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이재경 대구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특별기고] 가업 승계, 부(富)가 아닌 기술과 노하우의 승계다

우리나라에 100년 넘는 장수 기업이 얼마나 될까? 지난해 기준으로 두산, 동화약품, 신한은행 등 9개 기업만이 100년을 넘었다. 대한민국 기업 평균수명이 15년에 불과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생각하다가도 일본에는 100년 이상 기업이 3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장수 기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창업 세대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서 가업 승계 절차가 기업 존속을 어렵게 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흔히 가업 승계는 '부의 대물림'으로 여겨져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다. 막대한 상속·증여세는 응당 부의 상속에 대해 당연히 내야 할 세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반 개인의 상속과 달리 가업 승계는 기술과 경영 노하우의 이전이며, 고용의 승계라는 측면에서 일반 상속과 완전히 구분해 다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기업은 생산과 고용을 통해 소득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세금과 사회공헌을 통해 국가와 지역경제에 많은 기여를 한다. 이러한 역할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개인 상속과 같이 부의 이전으로만 가업 승계를 바라보면 많은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우리나라도 여러 세제 지원제도를 제공하고 있는데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대표적이다. 업력에 따라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세 과세 대상에서 공제해 주는 것이 핵심인 이 제도는 이상하게도 활용하는 기업이 연간 70여 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강국 독일이 연간 1만7천여 건의 공제제도를 이용한 것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초라한 수준이다.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이용하려면 우선 피상속인이 지분 50% 이상을 10년 이상 보유해야 하고, 매출액이 3천억원을 넘으면 안 된다. 또 이 제도를 이용해서 가업을 상속했을 때는 상속 후 10년간 고용의 100%(중견기업은 120%)를 유지해야 하고 업종이나 가업용 자산 변경을 제한받게 된다.10년이라는 상당히 긴 기간 요구되는 현 제도의 사후 요건은 족쇄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최근 대구상의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잘 나타나듯 응답 기업의 90%가 사후 요건 중 고용 요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인력난에 대응해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현 상황에 10년간 고용 유지는 현실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일본의 대처 방안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2027년까지 파격적으로 가업 승계를 돕고 있다. 모든 중소기업이 공제 대상이다. 승계받는 주식의 상한선 철폐, 고용 유지 조건 완화, 경영 악화로 인한 폐업 때 폐업 시점 가치로 상속세를 부과하는 제도 등이 대표적 예다.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은 100년 기업이 나오려면 일본처럼 한시적 가업 승계 지원책을 시행한다든지 아니면 가업상속공제 제도 요건 중 기업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부분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완화해야 한다."차라리 기업을 매각해 부동산을 사면 더 편하겠지만 창업주인 부모님의 헌신과 종업원을 생각하며 가업을 물려받는다"던 한 기업 임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오랜 기간 축적해 온 기술과 고용의 승계를 통해 영속기업을 키우고, 지역과 국가 경제 기반을 견고히 해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어가야 한다.

2019-05-02 20:03:14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장기전은 비핵·평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종료된 이후 두 달여가 지났다.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이면서 중재자인 우리의 당초 목표는 하노이 회담에서의 합의를 근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포함한 제4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평화 체제의 일정표를 앞당기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 채택이 불발됨으로써 이러한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협상이라는 것은 늘 희망적(wishful)인 것은 아니다. 잘될 것도 안 되는 경우가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타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지난 하노이 회담은 결과물 없이 종료되었지만 북미 양측의 주장이 보다 명확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주 우리는 4·27 판문점 남북공동선언 1주년을 맞이하였다. 결론적으로 4·27 판문점 선언이 한반도 평화 발전에 기여한 점은 정당히 평가받아야 한다. 2017년 북미 간 충돌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간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합의한 점이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한 상시 협의 틀을 만든 것은 주요한 성과이다. 체육, 문화, 종교 등 사회문화 분야의 민간교류가 활성화된 것도 중요한 진전이다.4·27 판문점 선언 이행이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이 선언에 담긴 의미와 내용을 감안할 때 남북이 앞으로 견지해야 할 장전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이 다시 남북 관계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례를 볼 때 북한은 정세가 유리하지 않은 국면에서는 남북 관계에 속도 조절을 시도해왔고 통미봉남을 통해 우리와의 대화를 배제하려 하였다. 반면 우리는 비핵화 협상과 남북 대화를 병행해 나가는 입장에서 두 가지 트랙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상황을 관리해 왔다.북한이 앞으로 남북미 협상 구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통미봉남으로는 안 된다. 남북 관계에서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 있는 경제협력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문화 교류를 활성화해 나감으로써 남북 관계의 토대를 굳건히 하고 정상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것은 비핵화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제3차 북미 정상회담의 여건 조성을 위해서는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이 많다. 우선 한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 정상 차원의 만남을 통해 다음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 양측은 지금 협상장 밖에서 날 선 비방전을 벌이고 있다. 협상 실무를 관장하는 실무대표들끼리 맞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양측 실무대표들이 앞으로 만날 수 없다. 북미 모두 중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를 십분 활용하여 다시 대화의 테이블에 마주하는 명분과 실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우리 스스로 조급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과거 북핵 협상 30년 동안 우리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뼈져리게 느꼈다. 무수한 협상의 과정 속에서 협상이 타결될 수 있는 적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를 놓쳐 30년이 흘렀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 때가 그랬고 919 공동성명 이후에도 그랬다. 시기가 늘어지게 되면 상수보다는 변수가 많아진다.그간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비핵화 협상은 포괄적인 합의와 압축적인 단계 이행을 통해 일거에 끝내야 한다. 협상 시간이 지연되면 주변국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당사국들의 리더십이 바뀐다. 협상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회의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명분과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게 되면 협상의 동력이 약화된다.냉전 해체는 개혁개방론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당시 소련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여건이 마련될 수 있었다. 독일 통일은 동독 변혁기에 헬무트 콜 총리가 주변국들을 설득하면서 통일의 기회를 살려 나갔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를 것이 없다는 입장이면서 대선 때까지 핵 동결 국면을 끌고 나갈 것으로 보이고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말까지 시한을 설정해 놓고 미국의 입장 변화를 종용하고 있다. 올해가 지금까지나 앞으로의 비핵화 협상 향배를 가를 중요한 타이밍이다. 올해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비핵화 방식에 있어서의 포괄적인 합의를 이루고 비핵화에 따른 신뢰 조치가 추진되어야 한다. 남북미 모두 장기전에 대비할 만큼 타이밍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남북미 모두 국내 정치적인 요소를 뛰어넘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2019-05-02 11:18:43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매일춘추]아리랑과 대금

아리랑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우리 민족의 애환을 나타내는 민요라는 데는 별반 이견이 없을 것이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울어' 정선 아리랑의 이 가락처럼 원한과 아픔을 풀이하는 푸념이 있는가 하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처럼 애틋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토로하는 서정시 같은 가락도 있다.대금은 저 또는 젓대라고도 하며 악기를 가로로 비껴들고 한쪽 끝부분에 있는 취구에 입술을 대고 입김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가로로 부는 대표적인 목관악기다. 대금은 중금·소금과 함께 신라 삼죽이라 부르며, '대금을 불면 적군이 물러나고, 병이 낫고,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가 걷히며,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진다'고 삼국사기에 적혀있다.추석특집으로 방송에서 '아리랑 대공연'을 내보낸 적이 있었다. 평소에 아리랑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밤이 좀 늦었지만 끝까지 시청을 하였다. 아리랑 가사와 곡에 서려있는 느낌을 '한'이라고 한마디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이 아닌가 한다. 아리랑은 언어로 나타낼 수 없는 느낌을 갖게 하는 신비한 노래다. 아리랑은 노래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이것을 표현하는 춤사위도 그에 못지않다. 이날 내가 놀란 점은 아, 글쎄 피아노를 비롯하여 현악기, 관악기를 총동원하여 수 십 명의 관현악단이 연주한 아리랑 곡보다는 한 대금연주가가 대금으로 풀어내는 아리랑의 곡이 더욱 짠하게 가슴을 파고들어 헤집어놓더라는 말이다. 아마도 방송국 홀에 꽉 들어찬 수 천 명의 관객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을 것이다.(TV화면에 비친 모습도 다들 그렇게 보였다.) 내가 관현악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바흐의 곡을 대금 하나로 다 보일 수는 없다.)노래에 얽혀 있는 정서를 나타내는 게 악기라면 그 노래에 가장 어울리는 악기가 있지 않을까. 아리랑은 수많은 금빛 찬란한 서양악기보다 한 개의 순박한 우리 악기만이 그려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노래였다. 어떻게 여섯 개의 구멍뿐인 대나무 막대(대금)에서 그토록 슬프고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내는지, 우리의 노래는 우리의 악기만 부를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들은 아리랑은 그런 노래였다. 아리랑,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를 가졌는가. 대금, 우리는 얼마나 맛깔스런 멋을 부리는 악기를 가졌는가. 아리랑과 대금,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행복해진다. 손상호 경북대 교수·시인

2019-05-02 11:09:58

장석수 작 '광녀', 베니어 판 위에 유채, 47x32cm, 1955년

[김영동의 시대와 미술]전쟁을 겪고 만든 대구의 초상

일본이 패전의 수렁에서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한국전쟁 덕이었다고 한다. 전쟁물자의 중간 공급지 역할을 하면서 이웃 나라의 참극이 경제발전 추구의 기회였다니. 6.25는 한반도를 초토화로 만들었으나 대구는 건재했다. 폭격으로 인한 파괴도 없었고 적 점령도 없어서 오히려 문화적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하면 그 역시 아이러니다.6.25 후 대구에는 금달래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해방공간에도 있었다 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버텨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누군가의 비극적 삶의 이야기들이 덧씌워져 전형적인 한 인물을 만들어 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실제 인물이었고 또한 시대가 만든 비극의 상징이기도 하다.'광녀'는 장석수선생의 1955년 작이다. 그해 4월에 대구 USIS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뒤이어 서울 동화화랑에서 이동전을 했다. 최해룡이 쓴 팸플릿 서문에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며 오직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고 묵묵히 정진을 계속해온 성실의 화우"라고 소개했다. 4월 2일자 매일신문은 신명여고 미술실로 전시 준비 중인 선생을 찾아가 취재했는데 "영양실조의 해쓱한 얼굴에 안광은 창작의 정열로 생기를 발하며 텁수룩한 수염은 세잔느의 풍모를 하고, 물체에 파고드는 진격성을" 지녔다고 전했다.출품작은 '가족' 외 30여점의 유화로 특히 '광녀'와 신명학교를 그린 '교사'에서 보듯 표현주의의 화풍이 명백해졌다. 베니어 판 위에 거칠게 두터운 마티에르로 그린 이 초상은 전쟁을 겪고 난 우리 사회의 시대적 리얼리티를 증언하는 거의 유일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5년은 장석수, 정점식, 서석규, 이복 등이 함께 기존의 대구화단에 저항하며 대구미술가협회를 결성한 해이기도 하다.장석수 선생은 1921년 경북 양포의 부농 집안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 홍역을 앓고 한쪽 청력에 장애를 입었다. 고향의 장기초교를 다니고 대구 교남학교로 진학했다가 둘째 형(영남대 장기동교수)이 와세다 대학 영문학부에 유학하고 있어서 그도 교토 동산중학교로 갔다. 1940년 태평양미술학교에 들어가 유화를 전공하고 1943년 10월 귀국했다. 1944년 고향에서 제23회 조선미전에 출품했다. 이후 1949년 제1회 국전에 '신생'으로 한차례 입선을 한 후 관전은 멀리했다.해방 이듬해 대구여중 미술교사로 나오면서 삼덕동 한 적산가옥을 살림집으로 마련 작업실을 겸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륜중, 경북대 사대부고, 경상중을 거쳐 1954년부터 신명학교에 근무했다.미술평론가

2019-05-02 10:42:18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매일춘추]사랑합니다 선생님

불어오는 봄바람에 반짝이는 연두색 잎사귀들. 천지가 따듯한 기운으로 가득한데 마음 한 켠, 비어 있는 자리가 쓸쓸하고 그저 죄송스럽기만 하여 울컥하고 올라오는 눈물은 애써 삼켜 버린다. 5월 3일은 소리 삶을 살게 해주신 또 한분의 어머니,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고 이명희 선생님의 49재가 있는 날이다.경상도 사람으로 결코 쉽지 않은 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 수상으로 명창의 반열에 올라 KBS 국악대상, 세계문화예술대상, 금복문화상, 대구광역시 문화상, 판소리계 최고 권위의 동리대상 수상 등 그 경력을 인정받아 2017년에는 옥관문화훈장을 받으셨다. 불모지 영남지역의 단절된 판소리 계승, 전승을 위해 오랫동안 사단법인 영남판소리보존회, 전국국악경연대회 대구국악제를 이끌어 오셨으며 17, 18회 대구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시며 대구국악인의 수장으로 대구 지역 최초 대통령상을 유치하셨다. 지도자이며 선구자였던 선생님 덕분에 지역의 국악인, 예술인의 삶이 한 뼘 성장한 것임엔 틀림이 없다.만나는 사람마다 수경이 너 이야기를 한다.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는 말씀에 무작정 기쁘기도 했지만 자주 찾아뵙고 살뜰히 모시지 못한 못난 제자가 이렇게라도 선생님께 보답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었다.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어야지. 마음먹고 도리어 힘을 얻기도 했는데… 갑작스런 선생님의 별세 소식에 처음 뵈었던 선생님 모습부터 소리를 하는 동안 웃고 울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며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고등학생 시절, 취미로 배워 보고자 찾아 갔던 곳이 이명희 판소리 연구소였다. 목소리 한번 들어보자시며 받는 첫 레슨의 긴장과 설렘. 빛나고 매서웠던 선생님의 눈빛,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 맑고 힘이 넘치는 성음 모든 것이 새삼 생생한데… 그렇게 20여 년이 지나 얼른 찾아 봬야지하고 마음만 앞설 뿐 행동하지 못한 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해버렸다. 먹먹한 가슴을 쳐보고 시간을 돌리고 싶다 수없이 생각하지만 언제나 후회는 늦다.시작하면 끝을 보셔야 했던 강건함으로 앞만 보고 나아가셨던 여장부. 작은 일에는 크게 감동하고 큰일은 대범하게 넘기시던 작은 거인, 한편으론 소녀 같이 여리고 정에 약하셨던 선생님. 그래서 호된 회초리 같기도 하고 또 보드라운 손수건 같기도 했던 선생님의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잊을 수 없지요.소리공부 좀 하라시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전해주고 가신 소리, 성음, 맵시 잘 다듬고 다듬어 열어주신 소리 삶 열심히 살아내는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게요. 제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계신 우리 선생님.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라요.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2019-05-02 10:27:14

하경식 대구시 청소년보호팀장

[기고]청소년은 우리의 보배이면서 미래다

'청소년은 우리의 보배이면서 미래다.'이 말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잘 적용하지 못하는 문구 중 하나이다. 우리 기성세대 모두가 청소년 시기를 거쳐 왔으면서도 청소년들의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보여진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일부 K-POP 스타들의 어긋난 행동과 일그러진 그들만의 문화를 보면서, 청소년 분야에서 근무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대구시는 건강하고 건전한 청소년 육성·보호를 위하여 민선 7기를 맞아 여성가족청소년국 및 청소년과를 신설하고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시책을 개발 및 운영하는 데 힘쓰고 있다. 청소년 관련 예산은 2014년 92억원에서 올해 228억원으로 늘어났다. 청소년에 대한 바뀐 시각을 반영하고 지역사회 청소년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은 갖춘 셈이다.아울러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이 꿈과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청소년 전용공간들을 확충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영남권 청소년들에게 직업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전문적이고 체계화된 직업체험 기회를 제공할 '국립청소년진로직업체험수련원'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공사를 앞두고 있으며, 증가하고 있는 인터넷·스마트폰 중독 및 정서행동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의 전문적 치유에 가장 효과적인 거주형 치료·재활센터인 '국립청소년치료재활센터'(디딤센터) 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유치했다.(2021년 준공 예정)서구 중리동에는 '시립청소년문화의집'이 이달 정식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동구(9월 준공 예정)와 북구, 수성구의 청소년문화의집도 내년 완공을 목표로 관련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전국 최고 수준의 청소년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스프트웨어 역시 앞서고 있다. 마을의 아이들에게 마을 주민들이 부모가 되고, 학교·도서관 등 마을의 공간이 배움터가 되는 우리마을교육나눔 사업은 19개 마을에서 올해 74개 마을로 확대되었다. 2015년 전국 최초로 대구에서 시행된 우리마을교육나눔 사업은 현재 800개 프로그램에 10만1천여 명이 함께하고 있으며 청소년 참여율이 78%에 달한다. 전국 시·도에서 앞다투어 벤치마킹하는 우수 사업으로 손꼽힌다.또한 지역사회 내 청소년 관련 자원을 연계하여 학업 중단, 가출, 인터넷 중독 등 위기 청소년에 대한 상담·보호·교육·자립 등을 맞춤형 서비스로 제공하는 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구·군 상담복지센터 및 청소년쉼터 등의 연계를 강화하는 한편, 일촌 맺기와 같은 맞춤형 긴급대응체계 구축에도 애쓰고 있다.이처럼 대구시에서는 자라나는 청소년을 위해 많은 사업을 시행하고는 있으나 지역 간, 학교 간 교육 격차의 심화, 소외되고 방황하는 청소년의 증가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청소년 정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자신들의 꿈과 끼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우리 기성세대들이 끊임없는 관심과 아낌 없는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할 것이다.

2019-05-02 10:21:09

1885년에 설립된 세이죠 중학교의 설립 당시 모습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현진건은 왜 일본육군예비학교를 중퇴했을까

현진건은 1910년대 중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십 대 중반의 나이였다. 유학처는 '나라(城)를 이룬다(成)'는 뜻으로 교명을 지은 육군예비학교 세이죠(成城)중학교였다. 두 명의 조선 총독을 비롯해서 일본제국을 이끈 수많은 군인들이 이 학교 출신이었다. 일본 군인만 배출한 것이 아니었다. 1910년대를 전후한 시기, 강력한 근대국가 건설의 열망을 지닌 청나라와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본의 군사능력을 배우기 위해서 세이죠 중학교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훗날 중국공산당을 설립한 혁명가들, 그리고 조선의 독립운동가 이상정 등이 있었다.현진건이 왜 육군예비학교를 선택한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무관이었던 할아버지에서 제정 러시아 사관학교 졸업생 큰 형으로 이어지던 집안의 전통을 따른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에 앞서 세이죠 중학교로 유학을 떠났던 대구출신 독립운동가 이상정의 권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어쨌건 십대 중반의 현진건은 '무력'을 길러 조선 독립을 이루려고 했다. 이광수, 김동인 등 근대문인들이 근대적 지식을 배워 조선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과는 달랐다.그러나 현진건은 어렵게 입학한 세이죠 중학교를 채 2년도 다니지 않고는 중퇴한다. 그로부터 수년 후 그는 혁명가가 아니라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현진건은 일본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현진건이 유학을 한 시기, 일본은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었다. 부국강병의 이상 아래 근대일본 건설에 전력투구한 아버지들의 시대가 끝나고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자식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1차 세계대전 특수로 경제 호황이 이어지면서, 아사쿠사 극장가에는 밤늦게까지 공연이 이어졌고 서구적 연애에 취한 젊은 남녀들이 카페로 모여들었다. 한 편에서는 서구에서 유입된 사회주의사상과 남녀평등 사상에 몰입한 신청년들이 여기저기서 사회개혁을 외치고 있었다.현진건은 이 새로운 시대가 열리던 시기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군사학교의 강철같은 규율 속에 갇혀있기에는 너무나 자유롭고 낭만적인 시대였다. 그 열정적 시대 분위기가 현진건의 내면 깊숙이 갇혀있던 '시인'적인 감성과 자질을 건드린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추정을 받아들인다면 육군예비학교를 중퇴하고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그 선택의 수수께끼가 다소 풀린다. 물론 소설가를 선택했다고 '혁명가'의 길을 포기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무력'양성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서 사회개혁을 이루려고 했을 뿐이었다.처녀작 '희생화'(1920)에서 현진건은 신청년들 간의 비극적 연애를 통하여 불합리한 관습타파를 주장했다. 러시아 소설을 번역한 '행복'(1920)에서는 하층민의 부조리한 삶의 묘사를 통해서 계급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1943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끊임없이 식민지 조선의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는 소설을 썼고, 혁명을 외친 모든 사람들이 신념을 버리는 순간에도 혁명적 정신을 버리지 않았다. 폭탄을 던지며 독립을 외치는 대신 글을 통해서 일제에 대항한 것이다.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5-02 10:20:23

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비밀

2004년 미국의 예술가 프랭크 워랜 씨는 대중을 상대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도서관, 지하철역 등에 엽서를 비치하고 누구든 자신의 비밀을 써서 보내는 '비밀엽서' 프로젝트다. 사람들이 보내온 엽서에는 기상천외한 비밀들이 쓰여 있었다. '수영장에서 몰래 오줌 누는 걸 즐긴다거나, 월급을 더 받기 위해서 수천 명 직원의 월급을 삭감하라고 명령했다거나, 자신이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 사람들을 경멸한다거나, 떠날 수 있도록 남편이 나쁜 짓을 했으면 한다거나' 등 몰래 간직했던 비밀들이 엽서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젝트는 대 성공이었다.'비밀엽서'가 각광받은 것은 익명성 때문이다. 비밀은 결코 들키거나 밝히고 싶지 않은 말 그대로 '비밀'이다. 한편으론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욕구가 '비밀'에 있다. 그게 사람의 욕망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이야기처럼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에라도 풀어내야 속이 후련한 것이 비밀이다. 비밀, 영어로 'secret'의 어원은 라틴어 'secretus' 다. '분리하다, 따로 떼어놓다, 선별하다, 배설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어원이 '비밀'의 속성을 다 담아내고 있는 듯하다.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익명으로 비밀을 풀어놓는 '대나무숲'이 있다. 며칠 전 국회 관계자들이 이용하는 SNS '여의도옆 대나무숲'에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 패스트트랙으로 시끄러웠던 상황 속에서 고충을 겪었던 불만들이 올라왔다. 보좌진들을 앞장세우고 자기주장을 외치던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다. 심한 몸싸움으로 몇몇 보좌진들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고 차후에 법적 조치를 당할 수도 있는 형편이니 불만이 클 것이다. 하지만 속앓이만 하는 이들이 비밀 아닌 비밀을 '대나무숲'에 털어놓았다. 이들에게 어쩌면 비밀은 '자신들 입맛에 맞게 따로 떼어서 생각하고 선별해서 배설하는' 구태정치가 진저리 나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2019-05-01 18:00:00

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김경덕의 스타트업 스토리] 좀비 스타트업

2019년 정부 창업지원사업 예산은 1조1천억원. 지난주 발표된 추가경정예산을 더하면 1조6천억원이 넘는 규모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활성화 정책으로 창업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창업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운 시대임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창업자들이 지원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창업 생태계에서는 이런 창업자를 '좀비 스타트업'이라 부른다. 살아있는 시체와 같은 창업자, 창업 기업이 정부 정책과 지원금으로 연명하고 있어 이를 찾아내려는 숨바꼭질이 계속되어 왔다. 필자도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좀비 스타트업을 찾아내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고 이로 인해 힘든 일도 많았다. 특히, 어느 창업자와의 줄다리기는 평생 잊을 수 없다.그 창업자는 몇 개월 연속으로 민원을 넣는 등 심사 탈락에 대한 항의를 계속 해 왔다. 어느 날 그 창업자가 보낸 전자우편에서 특이함을 발견했다. 문서에 늘 3자리의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민원 관련 메일마다 항상 기재되어 있었다. 제기한 민원에 대한 창업자 본인만의 일련번호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수백여 건의 민원을 정부기관을 상대로 걸어왔던 것이다.어쩔 수 없이 발표 기회까지 준 어느 날. 그 창업자는 발표장에서까지 대단한 소란을 피워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고 이후 그 창업자의 태도는 변해서 말썽은 생기지 않았다. 공권력을 동원해야만 억지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이 허탈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이러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정부 창업지원사업은 유망 창업자를 선별하는 것만큼 좀비 스타트업과의 전쟁도 늘 겪고 있다. 우수 스타트업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제도와 정책을 악용하는 좀비 스타트업에 대한 매뉴얼이라도 확립한다면 스타트업 생태계도 더욱 건강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2019-05-01 18:00:0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어른이 존경받는 사회

꼰대!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학생들이 아버지나 선생을 부르는 은어'라고 정의되어 있다. 지금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나이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학교에서의 선생님, 가정에서의 아버지, 직장에서의 상사를 부를 때 자주 언급된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그래서 다른 세대와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와 멀어지기 위해 말과 행동에 있어서 필자도 항상 조심하려고 한다.그런데 얼마 전, 모임에서 지인으로부터 요즘 20대 대학생들은 어떤가 하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 측면에서 '내가 대학을 다닐 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는 답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우리 때에는 이랬는데' '내가 그 시절에서는 저랬는데' 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으로부터 돌아온 반응이 나를 좌절시켰다. 필자의 대답이 바로 '내가, 우리 때는' 사고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꼰대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렸던 그 시기에는, 내가 공부할 때는, 우리가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그랬는데'라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접근하는 순간, 꼰대 냄새를 풍기게 된다.흔히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도 있어 1차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한 기념일들이 유달리 많은 달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5월에 가정, 학교와 관련된 기념일이 많은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한 개인이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일차적인 보호막이라 할 수 있는 가정과 학교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과 공기에 비유할 수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배우고,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공간이다.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인간으로서 더욱 중요한 정서적 지지와 교류를 통해 안정감과 자존감을 형성하는 공간이기도 하다.그런데 이 공간의 틈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배움의 공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차이는 점점 커져 가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세대 간 사고, 판단, 감성의 성향과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보다는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기계와 인간의 접속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지혜와 지식, 감성의 지원자였던 어른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조직 속의 한 개체로서만 인식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어른이 없는 사회에서 어린이는, 학생은, 신입 직원은 무엇을 배울까? 점차 학습도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벗어나 기계 대 인간의 관계로 변화되면서 어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화의 많은 과정은 가정과 학교를 통해서, 직장에서의 선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시대가 변해도 경륜과 지혜는 삶의 문제 해결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어른은 단지 숫자상의 나이가 많아서, 오래 조직에 있어서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경륜과 지혜를 통해서 가족을, 학생을, 직원들을 도와주고 이끌어 갈 때 존경받는다. 꼰대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요즘은 그런 어른이 많이 없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제는 나이가, 근무연수가, 부모라는 위치가 존경을 보장하는 시대가 아니다. 어른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조직에서, 어른으로서 자신의 위상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타협하지 않는 사회에서 진정한 어른이 나서서 경륜과 지혜를 바탕으로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과 철없는 아이들을 훈계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사회에서 진정 존경받는 어른들을 그려보면서 적어본다.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19-05-01 18:00:00

권영희 작 '이토록 뜨거운 순간'

[내가 읽은 책]젊음, 그 황홀한 날 /이토록 뜨거운 순간/에단 호크/오득주 옮김/media 2.0 펴냄

오십이 넘은 즈음부터 나이 듦에 조금씩 젖어든다. 그토록 뜨거웠던 가슴은 어느덧 고스란히 가라앉아 어디에서도 그 뜨거움을 쏟아내지 못한다. 그것이 못내 그리웠던 적도 또한 아쉬웠던 적도 있나 싶게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워 나가고 있는 심심한 날이 흐르고 있다. 세월감이 무뎌질 때 쯤 다가온 뜨거운 책, '이토록 뜨거운 순간'작가인 에단 호크의 이력은 대단하다. 좋아하는 영화라면 혼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던 내게 참 매력적인 배우, 그가 바로 에단 호크였다. '비포 선라이즈' '비포 미드나잇' '비포 선셋' 등 비포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로 유명하다. 그는 비포 시리즈를 통해서 이십 대의 젊음과 사십대의 고뇌까지 세심한 연기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진정한 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영화계에서 확실한 자리를 잡아가는 그의 꿈은 작가였다.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꿈을 놓지 않았다.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완성한 작품이 '이토록 뜨거운 순간'이다. 그의 열정만큼 뜨거운 작품이었다. 에단 호크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가 감독으로 참여 하여 2007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배우가 되고 싶은 텍사스 청년 윌리엄과 가수가 되고 싶은 사라의 꿈같은 젊은 날의 사랑과 열정,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섬세한 감정 표현과 함께 드러나 있다. 젊은 날,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생각이 어렴풋이 난다. 지금은 그만큼의 뜨거운 열정도, 그만큼의 짜릿한 느낌도 아련하게 기억되는 그 젊은 날. 사라를 향한 윌리엄의 열정을 보며 누군가에게 이토록 집중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난 어린 시절 너무나 많은 시간을 뭔가를 흉내 내는데 소모했어. 외식을 하러 나갈 때면 우리가 완전한 가족인 것처럼 꾸몄어."-104쪽사라와 함께 한 파리 여행에서 결혼을 꿈꾸는 스무 살의 윌리엄이 이해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힘겨운 삶을 산 윌리엄은 얼마나 온전한 가족을 꿈꿨을까?하지만 스무 살의 사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윌리엄은 사라에게 온전히 자기만을 바라보기를 원했지만 사라는 그렇지 않았다."난 자아를 지키고 싶고, 나만의 인생을 찾고 싶어."-173쪽사라는 윌리엄의 사랑보다 자기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데 더 집중한다. 윌리엄의 뜨거운 사랑도 사라의 진정한 자아도 그때 그 젊은 시절 느낄 수 있는 뜨거운 감정이다. 그 시절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욕망과 열정을 이들은 고스란히 만끽하고 있었다."난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러면 더 이상 장래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겠 지."-85쪽그때는 우리도 그랬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해결 되리라는……. 하지만 나이 들어보니 알겠다. 젊음, 그 찬란한 날이 너무나 그립다고."우리가 어릴 때는 온 세상이 너의 꿈을 좇으라고 격려해주지,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찌된 영문인지 꿈을 찾아가려고 아주 작은 시도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은 몹시 불쾌해한단 말이야."-83쪽당혹스런 대사였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 젊은이들이 자라날수록 우리들은 꿈을 놓고 현실과 마주하라고 한다. 사라가 말한 것처럼…….윌리엄과 사라의 열정적인 사랑과 혼란, 꿈을 향한 몸부림, 이 모든 것이 아우러진 한 편의 젊은 날의 초상화와 같은 소설이었다. 그들의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황홀했다.권영희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2019-05-01 17:04:42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쥐나 개나 마이크

공공장소에서 보통 사람들은 마이크 한 번 잡기 힘 든다. 그래서 일단 마이크 한 번 잡으면 좀처럼 놓지 않는다. 예전 서민들은 마이크 잡기는커녕 구경조차도 흔치 않았다. 학교 교장 선생님이나 방송국 아나운서, 쇼 무대 사회자, 약장수 정도는 되어야 마이크를 잡을 수가 있었다. 요즘은 쥐나 개나 마이크 든다. 좁은 회의실인데도 마이크를 쓰고 마니아들은 가정집에서도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른다. 일본에서 가라오케가 들어 온 뒤 서민들도 쉽게 마이크를 드는 세상이 되었다.6.25 전쟁이 일어나자 공평동 있던 중앙국민학교는 미군에게 징발 당한다. 저학년은 경북의대 응급실 앞 공터에 판잣집을 지어 이사를 가고 고학년은 신천가에서 노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인근에 있는 수창학교는 한국군에게 쫓겨나 전매청 담배창고에서 수업하였다. 나는 이때 마이크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이런 난장판인데도 아침 점심 조회가 있었다. 조회 때 훈시를 하는 교장 선생님들은 자신의 말을 듣는 학생이 있다고 믿는 걸까? 오랜 의문이다. 어린이에게 해줄 말이 그렇게 많아서일까? 아니면 잡은 마이크를 놓기 싫은 걸까? 어느 교장 선생이라도 그들의 훈시는 길고도 지루하다. 수십 년 학교 다니며 많은 조회를 하였지만 신기하게도 기억에 남는 교장 선생님 말씀은 하나도 없다. 지루한 조회는 끝없이 이어진다. "에또" 하면서 말을 이어가고 "끝으로" 하면서 또 연설은 이어진다. 가관인 것은 "어디까지 했더라" 하며 앞에 했던 자신의 말을 까먹기도 하는 것이다. 더운 운동장에서 약한 어린이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훈시는 끝이지 않는다. 교장 선생의 번들거리는 이마와 반짝짝 머릿기름을 발라 올린 마이크 머리가 역겨웠다. 교단 양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스피커는 경복궁 해태 마냥 그 다리를 고추 세우고 앉아 잡음 내었다. 때로는 소리가 안 나기도 하고 삐이익 하고 유리창 긁는 소리를 하며 어린 학생들의 심신을 고문하였다.전쟁이 끝나고 모든 학교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중앙국민학교도 공평동으로 원 위치했다. 경대 병원 앞에 있던 임시 교사는 동덕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원래의 학교로 돌아온 뒤 새로운 마이크 공해가 추가로 시작이 되었다. 교장 선생의 횡설수설은 여전하고 매일 두 시간 수업마치면 운동장으로 학생들을 모아 체조를 시켰다. 체조 전에 행진곡이 나오고 다음 체육 교사가 지르는 고함 소리, 구령 소리가 또다시 공해를 만들고 있었다. 요즘 같으면 주민들의 민원도 있었을 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노동조합이 없었는데도 선생님들이 옳게 행동해 존경받던 시절이다. 그 덕에 매일 체조 시간에 정은락 선생이 구령을 붙이고 악을 써도 공평동 주민들은 참아주었다.희게 반들거리는 마이크를 보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렸다. 가래 낀 목소리를 들으면 교장 선생의 훈시가 연상되어 어지러웠다. 커서 군대 가니 거기에 또 다른 교장선생들이 있었다.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들 여러 '장님'들이 사병들을 모아놓고 긴 연설을 하였다.제대하고 회사 회의에 참가해보니 거기에도 또 다른 교장선생이 있었다. 요즘 마이크는 예쁘게 만들어져 번쩍거리지도 않고 스피커도 성능이 좋아 잡음을 내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커지게 해줄 뿐 잡음이 없다. 그러나 기구는 개량되었지만 말 내용은 아직도 소음이요. 긴 잡소리다.오늘도 호구지책을 위해 청와대에서, 장관실에서, 기업의 회의실에서, 군대에서, 장님들의 주옥같이 아름다운 말씀 들어야 되는 서민들 귀에는 그 말씀들이 횡설수설과 악쓰는 소리, 빈정대는 소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만 들리는 이 병은 어린 시절 조회 때 입은 마음의 상처 탓이기만 할까? 아님 일그러진 마음의 수양 부족일까?

2019-05-01 15:09:18

천영식 KBS이사

[새론새평]문재인정부 2년, 무엇을 남겼나  

국회에서의 여야 간 극한 대립 속에 문재인 정부는 곧 취임 2주년을 맞는다. 아직 2년밖에 되지 않았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2년을 넘기면 대체로 내리막길로 가게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위안 삼아야 할 것 같다. 종착역이 멀지 않았다.문재인 정부는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현재로선 좋은 결말을 예상하기 힘들어 보인다. 수많은 정부가 밟았던 권력의 몰락 트랙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독선과 아집이다.'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평가했다."무엇보다 집권 기간 동안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1980년대 운동권이 가졌던 진보 이념 중에는 21세기 한국 사회에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과감히 변화시켜야 한다. 대통령은 말이 아니라 업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선출된 왕이 되고자 했던 진보 대통령 노무현은 실패했다."(이갑윤·이지호,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 2015, 에이도스 출판사, 164·165쪽)노무현 시즌 2를 목표로 했던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보다 조금 더 공격적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한국갤럽이 4월 26일 자로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로 첫째가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 둘째가 북한 관계 치중 및 친북 성향으로 나왔다. 이 두 가지 부정적인 평가는 여론조사 때마다 압도적으로 1, 2위를 유지하고 있다.여기에 세 번째 부정 평가 이유로 등장한 것이 독단적, 일방적, 편향적이라는 사유다. 문재인 정부의 부정 평가 사유 중 중하위권에 머물던 게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나쁜 이미지는 경제 무시, 이념 정치, 독단 정치 등으로 요약된다.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정치와 관련해 이런 약속을 했다."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이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본인의 약속과 달리 현실은 정반대 이미지로 가고 있다. 제1야당만 빼고 선거법 밀어붙여! 국정 동반 운영을 위해 제1야당 대표하고 한 번이라도 만남을 가졌던가. 김정은에 쏟는 열정의 절반이라도 제1야당 대표에게 보여준다면 한국 정치는 달라졌을 것이다.청와대 게시판을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의 놀이터로 만드는 게 지금의 정치이다. 반대파를 없애겠다는 여론을 청와대는 즐기고 있다. 낄낄거리며 조롱하고 빈정댄다. 이러니 정국이 풀릴 리 없다. 국민들에게 대결 정치의 완화를 설득해도 시원찮을 판에 갈등을 통치의 우선적 도구로 쓰고 있는 것이다.취임사에는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는 대목도 나온다. 헛웃음이 나온다. 이건 저잣거리에서 실제 조롱의 대상이다."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유효기간이 하루뿐인 이 같은 당일치기용 취임사를 팽개치고, 2년간 온통 취임사를 뒤집는 일들만 벌여왔다. '적의'(敵意) 같은 게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대한민국을 가득 채우고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도 화려한 명분과 달리 결국엔 무소불위의 홍위병들이 통제 사회를 가속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될 것으로 우려된다. 분열의 도구다.꿈은 없고 '적'만 가득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리더십을 확보해 가기 어렵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통령을 비판하는 일은 누워서 침 뱉기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부디 남은 임기 동안 국내 정치와 경제 발전을 위해 결실의 당사자로 나서 주길 바랄 뿐이다. 김정은이 그만하라는 '오지랖'의 반만이라도 국내로 시선을 돌리는 건 어떨까.천영식 KBS 이사·계명대 언론광고학부 초빙교수·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

2019-05-01 13:31:17

김재수 경북대 초빙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기고]대구경북 사라질라

2018년 지방소멸보고서에 따르면 30년 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국 89개 지방자치단체 중 경상북도가 19개이다. 의성군은 경북에서 소멸 시군 1위로 나타난다. 전국적인 인구 감소는 2028년부터로 전망하였으나 훨씬 앞당겨졌다.필자의 고향인 영양군 인구는 1만7천200명 정도로 줄었다. 이 중 60세 이상이 44% 정도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북 북부는 인구가 소멸되어 시군이 없어지거나 거대한 양로원이 될 판이다. 영국의 인구문제연구소는 한국의 인구 감소가 이런 추세로 가면 2750년에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나라가 된다고 했다.인구 소멸을 방지하기 위해 특별 대책반(TF)을 구성하고, 위원회를 만들고, 청년 유입 프로젝트, 이웃사촌 시범마을 사업, 도우미 지원, 출산과 보육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리 효과를 예단하기 어려우나 임기응변식, 일괄적 정책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산업구조 등 본질적인 면에서 고민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얼마 전 강보영 경북도민회장이 인구 소멸을 방지하기 위한 특별 대책을 추진하자고 하였다. 경북 북부지방이 특별히 인구 소멸이 심하다. 농촌을 담당한 장관을 했으니 적극 앞장서 달라는 것이다. 같이 힘을 모아 해결 방안을 찾자고 했다. 농촌 인구 감소 문제 해결에 재정 투입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농촌 인구 감소 문제는 농업과 비농업의 융복합 전략으로 풀어야 한다. 경북의 농산물 공급과 대구의 식품 소비가 융복합하고 윈윈할 수 있는 것이 식품클러스터이다. 대구와 경북이 인접하는 지역에 농식품클러스터를 만들어 대학과 연구기관과 업체가 융복합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과 자본과 돈이 몰려들 것이다.네덜란드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인구가 우리의 3분의 1 정도이고 면적도 절반에 불과한 네덜란드가 식품클러스터를 만들어 농촌문제를 해결했다. 대학과 연구기관과 업체를 단지화시켜 60만 명을 고용하고 있고, 세계 2위의 농식품 수출국가가 되었다.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농업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를 혁신시킨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사막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불식하고, 토양을 연구하고 농작물을 키우고 키부츠나 모샤브 같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농촌을 부흥시켰다.수직형 빌딩 농장 건설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개념을 만들어낸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딕슨 데포미어 교수는 필자와의 대담에서 30층 규모의 수직형 빌딩 농장을 지으면 5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였다. 최첨단 과학과 기술로 만들어진 식물공장은 열대 사막이나 바다, 우주에 설치할 수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첨단 수출상품이 될 수 있고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농촌의 인구 문제는 비농업 분야나 도시와 공생 관점으로 풀어야 지속 가능하다. 국민의 '공생 공간'인 농촌의 인구 감소 문제는 도시와의 상생 협력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이 상생을 추진하고 있다.인구 소멸 방지부터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 '대구와 경북은 하나'라는 '대경불이'(大慶不二) 자세로 상생하고 협력해야 한다. 국가적 과제인 인구 소멸 방지 대책을 성공시키면 대구경북은 우리나라를 주도하는 중심 세력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김재수 경북대 초빙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2019-05-01 13:24:50

현동헌 테너

[매일춘추]상처받은 치료자

작가 존 브래드쇼의 책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치유'에서는 '어린 시절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품은 채로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 살아가는데, 상처 입은 내면아이 곧 성장했어야 하나 어떤 이유들로 성장하지 못하고 아이인 채로 있는 나의 자아가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로 겉만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의 특징은 곳곳에 내면아이에게 들려주는 편지글들이 나온다. 자기 자신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공감함으로써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것은 공감의 능력이기도하다. 공감이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을 말한다.이는 음악에서도 도드라지게 일어나는 일이다. 들려오는 음악의 선율이나 혹은 노래 가사의 메시지를 통해 그 음악이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고 공감을 느끼며 때론 눈물도 나며 몰랐던 내면의 상처를 발견하기도 한다. 상처받고 충족되지 못한 욕구나 감정들을 표출하는데 있어 음악은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두려움은 위험에 쳐했을 때 우리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들며, 슬픔은 우리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다. 눈물은 고통을 덜어 주며, 정화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각자가 쓰고 있는 가면을 벗어 버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까지 숨어 있었던 자신만의 내면세계에서 때론 나와야 할 때가 있다. 만약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계속 숨기면 숨길수록,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고통스럽고 또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하며 문제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사람들이 자신의 상처를 잘 보살피고 내면아이를 건강하게 양육하게 된다면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힘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비슷한 제목의 신부 헨리 나우웬의 저서 '상처받은 치료자' 에서도 상처를 입어본 사람이 다른 이의 고통도 이해하며 치유하는 치료자의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에서 '사람은 자기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온전한 정신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고 말했다. 이를 다른 말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병자(病者)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處地)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同情)하고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음악이야말로 바로 그런 자신을 기다려주고 위로해 주고 공감해주는 친구 같은 역할을 하기에 필자 또한 그런 음악가이자 제작자로서 예술이 공감과 치료적인 역할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힘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현동헌 테너

2019-05-01 13:18:21

박용욱 신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종교칼럼]약자가 최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1

지난달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자기낙태죄와 제270조 제1항 동의낙태죄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했다. 이로써 낙태 합법화의 문이 열렸고, 내년 12월 31일까지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 낙태죄 조항은 그다음 날부터 효력을 잃게 되었다.사실 낙태죄가 있건 없건 간에, 한국은 그동안 낙태에 있어서 어지간한 국가의 통계를 멀찍이 따돌리는 수치를 보여 왔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를 보면 가임기의 조사대상 1만 명 중 임신경험 여성의 약 20%가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할 만큼 낙태가 많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보건복지부 연구에서 추정한 29.8%에 비해서는 대폭 줄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임신부 다섯 명 중 한 명이 인공임신중절을 택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은 대단히 드물거나 미약해서, 2005년의 통계에 따르면 연간 추정낙태 시술건수에 대한 기소율은 약 7만 분의 1에 불과하며, 기소된 이들 모두 벌금만 부과되는 약식기소로 가볍게 처리되었을 뿐이다.(임웅, '낙태죄의 비범죄화에 관한 연구')결국 국가권력을 포함한 다수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을 무시하면서 사문화시켜 왔고,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방벽마저 허물어 버리게 된 것이다.그런데 이런 과정 안에서 건전하고 생산적인 정책 토론과 합의를 가로막는 선전선동이 난무했다는 사실은 지금이라도 짚고 가야할 것이다.우선 낙태죄에 관한 여론을 호도하는데 한몫 했던 언론들의 행태를 보자. 예컨대 2018년 5월의 언론기사들은 학계에서 존경받는 한 윤리학자의 인터뷰 기사를 쏟아내면서 "강간당해 임신해도 아이는 낳아야"는 식의 선정적인 제목을 달았다. 지금도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는 모자보건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임신중절을 할 수 있으므로 형법상의 낙태죄 존폐 여부와는 무관하다 하겠으나, 많은 언론과 단체들은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고 오히려 윤리학자가 주장한 본질과는 별 상관없는 문구를 부각시킴으로써 논점을 흐렸다.언론과 낙태합법화를 주장하는 여러 단체들이 침묵하거나 감추다시피 한 사실은 그 외에도 여럿이다. 불법 낙태로 인해서 여성들의 건강권이 훼손된다든가, 계급적 차별이 심화된다는 주장 또한 거의 모든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병원에서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 비용 부담 또한 상당히 낮은 한국의 실태에 비추어 본다면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왜 언급하지 않았는가.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사례들의 절대 다수가 피임을 하지 않았거나 불완전한 피임법에 의존했다는 사실은 또 어떻게 봐야 하는가. 오늘날 고학력 여성들이 대폭 늘어난 현실, 그리고 인공임신중절의 평균연령이 28.4세에 이르는 현실과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이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 사이의 괴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이번 헌재의 결정은 낙태죄 논의의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일 뿐이다. 내년 말의 대체 입법 시한까지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해 토론과 합의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토론에 참가하는 이들이 주어진 현실과 연구 자료를 왜곡하거나 선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다루는 태도일 것이다. 생명 존중과 약자 보호라는 대의마저 희화화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더욱 그러하다.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2019-05-01 09:59:55

사람들의 비난을 이끌어 낸 억만장자의 발언. 사진: 유튜브 캡처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벤틀리를 땅에 묻은 남자의 비밀

"저는 내일 벤틀리를 땅에 묻을 거예요"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이 무슨 염장질이냐. 나는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데 돈 자랑을 해도 유분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벤틀리가 걱정된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남의 재산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벤틀리는 우리 집보다 비싸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실제 이 말을 한 사람은 '치퀴노 스카르파(Chiquinho Scarpa)'라는 브라질의 한 부자였다. 그는 2015년 어느 날 SNS에 글을 올려 50만 달러(약 5억 7천만원)의 벤틀리를 땅에 묻겠다고 선언했다. "돈 많은 것 자랑하냐?" "그 돈으로 불우이웃이나 도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그는 포크레인으로 땅을 판 사진으로 게재해 비난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비난은 관심과 함께 왔다. 비난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마침내 벤틀리를 땅에 묻겠다는 날이 왔다. 사람들의 관심 덕분에 방송사에서는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 그리고 무덤으로 들어가는 벤틀리의 모습을 생중계했다. 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차가 묻히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그때 치퀴노 스카르파는 손에 든 삽을 놓고 취재진을 자신의 집안으로 초대했다. 차분해진 분위기에서 그는 묵직한 인터뷰를 시작했다."벤틀리를 땅에 묻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장기를 땅에 묻어버리나요?"이는 장기 기증을 유도하는 강력한 퍼포먼스였다. 메시지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는 그동안의 비난을 감수했다. 역발상 마케팅의 효과는 엄청났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브라질의 장기기증은 31.5%나 상승했다.바이럴 광고를 하고 싶다면 건강하게 뒤통수를 쳐라. 치퀴노 스카르파는 그 법칙을 잘 활용했다. 만약 그의 퍼포먼스가 건강한 의도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벤틀리 차의 성능이라든지, 차를 파는 마케팅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디어의 크리에이티브는 인정받았을지언정 좋은 마케팅으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악랄한 뒤통수는 지양하자. 어설픈 뒤통수는 당신의 브랜드를 몰락으로 이끈다. 건강하게 타인의 뒤통수를 치자.나쁜 소문이 좋은 소문보다 네 배 더 빠르다. 실험에 따르면 부정적인 소문은 100명 속에서 빠르게 퍼져 81%가 소문을 들었고 무려 86%가 소문을 전했다. 반면 긍정적인 소문은 불과 18%만이 소문을 들었고, 고작 4%만이 소문을 전파했다. 인간은 나쁜 소식에 더 반응하고 확산시킨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이 장기기증 퍼포먼스 팀은 이 법칙을 기가 막히게 이용했다. 나쁜 소문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바이럴이 되도록 설정한 것이다. 그 팀은 사람들의 비난이 감사했을 것이다. 비난이 커질수록 반전의 임팩트가 커져 버렸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5-01 09:54:56

정우창 대구가톨릭대 교수

[경제칼럼]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 포스코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역할

포항시 남구 동해안로 6261. 포항에 본사가 있는 포스코의 주소다. 2017년 포항시가 거둬들인 지방세 3천638억원 가운데 포스코가 낸 금액은 552억원으로 15.5%에 이른다. 포스코그룹은 2030년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3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현재 포스코그룹은 철강, 비철강, 신성장 분야가 49%, 50%, 1%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2030년에는 40%, 40%, 20%로 신성장 분야가 대폭 증가하는 구조이다.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에 대응하여 포스코는 2030년까지 2차전지 사업을 세계시장 점유율 20%, 매출액 17조원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신성장 산업의 주인공은 2차전지 산업이다.전기차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및 전해질로 구성된다. 포스코는 음극재 제조사인 포스코켐텍과 양극재 제조사인 포스코ESM을 합병, 올해 4월 1일부터 포스코케미칼로 사명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신성장 산업 육성에 나섰다.전기차 1대에 약 62㎏이 사용되는 희토류 금속인 리튬의 제조 설비는 광양에 있다. 양극재는 구미에서 생산하고 있으나 앞으로 신증설은 대부분 광양에서 이루어진다. 2021년이 되면 전기차 100만 대를 만들 수 있는 양극재 6만3천t 중 20%인 1만2천t만 구미에서 생산된다. 작년 11월 준공된 음극재 1공장과 같은 달 착공된 2배 규모의 2공장 모두 세종시에 들어선다.2차전지의 음극재에 들어가는 인조 흑연은 포스코에서 석탄을 가열할 때 나오는 부산물인 연간 57만t의 콜타르로 만든 침상코크스가 소재이다. 포스코케미칼 자회사인 피엠씨텍이 침상코크스를 만드는데 이 공장도 광양에 있다.포스코와 포스코케미칼 본사는 모두 포항에 있는데 리튬 공장과 음극재 공장, 음극재를 만드는 침상코크스 공장, 그리고 양극재 공장의 80%는 우리 지역에 없다. 미래차의 핵심인 전기차, 전기차의 핵심 사업인 2차전지 사업이 모두 우리 지역을 외면한 것이다.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자리와 출산을 동시에 잡겠다는 경상북도의 '잡아'(Job+아이) 전략이 포스코 신사업과는 동상이몽인 듯하다.ING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2035년 유럽에서 출시되는 신차는 100% 전기차이다. 아이오닉 전기차는 가격이 4천200만원인데 배터리가 30%인 1천300만원을 차지한다. 쉐보레 볼트 전기차는 1천600㎏인데 배터리가 435㎏으로 27%를 차지한다.전기차의 가장 큰 과제인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배터리의 높은 에너지 밀도, 차량 경량화, 차량 가격 인하가 전제되어야 한다. 전기차의 충돌 안전성도 중요하다.이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해답은 포스코가 생산하는 기가급(Giga Pascal급) 강재이다. 1㎟ 면적의 강재가 100㎏의 하중을 견디는 기가 막히게 강한 강재를 의미한다. 포스코가 생산하는 900만t의 자동차 강판은 전 세계 자동차 강판의 10%, 포스코 철강 생산량의 25%에 해당한다. 2025년에는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 생산이 1천200만t이 된다.포스코의 일반 철강제품이 짜장면이라면 자동차 강판은 탕수육, 기가스틸은 전가복에 해당한다. 자동차 강판과 기가스틸은 고부가가치 제품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은 열간 프레스 성형용 소재 하나로 매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신소재 개발은 신약 개발만큼이나 기업에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 포스코는 작년 철강 부문 연구 개발비로 5천458억원을 사용했다. 자동차 강판연구소도 새로이 만들었다.전기차 시대를 맞이하여 더욱더 기가 막힌 스틸을 많이 개발해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이 되고, 우리 지역에 더 많은 투자를 일으켜 포스코 기업가치인 'With POSCO'가 실천되고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포스코를 기대해 본다.

2019-04-30 16:25:48

김동훈 연극배우

[매일춘추]'달인'에 대하여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보다보면 자신의 일터에서 경이로울 정도로 숙련된 사람들이 출연한다. 어떤 면에서 달인의 경지는 천부적인 재능과 소질에 의해 판가름 나기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고된 시간을 인내한 결과 '달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이 처음부터 특별한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으나, 반복된 노력의 나날들이 그들을 장인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는 꾸준함이 불러오는 성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배우의 관점에서 반복적인 훈련은 대가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한다. 일본 '노'(가면악극)의 대가 제아미는 자신의 저서 '풍자화전'을 통해 끊임없는 훈련만이 꽃 피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고, 현대연극에 원천을 준 스타니슬랍스키와 메이예르홀드, 그로토프스키 또한 평상시 배우훈련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특별한 비법이나 방법이 아닌 꾸준한 반복만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이는 배우가 갖춰야 할 기본적 소양을 위함이기도 하다. 배우는 자신의 몸을 가지고 관객 앞에서 행동과 행위로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몸의 움직임에 대해 늘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연기를 하는 도중 지나친 감정에 함몰되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신의 몸은 제어하지 못하여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평상시 훈련을 통해 언제든지 연기할 수 있는 유연한 몸의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대본읽기'에서도 반복적인 연습은 중요하다. 대본을 꾸준하게 반복해서 읽다보면 텍스트에 대한 해석과 깊이가 점점 풍부해지며, 이성으로 분석할 수 없었던 캐릭터의 목적이나 상황을 어느 순간 납득하게 되어 배우의 역할창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렇듯 단순하고 반복적인 연습만으로도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필수적 습관이 될 수 있다.우리의 삶은 한편으로 특별한 방법이나 행운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들추어 보면 그 진리는 반복을 위한 '인내'라는 단순한 행동에 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 기본적인 진리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단군신화 속 등장하는 곰이 인고의 시간 끝에 쑥과 마늘을 먹어 인간이 된다는 점, 이솝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에서 거북이의 승리는 인내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음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단순한 삶의 진리를 내 자신에 질문했을 때 나는 과연 실천하며 살았는지 되돌아본다. 나태한 자신을 반성하면서 다시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자세로 실천해보자. 김동훈 연극배우

2019-04-30 14:56:23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반려동물 입양, 마음만으로 책임질 수 없다

경남 창원의 외진 교차로에서 차우차우가 발견되었다. 마을버스 기사와 주민들의 배려로 물과 음식은 제공되었지만, 차우차우는 사람이 다가오면 피하느라 빠르게 질주하는 차들 사이로 도망가는 등 위험천만한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SBS TV동물농장에 의해 구조된 차우차우는 정작 사람들의 손길이 닿자 순하기 그지없었다.동물병원으로 이송돼 검진을 받고, 엉킨 털을 밀고, 목욕하는 과정을 낯설어하지 않았으며 누가 봐도 사람의 보살핌에 길들여진 개였다. 하지만 동물등록 확인을 위한 마이크로칩이 시술되어있지 않아 주인이 누군지, 어떤 사연으로 도로를 배회하고 있었는지 등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보편화되는 현실에서 동물을 입양하려는 가족들이 알아야 할 부분들이 있다.1. 어떤 품종이 적합할까?원룸 등 공간이 좁을수록 체형이 작고 순한 품종(몰티즈, 포메라니안, 치와와, 폼 피츠, 비숑 등)이 추천된다. 활동적이고 경계성이 높으며 잘 짖는 품종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입양을 자제하실 것을 권한다.2. 산책은 누가 맡을 것인가? 개는 산책을 좋아한다. 활동적인 품종일수록 넓은 공간을 산책하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 유지에 필수적이다. 하루 1회 이상 산책을 보장하여야 한다. 체형이 큰 개는 돌발상황에서 개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가족이 동행하여야 한다. 산책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가족 간의 협의가 필요하다.3. 식비 등 비용을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반려동물을 위해 일정 수준의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료, 간식, 영양제, 용변 패드, 미용, 옷, 하우스와 장난감, 산책 또는 여행을 위한 경비 지출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들의 행복이자 의무이다. 2019년 현재 소형 반려견에 지출되는 한 달 경비는 20만원 내외임을 참고하자.4. 사회화 과정과 질병 예방을 위한 정보를 갖추었는가? 중성화 수술, 예방 접종, 기생충 예방, 심장사상충과 진드기 예방, 사회화 교육 과정은 반려동물과 가족의 건강뿐 아니라 이웃을 배려하는 펫티켓임을 명심하자.5. 동물등록과 마이크로칩 장착을 이해하고 있는가?내장형 마이크로칩이 시술되어있는 유기견과 유기묘는 없다. 피부에 삽입된 (내장형) 마이크로칩은 동물의 신분증이며 보호자의 연락처 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내장형 마이크로칩 시술은 반려인이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나 다름없다. 5. 노령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봤는가?동물은 사람보다 7배 정도 노화가 빠르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10살이 되면 노령동물로 여겨 더 잘 돌봐주어야 한다. 노화에 따른 인지장애(치매)와 퇴행성 질환을 극복하기 위해선 가족들의 배려가 필요하다. 더 자주 동물병원을 내원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6. 동물진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생명은 항상 건강할 수 없다. 소형화된 동물일수록 질병의 소인은 많다. 우리나라의 동물의료 수준이 세계적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진료비는 다른 국가에 비해 저렴하다. 그럼에도 동물 의료비가 사람보다 10배 정도 비싸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전 국민이 건강보험료를 의무적으로 납입하는 사회 의료보험제도의 특성상 소득이 낮을수록 납입보험료가 낮고 환자의 치료비 부담률이 경감되기 때문이다.동물진료비는 100% 보호자가 부담하며 여기에 10%의 부가세가 더해진다. 사람 의료비는 면세이며 의료비 중 본인 부담률은 평균 25%, 특히 아이에 대한 의료비 본인부담률이 현저히 경감되어 있다.이에 더해 사람들은 단순 질환으로 치료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동물 질병은 보호자가 동물의 이상 증상을 인지한 상태라면 이미 질병이 심각해져 종합적인 검사와 치료, 입원, 수술이 요구되는 중증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질병 때문에 진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고 동물을 유기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따라서 동물 진료비가 부담스러울수록 보험에 꼭 가입하시기 바란다. 동물의 나이와 보장되는 질병의 종류에 따라 보험료는 차등화되어있으며 월 3~6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납입하는 동물보험을 추천해 드린다.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생명 지킴이로서의 첫걸음이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4-30 09:59:05

조용성 수성구의원

[기고]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

부동산 정책이 오락가락 일관성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중산층의 재산목록 1호인 주택이나 아파트는 주거 안정을 위한 거주 전용 목적이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투기 세력의 활갯짓에 애꿎은 지역민들이 재산 가치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지경에 놓이게 됐다.더욱이 전국적으로 땅값과 건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뒤 좀체 뒷걸음치지 않고 있는 마당에 대구 수성구 일부 지역의 투기 행태 조짐으로 대다수 선의의 중산층 구민들이 정책적 지원에서 제외되는 상대적 손실을 입고 있다.지난 2017년 9월 6일 주택법 제63조에 의거, 국토교통부가 성남시 분당구와 대구 수성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 뒤 1년 6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서울 위성도시 대다수에서 폭등한 아파트나 땅값과는 달리 극히 일부 지역인 수성구 범어동 일대를 표본으로 삼아 구 전역을 대상으로 한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정부의 매우 경직된 부동산 정책이라는 평가를 낳을 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의 민심을 외면하게 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다.이 때문에 현재 수성구민들이 겪는 가장 고통스러운 사항 중 하나는 주택담보대출 제한으로 대출금액이 시가의 30%만 적용, 사실상 재산권을 극도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더불어 재건축이나 재개발에 해당하는 구민들은 조합원 지위 양도에 제약을 받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이 밖에도 아파트는 소유권 이전 등기일 이후까지 분양권을 되파는 전매를 할 수 없다는 점도 개인 재산권의 심각한 침해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지난 2003년 참여정부 이후 지방에서 유일하게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수성구는 실제 투기에 걸맞은 다양한 현상이 나타난 지역이 아닌, 극히 일부 지역의 아파트 폭등을 두고 침소봉대한 정책 입안자의 좁은 선입견에서 비롯된 과도한 조치임을 새삼스레 밝혀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대구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가뜩이나 현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지경인데 이에 덧붙여 수성구의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정확한 실태 조사와 함께 정책 결정 과정이 일부가 아닌 수성구 부동산 전체에 대한 정밀한 조사와 함께 사실 여부를 확인해 구민들의 상대적 피해의식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얼마 전 대구를 다녀간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구시장의 건의 사항 중 수성구에 대한 투기지역 지정 해제 안건이 혹여 포함되지 않았을까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으나 끝내 이에 대한 소식은 전해 들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신설 공항도 중요하고 물산업에 대한 금전적인 지원도 놓칠 수 없는 매우 중차대한 현안들이다. 그러나 이 같은 거대 사업들은 수조원의 세금을 쏟아부어야 가능한 일인데 반해 투기지역 지정 해제 건은 수성구민 개개인의 촉각 선 재산권 문제이며 금전적인 지원이나 세금 한 푼 들이지 않고 위정자의 결단으로 단박에 해결되는 집단 민원 사항임을 대구시장은 왜 모르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족쇄는 풀어 줄 때 후한 인심이 생겨나고 쌀독은 쌀이 채워질 때 제 기능을 다하는 원리를 다시 한 번 대구의 위정자들이 깨우치기를 간곡히 기대한다.

2019-04-30 02:30:00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하불식육미(何不食肉糜): 쌀이 없으니 고기죽을 먹으라고

진나라의 혜 황제(晉惠帝) 사마충(司馬衷)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무능한 군왕으로 꼽힌다. 궁에서 자란 그는 세상 물정 모르기로 유명하다. 백성들이 쌀이 없어 굶어 죽는다고 하자 그럼 "왜(何) 고기죽(肉糜)을 먹지 않느냐(不食)" 했다고 한다. 배고픈 군중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는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중국 버전이다. 돈이 없다고 하는 아빠에게 "자동인출기에 다녀오면 되지"라고 하는 요즘 아이들을 빗댄 한국판도 있다.에피소드는 또 있다. 개구리가 울자 혜 황제가 물었다. "이놈들은 공적으로 우느냐, 사적으로 우느냐."(此鳴者 爲官乎 爲私乎) 누가 답하기를 "국유지에 있는 놈은 공적으로 울고, 사유지에 있는 놈은 사적으로 웁니다"라고 했단다. 이처럼 역사는 그에 관한 많은 웃음거리를 남기고 있다. 그에 관한 기록을 보면, 무능하다기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궁중에서 호의호식했으니, 쌀이 귀한지 고기가 귀한지 알 턱이 없다. 경험의 문제이지 재능의 문제가 아닌지 모른다. 이 때문에 그는 조롱의 대상이 된 게 억울할는지 모른다. 문제는 그가 본의 아니게 황제가 되면서부터였다. 세간의 일을 모르고 황제가 된 탓에 그는 외척과 황족들에게 휘둘리며 평생이 불운했다.그는 무능하지만 착했다. 한번은 반란군한테 잡힌 적이 있다. 반란군 병사가 그를 보호하고 있던 시중(侍中)을 죽이려 하자 "죽이지 마시오. 그는 충신이오"라고 애걸복걸했다. 병사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시중의 목을 베자 황제의 옷에 피가 튀었다. 나중에 황제는 옷을 갈아입으며 "그 옷에는 충신의 피가 묻어 있소. 씻지 말고 잘 보관해 주시오"라고 했다고 한다.백성의 삶을 모르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와 백성의 생각이 너무 동떨어져 있다. 지난주 '동물 국회'의 모습이다.

2019-04-29 18:00:00

김구철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부의 비밀 수학] 경우의 수

어떤 사건의 확률을 따질 때에는 '경우의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주사위를 던져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6이고, 특정 한 숫자가 나올 확률은 1/6이다. 두 번 던지면 경우의 수는 6×6=36, 특정 숫자가 반복해 나올 가능성은 1/36이 된다. 경우의 수가 커질수록 계산은 복잡해지고, 어떤 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게 된다.최근 한나라당에서 갈려 나간 당들의 진로를 놓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언론에 오르내린다. 경우의 수를 따져 보자. 바른미래당이 쪼개질지 말지, 자유한국당에 들어갈지 말지, 경우의 수는 4. 대한애국당이 한국당에 들어갈지 말지, 경우의 수 2. 한국당이 양쪽을 다 받을지, 어느 한쪽만 받을지 받으면 어디를 받을지, 양쪽 모두 안 받을지 경우의 수는 4.'경우의 수'는 4×2×4=32이므로, 3당 모두의 통합 확률은 1/32=3.1%로 거의 현실성이 없다. (한국+애국)만의 통합이나 (한국+바른)만의 통합은 확률이 (1/4)×(1/4+1/4)=1/8, 즉 12.25%다. 조금은 현실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칠 전 북한 김정은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북한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했다. 중국에 러시아가 끼면, 일본이 끼어들 것이고, 한국도 참여해야 한다. 북한 핵과 대북 제재라는 두 가지 이슈를 놓고, 각 국가는 4개의 선택지를 갖는다. 경우의 수는 북, 미 포함해 6개국에 4개씩의 선택지, 즉 6의 4제곱인 1천296이다. 6개국 사이에 합일점을 찾을 확률은 1/1천296, 0.00077%이다. 북한이 희박한 확률의 도박을 걸어온 셈이다.1990년대 6자 회담은 시간만 끌면서 아무 결과도 내지 못했다. 다시 그런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수학적 확률이 낮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는 말자. 확률에는 인간의 의지와 감정 요소가 배제돼 있지만, 인간의 의지와 감정은 작은 확률을 몇 배로 키울 수 있다.

2019-04-29 18:00:00

김문환 세명대 교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여인희생 조총기술 얻어 임진왜란 도발

1592년 4월 12일 쓰시마를 떠난 고니시 유키나가는 13일 부산진에 닻을 내려, 부산진 첨사 정발의 항전을 무력화시킨다. 14일 동래성으로 올라와 "전즉전(戰卽戰)부전(不戰)가아도(假我道), 싸울 테면 나와 싸우고 아니면 길을 비켜 달라"는 통첩을 보낸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전사이(戰死易)가도난(假道難),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고 답하지만 허무하게 무너진다. 24일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서 패하고, 29일 도순변사 신립은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다가 목숨을 잃는다. 마침내 5월 2일 수도 한양이 왜군 수중에 떨어진다.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4월은 이처럼 우리에게 임진왜란의 기억을 짙게 드리운다. 임진왜란은 조총(鳥銃)과 떼 놓을 수 없다. 일본은 어떻게 조총을 손에 넣었을까?◆태풍으로 표류한 포르투칼 상인 일본에 조총 전해조총은 하늘을 나는 새(鳥)를 떨어뜨린다는 명나라식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화승총(火繩銃), 혹은 철포(鐵鉄砲)라고 부른다. 겁 없는 사람을 '무데뽀'라고 하는데, 일본말 무철포(無砲)다. 총도 없이 목숨 내놓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일본이 철포를 입수하게 된 경위는 포르투갈과 맞물린다. 1543년 향료의 고장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를 돌아 필리핀으로 가던 포르투갈 상선이 태풍에 밀려 대만과 오키나와를 지나 일본 규슈 남단 가고시마 근처 다네가시마 섬에 표류한다. 당시 다네가시마 섬 지배자는 16세 청년 영주 도키다카(時堯). 그는 포르투갈 상인이 갖고 있던 조총의 위력을 간파하고 거액을 들여 2정을 사들인다. 이어 부하를 시켜 1년여 만에 자체 제작에 성공해, 상부에 바친다. 1544년의 일이다. ◆포르투칼 상인에게 시집간 효녀 덕에 기술 받아다네가시마 섬에 가면 철포 박물관에 일본 최초의 조총(사진)을 복원 전시 중이다. 이를 보고 나오면 도키다카의 동상 옆으로 '총효비'라는 작은 돌 기념물이 기다린다. 주인공은 와카사(若狹)라는 여인. 도키다카의 명을 받고 조총 제작에 나선 일본인이 방법을 몰라 고민 끝에 포르투갈 상인을 찾아간다. 포르투갈 상인은 그의 딸 와카사를 아내로 요구한다. 이 말을 들은 와카사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결혼에 응하면서 기술 전수가 이뤄졌다. 여인의 효심을 제물로 신기술을 얻었던 일본은 다네가시마 섬에 우주기지를 세워 운영 중이다. 우리의 나로도 우주센터와 같다.◆천주교도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 조선포로 세례포르투갈은 일본과 교류하며 1549년 천주교를 전파한다. 이어 일본의 소개로 1557년 명나라로부터 마카오를 무역 거점으로 할양받는다. 이런 우호 관계 속에 일본 내 천주교 신자가 급격히 늘어난다. 1579년 15만 명까지 늘어난 일본의 천주교도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 세례명 아우구스티노다. 그는 1만8천 명의 천주교 신자로 구성된 1군을 이끌고 조선에 침략해 부산진과 동래부를 초토화시킨다. 세스페데스를 비롯한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도 종군신부로 데리고 와 2천여 명의 조선인 포로에게 세례를 준 것으로 기록된다.◆세계에 문 연 일본, 당쟁에 문 닫은 조선일본이 세계와 만나며 전쟁을 준비할 때 조선은 1590년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 일행 200여 명을 조사차 일본으로 보낸다. 황윤길은 일본이 많은 병선을 준비하고 도요토미의 눈이 빛나고 담략이 있어 보여 대비가 필요하다고 보고한다. 하지만 선조는 서인이던 정사 황윤길과 달리 동인이던 부사 김성일의 반대의견을 따른다. 그것도 모자라 전쟁을 대비하던 관리들을 문책한다.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던 일본과 정반대인 조선의 꽉 막힌 당쟁 속에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로 몰렸다. 무한 경쟁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훈으로 다가온다.

2019-04-29 18:00:00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서문시장의 어린이 노숙인

'지난 4월 이래 부후생과에서 정리된 금년의 행려병 사망자수를 들쳐보면 179명중 1세 이상 12세 미만의 남녀고아의 사망률은 총수의 약 40%를 점령하고 있다는 것을 보더라도 참혹한 내일의 운명이란 한숨과 눈물이~.'(남선경제신문 1947년 11월 15일)해방의 환희는 짧았다. 기쁨이 사라진 그 자리는 가난과 굶주림이 치고 들어왔다. 그렇다고 그 고통이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적용되지는 않았다.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비참하게 다가왔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헤매는 사회적 약자의 첫 줄에는 부모 없는 어린이가 섰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고아의 참상은 해방 이태 뒤에도 쭉 이어졌다. 행려병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가 12세 미만의 고아였다.아이들이 모두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된 건 아니었다. 제 한 몸 지킬 힘조차 버거운 부모로부터 내팽개쳐진 부랑아도 적지 않았다. 아이들은 낮에는 거리에서 물품과 금전을 구걸했다. 밤에는 대구역 대합실이나 공회당으로 몰려들었다. 찬 바닥에 거적을 이불 삼아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이 날마다 100명은 되었다. 또 서문시장과 남문시장에서는 허기를 채우러 헤매다 해가 지면 한뎃잠 자는 아이들이 150명은 넘었다. 말하자면 어린이 노숙인이었다.배곯는 아이들에게 공부는 사치였다. 당시 국민학교로 불렀던 초등학교 아동의 절반 가까이는 아예 학교에 가는 걸 포기했다. 게다가 학교에 나온 아이들 중에도 태반은 도시락을 싸 오지 못했다. 점심만이 아니었다. 점심을 굶는 아이 열 명 가운데 둘은 아침에 죽을 먹고, 반수는 저녁에 죽을 먹었다. 아침에 죽을 먹고 점심마저 굶거나, 점심을 굶고 겨우 저녁에 죽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는 식이었다.대구 지역 초등학교의 비참한 사정은 엇비슷했다. 점심을 굶는 학생의 비율이 칠성초교 80%를 비롯해 비산초교 60%였다. 칠성초교 인근에는 전재민 등을 위해 임시로 지은 움막집인 토막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식량 부족이 한층 심했음을 짐작할 만하다. 그나마 대구에서는 남산초교의 사정이 나았다. 상업이 비교적 활발했던 시내 중심지와 가까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이유일 게다.경북은 어땠을까. 영덕의 경우 3월에 90%였던 초등학교 아동의 출석률은 배고픔의 고통이 커지자 반 토막이 났다. 출석한 아이들 셋 중에 둘은 도시락을 못 가져왔다. 울릉도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4월이 되자 학교로 등교한 초중등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산나물로 연명하며 쌀을 싣고 오는 배의 뱃고동 소리에 목을 매는 일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럴진대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었겠나.아이들이 잘 먹고 당당하게 기를 펴고 성장하도록 하는 일.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무상급식과 무상교복에 발끈하고 고등학교 무상교육에 펄쩍 뛸 일이 아니다.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예산의 헤픈 씀씀이가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다시 5월이다.

2019-04-29 18:00:00

장동희 새마을세계화 재단 대표이사/전 주핀란드 대사

[세계의창] 국민이 행복한 나라, 핀란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룩하자마자 발생한 극심한 좌우 대립 정국에서 좌익을 제압하고 자유민주공화국의 기틀을 확립한 인물. 식민지 시절 종주국 군 장교를 지낸 인물.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통치로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국가의 안위를 지키고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선진국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인물.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위대한 정치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 핀란드의 '만네르하임' 장군과 '케코넨' 대통령 이야기다.1909년 이래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오던 핀란드는 1917년 12월 6일, 러시아 혁명을 틈타 독립을 선언한다. 그러자 핀란드의 좌파가 들고일어난다. 친볼셰비키파인 홍(紅)군과 친원로원파인 백(白)군 간의 충돌은 내전으로 치닫는다. 이때 백군을 지휘하여 홍군을 진압한 이가 카를 구스타프 만네르하임 장군이다. 러시아 제국군에서 중장까지 역임한 만네르하임은 1919년 초대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실권을 행사하며 정국을 안정시키고 헌법까지 제정한다.1939년 소련이 침공해 왔을 때(겨울전쟁), 그리고 재개된 계속전쟁(1941 ~1944)에서 핀란드군을 이끌고 소련에 맞서 싸운 사람도 만네르하임이다. 특히 겨울전쟁은 핀란드의 10배 가까운 사상자를 냄으로써 소련에는 수치스러운 전쟁으로 기억된다. 반면에 핀란드는 패하기는 했으나 겨울전쟁을 자랑스러운 전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기억의 중앙에 만네르하임이 위치하고 있다. 계속전쟁 종전 1개월 전인 1944년 8월 대통령에 취임한 만네르하임은 핀란드의 주권은 지켜낼 수 있었지만, 가혹한 휴전 조건과 일부 영토 할양, 그리고 막대한 전쟁 배상 책임을 져야 했다. 영토 할양으로 발생한 난민 문제를 비롯한 전후 처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만네르하임은 1946년 3월 사임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만네르하임은 핀란드의 국부(國父)로 칭송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3성 장군까지 지낸 그의 과거 경력을 문제 삼는 핀란드인은 없다. 그런 경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수많은 전투를 치러 낼 수 있었겠는가?1956년 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우르호 케코넨 대통령은 1982년까지 무려 26년간 권좌에 머문다. 1968년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자, 케코넨은 국가안보가 위협받는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73년 1월 자신의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장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런 과정에서 야당 세력을 무력화시킨 케코넨은 1975년 헬싱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를 성공리에 개최함으로써 권력의 절정을 맞으며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케코넨 대통령은 야당 탄압 등 장기간에 걸친 제어받지 않는 권력 행사로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주변 국가들이 소련에 병합되거나 위성국가화될 때, 핀란드가 독립과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시장경제 체제를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이 케코넨 대통령 덕분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핀란드인은 드물다. 즉 핀란드인은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통치라는 과(過)보다 국가의 안위를 지켜내고 국가발전을 이룩한 케코넨의 공(功)을 훨씬 더 높이 평가한다. 1986년 케코넨이 사망하자 핀란드 우정청은 케코넨을 기리는 조문(弔問) 우표까지 발행한다. 그 이름을 따서 명명한 '우르호 케코넨 국립공원'도 있다.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 해법네트워크'(SDSN)는 핀란드를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했다.독립 초기 이념 대립으로 내전까지 겪었지만, 아픈 과거를 들춰 내어 생채기를 내기보단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나라. 과거 흠이 있더라도 공이 더 큰 인물은 그 공을 높이 사서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하는 나라. 국민 대다수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훌륭한 정치가(stateman)를 가진 핀란드, 그래서 핀란드인은 행복한가?새마을세계화 재단 대표이사/전 주 핀란드 대사

2019-04-29 11:16:00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매일춘추]키다리 아저씨

매월 15일은 중요한 날이다. 중간점검일도 아니고 월급날은 더더욱 아니다.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해 책상 위에 메모해 둘 만큼 깜박하면 안된다. 이 날은 한 후원자가 대구예총에 기탁, 지정한 성악가의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는 날이다. 대구예총 통장은 단지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덩달아 뿌듯해지는 시간이다.어쩌다 기부도 쉽지 않은데 매월 정기적으로 적잖은 금액을 후원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릴 적 소설 '키다리 아저씨'를 읽으며 여주인공 쥬디를 부러워 했었다. 물적 심적으로 든든한, 더군다나 키도 큰 롱다리 후원자가 쥬디의 꿈을 키워줬으니. 익명은 아니지만 키다리 아저씨처럼 예술인들에게 조력자가 되어 주는 사람을 '패트런', 기업을 '메세나'라고 부른다.패트런(patron)은 pater(아버지)에서 유래된 라틴어가 어원이다. 우수한 예술가의 재능을 인정해 기꺼이 보호자가 된 사람들이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알아 본 교황도 패트런이다. 우리나라 역시 안평대군이나 신재효 같은 패트런이 없었다면 안견의 '몽유도원도'도, 판소리 열두마당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프랑스어인 메세나(mecenat)는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기업들의 활동을 뜻한다.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트 황제의 대신인 가이우스 마이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마이케나스는 당시 문화계를 이끈 예술인들의 열렬한 후원자로 예술부국을 이끌었다고 한다.삶이 윤택해지고 예술꽃을 피우려면 개인이든 기업이든 정부이든 어떤 형태로라도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 대구예총은 건축, 국악, 무용, 문인, 미술, 사진, 연극, 연예, 영화, 음악 등 10개의 예술문화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비영리 단체인 예총의 재원 조성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 중 아트 메세나의 후원금은 재원 마련에 있어 가뭄의 단비가 된다.경기침체와 장기불황 속 메세나 활동은 수익보다 지출을 양산한다. 일부에서는 기업체의 미술품 후원을 투기로 보기도 한다. 문화접대비도 위축되었다. 그나마 미술품 구입시 세제 혜택이 개선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패트런이나 메세나는 꼭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아직은 '사회 환원'을 내세우는 기업 의존률이 높지만 미술 소품을 사고 공연을 관람하는 등 예술소비 행위는 개인후원자의 소중한 습관이다. 무료 티켓이 익숙한 예술현장에서는 감상 후 소액이라도 기부하는 방법도 좋겠다. 예술인을 발굴해 지원하면 그 예술인은 다시 시민들에게 재능을 나눌 것이다. 맛깔난 저녁식사에 공연 한 편을 패키지로 묶어 접대하는 것,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 책을 사는 일로도 훈훈한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김윤정 대구예총 편집장

2019-04-29 11:07:50

박방희 대구문인협회장

[기고]대구 중앙대로를 '2·28민주대로' 로!

우리는 아직도 우리 도시의 남북을 잇는 거리를 중앙로라 부른다. 나아가 일제 잔재인 중앙통이라고도 한다. 짧게는 명덕네거리에서 대구역전까지의 거리이고 전체로는 대명동 주한미군 캠프워커와 북구 침산동 구 경북도청 교차로까지 남북을 잇는 거리이다. 그런데 중앙로라는 거리 이름은 전국에 81곳이나 있다. 서울을 비롯한 우리나라 방방곡곡 심지어 제주도에도 2곳의 중앙로가 있다.흔하디 흔한 거리명인 중앙로를 우리도 꼭 써야 할까? 81곳의 중앙로에는 대구의 중앙로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도로명 주소 사업을 통해 2004년 중앙대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앙대로는 우리만 쓰는 이름인가? 그렇지 않다. 부산, 안산, 창원, 오산 등도 쓰고 있다. 놀라운 것은 81곳의 중앙로 외 12곳의 중앙로가 더 있었다고 한다. 별 의미 없는 이름 대신 연고가 있거나 참신한 새 이름으로 바꾸어서 그렇다. 이를테면 의정부시 중앙로는 행복로, 성남시 중앙로는 산성대로, 마산시 중앙로는 3·15대로로 바꾸었다.그럼 우리는 왜 아직도 중앙로인가? 역사성도 있고 정체성에 맞고 시민이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이름이 없어서인가? 아니다. 1960년 대구 중앙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바로 답이 나온다. 우리나라 민주운동의 시발점이 된 2·28민주운동의 힘찬 행군이 바로 대구 중앙로에서 시작되지 않았는가? 현대사에서 그처럼 중요한 사건을 왜 우리는 주체적으로 의미 부여를 못 하고 적극적으로 기리지 못했을까? 마산의 경우처럼 우리도 '2·28민주대로'로 이름 바꿀 생각을 왜 못 했던가?2·28민주운동은 1960년 대구 지역 8개고 학생들이 불의와 부정에 항거해 자발적으로 일으킨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 민주화운동이자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한국 민주화운동의 효시이다. 지난 2월 28일, 2·28민주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2·28민주운동' 기념식이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바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기념사에서 "예로부터 대구는 정의와 애국의 고장이며 일제강점기에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 대구경북"이라고 말하고 "그런 대구 정신이 2·28로 표출됐고 대구의 228 거사는 전국으로 번졌으며, 3월 8일에는 대전에서, 3월 15일에는 마산에서 의거가 이어졌고, 마침내 4·19혁명으로 장엄하게 불타올랐다"고 말했다.내년이면 2·28부터 4·19에 이르는 일련의 민주화운동 60주년이 된다. 정부에서도 60주년을 기리는 의미 있는 조치들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도 그에 앞서 2·28민주운동을 기리는 자발적이고도 주체적인 일들을 준비하는 것이 옳다. 그 하나로 대구 중앙대로를 '2·28민주대로'로 명명할 것을 제안하는 바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큰 걸음이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딱 맞는 거리명이 아닐 수 없다. 이웃한 2·28기념중앙공원, 국채보상공원과 이육사 생가터 및 이상화, 서상돈 고택, 3·1만세운동길 등 대구 근대골목과 연계된 '2·28민주대로'는 전국의 학생이나 뜻있는 젊은이들의 순례 코스, 톺아보기 코스의 명소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2019-04-28 14:49:31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이건 명백히 불법이다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 이후 국회에서 험한 꼴은 다시 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선진화' 이름이 붙었다고 곧바로 선진 국회를 기대한 건 물론 아니다. 그냥 법 취지대로 몸싸움 대신 말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할 것이라 믿었다.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을 엄격히 제한한다. 천재지변, 비상사태 혹은 여야 합의 외에는 불가하다.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여당과 이를 막으려는 야당 사이에 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신속처리안건 지정 제도, 이른바 패스트트랙은 그에 대응하는 법안 처리 방식이다. 여야 합의가 안 될 경우 의장의 강행 처리 대신 상임위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 동의로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게 된다.멱살잡이와 주먹다짐은 기본이요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 최루탄 등이 난무하던 국회 풍경을 바꾸기 위해서다. 국회법에 처벌 조항까지 신설되었다. 선진화법은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주도로 만들어졌다. 효과도 있었다.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폭력 사태가 마지막 '동물국회'였다. 2016년 테러방지법 직권상정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통한 민주당의 의사 진행 방해가 있었을 뿐 몸싸움 없이 처리되었다. 그와 함께 '동물국회'라는 조롱도 사라졌다. 한마디로 패스트트랙은 국회법에 정해진 법안 처리 절차의 하나이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을 물리적으로 저지한 행위는 자신들이 만든 규칙을 위반한 것이다.국회법 위반은 이뿐이 아니다. 바른미래당과 문희상 국회의장은 의원 사·보임에 관한 국회법을 어겼다. 국회법 48조 6항이 문제의 조항이다. "(생략) 위원을 개선할 때 임시회의 경우에는 회기 중 개선될 수 없고, 정기회의 경우에는 선임 또는 개선 후 30일 이내에는 개선될 수 없다. 다만, 위원이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의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로 되어 있다.임시회 회기 중인 현재 (상임위) 위원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규정상 명백하다. 단서에 해당하려면 '위원' 자신이 질병 등을 이유로 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다. 2003년 만들어진 해당 조문의 입법 취지는 분명하다. 의원의 개인적 의사에 반해 강제로 상임위원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2001년 당시 한나라당 소속 김홍신 의원은 보건복지위 소속으로 건강보험 재정 통합이 소신이었다. 한나라당은 재정 분리 당론에 반대하는 김 의원을 환경노동위원회로 강제 사·보임했다. 김 의원이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에서 헌재는 '의원 개인의 소신'보다 당론을 강제할 수 있는 '정당의 권한'이 우선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 후 만들어진 게 국회법 48조 6항이다.앞서 본 대로 임시회 기간 등에는 의원 개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사·보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오신환, 권은희 의원을 강제로 사·보임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행위는 국회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를 허가한 문 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2017년 정세균 의장은 자유한국당이 요청한 김현아 의원의 사·보임을 거부한 바 있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한다는 이유였다. 당론도 아니고, 사·보임 요청서를 팩스로 제출하고, 의장은 병상에서 구두로 결재하고, 직전 의장의 선례와도 맞지 않고…. 갖은 꼼수까지 곁들인 것은 몸싸움 못지않게 '선진'과는 거리가 멀다.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손쉬운 양비론, 양시론이 아니다. 국회가 보이는 온갖 추태는 모두가 규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지 싶다. 선거제 개혁, 검찰 개혁, 독재 타도, 헌법 수호. 명분이야 얼마든지 댈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모두 스스로 정한 법과 원칙을 위반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이제라도 제 논에 물 대기식 해석을 멈추고 모두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언론은 다시 동물국회라고 비웃지만 국민은 웃고 싶지 않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자신이 규칙을 정하고 그것이 불리하더라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아니겠는가. 선진화는 멀어도 좋다. 어떤 이유라도 동물국회는 안 된다.

2019-04-28 14:46:10

김계희 그림책 화가

[광장] 어린이 미술 공모(共謀)전

미술을 좋아하는 준혁이는 혼자서 그림을 그렸다. 언젠가 한번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있는데 매번 누군가가 그린 그림을 따라 그려야 했고, 특히 대회에 앞서 선생님이 그려준 그림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을 해야 했다. 그게 싫었던 준혁이는 미술 대회에서 학원에서 연습한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그린 그림을 제출했고 준혁이는 상을 받지 못했다. 연습한 것을 그려 제출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이 누군가의 검열을 받고 질책을 받게 되는 고통스러운 경험은 준혁이가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봄과 함께 어린이 미술 공모전의 시즌이 왔다. 많은 학원에서 선생님들은 여러 종류의 공모전을 준비하는 일에 바빠지고, 아이들 또한 선생님들이 구성한 그림을 외우는 일에 바빠진다. 소도시에서 큰 규모의 어린이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은 미술 대회에서 아이들에게 상을 받아주지 않으면 학원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 말은 대회에서의 입상을 위해 교사가 구성한 그림을 아이들이 따라 그리게 하고 외우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 습관이 된 아이들은 자신이 다루어 보지 않은 주제가 제시될 경우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이런 폐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설 교육 현장에서 행해지는 수업 방식은 아이들의 창의력을 사장시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고, 부모님들 또한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주고자 하는 이유로, 그렇게 받아 온 명예롭지 않은 상장을 묵인한다. 재능이 있는 학생을 발굴하기 위한 공모전의 본래 취지와 달리 상당수 미술 공모(公募)전이 어른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공모(共謀)의 장으로 변질된 지 오래인 듯하다. 이러한 순환의 원인에는 그림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의 선별 방식 또한 크게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다 어른들의 생각을 그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매년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를 해야 하는지, 그걸 하는 의미가 무언지 모르겠어요."이 말은 이제 아홉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내게 했던 말이다. 교육에 있어 어른들의 개입은 지나치다 못해 때로는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도 많은데, 그 과정에서 아이의 순수성과 창조성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지 아랑곳없는 무책임한 교육 현실은 아이들의 삶 전반에 스며들어 그들의 가치관을 흔들고 있다.이 같은 순환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공모전에서 심사를 담당하는 심사위원들의 통찰력 있는 눈으로 어른의 개입이 들어간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을 구별해서 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의 그림에 교사들의 개입은 줄어들 것이고, 부모님들은 아이가 받아온 정직한 상장에 대해 안심하고 칭찬과 격려를 줄 수 있을 것이고, 아이 또한 자신의 성과에 정당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세상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쪽으로 흐른다. 오늘의 교육 현실이 우리의 동의만큼의 결과라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것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우리가 그 질문 속에 항상 머무를 수 있다면 우리는 오류를 바로잡아갈 수 있고, 교육은 진실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19-04-27 02: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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