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이른 아침에] 보수 세력·정당에 미래가 있으려면

[이른 아침에] 보수 세력·정당에 미래가 있으려면

지난주 초까지 계속된 미래통합당의 내홍은 총선 참패 후 질서 있는 퇴각으로 후일의 전쟁을 대비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곧 물러날 지도부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정하고 김종인 위원장을 모시기 위해 애면글면한 게 사달의 시작이다. 비대위 체제로 전환할지, 비대위로 간다면 누구를 대표로 내세울지, 조기 전당대회로 새 지도부를 꾸릴지는 21대 국회 새로운 당선인들이 결정하도록 맡겼어야 한다. 반성과 수습은 고사하고 내부 총질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고 보수의 미래가 어둡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비대위 문제 등 당의 진로는 8일 선출되는 원내대표를 포함해 21대 당선인들에게 맡겨졌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했으니 당연히 새 사람들이 결정해야 할 일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당선인들이 우선 고민해야 할 것은 보수 정당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다. 개혁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다. 벌써 40대 대선 주자 운운하는 것은 당내 갈등부터 부르는 성급한 김칫국이다. 난파된 배를 수리하기도 전에 선장부터 내정하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향후 그려야 할 보수의 청사진은 한마디로 "정체성 확립은 분명하게, 정책적 대응은 유연하게"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 보수당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영국 보수당은 1945년 7월 총선에서 노동당에 참패한다. 1935년 총선에서 얻은 432석의 절반도 안 되는 213석에 그쳤다. 보수 대학살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2차 대전 전쟁영웅 윈스턴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이었지만 국민은 이들을 외면했다. 전쟁 후 국민의 요구가 달라진 사실을 주목하지 못한 결과였다. 먹고사는 문제, 생존의 문제에 봉착한 국민을 위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국가의 비전이 제시되었지만 보수당은 그에 필요한 사회개혁을 사회주의로 터부시했다.선거 참패 후 보수당은 비로소 시대의 흐름을 수용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1947년 발표한 '산업헌장'에서 보수당은 산업에 대한 국가 개입, 노사 간 협력 인정, 국가보건서비스(NHS) 설립 등 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을 대폭 수용하는 개혁 방안을 발표한다. 청년보수운동과 재정 및 당 후보 충원 구조 개혁을 통해 젊고 유능한 청년들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중·하류층 출신이지만 나중에 쟁쟁한 보수당 총리가 된 에드워드 히스, 마거릿 대처, 존 메이저 등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었던 것도 과거의 귀족적 정당에서 탈피한 보수당의 개혁 덕분이었다. 향후 20년은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자조했던 보수당은 1951년 정권 탈환 후 1964년까지 장기 집권 시기를 구가하게 된다. 미래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세력이 가야 할 길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가. 여당의 실정이 두드러짐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야당을 외면한 것은 시대 흐름과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 보수 세력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현 정부 일자리 정책에 문제가 있지만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보수정당의 대안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긴급재난구호금 얘기가 나왔을 때 재정건전성을 들고 나온 것은 당장 굶고 있는 국민에게 나중에 있을 잔치를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안도 공감 능력도 부족하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보수주의란 모든 변화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곧 사라져버릴 일시적인 시대적 유행이나 사고방식에 저항하며 사회적 균형을 잡는 것이다." 영국 보수당이 경제·사회정책 등 현안에 대해 최대한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노동당과 거의 차이가 없었던 데는 이 같은 인식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영국 보수당은 정책적 유연성과 별개로 보수주의의 이념적 정체성만은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까지 통합당을 비롯한 우리나라 보수 정당이 말하는 이념적 정체성은 완고한 고집으로 느껴지기 쉽다. 국민들에게 왜 보수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한지 한마디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국민에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보수주의자들은 국민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영국 보수당이 밝힌 보수의 정체성이 우리나라 보수의 정체성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2020-05-03 18:30:00

[매일춘추] 너도 그렇다   

[매일춘추] 너도 그렇다  

최근 대구지역 대학들이 1학기 강의를 모두 화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일찍이 결혼하여 열심히 육아중인 친구들도 초등학생인 자녀의 화상수업을 돕느라 바쁘다는 소식을 전하고, 대학에서 강의중인 친구는 전에 없던 화상수업으로 수업준비 시간이 배가되었다고 어려움을 토한다.한편, 재수까지 하며 어렵게 대학에 들어간 사촌은 모니터 너머로 교수님과 학우들을 만났지만 그다지 재밌어 보이지도, 강의가 귀에 잘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딤프 사무국에서도 최초로 화상 이사회를 진행했다. 연세가 많아 접속이 힘들진 않으실까 조심스레 걱정을 가졌던 이사님들께서도 문제없이 이사회에 참석하셨고 생각보다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신풍속도라고 봐야하겠다. 세상이 정말 바뀌고 있다.공연장에서 마지막으로 공연을 본 것은 지난 연말쯤인 것 같다. 일을 하면서 정말 수백 번을 보았다고 생각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객석에 앉아 다시 보니 같은 무대지만 새롭고, 배우들의 연기는 새삼 놀라웠다. 역시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은 없는 것인가? 볼 때마다 다른 호흡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을 보면서 정말 명작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함께 관람한 친구에게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있다. 뮤지컬이란 것도 자세히, 오래 보아야 예쁘고 더 사랑스러운 모양이다.딤프(DIMF)에도 자세히, 오래 보아야 이쁘고 사랑스러운 뮤지컬이 한 편 있다. 뮤지컬 '투란도트'가 그것이다. 투란도트는 지난 2011년 초연된 이후 거의 매년 딤프 축제기간에 무대에 오르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오며 지난해에는 국내 최초로 동유럽에 라이선스까지 수출하는 쾌거를 올린 작품이다.뿐만 아니라 이미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독성 있는 음악은 언제나 호평을 받고 있지만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항상 마음이 쓰이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올해는 투란도트 1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많은 것을 어렵게 한다. 그래서 딤프에서는 투란도트를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 상영회를 준비했다.어린이날까지 딤프 유튜브를 통해서 투란도트 전막을 즐길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딤프가 가진 모든 아카이브 자료들을 탈탈 털어 축제가 전해왔던 많은 기쁨의 순간들을 나누려고 준비하고 있다. 축제라는 것이 대중들을 위한 것이지만 시간과 마음을 들여 찾아가지 않으면 닿을 수가 없기에 이렇게나마 짧게라도 경험해보시길 바래본다.무대라는 것,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가장 큰 캐릭터는 배우와 관객이 직접 만나 시너지를 내는 생동감에 있을 것이다. 코로나의 여파로 공연계가 어려워지고 있지만 무대가 전해주는 짜릿한 생동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지 못할 것이다. 이에 준비한 유튜브가 전하는 작은 위로가 다가오는 10월, 딤프 축제의 순간까지 조금이라도 버틸 위안과 힘으로 전달되길 바래본다.

2020-05-03 18:30:0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신한평(1726 또는 1735-1809?)  ‘자모육아’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신한평(1726 또는 1735-1809?) ‘자모육아’

오월이라 어린이가 주인공인 그림을 올리고 싶어 신한평의 풍속화 '자모육아(慈母育兒)'를 택했다. 신한평은 영조, 정조, 순조시대에 걸쳐 40여 년을 도화서 화원으로 근무했고,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어진(御眞) 제작에 세 차례 뽑힌 어용화사이다. 영조 49년, 정조 5년, 정조 15년이었다. 조선 숙종 때부터 어진을 그리게 되면 화사의 선발에서부터 제작, 봉안 등의 절차를 임시기구인 도감을 설치해 제도적으로 관리했다. 왕의 초상화를 지칭하는 용어가 어진으로 통일된 것도 숙종 때다. 어용(御容), 성용(聖容), 진용(眞容), 진영(眞影), 여영(御影), 왕영(王影), 왕상(王像) 등이 있었는데 어용은 조선말까지 어진과 함께 사용되었다.어진을 그리는 일은 왕을 직접 보고 그리는 도사(圖寫), 승하한 뒤에 그리는 추사(追寫), 기존의 어진을 본떠 그리는 모사(模寫)의 세 유형이 있었다. 조선후기 어진도사에는 왕의 얼굴을 그리는 주관화사 1명, 몸 부분 곧 옷을 그리는 동참화사 1명, 설채(設彩)를 돕는 수종화사 4-6명 등 총 6-8명이 동원되었는데 많을 때는 13명이 되기도 했다. 신한평은 세 차례 모두 수종화사로 참여했다. 이 때 어용을 그린 주관화사는 각각 변상벽, 한종유, 이명기였고, 동참화사는 세 번 모두 김홍도였다. 강세황이 "무소불능(無所不能)의 신필(神筆)"이라고 한 김홍도는 한 번도 주관화사가 되지 못했다. 도화서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인 초상화에 있어서만큼 김홍도의 시대에도 쟁쟁한 대가가 많았다.금상(今上)을 지척에서 대면하고 관찰해 "용안을 모시는" 일은 단순한 그림 제작이 아니었다. 화원 최대의 영광이었고 일이 끝나면 포상으로 벼슬이 내려지는 특혜가 따랐다. 신한평이 영조 50년(1774년) 당시 신지도에 유배되어있던 이광사를 그린 초상화가 전하고 있어 그의 초상화 실력을 잘 보여준다. 어진도사의 공로를 치하하는 수로지은(酬勞之恩)으로 신한평이 신지도 만호(萬戶)에 제수되었을 때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인지 이광사의 아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서 조선의 명화가로 정선, 강세황, 김홍도, 심사정 등과 나란히 신한평을 꼽았는데 '이광사 초상'을 보면 수긍이 간다.지금 전하고 있는 신한평의 작품은 10점 미만이다. 그 중에 풍속화 '자모육아'가 있어 그의 아들이 혜원 신윤복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세 아이와 엄마를 현실감 나게 그린 '자모육아'는 실제 모델을 보고 사생했음이 분명하다. 신한평의 외동딸과 두 아들 윤복과 윤수, 그리고 그의 아내였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엄마 뒤에 서서 있는 울고 있는 남자아이는 장남인 어린 신윤복이 된다. '일재(逸齋)'로 호를 크게 썼고 그 아래 백문방인 '산기일석가(山氣日夕佳)'를 찍었다. "산 기운은 해 저녁에 아름답고"는 도연명의 시 '음주'의 한 구절이다.신한평은 미인도도 잘 그렸다. 정조 때 대 수장가인 김광국이 신한평에게 미인도를 주문한 일화가 『석농화원』에 나온다. 그림은 전하지 않고 신한평의 미인도에 대해 "풍만한 살결과 어여쁜 자태가 너무나 실감나서 오래 펼쳐볼 수가 없었다. 오래 보았다가는 이부자리를 망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라는 김광국의 솔직한 감상평만 전한다. 미술사 연구자 * 지난 회 이도영 '세검정' 화제 중 '잔춘일(殘春日)'은 '전춘일(餞春日)'의 오기임을 죄송한 마음으로 정정합니다. 지적해 주신 허(許)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2020-05-03 06:30:00

[2020 세상 읽기] 300 : 한국의 부활, 21대 국회의 사명!

[2020 세상 읽기] 300 : 한국의 부활, 21대 국회의 사명!

식스팩에 근육질로 다져진 몸매, 불타는 듯 강렬한 눈빛, 화려하고 역동적인 액션은 금세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조국을 위해 앞 뒤 보지 않고 직진하는 스파르타인들의 근성에 강한 애국심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마지막까지 당당히 싸우다 최후를 맞는 스파르타 전사 300명의 희생은 눈물겹다. 이상 영화 '300'의 이야기이다.공교롭게도 스파르타 전사 300명은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와 같다.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 전, 국민을 위한 그들의 결의와 맹세는 스파르타 삼백 전사들 못지 않다. 그러나 막상 국회의원이 되어 4년이 흐르면 초선이어서 당의 거수기 역할 밖에 할 수 없었으니 재선 의원으로 만들어 달라고 읍소한다. 재선 뒤, '한 게 뭐있냐'라는 비판에는 3선이 되어 상임위원장이 되면 막대한 예산을 가져올 수 있다며 또 한 번 읍소한다. 심지어 중진이 되어 계파싸움에 휘말릴 때면 대권 대망론을 내세우며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는 마술을 부린다.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심의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공천받기 위해서는 당론에 묶여있어야 하며, 핵심 지지층과 지역 단체장 등 정치적 경쟁자, 그리고 지역 유지들의 눈치를 봐야 기에 지역숙원사업과 예산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기에는 인프라 예산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인프라 건설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장밋빛 전망을 보여주지만 낙수효과 등 효과성 측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또, 나날이 조세저항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시민단체의 눈은 피할 수 없으며 지역구 쪽지예산이라도 가져올 때면 언론의 질타를 맞기도 한다. 기껏 가져온 예산은 과도한 지방비 매칭으로 차라리 국비를 따오지 말라는 볼멘소리와 지역현실과 맞지 않는 특정 R&D예산에 대한 반갑지 않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국회의원 자리가 마냥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재개발, 재건축의 호재는 지역 국회의원들을 가장 존재감 있게 만드는 공약이지만 필연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낳아 임대상인들에게는 악재가 되며 그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타 지역으로 떠나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속출한다. 또, 좋은 학군에, 새 아파트에 살고 싶은 서민들의 소망은 '거액의 대출'이라는 요단강을 건너게 만든다. 그 결과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줄고 소비는 줄일 수밖에 없기에 그 만큼 지역경제는 위축된다. 비싼 아파트에 사는 가난한 서민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도 틀린 얘기만은 아니다.얼마 전, 우리는 21대 국회의원 300명을 코로나 태풍의 한 가운데서 선출했다. 정당을 떠나 코로나 사태가 주었던 우리 사회의 숙제들은 21대 국회가 풀어야할 숙명이 되어 버렸다.코로나의 위력은 막강했다. 인류의 이동과 교역을 가로막을 만큼 그 위세는 대단했으며 세계화의 후퇴, 보호무역 강화, 빈부격차 심화, 개인주의 성향이 강화될 거라는 예상을 나오게 했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 이후, 자유질서가 가고 '성곽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고 말한 前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의 말은 수긍이 간다. 어쩌면 컨테이너로 상징되는 세계화의 물결이 멈추고, 중요한 생산시설이나 장비를 자국으로 옮기고 빗장을 걸어 잠그는 새로운 '뉴 노멀'의 도래는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는 분명히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인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는 또 창궐할 수 있기에 이동제한과 자가 격리, 조업중단 등 경제적 셧다운의 가능성은 늘 상존할 수 있다.이러한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직업과 노동의 종말'을 부르는 4차 혁명에 대한 대응책과 수출위주의 우리 경제에 근본적 체질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텅 빈 도로, 승객이 없는 버스, 문 닫은 가게가 즐비한 도시의 모습과 무급휴직이 다반사 되는 현실은 수면 아래에 있던 '기본소득'이라는 어젠다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으며 이번 기회에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시적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게 만들었다.찬성론자들은 기본소득이 상시적 재난에 대비하고, 복잡한 복지시스템을 단순화해 중복을 막고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복지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본소득이 기존의 각종 보조금, 사회보험, 복지 수당 등을 통폐합시켜 행·재정의 낭비를 제거할 수 있고, 내수경제 활성화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어쩌면 상시적 기본소득제도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에게 복지 포퓰리즘 공약의 유혹이나 낭비성 지역 인프라 예산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외환위기(1997년)나 금융위기(2008년) 등 국가 재난 후, 공직 등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분위기는 확산되었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만연된 공직선호 현상은 다원화된 사회발전을 추진함에 있어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연금제도나 정년보장이 공직선호의 주된 이유라면, 기본소득은 불확실한 미래를 어느 정도 담보하여 창업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고, 사회적 보호망을 강화시켜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재양성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지식기반산업 등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또한 고도의 압축성장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각인된 부정적 신념 중 하나가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인데 기본소득은 저소득층의 생활고로 인한 범죄를 줄일 수 있고, 자력갱생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기에 형사정책적 측면에서도 그 의미가 있다.우리나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의료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다. 의료보험제도는 상부상조 정신에 입각한 한민족 특유의 '긍휼'이 바탕이 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건국이념과는 달리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의 영원한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사상은 어쩌면 기본소득 개념과 가장 부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도는 많은 장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재원 문제, 도덕적 해이와 역차별 문제, 각종 연금 등과의 통·폐합 문제 등 많은 난제가 내포되어 있다. 의료보험제도처럼 세계인들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기본소득제도가 21대 국회에서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며 마키아벨리가 남긴 명언을 이 칼럼에 남기고 싶다."어떤 정치체제를 지키고 싶으면 필요한 경우에 그 정치체제의 이념에 어긋나는 일도 과감하게 해치울 만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국가는 국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기본소득제도로 실천해 보면 어떨까? 그 실천적 과제가 21대 국회의원 300명의 용기와 헌신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자유기고가 이상철

2020-05-02 06:30:00

[광장] 927년 공산전투와 대구 지명(상)

[광장] 927년 공산전투와 대구 지명(상)

통일신라 말기, 신라의 국력이 쇠퇴해짐에 따라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이 후삼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격전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 가운데 우리 지역 팔공산에서 벌어진 공산(동수)전투는 견훤과 왕건이 목숨을 건 한 판의 처절한 전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견훤에게 크게 패해 쫓기던 왕건이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 후삼국을 통일해 가는 과정은 한편의 역사 드라마이다.TV 연속사극 '태조 왕건'은 2000년 4월〜2002년 2월 총 200회에 걸쳐 방영돼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인기 드라마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드라마 '태조 왕건'을 통해 대구의 공산전투가 소개돼 대구 지역 브랜드를 홍보할 좋은 기회를 가졌으나,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당시 팔공산 곳곳에서 벌어졌던 크고 작은 여러 전투를 비롯해 파군재(동구 지묘동)에서 왕건 군사가 궤멸되어 왕건 홀로 퇴각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지명들은 치열했던 전투 상황과 왕건의 심정을 잘 나타내준다. 필자는 927년 팔공산에서 일어났던 공산전투에 관해 역사적 자료와 구전을 토대로 2차례에 걸쳐 지명 유래를 추적해본다.신라의 수도 경주를 침탈하기 위해 쳐들어오는 견훤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신라 경애왕은 고려 왕건에게 도움을 청한다. 처음에 태조 왕건은 공훤 장군으로 하여금 1만 명의 군사를 데리고 신라를 도우러 가게 한다. 그러나 상황이 다급하여 왕건이 정예 기병 5천 명을 직접 거느리고 출정하게 된다. 때는 고려 태조 9년(927년)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었다. 개성에서 출발하여 빠르게 행군한 왕건 군대는 마침내 팔공산 기슭 칠곡 부근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 팔공산 자락에서 숙영을 하게 되었고, 그곳이 지금의 팔공산순환도로변에 위치한 대왕골이다. 이곳 지명은 대왕골, 대왕암, 대왕재(동구 덕곡동과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경계)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대왕은 바로 왕건을 의미한다. 당시 기병 5천 명이 대왕골(현재 대구선명학교와 송광매기념관 등이 위치한 곳)에서 숙영하는 동안 왕건은 수행 장군들과 대왕암에 앉아 전략을 숙의했던 것으로 전해온다. 그때 왕건이 앉았던 바위가 대왕암이며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은 대왕골에서 송광매기념관을 운영하는 권병탁 전 영남대 교수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나이 드신 지역 주민들에게 오래전부터 들어왔다고 한다. 즉, 공산전투와 관련한 최초의 장소는 대왕재가 되는 것이다.여기서 하룻밤을 보낸 후, 왕건 군대는 곧바로 지금의 동화사 방면으로 진군하여 일단의 견훤 측 소규모 병사들과 교전하여 승전하고 주력부대를 치기 위해 다시 진군하게 된다. 이때 견훤의 주력부대는 영천 은해사 옛터 부근(태조지)에 매복하여 왕건 군사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이러한 계략을 모른 채 이곳까지 오게 된 왕건 군대는 매복하고 있던 견훤 군대로부터 불시의 공격을 받아 상당수의 군사를 잃어버린다. 퇴각하던 왕건 군대가 먼 길을 온 탓에 체력이 떨어지고 사기도 저하된 상태에서 지묘동 작은 고개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사기가 오른 견훤 군사들이 진군나팔을 불었고, 그 나팔 소리를 들었던 지묘동의 작은 고개가 바로 나팔고개다. 동화천변을 따라 퇴각하던 왕건 군대는 동화천이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동화천 건너편에 주둔하던 견훤 군대와 다시 전투를 벌여 여기서는 왕건 군대가 승기를 잡게 된다. 동화천을 두고 양 군사들이 쏜 화살은 동화천 바닥을 가득 메우게 되었고, '화살로 가득한 내(川)'라는 의미의 살내 또는 전탄(箭灘)이 유래되었다.

2020-05-01 18:30:00

[기고] 고사(枯死) 직전 원전산업 다시 살려야

[기고] 고사(枯死) 직전 원전산업 다시 살려야

세상만사가 살리기는 어렵지만 죽이기는 쉽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좋은 정책을 만들기는 어려워도 '망치기'는 쉽다.원자력건설산업은 세계 최고의 기술, 막대한 수익성, 무궁한 세계시장, 반도체와 자동차를 능가하는 에너지산업이다. 30년간 쌓아온 기술이 탈원전정책으로 3년 만에 고사 직전에 놓였다. 한창 건설 중이던 신한울 3·4호기를 중단시켰다. 내년과 후년 준공 계획이었던 신고리원전 5·6호기는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고, 경북 영덕에 건설하기로 한 천지원전 4기는 부지만 물색하다 하세월이 됐다. 잘나가던 두산중공업이 파탄 직전에 처해 자구 노력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됐고, 삼성 한화 SK GS 현대건설 등 굴지의 원전 건설사들도 중대한 어려움을 맞아 원전산업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기술이 사장되고, 전문인력이 고사하면서 세계 최고의 원전 강국이 시장에서 아예 퇴출될 위기다.2017년 현재 원자력발전소는 세계 30개국에서 449기를 운용하고 있고 27개국에서 164기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1기당 평균 10조원임을 감안하면 1천640조원의 시장이 당장 열려 있다. 2014년 세계원자력협회(WNA) 자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세계적으로 1천500조원이 원전 건설에 사용될 것이며 이 중 아시아에서 800조원이 투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까지 원전 발전용량이 60%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정부가 발목을 잡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 등이 세계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2017년부터 중국은 최소 11개국에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고 러시아는 동구권과 러시아의 위성국가에서 시장 우위를 점거, 우리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인도 폴란드 베트남 루마니아 영국 등에서 원전 건설 쟁탈전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우리는 '지붕 쳐다보는 닭' 신세가 됐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일으켜 탈원전 정책의 근거가 된 일본도 지난해 원전 재개를 천명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원전산업=재앙산업'이란 인식을 바꾸지 않고 있다.당연히 해외 진출은 더 어렵게 됐다. 사태가 이런데도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기간산업을 대상으로 40조원을 지원하면서 두산중공업 등 고사 직전의 원전산업에는 근로자 해고 방지를 위한 인건비 정도를 지원한다고 한다. 기업이 인력을 고용하는 이유는 생산에 참여하기 위한 것인데 원전을 못 짓게 하면서 인력을 유지하라는 것은 기업을 두 번 죽이는 것 아닌가? 정부는 최근 원전해체연구소 설립을 위해 3천223억원을 투자하는데 한수원 등 기관에서 2천억원을 출연토록 했다.해외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연구해 온 사업이니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시체놀이에 불과하다. 한수원 등이 재원을 마련하려면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 더군다나 원전 해체는 빨라도 10년 뒤에야 실전에 들어간다. 해체 인허가만 2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우선 빚을 내 투자하더라도 갚을 능력을 마련해야 한다. 돈줄을 꽉 막고 10여 년간 멀쩡한 건설인력과 기술은 고사시키면서 신장개업으로 없는 기술과 부족한 인력수급을 위해 돈을 퍼부으라니 밑 빠진 독에서 물을 대라는 격이 아닌가. 당장 연못에 고기를 두고 왜 다시 못을 파는가? 원전산업을 망쳤다는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탈원전정책'을 파기해야 한다.

2020-04-30 18:30:00

[매일춘추] 쉼표의 음악이 던져주는 삶의 메시지

[매일춘추] 쉼표의 음악이 던져주는 삶의 메시지

우리는 이따금씩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되새기고는 한다. 앞을 향해 너무나 달려오기만 하진 않았을까. 봄이 성큼 다가온 지금, 앞으로에 대한 건실한 설계도 좋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쉼'이 아닐까.'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작곡가, 바로 존 케이지이다. 그의 수많은 음악 가운데, '침묵의 음악'이라고 불리는 작품 '4분 33초'는 현대음악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새기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쉼이라는 의미를 던져주기도 했다.어느날, 한 연주자가 천천히 피아노가 놓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자리에 앉은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그 위에 악보를 올려놓았다. 청중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숨죽이며 곧 이어질 연주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했던 피아노 소리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다. 연주자가 청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청중들은 기대했던 피아노 소리 대신 공연장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침소리를 포함하여 삿대질을 하며 고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소리, 웃음소리 등의 소음을 들었을 뿐이다.연주회에 참석했던 청중들은 지금까지 들어왔던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 연주를 들었다. 정확하게는 연주를 하였지만 연주되지는 않은 음악, 음악은 음악인데 소리가 없는 음악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날 그 곳에 모였던 청중들은 음악 대신 소음을 들었다. '이게 무슨 음악인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어쩌면 지금도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이 시도가 음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진 음악. 이 작품을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음표만이 음악(연주)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기존 관념에서, 쉼표도 음악을 전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아주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했고, 사람들에겐 충격이기도 했다.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충격이 '여유'와 '쉼'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이다. 인류 역사의 누적된 연주 역사에서 '4분 33초'의 연주는 매우 작은 여유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 여유가 수백년간 빼곡한 음표들로 연주되어온 음악사 전체를 돌아보고, 우리도 모르게 갇혀 있었던 '연주'에 대한 관념을 바꿀 기회를 얻었다.이러한 반란은 쉼에서 비롯된 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대화보다 침묵이 좋은 열쇠가 될 수가 있고, 작품에서도 채움보다 여백이 더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 이처럼 비워낸 후 새로 시도하는 움직임이 좀 더 값질 것이다.우리의 일상에도 마찬가지다. 채우기에 급급해 앞만 보며 살아온 지친 일상에 가끔 이러한 '쉼'이 필요하다. 이번 달에는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존 케이지의 빈 악보가 보여준 것처럼 휴식 역시도 우리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임을 잊지 않기를….

2020-04-30 18:30:00

[춘추칼럼] 좋아요 어법

[춘추칼럼] 좋아요 어법

최근 몇 년, 청소년들을 만나고 젊은이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아니, 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날마다의 생활이기도 했다. 거의 날마다 전국의 중학교나 공공기관을 찾아다니면서 문학 강연을 했기 때문이다.젊은이들, 특히 10대나 20대 젊은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새롭게 느끼고 배운 것이 있다. 그들의 어법이 매우 분명하고 깔끔하다는 것이다. 주저함이 없고 굴절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라는 말은 아니다. 말하자면 자신감 같은 것이다.이것은 매우 반갑고 좋은 현상이고 하나의 바람직한 변화이다. 그만큼 그들의 내면세계가 클린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여유로움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증거이다. 예를 들어 '좋다'는 말도 그렇다. 예전 사람들은 직접 대고 좋다고 말하지 않았다.약간은 미온적이고 보류하는 쪽의 표현이라 할까.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정도로 에둘러 얼버무렸다. 그러나 요즘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냥 곧바로 '좋아요'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것도 번번이 그렇게 말하고 주저하지 않는다.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바로 이거야.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어법이야. 그만큼 우리의 삶의 형편이 좋아지고 젊은 사람들의 세상이 밝아진 것이다. 이러한 어법 하나에도 우리의 소망이 들어 있고 내일에의 가능성이 숨 쉬고 있음을 본다.나의 시 가운데 이런 짧은 시 하나가 있다. '좋다'란 이름의 작품이다. 언뜻 보면 뭐 이런 글이 무슨 시인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히 시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시를 한 번 들여다보자. 시의 제목까지 합쳐서 총 15개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좋다'는 뜻의 단어가 역시 제목까지 합쳐서 네 번이나 나온다. '좋다'란 말이 아닌 말은 '하니까'와 '나도' 두 개의 단어뿐이다. 시 전체가 '좋다'란 단어가 변형되어 반복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그런데도 독자들은 이 시에 그 나름대로 감동이 있다고 반응한다. 지금 우리는 서로서로 좋다는 느낌을 많이 가져야 하고 또 그렇게 말하면서 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다. 아니다, 싫다가 아니고 그렇다, 좋다이다. 그래야 한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처음 내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우리 집 손자 아이 때문이다. 세 살쯤 되었을까. 마침 아이가 말을 배울 때였는데 우리 집에 오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영화를 자주 보았다. 아이가 좋아라 보는 프로그램 가운데 붉은색 커다란 부리를 가진 앵무새가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그 앵무새는 툴툴거리기를 잘하고 화를 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영화를 자주 보아서 그랬을까. 아이에게 말을 걸면 제일 자주 하는 말이 '싫어요'였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부르는데도 '싫어요'라고 말하는 저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말을 할까.그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쓴 시가 바로 '좋다'란 시이다. 그렇다면 이 시를 한번 '싫다'는 말을 넣어서 바꾸어 읽어보자. '싫어요/ 싫다고 하니 나도 싫다.' 대번에 분위기가 달라지고 세상 모습까지 뒤집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말 한마디가 중요하고 무섭다.이제 우리는 부디 좋다는 말을 자주,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나아가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좋다는 말이나 긍정적인 말을 자주, 많이 하면서 살다 보면 우리들의 삶이나 세상이 조금씩 좋아지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뀌지 않을까.정말로 그건 그렇다. 상황이나 삶이 긍정적이고 좋아서 좋고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좋다는 말,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고 자주 들어서 상황이나 삶이 좋은 것이 되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세상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세상이 아닐까.그것이 진정 그러할 때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자주 사용하는 '좋아요 어법'은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꿈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디 우리 좋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2020-04-30 18:30:00

[특별기고] 소상공인의 매출 절벽, 착한 선결제 캠페인으로 극복하자

[특별기고] 소상공인의 매출 절벽, 착한 선결제 캠페인으로 극복하자

2019년 말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전 세계로 확산되며 20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갔고 공장, 기업, 학교, 시장 등 우리의 일상은 멈춰버렸다.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일상조차 힘들게 되자 사람들로 넘치던 거리는 한산해졌다.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먼저 직격탄을 맞은 분들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다.이는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상공인이 폐업할 때 지급하는 노란우산 공제금 지급 건수가 크게 늘었다. 노란우산 공제금은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가 폐업 신청을 하거나 사망한 경우, 영업 당시 납입한 공제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지급 사유 98%가 폐업으로 소상공인 업황을 파악하는 주요 지표로 사용된다.대구경북지역 소상공인은 지난 1월부터 3월 25일까지 1천947곳이 폐업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1천709건) 대비 13.9%(238건)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어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소비자심리지수는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를 나타내는 지표로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인 경제 전망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의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78.4)와 최대 낙폭(-18.5p)을 기록했다. 대구경북의 경우 74.6으로 전국보다 3.8p 낮고 1월(97.6)보다 23p나 하락했다.이처럼 생존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를 위해 정부는 긴급고용안정지원금, 대출, 세제 혜택 등 재정을 풀고 있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며, 국민의 연대와 협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중소벤처기업부에서는 매출 절벽에 처해 있는 소상공인을 위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착한 선결제 대국민 캠페인'을 4월 27일부터 5월 26일까지 1개월간 전개한다. 착한 선결제 캠페인은 평소 자주 이용하는 음식점, 동네 가게 등 소상공인 업소에 선결제하고 재방문을 약속하는 착한 소비자 운동이다.다행히 은행, 대학 등 각계에서 정성을 보이고 있다. KB금융그룹이나 우리금융그룹 등에서는 상생을 위해 전국 각 지점에서 자주 이용하는 인근 식당에 억대 규모로 선결제하였고, 체육문화 행사비를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하였다. 경일대는 스쿨버스 임차료 1억원을 선결제하는 등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정부에서도 선결제 활성화를 측면 지원하기 위해 음식점업 및 숙박업, 관광업 등 피해 업종에 대한 신용‧체크카드 등 소득공제율을 오는 6월까지 일률적으로 80%로 확대하는 작업을 추진 중에 있고, 선결제 인증샷을 찍은 착한 소비자에게는 특별재난지역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경품으로 지급하는 이벤트를 실시 중에 있다.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에서도 지역 유관기관의 자발적인 동참을 유도하고 SNS 이벤트나 전광판 광고 등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당장의 매출 절벽을 극복하고 시련을 버텨내고 이겨낼 용기와 희망을 드리고자 애쓰고 있다.지역 주민께서도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존폐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아름다운 동행에 동참해 주시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당장 내일이 힘든 자영업자이지만, 당장 오늘 더 힘든 당신을 응원합니다." 칠성시장 야시장 상인들이 자신들도 영업하지 못하던 때에 고생하는 의료진을 위해 보낸 도시락에 적힌 격려의 글이 생각난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힘을 보태줘야 할 때이다.

2020-04-30 18:25:03

[강규형의 새론새평] 대통합 전략 실패한 통합당, 당의 가치 사라졌다

[강규형의 새론새평] 대통합 전략 실패한 통합당, 당의 가치 사라졌다

21대 총선의 후유증은 상당히 클 것이다. 투개표에서 선거부정이 없었다는 전제하에 요약하자면, 요번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은 난데없는 우한 바이러스 사태가 가장 큰 요인일 성싶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없는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방송 등 선전선동 기구들을 장악한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우한폐렴 초기 대응 실패를 교묘히 성공 스토리로 윤색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덧붙여 사회보장으로 위장한 노골적인 매표(買票) 행위가 통했다.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서울 광진구의 고민정 후보 지원 유세에서 "고(민정) 후보를 당선시켜 주시면 저와 민주당은 100%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드리기 위해 전력을 다 하겠다"는 역대급 악성 매표 행위를 스스럼없이 행했다. 이제 고 씨가 당선됐으니 국민 전부가 '하사금'을 받을 차례인가? 설사 지원금이 전 국민에게 지급된다 해도 그게 고 씨의 당선 때문이라는 괴상한 논리가 성립되니, 이런 난센스 같은 상황을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이것은 노골적인 선거법 위반이다.이외에도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무기력도 지적을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다. 리더로 내세운 '황교안'이라는 상품은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황교안이라는 잠재적 대권 후보가 조기 탈락한 것이 자유우파 세력에게는 다행이라고까지 자조하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황 전 대표가 택한 전략은 '대통합'이었고 그가 기용한 책사는 박형준 전 의원이었다. 한 유튜브가 잘 요약했듯이 요번 총선은 황의 '대권욕'과 박형준의 '몽상'이 빚은 '대참사'였다. 박 전 의원은 설득력 있게 말하는 재능은 있으나, 지금까지 자신이 주도한 여러 승부에서는 거의 언제나 참패하는 징크스도 갖게 됐다. 더군다나 막후에서 좌지우지한 사람이 소위 정치 브로커인 유모 씨라는 항간의 소문은 기자들의 취재로 거의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이런 중차대한 일에 이런 류의 사람을 주요 전략가로 썼다는 사실은 황교안 리더십의 수준을 보여줬다.필자는 누누이 요번에 제1야당에서 통합과 혁신은 같이 갈 수 없다고 강변했었다. 대통합은 우파의 제 정파들을 끌어안아야 가능한 것이기에, 거기에는 혁신이 자리 잡을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파 세력의 분열을 막기 위해 이 전략을 쓴 것까지는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통합은 소위 중원, 즉 중도층을 공략하는 데 집중됐다. 총선 주도 세력의 평소 지론이 탈이념 중도실용이니 능히 예측 가능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향이 너무 치우친 형태로 진행되면서 정당의 생명인 가치와 이념이라는 공통분모는 철저히 무너졌다.특히 유승민계에겐 유 의원의 불출마 대신에 지나친 특혜가 주어졌으며, 안철수 측이 지역구 후보를 안 내는 대신에 안철수계 인사들에게도 엄청난 배려가 행해졌다. 대신 그동안 자유한국당을 지켜온 인사들은 오히려 찬밥 신세가 됐고,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진성 우파 세력은 철저히 무시됐다. 특히 '조국 사태'로 격발된 10월 항쟁의 정신은 사라졌다. 자유우파적 가치가 실종된 혼이 없는 정당, 잡탕밥인 정당이 됐다. 그 결과 실체 없는 중도층 흡수는 실패했고, 고정 지지층이 있는 영남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처참한 패배가 기다렸다. 결사적으로 당이 막으려 했던 패스트트랙을 오히려 지지한 안철수(국민의당)계 사람들이 별 반성도 없이 무조건 공천받는 당에게 무슨 가치와 기준을 기대할 수 있겠나. 결과는 이들의 전원 낙선이었다.유승민계는 영남에서 주로 공천을 받아 쉬운 당선을 따낸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새로운 주도 세력이 돼서는 안 된다. 이런 공천을 주도한 김세연 의원도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오히려 차세대 지도자로 추대되는 움직임조차 있으니 통합당은 아직도 정신을 덜 차린 듯하다. 정치적 상상력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기력하다.영남지역에서 비교적 쉽게 당선된 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몇 명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차세대 리더로서의 자질이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다. 특히 "대구 코로나"라는 집권세력의 특정 지역 희생양 만들기의 역풍으로 사실상 전원 당선된 대구경북지역에서 기대주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엄연한 사실은 우익 정당뿐 아니라 이 지역에 어두운 미래를 예견한다. 해결해야 할 난제이다.

2020-04-29 18:38:30

[신창환의 같이&따로] “우리 모두 잘 해왔습니다.”

[신창환의 같이&따로] “우리 모두 잘 해왔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이 쓴 '황무지'라는 시의 첫 구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라일락이 피는 4월의 피폐해진 현실을 보면서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단순히 땅의 황폐화를 의미하기보다는 전쟁 이후 유럽의 정신적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오늘은 4월의 마지막 날이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에게도 2020년 4월은 잔인한 4월이었고 황무지와 같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예년에 비해 강추위 한번 없이 따뜻했던 지난겨울, 우리는 꽃피는 봄을 기대하면서 가족과 함께 설 연휴를 보냈다. 하지만 설 연휴가 지나자마자 유난히 길고도 힘들었던 봄을 맞이하게 되었다. 1월 말 중국 우한에서 폐렴 질병이 유행한다고 할 때 이것이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인지도, 우리 사회와 전 세계에 이렇듯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전혀 알지 못했다.알지 못했기에 공포심과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급속도로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대구는 바이러스의 근원지처럼 주목받았고 모든 일상들이 차단되었다. 마치 대한민국의 외딴섬처럼 대구는 인식되고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이었지만, 대구 시민들은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정부의 코로나 대응 정책에 잘 따랐다.3월 22일부터 4월 5일까지 15일간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다시 4월 19일까지 2주간 연장된 사회적 거리두기, 그리고 현재의 생활방역까지 3개월 동안의 길고 긴 시간을 잘 견디어왔다. 정부의 신속한 정보 공개 및 방역대책 덕분에 코로나바이러스를 남의 일처럼 여기던 일본, 미국, 유럽 국가들이 이제는 우리의 대응에 대해 칭찬하며 벤치마킹하고 있다. 초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차분한 시민들의 대응은 어려운 위기를 잘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정부의 대응도 적절했지만, 대구 시민의 높은 시민의식도 코로나 확산을 막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길고 길었던 사회적 거리두기도 완화되고 이제는 조금씩 우리의 일상생활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종교 행사, 도서관 및 공공시설의 이용, 각종 공인시험도 지난 주말부터 재개되었고, 오늘부터 시작되는 황금연휴를 맞아 강원도와 제주도의 숙박시설은 코로나 이전의 예약률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잔인하게 시작된 봄이었지만 개나리, 목련, 벚꽃은 우리에게 봄이 왔음을 알렸고, 만개한 라일락은 꽃향기를 통해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생명은 태어나고 자연의 생기는 여전히 지속되듯이 우리의 일상도 이제는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내일은 5월의 첫날이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시작된다. 이번 주말 기온이 최고 29℃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예보를 접하니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한참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던 시점에, 기온이 올라가면 바이러스가 약화되어 코로나 전염병이 종식될 것이라는 뉴스가 돌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서의 코로나 발병 사례를 볼 때, 기온 상승에 따른 코로나바이러스 소멸은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전문가들의 합리적인 판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비합리적인 생각마저 드는 것은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한때 고립된 지역으로 전 세계가 주목했던 대구에서 우리는 잔인한 봄을 잘 이겨내고 버텨 왔다. 엘리엇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라고 쓰면서 황무지 같은 현실에서도 생명을 얘기하면서 희망을 던지고 있다.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봄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아직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온전히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잘 이겨낸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자. "우리 모두 잘 해왔습니다."4월의 마지막 날에 5월은 싱그럽게, 활기차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따뜻한 춘풍 속에서 신선한 향기를 흩날리는 라일락꽃의 싱그러움을 맛볼 수 있는 5월을 말이다.

2020-04-29 17:30:00

[기고] 이순신 정신으로 위기를 기회로

[기고] 이순신 정신으로 위기를 기회로

4월 28일은 전 국민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성웅 이순신 탄생 475주년 기념일이었다. 왜 또다시 이순신인가. 장군은 모든 공직자와 인류의 사표이자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리더십의 표상이기 때문이다.노산 이은상 선생은 1975년 7월에 발간한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에서 장군의 근본 정신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사랑, 정의, 지극한 정성, 자력(자강불식)으로 보았다. 이 근본 정신들이 상호융합해 합일되어 성인에 가까운 고매한 인격을 형성했고, 인격을 바탕으로 수십 가지의 리더십이 발현되었다.최근 국민 여론조사에 의하면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이 장군과 세종대왕이다. 저명한 역사학자 한영우 교수는 최근 발간된 세종평전에서 "대왕이 10학에 정통했다는 것은 박사학위를 10개쯤 받았다는 말과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장군 또한 난중일기, 임진장초, 각종 문집, 언행 등을 보면 사서삼경, 역사, 무경칠서 등 인문학과 군사 전략전술, 최첨단 과학기술 소양이 깊고 넓었다.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충무공 마니아이고 경제계에서 장군을 연구하는 이가 많은 이유는 장군은 핵심 역량을 가지고 전승이라는 대성과를 거두었고, 명량해전이라는 위기 극복 과정에서 큰 지휘력을 발휘해 대성공을 이루었기 때문일 테다.장군은 난중일기에서 이를 '차실천행'(此實天幸·이것은 실로 천행이다)이라고 쓸 만큼 지나칠 정도로 겸손했다. 매 전투마다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임했다. 당시 조정에서는 지원을 거의 할 수 없어 자력으로 군비 조달, 무기 개발, 군량미 확보 등을 위하여 소금 굽기, 고기잡이, 둔전 경영, 해로통행첩 발급을 시행하는 등 사실상 당대의 훌륭한 CEO이기도 했다.세계 초인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장군이 거북선을 건조하고 해로통행첩 제도를 발굴, 시행한 것처럼 이 세상에 없는 과학기술과 제도를 창제하고 후발 국가들과의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장군은 현대 리더십의 상징인 진정성, 소통, 공감, 미래통찰력의 달인이었다.현재 우리나라와 세계는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취약계층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은 대단히 크다. 장군이 백성, 피난민을 대하듯 나와 내 가족의 일처럼 돕고 지원해야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 중앙정부, 지방정부, 전 국민의 자제와 협조, 각종 기부,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전 세계가 우리나라에 대해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19에 대처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있다.그중에서도 고도의 전문성, 과학,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분석, 투명성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고, "한 시간보다는 더 잔다"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세계에서 극찬을 하고 있다. 이성호 대구시의사회 회장은 호소문에서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대구와 시민을 구합시다. 저도 두렵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제가 제일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고 작은 이순신이다.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해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가 큰 어려움을 당하고 각종 제도와 질서는 큰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국난 극복의 DNA가 있다. 각계각층의 리더들이 이순신의 정신인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로 솔선수범하고 희생하고 헌신해서 큰 위기를 큰 기회로 만들어야겠다.

2020-04-29 15:31:48

[종교칼럼]가난을 팔고 부자 되세요

[종교칼럼]가난을 팔고 부자 되세요

사월의 신록은 싱그럽다. 어린 양처럼 순하기까지 하다. 늘 푸른 소나무와 겨우내 외롭게 서 있던 나목에서 싹을 틔운 연두색 숲은 절묘한 색의 대비를 이룬다. 뭉게구름이 피어나듯 찬란하다. 햇살에 비친 숲속 나뭇잎은 어린 소녀의 얼굴이다. 마냥 청순하고 아름답다. 대자연은 생명의 합창들로 가득하다. 폐부 깊숙이 무한한 화음이 들린다. 김순애(1920∼2007)의 '그대 있음에'를 들으며 자연을 찬탄한다. 주말이면 코로나로 움츠린 사람들이 내가 사는 낙화담과 학선정 주변을 찾는다. 가족들은 텐트를 치고 정성 들여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눈다. 푸른 하늘 아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맘껏 웃으며 얘기를 나눈다.부처님 당시 가섭 존자가 길을 가는데 가난한 노파가 우물가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존자가 그 이유를 물었다. "제가 오랫동안 굶주려서 많이 힘듭니다. 주인이 나를 또 박대하기까지 합니다. 내 신세가 하도 처량해서 울고 있습니다." 존자는 노파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가난을 파십시오." 노파는 그 말의 뜻이 의아해 되물었다. "가난을 팔아요? 가난도 누가 삽니까? 아, 팔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팔지요?" 존자와 노파의 말이 이어졌다. "제가 사겠습니다." "어떻게 팔 수 있습니까?" "보시를 하십시오." "아이고, 존자님, 내가 가진 게 뭐 있다고 보시를 합니까?""할머니, 저 우물에서 물 한 그릇 떠서 저한테 주실 수 있죠?" "그거야 뭐 돈 안 드니까, 할 수 있죠." "그게 보시입니다." 물 한 그릇 떠서 올리니까, "잘 마셨습니다. 할머니, 지금부터라도 구걸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연습하지 말고 이 보시 공덕을 생각하시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지니십시오."바라기만 하고 구걸하는 마음으로 살면 계속 가난을 면할 수 없다. 없는 가운데서도 보시하는 인성을 가지면 점차 나아진다.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현실로 나타난다. 부유한 마음을 연습하면 부자가 되고, 구걸하는 마음을 연습하면 거지가 된다. 남이 보시하는 것을 따라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공덕이 된다.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가 있다. 그걸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한다.첫째, 몸으로 일을 하거나 봉사를 한다. 둘째,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따뜻하게 대한다. 셋째, 부드러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넷째, 온화한 얼굴로 웃음을 나눈다. 다섯째, 따뜻한 말로 사랑이 담긴 말을 전한다. 여섯째, 자리를 양보해 준다. 일곱째, 방을 내주는 것으로 잠자리를 제공한다.이런 일은 돈이 없어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면 나와 상대방 마음이 따뜻해진다.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도처에서 들려온다.봉사와 나눔, 기부를 통해 빈부격차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소외된 이웃의 삶을 향상시킬 의무가 있다. 자신의 부와 시간을 나눠 개인이나 복지단체, 종교단체, 무료급식소 등에 참여하면 좋겠다. 급식과 미용봉사, 한방 침뜸, 의료봉사, 교육봉사, 상담봉사, 돋보기안경이나 지팡이 기부, 치매상담, 재능기부를 하면 상호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개인, 사회, 국가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비록 작은 돈이라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유니세프에 후원해 가난과 불평등을 해소해 가야 한다."내가 세상을 접했을 때 삭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세상에 도착하기 전에 나의 아버지가 나를 위해 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나도 내 뒤에 올 사람을 위해 나무를 심는다."('탈무드'에서)처칠은 "인간은 '얻음'(what we get)으로써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러나 삶은 '줌'(what we give)으로써 만들어간다"고 했다. 성경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주는 것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라 했다.가난을 벗어나는 일은 자기도취나 인색, 탐욕과 교만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다.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데서 온다.

2020-04-29 14:28:41

[취재현장]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해지는 두 순간

[취재현장]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해지는 두 순간

지난 주말 가족과 달성군 강정보로 드라이브를 갔을 때였다.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향했지만 바글바글하던 사람들로 바람을 쐬기는커녕 핸들을 다시 되돌려야만 했다. 실은 그리 놀랍지 않은 풍경이었다. '코로나19' 현장을 취재하며 이미 많이 마주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지난 두 달간 시행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옅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지면서 지침은 단지 참고할 매뉴얼에 불과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결이 다른 두 모습으로 좁혀졌다. 내일이란 없는 듯 하루살이 불나방 같던 이들에게는 수오지심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생업을 이어가던 이들에게는 측은지심이 든 것이었다.수오지심은 주말마다 일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어울려 부둥켜 안고 마셨다. 동성로의 노래방에는 평일 낮임에도 마치 불타는 금요일 밤을 연상시키듯 직원들이 서빙으로 분주했다. PC방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가 무색할 만큼 손님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고, 보드게임 카페에는 학생들이 마스크를 입에 걸친 채 한창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밤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술집은 지금이 2020년 4월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손님과 종사자 대부분은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거리두기'란 단순 구호에 그친다는 듯 귓속말을 하거나 상대방과 몸을 접촉한 채 춤을 추기도 했다. 인기 있는 술집에 들어가기 위해 좁은 계단에 다닥다닥 서서 줄지어 기다리는 것은 물론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는 이들도 수두룩했다.측은지심은 절박한 삶에서 나왔다. 생계의 '절박함' 앞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치였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말에서는 서글픈 비장함마저 묻어났다. 취업준비생도 예외는 아니었다. 취업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코로나 감염이라는 전선을 뚫어야 했다.대구의 한 공무원 학원 자습실의 열기는 꺼질 줄 몰랐다. 자습실 책상 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 칸씩 띄어 앉아야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자리가 다 찬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코로나19로 불안하지 않으냐는 물음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에 가까웠다."그런 것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냐. 시험이 다시 언제 진행될지 불안한 게 제일 크다"는 답이었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그 공간에서 수험생들은 거리를 두라며 밀어내는 사회에서 밀려날까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대구도시철도에서 전동차와 역사를 청소하는 노동자들도 잊히지 않는다. 온갖 이물질과 취객을 싣고 오는 전동차 안에서 취객을 흔들어 깨우다 보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온데간데없었다. 두렵지만 낯선 이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고 어깨를 흔들어 '접촉'해야 했다. 그게 그들의 밥줄이었다.가족의 생계를 위해 거리를 좁혀가는 이들과 따분함을 떨쳐내려 거리를 좁혀버린 이들의 간극은 커 보였다. 여러 사람을 태워야 해 미안하다며, 결제를 끝낸 신용카드를 살며시 의자 위에 얹어주며 또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택시운전사의 모습은 벚꽃 풍경 대신 올해 봄 뇌리에 박힌 기억이 됐다.코로나19에서 그를 지켜주는 방패, 마스크와 택시에 비치된 소독제 하나만 들고 생계 전쟁에 뛰어든 누군가의 가장이었다. 그는 또다시 누군지도 모를, 미지의 손님을 찾으러 바쁘게 떠나고 있었다.

2020-04-28 20:05:22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고양이가 옮기는 질병, 알고보니 인간 책임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고양이가 옮기는 질병, 알고보니 인간 책임

나비(코숏·7살) 보호자가 첫 아이를 임신하여 축복받는 와중에 인터넷에 고양이를 멀리하라는 내용을 접하고 걱정스러워 병원을 방문했다. 검사 결과 나비는 지극히 건강했으며 임산부와 태아에 끼칠 염려는 전혀 없다고 설명드렸다.고양이가 인간에게 전파시키는 몇가지 질병들이 있다. 톡소플라즈마, 묘조병, 피부병이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SFTS)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질병들의 공통점은 고양이가 병원체를 옮기는 매개 역활을 한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고양이가 깨끗한 환경에서 지내면 인간에게 질병을 전파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톡소플라즈마는 임신 초기의 여성분들이 염려하는 질병이다. 쥐를 생식하는 고양이의 1% 정도가 분변으로 충란을 배출되며, 그 분변을 임신 초기의 여성이 만졌을 때 감염될 수 있다. 쥐를 먹지않는 반려고양이가 톡소플라즈마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국내 여성들이 톡소플라즈마에 노출될 가능성은 고기를 덜 익혀 먹거나 농사와 야외 활동 시에 흙 속에 포함된 충란을 접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통한 톡소플라즈마 감염이 염려스럽다면 입자가 고운 벤토나이트 고양이 모래를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고양이가 변을 배설하면 마치 '맛동산' 과자처럼 표면에 붙어 변을 말려버리기 때문에 위생적이다. 그리고 화장실 청소는 매일 치워줘야 한다.묘조병은 고양이에게 할퀴거나 물렸을 때 바르토넬라 헨셀라(bartonella henselae) 균이 상처에 감염돼 상처부위가 잘 낫지않고 임파절이 붓고 열을 동반하는 질병이다. 이 균은 벼룩을 통해 감염되었거나 벼룩 배설물을 접촉한 고양이에게 잠복되어 있을 수 있다.. 위생적이지 못한 공간을 배회하는 집고양이의 10% 정도에서 이 균이 발견된다고 보고되고 있다. 예방은 쉽다. 중성화수술을 시켜주고 고양이가 외출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 혹여 낯선 고양이에게 할퀴었다면 경미한 상처라도 깨끗이 소독할 필요가 있다. 길냥이를 보살피는 캣맘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질병이다.고양이 피부사상균은 곧잘 사람에게 전파된다. 캣맘이나 보호소에서 봉사하시던 분이면 한 번쯤 경험하셨을 것이다. 공장식 사육 환경에서 자란 어린고양이에게 잠복돼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감염되면 고양이를 자주 안는 팔이나 목부위에 특유의 원형 가려움증을 동반한다. 고양이가 치료되면 가족들의 증상도 자연히 호전되는 편이다. 새로 입양한 고양이는 수의사에게 검진받을 것을 권장한다. 피부검사와 곰팡이 배양검사를 통해 진단받을 수 있다. 의심되는 고양이에게는 약용샴푸를 처방되기도 한다.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SFTS)은 풀에 존재하는 작은소참진드기가 원인이다.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질병인 만큼 고양이에게도 위험하다. 외출한 고양이 몸에 진드기가 숨어 옮겨올 수 있다. 진드기가 출몰하는 3월부터 11월 사이에는 고양이의 외출을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외출해야 한다면 외부기생충예방용 목걸이 착용을 권장한다.고양이 카페 처럼 많은 수의 고양이가 어울리는 공간일수록 위생 관리는 더 철저해야 한다. 눈이 닿지않는 구석구석을 매일 청소하고 소독할 필요가 있다. 가정이라 하더라도 고양이 수가 많아지면 질병의 잠재 요인들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고양이 공장식 사육은 여러 측면에서 금지돼야 한다. 뜰창에 가두어 키우는 밀집 사육은 그 자체가 고양이 학대이며 질병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경시하다보니 불법적인 자가치료와 약물 오남용이 빈번해진다. 이러한 행위들은 고양이를 입양하는 가족들의 건강 마저 위협한다.고양이를 사육하는 직업인이라 해서 고양이를 물건인양 취급해서는 안된다. 경제적인 논리와 사육자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자가치료가 만연해져서도 곤란하다. 고양이와 개는 가축 이상으로 수 만년을 인류와 함께 동거동락해 온 반려동물로서 존중받고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 이제 국민 정서는 반려동물을 보살피고 배려하는 행동을 정의롭다고 인식한다. 우리가 아이들을 보살피며 행복해하는 이유와 같다.동물을 다루거나, 동물과 관련된 먹거리와 용품, 약품을 취급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물복지와 관련된 소양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4-28 18:30:00

[매일춘추] 이쾌대의 좌절된 자유와 이상

[매일춘추] 이쾌대의 좌절된 자유와 이상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세계를 전장으로 만든 일본은 보국을 강요하였고, 많은 조선인들은 전쟁의 도구로 끌려가 희생되었다. 화가 이경희(1925-2019)는 이 때 징집되었다가 천운으로 살아왔다고 증언하였다. 본적지인 한국에서 징병검사를 받겠다며 일본에서 귀국하였고, 비행기병으로 선발되어 훈련을 받고 가미가제용 비행기를 탈 순서를 기다리던 중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였다.사선에서 돌아온 그의 운명처럼 해방은 말 그대로 억압의 해소와 자유를 가져다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여전히 또 다른 강력한 힘들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45년부터 1950년 사이 많은 사람들은 사상과 진영을 두고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았다. 화단도 예외가 아니었다.이쾌대(1913-1965)는 해방 후 좌익미술단체에 가입하였다. 하지만 1947년 '신천지' 2월호에서 김일성과 스탈린 초상화에 집중하는 사회주의 미술의 현실을 비판하였다. 이후 좌익 예술인 검거로 불안을 느낀 이쾌대는 정치적 경향을 배제한 진정한 민족미술의 건설을 표방한 '조선미술문화협회'를 결성하고, 성북회화연구소를 열어 작품제작과 미술교육에 전념하였다. 혼란의 와중에서도 이쾌대는 작품을 통해 민족해방이라는 큰 꿈을 꾸었던 것 같다.해방즈음부터 시작해 1940년대 말까지 그린 군상 시리즈는 '군상Ⅰ(해방고지)'를 비롯해 100호에서 200호에 이르는 대작 4점으로 구성되어있다. 작품에서는 민족적 수난에서 시작하여 현실의 고난을 헤쳐나가는 민중의 모습, 해방을 맞이하는 환희와 희망 등 자신이 꿈꾸었던 민족의 이상을 대서사시로 펼쳐 보였다. 탄탄한 데생과 기본기를 바탕으로 표현한 인물의 사실적인 묘사, 미켈란젤로를 연상시키는 근육질의 나신의 군상, 이야기를 끌어가는 역동적인 구성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역작이었다.그러나 그의 작품은 두 진영 모두에게 비판받았다. 당시 좌익에서 대두된 '혁명적 로맨티시즘과 리얼리즘' 논쟁은 좀 더 선명한 리얼리즘을 구현한 확실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하였고, 그의 사상을 의심하고 예의주시하던 남한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표현을 위축시켰다.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을 그린다는 이유로 파출소에 불려가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자'라 주장했던 일화도 있다.또한 개인의 자유의지 없이 극심한 혼란기에 강요받은 정치적 입장과 부역은 엄청난 후한으로 다가왔다. 한국전쟁 전 그는 남한진영에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사상전향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어머니의 병환 때문에 서울에 남아있던 이쾌대는 북한군에게 과거 보도연맹에 가입한 일로 또다시 정치적 전향을 강요받아 인민군 종군화가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많은 고민 끝에 결국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둔 채 북한으로 가는 선택을 한다.

2020-04-28 18:30:00

[경제칼럼] 지식재산권도 소통이 우선이다

[경제칼럼] 지식재산권도 소통이 우선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목전이다. 어느 때보다 잔인한 4월을 겪은지라 5월을 맞이하는 각별함이 사뭇 남다르다. 5월은 기념일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가족을 포함한 소중한 관계를 기념하는 일정이 다수이니 지금 같은 시기에 더 의미 있게 여겨질 5월이다.아무래도 현업이 지식재산 관련 업무이다 보니 특별히 눈길이 가는 기념일은 발명의 날이다. 1441년(세종 23년) 4월 29일(양력으로 5월 19일)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한 날을 기념일로 정한 것이다. 1957년 5월 19일부터 시행되었으니 꽤 오래전에 기념일로 지정된 셈이다.발명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서 고도한 것을 말한다. 특허법에서 정한 발명의 정의이다. 또한 특허법은 발명을 보호 장려하고 그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기술의 발전을 촉진해 산업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특허법 제1조)하고 있다. 결국 발명은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수단이며, 그 전제로서 이용이 도모되어 기술 확산을 통한 인류 공영이 전제돼야 한다. 흔히 특허는 독점적 권리이며 자신의 발명을 제3자 침해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으로만 인식되는 것과 분명 구분되는 정의이다.특허 제도가 산업발전에 이바지하는가에 대한 반론 역시 일부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허 제도가 혁신을 주도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오히려 특허권은 자신의 부를 지키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최근에는 소위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 일컫는 '특허경영전문회사'(NPE: Non-Practicing Entities)의 등장으로 특허권의 폐해에 대한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NPE는 실제 개발이나 발명을 하지 않으면서 매입한 특허를 기반으로 소송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이나 단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발전에 이바지하는 바가 없음을 이유로 많은 사회적 비난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논란의 여지를 떠나 특허법은 지속적으로 그 보호 영역을 넓혀왔다. 발명의 보호 대상을 확대해 비즈니스 모델(BM 특허)도 특허로 독점적 권리화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도 발명의 대상으로 하는 법 개정이 일부 국가에서 추진 중이다. 더불어 산업화가 추진되면서 지속적으로 특허권은 강화되었으며, 그 주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술 선진국들이다.우리나라도 최근 특허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훗날 특허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2019년을 꽤나 의미 있는 한 해로 기록할 듯하다. 고의 침해 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법제화가 이루어졌고, 미완성 발명의 범위를 완화하는 판례와 나아가 발명의 본질에 기초해 특허 침해의 균등 범위를 확대하는 판례도 종전과 분명히 대비되는 대법원의 판단이다. 기술 우위의 독점권을 보다 폭넓게 인정함에 따라 특허권자의 보호를 한층 강화했다고 할 수 있다.특허 제도가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개발한 제품이 손쉽게 복제된다면 누구라도 선투자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마땅히 산업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개발 결과에 부여된 독점적 지위를 부의 창출, 유지를 위하거나 혹은 자국 보호의 무기로만 활용한다면 이는 진정한 특허법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최근 코로나19로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자국 우선주의가 국제적 이슈화하고 있다. 국가 간 왕래와 소통에 우선해 자국민 보호를 위해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단연 경제 재건이 우선될 터이다. 이런 와중에 기술 선진국을 중심으로 행여 특허권이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스러움이 단순한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 예외 없이 국가 간 공조, 소통과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시대 지성들의 호소 또한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2020-04-28 13:43:33

[권미강의 생각의 숲] 코로나바이러스의 충고

[권미강의 생각의 숲] 코로나바이러스의 충고

지난 4월 22일 한 통의 편지가 인류에게 보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진 2020년 지구의 날에 있었던 일이다. 공포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서명한 편지는 "지구가 속삭였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다"로 시작된다. 코로나바이러스인 나는 인류를 벌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전쟁과 이기적인 삶으로 지구가 점점 병들어 가는데도 결코 욕심을 버리지 않는 인류를 깨우치기 위해 왔다고 역설한다.'대규모 홍수, 불타는 화염, 강력한 폭풍과 무시무시한 돌풍, 수질오염으로 죽어가는 해양동물들, 녹아내리는 빙하, 혹독한 가뭄….' 이런 현상들이 지구의 절규였음을 알아차렸어야 했다고 다그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소수의 욕심에 의해 일어나는 분쟁은 증오를 낳고 살육을 저지르고 결국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길로 가고 있음을 따끔히 지적한다.그러면서 코로나바이러스인 자신이 지구의 숨통을 터 주고 인류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려고 왔으며 지구가 느꼈던 고통을 인류에게 주고 있다고 했다. '지구에 불이 타고 있는 것처럼 고열을 일으켰고, 대기가 오염으로 가득 찬 것처럼 호흡곤란을 가져다주고, 지구가 약해지듯이 허약하게 만들고 즐겁던 외출도 빼앗고 세계를 멈추게 했다'며 자신의 의도대로 되었노라 일갈한다. 그로 인해 인류는 고통스럽지만 '지구의 곳곳이 맑은 하늘색을 찾고 공기의 질도 달라졌으며, 물이 깨끗해지고 돌고래들이 다시 보인다'고 확인시켜 준다.'인간들이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새겨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며 '자신이 떠나고 지금의 고통이 사라진 후에 서로 싸움을 멈추고 물질적인 삶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지구 안의 모든 생물을 보살피는 일을 시작하라'는 다독임으로 끝을 맺는다. 아프지만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 편지는 '디 아시안 엔'의 에디터인 비비안 알 리치(Vivienne R Reich)가 쓴 편지글 형식의 칼럼이다.이 편지는 온라인을 통해 세계 곳곳에 전해졌다. 한 언론인에 의해 작성된 편지였지만 진짜 코로나바이러스가 보내는 인류에 대한 경고인 듯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편지 내용처럼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곳곳의 공기의 질과 하늘색은 지구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늘도 오랜만에 맑아졌으며 인도 북부에서는 40년 만에 230㎞ 떨어져 있는 히말라야 산맥이 보이고 국립공원 도로에는 동물들이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는 사진들이 언론에 보도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인간 활동의 제한이 가져다준 모습이다. 개인 위생 수칙이 강화되면서 눈병이나 독감 같은 유행병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아프리카의 최빈국인 '차드'의 시인 '무스타파 달렙'(Moustapha Dahleb)의 시에서처럼 코로나바이러스는 부자건 가난하건 인류는 한 배에 탄 운명 공동체라는 걸 확인시켜 줬다. 운명 공동체 인류에게 지구는 어머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품에서 태어난 생명들 중 가장 총명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은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위해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마구 짓밟았다. 어쩌면 코로나는 가이아의 매질인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과 함께 더불어 평화롭게 살라는 매질. 인류가 쌓아 올린 탐욕의 바벨탑은 코로나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다시 겸허해질 때다.

2020-04-27 17:30:00

[일상중국] 대륙의 스케일, 그 끝은...

[일상중국] 대륙의 스케일, 그 끝은...

신종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우한(武漢)에서는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던 춘절을 전후해서 각각 1천 병상과 1천500병상 규모의 '훠선산'(火神山) 병원과 '레이선산'(雷神山) 병원 건설이 결정돼 10일, 15일 만에 완공돼 지난 3월 초 곧바로 환자를 수용했다.야전병원 형태이긴 해도 설계부터 기초 공사, 치료 장비 설치까지 다 갖추고 개원하는 데 불과 1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만 실화다. 3억위안의 긴급 예산이 투입됐고, 24시간 철야로 건설공사를 하는 전 과정이 인터넷에 생중계될 정도로 코로나병원 건설은 중국 내에서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이른바 '대륙 스케일'이 빛을 발한 셈이다.인구 1천200만 명의 대도시를 전격적으로 봉쇄하는 '봉쇄령'을 발동하고, 실제로 두 달 이상 완벽하게 우한을 봉쇄한 것도 중국이 아니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중국식 관리체제의 '대륙 스타일'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중국의 최대 쇼핑 축제로 자리 잡은 '광군제'(光棍節·빼빼로데이) 때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초당 거래 횟수가 5억 명을 돌파, 2019년 매출 규모가 50조원을 기록했다. 이날 알리바바는 1분 36초 만에 100억위안(1조7천억원)을 달성할 정도로 대륙의 쇼핑 스케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기자들에게 '기레기'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 기자들의 위상은 여전히 높다. 국영방송 중앙TV(CCTV) 기자가 지방 취재를 가면 고위 관계자가 영접을 나가고, 경찰차로 에스코트를 해주는 것이 당연시되고 현(縣)과 촌(村) 단위 소도시에서는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열어주기도 하는 곳이 중국이다. 중국 매체는 지방정부가 운영하거나 지방정부와 관련된 기업이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기자들의 신분 역시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중국의 방송, 신문사 등을 언론자유를 보장받는 서방의 매체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언론'이라고 하지 않고 매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기자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사상과 사회주의 영도체제를 고양시키며 대중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회주의의 전도사'라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기자들이 간혹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보도하거나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다가 구금되거나 해고되기도 하고, 매체가 아예 폐간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하지만 중국 기자들은 중국공산당의 방침에 충실하게 따르는 순한 양과 같은 존재로 보는 게 맞다.중국 매체 중에서도 CCTV 종사자들의 위상이 가장 높다. CCTV의 아나운서와 기자들도 최고지도자가 교체되는 시기에는 종종 시련을 겪기도 한다. '저우융캉(周永康) 스캔들'에 연루된 CCTV 여성 아나운서들만 20여 명에 이른다. 스캔들도 '대륙 스케일'이다.2013년 중국 매체로서는 처음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터뷰를 한 루이청강(芮成綱)이라는 CCTV 기자 겸 아나운서는 중국 기자의 남다른 '대륙 스케일'을 증명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 질문자로 나서 논란을 빚은 바 있는 루이청강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집권한 직후인 2013년 7월 생방송 직전, 전격적으로 체포됐다. 그의 죄목은 간첩죄와 부패 혐의였고 6년형을 선고받아 세간을 놀라게 했다.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인터뷰 도중 '큰누나'(大姐)라고 불러 버릇없다는 인상을 준 그의 진짜 죄목은 '공용정부'(共用情夫)였다.후진타오(胡锦濤) 전 주석의 비서실장을 지낸 링지화(令計劃) 전 정협 부주석의 부인 구리핑(谷麗萍)을 비롯한 20여 명의 고관대작 부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소문이 확인된 것이다. 20여 명에 이르는 고관 부인들의 구명 로비도 소용 없었다. 오히려 일개 아나운서이자 기자가 고관대작 부인들의 공용정부였다는 점에 대한 '괘씸죄'가 적용됐다. 대륙의 기자다운 엄청난 스케일의 불륜 스캔들이었다.6년의 형기를 마치게 되는 루이청강은 올 12월에 출소하게 된다.그가 인터뷰한 박 전 대통령도 감옥에 있다. 인터뷰를 한 당시 루이청강에게 써줬다는 '人生在世, 只求心安理得就好了'(살아가는 동안 도리에 맞게 맘 편히 살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라는 경구. 대륙 스케일로 살아 온 루이청강에게 그 경구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궁금하다.

2020-04-27 17:30:00

[박원재의 삶 갈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박원재의 삶 갈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잘 시간을 넘겨서도 잠이 안 올 때면 가만히 눈 감고 양(羊)을 세라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간혹 있다. 어려서는 '하나, 둘, 셋' 하며 그냥 숫자를 셌던 거 같은데, 언제부턴가 양을 세는 것이 불면증의 특약 처방처럼 자리 잡은 걸 보면 우리 속에 서양 문화의 그림자가 짙긴 짙은 모양이다. 어찌 되었거나 처방의 원산지야 어디든 일단 숙면이 목적이니까 잠이 안 올 때면 양을 한 마리씩 불러내며 카운팅한다. 초원에서 뛰노는 놈들을 세다가 눈이 더 말똥말똥해지면 장면을 옮겨 목동의 통솔로 도로를 떼 지어 가는 놈들을 센다. 양이란 것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보니, 배경은 대부분 TV에서 본 외국 풍경들이다. 그러다 이마저도 집중이 안 되면 아예 까만 어둠이나 하얀 바탕을 배경으로 한 마리 두 마리 불러낸다.그러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양의 진짜 본래 모습은 어떤 배경에 있을 때일까? 아니, 배경 없는 양의 모습이라는 게 가능할까? 초원이든 도로든, 까만 어둠이든 하얀 밝음 속이든 양은 언제나 특정한 배경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사진을 찍을 때 배경을 제거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배경을 없애고자 스튜디오에서 흰 스크린을 뒤로하고 찍을 때조차도 우리는 '흰 스크린'이라는 배경 속에 있다. 이렇듯 배경 없이 존재하는 사물은 없다. 그런데 이쯤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상식의 허를 찌르는 사실 하나가 발견된다. 어떤 것을 떠올릴 때 결코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필수적인 것으로도 생각되지 않는 그 '배경'이 실제로는 그 사물에 대한 인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을 이룬다는 점이다.유명한 〈모나리자〉 그림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늘 특정 형태의 액자에 둘러싸여 어딘가에 걸려 있다. 이럴 때 그것이 걸려 있는 벽체의 질감과 색감, 그리고 액자의 형태와 무늬는 이 그림에 대한 인상을 일정 부분 결정짓는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직접 본 사람이 그림에 대해 갖게 되는 인상 속에는 그것이 걸려 있는 벽체의 옅은 갈색 톤과 짙은 고동색 액자가 주는 이미지가 처음부터 들어가 있다. 이런 배경적인 요소들은 그냥 주변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모나리자〉에 대한 인상의 불가결한 성분 가운데 하나로 녹아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 우리가 가지게 되는 인상도 마찬가지이다. 그와 주로 만나는 장소, 그가 즐겨 입는 의상, 그가 타고 다니는 차 등의 이미지에 그것은 '언제나 이미' 물들어 있다. 이것들을 뺀 '그 사람 자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음 직한 이 이치를 불교에서는 인타라망(因陀羅網)의 비유를 통해 설명한다. 예컨대, 커다란 방 천장에 형형색색의 색깔을 지닌 천 개의 전구가 켜져 있다고 하자. 빛의 간섭 현상에 미루어 그 가운데 어느 하나의 전구가 발하는 빛은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전구들의 빛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그리고 같은 이치로 다시 그 옆에 있는 전구로 그리고 다시 또 그 옆에 있는 전구로 차례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비록 멀어질수록 강도는 약해지겠지만 결국 그 하나의 전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나머지 999개의 전구가 발하는 빛의 색깔에 모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역방향의 간섭 현상도 당연히 발생한다. 그 하나의 전구 속에는 나머지 999개의 전구에서 퍼져 나오는 갖가지 서로 다른 빛들이 들어와 있게 된다. 바로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는 '일즉일체 일체즉일'(一卽一切 一切卽一)의 깨우침이다.나라 안팎에서 혐오와 배제에 기대어 작금의 어려움의 본질을 분칠하려는 유혹이 거세지는 듯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고 그 속에서 전개되는 우리의 삶은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부터 이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전체이다. 삶이 위기에 부딪혔을 때 혐오와 배제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들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이유이다. 결과적으로 혐오받고 배제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이기도 한 까닭이다.

2020-04-27 17:30:00

[기고] 50년 전 그 봄을 기억하며

[기고] 50년 전 그 봄을 기억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제창한 지 50주년이 되는 올해는 새마을 가족들에게 뜻깊은 해이다. 1970년 4월 22일, 한 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은 근면·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마을 가꾸기 사업을 제창했다. 이후 새마을운동은 농촌 새마을운동에서 공장 새마을운동으로, 결국 국민정신 개조운동으로 발전해 온 세계가 경탄하여 마지않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50년 전 한국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낙후된 사회였다. 일제강점기 36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토는 피폐해졌고, 백성들은 낙담하고 절망했다. 체념과 패배 의식에 사로잡힌 가난한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 잘살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준 것이 바로 새마을운동이다.경상북도를 빼고 새마을운동을 이야기할 수 없다. 포항 문성리와 청도 신도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마을 개발 운동이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상북도는 새마을운동 발상지라는 자부심을 갖고, 새마을운동을 통한 지역 발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경상북도의 이러한 노력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로 뻗어 나갔다. 새마을사업을 통한 개도국 지원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많은 개도국 지도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유네스코는 2013년 새마을운동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2005년부터 새마을운동을 통한 개도국 지원 사업을 해오던 경상북도는 보다 효과적인 사업 수행을 위해 2012년 새마을세계화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그간 새마을 시범마을 건설과 새마을 연수 등을 통해 개도국의 지속가능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현지에 파견한 글로벌 청년 새마을지도자들은 사업 수행 과정에서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새마을정신의 모범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코로나19 여파로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구경북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과 지역민들의 높은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협력으로 전국 확산을 막는 데 큰 기여를 했다.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개될 국제사회 모습은 코로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혹자는 코로나19 사태가 그동안 질주하던 세계화를 종식시킬 것이라 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고립(national isolation)과 국제연대(global solidarity)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세계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라 한다.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테스트 키트 같은 의료장비의 생산과 분배, 그리고 의료인력 풀 활용에 있어 국제협력을 강화한다면 국제연대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 한다. 새마을세계화재단이 나아갈 방향 역시 이러한 연대가 강화된 국제사회일 것이다. 나아가 우리 재단은 이러한 국제사회 연대 강화를 위해 기여할 바를 능동적으로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지난해 우리 재단이 한국정부학회와 공동 주최한 경주 새마을국제포럼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새마을정신은 시공을 초월해 간직해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했다. 이러한 새마을정신의 국제적 버전이 바로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국제연대 강화 방안이 아닌가 생각한다.새마을운동 탄생 50주년을 맞아 우리 모두가 새마을정신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고, 인류 공동 번영을 위한 새마을 세계화사업에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해 본다.

2020-04-27 15:33:58

[세계의 창] 언제 어느 정도의 재정을 어디에 투입해야 하는가?

[세계의 창] 언제 어느 정도의 재정을 어디에 투입해야 하는가?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감염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망자가 보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GDP의 하락, 소비와 수출의 감소로 기업의 업적 악화와 고용 상실과 같은 경제 문제가 현저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지만, 외출 자숙과 자가 격리와 같은 행동 제한에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잘 정비된 의료 시스템과 우수한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코로나19 감염의 확산을 적극적으로 막았던 트레이드오프(Trade-off)로 가계와 기업이 경제적인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이러한 손실을 보전하고, 경제 활동을 자극하기 위해서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들에게 지급하려 하고 있다. 현재 재난지원금의 규모와 지급 범위를 두고 정치권, 정책 담당자와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사실 이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재정을 언제, 어디에 투입해야 가장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합의된 증거를 경제학계에서 갖고 있지 않다. 특히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따른 위기처럼 현재진행형인 경우에는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한 번에 끝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재정지출의 시기와 규모를 정하기가 어렵다.우리나라의 올해 1분기 실질GDP는 2019년 1분기에 비해서 1.3% 증가했고, 민간소비가 4.7%로 감소한 것을 빼면 투자와 수출은 오히려 증가할 정도로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아직 현재화되지 않았다고 경제지표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이 급속히 확산된 대구 지역, 외출 자숙과 같은 이동 제한으로 인한 음식점업·여행업·항공업·호텔업·오락업 등과 같은 업종,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와 같은 경쟁력이 미약한 업체들, 피해 지역에 사는 주민과 피해 업종과 기업에 종사하는 고용자들, 저소득층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경제적 손실을 입었을 가능성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경제적 손실은 정부와 각 업계·단체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쉽게 추정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은 아직 현재화되지 않은 경제적 손실에 대한 지나친 재정지출보다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업종, 계층에 한정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국가재정인 것을 감안한다면 경제위기 국면이 아닌 상황에서 국가재정의 소진은 더 큰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파국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하버드 대학의 배로 교수를 중심으로 스페인 독감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을 때의 데이터를 이용한 추정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의 세계적인 확산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GDP 6%, 소가비 8% 정도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예측 결과는 세계적으로 코로나19 감염 문제가 수습될 때까지의 경제 손실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무역의존도가 아주 높은 나라의 경제적 손실은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때처럼 세계 무역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예상 이상의 규모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의 코로나19 감염의 영향이 나타날 올 2분기부터 세계 무역이 급락하게 되어 우리나라의 주력 업종인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자동차 부품 등 수출이 감소한다면 바로 그때가 우리 경제의 최대 위기 국면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때는 신속하고 막대한 재정 투입과 감세정책으로 단기적으로 총수요를 높이는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최대한 노력해서 만든 귀한 자금은 국민에 대한 현금 지급을 최소로 하고, 외부성이 높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보장하는 생명공학, 인공지능, 로봇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투자, 도시 내의 사회간접자본투자,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인재 육성을 위한 투자에 재정 투입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2020-04-27 15:16:13

[매일춘추] 닌텐도 스위치와 ‘이상화’

[매일춘추] 닌텐도 스위치와 ‘이상화’

빌릴 물건이 있어 형 집에 잠깐 들렀다. 뛰쳐나와 늘 반갑게 맞아 주던 조카가 웬일인지 그날은 보이지 않았다. 가져갈 책 몇 권을 손에 들고 집안을 살펴보니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춘기라서 그런가 아니면 꾸지람을 들었나 생각하며 용돈을 쥐어줄 요량으로 다가갔다. 사춘기라던가 꾸지람 같은 것은 나만의 짐작이었을 뿐, 인기척도 모를 만큼 무언가 삼매경에 빠져 있다가 툭 치니 고개를 들어 씨익 웃는다.무엇에 그리 집중하고 있는지 물으니 요즘 한참 인기 있는 닌텐도 스위치의 '동물의 숲'이라며 눈빛을 반짝거린다. 심취한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 잠깐 받아 손에 쥐고 게임을 해봤다. 왜 삼매경에 빠지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관심이 생겨 한 번 사볼까 검색하다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우선 닌텐도가 '동물의 숲'이라는 인기에 힘입어 품절된 지 한참일뿐더러, 아쉬움에 검색한 기사를 대할수록 낯빛이 붉어지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일본과의 외교적 대립으로 인해 얼마 전까지 벌어진 '노 재팬! 가지 않겠습니다. 사지 않겠습니다'의 범국민적 불매운동이 아직 진행형이지만, SNS상에는 우스갯소리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가 아니라 특정 제품에 대한 불꽃매진이 연일 이어진다는 말이 돌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동물의 숲' 게임상에는 한국 게임사용자에 의해 '불매운동의 글귀가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일본의 역사왜곡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애써온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는 2020년 4월 8일의 한 신문기사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꼬집으면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켰으면'하고 이야기하였다.불현듯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최초로 실린 '개벽'(개벽사, 1926. 6)이 생각났다. 초판본 수집을 위해 전국 고서점과 지역의 원로문인들을 수없이 찾아다닌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근대 자료와 항일, 반일운동을 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자료를 발굴·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자괴감 섞인 물음이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게임이라는 장르도 현대에는 하나의 문화 장르로 자리 잡았다. 역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과 접목하여 대중적, 상업적으로 현대인들의 일상에 가까이 스며들고 있다. 하지만 재미를 생각하기에 앞서 서경덕 교수의 일침처럼 역사와 현실 속에서 역설에 처한 우리의 모습을 한번쯤 먼저 돌아봄은 어떨까?일제강점기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썼다. 이 시기를 지나온 선인들은 이처럼 단어 하나, 문장 한 구절에도 가슴 속 항일의 염원을 담아 책에 아로새겼을 것이다. 현실 속 빼앗긴 들은 다시 찾았지만, 의식 속의 봄은 아직 오지 않은 듯하다. 이 봄,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아카이빙되어 있을 우리의 유고한 역사적 자의식을 자유로운 바람 속에서 다시 한번 꺼내어 확인해 봐도 좋을 것이다.

2020-04-27 15:05:43

[기고] 대구경북 통합 논의와 관광산업

[기고] 대구경북 통합 논의와 관광산업

대학 입시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팔공산 갓바위는 해마다 입시철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학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런데 이 팔공산 갓바위를 두고 1981년 대구·경북 분리 이후 40년간 대구 갓바위냐, 경산 갓바위냐를 놓고 양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소모적인 홍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해묵은 소모적인 논쟁은 대구·경북이 원래 한 뿌리였으나 당시 베이비붐 세대로 인한 폭발적인 인구 증가와 이에 따른 행정 수요 급증으로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로 인위적으로 갈라 놓은 대표적인 폐해의 단면이다.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통신, 교통의 발달로 대구경북 어디든지 2시간 이내로 도착할 수 있고, 복잡한 행정 수요도 실시간으로 모바일로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마당에 굳이 한 뿌리인 두 광역단체가 더 이상 따로 떨어져서 비효율적인 경쟁을 펼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현재 대구경북의 경제 상황은 심각하다 못해 피폐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 소멸, 교육·문화·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블랙홀 현상으로 그야말로 아사 직전이다.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27년째 전국 꼴찌를 차지하고 있고, 경북의 경제성장률은 -1.1%를 기록해 전국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대구와 경북은 골리앗 같은 수도권에 대응하기 위해 대구경북 행정통합이라는 반전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대구경북이 통합하면, 전국에서 면적 1위, 인구·지역내총생산·지방세 규모가 경기도와 서울에 이어 3위, 수출액 규모 5위 수준으로 위상을 되찾을 수 있다고 나왔다. 또한, 대구경북연구원이 시도민을 상대로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 51.3%가 찬성해 반대 의견보다 2배 이상 높게 나왔다. 이러한 통합의 물꼬를 틀 가장 선두에 관광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행정, 산업, 경제, 사회 등 제 분야는 통합에 따른 물리적, 재정적 제약과 시간이 필요한 반면, 예로부터 불교, 유교, 가야문화 3대 문화권 안에서 같은 문화를 영위해온 관광 분야는 지금 당장이라도 통합이 가능하고 가시적인 성과도 거두고 있다.민선 7기 시작과 함께 공동으로 진행해 온 대구경북관광의 해, 문화관광국장 교류 근무, 대구경북투어카드 출시, 대구경북 연계 관광 코스 개발, 국내외 박람회 공동 참가, 해외 홍보 설명회 공동 개최, 축제 품앗이 등으로 관광객 유치는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이제 곧 새 국회가 시작된다. 가장 빠르고 쉽게 통합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관광 분야에서 대구경북이 하나로 뭉쳐 선도적인 역할을 할 때다.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수치로 보여 줄 때, 새롭게 개원하는 21대 국회에서 발의될 대구경북통합특별법 제정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된다. 더구나 대구경북에는 통합신공항 건설이라는 관광산업의 최대 호재도 있다. 이 신공항을 통해 연간 1천만 명의 외래 관광객이 대구경북을 찾을 때 더 이상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관광 분야는 물론 산업 전 분야에서 독자 생존 하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끝으로 감히 상상해 본다. 2022년 10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우리 도에서, 전 세계 문화관광부장관이 한자리에 모이는 UNWTO(유엔세계관광기구) 총회를 개최하고, 그해 지방선거에서 새로 뽑은 인구 510만 명의 '대구경북특별자치도'의 도지사가 UNWTO 총회 개회사를 하는 그날을.

2020-04-26 16:06:28

[이른 아침에] 우린 이미 선진국이다

[이른 아침에] 우린 이미 선진국이다

1970년대 말 즈음이었나 보다. 대통령이 그랬다. 세계가 알아주는 부자 나라, 1980년이면 우리도 선진국이 된다고 했다. 그래 봤자 고작 몇 년 뒤지만 그땐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순순히, 의심 없이 믿었다. 우리가 미국처럼, 일본처럼 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 대망의 서기 1980년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선진국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밖에 못 되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가끔 TV나 라디오에서 우리 국민들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 할 뿐이었다. 안타까웠다. 대통령이 불의의 사고만 안 당했더라도 착착 계획대로 선진국이 되었을 성싶어 더 아쉬웠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듯 선진국은 우리의 소망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은 쉼 없이 우리를 나아가게 했다.1990년대, 나라에선 한층 '선진국 되기'에 박차를 가했다. 시대는 포스트 모던했어도 방법은 같았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함께 노력하는 것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아 기업은 나날이 성장했다. 국민소득 1만달러도 달성했다. 그러나 20세기 막바지에 찾아온 외환위기가 그 성과를 앗아갔다. 선진국이 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한국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해외발 뉴스가 전해지자 국민들은 마치 내 탓처럼 여겼다. 유력한 인사들은 '사람들이 너나없이 해외여행 간다고 할 때 알아봤다'며 그런 마음에 가책을 더했다. 이른바 지식인들은 이로써 우린 또다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했다며 판정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선진국 문턱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처럼 자리매김되었다.2000년대, 인터넷이 열어젖힌 새로운 세상에서 남다른 노력으로 IT 강국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산업의 지평이 넓어지고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었지만 우리가 위치한 곳은 변함없이 선진국 문턱이었다. 심지어 IMF가 우리를 선진국이라고 해도 우린 아니라고 했다. 각계의 유력 인사와 전문가, 그리고 언론과 '사회의 어른'들이 나서서 그랬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일 때는 적어도 2만달러, 2만달러를 넘기면 다시 3만달러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3만달러에 이르자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낮아서 아직은 선진국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고는 30여 년 전 부모 세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자식 세대에게도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요구했다. 혹시라도 정부에 따라 이런 태도와 정책 기조가 바뀔라치면 가만있지 않았다. 지난해, 한 원로 경제학자는 소득주도성장과 근로시간 단축을 가리켜 '우리가 무슨 선진국이라도 된 줄 아느냐?'며 정부를 질책했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졌을 때도 선진국과 싸워서는 절대 못 이긴다는 논리로 청년들을 타일렀다.돌아보면 선진국 문턱에서 보낸 세월이 어언 40여 년이다. '선진국에선 이렇게 한다더라'며 무엇이든 선진국을 따라 했다. 논쟁을 벌일 때도 선진국을 예로 들었고 정책을 수립할 때도 먼저 선진국의 사례부터 찾았다. 그렇게 선진국은 모든 것의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했다. 현실에선 미국과 유럽의 주요 나라, 그리고 일본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관념적으론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신기루나 이상 같은 것이기도 했다.그런데 최근 상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치자 '한국은 이렇게 한다더라'며 우리를 배우고 따라 하려 든다. 그리고 도와달라고 한다. 한 국가의 총체적 역량과 정부의 실력은 위기 시에 드러난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일찍부터 신종 감염병을 인류에게 닥칠 중대한 위협으로 꼽으며 선진국들의 선도적 역할을 주문했다. 지금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우리다. 요즘 같아선 오히려 우리나라가 미국 같지 않고 일본 같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의 길이 세계의 길이 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몰랐다 해도 우린 이미 선진국이다. 선진국 문턱을 진즉에 넘어섰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에 찬사를 보내든 말든 우린 정부를 마음껏 비난하고 옥죄어도 되니 더욱 선진국이다. 소망은 이루어졌다. 그동안의 간절함은 좀 줄이고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찾아보자. 선진국은 결국 그런 것이니 말이다.

2020-04-26 15:48:31

[매일춘추] May Day(근로자의 날)

[매일춘추] May Day(근로자의 날)

대학 졸업 후 숙명처럼 발을 들인 공연 업계에서 본격적으로 생업을 시작한지도 10년이란 시간을 훌쩍 넘겼다. 공연산업이라는 것이 조금은 얄궂어서 그 긴 시간동안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늘 타인의 기쁨과 즐거움을 위하여 뮤지컬이란 매개를 전달하느라 바쁜, 오롯이 타인을 위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형태이다.그러면서 관객의 니즈(needs)에 맞게 적재적소에 걸맞는 뮤지컬을 선보이기 위해 늘 달력을 곁에 두고 살아왔다.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가정의 달 등 사람들은 늘 많은 날들을 기념하며 살아가고 그럴 때 일수록 나에게 맡겨진 일은 더욱 바빠지니 나의 일상은 평범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욱 평범하게 느껴졌다.딤프 사무국에서 일을 시작한 후에도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축제 준비와 진행하는 사업들을 챙기다보면 5월의 빨간 날들을 까맣게 여기며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코로나19의 여파로 처음 누려보는 봄날의 일상들이 날이 갈수록 어색하다. 그 중에서도 지난 10여 년간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근로자의 날'이 곧 다가온다. 취업 전에는 당연히 근로자가 아니므로, 취업 후에는 내가 근로자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장 바쁜 시즌의 나날을 보냈기에 이 날의 의미를 생각해본 경험도 전무하다.1899년 뉴욕, 거리에서 신문 파는 아이들, 곧 '뉴시즈'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가난한 고아들이 대부분이고, 길에서 잠을 청하기 일쑤였던 하루살이 같은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100부에 50센트짜리 페니페이퍼를 사다 팔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하루 종일 갖가지 방법으로 신문을 팔아보아도 30센트 벌기가 일쑤였던 뉴시즈. 뉴시즈들의 고민만큼이나 판매율이 떨어지는 신문사 사장의 고민도 커져만 갔다.결국 거대 신문사들은 뉴시즈들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방법을 써서 신문의 판매고를 올리는 계획을 세웠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 뉴시즈들이 힘을 모은 이야기, 이것이 바로 뮤지컬 '뉴시즈'의 내용이다. 아무리 나약하고 여린 힘이라도 합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뉴시즈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을 통해서 가장 원초적인 근로자의 날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본다.근로자의 날은 근로자의 연대와 사기 및 권익향상, 무엇보다 근로의욕을 높이자는 뜻에서 제정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근로자의 날을 온전히 누리는 경험을 곧 해보게 될텐데 이로써 나의 근로의욕은 과연 얼마나 높아질까? 사실 당일에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가 일시적으로 앗아간 나의 일과 노동의 순간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나의 근로의욕은 솟구치리라 생각한다.솔직한 말로 주말도, 휴일도, 밤낮도 없이 분투하던 매년 5월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 순간이 그립다. 어린 10대 뉴시즈들에게 꽉 들어차있던 삶에 대한 단순하고도 순수한 열정이 아직은 나에게도 많이 남아있다고 믿어본다.

2020-04-26 14:30:00

[2020 세상 읽기] 인생은 ‘새옹지마’

[2020 세상 읽기] 인생은 ‘새옹지마’

코로나19가 정신 못차릴만큼 우리를 뒤흔들어대더니 이번엔 4.15 쇼크인가. 총선 당일 개표 뉴스를 보다 TV를 꺼버렸다. 예상은 했지만 마음이 심란했다. 이튿날 확인된 결과는 '압승'과 '대참사'. 게다가 '저 사람만큼은 곤란해'라고 꼽았던 몇몇 후보들이 당선돼 환호작약하는 장면엔 시쳇말로 '어이상실'이었다.열불이 났다. 연락 닿은 지인들의 목소리에도 화기(火氣)가 타다닥 타오르고 있었다.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다는데 의기투합한 셋이서 동네 뒷산에 올랐다. 실핏줄처럼 갈래진 숲길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했더니 파도치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자연의 치유력을 새삼 실감했다. 서울의 B여사는 일흔 중반의 할머니다. 광화문 집회는 물론 태극기 집회에도 열심히 참가했던 열혈파. 개표 상황에 화가 치솟은 나머지 새벽 5시에 근처 산으로 달려갔다. 인적 없는 캄캄한 산길을 정신없이 올라가다보니 산꼭대기더란다. 그제서야 "아이고 내가 미쳤구나!" 생각이 들면서 무섬증이 밀려오더라고 했다.많은 사람들이 이번 선거만큼 가슴조린 적 없다고들 한다. 양대 진영이 극한 대립한 탓이다. 그바람에 애먼 민초들마저 덩달아 갈라지는 양상이다. 지역적으로 나뉘는데다 혈육간에도 선거 얘기만 나오면 서먹해지고, 수십년 우정도 골이 패곤 한다.중국 무협물에는 온갖 유형의 무림(武林) 고수들이 등장한다. 은원(恩怨), 즉 은혜와 원한을 둘러싼 복수와 보은의 키워드가 씨줄날줄로 엮여진 가운데 강호(江湖)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문파들간 혈투가 펼쳐진다. 모략과 권모술수, 배신이 난무한다. 황당하기도 하고, 권선징악의 뻔한 줄거리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점에서 통쾌함을 안겨준다.무협물에는 흔히 정파와 사파‧마교가 대립한다. 절대 서로를 용납하지 않으며 배척한다. 재작년 타계한 진융(金庸)은 중국 무협소설계의 거물이다. 프랑스 정부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영국의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았다. 진융 작품들 중 천하의 명검인 의천검과 도룡도를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세력 다툼을 다룬 '의천도룡기'에도 예외없이 정파와 사파‧마교가 등장한다. 서로를 증오하는 상황 속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연인들이 등장한다. 대개는 비극적 최후로 끝나지만.이번 총선판이 내 눈엔 한 편의 무협물 같다. 꼼수와 계략이 난무하는, 그다지 재미있지도, 통쾌하지도 않은…. 평범한 유권자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무시한' 특권과 명예, 두둑한 연봉이 약속된 금배지를 놓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B급 무협물에 다름아니다. 피가 튀고 살점이 흩날리는 한바탕 혈전 끝에 승패는 갈라졌다. 승자는 천하가 제것인양 기고만장하고, 패자는 바닥모를 심연으로 빠져든다. 유권자들 또한 한쪽에선 쾌재를, 다른 한쪽에선 상갓집 문상객처럼 침울한 낯빛이다.서쪽의 파랑과 동쪽의 분홍, 그 선명한 색깔 대비도 우리를 가슴 아리게 한다. 사실 어느 나라든 정도 차이는 있지만 지역 감정이라는게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도쿄와 오사카, 중국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가 그러하다. 중국의 두 도시 경우 베이징은 수도라는 자부심으로, 상하이는 경제적 위상으로 서로가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지역적 특성이 희화화 되기도 한다. 상하이 사람들은 베이징 사람들을 가리켜 "허세부리고 잘난 척 한다"며 비꼬고, 베이징쪽은 상하이쪽을 향해 "돈만 밝히는 천박한 사람들"이라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두 도시의 지역 감정에는 한자락 유머 코드가 깔려 있어서 우스개 소재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 총선‧대선 때마다 지역감정이 요동치기 일쑤이다. 정치권이 화력 높은 지역감정 카드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호와 탄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음의 내상(內傷)을 입는 민초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진영에 따라 형성된 크고 작은 집단들이 상대를 향해 퍼붓는 비난과 조롱, 막말, 심지어 아니면 말고식 음해까지 그 정도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한국고용정보원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연봉이 1억4000만원이라 한다. 국민 1인당 GDP의 4.4배 가량이다. 우리보다 훨씬 부유한 미국은 2.9배, 영국은 2.61배, 프랑스도 2.53배에 불과하다는데…. 한국 국회의원은 고소득 직업 2위에다 누릴 수 있는 특권만도 200 가지가 넘는다나. 이러니 금배지에 필사적으로 목을 매나 보다. 반면 세비에 비해 얼마만큼 효과를 내고 있나 분석한 조사에서 한국 국회의원은 27국 중 26위에 그친다. 꼴찌 수준이다. 이런 금배지족의 당락에 왜 우리 풀뿌리 백성들이 환호하고 앙앙불락해야 하나. 사실 민초들에겐 금배지족의 200여 가지 특권이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마냥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상상조차 안되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닥칠지 모를 대공황 우려 속에 먹고 사는 문제만이 태산의 무게로 다가올 뿐.심술궃은 꽃샘 추위에 울울한 심사를 달래고 있는데 친구가 엽서를 보내왔다. 이심전심이련가. '마음도 흐리고 날도 흐리고~. 마음을 다스리고 가라앉히려 마음을 헤집어 빨래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후덜덜해진 마음을 꺼내어 심산유곡 맑은 물에 훌훌 씻어내고 싶다.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다. 화(禍)가 복(福)이 되고, 복이 화가 된다고 했다. 21대 국회의원들은 부디 진짜배기 금배지 활동을 하기를….전경옥 언론인

2020-04-26 06:30:00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도영(1884-1933), ‘세검정’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도영(1884-1933), ‘세검정’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은 봄. 모두에게 힘든 봄이다. 옛사람들에게 봄은 구세주였다. 사계의 순환을 자연의 섭리로 여겨 봄여름가을겨울을 마땅히 받아들이지만 봄은 특별했다. 솜옷이나 누비옷, 화로도 있었지만 지금의 패딩이나 난방 기구에 비할 바 아니었으므로 더 이상 몸을 오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봄을 기다렸다.봄을 기리는 말도 봄을 기다리는 대춘(待春), 봄을 맞이하는 영춘(迎春), 봄을 즐기는 상춘(賞春), 봄을 보내는 송춘(送春) 등 다양하다. 봄의 기쁨을 담아 음력 3월을 희월(喜月), 가월(嘉月), 화월(花月), 도월(桃月), 앵월(櫻月), 잠월(蠶月)이라고 했고, 봄의 마지막 달이라 계춘(季春), 전춘(殿春), 만춘(晩春), 모춘(暮春), 잔춘(殘春) 등으로 불렀다. 봄이 사라지는 날인 잔춘일(殘春日)도 있었다. 음력 3월 30일 그믐날이다(올해는 4월 22일). 이 날 호사자(好事者)들은 다한 봄을 아쉬워하며 산과 계곡을 찾아 봄바람을 맞으며 하루를 보냈다.이도영의 '세검정(洗劍亭)'에 "관재(貫齋) 작우(作于) 소림사(少林寺) 시(時) 을축(乙丑) 잔춘일야(殘春日也)"라는 화제가 있어 이 날을 맞아 이도영이 세검정으로 원족(遠足) 갔음을 알 수 있다. 세검정은 한양도성의 사소문(四小門) 중 북쪽 소문인 창의문(자하문) 근처에 있어 성내에서 멀지 않은 경치 좋은 명소로 일찍부터 알려졌다. 멀리 삼각산과 북한산이 보이고 그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이 모여 시내를 이룬 홍제천과 화강암 너럭바위가 어울려 맑은 물과 빼어난 바위의 수석(水石) 경치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장마가 지면 해마다 도성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 구경"을 한 유명한 계곡이고, '국도팔영(國都八詠)'에 '세검빙폭(洗劍氷瀑)'으로 꼽힌 사철 명소였음이 『동국여지비고』에 나온다.홍제천 화강암 암반 위에 지어진 세검정은 지붕과 평면이 정(丁)자형인 특이한 모양이다. 영조 23년(1747년) 도성을 방어하는 총융청이 이 근처로 옮겨와 북한산성 수비까지 맡게 되면서 군영 부설의 정자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총융청은 1884년(고종 21년) 폐지되면서 빈 터만 남았다가 세검정초등학교가 들어섰다. 세검정의 주소는 종로구 신영동(新營洞) 168-6번지인데, 영조 때 새 군영이 조성되었다는 사실이 '신영'이라는 동네 이름으로 남았다. 세검정은 1941년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 건물은 1977년 복원한 것이다. "칼을 씻는다."는 정자 이름은 인조반정의 주동자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데서 나왔다고 한다.1925년 작품인 '세검정'은 실경을 그린 산수화이다. 정자와 초가집은 실제 모습을 그렸지만, 홍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다리 위의 인물이나 세검정 뒤 소림사로 이어지는 길 등은 화보풍이다. 바위를 빈틈없이 모두 색칠했고, 보랏빛을 머금은 청색과 황갈색, 황색, 노란색, 분홍색, 연두색 등 색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안중식의 수제자인 이도영의 '세검정'은 전통 산수화의 틀 안에서 서양화풍을 활기 있게 절충해 새로운 미감을 보여주는 산수화이다. 미술사 연구자

2020-04-26 06:30:00

[2020 세상 읽기] 늙은 쥐의 時事유감(5) 4.15 총선과 야당

[2020 세상 읽기] 늙은 쥐의 時事유감(5) 4.15 총선과 야당

4.15 총선이 오늘로써 열흘이 지났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 총선 결과를 마음으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덜미를 잡아끄는 뭔지 모를 의혹과 불길함 등의 복잡한 감정들이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국가부채 1800조, 가계부채 1100조 등 빚더미 나라 살림에 망가진 경제 체질, 여기에 코로나 경제위기까지 몰려오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이런 결과를 유인한 이번 선거는 민주 없는 민주당, 통합 없는 통합당의 승부였다고 할 수 있다. 혹평하자면 폭정(暴政)과 무정(無政)의 싸움이었다. 우리나라 발전을 가로막는 3류 정치의 실상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여기에 대통령과 여당, 선관위, 방통위, 공영-민영언론이 관권, 금권, 여론을 입맛대로 주무르면서 민주주의의 붕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대통령이 여당 승리의 최대 공로자라 하니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소셜미디어에서 지속적으로 사전투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이런 정황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수도권 사전선거와 당일선거의 여야 지지율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두 선거의 선거구별 여야 득표율 차이는 대개 ± 3,4% 이내였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 10~15%로 여당 압승의 결정적 이유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야의 관내/관외 사전투표 득표율이 99% 일치하는 등 이해 불가능한 우연들이 겹쳐 일어났다며 이의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불투명한 사전투표의 퇴출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영남 유권자들의 역할과 대통령의 실향부정선거 의혹을 묻어둔다면 이번 선거는 정권 심판이 아니라 야당 심판으로 결말이 났다. 선거정국을 한 번도 주도하지 못하고 여당에 계속 끌려 다닌 결과다. 야당은 코로나 사태를 업은 관권, 금권, 선동정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고질적인 내분을 노출시키며 자멸하고 말았다. 지난 총선, 대선, 지선에 이은 네 번째의 패배다. 유권자들은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 맹물 야당보다 폭정과 실정이라도 하는 여당을 선택한 셈이다.그러나 이 같은 결과는 뒤집어 해석해볼 수도 있다. 맹물 야당이 41%, 1200만 표를 얻었으니 야당이 제대로 싸웠다면 압도적 승리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당이 호남을 정치기반으로 하는 정당이라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대통령은 총선 결과로 정권의 동력을 확보했을지 모르나 자신의 고향을 잃어버린 정치적 실향민이 되고 말았다. 이는 영남에서 자랐다고 경상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킨 일이기도 하다.경상도는 태산교악(泰山喬嶽)이라는 선인들의 지적처럼 대한민국의 중심을 지켜온 지역이다. 나라와 대의를 우선하고 억강부약하는 지역민들이 기질이 이런 평가를 가능하게 했다. 이번 선거에서 영남 유권자들은 관권, 금권, 선동선거에 흔들리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 호주머니나 지역의 이익보다 국가의 장래를 우선했다는 신념을 엿볼 수 있다. 만약 영남에서 여당 압승의 판세를 연출했다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일당 국가의 후진국 함정으로 빨려들어 갔을 것이다. 영남이 정권 폭주의 균형추 역할을 한 것은 대한민국 전체가 다행으로 여겨야 할 일로 해석된다.보수야당의 이념과 리더십 재건이제 남은 문제는 파산 상태의 자유우파 보수야당을 재건하는 일이다. 강한 야당 없이는 정권의 폭정과 부정부패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무너진 것은 우파의 이념이 나빠서가 아니라 우파의 새로운 비전과 꿈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념 정체성의 뿌리가 부실하니 중도와 사이비 우파에게 코가 꿰여 이솝 우화의 팔려가는 당나귀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처절한 각성을 바탕으로 국가의 지향 즉 자기중심을 되찾아야 할 일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차기 대선까지를 염두에 둔 리더십을 바로 세워야 한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의 야당 주요 인물들은 자격미달임을 국민들에게 널리 각인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 선거를 통해 그 나물의 그 밥인 리더십을 지속시키는 것은 현명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자유우파의 이념을 대변할 새롭고 힘 있는 리더십을 발굴해 들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리더십뿐 아니라 당 조직을 확대 정비하고 당 사무국과 의원 보좌관들까지 일신하는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국회의원들도 모조리 바꾸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정신무장을 위한 호된 집체교육이라도 있어야할 것 같다.야당의 내분과 자멸을 유도하는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기록적인 선거 4연패의 이유가 내분에 있었는데도 그 전철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자당을 짓밟고 칼질하며 자멸을 부채질하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여당과 싸워야 할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자당에 대한 해괴한 정치평론을 업으로 삼고 있다. 소위 대선 후보에 나섰던 홍, 유 같은 사람들까지 여기에 가세하니 목불인견이 따로 없다. 자기정치를 위해, 자기변명을 위해 자당을 제물로 삼는 이런 배신세력을 척결하지 못하면 야당은 다음 대선에서도 필패다. 정치평론은 국민과 언론의 몫이지 야당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내분 조장세력 단죄와 언로의 보호야당의 난센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권의 폭정과 실정을 고발하는데도 실패했다. 건강한 야당이라면 정권이 감추고 숨기고자 하는 문제와 의문, 의혹을 제대로 여론화할 수 있어야 한다. 개는 짖으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인들의 언로를 최대한 열어주고 거기서 빚어지는 실수를 보호해주는 것이 야당의 역할이다.그런데 매번 총대를 거꾸로 잡는 길로 갔다. 자멸적 내부 망언은 방치하면서 문제, 의문, 의혹 제기에 망언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자당 의원들의 입을 틀어막기 일쑤였다. 이번 선거에서 과거 발언을 공천심사 기준으로 삼은 것이나 제 풀에 놀라 후보 두 명을 제명한 것은 선거를 망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설사 문제가 있었더라도 그냥 두는 게 지금의 결과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양과 질에서 훨씬 고약한 망언을 해대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내부 총질 즉 여론의 증폭이 없었기 때문이다.부정선거 의혹을 법적 문제로 제기한 자당 의원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그냥 두고 보는 것은 고사하고 십인십색의 자해적 평론을 해대는 야당을 보면 한숨이 새어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의 의혹보도 윤리기준은 진실을 절대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진실을 가로막으려는 세력의 집요한 공작과 방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런 무기가 주어져야 한다. 야당의 줏대 없고 소심한 정치로는 종북 주사파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선거였다.박진용 언론인/역사저술가

2020-04-25 06:30:00

[광장] 신뢰사회

[광장] 신뢰사회

타인을 믿는 것은 위험하다. 수상한 친절에는 의도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꿈을 짓밟는 것을 좋아해'라는 That's Life의 가사처럼 분란으로부터 존재 가치를 찾는 이들도 있다. 믿어도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의심부터 하라고 가르쳐야 할 마당이다. OECD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약 27%만이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답했다. 불신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직과 신뢰라는 가르침은 이제 교과서적이고 이상적인 표어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타인을 믿는 것은 위험하지만 믿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 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신뢰의 차이이며, 저(低)신뢰 국가는 사회적 비용이 급격하게 커져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신사회에서는 짝퉁이 아닌지 매번 확인해야 하고 누가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없다. 그 결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신뢰가 상실된 조직은 실수의 원인을 찾아내 개선하기보다는 실수한 사람을 색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책임질까 두렵고 정보를 숨길수록 권력이 커지기 때문에 솔직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신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기에 이를 구축하고 파괴하는 주체 또한 사람이다. 그 믿음은 상대방의 능력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믿음일 수도 있다. 믿음은 사회적 자본이기 때문에 사용한다고 해서 마모되지 않는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아도 마음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말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나 호감이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협력을 위해 필요한 신뢰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자존감을 키울 필요가 있다. 철학자 오노라 오닐은 "신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신뢰받을 만한 자격을 높이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고 했다. 신뢰받을 자격도 없으면서 신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신뢰라는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영화 '크래쉬'(Crash)에서 흑인 여성 크리스틴은 백인 경찰의 불심검문에서 과한 몸수색을 당하고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 그 후 그녀는 자동차 전복사고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하지만 그 경찰에게 구조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 에피소드는 인종차별이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볼 수 있지만, 신뢰를 얻기도 힘들지만 한 번 잃으면 다시 되찾기는 더 힘들다는 방증일 것이다.공자의 제자 자하는 "관리자가 신뢰를 얻지 못하면 아랫사람을 괴롭힌다고 의심받고, 아랫사람이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바른 소리를 하면 윗사람은 자기를 비판하는 줄 의심한다"고 했다. 사사건건 통제하고 의심하는 행동은 부하 직원으로 하여금 감시를 피하는 요령만 터득하게 한다. 상사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믿음을 저버릴 때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윗사람이 믿어주면 인정 욕구와 책임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는 리더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샘 워커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진실성과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이 위기의 국면에서 사람들을 믿게 만드는 힘이라고 분석했다. 믿을 수 없는 리더의 곁에 머무를 국민은 없다. 당신이 믿을 만한 행동을 하면 신뢰하겠다는 조건부 신뢰가 아니라 먼저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2020-04-24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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