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대구시 대명시장에 남구청, 더불어민주당 동물복지위원회, 캣맘이 협력하여 길고양이 급식소가 마련되었다. 지자체가 길고양이 급식소를 지지하는 모범적인 사례이며 캣맘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 개선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길고양이 민원, 해결책은?

국회에는 길고양이 급식소가 비치돼있다. 국회의원들과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캣맘·캣대디를 자처하며 길고양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서울시는 '동물공존도시'를 선포했다. 동물은 배척 대상이 아니며 시민들과 조화롭게 공존하여야 할 가치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청 시민건강국 동물보호과에는 40여명의 전담 공무원들이 시민 서포터즈와 함께 다양한 아이디어를 개발하면서 동물 보호와 입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대구시도 이러한 취지를 이해하고 2018년 대구를 '동물공존도시'로 선언했다. 신천 수달보호, 대구대공원 내 반려견테마파크와 달성공원 동물원 이전 등 굵직한 동물 보호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유기동물구조사업과 길고양이 TNR사업 등의 예산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 미래의 과시적인 플랜에 비해 현실적인 실천은 부족한 것이다. 대구시 동물보호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4명 정도의 팀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대구시의 의지를 의심하게 된다.지난주 남구청과 민주당 동물복지위원회(임미연 위원장)가 협력하여 제작한 길고양이 급식소가 대명시장 내 캣맘에게 전달되었다. 지자체가 캣맘을 지원하는 바람직한 사례였다. 주민들은 남구청이 마련한 급식소 안내문을 통해 길고양이 급식소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특히 대명시장에 위치한 길고양이 급식소는 주민들의 왕래가 잦은 특성을 감안하면 고양이의 건강 관리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대구시수의사회의 협조로 길고양이에 대한 예방접종과 구충약을 처방하고 긴급 구난 시 처치할 수 있는 구급약품 상자를 캣맘에게 지원할 수 있었다.길고양이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와 그 문제를 해결 대안을 알아보자.길고양이는 주민들에게 어떤 피해를 끼치고 있을까? 쓰레기봉투를 헤집는다거나 울음소리가 듣기에 불쾌하기도 하며, 사나운 고양이가 갑자기 공격을 할까 두려워하는 주민도 있다.그렇다면 이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서울시 강동구는 고양이 급식소를 모범적으로 정착시킨 지자체로 평가된다. 현재 강동구는 80곳 이상의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 통장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주민들의 민원 문제가 확연히 줄었다고 한다.길고양이 급식소가 민원 문제를 해소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먹이가 부족하면 길고양이는 생존 경쟁을 하며 사나워진다. 부족한 먹이를 구하려 쓰레기봉투를 헤집으며 주변 고양이들과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길고양이 급식소를 마련하면 길고양이는 급식소를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되며 경쟁이 사라지면서 유순해진다. 급식소가 정착된 골목일수록 길고양이가 쓰레기 봉투를 헤집거나 울부짖음이 현저히 줄어든다. 그리고 순한 길고양이라면 입양이 될 가능성도 높다.길고양이 급식소를 통해 길고양이 개체수도 조절할 수 있다. 길고양이 개체수를 감소시키는 인도주의적인 대책은 중성화수술 'TNR(중성화 수술 후 원래의 서식지로 방사하기) 사업'이다.서울시는 2014년부터 4년 동안 TNR사업을 중점 지원한 결과 서울의 길고양이 개체 수가 20만마리에서 14만 마리로 확연히 줄어들었다. 급식소를 찾아오는 길고양이들의 개체 수와 건강 상태는 캣맘이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캣맘들에 의해 TNR사업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예산 낭비를 줄일수록 더 많은 길고양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을 수 있다.길고양이 급식소는 동물공존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서울시는 길고양이 급식소를 동물과의 공존을 실천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캣맘들과의 협력을 통해 도움이 절실한 길고양이들에게 응급의료를 지원하고, 더 많은 유기동물들이 입양될 수 있도록 유기동물입양센터를 운영해 1년 간의 동물의료보험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 동물과 공존하는 문화는 미디어와 기업 마케팅에도 자주 등장하는 등 시대정신으로 확산되고 있다.길고양이 급식소의 긍정적인 역할과 캣맘들의 희생에도 일부 시민들은 캣맘들을 싫어한다. 이러한 편견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 탓에 길고양이가 더 많아진다는 막연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실제로 길고양이 개체수가 폭증한 이유는 고양이가 배회하는 것을 방조하고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소홀히 여기는 관습 때문이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서울시는 동물보호와 동물공존을 위한 시민 아이디어를 공모하며 동물보호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격려하고 있다. 대구시도 캣맘들이 봉사하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길고양이 민원을 더 이상 캣맘과 주민 간의 갈등으로 치부하여서는 안 된다.남구청이 길고양이 급식소를 소개한 안내문은 시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갈등을 해소시키고 있다. 작은 사례이지만 대구시의 귀감이 되어주길 희망하며 소개드린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12-25 06:30:00

이정호 변호사

[경제 칼럼] 규제 완화보다 적극행정이 더 중요하다

최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미중, 한일 무역 갈등이라는 환경적 어려움 속에서 고군분투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를 보낸 듯하다. 총선 일정까지 기다리는 새해를 목전에 두니, 정부는 신년의 경제정책 자료들도 때맞춰 배포하고 있다.각 부처별 정책 방향에서 역시 눈에 띄는 것은 규제를 완화하고 중소 상공인이나 미진한 산업 분야의 진흥을 위한 지원 방안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려는 것이다.그런데 이에 관한 세간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정책이나 개선안이 미흡한 탓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규제 철폐나 완화에 관한 제도나 정책보다 이를 실행하려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에 대한 불신이 큰 탓이리라.사실 정책 당국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폐해는 관료주의와 보신주의에 입각하여 법에서 위임한 재량조차도 충실히 행사하지 않으려는 자세에 있다. 기업 활동에서 인허가라는 거대한 장벽에 좌절해 본 기업가라면 그 문제점을 절감해 보았을 것이다.해당 기업의 관점뿐만 아니라 공공 측면에서도 절실히 필요한 행정처분이 오로지 처분 후 생겨날 반대 당사자들의 민원 때문에 폐기되고 만다.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을 들지만 더 결정적 동기는 민원 후 발생할 담당자의 부정적 인사고과 때문이라는 건 알 사람은 다 안다.따라서 법령과 제도를 구비해 놓고서도 현장의 담당자가 걸쇠를 잠그고 복지부동한다면 전부 무용지물이다. 신기술이나 신산업 분야에 규제 샌드박스를 만들어 신기술 등의 초기 실현이 가능하도록 해 놓고서도 정작 산업에 편입된 뒤 종전처럼 감독의 장벽을 쳐 버리면 아예 나서지 않은 것보다 못한 지점에 봉착할 수 있다. 지자체의 소극적 인허가 판단 원칙 때문에 2000년 이전에 시작된 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무려 20년이 넘도록 방치되는 수도권 내 사례도 있다.결국 규제 완화의 원론적 대책이 경제성장의 실질 동력으로 기능하려면 일선 공무원이 규제 관련 법령의 집행 단계에서 소신껏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른바 적극행정을 지원하고 배려할 수 있는 장치가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다.감사원에서 적극행정 면책 제도를 도입한 지는 꽤 되었으나 정작 공무원의 소신 행정을 충실히 뒷받침하고 규제 완화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지자체별로 관련 조례를 제정하여 적극행정의 면책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경우도 생겨나고는 있으나 징계 면책을 위한 형식적 기준을 정한 수준에 불과하다.적극행정은 단순히 공무원의 업무 충실도와 적극성을 높여주고 쌓인 민원을 해소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작금과 같이 경제성장의 정체 구간에서는 기업가에게 활로를 열어주고 실질적 규제 완화 장치가 된다. 적극행정을 실행한 공무원에 대한 징계 면책이나 포상 판단을 위하여 다방면의 전문가를 포함시킨 국민배심제 같은 기구의 설치도 고려할 만하다.행정의 과오는 해악이나, 더 나은 행정을 시도조차 안 하는 것은 더 큰 해악이다. 적극행정은 행정의 질을 높이고 기업가의 활동을 윤택하게 하는 행정의 기본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차원은 다르지만, 사법부가 무죄 선고에 다소 소극적이고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제도를 과하게 적용하여 재판의 진입 장벽을 치는 태도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마침 한·중·일 3국 정상의 만남의 장이 열렸다. 월나라 구천을 보필한 범려와 같이 지혜로운 자가 정상을 지원하게 되고, 세 정상 간 현명한 대화로 지난해 쌓였던 갈등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동시에 밝은 새해 경제 청사진이 그려지길 희망한다.

2019-12-24 18:15:27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성탄절

군고구마와 붕어빵과 눈사람이 있어도 어디 크리스마스만 하겠어요. 예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낸 지도, 받은 지도 오래 되었네요. 누구에게나 성탄절에 얽힌 추억은 있겠지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렸던 기억도 있겠지요? 볼이 어는 줄도 모르는 연인들이 거닐던 어느 거리, 거리를 지날 때 마다 땡땡땡 울리던 자선냄비 종소리와 수많은 캐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어느 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었을까요?'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서 온/ 서양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개비처럼'(김종삼, '북치는 소년' 전문) 진눈개비를 따라 하늘로 떠난 시인이 있지요. 눈은 오지 않는데 눈만 퉁퉁 부은 시인의 딸은 몹시 아팠죠. 고독한 향내가 열이 나는 이마를 짚어 주었어요. 차가운 시래기국을 벌컥벌컥 마시던 먼 친척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장례식장 조화가 몇 개인지 세어 봐요. 조화하나의 추억과 조화하나의 인연과 조화하나의 시간들, 먼저 도착한 조화가 조문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눈은 오지 않고 눈만 멀뚱멀뚱 하구요.'가난한 아희'를 위한 자선냄비는 1891년 성탄절을 앞두고 미국 구세군 사관이었던 조세프 맥피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요. 구세군의 냄비도 처음엔 솥 모양이었다가 냄비 모양이 되고, 뚜껑이 생기기도 하며 세월에 따라 계속 변하게 되었죠.지난해 성탄절날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박노해의 '그 겨울의 시' 일부를 올렸어요.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혼자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춥고 힘든 가난에도 불구하고 성탄절은 설레임의 연속이에요. 저물어 가는 한 해의 충만함, 이즈음의 충만은 소멸해 가는 것의 위로에서 오는 것 같아요.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기다리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들으면 없는 추억도 되살아나죠. 소소한 약속과 사소한 선물도 기다려요. 아, 사랑하는 사람들(아이/부모님/ 친구/이웃)이 함께 꺼내 볼 수 있도록, 기다림으로 목이 더 늘어난 양말 속에 새로운 추억 하나 넣어 보면 어떨까요?연인이든 가족이든, 사랑이라는 단어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동원해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모쪼록 글이 되기를 바라며 써 내려갔던 저의 '춘추'를 읽느라 수고로우셨던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매일춘추 안에서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어 매일매일 행복하였어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2-24 11:23:49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새론새평] 배로(Barro) 교수의 충격, 소득주도 빈곤정책

문재인 정부 2년 하위 40% 계층 소득변동 없거나 되레 줄어 불평등 심화과도한 복지 지출'단기 일자리 정책과거 기적 일군 성장 실적 다 까먹어'소득주도 빈곤정책'(income-led poverty)!며칠 전 로버트 배로(Robert Barro) 하버드대학 경제학 교수는 작금의 한국 경제정책을 그렇게 혹평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과거의 성공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서운 얘기다. 평소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국내 교수가 그런 얘기를 한다면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겠지만 배로 교수라면 다르다. 그의 말이 맞기도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전에 볼 수 없던 어두운 불황의 그림자 같아서 그렇다. 어딜 가나 널려 있는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빈 가게, 썰렁한 유흥가와 텅 빈 도심 번화가는 유령처럼 오싹하다.경제통계는 거짓이 없다. 명목 경제성장률은 2017년 3분기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부터 계속 떨어졌다. 2017년 3분기 7.8%에서 2018년 3분기 2.3%, 그리고 2019년 3분기에는 0.4%로 추락했다. 가계소득은 같은 기간 동안 454만원에서 488만원으로 34만원(7.5%) 증가했다지만 세금 등을 빼고 계산한 가처분소득은 367만원에서 374만원으로 7만원 증가에 그쳤다. 그나마 최상위층 소득이 늘어서 그렇지 최저 20% 소득계층에서는 가처분소득이 112만원에서 103만원으로 오히려 9만원 줄었다. 차하위계층도 2년 동안 소득 변동 없이 같았다. 문 정부 들어 2년 동안 하위 40% 계층 국민의 소득은 줄거나 변동이 없다는 말이다. 소득주도 빈곤정책이라는 말은 이것 때문이다.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은 판이하게 달랐다. 최근 취업자 수가 4개월 연속 30만 명 이상 증가했고 고용률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했다. 또 청년고용률과 실업률도 크게 개선됐으며 상용직 취업자가 60만 명 가까이 늘고 고용보험 수혜자도 대폭 늘었으니 고용의 질도 크게 향상됐다고 했다. 또 3분기에는 최하위 20% 계층 소득 증가 폭이 확대되는 등 모든 분위에서 가계소득이 늘었고, 5분위 배율 개선으로 소득불평등이 심화하는 일반적 추세가 반전되는 등 매우 의미 있는 변화라고 했다.11월 취업자 수 증가 39만 명은 60세 이상 고령자의 취업 증가 41만 명을 빼면 감소다. 상용직이 59만 명 늘었다지만 주 35시간 미만 근로자 수가 64만 명 늘었다. 제조업 취업자는 20개월, 도소매업 취업자는 지난 24개월 중 23개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2개월째 감소했다. 심지어 정부가 주도하여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공공행정 부문에서도 8개월째 연속하여 취업자가 감소하고 있다. 가계소득이 늘었다는 것도 직전 분기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지난 2년을 놓고 보면 감소하거나 별반 늘어난 것이 없다.배로 교수는 이 모든 어려움의 근원이 포퓰리즘 정책(populist policies) 때문이라고 했다. 포퓰리즘이라고 해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특정 계층, 즉 노조가 결성되어 있고 직업 안정성이 높은 고소득 근로자 계층을 위한 포퓰리즘이었던 셈이다.비슷한 경제 구조를 가진 아시아 여러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수출 부진은 크게 나쁘지 않다고 했다. 콕 찍어서 최저임금 급상승, 주 52시간 제한, 소득세 및 법인세 인상, 그리고 과도한 복지 지출과 임시방편용 단기일자리 정책을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정책들이 투자를 크게 위축시키면서 일자리와 소득을 동시에 떨어뜨려 과거 기적과 같은 성장 실적을 다 까먹는다고 경고했다.설비투자는 6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다. 6분기 연속 설비투자 감소는 지난 1960년 이후 딱 세 번 있었다. 2차 석유파동과 박정희 대통령 시해가 있었던 1979년 4분기부터 6분기와 IMF 위기가 있었던 1997년 3분기 이후 6분기가 그것이다.만약 금년 4분기마저 설비투자가 감소한다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 기간의 설비투자 감소가 된다. 10월까지 산업활동 동향 통계로 보면 이번 4분기 설비투자도 감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투자가 무너지면 경제는 오랫동안 살아나기 매우 힘들다. 정부 정책도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전혀 없고 세계 경제도 더 밝아질 것 같지 않다. 소득주도 빈곤 터널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2019-12-24 11:19:40

화로

[세월의 흔적] 빙∼둘러앉아 군고구마 '호호'…화로

옛이야기 한 토막을 풀어놓는다. 겨울바람이 쌩~쌩 불던 어느 날 고모 댁에 갔었다. 얼마 남지 않은 화롯불을 아낌없이 활짝 헤쳐 주셨다. 한숨을 돌리고 나자 화롯전에 얹어놓은 군고구마를 손에 쥐어주면서 "추울 터인데 어한이나 하라"며 다독여 주셨다. 어린 나를 화롯불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주던 인정 많은 분이었는데, 오래전 고인이 되셨다. 하지만 그 훈기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지금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지만, 우리네 세간 가운데 화로라는 게 있었다. 숯불을 담아 놓고 평상시에는 음식을 데우거나 끓이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또한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 사용하는 불씨를 보관하던 용도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옷을 지을 때 마무리에 쓰이는 인두를 꽂아 사용하였다. 그런가 하면 불씨가 집안의 재운을 좌우한다고 믿어서, 불씨가 담긴 화로를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대대로 물려주기도 하였다.화로는 상하 계층이나 빈부의 차이 없이 두루 쓰이던 살림살이 가운데 하나였다. 오지․무쇠․놋쇠․곱돌 따위로 만드는데, 형태 또한 여러 가지가 있다. 차를 달이는 것, 보온을 위한 것, 난방을 위한 것, 불씨를 보존하는 것, 여행할 때 가마 안에서 쓰던 수로(手爐) 따위로 나눌 수 있으나 몇 가지 구실을 함께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불고무래․부등가리․삼발이․불돌․부삽․부젓가락 같은 보조기구를 갖춰야 제구실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화로에 담는 숯불은 저녁나절 아궁이에 군불을 지필 때 준비하였다. 그 가운데 농가에서 주로 쓰던 질화로는 자배기를 닮아서 둥글넓적하고, 아가리가 쩍 벌어졌으며, 좌우 양쪽에 손잡이가 있으나 받침은 달리지 않았다. 이에 비하여 무쇠화로는 질화로와 형태가 비슷하나 손잡이가 밖으로 돌출되고 바닥에 발이 셋 달렸다. 그리고 상류층에서 많이 쓰던 놋쇠화로는 너른 전이 달리고, 다리의 윗부분은 개다리처럼 앞으로 조금 돌출된 게 특징이다. 또한 돌화로는 네모꼴을 이루며 둥근 쇠를 좌우 양쪽에 꿰어서 손잡이로 삼았다.화로가 만들어 주는 생활 속 풍정 한 장면.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화롯전에 앉으면 으레 부젓가락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서 불을 달달 볶아서 지레 죽여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넓적한 불손으로 재를 모아 맵시 있게 불을 묻어주는 무던한 사람이 있고, 온종일 화롯가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몸을 좌우로 점잖게 저으며 벽만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더러는 담배꽁초를 차례차례로 화롯전에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은연중에 제 버릇을 드러내는 셈인데, 그 사람의 성품을 짐작해 볼 수 있다.화롯가에 바짝 붙어 앉았다가 어지러워 쩔쩔매는 경우가 있다. 불기운에 취해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럴 때는 시원한 김칫국물에 냉수를 타거나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 마시면 단숨에 후련해진다. 그런가 하면 상류 가정에서 주인이 아랫목에 앉아 손님을 맞을 때는 화로를 손님 가까이 옮겨주는 것을 예의로 삼았다. 민서들도 화로를 연장자나 손님 곁으로 밀어주면서 정을 나누었다. 사람살이에 훈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12-23 19:55:02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현대판 '사사오입'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완전이든 불완전이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주장이 발단이다. 등가성이니 비례성이니 하는 수학적 표현이 동원된다. 사표도 방지할 수 있단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좋은 제도를 왜 다른 선거에는 적용하지 않는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신을 살려 대통령 선거와 광역단체장 선거에도 적용해 보자. 대통령, 광역, 기초 단체장 임기를 득표율에 따라 나눠준다. 완전연동형 비례라면 한달 두달짜리 대통령이 탄생한다. 임기를 나누지 말고 자리를 나누면 어떨까? 1위 대통령, 2위 국무총리, 3위 국정원장, 4위 대통령 비서실장, 각료도 득표율에 따라 배정한다. 군소정당도 득표율에 따라 국정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선, 지방선거에는 적용하지 않나?논리적, 현실적 흠결 투성이기 때문이다.표의 등가성이 중요하다면서 왜 의석의 등가성은 무시하는가? 100석 거대 정당은 국정 참여가 철저히 봉쇄되고, 10석 정당은 장관의 생사를 좌우한다. 석패율? YS, DJ를 마지막으로 정치인이 선거 떨어졌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권 챙길 가족 친구나 아쉽지.선거제도와 정치과정은 간단 단순 명료해야 한다. 전원 지역구 의원인 영국과 미국은 200년 이상 민주주의 선진국 지위를 유지해 왔다. 두 나라만 독재 정권이 없었다. 한국에서 유신 때 비례대표 의원이 가장 많았고, 5공 때 군소정당이 국회에 가장 많이 진출했다. 비례대표의 계산식은, 국민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고, '여권 정당' 대표가 말했다 한다.정치는 수의 '예술'이지 '수학'이 아니다. 정치에 수학적 엄밀성을 적용한 결과가 사사오입 개헌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1세기판 사사오입이다.

2019-12-23 18:30:00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동이불화(同而不和)-화합에 대하여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양념이 중요하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을 오미(五味)라 하고, 다섯 가지 맛을 골고루 느낄 수 있는 음식을 최고로 여겼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음악은 다양한 음(音)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 안자(晏子)가 경공(景公) 임금에게 화합(和)과 획일(同)을 쉽게 구별하여 설명하는 이야기가 '안자춘추'(晏子春秋) 외편(外篇)에 있다. 또 후에 '논어' 자로(子路) 편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요,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로다"는 기술이 있다. 군자는 서로 다름을 존중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지만, 소인은 똑같기만을 고집해 도리어 불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공동체(共同體)라는 한자어에서 중요한 것은 같을 동(同) 자가 아니라 더불어 공(共) 자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데에는 동이불화가 아니라 화이부동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근대 국민 국가가 만들어낸 같음을 강조하는 획일성의 사고 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2019년의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동이불화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북한과의 관계는 교착 상태에 있고 대한민국 내부도 네편 내편으로 나뉘어 갈등이 심하다. 자기 진영의 논리만 강조하고 상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여당과 야당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 오직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따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보수와 진보로 나뉜 국민들 또한 상대의 논리에 귀 막은 채 자신들의 주장이 정의인 양 상대방의 주장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외국인에 대한 차별도 잦아들지 않고, 외국인 결혼이주 여성들에 대한 편견도 끊이지 않는다. 내년 쥐띠 해(庚子年)는 다름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가 되는 화이부동의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안자와 공자를 흉내 내는 사상의 사치가 아니라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동체의 삶을 위해서이다.

2019-12-23 18:30:00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대구에서 창업해야 하는 이유

12월만큼 차가운 불경기다. 동성로를 걷고 있으면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다. 목 좋은 자리에도 가게들이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 동성로는 다음 가게의 임차가 매우 빠른 곳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여전히 '임대' 전단이 간절하게 붙어 있다. 단순히 불경기인 탓일까? 혹시나 필자의 주관성이 관여한 걱정일까 봐 통계를 찾아봤다.대구의 거리가 왜 이렇게 조용해진 걸까? 동북지방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대구경북을 떠난 순 유출 인구는 2만2천153명이라고 한다. 매주 이틀 정도 서울 출장을 다니는 필자는 이 통계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서울은 어느 지역을 가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다닌다. 카페엔 비즈니스 얘기를 하는 손님들도 북새통이다.돈이 도는 곳에 사람이 돈다. 돈은 사람의 피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생존본능이다. 필자가 대구에서 창업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구인이었다. 분명 이력서에는 대구 지역의 대학을 졸업한 친구였는데 전화를 해보면 서울에서 일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취업한 이유를 묻자 무서운 대답이 돌아왔다."대구에서 5년 일한 것보다 서울에서 3년 일한 걸 더 큰 경력으로 쳐줍니다." 첫 구인활동에서 이런 일을 겪으니 대구에서 창업이 녹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서 고생을 자처했다. 무료 광고 아카데미를 열어서 대구의 대학생들을 가르쳤다. 서울에는 이런 광고 아카데미가 많지만 대부분 유료이다.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은 죄(?)로 한 번 서울서 교육을 받으려 하면 20만~30만원은 그냥 써야 할 판이였다.남들은 무료 아카데미에 대해 공익적인 활동이라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물론 그런 의도도 있지만 고백하자면 지역에서 창업하고 설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컸었다. 공부하는 곳은 대구지만 돈 벌러 가는 곳은 서울이라면 지역 기업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물론 아카데미 수료생 1기 학생들은 대부분 서울에 취업했다. 서울 출장 때 만난 수료생은 "소장님, 저는 이번 달에 20만원 저축하는 게 목표에요"라는 슬픈 다짐을 말했다. 서울에서 월세, 생활비를 내고 나면 박봉일 것일 뻔한 초봉 급여가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이 칼럼의 제목을 대구에서 창업해야 하는 이유라고 쓴 건 그것이 더 균형 잡힌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경제 생태계는 몹시 불균형하다. 서울은 비만이고 지역은 말라비틀어지고 있다. 물론 지역의 불리한 판을 뒤집는 건 쉽지 않다. 당신이 서울이 아닌 대구에서 창업한다면 몇 배로 더 뛰어다녀야 한다. 더 고생해야 한다. 필자 역시 지역에 기반을 둔 활동을 펼치다 보니 망할 위기를 많이 겪었다.하지만 그 시간을 버티니 대구에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다른 지역에서 광고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천시교육청부터 제주지방경찰청까지 일주일의 일정이 타지 출장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대구에서 창업 후 쌓아온 포트폴리오가 다른 지역에 진출할 때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사업이 지역에 국한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더 큰 비즈니스를 꿈꾸게 되었다. 바로 지역 구분이 없는 온라인 사업의 진출이다.온라인 광고 백화점을 만들어 자고 있을 때도 광고가 팔리는 구조를 꿈꾸고 있다.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말이다. 지역에서 창업하라는 말은 무수한 리스크를 안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리스크가 없는 곳엔 열매도 없다. 지역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성공할 수 없다면 서울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한계를 느끼고 생존을 고민하라. 그때 그 기업의 진정한 가치가 발휘된다.

2019-12-23 18:30:00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과학둘레] 시간의 상대성을 찾아서

구순이 다 되어가는 시어른께서는 하루가 무척 길다 한다. 그런데 세월은 너무 빠르다고. 하루가 후다닥 지나가는 필자에게도 세월은 쏜살같다. 하루하루는 책장을 넘기듯 휙휙 넘어가고 한 해는 중간중간 읽다가 걸리고 마는 총 365페이지로 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기분이다. 시간의 지표가 되는 시계는 정확히 째깍거리는데 시간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얼까.시간이 절대적이 아님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다. 그에 의하면 시간은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르게 느끼는 물리량이다. 예를 들어 빛이 위아래로 수직운동을 하는 빛 시계를 가진 한 사람이 기차역에 서 있고 같은 종류의 시계를 가진 다른 사람이 안이 들여다보이는 투명기차를 타고 일정 속도로 가는 상황이라면, 서 있는 사람이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의 빛 시계를 볼 때 상대방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는 기차가 움직이기 때문에 기차 안의 빛이 비스듬히 이동해 더 먼 거리를 가는 것으로 보여서다. 속도는 시간당 이동 거리를 말한다. 빛의 속도가 초당 30만㎞로 불변이라면 빛의 이동거리가 늘어날 때 시간도 늘어난다. 즉 시간이 느리게 간다. 서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움직이는 행위로 시간의 상대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느려지는 현상은 그가 빛의 속도로 근접해 등속운동을 할 때 확실한 차이를 나타낸다. 기껏해야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최대 이동속도인 우리가 아인슈타인의 시간 지연 현상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빠르게도 혹은 느리게도 느끼는 우리의 내적 시간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상대적인 시간일 수 있다.시간은 더디 가나 세월은 빠르다는 시어른께서는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시다. 주로 창밖의 풍경으로만, TV 속 화면으로만 세상의 변화를 느낀다. 일상은 단조롭고 지루하다. 무료한 하루는 시간을 더디 가게 만들고 근자의 사건은 기억의 공간에서 희미하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느끼는 것은 정보 혹은 사건의 양이라고 한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 많으면 시간이 느리게 가고, 정보가 기억으로 편입되지 못하면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으로 느낀다. 세월이 화살 같다면 일상에서 기억할 만한 새로운 변화가 없는 건 아닌지 되짚어보아야 할 일이다.세월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시간에 대한 책을 쓴 슈테판 클라인은 그의 저서에서 그 원인을 효율성의 관점으로 풀어가고 있다. 유소년기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 경험하는 대부분이 기억에 저장될 수 있지만 그 시기를 지나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지면 일상의 평범한 경험은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달라졌다고 해서 기억 속에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은 두뇌의 효율성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도 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세월이 총알 같다는 느낌은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시간에 대한 철학을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형식으로 써 내려간 '모모'라는 소설이 있다. 작품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아무튼 모모에게 가보게!' 라는 말을 한다. 모모와 함께 있으면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되고,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성공과 꿈을 좇아 지치도록 일만 하는 시간의 노예로 돼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모모를 만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점차 성공과 부를 이뤄가지만 까닭 모를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꿈을 이루는 때라고 생각한다.아끼고, 아깝고, 낭비하고, 절약하고, 투자하고. 시간을 따라다니는 단어는 돈과도 함께 다닌다. 둘은 서로가 서로의 목표와 수단이 될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럼에도 회복이란 측면에서 보면 시간은 돈과 같을 수 없다. 잃어버린 시간. 그것은 어쩌면 더 가치로웠을 무언가를 다른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고 만 시간이다. 그것이 세월이 빠르다고 느끼게 만드는, 시간의 상대성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인 듯싶다.

2019-12-23 18:00:00

경북도 김장호 기획조정실장

[기고]변화와 혁신이 정답이다.

2019년 한 해 경상북도는 쉼 없이 달려왔다.지역의 인구 감소와 침체된 경기에 대해 그동안 사실 속수무책이었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이에 연초부터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와 혁신만이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다는 각오로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중심으로 도청부터 '변해야 산다'라는 슬로건 아래, 여러 가지 변화와 혁신을 추진했다.'배워야 산다'라며 매주 화요일 오전 7시 20분부터 전국의 최고 전문가를 초청해 특강과 토론을 통해 시대적인 트렌드를 배웠다. 침체된 조직에 활력과 창의성을 불어넣기 위해, 이제는 지역에서 꽤나 알려진 '해피댄스', '황톳길 걷기', '청춘데이' 등을 통해 공무원의 끼와 재능을 정책 개발과 연결시키고 있다.이러한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통해 이제 지역에서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경주에 '혁신원자력기술연구원'을 유치함으로써 1천여 명의 연구 인력이 유입되면 원자력 전 주기에 대한 클러스터를 구축하게 된다.포항의 '강소연구개발특구', '차세대배터리 규제자유특구', '가속기기반 신약클러스터', 구미의 1조원 이상의 '스마트산단' 조성, '홀로그램 기술개발' 예타사업 통과, '5G테스트베드' 국가사업 등도 유치, 경북의 새로운 산업지도와 기반을 조성하게 됐다.이러한 신산업 기반 구축을 바탕으로 LG화학, 에코프로, 포스코케미칼, ㈜베어링아트 등 미래산업을 주도할 굵직한 신소재 기업을 유치함으로써 청년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기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2019년에는 관광인프라 구축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양했다.한국의 9개 서원이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는데, 대구를 포함한 우리 지역이 5곳을 차지해 지역의 저력을 과시했다. 20여 년간 해결하지 못한 '신라왕경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왕경 복원사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에 버금가는 천 년의 수도로서 관광의 보고(寶庫)가 될 것이 확실하다.또한 최근에는 포항 영일만 관광특구 지정과 함께, 영일만항을 출발하는 크루즈선이 만선을 이루는 쾌거를 이뤄 앞으로 해양관광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이러한 도청의 변화와 혁신은 2020년 국비 예산 확보 분야에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연초부터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더 이상 TK 패싱이라는 말을 하지 말자. 실력이 없다라고 말하라"며 노력과 헌신을 주문했다.도지사부터 직접 국비 예산 확보를 위해 19년 한 해 동안 총 36회(한 달에 3회)에 걸쳐 청와대, 총리실, 기획재정부 등 관계관을 만나는 등 솔선수범을 보였다. 이러한 도지사부터 직원까지 전체가 똘똘 뭉쳐 '2020국비모아드림단'을 운영한 결과 정부 예산은 금년 대비 9.1% 증가한 반면에 경북의 국비 예산 확보는 금년 대비 21.1% 증가한 4조4천664억원 규모이다. 타 시도에서는 현안 건의사업뿐만 아니라 법령에 의해 자동적으로 지원되는 국비(예컨대 기초연금 등)까지 합산하기 때문에 그 기준에 따를 경우 경북도는 8조8천억원 규모로 경기도를 제외하고 전국 최고 수준이 된다.최근 도청 앞마당에는 공룡화석이 한 마리 설치되어 있다. 5천년 역사 마디마다 항상 발전의 중심에 서 왔던 경상북도가 변화와 혁신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청년들이 다시 경북으로 돌아오고 활력이 넘치는 지역을 우리 경북도민들이 확인할 때 도청 앞 공룡화석은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2019-12-23 13:06:06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아모르 파티

트로트 곡으로 만들어져 불리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노래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 중 하나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자'라는 뜻이다. 신세타령 하지 말고 타고난 운명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개척해 나가자는 말이다. 젊은 날, 한낱 '신은 죽었다(니체). 너도 죽었다(신). 너들 둘 다 죽었다(청소아줌마)'라는 화장실 낙서 유머에 등장하던 니체가 그렇게 심오하고도 난해한 철학자인 줄은 인문학에 본격적인 눈을 뜨고 부터이다.지난 40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소 판돈 훔쳐 무작정 상경해 성공을 했다는 정주영 회장의 신화를 벤치마킹 한답시고 대학도 진학 않고 뛰어든 사회생활, 참 만만찮았다. 시련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맨몸뚱이 하나로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일어서기를 반복한 오뚝이 같은 삶이었다. 시골에서는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지만 도시에 나오니 그저 흙수저 일 뿐이었다. 그러나 많은 좌절 속에서도 절망을 하지 않았던 것은, 긍정적인 성격으로 마음은 늘 부자였기 때문이다.필자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중앙계단 1층과 2층 사이 큰 게시판에는 울산조선소에서 만들었다는 26만 톤 대형 유조선 사진이 붙어 있었다. 공대 출신의 기술 선생님을 통해서 '현대'라는 회사와 '정주영'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정주영이 되었다. 알면 알수록 더욱 전설로 다가오는 진정한 영웅으로, 지금도 닮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분이 세운 자동차 회사에 부품을 운송하는 물류 운수업을 영위하고 있으니 꿈은 제대로 이룬 셈이다.영화 '사관과 신사'를 보면 혹독하게 교육시키던 흑인 교관이 마침내 장교로 임관한 주인공에게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흑인 교관은 부사관이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내 인생에도 나를 조련했던 교관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바로 '운명'이라는 교관이다. 운명은 정말 힘들게 했지만 나를 높은 곳에 세우려고 했던 과정이었다 생각을 하니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혹하였으되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줬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우리네 인생에서 삶의 무게라는 부하가 걸리면 주저앉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사람이 있다. 이는 의지력의 차이로 나타나는 결과다. 그 의지력은 긍정의 힘에서 비롯된다. 내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고 어떻게 키웠는데, 그걸 알면 절대 못난 자식이 될 수는 없다. 금수저 타령은 못난이나 하는 짓이다. 진짜 자존심 강한 사람은 공짜는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벌어야 내 돈인 것이다. 세상에 돈은 널려 있다. 노력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잘 나도 내 인생, 못 나도 내 인생 아니겠는가. 누가 내 인생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나는 나, 내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자. 아모르 파티!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2-23 13:02:36

이성환 계명대 교수

[세계의 창]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바람직한가

부탄 왕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예비선거에서 1, 2등을 한 정당이 본선거를 한다. 미국에서는 국민총투표에서는 지고 선거인단에서 다수를 확보해 당선되는 소수파 대통령(Minority President)이 가끔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도 소수파 대통령이다. 부탄의 본선거는 의회에서 다수당 확보를 위한 것이고, 미국이 소수파 대통령을 감수하는 것은 연방제 유지를 위해서이다. 이처럼 각국의 선거제도는 다양하다.현대 민주주의는 대표를 뽑아 그들에게 정치를 맡기는 대의정치이다. 대의정치는 민의가 잘 반영된 의회의 안정적 운영이 관건이다. 그런데 민의 반영과 안정적인 의회 운영은 양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자유론'으로 유명한 밀(J. S. Mill)은 '대의정치의 고찰'(1867)에서 민의의 반영을 중시한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다. 반면 배젓(W. Bagehot)은 정치학의 고전인 '영국 헌정론'(1861)에서 의회의 안정세력 확보를 위해서는 다수대표제인 소선구제가 바람직하다고 했다. 다수결로 운영되는 의회에서 과반 세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안정적인 의회 운영이 어렵고, 대의정치 자체가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현실론에 입각한 주장이다. 북유럽 등 의원내각제의 일부 소규모 국가에서는 전자를 중시해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미국 영국 등 많은 국가에서는 후자에 방점을 둔 소선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은 소선거구제에 비례대표제를 가미해 운영해왔다.최근 비례의 원리를 강화하기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이것이 국회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보다는 각 정파의 유불리가 쟁점이 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제도가 도입되면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의 출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국회는 의원내각제에서의 연합정권과 같은 형태로 이념이나 이해를 같이하는 세력들의 제휴를 통해 운영될 수밖에 없다.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데에는 비례성 강화와 함께 국회 운영에 대한 환경 변화가 있다. 의회 운영에는 다수파의 형성이 중요하나,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후 1988년부터 치러진 8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1당이 과반을 차지한 경우는 3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2, 3석으로 아슬아슬하게 과반을 넘겼다. 다양해진 국민들의 요구를 배경으로 한 군소정당의 출현으로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힘들게 된 것이다.이러한 불안정한 의석 분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의회의 운영을 어렵게 할 것이다. 국회에서 의사결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서 국회가 동물국회, 식물 국회라 비난받는 것도 이러한 현실적 요인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소선구제하에서 군소정당의 의석이 과소 대표되는 불합리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불합리를 고치자는 것이 선거제도 개혁의 명분이 되고 있으나, 거기에는 의석 분포의 불안정성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국회를 의원내각제의 연립정권 형태로 운영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국회를 의원내각제 형태로 운영할 경우, 그것이 다수대표제의 성격이 가장 강한 대통령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이에 대한 논의 없이 진행되는 연동제 도입은 국회와 행정부의 부조화를 더욱 강화할 우려가 있다.이번 선거제도 변경의 내용은 일본의 선거제도와 많이 닮았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한 선거구에서 2, 3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선거구제는 거대정당 자민당에 유리하고, 선거구가 넓고 같은 정당 후보자가 경쟁하는 탓에 비용이 많이 들어 정치부패의 온상이 되었다는 비판이 비등했다.정치 개혁의 일환으로 1991년에 시작된 선거제 변경은 정권이 3번 바뀌고 1993년 11월에야 확정되었다. 선거제도 변경의 험난함을 보여준다. 소선거구 289석과 비례대표 176석으로 구성되고, 비례대표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이중등록을 통한 석패율을 적용한다. 의회에서의 안정 세력 확보와 정권교체를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연동제는 채택하지 않고 소수당을 위해 비례대표를 대폭 도입한 것이다.일본과 한국의 큰 차이는 연동제 유무에 있다. 이번의 선거제도 개혁이 권력구조를 의원내각제로 바꾸려는 장기 구상을 내포한 것이 아니라면 연동제 도입은 좀 더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2019-12-23 11:33:50

비단에 담채, 31.5×43.3㎝, 간송미술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조영석(1686~1761) '현이도'

조선후기 사족(士族) 출신인 조영석의 그림이다. 호를 관아재(觀我齋)라고 했는데 '볼 관(觀)'은 천천히, 자세히 보는 것이다. '나를 살펴보는 집'이라는 인상적인 당호는 조영석이 자신의 집에 대해 지은 글인 「택기(宅記)」에 나온다. 조영석은 45세 때인 1730년 제천현감으로 있었는데 21살의 총명한 맏아들 중희(重希)를 전염병으로 갑자기 잃게 된다. 크게 상심해 사직서를 쓰고 서울로 돌아와 이듬해 북부 순화방의 인왕곡 실곡(實谷) 남쪽의 집 4채를 백금 150냥으로 구입해 두 형님과 조카 등 네 가구가 나란히 살게 된다. 이때 본채 남쪽에 기둥 5개짜리 4칸 집을 지어 서재로 삼고 자호한 '관아재' 현판을 달았다. 현판은 예술에 재능이 많았던 중희가 대자 예서로 써서 미리 판각해 두었던 것이다. 이 관아재를 한 동네 살던 이웃인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이 드나들며 30여년을 시와 그림으로 교유했다.그래서 친하게 지냈던 조영석과 겸재 정선, 그리고 정선의 제자 현재 심사정을 '사인명화(士人名畵) 삼재(三齋)'라고 했다는 말을 오세창 선생이 『근역서화징』 '조영석' 항목에 적어 놓았다. 관아재는 겸재나 현재만큼 그림을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인물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 이 소문을 들은 영조가 어진 그리는 일에 참여시키려고 두 번이나 불렀으나 선비로서 화사(畵師)의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며 두 번 다 집필(執筆)을 거절해 임금이 불러도 가지 않았던 견개불기(狷介不羈)한 성품, 조영석의 두 형이 모두 글씨로 이름났고 문벌이 훌륭한 집안이었던 점 등도 참작되어 삼재로 꼽혔을 것이다.'현이도(賢已圖)'는 자신도 그 구성원의 한 사람인 양반들의 놀이 장면을 그렸다. 평소 생활 속에서 그림거리를 찾아내 인물의 생김새며, 차림새가 당시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장기판의 등장인물은 모두 6명이다. 장기 알을 손에 쥔 대국 중인 두 사람 주변에 구경꾼이 셋 있고, 멀찍이 또 한 사람이 있는데 옆에 쌍육과 바둑이 있어 당시 고급 오락 세 가지가 나온다. 놀이도구 뿐 아니라 다양한 모자 구경도 풍속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외출할 때 쓰는 갓, 당나라 문인 백거이가 즐겨 썼던 낙천건(樂天巾), 평소 집에서 쓰는 탕건, 사방이 네모지고 위가 편평한 사방건(四方巾) 등이 나오고 맨머리인 총각도 그렸다.장기 두는 광경인데 제목을 '현이도'라고 한 것은 『논어』에서 공자가 "배불리 먹고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없으면 딱한 일이다. 바둑과 장기가 있지 않은가?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 아무 일도 안하는 것보다는 현명한 일이다"라고 한데서 취미생활을 현이(賢已)라고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간송미술관 특별전 '조선 회화 명품전'에 출품되었을 때 영어 제목은 '베터 댄 낫씽(Better than Nothing)'이었다. 미술사 연구자

2019-12-22 18:25:54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개혁으로 포장한 민심왜곡 선거법

탈선 위기에 놓인 선거법 개정안특정 정당 지지하는 국민 뜻 왜곡캡을 씌우느니 석패율제 하느니범여권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국민들은 산식을 몰라도 된다."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관해 한 말이다.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 연동형비례제 찬성론자들의 논리이다.'민심'이란 소박하게 말해 국민들의 뜻이다. 나의 한 표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게 민심일 것이다. 국민의 뜻이 제대로 형성되려면 선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민심 그대로를 반영하는 제도라고 하니 선거법에 대한 이해는 더 중요하다. 패스트트랙에 의해 본회의에 부의된 선거법 개정안에는 다음과 같은 '산식'이 포함되어 있다.연동배분의석수=[(국회의원 정수-의석 할당 정당이 추천하지 않은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인 수)×해당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 득표 비율-해당 정당의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인 수]÷2.이해가 되시는지? 명색이 법학자인 나도 이런 종류의 6개 수식이 포함된 선거법의 전체 구조를 알기 어렵다. 거기에 또 '권역별'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석패율'까지 도입하는 선거법이라니. '전문가'의 해설을 들어도 오리무중이긴 마찬가지다. '개혁'이라니까,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제도라니까 무조건 지지했던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한 번이라도 선거법 개정안을 읽어보면 '민심 그대로' 주장의 허구성을 알 수 있다. 물론 반론도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산식을 몰라도 된다. 정확한 계산은 컴퓨터가 하면 되니까. 국민은 그저 지지 후보나 정당에 한 표를 던지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다.'연동형' 선거법의 치명적 약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현재 선거제도에서 나의 한 표는 지지 후보의 당선에 기여할 수 있다. 내가 선호하는 정당에 던진 한 표는 그 당이 비례대표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연동형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은 정당 투표에서 아무리 많은 지지를 얻어도 비례대표는 한 석도 얻지 못할 수 있다. 지역구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될 의석을 이미 얻은 정당은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정당득표율과 전체 의석수가 '연동'된다는 뜻이 바로 그것이다. 특정 정당을 지지한 국민들의 뜻은 완전히 무시되고 오히려 민심을 엄청나게 왜곡하는 제도에 다름 아니다. 연동형이든 준연동형이든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그런 결과를 막으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넘어 의석을 늘리는 초과 의석을 인정해야 한다. 싸늘한 국민 여론을 알면서도 의원 수 증원을 떠 보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패스트트랙과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공조하던 민주당과 군소 정당들이 삐걱거리는 원인은 명확하다. 진짜 개혁이 아니라 당리당략에서 출발한 열차가 탈선에 직면한 것이다. 민주당은 선거법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처리에 마음이 있었다. 정의당과 여타 정당들은 자신들의 의석 늘리기라는 의도를 감추고 왜곡된 선거제를 개혁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진정한 개혁 법안이라면 자신들의 유불리를 떠나 국민 앞에 당당하게 대의명분을 설득해야 한다.선거가 코앞에 다가오자 지역구 225, 비례대표 75에서 각각 250, 50으로 후퇴했다. 캡을 씌우느니, 석패율 제도를 하느니 마느니 볼썽사나운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250+50은 현재와 거의 차이가 없다. 동물국회, 장외투쟁, 예산안 편법 처리, 국회 점거 투쟁. 모든 일의 단초가 무리한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와서 보니 거의 1년여 정치를 실종시킨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선거법과 맞바꾸려 한 공수처 설치 역시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 때문이 아니라 현재 권력을 향하는 검찰의 칼날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꼼수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정통 연극을 기대한 관객을 기만하는 황당한 정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개혁'이라 무조건 지지한 국민에게는 슬픈 내용일 수도 있다.같은 내용의 되풀이는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 이제라도 정치는 코미디가 아니라 정극(正劇)을 공연해야 한다. 의회주의의 기본 정신인 협상을 통한 대화와 타협이 그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코미디인지 정극인지 정치 연극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관람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2019-12-22 15:46:23

최태연 전 계성고등학교 교사

[기고] 잘못 쓰고 있는 생활 속 존대어

우리 생활의 어느 곳도 예(禮)와 관계되지 않은 곳이 없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지킬 예절이 있고, 도시철도를 이용할 때도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우리가 쓰는 말도 예절에 맞게 말해야 한다. 편지도 받는 상대가 있으므로 예(禮)에 맞게 편지를 써야 한다.논어에 보면 공자의 수제자(首弟子) 안연(顔淵)이 공자께 인(仁)을 물었다.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이 된다"고 했다. 극기복례란 자기의 본능적인 사욕을 억누르고 예(禮)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부연하면, 본능적인 사욕을 의지(意志)와 이성(理性)으로 억누르고 예(禮)를 실천하는 교육적인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우리 생활에서 예(禮)를 생각해보자. 우리 집에는 아내와 나, 두 사람이 산다. 나갈 때는 "나 다녀올게"라고 하면, 아내는 "승차권, 핸드폰 챙겼어요?"라고 한다. "열쇠까지 다 챙겼어요." 이 대화가 자식이 밖에 나갈 때 부모님께 아뢰던 출필곡(出必告)에 해당된다. 부부는 서로 경어를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서로 반말을 해도 된다. 위의 '다녀올게'가 반말이다. 미완성의 말이다. '다녀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해야 완결된 말이 된다.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공대어(恭待語)=존대어(尊待語)를 쓰는 것은 잘못이다. '계시다' '주무시다' '잡숫다' '오시다' '가시다' '하시다' '말씀' '진지' 등의 말이 공대어이다. 부부는 상하관계가 아니고 평등관계이다.그래서 부부는 말도 평등해야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공대어를 쓸 때, 남편도 아내에게 공대어를 쓴다면 말에서 부부가 평등하다. 대부분 가정에서 아내만 공대어를 쓰고, 남편은 경어나 반말을 쓴다. 부부는 서로 경어나 반말을 쓰는 것이 옳다. 공대어는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쓰는 높임말이다.매일신문 기자가 국회의원 댁에 전화를 건다. "안녕하십니까? 매일신문 ○○○ 기자입니다. 의원님 계십니까?" 영부인(令夫人)이 전화를 받는다. "의원님은 부산에 국정감사 가셨다가 어제 밤늦게 돌아오셔서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다." 영부인이 전화를 잘못 받는다. 자기 남편을 '의원님'이라고 높이는 등 온통 자기 남편에게 존대어(尊待語=恭待語)를 썼다.영부인(令夫人)이란 호칭은 대통령 부인에게만 쓰는 말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부인도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인데, 접두어(接頭語) 영(令)을 덧붙이면 더 아름다운 높임말이 된다. 남의 딸을 높여서 영애(令愛)라고 하고, 아들을 높여서 영식(令息)이라고 할 때의 '영'과 '영부인'의 '영'은 같은 뜻이다. 영(令)은 '법령·명령'이란 뜻이 아니고, '아름답다', '착하다'의 뜻이다.요즈음 방송을 들어보면 아들·딸이 어머니·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한다. 우리말에 '치대접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랫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지, 웃어른을 사랑한다고 하면 안 된다. 부모와 자식은 위계(位階)가 다르다.아들이 어머니를 쳐다보고 '사랑합니다'라고 하면 버르장머리 없는 정도가 아니고 패륜(悖倫)이다. 한자어에도 애친경장(愛親敬長)이란 말이 있는데, 여기서 '애친'(愛親)은 '부모를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아들은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한선(上限線)은 아내 또는 애인까지이다.

2019-12-22 15:32:25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예술인을 위한 복지

요즘 예술계 화두 중 하나는 '예술인 복지'이다. 대구에서도 예술인 복지에 대한 논의를 꺼내고, 복지센터를 만들기 위한 그간의 과정을 최근 한 포럼에서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예술인들은 복지에 대해 개념이 부족하고, 특히 대구는 다른 도시에 비해 더욱 관심이 적은 듯하다.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자료에 의하면, 그간 예술가로 등록한 예술인 수가 서울은 약 3만 명, 부산은 4천 명 정도인데, 대구는 1천 5백 명 내외라고 한다.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하면 대구가 다른 도시에 비해 대학의 예술관련 학과도 많은 편인데, 상대적으로 예술인 수가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구의 예술가들은 부유해서 복지에는 관심이 낮은 것일까?아마도 사는 일로 바빠서 변화의 대처에 관심이 부족한 것이 더 큰 요인으로 여겨진다. 복지재단이 내게 무슨 덕이 되겠나 하는 막연한 생각과 어떤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부터 드러내는 대구지역의 정서도 한 몫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결론부터 얘기하면 복지재단에 등록한다고 해서, 해가 되는 일은 없다. 예술인으로 인정되어 등록 되면 이런저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고, 소속이 없는 자립형 예술가들에게는 예술인 증명을 받을 수 있고, 적은 돈이지만 창작준비지원금 같은 제도도 있다. 구체적으로, 아이를 밤 늦게까지 맡길 특별한 어린이집을 이용하려면, 재직증명서가 필요한데 그런 것도 가능하게 해준다.예술가들은 자존심을 먹고 산다. 학교에 재직하거나 예술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상위권의 소수를 제외하면, 전업예술가들은 늘 배가 고프다. 자기 예술에 대한 자존감이 없으면, 예술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예술가의 특성상 창의력은 남다른 생활방식에서 출발되기도 하여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예술가를 두고서 '과도한 낭만성과 비대한 자의식'의 존재라는 표현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그러한 예술가들의 다소 비현실적인 생활태도가 그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다. 근자에 서울의 유수한 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전도가 양양한 한 젊은 예술가가 지병을 앓고 있었지만, 사인은 굶주림이었다는 신문기사로 세간이 술렁거렸던 적이 있었다.복지재단의 여러 일들을 여기서 다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문 두드릴 곳이 없는 예술가들에게 친구가 되어줄 것으로 본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모토가 '예술인의 꿈과 열망을 응원합니다'인 것처럼, 예술가들의 권익보호와 어려운 삶을 돌아봐주는 기관이 되리라 기대하며, 대구에서도 준비하고 있는 예술인복지지원센터가 예술인들의 열망을 담아가길 기대한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2-22 06:30:00

김정숙 작 '새처럼'

[내가 읽은 책]음성 녹음 해외엽서

뒤죽박죽 흐트러진 책장을 작가별로 가지런히 정리하면서 신영복의 '더불어 숲1권'을 다시 펼쳤다. 오래된 종이향이 좋아 잠시 코를 박았다. 저자 신영복은 20세기의 저물녘인 1997년 한 해 동안 22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세계사의 출발점을 찍은 장소에서부터 세계화의 바람이 몰아치는 자리까지 저자의 여정을 향한 시선은 깊고 넓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과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드러낸 책이다. 글과 함께 손수 그린 그림과 사진도 곁들였다.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기에 출간 이후 독서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스페인 우엘바에서 시작하여 유럽과 남미를 거쳐 중국의 태산에서 여정을 마친다. 세계의 인류 문화유산과 역사의 현장을 직접 답사한 감회를 '당신'이라는 대상에게 서간 문체로 써 나간다. 로마, 베이징, 이집트 등의 거대한 유적들을 돌아보며 그 압도적인 규모에 경탄하지만 저자의 시선은 독자가 자칫 외피에 들떠서 지나치기 쉬운 고통의 저장고가 보이는 안쪽을 놓치지 않는다.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그냥 아무 쪽이나 읽어도 저자의 다정한 음성이 녹음된 엽서가 친절하고 정확하게 배달된다.청년기 20년의 세월을 옥중에서, 이후 20년은 대학 강단에서 보냈던 사람. 1941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해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저자는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의를 하던 중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한다.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다. 1989년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동양철학'을 강의한다. 1998년 사면 복권된다. 2006년 정년퇴임 후 동 대학교의 석좌교수로 지낸다. 2014년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 2016년 1월 15일 자택에서 75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다. 저서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강의', '담론' 등이 있고 역서로는 '외국무역과 국민 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등이 있다.인류의 역사는 강자의 논리가 정당하다지만 그 바닥에는 수많은 민중의 피땀이 있었다. 저자는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그것을 쌓기 위해 희생된 생명들을 먼저 생각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코르테스로 대표되는 유럽의 세력들이 신대륙에 저지른 살육은 더욱 그렇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그 성을 쌓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이 성 아래에 화석으로 묻혀 있다. 저자는 이처럼 패권주의와 물질주의에 함몰된 희생의 의미를 겸손하게 사색한다.저자는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성찰의 시간으로 과거와 미래를 함께 담아 보여 주고 있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과거의 청산이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단단한 현실의 얼개를 허물기 위해서는 우리가 쌓아 온 자본의 성(城)을 벗어나야할 뿐만 아니라 그 성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행이 진솔한 만남의 단초가 되어야 한다는 엽서를 겸손하게 전하는 기행문은 독자에게는 축복이고 선물이 될 것이다.김정숙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2-21 06:30:00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매화가 될까 몰라 - 사방득(謝枋得)

집으로 돌아갈 꿈 10년 동안 안 꾼 채로 / 十年無夢得還家(십년무몽득환가) 푸른 산에 홀로 서서 물가를 바라보네 / 獨立靑峰野水涯(독립청봉야수애) 산 비 뚝, 그치고 나니 온 천지가 적막한데 / 天地寂寥山雨歇(천지적요산우헐) 몇 생애를 더 닦아야 매화가 될까 몰라 / 幾生修得到梅花(기생수득도매화) * 원제 : 무이산에서 (武夷山中, 무이산중)사방득(謝枋得, 1226~1289)은 옛날 우리나라 선비들이 '고문진보(古文眞寶)' 다음으로 많이 읽었던 산문집 '문장궤범(文章軌範)'을 편찬한 중국 남송(南宋) 시대 저명 문인이다. 원(元)나라의 침략으로 남송이 마지막 숨을 헐떡거릴 때, 끝의 끝까지 저항을 했던 만고의 충신으로 더욱더 유명하다. 결국 나라가 멸망하자, 그는 무이산에 숨어살면서 망한 나라의 신하로서의 지조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다.그러나 원나라는 사방득이 산속에서 조용히 숨어사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여러 번 불러도 나오지 않자, 마침내 강제로 수도에 끌고 가 그의 마음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사방득은 끝까지 원나라에 굴복하지 않고 음식을 딱, 끊고 굶어 죽어버렸다. 경술국치를 맞아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면서, 24일 간의 단식 끝에 목숨을 끊어버린 한말의 의병장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인용한 작품은 사방득이 의병을 일으켜 원나라에 대항하다 실패한 뒤에, 10여 년 동안 무이산에 숨어살 때 지은 시다. 보다시피 그는 지난 10년 동안 집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집으로 돌아가는 꿈조차도 꾼 적이 없었다. 나라가 멸망하고 아내와 아들마저 적의 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 돌아갈 집이 어디 있으랴. 적막한 천지간 산봉우리 위에 혼자 우뚝 서서 망연자실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마지막 구절에서 그는 "몇 생애를 더 닦아야 매화가 될" 수 있겠느냐고 나직이 탄식하고 있다. 매화와 같이 그윽한 향기와 고매한 품격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뜻이 되겠다. 하지만 그의 삶에서는 이미 혹독한 겨울철 펄펄 휘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환하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 향기가 훅, 풍긴다.그런데 나는? 도대체 나는 몇 생애를 더 닦아야 매화가 될까? 닦고 또 닦으면 언젠가 매화가 되기는 될까?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도대체 몇 생애를 더 닦아야 철이 들까? 언젠가 철이 들 날이 오기는 올까?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12-21 03: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나이 듦, 그리고 삶의 보람

어릴 때는 친구들끼리 누가 나이가 많은가를 뽐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나이 먹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듦에 따라오는 질병(病), 외로움(孤), 가난(貧)과 같은 부정적 요소 때문일까? 하지만 나이 듦과 병, 외로움, 가난이 꼭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병약한 노인도 있지만 병약한 젊은이도 있다. 외로운 노인도 있지만 외로운 젊은이도 있다. 가난한 노인도 있지만 가난한 젊은이는 더 많다. 따라서 노인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병약함, 외로움, 가난은 노인의 진짜 특징이 아니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좀 더 높을 뿐인데 사람들은 노인들이 그러한 특징을 지닌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노인에 대한 편견은 위의 세 가지 외에도 많다. 노인들은 지저분한가? 아니다. 지저분한 젊은이도 많다. 노인들은 추한가? 아니다. 멋있는 노인들도 많다. 노인들은 말이 많은가? 아니다. 젊은이들이 훨씬 말이 많다. 노인들에겐 꿈이 없는가? 있다. 단지 젊었을 때의 꿈과는 종류가 다를 뿐이다. 이처럼 노인은 병약하지도, 외롭지도, 가난하지도 않을뿐더러 지저분하거나, 추하거나, 말이 많지도 않으며 삶의 보람을 찾아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쁘신 분들이다.그렇다면 나이 듦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죽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갔기 때문이다. 유한한 시간을 사는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종착역이 까마득한 미래였을 때는 죽음에 대한 자각을 거의 하지 못했지만 어느덧 종점이 어른거리기 시작하면 걸음을 멈추고 싶고 심지어 되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막연히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미지(未知)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거나 가진 것을 모두 잃어버리는, 그리고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로부터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혹은 종교나 미신, 사회적 관습이 만들어 낸 허상이거나 생명체가 지닌 삶에 대한 본능이 만들어내는 공포일 수도 있다. 어쨌든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죽음을 앞당겨 너무 두려워하거나 고민할 필요는 없다. 자연에서 왔다가 그 본향(本鄕)으로 돌아가는 일이 불시에 닥치겠지만, 바로 이 순간이라 해도, 담담하게 맞이할 일이며, 나 없이도 세상은 본래의 계획대로 돌아감을 믿으면 된다.은퇴하기 전엔 직장에 충실하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삶의 보람이었다.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자기 계발을 위해 약간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은퇴 후, 자녀들이 성장해서 떠난 후에는 무엇이 삶의 보람일까? 그것은 개인의 건강, 재력, 인생관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삶의 보람을 본능적으로 좇을 수밖에 없다.결국 삶의 보람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문제다. 완성해야 할 목표를 향한 사명감으로 살 수도 있다. 또는 사회봉사를 통해 이웃에 헌신할 수도 있다. 또는 독서, 취미, 운동, 사교 등 하고 싶은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도 있다. 자신이나 사회에 유익한 어떤 활동이든 자발적으로 참여하면 된다. 소일거리가 없는 권태로운 시간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노거수(老巨樹)의 휘어진 가지와 옹이진 둥치에서 겪은 풍상과 살아온 세월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에서도 살아온 연륜과 삶의 지혜를 읽어낸다면 좋지 않겠는가?

2019-12-20 18:55:08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 북한의 신년사 예상과 우리의 대응전략

북의 인위적 긴장 고조'통미봉남 2020년 한반도 정세 엄중함 예고한미 간 긴밀한 공조로 북핵 대응 북미의 '코리아 패싱' 현상 막아야북한의 신년사는 한 해의 정책 방향이 담겨 있다. 2020년 신년사의 대미 부분에 있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 및 미국에 지난 연말까지 시한을 주었으나 미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선제 조치를 자신의 과실로서만 활용했다. 부득불 새로운 길로의 전환을 천명한다. 우리가 선의로서 취한 핵과 장거리미사일 시험 유예를 해제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할 것이다. 우리는 단계적으로 조치를 확대해 나갈 것이며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미국이 제 정신을 차리고 적대시 정책 철회와 제재 해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는다면 우리의 조치들은 다시 철회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기간을 설정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갈 길을 갈 것이다. 우리는 미국 대통령의 재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미국의 어떤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대남 부분에 있어, "2019년 남한이 대미 굴종적 태도를 일관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는 격화되었다. 금강산 및 개성공단 재개 등에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전의 눈치나 보면서 기회를 저버렸다. 남북공동선언 이행이 미진한 것은 전적으로 남한의 책임이다. 지난해 북미관계 개선은 남한의 도움으로 된 것이 아니다. 북미 정상 간 신뢰에 따른 것이며 비핵화 협상과 관련하여 앞으로 남한 대통령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남한과 대화·교류를 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남한이 계속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외세 의존적으로 나아가고 환경과 여건을 만들지 않으면 더 이상의 대화나 교류는 없을 것이다. 특히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할 경우 9·19 군사 분야 합의서의 무효화와 함께 남북관계는 파탄 날 것이다. 남한 보수 세력의 비난의 도가 참을 수 있는 인내를 넘어가고 있다. 반북 분위기를 계속 조성한다면 남북관계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남한 내 평화세력과 연대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는 내용이 예상된다.대외 부분에 있어 "중국과 쿠바, 러시아 등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단결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며 제국주의 미국이 펼치는 압살정책의 부당함을 계속 전파해 나갈 것이다"가 주요 내용으로 담길 듯하다.2020년도 한반도 정세는 엄중함을 예고한다. 엄중할수록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원칙적 입장 견지가 중요하다. 북한의 인위적인 긴장 고조와 통미봉남, 총선을 앞둔 국내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를 위한 마지막 시도라는 생각으로 원칙에 흔들림 없이 버텨 나가야 한다. 긴 호흡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경험적으로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발전해 왔다. 정권 담당자가 성과에 서두르게 되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한 북핵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도 완전히 판을 깨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고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역할은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속적인 관여를 해야만 나중에 북미 대화 구도가 정립되더라도 '코리아 패싱'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남북관계 차원에서 어떤 비핵화 상응 조치를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지속적인 협의가 요구된다.한반도 문제에 있어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따른 우리의 독자성 확보도 중요하다. 당장 내년 초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관광·인프라 구축·사회문화·국제경기·대북 지원 등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업들에 대한 인내심 있는 관여 노력이 요구된다. 반드시 9·19 군사 분야 합의는 지켜야 한다. 이것이 무효화되면 남북관계의 보루가 무너지는 것이다. 접경지역의 긴장 관계에 적절히 대응하고 불필요하게 쟁점화하거나 악재로 작용되지 않도록 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사업은 지속 추진되어야 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과의 1.5트랙 수준에서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분야 개발이 시급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중국의 참여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한중 정상의 상호 방문 등 정상 차원에서 한중 공조를 해나가는 동시에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진영 구도로 가지 않도록 균형 외교를 펼쳐야 한다. 위기와 기회는 모두 사람이 만든다. 우리가 노력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위기 극복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2019-12-19 18:41:09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새로운 꿈

학창시절부터 나의 꿈은 작곡가였다. 음악은 늘 곁에 있었고, 그 음악들은 나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장르나 아티스트의 음악을 접하면서 새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같은 음악을 들어도 다른 감정으로 듣게 되면 새로운 음악이 되어 다가왔다. 나에게 음악은 끝이 안보일 만큼의 거대한 놀이터 같은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 놀고 싶었고, 작곡가의 삶을 살게 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음악을 하는 매순간이 행복할 것이라 기대했던 나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꿈을 이룬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닌가보다. 나는 매일 음악을 접하고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왜 행복하지 않았을까?필자는 그동안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 요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음악은 나에게는 기쁜 놀이, 신나는 창작이 아니라 그저 일이였다. 내가 꿈꾸던 작곡가는 일을 하는 작곡가가 아니였다. 행복한 순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순간은 잠시였고 대부분의 작업은 나에게 행복감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동기를 잃어가던 나는 '작곡가는 내 꿈이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했었다.하지만 올 해는 다른 해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행복하다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순간 행복을 느꼈고, 일하던 작곡가가 아니라 거대한 음악 놀이터에서 하고 싶은 놀이를 하고 있는 작곡가가 되어 있었다. 누가 시키거나 요구하기 때문에 하는 작업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내가 원하는 방향의 작업을 해도 되는 자유가 생기자 창작 욕구는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그리고 심지어는 일로 느껴지던 종류의 작업들도 더 이상 지겹거나 질리지 않았다. 내 안의 동기가 살아나자 어쩔 수 없이 하던 일들도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경험과 순간들이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도움이 되고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믿음과 기대도 생겼다.표현의 자유가 허락된 올 해를 보내며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올해처럼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매번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것이 힘든 시간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창작의 동기를 잃지 않게 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자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거대한 음악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 말이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2-19 10:27:06

민경석 한국물기술 인증원장

[새론새평] 보현산댐 통합물관리 모델

금호강 물 부족 대응한 보현산댐 우려대로 여름철 녹조 생겼지만 친환경 농법·공공하수도 사업 등 단기간 수질 개선 대책 상생 협력영천 지역은 팔공산, 보현산 등 고봉준령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연간 강수량이 연도별로 차이가 있지만, 전국 평균의 약 70~80% 정도밖에 안 돼, 옛날부터 농사용 저수지 1천여 개를 곳곳에 만들어 이용하여 왔다.금호강 유역의 장래 예상되는 물 부족에 대해 안정적으로 대처하고, 댐 하류 고현천, 신녕천 및 금호강으로 이어지는 유역의 홍수 피해를 줄이고자 보현산댐을 지난 2014년 건설하였다. 2009년 사전환경성 검토와 타당성 조사를 완료하고 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을 때, 지역 주민들은 하수 처리도 안 되고 하천변에 농경지가 많은 이 지역에 댐이 건설되면 수질이 급격히 나빠져 마을이 살기 안 좋게 될 것이라며 매우 반대하였다. 결국 공공하수도 등 수질 개선 대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장과 한국수자원공사(K-water)의 약속을 듣고서야 반대를 철회하였다.댐을 완성하고 담수한 뒤, 여름철이 되자 우려대로 수온이 높아져서 녹조현상이 심하게 발생하였다. 처리하지 않은 생활하수를 비롯해서, 강우 시 댐 상류 유역 농경지에서 사용하는 화학비료 및 가축분뇨퇴비가 녹조의 원인 물질인 질소와 인과 같은 영양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하였기 때문이었다.따라서 보현산댐을 건설한 K-water 현장 부서에서는 주민들에게 협의회를 제안하였으며, 반대했던 주민들과 수질개선대책을 공유하면서 설득하였고, 어렵게 2015년 11월에 댐 상류 7개 마을 이장단과 영천시와 함께 '상생협의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후 수질 개선을 위한 도랑 살리기, 정화조 청소, 낚시금지구역 설정 등의 대책을 이행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 정도 대책으로는 녹조현상이 쉽게 줄어들지 않았고, 매년 큰비가 오고 나면 더 심하게 발생하였고, 작년에는 댐의 타당성 논란까지 확산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K-water는 보현산댐 유역에 물관리기본법의 핵심 정책인 유역별 통합물관리를 적용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통합물관리 모델이 되었다. 단기간에 수질을 개선하는 종합대책을 제시하였고, 지역 주민·비정부기구·민간전문가·지자체 및 대구지방환경청 등의 공감을 얻어 2018년 11월에 '보현산댐 물환경관리협의회'를 발족하였다.보현산댐 종합대책 중에 가장 눈여겨볼 것은 친환경 농법 도입이다. 댐 상류 농업은 대부분 풍부한 일조량과 일간 기온차에 적합한 사과 농사인데, 전국적인 사과 생산지로 유명하다. 다른 댐 상류 지역과 달리 녹조의 주요 원인이 가축분뇨보다는 사과 농사에 사용하는 가축분뇨퇴비 때문이다.지금까지는 가축분뇨퇴비를 농지 위에 그대로 뿌렸는데, 이는 강우 시 퇴비가 빗물과 함께 유출돼 녹조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를 줄이기 위해 뿌리 둘레에 몇 곳을 천공하여, 그 안에 퇴비를 넣는 농법인 심층시비로 바꾼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강우 시 퇴비가 호소로 유출되는 양을 상당히 줄일 수 있으나, 번거로운 천공 작업이나 과수 품질 저하 우려로 국내에서는 적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그래서 심층시비 전문가를 통하여 농민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한 끝에, 보현산 물환경협의회 위원이 운영하는 1개 사과 농장에 3년간 시범 적용할 수 있었다. 실증 결과 강우 유출 수질이 약 50% 이상 개선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시비량도 약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고, 지속적으로 시행할 경우 사과 품질과 생산량도 개선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지금까지는 전체 농가의 약 10% 정도가 참여하였고 2021년까지 전체 사과 농가의 약 80%까지 적용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또한 농가에서 직접 쉽게 천공할 수 있는 시제품 장비도 개발하여 적용하였고 장비 개선도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농업비점오염원을 추가적으로 줄이기 위해 쓰레기 분리수거장 설치, 폐농산물 판로 지원 등 주민 밀착형 대책을 다각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또한 댐 건설 당시부터 요청했던 공공하수처리시설의 도입을 위하여 국비를 확보했으며, 내년부터 공공하수도사업을 본격 시행할 수 있다. 댐내 녹조 원인 물질은 대부분 강우 시 유입하는데, 유입 지류별로 물환경 변화를 실시간 자동 모니터링하고 있다.보현산댐 녹조 예방을 위한 국내 최초의 댐 상류 유역통합물관리 정책 도입뿐만 아니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은 향후 유역물관리에 좋은 매뉴얼이 될 것이다.

2019-12-18 19:31:32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시대산책] 북핵 협상, 조바심을 내는 쪽이 지게 되어 있다

북핵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어떻게 본다면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 말보다도 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주로 북한의 조바심 때문이다. 북한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외교 성과를 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어 하는 점을 이용해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선에서 북핵 협상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한다.반면 미국은 북한이 미국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양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능한 한 대통령 선거 때까지 현상 유지 수준에서 시간을 끌고 싶어 한다. 과거 북핵 협상에서 시간 끌기를 하는 쪽은 북한이었고 빨리 협상장에 나오라고 재촉하는 쪽은 미국이었는데 이번에는 이것이 뒤바뀐 것이다. 이렇게 북한이 조바심을 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인류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다고 하는 대북 제재 때문이다.현재 북한은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지만 엄청난 무역 적자가 누적되고 있고 경제성장은 기대만큼 되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수준으로 외화가 줄어들면 머지않은 장래에 외화가 고갈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이제 12월 22일이면 해외에 있는 모든 북한 근로자가 귀국해야 한다.해외 근로자가 꽤 짭짤한 외화 수입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제 상황은 점차 더 어려운 국면에 접어드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북한 사정을 반영하여 며칠 전에 중국과 러시아가 해외 근로자 문제를 포함하여 몇 가지 제재를 완화해주는 안건을 안보리에 제출하였지만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북한에 남아 있는 외화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북한이 조바심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레드라인을 넘는 행동들, 다시 말해 ICBM 실험이나 핵실험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스스로를 더 불리한 조건으로 내모는 짓이다. 북한의 그러한 행동은 북한을 도와주려고 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에 관광객을 대규모로 보내서 북한을 도와주려고 하는 중국의 정책도 크게 위축될 것이다.새로운 제재를 불러올 수도 있다. 이미 제재가 차고 넘쳐서 새로 제재할 것이 남아 있지도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재할 대상은 아직도 많다. 레드라인을 넘는 행동을 하면 국제적 관심을 모으는 데는 성공하겠지만 미국과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위협은 선거를 앞둔 트럼프 입장에서는 애가 타는 일이기는 하지만 일단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게 되면 트럼프로서도 북한에 더 이상 양보하기는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북한이 조바심을 견디지 못해 레드라인을 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의 장단에 맞춰 과도한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으면 북한 핵시설 폭격 등 군사적 옵션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국과 미국의 일부 인사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 고위급 관료들도 군사적 옵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물론 그런 이야기의 주된 목적이 북한을 협박해서 위험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군사적 행동에 나서게 되면 국면 전체가 완전히 바뀌게 되어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는 북한에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중국, 러시아의 관계가 한 단계 혹은 두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될 수도 있다.북한 지도부가 주민을 결속시키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한국 금융시장이나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주는 영향이나 미국 대선, 한국 총선에 주는 영향 등을 배제하고 계산하더라도 이는 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 알 수 없는 모험이다.이렇게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경우에는 조바심을 내는 쪽이 반은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 속의 전쟁이나 운동경기나 아이들 놀이에서도 조바심을 내는 쪽이 빨리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어 있다. 이런 일반적 교훈을 잊으면 안 된다.

2019-12-18 17:50:39

회초리와 종을 든 벨스니켈 산타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벨스니켈 산타

산타는 성인(聖人)을 뜻하고, 클로스는 3세기 경 소아시아 지방에 살았던 '성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니콜라스는 조실부모한 가난한 소년이었으나 바르게 성장하여 가톨릭 주교가 되었다. 그는 평생 가난한 이들을 도우는 선행을 행하면서도 겸손하여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노르만족에 의해 유럽에 알려졌고, 그의 축일인 12월 6일 바로 전날에 수녀들이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생겨났다. 이것이 네덜란드 이민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되며 오늘날의 '산타클로스'가 탄생한 것이다.성탄절 전야에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모습은 말과 염소를 타고 하늘을 날던 바이킹 전설 속의 신 오딘과 토르가 산타와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마르고 키가 큰 성 니콜라스가 19세기 중반에 그려진 만화에서 뚱뚱한 모습으로 변한다. 코카콜라 광고에 붉은 옷을 입은 인자하고 뚱뚱한 자본주의 산타가 등장하며 현재의 모습이 완성된 것이다.산타는 모든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 착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나, 초기에는 말을 듣지 않거나 나쁜 아이에게 벌을 주는 '검은' 산타도 있었다. '크람푸스'와 '벨스니켈'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성탄절 수주 전에 거리에 나타나며, 아이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회초리를 든 누추한 차림의 털북숭이 벨스니켈을 보고 도망가기도 하나, 겁을 먹고는 그때부터 착한 일을 한다. 덕분에 크리스마스에는 산타로부터 따뜻한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다.이제 아이들을 훈육하던 검은 산타는 사라졌고 하얀 산타만 남았다. 교육의 근본 철학인 당근과 채찍을 반영하였던 그 시절의 낭만 산타 '벨스니켈'이 그립다.

2019-12-18 17:49:36

대구 영남중 교사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해상왕 장보고의 대구전투

완도 출신으로 추정되는 장보고(790?~841)는 소년 시절부터 바닷속 잠수에 능숙하고 20㎞(50리)를 헤엄쳐도 숨이 차지 않을 정도였다. 이후 장보고는 810년대 초에 홍수와 가뭄으로 빈곤에 허덕이다 과도한 조세 부담을 견디지 못해 당나라로 건너가 무녕군에 입대하였다.장보고는 당시 산동반도를 장악했던 이사도(李師道)의 평로군 진압에 공을 세워, 30세에 '군중소장'으로 승진하였다. 그러던 중 장보고는 신라인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노예무역에 반발하고 해상무역에 관심을 둔 가운데, 당의 감군(減軍)정책으로 인해 귀국하였다.828년 장보고를 만난 흥덕왕은 해적들로부터 신라인을 지키기 위해 청해진을 설치하고 장보고를 대사(大使)에 임명하여 군사 1만 명을 따르게 하였다. 장보고는 해적들을 소탕하면서, 남중국항로를 개척하여 신라~중국 남부~일본을 연결하며 해상무역을 독점하였다.그러나 그는 신라 하대 왕위 쟁탈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836년 흥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김명의 도움을 받은 김제륭이 김균정을 살해하고 '희강왕'에 올랐다.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은 청해진으로 달아나 목숨을 부지하였다. 곧 김명은 반란을 일으켰고, 희강왕이 자결하자 '민애왕'으로 즉위하였다.이를 계기로 김우징은 장보고를 끌어들였다. 김우징-장보고의 군사는 무주 철야현 전투에서 승리하고, 대구에 도착하여 격전 끝에 민애왕의 군사를 궤멸시켰으며, 경주로 입성하여 민애왕을 살해한 후에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추대하였다. 장보고는 감의군사·진해장군의 관직과 2천 호의 식읍을 받고, 자신의 딸을 문성왕(김우징의 아들)의 왕비로 들일 것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장보고는 김양의 사주를 받은 염장에 의해 살해되고, 청해진은 폐지되었다.김우징-장보고 세력이 민애왕을 제거하는 데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졌던 대구의 당시 위치는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대구는 장보고의 생애에 신분 상승을 꿈꾸다가 끝내 좌절해 버린, 회한이 서린 곳으로 남게 되었다.

2019-12-18 17:47:16

김종근 김천대학교 스포츠재활학과 조교수

[기고] 청년 엉덩이 근육노화 대책 세워야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신체 구조와 기능이 점진적으로 떨어지고 쇠약해져 질병, 사망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동시에 기억력이 떨어지는 등 인체 다양한 부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노화라 부른다. 노화에 처한 인간은 '삶의 질'이 떨어지기 마련이다.최근까지만 해도 이런 노화 현상은 65세 이상 노인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20, 30대 청년층에서도 근감소증, 즉 인체 전반의 골격근이 과도하게 줄어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해 충격을 준다. 노화가 더 이상 노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근감소증은 근육이 감소한 자리에 체지방이 들어차 비만, 만성질환 증가, 대사질환 등을 유발하는 증상을 이른다. 이는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악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생산성이 줄어들고 의료비와 건강보험, 복지 수요는 늘어 사회적 비용 증가까지 일으킬 수 있는 위협적 현상이다.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청년층을 중심으로 신체활동 저하에 따른 문제가 속속 발견된다. 흔히 인체 동력을 만들어 주는 엉덩이 근육, 즉 '파워 존'(Power Zone)에서 근감소증이 두드러진다.한국스포츠정책개발원은 최근 제자리에 선 20대 여성 참가자들의 엉덩이 근육과 대퇴이두근(햄스트링)을 분석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에선 평소 꾸준히 운동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무직 여성의 엉덩이 근육의 활성도가 현저히 낮았다. 사무직 여성들은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생활하면서 엉덩이 근육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이 탓에 근육이 쓰임새를 잊어버리는 '엉덩이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있는 것이다.엉덩이 기억상실증은 우리 사회 20, 30대 청년층이 학업과 취업 준비, 업무량 증가 등을 이유로 의자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한 데서 나오는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 현대인은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의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업무를 보도록 돕는 '스탠딩 데스크' 등이 최근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앞으로 의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또 젊음을 무기로 신체활동을 하지 않을수록 엉덩이 기억상실증에 빠지는 청년층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 같은 청년층은 노화를 맞닥뜨린 노인과 다를 바 없이 다양한 신체적 문제를 겪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현재로서는 이미 진행한 근감소증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 고단백 영양을 섭취하면서 걷기와 계단 오르기 등 저항운동 중심의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고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등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유일한 예방 방법이다.고령화 시대인 오늘날, 지역 청년층마저 근감소증과 엉덩이 기억상실증에 처한다면 '스포츠 도시'를 표방하는 대구경북의 도시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엿보인다.미국은 2016년부터 근감소증을 자연스러운 인체 변화가 아니라 일종의 독립된 질환으로 보고 관리하는 추세다. 근감소증을 예방토록 하는 온라인 진단과 관리 플랫폼을 구축,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우리도 늦지 않았다. 대구경북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당국도 기업 등과 손을 맞잡고 근감소증 예방 플랫폼을 구축하고 시민들의 휴식과 산책, 운동 시간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2019-12-18 11:18:39

백종원, 김희철, 양세형, 김동준이 출연하는 SBS '맛남의 광장'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한상 푸짐 '백종원표 예능' 참 맛있지유~

먹방에 쿡방은 물론이고 지역 농수산물을 살리기 위한 솔루션에 공익성까지 담았다. SBS '맛남의 광장'은 그래서 지금껏 백종원이 시도해온 다양한 음식프로그램의 모든 것들이 녹아들어 있는 느낌이다.◆풍년일수록 힘들다, '맛남의 광장'이 나선 이유11월부터 1월까지 잡히는 양미리는 지금이 제철이다. 그래서 동해안에 가면 양미리가 지천이다. 하지만 이런 풍어를 맞고도 어민들의 한숨은 깊어간다. 양이 많아도 그만한 수요가 없는데다, 냉동하면 상품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생선이지만 수요가 없는 건 주로 구워먹거나 말려 먹는 것 이외에 다양한 요리방식의 저변이 없어서다. 그러니 소비자들이 찾지 않고 상품성이 없어 유통도 되지 않게 된 것.SBS '맛남의 광장'에서 백종원은 한창 양미리를 그물에서 떼내고 있는 동해안 어촌을 찾아 양세형과 맛있게 양미리를 구워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게 마치 KBS '6시 내 고향' 같다고 양세형이 말하자, 백종원은 우리 프로그램은 "10시 내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 장면은 지방의 제철음식을 찾아나선 '6시 내 고향'이 줄곧 보여주곤 하는 먹방을 연출한다.갓 구워낸 양미리를 통째로 씹어 먹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그리고 백종원은 양미리를 구입해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양미리 조림 조리법을 알려준다. 그건 일종의 쿡방이다. 백종원 특유의 쉬운 레시피가 빛을 발한다.다음 날 옥계휴게소에서 백종원과 출연자들(김희철, 양세형, 김동준)이 그렇게 탄생한 양미리 조림을 대량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이미 사전 정보를 알고 찾아온 손님들의 반응이 전파를 탄다. 마치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등장했던 백종원 특유의 음식 솔루션과 그걸 손님들에게 내놓고 보여지는 리액션 영상이 채워진다.아이러니하게도 풍년일수록 더 힘들어지는 지역의 농수산물들은 의외로 넘쳐난다. 강원도의 양미리는 물론이고 살이 적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홍게, 심지어 감자 같은 대표적인 지역 작물도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현실이다. 백종원은 홍게로 홍게라면을 만들고 못난이 감자로 감자 치즈볼을 만들어 손님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도시와 지역을 연결하자 생긴 시너지이제 중요해지는 건 집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이 지역까지 가지 않고도 양미리를 인근 마트에서 사먹을 수 있게 유통의 길을 열어 주는 일이다. 여기서도 백종원은 자신의 인맥을 100% 활용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선뜻 그 뜻에 동참했다. 백종원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상품성이 없어 버려지는 양이 30t이 넘는 어느 강원도 농가의 이른바 '못난이 감자'를 보는 즉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30t을 사달라고 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전량을 수매했다. 안 팔리면 자기가 다 해먹겠다며.하지만 안 팔리기는커녕 수많은 소비자들이 이마트 매장과 쇼핑몰 SSG닷컴으로 못난이 감자를 샀다. 못생겼지만 맛과 영양은 그대로인 못난이 감자는 900g 당 780원에 팔린다. 결국 소비자들도 수혜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백종원은 정용진 부회장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에 크게 공감했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매가 필요한 농수산물들을 이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전해졌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했던 부분인 유통 문제가 백종원의 전화 한 통과 그 뜻에 동참한 정용진 부회장의 약속으로 해결된 것이다.여기서 한번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준 것으로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수혜를 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 많아 버려지던 농수산물을 팔 수 있게 된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그런 좋은 물건들을 전량 받아 팔 수 있게 된 마트로서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무엇보다 이런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기업 이미지는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런 상품들을 그간 가까이서 구매할 수 없어 TV로 보기만 했던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일이다. 도시와 지역을 방송이 연결시키는 것만으로 생겨난 놀라운 시너지다.◆방송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바꿔나가는 백종원의 진화백종원은 지금껏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하지만 아무 프로그램이나 나온 건 아니었다. 그는 음식연구가로서 음식 관련된 프로그램에 특화된 방송인으로 맹활약했다. 처음 백종원이 했던 건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나와 간편하게 레시피를 알려주던 레시피 방송이었다. 그건 쿡방보다는 백종원의 방송적응기에 가까웠다.그러다 그는 tvN '집밥 백선생'으로 본격 쿡방을 선보였고, SBS '백종원의 삼대천왕'을 통해 먹방을, '백종원의 푸드트럭'과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자신의 프랜차이즈 경험이 녹아난 음식점 솔루션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처럼 세계의 음식을 소개하며 인문학적 정보를 더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최근 백종원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맛남의 광장'은 그가 지금껏 해온 먹방, 쿡방, 솔루션 프로그램의 노하우가 모두 녹아든 공익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으로 그의 진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맛남의 광장'이 아이디어로 나온 건 이미 3년 전이라고 한다. 당시 방송 프로그램 때문에 지역을 다니다가 휴게소에서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로 방송을 준비하려 했지만 미뤄졌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기다린 만큼 '맛남의 광장'에 대한 백종원의 애착은 특히 크다.'맛남의 광장'이나 '백종원의 골목식당' 같은 프로그램이 보여주듯이 백종원이 하는 방송의 또 다른 특징은 방송이 방송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을 바꿔간다는 점이다. 이건 그가 방송 소재로 잡고 있는 음식이라는 아이템이 가진 파괴력 때문이다. 본래 방송의 힘은 한때 음식 프로그램에서 홍보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게 입증된 바 있다. 하지만 이 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다는 걸 백종원은 보여주고 있다.여기서 가장 중요해진 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다. 어려움에 처한 골목식당을 살린다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취지처럼, '맛남의 광장'의 지역을 살린다는 취지가 중요한 이유다.

2019-12-18 11:18:12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글루미 선데이

우리말로는 '우울한 일요일'로 번역되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는 1999년 '롤프 슈벨'이라는 감독이 만든 독일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오프닝 크레디트와 함께 유람선이 떠다니는 다뉴브강 양안(兩岸)으로 부다페스트 시가지가 펼쳐진다. 강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리와 곳곳의 오래된 건물은 부다페스트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도시임을 알려 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다소 살벌한 도시로 기억되는 건 아마도 교과서에도 실렸던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란 시가 강렬하게 각인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1940년대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작은 레스토랑, 주인 겸 지배인인 '자보'는 연인인 아름다운 '일로나'와 함께 낮이면 일하고 밤이면 사랑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둘은 피아노를 들여놓으면서 연주할 피아니스트를 모집해 오디션을 보지만 마뜩찮다. 그런데 음울한 분위기의 한 청년이 찾아와 자신이 작곡을 했다는 음악을 연주하는데, 모두들 넋이 나간다. 한 때 가수를 꿈꿨던 일로나는 그 남자에게 푹 빠지게 되고 안드라스 역시 한눈에 반해 버린다.이 영화는 한 여자가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일로나에게 나이가 많고 자상한 자보는 곁에 있어줘야 하는 사람, 예술적 기질을 타고난 열정적인 청년 안드라스는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다. 둘 다 필요한 남자인 것이다. 그렇다고 관객의 눈에 여주인공이 부정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떼를 쓰는 아이 같기도 하고 막무가내 투정을 부리는 막내딸 같아, 난처하지만 얄밉지는 않아 보인다.상대적으로 나이가 든 편인 자보의 '그녀를 완전히 잃느니 일부분이라도 가지겠다' 라고 하는 결정은 어떻게 보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이라도 강구하는 게 맞다. 그러나 우리는 유독 남녀관계에서만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체면이나 명분 혹은 사회적 통념 때문에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던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지구상 곳곳에는 아직 일처다부제 전통이 남아 있다고 한다. 문화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영화를 본 후 리뷰를 살펴보던 중, 한 여자가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사랑이 하나의 대상에 대해 일편단심 종속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세상에 사랑의 위선을 퍼뜨린다' 고 주장하는 분이 있었다. 여자가 사랑을 대하는 태도를 어느 정도 엿 볼 수 있는 말이었다. '사랑은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혹은, 더 사랑하느냐 덜 사랑하느냐'의 문제라는 어느 분의 지적은 수긍이 간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여주인공 일로나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지만 둘 다 정말로 간절하고 절실했던 사랑이었다. 괜찮은 영화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2-18 11:17:25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종교칼럼] 산 이들의 이야기

식물들은 화학적 분비물을 통해서, 동물들은 소리와 표정, 몸동작을 통해서 각자 나름대로 서로 의사전달을 한다. 그러나 자음과 모음을 엮어서 다양하고 깊은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생명체는 오로지 사람뿐이다.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과 이 세상에서 살다가 떠난 사람, 그리고 현재 살아 있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이들 중에서도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그들이 어떤 세계에 들어서 있는지 대단히 궁금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이기에 상상과 믿음으로만 무엇인가를 그려볼 뿐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태어나서 이 세상 삶의 주인공이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주인공은 바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언제 살아 있는가? 바로 현재 이 순간을 살고 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 수가 77억 명이나 되는데, 지구촌 위치에 따라 오전이나 오후를 살고 있는 사람, 잠을 자는 사람이 있지만 모두 현재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이것은 남녀노소, 지식, 지위, 재산 등의 많고 적음, 높낮이에 상관없이 같다.유아는 유아대로 살아 있고 유치원생, 초·중·고등·대학생, 가정주부, 직장인, 은퇴인 등 각자 나름대로 살아 있다. 알고 있는 지식과 체험한 것도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르지만 다 같이 현재 이 순간에 살아 있다. 각자 머릿속에 들어있는 온갖 욕구와 생각을 내놓고 이야기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의 분량이 많고 복잡하여 듣다가 피곤해질 것이고 마침내 감당이 안 될 것이다.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킨다 하더라도 1천억 개의 신경세포와 1조 개의 교세포로 구성된 우리 두뇌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몸 안의 온갖 생명 현상을 주도하고 꿈을 꾸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오감을 통해 외부 세계의 온갖 것들을 인지하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오감에 어떤 것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고요한 곳에 혼자 있어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과거의 온갖 추억과 상처들을 회상하다가 미래로 가서 아직 현실이 아닌 온갖 생각과 걱정거리들을 더듬는다. 살아 있는 것은 현재 이 순간인데 생각은 과거와 미래에 더 많이 가 있다. 이것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잡념이 되고 정신을 분산시켜 심하면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조금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종교 이야기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살았을 때 종교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무종교인으로 산 사람들은 종교 없이 살기로 마음먹었겠고 특정 종교 단체의 일원으로 산 사람들은 그들만의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할 상태에 있지 않다.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우리 살아 있는 자들은 궁금하지만 건널 수 없는 한계에 의해 궁금증을 해소할 수는 없다.필자가 지면이 대단히 제한된 이 칼럼에서 이 이야기를 이렇게 강조해가며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사실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들은 이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이 살았던 생각과 삶의 자취를 안고 있다. 그래서 각 시대와 지역의 문화적 요소들이 들어 있고 참된 진리와 주변 진리가 섞여 있으며 진리와는 거리가 먼 불편한 요소들도 들어 있다.진정성을 가진 성직자와 수도자는 자신이 믿고 전하고자 하는 종교적 진리가 가능한 대로 참된 것이기를 원할 것이다. 일반 신자라 할지라도 주변 진리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진리가 아닌 것과는 거리를 멀리 두려고 할 것이다.

2019-12-18 09:58:14

QR코드를 찍으면 딸의 음성이 들린다. 사진: ㈜빅아이디어연구소 제공 -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종이 신문이 말을 하네?

신문과 광고는 닮았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신문은 최대한 사실의 기반을 둔 정확한 정보로 독자와 소통한다. 광고 역시 사실을 근거로 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에는 주관성이 관여한다. 결국, 똑같은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특징이 있다.종이 신문은 더 이상 종이 신문이 아니다. 분명 종이인 것은 틀림없으나 전자기기와 결합해 메시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QR코드 역시 그런 기본 형태 중 하나이다. 필자의 회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사업을 통해 음주운전 예방 캠페인에 관한 작업을 매일신문과 진행하게 되었다.신문 지면에서 음주운전에 관해 얘기하면 자칫 가르치려고만 드는 전형적인 공익 광고로 비칠 수 있다. 필자는 그 점이 싫었다. 하루 5천여 개의 광고에 노출되는 요즘 어떻게 하면 광고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 것인가가 광고 제작의 첫 번째 규칙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면에서 다 보여주지 말자고 생각했다. 지면만 봤을 땐 심심한 광고처럼 보이도록 말이다.하지만 전자기기를 이용한 또는 QR코드를 이용한 광고의 가장 큰 단점은 참여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참여시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준다든지 돈을 준다든지 하는 당근이 없다면 사람들은 좀처럼 참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카피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부모의 음주운전에 딸은 이렇게 말합니다'이렇게 쓰면 그다음이 궁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광고가 지면에서 끝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이어진다는 느낌도 들 수 있어서 좋았다. 본 캠페인은 빅아이디어연구소와 공동 제작하며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QR코드를 찍으면 뒷좌석 창문이 열리며 딸의 독백은 시작된다.'아빠, 아빠 불러도 대답이 없네요. 음주운전은 안된다고 했는데 아빠가 한 잔은 괜찮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니네요. 아빠도 엄마도 대답이 없네요. 아빠. 전 이제 어떻게 살아요? 술 한잔이 아빠를 제 곁에서 데려가 버렸어요.'음주운전으로 아빠를 잃은 딸의 목소리를 들으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시각으로 느끼는 메시지와 청각이 함께 동원된 메시지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의 딸의 말을 신문에 글로 적어두었다면 독자는 감화되기 힘들다. 하지만 내 귀를 통해 듣는 어린 딸의 목소리는 감화를 준다.이것이 바로 인터렉티브 광고의 묘미이다. 인터렉티브 광고란 말 그대로 상호 작용하는 광고라는 뜻이다. 80년대 우리는 광고를 말할 때 9시 뉴스 앞에 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런 광고는 상호 작용할 수 없다. 소비자는 그저 TV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IT 기술이 발전한 요즘 상호작용을 하는 광고 형태가 가능해졌다. 즉, 소비자들이 광고를 가지고 놀고 웃고 즐기게 된 것이다.앞으로 많은 광고의 형태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일방적인 시청각 광고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하고 움직이게 하는 광고 말이다. 광고처럼 신문 역시도 그런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일방적인 기사 전달이 아닌 그 기사에 독자들이 참여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본다. 신문사와 광고회사는 그런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초점을 맞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12-18 09: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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