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김경덕의 스타트업 스토리] 동대구로 커피클럽

스타트업 생태계의 핵심은 구성원들 간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통한 성장이다. 이를 위해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수많은 모임과 행사가 개최되고 있는데 스타트업과 관련한 오프라인 모임은 '밋업'(meetup)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린다.다양한 밋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행사는 '테헤란로 커피클럽'이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결성된 민관협력 네트워크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주최로 2014년 6월부터 시작해 매월 2회 정도 열리는 테헤란로 커피클럽은 보통의 밋업과 차별되는 개성을 가진 행사다. 그것은 바로 하루의 준비로 바쁜 오전 7시 45분에 시작된다는 점이다.출근 전 1시간 정도 짬을 내어 특정 주제와 관련된 유망 스타트업들의 성장 스토리를 들을 수 있고,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커피 한 잔과 함께 서로의 정보와 경험을 나누는 테헤란로 커피클럽은 항상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113회까지 이어온 토대는 창업자, 투자자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와 다양한 주제를 놓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교류할 수 있는 운영 방식이다.테헤란로 커피클럽도 시작부터 성황을 이룬 밋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출근 전 1시간을 투자하는 참가자들에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보를 꾸준히 전달해주고 교류를 넓혀주기 위한 운영진의 노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테헤란로 커피클럽이 보여주는 꾸준함과 노력을 대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시도해 보았으면 한다. 기관 주도의 실적 채우기 행사 말고 혁신에 도전하는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밋업이 많아져야 한다. '동대구로 커피클럽' '동성로 런치클럽' 같은 밋업이 만들어지고 계속된다면 대구를 기반으로 하는 뛰어난 혁신가는 분명 탄생할 것이다.

2019-05-29 18:00:00

작가 권미강

[권미강의 생각의 숲] 다시 부모님들을 생각함

선배 작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불과 이틀 전 행사에서 밝은 웃음으로 맞이했던 선배였다. 그래서 어머니 부고 소식은 뜻밖이었다. 상가에서 만난 영정사진 속 선배 어머니 모습은 참 고우셨고 눈빛은 애잔함이 가득했다. 마치 홀로 남은 아들이 걱정된다는 듯. 선배는 "큰 행사를 두 개나 앞두고 있는 아들에게 자칫 해가 될까 봐 십여 일 이승의 끈을 억지로 부여잡고 계셨다"고, "가실 때까지 아들 생각해서 가셨다"고 슬픈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쳐다본 영정사진 속 어머니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거 같았다.오십 줄이 넘으니 이제 떠나갈 날이 가까워지는 어머니가 자주 생각난다. 내 어머니뿐 아니라 '이 땅의 현재'를 만든 어머니와 아버지로 불리는 부모님들. 형제 많은 집에서 배고픔을 겪었을 것이고, 빼앗긴 나라에서 서러움도 겪었을 것이고, 전쟁의 난리도 겪었을 것이고, 산업의 역군으로 잠시 풍족한 시간도 가졌을 것이고, 자식 바라지에 온몸이 부서져라 일했을 것이고, 잘 자라준 자식 때문에 행복한 시간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다 세월의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지워져 긴 시간의 흔적조차 잃어버린 채 '치매'라는 망각의 강으로 빠지기도 하는 부모님들.얼마 전,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아들의 사무치는 사모곡이 담긴 기사를 읽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어 모신 요양원에서 멍이 든 몸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자책하는 아들은 요양원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했다. 기억을 잃었다고 몸의 기억조차 잃는 것이 아닌데도 학대의 정황이 몸 곳곳에서 나타났다. 학대한 사람에게도 어머니가 있었겠지. 자신의 어머니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기사를 읽는 내내 화가 치밀었다. 치매는 그저 개인이 감당할 몫이 아닌 사회가 함께 안아야 할 지금의 풍요를 만들어낸 부모님들의 노고(勞苦)다. 그래서 더욱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부모님들의 뒤를 이어 가야 하는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2019-05-29 18:00:0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평균의 함정

어렸을 적 초등학교(필자가 다니던 시절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렸던) 시절에는 항상 선생님이 반 평균 점수를, 그리고 개별 학생들에게는 전 과목 평균 점수를 가지고 비교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런 행태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졌다. 평균 몇 점인지에 따라 학교가, 학급이, 학생이 평가되고 평균 점수를 올리기 위해 우리는 고군분투하면서 살아왔다. 항상 우리 삶은 평균값에 의해 평가받으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전 과목 평균 점수는 하나의 수치로서 학생의 과목별 취향과 적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획일적인 기준에 의한 학생의 단면만을 보여준다. 이처럼 평균값은 모든 정보를 다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서 중위값이나 표준편차(평균값으로부터 떨어진 정도)의 통계치를 함께 보아야 한다.학생들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보고 나면 학생들에게 필자는 평균 점수를 공개한다. 평균 점수가 공지되고 학기 말 성적이 공개되면 학생들은 자신의 점수를 가지고, 평균보다 자신의 성적이 높은데 학점이 잘 나오지 않았다며 학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 중위 점수를 같이 공개한다. 평균 점수만 공개하면 수강생 중에서 자신의 상대적 점수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중위 점수는 뭘까? 집단 구성원들의 점수나 비교 대상을 일렬로 늘어놓았을 때 가장 중간에 위치한 값이다. 평균값과 중위값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한 집단에 100명이 있는데, 개인별 소득이 고만고만하고 집단의 평균 소득이 100만원이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100명 중에서 1명이 빠지고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빌 게이츠가 그 집단에 포함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집단의 1인당 평균 소득은 엄청나게 높아지지만 중위 소득은 변함이 없다. 평균 소득이 높아졌지만 중위 소득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집단 구성원의 소득 수준의 질은 변함이 없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재산 일부를 집단에 환원한다면 몰라도. 이렇게 집단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평균값과 중위값은 모두 필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필자는 성적 공개 시 평균 점수와 중위 점수를 함께 공개한다.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와 국가도 평균값에 아주 민감하다. 행복지수, 삶의 만족도, 1인당 국민소득 등 평균 수치로 우리 삶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올해 초, 우리나라는 '3050클럽'에 가입하였다. 3050클럽은 인구 5천만 명이 넘으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국가를 의미한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에 가입하였다. 유럽의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들은 대부분 인구가 적고, 세계에서 이 클럽에 해당되는 국가가 7개 국가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여전히 소득 격차, 소득 양극화, 빈곤의 대물림 현상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필자는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가 평균값 함정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평균값만 보고 집단의 전반적인 수준을 평가할 때 생기는 문제가 바로 평균의 함정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높아졌지만 사회의 질이 개선되지 못해 상대적 빈곤율의 증가, 지니계수(소득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통계 수치)의 악화, 소득분위 중 하위소득계층의 소득 증가율의 악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평균값인 1인당 국민소득은 높아졌지만 소득 분배의 질적 측면이 함께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최근 우리 사회에서 사회 통계나 경제 수치가 발표될 때면 많은 논쟁이 발생한다.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것이 사회 통계치라는 점에서 논쟁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 정치적 갈등이 높아지면서 불리한 통계치는 누락하고 자신들의 가치와 생각에 부합하는 특정 통계치만을 가지고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때로는 통계치 해석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보여주는 통계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곧 대학 기말고사 기간이 시작되니, 다시 필자도 평균값과 중위값을 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평균값과 중위값의 차이가 적어야 성적에 대한 이의 제기가 줄어들 텐데, 항상 두 통계치는 벌어지곤 하니 학생들의 이의 제기가 많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2019-05-29 18:00:00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그리운 코맹맹이 소리

1960년대 초 서울로 수학여행 갔다. 보는 것마다 신기했다. 대구가 큰 도시인 줄 알았는데 서울 가보니 시골이었다. 레일을 다니는 전차도 신기했고, 고궁의 수려한 아름다움에 주눅 들고, 남녀가 손잡고 다니는 모습도 눈 설었다. 대구서는 부부라도 남정네가 혼자 앞장서 걸어가고 아낙은 몇 걸음 뒤를 따라가는 게 정석인데 거기서는 그랬다. 어둑해지면 학생들도 남녀가 찰싹 붙어 다녔다. 터키 '우스크달라'에 여행 온 이방인 느낌이었다.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도 전화를 걸 줄을 모른다. 다이얼식이었기 때문이다. 대구 전화는 전자식이라 손잡이를 한 참 돌려 교환수를 불러 통화할 번호를 대고 기다린다. 서울은 다이얼을 돌려 바로 상대방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완전히 서영춘 노래 '시골 영감 기차 타기'의 한 장면이다.이 무렵 시골에서는 구장 집 전화 한 대 밖에 없었다. 누구네 집에 통화하고 싶다고 전화가 오면 구장은 마이크로 "청송 댁 전화왔니더."하고 외치면 당사자가 뛰어와 전화를 받곤 했다. 서울서 하숙할 때 우리 집에 전화하려면 우체국 가서 신청하고 최소한 한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하숙 집 대문에는 '전화 있음'이라고 써 둔 집도 있었다. 요즘 같으면 '와이파이 됩니다'라는 의미와 같다. 그때는 전화가 개인 소유인 '백색 전화'와 우체국 소유인 '청색 전화'가 있었다. 나라가 가난하고 기술도 없어 이런 제도가 생긴 것이다. 백색 전화는 개인소유물이어서 마음대로 팔고 사고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전화 값이 싼 집값과 맞먹어 서민들은 청색전화를 들여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돈이 있어 백색 전화를 신청해도 2,3년은 기다려야 했다.전자식 전화는 교환수가 없으면 통화를 할 수가 없다. 송수화기를 든 다음 손잡이를 한참 돌리면 '교환'하는 매력적인 코맹맹이 소리가 들린다. 다음 원하는 곳의 전화번호를 말해주고 교환수가 연결시켜주면 둘 관계는 끝난다. 그러나 쉽게 볼일이 끝나지는 않는 경우가 많았다. 목적 외 통화가 잦았기 때문이다. 남녀유별이 심하던 시절이어서 여자 보기가 힘들었다. 적극적인 사람들은 교회에 가서 여자 구경을 하고 학생들은 영수학원가서 여학생자리를 힐끗힐끗 쳐다보다 온다. 소심한 사람들은 교환양들의 목소리 듣기를 했다. 전화기를 돌리면 은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니 총각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통을 붙잡았다. 대게는 지금 몇 시냐? 나이가 몇이냐? 고향이 어디냐? 묻는 정도였지만 어떤 강심장은 몇 번 수작을 벌리다가 데이트를 신청한다.일반 시민들도 소방차 소리가 들리면 교환수에게 어디에 불났느냐고 묻는다. 길도 묻고, 내기한 일에 대한 심판 받으러 전화하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검색을 교환수를 통해서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돌 던지는 사람이야 재미로 하지만 얻어맞는 개구리는 목숨이 달렸다.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발생하는 것이 '감정노동'이다. 판매, 유통, 음식, 관광, 간호 등 대인 서비스 노동에 주로 발생한다. 굴욕적인 말들 듣고도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포현하지 않는다. 그러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심한 좌절이나 분노, 적대감, 감정적 소진을 보이게 되면 심한 경우 정신질환이나 자살까지 갈 수가 있다.당시는 전쟁을 겪은 뒤라 억센 인간들이 살던 때여서 별 일없이 넘어 갔지만 요즘이라면 노이로제 걸리거나 심지어 죽는 교환수도 많았지 싶다. 코맹맹이 교환수들, 할머니가 된 지금도 그 목소리가 나련가 궁금하다.

2019-05-29 11:20:39

현동헌 테너

[매일춘추] 남다르다는 것

대학생이 뽑은 각 대학교 슬로건 베스트에 이런 것이 있다.한성대 '다르다, 그래서 멋지다', 고려대 '너의 젊음은 고대에 걸어라, 고대는 너에게 세계를 걸겠다', 해양대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 한동대 'why not Change the World(세상을 바꾸는 게 어때?)' 등이 있는데 이 중 필자의 마음을 끌었던 것은 한성대학교의 '다르다, 그래서 멋지다'였다.남다르다의 사전적의미는 형용사로서 '보통의 사람과 유난히 다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전의 일방적인 주입식교육에서는 흔히 남들과 다른 것을 틀린 것처럼 인식하던 때가 있었다. 왼손으로 수저질을 하면 틀린 것이라고 꾸중을 듣기도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겼던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의 발달과 개인 유튜브방송의 인기로 점점 남다른 관점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각광받고 있다.남다르다의 또 다른의미는 '(무엇이) 두드러지게 다른 사람과 같지 아니하다'라는 것이다. 같은 유사한 일을 함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두드러지게 다른 평가를 받은 것을 볼 수있다. 음식을 만드는 일에서도 예술분야의 미술과 무용, 노래와 악기를 다루는 어떤 기능적인 일들을 함에 있어서도 남다르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삶이나 생각들을 살펴보면 역시 남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는것이 아닌가 여겨질 때가 있다.오늘날 다양함의 추구 속에 남다름의 의미를 넘어서 한번 더 깊이 있는 '남다르다' 라는 평가를 받기위해서는 무엇보다 더 기본을 지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자기직업에 대한 남다른 냉정한 기준과 남들에겐 미련하게 보일지 모를 수고로움을 두려워하지않는 신념을 기본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된다.인생이라는 장거리 경주에서 흔히 하는 말이 겉절이 같은 인생이 아니라 김치같은 인생을 살라는 말을 듣곤 한다. 이는 겉절이로는 잠깐의 짜릿한 맛을 낼지 몰라도 결국 오래가기 위해서는 미래를 준비하는 긴 안목으로 수고와 정성이 들어간 김치처럼 살아야한다는 교훈일 것이다.김치가 맛을 제대로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고 한다. 배추가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또 한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또 다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돼서 또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다시 한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낸다고 한다. 결국 기본을 벗어난 편법이나 요령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교훈을 품고 스스로의 멋진 삶을 위해 남들과는 다른 가치관과 노력으로 주어진 하루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현동헌 테너

2019-05-29 11:11:05

하중환 대구 달성군의회 의원

[기고]대구시 신청사, 백년대계 고려해야

보통의 시민들은 내 집을 마련할 때 최소 10여 년을 내다본다. 교육 환경부터 교통, 상권, 향후 가치 등을 꼼꼼하게 살핀다. 골머리를 앓아 겨우 집을 결정해 이사했지만 사전에 예측하지 못했던 불편함이 뒤늦게 드러나 깊은 탄식을 내쉬기도 한다. 이처럼 시민들은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반면 대구시는 지방정부의 도읍인 시청사를 옮기는 큰 사업을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해 사뭇 유감이다. 시는 올해 초 신청사 건립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킨 뒤, 시민 250명을 통해 최종 입지를 선정하겠다고 선언했다.250명은 대구시 인구의 0.01% 수준이다. 이 인원에게 어떻게 대구의 백년대계를 맡길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진정성·객관성이 결여될 여지가 다분하다. 이 때문에 시 신청사 결정 구조가 '공론화'가 아닌 '깜깜이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공론화위가 유치를 희망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과열 경쟁 행위에 대해 페널티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최근엔 일부 여론을 의식해 언론 광고와 현수막 게시의 제재를 완화했다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여전히 시민들은 알 권리를 차단한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대구경북연구원이 신청사 건립 계획 수립 용역을 맡은 것도 적절치 않다는 평이 많다. 시는 공정한 입지 선정을 위해 평가 진행은 국토연구원, 지역의 현 실정을 잘 아는 대구경북연구원이 신청사 건립 기본 구상안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4개 지자체가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 예산을 받는 기관이 건립 부지 선정 과정이 포함된 용역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필자는 시 신청사는 현재 대구의 상황과 관련 지자체, 도심 상권의 기득권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지역 발전 방향만 담아 낼 수 있는 달성군 화원읍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감히 제언한다. 화원읍은 신청사 건립 목적과 취지를 200% 이상 만족시키는 절대적 비교 우위의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먼저 화원읍 예정지와 대구도시철도 1호선과는 불과 1분 거리인 데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광주대구고속도로, 국도 5호선, 대구산업선 등이 인접, 편리한 교통 기반을 갖추고 있다. 드넓은 부지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땅값은 주변부 개발과 신도심 조성의 부담을 말끔히 없애준다.한마디로 화원은 계획하는 대로 그려지고 설계하는 대로 세워지는 하얀 도화지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쇠락하는 대구의 도시 기운과 위기의 대구 경제를 소생시키는 반전의 계기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후보지다. 경쟁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미지의 신세계나 다름없는 화원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된다면 대구판 신뉴딜정책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여기에 도시 확장성의 일환으로 합천·창녕군, 고령·성주군 등 경남·경북 생활권까지도 대구로 유인하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화원읍은 시 신청사 이전을 통해 미래 지향적인 도시 개발 발전과 균형 잡힌 도시 개발이라는 대의명분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대구의 미래를 새롭게 건설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2019-05-29 10:24:17

천영식 KBS이사

[새론새평]화이트칼라는 왜 한국당을 여전히 외면하나

최근 사석에서 자유한국당이 내년 총선 때 어느 정도 선방할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기대어 약진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여전히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이와 관련, 화이트칼라층에선 여전히 한국당 지지율에 별 반응이 없다고 했더니, 참석자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 이후 한국당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올랐으니, 화이트칼라층도 조금은 올랐을 것이라는 상식과 배치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화이트칼라는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독특한 중도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집단이다. 넥타이 부대로 통칭되는 화이트칼라는 사무직 노동자를 포괄한다. 화이트칼라가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미래 담론을 주도할 엘리트 계층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든 명분적으로든, 여야가 미래 정당으로 뿌리내리려면 화이트칼라층 없이는 불가능하다.황교안 체제가 들어선 이후 석 달 동안 한국당이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화이트칼라 지지층의 무덤덤한 반응은 내부적으로 논란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화이트칼라층이 정치 변화에 가장 늦게 반응하는 집단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거꾸로 화이트칼라층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으면, 한국당이 내년 총선과 그 이후의 대선까지도 희망을 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최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화이트칼라층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58%이다. 이들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45%이며, 한국당 지지율은 정의당과 같은 12%에 머물고 있다. 화이트칼라층은 한국당에 범접할 수 없는 섬처럼 존재하고 있다. 석 달 전 거의 그대로다.화이트칼라층은 연령적으로는 30대와 40대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종 조사에서 30, 40대 지지율과 연동돼서 나타난다.보수층 내부에서는 화이트칼라에 대해 두 가지 극단적 시각이 상존하고 있다. 하나는 화이트칼라층이 이미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으로 굳어진 만큼, 호남처럼 버겁게 느끼는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화이트칼라층 비중을 과도하게 설정하는 바른미래당식 방식이다. 둘 다 극단이다.화이트칼라는 이념적으로 진보성을 갖고 있어 보수의 공략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머리가 진보이더라도 몸은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이중적 특성을 갖고 있다. 사무직 노동자인 만큼 가장(家長) 및 생활인으로서 각종 경제 이슈에 민감한 층이다. 가령 연말정산에서 신용카드 공제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화이트칼라층의 여론을 흔드는 이슈이다. '호주머니 지상주의자'들이다. 지금 이 정부는 화이트칼라층을 화나게 하는 정책적 실수를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 문제도 그중의 하나다.문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화이트칼라층에 대한 대응 부재 현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실점은 보수당이 뒤집어쓰고 있다는 점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저출산도 화이트칼라층에는 아주 민감한 이슈"라며 "자녀 인적공제 확대나 교육세 환급 등 화이트칼라층이 관심을 가질 이슈가 많은데도 한국당조차 별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화이트칼라층은 막말에 거부감을 갖고, 기득권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실용성을 중시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념적 틀로 접근하는 것은 닫힌 문을 굳게 잠글 뿐이며, 경제 이슈로 접근하는 게 최선이다.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각종 경제지표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그럼에도 화이트칼라층의 여론이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 무언가 잘못돼 있는 셈이다. 한국당이 경제 이슈에 민감해 하는 화이트칼라층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까지 무슨 투쟁을 했다는 것일까. 대중의 경제적 불만을 정확히 집어내고 대안을 제시해주는 '핀셋 투쟁'이 절실한 시점이다. 하다못해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의원 세비라도 갹출하든지, 민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공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화이트칼라는 문재인 정부를 독재라기보다 무능으로 느낀다.천영식 KBS 이사, 계명대 언론광고학부 초빙교수. 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

2019-05-29 10:23:52

홈쇼핑에서 CD를 파는 기획으로 음반을 이슈화시킨 유세윤. 사진: 유튜브 캡쳐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모난 돌이 꽃 맞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 삶이 그랬다. 남들과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다름'이 인정받지 못하고 '틀림'으로 받아들여 졌다. 하지만 지구가 오늘도 발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인류의 창의성 덕분이다.◇금기의 영역에서 상품을 팔아라개그맨 유세윤은 가장 창의적인 아티스트이다. 그래서 개그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아티스트' 정도로 정의하면 되겠다. UV라는 그룹을 결성해 '쿨하지 못해 미안해'라는 노래를 들고 왔을 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B급 감성의 가사가 음악을 계속 듣게 했다. 그가 흑인음악을 들고 가수 데뷔를 한다는 것도 새로웠는데 더 충격인 건 마케팅 방식이었다. 케이블 홈쇼핑에서 음반을 판매한 것이다. 케이블에선 안 파는 게 없다지만 음악 CD를 파는 건 상당히 창의적인 시도였다.우는 연기가 장기인 유상무를 전면에 배치하고 장동민에게 주문 접수를 맡긴 건 창의성의 절정이었다. 하지만 더 큰 반전은 실제로는 음반을 팔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람들에게 더욱 음반을 가지고 싶게 만들었다. 홈쇼핑은 판매량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음반을 파는 시늉만 했다니.워낙 아이디어가 좋아서 언젠가 광고회사를 차리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광고 에이전시의 대표가 되어 있다. 창업 초반 소상공인에 한해 100만원에 광고를 만들어주는 마케팅을 펼쳤다. 물론 광고는 B급이다. 하지만 유세윤이 만들어줬다는 사실만으로 소상공인은 가치 있는 광고를 얻어가는 셈이다. 아무도 유세윤을 '예쁜 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모난 돌'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에게 돌이 아닌 꽃을 던진다.자신이 모난 돌이라 걱정한 적이 있는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라서 염려한 적이 있는가? 혹은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 해 고통받은 적이 있나? 그럼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자. 누군가는 성격적인 결함 있다. 누군가는 난독증에 시달린다. 누군가는 말을 더듬어 고통받는다.자, 이제 이것을 긍정적인 시선과 연결해보자. 참고로 미국의 최고 보험 영업 사원은 말을 더듬는 사람이었다. 고객들은 그가 유창한 언변의 소유자였다면 문전박대했을 것이다.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런 핸디캡이 그를 영업왕으로 만들었다.난독증을 살펴보자. 브룩 이둑 박사는 '난독증이 주는 이점'이라는 책에서 백만장자 중 난독증을 가진 사람이 30%나 된다는 점을 밝혔다. 난독증과 같은 학습장애를 가진 사람의 뇌세포는 가까운 뇌세포와 연결이 적다. 하지만 떨어진 뇌세포와 연결이 많은 장점이 있다. 이것은 작은 것을 잘 챙기지 못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거나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데는 도움을 준다며 그들이 창의적인 인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당신은 예쁜 돌인가? 모난 돌인가? 예쁜 돌이라면 짧은 시간에 사람의 호감을 살 순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신과 다른 사람을 헷갈릴 것이다. 신인 걸그룹 멤버를 보라. 엄청나게 아름답지만 그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 중에 특정 인물을 구별해내지 못한다. 당신이 모난 돌이라면 첫인상에서 호감을 주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특징은 세상이 당신을 기억하게 만든다. 그리고 당신을 찾게 할 것이다.모난 돌들이여.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당신들이 인정받는 시대가 왔다.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5-29 09:53:12

동진 스님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 숲은 깨어 있다

입하가 지나자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숲은 점점 짙어간다. 앞산에서 들려오는 뻐꾹새 소리는 한없이 평화롭다. 나도 모르게 동요를 흥얼거린다.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마음을 수정처럼 맑게 한다. 밭엔 하얀 감자꽃이 소담스럽다. 봄에 심어 놓은 채소와 고추, 오이, 가지가 열린다.풀은 뿌리가 점점 깊어간다. 뒷마당에는 예쁜 감꽃이 떨어져 어린 시절 팔찌나 목걸이를 만들던 향수를 자극한다. 거리엔 붉은 장미와 노란 금계국이 휘날린다. 정원에는 자줏빛 붓꽃과 달개비, 색색의 수국이 피어난다. 물확에는 수련이 피어 오른다. 5월 들녘에는 하얀 찔레꽃과 노란 씀바귀꽃, 토기풀꽃과 소루쟁이 꽃내음이 가득하다.냇가에 흐르는 물은 맑고 시원하다. 대숲을 스쳐오는 바람은 청량하다. 한 달 사이에 식물의 어린 잎들이 둥글어지고 줄기는 키가 크다.이렇듯 자연은 소리 없이 자신을 아름답게 하고 질서를 이어간다. 주변을 맑고 향기롭게 한다. 나무와 풀들은 이웃이 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온전히 자신을 다 바친다. 숲에서는 생명들이 집을 지어 알을 낳고 새끼들을 키우는 사랑이 가득하다.자연은 덕을 가졌기에 후박하다. 모든 것을 내주고 받아들인다. 어디다 눈을 둬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햇살에 비친 보잘것없는 작은 나뭇가지의 잎이 투명하고 선이 곱다. 거들떠보지 않는 눈 아래에서는 민들레 홀씨들이 모여 지나가는 바람이나 사람들에 의해 정해진 목적지 없이 날아오르며 자신의 생명을 옮긴다.비 온 뒤 청산은 얼마나 맑고 푸른가? 구름은 높은 산을 넘나들고 햇빛은 찬란하다.글을 쓰다가 오죽 지팡이를 들고 밭에 나가 풀을 뽑고 연밭을 한 바퀴 산책하고 온다.망월 누각에 올라 우전차를 우려 법당 뒤 솔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안분지족한다.소리새의 노래 '5월의 편지'를 들으며 이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해 본다. 바로 정토다. 그윽한 즐거움이 깃드는 곳, 물 흐르고 꽃 피어나는 그곳이 정토다. 정토를 다른 말로 '한없이 맑고 투명한 땅'(無量淸淨土) 또는 '연꽃이 간직된 땅'(蓮華藏世界)이라고 한다. 자기가 사는 삶의 환경을 어디서든지 맑은 정토로 만드는 것은 자기 몫이다.사람들은 시기와 질투 속에 타협을 모르고 살아간다. 반면에 자연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균형을 유지한다. 자연은 인간이 간섭하지 않고 오염, 파괴시키지 않으면 숲을 이룬다. 자연이 건강할 때는 자연의 은혜를 모른다. 공기와 물이 오염되어 숨쉬기가 힘들고 마실 물이 귀해지고 나서야 건강한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자연은 스스로 자정 능력을 지녔기에 인간이 오염시키고 파괴시킨 것을 정화해 낸다.인간은 만족할 줄 모른다. 욕심을 다 채우려는 것은 밑 빠진 독을 물로 채우려는 것과 같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마음이 한가할 수 없다. 마음이 한가하지 않으면 지금에 충실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늘 쫓기고 정신없이 살도록 부추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충실할 때 행복한 현재가 되고 과거, 미래가 된다.인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완전하다. 내 삶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연의 조화로운 밸런스에서 배우고 주체적 삶을 살아야 한다. 잘못된 정치, 경제, 사회, 민생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위정자는 국민들을 잘 살게 해야 한다.

2019-05-29 09:45:43

김동훈 연극배우

[매일춘추] 오디션

오랜만에 오디션에 지원했다. 이번 오디션은 고전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기에 미리 원작을 읽고, 자유연기를 준비하며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하였다. 수십 번의 오디션을 겪어봤기에 오디션은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으므로 준비한 것을 긴장이나 실수 없이 침착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심사위원은 흔치 않은 칭찬과 함께 호평하였다.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오디션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최종배역에 뽑히지 못하였다.비관적인 말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일상'은 배우에게 숙명처럼 반복된다. 선택받기 위한 몸부림 끝에 오는 합격의 순간은 짜릿한 흥분으로 가득하지만 선택받지 못한 순간의 좌절감은 매번 고통스럽다. 언젠가 합격의 기쁨을 누렸던 때를 뒤로 하고 당장 눈앞의 불합격이 주는 씁쓸함은 '일상'이 되어가며 이는 수많은 배우들이 겪었을 고뇌와 방황과도 다르지 않다.오디션을 통해 매번 느끼는 것은 연기자가 많다는 것과 오디션에 정답이 없다는 것, 그리고 준비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는 점이다. 답이 정해진 시험과는 다르게 오디션에 명확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에 절대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출자는 당시에 최고의 선택을 하였겠지만 그것이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연출자가 작품에 어울리는 이미지의 배우를 찾기 위해 조금 부족한 연기력을 감안하여 선택할 수도 있으며 예상외의 인물이 현장에서 즉시 선택되기도 한다. 그에 따라 낙방한 배우는 그가 준비한 실력에 대한 객관적 호감과 연출자가 찾는 최고의 선택지 사이의 간극에 대해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불합격한 배우는 스스로 실패의 요인을 점검하기 쉽지 않고, 오디션의 경험자들은 그 순간의 운도 필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미국 브로드웨이 캐스팅 디렉터로 잘 알려진 마이클 셔틀르프(Michael Shurtleff)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상황이건 기회만 된다면 무조건 오디션을 봐라. 오디션 심사위원들이 찾는 이상적인 배우는 바뀔 수 있으며 성실하고 재능 있는 독특한 배우들이 배역을 따낼 가능성이 높다." 그의 말처럼 성실함과 함께 나만이 갖는 단 하나의 캐릭터를 갖춘다면 예측할 수 없는 오디션의 흐름을 뒤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선택받는 매순간에 두려워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중심을 지키며 도전할 때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오늘도 많은 배우들이 작품에 목말라 하며 좋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기 위해 오디션에 합격과 낙방의 순간을 번갈아 맞이한다. 오디션은 배우의 숙명이지만 연기자로 살기 위한 모든 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갔으면 한다. 그들의 도전에 언제나 건투를 빈다. 김동훈 연극배우

2019-05-28 11:13:29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만경관의 공짜 영화

'나는 전회 무료로 생각하였으나 당국에서 너무 미안타고 해서 일원씩을 받게 된 것은 죄송타고 생각한다. 만일 당극장이 적산이 아니면 노동자들에게 가장 적은 요금으로 제공하는 사업을 하였으면 하나 적산인고로 여의치 못함은 유감이다.'(남선경제 1946년 9월 19일)해방 후 식량난과 물가폭등의 민생고는 생각보다 극심했다. 곤궁한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역시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기껏해야 구호품을 받는 외에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이렇듯 삶이 팍팍하다 보니 노동자들의 사기를 올리는 일이 필요했다. 경상북도는 극장을 무료로 개방해 노동자들이 영화 같은 대중오락을 즐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도는 이를 '민주주의적 노동정책'이라고 자화자찬했다.당국은 참여 사업주의 협조를 구했고 극장은 만경관이 호응을 했다. 만경관은 한 달에 상영하는 영화 10편 가운데 2회는 공짜로 노동자에게 문을 열었다. 나머지 8회는 1원씩만 받기로 했다. 다만 영화를 볼 수 있는 관람시간은 제한을 두었다. 돈을 제대로 내고 보는 일반 관객의 불편을 생각해서다. 애초 만경관은 모든 영화를 노동자에게 무료로 상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국이 너무 미안하다고 해 1원씩을 받게 됐다고 극장 관리인은 인터뷰에서 밝혔다.경북도가 무료 영화 관람을 추진하자 대구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끼니조차 걱정하던 그 시절, 노동자 전용 식당을 열었다. 부 후생과가 운영하는 직영식당이었다. 식량은 도 농상과로부터 공급받고 메뉴는 국밥 한 종류로 정했다. 날마다 평균 3천 명가량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한 그릇에 4원으로 가격이 정해지자 노동자들은 식생활의 큰 복음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즈음 면 양말 한 켤레 40원, 여자 고무신이 180원 정도였다.당국이 노동자들을 위해 공짜 영화 관람이나 식당 운영에 나선 것은 노동 환경이 일제강점기 때보다 나아지지 않은 데 따른 노동자들의 불만을 반영한 결과였다. 예컨대 해방 이태 뒤 대구전매국의 사례에서도 이를 가늠할 수 있다. 담배 생산을 책임진 대구 전매국은 남자 300명, 여자 400명 등 총 700여 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는 큰 공장이었다. 노동자 700여 명 중 한 달간의 환자 수가 800명이나 되었다. 말하자면 한 달에 한 사람이 한 번 이상 아팠다.앓아누울 정도의 병이 생기면 더 큰 문제였다. 치료비는 노동자 스스로 부담하고 전매당국에서는 아무런 보조가 없었다. 며칠 쉬면서 치료를 받으려고 해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상호부조기관인 공영회에서 8할의 치료비를 보조하고 급료도 일부 지불했다. 이러다 보니 해방 후의 노동 환경이 더 후퇴한 것으로 여겨졌고 노동자들의 불만이 갈수록 쌓였다.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한둘이 아니었다.굶주림에 맞물린 경제난은 그렇잖아도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더욱 나락으로 빠뜨렸다. 공짜 영화 한번 본다고 위안 받을 일이 아니었다. 그 시절, 눈앞에 닥친 현실에서의 '기생충'은 영화 '기생충'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2019-05-28 10:00:00

고양이 구강질환(Calicivirus infection) (출처: https://vcahospitals.com/)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고양이 괴롭히는 잇몸 질환

고양이 건강은 입안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입속 건강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길고양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양이는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미 또는 주변 고양이들로부터 Calici virus와 herpers virus가 감염되어 있으며 이들은 고양이 구강질환과 눈병의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다.고양이에게 치아질환과 구내염이 발생하면 통증으로 인해 식욕이 줄고 예민해지므로 지방 간증이나 배뇨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양이의 대표적인 구강질환으로는 잇몸구내염, 치아흡수증, 구강인후두염 등이 있다. 이 질병들은 잇몸과 구강 점막에서 면역을 담당하는 면역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어 자신의 치아를 녹이거나 염증을 만성화시키는 특징이 있다. 심각한 구강염증은 호흡을 통해 폐의 세균 감염을 유발하기도 하며 염증 주변의 모세혈관으로 세균이 침투하여 혈전과 패혈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대부분 장기간 약물치료가 필요하며 심각한 경우 전체 치아를 발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고양이 구강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치아에 형성되는 플러그, 즉 치태 관리가 제일 중요하다.사료와 간식에 포함된 탄수화물은 치태를 만들고 그 표면에 미네랄이 침착되어 치석이 된다. 치석은 일단 형성되면 양치질로 제거할 수 없으며, 치아와 잇몸 사이에서 세균 증식이 용이하게 만들어 만성 구내염과 치주질환을 발생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고양이 양치관리는 생각보다 수월하다. 육식동물의 특성상 어금니 수가 적고 뾰족하기 때문에 치아의 바깥면을 부드럽게 닦아주면 충분하다.어릴 적부터 물을 이용하거나 좋아하는 통조림 기름 성분을 거즈에 묻혀 기분 좋게 이 닦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이 닦는 습관이 익숙하다면 치석 예방을 위한 효소 치약을 이용하시면 더욱 도움 된다.고양이 치아관리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가족들의 위생을 위해서다. 악취로 인한 불쾌감도 문제지만 그루밍을 통한 세균 감염, 면역이 약한 가족의 경우 공기를 통한 비말 감염의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위생 문제로 고양이를 기피할수록 가족과 고양이와의 관계는 소원해지며 고양이의 삶의 질이 악화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고양이 치아표면에 치태와 치석이 관찰되거나, 잇몸이 빨갛게 부어있거나, 통증을 호소한다면 수의사에게 구강검진을 받길 바란다. 구강 질환이 확인된 고양이는 일 년에 1회 이상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스케일링과 잇몸치료를 받아야 한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5-28 09:47:51

김준·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盲人摸象(맹인모상): 모르면서 아는 척

옛날 왕이 장님들을 불러 코끼리를 만지게 하고 의견을 말하라고 했다. 코끼리의 이빨을 만진 사람은 무 같다 하고, 귀를 만진 사람은 삼태기같이 생겼다고 한다. 머리를 만진 사람은 돌, 다리를 만진 사람은 절구, 등을 만진 사람은 평상, 꼬리를 만진 사람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한다. 코끼리 한 마리를 두고 하는 말이 제 각각이다. 자기가 만진 부분만 가지고 전체를 말한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니고 맞는 말도 아니지만, 코끼리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장아함경'(長阿含經)과 같은 불교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장님(盲人) 코끼리(象) 만지기(摸)라는 '맹인모상'(盲人摸象)의 성어가 탄생했다. 지금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 고집하거나, 하나밖에 모르면서 다 아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것을 빗대 이르는 말로 쓰인다.좀 더 생각해보면 깊은 뜻도 있다. 원래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다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코끼리를 알려면, 될수록 많은 부위를 만져봐야 한다. 털과 가죽에 싸여 있는 뼈, 내장 등도 들여다봐야 하고, 코끼리의 일거수일투족도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인간은 코끼리를 완벽하게 알기 어렵다. 그래서 지자(智者)일수록 남들이 물으면 약지피모(略知皮毛) 한다. 가죽과 털(皮毛)밖에 모른다는 자세로 조심스레 자기가 아는 것을 이야기한다.가끔 외부 강의나 중국에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을 만날 일이 있다. 상하이나 베이징을 두어 번 다녀온 그들은 "중국은 이렇다" 하며 힘주어 말하는데 기가 질리곤 한다. 내 전공이기도 하고 현지에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나도 모르는 중국 이야기를 그들은 잘도 해 댄다. 북한과 관련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들린다. 차근차근 알아 가면 코끼리도 보일 것이다,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2019-05-27 18:00:00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리디노미네이션과 골드바·암호화폐 폭등

최신 제품이 아닌 한 판매 증가율 300%는 이례적이다. 그런가 하면 특정 상품의 가격이 두 달 사이 두 배 이상 오른다면 역시 이상 현상이다. 전쟁 같은 특수 상황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그런 일이 최근 한국 경제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골드바와 암호화폐 이야기다.국민우리하나농협 4대 은행의 골드바 판매액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월평균 30억3천만원이었다. 그러나 4월 81억원, 5월 22일까지 107억원으로 폭등했다. 3월부터 5월까지 두 달 사이 증가율은 357%, 어마어마하다. 또 3월 26일 4천달러 미만이던 비트코인의 국제 시세는 5월 22일 9천달러 선을 넘나들었다. 두 달 상승률이 220% 이상이다.혹시나 해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국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언급한 날짜를 찾아보니 딱 들어맞는다. 3월 25일이었다.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화폐단위 변경이란 뜻인데 현재 1천원을 1원으로 바꾸는 구상이다. 사실 해외를 다니다 보면 1달러어치를 살 때 1천원을 내도 모자라니, 나라 자체가 조금 싸구려라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라 체통 문제라는 이야기다.항간에는 기업에 잠겨 있는 돈을 끄집어내 소비를 진작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언급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얼마나 경제 살리기에 고민이 많으면 그랬을까 안쓰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목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있는 법이다. 골드바 판매나 암호화폐 가격만 두 배, 세 배씩 부추긴다면 더 그렇다. 한국은행 총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그럴 일 없다고 진화했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몇 년째 여야 정치인들이 주고받은 막말에 국민은 힘들다. 외교관과 정치인들의 가벼운 입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요즘, 경제 책임자마저 가벼운 입으로 혼란을 더해서야 되겠는가? 그 와중에 비트코인의 창안자 일본인 사토가 600억달러 가까운 평가익을 챙겼을 것이라는 추산에 나는 더 속이 쓰리다.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2019-05-27 18:00:00

카르타고 공직자 쇼페팀에 관한 내용이 담긴 석판. 페니키아 문자로 쓰였다. B.C4세기. 튀니지 카르타고 박물관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21세기 지구촌 44개 나라 왕정제, 고대 지중해는?

◆남자 왕위 계승자 2명만 지켜본 일본왕 즉위식5월 들어 4건의 지구촌 왕실 소식이 들려왔다. 먼저 일본. 5월 1일 아버지의 양위로 나루히토(德仁·59)가 새 일본왕에 올랐다. 고대 샤머니즘의 전통을 간직한 곡옥, 칼, 거울의 3대 신기(神器)를 받으면 왕의 정통성을 얻었다. 즉위식에는 '왕위 계승 자격을 갖춘 남자만 참석한다'는 규정에 따라 왕비 마사코는 남편의 왕 즉위를 지켜보지 못했다. 작은아버지 마사히토(正仁·84)와 동생 후미히토(文仁·54)만 참석했다니, 21세기 가치관과 따로 노는 모습이 생뚱맞다.◆국민 20만 명이 지켜본 태국왕 즉위식5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 동안 태국에서 마하 와찌랄롱꼰(라마 10세·66)왕 즉위식이 치러졌다. 선왕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이 2016년 12월 숨진 뒤, 미뤄뒀던 지각 즉위식을 치른 거다. 태국 왕실은 "국민을 즐겁게 하는 것이 좋다"며 37℃ 폭염에 20만 명이 참석하는 거리 행진을 펼쳤다. 200년 전 다이아몬드를 넣어 만든 높이 26㎝, 7.3㎏짜리 금관(소고기 12근)을 머리에 쓰고, 10억바트(365억원)를 비용으로 날렸다. 목표대로 국민을 즐겁게 했다면 다행이다.◆21세기 지구촌 군주국 44개 나라영국 왕실은 5월 6일 찰스 왕세자의 둘째 아들 해리 왕자가 아들을 얻었다. 5월 17일 들려온 벨기에 왕실 소식은 뜻밖이다. 2013년 왕위에서 물러난 84세 알베르 2세가 50세 델피네 뵐이란 여인으로부터 친자확인소송에 휘말렸다는 거다. 더욱이 DNA 검사에 응하지 않아 매일 5천유로(666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는 소식에서 민주국가 벨기에의 왕정 실상이 읽힌다. 왕실 소식 4건을 접하며 21세기 지구촌의 왕국은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해진다. 193개 UN회원국 가운데 44개다. 인류역사는 왕정제로 출발해 공화정으로 발전한 것일까?◆기원전(BC) 6세기 아테네 모든 공직자 국민선출민주주의라면 고대 그리스 아테네를 떠올린다. 아테네는 BC 621년 드라콘이 처음 법을 만들어 법치시대를 연다. 왕은 없다. BC 594년 솔론은 모든 공직자를 직접 선출하는 동시에 평민도 공직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BC 508년 클레이스테네스는 18세 이상 남자시민은 투표권을 갖고, 공직에 출마할 수 있는 시대를 연다. BC 462년 에피알테스는 공직을 추첨제로 전환하고 국민이 민회(Eklesia)에서 투표로 정책을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다. BC 334년 알렉산더가 스파르타를 제외한 그리스 문명권 전체를 지배하면서 민주주의가 붕괴된다.◆BC 3세기 평민대표 호민관 실질 권력BC 753년 로물루스가 건국한 로마는 왕정이었다. 하지만 BC 509년 부르투스의 혁명으로 공화국을 연다. 켄투리아 민회(Comitia Ceturiata)에서 선출한 2명의 집정관이 공동 통치했다. 하지만 귀족 독주에 평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BC 474년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전쟁 파업으로 평민회(Concilium Plebis)에서 호민관을 뽑아 법률거부권을 쟁취한다. BC 287년에는 호민관 호르텐시우스가 제안한 법이 통과돼 평민회에서 통과시킨 법률은 국법과 동등하게 인정받는다. 이런 공화정은 BC 49년 카이사르의 쿠데타로 깨진다.◆BC 3세기 카르타고 최고 통치자 국민선출로마와 세 차례 전쟁 패배로 BC 146년 역사에서 사라진 카르타고는 왕정이었을까? 카르타고 박물관에 남은 BC 4세기 유물은 '쇼페트'라 부른 공직자의 행정을 다룬다. 최고위직 '수페타트'는 종신이지만, 선출직이었다. 한니발이 맡던 직책도 '수페타트'다. BC 3세기 그리스 과학자 에라토스테네스는 "훌륭한 법체계로 사회가 안정되고 독재자(왕)도 없다"고 카르타고를 칭송한다. BC 7~BC 1세기 지중해 문명을 꽃피웠던 세 나라 아테네, 로마, 카르타고는 공화국이었다. 서양 고대사의 참모습이다. 김문환 세명대 교수

2019-05-27 18:00:00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창] 명품 경북도청 신도시 탄생을 기대하며

일전 업무 협의차 세종시 정부청사를 방문했다. 일을 마친 후 관계관의 안내로 청사 옥상정원을 구경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옥상 정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표지석이 세종시 정부청사 건축이 이룩한 업적(?)을 뽐내고 있었다. 옥상에 산책로를 만든 것도 신선한 아이디어였고, 굽이쳐 흐르는 건물 배치도 과거의 전형적인 정부청사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로 보였다. 그러나 명품 건축물이라 하기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청사 설계자인 다이아나 발모리가 2013년 완공된 청사를 보고는 망연자실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원로 건축가 승효상에 의하면, 원래 설계는 아름다운 구릉지를 둘러싸고 옥상정원이 물 흐르듯이 연결되게 되어 있었는데, 구릉은 사라지고 '물 흐르듯 연결되어야 하는 건물은 부처마다 쇠 울타리로 절단하며 파편화'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행정안전부가 나중에 이전하면서 마스터플랜상의 고도 제한과 건물의 흐름을 무시하고 청사 한가운데 우뚝 솟아오른 신청사를 짓는다고 한다.명품도시를 짓겠다며 국제 공모까지 하여 선정한 마스터플랜이 수시로 훼손되는 것을 보고는 필자가 핀란드의 위바스퀼라(Jyvaskyla) 대학 방문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헬싱키 북쪽으로 약 270㎞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대학 캠퍼스는 핀란드의 위대한 건축가인 알바르 알토(Alvar Aalto)의 작품이다. 캠퍼스 마스터플랜과 주요 건물이 알토의 손에 의하여 탄생했다. 르 꼬르뷔지에 등과 더불어 근대 건축의 4대 거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토의 건축철학은 주변 환경 및 에너지와의 조화이다. 위바스퀼라 대학 캠프스 역시 완만한 구릉과 호수를 끼고 숲속에 다소곳이 내려앉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캠퍼스 확장 공사를 할 때 후임 건축가가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사항은 기존 캠퍼스 건물과의 조화였다 한다. 마띠 마니넨 총장이 필자에게 선물한 캠퍼스 소개 책자에는 알토의 설계 초안부터 최종 설계에 이르는 단계별 설계 도면이 다 실려 있었다. 캠퍼스와 각 건물의 역사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훌륭한 건축물은 주변 환경과 서로 호흡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낙수장(Fallingwater)과 함께 알바르 알토의 마이레아주택(Villa Mairea)을 꼽는다. 마이레아주택은 헬싱키 북서쪽으로 200㎞ 떨어진 해변가 도시 포리(Pori) 근교에 위치하고 있다. 적송과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숲속에 위치한 이 주택은 실내 분위기 자체도 숲의 일부를 이루는 것 같다. 또한 부족한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도록 실내 배치를 하고 여러 가지 장치를 고안해 놓았다. 주택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다.지형과 주변 환경을 감안하는 알토의 모습은 로바니에미(Rovaniemi)시 설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산타클로스 마을로 더 잘 알려진 로바니에미는 2차 대전 때 패퇴하는 독일군이 불태움으로써 도시의 90%가 전소된다. 신도시 설계를 위탁받은 알토는 도시 기본 설계 개념을 순록으로 잡는다. 순록 뿔과 같이 도로가 뻗어 나가도록 하고, 축구 스타디움을 순록의 눈으로 삼는다. 이 또한 로바니에미의 지형과 함께 그 지방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순록을 형상화한 것이다.마침 경북도청 신도시 건설 계획이 추진 중이다. 이철우 도지사는 "인근의 하회마을과 함께 훗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 만한 명품도시"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도지사는 "신도시 건설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는 이야기다. 어설픈 관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세종시의 실수와 알토를 교훈 삼아 진정한 명품 신도시가 탄생하길 빌어 마지않는다.

2019-05-27 11:52:44

라중남 김천대 평생교육원 명상강사

[기고]삶에 지친 현대인들이여 명상하라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첨단기술, 너무나도 빠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현대인들, 게다가 직장과 인간관계 속에서 받는 각종 스트레스는 이미 한계치를 넘은 지 오래다.젊은 엄마들은 맞벌이에다 육아 전쟁으로 심신이 지쳐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선행 학습과 사교육, 지나친 경쟁 심리에 대부분 찌들어 있다.한편 이 시대의 기둥인 청년들은 3포 시대(연애, 결혼, 출산), 5포 시대(3포+내 집 마련, 인간관계), 심지어 7포 시대(5포+꿈, 희망)라고 하는 심각한 희망 절벽 시대를 겪고 있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노인 빈곤과 청소년 자살률 등은 우리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든다.이처럼 모든 세대들이 실로 견디기 힘든 우울과 스트레스를 지금 겪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만큼 우리의 삶이 그리 녹록지 않다. 이미 이 세상에 존재했고 존재한 이상 잘 살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면 이런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무슨 도구로 이 힘들고 지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다행히 우리에게는 몇 가지 방책이 있긴 하다. 그중 하나는 올바른 종교 생활을 통해 지치고 힘든 삶을 위안받고 쉴 수 있다. 또 하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평소 동경하거나 가고 싶었던 곳을 여행하면서 신기한 체험을 하며 생소하고 새로운 세상, 사물, 사람과의 만남과 소통으로 그간의 삶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도 떨어보고 일상의 삶의 무게를 털어버리니 말이다.하지만 이렇게 했음에도 여전히 공허함을 경험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는 특징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진정한 나의 삶인가?' 하는 의문이 문득 들 때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이에 필자는 이런 공허함과 의문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으며 또한 삶에서 오는 각종 스트레스들을 날려 보내는 방법을 독자 여러분들께 알려드리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이다. 마음챙김 명상은 스트레스로 상처받은 우리의 마음과 몸을 치유해 준다. 궁극적으로는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최고의 힐링법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감성지수(EQ)를 높여 삶을 더욱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다.마음챙김 명상은 고요한 곳에 앉아 가볍게 눈을 감고 의식을 자신의 코끝에 두고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그저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호흡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산란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진다. 부디 가까운 명상센터를 찾아 자신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는 명상을 배워보시기를 바란다.늘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명상 연습을 꾸준히 하면 마음에도 길이 생긴다. 산란했던 마음과 침울한 마음, 들뜬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2019-05-27 11:15:38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매일춘추] 청신한 오월愛

청신하다. 수필가 피천득은 오월을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물 한 살의 청신한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봄꽃 자리를 대신해 피어난 오월의 꽃들은 그림이다. 꽃의 여왕이라는 장미가 절정을 이룬다. 수만가지 색, 오만가지 장미 중에서도 제일 예쁜 것은 담장 위 덩굴장미이다. 대문 위에도 담벼락에도 아치를 그리고 있는 빨간 장미들은 자꾸 팔을 뻗어 발걸음을 붙잡는다. 산들바람에 날리는 꽃향기는 상큼하며 알싸하다. 나의 대학 캠퍼스에서는 오월이면 최루탄 냄새가 그득했었는데.지난 주에는 푸릇푸릇한 청소년들을 대거 만날 수 있었다. 대구예총에서 주최하는 청소년무대예술페스티벌에 예심을 통과한 청소년 400여 명이 본선을 치렀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지원한 만큼 새벽에 채비해 온 참가자들이 많았다. 대기 시간에도 경연장 복도까지 점령해서 연습을 했다. 우리가 제공한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참가자들을 보니 내 배가 절로 불렀다. 100여 팀 중 14팀만이 결선무대에 올라 나머지 팀은 우르르 탈락의 고배를 맛보아야 한다.청소년 대상의 대회이다보니 어리면 10살에서부터 20대초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이들이 팀을 이뤄 꿈의 무대를 만들어낸다. 결선무대는 코오롱야외음악당에서 많은 관람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연을 해야하는 만큼 긴장하기 마련이다. 타악연주팀 중 한 명은 북채를 떨어트렸는데도 자연스레 다음 연주를 이어가는 의연함을 보이기도 했다. 서로 실수는 감싸주고 도와가며 격려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들의 성장하는 소리를 들었다. 타인의 무대에도 리액션 부자가 되어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는, 에너지가 넘치는 청신한 얼굴들. 오월의 주역다웠다. '경쟁'보다는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듯한 모습에 심장이 펄떡이는 젊음의 기운까지 덤으로 얻었다.소위 '요즘 애들'이 무섭다고들 한다. 애들은 애들대로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빗댄다.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 세대 간 추구하는 삶이 다르기에 세대 차이는 당연하다. 자라나는 아이들만큼 함께 살아가는 어른 세대도 과거의 관성을 벗고 권위만 내세워서는 안될 일이다. 예전의 신세대들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유연해지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자의 사무처 막내 직원과는 강산이 두 번은 족히 바뀌고도 남을 나이 차이지만 코드가 잘 맞다. 서로 존중해 주려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 애 어른 없이 덩굴장미처럼 조화로운 세상이면 좋겠다. 부모의 지도편달로부터 자유롭길 원하는 나이. 20대가 훌쩍 넘어가면 평생 동안 부러워할 청소년기는 그만큼 중요한 시기이다. 뭘 해도 되는 나이이고 오월은 푸르니 너희들은 또 자랄 것이다.세수를 막 끝낸 내 얼굴은 건조함으로 괴롭지만 마음만은 청신하게 푸릇한 오월 속을 천천히 건넌다.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2019-05-27 11:10:26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기업이 할 일, 정부가 할 일

이른바 공유경제와 관련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택시와 카풀 업체의 대결에 이어 또 다른 공유서비스인 '타다'를 둘러싼 논란이다. 타다의 이재웅 대표가 택시기사들의 분신에 관해 언급한 게 발단이다. "죽음을 이익에 이용하지 말라"는 말이었다.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 대표를 "무례하고 이기적"이라는 말로 나무라고 나섰다. 얼마 전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혁신의지 부족'이라고 비판한 이 대표의 태도까지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이 대표 또한 질세라 "출마하시려나"라며 맞섰다. 두 사람이 한 번 씩 더 설전을 벌인 후 말싸움은 일단 소강상태에 있다.기업과 정부, 정치권의 대화가 공유경제의 사회적 해결책 모색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게 아닌가 싶다. 이 대표의 발언이 비판받을 점은 있다. 어떤 경우든 죽음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은 옳다. 문제는 시점이다. 기사들의 분신으로 택시업계 종사자들이 격앙되어 있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는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출마' 운운도 거슬린다. 하지만 태도 논란을 넘어 논쟁 과정에서 드러난 인식의 혼란은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마디로 정부와 기업의 역할에 대한 혼선이다.최 위원장은 혁신의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분들의 연착륙을 돕고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혁신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당한 지적이다. 문제는 그러한 과업이야말로 기업이 아닌 정부가 할 일이라는 사실이다.근본적인 혁신이든 아니든 기업은 생존과 성장이 우선이다.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늘을 살피기는 쉽지 않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인하자는 게 아니다. 새로운 기업들에 사회적 책임부터 요구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메고 경주에 나서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은 가볍게 질주하도록 뒷받침하고, 소외되고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임무는 정부의 몫이다. 세금은 그런데 쓰라고 걷는 것이다.현 정부의 말대로 하자면 혁신성장과 포용성장이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혁신의 승자들이 패자와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게 정부의 소임이다. 기업의 선의를 촉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혁신의 과실을 나누는 것은 선의에 맡겨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소외되고 그늘에 있는 사람들이 '약자'라는 시각으로만 접근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기술 발전은 특정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문제되고 있는 카풀, 타다와 같은 서비스는 엄청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요금이 택시보다 비싼데도 일정 부분 소비자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택시에 대한 불만이 있기 때문이다. 택시업계도 신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택시업계 스스로 할 수 없다면 제도를 바꾸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 역시 정부가 할 일이다.새로운 서비스를 가로막거나 돈을 쓰는 복지정책으로 소외계층의 불만을 무마하는 것만 정부의 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플랫폼 택시 등 혁신적 서비스는 각종 규제에 묶여 어렵다는 말도 있다. 전통산업에도 혁신이 일어나도록 얽힌 규제를 풀어야 한다. 역시 정부가 앞장서야 할 일이다. 허울 좋은 사회적 합의라는 틀에 맡겨 놓고 눈치만 보는 정부라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양쪽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대의민주주의하에서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이다.주제가 무엇이든 우리의 논쟁이 흘러가는 방향은 대체로 비슷하다.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몇 살이냐, 건방지다 등 본질 대신 태도에 대한 다툼으로 이어진다. 이번 논란 역시 예외가 아닌 듯하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 대화를 그런 식으로 허비해서는 안 된다. 한두 차례 언론의 화젯거리로 오르내리고 끝나서도 안 될 일이다. 기업이 할 일과 정부가 할 일을 명확히 하고 서로 공감대를 넓히는 생산적인 논쟁이 있어야 한다.

2019-05-26 15:29:41

김종근 김천대학교 스포츠재활학과 초빙 조교수

[기고] 치매 국가책임제 말뿐인가?

2018년 현재 대한민국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706만6천201명이다. 그중 치매인구만 70만5천473명에 이른다. 최근 수년 새 증가 추이로 볼 때 2030년 치매인구는 전체의 24.5%, 2050년에는 38.1%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대구경북을 살펴보면 대구 치매인구는 3만1천228명, 경북 치매인구는 5만4천458명에 달해 둘을 합치면 전국 치매인구의 23.3%에 해당된다. 이처럼 치매 관리가 시급한 데도 우리 지역에선 치매를 초기에 진단하는 '조기 발견율'이 수도권에 비해 훨씬 낮다. 수도권의 조기 발견율이 70%대인 반면 대구와 경북은 각각 63.5%, 55.1% 등으로 현저히 낮다.치매는 개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환자를 부양하는 가족과 주변인의 삶도 피폐하게 만든다. 현재 치매환자 부양가족은 27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70% 이상이 우울증을 앓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다만 치매는 일찍 발견할 때 그 진행을 둔화하거나 막을 여지가 있다. 2018년 제1회 '+9.5 치매예방운동포럼'은 저명한 신경학 저널의 추적 연구를 인용해 "치매를 경도인지장애단계에서 조기 발견한 환자 40% 이상이 운동을 통해 치매를 예방했거나, 평균 9.5년 지연됐다"는 등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같은 이유로 정부도 치매 국가책임제를 도입해 2017년 12월부터 전국 254개 치매상담센터, 52개의 지역치매지원센터, 17개 광역치매센터를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현장 일선에서는 치매 검사법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현재 국내 대다수 치매안심센터에서 쓰는 '간이정신상태검사'(MMSE: Mini-Mental State Examiantion)는 단시간에 치매 여부를 판단하고 정상, 고위험군(경도인지장애), 치매군으로 구분할 수 있어 선호된다. 반면 해당 검사는 검사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돼 결과를 정량화하고 명확하게 치매를 판단하기에 무리라는 지적도 높다.최근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진은 걸을 때 보행 속도, 보폭과 치매와의 상관 관계를 확인했다. 국내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이정은 교수,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신동욱 교수팀도 2007~2012년 66세 생애전환기 점진을 받은 환자 5만3천 명의 일어나 걸어가기 시험(Timed up and go test) 결과와 이후 6년간 치매 발생 여부의 상관 관계를 분석한 결과 일어나 걷기까지 10초 이상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 향후 6년간 치매 발생 가능성이 1.34배에 달했다고 밝혔다.이 같은 결과에 남양주와 분당, 일산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보행을 통한 치매 조기 선별 방안이 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전국에서 고령화 인구 비율이 가장 높다는 대구경북에서는 치매센터 중 단 한 군데도 선진 조기 치매 선별 방법을 쓰지 않고 있다.치매를 국가가 책임진다고 말만 해서 그칠 일이 아니다. 객관성 있는 데이터를 대상자에게 제공해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발돋움해야 할 때다. 대구경북이 타 지방자치단체보다 먼저 치매 선별 환경을 선점해 더 나은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2019-05-26 15:28:39

김계희 서양 화가

[광장] 사랑과 의도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특별히 안정감 있고 여유가 느껴지는 아이가 있다. 그런 아이들은 밝고 낙천적이고 뇌가 건강한 느낌이 드는데, 학습에 있어서도 그런 아이들은 지구력 있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어머니를 만나보면 그 안정감이 어머니의 풍부하고 깊은 사랑에서 연유된 것임을 알게 된다.오랫동안의 교육 현장 경험으로 2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특이한 점은, 많은 아이들에게서 사랑에 대한 무언가의 결핍감이 느껴진다. 부모의 사랑이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것이 아닐 수 없고, 아이에 대한 부모님의 관심도와 보살핌은 예전보다 더 높아지고 섬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사랑 속에 점점 더 많은 요구와 의도가 담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이 오롯이 아이 자체가 아닌, 아이가 서 있는 그 뒤편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선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그리고 그 시선이 끝나는 지점에는 아이가 아닌 부모 자신이 있음을 본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에 부모 자신의 욕망, 성취, 그런 소망이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조바심과 불안이 혼합된 그야말로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런 까닭에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고, 아이들이 결핍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언젠가 영화 보기에 대한 장점을 들으신 어머니께서 특별히 선별한 영화를 아이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서정적인 내용의 좋은 영화였지만 그런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는 지겨움을 토로했고 결국 영화 보기는 중단되었다.어머니는 그런 아이를 보면서 화가 났다고 한다. 화가 난 이유는 영화를 선별하기 위해 공들여 노력한 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이었을 것이고, 아이가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이다.영화 한 편을 보여주는 것에도 이처럼 복잡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면, 부모님의 아이를 향한 많은 행위 속에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기대와 욕구 그리고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님의 사랑 속에 은밀히 감추어진 의도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 칭찬이, 이 격려가 어떤 요구를 품은 것임을 아는 아이들은 그 수많은 의도 속에서 피로해져 가고 있다.피로가 축적되면 예민해지고, 예민함은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결국엔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무기력해진 아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NO를 선언하게 되는데, 집중력이 좋던 아이가 집중력이 흐려진다거나, 낙천적이던 아이가 지나치게 예민한 성향으로 변한다거나, 그래서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게 된다거나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우리의 사랑이 정확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지 못해서 불안하고 피로한 것은 아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가는 아이에게 날아 보라고 등을 떠미는 사랑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온전하고 풍부한 사랑 속에 머물게 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을 딛고 아이는 결국 날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2019-05-24 11:46:38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학생 '자봉' 이대로 좋은가?

자원봉사 줄임말로 '자봉'이 널리 회자된다. 자원봉사는 '개인 또는 단체가 지역사회·국가 및 인류사회를 위하여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가 없이' '자발적', 이거 되게 힘든 일이다. 어쩌면 '자봉'은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대가 없다'지만 실상은 있고, '자발적'이라지만 본질적으로는 강제적인 봉사 행위들을 뜻하는 신조어일지도 모른다.사실 '대가 없는' 것도 문제다.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의 최고 덕목은 일한 만큼 받는 것이다. 모든 부당한 노동 문제는 노동한 만큼 대가를 주지 않았거나 얻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져야 마땅한 사회에서 대가를 받지 않는 노동의 범람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다. 일자리가 느는 게 아니라 줄어든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작금에 '자봉'으로 충당되는 일들에,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주면, 더는 자원봉사일 수는 없겠지만, 일자리는 늘어나고 소비경제는 개선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학생의 자봉은 확실하고 분명한 대가를 받는다. 봉사시간 혹은 봉사점수. 게다가 학생들의 '자봉'은 자발성을 매우 의심 받는다. 대학 입학과 각종 공무원·취직시험에 자봉을 필수조건으로 만든 자들의 취지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자봉은 그저 더욱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공무원이나 대기업 회사원이 되기 위해 절대적으로 갖춰야 할 스펙일 뿐이다.마침내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만 13~18세의 청소년은 학생이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회'를 이룩했다.(물론 여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공부 대신 노동을 하는 청소년도 상당하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학생을 누가 '자봉'이란 이름으로 무료 노동의 세계로 내몰았는가? 그들이 '자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숭고한 가치, 정말 그런 것을 학생이 얻는다고 보는가? 설령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왜 그걸 학교에서 배워야지, 무료 노동판에서 얻으라는 건가? 공부는 학원 가서 하듯이 인격도야는 사회에 가서 하라는 건가? 도대체 학교는 왜 있는 건가?자봉에도 소위 등급이 있는 모양이다. 알짜(지속성이 있고 시험관에게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봉은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지만 결국 스펙 넘치는 부모를 가진 학생에게 주어진다. 시험관이 별로 쳐주지 않지만 시간은 채울 수 있는, 배경 없는 평범한 중고등학생이-학생 본인이 아니라 부모님이-그나마 쉬이 구할 수 있는 '시간' 자봉은 대개 행사보조다. 국가보조금을 받는 무수한 단체들이 각종 행사를 꾸준히 벌이기 때문이다. 대개 선착순이기 때문에 행사 정보를 빨리 얻고 빨리 신청하면 된다. 국민 혈세 받아서 그 행사 치르는 단체가 미래를 이끌어나갈 국민(청소년)을 무보수로 부려먹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다른 자봉은 몰라도 중·고등학생의 자봉만은 제고가 필요하다. 학생이 자봉을 통해 함양할 게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부정적인 면이 크다. 학생(부모)의 등급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해 치열한 경쟁과 학생 간의 위화감을 조장할 뿐이다. 자봉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청소년은 왜 꼭 편의점, 피시방, 주유소, 식당 같은 데서만 일해야 한단 말인가? 일을 해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생활이 가능한 청소년에게 현재 '자봉'으로 충당되는 일자리를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은 공부(자아계발과 품성과 인격을 넓히기 위한 활동 포함)하고 독서해야 하는 이들이다. 공부 안 하는 시간은 놀아야 한다. 학생이 노는 게 그토록 불안하고 두려운가? 우리가 학생이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자원봉사가 아닌 자봉이 진정 사라지려면, 대입시 필수조건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자봉 때문에 얻는 게 있는 자들은 자봉 시스템을 유지하려고 애쓸 테니 쉽지 않을 테다. 조금씩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어른들끼리 대가를 주고받으며 일하자. 학생 인력이 꼭 필요하다면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주자.

2019-05-23 15:44:28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이불 속 낭군님 걷어차지 마라 유득공

콩밭에 들어온 검은 송아지 荳田烏犢子(두전오독자)아무리 때려도 나가지 않네 打打不知去(타타부지거)이불 속 낭군님 걷어차지 마라 休踢衾底郞(휴척금저랑)이 밤중에 대체 갈 데가 어디 있노 今夜去何處(금야거하처) "콩밭에 들어가서 콩잎 뜯어먹는 검은 송아지를 아무리 내쫓은들 그 콩잎 두고 제 어딜 가며/ 이불 아래 들어온 님을 발로 툭 박차 미적미적하며 나가라 한들 이 아닌 밤중에 날 버리고 제 어디로 가리?/아마도 싸우고 못 말릴 것은 님이신가 하노라" 노가재(老歌齋) 김수장(金壽長:1690-?)의 '해동가요(海東歌謠)'에 수록되어 있는 작자미상의 사설시조 한 편을 오늘날 말로 풀이해 봤다. 위에서 소개한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작품은 바로 이 사설시조를 한시의 형태로 번역한 것.배가 너무 고파 남의 집 콩밭으로 막무가내 뛰어든 송아지는 밭주인이 아무리 나가라고 혹독하게 매질을 해도 매를 맞아가며 그 콩잎을 먹는다. 밭주인이 소를 때릴 때는 모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듯이, 한 이불 속의 낭군님을 마누라가 걷어찰 때도 무슨 까닭이 있을 게다. 무언가 마누라에게 걷어차일 짓을 한 것이 분명하고, 걷어차일 짓을 했으니까 걷어차여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낭군님을 너무 혹독하게 걷어차진 마라. 이 깊은 밤중에 도대체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이미 기가 죽을 대로 죽은 낭군님을 이토록 모질게 걷어차느냐.우리나라의 마누라들이여! 퇴직하여 집에서 빈둥거리며 삼시 새끼를 다 얻어먹는다고 낭군님들을 너무 구박하지 마라. 삼식(三食)이는 물론이고 이식(二食)이도 정말 달갑지가 않고, 일식(一食)이 까지는 봐주지만 이왕이면 무식(無食)이가 제일 좋다면서, 낭군님을 자꾸 대문 밖으로 내몰지 마라. 한평생 처자식을 먹여 살린다고 말로 못할 수모를 겪으면서 죽자 살자 일을 했을 뿐인데, 갈 데도 없는 사람을 왜 이렇게 모질게 거리로 내쫓으려 하느냐. 어쩌다 보니, 걷어차일 실수를 좀 했다 치자. 하지만 내 몸의 살을 흙으로 삼고, 내 뼈로 기둥 세워 서까래를 걸치고, 내 머리카락 뽑아 지붕을 덮으며, 피와 땀과 눈물로 반죽하여 겨우 마련한 내 집을 두고, 어디로 가라고 이토록 야박하게 걷어차느냐?밥하고 설거지는 내가 다 할게. 집안 청소도 내가 다 할 게. 빨래도 내가 해서 착착 다 개 놓을게. 그러니 삼식이니 뭐니 하며 걷어찰 생각일랑 이제 제발 그만 하시라, 동방예의지국의 마음씨 고왔던 마누라들이여!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5-23 14:43:10

차경환 대구가정법원 부장판사

[기고] 법정에 선 부부들

가정의 달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기념할 날이 많다. 그중에서도 21일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은 '부부의 날'이다. 지난 15일 전 김포시의회 의장이 가정폭력 끝에 아내를 무참히 때려 숨지게 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가정폭력범죄의 재발을 막고 건강한 가정으로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가정보호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법관으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누구보다 컸다. 서울 강서구 주차장 전처 살인사건에서 보듯이 가정폭력은 이혼을 했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나라 전체 살인사건의 약 40% 정도가 부부를 포함한 친족 간에 일어난다고 한다.일반적으로 가정법원에서는 이혼재판을 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외에도 가정폭력, 아동학대, 청소년비행 사건을 다루는 가정보호, 아동보호, 소년보호 재판도 하고 있다. 가정법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가정보호재판에 행위자와 피해자로 출석한 부부가 이혼재판에 원고와 피고로 출석하고, 소년보호재판에 비행소년의 보호자로서 출석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부부가 가정폭력 등으로 이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아이들까지 비행을 저질러 재판을 받게 되는 악순환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불화가 심한 부부 사이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각 연령에 맞는 성장과업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어 낮은 자존감과 학교 부적응 등을 겪으면서 결국 비행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대구가정법원의 가정보호사건 접수 건수는 지난해 2천700여 건으로 10년 전에 비해 8배나 대폭 증가하였다. 법률은 가정에 침투하지 못한다는 전근대적인 인식 탓으로 범죄로 다루어지지 않던 다양한 형태의 가정폭력이 사회적 관심과 인식의 변화를 거쳐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 가정법원도 2005년부터 가사소년전문법관 제도를 시행하고, 전문조사관을 대폭적으로 증원하여 후견적, 복지적인 선진화된 전문법원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그러나 지역 내에 가정폭력이나 알코올 중독문제 등을 다루는 상담소의 예산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여 상담위탁 처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말 여성가족부에서 가정폭력 예방사업의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여 일부 상담위탁 기관이 위탁업무를 중단한 상태이다.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면 대구광역시 등 지방자치단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정법원과 연계하여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부부심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부부는 환상기, 환멸기, 인정기, 축복기라는 발달 과정을 밟는다고 한다. 또한 자녀가 청소년기에 이르는 시점에 부부의 만족도가 제일 떨어지고, 자녀가 진학, 취업, 혼인 등으로 가정을 떠나는 시점에 다시 만족도가 상승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혼 위기를 겪고 있는 대부분 부부들은 환멸기라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가정 내에서의 생활이 즐겁고 행복해야 아이도 많이 낳고, 결혼도 많이 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사회적 문제해결의 키워드는 가정이고, 그 가정의 핵심은 '부부'다. 부부가 행복해야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다. 부부의 날을 맞이하여 부부 간에도 손님처럼 서로 공경하라는 상경여빈(相敬如賓)의 마음가짐을 되새겨 보자.

2019-05-23 11:17:35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매일춘추]  디지털 시대의 습관  

컴퓨터, 네비게이터,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편하게 된지 오래다. 이들 기기를 사용하면 정보를 자신의 의지대로 손쉽게 얻을 수 있고 타인과의 소통이 단시간에 많이 할 수 있다는 점 등 장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자신의 폰 번호 외에는 숫자 암기가 안 되고, 휴대전화 배터리가 얼마 남아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모르는 길을 운전할 때 불안하기만 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뇌를 사용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겪는 '디지털 치매 증후군'이라는 새로운 문명병이 생겨나게 되었다.디지털 치매 증후군은 무의식적으로 디지털기기에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과 계산능력이 저하되고 각종 건망증 증세를 보이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 증상은 단순히 기억이 나지 않아 생활에 불편을 겪는 것을 넘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되면서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병폐는 어디 디지털 치매뿐이겠는가? 오죽하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4세까지는 하루에 1시간 이상 폰 사용을 못하게 하고 1세 이하는 아예 금지해야 한다고 권고할까.습관이란 오랜 시간동안 몸에 밴 행동을 말한다. 이 행동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불규칙하다. 어떤 사람은 차선을 잘 지키고 어떤 사람은 걸핏하면 끼어든다. 사람마다 타인이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관이나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으니 어떤 습관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어떤 습관이 자신의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까지 해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습관은 잘못된 것으로 보고 속히 고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가져다 줄 피해를 어느 정도 알면서도 폰이 매우 편리한 기능이 많기 때문에 사용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편리함에 속아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문제를 매일 떠안고 산다. 이런 신체적, 정신적 증상들이 느껴질 때는 자제할 줄 알아야하는데 그렇지도 않는 게 우리의 현실이고 결국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망가져야 뒤늦게 후회를 하게 된다. 신체가 망가지면 정신도 망가진다. 이들 중 어느 하나가 망가지면 인생이 망가지니 늘 자신의 행동을 들여다보고 잘못된 행동이나 오래된 나쁜 습관은 고쳐 바람직한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인생이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잘못 든 습관 때문에 후회하는 인생은 살지 말아야한다.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2019-05-23 11:15:31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매일춘추] 지금의 이유와 의미

매주 기고를 위해 의도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에피소드가 있을 때 어떤 주제와 연관지어 글 써보면 좋겠다고 메모를 해두기도 한다. 정리된 글로 세상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당시의 상황에 느낀 소회, 감상이랄지 깨닫고 뉘우치고 느낀 점들을 짧게 요약하거나 그냥 두서없이 적어둔다. 그리고 후에 적혀진 메모들을 읽어보며 적어두는 습관이 무척 좋구나하고 느꼈다. 메모 속에 가감 없이 남겨진 생각의 조각들, 목적 없는 상념 또는 사색의 줄거리 등이 스스로 빠르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나의 정신상태, 마음상태, 관심사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방향 또는 현재 나의 위치 같은 것들을 체크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한편으론 큰 데미지를 막아주는 미리보기, 경고알람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메모는 출산과 함께 안팎으로 변화의 시기를 겪으며 혼란스럽기도 우울감이 들기도 하는 필자에게 위로와 길잡이의 기회가 된 듯 하다.메모의 내용을 보니 나의 관심사 또는 주된 활동영역이 보여 진다. 아기를 비롯한 가족들과의 에피소드와 가정에 집중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이다. 생각이 방향이 되고 방향대로 생각한다고 했다. 일에 비중을 둔 예전이었다면 준비하는 작품에 대해서,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떤 자리에서 누구를 만나서 나눈 대화가 이랬는데, 강의를 들으며 느낀 점이 이런데 등을 메모하고 또 그 이야기와 생각들이 바탕이 되어 글을 완성하고 보다 나은 앞으로를 위한 가지를 뻗어 나아가지 않았을까. 지금 나의 가지는 어디로 뻗어가고 있는지 나의 생각과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메모를 보면 알 수 있다. 가족과 가정을 위한 시간이 결코 쉽지만은 않으며 가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역시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대학 때부터 늘 일을 해왔던 것이 함정이 되어 나만 멈추어있는 것 같고 뒤쳐져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감에 위축되는 요즘이다. '실패는 없다' 고 이야기했던 나는 어디로 갔나. 그렇게 하루에 수십번도 더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한다.하지만 그 와중에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 역시 가족이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 웃음과 보람을 주는 아가도, 열심히 일하고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는 고마운 남편도, 쑥스러운 듯 '너 키울 때도 이랬어~' 라고 말하며 손녀에게 불러주는 동요 소리가 그저 감사하고 눈물 나는 우리 엄마도 전부 지금의 이유가 되고 의미가 된다.며칠 남지 않은 5월, 가정의 달이다. 비단 5월이어서 만이 아닌 언제나 익숙하기만 하여 잊게 되는 것들의 소중함을 새겨볼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모아 오늘도 이렇게 스스로에게서 배움을 얻는 귀한 경험을 한다. 이것 역시 지금의 이유와 의미가 된다.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2019-05-23 10:25:38

임성호 한의원 원장

[임성호의 매일보감] 약주를 드실지,독배를 들이킬지

의(醫)는 한자 의(医),수(殳),유(酉)가 합쳐지 말이다. 의(医)는 자체로 의원, 의학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화살 시(矢)자와 감추다는 뜻의 혜(匸)를 합친 말로 '화살을 감추고 있는 무기'라는 뜻으로 화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殳)는 몽둥이라는 뜻으로 '창'이다. 유(酉)는 닭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고 술(酒)의 의미인데 여기서는 술보다 '약'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과거에는 '의(醫)'자 한자가 '의(毉)로 더 많이 쓰였다.이 글자의 아래에 쓰인 무(巫)는 무당이라는 뜻이다. 즉 '무당'이 '화살'과 '창'을 가지고 굿을 하여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고친다고 표현한 것이 '의'(醫)자의 어원이다.예전 무당(巫)의 일을 약(酒)으로 대체하면서 그 의미가 바뀌게 됨을 알 수 있다. 즉 의(醫)는 약을 화살과 창을 이용해 사람을 고친다는 의미일 것이다.각종 동창회 모임과 회식 자리에는 술이 빠지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히 오가는 술잔은 뇌를 기분 좋게 해 대화도 풍성하게 하며 서로 간의 호감을 높여준다.적당히 마시는 술은 삶의 윤활유가 되고 의(醫)자가 뜻하는 약(酒)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적당한 선을 넘어선다는 데 있다. 술을 마시다 보면 분위기에 들떠 과음을 하기 일쑤다.이때 술은 약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독(毒)이 되어 돌아온다. 사회가 술을 권한다 하여도 돌아오는 것은 술 마신 사람의 건강만 해한다는 것이다.동의보감에 따르면 술을 먹고 체했을 때, 어지러울 때, 머리가 아플 때, 다른 병과 겹쳐 올 때 등 몸이 입은 피해의 세세한 설명과 증상별 치료법을 소개하고 있다. 몇 백 년 전에도 술로 인한 사회적 손실, 가족간의 갈등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약주를 마실지, 건강을 해치는 독배를 들이켤지.임성호 한의원 원장

2019-05-22 18:00:00

5년전 상영한 영화 브래드 피트 주연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뛰어난 영상미로 영화팬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낚시의 짜릿한 액션과 전율,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황홀한 저녁 놀이 이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늦은 봄 어느날, 금호강 하류 세천부근이 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하늘은 붉게 불타고 강물은 은빛 물결이다. 낚시대를 던지는 한 시민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장면과 닮았다.

[박노익의 시선] 금호강의 석양

5년 전 상영한 영화 브래드 피트 주연의 '흐르는 강물처럼'은 뛰어난 영상미로 영화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낚시의 짜릿한 액션과 전율,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황홀한 저녁놀이 이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늦은 봄 어느 날, 금호강 하류 세천 부근이 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하늘은 붉게 불타고 강물은 은빛 물결이다. 낚싯대를 던지는 한 시민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닮았다.

2019-05-22 18:00:00

하승미 작 '여행은 옳다'

[내가 읽은 책]요즘 마음이 어때요? 정혜신, 『당신이 옳다』, 해냄, 2018  

쿰쿰하게 시작된 하루가 진한 커피 한 잔에 깊어진다 싶더니 뒤엉킨 관계 속에서 헝클어진 실타래가 된다. 어느 박자에 맞추어야 할지 모른 채 오늘도 감정은 실룩거린다.세월호 유가족,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5.18 고문 피해자 상담으로 유명한 저자 정혜신은 연세대 출신 정신과 의사다. 잘 나가는 의사 가운보다 사회 곳곳의 트라우마 현장을 더 사랑한 그녀는 '당신으로 충분합니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등을 집필, 상담이론이 아닌 사람 자체에 집중하는 소박한 집밥 같은 치유에 방점을 둔다. 이 책에서 그녀는 30여 년간의 경험을 집대성, 마음의 허기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왜 우리는 아플까? 주변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마음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질병명이 가득하다.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맞추는 삶, 나라는 개별적 존재가 아닌 조직, 단체라는 획일화는 진정한 내가 아닌 만성적 '나' 기근의 상태에 빠지게 하고 이것이 마음의 병이 된다. 나를 잃은 절박한 순간에, 삶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거야' 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p.50).공감은 존재를 수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칭찬이나 좋은 말 대잔치와는 다르다. 무조건 '맞아, 맞아'도 아니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의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상태다(p.125). 사실이나 시시비비가 아닌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에 정확하게 눈을 포개는 것, 속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게 현재의 감정을 먼저 알아주는 것이다. '얼마나 힘든 거니?', '그런 마음이구나.' 온전히 내 마음에만 집중해 주는 누군가 있다면 내 마음의 단단한 문은 활짝 열리리라.때론 닫힌 문을 더 옥죄는 경우도 있다. 슬프다는 것은, 화가 난다는 것은 숨겨야 할 나쁜 감정이라는 생각. 내 슬픔에 내가 귀 기울이고, 가까운 누군가가 공감해준다면 쌓인 슬픔이 곯아 우울이나 불안으로 커지진 않으련만. 어쩌면 진정한 치유를 가로막는 방해물은 감정에 대한 편견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감정은 나를 점검할 수 있는 신호다(p.218).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삶 속에서 나의 속살을 내비칠 기회! 서툴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상황인지 더듬어 볼 절호의 찬스.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저자의 말대로 '공감'해야 한다. 나에게, 너에게. 허나 공감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타고난 재능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확언한다. 공감은 학습하는 것이라고. 정혜신의 공감은 진심으로 궁금하면 질문이 생긴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사람의 마음을 묻고 듣고 또 묻고 듣기를 반복하다 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자기 결론이 담긴 질문이 아닌 그 사람의 마음을 궁금해 하는 질문. 내 주변에 내 마음을 궁금해 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 하는 그 사람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저자는 또 말한다. 똑같이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다르게 느끼더라도 상대의 감정을 기꺼이 이해하고 수용하면 된다고(p.269).롤러코스터 같은 나의 마음, 마음이 어떤지 물어주기 바라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전한다. 요즘 마음이 어때요?하승미 책 읽는 사람들 회원

2019-05-22 14:45:26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그이는 가야만 하나요?

1961년 12월 31일 7시 반 한국에 처음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할 때까지 KBS는 라디오 방송만 했다. 그 무렵 어느 해 4월1일 대구 KBS 방송국의 이교석 아나운서가 아침 뉴스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만우절이 꽤 의미 있는 날처럼 대접받던 시절이라 이 아나운서도 '오늘 정오까지 대구 방송국에 오면 선착순 5명에게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준다'고 장난기 있는 방송을 했다. 요즘 가치로 치면 대형 TV나 김치냉장고 쯤 될까 그 귀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타보겠다고 대구 시민들이 개미떼처럼 방송국으로 몰려들었다.방송국이 있는 공회당 앞마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방송국 사람들은 만우절이라 웃자고 한 소리인데 설마 했다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방송국 홀이 부셔질 뻔하고 사과에 또 사과를 거듭한 뒤 군중들은 흩어져 갔다.이교석은 결국 KBS에서 쫓겨나고 CBS 기독방송국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단 혼자 방송을 하게 되니 또다시 웃지못할 일들이 잇달아 일어난다. 방송 중에 용변이 급해 화장실을 가야할 판인데 그런 형편이 못되어 결국은 신문지에 실례했다는 소리도 들렸고 종합운동장에서 야구 중계를 마친 뒤 방송국으로 올 동안에는 아나운서가 없으니까 음악만 홀로 안테나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 무렵 국영인 KBS도 아나운서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서울말을 할 줄 모르는 유필기 아나운서, 서울말 가능한 이원춘 아나운서 그리고 홍일점 박숙희 아나운서 정도가 있었다.이 무렵은 전쟁 후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시기라 시민들은 서양 음악에 목말라 했다. 양키 시장 약장수의 유행가, 칠성시장 신천변에서 부르는 약장수 판소리만으로 성이 차지 않았다. 미군방송 AFKN에서는 미군들과 함께 들어온 서양 노래 '당신은 나의 태양(You are my sunshine )'이 흘러나오고 '삐빠빠 룰라(Be-Bop-A-lula )'가 춤을 추는데 한국 K.B.S의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나 현인의 '고향만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시류에 부합해서 대구에 단 두 개 있던 라디오 방송국 KBS와 CBS에서도 낮과 저녁때 짧게 '뽀뿌라 송(Popular song)'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일본식 발음인 '뽀뿌라 송'도 결국 유행가라는 말의 영어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게 서양 뽕짝도 외국말로 하니 있어 보였다.그 어설픈 일본영어가 매끈한 '팝송'이란 본토 발음으로 바뀌면서 서울 KBS에서 '5분만 쉽시다(Take five)'라는 시그널 음악으로 본격적인 팝송의 시대가 열렸다. 한동안 다방에서는 도끼 빗을 든 음악 DJ 오빠들이 손님들에게 신청곡도 받고 음악 해설도 하며 설래발 치고 있었다. 동아 방송에서 김동욱이 '행복한 날은 다시 오고(Happy day come here again)'라는 오프닝 음악으로 방송국 신청곡을 받는 제도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서울 KBS에서는 '빗줄기의 리듬(Rhythm of the rain)' 대구 KBS에서는 '그이는 가야만 하나요?(He'll have to go?)'를 오프닝 음악으로 신청곡 받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이 오니 젊은 팬들은 이날 만은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방송을 들었다."당신의 부드러운 입술을 전화기에 더 가까이 갖다 대요/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생각합시다/ 나는 노래방 직원에게 쥬크 박스 소리를 아주 작게 하라고 할게요/ 그러면 당신은 당신과 거기에 같이 있는 친구에게 가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에게 말해줘요/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고/혹시 그 친구가 나와 같은 방법으로 당신을 붙잡고 있나요/ 사랑이란 사람을 눈이 멀게 하는 것/ 당신의 마음을 결정해요/ 나는 알아야 겠어요/내가 전화를 끊을까요. 아니면 당신이 그에게 가라고 말을 할텐가요."-그이는 가야만 되나요? (블룩 벤턴 작사 작곡, 짐 리브스 노래.)이 노래가 나오면 대구의 젊은이들은 가슴이 녹아내린다. 혹시 나에게 보내는 사연은 없는가하고 귀를 쫑긋하고 라디오를 들었다. 이제는 노인이 되어 버린 그때 그 사람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Art is long, life is short!-히포크라테스. )'라는 말을 실감하며 늙어 가겠지.권영재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2019-05-22 14: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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