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4층에 대한 다이어리

목 늘인 백합나무가 용학도서관 4층과 교우합니다. 이것은 오롯이 백합나무만의 일은 아니겠지요. 뿌리의 물을 우듬지까지 끌어올리는데 대략 한 달가량 걸린다니, 4층까지 엘리베이터로 14초면 닿을 수 있는데 꼬박 한 달이 걸린다는 거죠. 가지들은 흔들리면서 또 얼마나 적막한 시간을 견뎠을까요? '흔들린다'라는 동사를 가진 다는 건 행복일까요? 불행일까요? 높이를 가지는 일이 그리 신명나는 일만은 아니었겠지만.한국의 병원에는 4층이 없습니다. 병이 호전되지 않거나 환자에게 유해하다는 근거는 어디에 없음에도 4층은 존재하지 않지요. 죽을 '사(死)' 와 발음이 같아 기피한다고들 하죠. 4층 없이 어떻게 4층 이상이 존재하나요? 'F'나 '5'로 회피 한다고 내용(4층)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4층에는 생사(生死)와 성식(性食)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과 '모던'이 있지요. '모든'은 방대한 어떤 실체의 일부분에 불과할 수 있고, '모던'은 '포스트모던'과 연대합니다.통유리 전망의 용학도서관에서 끝내 4층이 된 백합나무, 목을 길게 빼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우뚱, 귀를 곤두세워 더 명확해지려 합니다. 키를 높이는 이유가 왠지 세상에 태어나 적어도 4층까지 자라야겠다는 고집 같고, 4층의 공기에 대한 호기심인 것도 같습니다. 저기 먹구름이 몰려오네요. 저도 4층이 되어 4층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려는 건지. 4층에 필요 없는 것까지 끌고 와 조금 쓸쓸한 얼굴이 되기도 합니다.지난 4월, 진주의 한 아파트 4층에 불이 났습니다. 오전 4시쯤 40대 남성에 의해 주민 5명이 숨져 충격을 주었는데요. 잠결에 맨발로 뛰어내린 4층, 과묵하고 치밀한 내적 자아가 노린 4층에게 육중한 애도를 표했지요. 마음의 4층과 몸의 4층이 삐거덕 거릴 때, 눈물의 4층에서 반짝이는 눈동자를 봅니다. 탈의가 불가능한 4층은 다른 이미지로 시선을 데려가는 대신 구체적인 실재와 마주하게 합니다.도서관의 4층이 된다는 건, 강의가 끝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복도의 마찰음이거나 4개의 다리를 가진 책상이 되는 건가요? 내구성이 좋지 않아 잘 마르지 않는 4층의 서사, 자기가 무얼 하는지 모르는 4층이기에 아무런 생각이나 의견은 갖고 있지 않지요. 그러니까 죽을 '사(死)' 와 연관 짓는 4층의 편견은 불식되어야 마땅하겠지요.10층 이상을, 아파트의 로얄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4층을 선호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3층은 뭔가 답답하고 5층 이상은 지면에서 멀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또한 4층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풍경엔 품격이 있습니다. 조망권 확보와 더불어 나무의 정수리도 환히 보이거든요. 4를 외면하고 비켜가려 하는 반면, '4를 지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시인도 있습니다. 안정적이고 매혹적인 높이와 함께 모든 4층은 '모던 4층'으로 존재하니까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0-08 11:54:15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거짓과 폭력의 시대, 원형의 춤 (circle dance)을

자신의 호흡을 따라 리듬 속에서 몸을 움직여 갈 때, 우리는 온전히 우리 자신이 된다.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되는 움직임 안에서 감정은 일어나고 지나온 경험들이 되살아나 그 순간을 재경험하기도 한다. 춤은 자유와 환희를 불러온다. 그것이 스스로 추는 춤이다. 춤은 그렇게 평화로운 방식으로 존재의 영역을 확장해간다.세상은 늘 크고 작은 혼동 속에서 균형을 잡아가며 변화한다. 어제는 한 중학생이 아주 사소한 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누구는 정신을 잃었고, 여성과 아이들이 살해당하고, 태평양에는 거대한 플라스틱 섬이 생겨났고, 돈과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알량한 권력을 이용해 타인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침범했다는 소식이 날마다 들려온다. SNS에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과 과장을 서슴지 않고 그래도 괜찮을 듯 여기는 사람들의 소식이 가득하다. 우리 모두 선하든 악하든 우리가 한 행위들은 세상을 돌아 어김없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법이다. 결국 거짓과 폭력들이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에, 대구 동성로에 거대한 외침과 물결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우리 사회가 또 한 번 정화(淨化)의 의식을 치르는 과정일 것이다.스스로 추는 춤이 자기(self)를 찾아가는 길이라면 서클 댄스는 공동체의 리듬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원형-원은 평등의 의미를 지닌다-안에서 작은 움직임이 춤이 되어 안정과 소속, 연결과 평화를 느끼게 하고, 공동체 전체에 위로와 격려, 변화를 만들어 낸다. 잠시 발이 틀리고 비틀거려도 맞잡은 손의 힘으로 다시 원으로 돌아와 춤출 수 있다. 고대로부터 인류는 원형의 춤을 추었고,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두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춤을 추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강강수월래가 그랬던 것처럼.거리로 나온 목소리들이 함께 리듬에 맞춰 춤춘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가! 서로를 환대하고, 다정하고 즐겁게 원형을 그리며 춤춘다면, 세상은 또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2019-10-07 18:00:00

배상식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배상식의 여럿이 하나] '전국 이중언어대회'를 보고 나서

얼마 전, 우리 지역에서 다문화 학생을 위한 '이중언어대회'가 열렸다. 이중언어대회는 다문화 학생을 대상으로 이들이 두 가지 언어를 얼마나 잘 구사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대회이다. 그러니까 한 가지 언어는 당연히 한국어일 것이고 다른 언어는 한국 출신이 아닌 엄마나 아빠 나라의 언어가 된다.경북지역에서 개최되고 있는 이중언어대회는 전국 규모로 확대된 지 벌써 6년이나 되어 제법 인지도가 높고 경북 거점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주관하고 있다. 1등상(대상)을 수상한 학생에게는 여성가족부 장관상과 300만원의 부상이 있다 보니 전국에서 참가하는 학생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질적 수준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올해는 66명의 참가 신청자 중에서 본선에는 23명의 학생이 선발되었다.대회 당일 강당 안에는 알록달록한 풍선이 가득 장식되어 있었고 다양한 나라의 국기들이 큼직하게 부착되어 있었다. 무대에 오른 참가 학생들 중에는 자신이 준비한 두 가지 언어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학생도 있었고, 너무 긴장한 탓에 자신이 준비한 원고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안절부절못하는 학생도 있었다. 특히 객석에서 응원하는 가족과 지도교사의 마음은 이들보다 더 까맣게 타고 있었다.본대회가 열리기 전에 참가 학생들의 이중언어 능력을 질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원어 심사위원들의 현장 인터뷰가 함께 진행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원고 내용을 암기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로 학생들의 언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가 이 대회의 질적 수준을 조금씩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모든 참가 학생의 발표가 끝난 후, 입상자들의 명단이 하나씩 발표되었다. 입상한 학생의 가족들은 얼싸안고 기뻐하였으며, 그렇지 못한 학생의 가족들은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울먹이는 자녀를 꼭 안아주는 아빠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동안 가족들의 환호와 아쉬움이 강당에 가득 차 있었다.필자는 우리 지역의 이중언어대회를 10년째 참관하고 있다. 이러한 대회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그 속에 많은 교육적'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다문화 학생들에게는 이중언어 능력을 신장시켜 자존감 향상은 물론 자신의 진로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의 부모에게는 다문화적 배경이 강점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며, 지역민에게도 이러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하지만 이번 대회를 지켜보면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지역에는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민여성이 가장 많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언어는 중국어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참가 학생들이 발표할 원고를 지도교사나 부모가 대신 써주다 보니 원고 내용이 학생의 수준과 잘 맞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초등 고학년 때 이중언어 능력이 아주 높았는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오히려 그 능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 등은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대구교육대학교 교수

2019-10-07 18:00:00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여리박빙(如履薄氷): 살얼음 밟듯 두려워하고 조심하라

살얼음(薄氷)을 밟는(履) 듯이(如) 하라는 여리박빙은 고대 중국의 민요를 모아 놓은 시집인 '시경'(詩經)의 소민(小旻) 편에 있는 말이다. 주희(朱熹)는 소민 편은 임금이 사특한 책략에 유혹되어 바른 정치를 펴지 못함을 풍자하여 지은 시라고 했다.소민 편의 마지막 구절은 "감히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수 없고(不敢暴虎), 걸어서 황하를 건널 수 없는데(不敢憑河)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人知其一) 나머지를 알지 못하는구나(莫知其他). 두려워하며 조심하기를(戰戰兢兢) 마치 깊은 못에 임하듯 하며(如臨深淵) 살얼음을 밟고 가듯 해야 한다(如履薄氷)"고 적고 있다. 위정자들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다.맨손으로 잡는 것을 폭(暴), 맨발로 강을 건너는 것을 빙(憑)이라 한다. 사람들은 눈앞의 위험은 보지만 나라가 패망의 늪으로 빠지는(無淪胥以敗) 위기는 알지 못한다. 위정자는 정치가 자칫 깊은 못에 빠질까, 얇은 얼음판이 깨질까 늘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이다. 여리박빙은 전전긍긍과 함께 통치자가 늘 경계해야 하는 말로 자주 쓰였다.퇴계 선생은 선조 임금에게 행한 경연(經筵경서를 강론)에서 "옛 성현은 조심하고 삼가기를 살얼음 밟듯이 하고, 잠시라도 태만하고 소홀히 하여 나라가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을 근심했다"고 일렀다. 1873년 2월의 고종의 경연은 소민 편의 '여리박빙'을 읽고 "사람들이 맨손으로 범을 잡고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는 근심은 알기 쉬우나 나라 잃고 집안 망치는 기미는 알기 어려우니, 어찌 깊은 못의 얇은 얼음 밟듯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경계를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기록하고 있다.지금은 여리박빙에서 '박빙'만을 취해 근소한 차이를 뜻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요즘 같은 내외의 국가 위기 상황에서 위정자들은 모인 군중 숫자의 박빙을 논할 것이 아니라, 여리박빙의 심정으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해야 한다.

2019-10-07 18:00:00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나무와 창의성] 11월의 나무:대추나무

대추나무의 대추는 유교 사회의 근간이었던 효의 상징물 중 하나이다. 효는 자식의 부모에 대한 보답을 의미한다. 자신의 의무는 부모가 살아계실 때 봉양하고, 돌아가시면 제사를 통해 부모를 살아계시는 것처럼 모시는 것이다. 효의 원리를 만든 사람은 중국 춘추 말의 공자였다.공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상을 치르면서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자식이 3년간 부모 품에서 자라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리학을 지배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의 지배층은 공자의 이념을 철저하게 실천했다. 조선시대에 효를 강조한 것은 부모에 대한 효가 국가를 경영하는 데 아주 유용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조선시대의 왕들은 대부분 몸소 효를 실천했다. 세종의 아들 문종과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도 유명한 효자였다. 조선시대에는 효경을 간행해서 전국에 배포하고, 효행을 장려하기 위해 정려를 하사했다. 현재 전국에는 조선시대의 정려각이 적잖이 남아 있다.봉건시대가 끝나고 자본주의가 도래한 지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효 문화는 강하게 남아 있다. 특히 제사를 통한 효의 실천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국가가 개인의 효에 절대 관여하지 않는데도 한국 사람들이 전통 방식의 효를 실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기복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조상을 잘 모시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제사의 기복 문화는 불교와 기독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그러나 봉건사회의 유산인 제사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이 문제는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지만, 제사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사회문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는 방법은 제사만이 아니라 아주 다양하다. 제사는 부모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부모를 기억한다면 제사로 인한 사회문제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갈매나뭇과의 갈잎떨기나무 대추나무는 대조(大棗)에서 유래했다. 붉게 익은 대추는 아주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다. 대추를 제사에 올리는 것도 조상에 대한 자식의 변함없는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대추를 제사상 중 동쪽에 두는 것은 음양의 원리에서 붉은색이 동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사 덕분에 대추 소비량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북위시대부터 당나라까지 균전제를 실시하면서 대추를 심는 조전(棗田)을 하사했다. 대추를 제사에 올리는 또 다른 이유는 열매 안의 씨앗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홀수여서 남자를 상징한다. 남아 선호가 강했던 조선시대에는 제사상에 대추를 올려 후손이 번창하길 기원했다. 그래서 대추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풍속인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도 성행했다. 마을에서는 아가씨를 선발한 후 대추나무 가지에 아주 적합한 돌을 구해오도록 해서 가지 사이에 끼웠다. 돌은 남자의 성기, 대추나무의 가지는 여자의 성기를 의미한다. 이는 대추나무에 충격을 주어서 열매를 많이 열리게 하는 방법이다. 나무는 충격을 받으면 죽음을 예감하기 때문에 후손을 남기기 위해 다른 해보다 열매를 많이 만든다.대추나무의 잎은 늦은 봄에 돋는다. 그래서 매실나무와 살구나무 등에 비해 늦게 잎이 돋아서 느릿느릿한 양반을 닮아 '양반나무'로 불린다. '회남자 시칙'에서 대추나무를 11월의 나무로 삼은 것은 열매가 익는 시기를 고려한 것이다. 이 달은 해가 짧아지면서 음양이 다투는 시기이니, 군자는 목욕재계하고 조용한 곳에 머물며 몸을 고요히 하고 음악과 여색을 멀리하며 욕망을 억제한다. 그래서 신체를 안정시키고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열매는 결과(結果)를 의미한다. 결과는 과정이 충실할 때만 좋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과정에 충실하지 않은 채 결과를 기대한 사람이 많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위해 서는 성실해야 한다. '중용'에는 '성실은 하늘의 길이고,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고 언급돼 있다. 대추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하늘의 길을 본받았기 때문이니, 인간이 대추나무의 열매를 취할 때도 하늘의 길을 본받아야 한다.

2019-10-07 18:00:00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나의 페르소나

연극이 무대화되기까지 여러 연습과정을 겪어야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드레스리허설은 리허설 단계에서 제일 마지막에 진행되며 배우의 의상과 분장까지 점검하는 리허설이다. 의상과 분장은 배우의 '캐릭터입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대본분석을 통해 구축되어진 인물이 외형적으로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분장은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자주 짓는 표정의 주름살이라든지 얼굴의 음각 등을 통해 섬세하게 표현된다. 또 다른 기능으로는 배우의 자의식에서 해방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연습과정에서 배우가 어려워하던 장면도 드레스리허설 때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한다)아이러니하게도 배우에게 얼굴은 감정표현의 가장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자의식이 드러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현대 마임의 기초를 다진 에티엔느 드크루는 '얼굴은 연기자가 숨겨야 할 자아를 드러내기 때문에 핵심적인 표현 수단이 될 수 없다' 라고 했다. 그래서 분장은 배우에게 자의식을 감추고 캐릭터를 완성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또 이보다 더 확실하게 자의식을 감추는 방법은 바로 가면을 쓰는 것이다. 연출가 자크 코포는 '어떤 강력한 신체 훈련도 연기자의 과도한 자의식을 극복하지 못 한다' 라고 했다. 가면을 쓰는 것은 연기자의 자의식에서 자유롭게하며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게 한다. '신체연극'의 저자 딤프나 칼러리는 '뒤에 숨을 수 있는 무언가 수단을 갖는 것은 역설적으로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고 따라서 더 큰 위험을 감수할 수 있게 된다. 삶을 모방하는 행동 대신 연기자는 극적 표현을 찾기 시작한다' 라고 했다.사실 이런 극적 표현은 무대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역할에 맡는 가면을 쓰고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고 있다. 상사의 아재개그에 박수를 치며 웃어야하는 부하직원,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에게 얼차려를 주는 조교, 고객을 응대하는 영업사원, 선배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후배, 학생들 앞에서 화를 참아야하는 선생님 등등…. 심지어 나이가 들수록 가면의 개수는 늘어나고 두꺼워진다. 나아가서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조차 잊게 된다. 우리는 왜 마음에도 없는 표정으로 극적인 행위를 하는 것일까? 사람을 뜻하는 'person' 이라는 단어는 가면을 뜻하는 'persona' 라는 라틴어가 어원이라고 한다. 어쩌면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가면 뒤에 숨어 진짜 얼굴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가 어려운 것은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아는 내가 너무 달라서일지 모르겠다. 도덕적 규율과 부모의 기대, 사회의 틀 안에서 우리는 학습되어진 나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9-10-07 11:12:50

홍경임 대구 수성구의회 도시보건위원장

[기고] 청소년은 정치적 계산 대상이 아니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 말기인 1960년 2월 28일을 기억하는가. 대통령과 부통령 당선 개표 조작에 반발한 지역 청소년들이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 주장 등 독재에 항거하며 전국 최초로 봉기해 4·19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6·25전쟁 때는 한창 공부할 나이의 어린 학생들이 북한의 남침에 대항해 학도병이란 이름으로 전선에 나섰고, 장사상륙작전에서는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100년 전 3·1운동 때에도 청소년들은 주저 없이 조국을 위해 항쟁에 나서 어른들과 함께했고, 유관순 열사는 그 대표적인 표상이 되었다. IMF 외환위기, 세월호 침몰,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고 때에는 전국 각지의 청소년들이 나섰다.이처럼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역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회·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청소년들을 위해서 기성세대인 어른들과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지인이 "청소년 문제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의정활동을 한 사람은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실패한다"는 말을 했다. 청소년들은 당장 투표권이 없기에 칭찬은 받을지언정 곧바로 정치적 실익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평소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고 청소년들의 고민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왔기에 '너무도 당황스럽고 충격적'인 말이었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이자 아끼고 보호하며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지역과 나라의 소중한 인적자원인데, 어떻게 정치적 계산법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의아했다.법에 따르면 청소년은 만 9세부터 24세까지라고 명기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투표권은 만 19세부터이다. 대학생 이상의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투표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청소년들이 예전보다 체격이 더 커지고 어른스러워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들은 미성숙 단계에 있고,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행동이나 자칫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일 없이 순수함을 지켜줬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미래 주역인 청소년들이 그저 걱정 없이 아프지 않고 마음껏 뛰놀고 공부하며, 다양한 경험으로 심신이 건강하게 잘 자라 성인이 되었을 때 제 역할을 해내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청소년은 미래의 주역이기도 하지만 현재도 그들은 우리 사회의 일원이고 훌륭한 주역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방탄소년단, 엑소 같은 아이돌 그룹의 한류 열풍은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많은 어려움과 한계를 잘 극복하고 이겨내며 만들어 낸 결과이다. 이렇듯 우리 청소년들은 어떠한 환경에서 얼마만큼의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서 그 긍정적인 에너지가 확산되고 나아가 더 큰 역할을 해내는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작은 것에도 관심을 갖고 진정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정책, 제도, 행정을 펼치는 데 우리 기성세대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저 인기 영합이나 표 몰이를 위한 '할리우드 액션'은 그들도 원치 않을 것이고 현명한 그들이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기초의원들도 보다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제도 마련과 행정, 이를 뒷받침할 예산 편성과 엄정한 감시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지속적인 관심이야말로 선진 대한민국의 튼튼하고 안정적인 미래의 토대를 마련해줄 것이다.

2019-10-07 11:10:58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4차 산업혁명: 기회와 도전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시스템 변화새로운 시장 열리고 삶의 질 높아져기술 종속·빈부 격차 심화 위험성도모든 분야 통합'포괄적 방안 모색을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일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기존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기술 혁신이 임박한 시점에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변환은 그 규모, 범위 및 복잡성 면에서 인간이 지금까지 경험한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우리는 이 새로운 변환이 어떻게 전개될지 잘 모르나, 분명한 것은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모든 분야의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이 새로운 변환을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른다. 4차 산업혁명은 증기와 수력에 의한 생산의 기계화, 전기와 조립 라인에 의한 대량생산, 컴퓨터(디지털)화로 인한 생산의 자동화로 각각 특징되는 이전의 세 산업혁명과는 그 변화의 속도와 범위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매우 다르다.4차 산업혁명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비선형적으로 변화하며, 모든 국가의 거의 모든 기존의 산업을 파괴(Disrupt)하고, 그 변화의 폭과 깊이는 생산, 경영 및 거버넌스 시스템 전체의 거대한 변환을 예고하고 있다.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기술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 바이오테크놀로지, 로보틱스,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3D 프린팅 등 다양하다. 이들 가운데 많은 기술은 이미 기업과 우리 일상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들 기술은 더욱 발전할 것이며 나아가 서로 융합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래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과 응용 분야가 나타날 것이며 이로 인해 모든 분야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기회와 동시에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우선 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산업혁명들과 같이 글로벌 소득수준을 향상시키고 세계 전 인구의 삶의 질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에는 기술혁신으로 인해 장기적인 효율성 및 생산성의 증대와 함께 공급 측면에서 수송 및 통신비용이 절감되고, 물류와 글로벌 공급사슬이 보다 효과적이 되어 거래비용이 절감됨으로써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이는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그 결과 기업에는 더 많은 기회가 열리고, 소비자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기고, 새로운 직업의 출현과 업무 방식의 변화로 직장인은 더 편리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더 많은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창의성, 공감 능력, 청지기 정신 등과 같은 인간 본성을 높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동시에 많은 경제학자들은 급격한 기술혁신으로 노동시장이 파괴되고 자본 수익률과 노동 수익률의 격차가 가속화될 수 있으며 그 결과 빈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한다.예를 들면,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달로 음성 챗봇(Chatbot)이 콜센터 직원을 대신할 것이고, 자율주행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국 화물트럭 운전기사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 긴장과 갈등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통제되지 않은 기술혁신으로 사람이 기술에 종속되고 인간성이 박탈되어 삶의 질이 오히려 떨어질 위험도 있다.이와 같이 불확실한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개인, 연구기관, 기업 또는 정부 등 어느 한 주체에 맡길 수는 없다. 전 세계의 모든 주체가 지금부터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여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인간 중심의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서 우선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 사회, 문화 및 환경을 새롭게 형성할지에 대한 포괄적이고 글로벌하게 공유된 관점을 도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이를 기반으로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공동 목표와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모든 관련 주체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19-10-07 10:23:12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춤은 대구로 꿈은 세계로!

대구시에서 '전국무용제'가 24년 만에 개최되어 지난 토요일 막을 내렸다. 2019년 9월 26일부터 시작한 10일간의 긴 축제였다. 이 축제를 위해서 작년부터 대구무용협회 관계자들과 대구시는 만반의 준비를 하였고, 크게 작게 대구 각처에서 무용제에 대한 홍보가 펼쳐졌다. 아무리 홍보를 하여도 250만 명에 달하는 대구 시민들에게 골고루 알려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중한 축제 기간의 거의 모든 공연이 무료로 베풀어진다는 것을 아는 시민도 많지 않았음에 이르면 아쉬운 맘이 든다. 내 주변의 지인들에게 얘기해도 '전국무용제'에 대해 아는 이가 소수일 뿐더러 춤 공연에 대해 대체로 관심도가 낮다.관객들은 춤 공연에서 그 내용이 어려운 것을 답답해한다. 자주 보는 사람들은 어느덧 춤의 본질에 익숙해지지만, 춤 공연을 처음 보는 대다수 사람들이 하는 가장 많은 질문은 "저 춤은 무슨 뜻으로 저렇게 추는 것이지요?"이다. 모든 몸짓에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이 번 무용제에서 만난 다양한 종류의 춤을 얘기해보면 그 해답이 조금이라도 될까? 첫째는 주제에 너무 경도되어 시종 주제를 표현하려고 애를 쓴다. 둘째는 소통 어려운 주제로 계속 의상과 대형을 바꿔가며 춤을 춘다. 셋째는 주제나 춤 구성보다는 조명이나 장치에 집중하여 무대를 보는 즐거움에만 치중한다. 넷째는 주제를 잘 표현하면서도 춤도 잘 구성되고, 조명은 적절히 사용하여 장면을 잘 설정하며, 소품의 적절한 이용으로 그 의도가 잘 드러난다. 당연히 네 번째에 맞게 공연을 하는 팀은 큰 감동을 준다. 이런 공연을 만나게 되면, 관객은 큰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아는 만큼 보게 되고,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 춤도 그 범주에 있다. 주제도 잘 보이고, 그 속에 무용수의 멋진 춤이 적절히 녹아 있고. 장치와 소품이 그 주제를 돕고 있어야 한다. 관객들은 그 것을 맛볼 수 있을 때 까지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져야 즐길 수 있다.'전국무용제'는 경연을 하는 축제이다, 그래서 무용수들이 공연에 임할 때 최선을 다한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무용수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종종 본다. 그간의 긴 연습시간의 어려웠던 점과 잘 마쳤다는 안도감으로 그럴 것이다.'춤은 대구로 꿈은 세계로'이라는 이번 '전국무용제'의 슬로건처럼, 대구를 달군 춤 축제가 막을 내렸다. 전국 16개의 시도 대표가 한 자리에 모였고, 경연하는 것을 보는 것은 쉽잖은 일이다. 문화시민이라면 이번 축제에 한번이라도 춤 공연을 감상하는 귀한 체험을 했길 바란다. '세계로 가는 길'은 거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0-07 04:30:00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창천불부고심인(蒼天不負苦心人)

올 한 해 정부 청년정책 예산 20조그럼에도 현실은 나아지는 게 없어청년이 힘든 건 구조적 문제이지만스스로 애쓰면 하늘은 버리지 않아20조7천917억원, 올 한 해 정부의 청년정책 관련 예산이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17개 부, 보훈처 등 3개 처, 조달청·병무청 등 7개 청,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한 3개의 위원회가 이 돈(세금)을 썼거나 쓰고 있다. 청년일자리 사업, 청년고용지원 사업, 청년병사목돈마련지원 사업,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 등 해당 사업의 수만 153개에 이른다.내년엔 '햇살론 유스'도 나온다. 청년에게 생활자금을 저리로 빌려줘 취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신경을 많이 쓴다. 대구시의 '대구형 청년보장제', 서울시의 '청년자율예산제' 등이 모두 청년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에서 나온 정책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과 정책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여전히 힘들다.지금 "청년은?"이라고 물으면 거의 공식처럼 '힘들다'가 따라붙는다. 정책만 보면 우리만큼 청년을 위하는 곳도 잘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심지어 매번 선거 때마다 청년공약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나름 말발 있는 인사들이 하나같이 청년을 외치는데도 현실은 좀체 나아지는 게 없다. 오히려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를 거쳐 'N포 세대'에 이르기까지, 청년은 사랑을 포기하고 우정을 포기하고 희망과 꿈을 포기하고 마침내 이것저것 다 포기하는 포기의 아이콘처럼 되고 말았다. 그간 '포기'의 개수만 늘어난 셈이다.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정부의 시각에서 보면 청년세대는 사회적 약자에 가깝다. 정책도 여기서 출발한다. 즉, 청년이 힘든 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 최대한 청년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들도 맥락이 비슷하다. 청년이 어려운 건 시대의 잘못이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성찰해야 하고 정부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주류적 견해로 정설처럼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청년에겐 잘못이 없으니 그들을 탓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박 사장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가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일자리가 없다고? 하루 이틀 출근하다 안 나오거나 채용면접에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나는 청년이 부지기수다. 그들은 사회로 내딛는 첫발을 거짓말과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옆에 있던 김 부장도 거든다. "위에선 누르고 밑에선 치고 올라와서 힘들다는 거 있죠? 그거 다 옛날 말입니다. 요즘 애들은 스펙은 그렇게 쌓으면서 정작 실력은 쌓으려 들지 않습니다." 듣고 있던 최 사장도 한마디 보탠다. "그저 자기 것만 챙기려드니 원, 요즘 청년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며? 허허."참았다는 듯 이 과장도 입을 연다. "요즘 애들은 연애 말고는 딱히 관심 있는 게 없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 건 뭐라 안 해도 이성 친구가 없으면 '루저'라고 하거든요. 진짜 청년정신을 가진 청년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들 자리만 차지하려 드는 겁니다."이들의 발언은 위험하다. 요즘 같은 분위기상 낡은 사고에 젖은 '꼰대'로 찍히기 십상이다. 말하다가도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걸 보면 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N포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온 지도 수년이 지났고 갖은 정책들도 별 효과를 못 거두고 있다면 한 번쯤 청년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도도 있어야 한다. 한 청년은 단군 이래 지금이 돈 벌기 가장 좋은 시대라 하고 다른 청년은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부모가 가난해 유학을 못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한 세대로 묶기 어려울 만큼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요즘 청년세대의 특징이다. 따라서 청년정책에 대한 기준도 좀 더 다양해져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스스로의 의지로 도전하는 청년이 있다면 그들에겐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그들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과 사회적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덧붙여, 청년에 대한 비판과 요구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고로 낡아(?) 보이는 박 사장 일행의 말에 낡은 스타일로 한 줄을 더 보탠다. "창천불부고심인(蒼天不負苦心人) 즉, 하늘은 스스로 애쓰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2019-10-06 18:52:49

박홍열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장

[기고] 변화하는 장애인 복지제도와 복지관의 역할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들의 41.4%가 자신의 삶에 불만족하고 있다.이 외에 건강 상태 만족도(36.7%), 한 달 수입 만족도(35.5%), 문화·여가 활동 만족도(49.3%), 장애인 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36.9%) 등 여러 지표에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에 비해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필자는 영양군에서 공직을 시작해 40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올해 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제7대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영천 지역 7천975명(올해 1월 31일 기준)의 장애인이 겪고 있을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영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올해 ▷경상북도장애인체육회 지원을 통해 지적장애인 태권도단 및 볼링단 운영 ▷경상북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 장애 아동들에 대한 문화 격차 해소 사업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의 복지기관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을 통한 미술교실 등 문화·여가 사업 신규 개설로 지역 장애인들의 문화·여가 활동 만족도를 향상시켰다. 또 영천시보건소와 연계해 찾아가는 한방 진료, 건강 업(up) 재활운동교실을 신규 진행하는 등 적극적 활동을 통해 장애인들의 건강 상태 만족도 향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특히 중증 장애인들의 취업 활성화를 위해 2004년 6월 영천시에 장애인 무료 직업소개소를 등록하고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취업 기회 확대 및 취업 연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그 결과, 2016년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민간위탁 지원고용 사업에 선정돼 작년의 경우 사업 참여 장애인 50% 이상이 취업으로 연계됐으며, 올해는 지원고용 대상이 큰 폭으로 확대되는 성과도 내고 있다.장애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영천시장애인복지관과 같은 민간기관의 노력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도 함께 고민했고, 그 결과 2019년 하반기에는 장애인 복지계의 큰 변화가 있었다.30년 동안 이어졌던 장애등급제가 폐지돼 의료적 관점으로 나뉘었던 장애등급과 그 등급을 이용한 획일적 서비스 제공에서 벗어나 사회 활동, 가구 환경, 행동 특성 등 보다 종합적인 평가를 통한 장애인별 맞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변경한 것이다. 즉,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 제공으로의 변화다. 이 밖에도 기존 장애인들을 시설에 입주시켜 서비스를 제공했던 '인스티튜셔널 케어'(institutional care)에서 벗어나 탈시설화 패러다임을 반영한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역시 2026년 본격적 실행을 위한 시범 사업을 운영하는 등 변화하는 복지 패러다임에 맞춰 공공 정책도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복지관 역할을 다시 한 번 정립하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사업이 진정 장애인들의 욕구를 반영한 사업이었는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의 시선과 생각으로 사업을 진행해 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짚어봐야 하겠다. 그리고 이런 사회 변화와 제도 변화에 맞춰 민간기관인 복지관에서 제공할 수 있는 고유의 서비스는 무엇이며, 역할은 어떻게 재정립할지 끊임없이 고민해 장애인들의 복지 증진과 완전한 사회 통합을 위해 모든 장애인 기관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장애인 복지 패러다임과 제도의 변화라는 흐름에 조금은 흔들리더라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지역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했으면 한다.

2019-10-06 17:56:54

종이에 담채, 23.6×67.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숙 옛그림 예찬]정선(1676~1759) '해인사'

겸재 선생은 영남의 명소를 그린 진경산수도 여러 점 남겼다. 이쪽으로 근무하러 왔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도움으로 음서(蔭敍)로 벼슬길에 올라 40여 년 관직에 있는 동안 지방 수령을 3번 지냈다. 지금의 경산시에 속한 하양현령(1721~1726년)을 46세 때부터 5년간 지냈고, 포항의 청하현령(1733~1735년)으로 있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기 위해 사임하기까지 2년 부임하는 등 7년을 경상도에서 살았다. 이병연과 '시거화래'(詩去畵來)하며 경기도 양천현령을 지낸 것은 65세 때부터 5년간이다.정선은 70대까지 현역이었고 '연팔십여(年八十餘) 필익신(筆益神)', 곧 나이 80여세에 필력이 더욱 신묘했다. 대기(大耆)의 나이인 팔순에 이르자 노인을 공경하는 수직(壽職)으로 종2품 동지중추부사로 승직했는데 그의 이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품계였다.정선은 원래 사족(士族) 가문이었으나 증조부 대부터 벼슬이 끊어져 가세가 쪼그라들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는데 아버지마저 14살 때 돌아가시자 홀어머니와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소년가장이 되었다. 과거를 치를 형편이 아니어서 "소시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 그림 쪽으로 입신의 길을 찾았던 것 같다. 어디서 그림을 배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30대부터 '명화가'로 이름이 났다.겸재 선생의 발길이 닿는 곳 마다 그 곳의 명소가 그림으로 탄생했다. 진경산수 걸작 중에 '정양사'를 비롯해 부채그림이 많은데 영남의 명소 가야산 해인사를 그린 '해인사'도 명품이다. 해인사 건너편 산등성이에 있는 산내 암자인 보현암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능선에서 보면 이런 구도로 해인사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부채 속 산세도 가야산을 가본 사람에게는 낯설지 않다. 절 왼쪽으로 홍류동 계곡을 두고 다리 건너에는 사명대사가 입적하신 홍제암과 삼문(三門)도 그렸다. 오른쪽 아래 일주문인 홍하문부터 가장 위쪽 팔만대장경 판전까지 정연한 가람 배치 속에 기와지붕이 날렵하다.해인사는 홍류동과 홍하문의 '홍'(紅)이 단풍에서 왔을 정도로 가을이 더욱 아름답다. 단풍이 군데군데 물든 광경으로 '해인사'를 그린 것을 보면 겸재 선생은 딱 지금 같은 초가을에 갔던 것 같다. '한국관광 100선'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013년부터 2년 주기로 선정하는데 해인사는 4회 연속으로 개근했다. 올해 가야산 첫 단풍은 10월 14일, 절정은 10월 27일로 예보되었다. 겸재 선생의 구도로 해인사를 한 컷에 담아보는 가을되시길. 미술사 연구자

2019-10-06 06:30:00

최태연 전 계성중고 국어교사

[기고]처남(妻男)과 매부(妹夫)는 남매간(娚妹間)이다

남매(男妹)라고 써도 되지만, 남매(娚妹)라고 쓰는 것이 더 합당하다. 남매(娚妹)란 한자에 대하여 알아보자.1.남(娚) : 오빠(娚)은 남형(男兄)도 되고 남제(男弟)도 된다. 오빠가 여럿이면 맏오빠는 백남(伯娚)이고, 맏오빠 이하의 모든 오빠는 중남(仲娚)이다. 맏형을 백형(伯兄)이라 하고, 맏형 이하의 형을 중형(仲兄)이라고 하는 경우와 같다.중남(仲娚)은 고어가 아니다. 계명대학교 뒷산에 등산을 갔는데, 성주가 고향인 한 여사를 만났다. "우리 백남은 이사관(理事官)인데, 교육부에 있고, 중남은 성주에서 참외 농사를 짓습니다."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백남, 중남이란 말을 쓸 뿐 아니라, 나도 모르는 공무원의 직급을 말하므로 쳐다 보였다.한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맞은편 경로석에 앉은 노파가 옆자리에 있는 두 노옹(老翁)에게 "백남도 거기 같이 갔지요?"라고 하기에, "아주머니, 백남이란 어려운 말을 쓰십니다!" "우리들은 쓰는 말입니다"라고 했다.2.매(妹) :손아래누이(妹)는 여동생을 뜻하는 한자이다. 우리는 '누나'의 뜻으로도 쓰고 '여동생'의 뜻으로도 쓴다. 그래서 '누이(妹)'라고 하는 것이 옳다. 용례를 보자. ❶누나의 집도 매가(妹家)이고, 여동생 집도 매가이다. 누나의 집을 자가(姊家)라고 하지 않는다. ❷「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속담이 있다. 이때 누이는 누나도 되고 여동생도 된다. 여기의 매부(妹夫)도 누나의 남편도 되고, 여동생의 남편도 된다. 덧붙일 말이 있다. 영남(대구경북)의 일부 지식인들은 "누나의 남편은 자형(姊兄)이라고 해야 된다. 서울 쪽처럼 매형(妹兄)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자형 이라고 해도 되고매형이라고 해도 된다. 둘 다 바른 호칭어다. ❸매부(妹夫)도 또한 같다. 누나의 남편도 매부고 여동생의 남편도 매부이다. 누나의 남편은 자부(姊夫)라고 해도 되지만 자부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나의 남편과 여동생의 남편을 모두 매부라고 하므로 듣는 쪽에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손위 매부', '손알(=손아래) 매부'로 지칭하면 청자가 의문이 없게 된다. 실제로 그렇게 쓴다.3.처남(妻男)과 매부(妹夫) 사이의 관계어❶매부간(娚妹間)이다. 남매간(男妹間)으로 써도 된다. 사람들은 오빠와 여동생, 누나와 남동생 사이 즉 남형제와 여형제간의 관계어만 남매간인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 않다. 처남과 매부가 같이 앉아 있을 때, 삼자가 "두 분은 어떤 사이십니까?"라고 물으면 "우리는 남매간입니다"라고 한다. 이때 처남은 매부를 누이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처음 듣는다고 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호칭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❷새언니(=오라버니댁)와 시누이 사이도 남매간(娚妹間)이다. 시누는 새언니를 오빠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올케는 좋은 말이 아니다. 동생댁(同生宅)과 시누 사이도 물론 남매간이다. 시누의 한자어는 시매(媤妹)이다. 시매는 남편의 누이를 지칭하는 말이다. 시누를 시매라고 하니, 시누 남편은 시매부(媤妹夫)가 된다. 시매부가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경북에서는 상용하는 말이다.4. 조국(曺國)과 조국의 오촌(五寸) 조카 사이의 관계어❶종숙질간(從叔姪間)이다. 당숙질간(堂叔姪間)이다. '오촌아재오촌조카간'이라고 하는 무식자는 없을 것이다. 오촌조카만 방송하지 말고 종질(從姪) 당질(堂姪)이란 호칭도 방송해서 국민을 계도해야 한다. 가르쳐야 한다. 알아듣기 쉬운 말만 좋은 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민화의 지름길이다. 교육의 하향평준화가 좋은 것인가? 신문 방송은 사회를 계도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❷숙부(叔父)와 조카 사이의 관계어숙질간(叔姪間)이다. '삼촌조카간'이라고 하는 무식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숙부만 삼촌(三寸)이 아니다. 조카도 삼촌이다. 숙부를 삼촌이란 '숫자'로 호칭하는 사람은 교양 없는 사람이다. 사촌형(四寸兄)이라고 해도 되지만, 숫자를 숨겨서 종형(從兄)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관행이고, 품위 있는 호칭어이다.❸고모(姑母)와 조카 사이도 숙질간(叔姪間)이다. 고모와 질녀(姪女) 사이도 숙질간이다. 한문을 가르치지 않고, 한글 전용을 하면 '고모조카사이'란 말이 좋은 말이라고 주장할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다. '고모조카사이'는 설명이지 호칭어가 아니다.❹고모부(姑母夫)와 처조카 관계어인숙질간(姻叔姪間)이다. 고숙질간(姑叔姪間)이다. 고모부와 처질녀(妻姪女) 사이도 姻인숙질간(고숙질간)이지만, "이 사람은 제 처질녀(妻姪女)입니다"라고 하면 저쪽에서 쉽게 알아듣게 될 것이다. ❺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는 구부간(舅婦間)이다.『표준국어대사전』에 고부(姑婦)는 있고 구부(舅婦)는 없다. 저본(底本·원본)에 없었던 것 같다. 경북 예천사람들은 웬만하면 구부란 말을 알고 있고, 상용한다.※ ❶장인(丈人)과 사위 사이는 옹서간(翁壻間)이다.❷장모(丈母)와 사위 사이는 온서간(媼壻間)이다. ❸ 외숙부(外叔父)와 생질(甥姪) 사이는 외숙질간(外叔姪間) 또는 구생간(舅甥間)이다. ❹시숙(媤叔)과 제수(弟嫂)사이는 수숙간(嫂叔間)이다. 형수(兄嫂)와 시동생(媤同生)도 수숙간이다.

2019-10-06 06:30:00

최경규 '최경규의 행복학교' 교장

[광장] 2020 행복 프레임 만들기

해외를 갈 때마다 내가 탄 비행기는 어느 정도의 연료를 담고 출발하는지 궁금하다. 공중급유를 하지 않는 이상 비행기는 제한된 연료를 탱크에 담아 목적지를 향해 이륙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만약 이륙한 후에서야 목적지가 정해지거나 갑자기 변경된다면 연료가 부족하여 비행기는 중간에 불시착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보이지 않는 남은 인생의 게이지를 무시한 채, 오늘을 의미 없이 살아가다가 푸른 가을빛이 아름다운 오늘 같은 날, 진실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나의 목적지를 문득 찾았을 때는 이미 늦을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삶이라는 인생 항로를 어떻게 설계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늘 돌아보고 자신을 살펴야 한다.행복을 강의하는 필자에게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요? 과연 나는 누구를 만나면 행복할까요?"라고 묻는다. 행복은 극히 주관적이라 수학 공식처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이야기로 대신하곤 한다. "바르게 사는지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지금 당신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화려했던 과거 무용담만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당신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 있는 사람 말이죠."자극적인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매력은 진정한 삶을 향한 식지 않는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 매력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면 우리 인생은 한결 소확행의 길로 들어가기가 쉬워진다.장성미 작가의 '아내가 화를 자주 내요'를 보면 우울증 환자의 78.8%가 여성이고, 그중에서도 기혼 여성이 다른 집단에 비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즉 주부는 극히 제한적인 사람을 만나기에 새로운 자극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사람은 자극이 없을 때 정체된다. 정체는 때로는 어지러워진 마음 안에서 끊임없는 돌림노래로 정신을 피폐하게도 만든다.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먼저 마음의 창문을 열어야 한다. 기존 틀에 박혀 있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결과주의에서 벗어나 여정을 즐기는 과정주의로 우리 머릿속 센서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 정체라는 그늘 아래에서도 노력하다 보면 온화함과 만나는 순간이 있다. 이러한 순간은 백화점에서 판매되지 않는다. 당신이 만나는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다.'나를 바꾸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의 저자 주얼 테일러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민과 아픔 같은 부정적인 요소는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긍정의 씨앗이 된다. 고민하고 아픈 상황에서도 좀처럼 이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겠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불현듯 그때 그 고민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납득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강조하였다.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19년도 두 달을 남겨두고 있다. 우리가 탄 인생이라는 이름의 비행기가 이륙한 지는 이미 오래다. 목적지가 분명한가? 연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가?만약 얼마만큼의 연료가 남아 있는지 모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척 분명하다. 오늘부터라도 주위에 당신을 자극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인간관계를 재정리해보자. 새로움이라는 인간관계의 프레임이 당신을 자극시켜 줄 것이며, 새로운 사람들은 당신에게 신선한 행복의 밑그림을 그려 줄 수 있을 것이다.

2019-10-05 06:30:00

김남이 작 '장사도 해상공원'

[내가 읽은 책]기묘한 사람들 (랜섬 릭스 지음, 조동섭 옮김, 월북, 2017)

해변 축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초가을 바람은 조금 호젓하고 조금 쓸쓸하다.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열기와 습기가 얼마 못 가 서늘하고 파삭한 바람이 되는, 이런 계절의 변화는 모든 이론을 떠나 매번 기묘하다. 살갗에 닿는 낯선 바람결의 기묘한 힘에 이끌려 자꾸 들썩이는 발걸음을 가볍게 잡아 앉힐 뭔가가 필요하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 같은 책은 어떨까?'기묘한 사람들'은 어른인 우리의 눈과 귀를 다시 아이 때처럼 바짝 당겨 앉히는 이야기책이다. 편집자인 밀라드 눌링스가 세계 곳곳의 옛날이야기들을 모았고, 작가 랜섬 릭스가 특유의 입담과 필력으로 썼다. 대학에서 문학과 영상을 공부한 작가가 30대의 나이로 2011년 부터 발표한 '미스 페레그린' 시리즈는 40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영화화도 되었다. 이로써 그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이다.제목만으로 벌써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기는 이 책 속에는 10편의, 그야말로 기묘한 사람들 이야기가 실려 있다. 팔과 다리를 잘라내도 다시 돋는다거나, 몸이 젤라틴 덩어리로 변할망정 갈퀴 혀의 상대를 못 받아들인다는 상상은 단순한 오락적 재미를 넘어선 어떤 뜨끔함을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말도 안 된다고, 터무니없다고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 보통 사람들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마는 것이다."자기 집이 스웜프머크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알려지기 원했지만 이미 팔다리는 엄청난 대출 이자를 매달 갚는 데 쓰고 있었으며 귀는 벌써 팔고 없었다.(36쪽)" '아름다운 식인종'에 나오는 문장이다. 우아하고 예의 바르지만 인육밖에 소화할 수 없는 식인종과, 팔다리가 아픔 없이 잘릴 수도 있고 다시 자라기도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 팔다리 맛에 질린 식인종에게 농부들이 다시 돋지 않는 제 귀, 코, 혀까지 파는 이야기.다시 이것은 물질 만능 사회 속의 사람들, 바로 우리 이야기이다. 돈을 미끼로 점점 더 색다른 맛을 추구하는 식인종은 자본주의 사회의 얼굴 그대로다. 더 큰 집과 화려한 외관을 욕망하다가 마침내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몸으로 뒤뜰에 묶여 하루 두 번 물과 음식을 받아먹는 농부들. 그들이 식인종의 식재료인 팔과 다리를 길러내는 것처럼, 나도 내 것이 아닌 몸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묻게 된다.'메뚜기'라는 글은 자기 종족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자신이 가장 크게 결속력을 느끼는 생물 형태로 변하는 사람 이야기이다. 메뚜기로 변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한테 먹을 것을 주고 잠자리를 준 사람이 누구야? (생략)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179쪽)"라고 말한다.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끝이 없는 상상력으로 현실을 잘 에둘러 풍자한 책이다.이 사회의 구령에 발맞춰 따라가느라 경직된 몸과 마음을 가끔 상상의 늪에 푹 적셔도 좋으리라. 아이처럼 말랑해져 제 안에서 즐거울 것이다.김남이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0-05 06:30:00

양만재 포항지진공동연구단 부단장

[기고] 포항지열발전소 전문가들의 법적책임

2009년 4월 6일 이탈리아 라퀼라 지역에서 규모 6.4 지진이 발생했다. 300여 명이 사망하고 1천500여 명이 부상했으며 7만5천 가구가 처참하게 사라진 지진이다. 일본의 고베 자연지진보다 피해 규모가 훨씬 작지만 유럽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이라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재난은 아니다. 올해로 라퀼라 지진이 발생한 지 10년이 되었다. 지진재난 전공학자들은 '라퀼라 지진 10년'이란 주제로 연구결과물을 발표했다.8년 세월이 지나면 포항에서도 '포항지진 10년'이라는 이름이 등장할 것이다. 라퀼라 지진 10년처럼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행사를 개최할 것이다. 외국학자들이 언급한 담론을 검토하면, 포항지진 10년 이후 전개될 학술적 담론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라퀼라와 포항의 지진 성격과 피해 규모가 다르다. 그래도 재난에 대응하고 도시를 재건하는 계획과 방법이 다소 공통분모가 있을 것 같다. 공통분모를 찾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실천적 지혜'를 구하는 것이 라퀼라 교훈을 살리는 포항지진의 교훈일 게다.서구학자들은 라퀼라 지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졌다. 지진재난 복구를 위해 정치 집단은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가. 이탈리아 정부가 지진재난 복구를 위해 개입했는데 10년이 지난 결실은 무엇인가? '정치적인 역할론'의 결과가 어떤가. 또 정부의 개입 방식이 10년이 지나 얼마나 변화했는가도 물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정치 집단들의 개입은 라퀼라의 '제2의 지진'으로 이름이 붙을 만큼 국민을 실망시켰다. 정부는 개입했지만 주민의 요구나 참여는 철저히 배제했다. 오로지 도시재활 정책을 하향식에 바탕을 두고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학자들은 이를 국가의 '군사적인 통제방식' 혹은 '구조적인 폭력'의 개념으로 해석했다.라퀼라 지진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지진재난에 대응 및 사전예방 방식과 비교하는 프레임을 적용했다. 그 결과 다른 국가들보다 피해주택재건사업에 기업의 참여가 컸다는 점을 찾아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의 서로 특이한 소통방식이 있었다. 그 방식은 '진행의 방해' '지연' '부패' 등의 특성을 가졌다. 이탈리아 마피아가 연상되기에 충분할 정도의 특이한 소통방식이었다. 포항도시재건사업이 이탈리아와 같지는 않겠지만 수천억원이 투자되는 사업인 만큼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지진과학자들과 과학자 공동체는 라퀼라 지진에서 학습해야 할 특별한 교훈이 있다고 했다.전 세계 과학자들이 주목했던 바로 라퀼라 재판(LAquila Trial)이다. 지진 위기 대응에 참여했던 6명의 과학자들은 1심에서 6년형을 선고받았다. 지진 예측을 잘 못하고 주민과의 소통 부재가 원인이었다. 2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지진과학계는 재판을 통해 지진 위기 예측과 진단, 소통 방법, 기술, 지진과학자들의 접근 방식 등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깨달았다고 했다.포항지열발전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지열발전소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지진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신재생에너지 메카로 지역이 발전한다는 장밋빛 비전만 제시했다. 수리 자극을 다섯 차례 실시할 동안 포항시와 주민 참여도 배제했다. 지진위해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주민 소통 역시 없었다. 그들은 라퀼라 재판의 교훈을 몰랐을까?포항지열발전소의 전문가들이 법정에서 어떤 판결을 받을지 사뭇 궁금하다. 그들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 결과가 학술적인 주제로 떠오르지 않을까 한다.

2019-10-04 02:30:00

박태원 '최후의 억만장자' 삽화 (조선일보, 1937. 6. 27)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파리 떼 출현과 조선인 구보 씨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 일이다. 일제강점기 소설가 '박태원'의 이름이 잠시 인터넷 실검 순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봉 감독의 외할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이광수, 김동인의 이름도 아스라하게 느끼는 요즘 대중들에게 박태원은 어찌 보면 이름조차 낯선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박태원은 손자 봉준호에 버금가는 인기와 역량을 지닌 소설가였다. '조선의 모던보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는 상상력이 가득하고, 재치발랄한 작가였다.'최후의 억만장자'(1937)는 그런 재치 발랄함과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이다. '최후의 억만장자'는 당대 프랑스 인기영화에서 모티프를 따온 콩트로 그 내용이 기상천외하다.트레몰로라는 나라에서 국가의 안정정책에 따라, 이미 30년 전 박멸된 파리 떼가 갑자기 출현한다. 정부는 파리 떼를 없애기 위해 국가총동원령을 내리고 '파리박멸회'를 조직한다. 그리고 파리를 잡기 위해 천 오 백 개의 파리채와 삼천 개의 파리약을 독일에 주문하는 한편 파리 떼를 풀어 국가적 교란을 일으킨 주범 찾기에도 전력투구한다.마침 트레몰로를 방문 중이던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이 이 사건에 개입한다. 결국 조선에서 온 '구보'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진범을 밝혀내고, 사건을 해결해 트레몰로에 안정을 가져다주며 콩트는 끝이 난다.콩트가 발표된 1937년 6월 말, 참으로 지루하고도 긴 조선의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발표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은 7월 초, 중국 루거우차오에서 일제와 중국군과의 무력 충돌이 일어나고, 이에 일제가 기다렸다는 듯 중국과 전쟁을 시작한다. 조선 합병 때부터 계획해둔 전쟁이었다.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방해되는 모든 잡음을 제거하고자, 통제와 내부단속은 필수적이었다. 10여 개월 전, 동아일보의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일제의 신경은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약간의 소음도 용서되지 않는 진공과 같은 상태가 조선을 짓누르고 있었다.이 긴장감 속에서 박태원은 파리박멸 이야기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콩트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리 내어 웃으면서 잠시 일제 지배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웃음의 끝에서 몇몇 예민한 사람들은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이 이상한 나라의 상황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것을. 파리 떼까지 국가 통제 아래 두었던 트레몰로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일제치하의 현실 그대로였던 것이다.박태원이 길고 힘든 여름을 앞둔 조선인들에게 준 것은 웃음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샬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을 제치고 난제를 해결한 조선인 구보씨. 서양인을 제패한 구보씨의 위대한 능력을 보면서 조선인들은 무기력함 속에서도 작지만 큰 희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10-03 15:04:00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내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

요즘 유튜브(YouTube)라는 동영상 플랫폼의 인기가 매우 뜨겁다.학생들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던 것을 유튜브에서 검색하여 원하는 정보를 얻기도 하며,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로는 유튜버 크리에이터라고 한다. 영상 업로드도 간단하고 인기 유튜버(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면 수익 창출까지 가능하다. 게다가 유튜브는 글로벌 시장이여서 한국을 넘어 세계로 진출할 수도 있다. 고가의 장비와 훌륭한 편집 퀄리티의 영상이 아니더라도 콘텐츠에 가치가 있거나 재미가 있다면 대중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콘텐츠로 인정한다.누구나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손쉽게 영상을 만들고 업로드 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환경이 마련되자 수 많은 사람들이 유튜버가 되어 본인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들의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보며 필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본인만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구나. 나의 이야기를 나만의 스타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라는 욕구가 1인 미디어의 세계로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닐까.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이 예술의 본질이 아닐까.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어떤 면에서는 예술가인 것이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을 뿐. 그렇다고 유튜버가 되어 1인 미디어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본직을 버리고 예술가의 삶을 살라는 것도 아니다. '삶은 곧 예술이고, 예술은 곧 삶이다' 라는 말이 있듯 내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나답게 살아가고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큰 의미에서 예술가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역시 나 다운 삶에 질문을 던지며 나답게 살아가고자 노력 중이다. 그리고 나 다운 삶에 가까워질수록 행복감을 느끼고, 그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나를 표현했을 때이다. 그렇다면 나 다운 삶은 뭘까? 나 다운 삶이 무엇이라 콕 찍어 말할 순 없으며 어쩌면 정확하게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타인을 모방하거나 가면을 쓴 것 같은 거짓된 삶은 아닐 것이다. 타인은 할 수 없는 나의 퍼스널(Personal)한 감성, 사상, 철학 등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불편함이 없고 비로소 자유와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앞으로 3개월간 글쓰기라는 방식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되었다. 필자의 직업은 작곡가이다. 그래서 내 이야기와 감성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며 가장 재밌고 편하다. 하지만 음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려니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글쓰기는 음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나의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이며 더욱 더 다양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은가. 음악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으리라 기대와 생각이 들어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0-03 11:09:31

김형준 명지대 교수

[춘추칼럼] 대통령의 존재 이유와 검찰 개혁의 본질

국민 통합 이루어내야 할 대통령 진영 논리 대립으로 나라 두 동강검찰 개혁 핵심은 정치적 중립화윤 총장이 개혁 몸소 실천하는 셈조국 사태가 몰고 온 파장은 자못 크다.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대통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이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부를 통치한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여 국민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다. 이것을 토대로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전략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 모두에게 책임을 진다.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이 꿈꾸는 대통령의 표상에 대해 다양한 약속을 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심지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진영 논리에 따른 이념적 대립으로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검찰청 앞에서는 진보 진영이 주최한 '조국 수호' 대규모 군중집회, 광화문광장에서는 보수 진영이 총동원되는 '조국 사퇴 촉구' 집회가 등장했다.문 대통령은 줄곧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쳤지만 이제는 "조국이 먼저다"로 방향을 튼 것 같다. 이렇다 보니 문 대통령을 향해 '하조대 대통령'(하루 종일 조국 장관만 챙기는 대통령)이라는 별명마저 생길까 봐 걱정된다. 항간에는 문 대통령이 조국에게 무슨 약점이 잡혔거나, 아니면 조국 수사를 막아야 할 무슨 절박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온다.국민들이 현 시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취임사에서 밝힌 약속을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식과 도덕, 윤리와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통령"이 되길 요구한다.한편 검찰 개혁의 본질은 무엇인가? 청와대와 여권은 검찰 개혁과 관련해 심각한 모순과 착각에 빠져 있다. 이들은 '조국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고 의심하는 것 같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검찰 개혁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밝혀왔다. 더불어민주당조차 윤 총장을 "검찰 개혁의 최고 적임자"로 치켜세웠지 않았는가. 더구나,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하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에 자체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권은 검찰이 조 장관과 관련된 의혹을 수사하니까 느닷없이 '개혁 저항' '정치 검찰' '과잉 수사' '고의적 피의 사실 유출' 등 온갖 비난을 퍼붓고 있다.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국 임명 반대'와 '조국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수천 명의 전·현직 대학교수가 '조국 파면' 시국 선언을 하고, 서울대 등 수많은 대학생들이 '조국 아웃'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여는 현실은 왜 외면하는가? 최근 KBS 여론 조사(10월 26~27일) 결과 조 장관 가족 수사와 관련해 '지나치지 않다'(49%)가 '지나치다'(41%)보다 훨씬 많았다.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피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에 대해 '허용돼야 한다'(64%)가 '금지돼야 한다'(24%)보다 2배 이상 많았다.분명, 집권 세력의 생각과는 달리 민심은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다. 그런 의미에서 정권에 아부하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살아 있는 권력인 조 장관을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는 윤 총장이 검찰 개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수사권 조정, 검찰의 수사 관행 등과 관련된 검찰 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개혁은 조 장관 수사가 끝난 뒤에 진행돼야 진정성이 담보된다.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법무부 장관이 검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주장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단언컨대,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은 별개다. 개인 조국의 실패는 진보의 실패가 아니다. 이제 진보는 폐쇄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짓과 위선, 각종 의혹으로 진보를 깊은 수렁 속으로 빠뜨린 조국을 맹목적으로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비판하고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의 미래가 보인다.

2019-10-03 09:46:20

전영평 가야명상연구원장·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전영평의 귀촌한담] 행복 만들기

눈부신 가을이다. 행복하다. 비계산 들녘에는 벼 이삭이 추수를 기다린다. 한 해 농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행복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몸이 불편해지고 정신적 위기감을 더욱 느끼게 된다.귀촌을 해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늘어난 일거리와 소외감이 최대의 적이다. 집 안팎 잡일, 농사, 주민 접촉은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후회와 불행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긍정적 역발상의 결단이 필요하다. 집 안팎 잡일은 나태해진 나를 독려하는 가정 선생이고, 텃밭 농사는 건강 음식을 보장하는 건강보험이고, 주민 접촉은 소외감을 줄여주는 묘약이라고 믿어야 한다.귀촌 대선배인 스콧 니어링 교수는 친환경 철학을 토대로 행복한 여생을 실천하신 분이다. 그는 매일의 삶을 육체노동 4시간, 공부 활동 4시간, 친교 활동 4시간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100살까지 부단히 움직이고 건강하게 살다 가셨으니 그의 충고를 믿어도 좋을 것 같다. 귀거래사를 지은 도연명 선생도 평생을 농사, 글짓기, 풍류로 보냈으니 귀촌의 행복 공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보다.하지만 스스로의 각성이 확실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농사일은 시작만 해도 반나절이 금세 지나가니 큰 어려움이 없다. 지친 몸으로 밥해 먹고 누우면 책 읽기나 글쓰기가 결코 쉽지 않다. 교수 생활을 했으니 책도 잘 읽고 글도 편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티비나 유튜브 강의를 듣다 보면 꿈길로 직행이다. 하지만 꼭 책 읽고 글을 써야만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관찰하고, 깨닫고, 되새김질하고, 공상하고, 계획 세우는 것도 참 좋은 공부라고 믿는다. 주민들과는 인사, 덕담, 나눔, 봉사를 통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도시에 계신 퇴직자의 삶과 행복의 조건도 시골과 비슷할 것이다. 일, 공부, 사교 활동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고 긍정적 역발상으로 남은 인생을 잘 즐겨보자.

2019-10-02 18:00:00

권미강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역사를 말할 권리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최근 우리나라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아렌트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아이히만을 통해 악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일깨워준다.독일과 일본은 똑같이 세계인들에게 전쟁의 상처를 입힌 전범국가다. 하지만 사과와 반성의 모습은 정반대다. 독일은 전범들을 끝까지 찾아내 그 죄를 물리고 사죄를 위한 보상도 꾸준히 한다. 하지만 일본은 전범기인 욱일기를 여전히 사용하고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국가적으로도 비양심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역사 인식을 말할 때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우리 역사에서 근현대사는 민족이 민족을 유린한 끔찍한 시대다.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 해방 후 미군정을 등에 업은 친일 경찰들에게 학살되기도 했다. 시월의 대구에서도 그랬다. 쌀값 폭등으로 굶주린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항의하자 친일 경찰들은 사람들에게 총을 겨눴다. 앞장선 사람들은 이승만 정부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몰살당했다. 대구의 가창골에서만 1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학살됐다. '골로 간다'는 말도 거기에서 연유한다.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됐다. 10월 항쟁은 '빨갱이'라는 누명으로 오랫동안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유족회의 노력으로 몇 해 전부터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16년에는 '10월 항쟁 위령사업 지원 조례'가 대구시에서 통과됐다. 대구지역 작가들은 10월 문학회를 만들어 문학 안에서 10월 항쟁의 진실을 규명해내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구의 10월은 왔다. 대구의 10월은 제주의 4월이고 광주의 5월이다. 이제 대구시민들은 이런 역사를 말할 권리를 찾아야 한다.

2019-10-02 18:00:00

김은아(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북돋움] 아이들이 어른에 추천하는 책…'흔한 남매' '바꿔!'

요즘 아이들 책 안 읽는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다. 그런데 살펴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기 또래들 사이에서 통하는 책을 열심히 본다. 부모가 원하는 책을 보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된 책임이 어른들한테 있다고 지적하는 작가가 있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다니엘 페낙이다. '말로센 시리즈'와 '까모 시리즈'로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다.페낙은 그의 독서에세이 "소설처럼"(문학과지성사)을 통해 아이들이 책 읽기 싫어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풀었는데 목차부터 신선하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아이들의 독서 행동들을 목차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페낙은 어떤 책을 어떻게 읽든, 침해당할 수 없는 스스로의 권리가 아이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등이다.30여 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독서 지도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아이들은 어느 날, 어른들이 다정하게 읽어주던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추상적인 글자의 세계로 던져진다고. 게다가 권장도서 목록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아이들이 책을 떠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아이들을 책의 세계에서 쫓아낸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권장도서 목록에서 뜨끔해졌다. 독서교육을 주제로 강의하러 가면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오래 전부터 만들어 놓고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어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어른들이 기를 쓰고 읽히고 싶어 하는 책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권장도서 목록이 과연 아이들 마음에 들까? 반대로 아이들도 어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을 텐데…. 그래서 초등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을 만나면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책을 읽어라" "이런 책이 좋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교육 방식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거꾸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신선하게 느껴지는지 목청껏 외친다.자신 있고 당당하게 제목을 말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 아이들은 상대방의 나이와 독서 취향 같은 건 고려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재미있게 읽은 책이 옳다고 믿는 것 같다. 책의 장르와 격을 따지면서 당신이라면 벌써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는 이유로 머뭇거리는 어른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그래서 아이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다.최근에 가장 많이 추천받은 책은 "흔한 남매"(아이세움)이다. 학교와 도서관에서 만난 아이들, 심지어 아홉 살 난 조카도 "흔한 남매"를 얘기했다. 그렇게 "흔한 남매"에 입문한 이후 짬짬이 만화책을 펼쳐 보며 '큭큭' 거리며 웃었다. 심지어 원작인 유튜브 영상까지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어린이의 웃음코드에 맞췄다는데 오누이의 티격태격하는 일상이 어른들에게도 추억을 소환한다.책에는 과장된 대목이 더러 있지만 '공감'이라는 코드가 존재한다. 남매가 있는 집뿐만 아니라 형제가 있는 집이라면 서로 아웅다웅하는 게 일상이니까. 원수같이 싸우다가도 장난감이나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아빠 엄마에게 요구 사항이 있을 때는 의기투합한다. 그것이 바로 형제애다.은근히 빠져든다. 아이들이 목소리 높여 추천하는 이유를 알겠다. '흔한 형제', '흔한 자매'라는 제목으로 패러디 만화를 만들어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유독 큰 목소리로 동화책 "바꿔!"(비룡소)를 외친 아이도 기억에 남는다. 가족과 친구, 다양한 관계 속의 자신과 타인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하지만 처지를 바꿔 생각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바꿔!'라는 앱은 상대와 1분간 통화하는 것만으로도 역지사지를 실천할 수 있게 해준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런데 열한 살 아이가 이 책을 내게 권한 이유가 뭘까?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보다.가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 보면 좋겠다. "할아버지가 어떤 책을 읽으면 좋겠어?" "엄마한테 책 한 권 추천해 줄래?" 하고.

2019-10-02 18:00:00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 어느 산사의 설법

계절의 변화가 실감이 난다. 바람 끝은 쌀쌀하고 나뭇잎은 붉게 물들어간다. 여름의 긴 시간이 끝나고 곡식이 여무는 가을로 들어선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황금 들녘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어 펼쳐 놓은 가을 들판은 희망이고 결실이다. 인생도 가을이 오면 후회 없이 넉넉해야 한다.어느 기업을 경영하는 분이 오랜 사업으로 몸이 지쳤다. 몸을 추스르며 안식의 날을 보내기 위해 휴업을 하고 산에 취미를 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산사에서 열린 법회(法會)를 구경하다가 이런 설법을 들었다."극락과 지옥의 환경은 다를 바 없었는데 극락 사람들의 얼굴은 윤기가 나고 복스럽고 행복하다. 반면 지옥 사람들은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것처럼 피골이 상접하더라. 극락이나 지옥이나 똑같이 팔 길이보다 훨씬 긴 밥숟가락을 하나씩 주는데 왜 그러느냐. 극락 사람들은 먹을 것을 큰 테이블 중앙에 놓고 그 긴 숟가락을 가지고 서로 떠먹여 주다 보니 제때 밥을 먹어 윤기가 날 수밖에 없고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숟가락으로 자기 입에만 퍼넣으려고 하니 흘리고 버려서 결국 쫄쫄 굶더라."이 우화 같은 얘기에서 "아! 내가 남에게 활용될 때 내 가치가 있구나.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남을 도와야 그 대가로 얻어지는구나"라며 깊은 감동을 했다."범죄를 짓거나 경우에 어긋나는 짓은 안 했지만 남을 위해 살면 손해 보는 것이라고 이제껏 생각하며 살았는데 절에서 설법을 듣고는 '이게 진리야. 남에게 도움을 안 주고는 나도 돈을 벌 수 없다. 잘사는 것은 결국 남을 돕는 경쟁이다'라고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남을 잘 도울 수 있을까? 그렇게 돕는 능력을 향상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남에게 쓰인 만큼 얻어진다"라고 이재호(76) 리골드 회장은 자서전에서 말한다.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주고 최대의 것을 얻어야 최대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나 주는 마음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는 진정으로 얻을 수가 없고, 얻을 수가 없어 실망과 긴장으로 끝나게 된다. 왜 주는 마음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는 얻을 수가 없을까?하루는 산책을 하다가 꿀을 따는 동박새와 벌을 관찰한 적이 있다. 꽃은 벌에 의해서 수술의 꽃가루를 옮겨 받는다. 그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 열매를 맺어 번식한다. 꽃은 벌에게 꿀을 주고 벌은 꽃의 씨 맺음을 돕는다. 꽃이 꿀을 주지 않으려 하면 꿀벌이 오지 않아 수정이 안 된다. 꿀벌이 수정을 도울 수가 없다면 꽃은 다시 피어나지 못해 꿀을 줄 수 없다. 자연은 꿀벌과 꽃의 현상을 통해서 주는 마음을 가르친다.우리는 주는 마음이 열려 있어야 무언가를 받을 수 있고 얻을 수 있다. 자연계는 모두 한 생명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남에게 주는 것이지만 주는 행위로 끝나지 않고 내가 나에게 주어 스스로 번성해지는 것이다. 흔쾌한 나눔은 연기법을 알 때 가슴으로 열린다.조용헌은 "작은 부자들은 돈을 아껴서 부자가 되지만 큰 부자는 돈을 써서 부자가 된다. 인색하면 적은 돈은 몰라도 큰돈은 못 번다"라고 말한다.애벌레가 오랫동안 낮고 긴 고통을 땅속에서 거쳐야 나비나 매미와 잠자리로 우화하며 하늘을 날 수 있는 새 세상을 만난다. 사람도 거듭 태어나는 우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베풀수록 위험은 줄어들고 복은 늘어난다. 부유한 마음을 연습하면 부자가 되고, 얻어먹고 구걸하는 마음을 연습하면 가난하거나 거지가 된다.지옥과 극락의 환경 조건은 똑같다. 지옥으로 살 것인지, 극락으로 살 것인지는 마음에 달렸다.

2019-10-02 14:10:53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묵호(墨湖)

명예퇴직을 신청했던 고등학교 동기가 강원도 '묵호항'이라며 전화를 해왔다. 시를 쓰는 친구인데 퇴직을 하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이 묵호였다고 한다. 송수권의 시 '묵호항', 심상대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 등 문학에서 '묵호' 란 지명은 신비롭게 등장한다. 과연 한문 글자의 뜻처럼 '검은 호수' 같은 바다일까?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 게다. 한마을에 살던 영구 아버지가 야반도주를 했다. 신작로 옆 색시집 골방에서 노름을 하다가 논문서, 밭문서 다 잡혀 전 재산을 날리고는 그길로 읍내 쪽으로 걸어갔다는 것이다. 졸지에 풍비박산이 난 영구네는 초상집으로 변했다. 하얀 쪽머리에 은비녀를 꽂은 영구 할머니는 눈물만 뚝뚝 흘렸고, 어머니는 땅을 치며 통곡했다. 줄줄이 딸린 아이들도 같이 울었다.영구 아버지는 그길로 읍내로 가서 중앙선 열차를 탔다고 한다. 그리고는 영주역에서 영동선으로 갈아타고 묵호역에 내렸다. 묵호항에 자리를 잡고 나서야 고향집에 편지를 보냈다.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 학교는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던 내 친구 영구는 주소를 들고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 겨우 열 살짜리가 "영주역에서 내려 '기리까이(바꿔 탐. きりかえ)' 해서, 어쩌고…. " 어른이나 쓸 법한 말들을 하면서 우리와는 다른 세상으로 걸어갔다.영구 엄마도 묵호로 떠나고, 영구는 학업을 포기하고 친척이 있던 대구로 갔다. 여자 형제들은 식모로, 남자 형제들은 공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집을 내어주고 마을 오두막집에서 지내던 70이 넘은 노모와 어린 딸도 몇 달 후 묵호로 떠났다. 떠나던 날, 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와 눈물을 훔치며 배웅을 했다. 꼬깃꼬깃 종이돈을 쥐어 주는가하면, 먹을 것을 싼 보따리를 건네주었다. 그 모습은 어린 내 눈에도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백발노인의 퉁퉁 부은 눈가에 번들거리던 눈물은 아직도 아른거린다.영구 아버지가 묵호항에서 부두 노동자로 일을 했는지, 고기잡이 배를 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육체노동을 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귀하게 자란 외동아들로, 하던 일이 고되어서일까 아니면 파멸의 구렁텅이로 전락한 것에 대한 회한 때문일까 술을 엄청 마셔댔다고 한다. 결국에는 알코올 중독자로 폐인이 되고 말았다. 고향을 떠난 지 십년도 못 되어 간경화로 목숨을 잃고 영구차에 실려 돌아와 선산에 묻혔다. 단 한 번의 일탈치고는 대가가 너무 가혹했던 셈이다.무지와 가난을 습관처럼 안고 살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참 대책없는 가장도 많았다. 가장이 무능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돌아간다. 혹자는 '가난은 죄가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적어도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은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가난은 불편뿐만 아니라 구차하고, 때로는 인간의 존엄성까지 위태롭게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제위기를 보면서 50년 전 영구네 가족 잔혹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2019-10-02 11:29:25

배지훈 대구 달서구의회 의원

[기고] 단체장의 정치적 중립의무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각 당의 선거 준비를 위한 행보가 빨라지고 서로의 정치적 행위와 발언들에 대한 민감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각 자치단체는 중앙정치의 거친 격랑 속에 휘말리지 말고 오로지 자치단체 본연의 업무에만 전념해야 한다.우리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은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 행사나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이 때문에 공무원은 SNS에 특정 후보가 올린 게시글에 응원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만 눌러도 선거법 위반 행위에 해당해 기소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무원은 직업 공무원은 물론이고, 정치적 공무원인 대통령, 자치단체장도 포함한다.반대로 선거에 영향을 받는 정당 소속 국회의원·지방의원은 예외가 된다. 이들은 정당의 대리인이자 선거운동 주체로서의 지위로 인해 근본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될 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다. 즉 선거에 영향을 받는 정당 소속 의원들과 달리 행정기관 단체장은 공정선거를 보장하고 관리해야 할 위치에 있다.단체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곧 정치활동의 금지나 완전한 정치적 무관심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당 활동이 금지된 다른 공무원과는 달리 단체장은 정당의 당원이나 간부로서,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고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당대회에 참석해 정치적 의견 표명도 할 수 있다.그럼에도 단체장이 정치인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려 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헌법 제7조 1항의 요청에 어긋나거나 자신의 언행이 향후 정치적으로 파장을 불러올 것이 예상된다면 단체장은 그에 상응해 절제와 자제를 해야 할 것이다. 주민 시각에서 볼 때, 직무 외에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장이 더 이상 자신의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수 없으리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특히 정부나 자치단체의 장은 자신의 직무 기능이나 영향력을 이용해 선거에서 주민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정당 간의 경쟁 관계를 왜곡할 가능성이 다른 공무원에 비해 훨씬 크다. 이런 이유로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의 장에게는 더욱 엄한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것이다.오늘날 지방의 큰 화두는 지방분권이다. 지방분권은 재정적 독립뿐만 아니라 정치적 독립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중앙정치의 격랑 속에 자치단체가 흔들린다면 결코 완전한 지방분권은 실현될 수 없다.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구조 속에서 선거가 다가올수록 각 지역의 단체장들에 대한 정치적 압력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기일수록 단체장들은 전체 주민의 시각에서 중립적으로 처신할 필요가 있다.최근 논란이 되었던 권영진 대구시장의 '조국 사퇴' 1인 시위처럼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단체장이 직접 나서는 것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논란은 물론이고 그 지역에 산적한 현안 해결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대구시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기초단체장들은 여야를 모두 아울러 중립적 처신을 해야만 지역 발전은 물론이고, 지방자치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이 중앙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지방분권의 실현에 이르는 길이다.

2019-10-02 11:22:17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사랑의 단상

종종 사랑에 관해 질문하거나 받을 때 있지요.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간편하고 납작하게 사용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눈이 멀고 숨이 멎으면 사랑의 잔혹은 사랑의 매혹으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사랑의 복잡성과 만만치 않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일에는 등을 돌려버리는데요. 어디 사랑에 관한 직무만 그러할까요. 사랑 안에 서식하는 '유치'와 '찬란'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잘 번식하기 위해 불완전하기로 결심한 개체 같아요.어느 날 사랑이 찾아와 내 곁에 앉아 말하지요. '네가 왜 웃는지 혹은 우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왔다'고.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사랑의 불완전, 사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그녀)의 사랑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싶은, 그러니까 사랑은 사랑이라는 언어의 욕망, 단 한 번도 실현된 적 없고 실현한 적 없으므로 사랑은 순순히 욕망의 자리에 놓이게 되지요.언어를 '살갗'이라고 하며 바르트는 그 사람을 내 언어로 문지른다고 합니다. 열없는 이마에 따뜻한 손을 얹으면 이마는 문득 펄펄 끓어야 하고, 세상의 입들은 모두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하여 '많이 아파?'라는 말은 그 대답을 위해 스스로 만든 '꾀병'에 걸려야 합니다. 말만으로도 온몸이 아파옵니다. 그러나 괜찮아요. 이 아픔은 '사랑이 내미는 호의'라서, 온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아픈 몸은 새의 날개처럼 즐겁기만 합니다.사랑을 내 말 속에 둘둘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혹은 이 만짐을 이야기하며 관계를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고 하죠. 그래서 사랑의 기쁨은 '영원'이나 '통속'을 소환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영원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려고 하지요. 따라서 서로에게 충족된 연인들은 글을 쓸 필요도 없고, 전달하거나 재생할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몸이 앞서 기울어져 있으니까요.그러니까 사랑은 생각의 가지를, 생각의 날개를, 생각의 뿌리를 갖게 합니다. 나를 보다 수다스러운 나로 바꾸어 놓지요. 그러나 사랑의 언어는 허약하고. 절절하여 사랑의 언어 속에서 당신을 읽으며 나를 잃어요. 사랑의 언어를 유감없이 발설함으로써 그 사람의 영혼을 만지고, 만진 손으로 자신의 영혼을 만지려는 이중의 접촉을 시도한다죠. 따라서 사랑의 언어는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며 거대한 심연의 바닥을 종횡무진 합니다.대체로 사랑의 푼크툼에 빠진 이들은 시시콜콜해져요. "사랑해", "뭐 하고 있어?", "밥 먹었어?" 시시콜콜한 유희를 반복하지요. 그들만의 방언을 만들어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 세계의 극점에는 모든 것이 '감각화'된 채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 거울이 등장해요, 말랑말랑한 감각은 망각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중의 거울이 되지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만 더 사랑의 배반을, 고통을, 고독을 긍정해 보는 것은 어떤가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0-01 11:24:04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의창] 의료기관 '1인 1개소 법'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29일 국내 의료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소위 '1인 1개소 법'이라고 일컫는 의료법 제33조 제8항이 합헌 판정을 받은 것. 즉,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 라는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사법부 최고기관에서 확인했다.사실 일반인들에게는 '1인 1개소 법' 자체가 생소하고, 더군다나 이 법이 왜 헌재 판결을 받아야 할만큼 중요한 이슈가 되었는지 잘 모를 것으로 생각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 법 조항이 의료기관의 지나친 영리추구를 방지해서 의료 공공성 및 의료윤리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여겼기 때문에 지난 4년 동안 대한치과의사협회를 비롯한 모든 의료인 단체가 합헌 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1인 1개소 법'의 탄생 배경에는 한 사람의 의료인이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운영함으로써 발생한 지나친 영리추구와 그로 인한 비윤리적 문제들이 있었다. 헌재도 합헌 판결의 이유로 "의료인 1인이 주도적인 지위에서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지배·관리하는 형태의 중복운영은 의료행위에 외부적인 요인을 개입하게 하고 의료기관의 운영주체와 실제 의료행위를 하는 의료인을 분리시켜 다른 의료인을 종속케 하는 등 지나친 영리추구로 나아갈 우려가 크다"며 1인 1개소법의 입법 취지와 타당성을 설명했다.'1인 1개소 법'은 새로운 법이 아니고, 이전에 있었던 규정인 '의료인은 하나의 의료기관만 개설할 수 있다'는 조항을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도록 한다'로 개정해서 그 의미를 보다 명확히 표현했고, 여기에 덧붙여서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해, 일부 네트워크 병의원에서 흔히 사용하던 '차명개원' 방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고, 그것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절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는 사회의 양극화, 비인간화와 같은 부작용과 폐단을 초래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개인의 경제활동이 일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특히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업은 고도의 윤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의료윤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의료제도를 통하여 의사에게 양심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물론 의료윤리 실천은 일차적으로 의사의 책임이기 때문에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의사는 '언제나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의료윤리의 실천을 전적으로 의사 양식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으며, 의사에 대한 진료자율권 보장, 진료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요소의 배제,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등과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있을 때 진정한 의료윤리가 실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이번 헌재의 판결은 의사들이 독점자본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양심의 자유를 지킬 수 있게 해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의료계에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아무쪼록 '1인 1개소 법'의 합헌 판정이 모든 의료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의료윤리와 인간성과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갈지를 한 번 더 고민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이런 고민은 모든 의료인에게 지워진 숙명이자 의무가 아니겠는가?최재갑 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교수

2019-10-01 11:17:57

[세월의 흔적]<41>맞춤 양복

1945년 광복이 되자 중앙로 일대에 맞춤 양복점이 하나둘 들어섰다. 맞춤 양복이란 미리 고객의 주문을 받아서 옷을 지어주는 것을 말한다. 천이며 모양새 같은 취향은 물론, 신체의 치수에 이르기까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는 재단을 해서 옷을 대충 만들어 미리 입어 보게 하였다. 그 같은 과정을 가봉(假縫)이라 하는데, 재단사가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고치고 다듬어 옷을 완성하였다.1970년대에 이르자 맞춤 양복점이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솜씨 좋은 재단사와 양복지의 원활한 공급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당시 대구에는 제일모직과 삼호방직이 있었다. 그 가운데 제일모직은 1965년 국내 최초로 국제양모 사무국으로부터 '울 마크'의 사용 허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다양하고 품질 좋은 고급 양복지가 공급되면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맞춤 양복은 가격이 비쌌다. 웬만한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 시절 양복 한 벌 값이 6급 공무원의 한 달 치 월급보다 많았다. 그래서 상당한 재력이 있는 집안의 자제들 또는 결혼 예복 정도를 맞춤으로 지어 입었다.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가 부모를 모시고 중앙로의 양복점을 드나들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중앙로에 있는 유명 양복점의 상품권이 선물로 인기가 높았다.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양복점은 영진양복점이다. 1945년에 창업하였으며, 지금도 자리를 옮겨서 영업하고 있다. 모모양복점․런던양복점․신성양복점은 그곳에서 일을 배운 사람들이 차린 양복점이다. 또한 향촌동에서 가장 오래된 양복점은 형제양복점이다. 1955년 창업하였으며,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그밖에 명통구리양복점․보스톤양복점․이글양복점․양치상양복점․신성양복점․만우라사․일신라사 같은 양복점이 유명세를 누렸다. 1980년대에 이르자 전성기를 구가하며 1천여 개 양복점이 있었다.만우라사를 창업한 이상동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당시 중앙로에는 양복점이 줄지어 있었다. 그 때는 다들 양복을 맞춰 입었으므로 양복점은 성업이었고, 일을 시키고 밥만 먹여주어도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기술까지 가르쳐주는 양복점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양복은 유행을 많이 탄다. 기성복의 등장과 패션문화의 변화로 많은 양복점이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맞춤 양복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맞춤 양복 한 벌 정도는 있어야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양복점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연전에 대구에서 '아시아 맞춤 양복점 총회'가 열렸는데, 대구․경북지역의 맞춤 양복점이 263개소로 서울․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09-30 18:00:00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

[과학둘레]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보기만 해도 상행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말 사고 싶지 않은 물건들 사이를 실눈을 뜨고 지나다 필자도 모르게 눈이 가는 곳이 있었다. 동물 표본을 진열해 놓은 곳이었다. 흉측한 박쥐 표본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자 필자가 탄 보트가 그곳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거기선 무얼 보든, 뭐에 놀라든, 뭔가 사야 할 거 같았다. 재빠르게 진열된 물건을 훑어본 필자는 태국의 수상시장에서 파란 나비를 샀다.파란 나비는 중남미 아메리카에 주로 사는 모르포나비를 닮았다. 파란색은 동물에게서 발견하기 힘든 색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멜라닌 색소를 갖고 있어 검정이나 갈색 계열의 색을 띤다. 빨갛고 노란 새들은 그들이 섭취하는 먹이에 함유된 색소로 화려한 색깔을 갖는 것이다. 파랑새는 어떨까. 파랑새의 깃털도 검은 멜라닌 색소로 되어 있다. 검은색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또 다른 데 있다.모르포나비는 날개를 살짝 기울여 보면 파란색 음영이 진하게 변한다. 다른 종의 나비 표본이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색이 바래지는 데 반해 그것은 변치 않는 사파이어처럼 영롱하다. 이는 나비의 파란색이 색소가 아닐 거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우리가 파랑새와 모르포나비를 파란색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깃털과 날개 비늘의 구조 때문이다.모르포나비 날개 비늘의 횡단면을 주사전자현미경을 통해 보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긴 미세 구조가 규칙적으로 촘촘히 들어차 있다. 1㎜를 1천 개로 나눈 것보다 작은 나노 간격이다. 백색광이 이렇게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면 트리의 가지 모양 구조에 빛이 부딪쳐 반사해 나올 때 회절이 일어난다. 회절은 빛이 좁은 틈을 통과할 때 퍼지는 현상이다. 회절하는 빛의 파장은 서로 간섭한다. 이때 길이가 비교적 긴 빨간색이나 노란색 파장의 빛은 서로 상쇄해 없어지고, 길이가 짧은 파란색 파장의 빛은 중첩해 날개를 강렬한 파란색으로 보이게 한다. 이렇게 정밀한 나노 단위 구조로 인해 빛이 분해되어 나타나는 색을 구조색이라 한다.모르포나비는 수컷만이 구조색을 띤다. 그것도 등 쪽 날개만 파란색이다. 수컷의 안쪽 날개나 암컷의 날개는 멜라닌 색소로 되어 있다. 그들이 날개를 접고 있으면 낙엽으로 오인할 정도다. 수컷의 날개가 구조색으로 진화한 이유는 생식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일 거라 추측한다. 화려한 색깔은 암컷의 눈에 잘 띄고 다른 수컷을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날개 안팎으로 다른 색깔을 갖는 것은 날아가며 날개를 접었다 펼 때마다 색깔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여 적을 교란하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자연에서 생물은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태를 갖추기 위해 진화를 거듭해왔다. 나비의 경우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 성충을 거치는 동안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 나뭇잎과 비슷하게 생긴 색으로 날개를 위장하거나, 애벌레의 경우 몸에 커다란 눈 모양 무늬를 만들어 나비의 천적인 새들이 그것을 자신의 천적인 뱀이나 부엉이로 오인하게 한다.또한 독성이 있는 풀에 알을 낳아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그것을 먹고 자라며 서서히 몸에 독이 쌓이게 한다. 독 물질은 나비나 나방의 날개에 강렬한 색소로 나타나 성충이 되었을 때 화려한 날개를 갖게 한다. 새나 도마뱀, 거미는 요란한 무늬와 색깔의 나비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비의 화려함은 위험을 나타내는 경고다.한 해가 기울어간다. 넉 달 남짓 살아가는 모르포나비의 숨 가쁜 일생도 끝나간다. 나비의 목표는 한 가지. 알을 낳는 것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기면 그들의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나비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지 않다. 물론 사람은 추구하는 목표가 다양하고 성공의 기준도 각기 다르며 전략 또한 다채롭지만 말이다.구조색은 빛의 마법이다. 빛의 마술을 부리는 나비의 전략은 때로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파랑은 그냥 파랑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최선이다. 먼 이국땅을 건너온 파란 나비가 등을 활짝 펴 보이고 있다. 당신의 최선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2019-09-30 18:00:00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지금 대구로 오10미까?

문장이 이상하다. 문장 안에 숫자가 들어가서 문법을 파괴했다. 어찌 보면 받침 없는 발음이 일본어 같기도 하다. 사실은 이번에 개발한 '대구 10미(味)'의 광고 카피이다. '지금 대구로 오십니까?'라는 문장에 '10미'라는 단어를 넣어서 표현했다.대구 10미 광고를 의뢰받고 좀처럼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대구 10미의 존재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어떤 음식이 대구 10미에 포함되는지 몰랐다. 대구 10미를 기발하게 알릴 수 있는 메시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이디어 노트에 대구10미라는 단어를 써보기도 하고 붙여보기도 하고 오려보기도 했다. 필자는 아이디어가 막힐 때 이 방법을 자주 쓴다. 문제 하나를 노트에 써두고 360도로 동그라미 원을 그리며 수십 가지 관점에 대입해보는 것이다. 사실 굉장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방법인데 정말 답이 없을 땐 그렇게 아이디어를 찾는다.답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대구10미는 결국 대구에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전통 음식이 아닌가. 그래서 쓰게 된 카피가 '지금 대구에 계십니까?'였다. 그다음에 '그렇다면 누른 국수를 드세요!'라는 서브 카피를 붙이는 식으로 10개의 음식을 대입했다. 말 그대로 대구에 계신다면 대구 10미를 드시라는 단순한 의도였다.그리고 존재감이 없는 대구 10미를 조금이라도 더 알려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계십니까?'를 '계10미까?'로 교묘하게 10미라는 단어를 집어넣는 방법이었다. 그랬더니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의도는 좋았지만, 디자인이 예쁘지 않았다. '계10미까?'라는 글에서 '계'와 '10'이 얽혀서 문장 읽는 것을 방해했다. 대구시청 팀과 이 문제로 회의하던 중 '계십니까?'를 '오십니까?'로 바꾸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랬더니 '오10미까?'라는 문장이 만들어지며 디자인도 예쁘게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 대구로 오10미까?'가 최종 카피로 결정되었다.하지만 카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버스에 대형 간판을 붙이는 기획을 했다. 소비자들이 식당을 찾을 때 사실 간판 디자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간판의 디자인이나 색감, 그리고 이름에 따라서 맛집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을 이용해 세련되지는 않지만, 옛날 맛집 같은 허름한 간판 디자인을 버스 광고판에 올렸다. 그랬더니 맛집 간판을 붙인 버스들이 마치 이동식 맛집처럼 돌아다니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렇게 대구 10미 광고는 카피와 이미지의 균형을 맞춰 태어났다.대구 10미 광고를 진행하며 대구시청 위생정책과와 우리는 한 팀이 된 것처럼 작업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막창을 제외한 음식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고 경상도 음식이 생각보다 풍미가 떨어진다는 인식이다. 광고판의 간판에 붉은색을 많이 쓴 것도 식감을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대구만큼 단위 면적과 비교하면 음식점의 수가 많은 도시가 드물다. 가까운 부산이나 대전만 가봐도 대구만큼 음식점이 많지 않다. 치맥 페스티벌이 대구를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된 것만큼 대구 10미에 관한 끊임없는 홍보가 필요할 듯 보인다. 이제 '경상도 음식은 맛없다'라는 얘기를 그만 듣고 싶다.(주)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2019-09-30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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