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도태우의 새론새평] 신속하고 정확한 재검표가 나라를 살리는 길

[도태우의 새론새평] 신속하고 정확한 재검표가 나라를 살리는 길

4·15 총선이 치러진 뒤 106일이 지났다. 그간 25군데 후보자와 107곳의 유권자, 1개 비례정당의 선거소송이 대법원에 제기되었지만 한 곳도 재검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검표 일정이 잡힌 곳조차 없다.이회창 후보의 2002년 대선 재검표는 전국 80개 개표소를 대상으로 했지만 선거 후 39일 만에 실시되었다. 4년 전 총선에서 문병호 후보의 재검표는 두 달 보름 만에 이루어졌다. 1992년 임채정 의원은 118일 만에 실시된 재검표로 당선되었는데, 역사상 가장 늦은 재검표였다.혹시 재검표를 거부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일반 유권자가 매번 같은 이유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소(訴)를 제기한다면 '소권 남용'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후보자가 아닌 유권자라 하더라도 공직선거법 제222조에 따라 선거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국민주권의 핵심 제도가 선거이니만큼 재판청구권은 최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재검표는 신청자가 검증 비용을 부담하기에 세금을 낭비하는 측면도 없다.이번 재검표에서는 신속과 더불어 특히 정확성이 요구된다. 의혹의 상당 부분이 디지털 영역인데 증거보전 단계에서 법원은 전통적인 종이 투표지, 투표록 등만 보전을 허가하고 전산화된 통합선거인명부와 투표지 이미지파일, 서버와 분류기 등의 보전 조치를 거부한 바 있다.이번 선거에서는 고성능 내장형 CPU와 프로그래머블 반도체, USB 포트를 함께 탑재한 신형 전자개표기(투표지 분류기)가 도입되었다. 기존의 개표 부정 의혹과 달리 빅데이터 분석으로 정교한 목표치를 산출한 뒤 전산 조작과 가공 표 투입으로 정확하게 180석을 도출한 총체적 조작이 의심되고 있다. 미시간대의 월터 미베인 교수와 같은 세계적인 부정선거 전문가는 사전투표 영역에서 7~10%의 사기성 표를 추정한다.이번 선거에 대한 증거보전에서는 봉인(封印)이란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수많은 봉인 훼손 사례가 발견되었다. 봉인 테이프가 재부착된 것, 봉인 도장이 새로 찍힌 것, 등록된 도장과 다른 도장이 찍힌 것, 옆으로 구멍이 나 있거나 위로 틈이 벌어져 있어 봉인의 의미가 없어진 것, 삼립빵 상자와 이삿짐 박스 같은 비규격함, 겉면에 투표소·투표 종류와 같은 필수 기재 사항이 전혀 기재되지 않은 보관함 등 불법 부정 사례를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보관함에 담긴 투표지는 특별 검증 절차를 밟아 유무효를 엄격히 판정해야 할 것이다.결국 정확한 재검표를 위해서는 당일 투표지의 일련번호 확인만이 아니라 통합선거인명부 파일에 기재된 일련번호와 사전투표지 QR코드 번호 대조를 통해 투표지의 동일성이 확인될 필요가 있다. 개표 전후 과정의 부정 투표지 혼입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재검표의 본질적인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선관위가 주장하듯 '관리 부실'은 있었지만 디지털 조작, 가공 표 혼입 등 선거 부정이 없었음이 재검표로 입증되면 국가적 신뢰를 드높이는 자산이 된다. 반면,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국헌 문란 사안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따라서 어느 입장에서든 신속·정확한 재검표가 필수적이다. 재검표 날짜를 계속 미루며 이 중대한 의혹이 실효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시한을 넘겨 보겠다거나 핵심 정보의 확인을 차단하고 요식행위로 재검표를 치르겠다는 생각은 모두 국민의 건전한 상식과 극도로 배치된다.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정권의 최후 보루가 되었다는 한탄이 들려온다. 사법부의 장악은 신독재 유사 전체주의의 완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줄기 빛과도 같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4·15 총선 재검표를 주도한 대법관은 미국이 기리는 마샬 대법원장처럼 대한민국을 법치의 죽음에서 건져낸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고 말해진다. 2020년 신속·정확한 재검표 실시는 1987년 직선제 개헌과 같이 우리 사회를 자유민주 법치의 정방향으로 올려 세우는 기념비적 사건이 될 것이다.

2020-07-29 15:03:45

[매일춘추] 대구는 ‘창의적 자치분권’ 도시다 / 서성희

[매일춘추] 대구는 ‘창의적 자치분권’ 도시다 / 서성희

지역에서 영화를 한다고 하면 대구는 다른 도시에 비해 좀 늦지 않았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무엇이 늦었다는 말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른 지역에 비해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이 늦었다는 뜻일 때도 있고, 영화 도시라는 이미지를 만들기에 늦었다는 뜻일 때도 있다. 대체로 외적인 평가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대구 영화는 드러난 것보다 더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가 있다. 대구에는 청년 영화인들이 많이 있고 올해만 스무 편의 단편영화와 세 편의 장편영화가 제작 중이다. 지금 그들에겐 관노 출신이었던 장영실의 출신 성분보다 능력을 알아봐 주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할 꿈을 함께 펼쳤던 세종의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다.세종대왕은 혁신적 인재 등용을 통해 정치, 경제, 국방, 과학, 문화, 예술 등 모든 면에서 조선왕조 518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세운 성군이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는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그린다. 당시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신분체계야말로 조선의 근간이라는 논리로 세종이 관노인 장영실과 함께 있는 것조차 반대한다. 그러나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세종의 원대한 꿈은 "이 코끼리 그림은 그저 허상일 뿐이다. 물시계는 조선의 것으로 조선에 맞는 것을 만들면 된다"라고 말한 장영실에 의해 실현된다.중국의 시간이 아닌 우리의 시간을 찾고, 중국의 글자가 아닌 우리의 글자를 만들어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권력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에 권력을 가진 사대부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변화를 싫어한다. 명분은 사대주의에 근간한다. 이에 반해 세종대왕은 변화가 백성에게 가져다줄 무한한 이로움을 상상할 수 있는 성군이었기에 변화를 꿈꾼다. 그 꿈은 과학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사대부가 아닌 노비 출신 과학자 장영실과 함께 실현해 나간다.기득권 세력인 사대부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라는 오래된 관습과 편견에 갇혀 중국의 것이 아닌 '조선의 것'을 만들어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대국을 따라잡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확신하며 현재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만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명나라에 사대하며 세종을 사사건건 반대한다. 결과적으로 '창의적인 생산'보다는 앞선 기존 문물을 '단순히 소비'하는 삶을 선택하며 현실에 안주한다. 대구는 영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소비도시가 아닌 창의적인 생산이 가능한 도시가 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대구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다. 문화는 현존하는 세대로 승패가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그리고 사대주의는 국가 간 사대주의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도시 간 사대주의도 존재한다. 대구는 수도권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대구 영화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세우고 대구 영화계의 존립은 스스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의 창의적 자치분권을 이루고 독창적인 영화 도시 대구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2020-07-29 14:17:53

[기고] 김영만 군위군수 결단을 내려야

[기고] 김영만 군위군수 결단을 내려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후보지를 결정짓는 운명의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 공항을 만들어 대구경북의 미래를 활짝 여는 것은 우리 지역민 모두의 간절한 염원이다.필자는 한국공항공사 사장 재임 중 최고 당기 순이익을 올렸고 만년 적자 지방 공항의 흑자 전환 토대를 마련하는 등 공항 경영 능력을 평가받은 바 있어 공항의 존재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세계 어느 나라든지 지방자치단체는 공항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건다. 왜냐하면 공항을 자기 지역에 유치하면 대박을 터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지역에 사회간접자본(SOC) 등 새로운 인프라가 생기고 수백만~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공항을 이용하면서 생기는 일자리 창출 효과와 경제 유발효과로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공항이 완성돼 운항이 시작되면 군위와 의성은 경북 기초자치단체에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도시로 격상하게 될 것이다.통합신공항은 대구경북이 '우물 안'을 벗어나 탁 트인 세계로 나아가는 '희망의 문'이다. 이번 기회에 이 희망의 문을 열지 못한다면 후손들에게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통합신공항이 성공적으로 들어서면 대구경북이 다시 글로벌 도시로 탄생하고 전 세계를 잇는 하늘길을 열어 항공 중심지로 거듭나게 돼 재도약의 탄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중국은 공항을 중심으로 주변 경제를 발전시키는 '임공경제'(臨空經濟)를 채택해 공항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구가하고 있다. 공항을 중심으로 교통 네트워크 연결, 대외교류, 산업 클러스터 등의 기능은 물론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지역 균형발전과 산업 발전을 선도해 나가는 역할을 한다.영국의 작은 도시 '하운슬로' 공항도 지역경제의 거점공항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하운슬로는 런던 등 수도권과 20여㎞ 떨어진 작은 마을로 풍부한 관광자원도 없는 평범한 도시다. 그러나 공항이 들어서면서 사방으로 뚫린 도로망과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대도시 못지않은 명품도시로 탈바꿈했다.통합신공항은 연간 1천만 명의 승객을 수용하고 10만t 이상의 화물을 처리한다. 또 통합신공항 건설은 단거리 위주 노선을 벗어나 유럽 등 중장거리 노선 수요에 대비한 국토 중·동부권의 관문공항을 건설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신공항과 배후 지역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9조원을 들여 광역철도망도 구축된다. 대구와 경북의 미래 지도가 바뀌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셈이다.대구경북이 현재 처해 있는 현실을 감안해서라도 더 이상은 안 된다. 통합신공항 문제가 불거지자 부산·울산·경남은 기다렸다는 듯 가덕도 신공항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만약 통합신공항이 무산되거나 부·울·경 쪽에 동남권 신공항을 선점당하게 되면 향후 벌어질 동남권신공항 유치 경쟁에 대응할 동력까지도 상실하게 된다.이제 공항 이전을 위한 종착역까지 왔다. 만일 공항이 공동후보지로 결정되면 당장은 속상하고 허탈할지는 몰라도 군위군의 미래를 생각하면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고 본다.김영만 군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물론 군수가 지역민의 여론을 존중하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역민과 지역의 미래가 확실히 담보돼 있는 이 중차대한 일에 지역 주민의 뜻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김 군수도 어느 길이 옳은지 고민할 것이다. 우보만을 주장하는 군민들도 다시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 봐 주길 바란다. 대구경북 모두가 잘살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김석기 국회의원

2020-07-28 19:02:33

[매일춘추] 한가함은 게으름이 아니다

[매일춘추] 한가함은 게으름이 아니다

지난 반 년 여 우리 대구·경북인들은 '코로나19'를 정말 무던히도 잘 견뎌냈다. 높은 시민의식에 긍지를 느낀다. 7월말, 그래도 휴가철은 왔다. 한때 유행했던 광고 카피를 빌어 외치고 싶다. "고생한 당신, 떠나라!" 대구지역 하늘 길과 땅 길은 이미 작년 수준을 회복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지구촌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주었다. 가히 지각변동이라 할 만하다. 후대인들은 현금의 역사를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눌지도 모른다. 벌써 2019년을 21세기의 실질적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꼭 100년 전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실질적으로 20세기가 시작되었음을 상기하면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만하다. 그만큼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은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다. 이제 지금껏 당연시되었던 '활동적인 삶(vita activa)'에서 자아의 참된 행위를 탐색하는 '성찰적인 삶(vita contemplativa)'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각종 인문학 모임마저 사교모임의 한 형태로 변질되는 현실 아닌가.독일인들이 즐겨 쓰는 단어에 '파울렌첸(faulenzen)'이 있다. '한가롭게 빈둥거린다'는 뜻이다. 휴가여행은 수학여행과 달라서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쉬는 것이라는 필자의 말에 아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막상 휴가지에서 파울렌첸을 즐길라 치면 아내의 태도는 표변한다. 그냥 할 일 없이 시간을 허비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거의 매번 필자의 판정패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빈둥대어 보리라는 희망은 잃지 않고 있다. 한가롭게 빈둥거린다는 뜻의 파울렌첸을 노장사상에 빗댄다면 '무위(無爲)'라고 해도 될 것이다. 필자가 이해하는 한, '무위'란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무의 행위', 곧 '인위가 아닌 행위'를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헤겔에 의하면, '현실'은 '현상'과 '본질'의 합, 말하자면 구체적인 현상과 그 현상 너머의 '빈 공간'을 포괄하는 중층 개념이다. 여기서 '빈 공간'이라 함은 현상형식을 있게 하는 순수형식, 순수잉여, 곧 사물의 본질이며, 이는 '무위'에 다름 아니다. 파울렌첸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이상인 이유다. 코로나19는 이른바 '피로사회'의 한 원인으로서 활동적 삶이 미덕인 시대에 한가함과 무위의 성찰적 삶을 불러내었다. 성찰적 삶은 게으른 삶이 아니다.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니체의 다음의 말에서 현대인의 문제적 자화상을 보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휴식을 부끄러워하며, 오랜 사색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까지 한다. 시계를 보며 생각하고, 점심 먹으며 주식신문을 들여다본다. 아무 일도 안 하느니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원칙이 모든 교양과 고상한 취미를 파괴한다. 사람들은 한가함을 누릴 시간과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2020-07-28 15:22:34

[경제칼럼] 당동벌이 (黨同伐異)

[경제칼럼] 당동벌이 (黨同伐異)

'당동벌이'(黨同伐異), 4글자로 이루어진 고사성어이다. '일의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고 뜻이 같은 무리끼리는 서로 돕고 그렇지 않은 무리는 배척한다'는 의미이다. '동당벌이'(同黨伐異)도 같은 뜻이다. 유래는 '후한서'(後漢書) 당동전(黨同傳)에서 비롯됐다.중국 송나라에서 사마광의 보수파와 왕안석의 개혁파 간 극단의 대립이 있었다. 치열한 당파 싸움은 송나라를 점차 병들게 하였다. 정권을 잡게 되면 상대방을 간사한 무리로 몰아 삭탈관직하고 유배를 보냈다.그들에게는 옳고 그름의 시비 구분은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속한 당파 이익만 있었을 뿐이다.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와 화합은 없었고 탐욕만 가득했다. 보수와 개혁 사이의 진흙탕 싸움은 북송 멸망 때까지 계속됐다. 결국 당동벌이 당파 싸움이 원인이 돼 북송의 두 황제 휘종, 흠종은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가는 큰 치욕을 치르게 된다.조선시대에는 당쟁이 있었다. 그 절정이 예송논쟁이다. 효종과 인선왕후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 상복을 1년, 3년 중 얼마 동안 입어야 할 것인가를 놓고 당파를 지어 치열하게 싸운 것이다. 단순한 장례 문제가 아닌 왕권의 정통성과 당파 이익이 맞물린 집권 세력 간의 싸움이었다.당시 조선은 세계 최고 국력을 보유한 청나라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정통성을 내세우며 벌인 북벌론과 대기근으로 인해 백성들은 굶어죽을 판이었다.하지만 조정은 '상복'을 얼마나 입느냐를 두고 서인과 남인으로 갈려져 소모적인 당파 전쟁을 벌인 것이다. 백성들의 어려운 삶과 궁핍한 살림살이에 대해 집권 세력인 서인과 남인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당파 이익만 우선시됐다.한국은행은 2020년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3.3%로 발표했다. 지난 1998년 1분기 이후 22년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2%대로 폭락할 것이라는 비관론마저 나온다. 더군다나 2020년 1분기 성장률이 –1.3%였다. 2분기 성장률은 –3.3%로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점이 우려된다.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경기침체'(Recession)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여진다. 하락 폭이 더 커진 점도 우려스럽다. 우리가 경제에서 믿는 구석인 수출은 2분기 –16.6% 역성장했다. 상반기 국내 경제가 재난지원금 등 여러 경제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진행했음에도 경제 상황과 수치는 바닥을 향해 가고 있다.어려운 경제 상황과 반대로 2020년 대한민국 대도시 부동산 가격은 매매, 전세, 월세를 막론하고 폭등하고 있다. 대도시 아파트 가격과 전·월세 인상 폭은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2020년 대한민국 국민들의 소득은 줄어드는데, 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은 오르고 있다. 제대로 벌지 못하는데 부동산 가격은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뭔가 관리 시스템이 잘못 작동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를 풀고 해결해야 한다.국가의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기업 활동 등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 활동과 같은 생산적인 것이 아닌 비생산적인 부동산으로 자원이 모여 가격을 왜곡하고 있다.정부는 위기임을 인식하고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조급하지 않은 접근이 있어야 한다. 경제는 심리이다. 시민들의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는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아울러 혁신과 기업가 정신, 이윤 추구가 존경받고 환영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한정적 국가 자원이 기업으로, 이윤이 창출되는 곳으로 흘러들어 정상적인 부를 창출해야 한다.자원의 흐름을 지켜보고 막힌 부분을 뚫어 주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기업하기 좋은 사회인지, 창업하기 좋은 사회인지 끊임없이 스스로 되물어 봐야 하고 필요 없는 규제를 더욱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아울러 백성들의 삶을 살펴야 한다. 당파 이익이 아닌 시민들의 삶을 살펴야 한다. 어려운 시민들의 삶에 박원순 시장, 백선엽 장군의 장례 논쟁은 딴 세상 이야기다. 불필요한 논쟁은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 정해진 규정대로 하면 된다. 여야를 불문하고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보면 나무랄 데 없는 학자요 선비요 군자들이다. 하지만 당파를 결성하면 달라진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싶다.탕평채라는 음식이 있다. 녹두묵에 고기 볶음, 미나리, 김 등을 섞어 만든 묵무침이다. 탕평채라는 음식명은 영조 때 여러 당파가 잘 협력하자는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의 음식상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탕평채를 드시고 이렇게 바뀌었으면 한다.'일의 옳고 그름은 분명하게 따지며, 뜻이 다른 무리라도 서로 돕고, 뜻이 같다고 하여도 시비를 따지는' 당이벌동(黨異伐同)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2020-07-28 11:18:42

[세계의 창] 4차 산업혁명 및 코로나19 시대 변화의 본질에 주목하자

[세계의 창] 4차 산업혁명 및 코로나19 시대 변화의 본질에 주목하자

몇 년 전 괌을 다녀온 적이 있다. 괌은 항구로서의 기능은 사라지고 없었다. 항구에 붙은 설명서가 눈에 띄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만 하더라도 괌은 포경선의 기지로서 대성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괌에서 어획되는 고래 고기는 에너지원인 기름을 생산하는 원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에너지원이 발견됨에 따라 괌의 항구는 쇠락하게 되었다. 과학의 발전이 산업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감했다. 장차 이런 변화의 흐름을 빨리 파악하고 여기에 대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 괌 여행의 큰 수확이었다.1950년대 전후 전화기 사용이 대중화되었다. 1980년대 삐삐라는 통신수단을 거쳐, 최근에는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정용 전화기나 공중전화기는 그 효용을 잃었다. 곳곳에 설치된 공중전화는 흉물처럼 변했다.지난 학기 코로나19 사태로 진행된 비대면 수업에서 SNS 단체대화의 효용을 톡톡히 보았다. 비대면 수업 초기에는 30여 명의 수강생들과 직접 소통할 수 없어 참으로 답답했다. 대면 강의에서와 같이 학생들의 눈빛과 태도를 파악할 수 없으니, 학생들의 수업 이해도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몇 주가 지나 학생들의 양해하에 30명의 단체 대화창을 개설했다. 그리고 오늘 수업은 어땠는지, 보강할 사항은 무엇인지 상호간에 의견을 교환했다. 이렇게 단체 대화창은 나와 학생들 간의 긴밀한 비접촉 소통 창구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유튜브의 유용성을 실감하고 틈틈이 동영상을 업로드한다. 선박 충돌 관련 법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항해 법칙에 관하여 알려주어야 했다. 충돌 상황을 유튜브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려주었다. 수업 중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으로 그 동영상을 시청하도록 했다. 즉석에서 학생들이 그 영상을 시청하면서 나의 설명을 보다 쉽게 이해하게 된 것이다.우정국의 우편 사업 적자가 심하다는 기사를 접했다. 개인 간에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적어졌으니 적자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의 소통수단은 크게 변화가 왔고 산업에도 영향을 주었다.이러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떻게'(how)할 것인가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어떻게' 분야에서는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코로나19 시대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된다. 교통이 좋지 않아 한적하여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 더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건물 공간이 여유가 있는 대학은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학생들이 좌석에 앉아 효율적인 대면 수업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선호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그런데, 이것은 사람들이 무엇을(what), 왜(why) 할 것인지와 무관한 것이다. 통신수단의 발달이 사람의 의식주의 본질에 대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입는 것의 변화는 있지만, 사람이 먹고 자고 입어야 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큰 변화가 없다. 우리는 쌀을 주식으로 하고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여름에는 가벼운 옷을 입게 된다. 비바람을 피할 집에는 살아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논농사를 지어야 하고 바다에서 생선을 잡아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오렌지류는 외국에서 수입해 와야 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방법은 변화가 있어도 그들을 위한 교육 자체에 대한 수요는 상존할 것이다. 통신수단 중에서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TV와 라디오이다. 출퇴근길 운전에 사용하지 않고 남는 귀로 듣는 FM 라디오의 음악 방송은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이와 같이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시대에 빠르게 변화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변화하는 것들에 발 빠르게 수용하고 변함이 없는 것들은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균형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07-27 16:51:22

[기고] 분노한 청년이여, 세상을 바꿔라!

[기고] 분노한 청년이여, 세상을 바꿔라!

사회학자인 이철승 교수는 '불평등의 세대'란 저서를 통하여 386세대의 상층 리더들이 다른 세대에 돌아가야 할 몫을 더 가져갔기 때문에 386세대 리더들의 '약속 위반'에 분노한다고 말한다.그는 한국형 위계 구조의 희생자들은 바로 청년과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이라고 강조한다. 386세대를 포함하여 한국의 기득권 세력들은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심각한 자산 불평등에 절망하고 있다. 산업화 세대가 부동산 시장의 폭등으로 '세대의 기회'를 철저히 이용해 자산계급으로 부상한 결과, 이들의 후손들 일부는 스스로의 노력 없이 '자산계급'으로 편입된다. 부동산 투기 이득을 챙긴 것이다.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나온다. 부의 대물림을 말한다.기득권 세력들은 젊은 청년 세대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라'고만 앵무새처럼 지저귄다. 잠꼬대 같은 얘기다. 젊은 청년 세대들은 1997년 IMF 위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2020년 전 세계적 코로나19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는 데 절망적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하여, 평생직장과 노동의 종말을 넘어서 직업의 종말을 얘기하고, 앙트레프레너 즉 창업의 시대를 예고한다.성공한 CEO들은 일자리 진출과 관련해 창업, 중소기업, 대기업, 공무원 순으로 강력히 추천한다. 실상은 그와 정반대로 모두가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올인하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산업화 세대는 고생도 많이 했지만, 과실도 충분히 따 먹었다. 지금 젊은 청년들에게는 일할 기회조차 없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AI 시대 모든 부와 권력은 극소수 엘리트의 손에 집중되면서 대다수 사람은 이들의 착취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회와는 완전히 단절되는 이른바 '무용계급'이 된다고 주장한다.젊은 청년들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절실하다. 이는 전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책임이다. 아직도 한국의 기득권 세력들은 젊은 청년들의 민생고 문제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국회조차도 소수의 젊은 청년을 내세워서 당선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을 따름이다. 청년 일자리와 청년 창업 및 청년 주거 등과 같은 하드웨어 사업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으나, 그 혜택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이제 젊은 청년들이 분연히 기득권 세력을 향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낼 만하다.그렇다면, 기득권 세력과 젊은 청년 세대들 간의 새로운 공생의 길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득권 세력인 공무원·군인·사학 연금 수혜자들, 산업화 세대와 베이비붐 세대, 386세대는 젊은 청년 세대들을 위하여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어떠한 역할을 담당할 것인지, 그리고 기성세대의 역량 활용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나아가서 연금 수혜자와 기득권 세력의 부에 대해서도 젊은 청년 세대들과 십시일반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이 절실하다.필자는 이에 '청년펀드'를 조성, 종합적인 '청년센터'의 구축을 제시하고자 한다. 청년들의 근본적인 문제인 미래 지향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소프트웨어 사업의 발굴을 위하여 국민적 펀드를 조성, 청년들에게 고기를 잡을 줄 아는 방법을 가르쳐 보자는 얘기다. 핵심 내용은 미래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구체적으로 열거하자면, AI 시대 사회 적응 능력과 새로운 직업 창조 역량, 미래 일과 미래 직업, 전문직의 미래, 미래 지도자·시민 의식 교육, 청년 정치 아카데미, 창업가 정신 등이다. 젊은 청년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개척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야 한다.

2020-07-27 16:39:36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마추픽추의 “굿바이 보이‘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마추픽추의 “굿바이 보이‘

코르테스가 소총 50정을 지닌 500명의 스페인 병사와 16마리의 말로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자, 돼지를 치던 그의 친척 피사로도 180명의 병사와 27마리의 말을 이끌고 남미의 잉카로 향했다. 잉카는 안데스 산맥 4천㎞ 길이에 1천200만 명 인구인 큰 제국이었다. 피사로가 1531년 수도 쿠스코 북부에서 평화 회담을 요청하자, 잉카의 젊은 황제 아타우알파는 무장해제한 군대 8만 명을 이끌고 나갔다. 피사로는 협소한 지역에 화승총으로 무장한 보병과 대포도 감췄으나 황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부가 '개종과 스페인 국왕에 대한 충성'을 압박하자 스스로가 신이었던 황제는 거부하였고, 동시에 대포와 화승총이 불을 뿜었다. 잉카인들은 모두 놀라서 흩어졌고, 황제는 포로가 되었다. 7천 명의 수행원을 대동했던 황제가 순식간에 포획된 것이다. 당시 잉카인들은 미래에 흰 사람들이 큰 동물과 함께 나타나 그들을 구한다고 믿어왔는데, 말 탄 백인 기병들이 그들 앞에 나타나자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고 한다.황제는 자기를 석방해 주면 구금된 방을 금으로 채워 주겠다고 제안하고, 제국의 금 장식을 뜯어 바쳤다. 그러나 피사로는 금만 받고 그를 교수형에 처하였다. 후일 다시 공격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대병력은 즉시 흩어졌고 이후 간헐적인 저항이 무산되며 결국 1533년 잉카제국은 스페인 식민지가 되었다. 잉카에는 소통 가능한 문자가 없었기에 세상에 무지했고 황제는 침략자를 알지도 못하면서도 모두 자신의 권위에 굴복할 것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하다 자멸했다.아즈텍, 잉카가 손쉽게 정복되자 황금 제국 엘도라도를 찾겠다는 유럽인들의 침탈이 이어졌다. 단단한 철이 없었기에 청동기와 돌 무기로 무장했던 잉카인들은 대포와 총칼을 지닌 유럽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잉카의 폭정에 시달리던 다른 부족들이 스페인 군대에 협력한 것도 결정적이었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이 잉카인을 신민으로 인정하는 대신 그들의 무료 노동력 사용을 허용하자 잉카인들은 합법화된 착취와 지난한 노동과 기근을 견뎌야 했다. 천연두를 비롯한 유럽의 전염병도 면역력이 없던 남미 원주민 2천만 명 이상을 몰살시켰고, 잉카 인구도 50만 명으로 줄었다.스페인 정복자를 피해 안데스의 깊은 정상에 새 도시 마추픽추를 건설했던 잉카인들은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졌고, 이 잉카의 도시는 40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진다. 페루의 마추픽추를 돌아본 후 내려오는 버스를 탈 때면 한 남자아이가 손을 흔든다. 한국 사람에게는 "굿 바이"와 "안녕-가세요"를 함께 외친다. 버스가 산길을 돌며 내려오는 동안 소년은 깎아지른 경사를 가로질러 버스를 만나는 길목마다 미리 대기하다가 같은 인사를 반복한다.소년을 일곱 번 정도 만나면 정류장에 도착하는데, 이미 내려와 있던 소년은 버스에 올라 인사를 하고 관광객들은 박수와 함께 돈을 건넨다. '굿바이 보이' '헬로 보이'라 불리는 이 소년은 옛날 잉카의 산길을 뛰어다녔던 파발꾼 '차스키'의 후예이다. 진흙으로 만든 마추픽추의 채색한 소년 종을 흔들면 잉카 파발꾼들의 고난했던 발걸음 소리도 같이 들려온다.

2020-07-27 16:30:00

[박창원의 기록여행] 박물관 병풍을 바람막이로 쓴 시장

[박창원의 기록여행] 박물관 병풍을 바람막이로 쓴 시장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관계자의 추태로 본다. 이(퇴계) 선생의 서화는 해방 전 일인시전과 소창이 당시에 소장하고 고귀하며 일상애호한 걸로 아는데 오늘 우리들의 양심을 돌아보면 과연 한탄해 마지않는 바에 자손만대의 유적물을 그렇게 소홀히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8년 2월 29일 자)박물관에 있어야 할 유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퇴계 이황의 서화와 조선시대의 병풍, 장롱 등 한둘이 아니었다. 유물은 어디로 간 것일까. 유물이 사라진 종착역은 대구부 관리들의 사택이었다. 특히나 병풍의 용도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다못해 눈으로 보는 관상용이 아니라 바람막이 방풍용으로 썼다. 게다가 은고리, 주전자, 찻잔 등도 사라졌고 일부 유물은 사무실 집기로 둔갑했다. 기사는 이를 '추태'로 표현했다.대구부립도서관에 있는 문화재를 공직자 자신이 살고 있는 집으로 몰래 가져간 것으로 드러나자 시민들의 여론이 들끓었다.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공직자에 대해 비판이 쏟아졌다. 한마디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국보급으로 알려진 퇴계의 서화를 가져간 것도 모자라 보물급인 병풍 4개를 각각 방풍용으로 쓴 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낯 뜨거운 일이라는 전문가의 질타도 나왔다.갈수록 여론이 악화되자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조사는 시작부터 기우뚱했다. 유물을 가져간 관리들이 대구에서 내로라하는 위치에 있었던 탓이다. 이들은 대구 부윤과 부부윤, 학무과장, 사회교육계장이었다. 부윤은 지금의 시장이다. 말하자면 대구시장과 부시장, 교육감 등이 공모자였다. 그러다 보니 심부름꾼에 불과한 직원을 조사하는 선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박물관의 문화재 유출에 대해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 것은 해방 직후의 상황과 맞닿아 있었다. 해방이 되자마자 일본인들은 쫓겨나면서 시장의 가게나 작은 창고 등에 보관 중이던 우리의 귀중품을 가져가려 했다. 시민들은 그런 일본인들을 찾아내 유출을 막고 문화재를 되찾는 데 힘을 보탰다. 이 같은 시민들의 노력과는 달리 고위 관리들이 문화재를 사유물로 여겼으니 분노는 당연한 결과였다.대구의 박물관 건립 움직임은 해방되자마자 일찍이 시작됐다. 1945년 8월 하순 대구박물관설립위원회가 발족됐다. 이듬해 3월에는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한 기성회가 조직되었다. 9월에는 수집품 진열과 내부 공사를 마무리했고, 다음 달에 개관을 계획했다. 하지만 개천절인 10월 3일의 개관은 무산되고 말았다. 아마도 10월 항쟁의 여파였을 것이다. 그러다 1947년 5월에서야 대구부립박물관은 달성공원에서 문을 열었다.대구박물관의 유물 수난은 6‧25전쟁 때도 되풀이됐다. 박물관의 소장품이 파손되고 수십 건의 유물이 골동품상으로 빠져나가 거래되는 일이 벌어졌다. 과거는 살아 있는 오늘을 비춘다. '박물관은 살아 있다'다. 박물관뿐이랴.

2020-07-27 16:30:00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정조와 용주사... 바르트와 추미애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정조와 용주사... 바르트와 추미애

◆북경 천주교 남당 성화…홍대용, 박지원 극찬북경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선무문 역에 내리면 천주교 남당이 우뚝 솟아 맞아준다. 1605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 황제 만력제의 도움으로 지은 뒤, 여진족의 청나라 순치제 때 아담 샤알이 확장했으니 400년이 넘는 역사다.1644년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가 아담 샤알을 만나 천주교에 귀의한 뒤, 서양 신부를 조선으로 데려가겠다고 요청한 곳도 남당이다. 남당은 신문물을 갈망하던 실학자들에게 순례 코스였다. 김창업은 1712년 '노가재연행록', 홍대용은 1765년 '을병연행록', 박지원은 1780년 '열하일기'를 통해 한결같이 천주교 남당의 예수님 그림, 즉 성화를 보고 서양화풍에 깊이 감동받았다고 적는다.◆김홍도 통해 남당 성화가 용주사 탱화로1783년 정약용의 매형 이승훈이 남당에서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데 이어 1789년 조선 최고 화가 김홍도가 북경에 다녀왔다. 화가 김홍도가 왜? 정조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효심 깊던 정조는 배봉산 자락 서울시립대 언저리의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 영우원을 1790년 왕릉(융릉)으로 승격시켜 화성에 새로 만들고, 능을 지키는 능침 사찰로 용주사를 세웠다.이때 대웅전에 그린 후불탱화(경기도 유형문화재 16호)에는 서양의 음영법이 녹아들었다. 실학자들이 탄복하던 남당의 성화를 김홍도가 보고 와서 서양화법을 녹여 그렸던 것이다. 문화재청은 현존 작품은 소실된 김홍도의 원본을 본떠 후대 화가들이 새로 그린 것이라고 기록한다.◆정조의 면학 포용 정신, 조지훈의 시혼 깃든 용주사당대 노론 집권 세력은 천주교를 포함해 청나라 문물을 탄압했지만, 정조는 달랐다. 천주교 성화 기법을 배워 불교 탱화를 그리도록 하는 실용적인 포용 정신으로 신문물을 배우자는 중인, 서얼 출신 실학자들을 등용했고, 서양 서적을 모아 펴낸 청나라 백과사전 "고금도서집성"을 규장각에 비치했다. 정조가 100년에 한 번 나올 재상감으로 칭송한 정약용이 이 책의 '기기도설'을 독파해 거중기를 개발하고, 수원화성의 기본 설계도를 완성한 것은 잘 알려진 대로다.'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슴에 담는 일종의 민족시 '승무'는 조지훈이 스무 살이던 1939년 용주사에서 승무를 보고 시상을 가다듬어 '문장'지에 발표한 시다. 이렇듯 용주사는 우리 민족 문화예술사에 실용면학, 개혁, 향내 나는 문학의 산실로 아름다운 획을 긋던 명소다.◆미디어 사진의 여론 공작…오염된 용주사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용주사에 머문 사진이 미디어에 실렸다. 소쉬르의 기호학을 미디어 분석에 적용한 롤랑 바르트는 미디어가 싣는 사진은 겉에 드러난 이미지, 기표(記標)에 불과하고 속뜻, 기의(記意)가 숨겨졌다며 이를 지배 집단의 이데올로기 공작으로 규정했다. 바르트는 1955년 7월 프랑스 주간지 파리마치 326호 흑인 병사의 거수경례 표지 사진에 주목했다. 당시 프랑스는 1954년 5월 베트남 디엔비엔푸 전투 패배로 식민지 베트남을 잃고, 1954년 11월 알제리 독립전쟁 발발로 고전 국면이었다.바르트는 흑인 청년의 경례라는 '기표'에는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아프리카 출신까지 애국주의로 뭉치라는 '기의'가 담겼다며 제국주의 미화 공작의 이면을 파헤쳤다. 사찰에서 마음을 비운 듯한 사진, 즉 '기표'에는 갈등 중인 윤석열 검찰을 속세의 찌든 권력으로 대비하려는 엉큼한 '기의'가 도사린다. 바르트의 예리한 기호학적 분석으로 본심을 들킨 권력과 미디어의 저급한 사진 정치술은 감동은커녕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다.◆이개 장관(?)…'살아 있는 권력 수사' 지원해야추 장관의 낡은 수법은 청와대 탁현민의 상투적인 '슈도 이벤트'(꾸며낸 사건) 연출과 맥이 닿는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밑으로부터 다원적 가치의 수렴이지만, 추 장관은 걸핏하면 "내 명을 어겼다"는 식의 오만과 독선으로 정치 문화를 "왕이 곧 국가"(L'État, c'est moi)라는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의 루이 14세 때로 퇴행시킨다. 한동훈 검사장이 추 장관을 '일개 장관'으로 묘사하자 진중권은 부동산 행정까지 오지랖 넓히는 '이개 장관'이라고 고쳐 불렀다. '이개 장관'하거나 용주사 '슈도 이벤트'할 시간에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명대로 윤석열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돕는 것이 그렇게 좋아하는 상명하복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다.

2020-07-27 16:30:00

[매일춘추] 배신을 준비할 때다

[매일춘추] 배신을 준비할 때다

살면서 우리는 배신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도 되기도 한다. 아마 인류 최초의 배신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인간 배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배신의 종류도 다양하다. 개인적 배신, 사회적 배신, 정치적 배신 등이 있다. 최근 부부의 배신을 다룬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옆자리에 누워있는 내 남편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감정이입의 기폭제가 되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고리로부터 시작하여 '가족'이란 울타리를 만들어 서로의 인생을 공유한다. 너만을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하면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약속은 버려졌다. 사랑의 배신으로 시작된 증오, 이어지는 서로를 향한 복수가 주된 드라마 내용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사랑은 무한하지도 불변하지도 않다. 누가 당신을 한번 배신했다면 그 사람 탓이고, 두번 배신했다면 당신 탓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답은 의외로 간단한다. 서로의 결핍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든지, 아니면 쿨하게 헤어지면 된다. 우리는 적대적인 배신에 분노를 느끼지만, 비적대적인 배신에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배신을 두려워하지 말자.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내 청춘 내 행복을 짓밟아 놓고 얄밉게 떠난 사랑의 배신자"에게는 무관심이 최고다. 배신당하는 자는 상처 받지만, 배신자는 더 비참한 정신적 상태에 놓인다. 복수란 상대뿐 아니라 자신까지 파괴한다. 다른 사람만을 위해서 살지 말자. 나없는 너, 나없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배신의 원인은 남으로부터 먼저 제공되지만, 치유의 출발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를 철저하게 배려하면, 배신을 쉽게 당하지 않는다. 설령 배신을 당해도 인생 회복력이 빨라진다. 개인적 배신의 슬픔보다, 주권자로서 당하는 정치적 배신이 우리를 더욱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 누구도 정의와 공정, 나라와 지역의 담대한 발전, 노동의 가치, 계층간의 불평등, 청년의 결핍, 문화의 소외를 말하지 않는다. 자기 잇속 챙기기만 바쁜 침묵의 사회다. 현란한 이벤트만 있고, 구체적인 메시지는 전혀 없다. 그 배신의 선두에 정치권이 당당하게 서있다. '핑크빛은 무능하고, 파란빛은 오만하고, 노란빛은 힘이 없다.' 요상한 나라다. 우리는 의외로 예측된 배신에 잘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우매한 개돼지'라고 부른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것이라고 착각한다. 오만한 권력은 국민에게 탐욕의 비루함을 항상 강요한다. 그러나 강한 자보다 비루하고 뻔뻔한 자가 먼저 승리한다. 이제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배신을 준비할 때다. 그들이 민심의 배신을 느낄 시간이다.

2020-07-27 14:36:07

[기고] 노인연령·명칭, 노인의 날 모두 바꾸자

[기고] 노인연령·명칭, 노인의 날 모두 바꾸자

첫째, 노인연령을 70세로 높이자. 현행 노인연령 65세는 UN이 1950년 고령지표를 산출하면서 독일의 노령연금지급개시연령을 참고하여 정한 것이다. 70세로 높여야 하는 이유는 노인인구 과다 때문이다. 노인인구는 현재 전체인구의 16.4%인 826만 명이다. 이런 수치는 노인부양부담증가로 이어져 2000년 9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던 것이 2020년에는 4명이 1명 부양, 2040년에는 2명이 1명을 부양해야 될 것으로 전망된다.또한 노인인구 과다는 노인진료비 문제로 이어진다. 현재 노인 1인당 연 545만원을 사용하여 전체평균의 3배, 총 진료비의 40%를 사용하고 있다. UN이 정한 노인은 80세 이상이다. 따라서 기득권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충격을 완화하도록 1년에 1세씩 연차적으로 5년간 인상함이 타당할 것이다.기대되는 효과로는 노인인구가 826만 명에서 약 267만 명이 줄어든 559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10.8%가 되어 고령화 사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아울러 노인부양부담문제, 노인진료비 과다지출문제, 지하철 적자 등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둘째, 노인의 명칭을 '어른이'로 하자.노인이라 함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을 말한다. 그동안 노인의 중국식 혹은 일본식 이미지를 벗어보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대안으로 '어르신'으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다.1998년 한국사회복지협회 대체호칭 공모작으로 선정되었고, 2010년 (사)한국골든에이지 포럼에서 제안되기도 하였다. 특히 2012년 9월 10일 서울시 노인 대체명칭 공모 시 2천46건 제안 중에서 선택되어 상금 50만원이 주어지기도 하였다.그러나 어르신은 명사로 어른의 공경어인바 지칭(指稱), 자칭(自稱)이 곤란하다. "저 사람은 어르신이다", "나는 어르신이다" 등 부적합하다. 그 외에도 '시니어'라고 하자는데 상당한 힘이 실리고 더러는 쓰이고 있다. 시니어와 관련해서는 2011년 국회에서 노인복지법을 개정하여 노인을 '시니어'로 개정하려 했으나 한글단체의 거센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따라서 순수 우리말인 '어른이'로 할 것을 주장한다. '어른이'에서 '어른'은 명사로서 다 성장한 사람, 나이, 지위, 항렬이 자기보다 위인 사람이며 '이'는 대명사로서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 대명사이다.'어른+이=어른이'이다. 어른이는 나이가 많아 지혜와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정의하자. 대한노인회는 '대한어른이회', 노인복지관은 '어른이복지관', 경로당은 '어른이 집'으로 하면 될 것이다.셋째, 노인의 날을 5월 26일로 변경하자. 현행 노인의 날 10월 2일은 1991년 UN총회에서 1999년을 '세계 노인의 해'로 정하면서 10월 1일을 노인의 날로 정했는데 우리나라는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이라 하루 미뤄 10월 2일로 정하게 되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낙엽 지는 썰렁한 가을보다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가정의 달 5월로 옮겨 5월 26일을 '어른이 날'로 했으면 좋겠다.5월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 날, 8일 어버이 날, 15일 스승의 날, 18일 성년의 날, 19일 발명의 날, 21일 부부의 날, 25일 방재의 날 등을 다 보내고 느긋하게 가정의 달 대미를 장식하는 26일 '어른이 날'을 하면 얼마나 여유롭고 좋은가!

2020-07-26 14:30:00

[매일춘추] 호반의 도시, 대구

[매일춘추] 호반의 도시, 대구

아득한 옛날 대구는 내륙지역이 아니라 거대한 호수였다. 지각변동과 퇴적작용에 의해서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북쪽으로는 안동, 남쪽으로는 광양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단다. 지금도 한반도 호수의 35%가 경상북도에 치중하고 있다고 하니 거대했던 옛 호수의 흔적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가 매립한 지금의 서문시장 자리의 천왕당못, 복현오거리 일대의 배자못, 대명동 영선시장 자리의 영선못, 달성고등학교 일원의 감삼못, 비산동 날뫼못, 수성구청 주변의 범어못, 소래못, 사리못, 한골못, 들마못, 소못 등 일제강점기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구의 호수들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태반이 사라졌다. 성당못도 30%가량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대구도심 중간에 수성못과 성당못이 남아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수성못은 조선시대 문헌에도 '둔동제'라고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때 부족했던 농업용수와 홍수범람을 막기 위하여 '미즈사키 린타로'라는 일본인이 증축한 호수가 지금의 수성못이다. 약 다섯 배 정도가 커졌단다. '미즈사키 린타로'에 대해서는 분분한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일본인으로서 조선에 도움을 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의 묘도 수성못이 잘 보이는 근처 산언저리에 있다. 수성못은 필자에게도 앨범 속의 빛바랜 사진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어릴 적 추억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유아 때에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억새풀 같이 바람에 흔들리는 축 처진 수양버들 밑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용지봉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지금의 거북이상 있는 곳으로 물이 흘러 들 때면 수많은 물고기들이 앞 다투어 물을 거슬러 올라갈려는 모습들이 장관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낚시를 다녔으며 대학시절과 군 제대 이후에는 포장마차 촌에서 밤이 새도록 골뱅이 안주에 술잔을 기울이던 추억들이 아롱거린다. 지금은 잘 얼진 않지만 예전에는 물이 꽁꽁 얼어 대구시민들의 겨울 스포츠 센터 역할을 했었던 수성못.한 때는 수성못도 오염에 몸살을 앓아야 했다. 하지만 2011년에 시작한 수성구 범어천 생태하천 복원사업과 수성못 환경개선 사업을 묶어 이 일대를 자연친화적인 명소로 개발하였다. 수생식물 군락과 생태탐방로, 산책로와 공연장,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넓은 공간을 확충하였고 수성유원지 옆 수성랜드도 대구시민들에게 소소한 위안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수생식물 군락은 수질 개선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일급수를 유지하고 있다.수성못 둑에 앉아서 그 옛날 나라 잃은 서러움을 토하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시인을 생각한다. 나라를 생각하던 시인의 마음처럼 수성못을 우리가 잘 보존하고 깨끗하게만 관리한다면 수성유원지 만으로도 대구는 이미 호반의 도시일 것이다.

2020-07-26 14: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이인상  ‘송하관폭’(松下觀瀑)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이인상 ‘송하관폭’(松下觀瀑)

조선 후기 문인화가 이인상은 부채그림을 많이 그렸다. 오십 평생에 그린 수십 점이 전하는 가운데 약 15점이 부채그림인데 하나하나가 똑똑 떨어지는 정성들인 작품이다. 부채그림은 부채꼴에 맞춰 구도를 잡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접혀진 선면을 펴서 고정해 놓고 그려야 해 붓이 잘 나가지 않는 까다로움도 있다. 부채그림을 이인상은 왜 많이 그렸을까. 원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의 화풍이 주는 서늘한 기운이 부채에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가난한 이인상이 친구들의 호의에 답례하는 최상의 수단이기도 했을 것 같다. 그림과 글씨로 이름이 났으면서도 사류(士類) 사이에 정평이 있는 개결한 성품이어서 이인상의 그림부채라면 누구 앞에서 펼치더라도 뿌듯했을 것이다.이인상은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경여의 고손자였으나 증조부가 서출이었기 때문에 서자라는 불우한 처지였다. 조선을 통틀어 4대 명문으로 꼽히는 집안의 후광은 충분해 당대 일류 문인들과 사귀었으나 관계나 학계, 문단에서 출세할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이인상에게 그림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자적(自適)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마당이기도 했다.푸른 행전으로 펄럭거리는 바지를 싸매고 산길을 올라온 그림 속 고사(高士)는 홀로 바위에 앉아 있다. 폭포를 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눈길이 향하는 곳은 바위틈에서 몸통을 굽혀 자라면서도 웅장하게 가지를 뻗은 소나무인 '폭하관송'(瀑下觀松)이다. 그래서 이인상의 서화를 평석(評釋)한 대저를 저술한 박희병 선생은 이 그림 제목을 '송변청폭'(松邊聽瀑)이라고 했다. 폭포소리에 귀를 씻으며 소나무를 바라보는 인물은 이 부채그림을 그려준 친구 위암(韋菴) 이최중일 것이고 세찬 폭포, 기이한 소나무, 바위는 그의 사람됨을 상징할 것이다. 화제는 읍취헌 박은의 시 '유역암'(遊櫪巖) 중의 두 구인데 몇 글자는 다르다.노폭홀성암외향(怒瀑忽成嵓外響) 부운욕결일변음(浮雲欲結日邊陰)추일(秋日) 상(上) 소호로(小葫蘆) 남강(南岡) 사(寫) 병위(病韋) 선면(扇面)(성난 폭포소리 홀연히 바위 밖에 메아리치고, 뜬 구름 맺히려니 해 주변이 어두워지네.가을날 소호로의 남쪽 언덕에 올라 병중에 있는 위암의 부채에 그리다)한 구안자(具眼者)의 이인상에 대한 평론은 이렇다. "이인상의 묘처(妙處)는 농(濃)에 있지 않고 담(淡)에 있으며, 숙(熟)에 있지 않고 생(生)에 있다. 오직 아는 자만이 이것을 안다." 그림의 맛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눈이 다 있는데도 안목(眼目)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높다니 낮다니 한다. 화려한 그림과 담담한 그림, 노련한 그림과 대교약졸의 그림은 각각의 특징으로 서로 다른 기쁨을 준다. 제각각의 매력을 다 느끼려면 방법은 많이 보는 수밖에.미술사 연구자

2020-07-26 14:30:00

[이른 아침에] 수도 이전은 부동산 정책이 아니다

[이른 아침에] 수도 이전은 부동산 정책이 아니다

행정수도 이전론, 행정수도 완성론 등이 무성하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운을 띄우고 정부·여당에서 일사불란하게 논의를 끌고 가는 형국이다. 충청 표를 의식한 미래통합당은 어정쩡한 자세지만 본격적인 논란이 불거지면 가만히 있기는 불가능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개헌론까지 들고나오는 마당에 언제까지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 부동산 정책 실패의 역풍, 단체장들의 연이은 성 추문 등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수 있는 '이슈의 블랙홀'이 현실화하기 전에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우선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는 것은 수도 이전이라는 사실부터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국회와 행정을 통할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소재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은 수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라고 했다. 국회와 대통령의 소재지가 수도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를 옮기는 것은 따라서 대한민국의 수도를 이전하는 것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하거나 완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치적 선택이다. 헌재가 "이 사건 법률에 의한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 수도의 이전을 의미한다"고 못 박은 것도 그 때문이다.헌재의 '관습헌법론'을 비판하며 국회에서의 특별법 제정으로 수도 이전이 가능하다고 하는 견해도 문제가 있다. 관습헌법론의 논거에는 개인적으로도 동의하지 않는다. 성문법 국가에서, 그것도 엄격한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 성문헌법을 가진 나라에서 헌법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관습헌법'은 인정하기 어렵다. 수도가 서울인 '사실'이 수백 년간 이어져 왔다고 해서 수도가 서울이어야 한다는 국민의 확신이 헌법적 차원의 '규범'으로 격상되었다는 논리도 수긍할 수 없다. 하지만 헌재의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과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은 헌재에 의해 명시적으로 변경되기 전까지는 존중되어야 할 선례이다. 일단 법으로 밀어붙이고 헌재의 위헌 심판을 받아 보자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최종 결정 시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를 혼란도 그렇고, 현재의 헌법재판관 구성으로 보아 정부·여당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도 헌재를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관으로 당연시하는 불편한 의견이다.정치적 목적의 수도 이전론 역시 마땅치 않다. 당장은 심각한 부동산 문제의 해법으로 제기된 행정수도론이지만 비판이 일자 국가균형발전 명분을 덧붙이고 있다. 부동산 정책은 그 자체로 엄중한 민생 문제이고 반드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사안이다. 수도 이전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엉뚱한 해답일 뿐이다. 행정수도론이 나오자 세종시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론 역시 합당한 논거가 되기 어렵다. 국토균형발전은 헌법에서 요구하는 국가의 의무이다. 정권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공공기관 이전 등을 통해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등의 이전을 재차 추진하겠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간의 정책 성과를 면밀히 검토한 후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이전한 공공기관과 그 직원들이 해당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발전에 기여해 왔는가. 소요된 비용과 노력에 비해 성과가 크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지역 대학 졸업생에게 가산점을 부여하여 해당 기관의 취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균형발전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대한민국의 수도가 반드시 서울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필요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 실패의 시선을 돌리려 하거나 선거에서 '재미 좀 보기 위해' 던지는 화두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국가의 백년대계와 통합의 상징성 그리고 미래지향성을 염두에 둔 곳이어야 한다. 만약 수도를 이전한다면 개헌이나 국민투표 등 국민적 합의를 위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020-07-26 14:23:31

[광장] 풍요의 시대, 식량 부족을 생각하다

[광장] 풍요의 시대, 식량 부족을 생각하다

단연코 먹방의 시대다. 유튜브나 케이블 채널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에서도 먹방은 대세가 되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8천원대의 한식 뷔페식당, 1만원대 초중반의 무한 리필 고깃집과 패밀리 레스토랑이 주위에 널려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저렴한 식자재 가격 때문이다.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걱정했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식량은 산술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발생하는 식량 부족 문제는 해결된 듯 보인다. 세계 인구 78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전 세계 유통망을 통해 공급되고, 우리는 돈만 있으면 어디서든 무엇이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남녀노소를 막론한 다이어트 열풍과 넘쳐 나는 음식물 쓰레기 시대를 살면서 식량 부족을 고민하면 이상한 사람일까? 아프리카 등 빈곤국 8억 명의 기아 문제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도 미래 식량 부족은 지나친 기우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왜 먹방과 다이어트 시대에 식량 부족을 걱정해야 하나? 세계 인구 증가와 중국, 인도 등 인구 대국의 경제성장으로 식품 소비가 '곡물'에서 '육류'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인구의 양적 증가는 식량 수요 확대의 직접 요인이며, 육류 소비 급증은 사료용 곡물 수요를 촉발시켜 더 많은 식량 생산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식량 수요를 충당했던 공급 방식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인가? 비농업용 토지 수요 증가에 따른 농지 부족, 기후변화의 불확실성, 농업용수 고갈 등이 식량 생산의 장애 요인이다. 우리가 식량 부족을 걱정하는 이유는 수요 증가와 공급 불안정성 때문이다. 맬서스의 악령은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다.세계적 투자가인 짐 로저스는 "모든 사람이 농업을 등한시하고 도시로 몰려나올 때 역으로 농부가 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농업이 미래 산업이자 유망 산업이라 강조한다. 또한 식량은 필수재이기 때문에 농업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반드시 먹어야 한다. 하지만 식량이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으면 돈으로도 살 수가 없다. 이윤 추구 생산자가 팔지 않는다는 상상은 지나친 일일까? 만약 판매할 농산물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연재해나 기후변화로 농산물 생산이 감소한다면 농산물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질까? 코로나19로 우리는 이미 선진국의 텅 빈 식품 매장을 눈으로 목격했다.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은 전 세계의 자유로운 식량 이동을 촉진한다.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국가 간 이동이 식량 문제를 해결한다는 논리로 식량 생산이 국가 단위에서 글로벌 단위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는 수입국의 수입하지 않을 권리는 허용하지 않지만, 수출국의 수출 금지는 허용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와 같은 식량 수입국은 아무리 달러가 많아도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밀, 콩 등을 수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되자 인도, 태국, 베트남이 쌀 수출을 금지하였으며, 2010년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 금지로 세계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식량이 풍족한 먹방의 시대, 우리는 식량안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돈으로 얼마든지 식량을 수입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 미래 세대에게 식량 재난을 물려줄 수 있다. 식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에 안정적 국내 생산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농식품은 생명을 지탱하는 원천일 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지키는 파수꾼임을 기억해야 한다.

2020-07-24 14:30:00

[춘추칼럼] 회복기의 삶

[춘추칼럼] 회복기의 삶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따분하고 지루하다. 그날이 그날 같고 하나도 신나는 일, 즐거운 일이 없다. 그렇지만 말이다. 여기서 한번 생각을 바꿔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관점과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에머슨이라는 미국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헛되게 불평하면서 보내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살고 싶었던 내일이다."바로 이것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날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치 있는 날은 오늘뿐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날인가!그래서 나는 오늘은 나의 생애에 남은 날 총량 가운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새날이고 첫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 그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새날과 첫날에 있어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첫 사람이고 또 새 사람이다.이런 생각 하나만 바꿔도 세상은 갑자기 눈을 뜨는 세상이 되고 눈부신 세상, 찬란한 세상이 된다. 부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루한 세상, 짜증 나는 세상, 누더기같이 낡은 세상이라고 꾸중하지 말기 바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만 그런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이다.이쯤에서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말을 인용해 보고 싶다. 보들레르는 시를 이야기하면서 시를 쓰는 시인은 회복기에 이른 환자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회복기란 마치 어린 시절로의 회귀와도 같다. … 아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본다. 그는 언제나 도취해 있다. 우리가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아이가 형태와 색채를 흡수하는 기쁨과 가장 닮아 있다."우리도 주변에서 가끔 이와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암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라. 그에게 세상은 오직 눈부신 세상이고 새로운 세상이고 아름다운 세상이고 찬란한 세상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 무엇 하나 새롭지 않고 감사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그는 조그만 일에도 흥분하는 사람이고 감동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암이란 질병에 걸렸던 것은 분명히 불행이고 악운이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그 이후의 날들은 축복의 날들이 될 것이다. 실은 나도 그런 일을 겪은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2007년의 일이니까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분명히 죽을병에 걸렸었지만 끝내 살아서 병원을 빠져나왔다.그런 이후 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날마다 나는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 됐고 사소한 일에도 취한 사람이 됐고 의미를 찾는 사람이 됐다. 보는 것마다 새롭고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그것은 취한 삶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도 취하는 날들이었다.믿지 못하실 것이다. 그냥 그것은 터닝포인트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반전의 인생이었다. 비록 몸은 병들고 왜소해졌으며 많은 가능성이 사라져 버렸지만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감사하고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겨우 이만큼밖에 남지 않았다고 투정하는 사람에서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진정 인생이 지루하신가? 따분하신가? 아무것에도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시나? 그렇다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져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만사 살아가는 기대 수준을 조금쯤 낮출 필요가 있다. 조금쯤 부드럽고 다정한 눈길이 준비되어야 한다.지금 우리는 너무나 외부 지향적이고 타인 지향적이다.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그런 경험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일상적인 일, 흔한 일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립게만 느껴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 보들레르식으로 말한다면 회복기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부디 자기 자신을 해바라기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때로는 채송화라고 여겨 보시라. 세상이 대번에 달라져 보일 것이다. 큰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채송화는 애당초 키가 작은 꽃이기에 해바라기처럼 넘어지거나 줄기가 부러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2020-07-23 15:28:50

[매일춘추] 회화 작품의 가격

[매일춘추] 회화 작품의 가격

"작품 가격은 왜 이렇게 비싼가요?"나는 전시장에서 종종 이 질문을 듣는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발간한 '2019 미술시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규모는 4천482억원(거래 작품 수 3만9천367점), 1점당 평균 판매 가격이 약 1천400만원을 기록했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이 결과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술 작품은 고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작품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고 생각한다.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살바도르 문디'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이 각각 5천억원(2017), 1천19억원(2018년)으로 판매됐다. 이들의 작품이 천문학적인 값으로 거래되는 이유는 개인의 자산 과시라는 견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이 지닌 본질적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다 빈치의 경우 더 이상 제작이 불가하다는 점에서 작품의 희소성은 물론 구매자의 소장 욕구가 작품의 가격을 상승시켰다는 것이다. 호크니의 경우 서양 전통 미술의 영향과 배경 그리고 작품의 주제와 기법이 미술사가와 대중들의 시선을 이끌었으며 그에 따라 미적 가치가 높아진 것이다.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구매했지만 별 감동이 없었다는 어느 관람객의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관점이 아닌 추천에 의한 구매는 작품 소장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신진 작가의 풍경화를 구매한 적이 있다. 당시 호당가격이 5만원이 채 안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큰 감동을 전한 의미 있는 작품이 되었다. 이처럼 작품의 가격은 객관성도 있지만 구매자의 관점에 따라 매우 주관적이기도 하다.한 논문에 의하면 작품의 가격은 크기에 따라 재료비와 노동력 그리고 작가의 필력을 기준으로 산출되며, 작품의 호수 기준표는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비례'를 근거로 정해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미술 전문가들은 작가의 나이, 경력, 재료, 크기, 미술사적인 가치, 보존 상태, 작가의 서명 여부 등 모든 측면을 고려하여 작품의 가격을 산출한다. 이렇게 정해진 작품의 가격은 같은 크기여도 누구의 작품인지에 따라 달라진다.오늘도 전시장을 찾은 일부 사람들은 작품의 가격이 비싼 이유에 대해 질문하지만, 나는 작품과의 공감이 예술을 대하는 진정한 태도라고 생각한다.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한 작품일지라도 구매자가 느낀 감동이 크다면 작품의 가치는 굉장히 높을 것이고, 반대로 고가의 작품일지라도 전해지는 감동이 없다면 작품의 가치는 낮을 것이다. 작품의 가격을 고려할 때는 그 작품이 나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에 대한 미적 감동에 기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2020-07-23 14:30:00

[신창환의 같이&따로] 큰 정부 대 작은 정부

[신창환의 같이&따로] 큰 정부 대 작은 정부

지난 14일 정부는 한국판 뉴딜정책을 발표하였다. 친환경 저탄소를 핵심으로 하는 '그린 뉴딜'과 경제 전반의 디지털 혁신을 강조하는 '디지털 뉴딜'이 한국판 뉴딜정책의 핵심이다. 여기서 한국판 뉴딜정책의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뉴딜'이라는 용어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돌아보고자 한다.사회적 뉴딜이 필요하다는 말도 언론에서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고, 우리 사회에서 어느 순간 '뉴딜'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뉴딜정책은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의 경제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1933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추진한 정책을 일컫는다. 시장은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신념이 강했던 미국에서 뉴딜정책은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테네시강의 댐 건설이 뉴딜정책의 첫 사업이었고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출을 통해 고용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뉴딜정책의 핵심이다.몇 달 전, 미국 의회는 코로나19 예산으로 3조달러를 승인하였다. 이 금액은 1930년대 미국의 뉴딜사업에 투여한 돈의 5배에 해당되는 규모이다. 뉴딜 사업 기간이 6년 동안이었다면, 미국의 코로나 예산은 단 6개월 만에 집행된다는 점에서 엄청난 규모이다. 그야말로 21세기판 뉴딜이라고 할 수 있다.효율성과 수익이 중요한 관심사가 될 때는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이 힘을 얻지만, 위기의 시기에는 국민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을 기대한다. 경제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게 되고 정부의 역할과 권한은 커지게 되어 이른바 큰 정부를 수용한다. 경제에서 소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작은 정부'와 비교하여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큰 정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 속에서 큰 정부가 주도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18세기 이후 근대사회의 출발부터 현재까지 우리 삶은 정부와 시장 양자 간의 역학 관계 속에서 규정되어 왔다. 특정 시기에는 시장에 주도권이 주어졌다가, 이어지는 시기에는 정부가 주도권을 갖는 역사적 순환이 이어져 왔다. 자유방임을 기본으로 하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는 큰 시장이, 1920년대 말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수정자본주의 시대는 큰 정부가 사회 변화를 주도하였다.그리고 오일쇼크를 기점으로 세계 경제 위기가 오면서 다시 주도권은 시장으로 넘어간다. 수정자본주의 시대를 주도했던 케인즈를 비판하면서 시장의 자유와 논리를 강조한 하이에크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하이에크의 사상을 수용한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필두로 하여 1980년대 이후부터 세계의 경제와 정치는 다시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가 주도하게 되었다.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점차 작은 정부와 큰 시장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그 와중에 최근 발생한 코로나 위기 사태에서 각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상황을 근거로 이제 다시 균형추가 정부 쪽으로 이동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전의 작은 정부와 큰 시장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게 된 계기는 분명한 듯하다. 경제학자인 아나톨 칼레츠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를 이전의 자본주의와 구분하여 자본주의 4.0이라고 말한다.이전의 자본주의가 정부와 시장을 정치와 경제를 둘러싼 적대적인 관계로 보았다면, 이제는 정부와 시장이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시장(기업)의 장점은 보장하되, 시장과 정부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시장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공생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자는 관점이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 해도, 코로나 사태가 가져온 우리 삶의 변화된 많은 것들은 지속될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시장이 협력해서 조금이라도 우리 삶이 나아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뉴딜이 아닐까.

2020-07-22 16:30:00

[강규형의 새론새평] 한국인들은 거짓 공약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

[강규형의 새론새평] 한국인들은 거짓 공약 따위는 신경도 안 쓴다

조선시대 때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은 대체로 위생적인 불결함과 습관적 거짓말을 지적한 경우가 많다. 위생은 대단히 좋아졌지만, 거짓말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황승연 경희대 교수는 이것을 아무 책임지지 않고 사는 노비들이 많았던 사회에서 파생된 '노비근성'으로 설명했다. 아마 여기에 겉치레를 중시하는 주자학의 전통도 한몫했을 것이다.이유야 어떻건 한국은 아직도 거짓말이 횡행하는 곳이고 따라서 상호 신뢰와 신용이 부족한 저(低)신뢰사회(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의 분석)이다.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로 넘기는 것이 일상사가 된 사회. 이것은 한국사회가 근현대 문명국가가 되는 데 큰 장애물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거짓말은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의 모든 계층이 거짓으로 점철된 사회는 그리 많지 않다. 하류층 일반 대중들의 일상적인 거짓말부터 최상위 집권세력의 뻔뻔한 거짓말까지 정말 모든 층위에서 허위가 난무하니 한국은 미래가 없는 사회이다. 필자는 지난 몇 년간 특히 이런 것을 깊이 체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자기들의 사기 행각을 덮기 위해 온갖 거짓말로 일관하다가 법원에서 허위가 밝혀진 개장수들부터, 그것을 악용한 노조 세력들, 그리고 방송 장악을 위해 발악을 하면서도 자신들은 방송 장악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쓴 집권 세력까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심지어는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으로 일관하다가 증거를 들이대자 그제서야 잘못을 시인하는 경찰관까지 봤다.그중에 백미는 현재 집권 세력의 거짓말 퍼레이드이다. 20대 총선에서 광주 등 호남에서 패배하면 대선을 포기하는 등 정계 은퇴를 하겠다는 문재인 후보는 실제 광주·호남에서 완패를 하고도 그 엄중한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고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게 한국사회다. 문재인 후보의 대선공약들을 하나하나 복기해 보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는 책임지지 않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있는 권력 눈치도 보지 말라"고 호기롭게 당부했다가 진짜 살아있는, 그러나 부패하고 부정한 권력에 대해 세게도 아니고 살짝 손을 대도 광란에 가까운 방해를 하고 있다. 이제는 '공영방송' KBS 9시 뉴스가 채널A 전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의 존재하지 않는 대화 내용을 가공해서 보도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KBS는 "기레기 방송 서비스"의 약칭이라는 풍자까지 나오고 있다.저번 총선에서 비례용 정당을 절대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친여권 비례용 위성정당이 두 개나 만들어졌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비난은 잠시라도 책임은 4년"이라는 합리화로 비틀어진 사회에서의 정답을 말했다. 유권자들은 이런 거짓말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통일부 장관으로 검증 중인 이인영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인에게 쏟아지는 의혹에 대해 그때그때 달라지는 변명을 하고 있다. 솔직히 얘기해보자. 한 것이라곤 전대협 등에서 NL 친북 공산혁명 운동을 하다가 전향도 제대로 안 하고 갑자기 사회의 최고 상층부에 진입했다. 그러고는 본인들이 그렇게 타도하자고 외쳤던 특권층이 돼서 온갖 특혜를 받은 것 아닌가. 조지 오웰이 경고했던 '두 다리로 걷는 돼지들', 유고슬라비아 공산 게릴라 출신인 밀로반 질라스 부통령이 자기의 사상을 버리고 얘기한 '뉴 클래스'(New Class·이 책은 최근 이호선 교수의 번역으로 '위선자들-새로운 수탈계급과 전체주의의 민낯'(리원)으로 출간됐다), 또한 전체주의(혹은 유사전체주의) 체제에서의 특권층인 '노멘클라투라'의 한국적 변용에 불과하다. 이것은 한국의 대부분 소위 운동권과 좌파 시민사회 출신들이 공통으로 갖는 특징이다. 이런 세계의 최상위에 군림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몰락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자기 당 소속 지자체장의 잘못으로 재보궐 선거를 하면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집권당의 '멋있는' 공약도 결국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엔 "반성 차원에서 여성 시장 후보자를 내자"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별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미 거짓말에 중독돼 있고, 과거 공약 따위는 그때쯤이면 다 잊어버리고 있을 테니까.

2020-07-22 15:53:55

[기고] 견지망월(見指忘月)

[기고] 견지망월(見指忘月)

옛날 어느 불자가 고승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했다. 고승이 스스로 글을 알지 못한다고 하자 불자는 크게 실망했다. 그러자 고승은 실망하는 불자에게 진리와 문자는 무관하다고 했다."진리는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우리의 손가락과 같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만 손가락이 없다고 달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라는 가르침을 줬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 견지망월(見指忘月)이다.코로나가 확산되고 있을 무렵 대한의사협회가 "해외 입국을 차단하지 않고 국내 방역에만 집중한다면 창문을 열어 놓고 방 안의 모기를 잡는 격"이라며 해외 입국 차단을 수차례 건의한 바 있었다. 그때 주무장관이란 자는 "지금은 겨울이라 모기가 없다"며 모기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그야말로 동문서답이자 견지망월의 전형이라 하겠다.KBS-1TV '더 라이브' 6월 29일 방송 프로에 모 야당 인사가 출연했다."17개 상임위를 여당이 독식했다. 따라서 국회는 없다"고 한 주호영 원내대표의 발언을 두고 그 인사는 "국회가 없다면 의원들 배지 떼고 집에 가야지. 안 그래? 국회가 없는데 의원이 무슨 필요 있어?"라고 했다.그는 이어 자신의 말이 자못 대견한 양 "안 그래요? 내 말이 틀렸어?"라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 소아적인 시각에서 한 발언이라 생각하니 씁쓸하기까지 했다.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백종원 같은 사람은 어떤가?"라고 한마디하자 통합당 모 중진 의원은 "백종원을 희화화했다" "우리가 드린 그 자리를 이용해 자기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설마하니 정치 경험도 전무할뿐더러 자격이나 자질 검증도 안 된 백종원 씨를 대권 후보로 염두에 두고 한 말은 결코 아닐 텐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면서 손톱이 기네 짧네라고 하니 그런 발언들이야말로 정치를 희화화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그 의원 말대로 '우리가 드린 그 자리'라면 김종인 비대위원장 발언의 취지를 이해하고 일치단결해서 반대 정파 등의 이런저런 공세를 적극 차단해 줘야 하는 게 맞지 오히려 앞장서서 내부 총질이라니…. 좌파들의 '조국 수호'와 극명하게 대비된다.현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이 22번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집값은 잡히지 않고 오히려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청와대는 집을 2채 이상 소유한 비서관들에게 '한 채만 남기고 모두 팔아라'라는 지침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바 있으나 다수가 팔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들도 이럴진대 어느 누가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르려 하겠는가?문재인 정부의 잇따른 헛발질 부동산 정책에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이 송두리째 날아가고 있다는 성토가 빗발치고 있음에도 정부는 "정책 다 잘 돌아갑니다"라며 들끓는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이번 부동산 대책이 22번째가 아니라 4번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변한 것이다. 문 정부의 최대 공약인 부동산 정책이 제대로 작동되어 서민들의 주거 안정에 기여했느냐의 여부가 관건인데 22번이냐 4번이냐를 두고 정책의 실패를 비켜 가려는 꼼수에 놀라울 뿐이다.공자께서 이르기를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는 상황을 보면 알지만 우매하고 어리석은 자는 당해 봐야만 안다"고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며 목이 터져라 외쳐 대던 그들의 입에서 좀 더 진실되고 신중하며 품위 있고 향기로움이 넘쳐 나길 기대해 본다.

2020-07-22 15:53:31

[종교칼럼] 연잎 같은 마음

[종교칼럼] 연잎 같은 마음

초복을 지난 연밭이 장관이다. 백련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연꽃과 연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화음을 이룬다. 봉오리 위로 붉은 잠자리와 작은 새 개개비가 올라앉아 서정을 돋운다. 연지에 비친 흰 구름은 유유히 흐른다. 바람이 불면 연잎끼리 부딪치며 대숲처럼 일렁인다.연꽃은 나팔꽃처럼 매일 아침에 피어나고 오후에 지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향기를 품어낸다. 반면에 다른 꽃들은 한 번 피면 핀 상태로 자신을 드러내고 지고 만다.비가 오면 연꽃보다 연잎이 주인이다. 비를 담은 연잎은 끊임없이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무게를 덜어낸다. 둥근 연잎에 떨어진 비는 연잎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 20% 정도만 차면 자신을 미련 없이 비워낸다. 이런 작용을 위해 연잎은 외줄기이다. 옆 가지도 없다. 길이는 2m 전후로 가늘고 길다. 안에 모공이 있어 바람이 불면 휘어지지만 꺾이지 않는다. 보름달만큼 큰 연잎으로 무엇이든지 거부하지 않고 다 받아들이고 수용하다가 자신이 감내할 무게보다 무거워지면 자신을 낮추고 그 짐을 비운다. 비우는 것뿐만 아니라 잎에 묻은 먼지까지 같이 씻어낸다. 비워낸 연잎은 언제 무엇을 담았는지 모를 만큼 아무런 흔적도 없다.부와 명예, 권력, 사랑, 분노, 원망, 미움, 그 외 자신이 좋아하는 소유물을 가지고 있다가 자신을 떠나갈 때는 비운 연잎처럼 흔적 없이 맑고 깨끗해야 한다. 그래야 스트레스와 우울증에서 벗어나 자신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 비 오는 날이면 위 연잎의 물방울이 아래 연잎으로 '또르르' 구르고 아래 연잎의 물방울은 연못으로 떨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연의 향연이다.금강경에서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을 현장 설법하는 것 같다. '어떤 대상을 만나고 소유하더라도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집착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키고 사용하라'는 진리이다.무소유(無所有) 사상은 서양에서는 멀리 디오게네스로 대표되는 견유학파에까지 소급된다. 동양에서는 장자(莊子)가, 현대사에서는 간디와 톨스토이가 이 사상을 실천하였다. 연잎에서 관찰하고 배웠으리라.법정 스님은 '연잎의 지혜'라는 글에서 "빗방울이 연잎에 고이면 잎은 한동안 물방울의 유동으로 일렁이다가 어느 만큼 고이면 수정처럼 투명한 물을 미련 없이 쏟아버린다. 그렇지 않고 욕심대로 받아들이면 마침내 연잎이 찢기거나 줄기가 꺾이고 말 것이다. 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마찬가지이다"고 했다. 법정 스님은 이어 "사람들은 가질 줄만 알지 비울 줄은 모른다. 삶이 피로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놓아버려야 할 것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연잎처럼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했다.연잎에는 과학이 숨어 있다. 연잎에 물이 묻지 않는 이유는 마이크로 나노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잎은 깨끗하게 보이지만 10에서 20마이크로 정도 되는 범프(돌기) 구조로 되어 있다. 그 위에 다시 직경 100~200나노미터 정도의 나노 털들이 위를 덮고 있어 왁스층을 이룬다. 그래서 물이 연잎 위에 떨어졌을 때 물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동그란 공 모양을 유지하면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다가 미끄러진다.이 과정에서 연잎 표면이 물방울과 함께 먼지까지 실려 내려가 세정된다. 이런 현상을 독일의 식물학자 빌헬름 바르틀로트 교수는 '연잎의 효과'라고 했다.이런 연꽃의 발수성과 자정작용 원리는 현대 과학으로 증명되었다. 연잎 유리와 연잎 섬유, 연잎 도료, 아웃도어 옷, 생활용품 등을 만든다. 그러면 표면에 무엇이 묻지 않기 때문에 청소를 덜 하게 되고 세제도 물도 아끼게 되어 생활이 편리해진다.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정치사회 지도자들이 연잎의 미학과 철학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러면 비난받지 않고 연꽃처럼 맑고 향기로워지리라.맑은 날은 연꽃을 감상하고 비 오는 날은 연밭에서 연잎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관찰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2020-07-22 15:07:40

[매일춘추] 대구는 ‘모두에 의한 영상문화’ 도시다 / 서성희

[매일춘추] 대구는 ‘모두에 의한 영상문화’ 도시다 / 서성희

영화로 대표되는 영상산업은 산업적 가치는 물론 '영상문화'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영상 콘텐츠의 소비자이자 생산자이며 유통자가 되어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접하고 영상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사용해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세대인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스마트폰이 요구하는 무한 속도 경쟁을 필두로 인류는 3D, 4D를 넘어 VR 등 영상기술의 무한 발전 속에 살아가고 있다.무한 기술 발전과 변화에 핵심 키워드를 딱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참여'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영상을 단순히 소비만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직접 참여해 우리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아내고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즐기는 '참여 영상 시대'라는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우리나라 문화 비전 또한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나 고급예술 중심에서 '인간을 위한', '인간다운 삶의 보장', 다시 말해 '중앙-지방'이 아닌 '지역'의 관점, 공급자 중심에서 능동적 수요자이자 주체자 중심의 서비스, 다양한 시민사회조직들의 자발적 상호의존과 협력 거버넌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모두에 의한 문화'는 소수 혹은 특정계층의 지배문화나 고급문화 중심이 아니라 모든 시민으로부터 표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문화 참여를 전제로 공공문화시설의 형성과 이용에 의한 공개적인 문화공동체를 지향한다.이런 지향점에서 출발한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시민 제작 영상 콘텐츠의 생산기지이자 모두에 의한 영상문화 활성화를 선도하는 대구의 대표적인 공공문화기반시설이다.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와 수성영상미디어센터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교육부의 학교 미디어 교육 센터 건립 사업 공모에 대구광역시 교육청이 선정되어, '대구학교미디어교육센터(가칭 더 설렘 스튜디오)'가 2022년에 개관할 예정이다.이들 문화 기관이 영상 교육을 통해 시민 창작 역량을 높이는 일은 대구 시민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북돋우고, 감정의 긍정적 순환을 통해 삶의 활력을 높이며, 소통과 공감을 통해 건강한 사회통합에 기여한다. 또한 대구 시민의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문화는 영상산업과 균형 있는 성장 발전의 근간이며, 지역 영상생태계의 선순환구조의 토대이다.인류는 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가장 최근에 등장한 영상이라는 매체는 가장 정확한 기록을 후대에 남길 것이다. 이제는 시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한 창작물로 대구의 역사를 기록해나갈 것이다. 자기 삶이 응축된 대구 시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이 장강을 이루는 날 대구는 진정한 자기 역사를 가진 영상문화 도시로 우뚝 설 것이다. 우리에겐 이 역사적인 기록을 잘 보관해 다음 세대에게 문화유산으로 전달할 의무가 있다.

2020-07-22 14:37:52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달성공원 53살 코순이를 아시나요?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달성공원 53살 코순이를 아시나요?

마하트마 간디는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그 나라의 국민성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인권이 보호받는 사회일수록 동물의 권리도 배려받는다. 약자를 배려하는 시민 정서가 바탕되어 있기 때문이다.초복이었던 지난 16일, 대구시청에서 칠성시장 개고기골목 폐쇄를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마치고 달성공원을 들렀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칠성시장 개고기골목이나 국내에서 가장 열악한 동물원으로 지탄받는 달성공원이나 둘다 대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지난해 여름 동물보호단체들이 대구로 집결했었다. 칠성시장과 대구시청, 시내를 돌며 개식용철폐와 칠성시장 개고기골목 폐쇄를 주장하였다. 경기 성남 모란개시장, 서울 경동개시장, 부산 구포개시장이 연달아 페쇄 조치되면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구 칠성개시장만 개고기 도축·유통 업소가 성업 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전통 문화라고 주장하기엔 이미 시대 정서가 개고기 식용을 혐오 하고 있으며 국민 건강과 가축 관련 법규에도 개고기 도축이 위배되기 때문에 대구시가 보다 적극적으로 칠성시장 개고기시장 골목을 폐쇄해주기를 요구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칠성시장 개고기시장은 잡혀온 개들이 갇힌 채 보신탕집과 중탕원들이 성업 중에 있다.지난해 대구시와 북구청은 칠성시장 내 개고기시장 골목을 칠성시장 재개발·정비사업과 연계하여 자연히 폐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비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는데다 상인들 간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며 칠성시장 개고기시장 골목의 폐쇄는 더더욱 요원해졌다. 2019년 부산시와 동물보호단체, 구포시장내 개고기 사업장 대표들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시의 지원을 바탕으로 관련 사업장들이 자발적으로 전업을 했던 사례와는 확연히 비교되는 대목이다.지난 16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다시 한번 동물보호단체 대표들에게 칠성시장 개고기골목 페쇄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시장이 직접 약속한 만큼 그 기대가 크다.씁슬한 마음을 달래며 오후에는 달성공원을 들렀다. 코순이를 보러왔다.코순이 공식 나이는 52살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코끼리 중 하나이다. 1971년 무역업자에 의해 달성공원에 입사되었을 당시 1969년 출생으로 신고되어있다. 하지만 당시 코순이가 2살 짜리 새끼 코끼리가 아니었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 나이는 53살 이상으로 추정된다.야생에서 서식하는 코기리의 평균 수명이 40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열악한 동물원 환경에도 참 잘 견뎌주고 있다. 아마도 열악한 환경을 보완하는 사육사들의 노고가 대단했을 것이다.1970년 개장한 달성공원은 좁은 부지에 각 대륙별 희귀 동물들을 구색 갖춰 전시하려던 전형적인 전시형 동물원이다. 개장 당시에는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지만, 시대 정서가 바뀐 지금은 시민들은 협소한 우리 안에 갇혀진 코순이와 전시동물들이 왜 이렇게 학대당하고 있어야 하나 불편해 하고 있다.코순이를 바라보던 어린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왜 TV에 나오던 코끼리와 달라?" 아이의 느닷없는 질문에 곁에 있던 나도 당황스러웠다. 코도 길고 상아도 있는데 아이의 눈에는 뭐가 달라보인다는 거지? 아이와 엄마의 이어지는 대화들을 듣고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눈에는 왜소한 몸에 정형행동(우리에 갇힌 동물이 무의식적으로 이상행동을 반복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을 반복하는 코순이가 슬퍼보였으며 자신이 상상해 온 동물의 제왕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최근 파키스탄의 정부와 법원이 30년 동안 열악한 동물원에서 살며 정형행동을 보여온 카아반(Kaavan)이란 이름의 수컷 코끼리를 동물원에서 구조하여 캄보디아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키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다른나라 대통령이 파키스탄 대통령에게 선물한 코끼리 였지만 열악한 관리환경 탓에 코끼리가 학대 받는 상황을 안타까워 한 시민들이 5년 이상 동물보호 캠페인을 벌여온 성과였다.한국에서 태어난 코순이도 지금보다 더 어리고 건강하다면 동남아 코끼리 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키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 하지만 이미 고령의 나이에 장거리 이동과 새로운 환경의 적응 과정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대구가 코순이의 노후를 보살펴 줘야할 의무도 있다.최근 수성구 대구 대공원이 정부의 인가를 받아 달성공원 이전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반갑다. 새 동물원이 마련된다면 국제 동물원 복지 시설 규정에 의거하여 동물들이 제대로 보살핌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시스템이 갖추어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현재 알려진 이 계획안의 예산과 공간의 한계는 그 기대를 충족할 수 없을 듯하다. 코순이처럼 고령이라 대구가 당연히 보살펴야 하는 개체들은 최대한 배려하여야 한다. 반면 한국의 사계절 환경에 생활하기 힘든 타 대륙 야생동물들은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원 서식지 보호소로 이주시키는 방안들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동물원이 꼭 살아있는 동물을 전시한다는 고정관념은 바뀌어야 한다. 이미 서울대공원동물원은 한국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중심으로 생태동물원으로 변모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첨단 IT기술을 접목하면 동물의 희생 없이 야생동물들을 간접 체험시킬 수 있으며, 야생 동물의 생태와 환경 문제를 현실감있게 설명해주는 시스템이 현대인의 정서에 부합하면서도 경영적으로 열악한 대구시 재정에 도움되는 동물원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구시의 현실적인 재정 상황 때문에 더 이상 동물들이 학대받는 상황이 방조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칠성시장 개고기시장 골목과 대구 달성공원이 더 이상 대구 시민의 부끄러운 민낯으로 소개되지 않도록 대구시의 노력을 부탁드린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7-21 18:30:00

[경제칼럼] 발명자 지위와 인공지능 '다부스(DABUS)'

[경제칼럼] 발명자 지위와 인공지능 '다부스(DABUS)'

꽤 오래전 사석에서 이창호 국수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별명이 돌부처인지라 대화 나누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세계 최고 바둑 고수여서 궁금한 점이 많았으나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더 길었던 듯하다. 치열하게 살아온 승부사와 지존의 느낌보다 오히려 온화하고 앳된 미소가 잘 어울리는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기원이 동양이고 철학적 가치관과 예의를 중시하며 19줄 바둑판에 삼라만상의 이치가 담겨 있다 하니 바둑을 단순한 오락으로 분류하기에는 도리가 아닌 듯싶다. 그런 바둑계에 2016년 3월은 매우 역사적이고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다. 대결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알파고가 4승 1패로 이세돌에게 승리했다.최근 'AlphaGo-The Movie Full Documentary'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알파고 개발 과정과 이세돌과의 대국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한 기획물이다.필자는 알파고의 놀라운 능력보다 외롭게 맞서 싸우는 인간 이세돌에게 심하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국이 진행될수록 바둑을 매개로 어느새 인류를 대표한 그의 모습에 인간이 응원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듯싶다. 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대중의 기대를 뒤로하고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얼마 전 인터뷰에서 알파고와의 패배가 자신의 은퇴를 결정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바둑을 학문과 예술로 대했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작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만의 가치관이 기계에 의해 부정되었을 때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왜 긴 세월 유독 한국, 중국, 일본에서만 바둑이 대중적이었는지 그 이유는 설명이 쉽지 않다. 다만 적어도 극동 3국에서 바둑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오랜 세월 전수된 온전한 형태의 문화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계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수반되었다고 한다. 알파고가 수천 년 이어온 문화의 속살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최근 유럽특허청이 인공지능(AI) 다부스(DABUS)를 발명자로 기재 출원된 특허를 각하해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AI 전문가 스티븐 탈러 박사는 음식용기와 신호장치 관련 2건의 발명을 유럽, 미국 및 영국에 특허출원했다. 그 과정에서 해당 특허의 발명자를 DABUS로 기재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수행한 창작에 대한 특허출원 또는 저작권 이슈는 더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그러나 인공지능 자체를 발명자로 지정한 것은 최초이다. 이에 대해 유럽특허청은 기계는 법인격이 없어 재산을 소유할 수 없고, 기계는 발명에 대한 권리를 보유할 수 없으므로 고용 관계 또는 승계를 통해 권리를 이전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지능 수준과 관계없이 기계는 도구로 간주돼야 한다는 것이다.국내에서는 이와 같은 사례가 아직 표면화된 경우는 없다. 다만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응한 범정부 AI 지식재산 정책을 수립할 AI-지식재산 특별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소식이다.다양한 AI 관련 이슈에 대해 기본 원칙을 정립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지식재산 특별법 제정을 논의키로 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지식재산 분야의 경우 본격적인 인공지능 관련 법제화가 이루어질 전망이다.어느덧 인공지능은 특정 분야에서 인간을 상대로 우월한 능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발명자의 지위에 도전하고 있으며, 관련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까지 거론되는 단계이다.다행(?)스럽게 유럽특허청은 인공지능에 발명자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특허청 보고서는 향후 반세기 정도가 지나면 인공지능이 법률의 변화를 요구하는 단계까지 진화할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법률의 변화 이전에 어떠한 방식이든 인간의 통념을 변화시키는 인공지능의 진화에 반드시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권혁성(특허법인 이룸리온 대표변리사)

2020-07-21 15:07:43

[매일춘추] “이겼나?”

[매일춘추] “이겼나?”

"밥 먹었어요?"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 보릿고개 넘기 힘든 시절 고향마을을 떠올리면 실제로 아침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이들이 꽤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런 인사말은 듣기 어려워졌다. 그 말이 갖는 외연적·내포적 의미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건강을 위해 '일부러 안 먹는' 세상이다."이겼나?" 테니스 게임이 끝나 지쳐서 자리로 돌아오는 필자에게 그 친구는 꼭 이렇게 묻는다. 뭐라고 대답하면 그는 또 "몇 대 몇"이냐고 되묻는다. 테니스 동호회에서 낯설지 않게 보는 풍경이다. 필자 역시 드물기는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묻기도 한다. 이 친구는 평소 그렇게 승부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님을 잘 알기에 그저 습관이려니 하고 가볍게 넘기고 말지만, 입맛이 그리 개운치는 않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스포츠, 그것도 건강증진을 목표로 하는 '생활체육'에서 왜 경기의 결과가 중요시될까? '밥 먹었느냐'고 의미 없이 묻는 인사말과 달리, 왜 우리는 굳이 승패를 궁금해 하며 '이겼느냐'고 묻는 것일까?운동신경이 둔한 필자는 십 수 년째 테니스를 즐기고 있지만 솜씨는 썩 좋지 않다. 그래도 그 덕분에 그럭저럭 건강을 유지하고 있으니 목표는 상당 부분 달성된 셈이다. 필자는 테니스 게임을 즐기면서도 속으로는 시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자 노력한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테니스 시합은 '운동하기' 위해 우연히 선택된 하나의 방편일 뿐, 그 결과가 목적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생활체육이라는 것이 본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종목이든 경기를 이기느냐 지느냐보다-물론 누구나 이기고 싶어 한다!-비지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 뛰고 달리는 과정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운동이 주는 참 기쁨은 거기에 있으며, 우리네 인생살이도 그와 똑같다고 생각한다.좀 된 이야기지만, 국내 굴지의 어떤 재벌 그룹은 한때 '세계일류 신경영'을 표방하면서 "세계는 1등만 기억합니다"라는 기업광고를 세간에 유행시킨 적이 있다. 그러자 당시 어떤 개그맨은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자조 섞인 유행어로 그 광고에 대한 일반의 반감을 대변했었다. 세계 일류로 가는 성장통이라기에는 씁쓸하기 짝이 없는 우리 사회 흑역사의 한 단면이었다.일류는 1등도 10등도 될 수 있는 것, 적어도 생활 스포츠에 있어서만큼은 이기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지 말았으면 좋겠다. 필자는 테니스라는 스포츠를 통해 필자의 몸이 그저 한가롭게 제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이 탓인지 살아갈수록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순간순간에 있음을 느낀다. 만약 다음 모임에서 그 친구가 필자에게 "게임 재미있더라!"고 말한다면…. 대박! '소이부답 심자한(笑而不答 心自閑)', 이태백이 따로 없을 것 같다.

2020-07-21 13:00:50

[박원재의 삶 갈피] 다른 이를 아는 일의 어려움

[박원재의 삶 갈피] 다른 이를 아는 일의 어려움

요즘 폭 빠져서 보는 TV 드라마가 하나 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다. 앞에 괄호를 친 것은 드라마 홈페이지에 그렇게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제작진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제목은 두 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다. 하나는 "서로 아는 것도 별로 없는데, 가족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묶여 있다"는 부정적 뉘앙스다.다른 하나는 "서로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다"는 의미의 긍정적 뉘앙스다. 제작진의 의도는 이 가운데 뒤쪽에 가까운 듯하다. 가족이면서도 서로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극 중 인물들의 고백과 성찰이 따뜻한 시선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부부와 두 딸 그리고 막내인 아들, 이렇게 다섯 식구로 이루어진 가족의 이야기가 줄거리다. 초반부터 아내의 졸혼 선언으로 부부간의 갈등을 드러내며 시작했지만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고를 계기로 가족은 서로에 대해 몰랐던 부분들을 조금씩 알아간다.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동안 가족이니까 서로 너무나 잘 안다고 여겼던 습관화된 믿음들이 하나씩 깨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파국으로 흐르지 않고 '기꺼이'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새롭게 보수해 나간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뭐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는 대략 그렇다.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정작 든 생각은 '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안다는 일의 어려움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대끼며 산 가족조차 저럴 수 있는데 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아는 걸까? 아니 제대로 알기는 하는 걸까? 더 나아가 도대체 어떤 관계라야 '안다'고 할 수 있을까?〈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1993년에 개봉했는데, 플라이낚시를 중심적인 소재로 삼아 장로교 목사인 아버지와 두 아들의 성장 과정을 한 폭의 수채화를 보듯 담백하게 스케치한 영화다. 영화에서 큰아들은 반듯하게 자라 대학교수가 되지만 둘째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다 젊은 나이에 비운에 죽는다. 그렇게 살다 간 둘째를 가슴에 묻고 살던 아버지는, 노년에 자신의 교회에서 행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통해 그 둘째의 삶과 화해한다.-"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완벽하게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다."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군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도 그를 완전하게 사랑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누구를 완전하게 사랑하지도 않고 그를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이 말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완전하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또 무엇이 필요할까? 한층 원숙해진 자신의 낚시 솜씨를 칭찬하는 아버지의 격려에 해맑은 웃음으로 대답하던 영화 속 둘째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훌륭한 낚시꾼이 되었다는 아버지의 칭찬에 그는 '물고기처럼' 생각하려면 아직 3년은 더 걸려야 할 거라며 웃는다.물고기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물고기'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자기 세계에 머물러 있는 한 물고기처럼 생각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를 '이해'가 아니라, 영화 속 대사처럼 '사랑'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이해하려는 것을 그만두고 있었던 그대로를 받아들임으로써 죽은 아들의 삶과 화해했던 영화 속 아버지처럼 다른 이와 완전한 소통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이해는 언제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남기지만, 제대로 된 사랑은 그것까지도 받아들이는 행위인 까닭이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드라마를 만나 '본방 사수'를 하면서 뜬금없이 든 생각이다.

2020-07-20 16:30:00

[서명수의 일상중국]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및 국가주석

[서명수의 일상중국]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및 국가주석

미국이 '중국공산당'을 때리기 시작했다. 미·중 수교(1972년) 이후 중국공산당을 직접 비판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진 탓에 미·중 갈등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미국이 중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더라도 중국공산당을 입에 담는 일은 보지 못했다.미국이 중국 정부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을 정조준하고 나선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중국공산당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미국은 중국공산당을 두들기고 자극하고 있는 것인가? 중국공산당이 중국 정부를 움직이는 '그림자 정부'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말이다.며칠 전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공산당을 비롯,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또는 중국 국영기업 임원 등 중국공산당원의 미국 방문을 불허하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는 뉴스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미·중 간 무역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상황에서 느닷없이 중국공산당에 대한 제재 방안이 노출되자 향후 미·중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중국공산당에 대한 제재가 확정된 것도 아니고 언급됐을 뿐인데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즉각 나선 것이다.중국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지난 16일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세계에 무엇을 남기고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민해야 한다"며 "자신의 국가 이미지와 지위를 훼손하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점잖은 어조로 대응했다. 중국 내에서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은 사실상 허용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우한에서의 코로나19 감염 정보 은폐와 축소 의혹이 불거지자 방역 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시진핑 총서기의 책임론이 여러 차례 제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중국공산당은 이에 대해 직접 나선 적이 없다.중국공산당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 움직임에 대해 중국 정부 대변인이 나선 것은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가 한몸과 다름없는 '당정일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정부 조직인 국무원을 이끄는 '중국공산당=중국 정부'의 등식이 딱 떨어지는 국가다. 중국공산당에 대한 공격에 더욱 민감하게 대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미국의 중국공산당 공격은 이미 지난 5월 시작됐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대해 '국가주석'을 뜻하는 'President'라고 칭하지 않고 '총서기'(General Secretary)라는 직함으로 부르면서 외교적 도발에 나선 것이다.중국의 최고지도자에 대해 '국가주석'(President)으로 불러온 것이 미국의 관례였다. 이런 관례를 모를 리 없는 미 국무장관이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은 의도가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인터뷰 내내 "유럽 국가들은 '중국공산당' 때문에 닥치는 위험을 가장 극명하게 보고 있다"고 말하는 등 중국 정부가 아니라 '중국공산당'(Chinese Communist Party)이라고 지칭하면서 중국에 대한 공격을 중국공산당으로 적시하기까지 했다.폼페이오의 의도된 도발은 중국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상국가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독재국가'로 규정하고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사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직위는 국가주석이자 중국공산당 총서기 및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겸하고 있다. 중국 매체에서는 평소 시 주석을 '동지'(同志)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거나 '링다오'(領導·지도자)를 쓰지만 인민일보 같은 매체에서는 '국가주석 겸 총서기'로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외순방에 나갈 때는 국가주석으로 표기하고 베트남이나 북한 등 사회주의 우방국을 방문할 때는 '총서기'라는 직함을 앞세우기도 했다.그런데 폼페이오 장관처럼 서방국가에서 중국 최고지도자에게 중국공산당 '총서기'라고 지칭하는 것은 외교적 도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건이다. 앞서 폼페이오는 지난 5월 취임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취임식에 국무장관 명의의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President'(總統)라는 호칭을 사용, 중국 측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외교 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하나의 중국에 두 명의 'President'(주석과 총통)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곧바로 폼페이오가 시 주석에 대해 총서기라고 호칭하면서 중국을 자극한 것이다.미·중 간 갈등의 다음 단계를 잘 지켜보자.

2020-07-20 16:30:00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재미있는 양말을 신고, 알록달록하게 살 거다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재미있는 양말을 신고, 알록달록하게 살 거다

영국에서 재미있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자신은 "86세가 아니라 두 번째로 맞는 43세"라고 소개한다. 85세에 첫 책을 쓴 후 두 번째 책을 쓴다면서 "늙음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하고, "나이 드는 것은 성숙해지는 것이다"고도 한다. "올드 패션은 구식이나 낡은 것이 아니라 진짜(genuine)"라면서 한쪽 눈을 찡긋한다. 그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가 '그 나이에 첫 책을 쓴 사람'이어서였는데, 그가 잊히지 않는 이유는 '무지개가 연상되는 그의 양말' 때문이다.손녀에게서 컬러풀한 양말을 선물받은 후, 서랍 속의 검정색, 회색, 감색 양말들이 마치 재미없게 산 지난날 같아 컬러풀한 양말만 신기로 했다고. 그를 만나면 사람들은 양말부터 쳐다보므로, 양말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궁금해서 말을 걸어오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겁다고 했다. "아프고 힘들다는 말만 하는 노인은 피하고, 밝고 긍정적인 노인은 달려가 안부를 묻는다"는 친구 미셸의 말이 생각난다.어렵게만 느껴지는 일도 하게 만드는 게 양말인지도 모르겠다. 그 나이에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날아가 간병인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고 축하 연설까지 했다. 검정색 정장을 차려입고 화려한 형형색색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서! 나는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진을 보면서 저절로 웃는 얼굴이 되었다.오스트리아의 건축가 훈데르트바서는 "왜 똑같은 양말을 신어야만 하냐?"고 반문하면서, 비인간적인 규율에 대한 저항으로 짝짝이 양말을 신었단다. 비엔나에서 그의 건축물을 보았다. 직선을 배제하고 곡선만으로 지은 서민 아파트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데, 집 안에서 나무가 자라고 창문 밖으로 나뭇가지가 뻗어나간다. 안과 밖의 의미가 허물어지고, 정해 놓은 것이 의심스러워진다.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세상을 본 듯 마음이 자유로워졌다.내가 만난 할아버지 작가는 색색 가지 양말을 내게도 권했는데, 나는 그깟 양말 색을 바꾸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빨강 양말을 신으려니까 "어떻게 빨강 양말을!"로 시작해서, "어떤 옷에 어울리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로 이어지고, "너무 멋을 부린 것 같나?" "눈에 띄어서 쑥스러울 것 같아"까지 자잘한 생각들이 줄을 선다. 막상 신어 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아무 일'도 아니던데."정말로 명상적인 사람은 장난스럽다. 그에게 있어 삶은 재미이다. 그에게 삶은 하나의 놀이이다. 그는 삶을 엄청나게 즐긴다. 그는 심각하지 않다. 그는 이완되어 있다"라고 작가 오쇼 라즈니쉬는 말했다.알록달록한 양말을 신으면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될 것 같다. 평소보다 장난기 섞인 말을 하고, 표정이 다양해지며, 웃음소리도 커질 것 같다. 색색 양말을 신는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일을 해 보는 실험이자, 재미를 끌어내는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변화를 선택하는 쪽과 경험이 풍부한 쪽이 훨씬 더 재미있다. 중요한 건 양말 색을 바꾸는 게 아니다. 지루한 과거로부터 작별하고, 다채로운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거다. 익숙하고 편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낯선 세계를 알아가는 거다. 나조차도 몰랐던 나를 여는 일이자, 새로운 나를 환영하는 일이다.옥스퍼드에서 짝짝이 양말을 신은 남자를 봤다. "양말이 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궁금했다. 며칠 후, 양말 가게에서 또 짝짝이 양말과 마주쳤다. 이번에는 양말에 붙은 글이 나에게 소리 없이 가르쳐준다. "Life is too short for matching socks." 양말 짝을 맞추면서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고, 입이 다물어졌다. 아들이 보낸 사진 속 손자도 짝짝이 양말을 신고 있다. "똑같은 양말은 재미없어"라며 세 살짜리가 짝짝이 양말을 신는단다. 허, 참!

2020-07-20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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