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계성학교와 독립운동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계성학교와 독립운동

계성학교는 1906년 10월 15일 미국 북장로계 선교사 아담스에 의해 약전골목 구(舊) 제일교회 내 선교사 사택을 임시 교사(校舍)로 개교하였다가 2년 뒤에 대신동 동산에 2층 양옥의 아담스관을 개축하면서 자리를 옮겼으며, 1912년 6월 17일 사립 계성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1919년 3월 8일에 이만집(남성정교회 목사), 김태련(남산교회 조사), 김영서(신정교회 장로 겸 계성학교 교감) 등은 계성학교, 대구고등보통학교, 신명여학교, 성경학교 강습생들과 함께 서문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다짐하였다. 이에 계성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고, 3월 8일에 이만집, 김태련, 김영서 등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자, 학생들과 시민 등 1천여 명이 뒤따라 행렬에 동참하였다. 독립만세를 부르짖던 시민들과 학생들은 달성군청(현재 대구백화점 부근)에 다다른 후, 일본군 보병 80연대에 의해 가혹한 탄압을 받고 강제해산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157명이 체포되었고, 그중 71명이 구형을 받았는데, 계성학교 교감 1명, 교사 4명, 학생 35명이 징역 6개월에서 3년형까지 선고받았다.이외에도 계성학교 학생들은 대구의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발족된 자제단에 항거하여, 만세운동을 방해한 대구경찰서장 시라이와 자제단장 박중양을 암살하겠다는 경고장을 보냈다. 이를 계기로 계성학교 학생들은 보다 조직적인 투쟁을 실천하고자 1919년 4월 17일 혜성단(彗星團)을 결성하였다. 혜성단은 독립에 관한 각종 문서를 제작하여 배포하였고, 독립운동이 활발한 만주 방면에 단원을 파견하여 국내외의 항일투쟁을 연결시키고자 도모하였으며, 민족자본가들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발송하기도 하였으나, 그해 5월 중순 대부분이 체포되면서 해체되었다.다음으로 계성학교를 다녔던 독립운동가들을 살펴보면, 고인덕(1887~1923)은 경남 밀양 출신으로, 의열단에 가입한 후 이종암과 협력하여 최수봉에게 폭탄 2개를 건네주었고, 최수봉은 밀양경찰서에 그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감행하였다. 또한 그는 밀양읍 교회에서 주최한 강연에서 '안락의 본(本)은 고초에 있다'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그는 이종암과 함께 동경 거사 준비와 군자금 모금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는데(경북의열단 사건), 일제의 혹독한 고문과 악형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대구형무소에서 자정순국하였다.이윤재(1888~1943)는 경남 김해 출생으로, 김해 함영학교·합성학교·마산 창신학교·의신여학교·영변 숭덕학교에서 조선어와 조선역사를 가르쳤다. 그는 1924년 이승훈이 건립한 정주 오산학교 교원으로 지내다가, 1925년 수양동우회에 가입하여 기관지 「동광」(東光)을 발행하는 데 힘썼다. 한때 그는 윤우열이 작성한 '허무당선언서'에 연루되어 갑종요시찰인으로 낙인된 적도 있었다. 훗날 조선어학회 간사로 활동하며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마련하였고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의 편집을 맡았다. 그러나 그 후로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되었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온갖 고초와 극형을 버티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순국하였다.김단야(본명 김태연·1900?~1938)는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는데, 상해로 망명하여 한인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단에 가입하였다. 그는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회의와 극동청년대회에 고려공산청년단 대표로 참석하여 레닌과 직접 면담하기도 하였다. 그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 시절에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글을 여러 차례 기고하였고, 1925년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 창립에 기여하였으며, 기관지 「불꽃」의 주필로도 활약하였다. 일제의 탄압에 의해 와해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일제의 밀정으로 몰려 1급 범죄자라는 혐의를 받고 모스크바에서 처형되었다.

2020-05-20 17:30:00

[홍성걸의 새론새평] 어느 보수주의자의 눈으로 본 5·18

[홍성걸의 새론새평] 어느 보수주의자의 눈으로 본 5·18

1979년 유신체제 말기 대학에 입학한 나는 시위 구호와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기를 보냈다. 법학통론과 헌법 과목을 처음 접하면서 대통령 긴급조치권과 국회의원 3분의 1 지명권, 7년 임기에 중임제한도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제를 규정한 헌법이 법 같지도 않아 울분을 토했던 기억이 아련하다.10·26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진 후 1980년의 봄을 만끽하던 우리는 신군부의 정권 찬탈에 반대해 다시 시위 속에 몸을 실었다. 5월 중순, 서울 시내는 민주화를 외치는 대학생의 집단시위 속에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했고 곳곳에서 시위대와 진압경찰 간 충돌로 많은 학생들이 다쳤다. 5월 15일에 절정을 이루었던 시위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던 17일, 갑자기 계엄령의 전국 확대가 발동되었다. 이때 광주에서는 민간인을 향한 발포와 무력 진압으로 차마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까맣게 몰랐었다.1980년 5월 광주는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그곳이 대한민국이었다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군이 국민인 광주시민을 그토록 참혹하게 짓밟을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 광주 시민을 향한 신군부의 무력 진압은 있을 수 없는 명백한 국가 폭력이었고, 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 역사에 기록을 남기는 것은 우리 세대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진상조사와 처벌,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밝히지 못한 사실이 있다면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사실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필자는 문재인 정부가 하려는 진상조사에 당연히 동의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입장이 다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침 그동안 비밀로 분류되었던 미국 측의 많은 기록이 해제되었으니 사실관계를 밝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대통령의 말처럼 처벌을 위한 조사가 아니라 역사를 바르게 전하기 위한 기록 차원에서라도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다만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서 몇 가지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먼저 진상조사는 모든 선입견과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관계를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현재 찾고자 하는 발포 명령 책임자의 경우, 명령자가 있었다는 전제로 접근하기보다 당시의 상황적 증거와 가용 자료들, 그리고 명확한 사실관계 증언들을 바탕으로 찾되, 밝히지 못한다면 후세에 확인될 수 있도록 증거를 남겨두어야 한다.계엄군으로 동원되어 진압을 담당했던 군인들도 가해자의 시각만이 아니라 그들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시각에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수의 진압 군인들은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군에 입대한 우리의 자식이요 형제였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진압작전에 투입되어 평생을 죄의식 속에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진압에 동원된 장병들 중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했었다. 그들도 국민이다. 이렇게 접근할 때, 비로소 당시 진압군 입장에서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 앞에서 진실을 증언할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끝으로 일각에서 주장하는 5·18 정신의 헌법 전문 포함 문제는 대통령의 지시나 생각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수많은 중요 사건이나 운동 중 오직 3·1운동과 4·19만 포함되었고, 거기에는 뚜렷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3·1운동은 임시정부 설립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선포하였기에 그 법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이다. 4·19 민주항쟁은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3·15 부정선거와 독재를 타도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대표적 민주이념으로 헌법 전문에 포함된 것이다.5·18은 민주항쟁이지만 본질적으로 광주 지역에 국한된 국가 폭력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그래서 3·1운동이나 4·19정신과 같은 반열에 둘 수 없다. 만일 5·18이 포함되어야 한다면 과거 일제강점하에서 일본의 압제에 항거했던 광주학생운동이나 광복 직후 공산주의를 부정하고 일어섰던 신의주 학생의거 등 모든 지역적 저항들도 헌법 전문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제주 4·3도 마찬가지다.5·18 광주민주항쟁은 보수와 진보라는 가치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없는 우리의 아픈 역사이다.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그리고 광범위한 진실 규명을 통해 화해와 통합의 새 출발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0-05-20 16:02:51

[기고] 통합당, 준비행위를 혁명적으로 하라

[기고] 통합당, 준비행위를 혁명적으로 하라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다. 준비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세상만사는 준비행위가 기회를 얻도록 한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은 맏아들이 승계를 받을 준비행위가 되어 있지 않아 승계를 하지 않았으며, 홍종렬 전 고려제강그룹 회장도 장남이 승계를 받을 준비행위가 안 되어 승계하지 않았다.축구, 야구, 농구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에서도 준비행위가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다. 유능한 감독, 우수 선수 확보,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기 위한 강한 훈련 등의 준비행위에 사활을 건다.미래통합당은 과연 어떠한가? 준비행위가 그지없이 부족했다. 위기의 절정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위기가 닥치면 어느 조직, 어느 국가 할 것 없이 똘똘 뭉쳐 대응한다. 이는 물리학에서 중력의 법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인 것이다.그들은 내부를 향해 사정없이 총질을 해댔다. 그것도 모자라 적들과 내통하며 야합까지 하였다.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인데 내부를 침몰시키는 데 급급하기만 하였다.더불어민주당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조국 사태는 역사에서 보기 쉽지 않은 큰 사건이었다. 그때 그들이 보여준 단결력은 대단했다. 똘똘 뭉쳐 어느 누구도 방해 못 하도록 공격하고 싸웠다. 그리하여 그들은 위기를 막았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자연법칙과 같은 진리를 미래통합당, 그들은 외면하면서 적과 공동전선을 펼친 것이다. 보다 더 크게 시대 상황을 냉철하게 보아야 했고 자기 성찰의 준비행위가 있어야 했다. 사적 감정과 표피성과 단순성은 도를 넘고 있다. 당 최고지도자 선정에서 무지가 그대로 나타났다. 정치가의 최소한의 요건인 지혜와 용맹, 의(義)와 도(道)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생각도, 고려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문 공부에서 천자문(千字文)을 익히는 것과 같은 기초적인 것이다.항간에 40대론, 또는 1970년 이후 출생의 경제통을 운운하고 있다. 또다시 불안케 한다. 전체를 보지 않고 한 모퉁이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국무총리 그것 하나만을 보고 당의 최고지도자를 선출한 것과 같은 것의 편향인 것이다. 4·15 총선 참패가 여기에서부터 온 것인데도 그 길을 다시 걸어가려 한다.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람을 단편적이고 단순성으로 결정한다면 그에 따른 결과는 명약관화한데도 말이다.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통이어서 오늘의 이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였던가! 높이 보고 크게 보고 넓게 보고 깊이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살고 부흥키 위해서는 박정희와 같은 제2의 인물이 나와야 한다. 박정희 같은 지도자란 높은 애국심과 역사 인식, 용기,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 도전 정신, 창조적 정신, 개척 정신, 리더십, 통찰력, 결단력, 공감을 통한 국민 동원력을 갖춘 것을 말한다.미래통합당은 갈림길, 막다른 길에 와 있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는 지체 없이 험난한 길과 장애물을 헤치며 뛰는 것이다. 혁명적이어야 한다. 철저한 준비행위와 자기로부터의 혁명이다. 그리고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보고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 없이는 집권은 요원할 것이다.우리 국민 모두가 제2의 박정희를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2020-05-20 15:56:09

[매일춘추] 오월의 노래

[매일춘추] 오월의 노래

1968년 3월 프랑스에서는 미국이 베트남을 침공한 것에 항의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사무실을 급습한 대학생 8명이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5월에 그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마침내 노동자들까지 총파업을 하게 된 이들의 사회변혁 운동을 두고 '5월 혁명' 또는 '68혁명'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혁명은 미국의 반전운동, 여성해방 운동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세계 시민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를 한층 진화시킨 일대 사건이 되어준 셈이다. 당시 그 나라의 혼란은 정제(精製)를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혁명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은 폭정과 무책임한 정부를 침묵하지 않고 나선 정의로운 시민의식 때문이다. 적폐의 첫술은 항상 생계를 이유로 불의를 보고도 참아내는 비겁이 아니었던가.1894년 3월과 9월, 이 땅에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동학(천도교)은 당시 경주의 몰락 양반이었던 최제우가 1860년 서학(천주교)에 맞서 창시한 민족종교였다. 주된 교리는 사람이 곧 하늘이란 의미의 인내천(人乃天)사상이었다. 이에 전봉준은 고부 군수였던 탐관오리 조병갑을 척결하기 위해 농민들의 힘을 결집했고, 과연 가공할 만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동학혁명은 청나라와 일본의 첨병 역할에 충실했던 당시 사대부들에 의해 실패했지만, 그 불씨가 살아남아 5·18민주화운동으로 다시 피어올랐다. 17년 만에 '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 동학농민혁명은 125년이 지난 2019년 5월 11일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다.5월 1일 제정된 근로자의 날은 1986년 미국의 총파업을 기념하는 날이다. 1970년 11월 13일은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는 구호를 외치고 세상을 떠난 날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출생한 전태일은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처럼 처절한 노동운동이 있었던가. 이토록 간절한 외침이 또 있었던가. 그가 분신한 그 날을 대한민국 근로자의 날로 제정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고 슬픈 일이다.올해는 신군부 세력에 의해 무차별 양민 학살의 만행이 이루어진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최근 들어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에서 망월동 5·18 묘역을 찾는 인사들이 많아졌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은 나라가 바로 서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되려면 먼저 진보와 보수진영의 보상심리와 생색내기부터 털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 대화합이라는 숙원사업을 이루어낼 수 있다. 민주화운동을 정권 재창출의 기회나 수단으로 쓰여선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5월이다. 어린이날을 필두로 해서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다양한 기념일들이 모여 있는 달이다. 화해와 감사가 가득한 달이기도 한다. 나폴레옹조차 찬사를 보냈던 독일의 문호 괴테는 찬란한 5월의 햇빛과 자신과 소녀의 사랑을 애절하게 노래했다. 5월을 노래한 또 한 명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는 5월의 하루를 잎사귀들의 향기로운 불꽃 사이로 너와 함께, 서로에게 사무친 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우리에게 5월은 어떤 의미일까. 배웅보다 마중은 어떠할지.김사윤 시인

2020-05-20 15:17:09

[종교칼럼]행복은 연결 되어 있다

[종교칼럼]행복은 연결 되어 있다

5월의 숲은 어머니를 닮았다. 모든 생명들이 왕성하다. 연초록 잎들이 청색으로 변한 숲에는 연령초 등 야생화들이 만발하다. 그 속에 새들이 집을 짓고 알을 품는다. 한 생명의 탄생과 성장이 이루어지고 치유와 회복의 순환을 이어간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아낌없이 내어준다. 맑은 아침이면 뻐꾹새 우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늘 고향에 온 것 같다.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의 「오빠 생각」 동요처럼 정신이 맑아진다. 말 타고 서울 가신 오빠는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나뭇잎 우수수 떨어진 가을까지 소식이 없다고 한다. 여러 차례 물러간다던 코로나가 언제 물러갈지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기다림의 나날을 살아가라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숲이 파괴되면 생명들은 어디서 살아 갈 수 있을까? 흙과 물과 공기가 오염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사람과 동물들이 다르지 않다. 인간보다 먹이사슬에서 열등한 동물이 환경오염으로 모두 사라지면 사람과 생명이 살 수 없다. 인간과 모든 생물은 생태계에 의존하여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유지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행복과 평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상호 연관성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번 코로나는 '너'와 '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건강하거나 또는 코로나에 감염되어 회복되어도 다른 사람이 진행 중이라면 다시 감염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코로나에서 해방되도록 돕는 일이 자신을 돕는 일이다. 전염병은 온 인류가 하나의 운명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만 안전하다고 안심할 수 없다. 적극적인 이타행이 나를 위한 길이다. 다른 존재를 사랑함으로써 나도 사랑받을 수 있다내가 설 수 있는 땅은 발바닥이 닿는 한 뼘의 조그마한 땅뿐이다. 얼마 안 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서 있는 이외의 땅을 다 파내 버리면 어떻게 될까?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 머지않아 자신이 서 있는 땅도 무너지고 만다. 연관되어 있음을 모르면 자신도 불행해진다. 나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을 받으려면 겸손, 친절해야 하고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존재와 대상은 나의 행복을 위해 존중되어야 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의 행복과 안녕은 타인 그리고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사회적 안녕'이 높아져야 한다.사회적 안녕은 누군가가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때 가능하다. 사회를 위한 행동은 자신을 위하는 것과 절대 대립하지 않는다. 수많은 연구를 보면 이타적 행동은 건강·장수와 상관관계가 높다. 다른 사람을 돕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행복감이나 활력이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하고 정신 면역을 높여준다.애벌레는 나뭇잎을 다 갉아먹지 않는다. 나무가 광합성을 하지 못하면 자신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벌레도 최소한의 공존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지혜가 있는 걸까?달라이 라마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나 혼자만 따로 행복해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한다.위대한 인물들은 자신을 위해 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는 헌신의 삶을 살았더니 위대해졌다고 한다.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이 아니라 상의 상관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연기(緣起)에 눈뜰 때 따뜻한 사랑이 피어난다. 그리고 행복과 평화가 이루어진다.5월의 정원은 꽃들로 하모니를 이룬다. 화려한 목단이 지고 나니 작약이 뒤를 이어 피어나고 이팝나무가 하얀 쌀을 뒤집어쓴 듯 장관이다. 노란 송홧가루가 온 집 안을 뒤덮고 닦고 닦아도 끝이 없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날아오고 불두화가 뭉글뭉글 피어나 맺힌다. 뒤뜰 대숲에는 죽순이 땅을 헤집고 올라온다. 거리에는 장미 넝쿨이 붉은 꽃과 향기를 나른다. 생명들은 세상과 연결되어 자신의 참된 모습을 평화롭게 드러내고 행복을 전한다.

2020-05-20 15:10:42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내 개가 물건이라고?"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는?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내 개가 물건이라고?"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는?

체리(푸들·2살)가 교통사고로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대기실이 소란스러워서 나와보니 사고를 낸 운전자와 보호자 간에 고성으로 언쟁이 오가고 있었다. "치료비를 다 보상할 수 없다"는 운전자의 주장과 "아이가 다쳤는데 빠져나갈 궁리 만 한다"는 보호자의 주장이 맞부딪혔다.급기야 경찰이 왔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한 후에야 소동은 가라앉았다. 보호자는 개가 다쳐서 황망스러운 상황에 운전자가 위로는 커녕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한 탓에 더 화가 치밀었다 하셨다.경찰의 판단은 냉정했다. 개 교통사고는 인명사고가 아니라 대물사고니까 보호자는 운전자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가입해둔 보험사와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호자는 크게 낙담했다. "내 개가 물건이라니…."우리나라 민법은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한다. 개와 고양이를 가족이라 부르며 동물보호가 시대 정서로 공감을 얻고 있지만 여전히 법과 현실 사이엔 괴리가 있다. 반려동물 문화가 확산되는 이면에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원인이기도 하다.체리의 경우를 법리적으로 해석해보면 운전자가 누군가의 물건을 손상시켰으니 보험사는 운전자의 과실을 대신하여 동물 치료비, 즉 물건을 수리하는데 해당하는 비용을 보상해주어야 한다. 반려동물의료보험이 생명보험사가 아닌 손해보험사에서 취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동물을 개인의 소유물로 여길 경우 생명을 경시하고 학대하는 행위가 얼마나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지 그 사례를 소개한다.2016년 SBS 'TV 동물농장'을 통해 고발된 '강아지 공장'은 동물이 돈벌이에 눈이 먼 인간들에 의해 얼마나 잔혹하게 학대받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다. 뜰창에서 살아가는 번식견의 처참한 모습, 불법 마약류를 투약하며 이뤄진 잔혹한 제왕절개수술, 호르몬과 항생제를 남용하는 불법진료 행위들이 만연해 있었다.국민들을 공분케 했던 사건의 학대 당사자는 의외로 가벼운 처벌에 그쳤다. 당시 동물학대죄에 대한 판례는 대부분 경미한 벌금형에 불과했으며, 불법 수술과 자가진료 행위들은 명백한 수의사법 위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농장주들을 배려한 '동물에 대한 자가진료 허용 규정'을 면죄부 삼아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물권 단체는 불법자가진료를 또 다른 형태의 동물학대로 규정하고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게 되었다.여론이 들끓고 나서야 농식품부는 2017년 7월 동물학대 처벌을 강화하고, 수의사법 개정을 통해 수의사가 아닌 사람이 진료할 수 범위를 기존 '동물'에서 '가축'(소, 돼지, 닭, 오리, 말, 염소, 당나귀, 토끼 등)으로 제한시켜, 반려동물에 대한 자가진료 행위는 불법자가진료 행위로 규정하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동물학대와 불법자가진료에 대한 처벌 형량이 동일하다.하지만 처벌 형량이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 뒤인 올해 2월 부산 수영구에서 고발된 '고양이공장 사건'을 들여다 보면 여전히 동물을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에 의한 동물학대와 불법자가진료 행위는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이처럼 동물을 소유물로 이해하다보면 동물에 대한 치료 행위를 가볍게 여길 수 있다. 동물약국에서는 소비자가 편하고 비용이 절감된다며 백신을 구입하여 개와 고양이에게 직접 주사하라고 권장한다. 약국에서 아이에게 맞추는 백신을 부모에게 판매하지 않는 상식과 배치되는 주장이다.수의사인 나는 예방접종이 늘 조심스럽다. 백신을 주사한 반려동물의 10% 정도가 발열과 설사, 구토, 두드러기 등의 접종앓이를 호소한다. 생명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예방주사를 편의와 비용 절감을 위해 반려인에게 권장하는 이면에는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담겨져 있다. 시간과 비용이 덜더라도 윤리적으로 예방주사는 수의사의 검진에 의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의료 행위이다.생물학적 주사제재를 일반 가정으로 유통시키는 것은 공중보건 측면에서도 위험하다. 백신은 바이러스를 약독화하거나 사독화시킨 생물학 제재이다. 동물병원에서도 생물학적 감염물질이 묻어있는 주사바늘과 폐백신은 의료폐기물 중에서도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해성 의료폐기물로 분류되어 별도로 분류하여 지정된 의료폐기물 위탁업체가 처리한다. 위해성 의료폐기물이 생활쓰레기로 버려져서는 곤란하다.헌법에 동물보호를 명시한 나라는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인도, 브라질, 룩셈부르크, 이집트 등이있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 독일은 1990년, 스위스는 2002년 동물은 물건이 아니며 생명은 보호하여야 할 대상임을 법으로 규정했다.영국은 2016년 개와 고양이를 상업적으로 유통하는 행위를 금지시켰으며, 2017년 부터는 동물학대 처벌을 징역 5년으로 강화시켰다. 미국은 2017년 부터 동물학대 행위자를 반사회적 범죄자로 이어질 위험성을 인정하여 모든 주 정부에 동물학대 사건 가해자를 반드시 FBI에 보고하도록 조치하고 있다. 2019년 에는 연방정부가 동물학대범을 처벌하는 팩트법(PACT Act·Preventing Animal Cruelty and Torture)을 통과시켜 동물을 압사시키거나 태우는 일, 익사 또는 질식시키는 행위 등의 폭력적인 행위를 할 경우 최대 지역 7년형에 처하도록 명시하였다.2019년 농축식품부의 통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0%에 해당되는 591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고 한다. 반려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동물을 즉흥적으로 입양하거나 개인의 소유물 정도로 다루는 반려인도 많음을 예상할 수 있다.반려동물 입양은 동물의 한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생명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아플 수 있다. 동물이 아플 때를 대비하지 않고 입양이 결정되어서는 안되며 동물의료보험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사람의료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정착돼 소득이 낮은 국민일수록 개인 부담금은 줄고 보험혜택은 많이 받는다. 반면에 소득이 많은 국민들이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하는 공익적인 구조이다. 반면에 동물의료는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보니 반려인이 개별적으로 동물의료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납부하는 만큼 보험혜택도 비례하여 보상받는다. 동물의료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일수록 동물의료비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동물 등록시 기본적인 반려동물 의료보험 가입을 의무화시킬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동물의료가 반려인의 경제적 부담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 또한 동물을 즉흥적으로 입양하거나 개인의 소유물 정도로 여길려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동물은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존중받아야할 대상임을 법에 명시하여 국가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동물의료보험 확산에 기여해주길 소망해본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5-19 18:30:00

[경제칼럼] 이면지를 쓰는 이유를 설득하자

[경제칼럼] 이면지를 쓰는 이유를 설득하자

예전에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의무적으로 이면지를 사용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나와 직장 동료들은 우리같이 큰 회사에서 이면지를 아껴봤자 얼마나 아끼겠냐면서 회사의 정책을 비판하곤 했었다.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떤 강연에서 강사가 왜 회사에서 아껴도 얼마 되지 않는 이면지를 쓰게 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것을 아끼지 않는 조직은 큰 것 또한 아끼지 않기 때문에 회사는 조직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아끼는 문화와 습관을 가지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고 설명했다.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과거 이면지를 쓰라고 하셨던 상사들께서 그 이유를 나에게 설명해 주셨더라면 이면지 사용에 불만을 가지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갑자기 이면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금의 기업 환경과 구성원들의 생각이 예전과 많이 바뀌어 회사를 이끌어 가는 방식도 과거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먼저 기업 환경은 과거에 비해 빠른 속도로 급변하고 있으며 매일 엄청난 양의 새로운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특정 개인의 과거 경험을 통해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기업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과거의 경험에 새로운 지식과 시각을 믹스해 기존에는 한 번도 내려 보지 않은 새로운 의사결정들을 내려야만 하는 시대다.결국 다양한 인원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내어 놓고 이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만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그리고 조직 구성원들도 더 이상 과거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말없이 하는 세대들이 아니며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많냐" "일일이 내가 다 설명해줘야 돼?"라는 말로 더 이상 그들을 억누를 수도 없다. 이제 어떤 일을 시키면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당사자와 조직에 어떤 이익이 생기는지를 명확히 설명해줘야 젊은 직원들은 동기부여가 돼 성과를 낸다.오늘날 업무 지시를 내리는 상사는 조직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그에 반해 조직원들이 개인의 안위와 편협한 시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할 때에는 그에 따른 제재를 조직원들이 납득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어야 한다.이처럼 오늘날의 기업에서 서로 간의 소통은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됐다. 사실 나 또한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소통을 꼽는다. 물론 나의 소통 역량이 부족한 이유도 있겠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의 목표를 위해 희생하고 열정을 불태우게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조직원들과 소통을 위해 회사의 철학과 입장을 정기적으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통해 서로 다른 생각의 간극을 줄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소통은 쉽지 않다.많은 회사의 리더와 구성원들을 만나보면 서로에 대해 불만과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리더는 자신의 마음고생과 어렵게 내린 결정을 조직원들이 몰라줘서 답답하고 조직원들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는데 리더가 그것을 몰라줘서 섭섭해 한다. 이처럼 기업의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반목한다면 코로나19 사태로 발생한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과거 히딩크는 2002년 대한민국 축구팀을 냉혹한 카리스마와 자유로운 소통의 리더십으로 대표팀을 원팀(One Team)으로 만들어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뤄냈었다. 이제 2020년 경제위기 속 기업을 이끌어가는 리더들도 히딩크처럼 기업을 열린 마인드와 자유로운 의견 개진의 문화가 있으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원팀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사실 오래전부터 좋은 리더란 혼자 똑똑하고 혼자서 모든 일을 끌어안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원들에게 그들이 할 일이 무엇이고 조직의 공통된 목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여 스스로 행동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지금 시대에는 이면지를 쓰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일조차 조직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그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경영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2020-05-19 14:57:07

[매일춘추] 1950·1960년대의 추상미술과 세대교체

[매일춘추] 1950·1960년대의 추상미술과 세대교체

1950년대 이후 대구의 추상화가들은 꽤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50년대는 전후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던 이들을 중심으로 세대가 교체되고 있었고, 그들은 단체 결성을 통해 화단에 존재감을 과시하였다. 1955년에는 정점식을 중심으로 장석수, 신석필, 강우문 등이 함께 '대구미술가협회'를 창립하였고, 다시 1957년에는 정점식이 새롭게 작가들을 규합하여 '경북미술협회'를 창립하였다. 특히 '대구미술가협회'는 전쟁에도 사회와 무관하게 이어진 자연주의 미술을 비판하였는데, 창립문에 '변동하는 사회나 이체(弛體)되어 가는 일단의 인간'을 두고도 회피하는 '쇄말(瑣末)적인 묘사'에 대한 반성을 주장하였다. 또한 이들 중 정점식, 장석수, 박광호, 신석필, 정준용 등은 1950년대 말 당대 한국의 전위적 미술을 집대성한 조선일보현대작가초대전(1957년 창립)에도 수차례 참여하면서 중앙화단에 이름을 알렸다.전후 아직 안정되지 않았던 한국 사회에 또 다른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은 1960년 4·19혁명이다. 부정하게 권력을 연장하려던 세력에 반발했던 민주화운동으로 이때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그런데 권력화된 것은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독재에 저항했던 것처럼 아카데미적인 경향을 고집하던 대한민국미술대전(이하 국전)에 대해 젊은 작가들은 그들만의 방법으로 저항하였다.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김익수, 김정현, 김형대, 박상은, 박병욱, 박홍도, 유병수, 유황, 이동진, 이정수, 이영륭 등이 참여한, 1960년부터 1964년까지 열린 '벽(壁)전'은 덕수궁 벽에 작품을 거는 방법으로 국전의 구태의연함을 일갈하였다. 전시에서는 철망, 콜타르와 같은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재료가 등장하였고, 현실의 돌파구를 찾는 듯 한 앵포르멜 형식의 평면과 설치, 오브제, 액션을 작품에서 보여주었다. 특히 '벽전'에 참여한 이영륭, 이동진, 유병수, 유황, 김익수 등은 대구에 정착해 대학에 재직하면서 대구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1960년대에는 대구 화단에도 앵포르멜의 영향이 컸는데, 1950년대와는 또 다른 신진들이 집단화된 목소리를 내었다. 1963년 열린 '앙그리전'에는 당시 앵포르멜 경향에 영향 받은 소장교사, 룸펜, 군인 등 다양한 이력의 작가 김진태, 김구림, 김인숙, 정도화, 이정혜, 정주호(정일), 이륭(이영륭), 마영자, 권영호, 박병용, 박휘락, 박곤, 박설 등이 참여하였다. 단체명 '앙그리'는 영국의 전후 저항정신을 담은 문학운동 '앵그리 영 맨'에서 착안한 이름이라 한다. 이들은 '무서운 인간의 고독이 벽을 부수는 허무한 고독', ' 링케리의 사막에서의 폭음'과 같은 문학적 서사의 선언문을 통해 생동하는 생명의 갈구와 변화를 촉구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추상이 주를 이루었고, 표현에서는 흘리고 찢거나 우연성이 혼재된 기법을 보여주었다. 또한 저항적 패기가 넘쳤던 그들은 작품을 제목 없이 전시하였는데, 화면에 구현된 대상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사유하는 대상으로 작품의 위상 변화를 시도하였다.

2020-05-19 14:34:29

[백옥경의 과학둘레] 진화적으로 안정된 색깔

[백옥경의 과학둘레] 진화적으로 안정된 색깔

차가 다니는 골목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아침 햇살을 즐기려는 듯 표정이 느긋하다. 차가 다가가도 피할 생각이 없는지 미동도 안 한다. 행여 다칠까 조심하며 최대한 간격을 벌려 고양이를 지나갔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길고양이. 먹을 걸 주면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길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람을 피하는 습성을 가진 길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생겨난 걸까.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Evolutionary Stable Strategy)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는 개체군에 있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그 전략을 선택하면 다른 어떤 대체 전략도 그것을 능가할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정의된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러한 전략이 유전자 단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ESS 이론의 동물행동연구 사례를 예로 설명함으로써 진화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켰다.호전적인 매와 유순한 비둘기로 이루어진 집단에서의 싸움 전략을 예로 보자. 그곳에서는 언뜻 싸움꾼 매의 전략이 유리해 보이지만 공격적인 매의 전략은 비둘기를 만났을 때만 이득을 본다. 매끼리 부딪치면 본전도 못 건지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무작위적인 그들의 싸움에서 손익계산을 해보면 매가 비둘기보다 약간 더 많은 비율로 존재할 때 두 개체의 평균득점이 같아진다. 이때가 진화적으로 안정된 상태이며 개체 수준에서 보면 품위 있는 비둘기보다 공격적인 매의 전략을 조금 더 많이 구사하는 것이 안정적인 전략인 것이다.물고기를 잡아 살아가는 갈매기 집단이 있다 하자. 어느 날 그들 중에 잡은 물고기를 낚아채는 얌체 돌연변이가 생겨난다. 애써 고생해 먹이를 구할 필요 없는 그들의 얌체 전략은 이득을 보기 시작하여 그 수가 점점 늘어난다. 그러자 어부 갈매기가 감소하고 가용한 물고기가 줄어들어 얌체 갈매기는 어느 시점부터 이득을 볼 수 없게 된다.다시 어부 갈매기가 증가한다. 이러한 집단에서 진화적으로 안정된 상태는 어부 갈매기와 얌체 갈매기가 8대 2의 비율일 때이다. 혹은 각 개체가 시간의 8할을 어부로 2할을 얌체로 사는 전략이 진화적으로 가장 안정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비율에서 벗어나는 전략은 장기적으로는 이득을 볼 수 없어 사라지게 된다.다시 길고양이로 돌아가 보자. 만일 모든 고양이가 길고양이 전략을 택한다면 어떨까.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다. 동료들과의 영역 다툼에서 희생되거나 인간의 영역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로드킬을 당하기 쉽다. 만일 이들 중 사람에게 다가가는 돌연변이가 생긴다면 이들은 생존에 이득을 보기 시작한다. 사람을 따르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아늑한 잠자리와 양질의 식사를 보장받는 것이다. 고달프고 배를 곯고 제 명을 다하지 못하는 야생의 생활과 작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전략을 택하는 고양이가 늘어날수록 집고양이 수는 늘어나고 길고양이 수는 줄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길고양이가 집고양이 전략을 선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에게 선택받는 개체는 일부일 테니 말이다. 더구나 선택되었다 버려지는 경우에는 애초에 길고양이였던 것보다 못한 신세가 된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 길고양이가 늘어나는 현상은 팍팍한 현실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진화적으로 안정되기 위한 길고양이의 유전적 전략인지도 모르겠다.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우리를 놀랍게 만든 것은 왼쪽은 파란색으로 오른쪽은 핑크색으로 물든 한반도를 보는 것이었다. 선거 결과는 그러지 않아도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를 다시 동서로 나누었다. 면면을 들여다보면 블루나 핑크 지역의 유권자들이 100% 같은 색깔을 선택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 시사하는 바는 한 가지 전략으로만 이루어진 집단, 혹은 개체는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길고양이 집단에 집고양이가 생겨나는 것처럼 그 하나의 전략이 매우 잘하지 않는 한 언제든 돌연변이 전략이 침입해 세를 늘릴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어떤 전략도 대체 불가능한 것처럼 안정되어 보이는 색깔 패턴도 그러한 종류인지는 지켜봐야 될 일인 듯싶다.

2020-05-18 17:30:00

[석재현의 사진, 삶을 그리다] 어머니의 얼굴

[석재현의 사진, 삶을 그리다] 어머니의 얼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눈을 맞춘 사람, 어머니와의 만남은 '세상과의 만남'이다. 어머니의 따듯한 품에서 고이고이 길러져 넓은 세상으로 나왔건만 아이러니하게도 넓은 세상보다는 어머니란 따듯한 둥지가 더 그립다. 아주 가끔이지만 연로하신 노모의 무릎을 베고 누운 시간이 나 역시 세상 그 어느 시간보다 평화로우니 말이다.가정의 달이라고는 하지만 코로나19란 복병에 발목을 잡힌 탓에 올해 5월의 풍경은 애처롭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을 잃어가고 있고, 현장에 투입된 의료진들은 가족들과 생이별 중이다. 멀리 사는 가족들은 언제 만나 식사라도 함께 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으니 2020년 가정의 달은 참으로 기가 막힌 풍경으로 추억될 듯하다.죽으나 사나, 앉으나 서나 자식이 최고요, 자식이 최우선이었던 어머니. 철없던 시절에는 왜 우리 집은 가난할까, 왜 우리는 이렇게 고생할까, 불만의 마음이 슬쩍 일렁이기도 했지만 하루를 쪼개고 쪼개 열심히 사시던 부모님 모습에 그런 마음조차 내비칠 수가 없었다.어린 시절, 자식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삼단 같은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서 팔고 온 동네 아주머니의 모습이 설핏 기억이 난다. 이렇게 어머니들의 지극한 정성이 소위 말하는 고급 인력을 만들어 내고, 이들이 경제발전을 이끌었으니, 어머니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게 한 원동력이라는 것이 사진가 윤주영의 생각이다.아침엔 갯벌로 조개를 캐러 나가고, 오후엔 시장에 내다 팔 채소를 가꾸고, 밤에는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가전제품 부품 조립에 나서는 1인 3역의 과중한 노동도 마다 않던 강한 어머니들, 그렇게 사진가 윤주영은 우리나라의 정직한 어머니, 부지런한 어머니, 참을성 많고 의지가 강한 어머니, 겸손하고 분수를 중하게 여기는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쳤던 헌신적인 어머니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1928년생, 전 문화부장관을 비롯해 정계에서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던 그는 은퇴 후 사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던 성품은 인생 후반에 새로이 시작한 사진가의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뭐, 호사가의 취미 정도 아니겠어'라 생각했던 이들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듯 보였다. 1987년에 첫 사진집을 출간한 후 26회의 개인전과 14권의 사진집을 냈고, 팔순을 기념하며 출간한 사진집의 주제가 '어머니'였으니 말이다.평생 사진만 해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열정 넘치는 사진가의 삶을 걸어온 그, 사진가 윤주영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이요, 인간의 삶이었다. 그의 바람처럼 젊은이들이 그 옛날 어머니들의 모습을 통해 힘내서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다지고, 그 속에 담긴 한국인의 미덕을 돌아볼 수 있다면, 코로나19로 빼앗긴 '가정의 달'이 조금은 덜 억울해질 것 같다.

2020-05-18 17:30:00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부부적 거리 두기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부부적 거리 두기

"사회적 거리두기가 유행인데 부부간에도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모 업체 대표님께서 술잔을 내려놓으며 울부짖었다. '제발 부부간에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며 술잔을 움켜쥐었다. 웃자고 한 농담이겠지만 슬펐다. 대표님의 꼭 다문 입술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나에게는 그 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늘 머리 위에 안테나를 켜 아이디어를 구해야 하는 광고인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역시 세상 모든 것이 워딩의 싸움이구나.' 최근 졸혼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결혼 생활을 졸업한다는 뜻인데 이혼하지 않은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네이버 국어사전). 어르신들은 얘기한다. 그게 이혼 아니냐고. 따로 사는 것이 이혼이지 왜 졸혼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냐고 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역시 그 속뜻은 차갑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워딩이다. 하지만 최대한 냉정하지 않게 코로나에 맞서는 워딩을 만들고자 한 의도가 보인다.워딩의 싸움은 광고에서 빛을 발한다. 작년 한 법무법인의 이혼 광고를 맡게 되었다. 사실 이혼이라는 워딩이 주는 느낌이 예전보다 좋아졌다. 옛날에야 숨기고 싶은 일이지만 '돌싱'(돌아온 싱글)이라는 단어로 인식이 변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여전할 것으로 생각했다.안 그래도 이혼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부부에게 광고에서조차 화를 주기는 싫었다. 그래서 쓴 문구가 '당신이 이혼하는 이유는 결혼했기 때문입니다'라는 카피이다. 당신에게 큰 문제가 있어서 이혼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 그저 '결혼하면 이혼을 할 수도 있으니 쿨하게 생각하자'라는 의도였다. 생각해보라. 광고가 자신을 다독여 주면 얼마나 그 변호사가 이뻐 보일까.술자리에서 들은 '부부적 거리두기'라는 워딩도 마찬가지다. 듣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부부를 사이에 두고 '부부적 거리두기'라고 쓰니 누가 봐도 이혼 광고였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2m이지만 나는 그렇게 쓰지 않는다. '2혼'이라고 썼다.우리는 하루에 약 5천여 개의 광고에 노출되어 있다. 일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의 광고를 봐야 한다. 엘리베이터 안은 세탁소, 학원 광고로 도배되어 있다. 운전해 거리에 나오면 택시 광고와 간판으로 도배된 세상을 만난다. 우리는 그만큼 광고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 이혼 광고조차 머리 아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 재산을 얼마 빼앗아 올 수 있다든지 외도, 불륜에 관한 얘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다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상심하지 말라는 얘기를 유머러스하게 말하고 싶었다.나의 광고주분들은 오늘도 내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 브랜드가 유명해질 수 있냐고.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죽기 살기로 자신의 브랜드를 알려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이렇다. 지금 사회적인 이슈를 잘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는 코로나와 관련된 것들이 이슈이니 그것에 숟가락을 얻는 방법이다. 부부적 거리두기가 바로 그런 형식의 광고이다. 코로나, 부부의 세계, 미국에 중계되는 KBO 리그가 요즘의 이슈이다.그중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대입해보라. 자신의 브랜드에 맡게 조금 변형해보는 것이다. 그 변형의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 워딩이다. '부부적 거리두기'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단어 하나만 바꾼 것이다. 사람들은 단어가 주는 이미지에 따라 그 현상을 받아들인다. 당신의 브랜드를 광고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워딩으로 판을 바꾸어라. 당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이다.

2020-05-18 16:14:43

[기고] 월성원자력 맥스터 증설, 현명한 결정을 기대하며

[기고] 월성원자력 맥스터 증설, 현명한 결정을 기대하며

5월 들어 경북 경주 지역은 중수로형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건식저장시설(맥스터) 증설을 위한 주민 수용성 확보를 두고 찬반 여론이 뜨겁다.현재 월성원전에서 추진 중인 맥스터 증설은 처음 시도해 보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경수로에 비해 사용후핵연료가 비교적 많이 배출되는 중수로 특성상 29년 전부터 단 한 번의 문제 없이 맥스터를 안정적으로 운영 및 관리해 오고 있다. 저장 용량이 한계에 이르러 맥스터 7기에 대해 추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1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성 심사에서 승인을 얻어 기술적인 안전성을 입증했다.현재는 경주 시민을 대상으로 지역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문제는 시간이다. 기존의 맥스터 설비 저장 용량이 내년 11월이면 포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맥스터 증설은 본공사에만 19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올 상반기에 증설 공사가 시작되지 못하면 월성 2, 3, 4호기 운영을 조기에 중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 이는 국가 전력 수급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월성 2, 3, 4호기가 설계수명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후핵연료저장설비의 여유 공간이 없어 원전 조기 폐쇄라는 결정을 내린다면 천문학적인 국가 자산을 폐기 처분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코 합리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결정이다.사실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수준의 방사선을 방출한다. 그러나 그 양은 많지 않다. 1g의 우라늄이 300만 배인 석탄 3t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발생시키니 폐기물도 그만큼 적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40년간 원전을 운영하며 발생된 양은 약 1만5천t이다. 석탄발전으로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했다면 석탄회는 2억t, 이산화탄소는 35억t이 발생했을 것이다.사용후핵연료를 발생시키는 원전은 저마다 고유의 설계된 수명을 갖고 있고, 한수원에서는 설계 기간의 운영 과정에서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설비투자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지속적인 설비투자를 통해 안전성이 확보되면 수명을 추가로 연장해 운영하고 있다.상업용 원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원전의 수명을 2회에 걸쳐 40년을 추가해 연장 운영하고 있다.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운영만 잘 하면 충분히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그런데 우리는 원전 운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해 둘 설비를 갖추지 못해 법으로 정해진 수명조차 채우지 못하고 조기에 정지될 운명에 놓였다.이는 혈세 낭비뿐만 아니라 전기요금 인상 등 국민 전체의 손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반면 환경단체나 반원전 시민단체들은 막연하게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맥스터 증설을 반대해 궁극적으로는 원전 폐쇄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합리적인 주장이 될 수 없다. 상업용 원자력발전이 화석연료에 의한 탄소배출량 감축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지구온난화 방지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월성원전 3호기 가동 여부가 지역 주민의 결정에 달린 만큼 맥스터 증설에 대해 대안 없는 반대로 경주 지역 경제 및 원전 생태계의 잇따른 붕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맥스터 건설이 적기에 추진돼야 안정적인 전력 공급 속에서 지역 경제도 타격을 피할 수 있다.지금은 지역과 함께 윈윈(Win-Win)하는 전략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2020-05-18 14:52:30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함께 책을 읽고 건너가자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15>함께 책을 읽고 건너가자

진화는 용기로 빚어진다. 단순한 이 말은 생물의 진화, 문화의 진화, 정치의 진화, 개인의 진화(성숙) 등 모든 다양한 경우에 다 맞는다. 그것이 용기인 이유는 두려움을 떨쳐내면서 편안함을 박차고 길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발전하고 변화하는 일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더 키우고 강화하는 일로도 가능하지만, 그보다 더 많게는 아직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옮겨 가면서 일어난다. 모든 진화는 경험과 이해를 벗어난 곳으로 탐험을 떠나는 용기이다.경험과 이해를 벗어난 곳은 알 수 없어서 항상 불안하고 무섭고 이상하다. 거기는 두려운 곳이다. 경험과 이해를 벗어난 곳으로 이동하자면 두려움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여 모든 진화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로만 일어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한 말을 좀 풀어서 옮기면 이렇다. "하나의 씨앗을 커다란 나무로 자라게 하는 것은 재주도 아니고 영감도 아니다. 오직 용기이다."◆진화는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의 몫진화하고자 하면, 용기를 내야한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진화할 수 없다. 갖고 있는 것을 자신의 정처(定處)로 정하고, 마치 선정(禪定)에 들듯이 거기에 편안해 하고 거기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또 그것을 자신만의 진리의 텃밭으로 삼는 한 그것 다음이나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도 닿기 힘들다. 장자는 이것을 '정해진 마음'(成心)에 갇힌 형국으로 묘사한다. 이런 저런 일들 모두가 이 '정해진 마음'으로 즉시 해석되고 평가되니 이제 깊이 생각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간편한가.그저 '정해진 마음'에 맞는지의 여부에 따라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만 두드리면 된다. 그래서 '정해진 마음'을 가지면 사유가 아니라 감각에 빠진다. 진화는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의 몫이다. 감정과 감각은 숙고를 불편해할 정도로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재빠르다. 사유에는 시간과 수고가 들어간다. 당연히 게으른 자는 감각으로 기울고, 부지런 한 자는 감각과 감정을 극복하는 지적인 태도로 사유할 줄 안다. 감각에 빠져서 곰곰이 생각하는 능력이 길러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음으로 건너가는 과감한 용기가 없다. 그래서 용기란 지적인 태도로 분류된다. 소크라테스가 용기를 '지적 인내'로 표현한 말은 이치에 맞다.◆지혜란 다른 말로 하면 '멈추지 않기''정해진 마음'을 갖고 그것을 진리로 삼는 일만큼 자신을 멈춰 서게 하는 것은 없다. 지혜란 다른 말로 하면 '멈추지 않기'이다. 이것을 강조한 것으로 "반야심경"보다 더 선명한 것이 있을까. 바로 '바라밀다'이다. 목적지도 없고 도착지도 없다. 그저 여기서 저기로 건너가는 것만 있다. 지혜는 바로 건너가기 자체이다. '건너가기'라는 동명사가 지혜이다. 지혜로운 자는 어디에 마음을 두거나 멈추지 않는다. '정해진 마음'을 가지면 스스로는 우뚝 서는 느낌이 드니 그것에 대한 자부심과 신뢰는 하늘을 찌른다.문제는 '정해진 마음'을 갖는 순간 곰곰이 생각하는 능력이 점점 사라지고 반성 없이 즉각적으로 등장하는 감각만 커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지식의 영역에서는 지식 생산자의 입장에 서지 못하고 지식 수입자로만 산다. 지식의 생산이 바로 문명의 생산력이다. 지식 생산자의 대열에 끼지 못하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높이에 이를 수 없다. 지식을 수용하는 위치에 빠져 있으면 삶은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곰곰이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생산자가 된다.◆프레임 씌우기는 폭력자유, 독립, 풍요는 다 수입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누리는 일이다. 정치적인 성향이 베인 환경에서 그것은 프레임 씌우기로 나타난다. 프레임 씌우기가 얼마나 폭력적인가는 서로 안다. 그러면서도 프레임 씌우기를 계속하는 것은 곰곰이 생각하지 않고 어떤 수고도 들일 필요가 없는데다가 매우 선명하기 때문이다. '종북 좌빨', '보수 꼴통', '토착 왜구', '좌좀' 등등은 스스로도 곰곰이 생각하기 싫고 상대에 대해 생각도 해주기 싫다는 의사표시이다.이런 태도는 매우 간명하고 시원하기 때문에 끊기 힘들다. 끊기 힘들면 시원한 것에 만족하다가 숙고하는 정련을 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개인의 성숙이나 사회의 진화에는 분명한 필요조건이 있다. 곰곰이 생각하는 태도다. 정치적 의사 표시를 프레임 씌우기에만 의존한다면, 지식의 생산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진화의 길은 멀고도 멀 수밖에 없다.◆진화는 '정해진 마음'과의 결별'정해진 마음'을 약화시키거나 없애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해진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깨달음에 이르거나 진화의 동력을 갖는 일은 불가능하다. 개인의 진화(성숙), 사회의 진화, 정치의 진화에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무위'(無爲), '무념'(無念), '무아'(無我), '정관'(靜觀) 등등의 특별한 태도들은 모두 '정해진 마음'을 약하게 하려는 것들이다. 진화를 궁극으로 밀고 나아가는 모든 가르침에는 이 '정해진 마음'을 해소하는 절차를 항상 가장 앞에 둔다.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자들은 그 가르침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회개이다. '정해진 마음'과 결별해야 예수의 가르침을 받을 바구니가 준비된다. 회개 없이 예수의 신도가 될 수 없다. 부처의 음성을 마음에 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참회이다. 참회 없이 부처의 음성을 담으려 들면 안 된다. 참회의 과정을 건너뛰고 해탈을 꿈꿀 수 없다. 회개 없이 천국을 꿈꾸거나 참회 없이 해탈을 꿈꾸는 일은 진화를 포기한 채 함부로 사는 막무가내의 인생으로 이끈다.해탈이나 참회에는 다 '정해진 마음'과의 결별이 포함된다. 그런데 '정해진 마음'과의 결별은 경험한 적도 없고 이해되지 않는 곳으로 건너가는 일이다. 이것도 감각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하는 사유의 활동이다. 감각적 활동이 아니라 지적인 활동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지적 인내이며 용기이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자는 '정해진 마음'과 결별하는 용기를 '자기 살해'(吾喪我)로까지 표현하는 것이다. 장자에게서도 '자기 살해' 없이 '소요유'(逍遙遊)의 자유는 없다. 소요유에 이르게 하는 '자기 살해', 해탈에 이르게 하는 참회, 천국으로 인도하는 회개가 모두 지적인 태도이며 용기이다.◆지식과 내공개인이나 사회의 진화를 꿈꾸는 자들은 먼저 '정해진 마음'을 기준으로 써서 감각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가벼운 태도를 줄이고 곰곰이 생각하는 지적인 태도를 함양해야 한다. 지적인 태도를 함양하지 않고는 어떤 종류의 진화에도 관여할 수 없다. 한 조각의 '인식'도 내놓지 못하면서 그저 별 의미도 없이 강하기만 한 '의견'을 내뱉는 허탈한 삶을 산다.지적인 태도는 여러 가지가 뭉쳐서 만들어지지만, 대표적인 두 가지는 바로 지식을 증가시키는 일과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내공이다. 곰곰이 생각하는 것도 내공이고 용기를 발휘하는 것도 다 내공이다. 겸손도 내공이고 화해도 다 내공이다. 지식의 생산도 내공이고 양보도 내공이다. 우리의 모든 진화에는 지식과 내공이 결부된다. 일은 간단하다. 나와 사회의 진화를 도모한다면, 이제 이 두 가지를 모두 닦는 수밖에 없다.지식과 내공이 잘 닦이면 우리는 지금 이 단계를 넘어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진화를 이룰 수 있다. 그렇다면, 지식과 내공을 동시에 잘 닦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독서다. 책을 읽어야 한다. 펼친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이나 읽으려고 산 책을 정말로 읽는 일은 다 인내를 요구한다. 인격적인 단련이다. 지적인 수고를 하는 일이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nard)는 독서를 '마법의 양탄자'에 비유한다.◆지식과 내공의 수양방법으로 독서가 최고독서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아직 경험하지 않고 이해되지 않은 어떤 곳으로 데려다 주는 마법을 부린다는 뜻이다. 우리가 아직 지식 생산자의 입장에 서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심한 분열상을 겪고 있는 것은 진화의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과 관련되는데, 그것은 독서를 그런 진화가 가능할 정도의 양까지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2015년 UN조사결과 한국인의 독서량은 192개 국가 중 166위이다.이것도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 양인데, 해가 갈수록 독서량은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었다. 문체부가 시행한 2019년 국민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성인은 연간 독서량이 6.1권에 불과하다. 독서를 하지 않으니 지적인 훈련이 되지 않고, 지적인 훈련이 되지 않으니 사회에는 인식의 교환보다는 반성되지 않은 의견들만 난무하고, 정치는 진영과 프레임 씌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식은 생산의 시도가 이뤄지지 않는다.자신과 사회의 진화를 꿈꾼다면, 우선 독서를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들끼리 도달할 수 있는 높이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 높이를 넘어서려면 최소한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읽어야 한다.이런 꿈을 꿔본다. 새 말 새 몸짓으로 새로워지기 위하여 우선 책을 읽는다. 사단법인 새말새몸짓과 함께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독서라는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다음 단계로 건너가자. 진화는 용기로 빚어지며, 용기는 지적 인내이다. 지적 인내는 독서로 제일 잘 길러진다. 책읽기가 보통 물건이 아님을 기억하자.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ifston@daum.net

2020-05-18 14:52:18

[세계의 창] 사회주의의 부활

[세계의 창] 사회주의의 부활

코로나19에 대처한다면서 묻지마식 보조금 지급 등 사회주의 정책이 부활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시장경제 체제로 돌아갈 수 있을지 우려된다. 새삼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환기시키고 싶다.인류의 생활이 최저생존 차원에 맴도는 '맬서스 사슬'(Malthusian Chain)을 벗어난 것은 산업혁명에 의한 생산성 증대 때문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즉 자본주의로 가능해졌다. 자본주의는 국가의 탈취로부터 해방되는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자유를 뜻한다. 사람(개인)과 국가의 투쟁에서 사람이 승리하여 개인의 자유가 확립된 결과가 자본주의이다.국가권력을 늘리는 것이 사회주의라면 사람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자본주의이다. 세계의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를 택한 나라는 인센티브를 갖는 개인의 근면, 저축, 창의성 발휘로 번영하였고 사회주의 국가는 쇠퇴하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이르러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자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는 수명이 다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 인류는 이제 국가체제 진화의 최종 단계에 도달하였는바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며 이를 대체할 더 나은 체제는 없다고 결론지었다.구소련 붕괴 후 30년이 지난 지금 역설적으로 서구 문명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인기를 되찾고 있다. 후쿠야마의 결론이 성급했던가? 최근 여론조사(Hill-HarrisX Poll, 2019)에 따르면 모든 사회 구성원이 균등한 소득을 지급받는 보편적 기본소득 (Universal Basic Income)에 미국 유권자의 49%가 찬성하며 특히 18~35세의 청년층은 찬성률이 72%라고 한다.보편적 기본소득은 미국 정부가 1968~1980년 6개 주에서 4차례에 걸쳐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로 시험해 본 바 있다. 소득이 기본 수준 이하이면 미달액을 정부가 보조해 주었는데 그 결과는 현저한 노동 의욕 상실이었다. 노동시간 감퇴 효과가 기혼자의 경우 남편은 9%, 부인은 20%, 독신 여성은 25%, 독신 남성은 43%에 달했다. 그 결과 국가보조금이 감당할 수 없게 늘어서 마이너스 소득세를 폐기했던 것인데 보편적 기본소득 논의가 다시 부활한 것이다.한국에서도 보수 야당의 총선 괴멸에서 보듯이 시장경제는 인기가 없다. 야당의 전략적 실수가 있었지만 국민 정서가 사회주의로 기울어진 것도 사실이다. 2018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의하면 정치 성향이 진보라고 응답한 사람이 31%, 보수는 21%이다. 한국의 진보를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한) 사회주의라고 볼 때 이념 전쟁에서 이미 사회주의가 이긴 것인가?왜 자본주의는 우수성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탄받고, 사회주의의 인기가 되살아나는 것일까? 그 이유의 하나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는 부자에 대한 시기심이 아닌가 한다. 찰스 디킨스의 명작 크리스마스캐럴은 자본가 에비니저 스크루지를 비정한 구두쇠로 묘사하고 있다. 구두쇠는 죄인이 아니다. 나름 절약하고 저축하였지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은 없다.영미에서 스크루지가 지탄받듯이 한국에는 재벌에 대한 반감 정서가 있다. 재벌의 상속세 탈루를 비판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합리한 상속세제가 있다. 생전 고인이 세금을 납부하고 모은 재산에 대해 상속세로 다시 징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로서 조세 원칙에 어긋난다.삼성이 자녀 승계 포기를 발표하였지만 재벌의 가족 경영도 장점이 있다. 전문경영자가 기술적으로는 우월하겠지만 경영자(manager)와 기업가(entrepreneur)는 다르다. 성공적 기업 운영은 기업가 정신 즉 모험심, 창의성을 요구한다. 경영 기술은 미숙하지만, 세대에 걸쳐 축적된 노하우와 주인 의식으로 무장된 기업가가 가족 경영에서 많이 발견된다.사회주의가 아닌 시장경제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나라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 아닌가?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을 불식하고 자본주의의 장점을 재확인하였으면 한다. 재산권을 보호하고 국가 개입을 줄여간다면 경제 번영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2020-05-18 14:48:12

[매일춘추] 대구문학의 아키비스트 ‘백기만’

[매일춘추] 대구문학의 아키비스트 ‘백기만’

백기만은 혁명가이자 시인, 문학의 매개자이자 출판편집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1920년대 지역 문단 형성과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 인물이었다. 항일문학의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독특한 문학 세계관을 지닌 이장희와 함께 근대 지역 문단의 씨를 뿌리고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역 문단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조명과 연구는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대구문학관의 근대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곳곳에서 언급되는 것을 통해 그의 문학 아키비스트로서의 모습과 중요성을 여실히 엿볼 수 있었는데, 그가 왜 지역의 문단사에서 부각되지 못하고 점점 잊혀졌는지 쉬이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았다.백기만은 1902년 대구 태생으로 아호는 목우(牧牛)이다. 필명으로는 백웅을 썼다. 대중들이 알고 있는 그의 모습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다. 1917년에는 현진건, 이상화, 이상백과 함께 프린트판 습작동인지 '거화'를 펴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당시 청년들의 문예를 통한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과 방향성을 보여주리라 짐작할 수 있는데 경상북도 경찰부에서 편찬한 '고등경찰요사'의 기록에 의해 백기만이 1919년 대구 3·1 만세운동 주동자로 지목되어 검거, 수감된 것을 볼 때 일찍부터 혁명가적 기질이 그에게 이미 내재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화'는 이후 1920년대 동인지가 문단의 중심으로 성장하게 되는 초석이 되었고, 이러한 동인지가 당시 문학도들의 문예활동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인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1920년대 초반 백기만은 이일우의 협조를 받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 유학하면서 많은 문우들과 교우를 맺으며 여러 시인과의 매개자적 면모를 갖추어 갔다. 대학 중퇴 후 조기귀국을 하였는데, 대구문학관에서 수집한 그의 친필 엽서를 통해 그 이유가 금전적 문제였음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귀국 후 유학 당시 연을 맺은 양주동, 유엽 등과 주축이 되어 동인지 '금성'을 편찬했으며, 3호 편찬에 앞서 이장희와 이상백을 동인으로 편입시키면서 시인으로 등단시키기도 하는 등 '창조', '폐허', '백조' 등과 함께 1920년대 동인지 문단 형성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이후 서울과 지역을 오가며 문인들 간의 가교 역할을 하였고 '개벽', '여명' 등에 자신의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조선통신중학관에서 1920년대 초기 시인들의 작품을 묶어낸 최초의 근대시인선집인 '조선시인선집'을 편찬하면서 편집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내었지만, 1929년 '고월 이장희의 유작 시화전' 및 '추도회'를 끝으로 더 이상 창작활동은 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는 편집자로서의 활동을 활발히 하여 이상정 장군의 유작을 모은 '중국유기'와 이상화와 이장희의 유고 작품과 회상록을 엮은 '상화와 고월', 경북 작고 예술가 평전 '씨뿌리는 사람들', 잡지 '문학계' 등을 편찬하였다. 이는 동시대를 함께한 문우들의 작품을 수집, 기록하여 보존하고 기리기 위한 노력이었으며 문학아키비스트로서의 활동과 결과의 산물이었다.시인, 매개자, 편집자로서의 모습과 함께 당대 문우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함께 활동한 기억을 기록하여 지역의 근대문학 형성에 일익을 담당한 그의 활동이 다각적이고 입체적으로 연구되어 지역문화예술계에서 제대로 평가 받기를 기대해 본다.

2020-05-18 14:19:12

[매일춘추] '빌리 엘리어트'의 윌킨슨 선생님

[매일춘추] '빌리 엘리어트'의 윌킨슨 선생님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감정적 혹은 정신적 도움이나 본인도 몰랐던 잠재력을 끄집어내주는 것으로든 두 존재 사이에 어떠한 사건이나 매개를 통한 화학작용이 있을 때 발현되는 결과로 한 사람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고, 그 결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멘토와 멘티 정도로 엮어지는 것 같다. 참 스승의 부재를 논하는 시대, 선생은 많지만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현재의 '우리'가 사회 곳곳에서 '나'라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은 각자에게 진정한 스승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도 몇 분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간다.1984년 영국 북부의 작은 탄광촌. 그곳에서 태어난 남자들은 모두 광부로, 여자는 모두 광부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듯 오랜 시간을 보내온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장기 불황에 시달리던 정부가 탄광 폐쇄를 결정하면서 모든 광부들이 실업자가 될 위기에 처해지자 마을에서는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파업시위로까지 이어졌다. 당장 가족의 끼니를 걱정해야만 하는 가장들의 어깨가 무거워지면서 시름과 초조, 불안이 섞여 장엄하기까지 한 분위기 속에서 한 소년은 남자다움의 상징인 권투를 배우기 위해 체육관으로 향한다.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아버지, 형 그리고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 밑에서 자라난 소년은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체육관 한 켠에서 진행되던 여자 친구들의 발레수업을 보게 되는 소년. 그리고 그곳에는 소년에게서 뛰어난 발레리노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발레 선생님 '윌킨슨 부인'이 있다. 늘 감정표현에 서툴기만 했던 소년이지만 발레를 만난 그의 마음속에는 전기가 통하듯 찌릿한 불꽃과 같은 감정의 용솟음이 일어난다.소년을 응원해줄 조금의 여력도, 사회적 기반도 없던 시절, 그의 요구는 파장을 일으켰다.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를 두고 싸우고 있는 아버지와 형의 눈에 발레리노가 되겠다는 소년은 한심하게만 비춰졌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이기 전에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소년을 지지해준 윌킨슨 선생님의 도움은 가족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런던 국립발레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경비가 십시일반 모여지기 시작했고 소년은 마침내 '백조의 호수' 속 백조가 되어 높이 날아갈 수 있었다.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소년 빌리가 최고의 발레리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윌킨슨 선생님과의 사이에서 엄청난 케미스트리(Chemistry)가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다 망해 버린 탄광촌에서 그저 그렇게 살 수도 있었던 빌리가 참 스승을 만난 사건은 그의 삶을 전혀 새롭게 바뀌게 했다. 나에게도 삶으로, 인생으로 소중한 깨달음을 몸소 가르쳐주신 두 분의 스승님이 계신다. 그 두 분을 만나고 삶의 신조랄지, 지향하는 삶의 방향성과 같은 것들이 크게 자리 잡혔다고 할 수 있겠다. 자주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늘 마음속에 계신 두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2020-05-17 17:30:00

[이른 아침에] 위안부 문제는 정쟁 대상이 아니다

[이른 아침에] 위안부 문제는 정쟁 대상이 아니다

"고무신이 벗겨진 채 소녀는 끌려갔네/ 부를수록 집은 멀고 총칼은 목에 닿고/ 악문 채 몸을 봉해도 군홧발에 녹아갔네/ 총을 물고 울었건만 목숨은 욕(辱)을 넘어/ 헐은 몸 닦고 닦아 옛집 앞에 섰건만/ 코 베인 고무신처럼 생이 자꾸 벗겨지네."(정수자, '슬픈 고무신')시에서처럼 '고무신이 벗겨진 채 끌려간 소녀'였던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제는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는 줄 알았다. '정의연'(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주최 수요 시위 덕분에 위안부 문제는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후원금 등을 통해 그분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곤 한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은 피해 할머니들이 여전히 마음고생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코 베인 고무신처럼 생이 자꾸 벗겨지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정의연 관련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는 크게 두 가지다. 후원금 사용과 지금까지 정의연의 운동 방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우선 회계 문제에 대한 여러 지적은 정의연이 귀담아들어야 한다. 정의연은 '공익'재단법인이기 때문이다. 법에 따라 정의연은 기부금과 국고보조금을 받고 세금 혜택이 부여된다. 대신 모든 활동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무관청의 엄격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 공개된 기록만 보아도 회계 기준에 비추어 엉성하고 투명하지 않은 돈의 쓰임새가 드러난다.이런 상황을 방치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세무 당국의 감독과 함께 정의연은 외부 감사 등을 통해 의혹에 대해 성실하게 해명해야 할 도덕적·법률적 의무가 있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게 정의연 활동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회계에 대한 비판이 그간 정의연의 활동과 성취를 부인하는 게 아님은 당연하다. 따라서 '친일파' '보수세력' 운운하는 여권 일각의 대응은 어처구니없다. 생뚱맞은 프레임 전환 시도는 의구심을 키우는 일이다.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의 개인적 의혹을 여권이 정쟁으로 확대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권력형 비리 등 야당이 거들어야 할 사안도 아니다.정치권은 오히려 이용수 할머니의 다른 지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의연 활동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그것이다. 이 할머니는 "학생들에게 증오만 키우는" 수요 시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용당할 만큼 당하고 참을 만큼 참았다는 이 할머니의 증언에서는 피해자들의 진정한 의견이 배제된 활동가 중심의 운동에 대한 서운함이 드러난다. 그간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해 온 여러 인사들이 국회와 행정부 요직에 진출한 바 있다. 윤 당선인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된다는 이 할머니의 발언은 그간 많은 이들이 위안부 문제를 출세(?)의 관문으로 삼아온 데 대한 피해 의식의 발로라 생각된다. 이른바 피해자 중심주의와는 거리가 먼 정의연 활동에 대한 반성과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할머니의 발언처럼 위안부 관련 운동이 미래지향적이 되려면 실질적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2011년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문제 등의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강국 재판관 등은 반대의견을 남겼다. "일본에 의하여 강제로 위안부로 동원된 후 인간으로서의 삶을 송두리째 박탈당하고 그 가해자인 일본국으로부터 인간적 사과마저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이 사건 청구인들의 절박한 심정을 생각한다면…어떻게든 우리 정부가 국가적 노력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우리 모두 간절하다…청구인들이 처해 있는 기본권 구제의 중요성, 절박성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헌법이나 법령, 기타 헌법적 법리에 의하여도 발견해 낼 수 없다면, 결국 이들의 법적 지위를 해결하는 문제는 정치권력에 맡겨져 있다…."친일·반일 논쟁을 떠나 정치권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원도 하기 전에 정쟁부터 시작하는 21대 국회라면 그 전도는 보나 마나다. 여야는 정치적 드잡이를 그치고 위안부 할머니들 생전에 발에 꼭 맞는 고무신을 신겨드리는 일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2020-05-17 15:58:27

[2020 세상 읽기] 보수재건-아래로부터, 지역에서부터

[2020 세상 읽기] 보수재건-아래로부터, 지역에서부터

지난 2005년, 독일의 한 국회의원이 방한했다. 그의 이름은 안나 뤼어만. 뤼어만은 방한기간 동안 청소년과 청년의 정치참여에 대한 세미나와 토론 등의 활동을 펼쳤다.뤼어만은 당시 세계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화제가 됐다. 1983년생인 그는 19세가 되던 2002년 녹색당 비례대표로 독일 연방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야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10대의 나이에 국회의원 당선이 됐다는 것은 그 당시는 물론 지금도 우리에게 생소한 모습이다. 하지만 뤼어만을 단지 이색적인 청년 정치인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그는 절대로 갑자기 툭 튀어 나온 것이 아니다.뤼어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정치경력을 살펴봐야 한다. 뤼어만은 10세 무렵부터 그린피스 환경보호 지킴이와 학교 학생회 활동을 했으며 15세에 녹색당에 가입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정당정치 경험만 놓고 보면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보다도 오래된 셈이다.34세의 나이에 핀란드의 총리가 된 산나 미렐라 마린, 프랑스의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등 서구 선진국의 많은 정치지도자들 중 10~20대 때부터 정당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고, 유명 정치인들 중 상당수도 일찌감치 정당정치 활동을 시작하며 내공을 쌓아왔다. 그들에게 의미 있는 정치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당 안에서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정치 활동을 하고 당내 입지를 만들어 가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있어야만 한다.21대 총선이 치러진지 한 달이 지났다. 새롭게 열리는 국회를 앞두고 희망찬 미래를 꿈꿔야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이 있다. 바로 미래통합당이다. 이번 총선과정에서 보인 미래통합당의 지리멸렬한 모습은 총선이 한 달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뾰족한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래통합당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보수가 불행의 긴 터널 속에 있다.문제는 이러한 모습이 단순히 미래통합당의 불행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이, 더욱이 제1야당이 계속해서 어렵다면 이것은 대한민국 전체의 불행이다.여야를 막론하고 우리 정치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정당과 지역 활동을 통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십중팔구 어느 한 분야에서 일정 수준이 되어 명성을 얻거나 성과를 내면 너나 할 것 없이 정치권으로부터 자천타천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리고 선거 때 힘 있는 누군가의 공천을 받아 정치인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특히 보수정당의 경우 관료, 율사, 학자, 사업가 등 이른바 우리사회의 기득권들이 자신들의 마지막 커리어를 완성하기 위해 정치를 활용하는 경우를 허다하게 봐왔다.21세기 정치에서 메시아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어느 날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와 혼자서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시민들은 정치인들의 욕망만큼이나 치열하고 복잡다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정치인에게 맡기기보다 함께 풀어가기를 원한다.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이런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몇몇 힘 있는 자에 기대는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내에서 시민들의 요구를 받들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스스로 힘을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성 정치인은 물론, 정치지망생들의 정당 및 지역 활동을 적극 도와야 한다. 그들이 지역과 당내에서 치열한 경쟁 통해 정치적 체력을 길러낼 수 있게 하고,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사례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지역에서 이번에 당선된 강대식(대구 동구을), 정희용(경북 고령·성주·칠곡), 김병욱(경북 포항남·울릉) 당선인들의 경우, 모두 오랜 기간 정당정치에 몸담으며 지역에서부터, 아래로부터 성장해온 인물들이다. 강대식 당선인의 경우 구의원과 구청장 등 풀뿌리 지역정치활동만을 무기로 국회에 입성했다. 정희용, 김병욱 당선인은 국회의원실의 말단직원으로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렀다.유권자들은 한 차원 높은 보수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이들에게 한 표를 던졌을 것이다. 앞으로 이들의 의정활동에 따라 더 많은 풀뿌리와 말단들에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풀뿌리와 말단으로 시작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성장해가는 보수정치인들이 많아져야 대한민국 보수는 물론 대한민국 정치 전체가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다.시민들은 자신들의 모습과 닮은 정치인을 원한다. 보수의 모습은 지금 어떠한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이미 시민들의 모습에 그 답이 있다.이창원(인디053 대표)

2020-05-17 06:30:00

[2020 세상 읽기] 늙은 쥐의 時事유감(6) 문재인 정권 3년

[2020 세상 읽기] 늙은 쥐의 時事유감(6) 문재인 정권 3년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일체관계, 공생관계, 견제관계라는 세 가지 틀을 따라 움직인다. 공산주의(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일체관계가 되고, 권위주의 독재 국가에서는 이익을 함께 하는 공생관계가 될 때가 많다.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언론이 정권을 감시하는 견제관계가 그 기본형태다. 그래서 정론직필이니 파사현정이니 하는 어구를 언론의 지표로 삼게 된다.민주사회의 언론은 현실을 선택해 보여주고(미디어 의제) 그것을 여론(사회적 의제)으로 발전시켜 공공의 대책(공적 의제)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주권재민의 민주사회에서 여론 특히 공론을 중심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언론의 의제 설정은 수많은 현실 가운데 취사선택 되고 가공, 조정, 조작, 왜곡을 거친 의사(擬似)현실이라는 한계점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의사현실이 진짜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느냐가 언론의 권위나 존재이유를 재는 척도가 된다.문제는 모든 권력들이 언론시장의 자유로운 여론 활동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지형을 만들기 위해 정치적, 법적, 사회적 압력이나 금전, 이권 등을 동원해 언론을 장악하려는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늘 권력과의 투쟁을 통해 조정, 재조정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문 정권은 정부 권력과 좌파세력을 동원해 언론을 정권과 일체화시키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정권의 약점과 치부는 의제에 오르지 않도록 만들고, 정권이 알리고 싶은 사실(거짓)만을 퍼트릴 수 있게 됐다. 정권이 미디어 의제를 마음대로 주무르니 사회적 의제 또한 거기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 친일 등 파행적 이념공세나 야당에 대한 망언 공세가 사회적 화두가 된 것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반대로 문 정권의 선거 부정들, 넘쳐나는 정권 스캔들, 여당의 망언, 개인의 부도덕성은 용두사미가 되기 일쑤다. 특히 이번 4.15 총선의 부정 의혹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차대한 사건임에도 아직 미디어 의제로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이렇게 고장난 언론 상황과 겹쳐지는 최근 보도의 하나가 문 정권의 취임 3주년 지지율이다. 1004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전국 평균 71%의 지지율을 보였고, 호남에서는 92%를 기록했다.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이런 결과를 가져온 대통령을 향해 문비어천가들을 헌상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문 정권 3년이 조선 태종대의 모습이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대의 모습이 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지난 3년의 결과가 그런 것이었고, 앞으로 있을 2년이 또 그런 시대를 연다면 국가나 국민으로서는 더 이상 다행스러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95% 신뢰수준(100번 조사해서 95번 같은 결과를 얻게 될 확률)이라는 이번 여론조사의 결과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심리적 부담이 너무 크다.한 시대의 정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정권의 기본성격과 연계된 양심, 조화와 균형, 실용, 결과의 네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문 정권의 기본성격은 사회정의를 바라는 6000여 명의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이 얼마 전 규정한 바와 같이 유사 전체주의 성향이 농후하다. 아마도 입법, 행정, 사법과 선관위, 방통위, 언론 등을 두루 장악한데 대한 우려의 표명일 것이다. 최근 감사원장이 검은 것을 검다고 말하라고 직원들을 질타한 것은 저간의 사정을 실감나게 설명해준다. 이제 검은 것과 흰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전체주의 독재시대로 가고 있다는 푸념일 것이다.역사 속의 전체주의는 파시즘, 공산주의 등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국가(실제로는 독재자) 목표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억누르는 체제였다. 그래서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엄청난 인류의 비극을 초래하기도 했다. 문 정권의 지지기반인 호남의 지지율이 92%에 이른 것은 이런 전체주의의 또 다른 단서로 해석될만한 일이다. 반대 여론이 사라진 공간, 소수의견이 묵살되는 공간에서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어렵다.문 정권의 기본 성격을 유사 전체주의로 규정하면 네 가지 정권 평가 기준은 손쉽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양심의 문제에서 문 정권은 국가적 양심, 사회적 양심, 개인적 양심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대한민국의 국가적 양심은 자유민주주의다. 사회적 양심은 이를 구체화시킨 공정한 선거, 공정한 재판, 공정한 감사 등을 의미한다. 개인적 양심은 인사청문회, 공천 등을 통해 나타나는 정권 구성원 개개인의 도덕규범으로 확인된다. 누누이 지적된 것이지만 문 정권의 양심 점수는 평가대상으로 하기에 부적합할 정도다.둘째 문 정권은 국정의 성공조건인 조화나 균형을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으로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국가 발전을 위해 써야할 돈과 자리를 추종 세력에게만 안겨주는 비상식을 예사로 여겼다. 모든 일을 이념의 잣대로 내편과 상대편으로만 구분하는 정권에게 조화나 균형은 허울 좋은 장식품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들의 사전에서는 셋째 기준인 실용적 사고라는 용어를 찾아볼 길이 없게 된다.그 결과 지난 3년간 국정으로 나라가 총체적 파국을 맞고 있는데도 태평성대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어림잡아 본 문 정권의 지난 3년 평점은 71점이 아니라 거기에 마이너스를 붙여야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구태여 설명을 해본다면 코로나 국난극복을 위한 국민적 결집, 이를 빙자한 복지예산 살포 등이 1차적 상황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반대세력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 저항여론에 대한 의도적 무시, 무기력한 야당의 내분과 자멸, 엉터리 역사교육 등등이 기저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권과 일체화된 언론의 탈선과 타락도 지지율 왜곡의 중요한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필자는 문 정권 초기 어느 세미나에서 문 정권이 조선조 4대 암군 중 연산군, 선조, 인조(고종은 논외로 했음)의 삼각파도를 몰고 올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나라 살림을 거덜 내고, 명나라에 조선을 바치고, 청나라의 안보 위협을 주자학 이념으로 대처했던 세 암군의 파고가 한꺼번에 몰려올까 걱정된다는 이야기였다. 태종, 세종이라는 현실인식과 연산군, 선조, 인조라는 현실인식 가운데 어떤 쪽이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박진용 언론인/역사저술가

2020-05-16 07:05:01

[광장] 신돌석, 못다 이룬 꿈

[광장] 신돌석, 못다 이룬 꿈

작년 5월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신돌석 장군의 생가와 사당 및 기념관을 찾았다. 영덕군청의 김신규님으로부터 '호국의 씨앗, 영덕에서 발아하다'와 '소설 신돌석, 평민 출신 의병장'(백상태)을 얻게 되었다. 이 책들과 '신돌석, 백년 만의 귀향'(김희곤)을 자료로 오는 6월 1일 '의병의 날'을 앞두고 그의 삶을 조명해 본다.장군의 본명은 태호이고 아명이 돌석이었지만 후일 영릉의진(寧陵義陳)을 일으킬 때 돌석을 장군의 이름으로 쓰게 되었다. 평민 출신이었지만 부친의 노력으로 이중립 선생의 육이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천자문', '명심보감'을 거쳐 '소학'을 끝내기 전에 선생이 돌아가셨는데 이때 장군은 15세였다. 훗날 '손자'와 '오자' 같은 병서를 스스로 읽을 기초를 쌓았던 것이다.19세인 1896년에는 김하락의진을 따라 영덕 남천변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 후 추적을 피해 남으론 청도, 경주, 울산까지, 북으론 강릉을 거쳐 함흥까지 나아가 일본의 만행을 목격했고, 만나는 사람들과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했다.1904년 평해 월송정에 올라 "누각 오른 나그네 갈 길 잊고서/ 무너진 단군 옛터 안타까워하네!/ 남아 27세에 무슨 일 이루었나?/ 잠시 갈바람에 기대니 감개만 돋아나네!"라는 칠언절구 한시를 읊었다. 김희곤 교수는 장군께는 단군의 후손이라는 민족의식이 있었다고 했다.1906년 4월 6일, 장군은 200~300명 규모의 영릉의진을 일으켰다. 대부분은 농민, 어부, 도부꾼이었지만 대의에 동참하는 소수의 양반들도 있었다. 풍전등화 같았던 대한제국의 운명 앞에 용력, 지력 및 경험까지 갖췄으며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았던 장군은 평민임에도 불구하고 의병진대장에 추대되었다. 이는 인력동원뿐만 아니라 무기와 장비, 의복 및 식량을 동원할 능력을 갖췄음을 뜻한다.이후 2년 8개월간 영릉의진이라는 깃발을 세우고 태백준령을 중심으로 동서와 남북을 넘나들며 신출귀몰한 무용을 펼쳤다. 1907년 후반까지는 300명으로 추산되는 큰 규모로 움직였으나 일본군 토벌대의 집중 공격이 시작된 1908년부터는 소규모로 나뉘어 일월산과 백암산 일대의 산악지대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장호동의 일본인 기지 공격, 울진의 일본인 공격, 일본군 토벌대와의 수차례 전투 등 무수히 많은 전투를 벌여 일본군과 진위대에겐 공포의 대상이었고 민중에겐 든든한 '태백산 호랑이'였다.통감부는 의병의 활동을 막기 위해 1907년 말부터 귀순자에게 면죄부를 주며 귀순을 종용하였다. 이런 조치와 토벌대의 집요한 추격으로 1908년 가을엔 귀순자가 많이 생겼고 그해 말엔 의병의 수가 20명 선으로 줄었다. 이때 장군은 의진을 해산하고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지속할 계획을 세웠다.이런 와중에 장군은 영덕군 북면 눌곡에 있는 김도윤(상근으로 개명)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김도윤은 한때 장군의 부하였고 외외가 쪽 친척이기도 했다. 그러나 장군에게 붙은 현상금을 탐낸 김도윤과 그의 형 김도룡(상열)에 의해 집 근처 계곡에서 살해되고 말았다. 1908년 12월 12일 새벽,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난 나라'를 만드는 미완의 꿈을 안은 채 서른한 살의 나이에 어처구니없는 죽임을 당했다.세월은 흘러 112년이 지났지만 반도는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고, 반도의 운명은 여전히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장군의 못다 이룬 꿈은 이제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꿈이 되었다.

2020-05-15 18:19:38

[매일춘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안겨준 또 다른 교훈

[매일춘추] 사회적 거리두기가 안겨준 또 다른 교훈

어느덧 세 달 남짓, 코로나19로 인해 온 국민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있다.늘 바쁘게 움직이고, 쉴 틈 없이 달려오던 우리는 갑작스러운 급제동에 어리둥절해하며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게 낯설고 불안한 이유는 평소에 아무 일정도 없었던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몇 주의 시간이 흐르자, 또 다른 시간들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평소엔 얼굴을 마주하기도 힘든 가족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산책도 하며,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도 늘어났다.사실 우리가 무언가에 끝없이 매진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함이고, 그 경쟁 속에 이미 익숙해져 '쉼'이란 것을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끝없이 목표를 향해 달리면 정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까. 본인이 가진 일의 발전과 결과를 중시하는 요즘 사회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은 우리와 너무나도 친숙한 감정이다. 우리는 그 행복을 위해 경쟁을 감수하고, 불안을 받아들이며, 결과를 내기 위해 밤낮으로 무던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바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앞에 들이닥친 코로나19는 불편하고 위험한 불청객이다. 뭐든지 빠르게 해내는 삶의 속도에 적응된 우리에게 모든 일상의 정지를 요구했고,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치명타였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교훈을 주고 있다.바쁘게만 살던 우리에게 절제의 가치를 알려주고, 그 절제의 필요성과 그로 인해 가지게 되는 행복을 맛보게 해주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에게 감사할 여유가 생겼고,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나만 생각하던 마음이 주변에게 나눠지기도 한다. 어쩌면 모든 사회가 잠시 멈춘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너무 바쁘게만 움직이던 우리가 진정 쫓아가던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고민할 시간이 아닐까? 사회가 바라는 기준, 남들의 시선에 맞추기 위한 기준에서 벗어나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지금 가진 것들과 내가 누려온 것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절제되니 지구가 깨끗하다는 뉴스를 다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제서야 우린 지구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되듯이 말이다. 우리의 행복은 바로 거기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한 심리학자는 "행복은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데 달렸다"고 말한다. 그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지내온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시간은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바쁘게 살아오던 삶을 더 바쁘게 살아내고 있는 의료진, 모든게 정지되며 타격을 맞은 많은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가 다시 일상을 되찾고, 여유를 가지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맞이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찾았을 때, 지금의 또 다른 교훈도 함께 공존하길 바라본다.

2020-05-14 17:30:00

[기고]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뉴딜

[기고]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지역 뉴딜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유례없는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도 자영업자는 물론이고 수출에 의존하는 제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제조업과 자영업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경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역경제에 대한 비대칭적 충격은 지역발전은 물론이고 국가의 균형 발전도 후퇴시켜 나라 경제의 부실을 초래한다. 지역의 실업 증가와 제조업의 기반 침하는 경제 전반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이의 교정에 들어갈 사회적 비용도 덩달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국가 차원의 위기 극복 대책에서 자칫 간과하기 쉬운 지역경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발전에 필요한 공공 인프라 사업을 통해 지역의 발전 여력을 조기에 확보하고 지역의 인적 자본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또 지역의 제조업 기반이 훼손되지 않도록 공급 사슬을 복원하고 수요 기반도 확충해야 한다. 특히 전 지역에 걸쳐 수요와 공급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복합적이면서도 다차원적인 지역 뉴딜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지역경제가 예전의 모습으로 단순 복귀하는 것은 곤란하다. 코로나 위기가 발생하기 전부터 지역경제는 성장 한계에 직면해 왔다. 만일 위기 극복 후 지역경제의 모습이 현재의 지역경제와 같다면, 이는 지역경제가 지역의 발전을 견인하지 못한 채 이전과 같은 특정 산업구조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경제가 특정 산업구조에 갇히는 현상은 지역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이로 인해 지역산업은 조로 현상을 보였고 경쟁에 노출되는 정도가 심해지면서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다행스러운 점은 그간 지역경제가 부진한 가운데에서도 계층적 구조에서 다양한 산업구조로 분산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과거 대기업에 의존한 경제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사업체가 연계되어 거래되는 보다 복잡한 경제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산업의 다양성이 커지고 고도화 수준도 미흡하지만 향상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대규모 사업체에 의존하는 경제이지만, 지역마다 다양한 기업을 토대로 차별화된 산업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향후 지역경제에는 이러한 기반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지역은 지속 가능한 성장 경로를 찾아내고 이에 부합되는 산업구조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지역경제는 소수의 기업에 의존하고 과거의 산업구조에 고착되었으며, 변화에 대해 경직적이고 지역 간에 경쟁적인 모습을 보였다.이제는 지역 내 기업 간 거래 구조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고 또 많은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지역 고유의 성장 경로와 이에 부합되는 산업구조가 유연하게 재설정될 수 있는 경제구조로 나아가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지역별로 산업의 성장 경로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지역별로 특화된 성장 경로의 확인은 불필요한 사업 탐색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지역에 지속적 성장이 가능한 산업구조를 정착시킬 수 있다. 성장 경로 확립을 통해 추진되는 지역 뉴딜은 이전과 다른 지역경제의 성장과 균형 발전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가꿀 나무는 밑동을 높이 자른다는 말이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겠지만, 지역과 균형 발전을 위해 밑동을 살피고 나아갈 방향을 정리하는 준비가 필요한 때라 하겠다.

2020-05-14 16:06:55

[춘추칼럼]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의 길

[춘추칼럼]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의 길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3년(5월 10일)을 맞이했다. 집권 후반기로 들어섰지만 국정 운영 지지도는 71%(한국갤럽 5월 1주 조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과거 조사한 역대 대통령의 취임 3주년 무렵 지지도는 박근혜 대통령 42%, 이명박 대통령 43%, 노무현 대통령 27%, 김대중 대통령 27%, 김영삼 대통령 41%, 노태우 대통령 12%였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70%를 넘은 건 지난 2018년 7월 이후 1년 10개월 만이다.전례 없는 압도적 지지 속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통해 남은 임기 2년 동안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겠다는 비전을 밝혔다.최근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지난 3년간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 때문이라기보다는 코로나 사태에 따른 반사이익 성격이 강하다. 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자에게 그 이유를 물은 결과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가 53%로 가장 많았다. 그런데, 정책 항목인 '복지 확대'는 4%에 불과했다. 대구경북에서 긍정 대 부정이 53% 대 30%였다. 60대 이상에서도 그 비율이 64% 대 26%였다.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 성과가 없고 전통적인 보수 진영에서조차 문 대통령 지지에 대한 긍정 평가가 상당히 높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제임스 데이비스(James C Davis)가 제시한 J-커브 이론을 적용하면, 코로나 사태 해결에 대한 기대와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취 간에 인내할 수 없는 격차가 커지면 민심이 폭발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3년을 아주 냉정하게 평가하면 코로나 방역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국민이 기대했던 성과는 아직 요원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구상과 약속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지 못했고,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지 못했으며, 대통령부터 새로워지지 못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지 못했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도 끝내지 못했으며, 대통령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지 않았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도 체감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통합과 공존'이 아니라 '분열과 독존'이 판을 쳤다.문 대통령이 그토록 갈망하는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한 도덕성, 예리한 역사의식, 저항하기 어려운 설득력, 누구나 희구하는 미래의 비전,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상징성을 토대로 '변혁적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과 대통령과의 관계는 승화되어 정치 과정을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국민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국가가 지향하는 큰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국민의 에너지를 최대한도로 끌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용기와 협치, 그리고 겸손이 필요하다. 티머시 스나이더 미국 예일대 교수는 '코로나 이후 인류가 경계해야 할 것'으로 '전체주의 확산, 포퓰리스트 득세, 이념적 편 가르기, 사실을 무시한 선전·선동, 정부의 공포 마케팅' 등을 제시했다. 그는 "위기 상황인 지금이야말로 공포가 아닌,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냉철한 판단이 중요하다"면서 "코로나라는 위기는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 정부가 무엇이든 해도 되는 기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따라서, 선도형 경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 전 국민 고용보험 실시, 한국판 뉴딜 구축, 연대와 협력의 국제질서 선도 등과 같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 못지않게 지금까지 추진했던 핵심 정책들이 왜 성과를 내지 못했는지 깊이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책 오류가 발견되면 정책 기조를 과감히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강성 친문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지지와 성원을 받는 통합 대통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단언컨대, 겸손한 권력만이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 행동하지 않는 도전은 기만이고, 성과 없는 비전은 허구다.

2020-05-14 15:51:13

[이도수의 불가사의 인도] 인도 벵갈루루와 무르티 그리고 삼성

[이도수의 불가사의 인도] 인도 벵갈루루와 무르티 그리고 삼성

상아탑은 세상 풍파에서 벗어나 고고한 진리 탐구를 하는 전당이라는 뜻으로 통한다. 외국인들은 인도를 흔히 미련한 거구 동물 코끼리에 비유한다. 그 비유의 저변에는 인도는 땅덩이만 클 뿐, 저개발국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나라라는 비하 심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인도의 상아탑이랄 수 있는 벵갈루루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인도에 대한 그런 선입견은 한순간에 불식되고 인도의 무한한 잠재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나에게 귀띔해 준 이가 있었다. 인도 출신 국제통상 CEO인 Kumar 씨는 11박 12일간의 인도 현지 답사여행을 마치고 뉴델리공항에서 한국행 항공기 탑승 시간을 기다리는 필자에게 다가와 인도의 상아탑 벵갈루루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벵갈루루는 인도반도의 중심부에서 약간 남쪽에 위치한 데칸고원의 해발 920m에 자리 잡은 고원도시이다. 오랫동안 옛 마이소르 왕국의 수도로 번영하였으며, 1831~1881년에는 영국 통치부의 본부 역할을 했다. 아열대 지역에 속하면서도 높은 고도 덕택으로 지중해성 기후인 데다 청정 공기, 아름다운 자연경관 등 쾌적한 환경에서 세계 최첨단산업단지를 이룬 인도 내의 별천지다.고대부터 수학과 과학에 대한 잠재 능력이 탁월하다는 자부심을 가진 인도인들이 세계 최첨단 과학기술연구단지라 자랑하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능가하는 대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의지로 이곳을 선정했다. 이곳 거주자들은 인도기업뿐 아니라 세계기업의 중추 역할을 한다는 자긍심과 선민의식을 갖고 있다. 기업의 엘리트 두뇌들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과 협력업체 기업의 종업원들도 인도인 특유의 누추함, 지저분함의 때깔을 완전히 벗은 세계 선진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이곳 사업체들이 주로 하는 일은 소위 R&D로 연구(Research)하고 개발(Development)하는 일이다. 이런 고차원적 일을 할 고급 두뇌를 길러내는 교육기관들이 벵갈루루에는 여러 곳 있다. 인도과학대학교(IIS), 인도생명과학대학교(NIBS), 인도경영대학교(IIM), 인도정보통신대학교(IIIT) 등이 그것이다. 인도의 영재들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합격하기 어려운 이들 교육기관에 응시하여 낙방하면 미국 실리콘밸리의 인재양성기관인 MIT에 가서 응시해 보라고 권한다고 할 정도로 세계 최고 영재교육기관임을 Kumar 씨는 자랑한다.이 거대도시를 세계적인 연구개발 도시로 성장하게 한 신화의 주인공으로 Infosys Technology의 창업자 무르티다. 그는 청년 시절 사회주의에 심취되어 빈민구제 사업에 열정을 쏟았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몽땅 고아원에 희사하고 자신은 무욕 거사로 살았다. 그러다가 빈민구제 사업은 빈자를 평생 빈자로 살게 하는 결과만 낳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빈자에게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진정한 구제사업이라는 신념으로 자기가 운영하던 조그만 컴퓨터 회사 종업원 7인과 공동 투자하여 IT서비스와 컨설팅을 제공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1981년 단돈 250달러를 투자해 창업 18년 만인 1999년 인도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2009년에는 47억5천만달러의 매출을 올려 '인도의 빌게이츠'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무르티는 글로벌 대기업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창업 당시의 초심을 잃지 않고 기업 투명경영의 모범을 보였다. 그의 업체에 고용된 모든 종업원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기 위해 스톡옵션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그 업체를 인도 청년들의 꿈의 직장이 되게 했다. 그가 진정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60세가 된 해에 자신이 창업하여 혼신의 열정으로 키운 기업인 Infosys Technology의 회장직에서 깨끗이 물러난 일이었다.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국민 사과를 통해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해 국민께 실망과 심려를 끼쳤다"며 반성했다. 글로벌 대기업인 삼성이 인도의 Infosys Technology의 창업자 무르티처럼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2020-05-13 17:30:00

[김은아의 북돋움] 열 살의 라떼

[김은아의 북돋움] 열 살의 라떼

열 살 조카한테서 '라떼'라는 말이 나왔다. "라떼는 말이야~"는 '나 때는 말이야'를 비슷한 발음으로 빗댄 말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허세 섞인 무용담을 들려줄 때 꺼내는 말로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것처럼 충고와 지적을 서슴지 않는 꼰대들이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들이 특히나 싫어한다. 그런데 정작 젊은이들도, 열 살 아이도 '라떼'를 사용한다는 점이 재미있다.남동생에게는 열 살, 여섯 살 아들이 있는데 둘의 기질이 매우 다르다. 첫째는 과묵하고 점잖은 반면, 둘째는 애교가 많고 에너지가 넘친다. 어버이날을 맞아 오랜만에 친정에서 가족이 모였다. 엄마 품을 파고든 동생을 바라보는 형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 서운함이 복합적으로 서려 있는 것 같았다.첫째 조카는 뭐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아빠・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형아가 그랬어" 하고 이르며 서럽게 울기까지 하는 동생이 얼마나 얄미울까? 뭔가 내세울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어느 날은 "나는 여섯 살 때 말이야. 책을 혼자 다 읽었어. 너는 아직 글자 못 읽지?" 그러고는 홱 돌아서 가더라는데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대학교 2학년인 다른 조카도 여섯 살 아래인 남동생한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너 나이 때는 말이야, 뭐든 잘 먹었어. 그러니까 야채 골라낼 생각하지 말고 다 먹어. 알았어?" 편식이 심한 동생을 나무라는 누나식 '라떼' 화법이다. 첫째 조카는 너그럽기만 한 엄마를 대신해서 자기가 동생의 밥상머리 교육을 시켰다며 자부심 섞인 자랑을 곧잘 한다.형제끼리, 남매끼리 싸우면서도 챙길 건 챙기고 한 명이 어디 가고 없으면 애타게 찾는 모습이 귀엽다. 조카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은 고모이자 이모로서 경제적 지원은 물론이고 그들의 성장과 일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조카들이 예쁘기도 하지만 언니와 남동생에 대한 고마움이 더 깊이 깔려 있다.언니는 바쁜 아버지・엄마를 대신해서 일찍부터 두 동생을 돌봤는데 도시로 나와 셋이 자취를 하면서부터는 점심 도시락 싸기와 밥, 청소, 빨래를 도맡아 했다. 그런데도 빈둥빈둥 노는 동생들한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라떼'를 운운하며 그때의 수고를 생색낸 적이 없다.학부모 교육이나 도서관 평생교육 강좌에서 만난 할아버지・할머니가 곧잘 부탁해 오는 일이 있는데 동생을 시기하는 손주들에게 읽어 줄 그림책을 추천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때' 얘기를 꺼내신다. 우리 때는 누나가 동생을 업어 키웠는데 요즘 애들은 자기밖에 모르니 커서 형제 귀한 줄이나 알겠냐며 걱정 섞인 말씀을 하신다.형제간의 우애는 각자 타고난 기질, 부모의 교육과 본보기, 시간의 흐름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결정체이다. 그림책으로 형제애를 가르칠 수는 있어도 진심이 담긴 실천은 각자의 몫인 것 같다. 주위에서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는 형제들을 많이 본다. 모두 어른인데 말이다. 학교 다닐 때 형제간의 우애를 못 배워서, 책을 안 봐서 그렇게 지내는 건 아닐 테다.어쨌거나 '의좋은 형제'(국민서관)와 같은 그림책은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을걷이를 끝낸 후 형과 아우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한밤중 상대방의 벼 낟가리에 볏단을 가져다 놓는 이야기가 구수하다. 아무리 갖다 날라도 자신의 볏단 수가 줄어들지 않는 것을 의아해하던 형제는 농로 한중간에서 딱 마주친다. "이게 누구냐?" "아이고 형님!" "그랬었구나!" "그랬었군요." 다섯 글자로 이뤄진 짧은 대화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이 그림책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살았던 이성만・이순 형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이들은 부모를 정성껏 모셨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집을 오가며 아침밥과 저녁밥을 먹었으며, 맛있는 음식이 생겨도 함께 있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형제에 얽힌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들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형제 사이가 너무 좋은 남자랑 살면 인생 피곤해." 그 말에 할아버지들은 '허허' 웃으시기만 한다. 시대가 변해도 형제애는 존재하고 '라떼' 화법도 세대를 막론하고 이어질 것 같다.

2020-05-13 17:13:22

[오정일의 새론새평] 사회적 거리두기는 공평한가?

[오정일의 새론새평] 사회적 거리두기는 공평한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미국의 재정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정부지출은 6조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25%에 해당한다. 올해 미국의 재정 적자는 4조 달러로 추정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금액이다. 미국 중앙은행도 최근 6주(4월 19일 현재) 동안 2조 달러를 대출하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4년 동안의 대출과 비슷한 금액이다. 현재 미국의 총 부채는 국내총생산의 2.5배이다. 개인에 비유하면 연봉 1억원인 사람이 2억5천만원의 빚을 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빨리 해제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소규모 자영업자, 저임금 서비스업 종사자, 임시직·비정규직 근로자, 파트-타임 근로자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고 원격 근무가 가능한 대기업 및 IT기업 종사자, 근무 시간과 급여의 상관성이 작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 충분한 저축과 자산을 보유한 전문직 종사자의 경제적 어려움은 크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 통계에서 확인된다. 올해 3월 취업자는 작년 3월과 비교하여 19만5천 명이 감소했고 일시적인 휴직자는 126만 명이 늘었다. 특히 임시직 41만 명, 일용직 17만 명, 20대 고용 18만 명이 감소했다.사회적 거리두기는 효과적인 방역 대책이지만 공짜가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60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지만 2조 달러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고 한다. 2조 달러는 약 2천500조원에 해당한다. 결과적으로 한 명의 목숨을 살리는 데 약 42억원의 비용이 든 것이다.사회적 거리 두기는 누군가가 위험을 부담해야 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집 안에 있을 수는 없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더라도 누군가가 배달하지 않으면 소비할 수 없다. 위험을 부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이들의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과 경제적 피해를 모두 부담했다. 부유한 사람들은 어떠한가? 이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청정 지역으로 도피할 수 있다. 이들은 휴양지에서, 요트에서, 큰 저택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중세시대 전염병이 돌면 귀족들이 수도원으로 피신한 것과 유사하다.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흑사병을 피해 교외로 나간 열 명의 남녀가 각자 하나씩 열흘 간 이야기한 100개의 에피소드를 모은 것이 소설 데카메론(Decameron)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전염병을 피할 수 있다.부유한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이나 경제적 피해를 부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는 돈을 벌고 있다. 미국의 아마존(Amazon)이 대표적이다. 배달 수요가 증가하면서 아마존의 주가 총액은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불행이 아마존에는 축복이다. 최근 아마존은 17만5천 명을 고용했다. 고용된 사람들의 대다수는 배달 직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저임금으로 위험을 감수하면 아마존 창업자 베조스(Bezos)가 앉아서 돈을 번다.3월 22일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가 5월 5일 종료되었다.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한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적 격리는 끝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됨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완화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 활동이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될지는 불투명하다. 4월 30일, 긴급재난지원금 지원을 위한 14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재원 마련을 위해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국방비를 삭감했다. 3조 원 이상의 국채도 발행한다. 올해 1분기 재정 적자는 역대 최대가 되었다. 작년 1분기와 비교해서 세금은 8조5천억원 감소했고 재정 적자는 28조원 증가했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금년 재정 적자는 100조원을 넘는다. 기획재정부 차관의 말대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충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충격은 공평하지 않을 것이다.

2020-05-13 15:02:35

[기고] 대구에도 독립운동기념관을 만들자

[기고] 대구에도 독립운동기념관을 만들자

나는 고향 대구가 자랑스럽다. 비단 고향이라는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리 대구는 내세우고 자랑할 만한 일들이 많다. 역사를 통해서 그런 사실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엄청난 기적을 이루어왔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사슬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지 불과 수십 년 만에 나라를 세계적 수준의 선진국으로 만드는 성취를 이룩하였다. 세계의 어떤 민족도, 어떤 국가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성공의 기록들을 만들어내었다.그간의 우리는 그 하나하나가 너무도 넘기 힘든 산맥과 같았던 4개의 큰 산맥을 넘었다. 4개의 큰 산맥을 역사적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일본 제국주의, 공산주의, 빈곤, 권위주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도전 하나하나가 극복하기 힘든 엄청난 과제들이었는데 불과 100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 그런 엄청난 도전들이 연속적으로, 때로는 동시대에 복합적으로,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이루어졌던 것이 우리가 지나온 현대사이다.이러한 격동의 역사 속에서 우리 대구와 대구 사람들은 항상 그 대단한 도전의 중심에 있었다. 일제와 싸울 때 대구는 대한광복회, 국채보상운동 등 전국적 투쟁을 이끄는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공산주의 침략전쟁에서는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의 중심에 대구가 있었다. 빈곤을 퇴치한 산업화의 싸움에서는 대구 사람들의 리더십과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모든 이가 다 인정할 것이다. 마지막 단계인 민주화 투쟁에서도 2·28의거로 상징되는 대구의 정신은 수많은 민주투사들을 배출하였다. 산업화의 주역인 박정희 정권에서도 서울에서 민주화 투쟁을 이끈 것은 대구 출신 대학생들이었다.지난 100년간의 이러한 4가지 큰 싸움들 모두가 소중한 역사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대구의 독립운동 역사이다. 전국적인 수준에서 보더라도 대구는 아주 많은 독립운동의 업적과 인물을 배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대구시민들도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그런 사실을 별로 알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므로 자랑스러운 줄도 모른다.이제는 이런 역사를 기리고 알려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대구의 자녀, 손주들에게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게 해야 한다. 경북에서는 미리부터 이러한 작업을 시작하여 경북의 모든 학생들이 지역의 자랑인 독립운동 역사를 배우게 하고 있다. 대구도 마땅히 그러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대구시민과 자녀들이 대구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이번에 전염병으로 인하여 대구는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전 국민과 대구시민이 힘을 합쳐 감동적인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대구 사람들의 감성에 상처를 내는 못된 언사들도 있었다. 이런 때이기에 대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더욱 확실해진다.그러기 위해서는 대구에도 독립운동기념관을 세워야 한다. 대구의 독립운동 역사를 잘 정리하고, 전시하며 이를 우리 자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모든 대구시민과 대구의 어린아이들이 대구에서 나고 자란 것을 자랑스러워하도록 해야 한다. 대구에도 독립운동기념관을 만들자!

2020-05-13 15:02:17

[종교칼럼]민들레와 아스팔트

[종교칼럼]민들레와 아스팔트

내가 사는 학교 안 사제관 뒤뜰을 지난겨울 이전에 포장해 두었던 고무판을 걷어내고 아스팔트로 새로 하면서 주변의 잔디와 잡초들이 자라던 곳까지 좀 더 넓게 포장하는 것을 보았다. 아침 식사 후 1년 365일 거의 날마다 빠짐없이 조깅과 산책을 겸하는 길이 끝나는 지점이기에 눈에 많이 들어왔다. 사무처장의 설명은 학교 안 주요 도로 아스팔트 포장이 너무 오래되어 새롭게 할 때 뒤뜰도 다시 포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와 관계자의 판단을 존중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이 경우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행동이고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새로 포장한 길이 익숙해질 무렵인 지난 3월 말부터 그 자리에 새로운 현상이 시작되었다. 날마다 그 위를 지나기에 자연스럽게 관찰하게 되었다. 아스팔트 포장 여기저기가 조금씩 볼록볼록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 이게 뭐지?"라는 의문만 가질 뿐 호기심 많은 나지만 어떤 해석도 할 수 없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현상이었다.오래전, 아스팔트로 덮인 접시꽃밭에서 이듬해 그 두껍고 단단한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와서 1m 정도까지는 자랐지만 결국 꽃은 못 피웠고, 이듬해 다시 올라오지도 못했던 그 접시꽃대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다른 곳 여기저기서 연약한 잔디가 경계석과 아스팔트 사이를 뚫고 올라온 것을 본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는 그럴 만한 접시꽃이 있지도 않았고 잔디의 세력이 그렇게 강하지도 않은 곳이었다.그러한 현상도 익숙해져서 무심코 지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그저께 그 볼록볼록 솟아오른 것들 중 몇 곳에서 몇 개의 민들레 잎들이 삐죽이 밖으로 뻗어 나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니, 이 민들레들이 무슨 힘으로?" 그 모습에 놀란 나의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그러고는 오늘 아침까지 그 민들레에 대한 잡념에 가까운 사유가 이어져서 마침내 이번 칼럼에 이 장면을 소개하기까지 되었다.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이 민들레들은 어떤 자의식을 갖고 있을까? 자신을 덮고 있는 아스팔트를 뚫고라도 올라와야겠다는 어떤 의식을 갖고 이렇게 자라고 있을까? 민들레의 내면세계에 그러한 의식과 의지가 있을 리 없다.그렇다면 무슨 힘으로? 뚫고 올라오고 있는 것은 사실(fact)이고 지금도 그 자리에 가서 확인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남은 것은 이 질문에 답을 구하는 일뿐이다. 민들레 자신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고 있지만 민들레 안에는 그러한 능력과 힘이 있는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덮는 일을 경험하지 않은 일반 노지의 민들레들이 여기저기 쉽게 자라 올라오는 모습에서는 그 안에 아스팔트조차 뚫을 수 있는 기운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그렇다면 이렇게 관찰할 수 있는 자의식을 가진 내 안에 든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이것은 나의 삶을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성심껏 사는 것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다른 편으로 그 강력한 생명력의 민들레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것처럼, 나에게도 한계가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가능성은 어디까지이며 한계는 어디서부터일까? 이전 못지않게 다시 한번 더 궁금해진다.나는 피조물이기에 조물주가 정해준 순리에 따라서 해야 하지 내 맘대로 해서는 아무것도 옳게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조물주께서 나에게 심어 놓은 능력과 힘이 어디까지인지 대단히 궁금한 오늘이다. 이것을 최대한 살리는 삶을 가능한 대로 길게 살아야 죽음이 와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2020-05-13 09:19:39

[매일춘추] 대구의 전후 미술

[매일춘추] 대구의 전후 미술

한국전쟁 중에는 군인은 물론 민간인까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죽음이 허다했고, 인간의 존엄은 심대하게 말살되었다. 전쟁 중 군에 복무하던 시인 구상은 1950년대 대구에 적을 두고 있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는 한 글에서 일제강점기에 타향에서 반갑게 정을 나누던 동포가 알지도 못하는 이념 때문에 적이 되고, 총부리를 겨누게 된 상황을 한탄하였다. 또한 '초토의 시'에서 그는 적의 무덤 앞에서 알 수 없는 거대한 슬픔, 죽음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린, 말할 수 없이 큰 회한을 노래하기도 했다.전쟁은 현대미술에도 많은 흔적을 남겼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는 많은 전후 미술 현상이 나타났다. 1차세계대전 이후 나타난 대표적인 사조는 초현실주의이고, 2차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의 경우 추상표현주의, 유럽의 경우 앵포르멜 같은 사조들이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조의 등장에는 전쟁의 영향으로 파괴된 인간성의 상실이나 정신적인 충격이 큰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그에 비해 한국의 전후 미술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크게 다루어진 적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대구의 경우, 전쟁 이후에 자연주의 미술을 넘어서는 미술 형식의 확장이 있었고, 그 가운데 전쟁의 영향으로 나타난, 혹은 서구의 전후미술을 참조한 형식이라 불릴만한 경향이 다수 나타났다.1950년대에 대구에 나타난 추상화는 구체적인 양식적 배경을 가진 추상이라기보다는 자연주의적 아름다움을 구가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적극적으로 새로운 양식을 찾았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1950년대 세대교체의 주역이었던 정점식(1917~2009)은 1946년 하얼빈에서 귀국하였으나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친 시기는 전쟁 후부터였다. 정점식의 초기 추상화는 형상에서 점점 추상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피란 온 문인들 중 아동문학가 마해송은 1953년 정점식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 단순화된 선묘 등이 나타난 그의 작품을 '묵화의 기법으로 그린 한국적인 서양화'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장석수(1921~1976)는 추상표현주의를 '귀중한 회화 생명에 육박하려는 작화 태도'라 옹호하면서, 1950~60년대 자신의 작품에 적극 수용하였다. 그의 작품 '광녀'(1955)에서는 표현적인 묘사가 나타나고, '사정(射程)'(1959), '작품'시리즈(1960년대 중반)에서는 잭슨 폴록이나 피에르 술라주와 같은 추상표현주의 양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1955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모교인 계성중학교로 부임한 박광호(1932~2000)는 6·25 전쟁 중 학도병으로 종군하였는데, 그의 작업은 초현실주의와 관계가 있다. 그때 경험했던 일말의 양심이나 감정조차 파괴된 부조리한 세상은 그의 몇몇 작품에서 초현실주의적인 서사와 표현으로 나타났다. 그밖에도 강우문과 서석규와 같은 구상 작가들도 같은 시대를 겪으면서 해체된 형상이나 표현적인 구상의 형식을 보여주면서 한때 추상 경향에 가담하기도 했다.

2020-05-12 13:56:26

[경제칼럼] 코로나19와 상가용 부동산 시장의 변화

[경제칼럼] 코로나19와 상가용 부동산 시장의 변화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 4월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은 1930년대 발생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유발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세계 경제와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3.0%와 -1.2%로 추정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되거나 올겨울 2차 대유행이 재발한다면,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8.0%까지 하락해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와 저금리로 풀린 막대한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집중·유입되면서 선진국 대도시 부동산 시장은 공통적으로 가격 폭등과 거품 형성 과정을 겪고 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더블린(78.5%), 베를린(63.1%), 밴쿠버(60.4%), 오클랜드(56.4%), 시드니(54.8%), 암스테르담(54.4%), 상하이(52.5%), 샌프란시스코(49.1%), 홍콩(48%), 런던(39.6%) 등 각국 주요 도시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코로나19 발생 이후, 석유와 같은 현물시장에서는 국제 수요 감소로 인한 가격 폭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유동자금이 안전자산인 금과 달러에 집중되면서 금값과 달러화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은 보합 및 하락세로 전환되는 듯하다. 국내 주택가격은 고가, 대형 및 신규 주택 중심으로 하락하는 추세이다.코로나19 대유행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여파에 따라, 향후 부동산 시장은 크게 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코로나19가 장기화된다면, 실물자산인 부동산 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발생할 것인가? 부동산 시장은 실물경제보다 6∼9개월 정도 후행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필자는 코로나19 이후 상가용(매장용) 부동산 시장의 변화에 대해 조심스럽게 전망해 보고자 한다.코로나19는 상가용 부동산 시장에 가장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직후,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는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발생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사재기 현상이 발생하지 않은 것일까? 아마 우리가 '배달의 민족'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대한민국에는 이미 인터넷 쇼핑과 문전(Door-to-Door) 택배 시스템이 잘 발달돼 있다. 인터넷 쇼핑으로 생필품을 주문하고 배송받는 것이 편리하고 저렴하기 때문에, 굳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줄서서 사재기할 필요가 없었다.코로나19를 겪는 과정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진 소비자의 소비 패턴은 오프라인 매장의 소비량를 줄이는 대신 온라인 쇼핑 소비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변화됐다.온라인 쇼핑 수요 증가는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 감소, 수익성 악화 및 폐업 증가를 유발하는 구조적인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에선 아마존 등 온라인 쇼핑의 고속 성장에 따라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인 시어스(Sears) 백화점이 2018년 파산을 신청했다. 이번 코로나19 여파로 니만마커스(Neiman Marcus), JC페니(JC Penney)와 같은 미국의 초대형 백화점 체인은 현재 파산 신청을 검토 중에 있다.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내에서도 오프라인 매장의 수익성 악화, 폐점 및 공실률은 빠르게 증가하고 나아가 고평가된 상가용 부동산의 임대료 및 자산가치(가격)는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현재 정부는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에 대해서 생계비 지원과 긴급자금 대출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 지원은 지나치게 과다하게 집중돼 있고, 구조적인 불황에 빠진 리테일(소매업) 업종 자영업자를 모두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에 비해 2, 3배 많은 수준이며, 자영업자 상당수는 상가용 부동산을 임차해 운영하는 영세 소상공인이다. 영세 자영업자에게 긴급 지원된 대출자금은 밀린 상가 임대료와 기존 및 신규 대출의 이자상환금으로 우선적으로 지출되기 마련이다.정부의 긴급자금 대출은 영세 자영업자의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금융부채를 증가시킬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코로나19 경제 충격으로 경쟁력과 회생 능력을 상실한 일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정부가 생활지원금과 자금 대출 같은 단기적인 구제정책에 의존하기보다는 악성부채 탕감을 통한 과감한 자영업자 구조조정 및 출구(퇴출)정책을 병행해 실시할 필요가 있다.

2020-05-12 13: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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