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체코슬로바키아 소설가 카렐 차페크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로봇이라는 용어는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영화 'A. I.'에는 인간의 감성을 지니고 인간 모습을 한 어린아이 로봇이 등장한다. 이 어린아이 로봇은 마음을 잃어버린 이기적인 인간들 틈에서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도대체 인간과 로봇 간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보편적이 되어 버린 용어 '로봇'과 '안드로이드(인조인간)'의 개념이 소설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0년이다. 체코슬로바키아 소설가 카렐 차페크가 희곡 'R.U.R:로숨의 유니버설 로봇'(1920)에서 인조인간을 등장시켜 그들을 '로봇'이라고 명명한 것이 그 시작이다.카렐 차페크가 만든 신조어 '로봇, Robot'은 '부역(賦役)'을 의미하는 체코어 'Robota'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용어에서 나타나듯 희곡 'R.U.R'은 노동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대량생산되는 미래 사회를 무대로 전개된다. 이후 노동 해방과 경제적 이윤추구를 위해 인간이 대량생산한 로봇이 결국에는 인간을 말살하는 비극적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출산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들의 오만함 등, 미래 사회의 문제점이 예측되고 있다. 카렐 차페크의 'R.U.R'은 발표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에서는 1923년 '인조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다. '인조인간'이라는 신조어가 일본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때이다.일본어 번역을 기반으로 박영희가 '인조노동자'(1925)라는 제목으로 'R.U.R'을 조선에 번역, 소개한다. 이 시기 서구문학 번역이 대부분 축약되어 소개된 것과 달리 '인조노동자'는 4막으로 이루어진 원문 그대로 번역하되, 용어는 조선상황에 합당한 것으로 바꾸고 있다. 단 제목에 '노동자'라는 용어를 추가한다. 제목 덕분에 SF와 사회소설이 결합된 'R.U.R'은 조선으로 이입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문제를 다룬 사회소설의 이미지를 보다 강하게 지니게 된다.1920년대는 일제의 경제침탈로 인해 살 곳을 잃은 수많은 조선인이 개나리봇짐을 지고 고향을 떠나 만주로 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 미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여력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근대 과학의 발전이 전혀 이루어져 있지 않은 조선에서 인조인간이란 야담 속 귀신이나 괴물, 혹은 요괴와 차별화 될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 점에서 '노동자'라는 용어를 제목에 내세워 표면상으로라도 과학소설로서의 이미지를 가능한 한 지워버린 번역자 박영희의 안목은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멀지 않은 시기 기계가 번역을 담당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 예측은 번역의 역동적인 과정을 간과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은 문화의 적용과 변용의 과정이다. 타문화와 자국 문화의 미세한 차이를 이해하고 그 차이를 언어 번역의 과정에서 적용하는 것,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역이 아닐까. 경북북부연구원 연구이사

2019-01-10 14:05:17

김승영 작

[갤러리 탐방]김승영 '신라를 다시 본다' 국립경주박물관(3월 3일까지)

15년 쯤 전인가, 설법을 듣다가 알게 된 교리가 있다. 불교에서는 남녀의 사랑을 여섯 가지로 나눈다. 색욕, 인상욕, 형모욕, 언어음성욕, 세활욕, 위의자태욕이다. 흔히 이야기되는 색욕은 주로 시각적인 면에서 비롯되고, 인상욕은 상대의 사랑스런 용모에 혹하는 욕정이다. 형모욕도 인상욕과 비슷한데, 전자가 이목구비의 예쁨 때문이라면 형모욕은 스타일에 관한 끌림이다. 언어음성욕은 목소리나 말투 같은 청각적인 면으로 유혹하는 탐욕이며, 세활욕은 살결의 느낌 같은 촉각적인 욕정이다. 향기를 맡는 후각이 빠졌네. 뭐가 모자라거나 겹치거나 간에 불교가 인식하는 에로스는 야훼 혹은 여호와라는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 천주교 이슬람교 개신교 등과 달리, 아주 골똘히 분류되고 고찰된다. 기도 정진의 끝이 해탈이 맞나 싶을 정도다. 집착과 해탈은 통하는 모양이다.김승영의 작품 '슬픔'이 전하는 명제는 바로, '고요한 부처의 마음에도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는 가정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설치미술가 중 한 사람인 그는 국립경주박물관이 개관 이래 최초로 기획한 현대 미술 전시 '신라를 다시 본다'에서 벽돌 더미 위에 앉은 부처를 공개했다. 작가가 따로 진행해오던 벽돌에 텍스트를 남기는 작업과 불상 조각 작업이 이번 전시에서 만난 셈이다. 신라로부터 전해온 반가사유상을 재현한 그 자태는 웬일인지 슬픔이 깃들어있다. 해탈과 초월의 경지에 오른 부처가 슬픔을 품었다니. 눈물을 흘리듯 고개 숙인 그 모습을 보는 관객들은 수긍이 되다가 안 되다가 한다. 불교의 신론은 무결점의 전능한 신이라기보다 모든 부족함과 그릇됨을 품은 그 자체로서의 존재에 가깝다.슬픔 실망 갈등 반성 불안 권태 상실 수치심 무안 멜랑콜리 고립감 비애 등과 같이 부정적인 뜻의 낱말이 벽돌마다 새겨져 있다. 이는 희망 부드러움 안도 포옹 자유 동행 행복처럼 좋은 뜻의 단어가 새겨진 벽돌들과 어울려 사랑의 감정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슬픔도 사랑도 그 속에는 단지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복잡 미묘한 감정의 총체란 걸 알고 있다. 왜 사랑에 빠지면 마냥 행복하지 않지 않고, 더 외로워질까? 사랑 또한 충만함 대신 비워냄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불교의 인생관에서 보자면, 김승영의 '슬픔'은 단순히 유쾌하지 못한 비탄이 아니라 희열에 가까울 수도 있다. 작가도 보살상을 조각하고, 벽돌에 말을 한 자씩 새겨 넣을 때, 분명히 그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2019-01-10 10:34:56

최수열 대구 북구의원

[기고] 대구 운전면허시험장 이전하자

대구 북구 태전동 소재 대구운전면허시험장 이전에 대한 주민들의 염원이 뜨겁다.운전면허시험장 이전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재의 입지가 더 이상 운전면허시험장으로 활용하기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면허시험장이 1990년 달성군 화원읍에서 북구 태전동으로 이전할 당시 강북 지역은 9만 명이 거주하는 도심 외곽 지역이었으나 30여 년이 지난 현재는 25만 명이 거주하는 대구의 대표적인 주거 지역으로 발전했다.그 사이 면허시험 절차도 바뀌었다. 당초 시험장 내부에서만 이뤄지던 주행 평가에 더해 도로주행 방식이 도입되며 인근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과 등하굣길에 나서는 초중고 학생들이 교통소음과 교통체증, 안전사고 위험 등을 겪고 있다. 이는 운전면허시험장 이전 사업이 북구 태전동과 인근 주민들의 숙원 사업인 가장 큰 이유다.이뿐만 아니라 현재 운전면허시험장의 입지도 새로운 용도로 활용할 필요성이 크다. 3만4천㎡의 넓은 면적, 도시철도 3호선 구암역과의 접근성이 우수한 점 등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인근에 대구과학대, 대구보건대 등 지역 대학은 물론 구암동 고분군, 팔거산성 등 관광자원도 산재해 있어 향후 강북지역 및 대구 북구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이에 지난 7대 북구의회에서 김준호 의원이 지속적으로 운전면허시험장 이전 당위성을 얘기했고 많은 호응을 얻어냈다. 그 덕분에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도 일부 후보들이 대구운전면허시험장 이전을 공약 사항으로 제시하기도 했다.다행스럽게도 이 같은 여론에 지역 정치권과 공무원들도 화답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하병문 대구시의원이 시정질의를 통해 시험장 이전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에 권영진 시장이 도로교통공단과 협의가 이뤄지고 있고 국토교통부와도 도시계획시설 지정을 위한 원칙적인 합의를 마쳤다고 답하기도 했다. 순조로운 운전면허시험장 이전이 기대되는 부분이다.이렇듯 운전면허시험장 이전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에서 이제는 이전터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져야 할 때다.이전터 활용 방안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인근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는 인근 주민들이 오랜 기간 희생을 감수하는 등 불이익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항간에서 논의되는 택지 개발 등의 활용 방안은 당연히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태전동 일대는 단기간에 대규모 택지 개발이 이뤄지면서 주민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이에 운전면허시험장 이전터에 인근 7천500여 가구 주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고 대구도시철도 3호선, 구암동 고분군, 지역 대학의 입지 등으로 많은 유동인구가 이용할 수 있는 문화체육시설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최근 제3산업단지 재생 사업 추진에 따라 이전이 예상되는 여성회관 유치나 '어린이 교통공원' 설립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2019년 새해에는 면허시험장 이전과 문화체육시설 건립이 가시화되기를 소망하며, 행정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2019-01-10 10:24:16

안용모 한국철도건설협 부회장(전 대구시도시철도건설본부장)

[기고] 영남권 철도물류기지 준비하자

힘찬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이맘때쯤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9천288㎞의 대장정 모스크바로 가고 있었다. 대구에서 북한을 지나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철도가 이어지는 '21세기형 철의 실크로드'가 재현됐을 때 얻어질 엄청난 잠재적 수익을 상상하고 있었다.남북 철도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이 지난달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열렸다. 남북 정상이 지난 9월 평양에서 합의한 이 사업은 끊긴 남북의 혈맥을 잇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열차가 남북을 오가게 되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람과 물자가 대구 영남권 물류기지를 출발해 북한을 관통한 뒤 중국이나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오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대구가 사실상의 섬에서 벗어나 해양과 대륙을 연결해 주는 중심 지역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다.남북 철도 연결이 이뤄지면 대구는 대륙으로 가는 물동량을 확보해 영남 내륙 물류 중심지역으로 부상하도록 해야 한다. 남북이 끊어진 철길을 이어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완성하면 북한을 통해 대륙을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의 실크로드'가 현실화된다.영남권의 교통 및 물류 중심지인 대구에 영남권 내륙 철도물류기지를 건설해야 한다. 대구는 자타가 공인하는 철도와 도로의 교통요충지이자 내륙산업단지의 중심에 있으므로 남북 철도 연결로 경제적 무한 잠재력을 가진 대륙철도의 활용을 위해서 영남권 물류 전진기지를 하루빨리 준비해야 한다.그동안 바다가 없는 내륙의 도시를 벗어나서 철도물류기지를 유치하여 대구가 영남의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꼽히고 있는 장점을 살려야 한다. 철도와 고속도로가 사통팔달로 지나고 있어 내륙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중국, 러시아 및 유럽으로의 직접 교역로를 확보해 대륙 경제에 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내륙 산업단지가 합류하는 경제 효과도 기대된다. 유라시아는 중국, 인도, 러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화물의 운송 시간이 해상운송보다 2주일 줄고, 운임도 컨테이너당 800∼1천100달러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다.결국 남북 철도 연결과 그에 따른 대륙 간 철도 연결은 대구가 영남권의 새로운 물류거점기지로 부상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류거점기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거나 물류가 이동하는 데 따른 통행료를 받는 것에 국한되는 부분이 아니다. 물류거점기지가 되면 운송수단이 발달하고 그만큼 산업 입지가 좋아지게 된다는 뜻이다. 물류기지 기반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투자 역시 늘어나고, 여객 운송수단의 발달로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일조할 수 있게 된다.남북 철도 연결이 대구 전체의 경제 르네상스를 이끌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필요성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재도약을 향한 대구경북 발전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남북 철도 연결을 계기로 대구경북이 한마음으로 뭉쳐서 뛴다면 '영남권 철도물류기지'를 출발하는 '철(鐵)의 실크로드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청사진은 반드시 현실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2019-01-10 04:30:00

프리랜서작가 권미강

[생각의 숲] 불을 훔친 욕망

언제부턴가 새해의 시작점이 되면 전 세계 주요 도시가 불꽃을 터트린다. 새해를 자축하는 인간들의 불꽃놀이는 불을 훔쳐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이는 형벌을 당한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감사의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로 인해 인간들은 문명을 밝히고 문화적으로 살아가니까. 프로메테우스가 무서운 형벌을 견디며 인간들에게 문화의 시대를 열어줬으나 인간들은 과연 문화적으로 살아가는가? 오히려 불을 훔치게 한 욕망이 DNA 안에 내재돼 있는 건 아닌가?새해가 되면 기대하는 것들도 많아진다. 그것이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위한 정의로운 것이든 각자의 입장에서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지만 매년 지내봐도 쉽지는 않다. 올해는 기해년 황금돼지띠가 주는 상징성이 있음에도 분위기는 차분하다 못해 암울하다. 새해부터 기초 자치단체 군의원이 캐나다까지 날아가 가이드 폭행까지 하는 추태를 부렸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여야도 여전히 서로 다른 이전투구로 국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유력 정치인의 소환과 법조인의 사법처리 문제도 앞두고 있다. 컬링에 이어 대한민국 체육계의 민낯을 드러낸 또 하나의 사실이 쇼트트랙에서 드러났다. 모두가 욕망을 이기지 못한 결과다.올해는 돼지도 그냥 돼지가 아닌 황금돼지해다. '황금'은 물질적인 의미도 있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를 나타내기도 한다. 행운과 복을 부르는 동물과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진 기해년에 우린 무엇으로 살 것인가? 숫자 '1'은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충족돼 있는데 우린 어쩌면 불을 훔친 욕망에만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2019-01-09 20:30:00

프리랜서 작가 권미강

[권미강의 동행에세이] 새해 최고의 퍼포먼스, 그녀는 위대했다

3천㎞ 밖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딸아이와 함께 베트남에서 맞이한 새해는 겨울에서 여름으로 온 선물 같았다. 두 계절의 새해가 행운처럼 열린 황금돼지해. 그곳에서도 새해로 넘어가는 자정에는 축하의 불꽃이 터졌다. 언제부턴가 세계의 도시들이 새해가 되면 불꽃놀이를 한다. 불을 훔친 인간의 욕망을 한꺼번에 분출하듯 온통 불꽃의 향연이다.더운 나라의 새해는 그 풍경만큼 이색적이다. 두꺼운 잠바에 털모자와 목도리, 장갑으로 중무장하며 떠오르는 첫 해를 향해 소원을 빌던 우리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몇 시간 전 불꽃으로 새해를 맞은 베트남의 휴양도시 나트랑에서 첫 해를 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갔다.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명절행렬처럼 첫 해를 보기 위해 바다로 산으로 모이는 우리들의 해맞이 모습을 생각하며 비가 와도 춥지 않은 해변에서 해 대신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때 비키니 차림의 한 여인이 거침없이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따뜻한 나라이니 이런 새해 풍경쯤이야 하면서도 생경스럽게 바라보았다.그녀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을 수 있는 지점에 서자 거대한 파도의 벽에 몸을 부딪쳤다. 파도는 거칠었고 그녀는 바닷속에 쓰러지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파도와 사투를 벌였다. 그녀는 마치 '그래 아무리 파도가 쳐도 나는 다시 일어설 거다'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은 한 생을 파고드는 깨달음처럼 느껴졌다. 행복하게 해달라는 소원 대신 '그래 올 테면 와 봐라. 다 받아칠 테니 온몸으로'라는 결기에 찬 의식을 치르는 듯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거대한 파도가 삼킬 것 같은 바다에서 이국의 그녀는 세상과 '맞짱' 뜨고 유유히 바다를 떠났다. 그녀의 새해 의식은 지금까지 본 새해 퍼포먼스 중 최고로 위대했다.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2019-01-09 19:30:0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말(言)의 잔치를 보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이해인 시인의 '말을 위한 기도'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말과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구절이다. 강단에 서서 내가 하는 말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항상 실수하지 않으려, 내가 하는 말의 씨앗이 나쁜 열매를 맺지 않도록 조심하려 한다.그러나 인간이기에 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때로는 감정적으로 말을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내뱉고는 후회하곤 한다. 말은 독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열매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말 한마디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고, 타인의 목숨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으니 우리가 하는 '말'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속담에도 말과 관련된 속담이 유난히 많은 것은 바로 말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리라디지털시대 시공 제약 벗어나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T)의 발달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불특정 다수에 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에는 말의 전파력이 시간과 공간에 제약되었으나, 이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과 관심사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의 손가락 움직임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사를 인터넷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대표적인 것인 유튜브이다.유튜버!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직접 제작한 다양한 장르의 영상을 게시공유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2018년 교육부 조사에서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중 유튜버가 5위에 올랐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구독자 수에 따른 광고 수입까지 벌어들이고, 잘만 하면 수억원의 연봉을 벌 수 있으니 희망 직업으로 높은 순위에 선정될 만하다. 다양한 영역의 유튜버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고, 모 방송사에서는 이런 경향을 반영해 유명한 유튜버들을 대상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유튜브는 이제 공중파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정치인들까지 유튜브를 적극 활용하여 자신의 '말'을 전하고 있다. 뉴스 프로그램보다는 특정 정치인의 유튜브 채널이 더 호소력을 지닌다. 홍준표의 홍카콜라가 얼마 전 시작한 데 이어 유시민의 알릴레오가 며칠 전 첫 방송을 탔다. 이전에도 몇몇의 정치 관련 유튜브 채널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방송이 세간의 관심사가 되면서 누가 더 많은 구독자 수를 보이는지, 조회 수가 어떻게 되는지를 언론에서는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두 사람의 유튜브 방송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까지 언급하고 있다.정치 유튜버 토론·타협 경쟁을진보와 보수 혹은 우파와 좌파의 대결, 사실의 전달 혹은 주장을 통한 비판. 무엇으로 평가하든지간에 말의 잔치는 이제 시작되었다. 새해 벽두가 정치인들의 말 대결로 시작되는 걸 보면서 정치인의 말을 통한 사실과 주장, 비판과 분석, 추론이 피아(彼我)에 대한 근거 없는 선동과 선전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메시지(말의 내용)는 사라지고 메신저(화자)에 대한 비판만 남는 말의 잔치가 아니기를 바란다. 객관적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메신저를 찾아 자신의 편향된 의견을 더 확고히 하는 말의 잔치가 아니길 바란다.흥겨웠던 한때의 잔치가 끝나고 나면, 허무한 감정이 파고든다. 말의 잔치가 끝나고 남는 것이 허무함과 상처가 아니라, 우리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토론과 타협의 흔적이 남기를 기대한다.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그런 유튜버의 경쟁을 기대해본다.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19-01-09 19:30:00

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스타트업 스토리] 차이나 유니콘

유니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주인공이 꿈속에서 만나는 뿔 달린 상상 속 동물. 하지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유니콘이라는 단어가 상상의 대상만은 아니다. 10억달러(한화 약 1조1천억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평가받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유니콘'이라 부른다.한국은 2017년까지 단 3개만 유니콘으로 평가되었다. 인기 게임 '배틀그라운드' 개발사 '크래프톤'과 간편 송금 앱 '토스'의 '비바리퍼블리카'가 새롭게 진입하며 현재는 5개의 '유니콘'을 보유하고 있다.CB인사이트 2018년 8월 자료에서 전 세계 '유니콘' 기업 수는 총 306개. 151개의 미국이 1위, 중국은 83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1위부터 20위까지의 순위에서는 미국과 중국, 영국, 싱가포르, 인도만 언급된다.특히, 1위 스타트업은 차량 공유업체 '우버'(Uber),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도 아닌 중국의 '바이트댄스'이다. 750억달러(한화 약 84조원) 가치로 평가받는 '바이트댄스'는 우리에겐 15초 내외 편집 영상 공유서비스 '틱톡'(Tik Tok)의 제작사로 알려져 있다.지나친 광고 노출로 논란이 있지만 '뮤지컬리'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M&A 이후 급성장해 36세의 장이밍을 마윈 이후 중국 최고의 스타트업 슈퍼 스타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바이트댄스의 핵심 경쟁 기술은 인공지능이다. 사용자 패턴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맞춤형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진르 터우타오'는 기자, 편집자를 한 명도 고용하지 않고 월 평균 이용자 수가 2억 명을 넘어서는 등 파괴적인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중국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창업하고 싶은 환경보다 취업, 고용이 우선인 대한민국. 5개의 유니콘이 있다는 현실은 기적일 수도 있다.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2019-01-09 19:30:00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가라오케

UN의 원조를 받아 겨우 명줄을 이어가던 최빈국(最貧國) Korea가 먹고 살만해지자 그들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신명이라면 한가락 하는 대구 사람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부산으로 일본 텔레비전 나오는 여관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생겼다. 일본 텔레비전이 잘 나온다는 용두산 공원 아래 여관 동네를 기웃거리는 대구 한량들이 많았다. 여관방에 죽치고 앉아 일본가수들의 노래도 듣고 드라마도 보았다. 그 무렵 부산에 상륙한 가라오케도 열심히 다녔다. 회식 때 기껏 젓가락 장단을 두드리거나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부르던 노래를 가라오케에서 부르니 천당에 온 것 같다. 반주에다 영상이 나오고 마이크가 되니까 신이 나고 호기심도 발동되어 인기 폭발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부산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대구에도 가라오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호구지책이 해결되자 사람들이 험한 일이나 고된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넥타이'들이 아무리 세뇌를 해도 속지 않았다. 남들이 하잖게 보고 힘든 일은 '3K'라고 불렀다. 위험(키켄), 고됨(키쓰이), 불결(키타나이)의 일본어 약자를 영어로 표시한 3K란 말을 썼다. 요즘 일본서는 3K에서 6K로 까지 발전했다."큐료(급료)가 적다. 큐카(휴가)가 적다, 각코(모양)가 나쁘다".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3K에서 3D(Difficult, Dirty, Dangerous)란 말로 약자를 바꾸었다. 바꾸는 김에 아예 우리 말 약자로 바꿀 일이지 왜 영어로 바꾸었을까 이해가 안 된다. 영어로 써야 폼이 나는 모양이다. 은행들도 제 이름 앞에 NH농협, IBK기업은행, DGB대구은행, KB국민은행으로 영어 약자를 붙이는 이상한 짓을 하는 모양을 보면 아마도 내 짐작이 맞을 것이다. 일본의 '이노우에 다이스케'가 노래 반주기를 발명하고 이름을 '빈 오케스트라(가라 Orchestra)'라는 뜻으로 '가라오케'라고 명명을 했다. 1980년대 이 기계가 일본 열도를 휩쓸었다. 10년 쯤 뒤 부산에 상륙한 가라오케는 처음에는 우리도 가라오케라고 따라 부르다가 최근에는 법적으로는 '노래연습장'이고 속칭 '노래방'이란 이름으로 한국화 했다. 가수 김흥국이 자신의 노래 '호랑나비'를 노래방에서 불렀는데 46점이 나왔다고 한다. 멋 부린다고 기술을 너무 넣으면 그렇게 된다. 내 친구 중에는 지독한 음치가 있는데 노래방에서 가끔 100점이 나온다. 노래방 기계의 점수는 재미있으라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초기에는 노래의 음정과 박자 모두를 채점해 어느 정도 실력에 맞게 점수가 나왔다. 하지만 손님이 싫어했다. 스트레스 풀려고 갔다 스트레스 쌓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박자만 채점한다. 그 덕에 고함만 지르면 가끔 음치도 백점이 나오고 그들의 입이 귀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나이든 사람들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은 '전국노래자랑'이고 '가요무대'가 다음 순위이다. 일요일 KBS와 같은 시간에 일본의 NHK에서도 전국노래 자랑을 한다. 일본에서도 가요무대가 있다. '진품명품'도 똑 같이 한다. 어느 쪽이 베낀 것이 틀림이 없다. 문화란 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보다 나은 거 베끼고 배우며 질을 높혀 나가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원조(元祖)라며 거짓말하는 방송인들을 보면 정말 꼴 보기 싫다. 그런 것은 애국이 아니고 매국이다. 가라오케의 고향은 일본이고 우리는 그 걸 바탕으로 개발해 노래방으로 한국화를 했다. 언제 우리 것도 일본사람들이 배울 것을 창조해보자.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2019-01-09 14:05:49

서강 작 '일본 모쿠모쿠팜 전경'

[내가 읽은 책]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잖아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중앙books)

라다크는 세계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의 하나이다. 티베트 등 히말라야 인근의 다른 지역들처럼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생존지역이다. 혹독한 기후, 척박한 환경이지만 수용하며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아왔다. 긍정적인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강한 자립심과 검소한 생활태도가 장점이다.언어학자이며 사회운동가인 헬레나는 라다크와 서구사회를 오가며 1980년에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작은 국제기구를 만들었다. '라다크 프로젝트'는 1991년 생태 친화적이고 공동체에 기반을 둔 생활방식을 장려하고자 하는 진보적 상황의 부흥을 이끌 'ISEC'로 재탄생했다.『오래된 미래』는 라다크와 그곳 사람들의 오랜 친구인 저자가 레 지역과 카길의 잔스키로 벨리에 체류하며 경험한 전통에 대해 설명한다. 함께 고민하고, 제3세계를 개발하는 방식을 바꾸는 '반개발'의 방식을 배우기를 권한다.'전통에 관하여'에서는 1974년 이전, 라다크 사회에 실재하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생생하게 부각시켰다. 라다크의 전통사회는 자립정신, 검약정신, 사회적 조화, 환경적 지속성 그리고 내면적인 풍요로움 등을 간직한 사회였다.'변화에 관하여'는 라다크가 관광지역으로 개방된 1974년부터의 공적 부문의 개발과정이다. 전통과 변화, 특히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이 생겨나는 과정이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서구사회형의 개발은 라다크 사람들이 속한 공동체의 생활을 빼앗아갔고 보람을 느꼈던 일로부터도 멀어지게 했다."이해할 수가 없어요. 제 여동생이 레에 살거든요. 여동생은 일을 빨리 하게 만드는 것들은 뭐든지 가지고 있어요. 옷을 가게에서 구하고 지프를 타고 다니고 전화기나 가스 요리기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것들 때문에 시간이 많이 절약될 텐데, 제가 찾아갈 때면 저하고 이야기 나눌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답니다." (p.206)"세상 모든 사회는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에 두고 색깔 렌즈를 통해 다른 문화를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중략) 그것은 또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같거나 자신처럼 되고 싶어 한다고 전제한다." (p.41)'미래를 향하여'는 변화의 결과로 그동안 너무 고통스럽게 보였던 자기 부정의 깊은 상처를 새로운 자긍심으로 치유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존속하고 있는 자급경제공동체의 하나로서 라다크는 우리의 과거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더욱 중요한 미래에 대한 일깨움이다. 개발의 진행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볼 수 있었던 독특한 경험에 근거하여,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오래된 기반위에 새로운 것의 건설할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하다.개발에 반대하는 대안으로 제시한, '반개발'은 우선적으로 사람들이 적절하고 충분한 정보를 확보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미래에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최적의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구가 줄어서 사라질 도시 순위가 발표되곤 한다. 반개발은 지역 운동의 입장에서 전통적 시스템의 효용성을 지역경제에 다양성 복원하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제 누구나, 자신들의 환경을 이해하고 전통 의식을 오래도록 지속시키고 재발견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얼마든지 의견을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서강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1-09 13:54:15

천영식 KBS 이사

[새론새평] KBS이사여서 죄송합니다

KBS 재미도 없고 균형감도 상실국민 눈높이 벗어난 '국민 방송'30~59세 시청률 1.1%에 불과해정작 경영진은 "갈 때까지 가 보자""방송이 이게 뭡니까. KBS 안 봅니다."요즘 'KBS 이사' 직함이 찍힌 명함을 건넬 때 당혹스러운 일이 잦아졌다. 명색이 국민의 방송인데, 국민들로부터 원망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KBS를 변화시켜 보겠다는 순수한 열정을 갖고 이사직을 시작한 지 4개월. KBS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라앉고 있었지만, 그 4개월 동안도 더욱더 가라앉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지난 12월 2019년 KBS 예산을 심의하면서 KBS 경영진의 미래 비전 부재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혼자만이 아니다. 11명의 이사진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KBS의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필자처럼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KBS 이사를 맡고 있는 3명은 '온몸으로' 걱정하고 있고, 나머지 더불어민주당 추천의 다수 이사들은 '남몰래' 걱정하고 있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4개월간 겪은 KBS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표현하라면, 안으로는 무사안일, 밖으로는 마이동풍이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고 말해도, 선실에 남아 있으라고 방송했던 세월호 선장을 떠올리게 한다. 먹통이다.대학에서 미디어 관련 강의 도중 KBS 방송을 보느냐는 질문에 70여 명의 학생 중 어느 누구도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안 본다는 것이다. 왜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간단했다. "재미없어요."한국갤럽은 매달 한국인이 좋아하는 상위 20개 TV 프로그램을 조사하고 있다. KBS1 TV에서는 일일연속극 하나만 포함될 뿐이다. 국민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은 없는 것이다. KBS1 TV는 국민의 돈을 직접 받는 유일한 방송이지만, 국민의 시야로부터 사라져 가고 있다. 배신이다.KBS는 지난 11월 6개의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를 제외하고, 나머지 5개는 1~3%에서 바닥을 치고 있다. 없는 돈에 약 300억원의 제작비를 추가 투입했는데도 약발이 안 먹힌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무능이다.공영방송이니 재미없어도 된다고? 편파 논란까지 휩싸여 있다. 공영방송의 존재 기반인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김정은 찬양을 쏟아내는 '오늘밤 김제동'을 보는 불편한 심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새해 첫 방송을 했던 1월 2일을 기준으로 핵심 시청층인 3059(30대에서 60세 미만) 국민의 시청률이 1.1%에 불과하다. 또 프로그램의 타깃 대상인 20~40대 시청률은 0.6%다. 청년층은 물론 중장년층까지 골고루 보지 않는다.5개월째 그러고 있는데도 정작 KBS 경영진은 갈 때까지 가 보자고 말한다. 갈 때라는 게 가라앉을 때를 의미하는 걸까. 시청자를 볼모로 한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다. 그 방송은 워낙 문재인 대통령의 홍보에 열을 올린다고 해서 어느 언론으로부터 '오늘밤 청와대'라는 조롱까지 받고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KBS 방송은 재미도 없고 싸가지(균형감 상실)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 불편하다.공영방송 전문가인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신문과 달리 공영방송은 방송사 또는 방송사 조직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장이 아니라 사주인 '시민 전체'의 의견을 대변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공영방송론」 300쪽) 그런데도 KBS 기득권 세력들은 김제동 방송을 비판하는 시민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화를 내고 있다. 이사회 내부 논의도 반대했다. 누구를 위한 표현의 자유일까.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김제동 방송을 보지 않거나 불편해하는 국민 95% 이상을 KBS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다. 장외투쟁으로 떠밀고 있는 것이다.국민의 눈높이에서 일탈한 방송은 국민의 방송일 수 없다. 방송을 싸가지 없이 만드는 말 못 할 정치적 이유가 있는 건지, 대학생들 눈에 비친 대로 아예 '노잼' DNA를 갖고 있는 건지, 누가 나서서 죄송하다는 얘기라도 해줬으면….국민 없는 국민방송. 국민은 지금 밑 빠진 독에 시청료라는 물을 갖다 붓고 있다. 야권 이사로서 저는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2019-01-09 13:33:51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종교칼럼] 새해 소원

아들이 독일에서 학교 다닐 때 느닷없이 "제 친구 마틴의 새해 소원은 부모님이 결혼하는 거래요"라고 말했다. 이건 무슨 소리? 당시 마틴은 고1이었고, 그의 여동생도 있는데 부모님 결혼이라니? 그의 부모는 호적등기소에 가서 서명만 하면 법적 부부가 되는데 굳이 마다하고 십수 년간 동거를 택했다. 그런 관계가 아들과 딸이 보기에도 안 좋았나 보다. 그래서 새해 소원이 부모님 결혼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의 덕담도 "마틴, 올해는 너의 부모님이 꼭 결혼하기를 바라!"로 될 수밖에 없었다.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선물이란 원래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유를 대지 않고 그냥 받는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받는 축복이다. 받아서 즐거운 것이다. 때로는 어떤 선물은 반기지 않아도 거절 못하고 받아야만 할 때도 있다.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일 때 다가오는 시간이란 축복이라기보다 공포이다.인간은 태양과 달의 공전주기에 맞추어 시간의 매듭을 만들었다. 그래야 시간을 마디마다 볼 수 있고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보는 것은 마음의 눈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흐름이 영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이 시간이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은 그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시간을 새롭게 하려면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영혼을 새롭게 하자.우리에게 2019년이라는 선물은 우리 인생과 역사를 새롭게 하기 위한 기회다. 우리가 지난해와는 다른 영혼으로 새해를 살아간다면 정말 새로운 한 해가 될 것이다. 새해에는 저마다 마음을 새롭게, 관계를 새롭게, 결심을 새롭게 한다.올해는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원래 시간이 돼지와 무슨 상관인가? 물리학적 시간으로는 새해도 황금돼지해도 없다. 더구나 황금돼지가 금은방 외에 어디 있는가? 조상들이 내면의 질서를 시간에 투영한 것이다. 황금은 좋은 것의 상징이다. 그래서 '황금빛' 미래라는 말도 있다. 조상들의 지혜처럼 올해는 황금빛 한 해를 꿈꾸자.한 사람은 코가 1밀리미터만 작았으면, 다른 사람은 1밀리미터만 높았으면 하고 소원을 빈다. 대부분 키가 크기를 바라지만, 키가 그만 자랐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도 있다.모든 수험생이 소위 SKY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모든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인가? 인류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각자의 소원을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실까? 그러나 우리는 염려할 것 없다. 걱정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나는 하나님이 좀 힘드시더라도 여러분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길 빈다. 새해에는 독자 여러분이 육체의 질병에서, 마음의 상처에서, 사회적 불의에서 놓임받기를 바란다. 재정적 어려움에서, 상황의 고통에서, 관계의 피곤함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바란다.오늘날 우리는 물질적 소원을 많이 빌지만, 사랑의 가치를 넘을 수는 없다. 새해는 새로워진 영혼으로 새 꿈을 꾸고, 사랑의 새 노래를 부르자. 한 해 내내 소원을 놓지 마시기 바란다. 희망은 인생의 등대이고, 소원은 인생 마차를 끄는 말이다. 소원이 살아 있는 한 항상 새해다. 소원을 붙들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새해를 살아간다.

2019-01-09 10:09:19

이장우(경북대 교수, 성공경제연구소 이사장)

[경제칼럼] 우리의 혁신 점수는 몇 점일까

20년 가까운 세월 혁신 얘기했지만정작 실천된 것 별로 없어 점수 낮아우리 경제 흐름 지역 혁신은 필수적정치가 경제 망치게 방치해선 안 돼또다시 맞이한 새해에는 경쟁력을 잃어가는 산업도시들이 다시 살아나고 경제가 재도약하기를 소망해 본다. 하지만 이 소망이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정부 탓, 정치 탓, 세상 탓만 할 수는 없다. 지금은 지역도 개인도 스스로 혁신에 나서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지역 혁신이란 지역의 고유한 강점과 창의력을 이용해 과감한 도전과 발상의 전환으로 지역 경제를 구조적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말한다.산업화 경쟁력을 개발도상국에 빼앗긴 선진국 중 중앙집중형 경제발전 모델에 의해 선진 경제를 이룩한 나라는 없다. 선진 국가들은 지역과 개인들이 그동안 축적한 지식 자본을 토대로 스스로 혁신에 나서게 함으로써 국가 경제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그렇다면 우리 지역이 가지고 있는 혁신 의지와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 질문에 '예'라는 대답을 몇 개나 할 수 있을지 스스로 물어보자.(1)지역총생산 기준으로 지역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지?(2)대학 연구비 중 지역 중소기업과의 협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부나 대기업으로부터의 연구비에 비해 적정한지?(3)대학과 주변 연구소가 협력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상업화한 성공 사례가 눈에 띄게 있는지?(4)시장·부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과 총장부총장, 그리고 연구원장 등이 한두 달에 한 번씩 정례적으로 만나 지역 현안을 의논하는지?(5)창업의 성공 사례들이 지역 언론에 자주 등장하여 일상적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지?(6)지역 기업들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경영방식으로 경쟁력을 발휘하고 지역사회와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는지?(7)지역민들은 자녀들의 창업이나 지역의 유망 중소기업 취업을 격려하는지?(8)지역의 창업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벤처투자사나 금융기관이 있는지?(9)혁신 관련 지역 단체들이 집단이익보다는 지자체와 산업계 간 수평적 협력관계를 자발적으로 촉진하고자 하는지?(10)지역 경제 주체들이 타 지역으로부터 온 인재나 기업에 대해 우호적이고 개방적인지?이러한 10가지 질문은 실리콘밸리와 같은 전형적인 혁신 지역의 성공 요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만약 이 중 5개 정도 이상에 자신 있게 '예'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지역은 성공 궤도에 이미 진입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우리 지역의 점수는 몇 점이나 될까? 절망적인 점수 평가가 많을 것 같다. 그 이유는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입으로는 혁신을 얘기했지만 정작 실천된 것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는 거창한 담론보다는 위 10가지 항목이라도 세심하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본래 개별 경제 주체들의 창의성은 국가 차원의 거대한 단일 용광로에 담아내거나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같은 인위적 거점으로 관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자발적 창의성이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물꼬를 터주고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우리의 경제 발전 단계나 미래 흐름을 볼 때 자기 혁신과 지역 혁신은 필수적이다. 외부 환경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혁신에 나서야 한다.지역의 고유한 강점과 창의력을 이용해 과감한 도전과 발상의 전환으로 지역 경제를 구조적으로 탈바꿈하는 혁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과정에서 특히 정치가 경제를 망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2019-01-08 17:00:29

주사기로 약물 먹이기 (이미지 출처: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아픈 개·고양이 더 힘들게 하는 약 먹이기"…반려동물을 위한 약 먹이는 법

동물이 아프면 아픈 아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처럼 가족들은 애가 탄다. 동물병원에 오는 동물의 질병은 구토와 설사. 기침, 피부질환 등이 다수를 차지하며 이런 질병들은 가정에서의 약물 급여가 치료에 매우 중요하다.특히 신장 질환, 심장 질환 등의 만성 질환을 가진 동물은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약을 먹이기 어려워하는 보호자가 많다. 보호자가 반려동물에게 편하게 약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간식에 가루약 섞어주기약을 음식과 함께 먹이면 편리하긴 하지만 약물의 흡수가 지연될 수 있다. 그래서 소량의 기호성 높은 간식에 약을 섞어주는 것을 추천한다. 약을 먹은 후 칭찬 한마디는 동물이 쓴맛도 기꺼이 참아내도록 동기를 부여한다.1) 개개는 사람의 미각의 십 분의 일 정도만 맛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쓴맛에 대한 감지도가 떨어지므로 기분 좋은 상황에서 간식과 칭찬이 더해진다면 비교적 약을 잘 먹는 편이다.통조림이나 부드러운 음식(삶은 고구마, 치즈, 소시지 등)에 약을 뿌려주거나 간식 속에 감추어 급여한다. 단맛을 좋아하는 개라면 프락토올리고당을 한두 방울 섞어 먹이면 된다.설탕이나 꿀대신 프락토올리고당을 권장하는 이유는 설탕보다 열량이 현저히 낮으면서도 충치균에 이용되지 않으며, 장내 비피더스균의 성장을 돕고 비만 예방에 도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을 급여할 목적 외에는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2) 고양이고양이는 개보다 미각이 덜 발달했으며 단맛을 느끼지 못하고 후각으로 느껴지는 지방의 풍미에 예민하다. 평상시 잘 먹는 통조림이나 액상 간식을 살짝 데워서 약을 섞어 제공한다. 약을 먹자마자 침을 흘리는 등 쓴맛을 극히 싫어하는 고양이의 경우 캡슐에 담긴 약을 선택한다.◆알약 먹이기엄지와 중지를 이용하여 양 볼을 지그시 눌려주면 자연스레 입을 벌린다. 혀 안 깊이 알약을 넣고 입을 닫은 후 주둥이가 하늘을 향하도록 유지한다. 목 넘김을 관찰하여 알약을 삼켰는지를 확인한다.이 방법은 동물의 혀 깊이 알약을 신속하게 넣어주어야 하므로 동물을 보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약을 먹인 후 칭찬을 해주면 다음번에 약을 먹일 때 한층 수월할 수 있다. 주둥이가 길거나 몸이 작은 동물의 경우 필건(알약급여기)을 이용한다.◆가루약을 반죽처럼 만들어 먹이기개는 가루약에 프락토올리고당을 한 방울 떨어뜨려 반죽을 만든 후 반대편 검지손가락 끝에 묻혀 입천장에 발라준다. 이때 엄지와 중지를 이용하여 양측 볼을 지그시 눌려주면 자연스레 입을 벌린다.고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기호성이 높은 통조림 기름 또는 액상 간식을 가루약과 반죽하여 급여하는 것이 좋다. ◆주사기를 이용해 가루약 먹이기약봉지는 내면이 방수 재질이므로 개의 경우 프락토올리고당 두세 방울과 소량의 물을 약봉지 안에 첨가해 가루약을 현탄액으로 만든 후 주사기로 뽑아서 급여한다.한손으로 주둥이를 받쳐 하늘을 향하게 한 뒤 주사기를 어금니 쪽으로 주입하여 약물을 넣어준다. 개와 고양이는 송곳니와 어금니 사이 치아가 멀어져 있기 때문에 주사기를 이용할 경우 굳이 입을 크게 벌릴 필요가 없으며 혀를 날름거린다면 약을 잘 받아먹는 것이다.고양이는 수분 함량이 많은 액상 간식을 데운 후 가루약과 섞어 현탄액으로 만들어 같은 방법으로 급여가 가능하다. 쓴맛에 예민한 고양이가 약을 삼키지 않고 침을 흘린다면 캡슐을 이용해 급여하는 것이 좋다.◆약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고양이는?고양이는 약을 먹이는 과정에서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동물이다. 약물 급여에 대한 나쁜 기억이 형성되면 약을 먹고 쓴맛을 느끼자마자 침을 게워내며 삼키지 않으려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특히 구내염이 다발하는 길고양이들은 입안 염증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더욱 싫어할 수 있다. 이 경우 클립노시스(유아기 어미가 목덜미를 물고 다니는 습성이 남아있어 목덜미를 잡으면 릴렉스 되는 현상) 보정을 이용하여 캡슐을 급여하도록 한다. 캡슐 표면에 버터 오일을 발라 거부감을 줄이기도 한다.하지만 이마저도 어려울 경우 수의사와 상의하여 약물 지속 효과가 오래가는 주사 치료를 고려하여야 한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1-08 10:56:43

이춘희 계명대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同寅協恭(동인협공), 공경하며 협력하는 한 해 되길

올해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의 임중도원(任重道遠)이다. 앞날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의미이다. 이에 덧붙여 나는 위정자들에게 동인협공(同寅協恭)을 추천한다. 동인과 협공은 모두 "서로 공손히 하면서 직분을 다 한다"는 뜻이며, 동인협공은 서로 조심하면서 함께 훌륭한 정사를 위해 협력한다는 의미이다.동인협공은 『서경』(書經) '고요모'(皐陶謨) 편에 맨 처음 나온다. 고요(皐陶)라는 신하가 새로 즉위한 순(舜)임금 앞에서 또 다른 신하 우(禹)에게 "서로 공경하고 화합을 이루도록 하십시오"(同寅協恭和衷哉)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다. 두 중신이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를 말한 것이다. 순임금을 이어 후에 왕이 된 우는 고요를 재상으로 삼고자 했으나, 그가 곧 죽는 바람에 그의 아들을 중용했다고 한다.공자의 46대손 공전(孔傳)은 동인협공을 "서로 공경하면서 착하고 바르게 한다"(使同敬合恭而和善)고 해석했고, 후한(後漢)의 채옹(蔡邕)이라는 문장가는 "함께 조심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하늘이 준 착한 마음을 조화롭게 할 수 있다"(同寅協恭, 以和天衷)라고 풀이했다. 동인협공은 비단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는 신하들이 지켜야 할 덕목일 뿐만 아니라, 협력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 세상의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성품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한국에서도 일찍이 숙종(肅宗) 임금이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신하들에게 "당동벌이(黨同伐異: 자기편에는 동조하고, 상대편은 배척한다)를 버리고, 동인협공의 기풍에 힘쓰라"고 했다.올해도 남북문제를 비롯해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다. 국가 간은 물론이고, 국내 정치에서도 먼저 상대를 공경하는 자세를 가지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다. 동인협공하는 한 해가 되자.

2019-01-07 19:30:00

인수일 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인수일 교수의 과학산책] 이산화탄소를 자원화하는 산업 시대 온다

이상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갑작스러운 추위는 예측도 어렵고 서민들의 체감온도를 더 떨어뜨린다. 이상기후가 낯선 것은 아니다. 작년 여름 한반도는 폭염으로 몸살을 앓았다.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그 뜨거웠던 여름에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어떻게든 견뎌보기로 했지만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집 밖에 나가서 아파트를 올려다보니 베란다 창문이 열려 있는 집은 우리 집뿐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 모든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풍이 우리 집 거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거 같았다. 뒤늦게 에어컨을 주문했지만 물량이 모자라 10일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에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서민들은 얼마나 힘들지 뼈저리게 공감하게 되었다.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온도가 2℃ 이상 올라가면 지구 생물의 3분의 1이 멸종 위기에 처한다고 경고한다. 지난해 IPCC 총회에서 '1.5도 특별 보고서'가 채택된 이유다.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꼽는다. 지구온난화는 우리가 연일 방출하고 있는 이산화탄소가 주범이다. 이산화탄소는 지표에서 반사되어 나오는복사에너지를 우주로 보내지 않고 다시 지구로 보내서 온도를 높인다. 이것이 지구에 온실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온실효과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구의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시켜 주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의 양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면서 평균기온이 올라가고 예기치 못한 기후변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지구의 기온 상승을 막을 수 있다. 화석연료를 태워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고 성장만을 추구해 온 인류는 과학기술이 지구온난화 문제도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다.필자는 오래전부터 이산화탄소를 자원으로 바꾸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빛과 촉매를 이용해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이산화탄소를 다시 쓸모 있는 연료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아직 효율이 상용화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높은 가능성을 인정받아 미국 투자사로부터 많은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다.지난해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신규 R&D 사업의 기획 수립 배경과 주요 내용에 대한 공청회를 가진 바 있다. 2030년까지 에너지 융합형 이산화탄소 전환 기술 개발을 통해 대규모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신산업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는 놀랄 일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다. 지구온난화라는 위기 속에서 인류는 이산화탄소를 유용한 자원으로 다시 전환하고 이를 산업화하겠다는 계획을 발 빠르게 실천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자원화하는 산업은 반드시 미래에 온다고 예상된다. 대구시와 지역 기업들도 탄소 자원화 산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할과 방법을 좀 더 적극적으로, 선제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늘리고 시범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또는 연구에 참여하는 기업이나 기관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해가 지날수록 폭염과 한파가 더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혁신 기술로 무장한 신산업이 육성될 수 있는 터전 없이는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어렵다.

2019-01-07 19:30: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세월의 흔적] <13> 비녀

비녀는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장신구이다. 그래서 여인이 비녀를 잃거나 빼면 정절이나 긍지를 잃는 것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외형상 남근을 상징하며, 남자를 경험한 여인 즉 기혼녀만이 꽂을 자격이 있다. 다만 단옷날에 한해서 처녀도 창포 뿌리를 깎아서 만든 비녀를 꽂을 수 있다. 단오는 4대 명절 가운데 하나이다.예부터 혼인한 여인은 머리를 곱게 빗어 둥글게 쪽을 찌었다. 그렇게 다듬어서 틀어 올린 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비녀를 꽂았다. 또한 관(冠)이나 가체(加髢)를 머리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꽂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남자들이 관을 쓸 때 벗겨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용도로 쓰였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부인들의 쪽찐 머리에 꽂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여인들의 전용물로 인식되었다.조선 중기에 이르러 가체에 의한 얹은머리가 유행하였다. 얹은머리는 본머리와 다리를 합쳐 땋아서 위로 둥글게 둘러 얹은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그때 다리를 본체에 고정시키기 위해 비녀를 꽂았다. 그밖에도 궁중 의식용인 큰머리, 궁중이나 양반 집안의 예장용인 어여머리에도 비녀를 사용하여 가체를 고정시켰다.얹은머리는 그에 소요되는 다리의 값이 지나치게 고가였다. 그뿐 아니라 장식을 위한 금옥주패(金玉珠貝)의 사치가 날로 더하였다. 그런 폐단이 심해지자 영․정조 때에 이르러 발제개혁(髮制改革)과 더불어 이에 대한 금령이 여러 차례 있었다. 순조 때에 이르자 쪽머리가 일반화되면서 비녀가 다채로워졌을 뿐 아니라 기교도 크게 발달하였다.비녀는 관을 고정시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남자들의 경우 면류관에 꽂는 옥잠도(玉簪導) 또는 금잠도(金簪導), 조정 신하의 양관(梁冠)에 꽂는 각잠(角簪)이 있었다. 여인들의 경우에는 화관(花冠)에 비녀를 꽂아서 관을 고정시켰으며, 신분에 따라 사용에도 차별이 있었다. 상류층에서는 계절과 용도에 따라 금은주옥(金銀珠玉)을 다르게 사용하였으며, 민서들은 나무나 뿔, 백동이나 은 종류 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비녀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모양은 한쪽 끝이 뭉쳐져 빠지지 않도록 되어 있는데, 그 부분을 비녀머리라 한다. 비녀머리에 장식이 있는 비녀를 꾸민잠, 별로 꾸밈이 없는 비녀를 민비녀라 한다. 또한 재료에 따라 금․은․백동․놋․진주․옥․비취․산호․나무․뿔․뼈 비녀로 나눈다. 그리고 비녀머리 형태의 장식에 따라 용잠(龍簪)․봉잠(鳳簪)․원앙잠(鴛鴦簪)․불두잠(佛頭簪)․어두잠(魚頭簪)․모란잠(牡丹簪)․석류잠(石榴簪) 등으로 구분한다. 이 같은 비녀머리에는 부귀․장수․다남을 상징하는 길상(吉祥) 문양을 조각하거나 보석류를 박은 것도 있다. 그리고 실용성 외에도 장식과 신분을 상징하는 장신구였다.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01-07 19:30:00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김중기의 필름통] 보헤미안 랩소디

그룹 '퀸'을 알고 있었던 이가 얼마나 될까. 또 그들의 괴상한(?) 곡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어 본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19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도 리더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비운의 죽음(에이즈)만 겨우 기억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가 죽은 지 27년이 지난 2018년 10월의 마지막 날 그의 전기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됐다. 필자는 첫날 극장을 찾았다. 금방 간판을 내릴 것 같아 첫날 안 보면 못 볼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런데 이 예측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당초 100만 명 달성도 어려울 것이라던 영화가 두 달 반이나 상영되면서 급기야 1천만 명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퀸과 동시대를 호흡한 한국의 50대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영화를 봐야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퀸은 한국에서 보편적인 인기를 끈 그룹이 아니었다. 영화도 뛰어난 서사적 플롯이 있거나, 극적 재미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배우 라미 멜릭에 대한 인지도도 최악이었다. 모든 정황은 잘 해야 50만~60만 명 이하였다.도대체 이 영화가 주는 힘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프레디 머큐리의 재발견일 것이다. 그는 작사, 작곡, 연주, 보컬을 다 소화하고, 퀸의 로고 디자인에 의상도 혼자 했다. 토털 뮤지션의 천재성을 보였다. 영화는 그런 머큐리가 사실은 외로운 한 인간이었고 슬프게 삶을 마무리한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맺어지지 못했고, 그가 결혼한 상대는 동성이어서 결혼 사실도 인정받지 못했다.그럼에도 이 영화가 유독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은 설명이 부족하다. 한국인의 피 속에 녹아 있는 신파적인 한(恨)일까. 아니면 80년대 어둡고 암울했던 젊음을 머큐리의 삶에 투영한 한국 중년 관객의 감정이입일까. 필자가 옆 관객의 눈흘김을 견디면서도 10분간 통곡을 하면서 영화를 본 것은 후자 때문이었다.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filmtong@hanmail.net

2019-01-07 19:30:00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 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왕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는 '승정원일기'

학창 시절 한 해를 시작하면서 꼭 결심하는 것이 있었다. 올해만큼은 일기를 빠짐없이 써서 내 삶의 모습을 정리해 보자는 것이었다. 518년간 존속한 조선왕조에서도 공식적인 왕실의 일기가 있었으니,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바로 그것이다.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出納)을 맡으면서 비서실 기능을 했던 승정원에서 날마다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날짜별로 기록한 책이다. 원래 건국 초기부터 작성된 것으로 여겨지나, 광해군 때까지 기록은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623년(인조 1)부터 1910년(융희 4)까지 288년간의 기록 3천243책이다.초서로 쓴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탈초(脫草)한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원본의 책 크기는 일률적이지는 않지만 대체로 세로 40㎝, 가로 28㎝ 정도이다. 288년에 걸친 방대한 역사 기록 288년에 걸친 기록물이라는 점과 3천243책, 총 문자량 2억4천여만 자에 달하는 분량으로 단일한 기록 중에서는 세계 최대의 역사기록물로 분류된다. 현재 조선왕조실록 번역본이 400여 책인데 비하여, 승정원일기의 번역 예상 책 수는 5천여 책으로, 그만큼 기록된 내용이 방대함을 알 수 있다.세계 최대의 역사기록물인 승정원일기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왕과 신하의 세밀한 대화까지 기록한 상세함, 빠짐없이 기록된 날씨, 1870년대 이후 대외관계 비사(秘史) 등이다.승정원일기는 실록 편찬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로 활용되었으며, 특히 왕을 최측근에서 모시는 후설(喉舌: 목구멍과 혀)의 직책에 있었던 승정원에서 이루어진 기록인 만큼 왕의 기분, 숨결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기록에 담았다. 왕이 웃거나 화를 낸 상황, 건강 상태까지 담고 있다. 영조시대 청계천 공사에 관한 내용에는 구간별 공사 현황들도 자세히 정리하고 있다.승정원은 왕의 지시 사항이나 명령을 정부 각 기관과 외부에 전달하는 역할과 함께 왕에게 보고하는 각종 문서나 신하들의 건의 사항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아 정원(政院) 또는 후원(喉院)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후'는 목구멍을 뜻하는 한자어로 승정원이 국왕의 말을 바로 대변하는 요처임을 암시한다.승정원일기의 편찬은 승사(承史)라 칭하는 승지(承旨)와 주서(注書)가 공동으로 담당하였으며 최종 기록은 주서들에게 맡겨졌다. 승지는 무관도 임명될 수 있었으나 주서는 반드시 학문과 문장이 검증된 문관을 뽑아 임명하였다.승정원일기는 왕과 신하들의 대화 기록이 특히 자세하며, 이들 기록에는 왕의 표정이나 감정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역대 왕들 스스로가 자신의 병세에 대해 신하들에게 이야기하고 약방이나 의원들에게 자문을 구한 사실과 왕의 기분과 병세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이 할애되고 있다. 왕의 언행, 기분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던 철저한 기록정신이 승정원일기를 탄생시켰던 근본 요인이었다.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를 설계 승정원일기는 일성록과 더불어 일제강점 시기 일본인의 손에 의해 집필돼 정사(正史)로서 정통성이 부족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의 한계성을 보완해 주는 대체 자료로서 의미도 크다.승정원일기와 같은 명품 일기를 남긴 조선왕조의 뛰어난 기록문화의 전통은 우리에게 과거라는 미지의 공간을 보다 정확하고 생동감 있게 들여다보게 한다. 한 해가 시작되는 지금 개인 '승정원일기'를 작성해 볼 것을 권한다. 자신이 살아온 기록을 현재의 거울로 삼아, 발전된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9-01-07 19:30:00

이성환 계명대 교수

[세계의 창] 아베 신죠와 이토 히로부미

아베 정치 슬로건은 '아름다운 일본'2차 대전 이전 군국주의 침략 미화역사 트라우마 아직 치유되지 않아위안부 문제·강제징용 등 한국 반발아베 신조와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인에게 특별 각인된 일본 총리들이다. 두 사람은 일본 보수 정치의 산실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닮았다.이토는 일본 역사상 최연소(44세) 총리이며, 유일하게 네 번 총리를 역임했다. 아베도 2차 세계대전 후 최연소(52세) 총리이며, 2021년 9월의 예정된 임기를 마치면 재임 기간이 가장 긴 총리가 된다. 두 사람은 근대 일본의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한 요시다 쇼인을 스승으로 두고 있다.이토는 그의 문하생이었으며, 아베는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이토는 메이지 헌법 제정을 통해 천황을 제도적으로 신격화했으며, 아베는 지금의 헌법을 개정해 천황의 신성(神性)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두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요시다 쇼인은 이토를 '협상력 좋은' 보통 학생 정도로 평가했다. 이토는 협상력으로 수많은 정적을 제치고 평민에서 총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아베도 학력이 우수한 편은 아니었으나, 총리 및 장관을 지낸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에 입문했다.두 사람은 한반도를 탐욕의 대상으로 삼고, 시대의 흐름을 왜곡한 점도 닮았다. 이토는 한반도 지배가 일본 안전의 필수 요건이라 믿었다. 청일 전쟁의 주역으로서 한반도 병탄의 길을 열었다. 그 후 일본은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통해 근대 제국주의의 반열에 올랐다. 이토를 근대 제국주의 국가 일본을 만든 사나이라 일컫는 이유이다.아베는 1980년대 말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외무장관인 아버지의 비서로 이 문제를 담당했다. 납치자 문제와 북한 때리기는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2002년 일시 귀국한 납치 생존자 5명의 북한 귀환을 저지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이를 배경으로 2006년 총리가 되었다. 그가 일본 외교의 첫 '사명'으로 납치자 문제를 내세우는 배경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문제에 매진할 때도 아베는 납치자 문제를 우선했다. 지금껏 납치자 문제는 성과가 없다. 그러나 그는 개헌, 군비 강화 등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 위협론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꺼낸다.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를 두고 한일 관계의 법적 기반이 무너졌다고 비난했다. 지난 연말부터 사격통제 레이더와 근거리 위협 비행 문제로 공방 중이다. 아베는 무리하게 영상을 공개하도록 해 논란을 더욱 키웠다.그는 왜 한국에 대해 공세적일까. 아베의 정치 슬로건은 '아름다운 일본'이다. 그의 아름다운 일본은 2차 대전 이전의 군국주의 일본이다. 이토가 닦아 놓은 아시아 침략을 미화한 것이다. 과거 주변국 침략을 정복의 영광쯤으로 생각하는 그에게 평화헌법은 굴욕이며, 국군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위대는 부끄럽다. 헌법 개정과 국가주의 교육을 통해 그는 2차 대전 이후의 평화국가 일본을 전쟁국가로 만들려 하고 있다.아베의 군국주의 회귀에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이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등에 대한 한국의 반발은 군국주의 국가 일본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국제적으로도 호소력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징용 피해자들이 아베의 '아름다운 일본'을 '범죄 국가 일본'으로 만들고 있다. 아베가 과거사에 대해 과잉 반응하며 뜬금없이 한국을 겨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아베는 2차 대전 이후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총리이다.아베 정권이 계속되는 한 한일 관계는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이토의 한국 식민지화로 시작된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트라우마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아베가 추구하는 군국주의 일본은 또다시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한다. 아베는 이토를 닮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한반도가 아니다.

2019-01-07 13:38:50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수성을 지역위원장

[기고] 적폐 청산, 너무 오래 한다

새해인데도 식당에 손님이 없다. 사업을 하는 지인들도 예외 없이 전망에 대해 부정적이다.경제 전문가가 아니니 왜 경기가 나빠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경제를 살려야 하는지에 대한 뾰족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핑곗거리를 찾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경제에는 경제 외적인 변수도 큰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남북 관계의 훈풍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평화가 찾아오면 투자와 교역이 늘어날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가 더 있다. 이쯤에서 적폐 청산을 위한 수사는 마무리하고 민생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바라고 있는 것 같다.문재인 정부 출범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도 적폐 청산을 향한 검찰의 칼끝은 멈추지 않고 있다. 국정 농단 수사도 계속되고 있다. 사법 농단을 수사하기 위해 전직 대법원장이 곧 검찰에 불려 나온다고 한다. 전직 대법원장의 수사는 결론이 어떻게 나든지 간에 사법 불신이라는 커다란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래도 우리나라 사법부는 믿을 만하다고 이야기해 보지만 얼마나 수긍할지 말하는 나로서도 조금 궁색하다는 생각이 든다.적폐 청산이 나쁘거나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과유불급이다. 적폐 청산을 너무 오래 하고 또 과하게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필자가 경찰에 있을 때 수사 경찰의 모토는 신속, 공정, 친절이었다. 우선, 수사는 빨리 끝내야 한다. 그래야 법적 불안정성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 수사가 길어져서 좋을 것은 없다. 수사를 받기 위해 수사기관을 들락거리는 사람이 무슨 정신으로 제대로 생업에 종사할 여유를 가질 수 있겠는가? 보통 사람은 경찰서에서 한 번 출석요구를 하면 그때부터 며칠간은 잠을 설칠 정도로 수사라는 것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런 만큼 사법권은 신속하게 행사돼야 한다.여기에 더하여 검찰의 적폐 청산 수사가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검찰로서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들 수 있겠다. 법과 원칙에 따른 적법한 수사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사가 적법하기만 해서 될 것인가? 수사는 개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억압적 사법 행정 작용이므로 죄와 벌이 상응해야 하며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 최소 범위에서 그쳐야 한다. 그것은 마치 암 수술을 위한 외과 수술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부위만 잘라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야 국민들의 공감을 받는 정당한 수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한 수사인지의 판단은 칼을 쥔 사람이나 칼질을 당하는 사람보다는 지켜보는 제3자들이 내리는 것이다. 적법한 수사라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지금의 수사가 과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수사가 아닐 수 있다.기해년 새해를 맞아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이 우리 검찰과 정부가 시민들의 여론에 귀를 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작금의 어려운 시대에 도움이 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바란다.

2019-01-07 13:36:19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시작은 늘 대구였습니다

시작은 늘 대구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이 그랬고 2·28민주운동이 그랬습니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나랏빚을 갚자며 온 국민이 들불처럼 일어난 국권회복운동이었습니다. 십시일반 모두 힘을 모았습니다. 하루치 일당을 의연하는 사람도 있었고 제법 큰돈을 쾌척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도적과 걸인들까지도 동참하여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국채보상운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경주, 서채봉, 김달준, 정말경, 최실경, 이덕수 그리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배씨까지. 모두 대구의 여성들입니다. 나라 위하는 마음은 남녀가 다르지 않다며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고 앞장서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여성 국채보상운동의 불씨가 되었고 동시에 근대여성운동의 효시가 되어 대구를 상징하는 또 하나, '시작의 역사'로 남았습니다. 현재 국채보상운동에 관한 기록물들은 세계유네스코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1960년의 2·28민주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는 '리승만 박사! 대통령으로 모시자'라는 현수막이 버젓이 나붙던, 즉 국민이 대통령을 '모시던' 시절이었습니다. 독재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져도, 불의가 횡행하고 민주주의가 쪼그라들어도 누구 하나 말 못하고 숨죽여 살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이들이 대구의 앳된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그날 2월 28일, 자유당 정권은 같은 날 수성천변에서 있을 예정이던 제4대 정부통령선거 야당 후보의 유세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일요일임에도 학생들을 등교케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대구의 학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와 당시 지역 최고의 권부였던 경북도청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의 결기가 어떠했는지는 시위를 이끌었던 경북고등학교 이대우 군이 쓰고 읽었던 결의문의 한 부분만 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정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이들의 외침은 3·15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초, 2·28민주운동은 늦게나마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대구의 시작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섬유산업이 그랬고 IT산업이 그랬듯 나라 경제의 시작도 대구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 우리를 일으켜 세운 것은 대구의 섬유산업이었습니다. 꺼져 가던 경제의 불씨를 되살리고 대한민국을 정보통신산업의 강국으로 거듭나게 한 곳도 이곳 대구경북이었습니다.그러고 보면 독립운동에서 해방 후 민주화운동, 그리고 경제부흥운동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 고비고비마다 대구만큼 결정적 역할을 한 곳도 없습니다. 모두가 막막해할 때 먼저 시작하고 새로운 길을 내어 보였습니다. 결코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았으며 언제나 용서와 화해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그러니 대구는 앞으로도 시작의 도시다워야 합니다. 기분 좋은 시작, 새로운 희망이 자꾸자꾸 생겨나는 도시, 대한민국의 청년이면 누구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하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이 대구라야 합니다.2019년,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삶의 방식도 바뀌고 있습니다. 인류 문명이 4.0 초(超)연결의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대구가 한 번 더 힘을 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늘 그랬듯 대구의 힘은 곳곳에 있습니다. 남일동의 부인처럼, 2·28의 학생처럼 서로가 서로를 북돋우고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을 때 진짜 대구의 힘이 생겨납니다. 곳곳의 힘들이 모여, 곳곳의 힘들이 이어져 함께 새로운 대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물산업, 로봇산업, 의료산업, 에너지산업, 미래형자동차산업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시작의 도시는 그래야 합니다. 그렇게 다시, 대한민국을 리드해야 합니다.

2019-01-06 15:48:51

이근수 대구시 기계로봇과장

[기고] 로봇산업 선도도시, 대구를 꿈꾸며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펙의 희곡에서 처음 등장한 로봇(Robot)이라는 말은 체코어로 '노동'을 의미한다. 그런 만큼 로봇은 인간을 대신해 다양한 노동 현장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전 세계적으로 로봇시장 규모는 2016년 915억달러에서 2020년 1천880억달러로 연평균 20% 성장이 전망된다. 이 중 산업용 로봇은 전체의 62%, 의료·복지·교육 등 서비스 로봇이 38%를 차지하고 있다.국내 로봇산업 성장세도 빠르다. 연평균 18.65% 성장률을 보이며 2013년 4조2천912억원에서 2016년 7조1천680억원으로 성장했다. 산업용 로봇만 놓고 본다면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전 세계 판매량 2위, 로봇 보유량 4위, 밀집도에서는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로봇산업 선진국이다. IoT, AI, 빅데이터 등과 결합해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4차 산업혁명 시대의 블루오션으로 각광받고 있는 로봇산업의 국내 최적지가 바로 대구라고 하면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민들이 종종 있다. 대구는 전통적으로 로봇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계부품산업이 발달해 있으며, 국가 로봇 정책 수립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위치해 있다. 또 국내외 글로벌 로봇 제조 기업들이 대구에 둥지를 틀면서 2011년 28개에 불과했던 로봇 기업이 현재는 161개로 대폭 늘어났다.국제로봇올림피아드 한국대회 본선과 글로벌 로봇비즈니스포럼을 개최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해 11월 15일 대구에서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6개국 8개 로봇 클러스터의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글로벌 로봇 클러스터' 출범식이 열리기도 했다.대구시는 명실상부한 로봇 선도도시로 우뚝 서기 위해 몇 가지 과제를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가장 먼저 제조용 로봇, 서비스용 로봇 등 공급 기업과 로봇 제품을 활용하는 수요 기업 및 SI(System Integration) 기업의 확대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중소 제조업 업종별 로봇 활용 확대 지원과 로봇과 작업자가 협력 작업을 통해 효율적인 맞춤형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인간-로봇 협업형 로봇이 통합된 생산 라인 표준화 시범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산학이 협력해 글로벌 틈새시장을 타깃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가성비 좋은 로봇 핵심 부품을 개발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현재 감속기, 모터, 센서 등 로봇 핵심 부품들은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대구시는 중앙정부와 협력해 부품 경쟁력 강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로봇 핵심 부품의 국산화에 힘쓸 계획이다.무엇보다 다양한 로봇 기술 개발의 핵심적인 주체는 인재다. 이를 위해서 대학과 기업 지원기관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지역의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협업해 기업의 수요에 맞는 로봇산업을 견인할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다양한 정책을 마련한다.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존의 산업과 신산업이 융합된 고부가가치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아주 크다. 로봇산업을 통해 대구가 지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한다면 대구가 젊은 인재들이 몰려드는 기회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2019-01-04 05:30:00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투플러스원 엄마들

아이들 학원비 벌려 3D 업종 취업잦은 이직에 두달 일하고 한달 쉬어엄마들 보다 정당한 대우 받으려면업계 사람답게 일할 수 있게 개선을어떤 선배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집사람 일하니?" "두어 달 일하고 한 달 쉬어요." "투플러스원(2+1)이구나. 다 그래." 연전엔 아내만 그런 줄 알았는데, 21세기 한국 주부 상당수가 '2+1 노동' 중이었다. 왜 끈덕지게 일을 못 해? 의아한 이도 있겠지만, 엄마들은 '2+1'일 수밖에 없었다.엄마가 아이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싶기가 무섭게 아이 과외비가 호환마마처럼 다가온다. 엄마는 학원비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일자리를 구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의 세월 동안 경력단절여성이 되었다. 무슨 '맥'(脈)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미혼 때의 경력을 살리는, 재능을 살리고 보람도 얻을 수 있는,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인…, 암튼 마음에 드는, 흡족한 직장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그런데 언제든지 주부들을 환영하는 일들이 있다. "구인광고 보고 전화했는데요…" 하자마자 어서 와보시라고 하는 곳들. 형식상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보지만 거의 일단 채용된다. 바로 3D 업체들이다. 'Dirty'하고 'Difficult'하고 'Dangerous'한 일을 하는 곳. 콜센터, 청소, 간병, 식당, 캐셔, 판매, 노가다, 도우미, 공장….이 일들은 깨끗하다 할 수 없고 어렵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노동의 대가도 아주 적게 받는다. 갖은 까닭으로 덜 주려고 한다. 고용주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줄 수밖에 없기는 하다. 고용주는 정부 법 탓을 하는데 확실히 법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돈보다 더 문제는 이런 일들의 속성상, 무수히 받는 상처다. 육체적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 고용주에게만 받는 게 아니라 소위 중간관리자한테도 받고 동료끼리도 주고받는다. 물론 가장 큰 상처를 주시는 분들은 '고객님'들이다. 상처로 너덜너덜해지니 사흘 넘기기 어렵고, 삼 주 버티기가 어렵고, 석 달 넘기기가 벅차다. 3D노동은 본디 (한곳에서 오래 일하기가 힘들어) 잦은 퇴직과 이직이 당연지사라는 얘기다.다시 직장을 구하기까지 한 달가량 걸리는 것도 당연하다. 두어 달 일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상당히 고장 났기에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그 고생을 했으니 다음 일할 곳을 찾을 때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오래 쉬지도 못한다. 엄마가 버는 돈은 '학원비+알파(대출이자)'라고 보면 틀림없다. 엄마는 쉬어도 아이가 학원을 쉴 수는 없기 때문에, '2'달 일한 후, 쉰다기보다 전전긍긍하는 기간이 길어야 '1'달인 것이다.대우가 웬만하고 사람대접해 주고 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의 기쁨을 주는 업체라면 당연히 그만두거나 옮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개의 엄마들이 '2+1'이라는 것은 가는 곳마다 대우가 웬만하지 않고 보람을 얻기는커녕 상처투성이가 된다는 증거다. 물론 한 번 들어간 곳에서 오랜 기간 일하신 분들도 숱하게 계신다. 직장이 괜찮은 곳인 경우라면 그런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인내심이 뛰어난 경우라면 그분들의 인내심 때문에 투플러스원 엄마들이 모욕받아서는 안 된다. 참는 게 능사만은 아니다. 못 참고 나올 수도 있다. 사실 못 참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이뤄지는 게 개선이다.투플러스원 아내를 둔 남편의 마음도 편할 리 없다. 돈은 남자만 벌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혹은 마초적 사고를 가진 이뿐만 아니라 당연히 같이 벌어야지 생각하는 이라도 아내의 밤새 끙끙 앓는 소리를 견디기 쉽지 않을 테다. 투플러스원 엄마를 둔 자식의 마음도 편하지 않을 테다. 엄마 노동을 긍휼히 여겨 공부를 열심히 해주면 좋겠는데 성장하는 마음의 복잡함을 어찌 짐작하랴. 하지만 자식들도 분명히 알고 있을 테다. 자기들이 동수저급 흙수저급 경쟁이라도 하려면 엄마가 최소 투플러스원 해야 한다는 것을.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의 엄마들이, 3D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이, 보다 정당한 대우를 받고, 보다 상처를 덜 받으려면, 3D 업계가 보다 사람답게 일할 수 있게 개선되어야 한다. 법부터 제대로. 국회의원들이 3D 노동을 해봐야 정신 차린다.

2019-01-03 17:34:17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 산책] 누가 대장부라 하랴 /남이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다 없애리 豆滿江波飮馬無(두만강파음마무)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 태평 못 이루면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후세에 어느 누가 대장부라 불러주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이 시를 지은 남이(南怡: 1441-1468) 장군은 담대한 무인 기질의 호쾌하기 짝이 없는 쾌남아였다. 그는 개국 공신의 후예로서 화려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모두가 선망하던 문과 대신에 무과에 합격하여 벼슬을 시작했다.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 토벌에서 큰 공을 세워 젊은 나이에 명성을 떨쳤으며, 세조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여 겨우 27세 때 공조판서, 28세 때는 오늘날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되는 병조판서에 임명되었다.그러나 병조판서에 임명된 지 불과 13일 뒤에 세조가 세상을 떠나버렸고,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예종이 즉위했다. 예종은 즉위하던 그날 남이를 병조판서에서 전격적으로 해임하였고, 남이의 급격한 부상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조정의 신하들이 '이 때다' 하고 그를 마구 뒤흔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달포 뒤에는 간신 유자광에 의하여 역모 혐의가 씌워졌고, 그로부터 불과 3일 뒤에 저잣거리에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처참하기 짝이 없는 죽음을 당했다.위의 작품은 혜성처럼 찬란하게 등장했다가, 불꽃놀이처럼 아주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던, 비극적 풍운아 남이 장군이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뒤 백두산에 올라가서 지었다는 시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서 모두 다 없애'버린다니, 그 엄청난 스케일부터가 독자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한다. 게다가 그는 20대의 젊음이 가기 전에 나라를 태평하게 하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거침없이 토로하고 있다. 후세 사람들께 대장부라 불리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포부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실천적으로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허풍이나 수사적 과장에 불과한 걸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은 남이의 웅혼한 생애에 상응하는 호쾌하고도 장쾌한 기상의 소산일 것이다.이 대목에서 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주제 넘는 질문을, 그것도 아주 심하게 주제 넘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그대들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뭐라고?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임대업자를 꿈꾸고 있다고? 그 꿈이 이루어지면 후세 사람들이 과연 대장부라 불러줄까?

2019-01-03 15:15:16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매일춘추]2019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자

1년~10년~30년이 후딱 지나갑니다. 30년이면 한 세대(Generation). 대략 청년 30년, 중년 30년이면 인생은 노후로 접어든다. 그 때는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정리하는 시간이다. 벌써 2019년. 지천명(50세)이 1년 밖에 남지 않았다. 뭘 열심히 하든 안 하지 않던,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새해 벽두에 지난 시간을 잠시 반추해본다. 몇해 전 한 지역의 시립박물관에 방문을 했다가 우연히 사진전시회를 보게 됐다. 1990년대 우리 지역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놓은 무척 흥미로운 전시회였다. 1993년도에 찍은 지역의 기차역 사진 또 역 앞 도로의 사진 등 많은 수의 예전 사진을 보며, 한마디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분명 우리가 살아온 시간인데, 그 시간 우리가 살았던 사진 속의 모습은 어느 역사책에나 나오는 조선시대의 사진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왜 였을까. 아마 우리는 그렇게 많은 것들을 현재의 모습으로 덮고 잊어가며 까마득한 과거로 여기며 혹은 그런 시간이 아예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지내온 것들은 아닐까.요즘처럼 빠르게 세상이 발전하고 변해가는 시간에 20~30년 정도의 시간이라면 분명 그런 느낌을 주기엔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사실 잘 늙지 않는 것 같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어느새 늙어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세월은 그런가보다. 80년을 살아도, 죽을 때쯤 되돌아보면 십여 분의 파노라마 정도로 압축된다.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10년, 20년 후에는 우리의 역사가 된다"라는 생각으로 우리의 현재를 살아간다면 어떨까. 아마도 지금보다는 현재의 시간에 조금 더 많은 가치(價値)와 의미(意味)를 부여하며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게 되지 않을까. 또, 이 순간의 우리의 모습을 더욱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까. 누군가 말했다. 삶은 되돌아오지 않기에 아름답다고. 맞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도 곧 과거가 된다. 2019년 힘차게 시작했지만, 벌써 4일째 과거로 넘어가고 있다.2019년은 머지않은 미래 우리의 역사책에 어떤 제목을 가진 페이지가 될 것인지는 오늘부터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구라는 축복된 행성에서 살아가는 행복한 인간으로 30년을 살든 50년을 살든 100년을 살든,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가자. 특히 기해년 2019년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차도록.

2019-01-03 14:07:44

김계희 그림책 화가

[광장] 사랑이 커리큘럼이다

오래전 아이들을 가르칠 때 미술학원을 개원하려는 친구들이 커리큘럼에 관해 자주 묻곤 했다. 그럴 때 나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교수법이니 커리큘럼이니 하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을 진실로 사랑하면 그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고 모든 언어와 행동이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 나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수업 방식은 사라지고 그 아이에게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교수법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그게 아니라면 모든 계획과 수업법은 그저 커리큘럼을 채우는 수많은 답습에 불과해진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 사랑이 처음인 남자는 방법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방법이 사랑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다.사랑 속에서 저절로 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서툰 솜씨의 화살이라도 진정한 사랑에서 쏘아 올린 화살은 정확히 심장에 가서 꽂힌다. 그러니 나의 말이, 나의 칭찬이, 나의 방법이 이 아이의 심장에 닿고 있는가에 대한 매 순간의 인식이 필요하다.사랑은 물이 끓는 온도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비등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감동을 줄 수 없고 상대방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많은 교육이 참사랑을 기반으로 하지 못해 우리는 아이들에게 헛된 노력을 강요하며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우리는 과연 아이들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많은 부분 그렇지 않을 수 있다.아이가 공모전에 나가기 위해 선생님이 구성한 그림이나 공모전 입상작을 조합해 몇 번씩 따라 그리고 그것으로 상을 받아올 때 부모가 기뻐한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거짓과 불명예를 가르치는 것이다.많은 어머니가 말한다. "아니라는 건 알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그냥 두었어요."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그것은 불명예스러운 상이라고 왜 말하지 못하는가? 이 단적인 예를 보더라도 우리는 아이를 참사랑으로 기르고 있지 못한 부분이 많다.자부심과 명예가 무엇이며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할 어른들이 불명예를 가르치는 일에 공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자라 다시 교육을 하고 사업을 하고 정치를 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교육이 바뀌어야 하고 교육이 바뀌려면 사랑을 찾아야 한다.코엘료의 '오자히르'에는 단테의 신곡에 관한 구절이 나온다. "인간이 진실한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날, 잘 짜여 있던 모든 것은 혼란에 빠지고 확고한 진실로 여겨졌던 것들은 모두 뒤흔들릴 것입니다. 인간이 사랑하는 법에 눈뜰 때, 비로소 참된 세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사랑을 안다고 생각하면서 살겠지만, 사랑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용기는 갖지 못할 겁니다."우리는 탐욕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짓의 삶을 생산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진실로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면 그들의 미래와 삶을 염려하게 되고, 지금 하고 있는 많은 방식이 틀렸음을 알게 될 것이다.단테가 지적한 바대로 우리가 진실로 사랑할 때 확고한 진실로 여겼던 모든 것들이 거짓의 실체를 드러내며 뒤흔들릴 것이고, 교육은 바뀔 것이고, 세상은 변화될 것이다. 우리의 비정상은 정상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2019-01-03 14:03:51

천영애 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매일춘추]어쩌다보니, 2019년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라고 묘지명에 썼다. 죽음에 임박해서야 우물쭈물 보낸 세월을 탄식했으리라. 어쩌다보니 2019년이다. 삶이란 게 계획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고, 그렇게 살아지지도 않아서인지 2019년을 맞이하는 마음은 '어쩌다보니'이다.시간은 시계추처럼 정확히 분침으로 재단되지 않는다. 어떤 순간의 시간은 너무 짧고 어떤 순간의 시간은 너무 길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시간이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상대적인 시간으로 증명되지 않았는가.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정확하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굴곡에 따라 휘어지거나 늘어나고 줄어든다.나는 호적 나이가 1년 늦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부모님이 기억하는 내 나이와 호적의 나이는 다르다. 예전에는 그게 불만이었지만 지금은 1년이 어딘가 싶어서 감사할 지경이다. 거기에다 만 나이로 계산하면 무려 2년이 내려간다. 2년이라면 한라산을 백두산으로 옮겨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세월이다. 2년이나 더 젊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여유가 생기고, 좀 더 게으름을 피우며 느긋하게 살아도 별 일이 없을 것 같다. 가끔씩 혼자서 나이 계산을 하다가 웃는 이유이다.따지고 보면 그렇게 숨 가쁘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버나드 쇼처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도 죽음에 임박해서는 자신의 삶을 우물쭈물했다고 표현했다. 편의에 의해서 하루를 정하고 1년을 재단했을 뿐 시간의 흐름은 유장하다. 시작과 끝이 없고 당연히 여기서 저기까지라는 시간도 존재할 수 없다. 그냥 편의에 따라 재단한 시간에 쫓길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한겨울 찬바람 부는 어제와 오늘이 2018년과 2019년으로 해가 바뀌는 특별한 이틀이 되기도 할 뿐이다.만 나이를 세는 외국으로 이민간 지인은 갑자기 한 살이 적어지니까 삶의 여유가 생기고, 지금부터 뭘 시작해도 그리 급할 것 없는 나이다 싶어서 갑자기 뭔가에 도전해볼 용기가 생기더라고 했다. '이 나이에 뭘' 이라고 생각하다가 '이제 겨우 이 나이'라는 전혀 다른 나이 관념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도전했고, 그 도전은 성공을 앞두고 있다.새해가 온다고 시간에 쫓기지 말자. 우주적인 시간으로 보면 인간의 시간은 한 점 먼지에 불과할 뿐, 나이라는 것은 관념에 불과하다. 2년이나 나이가 적다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인정된다. 어쩌다보니 2019년이 되었지만 시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보내느냐가 중요할 뿐 시계에 새겨진 절대적 시간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2019-01-03 13:50:51

배성미 작.

[갤러리 탐방]시안미술관 배성미 '네 개의 모퉁이'(3월 31일까지)

해마다 연말이면 '교수신문'은 한 해를 돌아보며 사자성어 하나를 꼽아서 발표해왔다. 지난해를 정리하는 말은 임중도원(任重道遠)이다. 뭔가 하면, 짐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는 뜻이라 한다. 으음, 얼마나 막막한 상황일까. 이건 정치권에 대한 격려나 비판의 목소리도 되고, 여러모로 일이 많은 대학에 대한 신세한탄 같기도 하다. 풀어놓고 나니까 조금 알겠는데, 난 이런 사자성어가 있는 줄도 몰랐다. 매년 그랬다. 교수라는 분들은 왜 이리 어려운 말을 좋아할까. 사자성어라고 하면 삼한사온부터 퍼뜩 떠오르는 내 수준에서는 그 고상함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임중도원인 것 같은데.아무튼 짐이 무겁고 길은 멀면 어찌해야 하나? 기왕이면 우리에게 답까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 길을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나 같으면 짐을 버리고 계속 길을 가지 싶다. 왜냐하면 늘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더 쉬운 길로, 더 가볍게 가는 인생이니까 내가 이 모양이다.작가 배성미는 적어도 나 같은 부류완 다르다. 그녀는 무거운 짐을 끝까지 이고 길을 간다. 이 말은 상징적인 비유가 아니다. 함께 일을 몇 번 하면서 내가 매번 봤던 모습이다. 그 일이란 게 애당초 작가 본인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작가는 머리로 구상만 하고 스태프가 손발이 되는 경향이 여기엔 없다. 배성미 작가가 이런 말을 들으면 '누가 사람을 부리고 싶지 않아 그러나, 내 처지가 그렇죠.'라고 겸손히 말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속으로 강한 그녀가 걷는 길이 바로 설치작가의 숙명이다.작가는 커다란 투명상자 속에 파도가 몰아치는 이미지의 미디어아트를 설치했다. 바다 일부분을 옮겼지만 우린 드넓은 바다 그 자체를 마주한다. 파도 거품 사이로 문득 내비치는 글귀는 우리 삶이 곧 거친 물살에 이리저리 치이는 피곤한 인생임을 깨닫게 한다. 이 작품 뒤에는 난데없는 배추 한 포기와 밀대자루 하나가 세워져 있다. 이건 노동의 고된 상징이다. 전시공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구조물로 바다 전체를 표현했고, 이보다 더 작고 단순한 시멘트 조각 작품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보여주는 배성미는 샘플링의 귀재가 아닐까 싶다. 설치 미술작업은 전시가 끝나면 다시 해체되는 허망한 일일 수 있다. 작가는 그걸 청소와 배추농사에 비유한다. 돌아오는 봄이면 작가가 배추 기르기 프로젝트에 힘을 실었으면 좋겠다. 예술과 노동과 삶의 일치. 멋지다.윤규홍 (갤러리분도 아트디렉터)

2019-01-03 11:22:02

서미지 작 '해미읍성 은행나무'

[내가 읽은 책]아흔다섯 살 할머니 집, 내 이름은 딜쿠샤! /김세미·이미진. 2017. 딜쿠샤의 추억. 찰리북

1917년, 갈색 머리의 키 큰 남자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와 금발 머리의 아름다운 여자 영국인 메리 테일러는 인왕산 성벽을 따라 산책을 하던 중 커다란 은행나무를 만난다. 은행나무 밑에 집을 짓고 싶다는 메리의 말에 앨버트는 붉은 벽돌로 집을 짓고 건물 기초에 새겨진 'DILKUSHA 1923'이라는 명문을 새겨 넣는다.100년의 시간이 흘러 행촌동'귀신이 나오는 집'이 된 딜쿠샤를 앨버트의 아들 브루스가 2006년 여든일곱 살의 노인이 되어 찾아온다. 그로 인해 은행나무마을 붉은 벽돌의 집 '딜쿠샤'에 숨겨져 있었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두 저자 김세미, 이미진은 2005년 딜쿠샤를 만나 매료된다. 원래 건축과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작가와 프로듀서였던 그들은 딜쿠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한다. 2013년 다큐멘터리「희망의 궁전, 딜쿠샤」를 제작한 뒤 2017년 『딜쿠샤의 추억』을 펴내었다.아흔다섯 살의 집 딜쿠샤가 들려주는 이야기 『딜쿠샤의 추억』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1917년부터 1942년 내 이름은 딜쿠샤', '1945년~2005년 창문 너머로 바라본 서울' , '2006년~2016년 언제나 그 자리에'등 3개의 장으로 나뉜다.이 책에서 아흔다섯 살 할머니 집 '딜쿠샤'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빼앗긴 주권을 찾으려는 조선인을 외면하지 않았던 앨버트가 어떻게 한국 민족대표 33명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입수하고, 1919년 3·1 운동을 세계에 알렸는지 독자들에게 찬찬히 들려주고 있다."브루스는 1919년 2월 28일, 3.1 운동 하루 전날 태어났단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브루스를 낳은 메리는 앨버트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병원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간호사들이 병실로 뛰어 들어오는 거야. 간호사들은 메리의 침대에 종이 뭉치를 숨기고는 재빨리 사라졌지. 간호사들이 사라지자마자 병원에 일본 경찰들이 들이닥쳤어. 일본 경찰들은 병원을 샅샅이 뒤지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지. 하지만 메리의 침대에 숨겨진 종이 뭉치는 찾지 못하고 돌아갔단다.그날 밤, 앨버트가 아들을 보기 위해 병실로 찾아왔어. 앨버트가 침대에 있던 브루스를 안아 올리자 '툭!'하고 종이 뭉치가 앨버트의 발밑에 떨어졌지. 앨버트는 그중 한 장을 집어 들어 불빛이 있는 창가로 갔어.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종이를 들여다보던 앨버트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어.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그 종이 뭉치는 바로 3.1 독립 선언서였단다. 갓 태어난 아기 브루스는 한국의 독립 선언서 위에서 우렁차게 첫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던 거야."일제 탄압 아래 조선에서 항일운동을 돕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1942년 강제 추방되기까지 앨버트 테일러가 살았던 딜쿠샤의 2층 창가에 서서 서울을 바라보며 브루스는 말한다."어머니는 이 집이 우리 가족의 희망의 궁전이 되길 바랐던 것처럼 오래도록 한국인들의 희망의 안식처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씀하셨지."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소개한다. 기회가 된다면 서울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을 찾아가시라 권하고 싶다. 그곳에 있을 새 희망을 반드시 찾아보시길 바라며!서미지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1-03 1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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