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일상중국] 중국행 항공권 300만원 시대

[일상중국] 중국행 항공권 300만원 시대

조만간 중국여행이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히 접었다.중국행 항공권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미국이나 유럽행 항공권 가격보다 더 높은 '황금항공권'이 돼 버렸다. 항공권 가격이 코로나 이전보다 10배 정도로 급등한데다 중국으로 가는 항공편이 매주 1항공사 1편 정도로 급감, 항공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 지도 오래다. 물론 중국 비자는 지난 3월말부터 아예 발급을 하지 않고 기존의 비자도 효력을 정지시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중국에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중국에서 생업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중국에 여행가는 건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하는 시대가 온 셈이다.자연스럽게 '코로나이산가족'과 '코로나 사직' 등 코로나 생이별이 일상이 됐다.지난 1월 코로나사태 발발이후 일시 귀국했다가 중국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중국유학생이 무려 5만 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국을 무대로 사업을 하거나 중국에서 취업해서 거주하고 있던 우리 교민 10만여 명 중 30% 정도가 중국에 돌아가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춘절(설날연휴)때 가족 중 일부는 중국에 머물러 있고, 일부는 한국에 왔다가 되돌아가지 못하는 '코로나로 인한 이산'가족도 적지 않은 규모다. 중국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은 아예 유학생활을 포기하고 국내학교로 유턴하는 불안한 결단을 내려야할 안타까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2~3년을 중국대학에서 공부하다가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젊은 청춘들은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칭화대(淸華大)를 졸업하고 곧바로 현지에서 취업한 딸도 지난 1월말 일시 귀국했다가 코로나사태가 확산되자 중국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국내에서 두 달여 재택근무를 이어가다가 결국 지난 5월 사표를 제출하는 결단을 내렸다. 코로나사태 장기화가 한중비지니스를 중심으로 한 직장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셈이다.입국제한 조치와 강제적인 2주간의 의무격리 조치 등으로 인해 '일일생활권'이던 양국이 '한달생활권'으로 전환됐다. 급한 용무가 있더라도 비자를 받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어렵사리 비싸게 구한 항공권으로 막상 중국에 도착하더라도 2주간의 격리와 귀국 후 2주간의 자가격리 등 한 달여에 이르는 격리기간은 공무든 생업이든 중국행을 포기하게 한다.중국당국이 모든 외국인에 대한 비자발급을 금지한 3월말 조치이후 4개월 만에 한국유학생들과 기한이 남아있는 취업비자(Z비자) 소지자에 대한 비자발급을 8월 5일부터 재개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에 들어가는 관문은 비좁고 험난하다. 당장 한중간에 인적교류가 활성화되기에는 역부족이다. 비자자격을 확보하고 코로나핵산검사를 거쳐 음성증명서를 받았더라도 항공권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격세지감'이다.우한발 코로나바이러스가 극에 달한, 지난 2월말 한국에서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주요도시로 향하는 항공권(왕복)이 10만 원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중국 국내 항공사들도 중국내 장거리노선인 상하이~충칭간 노선(비행시간 약 3시간) 항공권(편도)을 커피 한 잔 가격인 32위안(약 5천원)에 팔았다. 한중노선도 코로나사태 이전에는 서울~베이징, 서울~상하이 노선의 경우 20만~30만 원선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한중노선 항공권이 급등한 것은 코로나사태로 중국이 중국취항 국제선을 국가별 1항공사, 1노선, 주 1회 운항으로 제한, 운항편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취항 국내항공사는 톈진과 난징, 광저우, 선전, 시안, 창춘, 선양, 옌타이, 옌지 등으로 주 1회씩 운항하고 있다.그래도 항공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한중 항공수요가 급증한 이유는 따로 있다. 미·중 직항편이 사라지면서 한국을 경유, 미국으로 오가려는 중국인의 환승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한중간 항공편을 늘리더라도 이 환승수요가 좌석을 선점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한중노선 운항을 확대해주는 중국당국의 조치에도 미중갈등을 우회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는 셈이다.다른 나라는 몰라도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 3국 간 '빗장'을 풀어, 인적교류와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코로나 방역시스템을 공유해야 한다. 큰일이다.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0-08-17 14:49:54

[기고] 공항 이전과 대구경북의 미래

[기고] 공항 이전과 대구경북의 미래

2007년에 뿌려진 대구공항 이전사업의 씨앗이 장장 13년이 지나 통합신공항 부지 선정이라는 싹을 틔워냈다.필자는 2007년 11월 대구의 동구·북구 주민들이 모여서 가칭 'K2 이전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할 때부터 함께했다. 서명운동, 토론회, 캠페인, 설명회, 각종 축제에서 진행한 홍보 활동, 수원·광주와 함께 연대 활동, 군위·의성 방문 및 수십 차례의 간담회와 토론회를 개최하며 당위성을 설파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이전 추진단의 활동과 대구시와 경북 지방자치단체의 노력, 시도민의 열망이 모여 2007년 대선주자 100대 과제 포함을 시작으로 공항이전특별법이 제정(유승민 국회의원 발의)되었고, 올해 초 주민투표를 통해 군위·의성 공동후보지 유치 신청까지 이루어지게 되었다.2028년 개항을 목표로 하는 공항 이전에 대한 공동합의 사항에는 민간공항 터미널, 공항 진입로(공항IC), 군 영외 관사는 군위에 배치하고, 공항 신도시(배후 산단 등)는 공항 이전 종료 시까지 군위군에 330만㎡, 의성군에 330만㎡를 각각 조성하며, 대구경북공무원 연수시설은 공항 이전 사업 종료 시까지 군위군에 건립하는 것으로 하는 것과 군위군 관통도로(동군위IC~공항 25㎞)를 공항 이전사업 종료 시까지 건설하는 내용, 지방자치법(제4조)과 관련 절차에 따라 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 추진까지 광범위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공항 이전이라는 이번 사업을 두고 대구경북연구원에서는 지역 경제 파급효과를 51조원으로 전망하였다. 생산 유발액 35조9천669억원, 부가가치 유발액 15조3천171억원, 취업 유발 인원 40만5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이와 더불어 공항 이전사업은 대형 토목공사가 수반되고 공항 공사비 10조원의 사회간접자본(SOC)까지 합치면 30조원대의 천문학적 돈이 지역에 풀리는 사업으로,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지역 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마중물이 되어 대구경북 경기를 단숨에 반등시킬 코로나 뉴딜이자 막대한 추가 사업 유치 효과를 낼 초대형 호재이다.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특정단체의 이권이나 정략적 판단에 휘둘려서는 안 될 것이다. 대구와 경북의 510만 시도민 여러분께서 대구경북 광역단체장, 광역의회 의장, 국회의원, 광역의원 등이 합의한 합의 사항을 잘 준수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CCTV, 블랙박스가 되어주셔야 할 것이다.대구경북은 국난 극복의 도시이다. 국채보상운동이 그러했고, 6·25전쟁 때는 최후의 방어선이었으며, 독재정권에 항거한 2·28 운동이 그러했었다. 이런 찬란한 역사에 뒤이어 코로나19로 침체된 국가 경제를 이끌어 나갈 코로나 뉴딜의 시작 도시라는 영예로운 타이틀까지 이룰 수 있는 지금, 지역민 모두가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될 것이다.이제는 후보지 결정 과정에서 이어진 반목과 갈등을 접어두고, 서로 양보와 협의를 통한 윈윈의 방법을 모색하여 대구의 의료를 비롯한 4차산업, 경북의 핵심부품산업, 구미의 전자산업, 포항의 철산업, 경주의 관광산업을 활성화하여 전국에서 으뜸가는 지역, 나아가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지역을 만드는 데 시도민 여러분이 함께 힘을 모아주시길 당부드린다.

2020-08-17 11:49:07

[세계의 창] 공정한 인사가 정부 능력 높이는 힘

[세계의 창] 공정한 인사가 정부 능력 높이는 힘

2017년 말 일본에서 '손타쿠'(忖度)라는 말이 유행어 대상에 선정되었다. 그해 2월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이 관련된 사학재단에 국유지를 헐값으로 매각하고, 부인의 친구가 이사장인 사학에 수의학부 신설을 허가하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후 국유지 헐값 매각과 관련된 결재 문서의 위조 문제가 드러나고, 담당 공무원의 자살이 이어지며 아베 정권이 흔들릴 정도의 스캔들로 발전하였다.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자신과 부인의 관여가 밝혀지면 총리직뿐만 아니라 의원직도 그만두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한 사학재단의 이사장이 외국특파원협회와의 기자회견 도중에 재무성 공무원들이 아베 총리에 대해서 '손타쿠'한 결과라는 답변을 하면서 널리 유행하게 된 말이다. '손타쿠'란 위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으나 아랫사람이 스스로 알아서 윗사람의 뜻을 헤아려서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작년 8월 관련 공무원들이 모두 불기소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무엇보다 관료조직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잃게 된 것이 뼈아프다 하겠다.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공 서비스와 인프라의 제공, 경제활동의 활성화, 정당한 법 집행과 분쟁 해결, 공정한 과세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정부 능력의 원천이 국민의 신뢰에 기반하고 있는데,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관료조직이 총리만을 위해서 조직적인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확인한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부정과 거리가 멀고, 정치권력에 야합하지 않고, 박봉에도 국민과 국가 발전을 위해 매진하는 이미지가 강했던 일본의 관료들을 바뀌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일본의 공무원들은 고용보험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정도로 신분과 지위의 보증을 받고 있고, 직무와 승진에 대해서도 정치의 관여 없이 각 부처에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인사 제도는 정부 부처 간 협력을 저해하는 수직적 행정의 폐해와 관료들이 국가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조장하는 낙하산 인사의 문제를 야기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2014년 고위 공무원 인사를 일원화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국가공무원법 일부가 개정되었고, 그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총리를 보좌하는 내각관방 산하에 내각인사국이 설치되었다.새로운 인사 제도는 총리와 총리를 보좌하는 관방장관과 보좌관들이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둔 점이 특징이다. 각 정부 부처의 부장이나 심의관 이상의 간부에 대한 인사에 있어서 총리에 의한 적격성 심사가 도입되었다. 적격성 심사는 수시로 이루어지고, 심사 결과에 따라 간부 후보자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도 제외될 수도 있고, 각 부처의 간부는 후보자 명부에 있는 사람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인사 제도의 개혁으로 일본의 공무원들은 승진하고, 더 나은 직무를 맡기 위해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총리와 총리의 주위를 둘러싼 정치적 측근들과의 양호한 관계 구축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의도로 인사 제도를 개혁했지만, 의도와 달리 3년도 지나지 않아서 총리와 총리의 정치적 지원자들의 의중을 조직적으로 '손타쿠'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인사 제도 개혁 이전에는 맡은 일에 대한 성과로 평가를 받고, 승진을 하거나 좌천을 당하거나 했지만, 이제는 권력자의 의중을 잘 파악해서 국가와 사회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그들의 이익이 되고, 원하는 일을 해야 승진하거나 중요한 직무를 맡게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같은 관료조직의 정치화는 한정된 국가 자원을 꼭 필요한 곳에 쓰지 못하고 낭비하게 될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곳에 막대한 예산을 쓰게 되는 인플루언스 비용(Influence Cost)을 발생시켜, 정부의 능력을 크게 저하시킨다. 아베 마스크가 일본 정부 능력 저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된다.일본보다 빠르게 관료조직의 정치화가 이루어진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후 정권에 따라 능력과 관계없이 정권 입맛에 맞추는 사람과 권력자와 같은 출신 지역, 같은 대학 사람을 등용해 온 한국 정부의 능력은 한국 사회의 발전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행정의 혼선이 그 단적인 예이다. 정부의 무능 때문에 난제들만 쌓여간다.권혁욱 니혼대학 경제학부 교수

2020-08-17 11:37:23

[매일춘추] 하나마나 한 이야기

[매일춘추] 하나마나 한 이야기

중2 때 일이다. 옆짝 친구는 팝송에 대한 지식이 다른 친구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 한 번씩 팝송을 모르는 친구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친구의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 지식의 노하우를 가르쳐달라고 사정을 해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일종의 영업 비밀이었다. 주한미국 라디오를 통해 팝송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고 주장할 때도 있었지만, 당시 그녀석의 영어성적은 최하위였다. 호시탐탐 그 실체를 파악하는 중, 친구 책가방 속에서 한권의 책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팝송전문잡지인 '월간팝송'이었다. 고등학생 형들이 보는 잡지책을 구독하고 있었다. 중학생 용돈으로는 매달 사기에는 나에게는 버거운 책이었다. 그 후 친구 몰래 헌책방에서 잡지를 구해 공부하듯이, 팝송을 연구하였다. 차츰 팝송 지식이 친구보다 더 월등하여, 나에게 팝송을 물어보는 주위 친구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정보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알고 있으므로 그 친구가 하는 팝송이야기는 최소한 나에게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에 불과했다.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특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갑(甲)인 경우 그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 대부분 그 특징은 진실을 부정하는 편파적인 사실의 왜곡이거나, 미사여구로 포장된 막연한 희망고문 메시지로 일관되는 경우가 많다. 옛날에 어느 유명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청년들에게 영혼 없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고, 아프면 먼저 병원부터 가야한다. 한마디로 사회적 좌절을 개인이 극복할 도전과 열정이라고 무조건 강요한 것이다. 어그로(aggro) 쩌는 소리다. 대책이 없고 무책임한 선동이라는 뜻이다.요즘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 무리들이 팬덤정치의 주술에 빠져, 별생각 없이 분출하고 있다. 정치권의 메시지가 동네 양아치의 술자리 이야기보다 더 볼품이 없다. 권력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다. 그러나 소수의 동의를 받는 못하는 다수결의 지배는 '천박한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적'이 아니라, '경쟁자'다. 적은 적대적 분노를 유발하지만, 경쟁자는 토론과 합의를 존중한다. "이게 나라냐?, 나라가 니거냐?"의 이분법적 진영논리가 중요하지 않다. 나라다운 나라가 더 중요하다. 코로나 이후 험난하게 다가올 국운 100년의 나라 운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치는 운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념으로 하는 것이다."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영양가 있는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난다. 민심부터 챙겨라. 민심이 먼저다.

2020-08-17 11:16:53

[광장]죽음에 대한 상념

[광장]죽음에 대한 상념

죽음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양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죽음에 대한 가장 절대적이고 예각화된 이데올로기는 종교가 아닐까. 내 생각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는 죽음을 전제로 하고 죽음에 대한 탐구를 가장 본질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고 본다. 그다음으로 문학이라든가, 철학과 같은 인간의 정신 영역을 다루는 학문이 뒤를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을 통해 현재의 삶을 성찰하는 게 인간의 지혜이다.나는 올여름 너무나 인상적인 세 죽음을 가까이서 목도했다. 세 사람 다 예순을 넘긴 나이어서 젊어 요절한 죽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애석함이 덜한 죽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죽음이 그렇듯 죽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죽음과 혈육이거나 정신적으로 깊은 연대감이 있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비록 나이 든 죽음이라 해도 그 슬픔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다.김종철(1947~2020) 선생이 지난 6월 하순에 작고하자 그의 죽음을 알리는 한 유력 중앙 일간지의 헤드라인이 '한국 생태주의 운동의 대부'라고 붙였다. 이런 사회적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는 이 분야에 몰두했고 그에 상응하는 업적을 남겼다. '시와 역사적 상상력' '대지의 상상력'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등은 그가 남긴 저서의 제목이다. 이런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대지(大地)의 흙을 사랑했고, 근대문명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 많은 노력을 바쳤다. 그는 대구 영남대에서 20년 넘게 교수로 근무했고, 격월간 '녹색평론'이라는 기념비적인 잡지를 대구에서 창간했다. 그가 남긴 많은 육성과 저서를 통해 한 발언의 최종적인 의미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겸손'과 욕망의 자기 '절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런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기던 그는 어이없게도 새벽 산책길에서 실족사한 걸로 알려졌다.박원순(1956~2020) 선생은 사회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그 와중에 지난 7월 초 극단적인 방식으로 삶을 마감했다. 현재 그는 정치적 지지자나 반대자들에게 많은 논란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의 삶의 실존적인 측면만 보면 그는 농경문화의 마지막 세대에 속하는 1950년대 중반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신화와 같은 인물이었다. 양파 농사를 하는 지방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한국 최고의 명문고와 명문대에 들어갔고, 학생운동으로 제적되고 옥살이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해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가뿐하게 뛰어올랐다. 그러나 그는 그 권좌의 핵심인 검사를 곧바로 치우고 시민운동가로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등 그때까지 한국 사회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이슈와 희망의 상상력을 우리 사회에 불어넣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그가 언젠가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하면서 수천 권의 책을 구입해 비행기 화물로 부치고 몸만 들어왔다는 기사를 읽고 너무 부러웠던 적이 있다.서오년(1927~2020)은 나의 어머니다. 안동 낙동강 변의 조그만 산골에서 태어나 일제 식민지의 보국대 송출을 피해 열다섯 살에 결혼해 우리 6남매를 두셨다.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다 그렇듯 가난하고 힘겨운 일생을 보냈다. 흰 수건을 쓰고 긴 밭이랑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호미로 하염없이 밭을 매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하다. 유난히 삶과 자식들에게 집착하셨지만 마지막 2년을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보냈고, 코로나19로 6개월은 자식들 얼굴을 화상으로만 보다가 가셨다. 죽음이란 이런 것이다. 불쑥 예고 없이 오기도 하고 예견된 방식으로 오기도 한다. 이 죽음에 대해 명복을 빌면서 현재의 내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2020-08-14 13:24:01

[춘추칼럼] 내가 살고 싶은 동네

[춘추칼럼] 내가 살고 싶은 동네

코로나와 장마, 부동산과 주식.만약 지금 한국 사회를 표현한다면 이 4개 단어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 단어들이 함축하는 바와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 이 단어들을 구분하자면, 코로나와 장마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큰 영역이라고 한다면, 부동산과 주식은 개인의 선택과 관심, 조건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다.예를 들어, 코로나 확산을 개인위생과 방역을 통해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지만 코로나의 발생과 소멸을 인간이 통제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장마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520억원짜리 슈퍼컴퓨터를 갖고 있는 기상청을 비난하지만, 사실상 오늘날 기후변화는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 가깝다. 어쩌면 앞으로 이런 일은 더 자주, 더 강하게 닥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부동산과 주식은 상황이 다르다. 지금 온 나라가 부동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다양한 조건들을 제외하고 보면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욕망의 격전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 다양한 생활문화시설 등 인프라를 갖춘 시설, 출퇴근 등 이동이 편리한 교통 환경 등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추구하는 동시대인의 욕망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주식은 또 어떤가. 요즘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주식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물론 주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닐 테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탐욕의 리그가 안타까울 뿐이다. 적절한 노동과 그에 따른 보상, 그리고 공동체와 사회 등 온전한 삶이 불가능해지고 있다.결국 인간의 삶은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부동산과 주식이라는 영역을 놓고 보면 더 나은 돈과 환경 등 물적 자원을 확보하려는 욕망의 결과이다. 문제는 '더 나은'이라는 상대적 비교에 그치지 않고 점차 '모든'이라는 절대적 목표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필자 역시 어렸을 때는 삶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거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결코 그렇지 않음을, 절대 그럴 수 없음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부추긴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그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과연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대단한 지름길이나 확실한 해법은 아닐지라도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발견하는 일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가 아무리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삶을 꾸려가야 한다. 삶의 대부분을 살아가는 지루한 일상을 건너뛰고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외치면서 우리를 유혹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목소리도 있다.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논리와 힘을 갖고 있다. 그 유혹을 이기는 힘은 오히려 가장 작은 일상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동네'에서 가능하다. 동네는 군 단위나 작은 도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 '동네'가 있다.2020년은 문명의 전환을 이야기할 정도로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이다. 코로나와 기후 위기만 생각하더라도 삶의 방식 자체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결국 '가치'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앞자리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의 학습과 경험 또한 이 문제를 중심으로 펼쳐질 필요가 있다.동네는 그러한 학습과 경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되어 공동체를 경험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를 향한 욕망이 생겨날 것이다. 서로의 욕망이 모여 지금까지와 다른 욕망의 길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삶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방법을 찾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는 동네를 만들어가자. 17개 광역시·도가 아니라, 226개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1천 개의 동네, 아니 1만 개의 동네를 만들자.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자.

2020-08-13 14:23:28

[기고] 독립운동기념관 발기인 대회를 마치고

[기고] 독립운동기념관 발기인 대회를 마치고

2020년 7월 20일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 발기인 대회가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렸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가 필수가 된 세상이지만 마스크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대구독립운동기념관 추진의 뜨거운 열기와 타오르는 열정은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광복 후 75년 만에 이 땅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마저 기꺼이 내놓은 분들과 그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민선 1기 대구시장을 역임한 문희갑 전 시장은 자신의 재임 중 독립운동기념관을 만들지 못했던 아쉬움과 미안함이 늘 있었는데 오늘 발기인 대회를 갖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사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우리 대구만큼 앞장서서 나라를 위해 희생을 감수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모집해 나라 구하기에 앞장선 홍의 장군 곽재우도 우리 영남 출신이고,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맞선 국채보상운동을 촉발한 곳도 우리 대구다. 독립운동사에서 희귀한 학생 신분 독립 결사 단체인 태극단도 대구에서 만들어졌고, 명성황후 시해로 인한 을미의병을 촉발한 것도 대구 출신 문석봉 선생이었으며, 1910년대 독립운동의 본산이었던 대한광복회도 대구에서 결성되었다.독재와 불의에 항거해 2·28 민주화운동을 한 것도, 한국전쟁에서 백척간두에 서 있는 나라를 위해 최후의 보루를 지킨 것도 우리 대구 학생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전국에서가장 많은 180명의 애국지사가 순국한 대표적인 항일 현장이 대구형무소였다. 최근 국립묘지로 승격된 국내 유일의 애국지사 묘역인 신암선열공원도 대구에 있다.이렇게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앞장서서 자신을 희생하던 애국과 애민의 고장임에도 해방 후 75년간 이 지역에 독립운동기념관조차 없었다는 것은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독립유공자의 후손 중 한 분이 팔공산 자락에 수려한 기운을 머금은 좋은 터를 기증한 것을 계기로 정계, 학계, 종교계 등을 망라하고 여야를 막론, 대구를 대표하는 사회 각계 270분이 협심하여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에 나선 것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500억원이 넘는 예산이 드는 사업이지만 대구 시민의 여론이 한데 모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기념관 건립 부지를 기증한 우대현 준비위원장과 김능진 추진위원장(제9대 독립기념관 관장), 이종찬 상임고문(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준비위원장), 그리고 문희갑 상임고문(전 대구시장)을 중심으로 시민의 뜻을 한데 모아 대구시가 노력하고 중앙정부와 국회가 뒷받침이 되어서 반드시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을 성사시켜야 한다.'과거를 잊어버리면 아픈 반복을 되풀이한다'고 했다이번 기회에 75년간 잊혔던 과거를 찾아내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치열했던 역사를 반드시 후손들에게 똑똑히 알려줘야 한다. 75년간 기다린 만큼 독립운동기념관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리라. 그 속에서 자랑스러운 우리 지역 독립운동의 역사를 담아내고 악명 높은 대구형무소를 재현해 처절하고 치열했던 선열들의 삶과 죽음을 낱낱이 보여 줄 것이다.대구독립운동기념관의 웅장한 모습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 오른다. 모든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독립운동기념관이 하루라도 빨리 건립되는 그날이 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전력을 다하자. 본인이 소속한 대구시의회도 이 위대한 사업이 하루빨리 성사되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주어진 역할을 다할 것이다. 75년을 기다려 온 선열들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하지는 말자.

2020-08-13 11:50:46

[매일춘추] 문화예술 백화점

[매일춘추] 문화예술 백화점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전시장은 세부 생활수칙을 준수하여 온라인 예매, 사전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 여파로 관람객의 발길이 끊겨 힘들었다는 어느 화랑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 흥미진진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그것은 한 건물 안에 여러 매장이 입점해 있는 백화점처럼, 화랑도 한곳에 모여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선보이는 '문화예술 백화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필자가 상상한 '문화예술 백화점'에는 팝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A화랑, 우리나라의 멋, 한국화 작품을 선보이는 B화랑, 미디어아트 전시를 선보이는 C화랑 등 여러 개의 화랑들이 매장에 입점한다. 이렇게 되면 저마다 특색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각 매장에 입점한 화랑들이 추구하는 컨셉트는 인테리어에서도 차별을 드러낼 것이다. 예를 들어, 바닥에 잔디를 깔고 그 위에 나무를 놓고 천장에 그네를 매다는 등 마치 도심 속 숲처럼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될 수도 있다.각 화랑에서 새로운 전시를 선보일 때는 오프닝 파티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시 작가와의 만남과 음악·무용·공연의 협업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가히 문화예술을 총망라한 다채로운 볼거리일 것이다.무엇보다도 기존의 행사인 아트페어의 일회적인 아쉬움도 사라질 수 있다. 아트페어의 부스가 곧 매장처럼 입점해 있는 화랑의 공간이니 말이다. 또 다른 층에는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업실도 마련되어 그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도 갖춰진다.이외에도 건물의 여러 공간을 활용하여 관람객을 위한 전시·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예를 들어 프리마켓, 미술사 강의, 체험 활동 등 문화예술의 기회를 선사하는 매장도 있을 것이다.건물 곳곳에는 카페테리아나 아트도서관 등의 휴식 공간과 백화점처럼 의식주에 관련된 상품을 진열한 매장도 있을 수 있다. 일반적인 백화점에는 의식주에 관련된 매장이 주를 이루고, 각종 이벤트와 문화예술·휴식 공간이 부차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필자가 상상한 '문화예술 백화점'은 문화예술이 주를 이룬다.파리의 퐁피두센터 같은 복합 문화 공간은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그리고 아트페어는 여러 개의 화랑이 한곳에 모인다는 큰 특징이 있지만 일회성이다. 이렇듯 지금의 복합 문화 공간에서의 부족한 점들이 보완된 '문화예술 백화점'은, 미래의 문화 공간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전문 인력 양성이 가장 필요할 것이고, 이의 전문가는 대중들에 대한 이해와 연구를 뒷받침하여 이러한 공간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탄생된 '문화예술 백화점'은 한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는 유쾌한 상상을 해본다.

2020-08-13 11:50:00

[김종섭 광고 이야기] 소비자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방법

[김종섭 광고 이야기] 소비자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방법

세종시라고 했다. 낯선 전화의 주인은 행정안전부의 한 사무관님이었다. 머리로는 무서웠고 가슴으로는 기대되었다. 교육청, 시청, 경찰청과는 일해 봤지만 행안부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뢰 내용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사회 문제를 시민들의 아이디어로 해결하는 '도전, 한국'이라는 프로젝트였다. 다음은 실제로 미국에서 있었던 사례이다. 알래스카에서 대형 유조선이 좌초되어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추운 날씨로 인해 기름과 물이 섞여 함께 얼어버리는 현상으로 인해 심각한 환경오염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만 달러 포상금이 도전과제로 제시되었다. 결국 시멘트 회사의 평범한 엔지니어가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시멘트를 굳지 않게 하기 위해 레미콘을 돌리듯, 기름도 진동기계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자극을 주면 얼지 않고 물과 기름이 분리된 상태가 유지되므로 기름 제거가 가능하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도전, 한국 홈페이지 발췌) 흥미로운 과제였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엄청난 국가 예산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딱 우리 스타일의 프로젝트였다. 난생 처음으로 가본 세종시는 외국 같았다. 건물은 웅장했고 거리는 인간적이었다. 첫 미팅 때 만난 행안부 분들도 보통이 아니었다. 정확했고 밀도가 높았다. 우리 팀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작업에 들어갔다.대구로 돌아와서는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사람들을 어떻게 참여시킬까? 어떻게 우리 편으로 만들까란 고민이었다. 그렇게 떠오른 아이디어가 복권이었다.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상금을 주는 것이 복권과 유사한 프로세스였으니까. 그 과정에는 미묘한 기대감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긁는 것, 긁으면 상금이 숨어 있을 것 같은 기대감, 사람들을 그렇게 참여시키고 싶었다.우리가 해결해야할 과제는 해양 쓰레기 문제, 유기견 문제, 노인과 청년의 디지털 격차 문제였다. 특히 우리 팀은 해양 쓰레기에 집중했다. 인터넷에서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배를 갈라보니 쓰레기가 잔뜩 나온 생선,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새, 페트병에 머리가 끼인 동물 등의 사진을.해양 쓰레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심각한 문제였다. 우리 배 속에 쓰레기가 가득하다고 생각해보라. 하루도 생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생선에게 모자이크를 해두고 스크래치를 지우도록 말이다.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생선 이미지를 찾았다. 그리고 배를 모자이크로 가려두었다. 핸드폰 카메라로 그 생선을 찍으면 큐알 코드로 넘어간다. 그리고 모자이크를 지우면 쓰레기가 가득한 생선의 배속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카피가 노출된다.'해양쓰레기, 바다 생물만 아프게 할까요?'이렇게 우리는 애완견을 버리는 사람, 키오스크 사용을 힘들어하는 노인을 가려두었다. 그들을 찾도록 노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가려진 광고가 거리에 보이기 시작했다. 부끄럽게 몸을 가린 생선이 거리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다. 왜 몸을 가렸는지, 그의 배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했다.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고 그의 몸뚱어리를 긁기 시작했다.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확인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쓰레기와 애완동물을 유기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비로소 사회 문제와 마주 했다. 그리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사회 문제를 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금이라는 강력한 베네핏이 있었다. 특히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학생, 공익적인 마인드가 있는 시민들이 광고에 참여했다.그 시대의 광고는 그 시대의 사람을 따라간다. 우리는 광고 속에서 살아가고 숨 쉬고 있다. 참여시키는 광고의 탄생은 광고의 홍수에서 살아남겠다는 몸부림의 결과였다. 이제 사람들은 웬만한 광고에 반응하지 않으니까. 인간의 본성 깊숙한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고민의 결과였을 것이다.오늘도 사장님은 고민한다. 어떻게 사람들은 우리 편으로 만들까? 사장님, 부장님, 과장님은 우리 브랜드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안다. 잘 알고도 남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몰라주니 속상하다. 그럴 때는 참여시켜라. 경험하게 하라. 그래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 브랜드와 사랑에 빠진다. 어떻게 사람들의 발걸음을 참여시킬지 고민하라. 어떻게 사람들의 손가락을 참여시킬지 고민하라. 소비자의 눈, 코, 입, 귀를 어떻게 우리 브랜드에 참여시킬지 고민하라. 몸을 참여시키면 그의 마음도 따라온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20-08-12 18:21:45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예술가의 아내

[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 예술가의 아내

"우리 선생님 오늘 잘 말씀하셨나 궁금하네요. 요즘 컨디션이 안 좋으신데 알아서 잘 좀 정리해 주세요." 작곡가 우종억 선생님의 부인은 자택을 자주 드나드는 필자에게 늘 이런저런 당부의 말씀을 덧붙이시곤 한다. 필자와 만나는 스케줄 정리에서부터 혹시라도 빠뜨린 자료가 있어 전화 드리면 잘 찾아서 전달해 주신다. 원로 예술인과 작고 예술인의 집을 자주 찾다 보니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다. 특히 남성 예술인의 경우, 오랜 세월 예술 활동 뒷바라지를 하신 부인들에게서 이런저런 후일담을 듣다가 함께 울고 웃을 때가 적지 않다.우 선생님의 부인은 "대구시향의 위상을 서울에 알려야 한다고 사재까지 털어서 가져가셨어요. 1980년대에 단원 수십 명 데리고 서울 공연 가는 게 어디 말처럼 쉬웠겠어요. 말도 못 해. 내가 이런데, 이기홍 선생님 부인은 더 힘드셨을 거예요"라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전하신다.2018년 12월 이기홍(대구시향 초대 지휘자)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홀로 남은 부인은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선생님의 스크랩 자료와 앨범을 정리하는 데 보내신다. 안방 한쪽에는 70년 가까이 함께한 남편을 향한 그리운 마음을 써내려간 일기장이 놓여 있다. 이기홍 선생님은 1964년 대구시향을 창단한 이후에도 지휘 공부가 더 필요하다며 1969년 홀로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세 아이와 함께 대구에 남은 부인은 포목 장사로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다."유학 가시기 전에도 월급은 음악 활동에 쓰셨으니 늘 생활비가 부족했어요. 애들도 좋은 학용품 한번 못 사줬죠. 그래도 선생님 음악 하시는 게 좋았고 더 잘 뒷받침해 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에요." 그는 부부가 같이 음악을 하는 사람은 무대 옆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지만, 평범한 아내는 그럴 수 없다는 생각으로 평생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마음 졸이며 무대를 지켜보곤 했다.올해 97세이신 바리톤 고(故) 이점희 선생님의 부인은 선생님의 예술 활동 자료들이 대구시 아카이브 자료실로 떠나는 날, 눈물을 보이셨다. "우리가 영선못 옆에 살 때, 그때 자료가 정말 많았는데, 집이 습해서 훼손된 책이나 음반들을 많이 버렸는데 그게 아까워요. 그래도 지금이라도 우리 선생님을 기억하고 챙겨 줘서 고마워요." 혹시나 덜 챙겨 보낸 게 있을까 이곳저곳 다시 살피시며 그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평생 매일 저녁마다 음악 동료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늦게까지 술상을 차리게 한 남편이었지만, 그가 걸어간 길이 자랑스럽고 옳은 길이었다는 확신이 있다.지난봄 연극인 고(故) 이필동 선생님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는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실 서재 등이 선생님의 생전과 똑같이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필동 선생님의 부인은 집으로 배달돼 오는 택배의 대부분이 책이었다고 회상했다. "남편에게 저 두꺼운 책들을 다 읽고 또 사시는 거냐고 물으면, 책을 전부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단 한 줄만 얻어도 성공한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저는 잘 모르는 책들이지만, 하나하나 남편의 손때가 묻은 걸 아니 쉽게 치울 수가 없었어요."그러곤 선생님의 예술 자료 정리에 나선 필자를 걱정하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우리 선생님만 챙기다가 임 선생이 피해를 보면 어떡해요. 다른 연극인들은…." 이 말을 듣고 나니 정말 말문이 턱 막혔다. 이필동 선생님은 지역 연극사에서 업적이 가장 뚜렷한 분이시니만큼, 아무도 반대할 사람이 없으며, 인물 선정에 필요한 사전 절차를 다 거치고 왔다고 안심시켜 드렸다. 늘 세상과 부딪히며 새로운 길을 개척한 예술가 남편의 활동을 지켜보며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사셨을까 싶어 가슴이 아렸다.내 남편이, 내 가족이 어떤 사람이라고 널리 알리고 자랑하며 그것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 일평생 마음 졸이며 오롯이 그 뒷바라지에만 힘쓴 부인들, 그들이 있었기에 예술가들은 더 큰 걸음을 걸을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남편의 예술 활동에 빛을 더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평범한 아내의 시간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 같다.

2020-08-12 14:39:50

[기고]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가 성장 동력

[기고] 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가 성장 동력

민선 7기가 반환점을 돌았다. 모든 자치단체들이 저마다 강점을 살려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친 시기이기도 했다. 각 자치단체장도 지역 발전에 대한 무한 책임감으로 몸도 마음도 정신없이 뛰어다녔을 것이다.거창군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서부 경남의 거점도시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전~통영 구간 고속도로가 비켜 가는 등 교통 환경의 변화에 소외되면서 성장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고민을 안고 있었다. 이런 고민 속에서 군수 당선 직후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군민 앞에 5대 군정 목표를 제시했으며, 그 가운데 '품격 있는 문화관광'을 큰 꼭지의 하나로 포함했다. 역사문화유산의 관광자원화가 군의 지속 가능한 성장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구상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후 '가야사 복원사업'과 '거열산성 국가사적 승격'을 군수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가닥을 잡았다.거열산성은 그동안 많은 노력에도 경상남도 기념물에 머물러 있어 아쉬움이 많았기 때문에 군민의 의지를 등에 업고 관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국가 사적 승격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지난달 20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가 되었기 때문에 9월 중으로는 지정 될 것으로 기대한다. 거열산성이 국가 문화재로 승격되면 거창의 고대문화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역사문화유산이자 관광상품으로 큰 몫을 할 것이다.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인 가야사 복원 사업에도 눈을 돌려 패키지 관광상품으로 엮어 나갈 생각이다. 여기에는 지역에 산재한 고분군들의 발굴이 주력 사업이다. 이미 '거창 분산성'은 정밀지표조사를 완료했고, '무릉리 고분' '석강리 고분'에 대해 학술발굴조사를 시작했다. 이 사업은 가야·신라·백제의 전략적 요충지에 있는 거창 지역의 가야 유적 발굴·복원을 통해 문헌에 기록된 '거열국'에 대한 실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서 지역 관광자원으로 만들어 가고자 함이다. 분산성은 거창분지의 중심에 있는 평강산(平岡山·해발고도 235m)의 정상부를 둘러싸며 조성한 테뫼형의 석축 산성이다. 옛 문헌에 성산(城山), 성산고성(城山古城), 고성(古城)으로 표기되는 등 건흥산 정상부의 거열산성과 함께 거창군의 대표 산성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부터 경남연구원에 의뢰해 분산성의 규모와 성격 등을 밝히기 위한 정밀지표조사를 진행해 왔다. 앞으로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고고학적 가치를 규명할 계획이다.이 밖에도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취소·연기된 축제 행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예술인 창작활동 지원사업, 지역 문화예술 진흥사업, 청년 문화예술 콘텐츠 기획제작 지원사업 등 총 3개 사업에 3억5천만원을 지원하는 등 문화예술계에 힘을 실어 주고자 노력했다. 특히, 예술인 창작활동 지원사업은 그동안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없었던 예술인에 대한 직접 지원이라는 점에서 지역 예술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또 지난 7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 지정 공모에 '오래된 지혜, 새로운 공동체'라는 사업명으로 문화도시 조성계획 신청서를 제출했다. 여기에는 도농복합도시인 거창의 지역적 가치를 활용한 건강한 공동체 회복을 비전으로 농촌‧생태‧사람‧기반 등 4개 분야 37개 사업이 담겨 있다.거창 지역은 역사 속에서 삼국 항쟁기 신라와 백제의 각축장으로 거열산성을 비롯해 분산성 등 많은 산성이 축조된 고대사의 주요한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역사문화유산들이 거창 군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거창군이 품격 있는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는 바탕이 될 수 있도록 지역 역량을 모아 나갈 것이다.지난 7월 중순 경남사회조사연구원이 실시한 민선 7기 상반기 군정 만족도 조사에서 72.19점이라는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지난 2년간의 노력에 대한 군민 여론이자 민선 7기의 중간평가라는 점에서 군수로서 일하는 보람을 느끼면서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더 겸허한 자세로 더 많은 땀을 흘려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일시적인 평판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좀 더 멀리 보고 좀 더 깊이 생각하면서 거창 군민과 함께 더 큰 거창으로 뛰어오르기 위해 다시 한번 신발끈을 고쳐 매고자 한다. 이와 함께 군민들의 변함없는 성원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2020-08-12 11:38:03

[홍성걸의 새론새평] 문재인 정부의 이상한 검찰 개혁

[홍성걸의 새론새평] 문재인 정부의 이상한 검찰 개혁

이제야 의문이 좀 풀린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을 왜 꼭 조국이 해야 했는지 말이다. 취임 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한 모든 일이 개혁과 거리가 멀었음에도 왜 이를 검찰 개혁이라고 불렀는지도, 황희석, 최강욱, 김남국 등 여권 핵심 인사들이 그토록 조국과 검찰 개혁을 동일시한 이유도 알 것 같다.조국 씨는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지 꼭 1년이 되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울산 선거 개입 사건의 공소장에 문재인 대통령을 15회나 언급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작년 하반기 초입… 검찰 수뇌부는 4·15 총선에서 집권 여당의 패배를 예상하면서 검찰 조직이 나아갈 총노선을 재설정했던 것으로 압니다…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 후 대통령 탄핵을 위한 밑자락을 깐 것입니다…." 그는 권위주의 체제 종식 이후 군부나 정보기관 등은 모두 민주적 통제 안으로 들어왔지만, 검찰만은 민주적 통제를 거부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강의 권한을 행사하는 '살아있는 권력'으로 행세했고, '준 정당'처럼 움직인다고도 썼다.검찰 개혁은 피의자 인권 보호와 집권 세력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 및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울산 선거 개입 사건 수사 이후 집권 여당의 검찰 개혁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는 완전히 사라졌다. 조국 씨의 글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2019년 8월 초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할 때, 조국 민정수석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은 윤 총장이 적폐 청산과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었다. 조 수석 자신이 윤석열 후보자의 인사 검증 책임자였다. 그런 윤 총장이 임명도 되기 전에 이미 검찰 조직의 수뇌부를 구성하여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는 말이다. 그것도 집권 여당의 패배를 예상하면서 말이다. 당시 대통령과 여당 지지도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높아서 9개월 뒤에 있을 집권 여당의 패배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대 법대 교수이고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비논리적 글을 버젓이 공개적으로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이는 윤석열 검찰의 청와대에 의한 울산 선거 개입 사건 수사가 대통령 탄핵의 사유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이 사건 수사를 막아야 했다. 윤석열 총장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성격을 잘 알고 있으니 설득보다 배제를 택했고 그 방법으로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자니 윤석열 검찰의 문제를 강력히 제기할 필요가 있었고, 윤 총장이 의도적으로 탄핵의 기반을 깔려 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 것이다. 정치적 중립성과 집권 세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검찰 개혁에서 사라진 것은 이 때문이다.윤석열 검찰의 수사를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 문 정부는 조국 씨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윤석열을 배제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조국 씨는 본인과 가족의 불법행위 의혹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니 문 대통령이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할 수밖에. 이후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검찰 인사권,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윤석열을 고립시켰다. 법무부 검찰개혁위원회는 윤석열 배제를 위한 대안을 검찰 개혁안이라고 발표했으니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것도 모자라 검사장급 인사에서 정권에 충성하는 정치검사들을 승진시켜 윤 총장을 포위했고, 곧이어 대대적인 차장 및 부장검사에 대한 인사를 통해 검찰의 정권 예속화가 완성될 것이다. 검찰총장의 수족이 모두 끊겼으니 더 이상 집권 여당 관련 수사는 없을 것이다.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지단야(義之端也)'라 했다. '사람이라면 의롭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안다'는 뜻이다. 집권 여당 사람들이 수오지심이 있는지는 이제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그리고 문재인 청와대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행태가 검찰 개혁인지, 아니면 합법을 가장한 희대의 국정 농단인지는 후세 사가들이 판단할 것이다.

2020-08-12 11:35:25

[매일춘추] 대구는 ‘69세’가 행복한 도시다

[매일춘추] 대구는 ‘69세’가 행복한 도시다

'제 얘기가 여러 사람을 불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글로 노년의 인간 존엄성을 그린 영화가 개봉된다. 영화 '69'세는 성폭행 피해자인 노인 여성이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노년의 여성은 사회적으로 가장 낮고 소외된 존재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품위 있는 차림새에 신경 쓰는 노년의 여성 효정 역에 배우 예수정이 나온다. 비록 주제는 무겁지만, 예수정의 힘으로 '69세'의 기품과 부드러움을 유지하며 부당함을 참지 않고 햇빛으로 나아가는 영화로 전개된다.효정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던 중 젊은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효정은 동거 중인 시인 동인(기주봉)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직접 경찰서로 찾아가 신고한다. 예상대로 경찰서에서 사건이 순조롭게 해결되지 않는다. 경찰은 '조심하지'라는 말로 피해자의 부주의를 탓하고 대질 신문을 요구하는 전형적인 2차 가해를 가한다. 피해자는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으며 치매 검사를 권유받는 등 여성이자 노인으로서 이중의 폭력을 경험한다.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효정의 마른 몸과 세련된 패션을 번번이 지적하며, '노인답지 않은 노인'으로서 자주 성적 대상화를 한다. 법원 역시 나이 차이를 근거로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미투' 시대의 관심이 대개 젊은 여성을 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녀의 사례는 복잡다단한 차별이 얽힌 새로운 사각지대를 밝힌다.효정은 부당함을 참지 않고 직접 대면하는 인물이다. '69세'는 노인으로서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사유를 멈춘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영화는 전체적으로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지만, 감정은 드라마틱하게 보여진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질문에 정답을 주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 든 노인도 가시에 찔리면 아파하는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이다.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감각, 그리고 자신을 아프게 하는 가시를 뽑으려는 노력 그 자체가 중요하다.''69세'는 피해자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녀의 판타지로 치부하며 그냥 묻어두기를 바라는 사회에 조용한 외침과 같은 영화다. 20대도 30대도 40대도 언젠가 나이가 들고 69세가 된다. 경찰과 주변 사람, 그리고 법원이 노인이자 여성인 효정이 겪은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보호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이 먹는 것이 지금처럼 두렵거나 불쾌하지 않은 사회가 될 것이다. 69세가 되어도 안전하고 행복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69세는 '희망을 갖기에 충분한 나이'다.

2020-08-12 11:35:06

[종교칼럼]사찰음식에 대한 관심

[종교칼럼]사찰음식에 대한 관심

요즘 사찰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산업사회가 시작되면서 바빠진 현대인들은 요리를 해 먹는 것보다는 빠르고 간편하게 즉석에서 만들 수 있는 인스턴트, 가공식품을 이용하여 시간을 줄이려고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비만과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대다수의 사회인들이 감미롭고 자극적인 음식과 육류와 어류를 좋아하면서 영양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요즘, 사찰 음식은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려서 담백하고 유연하여 건강을 지켜주기에 안성맞춤이다.음식이란 대다수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해서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여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기에 욕심이 붙으면 식탐이 되어 맛있는 집을 찾아 헤매기도 하며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어떤 것이 싸고 맛있을까?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하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나는 날엔 허겁지겁 과식하는 탐욕이 더해 하루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갈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사람들이 사찰 음식이라 하면 '채식주의자들이 말하는 몸에 좋은 야채와 과일 등을 많이 먹어서 육식에서 얻을 수 없는 섬유질이라든가 좋은 영양소를 얻는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사찰 음식이란 기본 생각부터 욕심을 가지고 맞이하면 안 된다. 육류와 어류뿐만 아니라 오신채(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까지도 쓰지 않는 것은 내 몸을 돌보기 위해서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육류와 어류를 금하는 것은 남의 몸을 살생하여서 내 몸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고 오신채는 성질이 맵고 향이 강하기 때문에 마음을 흩뜨려 수행의 청정한 마음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조미료나 방부제도 전혀 들어가지 않고 단맛 짠맛 매운맛 신맛 등을 강하게 쓰지 않고 유연하게 해서 위장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능엄경에 보면 수행자가 오신채를 먹으면 귀신이 입가를 따라다니면서 입을 핥아먹는다고 한다.요즘 와서 생각해 보니 부처님 말씀에 수행자가 몸이 너무 왕성해져도 고통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오신채가 영양분이 많아서 너무 자주 먹으면 그것도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 같다.사찰 음식은 먼저 이 음식이 나의 입에 오기까지의 인연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기에 음식을 버리는 것을 금하고 있으며 또 겸허하고 검소한 생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몸을 보전하기 위해 섭취하는 것은 맞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욕심을 내서 과식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래서 내 입에 맞는 음식이 있다 하여 많이 먹어서도 안 되고 욕심을 내서 많이 가져가 남겨도 안 된다.조리하는 과정에서도 3덕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청정-성질을 내면서 음식을 하면 제대로 맛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청정하게 해야 한다. 둘째 유연-제철 재료가 아닌 것을 써서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셋째 여법-법에 맞게 음식을 먹는 것과 수행이 둘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사찰 음식은 불교의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가장 간소하고 겸허한 자세로 자연에 순응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섭취했을 때 혼탁한 마음이 맑아지고 번뇌가 없어지며 성인병을 예방하고 몸과 정신 건강을 유지시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한국의 전통 웰빙 음식이라고 할 것이다.

2020-08-12 09:49:07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슬개골 조기진단과 예방법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슬개골 조기진단과 예방법

세상 귀여운 모습의 우박이(5개월. 포메라니언,1.7㎏)가 내원하였다.낯선 진료실에서의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해 달려와서는 콧등을 핥아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쾌활한 성격만큼이나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보호자는 "우박이가 어제 밤 우다다하며 뛰다가 갑자기 쿵 넘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했고 "이후 왼쪽 뒷다리를 들고 다녔다"고 말했다. 아침에는 밥도 잘 먹었고 활달한 편이지만, 왼쪽 뒷다리를 바깥 쪽으로 살짝 내밀며 디디는 것 같고,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며 안스러워 했다.우박이 보호자의 관찰은 섬세했고 좌측 다리의 불편함을 정확하게 감지했다. 우박이처럼 성격이 밝은 어린 강아지는 통증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걷는 모습으로 불편함을 감지하기는 오랜 경력의 훈련사들도 쉽지 않다. 이 경우 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걷는 모습을 낮은 눈높이로 관찰해보면 보행의 이상을 보다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발의 발바닥 패드를 지면에 충분히 밀착시키지 못하거나 바깥쪽으로 발을 내밀고 디디는 경향이 관찰된다면 그 다리는 통증이 있음을 의미한다.가벼운 불편함이더라도 뒷다리의 불편함을 3일 이상 호소한다면 동물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동물병원에서는 신경계 검사를 통해 다양한 자세에서의 운동 반응들을 관찰하며 통증 부위를 찾아낸다. X-ray(엑스레이) 검사는 탈구와 골절, 근육과 인대의 손상을 진단할 수 있다.우박이는 신경계검사와 X-ray검사를 통해 양측성 슬개골 탈구가 진행 단계임을 확인했다. 특히 오른쪽 뒷다리에 비해 왼쪽 뒷다리의 무릎 관절의 변형이 더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어제밤 우박이는 달리다가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 과정에서 무릎뼈가 안쪽으로 심하게 탈구되며 관절낭 주변 인대에 통증을 유발한 것으로 추정됐다.보호자에게 현재의 왼쪽 뒷다리의 무릎 통증은 약물 처방 없이도 좋아질 것이라 말씀드렸다. 하지만 우박이가 성장하면서 우박이의 대퇴골(윗다리뼈)과 경골(아랫다리뼈)의 변형이 심해지면서 슬개골 탈구가 악화될 여지가 높음을 설명드려야 했다.소형견의 슬개골 탈구는 선천적인 원인인 경우가 많다. 체형을 소형화시키려 혈통을 단기간에 개량하려던 탓에 슬개골 탈구와 고관절형성부전증이 다발한다. 작은 티컵사이즈의 반려견을 입양하지도 번식시키지도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우박이 보호자는 우박이가 슬개골 탈구 소인을 가졌다면 진행 초기에 수술적인 교정을 받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까 질문했다. 하지만 1년 미만의 성장기 강아지가 관절 수술을 받게되면 뼈의 정상적인 발육이 방해될 수 있다. 특히 성장기 편측 다리에 수술이 이루어 질 경우 두 다리의 길이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관절 수술은 뼈가 단단하게 골화되고 성장이 완료되는 2살령 이후에 수술을 권장드린다.하지만 성장기 골변형이 심하여 통증으로 인해 보행이 곤란해지는 경우에는 성장기에도 수술을 권하기도 한다. 이 경우 개가 성장 후 교정수술이 필요할 수 있음을 사전에 공지해드린다. 사람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소아마비처럼 심한 골변형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성장기 부터 단계적으로 교정 수술을 해주는 이치와 비슷하다.우박이 보호자에게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관리를 당부했다. 첫째, 5개월령, 현재 체중이 1.7㎏인 점은 문제되지 않지만 체중의 과도한 증가는 성장기 다리뼈의 변형을 악화시킬 수 있음을 경고드렸다. 슬개골의 탈구 소인이 있는 소형견일수록 체중을 가볍게 관리해야 한다.둘째, 빠른 걸음의 산책운동은 권장하되, 반복적인 점프와 흥분상태에서의 방향전환은 자제시켜야 한다. 슬개골 탈구가 심해질 수록 십자인대 손상이 잘 발생하기 때문이다.셋째, 실내 바닥재는 애견용 미끄럼 방지용 매트를 추천했다. 푹신한 재질은 오히려 해가 된다. 발바닥 패드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바닥 털이 길어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넷째, 관절이 염려되어 칼슘영양제와 관절영양제를 자주 주는 것은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 슬개골 탈구는 영양부족에 의해 생기는 질병이 아니라 오히려 과영양화와 급속한 성장, 체중 증가가 골변형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므로 과잉 영양 공급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꼭 먹이고 싶다면 체중을 고려하여 최소량을 제공한다.마지막으로 노령견의 뒷다리 불편함도 눈높이를 낮추어 개의 뒷모습을 관찰하면 보다 쉽게 확인된다. 뒷다리의 불편함이 관찰되는 즉시 곧바로 수의사의 검진을 받아야 한다. 아픈 다리도 염려되지만 현재 체중을 버티고 있는 다리가 급속히 관절염이 악화되거나, 갑작스럽게 십자인대가 곧잘 파열되기 때문이다. 주인의 애정이 깊을 수 록 반려견을 대하는 보호자의 눈높이가 낮아져야 하는 이유이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8-11 18:30:00

[매일춘추 ] 삶과 죽음

[매일춘추 ] 삶과 죽음

우리 한국인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일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근래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그랬고, 지난주 대구에서는 일가족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한다. 경위야 어떻든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것이 순리이다. 그래도 운명의 여신은 "쓸모없는 실오리는 그대로 두고 찬란한 희망의 실을 일찍 잘라 무덤으로 데려간다"(괴테, '파우스트')고 했으니, '일찍 무덤으로 데려' 가진 박 시장은 적어도 추종자들에게는 여전히 '찬란한 희망의 실'로 남을지도 모르겠다.라틴어 경구에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 죽음이라면 가장 불확실한 것은 죽음의 때'라는 말이 있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존재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에게도 삶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철학이라고요! 철학으로 줄리엣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도움도 납득도 안 됩니다. 관두세요." 아무리 고상한 철학이라도 생명보다 못하다는 것이다.그런가 하면 삶과 죽음에 대한 헤세의 예지는 놀랍도록 날카롭다. '크눌프'에서다. 삶은 밤하늘의 불꽃놀이와 같은 것, 밤하늘의 불꽃은 피었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함께 느끼도록 하는 거야. 난 불꽃놀이를 정말 좋아해. 파란색 녹색 탄이 어둠 속 하늘 높이 올라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작은 곡선을 그리며 사라지지. 그 모습을 보노라면 즐거움과 함께 그것이 금방 사라지리라는 두려움도 같이 느끼게 돼. 이 두 가지 느낌은 서로 연결된 것이라서 그것이 오래 지속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지."사회를 들쑤셔놓은 박 시장의 자살 사건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난 고 백선엽 장군의 '조용한' 죽음과 오버랩되었다. 서울시장(葬)이니 대전현충원이니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만의 삶, 자기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100여 년 전에 릴케는 "자기만의 고유한 죽음은 자기만의 고유한 삶처럼 점점 드물어질 것"(말테의 수기)이라고 썼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삶으로부터, 또 죽음으로부터 점차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과일 속에 씨가 들어 있듯 사람도 속에 죽음을 간직하고 있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죽음을, 어른들은 큰 죽음을, 여자들은 자궁 안에, 남자들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독특한 위엄과 말없는 자부심을 주는 죽음이었다."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죽어서도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였다. 그에 대한 대중적 호감이 아름답지 못한 일로 갑자기 멈췄을 때, 문득 필자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지나친 숭배의 대상은 늘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소박하고 평범한 우리 모두가 각자 행복의 대장간이라는 옛 사람들의 지혜에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은 수요일 새벽이다.

2020-08-11 14:30:01

[경제칼럼] 대구를 여성과 청년이 꿈꾸는 도시로

[경제칼럼] 대구를 여성과 청년이 꿈꾸는 도시로

얼마 전 대구고용노동청 정경훈 청장과의 간담회에서 대구의 청년 유출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정 청장은 이를 극복하려면 대구를 여성이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대구가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가 대구가 된다면 떠나는 인구수는 감소할 것이고 이것이 더 나아가 다른 도시에서 대구로 이주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봤다.고용노동청 자료에 따르면 대구의 고용률은 64.2%로 서울의 고용률(66.3%)보다 2.1%포인트(p) 낮으며 특히 여성과 청년의 고용률은 각각 55.6%와 22.8%로 서울보다 약 3%p씩 낮아 전체 고용률보다 여성과 청년의 고용률이 더 취약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구 지역 청년 인구의 외부 유출은 매년 7천~9천 명 정도이며 작년에는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정 청장은 앞으로 절대생산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 활동을 높여야 도시의 경쟁력이 생기며 더 근본적인 문제인 청년들의 일하는 비율이 수도권보다 낮은 것은 대구의 미래 일자리가 어둡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더 예의 주시하며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이 들지만 지역의 기존 산업을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지속적으로 바꿔야 하며 여성의 경제 활동이 출산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대구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나는 정 청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방문했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미국의 산호세 지역은 과거에는 지금처럼 IT 벤처 기업들이 넘쳐나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지역이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 서부의 산호세 지역은 조용하면서 동부에 비해 대기업이 없는 지방 도시였으나 지역 대학인 스탠퍼드대학이 중심이 돼 지역사회와 대학의 동문들이 함께 이 지역의 창업을 적극 장려했고 우수한 인재들의 유치에 힘썼다. 또한 기존에 산호세가 가지고 있던 좋은 환경과 값싼 주거 비용 등의 장점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많은 젊은 IT 인재들이 모여들어 지금의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실리콘밸리처럼 대구에 일할 수 있는 여성과 청년들이 많이 몰려든다면 대구의 미래는 분명히 밝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성과 청년들이 살고 싶은 대구를 만들 수 있을까? 기존의 다른 지방 도시들처럼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이전 또는 대기업 유치라는 외부 요인을 통해 만드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하기에는 경쟁이 너무 심하고 결국 중앙정부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한계성이 있다. 그렇다면 외부 요인이 아닌 대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먼저 대구를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성과 아이들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보자. 대구는 수도권에 비해 저렴한 주거 비용, 원활한 교통 등의 장점이 있으며 지방 도시 중에서 우수한 교육 및 문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렇듯 대구가 좋은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면 여기에 사회적인 소프트웨어만 잘 추가한다면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과 아이가 행복한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소프트웨어적인 접근으로 일하는 여성이 아이돌봄지원 서비스를 타 도시보다 더 저렴하고 편하게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도록 대구시 차원에서 인프라를 확충하고 재정적 지원을 해줘 육아를 하는 여성이 쉽게 취업할 수 있도록 기혼 여성을 고용하는 기업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두 번째로 대구 안에 대한민국 최고의 청년 창업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국의 젊은이들이 꿈을 안고 대구로 찾아오게 만들어 보자. 대구시가 대구의 도심 중 개발이 정체돼 저렴한 주택의 오래된 집들을 리모델링해 청년 창업가들에게 매우 싸게 임대해 주고 그 주변에 청년들이 모여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 및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하면 슬럼화돼가는 도심을 청년들이 북적이는 공간으로 만들면서 예스러움이 있는 세련된 공간으로 도심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위의 방법들이 구체화되고 실현되려면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방법이 아닌 더 좋은 아이디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른 도시들이 하는 것처럼 해서는 절대 대구가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구 유출을 막으려면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고민 중 대구가 차별화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여성과 청년이 가장 행복한 도시'라는 브랜드를 대구가 만들 수 있다면 분명 수도권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고 사람이 다시 모이는 활력 있는 대구가 될 것이다.

2020-08-11 14:07:44

[백옥경의 과학둘레]올여름 최고의 피서는

[백옥경의 과학둘레]올여름 최고의 피서는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공감의 반응을 보인다. 마음 맞는 이들과 미지의 곳으로 가보자는 모의는 공염불이라도 즐겁다. 올해는 여러 이유로 피서에 대한 열기가 실종되었지만 그래도 여름은 떠나야 제맛인 계절이다. 여름이 가기 전에 멀리 한번 다녀와 보면 어떨까. 저기 멀리 우주라면.좁은 의미의 우주는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 밖 지상 118㎞ 높이 이상의 공간이다. 멀리는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와 이웃한, 빛의 속도로 250만 년이 걸리는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가늠해볼 수 있으나 우주에는 1천억 개가 넘는 별을 가진 은하가 1천억 개도 넘게 있으니 넓은 의미에서 우주는 헤아릴 수 없다.지상 400㎞ 높이는 어떨까. 그곳에는 시속 2만8천㎞의 속도로 90분마다 한 바퀴씩 지구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협력해 건설해 놓은 축구장만 한 크기의 우주인 거주 공간이다. ISS는 더 먼 우주로 나가기 위한 중간 기지이며 그곳에서 우주에서의 생존과 현상을 밝히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ISS로 가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있는 바이코누르 발사기지로 향한다. 그곳에서 러시아제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갈 것이다. 좀 전에 저압 상태 적응을 위해 여압복을 갖춰 입었다. 몸을 구겨 넣어야 할 정도로 비좁은 우주선 귀환 모듈에 올라타 준비 완료를 외친다. 점화. 연료와 산화제가 폭발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로켓이 요동친다. 화염을 뿜으며 추진력을 얻은 로켓은 온몸에 압도감을 전달한다. 곧이어 하단 부스터가 떨어져 나가고 로켓이 수직 상승을 계속한다. 지구 중력의 세 배가 되는 G포스로 몸이 짓눌려 숨을 쉬기조차 힘들다. 페어링이 분리되고 바깥이 보인다. 그도 잠시 2단과 3단의 분리를 위한 또 다른 충격이 이어진다. 잠시 후 주위가 고요하다. 우주선이 지구 중심의 저궤도를 돌기 시작한 것이다. 발사 후 십 분이 되지 않아서다. 조금씩 추력을 더해 궤도를 상승시킨다. 태양전지판을 번쩍이며 우주정거장이 지나간다. 속도를 더해 그것을 앞지른다. 그리고 180° 유턴. 도킹 포트가 보인다. 철컥. 성공이다. 드디어 육중한 우주정거장의 해치가 열린다.최근 국제우주정거장 도킹에 성공한 민간 우주산업체 스페이스X가 개발한 유인우주선 크루드래곤이 체류 임무까지 마치고 지난주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주도해온 우주개발사업이 민간 영역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로써 그동안 정체되었던 우주 탐사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오랫동안 그려오던 우주 관광 시대도 열리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지만. 스페이스X는 내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우주 관광을 시작한다고 한다. 열흘간 우주에 다녀오는 비용이 600억원이 넘는다니.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천문학적 비용까지 드는 여행을 가려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있다.ISS 내부는 무중력 상태다. 엄밀히 말해 지구 중력으로 인해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 그것이 추락하지 않고 지구 중심의 궤도를 도는 이유는 중력을 상쇄할 만큼 알맞게 빠른 속도로 날고 있어서다. 그곳에서는 인체의 장기와 혈액조차 제 위치를 잡지 못한다. 밀폐된 환경으로 호흡에 의한 이산화탄소 증가도 문제다. 신선한 물을 구할 수 없어 몸에서 나온 물도 증류해 사용한다. 근육과 뼈의 감소뿐 아니라 시력 저하, 방사선 노출로 인한 위험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우주에 가보려는 이유는 무얼까.ISS에서 1년간 체류하고 돌아온 우주인 스콧 켈리는 그의 저서 '인듀어런스'에서 우주에서의 삶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에메랄드빛으로 물든 짙고 푸른 지구를 내려다보면 아웅다웅 다투며 살아가는 지구에서의 삶이 보다 넓은 관점으로 바라봐진다고.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수완을 발휘해 생존하고 있다는 느낌, 살면서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느낌,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매미 소리 잦아들 무렵 까마득히 먼 우주가 내 마음에도 있다는 걸 느낀다면 올여름 최고의 피서를 다녀온 게 아닐까.

2020-08-10 16:30:00

[세계의 창] 다주택자를 변호하며

[세계의 창] 다주택자를 변호하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자유는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한 허용된다. 민주주의의 원리인 평등은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가진 자의 것을 뺏어서 없는 자에게 주는 것이므로 개인의 자유를 유린한다. 자유와 양립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므로 자유민주국가에서 평등은 결과가 아닌 기회의 평등이다.그럼에도 현 정부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고 있다. 높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는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것이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부동산 정책도 무주택자와 임차인을 돕겠다는 것이다. 대신 영세사업자를 포함한 중소상공인들이 타격을 받고 임대사업자와 다주택 소유자들이 세금 폭탄을 맞았다. 무산자를 위해 다주택 임대사업자, 영세사업자, 중소상공인 등 소위 '쁘띠 부르주아'를 핍박하는 '결과의 평등' 정책이다.쁘띠 부르주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반이다. 이들이 생업을 위해, 사업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무주택자는 전세와 월셋집을 구할 수 있고 저임노동자는 취업 기회를 얻는다. 지금 정부의 정책은 서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쁘띠 부르주아를 계급의 적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다며 정부는 지난 3년간 무려 23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었다. 최근 통과된 부동산 3법은 종부세율을 최대 6%로, 양도세율은 최대 72%로, 법인의 주택 양도 추가 세율은 20%로 높였다. '임대차 3법'은 2년 계약을 4년으로 연장하고, 전월세 상한제(5% 이내 상승), 전월세 신고제로 세입자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다주택 소유자의 투기가 부동산 가격을 올린다고 진단하고 그들에게 징벌적 규제와 세금 폭탄을 안긴다.그러나 서울 아파트 가격은 안정되기는커녕 현 정부 들어 오히려 52% 뛰었고 전세는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졸속으로 통과시키느라 야당과의 협의를 무시하였으니 정책 실패의 책임도 전적으로 정부 여당의 것이 되었다.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이나 최저임금 상승 등 반(反)시장 정책의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부 의도대로 국민들이 (어리석게) 따를 것이라 믿는 정책 담당자들의 치명적 자만에서 나온다. 국민들은 훨씬 똑똑하다. 정책이 바뀌면 상황에 맞는 최선의 결정을 하려고 노력한다. 책상머리의 관료와는 달리 자신의 돈과 재산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부동산 투기의 원인은 대부분 정부의 그릇된 정책 때문이다. 예컨대 아파트 분양가를 시세보다 훨씬 낮게 상한제로 묶어 놓으니 분양만 받으면 고액의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으므로 투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다주택자를 탓하지 말고 분양가를 자유화해야 한다.다주택자가 있기에 세입자가 주거지를 구할 수 있다. 주택 임대 수익과 부동산에 의한 자산 증식을 탐욕으로 매도하지만 타인에게 강제나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니다. 정당한 부의 증식을 불로소득으로 매도하고 타도 대상으로 삼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탐욕과 사익 추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이것을 없앤다고 사회가 더 잘되는 것이 아니다. 베르나르드 망드빌은 1705년 그의 저서 '벌들의 우화'(The Fable of the Bees)에서 사익 추구가 사회 번영을 낳는 반면, 사익을 악으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사회가 피폐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벌들이 개인적 이득을 위해 일할 때는 근면, 혁신을 통해 사회 전체가 경제 풍요와 안락한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벌들은 물질적 사익 추구가 사악하다고 죄의식을 느낀다.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도덕적 행동만을 하기로 했다. 그 결과는 경제적 빈곤과 문화의 부재라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였다.문재인 정부의 고위공직자 107명이 다주택 소유자라고 한다. 공직자라고 해서 다주택의 처분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들의 탐욕과 이기심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대신 반시장적 부동산 입법과 규제를 폐기함이 옳다고 본다. 부동산도 다른 재화와 다를 바 없이 자유로운 시장이 합리적인 가격과 공급을 가져다준다. 세율은 낮추고 규제는 완화하여 수요자와 공급자의 자발적인 거래에 맡긴다면 부동산 가격의 등락도 그들의 책임이 되므로 정부가 욕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윤봉준 뉴욕주립대 교수

2020-08-10 11:39:00

[매일춘추] 가슴을 후벼 파는 말

[매일춘추] 가슴을 후벼 파는 말

돌아가신 은사님은 글을 쓸 때 몇 가지 당부 말씀이 있었다. "간결하게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작성해라. 초고가 나오면 50번 정도 천천히 읽어보아라. 생각이 없는 책을 함부로 내지 마라. 쓰레기 같은 글로 나무를 죽게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범죄행위다."이 말씀은 글쓰기에 대한 엄중한 자세를 요구하는 가르침이었다. 흔히 글을 잘 쓰기 위해 '삼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하라(多商量)" 지식공유사회에서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소리다. 대중지성을 손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초(超)연결사회에서는 지식을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고, 통합・조정하는 '코디네이터'의 능력이 더 필요하다. 그 원천의 기본은 '생각하는 공감능력'이다. 생각 없는 책읽기와 글쓰기는 기본체력 없이, 마라톤 완주코스에 무모하게 도전하는 초짜와 같다.우리의 일상은 메시지로 긴밀하게 서로 소통한다. 소통의 기본은 말하기와 듣기다. 최근 단골 선술집에서 불편한 사건이 발생했다. 친한 사장의 생활개그가 너무 웃겨서, "가시나! 완전히 미쳤구나!"라고 기분 좋게 사투리말로 맞장구를 쳤다. 다음 날 한 통의 정중한 문자가 왔다. "저도 고향이 경상도라, 대표님 말에 악의가 없는 줄 알지만, 대구 사투리를 모르는 주위의 알바생들이 주인을 무시하는 '언어폭력'이라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음에는 서울말로 꼭 맞장구 쳐주세요."한마디로 공감능력이 부족했다. 내 위주로 소통을 해석했다. 실수를 바로 사과했다. 소통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부터 시작된다. 공감능력이 없는 일방적 소통은 갑질의 사회적 폭력이다. 생각 좀하면서 소통할 나이다.요즘 나보다 더 공감능력이 없는 정치권의 괴물들이 세 치의 혀끝으로 시민들의 애닮은 삶을 가슴속 깊이 후벼 파고 있다. 예리한 빈정거림의 칼날을 사용하고 있다. "부산은 초라하고, 서울은 천박한 도시다. 피해자의 2차 가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 박 시장이 죽음으로서 답하신 것이 아닐까. 월세가 정상,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 온다. 집을 사고팔면서 차익을 남기려는 사람은 범죄자다." 이제 정치권에게 소통의 품격을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 주권자에게 막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자의 메시지 품격이 천박하면, 불통의 매듭이 꼬이기 시작한다.소통은 존중이다. 최근 아내가 묻는다. "당신, 다음 생에도 나하고 결혼할 거야?"/ "안 해요. 내가 너무 고생시켜서. 다음 생에는 다른 남자와 편하게 살아!"소통은 배려다. 후배가 친절하게 대답한다. "너는 2%가 부족해."/ "고맙습니다. 형님! 98%를 인정해주셔서…"곤란한 소통의 질문은 고도의 답변기술이 필요하다. 오만하게 불통하다가, 옹골지게 민심에게 반격 당한다. 역사의 오랜 사회법칙이다.

2020-08-10 10:55:40

[기고]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 환경 공론화 기구가 필요하다

[기고]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 환경 공론화 기구가 필요하다

얼마 전 수자원공사가 개최한 '낙동강 물 환경 관리 방안 토론회'는 환경부가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에 대해 매우 복잡한 속내를 갖고 있음을 시사하는 행사였다. 토론자 중 한 명인 김창수 부경대 교수는 석포제련소 문제를 대표적인 낙동강 물 갈등 사례 중 하나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낙동강의 물 갈등은 복합 갈등의 성격이 강할 뿐만 아니라 갈등이 생성된 이후 상승기에 있기 때문에 일률적인 조정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주장은 학자로서 당연히 내릴 수 있는 진단이지만, 토론회를 주관한 수자원공사와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환경부의 어려운 상황도 어느 정도 반영한 분석으로 보인다.문재인 정부 들어서 환경부는 역대 장관(김은경 장관, 조명래 장관)의 석포제련소 방문기를 공식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 공개했다. 해당 사태가 부처 차원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해당 부처가 제련소에 행정 처분을 내리는 것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제다. 사건의 이해당사자이면서도 중재 기관이기도 한 환경부의 깊은 고민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행정 당국이 일도양단적 입장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일'이 벌어지고 나서 5년 후, 10년 후를 더 깊게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생태와 문명과의 관계 같은 거대 담론을 고민하기 어려운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의 생존과 안정 본능을 형이상학적인 생태철학으로 마냥 억누르기가 쉽지 않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와 일자리 문제가 인간 생존과 안정의 기본이다. 환경부 장관과 환경부 당국자들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 것이다.하지만 안동댐으로부터 100㎞ 이상 떨어져 낙동강 상류 수계에 영향이 미미하다 하더라도 영풍의 환경 문제 자체는 과학적으로 따져 볼 만한 사안일지 모른다. 오염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사측도 깊게 인정해야 한다. 대신에 당국과 시민사회가 매우 건조하고 명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의 일방적 종식이 아닌 완전한 해결을 목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그러자면 환경부도 막상 규제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책 수립과 집행의 관점에서 석포제련소 이슈를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만약 환경부가 감독과 처분 이외에 영풍 문제에 발을 제대로 담그기 부담스럽다면, 이미 설치한 공론화 기구라도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낙동강상류환경관리협의회가 정말로 진지한 소통 채널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절실하다. 당장 몇몇 소속 위원들의 법적 문제와 관련된 크고 작은 잡음이 들려온다. 정치운동과 시민운동을 병행해서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일부 위원도 있다. 왜가리가 중금속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는 학술적 결론이 났는데도 장외에서 비난하며 전문가를 비방하는 참여자도 있다고 한다. 공론화 기구가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과학자 중심의 거버넌스가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안동댐 상류 퇴적물 내 비소, 카드뮴의 용출(용해로 인한 금속의 성질 발현) 경향은 낮다"는 안동대 김영훈 교수의 지적이 인상적이다. 이런 식의 생산적 토론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 영풍 문제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대안도 나오게 되고, 환경부 당국자들의 복잡한 심사도 정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2020-08-10 06:30:00

[이른 아침에] 국정 운영은 투쟁보다 어렵다

[이른 아침에] 국정 운영은 투쟁보다 어렵다

검찰 개혁·남북문제 등 우격다짐부동산은 두더지 잡듯 땜질 처방국민과 싸운 정책 결과는 대실패이해와 협조 구하는 국정 전환을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과 비서실 소속 수석비서관 5명이 한꺼번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일괄 사표를 낸 것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은 아니다.2017년 3월 13일 당시 한광옥 비서실장과 모든 수석비서관들이 사표를 제출했다. 날짜에서 보듯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표시였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광우병 파동에 따른 청와대 참모진 사퇴 표명이 있었다. 2005년 1월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김우식 비서실장을 포함한 수석급 6명이 사표를 제출하는 일이 있었다. 이기준 교육부총리 사퇴에 대해 청와대 인사추천위원회 멤버 모두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다.정국이 어려울 경우 인적 교체로 돌파구를 만드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문제는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보좌를 잘못한 책임을 묻는 게 인사 쇄신의 일차적 목적일 것이다. 국민 여론을 무마하고 국정 운영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는 등 다목적일 수도 있다.이번 일괄 사퇴 이유는 어느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명확하지 않다. "최근의 상황에 대한 종합적 책임을 진다는 뜻"이라는 청와대 해명은 모호하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결정적 역할을 한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문책인가. 언론은 대체로 그렇게 보는 듯하다.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인사수석, 홍보수석, 민정수석 등이 집값 폭등 과정에서 잘못한 게 무언지 어리둥절하다. 정책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정책실과 국토교통부 장관 등 부동산 정책 책임자들이 멀쩡한 것을 보면 언론이 잘못 짚은 게 분명하다. 다주택 소유 참모들을 바꾸어 들끓는 여론을 진정시킨다? "부동산 민심 역풍에 부담 컸던 듯"이라는 해설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결과는 어떤가. 여론 무마는커녕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민정수석이 시세보다 비싸게 내놓았던 매물을 거둬들인 직후 사표를 낸 시점도 여론 악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직보다 집", "역시 청와대보다 강남 아파트지", "권력은 짧고 아파트는 영원하다"는 등 여론의 역풍을 예상 못했다면 안이한 상황 인식이다.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노 실장 등 전원 교체는 힘들다는 게 중론인 걸 보면 당장 국정 쇄신의 동력을 만들기도 어렵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집 값이 급등한 일부 지역은 원상 복귀돼야 한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문 대통령의 언급이다.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인식이 아닐 수 없다.대통령이 부동산 폭등은 당연하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쉽지 않은 문제라는 인식 하에 조심스레 정책을 폈어야 한다. 지지 않겠다는 자세로 국민과 싸운 정책의 결과는 보는 대로다. 걱정은 그런 기조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부동산 관련 법률의 부작용에 대한 대처가 그것이다. 전세나 월세 폭등에 대한 염려는 세금 지원으로 잠재우려 한다. 높은 월세 전환율 우려가 나오면 전환율 규제 법을 만들겠다고 나온다. 부동산 관련 가짜 뉴스 처벌법을 만들겠다고도 한다. 정부가 장려했던 임대사업자 혜택을 줄이겠다고 하다가 반발이 나오자 물러선다. 야심 차게 발표한 주택공급 방안은 당장 여당 의원과 자치단체장들부터 막고 나선다.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까. 정부와 여당이 이제라도 국정 운영의 기조를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두더지 잡듯 땜질식 처방은 한계가 분명하다. 국정 운영은 투쟁보다 어렵다는 사실부터 인정하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겸손한 자세로 전환해야 한다. 운동권, 과거 인연, 특정 지역을 벗어나 최고의 인재를 모아야 한다. 고언하는 사람들을 적대세력으로 모는 편협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한 근본적 성찰과 방향 전환이 없다면 상황은 악화 일로를 걸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 박근혜 정권의 실패는 정파적 시각에서 반길 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실패였고 우리의 전진을 더디게 한 것이었다.따라서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이 상징하고 있지만 부동산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른바 검찰개혁, 남북문제 등도 우격다짐이긴 마찬가지다. 정권의 실패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실패가 되풀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2020-08-09 15:50:14

[금융칼럼] 부동산 규제 내용과 향후 전망

[금융칼럼] 부동산 규제 내용과 향후 전망

수도권과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인상에 대해 정부는 6월 17일과 7월 10일, 8월 4일 연이어 규제책과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가격인상을 진정시키지 못한 정부가 연이어 새로운 대책을 발표하면서 시장의 혼란이 가중됐다.대구경북에서 체감하는 정도는 서울·경기·대전 등의 지역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청사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주택의 공급대책, 교육환경구축 등 부동산 정책의 성공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함에도 지금과 같은 규제책만으론 역부족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먼저 이번 규제정책은 다주택자의 종부세 인상폭이 크게 강화됐다는 점이다. 0.6~3.2%인 세율이 1.2~6%로 지난해 발표 때 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2주택 이상 취득 시 취득세가 8%, 3주택이상은 12%로 현행 1~3%보다 4배 강화됐다. 물론 이사 등 일시적인 1가구2주택인 경우에는 일반 취득세율이 적용된다.단기 양도 세율이 높아져 분양권 전매 실익도 사라졌다. 주택 구입 후 1년이 채 안된 경우 매각할 때 양도세율은 70%, 1년에서 2년 미만 인 경우는 60%세율이 적용된다. 분양권의 경우 2년 동안 보유했더라도 분양권 상태에서 매각하면 60%의 세율이 적용된다.이제껏 절세 수단이었던 부동산 법인에 대한 규제강화로 신탁을 통한 보유세 절세 전략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법인 설립을 통한 절세수단을 사용할 수 없게 됨은 물론 법인에 대해 추가적인 양도세율이 부가돼 법인세 부담도 늘어난다. 결국 부동산법인을 통해 부동산을 보유하는 것이 오히려 불리해졌다.다주택자의 4년 단기, 8년 장기 주택임대사업 또한 전면 폐지됐다.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해 제도권 주택임대사업자를 양성키로 한 정부정책은 폐기수순을 밟고 있는 것 같다.이 같은 정책은 지방의 주택 투자심리를 상당히 위축될 수 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는 '시장 가격안정'으로 변함이 없다. 시장을 안정시키려고 앞으로도 추가 규제책을 준비할 수도 있다. 과반이 넘는 여당의 국회 입법 실행력도 매우 크다.지방의 대도시는 주택보급률이 높다. 전국 평균 주택 보급률을 100%를 이미 오래전에 넘어섰고 서울은 97%로 전국평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100%에 근접해 있다.수도권에 인구과밀현상으로 인해 상승되는 가격보다 다주택자의 투기과열로 인해 상승되는 시장을 진정시키려는 주택정책이 지방에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방 주택부동산 시장의 위축도 가속시킬 것이다.그래서 지금은 지방의 소형주택에 투자할 경우라면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실제 거주할 주택을 구입할 의사가 있는 실수요자라면 정부의 규제정책은 크게 염두에 두지 말고 장기적인 투자관점에서 전문가와 상담해 구입의사 결정을 하는 것도 좋겠다.박동훈 인투자산관리&재무설계 대표

2020-08-09 15:21:56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강세황(1713-1791), ‘태종대'(太宗臺)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강세황(1713-1791), ‘태종대'(太宗臺)

강세황이 개성과 근처의 명승지를 답사하며 그린 '송도기행첩' 16점 중 '태종대'이다. 태종대는 개성 북쪽 성거산에 있는 명소다. 사진으로 대략 짐작해 볼 수 있는 박연폭포와 달리 성거산 태종대는 실제 모습이 궁금하다. 여기를 답사하고 기행문을 남긴 김창협(1651-1708)이 "시냇물이 빙 둘러 흐르고 대(臺)의 옆에 입석(立石)이 있으며, 그 꼭대기에 노송이 구불구불 기이하게 걸려 있다"고 한 것을 이 그림과 맞추어 상상해 볼 수밖에.김창협의 묘사대로 시냇물이 우람한 바윗돌들 사이로 흐르는 가운데 앞 쪽의 널찍한 바위가 태종대, 그 왼쪽이 입석, 입석 위에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 계곡의 물로 먹을 갈고 채색을 풀었을 테니 그 수기(水氣)가 그림에 스며있을 것 같다. 갈아 놓은 먹을 물로 다시 묽기를 조절해 가며 먹빛으로 명암 효과를 냈다. 먹색의 농담으로 덩어리 감을 나타낸 커다란 바위들이 물에 잠겨 있기도 하고, 층층이 쌓여있기도 하고, 삐죽하게 열 지어 서있기도 한 가운데 녹색 소나무가 빽빽이 송림을 이루고 있어 여름 피서지로 제격이었을 듯하다. 흐르는 계곡물은 하늘색이 살짝 비치는 불투명한 흰색을 바위 위에 덧칠했는데, 물 위로 드러난 부분에도 살짝 더해 물기를 준 것은 수석(水石)의 풍광을 실감했기에 나왔을 것 같다.태종대에 앉아 종이를 펼쳐놓고 이 풍경을 그리고 있는 사람은 강세황 자신이다. 맑은 물을 만나 일행이 웃통을 벗고 또는 버선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그는 중에도 강세황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명문가의 양반사대부로서 '환쟁이'의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붓을 들고 종이를 펼쳐 놓은 모습으로 객관화시켜 그려 넣을 수 있을 만큼 화가라는 자의식이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자의식이 있었기에 강세황은 조선화가들 중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겼던 것이다. 자화상을 초상화의 꽃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를 넘어 회화의 꽃이 자화상이다.'송도기행첩'은 개성유수 오수채를 위해 그린 것이고 애초에 이런 제의를 수락했기 때문에 이 여행과 사생이 이루어졌다. 실경산수는 그 장소를 체험해야하는 그림이라 여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후원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정선의 금강산그림은 서울 장동에 살았던 안동 김씨 집안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김홍도의 금강산 그림과 진경산수 실력은 김홍도를 단련시킨 든든한 후원자 정조 때문에 가능했다.강세황은 이 화첩의 그림을 '세인 부증 일 목격'(世人不曾一目擊), "세상 사람들이 일찍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라고 자부했다. 강세황은 도전의 기회를 얻어 이를 실현했고, 오수채는 부임지의 기념물로서 그 곳 풍경을 간직하게 되었다. 오수채라는 후원자의 존재로 인해 개성의 명소는 인문지리의 꽃인 실경산수화로 남을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이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2020-08-09 06:30:00

[2020 세상 읽기] 식구(食口)

[2020 세상 읽기] 식구(食口)

우리 사회의 오랜 관습이나 분위기 같은 것이 어느 순간 확 바뀌어있음을 실감할 때가 있다.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는 '남아선호' 관념의 변화다. 결혼하면 대 이을 아들 낳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의 하나였던 우리네였다. 아들 낳으려다 줄줄이 딸부자집이 되기도 했고,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해 평생 냉대받고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철옹성같던 남아선호가 언제적 얘긴가 싶게 요즘은 '여아선호' 가 대세이다.공공장소에서 홀연 담배연기가 사라진 것도 그러하다. 아파트 뒤란 같은데서 눈치 보며 담배 피우는 흡연족이 때로 안쓰러워 보일 정도이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닫기 버튼을 누르던 습관도 이전만큼 자주 볼 수 없다. 기질 탓인지 바뀌는 것도 '빨리빨리'다.요즘 또하나 피부로 느끼는 변화상은 '1인 가구' 급증세이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6월 현재 우리나라 주민등록 가구의 38.5%가 1인 가구로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그 다음이 2인 가구(23.1%).2000년대초만 해도 노부모가 결혼한 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움직일 수 있는 한 자식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다" 며 따로 사는 예가 많다.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미혼 자녀들도 늘어나는 추세라 이래저래 1인 가구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집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다.집집이 식구들로 오글오글했던 때가 있었다. 1970, 80년대만 해도 한집에 자녀 서너명은 보통이었다. 7, 8남매도 더러 있었고, 10남매를 넘나드는 집도 아주 드물지는 않았다. 조손 3대가 사는 집은 10명 내외 식구들로 북적였다. 빠듯한 살림에 지지고 볶으면서도 칡넝쿨처럼 서로를 보듬으며 살았던 시절이었다.하지만 어느샌가 1인 가구가 주류인 세상이 됐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혼밥(혼자 밥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보기)' '혼행(혼자 여행하기)' 등 '혼'자 돌림 라이프 스타일이 등장한지도 꽤 됐다.'혼술'이나 '혼영' '혼행' 은 개성이나 취향에 따른 것이라 별 문제가 없다. 반면 '혼밥'은 좀 다르다. 단촐한 밥상을 앞에 두고 홀로 밥을 우물거리노라면 세대를 막론하고 옆구리가 허전해지는건 왜일까.사실 가족이 있어도 저마다 분주한 탓에 함께 밥 먹을 기회가 좀처럼 없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이다. 하지만 두레밥상이 있던 시절은 달랐다. 그땐 아침저녁으로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고교생 때 였던가, 아침에 여덟 식구가 두 개의 밥상으로 나뉘어 부지런히 수저를 놀릴 때면 늘 라디오에선 경쾌한 멜로디의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나눕시다 명랑하게, 일년은 365일~♬". 밥을 먹는 우리의 마음도 절로 명랑해지곤 했다.밥상에선 종종 아버지의 지적도 있었다. 밥 한숟갈에 이삼십번은 씹어라, 흘린 밥 알은 주워먹어라, 젓가락으로 반찬 휘정거리지 마라 …. 두레밥상은 곧 밥상머리 교육의 현장이었다.주전부리 부실하던 그 시절, 비오는 날의 수제비나 '정구지 찌짐', 포실포실 분이 나는 찐감자 등은 두레밥상 위의 행복이었다.롱다리 식탁의 등장으로 숏다리 두레밥상은 자취를 감추었다. 식구 수도 줄어 급기야 1인 가구가 대세이다. 냉장고엔 음식물이 가득하지만 사람들은 "입맛이 없다"고들 한다.시인 공광규의 시 '얼굴반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으려나.'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식구(食口)'란 '함께 밥 먹는 사람'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가족은 있으나 식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입맛 돋궈주는 정겨운 '얼굴반찬'이 없어지는 것이다. 식구를 불러모으던 두레밥상이 문득 그립다.장맛비 그치자 기다렸다는 듯 매미 소리 그득하다. 7년여 시간을 땅 속에서 견디다 나온 매미가 나무 위에서 목청껏 노래하는 날은 고작 2주 내외.끝자락 비가 다시금 오락가락 하는 사이 매미들이 또 맹렬히 울어댄다. "매미든 사람이든 한번 왔다가 가는 건 도긴개긴 아닌가요~ 하수상한 이 세상, 모쪼록 재미나게 사세요~"라고 외치는 듯 하다.전경옥 언론인

2020-08-08 06:30:00

[광장] 잡초

[광장] 잡초

마당이 있으면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정말이었다.봄에는 전쟁이 아니라 놀이다. 쉬엄쉬엄 놀이 삼아 뽑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장마에 접어들면 모기에 물리고 땀 범벅이 되면서 잡초를 뽑지만 돌아서면 또 무성하게 자란다. 오기가 생기고 잡초에 대해 적개심도 생긴다. 바둑 둘 때는 누워서 천장을 보면 벽지 무늬가 전부 바둑판으로 보이더니, 잡초와 싸움을 벌일 때는 어디를 가나 잡초만 보인다. 그리고 적개심으로 뽑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걷다가 도로의 잡초를 보면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 그것을 뽑고 있다. 거리의 잡초는 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데 왜 뽑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냥 잡초이니까?3년 전부터 잡초는 정리만 하고 완전 제거하기를 포기했다. 처음에는 내가 키우는 채소, 꽃을 방해하는 잡초를 그냥 둔다는 것이 속이 상했다. 그런데 잡초 뽑기를 포기하자 또 다른 재미있는 현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잡초의 사전적인 의미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면서, 농작물 성장에 방해를 주는 풀이다. 그렇다면 잡초를 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이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잡초에 대해 적개심을 버리고 관찰을 하고 공부를 하자 잡초의 다양한 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선 꽃이 예쁘다. 민들레의 노란 꽃이 화려하게, 개망초의 흰꽃이 우아하게, 토끼풀의 작은 분홍꽃이 귀엽게 보였다. 정리되지 않고 어지러운 면은 있었지만 따로 돈 들이고 공들일 필요 없이 꽃밭이 되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잡초도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개망초 잎을 전으로 구워도 좋고, 민들레 잎을 샐러드에 섞어도 약간 쓴맛이 입맛을 돋우었다.과거 요리하는 사람이 텃밭에서 금방 따온 허브로 음식을 내면 우선 기가 죽었다. 뭔가 우아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런데 알아보니 지금 허브란 것이 애초에는 들에 피는 잡초였다. 허브라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내 텃밭에도 처음 씨를 뿌려 둔 것이 몇 년이 지나자 알아서 자라고 있다. 관리하지도 않는데 매년 넘쳐날 정도로 자란다. 땅을 뒤집고 흙을 갈아도 집요하게 자란다. 손님이 오면 그냥 허브 가지를 꺾어서 유리병에 꽂고, 잎으로 요리만 해도 손님들은 기가 죽는다. 우리가 이용하기에 따라 잡초가 되기도, 음식 재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대표적인 잡초는 토끼풀이다. 번식력이 놀랍다. 그런데 토끼풀을 뽑으면서 뿌리를 보니 주위에 작은 혹이 보였다. 자료를 찾으니 질소균을 고정하는 뿌리혹이었다. 질소는 식물이 자라는 데 꼭 필요하다. 스스로 질소 고정을 못 하는 다른 식물 입장에서는 질소를 공급하는 토끼풀이 꼭 필요한 친구인 셈이다. 농부에게 그런 사연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몰랐지만 척박한 땅에는 먼저 토끼풀을 심으라고 어른들이 얘기한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땅에 토끼풀이 많은 이유를 알게 되니 토끼풀이 귀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모든 잡초는 자기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자연에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닐까?무엇보다 잡초를 이해하니까 잡초에 대한 적개심이 없어졌다. 이제는 길에 보이는 잡초를 뽑지도 않는다. 어떤 꽃이 피었는지 살피기도 하고, 시멘트로 꼭꼭 눌러도 틈으로 풀이 자라 나오는 우리나라가 축복받은 땅이라는 생각도 든다.잡초 때문에 느낀 것들이 있다. 고정관념이나 여론에 사로잡혀 사물이나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대상을 천천히 관찰하고 최종 판단은 나중에 하자.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하자. 모든 사람이 해롭다고 생각해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자.

2020-08-07 09:48:41

[ 매일춘추]  대구 십일미

[ 매일춘추] 대구 십일미

전국 어느 곳을 가든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다. 지역의 대표음식은 지역의 특성과 환경에 따라서 생겨난 향토음식이다. 대구도 전국적으로 음식문화와 향토음식이 가장 발달한 고장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대구십미(大邱十味)가 있으며 곳곳에 경쟁력 있는 먹거리 타운이 활발하게 조성되고 있다. 대구시음식선정위원회가 선정한 대구십미는 대강 이러하다. 전쟁 통에도 양반이 어찌 밥과 국을 섞어 먹으랴 해서 탄생한 따로국밥, 6·25 피란시절에 먹을 것이 없어 당면 따위를 간단하게 넣고 먹었던 납작만두, 오로지 멸치만으로 국물을 우려낸 누른국수, 1960년대 성당못 근처 도축장 인근 식당에서 소와 돼지의 부산물 요리로 처음 개발된 막창, 우동을 경상도식으로 얼큰하게 개발한 야끼운동,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 논에서 양식한 저가의 메기를 매운탕으로 개발한 논메기 매운탕, 매콤달콤 반고개 무침회, 1950년대 소주 안주로 개발된 뭉티기, 복어불고기, 동인동 찜갈비. 이들 모든 음식은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상 10가지 중에서 아마 한 가지를 더 선정하라면 평화시장 닭똥집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평화시장 닭똥집만큼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닭똥집 튀김과 평화시장의 만남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대 이후 경부선의 수송량 증가로 넓은 부지에 많은 선로를 확보한 역이 대구에 필요해졌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신암동에 1969년 동대구역이 생기면서 아무것도 없이 허허벌판이던 이곳에 평화시장이 생겼다. 한 동안은 칠성시장에 버금갈 정도로 큰 시장이었지만 이 역시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평화시장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때 평화시장을 살린 것이 닭똥집이다. 지금은 장사를 그만 둔 이두명·나춘선 부부가 1972년 '삼아통닭' 자리에서 도계업을 했었다. 그 무렵, 시장 닭똥집 골목 간판이 있는 도로변에 요즘은 구경할 순 없지만 매일 아침 인력시장이 섰었다. 추운 겨울 날, 모닥불을 드럼통에 피워놓고 불을 쬐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나타난 봉고차가 공사 현장에 필요한 만큼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선택을 받은 사람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시장에서 낙심한 마음을 막걸리로 달랬어야 했다.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에 그들에게는 안주는 사치요 그렇다고 막걸리로만 낙심한 마음과 배를 채울 수 없었기에 이들 부부는 마땅히 쓸 곳은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닭똥집을 밀가루를 바르지 않고 그냥 튀겨서 서비스 안주로 주었다. 이것이 닭똥집 골목의 시초였다. 서비스 안주로 나가던 것이 반응이 좋아지자 이들 부부는 닭똥집에 밀가루를 발라 한 접시를 천원에 판매하였고 어느새 삼아통닭은 서민들의 목로주점으로, 닭똥집은 서민들의 음식으로 변해 갔다. 지금은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도 현대식으로 많이 바뀌었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좌대에 앉아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정을 나누던 그런 장소였다. 이처럼 평화시장의 닭똥집은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대구의 대표음식이다. 대구의 십일미다.

2020-08-06 14:15:11

[춘추칼럼] 찰나의 권력으로 오만에 빠지면 실패한다

[춘추칼럼] 찰나의 권력으로 오만에 빠지면 실패한다

민주국가 의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30일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일방 표결로 통과시켰다.지난 4일에는 세금 인상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3법(소득세·법인세·종부세법)도 표결로 일방 처리했다. 민주당은 국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법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회법(제58조)이 규정한 소위원회 법안 심사, 축조 심사, 찬반 토론 같은 절차를 무시했다. 21대 국회는 삼권분립 헌법 정신과 국회법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오로지 청와대 하명에 따라 군사 작전하듯 법안을 밀어붙이는 통법부로 전락했다. 미래통합당은 "입법 독재의 완성"이라고 반발했고, 정의당조차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원의 입법권마저 침해했다"고 비판했다.현재 민주당 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유신 독재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하명을 받아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했던 '유정회'가 떠오른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검찰총장의 작심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선출된 권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작금의 '신종 독재' 상황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당장 정부 여당에 역풍이 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고, 서울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도가 통합당에 역전되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향후 정부 여당이 정책 실패에 무감각해지고 국민 공감 능력을 잃는다면 이런 추세는 더 악화될 것이다.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 정치에서 경험적으로 입증된 이른바 '집권 4년 차 증후군'이 있다. 절대 권력을 누렸던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4년 차로 접어들면서 예외 없이 국정 운영 리더십에서 큰 위기를 맞이했다. 통상 역대 정부는 집권 초기엔 인사 실패로 휘청거리고 중반에는 정책 실패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며 임기 말엔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인사 비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레임 덕'(lame duck)이 아니라 정치적 뇌사 상태에 빠지는 '데드 덕'(dead duck)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현 정부는 작년 조국 장관 임명과 같은 인사 대참사로 도덕적 파탄을 맞이했고, 올해는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남북 관계 경색,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과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란 등으로 민심이 급격하게 이반되고 있다. 향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가 터지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현 상황으로 봐서 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 후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의 충돌로 집권 세력은 깊은 혼돈에 빠져들지 모른다. 임기 말에 관료 사회가 등을 돌리면 권력 누수 현상이 심화되고 결국 현 정부도 역대 정권과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런 실패의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정부는 인적 쇄신을 통해 최고 정책 전문가를 등용하고, 새로운 국정 과제의 성과를 도출해야 하며, 야당과의 협치를 강화해야 한다.한국리서치는 매월 정부가 추진하는 12개 정책에 대한 국민 평가를 실시한다. 7월 3주 차 조사 결과, 주거·부동산 정책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19%로 가장 낮았다. 정책 중요도 평가에선 일자리∙고용 정책을 최우선으로 꼽은 응답이 58%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사회 안전(47%)과 주거·부동산(45%)이었다. 주거∙부동산 정책은 3월 넷째 주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중요도가 10%포인트 증가했다. 주거·부동산을 최우선 과제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아주 높은 반면, 긍정 평가가 지극히 낮다는 것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당은 집값 폭등을 이전 보수 정부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야당과 머리를 맞대고 협치를 통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최고의 부동산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단언컨대, 정부가 정책 실패를 무시하고 찰나의 권력에 도취되어 다수결 폭력이라는 오만함에 빠지면 결국 '집권 4년 차 증후군'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2020-08-06 13: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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