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매일춘추] 미래신화

[매일춘추] 미래신화

아인슈타인은 살아생전 '과학은 갈 길이 멀지만 인류에겐 너무나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라는 책에서 막 우주를 탐험하기 시작한 인류를 '해변가에서 조약돌을 줍는 어린아이'에 비유했다. 신화가 문명의 여명기에 생겨나는 것이라면 과학은 우리시대의 신화이다. 새로운 '축의 시대'를 바라보는 미래신화이다. 나는 해묵은 신화를 과학기술로 해체한다.S.F는 사이파이(Sci-fi) 즉,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이다. 나는 내가 상상한 사이파이신화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상상은 다양한 형식으로 구체화된다. 미래신화는 이미지로, 입체로, 때로는 영화를 닮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하나로 묶인 책이 되기도 한다. 이야기는 작업의 방아쇠가 되어 세포분열을 시작한다. 다양한 결과물의 게놈 지도 역할을 하는 미래신화가 내 작업의 시작인 셈이다.좁디좁은 우물 안에서 동그란 하늘만 바라보고 사는 개구리를 사람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라며 비웃는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문명의 여명기 인간의 조상들은 신비롭고 두려운 미지의 것들을 해석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했다. 그렇게 신화라는 태초의 이야기가 탄생했다.이야기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질문에 답을 주고,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를 공유한 무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여 문명을 일궈 낸다. 그러니 신화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간직한 D.N.A에 영혼처럼 아로새겨진 '원형'같은 것이 아닐까. 문화와 종교와 과학으로 구체화될 인간의 가슴 속 깊이 내제된 이야기로서의 신화 말이다.오래전 우리는 넓은 세상을 조망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허락된 좁고 동그란 하늘만 바라보며 사는 답답한 개구리였다. 그래서 시간을 인식할 때도 한 눈에 전체를 조망하는 전관(全觀)의 시각을 갖지 못하고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선형적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하지만 우리는 관찰하고 생각하는 개구리다. '저 바깥은 동그란 하늘일까? 아니야, 구름도 지나가고 달도 지나가고 해도 지나가는 것을 보면 가늠할 수 없이 큰 세상일거야.' 빗방울이 떨어지고, 낙엽이 흩날리는 동그란 하늘은 마침내 동그란 천체 망원경으로 변한다. 과학적 사유의 시작이다. 수평선에서 배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행성들 간의 간격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관찰하며 빅뱅을 유추한다.우리는 모두 우물 안의 개구리다. 그렇지만 현상의 파편을 그러모아 세상이라는 레고를 조립하는, 사유하는 개구리다.나는 동시대 과학기술로 미래신화를 쓴다. 그것은 내가 상상한 사이파이신화이며, 아득한 과거의 신화를 과학기술로 해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작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난감하고도 불가능한 질문을 받을 때면 내가 상상한 '미래신화'로 답하고 싶다. 그동안 일상의 이야기를 써왔는데, 이제 남은 지면은 내가 상상한 미래신화를 써보고자 한다. 내 작업의 비밀이다. 기대하시라!리우 영상설치작가

2021-02-10 11:36:19

[기고]시민들에 화답한 하늘열차 엑스코선

[기고]시민들에 화답한 하늘열차 엑스코선

대구도시철도 3호선 수성구민운동장역과 동구 이시아폴리스를 연결하는 도시철도 엑스코선 건설사업이 최근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모처럼 대구에 전해진 낭보이자 '하늘열차'를 사랑하고 이용한 시민들에 화답한 큰 선물이다. 엑스코선 예타 통과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개통 후 대구의 교통 지도가 확 바뀔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 및 산업·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안겨줄 것이다.엑스코선은 3호선과 같은 모노레일 방식으로, 2028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지역의 오랜 숙원 핵심 사업이다. 이 노선은 3호선 수성구민운동장역·2호선 범어역·1호선 동대구역에서 환승하게 된다. 엑스코선은 도시철도 사각지대인 동·북 지역의 교통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뿐 아니라 대구의 방사형 도시철도망 구축의 마지막 퍼즐이기도 하다. 종합유통단지와 금호워터폴리스 등 북구 지역 주요 물류·산업단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엑스코와의 연계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곳곳에 펼쳐진 '경축 엑스코선 예타 통과'라는 현수막이 보여주듯이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이 대단하다. '모노레일 반대' 머리띠를 두르고 극렬하게 데모를 하고, 플래카드를 걸던 3호선 모노레일 건설 당시의 감회가 '하늘열차의 아빠'로서 새롭다. 벅찬 꿈을 가지고 모노레일 개통식을 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이 지나고 있다.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달리는 전망대와 같은 모노레일을 볼 때마다 아직도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엑스코선을 모노레일로 건설하게 되면 대구는 명실상부 모노레일의 성지로서 이미지를 굳히게 된다. 모노레일은 3호선 건설 당시 도시 미관을 해칠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반대가 극심했다. 막상 개통 후엔 평가가 달라졌다. 3호선 하늘열차는 대구의 랜드마크가 돼 타 도시 경전철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개통 후 역세권 개발과 경제 활성화는 물론 지역 관광 사업에도 크게 기여하는 대구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하늘열차가 더 달릴 노선을 기대하던 시민들에게 엑스코선 예타 통과는 세계 최고 모노레일 도시의 위상을 다시 한번 완성시켜 나가는 좋은 기회다.벌써 일부 시민들은 역 위치와 동대구로에 식재된 명물 히말라야시더 존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역의 위치는 기본계획 시 수요와 이용 시민들의 접근성, 역 간 거리 등을 고려하고, 역세권 개발, 구조물의 경관성, 효율적인 환승 방안, 진화된 차량 구조, 친환경 시스템, 안전성 등에 대해 전문가 그룹으로 대안과 신기술을 개발하고 접목해야 한다. 또 이용할 시민들과 노선 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설명회와 공청회 등을 통해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정치권도 모처럼의 기회를 지역 발전을 위한 총력전의 자세로 지원해야 한다. 이제는 준공 목표 연도인 2028년까지 엑스코선을 차질 없이 건설할 수 있도록 시가 행정력을 쏟아붓고 어느 때보다 시민들의 협조와 참여가 있어야 한다.엑스코선은 3호선 건설과 운영 경험을 살려 기술과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고도 남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최첨단 친환경 모노레일로 건설해야 한다. 국내 최초 모노레일 성지 대구에 건설되는 엑스코선은 빛나는 문화 콘텐츠를 입혀 대중교통수단을 뛰어넘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이제 하늘열차는 대구 중심을 지나는 역동적인 창조의 상징으로 시민들에게 각인되고 국내외에 잘 알려져 있다. 인구 250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심에 명품 모노레일 건설을 위한 대구 시민들의 더 많은 참여와 응원을 기대해 본다.

2021-02-10 11:35:17

[최재목의 새론새평]설날, 차례보다 덕담 한마디 더 가다듬자

[최재목의 새론새평]설날, 차례보다 덕담 한마디 더 가다듬자

코로나19가 지속되는 가운데 어김없이 음력 설 명절이 찾아왔다. 설은 추석과 더불어 대한민국 대표 공식 명절이다. 산 자들끼리 모처럼 함께 자리하며, 쉬고 즐길 수 있는 휴일이다. 전염병으로 마음 놓고 사람을 만날 수 없어 유감이나 명절을 맞으니 이런저런 생각거리도 많다.명절(名節)을 사전에서는 '전통적으로 해마다 지켜 즐기는 날, 아주 좋은 시절' 정도로 규정한다. 습관적으로 명절이라 하면 누구나 '아주 좋은 날'로 인식하나 이상하게도 '명+절' 두 자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명쾌하지 않다. 우리는 명절을 아주 좋은 날, 철(시절, 절기)로 보고 가절(佳節), 명일(名日), 가일(佳日)로도 쓰는데, 중국・일본에서는 명절이라 적으면 '명예와 절조'로 읽는다. 실제 명절에 해당하는 중국말은 절일(節日)이고 일본말은 축일(祝日)이다.'명'은 '이름나다, 훌륭하다, 좋다'는 뜻이고, '절'은 1년을 스물넷으로 나눈 철=절기(節氣)를 말한다. 절기는 절후(節候)이다. '기'든 '후'든 '철, 때'(=시절, 시기)를 가리킨다. 자연 사물의 이치(物理) 그대로 삶의 이치(道理)라 여겨온 동양의 전통 시대에는 자연이 법(法)이었다. 사람들은 태양의 위치에 따른 빛의 많고 적음 즉 온도의 변화에 기대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달을 보고 날짜를 분별했다. 이렇게 해와 달이 변화하는 규칙을 알아내 패턴화한 것이 24절기와 달력(月曆)이다. 해나 달의 빛에 기대어 생활을 이어왔던 버릇 때문에, 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지금도 우리는 빛살과 맺었던 따스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그리워한다. 인간의 내면에 박힌 빛살의 무늬, 그런 생명력을 '덕'(德)이라 한다. 그래서 빛을 따라 탄생한 명절에 우리가 집착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빛의 생명력을 느낄 덕담(德談)에 기대는 마음도 그렇다. 미안하게도 지금은 덕담도, 덕담해 줄 사람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지옥 같다.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라고 정호승 시인이 '밥값'이란 시에서 말한 지옥 같은 현실 말이다.지금의 흔해 빠진 덕담이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다. 양력 새해 축하 인사를 이미 실컷 주고받았는데, 다시 음력 새해의 인사를 주고받아야 한다. 솔직히 번거롭고 불편하다. 문자로 쏟아지는 '복 많이… 건강' 운운의 말들이 좀 지긋지긋하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온 국민이 반복하고 있다니. 이럴 바엔 주식, 펀드에 열광하고 있는 국민에게 '주식, 펀드 대박 나기를 빕니다!'라든가, 집에만 처박혀 사는 요즘 '무조건 걸으세요'라는 편이 훨씬 알맹이 있는 인사이리라.또 왜 하필 복, 건강인가. 이것은 전통적인 '수복강녕'(壽福康寧)의 관용구에서 나온 말투이다. 수복강녕이란 '오래 살고'(수) '복을 누리며'(복) '건강하고'(강) '평안하다'(녕)는 뜻이다. 최근 중국발 '사상 최대 3천억 뇌물 수수범 사형'이란 기사나 과거 우리 사회에 유행한 '9988234'(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 3일 만에 죽는 것)라는 문구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 제 욕망을 끝없이 실현하고 싶어 한다. 뭐 특별한 일도 아니고 욕망에 찌든 이 풍진세상의 흔한 풍경일 뿐이다. 우리의 덕담이란 게 겨우 이것인가. 제발 수복강녕 같은 기복과 소유의 덕담에서 서로의 삶을 전망하는 가치의 덕담으로 넘어서면 좋겠다.가치란 삶의 의미를 묻는 일이다. 설날 명절엔 무엇보다도 '새해의 첫날'이라는 의미를 살려야 한다. 삶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한 해의 첫걸음을 생각해 보는 것 말이다. 초심의 '초'(初)란 옷을 만들려고 천이나 가죽에 칼질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새해 첫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 차례보다 더 소중하다. 살아 있는 내 생각의 방식이 차례나 제사의 본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음식 차림의 형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나' 아닌가. 가령 멕시코의 '사자(死者)의 날'처럼 일정 기간을 정해 돌아가신 사람들을 한꺼번에 추념하는 축제도 그들이 결정한 하나의 형식이다. 그것마저도 싫으면 안 하면 그뿐이다. 모든 형식은 은유이고 상징이다. 설 명절엔 차례 음식 차리기보다 마음속 덕담 한마디 더 가다듬는 편이 낫겠다.

2021-02-10 11:34:51

부동산원 등 공공기관 13곳 불합리한 사규 뜯어 고친다

부동산원 등 공공기관 13곳 불합리한 사규 뜯어 고친다

앞으로 공공기관 임직원이 공무로 국외출장을 갈 경우 사전에 적격성과 타당성을 검증하는 심사제도가 의무화되는 등 불합리한 사규가 개선된다.국민권익위원회는 10일 한국부동산원 등 특정산업 분야 공공기관 13곳에서 운영 중인 1천138개 사규에 대해 부패영향평가를 실시하고 2개 유형 11개 과제, 51건의 개선사항을 마련해 각 기관에 고치도록 권고했다.대상 기관은 부동산원과 영양고추유통공사, 청도공영사업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한국조폐공사, 해양환경공단,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등이다.부동산원은 불공정한 업부 관행 개선을 권고 받았다. 권익위는 또 청도공영사업공사에 대해 '긴급 충원이 불가피한 경우' 등으로 특별채용 요건을 불명확하게 명시해 담당자의 인사권이 남용될 소지가 있어 특별채용 요건에 관한 구체적인 재량범위, 기준 및 절차를 마련하고, 불명확한 조항은 개선하도록 권고했다.구리농수산물공사 등 4개 기관 임직원은 공무 국외출장 시 사전 심사를 생략해 적격성 및 타당성이 의심됐다. 이에 권익위는 공무 국외출장 시 사전심사를 생략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삭제토록 개선권고 했다.한국조폐공사 등은 '청탁금지법'에서 정한 금품수수 등의 제한에 대한 허용범위를 '직무수행 등을 위해 사장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제공하는 금품 등'으로 과도하게 확대·규정해 '청탁금지법' 위반소지가 상당히 우려돼 개선하도록 했다.전현희 권익위 위원장은 "앞으로도 공공기관의 사규인 예규, 지침 등에 규정되어 있는 부패유발 요인을 적극 발굴하고 개선해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21-02-10 09:18:19

[경제칼럼] 애플카와 파이어족

[경제칼럼] 애플카와 파이어족

애플이 만들 것이라고 예상되는 자동차, 소위 애플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벌써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의 주가가 갑자기 폭락하고, 애플카 수혜주로 지목되어 주가가 들썩인 기업도 있다. 지난해는 테슬라가 가장 주목받는 자동차 기업이었다면 금년은 확실히 애플이 뉴스의 중심이 된 것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기업이 즐비한 자동차산업에서 정보통신(ICT) 기업이 이렇게 시장을 흔들어 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시 한번, 애플과 테슬라가 탄생한 실리콘밸리의 저력에 감탄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실리콘밸리는 엄청난 투자금과 첨단기술로 상징된다. 투자금을 받아 첨단기술과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은 모두 인재 확보로 귀결된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인재를 중심에 두는 기업 문화가 있고, 이것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우리의 현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자.첫째, 실리콘밸리는 제도보다 사람을 믿는다. 실리콘밸리 기업의 개발책임자는 업무에 대해 사실상 무제한의 권한을 갖는다. 인재 채용, 조직 구성, 자금 사용 등에 대해 전권을 가지도록 지원하기에 개발책임자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하고,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이에 비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고도 인재의 활동을 기존 관습이나 사규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혁신은 원래 이질적인 기술과 문화가 만나야 성공하는데,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면 혁신이 발생하기 어렵다. 결국 사람을 믿지 못하고 제도로 관리하는 문화에 적응하느라 어렵게 유치한 우수한 인재는 진이 빠진다.둘째, 실리콘밸리는 수많은 스타 개발자가 기업의 중심이 된다. 개발책임자는 개발에 성공하면 그 제품을 대표하는 스타 개발자가 돼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실리콘밸리에는 유명한 기업만큼 더 많은 스타 개발자들이 존재한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파격적인 스톡옵션까지 제시하며 스타 개발자를 '모시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한다.우리는 어떤가? 논문을 잘 써서 스타 과학자가 된 사람은 있어도 스타 개발자는 찾기 어렵다. 인재를 뺏기기 싫어 감추는 경우도 있겠지만 개발자에게 그만큼 합당한 대우를 해 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기업의 여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기존 기업은 물론이고 스타트업까지 지분에 따른 경영권 유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결코 좋은 개발자를 모실 수 없다.셋째, 실리콘밸리는 경쟁을 즐긴다. 지금은 애플과 테슬라만 주목받고 있지만, 5년 뒤, 10년 뒤, 이들과 견줄 좋은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는 즐비하다. 왜 그럴까? 몇 년 전 발표된 미국 10대 ICT 기업 직원 평균 근속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위를 차지한 페이스북이 2년 조금 넘고, 꿈의 직장이라는 구글도 2년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것은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이 끊임없이 옮겨 다니면서 개별 기업의 역량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기 때문이다. 애플카를 주도하고 있는 인사들의 상당수는 테슬라에서 옮겨온 직원들이다. 1, 2년 걸리는 업무를 완료하면 더 좋은 조건으로 끊임없이 이직하면서 경쟁하는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더 도전적이야 한다.요즘,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30, 40대에 조기 은퇴한다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이라는 신조어가 국내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테슬라 주식을 산 소위 '서학개미'와 애플카 이슈에 올라탄 사람들 중에는 파이어족이 되기를 꿈꾼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에도 개발자 출신 파이어족 성공 스토리가 종종 회자된다. 실리콘밸리의 파이어족은 꿈을 실현하는 사람이고, 주식 투자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이룬 성과를 쫓아가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늘 실리콘밸리의 종속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대한민국에도 실리콘밸리 사람들처럼 꿈을 이뤄 파이어족이 된 사람이 더 많아지도록 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그것이 기업이 사는 길이고, 가까운 미래에 애플과 같은 국내 기업이 탄생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2021-02-09 14:49:54

[매일춘추] 포스트 봉준호를 만드는 방법

[매일춘추] 포스트 봉준호를 만드는 방법

작년 이맘때 대한민국은 기생충 열풍이었다. 한국의 감독이 우리말 영화로 아카데미를 석권하던 장면은 보고 있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봉준호 감독이 대구 남구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전학을 갔다고 해서 지역에서도 꽤나 화제였었다. 들뜬 분위기 속에 '대구의 아들' 봉준호를 기념하기 위해 동상을 세우자, 생가터를 복원하자 등 수많은 계획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아이고, 의미 없다" 싶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초등학생 때 기억 말고는 아무런 정서적 연고가 없는 그에게 대구의 아이덴티티를 기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몸도 마음도 이미 떠나버린 봉준호를 대체할 수 있는 실현가능한 방법이 있다. 첫째, 차근차근 포스트 봉준호를 기르는 것이다. 영화 관련 학과가 전무한 대구에서도 체계적으로 영화를 배울 수 있는 전문과정이 있다.작년에 2기생을 배출한 대구영화학교(Daegu Film School)가 그곳이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가 매년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사업을 통해 예산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2019년에 배출한 1기생들은 졸업하자마자 7편의 단편을 만들었고, 2편의 장편 제작에 참여했다.단돈 200만원으로 만든 졸업수료작 중 하나인 '다섯 식구'는 전북독립영화제 특별언급, 제주혼듸독립영화제 경쟁 등 큰 성과를 내기도 했다. 대구에 반짝이는 재능이 없다는 것은 푸념일 뿐, 실제로는 수많은 재능들이 발굴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다 지치면 서울로 떠나는 것이다.운영성과가 좋아 공모사업에서 항상 높은 점수를 받고는 있지만 점점 치열해지는 공모 경쟁 때문에 늘 조마조마한 심정이다. 매년 대구만 혜택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대구영화학교 중 신규인력 양성 부분의 1년 운영예산은 5천만원 정도이다. 그간 구축한 인프라와 인적네트워크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도 운영이 가능했다. 매년 공모선정 여부에 마음 졸일 필요 없이 최소한의 예산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면 포스트 봉준호를 충분히 길러낼 수 있다.둘째, 지역감독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가와세 나오미라는 세계적인 거장감독이 있다. 칸영화제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이 여성감독은 특이하게도 자국의 영화중심 도쿄가 아닌 고향 나라현에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모든 영화 관련 자원들이 서울에 집중된 상황에서 가와세 나오미처럼 '세계적인 로컬감독'을 길러낼 수 있을까?운이 좋게도 대구는 가능하다. 장편 '수성못'을 연출하고 대구에서 차기작을 준비 중인 유지영 감독, 작년에 지역을 배경으로 장편 촬영을 마친 김현정 감독 등은 전국적으로도 인정받는 대구의 자랑이다. 이들에 대한 제작투자는 당장이라도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칸과 베를린 등에서 충분히 겨룰 수 있는 이미 검증된 인재들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만이 포스트 봉준호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대구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1-02-09 11:29:53

[종교칼럼]‘설’, 나의 근원을 찾아서

[종교칼럼]‘설’, 나의 근원을 찾아서

우리의 고유명절인 '설'이 다가왔다. 한때 양력 1월 1일은 양력설, 음력 1월 1일은 음력설이라고 했고, 양력설은 신정(新正), 음력설은 구정(舊正)이라고 했다. '설'은 '구정'도 '민속의 날'도 아닌 우리의 고유명절 그 자체다. 그런데 아직도 '설'을 구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고, '설'은 버려야 할 옛날 습관, 전근대적 유산, 비과학적인 의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설'을 이 시대에 남은 마지막 미신이나 주술문화의 그림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설'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근대는 과학과 합리의 시대다. 그런데 과학과 합리의 토대 위에 세워진 근대사회는 중심을 잃었다. 다양성으로 대변되는 근대사회는 '의미'와 '가치'의 중심을 상실했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이러한 근대사회는 막스 베버(Max Weber)가 사용한 탈주술화(disenchantment)란 개념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근대의 속성은 합리화에 있고, 고대와 중세의 비과학적이고 주술적인 세계로부터 탈출이 근대의 길이라고 보았다. 고대와 중세에 살던 이들은 우리 삶과 세계의 배후에는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대의 사유엔 신비하고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그런 초월적 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초월적 힘이 설 자리는 없고 그 대신에 인간 이성과 과학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했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의 활동이 곧 하나님의 뜻이 되었다.이와 같은 근대의 과학과 합리적 세계관은 과학의 발전과 번영을 낳았지만, 인류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고, '삶의 가치'를 놓쳤다. 이제 인류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공허하게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더 이상 의미 있는 세계, 경이롭고 신비로운 우주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우주는 텅 비어 있는 거대한 빈 공간일 뿐이다. 그것이 생명이든, 산이든, 나무든, 하나님이든 과학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는 모든 것은 쓸모없다.가장 소중한 생명체도 다양한 화학 원소들의 결합체이고, 생명 현상은 일련의 화학 반응이며, 그 모든 현상은 물리 법칙에 따를 뿐이다. 생명도 'DNA'디지털 정보의 구현이고, 모든 생명체는 DNA라는 소프트웨어를 내장한 하드웨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도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로 작동하는 하나의 종일뿐이다. 이제 인간 생명에도 자연에도 우주에도 신성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생명현상이 일련의 화학적 반응이고, 우주가 가스 덩어리라면 그 속에는 의미와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C. S. 루이스(C. S. Lewis)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세계를 알아보는 눈이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 관계, 세계를 의미 있고 경이로운 곳으로 알아볼 때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신비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자연이 물체이고, 하늘의 별이 가스 덩어리에 불과한 사람에게는 자신도 결국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대의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도 '자연적 형태의 다양성과 복잡성에 경이로움'을 나타냈다. 그렇다. 우리의 생명과 자연과 우주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경이를 발견할 수 없다면 우리 삶은 공허하고, 무의미할 것이다.우리의 고유명절 '설'은 만남이다. 생명을 주신 부모님과 만남이고, 나를 만든 세계와의 만남이다. 이 근원과의 만남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자.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2021-02-09 11:27:53

[기고]고속도로 지하화로 토지이용 효율 제고

[기고]고속도로 지하화로 토지이용 효율 제고

역사적으로 대구는 영남 지역의 정치·행정·교통·군사의 중추도시 역할을 해왔다. 현재 대구는 4개 순환선과 8개 방사선 도로, 3개의 도시철도가 거미줄처럼 가로망을 형성하고 있고, 6개의 고속도로, 3개의 철도, 도심공항 등 교통이 발달해 동서남북의 결절지 역할을 하고 있다.그러나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도시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철도와 고속도로, 공항이 오히려 효율적인 토지이용과 사회통합적인 도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육상교통의 부(負)의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y) 개선 사업도 아직 부진하다. 철도의 경우, 경부선 KTX 건설을 계기로 지하화가 추진되었으나, 경부선 선로 환경 정비 사업으로 변경 추진돼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도심 고속도로의 경우, 교통 혼잡과 미세먼지, 도심 단절을 불러오고 토지 이용 계획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도시의 신성장 동력 창출과 사회통합적 도시 발전 측면에서 상습 정체 구간인 중부내륙지선(서대구IC~화원옥포IC, 12.1㎞, 지하화 비용 약 7천억원)과 경부고속도로(북대구IC~숙천동, 공항철도 인입선 시점, 18㎞, 지하화 비용 약 2조원) 구간의 지하화가 시급하다.도심 고속도로 지하화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의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할 동력이 될 것이다. 도심 고속도로의 지상 구간을 대규모 녹지공간과 테마파크로 조성한다면 경제 활성화와 함께 미세먼지 등 환경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또한 대략 3조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효과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중부내륙지선의 지하화는 우선 환경 문제를 개선할 것이다. 중부내륙지선은 서·남부 지역의 관문으로 대구 경제의 심장인 성서산단, 테크노폴리스, 국가산단 물류의 핵심 인프라다. 그러나 주변 지역 도시화에 따라 도심 단절과 교통 혼잡 증가와 함께 많은 환경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따라서 중부내륙지선의 지하화는 첫째, 서부 지역의 사회통합적 도시 발전을 가능하게 하며, 둘째, 도시의 균형발전을 촉진하고, 셋째, 거대 녹색 공간 창출로 성서산단의 어메니티(amenity)를 높이고, 낙동강과 연계한 관광 명소 개발 등으로 낙동강 르네상스를 기대할 수 있다.경부고속도로 구간 지하화는 새로운 성장 동력원이 될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는 북부·동부·남부 지역의 관문으로 인적·물적 교류의 핵심 시설이다. 따라서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는 불로고분군, 금호워터폴리스, 대구공항, 혁신도시의 활성화와 토지 이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고, 지역의 신성장 거점으로서 공항 부지를 개발할 수 있는 입지적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공항 부지의 부가가치를 높인다. 공항 이전 계획에 현 부지 가치(약 9조2천700억원)가 이전 비용(약 8조8천800억원)보다 높게 반영되어 있으나, 예측의 오류에 대비한 가외성(加外性·redundency) 확보가 필요하다. 만일을 대비해 정부 재정 지원 등 다양한 재원 조달 방안을 검토할 수 있으나, 부지의 부가가치와 활용성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다.대구의 미래를 위해 고속도로 지하화에 대한 필요성, 경제성, 기술적 현실성 등에 대한 열린 논의를 제안한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고속도로 지하화를 검토하고 있고, 내년에 예정된 대통령 선거가 절호의 기회다. 고속도로 위의 녹색 공간이 인재를 끌어들이고 사람들과 일자리를 연결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도시의 혁신과 발전의 플랫폼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2021-02-09 11:22:52

[이상곤 칼럼] “눈길 함부로 걷지 마라”

[이상곤 칼럼] “눈길 함부로 걷지 마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선 확정 후 이런 말을 했다. "반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참담한 시기를 끝내자" "나와 우리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너도 당신'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격한 발언을 쏟아내고 싶으면 1초만 참고 그가 '적'인지 '공동체의 일원'인지를 생각하자"고 했다. 트럼프 집권 기간, 민주 공화 양 진영 간 갈등의 심각성을 역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공화당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의 등장 이후 미국은 4년 내내 홍역을 치렀다. 이제 그 증오와 갈등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가 읽혔다.트럼프는 갔지만 '트럼피즘'의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트럼프 지지자는 아직 건재하고 대통령 선거 사기를 믿는 공화당 유권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바이든은 미국의 이런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일이 시급하다. 분열과 갈등 치유를 통해 과거 미국의 평판과 입지를 하루빨리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포용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바이든의 개혁 드라이브가 눈에 띈다. 어쨌든 미국은 이제 비정상의 정상화의 길에 접어든 듯하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새 출발에 괜히 눈길이 가는 것은 왜일까? 한국은 여전히 정권은 독주를 계속하고 있고,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갈등은 도를 더하고 있다.집권 말기라는 위기감 탓인지 정권의 폭주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거대 여당을 앞세운 입법과 포퓰리즘, 개각을 틈탄 정권의 내로남불은 점입가경이다. 지난 연말 검찰총장 찍어내기 실패의 후유증도 잊은 듯 이제는 '사법 길들이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 역시 대법원장 녹취록이 공개돼 '거짓말 대법원장' 사태를 낳고 말았다. 믿었던 대법원장이 자칫하면 자리보전도 어렵게 됐다. 이는 정권이 멈출 때 멈출 줄을 모르고 상황을 몰각한 때문이다. 여당이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지금은 정국 수습책에 몰두해야 할 때다. 그런데 집권세력은 여전히 집권 초기 힘이 남아있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추락하던 지지율이 잠시 주춤하고 강공 드라이브가 먹힌다 보는 것이다. 4년 전 박근혜의 몰락을 보고도 자제력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내놓는 매표행위에 가까운 정책 남발은 또 어떤가? 손실보상법, 이익공유제에 이은 4차 재난 지원금 등 선거를 앞두고 돈 풀기에 목숨을 건 듯하다. 작년 14조 원에 이르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덕에 4.15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이 아무래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러다 망신살도 뻗쳤다. 2월 국회에서 입법을 추진했던 손실보상법은 소급 입법이 안 돼 법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점을 몰랐다. 거대 여당이 의원 수만 많았지 입법 능력은 문제투성이다. 결국 손실보상법을 포기하고 4차 재난지원금을 들고 나왔지만 이제는 재정당국과 조율이 안돼 삐걱댔다. 여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보편이든, 선별이든 4차 재난지원금을 하겠다" 했는데 경제부총리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발끈해서 여당이 부총리 사표를 종용하자 그 부총리는 울먹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조국 임명에서 두드러졌던 코드 개각도 문제다. 윤석열 사태 조기 수습을 위해 추미애를 경질하고 임명한 박범계 장관은 '포장만 바뀐 추미애' 소리를 듣는다.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야당 동의 없는 27번째 장관'으로 임명했지만 윤석열 검찰 총장과의 관계가 벌써 심상찮다. 박범계식 '윤석열 패싱'은 이미 '추미애 시즌 2'로 접어든 느낌이다. 이어진 개각에서 새로 장관이 된 사람들도 매한가지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황희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는 딸과 관련된 비난을 받고 있다. 말로는 '평준화 교육' '특목고 폐지'라고 해놓고 자신의 딸들은 모두 특목고와 외국인 학교에 보낸 것이다. 온갖 부정과 반칙으로 자신의 딸을 의전원을 거쳐 의사로 만든 조국과 맥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남의 자식들에게는 "용이 되려고 하지 말고 개천에서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라"고 하니 이젠 '내로남불'이란 비난도 성에 차지 않을 정도다.이런 와중에 정권의 뻔뻔스러움은 극에 달했다. 북한 원전 지원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 대표에게는 대통령까지 나서 '구시대 유물'같은 정치를 한다며 공격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북한의 김정은에게 준 USB 공개는 못하겠다고 버틴다. USB 내용만 공개하면 될 일을 청와대 정무수석은 야당에 명운을 걸라며 겁박까지 했다. 버틸 수만 있다면 최대한 우기고 협박해서 견뎌보자는 작전이다.청와대 대통령 회의실 앞에는 김구 선생의 글씨가 한 폭 걸려있다고 한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로 시작되는 글귀로 서산대사의 글로 알려져 있다. '눈 내리는 벌판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 걸어간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과반을 넘는 170여 석의 집권세력은 의석 수를 믿고 폭주 중이다. 무리한 입법을 통한 내편 네 편 가르기는 쉼이 없다. 또 1년여밖에 남지 않은 정권임에도 검찰과 사법 장악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이 나라에서 뻔뻔하게 '심판 매수'를 시도하고 있으니 정말 가관이다. 국회 의석 수와 맹목적 추종세력인 '문빠'를 믿고 벌이는 일이지만 착각이고 오판이다. 트럼프가 막판까지 광기의 트럼프 지지자들에 기대, 무모한 의사당 점거를 시도한 일을 기억할 것이다. 옛사람이 괜히 "눈길 함부로 걷지 말라"고 경고한 게 아니다. 청와대 복도에 세금까지 들여 '백범'의 글씨를 걸었다면 그 뜻도 제대로 새겼으면 한다. 이상곤 전 청와대 행정관

2021-02-08 15:02:51

[매일춘추] 날아온 산과 날뫼북춤, 그리고 북 울림

[매일춘추] 날아온 산과 날뫼북춤, 그리고 북 울림

대구역에서 서대구IC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다 보면 북비산네거리를 지나자마자 경사진 오르막길을 만나게 된다. 이 고개를 '원고개'라 하는데 오른편에는 '날뫼'라는 동산이 있다.이 동산 때문에 기찻길도 산언저리를 따라 북쪽으로 둥글게 휘어져 서쪽으로 내닫는다. 지금은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날뫼'를 기점으로 두류산까지 커다란 언덕으로 이어져 있다.예부터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상고 시절 옥황상제가 달구벌에 흩어져 있는 동산들을 와룡산으로 불러모았다. 명에 따라 달성(현 달성공원)에 있는 동산도 뿌리째 뽑혀 와룡산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마침 달(서)천에서 빨래하던 여인이 둥둥 떠가는 산을 보고 "산이 날아간다"라고 고함쳤다.날아가던 산은 여인의 고함에 부정을 타 더 이상 날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다. 날아와서 생긴 산이라 하여 이 산을 '날뫼'라 부르고 비산동(飛山洞)의 동명 유래가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달성의 둘레와 날뫼의 밑동 둘레가 비슷하다는 것이다.과거 이 언덕길은 한양 나들목이었다. 한양에서 대구로 부임하는 관찰사는 동명을 지나 팔달진에서 나룻배로 금호강을 건넌 후 이 언덕을 넘어야 경상감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달성공원 옆 인동촌 시장길이 당시 관도(官道)의 흔적이다. 백성들은 이 언덕에서 부임하는 관찰사를 영접했고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도 환송했다.조선 중기에 이곳 백성들에게 존경받던 관찰사가 과로로 갑자기 순직하게 되었다. 백성들은 비통해하며 그를 처음 맞이했던 언덕에 무덤을 쓰고 이 고개를 '원(님)고개'라 불렀다. 이후 사람들은 제향하면서 풍습에 따라 쇳소리를 금하고 북 울림으로 대신했다. 그래서 비산동에 전승되는 풍물에는 다른 지방 풍물보다 북 놀음이 많은데 이 부분을 따로 떼어낸 것이 '날뫼북춤'이다.날뫼북춤은 현재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2호로 큰 북을 긴 끈으로 어깨에 늘여뜨려 메고 두드리면서 춤을 추는 민속 북춤이다. 1992년 대구에서 개최된 제7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640명에 달하는 북잽이가 식전행사로 날뫼북춤을 추어 장엄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북춤은 경상도의 씩씩하고 활발한 요소가 들어있고 강박에 악센트를 주는 타법으로 북 울림이 장중하다. 춤사위 중 씨름 기술의 자반뒤지기처럼 북을 어깨 위로 날려 몸과 함께 한 바퀴 회전하는 '엎어빼기'는 날뫼북춤의 백미라 할 수 있고 '덧배기춤'은 경상도 특유의 어깨춤으로 흥청거리는 멋이 있다.날뫼북춤의 북 울림에는 당시 홍수의 피해와 역병으로 신음하던 백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경상감영 관찰사의 살신성인의 정신이 서려 있다. 작년 봄 코로나 19로 위기에 몰렸던 대구경북의 코로나 상황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진두지휘했던 리더들에게 관찰사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모두 한마음으로 대처했고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이번 설에는 서로에게 수고와 감사의 덕담을 담아 날뫼 북 울림이 온 누리에 퍼지도록 해보자.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2021-02-08 11:58:12

[기고]학교장 처벌, 이대로 괜찮은가

[기고]학교장 처벌, 이대로 괜찮은가

이번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중대재해처벌법'에 학교장 처벌이 포함돼 일선 학교 현장에서 교육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기업을 대상으로 출발한 이 법에 교육기관인 학교를 포함한 것은 입법 취지는 물론 일반적인 법 감정과도 많이 벗어난다. 영리를 전제로 하는 기업과 전인적 성장을 전제로 한 총체적 교육기관을 어찌 같은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학교장에게는 교육 책임자로서의 역할과 시설 관리자로서의 역할이 함께 주어져 있다.그러나 이 법의 통과로 인해 교육자로서의 역할은 축소되고 시설 관리에만 치중할 위기에 놓여 있다.학교는 이미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교육시설 등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법률' '산업안전보건법' 등 안전에 관한 법이 몇 겹으로 적용되고 있다. 더욱이 학교장은 학교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채용과 시설 투자를 위한 실질적인 예산권을 갖고 있지 않다.따라서 기업의 최고 경영자나 사업주에게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실제 결정권이 없는 학교장에게 같은 무게로 차별 없이 적용하는 것은 법에 대한 과잉 해석이라고 본다.심히 우려되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 수위의 하한선(징역 1년)을 정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형법의 적용 관례에 비춰 보더라도, 일반적으로 처벌의 하한선은 음주운전 사망 사고나 마약과 같은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범죄행위의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심지어 운전 중 사망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도 업무상 과실치사로 인정돼 처벌의 상한선만 있지, 하한선은 적용되지 않는다.따라서 실제로 구속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반적인 법의 적용이 이러함에도, 학교 안에서 예측할 수 없이 일어날 수 있는 과실의 책임을 포괄적으로 학교장에게 부과해 징역형에 처하게 하는 것은 형법 정신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법의 모법인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과 비교해도 매우 가혹하다.당연히 근로자의 생명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한다.누구도 이러한 법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이 곧 법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법 제정으로 처벌을 강화하기에 앞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기업과 국가적인 투자가 우선이다. 그리고 좋은 명분에 기초한 법일수록 완벽한 기준을 추구해 현실과의 괴리가 커지기 쉽다.이 법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학교장은 재임 동안에 구태여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설 사업을 벌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이에 따라 학교는 꼭 필요한 시설 투자를 하지 않아 점점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비교육적인 시설이 되어갈 것이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마저도 피한다'는 몸사림의 논리가 어딘들 예외일 수 있겠는가.중대 재해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와 공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한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애초 공중이용시설에 포함됐던 학교는 학교시설을 대여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입법 과정에서 제외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중대산업재해'에서도 제외돼야 한다.평생 교육에 헌신해 온 학교장에게 총체적 책임을 물어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하는 것은 법의 취지와도, 그리고 인륜적 가치에도 반하는 것이다.향후 경북교육청은 하위 법령(시행령, 시행규칙)에 학교를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교육기관의 책임은 최소화하는 구체적인 조문을 넣어 학교장으로 하여금 교육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이를 위해 교육부, 교육감협의회와 유기적으로 협의하여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다.

2021-02-08 11:42:21

[세계의 창] 다시 춘절이다

[세계의 창] 다시 춘절이다

중국의 '춘절'은 중국인에게 각별하다.우리처럼 조상을 모시는 차례를 지내는 일은 없지만 도시에서 일하는 4억 '농민공'들이 일 년에 단 한 번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는 기회다. 코로나 19로 중국 방역당국이 핵산검사 의무화와 사전허가제 등을 통해 춘절귀성을 통제하는데도 적잖은 중국인들이 고향에 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물론 예년에 비해서는 춘절귀성인파나 여행을 떠나는 중국인은 예년의 17억 명에 비해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것이 사실이다.만난을 무릅쓰고서라도 고향에 가는 중국인의 숫자 또한 만만치 않다. 기차표나 항공권을 끊으려면 최소한 7일 이내의 코로나 핵산검사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고향에 가더라도 귀성객은 사실상 외출금지다. 자가격리가 필수이며 귀성한 후에도 일주일마다 코로나검사를 해야 한다. 지방도시에서는 타 지역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귀성객이 있는 집에는 아예 문에 '출입금지' 통지를 붙여버리기도 한다.춘절 귀성객으로 인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촌 서기와 촌장 등을 해임하는 등의 강한 문책이 잇따르면서 이번 춘절에는 고향에 돌아오는 귀성객을 불허하는 지역이 대부분이다.그럼에도 많은 중국인들은 이번 춘절에 일 년여 만에 고향을 찾는다. 핵산검사를 제시해야 하는 기차 등의 대중교통을 통한 귀향보다는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이용한 농민공의 귀향을 막을 수는 없다.중국당국은 귀성 농민공들이 다시 대도시로 되돌아갈 때 핵산검사 요구와 2주간의 자비격리 등 엄격한 코로나 방역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귀성한 농민공들이 한동안 자신이 일하던 도시로 되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식당 등 특정 직업군의 단기부족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다.공식적인 춘절연휴는 11일부터 17일까지 딱 일주일이다. 그런데 이미 중국의 춘절연휴는 시작됐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대부분의 중국 기업은 공장 문을 닫는다. 이미 중국 교통당국은 1월 28일부터 정월 대보름인 원소절(元宵节)까지를 춘절특별수송기간인 '춘윈(春运)'으로 정하고 특별대책을 시행하고 있다.가장 즐거워야 할 중국 최대 명절 춘절이지만 이번 춘절은 중국인들에게 가장 우울한 춘절이 될 것 같다. 코로나가 발발하기 전인 2019년 춘절에 필자는 춘절을 끼고 있는 한 달여 동안 중국에서 여행프로그램 촬영을 하면서 중국인들의 춘절 문화를 제대로 체험했다. 춘절은 오롯이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축제의 시간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코로나 사태와는 동떨어진 듯 세계 최고의 방역을 자랑했다.지난해 춘절 연휴기간인 1월 23일 코로나19 바이러스 진원지인 우한(武汉)을 전격 봉쇄한 지 76일 만에 4월 8일 '우한봉쇄령'을 해제했다. 그 때만 해도 중국은 사실상의 코로나바이러스 완전 종식선언을 한 것인 줄 알았다.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았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 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의 두 번째 춘절을 덮쳤다.최고지도자 시진핑 주석은 춘절에 대한 중국인의 애틋한 정서를 감안, 지난해 춘절 때는 코로나 사태에 대해 오판한 바 있다."예방과 통제에 주의를 기울이되, 그로 인해 지나치게 공포심을 일으켜 춘절 분위기를 해치지는 말라"며 춘절귀성을 전혀 통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춘절민심을 보살핀다며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한 그 시점에 윈난성을 찾아 촌간부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홍보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가 지금 맞고 있는 춘절 코로나 확산 비상인 셈이다.시 주석은 지난해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춘절 방역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중국이 '우한폐렴' 사태라고 불리던 코로나19 바이러스 초기에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전 세계가 지금과 같은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코로나 사태는 2022년 당 대회를 앞두고 차기 후계구도를 내놓아야 하는 시 주석 입장에서 후계구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희석시키면서 시간을 벌어준 측면도 있다. 그러나 올 춘절 코로나 방역의 성패는 시 주석의 장기집권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춘절기간 이후 중국의 코로나 재확산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21-02-08 11:41:59

[매일춘추] 올봄에는 그림책을!

[매일춘추] 올봄에는 그림책을!

대구시교육청은 2021년도 새로운 정책으로 '그림책 활용 교육'을 제시했다. 학생들의 미래역량을 기르기 위한 교육정책 중 하나다. 코로나 시대에 그림책이 모든 연령대와 학교별, 학급별 적용이 가능하고 인성교육과 독서교육에 효과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서 그림책이 본격적으로 출판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다. 주로 유명한 해외 그림책의 저작권을 구매해 출간하는 형태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한국 그림책이 세계 3대 그림책 공모상인 라가치상, 안데르센상, BIB(Biennial of Illustrations Bratislava)상을 석권하면서 세계 출판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한국 그림책은 K-컬처의 전령사로 발돋움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수출된 도서저작권 중 46.7%가 아동도서였다. 아동도서 대부분은 그림책이 차지했다. 특히 작년 3월 '구름빵'으로 널리 알려진 백희나 작가가 아동 청소년 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하면서 더욱 활발해졌다.필자도 오래전부터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처음에는 내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위함이었다. 그림책은 보통 40쪽 분량이어서 짧은 시간에 읽어주기에도 제격이었다. 엄마가 편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듯 읽어주면 아이들은 좋아했다. 글자를 익히지 못한 아이도 그림을 보면서 놀이하듯 즐겼다. 나 역시 점점 그림책을 좋아하게 되었다.그래서 도서관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그림책 강좌를 열었다. 수강자의 호응도가 좋아서 강좌 후에 그림책 동아리를 만들었다. 참여자들은 동아리 모임에서 자기가 발견한 좋은 그림책을 소개하고 함께 돌아가며 낭독했다. 내가 읽지 못한 책을 감상할 때마다 마음이 설레었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았다.그림책을 읽을 때 활자에 익숙한 어른들은 글에 집중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읽어주면 혼자 읽을 때보다 더 세심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림이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최근 많은 사람이 그림책 사랑에 빠져있다. 유아는 물론이고 아이와 청소년, 성인과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아우른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전국 곳곳에 그림책 전문 서점, 도서관, 카페 등이 생겨나고 있다. 도서관의 그림책 구입 비율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도서관에서도 작년에 어린이 자료 중 그림책 구입 비중이 37%를 차지했다.그림책 읽는 어른들도 요즘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그림책을 통해 마음속에 있는 '어린 나'를 발견하고 위로를 받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지역 공공도서관에서는 봄 시즌에 맞춰 각종 그림책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그림책 강좌, 그림책 동아리모임, 그림책 전시회 등이다.이제 그림책은 전 세대가 함께 읽고 소통하며 공감할 수 있는 좋은 매체로 거듭나고 있다. 올봄에는 그림책으로 코로나로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메마른 감성을 일깨우면 어떨까.

2021-02-08 06: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박생광(1904-1985), ‘범과 모란’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박생광(1904-1985), ‘범과 모란’

원래는 6폭을 한 화면으로 활용한 연속 병풍 형식이었으나 지금은 펼쳐져 유리 액자로 다시 표구되어 있다. 병풍(屛風)은 원래 바람을 막아주는 일종의 가구였다. 그러다 점차 그것이 놓인 공간과 그 앞에 앉은 사람을 빛내 주는 위세품이 되어 이 작품이 그려진 1980년대에도 대작은 병풍화가 많았다. 뜻으로 보면 '범과 모란'은 부귀와 장수를 약속하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며 가족의 화목을 기원하고 액운까지 막아주는 만능 병풍이다. 박생광은 상서로운 뜻을 가진 전통적인 여러 모티브를 멋지게 활용해 새로운 창작물로 완성했다.가운데의 모란과 괴석은 궁궐 병풍인 '궁모란도'에서 왔고, 화면 위쪽의 구름 문양 사이로 보이는 주홍빛 해와 파랑색 달은 일월을 한 병풍에 그려 어좌를 장식하는 왕 전용의 '일월오봉병(日月五峰屛)' 또는 '십장생도'에서 왔다. 고개를 돌려 나뭇가지 위의 두 마리 새를 올려다보는 왼쪽 호랑이는 민화 '까치호랑이'에서 왔고, 오른쪽의 두 마리 새끼를 어르고 있는 암호랑이도 호랑이가족을 그린 민화에서 나왔다. 부귀화(富貴花)인 모란, 석수만년(石壽萬年)의 돌을 가운데 두고 벽사의 호랑이를 좌우로 그리면서 희소식을 전하는 까치도 넣었다. 박생광은 민화와 궁화에서 필요한 품목들을 가져와 부귀와 장수를 기원하고 나쁜 것을 막는 조형적 부적으로 화려하게 융합했다.황색, 청색, 남색, 홍색, 녹색, 백색, 흑색 등의 색상과 굵은 주황색 윤곽선, 눈부신 화이트에서 박생광의 오색찬란한 색채가 잘 드러난다. 원색 본연의 생생한 활기와 강렬함이 압도적이다. '범과 모란'을 보면 조선시대뿐 아니라 20세기 미술에서도 색채가 억눌렸고, 색채를 무시하려하고 두려워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랫동안 물질적인 것 대신 정신적인 것을, 화려함 대신 검소함을, 채색화 대신 수묵화를 숭상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해 온 어떤 공통된 무의식 때문일 것 같다.박생광과 1904년생 동갑 화가인 이응노는 외국으로 나가 고국을 바라보고 고국동포를 떠올리며 수묵화 '군상'(1986년)을 그렸고, 분단 후 북쪽으로 간 김용준은 우리 미술의 '광채 나는 전통'을 연구해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1958년)로 펴냈다. 박생광은 민간미술의 전통 속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채색화를 가지고 나와 자신의 양식을 완성했다. 박생광은 벽초 홍명희가 '임꺽정전(林巨正傳)을 쓰면서'에서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삼천리' 1933년 9월호) 한 그런 예술정신의 실현을 회화로 보여주었다.미술사 연구자

2021-02-08 06:30:00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나쁜 농단과 착한 농단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 나쁜 농단과 착한 농단

임성근 판사가 사표를 수리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김명수 대법원장은 '탄핵' 운운하며 그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문제가 되자 그는 그런 발언을 한 적 없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그의 발언을 담은 녹취록이 공개됐다.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하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 사표를 수리하면 탄핵 얘기를 못 한다."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여당에서 총반격에 나섰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심부름센터도 하지 않는 '불법 도청'을 해 폭로했다는 게 정말 충격적"이란다. 그런데 본인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도청'이 아니며, 그것을 공개하는 것도 '불법'이 아니다. 같은 당 전재수 의원은 아예 "인성이나 인격도 탄핵감"이라며 인신공격을 퍼부었다.상대 모르게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비열한 일이다. 하지만 임 판사가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일을 하기로 했을 때에는 '인성'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게다. 즉, 그는 김 대법원장이 자신의 사표를 수리해 주지 않는 이유가 정치적 성격의 것임을 이미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녹음으로 그 증거를 확보해 둘 필요를 느낀 게다.녹취록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탄핵이라는 제도 있지. 나도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탄핵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데." 이 대화를 나누던 작년 4월에는 '탄핵'이 현실성이 없었다. 결국 임 판사는 탄핵을 피하려고 사표를 낸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그는 암 치료로 체중이 30㎏이 준 상태였다.현 정권에서 세운 대법원장이 임 판사가 "탄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탄핵이 현실성도 없고 정당성도 없다고 믿으면서 대체 왜 그는 암 투병을 하는 판사의 사표를 수리해 주지 않은 걸까? 그 이유가 황당하다.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수리해 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결국 임 판사를 여당 의원들이 탄핵 '얘기'를 할 '꺼리'로 남겨두려 한 것이다. 이 서비스의 대가로 그는 위험한 발언을 하고도 전재수 의원에게 외려 칭찬을 들었다. "오히려 징계하기 전에 사표를 내고 책임을 회피하는 공직사회의 오래된 관행을 대법원장이 막은 것으로 국회의 위상, 삼권분립을 굉장히 존중해 주는 발언이다."김 대법원장은 거짓말을 했다. 자기가 한 발언에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규정에 따르면 당시 대법원장에게는 임 판사가 낸 사표의 수리를 거부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그저 판사 출신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제 존재감을 만끽하도록 서비스해 줄 정치적 필요뿐.김 대법원장은 임 판사가 탄핵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뭐라고 떠들든 그 소신에 따라 임 판사의 사표를 수리했어야 한다. 그리고 예상되는 의원들의 질타에는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며 당당히 제 소신을 밝혔어야 한다. 그것이 독립된 기관으로서 사법부의 수장이 할 일이다.요즘 여당 의원들은 '선출된 권력'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삼권분립이란 그 잘난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자율성을 말한다. 법원이 선출된 권력인 행정부나 입법부의 입김에 놀아나는 것을 우리는 '사법 농단'이라 부른다. 결국 사법 농단을 단죄한답시고 또 다른 사법 농단을 벌였으니, 어처구니없는 역설이다.지난 정권에서는 적어도 사법 농단이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이라도 했다. 그런데 이 정권의 특징은 제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다 "삼권분립을 굉장히 존중해 주는" 장한 일이었단다. 그렇게도 장한 일이라면 김 대법원장이 왜 거짓말을 했겠는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제 선행을 감추려고?결국 같은 사법 농단이라도 지난 정권에서 하면 나쁜 농단이고 자기 정권에서 하면 착한 농단이라는 얘기다. 절망스러운 것은 이런 헛소리를 듣는 정신적 고통을 앞으로 3년은 더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절망감이 그저 나만의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나라 전체가 정신적 고문실로 변한 느낌이다.

2021-02-08 06:22:56

[기고]산업단지, 행복 그리고 대구

[기고]산업단지, 행복 그리고 대구

지역에서 작은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지인이 "요즘 여러 가지로 상황은 힘든데 문득 '행복'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된다"며 난데없는 고백을 하더니, "산업단지를 더 좋게 바꾼다는데 그거 하면 산업단지 사람들 '형편' 좀 나아지겠냐"며 코로나19 때문에 힘든 상황을 토로했다.월급쟁이인 필자의 눈에 비친 그는 경제적인 여유나 자유로운 직장 생활을 누려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최근 어려워진 회사 사정 탓인지 힘든 얼굴로 그가 불쑥 던진 '행복에 대한 단상'에 잠시 말을 잃었다.산업단지가 좋아지면 우리 주변에 '형편' 좀 나아지는 친구가, 가장이, 기업인이 많아질까?지역 도심 산단을 한번 들여다보자. 매출이나 근로자 수 면에서 규모가 작은 기업이 대부분이고, 도로나 주차장 여건도 좋지 않다. 임차 기업이 증가하는 가운데, 근로자 편의시설은 더 말할 것도 없다.최근 한 산단을 지나다 '○○정밀공업'이란 공장 안에서 노부부가 야간작업을 하는 모습을 봤다. 좁고 어두컴컴한 공장 내부는 '정밀'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그러나 '이 세상에 작은 기업은 없다'는 말처럼 그 노부부의 작은 공장도 수많은 제조업 가치사슬 가운데 빠뜨릴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도시 외곽 대규모 산단은 산단대로, 또 도심 내 산단은 또 그 나름의 역할과 존재 이유가 있으니, 어느 하나를 소홀히 할 수 없다. 도심 산업단지 환경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현재 도심 산단은 위기에 처해 있다. 잘나가는 도소매업, 창고업이 산단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이들과의 무한 경쟁을 허용하면 접근성 좋고 인력 구하기 좋은 도심 내 산업용지가 잠식돼 기술력 있는 소규모 기업의 내몰림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지가 상승으로 인한 기업 비용 증가는 제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대구에는 21개의 산단이 있고 대구 전체 제조업 생산의 88.5%를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구 경제의 버팀목이다.노후 산단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중앙정부 지원으로 진행돼 왔지만 가장 핵심은 200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산단 재생과 구조 고도화 사업, 그리고 올해부터 4년간 추진될 산단 대개조 사업이다.산단 대개조 사업은 ▷개별 기업의 제조공정 혁신과 기술개발, 산단의 스마트화를 통해 기업 지원과 제조 창업 활성화 ▷근로자 편의시설 확충과 근로 환경 개선으로 청년이 찾는 산단 조성 및 전문인력 양성 ▷도로·주차장, 에너지 등 인프라 확충으로 안전하고 편안한 산단 조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한국산업단지공단이 2011년 성서산단에 대구지사로 둥지를 튼 이후 10년 만에 지난 1월 1일 대구본부로 격상하고 성서스마트산단 사업과 서대구·제3산단 산단 대개조 협력 사업을 본격 시작하게 됐다.이번 달 초에는 대구시와 산단공, 그리고 대구TP 등 기업 지원기관들이 공동으로 인력을 파견해 성서스마트산단 사업을 전담할 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사업단은 성서산단의 산업 인프라와 편의시설 확충은 물론 개별 기업의 제조 혁신을 앞당길 사업들을 추진하고, 새로운 혁신 사업들을 발굴해 나갈 것이다.기업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그리고 대구시의 일련의 노후 산단 경쟁력 강화 사업들을 통해서 노후 산단들이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 근로자와 기업인이 함께 행복하고, 나아가 주변의 친구가, 가장이, 시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행복한 시민, 자랑스러운 대구'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21-02-07 15:50:59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목욕을 싫어하는 고양이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목욕을 싫어하는 고양이

목욕할 때마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 탱이가 내원했다. 목욕 중에 발버둥 치다 발톱이 부러졌다고 하셨다. 보호자의 손등에는 고양이 발톱에 할퀸 상처가 깊게 패었다.탱이는 치료를 잘 받았다. 낯선 수의사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은 채 지혈 치료와 소독도 얌전하게 잘 받았다. 탱이는 착한 고양이였다.고양이 중에는 유독 목욕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물을 마실 때도 수염에 물이 닿을까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고양이가 물 자체를 싫어하나 생각이 들 정도다.◆고양이가 목욕을 싫어하는 이유…목욕 대신 그루밍고양이가 물과 친하지 않은 이유는 진화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고양이 조상은 아프리카 사막 기후에서 진화되었다고 한다. 건조한 기후의 특성상 물을 접할 기회가 적다 보니 일광욕과 그루밍만으로 털을 관리하는 습성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한다. 물을 이용한 목욕을 한 적이 없었다.고양이 털의 해부학적인 특성도 목욕을 싫어하는 이유가 된다. 고양이 털은 이중 모이다. 굵은 바깥 털은 방수기능이 있지만 속 털은 방수기능이 부족해 물이 닿으면 마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야생에서 추위를 견뎌야 하고 털을 청결하게 유지하기에는 난처한 상황이다. 길고양이들이 비가 오면 비를 피해 숨느라 식사도 거르는 이유이기도 하다.물이 귀한 사막 기후에서 자신의 털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털이 엉키지 않고 속 털까지 환기가 중요했다. 일광욕을 즐기면서 혓바늘을 통해 빗질하듯이 그루밍을 반복한다. 심지어는 마른 모래 목욕을 하기도 한다. 햇살 아래에서 온종일 자신의 몸을 열심히 그루밍하는 것이 고양이의 목욕인 셈이다.◆목욕을 유독 싫어하는 고양이… 이유는?오랜 시간 주 서식지가 물가나 호수 주변에서 살아온 메인쿤, 노르웨이숲고양이, 벵갈 등의 품종은 오히려 물놀이를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이러한 사실을 유추해보면 고양이는 물이 귀한 상황에서는 그루밍을 통해 자신의 털을 관리했지만, 물이 풍부한 환경에서는 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응했음을 알 수 있다. 고양이가 물 자체를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이다.고양이가 목욕을 죽어라 싫어하는 이유는 목욕에 대한 첫 경험이 나빴기 때문이다. 실내에서 자라는 고양이는 물이 익숙하며 매일 집사들이 목욕하고 드라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물과 목욕이 싫다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놀람이 두려움으로 확대된 경우이다. 집사와 고양이 간에 목욕 전쟁이 발발하는 이유이다.◆고양이 목욕 요령첫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목욕 과정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단계적으로 알려줘야 한다.어린이 욕조에 고양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넣어준다. 고양이가 욕조에 들어가 장난을 치며 익숙하도록 적응 과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음 단계는 장난감과 함께 소량의 물을 담아둔다. 끈이 달린 장난감을 이용하면 고양이는 첨벙첨벙 장난에 집중할 수 있다. 물에 대한 거부감이 한결 누그러졌음을 의미한다.본격적으로 목욕을 위해서는 욕조 바닥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고 발이 잠길 정도의 온수를 부어둔다. 물에 뜨는 장난감을 함께 넣어주면 불안감 완화에 도움이 된다. 고양이와 계속 얘기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좋다. 중간중간 좋아하는 간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몸을 적실 때는 뒷발부터 시작해 엉덩이, 허리, 얼굴 아래까지 적셔준다. 샴푸도 마찬가지이다. 귀, 눈, 코, 입 주변은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셔도 충분하다. 목욕 온도는 27도 정도의 미지근한 온도가 합당하다.목욕을 마쳤다면 타월로 물기를 짜내고 약한 온풍으로 등부터 아래 방향으로 털을 말려준다. 실내 온도가 낮지 않은 정도라면 완벽하게 건조할 필요는 없다. 마른 담요를 살짝 덮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고양이는 신뢰가 형성되면 어지간한 아픔도 참아내는 무던함을 가지고 있다. 물과 목욕을 낯설어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고양이가 놀라지 않도록 조금만 배려한다면 고양이 목욕은 행복한 일상이 될 것이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2021-02-06 06:30:00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수능엄경(首楞嚴經)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수능엄경(首楞嚴經)

경북대 도서관 5층에 가면 고서실이 있다. 여기에는 고서 6만4천388권과 다량의 고문서가 보관되어 있는데, 전통시대 우리 선조들의 지식들이 어둠 속에 갇혀 있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 이미 박제된 것도 있지만, 여전히 삶의 지혜가 번뜩이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거의 볼 수가 없으므로 이것은 하나의 전시물에 불과하다. 안타까운 마음을 지니고 고서의 새로운 가치를 생각하면서 나는 고서실 계단을 오른다.고서실에는 읽기도 힘이 드는 '백지은니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白紙銀泥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10이 있다. 도합 10권 가운데 마지막 권이다. 이 책은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271호로 지정되었으니, 이른 시기부터 경북대 도서관은 보물을 품게 되었다. 병풍처럼 펼쳐볼 수 있도록 제작된 이 책은 이방한(李邦翰)이 1365년(고려 공민왕 14)에 베껴 쓴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 이 씨의 명복을 빌기 위함이었다.저 긴 제목의 책이름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백지은니'에서 백지는 사실 마지(麻紙)인데 삼베로 된 종이에 은가루를 아교에 개어 썼다는 말이다. '대불정'은 위대하여 위가 없는 불법의 세계요, '여래밀인'은 부처의 은밀한 가르침이며, '수증요의'는 닦아서 깨달음을 성취한 궁극의 참뜻이다. 그리고, '제보살만행'은 여러 보살들의 수많은 이타행(利他行)이고, '수능엄'은 최상의 견고한 불성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슈람가마(śūraṃ-gama)'를 음역한 것이다.경전의 제목이 너무 길어 '대불정수능엄경', '수능엄경', '능엄경' 등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위대한 부처의 은밀한 가르침을 닦으며 깨달음을 성취하는 갖가지의 이타행을 보여서 우리의 본래 모습인 불성을 완전히 드러낸 경전이 바로 '수능엄경'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불교 강원에서는 불제자들이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경전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모든 승려는 보살을 거쳐 부처가 되기를 염원하면서 이 경전을 읽었던 것이다.나는 특별히 '제보살만행'이라는 다섯 글자를 주목한다. 만행은 만 가지의 수행으로 고행이나 참회, 희사나 기도 등 불교도나 수행자들이 지켜야 하는 여러 가지 행동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일 가운데 수행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하였던가.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데는 일정한 문이 없다. 참선을 하거나 경전을 공부하는 것만이 그 길이 아니고, 걷기나 운동하기, 설거지나 마당 쓸기 등도 모두 수행에 해당한다.경북대 도서관의 '수능엄경', 이것을 쓴 고려사람 이방한을 다시 생각한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은을 갈아 이 경전을 베껴 썼다고 했다. 어머니가 극락에서 왕생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이다. 그 마음이 바로 불성이며 보물이다. 이로 볼 때 도서관에만 보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보물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보물을 불교식으로 불성이라 해도 좋고, 유교식으로 천리라 해도 좋다. 그것은 찾으면 빛나고 찾지 않으면 사라진다. 87세 노모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은니로 불경이라도 베껴볼 일이다.정우락 경북대 교수·도서관장

2021-02-06 06:30:00

[내가 읽은 책]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

[내가 읽은 책]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

라틴어 수업(한동일 글/ 흐름출판 /2018)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Si vales bene est, ego valeo.라틴어인 이 문장은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한 첫 인사말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어진 이 때 전하고 싶은 인사이기도 하다.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 최초이고 동아시아 최초라는,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다. 서강대에서 라틴어 강의를 진행했었는데 매우 인기가 좋아 다른 학교 학생들뿐 아니라 일반 청강생까지 늘 만원이었다고 한다. 한 신문에 소개돼 책으로도 출판되었는데 100쇄가 넘었다고 하니 그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지금은 잘 쓰이지도 않고 공부하기도 힘들다는 라틴어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단순히 라틴어만 가르친 게 아니라는 것을. 라틴어를 모어로 가진 많은 나라의 역사, 문화, 종교, 철학을 함께 다루며 무엇보다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수업이었던 것이다."사실 언어 공부를 비롯해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 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28쪽)라틴어 공부가 어려운 만큼 공부에 관해서도 상당 부분 써놓았다. 로마 유학 중에 겪었던 어려움이나 좌절, 또 자신과의 소통을 경험하며 이겨낸 과정 등을 적고 공부를 해야 하는 본질적인 목적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일깨워 준다."학문을 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앎의 창으로 인간과 삶을 바라보며 좀 더 나은 관점과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점이 바로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라는 말에 부합하는 공부의 길이 될 겁니다."(56쪽)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이 글들은 필요하다.책 마지막 부분에 제자들의 편지가 실려 있다. 라틴어만 배웠던 것이 아니라 인생을 되돌아보고 삶이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배운 기회였다고 진심을 담아 감사함을 전했다.이 또한 지나가리라!(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사람들이 특히 힘들 때 많이 떠올리는 문구의 라틴어 발음이다. 세상에 지나가지 않는 것이 무엇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며 사람은 유구한 시간 속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라틴어 명구 중에는 희망과 관련된 것도 많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등.로마법에 젊은이를 가리키는 나이대가 만 20세부터 만 45세까지라는데, 그 나이가 지났다 할지라도 배움과 희망은 여전히 추구해야 할 일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이 책은 스스로를 따듯하게 바라보도록 해준다.신복순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21-02-06 06:30:00

[이종문의 한시산책] 창밖의 매화(詠窓前梅) - 이현일

창밖에 서 있는 네 그루의 매화나무 窓前四梅樹(창전사매수)황혼녘 달을 향해 꽃망울을 터뜨렸네 開向黃昏月(개향황혼월)꽃 아래서 술이라도 마시고 싶지마는 欲飮花下酒(욕음화하주)성궐을 오랑캐가 포위했다 하는구나 奴賊圍城闕(노적위성궐) "어여쁨이야 / 어찌 / 꽃뿐이랴 // 눈물겹기야 / 어찌 / 새잎뿐이랴 // 창궐하는 역병(疫病) / 죄(罪)에서조차 / 푸른 / 미나리 내음 난다 / 긴 봄날엔"허영자 시인의 시 '긴 봄날'의 일부다. 아직 겨울 추위가 매섭기는 하지만, 유사 이래로 봄에게 이기는 겨울은 없었다. 이제 곧 "창궐하는 역병 / 죄에서조차 / 푸른 / 미나리 내음"이 나는 긴 봄날이 다가올 게다. 따뜻한 남쪽 고을에서는 홍매화가 이미 꽃망울을 터뜨렸다고 하지 않던가.퇴계로부터 발원한 영남 학맥의 적통을 이어받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이 지은 '영창전매(詠窓前梅)'에도 봄이 돌아왔다. 바야흐로 창밖에 서 있는 네 그루의 매화나무가 저녁 달빛 아래 꽃망울을 펑펑 터뜨리고 있다. 이런 몽환적인 저녁에는 매화나무 아래서 술이라도 마시며 낭만과 풍류를 누려보고 싶다. 하지만 느닷없이 오랑캐가 쳐들어 와서 성궐을 포위하고 있다고 하니,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작자의 나이 불과 열 살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인조(仁祖)가 머무르고 있던 남한산성이 오랑캐에게 포위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었다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열 살 먹은 꼬마의 시일까? 열 살짜리 꼬마가 술을 마시며 놀고 싶은데, 나라 걱정 때문에 도무지 그럴 수가 없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될까?아마도 말이 되지 싶다. 연보에 의하면 갈암은 일곱 살 때 글 공부를 시작했고, 아홉 살 때 지은 한시에서 이미 큰 인물이 될 조짐을 확연하게 드러냈던 천재였다. 친형인 존재(存齋) 이휘일(李徽逸)이 장래의 포부가 무어냐고 묻자, "원수(元帥)가 되어 오랑캐를 무찌르고 요동 땅을 수복하겠다."는 깜짝 놀랄 대답을 했던 것도 고작 아홉 살 때 일이었다.물론 그 어린 꼬마가 술을 마시고 싶다고 대놓고 말한 것이 다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작품 속의 화자가 작자 자신이 아니라 주변의 어른이라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을 게다. 어른이 아이의 마음으로 쓴 동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듯이, 어린아이가 어른의 마음으로 쓴 '어른 시'도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아이에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런 시는 결코 나올 수가 없을 터. 열 살 먹은 꼬마도 이토록 나라를 걱정하는데,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도대체 몇 살을 더 먹어야 철이 들까 몰라. 철이 들기는 들랑가 몰라.이종문 시조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명예교수)

2021-02-06 06:30:00

[책CHECK] 사물에 말 건네기

[책CHECK] 사물에 말 건네기

경북대 교수인 박현수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옷걸이, 안경, 스마트폰, 빨래집게, 내비게이션, 신용카드 등 어디에나 있지만 쉽게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한 사물들의 세계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러 모습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상품으로 구체화된 사물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흔하디흔한 사물들과 이래저래 관계 맺고 있다. 그렇기에 사물들은 우리의 삶을 보여 주는 매개체일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는 한 방편일 수 있다.사물로부터 사랑의 힘을 발견하고 이 힘에 정동되면서 까르르 웃는 일은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세계를 다시 사랑하면서 관계 맺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시인의 사물 시가 지향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1쪽. 8천원

2021-02-06 06:30:00

[책]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책]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톨스토이 지음/ 최재목 (역주) 옮김/ 21세기문화원 펴냄 국가에 법과 법령이 많이 있을 때 범죄자가 늘어난다.여기에서 성자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더 좋아진다.""내가 조용하면, 백성들은 공정해진다.""나에게 어떤 욕망도 없으면, 백성들은 단순해질 것이다."(제57장 232쪽)톨스토이·고니시 공역의 러시아어판 '노자 도덕경ЛAO-CИ TAŎ-TE-KИHГЪ'(레닌도서관 소장)을 처음 한글로 번역하고 주해한 책이다. 1913년 모스크바 피차트노에젤라출판사에서 발간된 러시아 최초의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국내 처음으로 번역·해설했다.동양인이 아니라 유럽인의 관점에서 본 '노자 도덕경'은 좀 다른 면모를 갖는다. 더욱이 톨스토이는 자신의 비폭력 평화주의라는 관점에서 '노자 도덕경'의 본문과 달리 과감하게 윤문하거나 생략하기도 했다. 생소하거나 의아해할 대목이기도 하지만 톨스토이·고니시 공역의 러시아어판이 갖는 매력이거나 특징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번역을 통해 그의 사상을 전개해 나가며 확인하고 있었던 셈이다.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은 톨스토이의 '비폭력 무저항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만큼, 러시아 완역본 '노자 도덕경'에 톨스토이의 숨결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이런 장점과 매력을 보다 생생하게 대조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애초 톨스토이·고니시가 '노자 도덕경'을 번역할 때 저본으로 삼았을 81장 체제 왕필본(王弼本) '노자 도덕경'을 대비시켜 번역한 것도 특징이다. 왼쪽엔 톨스토이·고니시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의 한글 번역을, 오른쪽에는 81장 체제 왕필본 '노자 도덕경'의 한글 번역을 대비시켰다.아울러 원문의 미주 '세르게이 니콜라예비치 두릴린С.Н. ДУРЫЛИНЪ의 각 장 해설'도 번역해 붙였다. 또 부록으로 포포프·톨스토이가 선역한 '노자 도덕경'의 서문(톨스토이 씀)과 본문을 완역해 실기도 했다.영남대 철학과 교수인 옮긴이 최재목은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박사학위를 받았고, 도쿄대·하버드대·베이징대·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했다. 옮긴 책으로는 '노자'(초간본) 등이 있고, 저서로는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일본어판, 대만·중국어판, 한국어판), '상상의 불교학' 등이 있다. 456쪽. 3만7천원

2021-02-06 06:30:00

[안동을 걷다, 먹다] 19. 이육사문학관

[안동을 걷다, 먹다] 19. 이육사문학관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음식을 먹는다.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 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19번째 이야기. 저항시인이자 독립투사 이육사 스토리264(二六四), '이육사'(李陸史)는 대구교도소에서 받은 수감번호에서 취음한 이름이었다. 본명은 이원록, 혹은 이원삼. 이활이라는 이름도 사용했지만 그는 1930년대 이후에는 이육사로 살았다.일제에 의해 17번이나 투옥되었지만 일제에 항거, 무장투쟁을 준비하다가 결국 중국 베이징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백마(白馬)타고 떠난 우리시대의 '초인(超人)'이었다. 그는 두려움없이 거침없이 독립투쟁의 최선봉에 나섰으면서도 저항의 시(詩)를 놓지않은 '칼날 위에 선 음유시인'이었다.오늘은 이육사 시인을 만나러 나섰다.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유고시, '광야'(曠野)다.해방 전 해인 1944년 세상을 떠난 그가 남긴 광야에서 이육사는 스스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을 자처했다. 절정(絶頂)에서는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 진 그 우에 서다...'라며 저항의 의지를 곧추세우기도 했지만 그는 끝내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다.퇴계 이황(李滉)은 안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가히 '퇴계교'라고도 칭할 수도 있는 한국정신문화의 뿌리다. 그 퇴계의 영향을 받아 수많은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안동은 '한국독립운동의 발상지'라고 불린다. 퇴계학이 그저 책상에서 학문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공부한 지혜와 덕성을 스스로 실천해나가고자 하는 삶의 철학이었기 때문이리라.선비정신은 케케묵은 주자학과 성리학의 윤리를 책상머리에서 외워 벼슬길을 좇는 서생(書生)의 그것이 아니었다. 학문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았고 자신과 가족의 편안함보다는 이웃과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였고, 일본제국주의라는 불의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독립운동에 직접 나서는 행동하는 양심이었다.임청각의 석주 이상룡 선생 뿐 아니라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김동삼, 권오설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곳이 안동이었다.이육사는 퇴계선생의 14세손(孫)으로 오롯이 퇴계의 향기 가득한 도산면 원촌마을에서 태어났다. 도산서원과 퇴계 종택 및 퇴계가 거닐던 옛길. '예던길' '녀던길'이 청량산까지 이어져 있는 그 마을이다. 도산서원이 지척에 있고 안동댐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지류인 토계천이 마을 앞을 흐르는 곳이다. 강 건너에는 고려태조 왕건의 전설을 머금은 '왕모산'이 자리하고 있고 마을에는 여전히 퇴계의 후손들이 모여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일제에 항거하는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이육사는 일본과 중국유학을 다녀오고 난 후 본격적으로 독립투쟁에 나선다.육사는 1924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가 1925년 귀국했다가 곧바로 중국 베이징에 가서 중국대학에서도 공부를 이어갔다. 이어 중국에서도 오래 머물지 않고 귀국한 1927년 가을 대구에서 큰 사건이 벌어졌다. 10월 18일 일어난 '장진홍 의거'였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현 대구 중앙로)에 배달된 폭탄이 터졌고 이로 말미암아 일본경찰과 은행원 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엄청난 폭음과 함께 은행 유리창 70여장이 깨졌고 그 조각들이 대구역까지 날아갈 정도였다.이 사건에 연루된 육사는 1년 7개월 동안 투옥돼 옥고를 치렀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다. 이 때 수감번호가 264였다.이후 육사는 중외일보와 조선일보 대구지국 기자로 활동하면서 '이육사'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독립운동가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안동시내로 진입하기 위해 안동대교를 넘어 옥동으로 넘어가기 전에 만나는 어가골 교차로에서 낙동강을 끼고 이어지는 8차선 도로가 '육사로'다. 태화동에는 이육사생가도 있다. 이처럼 이육사의 자취가 안동시내 곳곳에 배어있지만 무엇보다 안동사람의 가슴에는 이육사로 대표하는 저항의식이 깊게 각인돼있다.육사가 태어난 집이 있던 생가 터인 도산면 원촌리 881번지는 원촌마을 입구로 현재는 청포도시비공원이 조성돼있다. 생가자리에는 시 '초가'(草家)시비가 세워져있고 공원의 한가운데에는 청포도를 상징하는 포도알을 상징하는 화강석 조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청포도 시비에는 육사의 모습과 시 청포도가 양각돼 있다.그 앞에 서서 육사의 대표시의 하나인 '청포도'를 감상했다.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그가 바라던 손님은 '광복'이었을 테고 광복이 올 때를 기다리며 은쟁반에 모시 수건까지 마련하라고 조바심친다.이육사는 그저 서정적이며 목가적인 시를 쓰며 광복을 기다리는 음유시인이 아니다. 그는 조선의열단에 가입해서 직접 독립운동에 나섰고, 시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을 북돋웠다. 1927년 대구 장진홍 의거 때 처음으로 투옥된 것을 시작으로 1944년까지 무려 17번이나 일제에 의해 투옥을 거듭했지만 그의 투쟁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시인이자 독립투사 그리고 기자이자 문학평론가로서의 삶을 살아 온 그의 정신은 퇴계로부터 비롯된 것이자 안동사람의 가슴에 흐르는 선비정신의 발현이었다.생가 터에는 없는 이육사의 생가 '육우당'(六友堂)은 현재 두 곳에 복원돼있다. 원래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이 예상되자 1976년 기둥과 기와 등을 모두 헐어 지금의 안동시 태화동으로 이건했다.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구성된 홑처마 3량가(三樑架)의 일자형집이다. 안동 시내로 옮겨진 후 한쪽 일각문 자리에 대문이 서고 원래의 대문 자리는 이웃집 돌담이어서 담장도 대문도 없게 됐다. 소유권이 후손이 아닌 사람에게 넘어가면서 관리가 부실해지고 원형이 변형되자 고증을 거쳐 원촌마을에 있던 생가를 다시 복원해서 2004년 건립된 문학관 부지 내에 세웠다.이육사문학관'이육사문학관'은 육사의 삶의 자취와 향기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꾸며진 전시관과 추모객과 일반인들이 숙박을 할 수 있는 생활관으로 나뉘어있다.문학관 입구에 세워진 이육사의 좌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비 절정을 배경으로 원촌마을 너머를 바라보는 동그란 안경을 낀 이육사의 모습은 독립투사로서의 강철같은 의지보다는 '문학청년'같은 순수함이 더 돋보였다.문학관을 둘러보기 위해 입장권을 끊었다. 코로나시대라 드문드문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는 않고 있었다. 서울에서 안동역까지 KTX가 개통되면서 2시간으로 가까워졌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따뜻한 봄날이 되면 안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더욱 늘어난다면 문학관을 찾는 발걸음도 훨씬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전시실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이육사 시인의 흉상이다. 흉상 뒤로 보이는 17과 30, 27과 44라는 숫자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17은 17번에 이르는 투옥을, 27은 1927년 장진홍 의거에 연루돼 처음으로 투옥된 연도를, 30은 첫 시 '말'을 발표한 1930년을, 44는 만 40세가 되던 해인 1944년 베이징에서 순국한 것을 가리킨다.전시관 2층에서는 수감번호 264에서 비롯된 이육사의 삶의 자취를 더듬어보게 된다. 2층 전시실을 다 보고난 후에는 카페에서 육사관련 도서들을 둘러보면서 커피 한 잔하는 여유도 가질 수 있다.1층으로 내려가면 그의 독립운동 과정과 시와 평론 등 문학 활동을 일별할 수 있다. 한쪽에는 그가 순국했던 감옥을 재현하면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육사와 더불어 약산 김원봉과 안동출신 독립운동가인 김시현 선생의 모습을 나란히 배치해놓은 것도 눈에 들어왔다.문학관을 돌아나오면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도 '기레기'라는 비난을 듣지 않고 이육사처럼 자신의 온 몸을 던져 권력의 불의에 항거하는 투사가 될 수 있을까하는 아쉬움도 함께 느꼈다.문학관 앞에서 안동댐으로 흐르는 낙동강(지류)은 역사의 흐름처럼 여전히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2-06 06:00:00

[광장] 과학적 사고 그리고 의심

[광장] 과학적 사고 그리고 의심

현대인의 일상에서 달력은 중요하다. 물론 양력이다. 음력은 부정확한 옛날 유물이라고 생각했고 추석이나 설 이외에 나에게 중요한 의미는 없었다. 입춘, 처서, 대한 같은 절기도 나하고 관계없는 음력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영하의 날씨인데도 입춘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직 무더위가 있는데 가을이 시작되는 처서라는 말이 현실감이 없는 것 같았다.그런데 땅과 나무를 관찰하면서 절기를 비교해 보니 놀랄 정도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알아보니 절기는 음력이 아니라 양력이었다. 수천 년 전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고 생각한 태양의 길을 황도라고 하고 24등분해서 각자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물론 농사를 위해서 관찰한 결과물이다. 천문을 읽어서 천재지변을 예측하고 농사가 잘되도록 하는 것은 고대 왕들의 통치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당연히 자연의 변화에 대해 깊은 관찰을 하고 자료를 모아서 결과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수천 년 전 관찰한 것들이 오늘날 수학, 천문학 등 과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다.우리는 과학적인 기초에서 모든 자연현상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온을 측정해서 영하의 날씨면 그냥 겨울이라고 생각한다. 절기로 2월 3일은 봄의 입구라는 입춘이다. 하지만 밖은 여전히 영하 10℃를 오르내리는 날이 많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하니 땅이나 나무가 1월과는 다름이 있다. 땅은 얼었지만 중간중간 따뜻한 날씨에 얼음이 풀리면서 1월에 비해 모든 것이 부드러워졌다. 나무는 잎의 눈이 달라졌다. 겨울 동안에는 두꺼운 껍질에 꽁꽁 싸여 있었는데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지면서 제법 파란 빛을 띠고 있다. 현대인들은 피상적인 온도만 보고 아직 겨울이라고 생각하지만, 고대인들은 이렇게 작은 자연의 변화를 보고 겨울이 끝나 가고 봄이 온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내가 의사 생활을 시작하던 40년 전에는 CT나 초음파 같은 진단 장비들이 없었다. 자연히 진단을 내리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아파서 병원에 오면 간단한 복부 사진을 찍고, 청진기를 대고 장의 움직임은 어떤지, 배를 만지고 또 만지면서 배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추측했다. 판단이 틀리고 진단명이 달리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수술은 신중하게 결정했다. 요사이 진단 기계의 발달은 눈부시다. 몸 구석구석 구조물을 파악할뿐더러 구조의 변화 없이 화학적인 변화만 있는 단계에서도 조기에 병의 유무를 진단한다. 당연히 병의 진단 확률도 높아지고 의사들의 진단 기계 의존도 높아졌다. 이제는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도 의사가 배 한 번 만져 보지 않고 사진 찍고 피 검사부터 먼저 하고 병을 판단한다. 환자가 아무리 아파도 검사에서 문제가 없으면 괜찮다는 진단을 받고, 아무런 불편이 없어도 검사에 문제가 있으면 약을 먹고 수술을 하기도 한다.하지만 기계가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기계의 정확함에 의사의 경험이 합쳐져야 한다. 드물지만 기계 진단과 경험으로 판단한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과학적인 사고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하지만 과학적 사실도 한계가 있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기술을 알고 있어도, 실수의 여지는 항상 남아 있다." 유명 과학자의 말이다. 그래서 과학에 대한 맹신은 피해야 한다. 알려진 사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소문을 사실로 착각하지 말자. 주위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의심하면서 변수를 생각하자. 더구나 사람이 대상인 경우는 감정이란 변화무쌍한 변수가 있다.

2021-02-06 05:00:00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중요한 건 옷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이진숙의 영국이야기] 중요한 건 옷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영국인은 옷을 잘 못 입는다.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아무 옷이나 입고, 유행에 뒤떨어진 옷도 아랑곳없이 입는다. 수십 년은 된 듯한 구닥다리 코트, 뒤꿈치를 덧댄 자켓, 낡은 스웨터가 영국에서는 이상하거나 별스럽지 않다. 대부분 갈색, 회색, 베이지색 같은 기본적인 색깔에 디자인은 밋밋해서 점잖기는 해도 약간 촌스럽다. 처음 영국에 갔을 때,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던 느낌이 단지 오래된 건물들 때문만은 아니었다.영국 친구의 가족 연주회에 갔다. 예절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연주자가 구겨진 셔츠와 티셔츠를 입고, 초대받은 손님들이 평상복을 입었다. 청소년 오케스트라 연주회에도 갔는데, 검정색과 흰색으로 통일한 지휘자와 단원들의 복장이 수수하고, 청중의 옷차림이 캐주얼했다. 결혼기념일이라며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는 친구가 옷에 개의치 않았다. 갤러리에서 전시를 보고 고급 찻집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자며 런던까지 갔을 때도 여인들의 옷차림은 평소대로였다.쭉 이상하고 신기했는데 실은 이랬다. 영국에는 전통 복장이 없고, 이제는 더 이상 복장에 대한 규정도 없다. 아무튼 지키는 것 하나는 잘하는 사람들인데,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거다.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옷으로 차려입고, 허드렛일을 할 때는 허드레옷으로 갈아입지만, '집에서 입을 만큼' 편하고 '외출해도 될 만큼' 반듯한 복장으로 거의 어디든지 간다. 평상복과 외출복의 구별까지 없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다.영국인은 상대를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으므로 옷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스타일이나 센스도 없다. 멋진 명품은 있지만, 그건 외국인에게 더 인기가 있는 듯하다. 명품아울렛에는 외국인들로 가득하고, 근검절약하는 영국인은 비싼 옷을 입지 않는다. 나는 영국에서 고가의 버버리 코트를 입거나 명품가방을 든 여인을 본 적이 없다. 화장을 하고 잘 차려입은 여인들은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고, 할머니들은 꽃무늬 원피스나 주름스커트를 입고, 대부분의 여인들은 맨얼굴에 수수한 옷차림이다.남자들은 옷을 더 못 입는다. 옷에 관심도 없고 세련되게 입으려는 생각도 없다. 그저 적절하게 제대로 입는 것이 중요하다. 상류층의 나이든 남자는 티셔츠보다는 와이셔츠를 좋아하고, 계절에 상관없이 옷을 더 많이 겹쳐 입으며, 코트와 모자까지 갖춘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여름인데도 정장바지와 와이셔츠를 차려입고, 손님들의 아침을 나르는 흰머리의 민박집 주인이 와이셔츠 차림에 구두까지 신었다.그들은 남들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너무 튀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을까, 어떻게 하면 남에게 창피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본인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잘 보이기 위해 너무 노력한 것이 들킬까봐 걱정한다. 그냥 적당히 입어서 잘 받아들여지고 잘 어울리기를 원한다. 신분이 높을수록 상표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옷, 지나치지도 않고 야단스럽지도 않은 옷, 유행에 뒤처지고 더 오래된 듯한 옷을 입는다.내 모습을 돌아봤다. "You're old when comfort comes first.(편한 게 먼저라면 늙은 거다.)"에는 할 말이 없는데도 나는 여전히 외출복에 신경을 쓴다. 나이를 의식하고 체면까지 차리느라 복잡하고, 패셔너블할 필요는 없어도 스타일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면서 까다롭다. "I've shopped all my life, but still have nothing to wear.(평생 쇼핑을 했는데도 입을 옷이 없다.)"는 내 이야기 같다. 영국의 패션전문가가 나잇살이 붙은 여인들에게 옷 입는 법을 일깨워준다. "It's all about confidence.(중요한 건 옷이 아니라 자신감이다.)"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이러쿵저러쿵 했는데, 나는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었다.이진숙 문화칼럼니스트

2021-02-05 14:30:00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술도 적당히, 미신도 적당히 믿으면 약이 된다!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술도 적당히, 미신도 적당히 믿으면 약이 된다!

좀비(Zombie)는 서인도제도 원주민 미신의 초능력을 지닌 무당을 뜻하기도 하며, 일부 아프리카·카리브해 지역 종교와 공포 이야기들에 나오는 되살아난 시체를 말한다. 좀비는 1930년대에 헐리우드 돈 더 비치 컴버 바에서 전설적인 바텐더 돈 더 비치 콤버가 만든 인기 있는 럼 베이스의 열대음료이며,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에 소개되면서 대중화되었다.럼주와 과일즙이 어우러진 맛깔스러운 맛이 일품인데다 마실 때와는 다르게 꽤 강력한 칵테일로, 부드럽고 달콤한 과일 맛 뒤에 감춰진 높은 알코올 함유량 때문에 은근히 취한다. 그래서 돈 더 비치 컴버 바에서는 그들의 고객을 손님 한 명당 최대 2마리의 좀비로 제한했다. 그것은 칵테일의 효능을 걸어 다니는 죽은 사람처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좀비 칵테일은 할로윈 파티 칵테일에 빠지지 않는 티키 칵테일(Tiki cocktail)의 일종이며, 좀비는 때때로 불을 붙여 데워서 제공되기도 한다. 티키 칵테일은 뉴질랜드 마오리 신화에서 유래된 인간을 상징하는 큰 나무조각상을 본떠 만든 '티키 잔'에 트로피컬 칵테일을 넣은 음료를 말한다. 또한 티키는 폴리네시아(남태평양에 흩어진 여러 섬)의 신화에 등장하는 인류를 창조한 신을 뜻하는 단어이다.세상 사람들이 믿는 신 중에 어떤 신이 진짜이며, 신은 존재할까?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신을 믿으며, 신에 대해 수많은 의문을 가진다.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아니면 지금의 현실이 지옥 같고 구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한 도피처로 그냥 신을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일까?미국의 심리학자인 배럿은 믿음을 인간의 일상적 삶과 연결되어있는 정신적 과정(mental process)의 일종으로 보고, 신에 대한 믿음도 이러한 정신적 도구들의 작동에 의해 형성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많은 궁금증을 안고 매년 새해 연초가 되면 한 해의 운세를 미리 보고, 토정비결을 보고, 사주나 궁합을 보고, 타로점을 보고, 신수에 대해 알아본다.미국 심리학 전문지 '사이컬러지 투데이' 편집자인 매슈 허트슨은 저서 '왜 우리는 미신에 빠져 드는가'에서 "사람들은 특정한 행동을 하거나 피함으로써 세상이 자기 손안에 있는 것 같은 통제감을 느끼려 한다."고 분석했다. 또 주변 사람들이 미신적 의식을 행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느낀다.과음은 누구에게나 해롭다. 도수가 약한 술부터 마시고 독주를 마시면 숙취가 덜하다는 설은 미신이다. 미국 임상 영양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숙취를 결정하는 건 술의 종류나 음주의 순서가 아니라, 숙취 정도는 섭취한 알코올의 양과 개인별 알코올 분해 능력에 비례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술을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면 적당히 마시는 것이 건강에도 기분에도 좋고, 적당한 음주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마음속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 미신도 적당히 믿으면 약이 된다. 특정한 행동이나 사물이 어떤 초자연적인 힘과 연결되어있고, 그것을 지킴으로써 행운이 온다고 믿으면 우리는 미래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미신을 적당히 믿으면 긍정적인 태도가 생기고 고민을 덜 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스피노자의 말처럼 미신을 통해서 "장애 또는 공포의 원인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우리는 미신을 "희망하는 사물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인간은 불확실성 속에서 기쁨을 찾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인간에게 미신은 술처럼 매혹적이고 희망의 기대로 빠져든다.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루게 한다. 미신도 적당히 믿으면 삶의 활력소가 된다. 글 : 이희수 대한칵테일조주협회 회장(대구한의대 글로벌관광학부 교수)

2021-02-05 14:30: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브랜드는 숫자로 말할 수 없다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브랜드는 숫자로 말할 수 없다

바야흐로 브랜드의 시대다. 우리의 하루는 브랜드로 가득 차 있다. 아이폰의 알람 소리를 듣고 아침을 맞이한다. 그랜저를 타고 e편한 세상을 빠져나온다. 스타벅스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유튜브를 시청한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브랜드를 마시고 만지며 먹는다.광고인인 나는 직업의 특성상 다양한 브랜드를 만난다. 하루에도 몇 개의 브랜드와 마주한다. 다양한 브랜드를 만나지만 사실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ROI다.ROI는 Return On Investment의 약자로 투자자본수익률을 뜻한다. 즉, "우리 브랜드에 이정도 투자하면 저희가 얼마나 벌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다. 더욱 쉽게 말해, "기업 이미지에 이정도 지출하면 매출이 얼마 오를까요?"라는 뜻이다. 이것이 광고주들의 공통된 질문이다.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브랜딩은 브랜드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소비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그 브랜드가 편안한 녹색이 되기도 하고 열정적인 빨간색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속에 스타벅스는 편안한 녹색이고 나이키는 열정적인 빨간색일 것이다. 브랜드를 구성하는 CI 때문이다.ROI를 묻는 광고주를 위해 나는 종종 연애라는 단어를 가져온다. 나는 매력이 없는 사람이 연애를 잘하는 사례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내 친구들은 외모가 부족한 아이들이 다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연애의 박사였다. 외모가 가릴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인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들처럼 연애를 하고 싶다면 우선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상대를 배려하는 성품을 가져야하고 말에는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한다. 외모 뿐 아니라 인성 역시 중요한 것이다. '이정도 인성의 사람이라면 만나 봐도 좋겠다'라는 느낌을 줘야한다. 즉, 좋아하는 사람을 쟁취하려면 먼저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들이 브랜드와 무척 닮았다.비싼 옷, 명품으로 자신을 꾸미기 전에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브랜드도 그렇다. 비싼 광고, 멋진 광고로 자신을 꾸미기 전에 이미 좋은 브랜드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미 고객과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미 반사회적인 경영은 하지 않는, 이미 지구와 세상과 사회에 이로움을 줄 수 있는 브랜드 철학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올바르지 못한 브랜드라면, 매력이 없는 브랜드라면 소비자가 먼저 알아차린다.ROI는 기업을 운영하는 리더에게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기업이라는 것이 꼭 ROI로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다. 기업의 브랜드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드는 것이 바로 브랜드가 되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당장 ROI 속 숫자만 보면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기업의 CEO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브랜드가 되어 가는 과정이다. 브랜드도 사람과 같아서 스타트업의 경우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같다. 아이는 걷기 위해 약 1,000번을 넘어진다고 한다. 1,000번의 실패 끝에 비로소 걸을 수 있는 것이다.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기업의 리더가 되고 싶다면 숫자 너머의 것을 보자. 재무제표가 차마 담지 못한 브랜드의 가치를 보자.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숫자는 눈에 보이지만 브랜드가 사람들 마음속에 스며드는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 저자

2021-02-05 11:48:20

[특별기고]위대한 시민 정신으로 극복하는 코로나 위기

[특별기고]위대한 시민 정신으로 극복하는 코로나 위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2년째 전 인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전 세계 누적 확진자가 1억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200만 명을 넘겼습니다. 흑사병, 스페인 독감 등과 함께 역사상 가장 희생자를 많이 낸 10대 전염병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 외신은 전했습니다.거대한 코로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극심한 경기 침체와 많은 사회적 제약이 우리의 삶을 뒤틀고 있습니다. 심각한 매출 감소에 소상공인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시민들이 겪는 고통의 터널도 끝이 아직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최근 전국적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소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포항 지역은 상주 열방센터 및 대중목욕탕 등과 관련되어 보이는 n차 감염과 가족과 지인 간 전파가 이어지면서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포항은 앞서 작년 2월 첫 발생 이후 11월 말까지 누적 확진자가 116명이었으나, 지난 12월과 1월 두 달 동안에 325명이 확진판정을 받았습니다.이에 따라 신속하게 확진자 폭증 추세를 잡고 연쇄 감염의 고리를 끊음으로써 위축된 지역 경제를 회복하고, 시민들이 좀 더 안전한 설 연휴를 보낼 수 있도록 '1가구 1인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시행하게 됐습니다.이번 검사를 통해 포항시는 확진자 38명을 찾아냈고, 그 중 상당수는 무증상 확진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3차 대유행의 특징인 '무증상자의 조용한 전파'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데 성숙한 시민 정신으로 협조해 주신 시민들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특히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기초역학조사서 작성 지원, 거리 두기 안내, 교통 봉사 등 적극적인 자원봉사를 해주신 이통장협의회, 새마을협의회 등 자생단체 회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간식을 들고 선별진료소를 찾아온 어린 학생을 비롯해 손난로와 마스크 등을 전한 수많은 기부자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얼어붙은 손을 녹여 가며 긴 시간 묵묵히 검사에 총력을 기울여준 의료진과 공직자들의 헌신에도 경의를 표합니다.국내 많은 전문가들은 선제적이고 모범적인 검사 참여 등 포항시민들이 발휘한 공동체 의식이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를 만들고 심리적 경계지수를 높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다만 행정명령을 발동하고 초기 시행하는 과정에서 준비가 미흡했고, 시민들의 불편, 불만을 초래한 점에 대해서는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시민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기한 의견과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반면교사로 삼는 한편, 향후 유사한 상황에 대비해 여러 요소를 반영한 비상상황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도 다짐합니다.경제 회복과 일상 복귀에 대한 불확실성은 계속되고 있지만, 전국민 백신접종을 통해 집단면역력을 확보할 때까지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해 소중한 시민의 생명을 지키고 취약해진 시민 생활을 지원하는 방안을 계속 강구하겠습니다.다시 한 번 공동체의 안전과 지역 사회를 지키기 위해 검사에 적극 협조해주신 포항 시민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주 설날을 앞두고 있지만 가족 간 그리고 사적 모임을 최대한 자제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우리는 이 위기를 이겨내야 하고 버텨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시 빨리 백신 접종이 이뤄지면 우리 모두의 삶이 다시 괜찮아 질 것이라는 기대를 걸면서 위대한 포항시민 여러분께 "견뎌 보입시다, 좀 더 참아 보입시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2021-02-04 14:12:49

[춘추칼럼]김치, 이제는 세계인의 음식

[춘추칼럼]김치, 이제는 세계인의 음식

입춘을 앞두고 강풍과 한파가 동시에 휘몰아치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은 때아닌 김치 종주국 논란으로 뜨겁다. 한국에서는 우리가 김치 종주국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중국이라고 한다.문제의 중심이 된 곳은 구독자 1천400여만 명을 둔 중국인 유튜브였다. 유튜브를 찾아들어가 보니 출연자가 밭에 나가 뜯어온 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밀가루 풀을 쑤고 풀이 식기도 전에 고춧가루를 넣고 양념을 하여 김치를 담근다. 그리고 일주일 후 돼지고기를 썰어 넣어 김치찌개를 만들고 해시태그에 'chinese food'라고 달아 놓았다.이것을 본 젊은 한국인 유튜버가 김치는 한국이 종주국인데 왜 김치를 chinese food라고 하느냐고 한 것에서 논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두 젊은이가 인터넷상에서 벌인 논쟁에 두 나라의 언론이 반응을 하였고, 김치와 관계가 있는 관련 기관에서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나 보다.김치는 중국에서 파오차이(泡菜)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이 논쟁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김치는 고유명사다. 중국에서도 김치를 김치라고 부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중국어 발음에는 '김'이라는 발음이 없다. 가장 근접한 발음을 찾아봐도 '진'아니면 '신'이다. 그렇다면 진치, 신치가 되어야 하는데 그 발음으로 김치를 표현할 방법이 없다.그런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한국의 김치를 표현할 말을 찾아야 하는데 그 발음은 없고 중국 쓰촨성에 파오차이라는 요리가 가장 유사한 것으로 보이니 한국파오차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김치는 배추를 절여 젓갈과 고춧가루, 새우젓 등을 무에 버무려 배추 사이사이에 속을 채우고 김칫독에 꾹꾹 눌러 담은 후 발효가 되면 먹는다. 반면 쓰촨파오차이는 산초, 계피, 팔각, 월계수 잎 등 향신료를 물에 넣고 끓여서 식힌 다음 소금, 파, 마늘, 양배추, 무, 당근, 셀러리를 썰어 넣고 고량주를 넣는다. 가장 빠르게는 일주일에서 보름 후부터 재료만 건져 먹고, 그 국물에 채소를 넣고 발효되면 또 재료만 건져서 먹는 음식이다. 우리의 김치가 김치국물까지 모두 먹는 반면 파오차이는 국물을 먹지 않는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이렇게 다르다.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므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긴 겨울을 나기 위해서 김장을 담가 저장을 해야 했다. 고춧가루는 색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방부제 역할을 하고, 젓갈은 발효를 촉진시켜 맛난 맛을 낸다. 쓰촨파오차이를 만들어내는 쓰촨 지역은 중국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땅이 움푹 들어간 분지를 이루고 있다. 여름은 무척 습하고 더우며 겨울은 속으로 배어드는 음습한 추위가 스민다. 따라서 여름은 더위를 식힐 음식으로, 겨울은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음식으로 파오차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이와 같이 음식은 자연환경과 사회적 환경에 따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먹기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어지고 전파된다. 전파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음식문화와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융합되기도 하면서 또 다른 음식을 만들어내 정착되기도 한다. 간혹 어떤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긴장 상태가 되더라도 민간인들이 문화, 예술 방면의 교류를 통해서 두 나라 사이의 얼음을 녹이는 과정을 만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김치 논쟁이 정치적으로 번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된다.우리는 그동안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식 세계화'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그 결과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한식에 대해, 혹은 김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종주국의 개념은 '어디서 발원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발전시켜 나아가느냐'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 세계에 김치를 어떻게 만들어 잘 팔 것인가, 각 방면으로 연구를 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는 뉴욕의 한복판에 김치는 한국 것이라고 쓸 것이 아니라 통 크게 김치는 세계인의 것이라고 써야 할 때가 아닌가.

2021-02-04 11: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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