그 광고주를 닮은 작품이 나온다. 작업하며 염려는 되었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 사장님을 꼭 닮은 착한 광고가 나올 것 같았다.광고 작업 중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필자가 찰보리빵 광고를 맡은 걸 알고 온하우스의 신세원 대표님께서 연락이 왔다."소장님이 찰보리빵 광고 맡은 걸 알고 경주 가서 사 먹으려고 했는데요. 찰보리 빵집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못 찾겠더라고요. 결국, 아무 찰보리빵 집에 들어가서 하나 사 먹고 나왔어요"이것이 'OOO 찰보리빵'의 가장 큰 문제였다. 아무리 광고해도 브랜딩 되지 않으면 광고비는 허사인 셈이니까. 그래서 필자는 20년 가까이 써온 로고를 다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기존에 써오신 '찰보리빵 발명한 집'이라는 슬로건 역시 손을 봤다. '발명'이라는 단어는 왠지 제품 같은 딱딱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탄생'이라는 워딩을 써서 생명의 이미지를 줬다. 탄생이 발명보다 훨씬 고결하고 축복 된 느낌을 준다고 판단했다.두 번째 문제는 원조에 대한 인식이었다. 사실 '원조'라는 워딩은 식상하다. 춘천에만 가도 간판에 원조가 들어가지 않는 닭갈비 집이 없을 정도다. 원조라는 단어를 배제하고 어떻게 원조인 것을 알리느냐가 문제였다. 거기에 사장님의 경쟁자에게 최소한의 배려를 해달라는 요청까지 있었으니 더욱 풀기 힘든 문제였다.찰보리빵을 만나는 그 순간에 강력한 메시지를 줘서 원조임을 인식시키고자 했다. 사람들은 찰보리빵을 만지기 전에 패키지를 먼저 만지게 된다. 패키지를 먼저 보고 열어보고 비로소 찰보리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 탄생한 찰보리빵은 어떤 맛일까?'라는 카피를 패키지에서 전면으로 내세웠다.그렇게 패키지 박스를 열면 또 하나의 재미를 만나게 된다. '탄생'이라는 워딩을 써서 생명력을 부여했으니 가계도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OO 사장님(아빠)을 필두로 7개의 매장을 자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찰보리빵은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난 자식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거기에 더해 트레이싱지에 돌잔치 사진을 넣어두었다. 보통 우리가 돌잔치 사진을 찍을 때 의자에 앉아서 찍는데 아이 대신 찰보리빵을 앉혀둔 것이다. 소비자 관점에서 '아! 여기 사장님이 찰보리빵을 정말 자식처럼 생각하는구나!' '그럼 하나를 만들어도 허투루 만들지 않겠네!' 이런 생각을 끌어내고 싶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그니처 이미지 하나가 필요했다. 찰보리빵에 공갈 젖꼭지를 물리는 이미지였다. 찰보리빵은 동그랗게 아이의 얼굴처럼 생겼다. 거기에 공갈 젖꼭지를 물리니 정말 생명이 탄생한 듯한 느낌이 났다.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우리는 시장이라는 전쟁터로 나갔다. 더 예뻐진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니 팔리기 시작했다. 경주에 찰보리빵은 다 똑같다는 인식을 불태워버렸다. 원조를 말하지 않았지만, 소비자들이 눈치채게 했다.팔고 싶다면 진실을 말하라. 거기다 경쟁자까지 배려해주는 마음은 덤이다. 그렇게 브랜드는 팔려간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2020-04-22 12:03:26

[종교칼럼]우주로부터의 귀환

[종교칼럼]우주로부터의 귀환

오래전에 다치바나 다카시가 저술한 '우주로부터의 귀환'이란 책을 읽고 우주여행과 우리가 사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 적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성심을 다하는 성격인 다치바나가 저술한 다수의 책들이 우리말로 번역되었는데, 이 책은 상당한 반응을 불러일으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으로 기억된다. 다치바나는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해 당시까지 있었던 200여 명의 우주인들 중 절반 가까이 인터뷰하여 그들의 우주 체험들을 정리했다.우주여행 초기에는 지구를 도는 궤도비행을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차츰 거리와 시간의 범위를 넓혀서 마침내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단계에 이르렀다. 아폴로 17호를 마지막으로 달 여행을 마감했지만 러시아와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주정거장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사람을 다시 달과 화성에 보낼 계획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주인이 되기 위한 선발 과정이 얼마나 치열하고 엄격한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의 경우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선발된 사람들이 실제로 우주비행을 할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하는 훈련은 참으로 눈물겹고 웬만한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것이다.우주여행 체험을 한 사람들 중에는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인류 최초로 우주 경험을 한 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지상에 도달한 후 "우주에 나가니 하느님이 없더라"라는 말을 했다. 두 번째로 우주 경험을 한 미국인 존 글렌은 "우주로 나가니 하느님이 계시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더라"라고 했다. 같은 체험을 했지만 두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 것은 각자 살아온 삶의 여정과 선택의 자유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또한 소련과 미국이 제공한 언론의 제한과 자유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이들에 이어서 우주 체험을 한 많은 수의 우주인들의 종교관 변화는 무신론 쪽이 아니라 유신론 쪽으로 기운 경향이 강하다. 다치바나에 의하면 자신의 임무를 마감한 후 선교사가 되어 활발한 활동을 한 우주인조차 있다고 한다.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다녀왔던 유진 서넌은 "지구에서 멀어짐에 따라 지구 전체가 한눈에 보이고 지구상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 뜨는 지역과 해 지는 지역이 동시에 보이고 지구가 회전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공간적 존재인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여 하루와 1년이라는 시간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만약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현재 체험하는 시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해진다.지구에서 38만㎞ 떨어져 있는 달에 간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온갖 훈련을 거쳐 죽음을 각오하기까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인류는 아폴로 비행 이후 아직도 달에 사람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과정들을 거쳐 도달한 달에서 칠흑같이 캄캄한 거대한 공간인 우주를 바라보니 지구에서 그리 멀리 오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한 우주인의 고백이 '우주로부터의 귀환'에 들어 있다."우주여행 중에 거리를 두고 바라본 지구의 푸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것이 종교적 신앙심의 유무를 떠나 모든 우주인들의 한결같은 고백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표면이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곳이라는 자각은 삶을 좋아하게 하고 힘든 일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된다. 또한 이 모든 것과 나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2020-04-22 10:38:09

[특별 기고]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난극복 운동으로 TK 저력 보이자"

[특별 기고] 이철우 경북도지사 "국난극복 운동으로 TK 저력 보이자"

21대 총선 결과에 대구경북 고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내년 예산 확보에서부터 빨간불이 켜졌다고들 한다. 국가 전체의 선거 결과와 지역 민심이 다소 어긋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심은 역동적이며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일 뿐 시도민이 주눅 들거나 움츠릴 필요는 없다.과거에는 주로 호남이 정치적 고립을 걱정했다.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은 81석으로 개헌 저지선마저 지키지 못했는데, 당시 호남이 한나라당에 행사한 정당투표는 광주 5.9%, 전남 6.3%, 전북 9.2%에 불과했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게 평균 27% 지지를 보낸 대구경북보다 더욱 고립 상황이었다.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7년 이전의 호남은 말할 것도 없다.그래도 호남은 지역발전에 있어 영남에 뒤지지 않았다.호남선철도 복선화는 1978년부터 시작됐다. 무안국제공항은 1986년부터 추진됐고 1989년 현 위치를 확정했다. 서해안고속도로 건설은 1990년에 시작했다. 이어 새만금 사업도 1991년에 착공했다. 모두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 기반을 닦은 것이다. 제2서해안 고속도로 역시 보수정권에서 추진됐다.반면에 우리는 정권을 창출하고도 동해안을 교통 오지(奧地)로 남겨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10년 동안 '정권의 수혜지', '형님 예산' 소리를 들으면서도 동해안 철도, 고속도로를 건설하지 못했다. 1km가 넘는 해상 대교가 전국에 30개나 되는데도 포항에 영일만대교 하나 놓지 못했다.한마디로 우리는 정권을 잡아도 못했고 호남은 정권이 없어도 해냈다.호남의 성과가 필사적인 노력에 따른 것인지, 정권이 정치적 약세지역을 홀대하지 않은 때문인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다. 그러나 필자가 국회의원 시절을 돌아보면 호남 공무원들의 끈질긴 자세만큼은 남달랐다. 이러한 호남의 노력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정치적 소수지가 된 대구경북은 저항만이 능사가 아니다.개방적 자세와 스스로 실력을 키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해 초 도청 공무원들에게 "앞으로 'TK패싱'이라는 말은 없다. 국비확보에 성과가 없으면 우리 실력이 부족한 탓이다"고 선언했다.도지사부터 지난 1년 동안 36차례에 걸쳐 청와대, 총리실, 기획재정부 등의 인사들을 만나며 솔선수범(率先垂範)했다. 그러자 공무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 부처를 찾아가서 국비를 한푼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국가예산이 9.3% 증액된 상황에서 경북이 확보한 국비예산은 21.1%, 7천777억원이나 늘어났다. 자동적으로 지원되는 국비까지 합산하면 8조8천억원 규모로 대폭 증가했다. 경기도를 빼면 전국 최고 수준이다.대구경북은 화랑, 선비, 호국, 새마을 정신을 통해 피와 땀으로 나라를 지켜왔다. 이번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을 지켜낸 것도 의미가 크다. 의기소침할 것 없다. 대구경북 통합과 통합신공항 건설 등 글로벌 경제권으로 약진할 과감한 지역발전 사업들을 정부에 끈질기게 요청하고 여당과의 통로도 열심히 마련하면 된다.우리에게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스스로 극복하려는 강인한 힘이 내재되어 있다. 먼 역사까지 갈 것도 없이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차분히 질서를 지키는 시민의식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제 대구경북에서부터 일어나 국난극복 운동을 전개해서 닥쳐오는 경제위기의 파고를 넘고 대한민국의 중심을 잡고 나아가자. 민과 관이 모두 나서 투자와 소비를 일으키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 코로나 피해에 총선까지 피로가 겹치지만 시도민 모두 가슴을 펴고 긍정의 길로 나아가야 내일의 희망을 만들 수 있다.이철우 경북도지사

2020-04-21 19:48:25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동물자가치료의 위험성과 대안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동물자가치료의 위험성과 대안

동물약국에서 약을 구입하여 직접 동물에게 주사하는 반려동물 자가치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나는 동물병원 진료수의사이면서 동물임상병리학자이다. 동물임상병리학은 종양을 분석하고 질병으로 숨진 동물의 사인을 밝혀내는 학문이다. 더 많은 동물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을 연구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보다 많은 동물에게 도움되는 의료 시스템에 대해 자주 고민하게 된다.동물병원을 내원하는 동물은 경증 환자가 드물다. 동물은 사람보다 체온이 2도 이상 높으며 경미한 감염 정도는 거뜬하게 이겨내는 자연 치유력이 강하다. 반면에 동물이 먹지 못하고 증상이 두드러질 정도라면 이미 질병은 심각해졌거나 만성화된 경우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은 본능적으로 아픈 상황을 숨기려한다. 보호자가 반려동물의 건강 이상을 빨리 인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래서 수의사는 상담과 진찰 외에도 엑스레이, 초음파, 혈액검사들을 통해 동물의 상태를 면밀히 진단하려 한다. 사람 의료와 비교하자면 1차 동네병원에서 종합병원의 진단검사실을 운영하는 셈이다.통키( 발발이 4살)의 경우를 소개드린다. 통키는 4년 동안 한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성격도 밝아서 진료실에서 처음 마주한 나에게도 다가와 입맞출 정도였다. 외관상으로 아픈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보호자는 통키가 2주 전부터 다래끼가 생기고 눈꼽이 많아져 인근 동물약국에서 항생제를 추천받아 먹이셨다 하셨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는 호흡이 빨라지고 열이 난다며 내원하셨다.통키의 검사 결과는 의외였다.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를 통해 간의 종대와 담낭슬러지의 과형성, 담도관의 염증 소견이 확인되었고, 혈액검사에서는 간수치가 이상이 심각했다. 초기 통키에게 나타났던 눈곱은 내과적인 간질환으로 수반되는 증상이었는데 보호자가 항생제를 투약함으로써 통키의 간이 현저히 악화되어 버린 케이스였다. 통키는 5일 간 집중 입원치료를 받고서야 간수치가 호전되기 시작하였으며 퇴원 후에도 상당기간 치료가 지속되어야 했다.과거에 비해 동물의 권리는 월등히 신장되었다. 하지만 동물을 치료하는 보호자들의 선택은 현실적이다. 누구나 최선의 치료를 다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진료비 부담을 고려하여 차선 또는 최소한의 치료를 선택하게 된다.통키 보호자는 먼저 최소한의 치료를 선택하셨다. 인근의 동물약국에서 약을 사고 직접 먹이고 주사하셨다. 안타깝게도 통키는 질병이 더 심각해진 상황에서 동물병원을 내원하였다. 미안한 마음에 동물병원에 입원시키고 최선의 치료를 선택하셨다. 어느정도 증상이 호전되자 입원비 부담을 고려하여 가정에서의 약물 처방을 선택하셨다.통키의 경우에서 보듯이 동물의료에서는 최선과 차선, 최소한의 치료가 복합적으로 선택되어진다. 이러한 요구로 인해 동물병원의 규모와 의료장비의 구성은 다양하며 동물약국의 역할도 필요하다. 동물병원마다 같은 질병에 대한 진료비가 현격히 차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반려인이라면 누구나 동물의료보험의 혜택을 소망한다. 수의사도 마찬가지이다. 진료비 걱정없이 모든 동물에게 최적의 치료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반려인들이 보험에 가입하여야 한다. 하지만 모두의 공통된 희망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2년 간 보험사를 통한 동물종합의료보험 가입율은 극히 미진할 따름이다. 이것이 현실이다.동물진료비 부담을 줄이고자 동물약국을 통한 자가치료를 권장해서는 곤란하다. 어린아이를 전문의에게 진료받지 않고 부모가 자가치료할려는 행위를 공감하지 않는 이유와 동일하다. 동물이기 때문에 소유주가 동물에게 주사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바탕되어 있다. 동물진료비 부담을 줄이고자 의료의 질을 떨어뜨려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의료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있음을 자부하듯 한국의 동물의료 수준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동물의료의 질은 그 나라의 동물 복지와 국가 공중보건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반려인의 동물진료비 부담을 줄이면서 양질의 동물의료복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동물 입양은 생명을 책임지겟다는 반려인의 약속이다. 동물은 언제나 아플수 있다. 아픈 동물을 치료할 돈이 부담스러워 동물을 버린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핑계에 불과하다. 동물이 아플 때를 대비하지 않는 소유주는 동물을 키울 자격이 없다. 경제적으로 힘들수록 반려동물이 아플 때를 대비한 대책을 고민하고 입양을 결정하여야 한다.자동차 소유주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책임보험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책임보험 이상의 보장을 바란다면 추가적으로 종합보험에 가입하면 된다.개와 고양이 소유주는 동물등록과 동시에 반려동물책임보험이 의무화되었으면 한다. 반려동물책임보험은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의료비를 지원하고 반려동물로 인한 인명피해를 배상할 수 있는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자동차 종합보험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의료 혜택을 기대한다면 추가적으로 반려동물종합보험에 가입하면 될 것이다.반려동물책임보험이 최선의 치료를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차선의 치료 정도는 진료비 부담없이 모든 반려동물에게 보장될 수 있는 미래가 도래하기를 소망해본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4-21 18:30:00

[석재현의 사진·삶을 그리다]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아름답다

[석재현의 사진·삶을 그리다]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아름답다

사회적 거리두기, 자발적 격리가 지속되다 보니 사회활동은 물론이고 심리적인 거리두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적 재난에 국민이 방역 주체가 되는 생활,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도 위기에 잘 대처하는 대구와 한국의 모습에 전 세계가 놀라워하니 뿌듯하기도 하다. 인권으로서 건강권은 내가 스스로 지키고 돌봐야 할 권리이기도 하지만 국가와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재난을 맞이하는 장애인들의 심정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외줄을 타는 마음이라고 한다.코로나19 사태를 알리는 각종 재난 방송에 제대로 수어 통역이 배치되지 않아 청각장애인들은 현실보다 더 무서운 상상 앞에 놓였고, 활동보조사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은 제발 내게는 그런 상황이 비껴가기를 늘 기도한다고 한다. 장애인들은 감염에 취약해서 외출을 삼가야 한다고 권고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안전을 적극적으로 노출해야만 보호받을 수 있는 아이러니 앞에 서 있기도 하다. 재난 속 장애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소통이요 그들 삶에 관한 관심이다.사진가 윤길중의 작업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장애인의 삶을,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 역시 아이돌을 좋아하고 음악을 즐기고 게임에 빠지기도 하고 사랑도 한다. 사실 장애인들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 누구나처럼 예쁘고 멋있게 찍히길 바란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을 하니 표정이 일그러지고 몸이 뒤틀릴 뿐이다. 카메라를 호기심만으로 사용하면 자칫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그래서 작업에 임하기 전 뒤늦게 야학에서 배움의 길을 걸어가는 중증장애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그들의 삶으로 들어간 후에야 카메라를 들었다.1년여 동안 장애인 야학생활을 기록하던 그에게 어느 날 한 학생이 다가왔다. 늘 사진 찍히기를 거부하던 학생이었는데 증명사진을 찍어주면 촬영에 동의하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는데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사진관을 찾기가 힘들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소통하면서 그는 장애인들의 포트레이트 작업에 가정에서의 생활,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아픈 상처인 손발까지 3년여에 걸쳐 촬영했다. 세상의 시각으로는 아름답지 않으나 그래서 더 아름답게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장애인들의 삶으로 들어가 발견한 인간의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마주할 수 있다.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장애인들에게 오히려 더 절실하다. 그런 그들의 삶을 절절하게 이해하고 탐구해 온 윤길중의 소통 방식이 세상에 전염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구하고, 모색하고,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하는 사이,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든다. 임기응변식 지원과 대책 속에 장애인들이 안전을 맡기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2020-04-21 14:37:06

[매일춘추] 이여성과 이쾌대의 민족문화연구

[매일춘추] 이여성과 이쾌대의 민족문화연구

이여성(본명 이명건)은 1901년 칠곡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일본, 상하이 등에서 신교육을 받고 일제강점기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에 투신하였고, 해방이후에는 1948년 월북하여 정치인이자 문화연구자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대구에서 혜성단을 조직하고 폭동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복역한 적도 있다.그는 또 화가로 대구 최초의 근대적 형식의 전람회인 1923년 대구미술전람회에 이름을 올렸고, 이상범 등 당대 화가들과도 수차례 전람회를 가졌지만, 그림은 그를 대표하는 이력은 아니었다.하지만 1930년 귀국한 이여성이 언론사 기자로, '숫자조선연구'(김세용 공저, 1931-1935) 통계서적의 저자로 당대 사회 운동가로 알려질 때, 그를 알린 또 하나의 이름이 있었으니 그것은 역사화가이다. 그는 미술, 전통공예 등에 대한 논저를 발표하고 문화와 풍속에 관심을 보였으며, 이때부터 민족의 역사를 시간적으로 평면화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1938년 신라, 고구려, 고려, 조선 역사와 풍속의 한 장면을 그리는 역사화 작업을 선보였다. '청해진대사 장보고' '격구지도' '악조 박연선생' '유신참마도' '대동여지도 작자 고산자' 등에서 그는 복식, 풍습 등의 철저한 고증을 거치고, 역사적 사실을 연구하였다. 이때 제작한 것들 가운데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격구지도'(1930년대)는 과거의 복식과 도구, 경기방식 등 그의 세밀하고 집요한 연구로 표현된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민족문화 연구는 이어져 나중에 '조선복식고'(1947)와 '조선미술사대요'(1955) 등의 저술로도 나타났다.이여성의 민족문화연구는 그의 동생인 이쾌대(1913-1965)에게도 영향을 준 듯하다. 이쾌대는 대구수창보통학교를 나와 휘문고보에서 장발을 만나 미술에 입문하였고, 1933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제국미술학교를 1939년에 졸업하였다.학업이 거의 끝나가던 1938년 일본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녹포사 공모전에서 '무희의 휴식'과 이과전에서 '운명'이 입선되었다. '무희의 휴식'(1938)은 쪽진 머리에 족두리를 얹고 색동 소매를 단 원삼과 분단장을 한 여인이 실내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인물의 개성이나 표정보다는 채복의 색과 아름다움이 먼저 들어온다.'운명'(1938)과 '상황'(1938) 등 같은 시기 이쾌대의 상징적인 서사의 그림에서도 조선의 다양한 복식을 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당시 이쾌대의 화법은 서양화임에도 불구하고 3차원의 볼륨보다는 동양화의 평면적인 채색과 선묘적인 특징이 나타난다.붉은 소반 앞에 옥색 저고리와 검정색 조끼를 입고 앉아 책을 읽는 이여성을 그린 '이여성의 초상'(연도미상)에서는 얼굴과 옷의 주름 등의 표현에 윤곽선이 두드러지고, 평면적인 채색으로 채워져 있다. 아마도 그때 이쾌대는 자신의 방식으로 조선화의 방향과 정체성을 고민한 듯하다.

2020-04-21 13:54:51

[경제칼럼] 코로나19 사태와 희망

[경제칼럼] 코로나19 사태와 희망

해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코로나19 사태의 변화에 따라 나와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번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전에는 동아시아 지역 이외의 외국 사람들을 만나면 대부분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북한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정도가 다였다.물론 한류에 관심이 있거나 한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호감도 있고 경제발전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었지만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외국인들 중 다른 나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일반인은 한국의 브랜드, 경제 규모, 언어, 문화, 역사 등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 어떤 때는 한국이 중국어를 쓰는지 묻는 외국인도 있었다.코로나19가 한국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대구지역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대구에 대해 부정적인 위험 지역으로 인지했다. 예정된 외국 바이어와의 미팅들이 갑자기 취소되기도 하고 설령 어렵게 미팅을 하더라도 그들이 나를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번은 외국인 바이어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다 그가 농담으로 "미스터 김, 대구에서 온 것만 아니면 괜찮아요"라고 말한 후 그가 내 명함에서 대구를 발견하고 정색하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외국에서 누구를 만나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웠던 시기였다.그러나 한국이 코로나19 사태를 성공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외국 현지 뉴스에 나오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외국의 지인들과 통화하면서 들은 이야기로는 현지에서 한국의 성공적 바이러스 대처에 대한 뉴스가 자주 나오고 있으며, 그동안 한국에 대해서 잘 몰랐던 현지인들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위기 속에서 사회와 이웃을 위해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재기 없이 차분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놀라워하고 있다고 했다.나는 이번 위기 극복 과정에서 치료와 방역을 위해 헌신한 의료진 및 공무원, 그리고 차분히 사회적 약속을 지키며 공동체를 위해 질서를 따른 국민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면서 제일 위험한 곳으로 낙인찍혔고, 이에 얼마나 많은 대구시민들이 말 못할 가슴앓이를 했던가? 다른 외국 도시 같았으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확진자 수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했을 터인데, 이를 인내하고 차분하게 대응한 대구시민들의 모습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러운 일이다.최근 외국 지인들을 만나서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그들은 한국이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통해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고 한다. 연예인 및 스포츠 스타가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한국에 대한 '호감'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국가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어떤 국가에 대한 신뢰와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축적된 노력과 결과물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이다.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짧은 시간에 신뢰와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향후 해외시장에서 한국이 선진국 제품과 경쟁할 때 큰 자산이 될 것이다.아직도 외국의 소비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고가 제품으로 유럽산과 일본산을 떠올린다.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가 예전에 비해 많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것 또한 사실이다. 가격에서는 중국산과 비교되고 기술과 품질에서는 선진국들과 비교되면서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았다.그러나 이제 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한국산 제품과 기술에 대한 상당한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것을 잃고 앞으로도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는 말자. 우리에게는 앞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라는 프리미엄이 생겨 세계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그리고 역발상을 통해 대구는 최악의 바이러스 위기 속에서도 훌륭하게 극복한 '의료산업이 강한 도시'라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고 활용하자. 그리하여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에 위치한 의료산업 분야 기업들이 '대구'라는 브랜드를 달고 더욱 성장하게 만들어주고, 이를 통해 대구경북이 글로벌 첨단의료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기를 바란다.

2020-04-21 11:24:07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살이 사라진다. 삶이 살아진다’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살이 사라진다. 삶이 살아진다’

요즘 광고주를 만날 때마다 광고주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처럼 어려울 때일수록 쓰셔야 합니다." 여기서 쓰라고 하는 대상은 '돈'이 아니라 '글'이다. 매체 광고, 교통 광고는 비싸지만, 글은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면 지금 당장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최악의 불경기인 요즘, 글은 가장 훌륭한 마케팅 도구이다. 마케팅 글쓰기 중에서도 '라임'(비슷한 음의 단어를 일정한 규칙으로 조합하는 것)은 소비자를 배려하는 하나의 기술이다.글을 이용해 브랜드를 기억시키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지역의 한 다이어트 센터에서 광고를 의뢰한 적이 있다.소규모의 센터였는데 보통 이런 곳은 광고비를 많이 책정하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소상공인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광고하는 이유는 투자 대비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싶어서 일 것이다. 소상공인의 경우 섣불리 광고비를 크게 지출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소규모 브랜드의 경우 제작비를 최대한 낮추고 아이디어의 힘을 최대한 극대화해야 한다. 다이어트 센터는 신생 기업이기 때문에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었다.당연히 브랜드를 기억시키기 위해서 쉬운 라임의 힘이 필요했다. '어떻게 팔 수 있을까?' 고민하다 유튜브에서 뚱뚱한 분들의 고충을 찾아보았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뚱뚱한 사람, 식욕이 주체되지 못해 과식이 반복되는 사람들의 영상이었다.무엇보다 그들의 공통점은 낮은 자존감이었다. 뚱뚱해져 버린 자신의 모습에 가족들과도 담을 쌓고 사는 모습이었다. 낮은 자존감으로 살아가는 생활은 처참하기까지 했다.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그저 연명하는 느낌이었다. 대인기피증으로 직장을 다니기도 힘들어 한다. 자연스럽게 궁핍한 삶 속에 지독한 현실을 사는 모습이었다.그 영상에서 필자가 찾은 단어는 바로 '삶'이었다. 앞의 사례처럼 '삶'을 찾으니 그다음 단어는 너무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그 단어는 당연히 '살'이었다. '삶'과 '살'이 라임을 이루면 쉽게 팔리겠다고 생각했다.핵심 워딩만 찾으면 카피의 50%는 해결된 셈이다. 다양한 목적어와 동사를 결합해 수많은 문장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걸 고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살이 사라진다. 삶이 살아진다.''살'과 '삶'을 그리고 '사라진다'와 '살아진다'를 라임으로 썼다. 필자는 어떤 브랜드를 팔려고 할 때 가장 먼저 그 소비자가 되어보려고 한다.'내가 다이어트 센터에 가면 무엇을 원할까? 어떤 삶을 원할까?' 상상해 보았다. 당연히 제 몸에 붙어 있는 살들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제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모습을 꿈꿔 보았다. 자존감 높게 말이다. 소비자가 된 채로 글을 쓰면 마케팅의 성공률이 높아질 수 있다.그저 '우리 센터로 와서 돈을 주세요!'가 아닌 소비자의 만족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살 빼 드립니다' '8㎏ 못 빼면 전액 환불!'이라는 싫증 난 마케팅 속에서 우리의 문장은 살아남을 수 있다. 소비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어루만졌기 때문이다.이렇게 남들이 세일즈하는 똑같은 방식에서 조금만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하려 한다면 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다.언제까지 자신의 통장 잔고만 볼 것인가? 고객들의 마음을 먼저 읽어라. 그리고 어루만져라.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팔릴 것이다.

2020-04-20 18:00:00

[백옥경의 과학둘레] 꽃이 핀다는 것

[백옥경의 과학둘레] 꽃이 핀다는 것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전해 오는 향기가 황홀하다. 겨우내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매화가 피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있다는 걸 모를 만큼 존재감 없는 산수유도 피었다. 여느 꽃들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봄소식을 전해 오는 반가운 꽃이다. 곧이어 개나리가 기세등등하게 피어나고 진달래도 수줍게 따라 핀다. 살구꽃이 벚꽃에 질까 봐 서둘러 피어나고 수많은 등불을 매단 목련도 핀다. 그도 잠시. 중력을 이기지 못해 떨어지는 꽃잎은 봄의 여왕 벚꽃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벚꽃이 날리며 드러낸 속살엔 어느새 연두가 올라오고 있었다.그러고 보니 봄에 피는 꽃들은 잎보다는 꽃이 먼저 핀다. 무에 그리 급한 건지. 번잡함을 피하려 부지런을 떠는 얼리버드 작전일까. 사실 이른 봄에 피는 꽃은 한 해 전 여름에 미리 만들어 겨우내 간직한 꽃눈을 봄 햇살에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동시에 그것을 꺼내 놓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가장 주목받을 순간을 포착하려는 듯 간격을 두고 기회를 기다린다. 덕분에 봄날의 정원에선 그들의 순서를 따라가는 두 눈이 바빠진다.꽃이 피는 건 기온이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여도 꽃이 따뜻해진다고 무조건 피는 건 아니다. 겨울을 나는 식물은 일정량의 추위를 견디고 또 어느 정도의 온기를 쌓아야 꽃을 피울 수 있다. 일시적으로 기온이 올랐다고 섣불리 꽃을 피우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에 누적된 온도를 근거로 꽃피는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환경에 적응해 온 그들의 오랜 생존 전략일 듯하다. 식물의 저온요구량과 고온요구량은 종마다 다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봄에 벚꽃보다는 개나리나 진달래를 먼저 보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온난화로 개나리에서 벚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4월에나 피던 벚꽃은 개나리가 피고 대략 열흘 뒤인 3월 말이면 이곳에서 볼 수 있다.꽃이 피는 데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낮과 밤의 상대적인 길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을 지나면 낮이 조금씩 길어져 퇴근 무렵에도 밖이 훤하다. 집으로 그냥 들어가기에는 아까운 시간인 듯싶어 지인들과의 저녁 모임을 계획할 수도 있지만 다음 날을 생각하면 집으로 들어가는 편이 좋겠다는 고민을 하게 되는 때다. 낮의 길이에 영향을 받는 꽃들이 있다. 낮의 길이가 길어질 때 꽃을 피우는 식물은 카네이션, 붓꽃, 해바라기 같은 장일식물이다. 반면 낮의 길이가 짧아질 때 꽃을 피우는 식물은 가을에 볼 수 있는 국화와 코스모스 같은 단일식물이다.장일식물과 단일식물의 특징은 인간의 성향과 유사한 점이 있다. 사람도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이 있듯 말이다. 외향성이 강한 이들은 다른 사람을 만나 웃고 떠드는 가운데 에너지를 얻는다. 낮이 길고 밤이 짧아야 꽃을 피우는 장일식물의 특성과 비슷하다. 반면 내향성이 큰 사람들은 홀로 있는 자기만의 시간이 길어야 생산적이 된다. 낮이 짧고 밤이 길어야 꽃을 피우는 단일식물과 닮았다. 그런데 만일 낮이 짧고 밤이 긴 단일 조건에서 꽃을 피워야 할 단일식물에게 밤에 잠시 빛을 비추면 꽃이 피지 않는다. 홀로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할 내향적인 사람들이 그들만의 시간을 방해받으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만일 단일 조건에서 꽃을 피우지 않는 장일식물에게 밤에 일시적으로 빛을 비추면 꽃이 핀다. 이는 밤에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 반짝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외향적인 사람들과 닮았다.빛과 온도, 혹은 강수량으로 꽃이 피는 신호를 식물에게 알리는 일은 단순하지 않은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빛에 의해 활성화된 광수용체가 플로리겐이라는 개화 호르몬을 만들어 꽃을 피우기까지의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치며 그에 대한 연구가 그 비밀스러운 세계를 아주 조금씩 들춰내고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라는 시의 구절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어디 소쩍새 울음과 천둥소리뿐일까. 한 줌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한 줄기 소나기까지. 백일 동안의 고민과 한숨 그리고 뒤척임과 잠 못 이룸까지. 꽃이 핀다는 건 화려하고 폼 나지 않는 이름 모를 꽃이라도 주어진 삶의 소명을 다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애틋한 증거인 것이다.

2020-04-20 18:00:00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기본이 전부다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기본이 전부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힘은 '본능적인 동작'이 아니라 '인위적(人爲的)인 활동력'이다. 사람은 인위적이고 의도적(意圖的)인 동작을 해서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점점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한다. '본능적인 동작'의 테두리에 갇힌 것이 동물이고, '인위적인 활동'으로 본능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학습이 필요하고, 동물에게는 학습이 거의 필요 없다. 누가 더 사람이 되느냐 하는 점은 누가 더 학습하느냐로 결정된다. 학습의 전 과정에 철학을 담아 체계화 한 것을 우리는 교육이라고 한다.동물이라면 학습이 필요 없으니 교육도 필요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 완성되는 여정에는 반드시 교육이 필요하다. 종교 수련의 전 과정도 다 교육이다. 군대 훈련의 전 과정도 다 교육이다. 교육의 정도가 종교인의 수준을 결정한다. 교육의 강도가 군인의 용맹성을 결정한다. 사회가 작동되는 중심 톱니바퀴가 두 개 있으니 바로 정치와 교육이다.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사회의 정치가 어떠한가라는 질문의 답과 일치한다.그 사회의 정치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사회의 교육이 어떠한가라는 질문의 답과 아주 잘 맞는다.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도 교육의 결과다. '이런 교육'에서는 '이런 정치'가, '저런 교육'에서는 '저런 정치'가 태어난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의 뿌리 동력은 교육이다. 그래서 교육이 한 나라 백 년 후의 전망을 결정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교육 무용론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교육 방법에 대한 회의에서 빚어진 착각이다. 교육 무용론은 있을 수 없고, 특정한 교육 방법 무용론은 있을 수 있다. 인간은 다 교육생으로 살다 간다.문제는 교육 받은 군인이라고 다 용맹한 것은 아니고, 교육받은 종교인이라고 해서 다 수준 높은 종교인인 것은 아니다. 교육 과정을 다 마친 학생이라고 해서 모두 다 창의적이거나 도전적인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사람이 교육을 받는 목적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이다. 교육을 받고도 창의적이거나 도전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은 사람답게 사는 능력을 배우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능력을 배우지 못하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으로 치부하는가.'창의'나 '도전'은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이다. 사람은 문명(文明)을 건설하는 존재다. 인간이 한 모든 활동의 총체가 문명이다. 심지어는 문명을 부정하거나 문명을 비판하는 태도 또한 문명적인 활동이다. 문명을 건설하는 활동을 문화(文化)라고 한다. 인간을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존재'로 보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문화는 "무엇인가를 해서 변화를 야기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변화를 야기하는 일이 자신에게서나 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활동성이다.이런 근본적인 활동성을 가진 인간들이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한다. 대답하는 사람보다는 질문하는 사람이, 종속적인 사람보다는 자유로운 사람이, 패륜적인 사람보다는 윤리적인 사람이, 훈고하는 사람보다는 창의적인 사람이, 따라하는 사람보다는 먼저 만드는 사람이, 비굴을 받아들이는 사람보다는 용기 있는 사람이, 답습하는 사람보다는 도전하는 사람이 더 주인행세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다. '대답', '종속', '패륜', '훈고', '따라 하기', '비굴' 그리고 '답습'보다는 '질문', '자유', '윤리', '창의', '먼저 하기', '용기' 그리고 '도전'이 변화를 야기하는 데에 더 적극적인 활동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앞 쪽에 나열한 것들보다는 뒤 쪽에 나열한 것들이 더 사람다운 활동들이다.교육의 관건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이다. 변화를 야기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지식에 매몰되거나 이념에 빠져 있으면 변화가 힘들다. 알고 있는 것을 수호하거나,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만 세상을 보며, 굳은 신념이 된 이념을 매개로만 세상과 관계한다면 변화는 경험할 수 없다. 자신도 변화를 경험할 수 없고, 세상에 변화를 야기할 수도 없다.자전거에 대하여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알고 있는 그것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전거를 타지 못하던 자신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변화하는 일이다. 우리는 자전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많이 갖게 하는 데에 시간을 거의 다 쓰다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전에 나서는 일을 소홀히 하기도 한다. 자전거에 대한 지식이 자전거를 타보려는 용기로 바뀌는 일은 매우 특별한 어떤 것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매우 특별한 어떤 것'이 필요하다.교육 일선에 있으면서 이것저것을 시도해보았는데, 결국은 교육을 통해서 조그마한 변화라도 일으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변화'라는 것은 교육의 매커니즘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교육 받고 나서도 교육 받기 전하고 똑같다면 교육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피차간에 지식의 습득이나 축적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교육 환경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지식을 축적한 다음의 인격적인 변화 혹은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독립적 인격이나 창의력이나 행복이나 자유나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사랑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3인칭의 시점에서는 변화를 얘기하고 창의력을 얘기하지만, 정작 1인칭 시점에서는 변화나 창의력에 집중하지 못한다. '변화'에 대해서 토론하고 의견을 말하지만, 정작 자신 내부에서의 '변화'는 일으키지 못한다. 대신에 알고 있는 것이나 믿고 있는 것을 강하게 지키는 일을 더 잘한다.변화를 중심 주제로 정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도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변화에 대해서 강의하고 토론하여도 정작 변화를 감행하는 인격으로 성장시키는 데에는 항상 부족했다. 강의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왔다가 급히 두어 과목 강의를 듣고 다음 일을 위해 허둥지둥 돌아가는 모습은 항상 안타까웠다. 심지어는 강의가 길어지면 결혼식 참석 등과 같은 다음 약속 때문에 먼저 가기를 청하는 학생들도 있다.그 프로그램이 교육 제공자나 수요자 모두에게 다른 여러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로 존재하는 한 별 의미가 없다. 교육이 진행되는 그 앞뒤의 생활에서 다른 것들이 그림자로 밀려나고 그것만 오롯이 고독한 형태로 솟아날 수 있을 때에만 교육 효과가 나타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여러 가지 가운데 다른 스펙 하나를 더 올리는 것 이상이 되지 못했다. 너무 번잡한 일들로 포위된 교육은 효과가 없었다. 많고 번잡한 일들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는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 존재하는 모습이다.'우리'로 있으면서 번잡한 문제들에 휩싸여 있을 때의 '나'는 '나'로 존재하기 힘들다. '질문', '자유', '윤리', '창의', '먼저 하기', '용기' 그리고 '도전' 등은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출현할 수 없다. 오직 '나'로 존재하는 사람에게만 있다. '독립적 주체'들의 몫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교육의 최종 단계는 '독립적 주체 만들기'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가장 귀하고 높은 질문은 어쩔 수 없이 '나는 누구인가'가 된다.사람이 사람으로 성장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기본'이다. 누구나 기본만 갖추고 있으면, 세속적인 일에서나 영적인 일에서나 모든 일을 잘 이룰 수 있다. '기본'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기본'이 없이 하는 일은 어떤 것도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 기본 가운데 기본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바로 독립적 주체로 성장하려는 문을 연다는 뜻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근본 질문 옆에 조금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몇 개의 질문들이 포진한다."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인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 번잡한 일들로 포위된 교육이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질문에 골똘히 빠질 수 있는 고독한 시간 자체를 차단하기 때문이다.나는 이제 확신한다. 고독한 상태에서 이런 질문을 제기하고 스스로가 답을 찾아 자신의 존재적 목적을 찾기만 하면, 나머지 모든 일들이 가능해 진다는 것을. 나머지 모든 일들을 수준 높은 상태로 가능케 하는 태도들이 바로 '질문', '자유', '윤리', '창의', '먼저 하기', '용기' 그리고 '도전' 등등인데, 이런 태도들은 고독한 상태에서 앞에 제기한 몇 가지 질문들에 집중한 결과로 얻어질 수 있다. 자신을 성찰하는 고독이 동반되지 않은 교육은 성공하기 힘들다.그래서 요즘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런 꿈을 꿔본다. 내 고향 함평에 조그만 집을 지어서 '기본'을 닦는 도량을 여는 것이다. 6개월이나 1년 정도의 일정 기간을 정해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시간을 갖는다. 학교 이름을 '기본 학교'라고 짓는다. 다른 지적 활동들도 모두 이런 질문들을 에워싸고 진행한다.적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온전히 이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과만 함께 한다. 서울에서 함평까지 온다면 2시간 30분은 써야 한다. 다른 곳에서 오더라도 최소한 1시간은 써야 한다. 이 2시간30분은 온전히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이다. 도착하여 30분 정도 명상을 하며 고독을 내면화 하고, 내면화 된 그 고독을 힘으로 써서 치열한 지적 토론을 한다. 그리고 늦은 저녁 시간 또 2시간30분의 시간 내내 고독한 상태에서 서울로 돌아간다.고독이라는 '자신 만의 동굴'에 적어도 5시간을 머무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최소한 5시간 동안의 고독이다. '고독'을 생산하는 수고와 불편함이다. 수고와 불편함은 '고독'을 더욱 고독하게 한다. '고독'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소한 것들을 일거에 소멸시켜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남길 수 있는 폭탄이다. '독립적 주체'로 성장시키는 특효약이다.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2020-04-20 18:00:00

[기고] 코로나19 위기, 일하는 방법을 바꾸자

[기고] 코로나19 위기, 일하는 방법을 바꾸자

코로나19가 우리 사회 일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재택근무, 유연근무제 등이 확산되면서 슬렉이나 MS 팀즈, 네이버의 라인웍스와 같은 협업 툴을 도입하고 화상회의를 하는 조직이 많이 늘었다.오래전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일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많이 했다.일하는 방법의 변화는 MS 팀즈와 같은 툴이나 재택근무제, 유연근무제와 같은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세상의 많은 일들은 인식이 변하고 제도가 변하고 툴이 변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인데, 이번 변화는 코로나19라는 외부의 충격에 의해 강제된 부분이 있어 우리의 인식이 제도의 변화를 못 따라 간다는 생각이다.그래서 일과 관련된 우리 인식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아니 더 정확하게는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상수인 초연결성 시대에 우리의 일하는 방법은 '무엇이 변해야 할까'이다.첫째는 일의 주체에 대한 인식이 변해야 한다. 이제 일의 중심이 조직이 아닌 개인이라는 사실이다.예전 일본에 단괴 세대라는 말이 있었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를 말하는 것으로, 일본 전쟁 후 제조업 중심의 고도 성장기를 이끈 세대를 말한다.일본어로는 단카이(だんかい·團塊)로, 단괴는 퇴적암 속에서 어떤 특정 성분이 농축·응집되어 주위보다 단단해진 덩어리를 뜻한다고 한다.말 그대로 단단하게 하나로 뭉쳐진 조직이 일사불란한 수직적 조직 문화를 바탕으로 성과를 냈었던 것이다.오늘의 시대 중심 기업들은 제조업이 아니다. 미국은 FANG, 중국은 BAT와 같은 디지털 기업, 플랫폼 기업들이 산업 시대를 이끌고 있다.이들의 특징은 개인의 창의성에 기반한 개방성, 자율성이다.단단한 덩어리와 같은 단괴에는 개방성, 자율성이 들어갈 틈이 없다. 특히 수직적 조직 문화에서 개인의 창의성은 자랄 수 없다.둘째는 일을 하는 방법이 변해야 한다.계획보다는 대응이 중요할 수 있다. 통제 불가능한 변화에 대한 대응 자세의 이야기이다.변화를 통제할 수 있을 때 일의 접근 방법은 톱 다운 식의 일사불란한 폭포수와 같은 방식의 접근이 효율적이었다.전체 일을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데드라인을 정하고 그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우는 '돌격대' '100일 작전'과 같은 방법이다. 실제로 한강의 기적이, 중동의 수주가 그렇게 가능했다.이 반대의 접근 방법으로 '대응'에 초점을 둔 애자일(민첩하게) 방식이 있다. 애자일은 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하며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앞으로 나가는 방식이다.셋째는 '일을 하면서 어디를 볼 것인가' 시선의 문제이다. 내부가 아닌 외부를 지향해야 한다.변화에 대한 감지와 대응을 넘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이제 시선은 내부가 아닌 외부를 향해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조직 내부의 자원만 가지고 따라잡고 해결할 조직은 어디에도 없다.외부의 자원을, 천재를 활용해 문제를,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감지하고 해결해야 한다.초연결성 시대를 VUCA의 시대라고 말을 한다. 변동성이 크고(Volatile), 불확실하고(Uncertain), 복잡하고(Complex), 모호한(Ambiguous) 시대라는 말이다.어쩌면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이런 VUCA 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었다.이제 이 시대 일하는 방법의 무게중심은 조직에서 개인으로, 계획에서 대응으로,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져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코로나19와 같은 예측 가능하지 않고 통제 불가능한 일들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2020-04-20 16:02:49

[세계의 창] 총선 후의 경제정책

[세계의 창] 총선 후의 경제정책

더불어민주당 집권 3년의 치적은 초라하다. 경제 침체, 안보 불안, 외교 고립, 특히 조국 전 법무장관의 비리 사건, 울산시장 선거의 관권 개입은 국민의 공분을 자아내었고 조국 수호와 조국 반대로 민심은 두 동강이 났다. 그러나 4·15 총선 결과는 여당의 압승이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과는 반대로 유권자 집단지성의 대답은 "대한민국을 위해 거대 여당으로 힘을 합쳐라"다. 미증유의 우한 코로나 사태가 모든 이슈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정권 심판은 일단 미루고 당면한 코로나 질병 퇴치와 코로나발(發) 경제대란의 양대 과제 해결을 현 집권층에 맡긴 것이다. 사법, 행정, 언론은 물론 입법부까지 장악하게 되었으므로 국정 실패를 떠넘길 곳도 없어졌다. 막중한 과제를 고려하면 총선 압승이 자축할 일만은 아니다.이와 관련하여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감독의 고전 명화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가 생각난다. 16세기 일본의 어느 시골 마을이 계속되는 마적단의 습격과 약탈을 견딜 수 없어 낭인무사(浪人武士) 7명을 초빙하여 마적단을 소탕한 스토리이다. 무사들은 과업을 완수했지만 4명이 전사하는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마을을 떠나야 했다. 승자는 마을 주민, 즉 민초라는 것이다.이 교훈을 현 정부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코로나 퇴치와 경제대란을 성공적으로 해결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을 것이고 권력은 국민에게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만일 경제대란의 수습에 실패라도 하면 집권층의 운명이 참담하게 될 수도 있다.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 제언을 한다.첫째는 탈원전 정책 폐기다. 이것은 복잡한 입법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당장 시행할 수 있다. 이해집단과의 충돌도 크지 않다. 태양광, 풍력 업체들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이들의 영업 역사가 짧고 숫자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정부의 일방적인 원전 폐기 정책만 중지된다면 한국 원자력산업은 그것이 가진 효율과 인적자원으로 단기간에 경쟁력이 회복될 수 있다. 모든 생산 공정의 기초가 되는 에너지 가격이 원자력산업 회생에 힘입어 낮아진다면 경제의 잠재생산력이 상승한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경제 및 주식시장의 활황이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미국 에너지 가격 인하에 힘입었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둘째는 최저임금을 낮추는 것이다.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내세워 지난 3년간 최저임금을 급격히 상승시켜 왔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은 급락하였고 실업률은 급증했다. 고임금정책(high wage policy)은 이미 싱가포르가 1970년대 말에서 1985년까지 시행한 바 있다. 저기능-노동집약적 산업을 탈피하고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산업을 개편하여 생산성을 증대시키자는 목적이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노동비용이 상승하고 기업의 생산성이 정체되어 불황이 왔다. 고임금정책을 유연임금정책(flexi-wage system)으로 바꾸자 싱가포르 경제는 성장으로 돌아섰다.한국의 최저임금은 지난 3년간의 누적 인상률이 30%에 달하여 많은 중소기업이 경영난에 봉착하고 도산한 바 있다. 현재의 최저임금(8천590원)을 2017년의 최저임금 6천470원에 이후 3년간의 1인당 국민소득 누적 증가율 9.45%를 적용한 7천81원으로 내리기를 제언한다. 현 정권은 노동조합이 핵심 지지층이므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있다.고임금에 의한 소득주도성장론의 맹점은 임금이 소득이라는 것만 보고, 동시에 생산비용이라는 점은 망각한 데 있다. 최저임금이 상승하면 노동자의 소득은 올라가지만 기업의 생산비용이 올라 수익 악화, 감원, 도산, 그리고 마이너스 성장이 나타난다.소득주도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정책이 물론 있다. 세율을 내리는 것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감세분만큼 세후 순소득이 올라가지만 생산비용은 올라가지 않는다. 따라서 구매력과 투자가 증대하고 경제가 성장한다. 세원이 늘어나므로 장기적으로는 조세 수입도 증가한다.우선 코로나발 경제위기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탈원전 중단, 최저임금 인하, 감세로 경제에 숨통을 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04-20 15:06:09

[매일춘추] ‘집단적 가계의 기록’ 족보

[매일춘추] ‘집단적 가계의 기록’ 족보

족보는 한 가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족보는 한 성(姓)씨의 시조를 시작으로 그 집안의 이야기와 이력을 담고 있다. 같은 성씨를 지닌 동족 공동체의 이야기이며 기억의 산물이다. 이 집단적 가계의 기록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때문에 그 안에는 우리 민족의 개별 가족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도 하다. 이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전통이자 가문의 아카이브이다.동양에서는 중국이 처음으로 성씨를 사용하였으니 족보가 태어난 곳도 역시 중국이다. 황족 혈통을 기록하는 제왕연표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개인이 족보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 이후부터이다.외국의 경우 왕실이나 귀족의 특권층만이 족보를 가졌다. 대개는 자기 집안의 간략한 가계사만을 지니고 있었는데, 현재 유럽에 아직도 존재하는 폐쇄적인 귀족클럽과 영국의 서(sir)나 프랑스의 드(de)라는 귀족 칭호를 보면 보편화 되지 않은 족보의 이면을 볼 수 있다. 중동에서는 기록된 족보가 드물며, 자신의 이름 뒤에 아버지/할아버지/증조부의 이름을 순서대로 연명(連名)함으로써 자신의 가계를 기억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성씨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한자가 유입되면서 성씨와 족보가 생겨났다고 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시조 전설에서 족보의 기원을 볼 수 있다. 고려 건국 이후 태조 왕건은 공신과 호족에게 성을 부여하였는데, 우리 역사에 족보(성씨제도)가 본격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 '백성(百姓, 백 사람에게 성을 주었다)'이란 말이 등장했다는 학설도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이 시기 성을 가진 지배계층은 국가 기관인 관사(官司)에서 기록하고 관리하였다고 한다. 조선 성종 7년(1476) 서거정이 서문을 쓰고 간행한 안동권씨 '성화보'는 가문에서 발간한 족보의 일례를 볼 수 있다.족보는 한국인의 독창적인 작명과 항렬자(돌림자) 사용, 시기에 따라 기록 방식변화(계보·세보·파보 등)는 누대에 걸쳐 많은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16세기의 왜란과 17세기의 호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변질된 족보의 매매와 조작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로 인해 30~50년의 기간을 두고 개정, 증보되어 편찬되는 우리의 족보는 그 자체로 고스란히 한 세대가 속했던 그 시대의 역사를 아카이브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문화예술 아카이브 구축을 함에 있어 세계 유일무이한 한국의 족보를 온고지신하여 활용하고 확대, 접목한다면 고유의 특별한 '도시 문화예술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빠르게 다원화, 개인화 되어가는 현대에 집안 한구석에 먼지 쌓여있을 족보를 꺼내어 한 가문의 일대기를 펼쳐보며 우리 가족의 과거와 현재 우리들 삶의 희노애락을 오늘 함께 느껴봄은 어떨까?

2020-04-20 14:10:21

[이른 아침에] 한국 정치의 ‘뉴 노멀’은 무엇인가

[이른 아침에] 한국 정치의 ‘뉴 노멀’은 무엇인가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 경제 분야에서 시작된 뉴 노멀 개념은 이제 모든 분야에서 과거와 다른 현상과 표준이 새로운 기준이 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다시 한번 새로운 차원의 뉴 노멀을 요구한다. 코로나 이후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유럽과 미국 등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가 달라질 것이다.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이동 제한, 위치 추적 등 임시적, 극단적 조치들이 뉴 노멀이 될 가능성도 크다. 개인의 기본권 보장이 후퇴하고 권위주의 정권이 득세할 수 있다. 소득,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불평등이 더 심화될 전망이다.관건은 이러한 뉴 노멀 현상에 어떻게 적응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에 있다. 과거 집착은 미래의 추락을 의미하는 반면 뉴 노멀에 적응하고 이를 활용하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개인, 집단, 국가 모두 다를 바 없다.한국 정치도 바야흐로 뉴 노멀이다. 여당 180석, (제1)야당 103석. '여당 압승'이란 말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다. 100년에 한 번 있을 선거 결과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에 한마디 더 보태기 위해 설명한 개념이 바로 뉴 노멀이다. 21대 총선은 여야 모두에게 뉴 노멀 시대 한국 정치의 숙제를 안겼다. 이른바 보수의 재편과 진보의 정국 운용 모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하지만 선거를 되짚어 보면 한국 정치의 뉴 노멀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이를 활용한 쪽은 승리한 반면 인식조차 없었던 쪽은 패배했음을 알 수 있다.일부 언론에 보도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행보는 시사적이다. 여당은 총선 9개월 전부터 이동통신 빅데이터를 활용한 선거 전략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후보자 전원은 당이 해당 지역구에 제공하는 자료를 통해 시간대별 유동인구, 세대별, 지역별 특성까지 감안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세대별, 성별 취향과 소비 패턴을 파악해 유권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공약을 만들기도 했다.반면 야당은 정권 심판론이 유일한 전략이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식의 무조건적 통합의 결과는 감동 없는 공천으로 이어졌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과거 구호는 "의료보험은 박정희가 시작했다"라며 정권 비난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 보듯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에 힘이 쏠리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객관적 분석 대신 대통령 지지율 상승이 '여론 조작'이라는 주관적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다. 선거 이후에도 야당은 한국 정치의 뉴 노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선거 결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 대신 비상대책위원장, 전당대회 운운이 화제의 중심이다. 불난 집에서 튀밥 줍기 바쁘다고 할까. 무소속 복당 등을 둘러싼 내부 총질과 드잡이도 다시 도지고 있다. 20대 총선부터 탄핵, 대선, 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야당의 자멸 요인 중 하나인 계파 싸움의 재연이다.선거 전 미래통합당의 압승을 예상한 전문가가 있었다. "60대 이상 유권자가 1천200만 명이 넘는 상황은 보수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논거였다. 통합당이 조금만 노력하면 대선에서는 희망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야 의석수와 달리 지지율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논리다.과거 열린우리당에서 보듯 공룡 여당은 오만과 독선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인구 고령화와 여당의 실패로 다시 보수에게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역시 뉴 노멀의 개념조차 없는 생각이다. 선거 결과가 말하듯 현재의 60대는 과거 어르신들과는 전혀 다른 세대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야당이 새로 태어나고 싶다면 새로운 세상에서는 새로운 표준이 필요하다는 단순한 생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야당은 재난구호금, 기본소득, 지역화폐 논의가 왜 나오는지를 알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뉴 노멀에 대한 인식조차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포퓰리즘이라고 비난만 한다면 과거 보수의 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흔쾌히 동의는 못하더라도 그 배경은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야당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지 추락과 소멸의 길로 갈지는 전적으로 자신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2020-04-19 14:37:44

[기고] 코로나19에 드러난 중증장애인의 가혹한 시련

[기고] 코로나19에 드러난 중증장애인의 가혹한 시련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거센 폭풍 속에 갇혀 있다.경북에서도 2월 19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꼬박 두 달간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바이러스와의 전쟁에는 장애인들도 함께했다. 도내 지체장애인협회, 교통장애인협회, 장애인권익협회, 시각장애인연합회, 장애인복지시설협회 등의 회원들은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전달해 왔다. 또 예방적 동일집단(코호트) 격리 중인 장애인거주시설을 응원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크고 작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재가 장애인들이 거주시설 장애인을 이렇듯 격려하고 후원한 사례는 처음이다.코로나19는 모두의 일상생활을 마비시킬 만큼 큰 불편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보고, 듣고, 이동하는 데 제약을 받는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차원이 다르다. 특히 중증장애인들은 혼자서는 의사소통, 식사, 이동 등 거의 모든 일상생활이 어렵다. 마스크 하나 사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고 몸에 이상이 있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전에는 검사받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활동을 보조할 사람도 없이 자가격리라도 되면 감염병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곤란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한다. 2019년 말 기준으로 도내 장애인은 18만898명, 이 중 심한 장애를 가진 분이 37%에 이른다. 얼추 6만여 명의 장애인이 이러한 위험에 맞닥뜨릴 수 있는 셈이다.중증장애를 가진 분들은 감염이 확진돼 입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들은 발달장애 등 중증장애인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소통이 가능하더라도 밀착하여 일상적인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증장애인 한 분이 격리병동에 입원하려 하자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호자 없이는 어렵다는 사례가 있었다. 결국 해당 장애인 거주시설의 감염되지 않은 재활지원교사가 격리병원에 동행해 장애인을 돌봤다.장애인이 격리되거나 보호자의 입원 등으로 돌봄이 어려울 경우는 '긴급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는 지침이 마련돼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감염에 노출되는 엄중한 상황에서 어떤 '활동지원인력'이 시급 1만3천원 남짓의 위험을 감수하고 나설 수 있을까? 중증장애인을 고려한 감염병 대처 매뉴얼이 꼭 필요한 이유이다.장애인들은 위험한 재난 상황에서 더 위험에 빠지기 십상이다. 정보를 제때 전달받지 못하거나 정보를 알아도 혼자 힘으로는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19를 경험으로 일상생활에서든 재난 상황에서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삶의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당연시돼야 한다.마흔 번째 '장애인의 날'이다. UN이 1981년을 '세계장애인의 해'로 정하자 우리 정부에서도 그해 4월 20일을 '제1회 장애인의 날'로 기념한 지 40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 1972년 4월 20일부터 '재활의 날'을 기념한 지 50년이 다 됐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의 위중한 상황에서 장애인이 처한 열악한 환경이 우리의 현실을 여지없이 보여줬다.언제나 그래왔듯이 우리는 이 위기도 딛고 일어날 것이다. 많은 성과 못지않게 과제도 남길 것이다. 성과는 지키고 과제는 반드시 해결해서 이번과 같은 위기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들이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확실한 대응체계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0-04-19 14:37:31

[매일춘추] 스타탄생(A Star is born)

[매일춘추] 스타탄생(A Star is born)

지난 주말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이정은 배우가 출연했다. 영화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오스카를 휩쓴 지 고작 두 달 남짓이 지났을 뿐이기에 쏟아지는 러브콜에 정신없을 것이 누가 봐도 당연하다. 그녀는 백발노인의 가발을 쓰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의상을 입은 채 브라운관에 등장했다.영화 '기생충' 속에서 이정은은 마치 가정부 문광 그 자체인양 선과 악, 비굴함과 뻔뻔함 사이의 감정변화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명시절 그녀가 10여년간 맡았던 뮤지컬 '빨래'의 주인집 할머니 역으로 돌아온 그녀를 화면에서 보는 순간 문광은 없고 주인집 할머니만 그 자리에 있었다. 팍팍한 현실을 사는 남루한 모습의 할머니 역할이었지만 그녀의 연기만큼은 빛이 났고 무대 위에서 그녀는 완전한 스타였다.그녀의 빛나는 연기는 한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우리에게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로 시선을 사로 잡은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무려 데뷔 30년차의 배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크린 데뷔작을 촬영한 후에 몇 년간 필모그래피가 없었을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성숙하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예술 장르의 성격상 그 성숙의 과정을 오롯이 인정받거나, 댓가를 지불받아야 할 노동으로서 인정받기가 쉽지 않기에 힘든 시간도 많았다는 그녀이지만 그 인고의 시간을 통과했기에 지금처럼 스타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딤프(DIMF) 사무국에서는 매년 치러지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축제뿐만 아니라 인재 양성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들을 진행한다. 딤프 초창기부터 축제와 함께 이어오고 있는 'DIMF 대학생뮤지컬페스티벌'과 올해로 6회를 맞는 청소년 뮤지컬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인 'DIMF 뮤지컬 스타' 그리고 동일하게 6기 교육생을 모집 중인 지역 최초의 뮤지컬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DIMF 뮤지컬아카데미'가 그것이다.그중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연중사업으로 무려 8~9개월간 교육과정이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이며 전 과정이 무료로 진행되다보니 뮤지컬 창작자나 배우의 꿈을 지닌 전국의 인재들이 해마다 몰려들고 있다. 꿈은 있지만 꿈을 향해 가는 길을 모르는 젊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주는 것이 한국 창작뮤지컬의 발전과 지속 가능한 뮤지컬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그 방향을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딤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모두가 스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스타가 되어야지만 성공한 인생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스타를 꿈 꿀 수는 있어야 한다. 이정은 배우의 시간에서도 볼 수 있듯 한명의 스타가 탄생하기까지는 긴 시간과 노력, 인내가 필요하다. 당장 몇 개월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뮤지컬 작가·작곡가로, 뮤지컬 배우로 혹은 그 이상의 것으로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이 묵묵히 뻗어 나아갈 예비 스타들의 도전이 기대되는 4월이다.

2020-04-19 14:30:0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안중식(1861-1919), ‘탑원도소회지도’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안중식(1861-1919), ‘탑원도소회지도’

안중식이 그린 근대기 아회도(雅會圖)이다. 하늘에 둥근달이 떠 있고 달빛을 받은 하얀 탑이 보인다. 앙상한 잡목과 숲 사이로 드러난 기와지붕 아래 난간을 두른 누마루에 술상이 차려져 있고 8명의 인물이 함축적인 형태로 그려져 있다.화제는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 "임자(壬子) 원일지야(元日之夜) 위(爲) 원주인(園主人) 위창인형(葦滄仁兄) 정(正)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으로 1912년(지금으로부터 108년 전) 설날 위창 오세창(1864-1953)의 집에 지인들이 모여 서로 세배하며 새해 덕담을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밤이 늦도록 자리가 이어지자 참석자 중 한 명인 안중식이 집주인에게 그려 준 그림이다. 모임을 기념하고 길이 남기기 위해서라기보다 대접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즉흥적으로 그린 것 같다.오세창의 집은 탑골공원 근처인 돈의동 45번지의 대지 105평 되는 한옥으로 지금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이 있는 곳이었다. 원래 당호는 여박암(旅泊菴)인데 그림에서처럼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보여 지인들 사이에서 탑원으로 통했던 듯 오세창은 '탑원초의(塔園草衣)'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다. 달밤의 하얀 탑, 기와지붕의 탑원, 8명의 참석자 등 실제와 가상의 풍경인 물안개가 자욱한 호수를 결합해 이들의 고상한 모임에 걸 맞는 정취를 나타냈다.'도소회'는 연초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약술인 도소주를 마시는 것을 뜻한다. 6세기의 '세시기(歲時記)'류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동아시아의 오래된 풍속이었으나 고려시대에 비해 조선시대에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안중식은 이 그림에 왜 '탑원도소회지도'라는 고풍스런 제목을 달았을까? 혹시 이 날 길경, 육계, 방풍, 산초 등 약재를 넣어 만든 도소주를 실제로 마셨기 때문에 안중식이 이런 제목을 붙였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도소주는 동파관을 쓰고 나막신을 신는 고풍(古風)을 즐겼던 오세창이 담가 지인들을 대접했을 수도, 목돈이 생기면 안주거리를 쌀 보다 먼저 장만하고 집에 가양주가 끊이지 않았다는 안중식이 담가 가지고 갔을 수도 있을 것 같다.오세창은 일제의 강제 병탄으로 나라를 빼앗긴 후 탑원에 칩거하며 우리나라 서예가, 화가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하는 작업에 착수해 1917년 『근역서화징』을 탈고한다. 총 1,117명의 서화가에 대한 기록을 모은 위대한 업적이다. 『삼국사기』부터 조선시대 문집에 이르기까지 274종의 서적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펼쳐보며 관련 내용을 일일이 발췌해 작가별로 정리한 것이다. 민족의 역사와 미술문화에 대한 애착, 전통에 대한 존중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18년부터는 손병희, 권동진, 최린 등 천도교 동지들과 기미독립선언을 준비한다. 이 그림 속 인물들 중에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8명 중 한명인 안중식 또한 오세창, 손병희, 권동진 등과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였다는 이유로 삼일운동 후 일경에 잡혀가 경성지방법원에 내란죄로 회부되어 심한 문초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1919년 11월 2일(음력 9월 10일) 5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미술사 연구자

2020-04-19 06:30:00

[광장] 조율(調律)

[광장] 조율(調律)

기타와 같은 현악기나 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는 수시로 조율(調律)이 필요하다. 현악기의 현(絃)이나 건반악기의 건반에 연결된 줄이 온도와 습도에 따라 길이가 변할 수 있으므로, 정확한 음을 내기 위해서는 그 길이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악기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과 몸도 조율이 필요하다. '정신 줄을 놓다'라는 말에 나타나 있듯이 우리말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줄에 비유했다. 마음의 줄을 놓으면 무엇을 깜박 잊거나 실수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영남 방언에 '주책없고 사리 분별력이 없다'는 뜻으로 '오줄없다'라는 표현이 있다. '오'에 '줄'을 합성한 이 말의 어원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오'를 '총명할 오'(晤)나, '다섯 오'(五)로 보는 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총명할 晤'로 보면 '총명 줄이 없다'라는 뜻이, '다섯 五'로 보면 '마음을 구성하는 다섯 가닥의 줄이 다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이렇듯 마음의 줄을 모두 챙겨 잘 조율해야 함은 말 속에도 담겨 있다.위에서 조율은 마음의 조율을 나타냈지만 마음은 몸에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마음과 몸의 조율'을 뜻하게 된다. 마음은 몸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으므로 그릇이 온전하지 못하면 마음 또한 아프기 마련이고,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면 몸이라는 그릇이 제 기능을 다할 수도 없다. 결국 심신일체(心身一體)이므로 심신을 잘 조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코로나19로 국민들이 두 달 이상 일상을 잃어버린 와중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겹친 '가장 잔인한' 4월이 지속되고 있다. 다행히 많은 나라들로부터 찬사를 자아낼 만큼 국민들은 침착하고 질서 있게 질병에 대응하였고, 의료진들은 살신성인 정신으로 임하여 긴 터널을 벗어나고 있다. 총선도 지난 수요일 무사히 치러졌다. 조만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종료하고 '생활 방역 체계'로 전환할 것이다. 그간은 발등의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일상생활로 돌아갈 때인 지금은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를 때다.지친 몸과 마음엔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절대 휴식은 하루나 이틀이면 족하다. 지나치면 오히려 권태롭고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자신에게 맞는 절대 휴식을 취한 후엔, 마음의 평안을 통해 몸의 평안에 이르는 길인 독서, 몸의 평안을 통해 마음의 평안에 이르는 방법인 운동을 할 것을 제안한다. 독서와 운동엔 여러 종류가 있고 난이도(難易度)도 각기 다르지만 본인에게 맞는 쉬운 것을 택할 것을 권한다.심신이 잘 조율됐다는 느낌이 오면 가만히 눈을 감아보라. 몸이 우주에서 사라진 것같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몸은 정상이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어디든 아프면 소식이 오기 마련인데 기별이 없다면 안녕한 것이고, 정상이다. 이제 조용히 눈을 떠보라. 자신이 우주의 중심에 온전함을 목격할 것이다. 마음은 평온하고, 일에는 자신감이 충만하며, 일터로 달려가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면 마음도 정상이다.조율이 잘된 악기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조율이 잘된 사람은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심신을 조율하여 본인과 가족과 나라를 구하시길 빈다. 아울러 여야(與野) 간에도 조율이 필요하다. 총선도 끝났으니 여야 간 이견을 서로 잘 조율하여 더 이상 '국민이 정치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도록' 지금까지의 정치 후진성을 탈피해 주길 바란다.

2020-04-17 19:04:49

[기고] 4·19혁명을 회고한다

[기고] 4·19혁명을 회고한다

자유당의 장기 집권을 위한 부정선거 음모가 진행되면서 정·부통령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60년 2월 28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야당의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회가 개최됐다.선거 패배를 예감했던 자유당 정부는 고교생들의 유세장 참가를 차단하기 위해 일요 등교를 강행하기까지 했다.독재정권의 간계를 파악한 정의의 학생들은 불의에 항거했다.학교에 모인 학생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사대부고 학생들이 주도한 2·28민주화운동이었다.오늘날 우리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자유로워진 것은 이 2·28운동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4·19혁명은 1960년 4월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 조작을 한 것에 반발해 부정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이다.시위는 3월 18일, 데모 대열에서 실종되었다가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떠오른 중학생 김주열 군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더욱 격화됐다.서울에서는 고려대 학생 1천여 명이 구속 학생들의 석방과 학원의 자유 보장, 독재정권의 타도를 외치면서 시가지 행진이 시작됐다.또한 서울 지역 총학생회 간에 물밑 논의를 통해 4월 19일 오전 9시에 일제히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와 중앙청 앞에 집결하는 것으로 행동지침을 정했고, 경무대 앞에는 대학생 2만여 명이 모였다.이에 경찰은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날은 비가 와서 희생자들의 선혈로 아스팔트를 붉게 물들였다. 과잉 진압은 국민을 격노케 했다. 학생들의 희생으로 제1공화국은 막을 내렸다.4·19 당시 필자는 대학교 3학년이었다. 뿌리까지 말라버린 민주주의 나무을 소생시켜 보자는 일념으로 학우들과 뜻을 같이하며 교문을 나섰다.당시 총학생회장은 자유당 고위층의 가까운 친척이어서 제외시키고 동료 학생들은 변론부장으로 있던 필자에게 데모대의 총 지휘권을 맡겼다.도지사 관사로 가기 위해 2군사령부 앞을 지날 때, 소총에 칼을 꽂은 병사들이 우리를 격려하는 눈빛을 보여줘 시위의 사기가 진작됐다.광란하는 경찰들이 휘두른 방망이에 수많은 동료들이 부상을 당했고, 소방관들은 우리 시위대를 향해 붉은 염료를 섞은 물대포를 쏘아댔다.시위를 마치고 학교 강당으로 돌아와 부상당한 학우들의 쾌유를 빌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만세를 소리 높이 힘차게 불렀다.부상당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 우리 일행은 어깨띠를 두르고 모금을 위해 거리로 나갔다.시민들로부터 모금한 그 액수는 거금이었으며 매일신문사에 기탁했다.다음 날 아침 필자는 학장님의 지프에 스피커를 장착하고 간부 3명을 대동해 대구 시가지를 누비면서 '자유당 정부는 무너졌습니다. 시민 여러분! 생업에 전념합시다'라는 구호로 하루 종일 가두방송을 했다.스피커 소리에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주었다.4·19혁명은 한국 정치 발전사에 하나의 굵직한 획을 그은 역사적으로 크나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4·19혁명의 성공으로 외국이 우리 민족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세계민주화운동사에 동참하게 되었던 것이다.필자의 학창 시절에 있었던 4·19는 '자유 회복과 질서 의식'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거리의 함성이 귓전에 메아리치는 듯하며, 당시의 일은 나의 생에 가장 보람 있고 값진 추억으로 남아 있다.

2020-04-16 15:47:00

[춘추칼럼]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라

[춘추칼럼]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라

문재인 정부 집권 중반 들어서 치러진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례 없는 압승을 했다. 국민들은 코로나19 국난 앞에 '견제'보다 '안정'을 택했다. 민주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포함해 네 차례 연속 승리한 최초의 정당이 됐다. 180석의 '슈퍼 여당'이 된 민주당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국회까지 독차지하면서 개헌 빼고는 다 할 수 있게 됐다. 모든 법안·예산·정책을 정부·여당 마음대로 추진할 수 있고, 단독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가 가능해 국회선진화법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이번 총선 결과가 주는 함의는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주류 세력인 보수 산업화 세력이 진보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되어 기존의 '보수·진보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진보 좌파 1.5 정당 체제'가 구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차지하는 의석은 1이고, 그 외 정당들은 모두 합쳐도 0.5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다. 일본 자민당이 1955년 창당부터 50년간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런 정당 체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018년 8월 5일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국 순회 연설회에서 "2020년 압도적 총선 승리와 2022년 재집권을 통해 앞으로 20~30년은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적이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서 벗어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용어는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업의 M&A 경쟁에서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에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에 많이 사용된다. 특정 정당이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을 빗대어 사용될 수 있다.지난 2008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153석을 획득했다. 여기에 '친박 연대' 14석과 '친박 무소속 연대' 13명을 더하면 범여 의석은 180석을 차지하게 됐다. 그런데 총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현재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와 내전이 시작됐다. 필자가 2010년 10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소속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권교체라는 응답이 무려 33.6%나 됐다. 박 전 대표는 전략적으로 국민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시종일관 '여당 속의 야당'이라는 이미지 마케팅을 구사했다. 현직 대통령과의 이런 차별화 전략이 2012년 대선에서 인기 없는 여당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51.6%의 득표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한국 정치에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하는 것은 철칙이다. 조국, 임종석 등과 같은 현재 권력인 대통령 세력(친문)과 현재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며 미니 대선인 서울 종로에서 낙승한 이낙연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 권력(친이) 간 대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첨예화될 수 있다. 이런 갈등은 문재인 정부 3년 6개월이 끝나는 시점인 올 연말부터 본격화될 개연성이 있다. 여기에 민주당과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만들려다가 민주당으로부터 팽당한 원로 진보 인사들이 중심 된 정치개혁연합 세력과 친문·친조국 세력 간의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진보의 분열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분명, 절대 권력은 절대 분열될 수 있다.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분명, 민주당이 이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긴 것이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압승은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성과에 대해 심판받았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민주당이 승리에 도취해 '협치와 포용'보다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 몰입해 갈등과 분열을 가져오면 그것이 바로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 이제부터 통합과 공존의 정치에 앞장서야 미래가 있다.

2020-04-16 15:18:47

[매일춘추] 고정관념의 함정, 그리고 탈피

[매일춘추] 고정관념의 함정, 그리고 탈피

작품을 쓰고, 글을 쓰다보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음악적인 부분이나 문장들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어떤 주제에 대하여 글을 쓰는 순간이면 항상 고정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자신, 혹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고정관념 속에 가둬 놓고 그 사람을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서커스단에서 곡예를 시키는 코끼리가 작은 쇠사슬에 발이 묶여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코끼리가 새끼일 때 작은 쇠사슬에 묶여 훈련을 받았고, 그때 코끼리는 도망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인식은 평생 코끼리를 지배했고, 불가능이라는 인식이 각인된 코끼리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바로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함정이다.우리의 삶에도 그러한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과거의 실패가 각인돼 시도하면 할 수 있는 일에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시도조차 안하는 경우가 있고,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 어떠한 소문을 듣고, 혹은 일부의 사례만을 전해 듣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의식 속에 맹신하게 되고 고정관념으로 굳어져버린 것이다.입증된 것도 자신이 경험한 사실도 아니면서 선입견과 편견,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것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거짓이거나 진실인 것처럼 뒤섞여 혼재되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정관념이 주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음의 중요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위기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고정관념은 문제없던 사람을 한순간에 형편없는 문제아로 만들기도 하고, 그것을 꽤 오랜 시간 지속시키기도 한다.같은 맥락으로 예술가들 고민의 공통점은 고정관념의 탈피에 있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초연하는 날,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이제까지 듣던 아름다운 선율과는 다른 무용수의 기괴한 움직임과 작품 스타일 때문이었다. 현대음악 작곡가인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아무 소리가 없이 시간이 흐르는데, 음악은 꼭 소리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벗어났기에 사람들의 야유를 받았다.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들의 예술을 보기 위하여 공연장을 찾고, 그 작품들은 후학들에게 예술의 표본이 되었다. 협화음들의 아름다운 소리만이 음악의 전부였던 시절이 지나고 불협화음의 등장이 존재하는 현대음악, 더 나아가 현대 예술이 지금처럼 성행하게 된 것은 고정관념의 탈피가 만들어낸 성과이고, 그것이 곧 새로운 길의 탄생이기도 하다.이것은 곧 우리의 삶에서도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야할 앞으로의 모든 시간들 속에 고정관념으로의 탈피는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만나게 될 예술을 포함한 세상에서의 모든 새로움을 열어주는 지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정관념의 탈피는 여러분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줄 것이다.

2020-04-16 13:48:25

[매일춘추] 군(君)과 꾼

[매일춘추] 군(君)과 꾼

제21대 국회의원 총선이 끝났다. 역대 최고 투표율의 사전투표 기록을 남겼다. 무려 26.69%로 지난 20대 총선 사전투표율이었던 12.2%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 2014년 지방선거에 사전투표가 처음으로 도입된 이래 최고치다.여기서 주목할 건 대구광역시가 17개 권역 중에서 가장 낮은 23.6%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가장 주목을 받아왔고, 국가에서 코로나19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이니, 투표소에서 감염을 우려한 탓일 수도 있다.이유야 어떻든 정치적인 요소들이 각종 지원 제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되어 왔는지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출산장려금만 해도 편차가 두드러진다. 이 모든 것들의 기준이 되는 것이 총선이고 대선이다. 정치적 인사들의 역량과 국가의 정치적 사안의 가중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임기 내 국내 정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만큼 힘든 시기에 그만큼 중요한 선거가 어제 끝난 것이다. 참정권은 행사할 때에만 유효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덕이 뛰어난 임금을 성군(聖君)이라 부른다. 여기서 군(君)은 임금을 뜻한다. 그 외에도 여러 의미로 쓰이다가 후에 친구나 아랫사람을 부르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시류(時流)에 따라 한자의 뜻도 다양하게 변해왔지만, 근본은 하나다. 君자는 尹(다스릴 윤)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尹은 지팡이 내지는 지휘봉 같은 모양을 뜻하는 형성문자다.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분명한 건 하늘의 뜻을 전하는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것이 정설임에는 큰 이견이 없다. 흔히 현재의 대통령을 과거의 임금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엄연히 다르다.임금은 백성은 물론이고 하늘의 뜻을 대변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거기에 비해 대통령은 삼권(三權) 중 하나인 행정부의 수반일 뿐이다. 물론 최고의 통치권자인 국가 원수가 할 수 있는 역량과 권한이야 가공할 만하겠으나, 국민들로부터 탄핵을 받을 수도 있는 자리임은 분명하다.그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뽑는 일이 이번 4.15총선이었으니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던가. 이번 짧은 유세기간 동안 코로나19로 인한 열악한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했을 각 총선 후보자들의 노고와 국민들의 투표가 헛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당선자들은 혼자 옳다는 오만과 객기를 버리고,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인지하여 실천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정치를 하는 이들은 임기응변과 처세술에 능한 '꾼'이어서는 곤란하다.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사람, 즉 정치인이지, 정치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그래야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이번 당선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백성이 아니면 임금이 누구와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그래서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고 하는 것이다. 백성은 먹을 것이 아니면 살아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한다." (정조이산어록, 2008. 1. 25. 고전연구회 사암)

2020-04-16 06:30:00

[신세돈의 새론새평] 국가적 외환위기에 대비한 비상 대책

[신세돈의 새론새평] 국가적 외환위기에 대비한 비상 대책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벌어진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 및 외환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주가가 폭락하고 국채시장도 급격하게 가격이 흔들리고 있다. 비교적 환율은 안정적이지만 그것도 마냥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의 특징은 전 세계적으로 금융시장과 실물시장의 충격이 빠르게 번진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의 파급도 빠르지만 소위 서플라이 체인이라는 공급망의 국가적 연결 때문에 한 나라의 부품 공급이 막히면 전 세계적으로 생산에 차질이 생기게끔 되어 있다.이런 코로나 영향에 따른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한국의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은 계속해서 불안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유통, 관광, 항공 등 서비스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큰 까닭에 만약 이들 기업의 경영 악화와 이로 인하여 재무건전성이 흔들리게 되면 순식간에 회사채 시장 불안으로 번질 가능성도 높다.우리나라는 금융시장, 특히 외환시장이 취약하다. 1997년과 2008년 외환위기에서 봤듯이 겉으로는 튼튼한 것 같아도 실제로는 매우 취약한 것이 한국의 외환시장이다. 이것은 장부상의 외환보유액과 실제 가동할 수 있는 외환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장부상으로는 자산이라고 되어 있어도 실제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현금화할 수 없거나 장부 가치와 실제 가치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경우 그런 일이 발생한다. 이는 국가적으로 외환 관리가 매우 허술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안전성을 강화해야 할 외환보유액을 수익성을 위주로 운용하게 되면 외부적인 충격에 따라 자산 가치가 심하게 출렁거리게 되어 막상 급할 때에는 대규모 손실을 입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다시 1997년 IMF 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외환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외환 당국은 반드시 다음 사항을 지켜야 할 것이다.첫째로, 정부 당국과 전문가 그룹이 함께 참여하는 '외환시장 위기비상대책기구'를 가동해야 한다. 여기에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물론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증권업협회, 은행연합회, 보험업협회, 외국인투자가 등 민간금융 자본시장 대표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이 기구에서는 외환시장의 동향을 시간 단위로 모니터링하고 특히 투기 세력의 투기적 외환 거래를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환율의 안정화를 유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의 교란에 대한 엄중한 관리가 있어야 한다.그다음으로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의 유동성을 점검하고 확충해야 한다. 현재 약 50% 수준으로 알려진 회사채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미국과 독일의 국채 비중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외환보유액의 관리 기준을 수익률 중심에서 안전성 중심으로 조정하고 현금과 예금의 유동성 비중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외환 당국의 자산 운용 비중을 높이고 대신 민간 운용사의 운용 비중을 낮추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외환보유액의 운용 성과를 평가 분석하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셋째로는 외환 당국 외에 시중 금융기관과 민간기업, 개인들의 외환보유액을 충실하게 쌓아 제2선 외환 유동성을 관리해야 한다. 민간은행과 기업의 외환보유를 권장하고 이와 함께 이들 민간 부문의 해외 자산 및 부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상시 관리해야 한다. 이들의 외환보유액은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당국의 제1선 외환보유액과 함께 외환 위기를 막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넷째로 정책 당국은 외환시장 응급상황 발생 시 발동할 긴급 대책을 단계별로 사전에 공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당국의 철저한 대비책을 보고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게 되어 외환시장과 환율시장의 안정이 담보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끝으로 다른 나라, 특히 일본과의 외환 스와프를 확대하고 기존 계약 국가와의 스와프 계약도 확대하거나 계약 기간을 연장하도록 추진해야 한다.

2020-04-15 19: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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