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이현석

[매일춘추]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요즘 IT기술 등의 급속한 발전으로 일상 생활이 놀라울 만큼 편리해지고 간편해 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편히 집에서나 직장에서든 어느 곳에서나 대부분의 일들을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영화나 공연을 선택하는 일에서도 어떤 제작진과 출연진이 참여하고 출연하는지 등의 사전 정보를 검색을 통해 알 수 있고, 그 공연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이나 직접 관람을 한 관람객들의 생생한 공연 후기 등을 접하게되고 나아가 어떤 자리에서 관람하는 것이 좋은지 등의 세세한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더욱 편리하고 신속, 간편하게 원공연을 선택하고 좌석을 예약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하지만 혹시 그러한 내면에 다른 역작용을 없는 것일까. 이번 설연휴에 장모님을 위해 열차승차권을 예매하게 되었다. 물론, 미리 예매를 못한 탓에 원하는 열차는 이미 좌석이 다 매진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편히 앉아 스마트폰의 어플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반환되는 표의 좌석을 찾아 낸 것이다. 이게 왠일인가. 예매한 표를 장모님께 전달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어플로 예매한 승차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승차권을 전달 받을 사람의 스마트폰에 해당 어플이 설치되어 있어야하고 또 사전에 회원 가입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요사이 기차역에 가보면 매표소에는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노령층분들만 예전처럼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명절, 연휴, 주말 등 열차 이용객이 많아 좌석을 구하기 힘든 시기에는 더욱 노령층들만의 표를 구하기 위한 줄은 길어진다. 장시간 줄을 서서 좌석이 나기만을 힘겹게 기다리고 있는 노령층들의 좌석을 편히 앉아 문명의 이기(利器)를 적극 활용하여 쏙쏙 먼저 채가고 있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과연 이러한 편의성은 누구를 위한 발전인 것일까. 한정된 재화(財貨)에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부분적 편의성을 제공하는 것은 일종의 특혜(特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 편의성의 사각(死角)에서 의도치 않게 자신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는 피해자가 만들어지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 현상을 막기위해 우리는 발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개선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요즘 영화, 연극, 드라마 등의 예술장르에서 신체적 장애에 기인하여 관람을 가로 막았던 장르적 장벽을 허물어 원하는 장르의 공연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베리어프리(barrier-free)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장애물을 없애는 활동이 신체적 장애에 의한 장애물의 허물기 차원을 넘어 더욱 확대된 영역에의 장애물을 없애는 의미로 발전 되어야 할 것이다.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2019-02-07 11:08:27

이재수 이재수한의원 원장

[기고] 행복한 노년의 삶

연방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79), 연방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70), 연방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6), 미 상원의원 중 최고령인 다이앤 파인스타인(87), 연방 하원의원 액신 워터스(81), 하원의원 마시 캅터(73), 하원의원 도나 셀레일라(78)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움직이게 하고 떨게 하는 '그래니(Granny할머니) 파워'다.미국 정가를 뒤흔드는 '그래니 파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래니가 미국을 움직인다"는 표현은 허언(虛言)이 아니다.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완전히 새롭고 더 강한 노년 여성 세대가 도래했다"고 보도했다. NYT가 분석한 '그래니 파워'는 '고령화사회'와 1960, 70년대 미 여성 권익 운동을 경험한 세대라는 공통의 분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2017년 전 세계를 뒤흔든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영향 등으로 노년 여성 세대가 등장한 것이 특징이라는 분석이다.그리고 지난 6일 '더 와이프'(The Wife)의 주연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은 72세의 배우 글렌 클로스, 미국 CBS 사장 수전 지린스키(67) 등 영화언론계 등에서도 두각을 보이는 '할머니 파워'의 활동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역사상 유례없는 '할머니 파워'를 자랑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건강은 물론이고 열정을 가지고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며 무한 긍정의 마인드를 지닌 영원한 청춘인 셈이다.반면, 한국은 정치·사회·문화적 영향으로 '그래니 파워'가 성숙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어르신들은 "아프신 데 없냐"고 물으면 대부분 나이 들면 그렇지 하고 괜찮다는 반응이다. 정말로 건강한 것이 아니라 '안 아픈 것이 도리어 이상하지 않나'고 체념하듯이 말씀하신다.우리 사회 노인들의 일반적인 관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 태도로 인해 최근 한국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노인들이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65세 노인 51%가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으며, 2개 이상의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비율은 22%, 결과적으로 73% 이상의 노인이 2개 이상의 만성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내용이다.그리고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작년 12월 30일 중앙치매센터가 밝혔다. 이는 2016년 6월부터 1년간 전국의 60세 이상 5천5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다. 한편 2018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유병률은 10.2%라고 통계청은 추정했다. 노인 치매 유병률이 10%를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에서 60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7.2%로 나타났다. 또한 치매 위험은 여성(1.9배), 무학(4.2배), 문맹(5.9배), 빈곤(4.7배), 배우자 사별(2.7배), 이혼 또는 별거(4.1배)일수록 높게 나타났다.행복한 노년의 삶을 위해서는 규칙적인 운동이 기본이다. 여기에 체질에 맞는 균형 잡힌 음식 섭취로 몸을 관리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우리 각자의 책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래니 파워'를 기대해 본다.

2019-02-07 10:18:24

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스타트업 스토리] 캄쾀바 vs 머스크

'윌리엄 캄쾀바'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말라위의 14살 청년 이야기다. 중학교를 중퇴한 캄쾀바는 전기에 관한 책을 탐독한 후 버려진 재료를 활용하여 풍력발전기를 만들었다. 그는 유명해졌고 '테드'(TED) 강연에도 출연해 "나는 도전했고 결국 해냈다"라는 말로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책까지 펴내, 일약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청년의 빛나는 의지, 불굴의노력은 어설픈 풍력발전기에서 멈췄다.지구 반대편으로 가 보자. '페이팔' '테슬라' 등을 창업한 엘론 머스크는 종전에 한 번만 사용하고 버렸던 개념인 '로켓 추진체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의 실현에 도전했다. 캄쾀바가 만들어낸 풍력발전기보다 더 황당무계한 아이디어였지만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용해 사업화까지 성공하였고 국내 차세대 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사용할 정도로 대중화되었다.최근 청와대에서 '축적의 길'이라는 책을 설 선물로 직원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의 2017년 저서 '축적의 길'은 창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특히 윌리엄 캄쾀바와 엘론 머스크의 예를 들며 '창업가 정신'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이정동 교수는 말한다. 혁신적인 사고와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창업가 정신'은 먹고살기 위해 무엇이든 감내하는 개발도상국이 더 치열하다고. 그러나 '창업가 정신'의 뛰어난 결과물은 '스타트업 생태계'가 구축된 선진국에서만 만들어지는 게 현실이다. 혁신이 부족하고 창의 인재가 모자란다는 푸념보다 축적된 산업 자산을 '스타트업 생태계'로 확장하는 노력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고도화된 산업 자산이 흩어져 있는 대구경북 지역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서둘러 네트워크화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경덕 컴퍼니비 대구경북센터장

2019-02-06 19:30:00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같이&따로] 전투에서 지지 않는 전략

황금돼지해의 첫 달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 중 하나는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기 의혹일 것이다. 모방송사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촉발된 손혜원 의원의 투기 의혹 논쟁은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 논란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런데 손의원의 투기 의혹과 관련된 일련의 전개과정을 보면서 '전투와 전략'이라는 단어가 연상되었다. 전투에서 이기지 못해도 적어도 지지 않는 전략을 아는 것이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자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손혜원 의원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행동을 보면서 하게 된 생각이다.문화유산을 지키고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사재를 털어 구도심을 살리려 하였다는 손의원의 주장에 대해 국회의원의 지위를 이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노린 투기라는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손 의원은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지정된 목포 구도심에서 손의원 자신과 재단·친척·지인의 명의로황금돼지해의 첫 달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 중 하나는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기 의혹일 것이다. 모 방송사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촉발된 손 의원의 투기 의혹 논쟁은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 논란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손 의원의 투기 의혹과 관련된 일련의 전개 과정을 보면서 '전투와 전략'이라는 단어가 연상되었다.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면 적어도 지지 않는 전략을 아는 것이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자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손 의원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행동을 보면서 하게 된 생각이다.문화유산을 지키고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사재를 털어 구도심을 살리려 하였다는 손 의원의 주장에 대해 국회의원의 지위를 이용하여 경제적 이익을 노린 투기라는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손 의원은 근대역사문화거리로 지정된 목포 구도심에서 손 의원 자신과 재단·친척·지인 명의로 건물 9채(22필지)를 구입하였다. 구도심 일대가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보다 건물값이 3배 이상 오른 것에 대해 개발이익을 노린 투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손 의원은 문화재 지정 시점보다 구매 시점이 더 먼저이며 투기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고, 일부 지역주민은 완전히 공동화된 이곳이 투기를 할 만한 곳인가라는 반문을 던지며 손 의원을 옹호하기도 하였다.손혜원-나경원 '목포 공방'투기 의혹이 터지고 일주일 뒤, 1월 22일 나 원내대표가 목포를 방문해 손 의원의 조카가 매입했다는 게스트하우스 창성장 앞에서 언론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내려간 나 원내대표는 거리를 잠시 거닐다 인터뷰만 하고 돌아가서 지역주민들의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나 원내대표의 목포 방문에 창성장 방문 전 목포시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나 원내대표는 '동작에서 태어난 충청의 딸 호남의 손녀'라는 말을 하였다는 기사만 쏟아져 나왔다.나 원내대표가 방문한 다음 날인 1월 23일, 논란의 중심이 된 목포의 나전칠기박물관 건립 예정 부지에서 손 의원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하였다. 역시 홍보 전문가답게 논쟁의 중심지에서 공격적인 내용으로 자신이 목포 구시가지의 주택들을 구입한 경위를 설명하였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을 입증하기라도 하려는 듯. 나 원내대표의 목포 근대문화유산거리 방문과 인터뷰, 그리고 손 의원의 동일한 장소에서 기자간담회. 두 사람 모두 정치인들로서 공간이 갖는 의미를 적극 활용하여 자신들 방식대로 보여주기 정치를 하였다.전투와 전략에 관한 바이블은 단연코 손자병법일 것이다. 손자병법 14번째 전략은 차시환혼(借尸還魂)이다. 죽은 영혼이 다른 시체를 빌려 부활한다는 뜻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여 싸움에서 이긴다는 전략이다. 손 의원은 의혹 제기에 따른 탈당, 차기 선거 불출마(박지원 의원 당선 저지를 위한), 100억원대 재산 목포 기부 약속 등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정치적 카드를 활용하여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였다.손자병법의 20번째 전략은 혼수모어(混水摸魚)이다. 물을 휘저어 고기를 잡는다는 말로 상대방의 전력이 약화되고 지휘가 제대로 되지 않는 혼란한 상황을 이용하여 승기를 잡는다는 계책이다. 나 원내대표는 손 의원의 투기 의혹을 권력형 비리로 확대하려는 전략을 확대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만 재조명받게 만들었다. 물을 휘저어 고기를 잡으려다가 도리어 물만 휘젓고 고기는 달아나 버린 격이다.수세 상황에서 공세로 전환국감에서 선동열 전 야구 국가대표 감독에 대한 질타나 기획재정부의 국채 발행 과정에 대해 내부고발을 했던 신재민 전 사무관에 대한 SNS 게시글로 인해 손 의원은 구설에 올랐다. 이번 투기 의혹도 정치인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정치인의 덕목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본다면, 지금까지의 전반전은 전략적 측면에서 일방적인 패배는 아닌 것 같다. 남은 후반전은 의혹을 가진 의원들과 국민을 상대로 어떤 전략으로 전투에 임할지가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19-02-06 19:30:00

권미강 프리랜서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BTS'에게서 찾은 '풍류'

올해의 입춘은 설 전날이었다. 새해가 되기도 전에 봄의 문턱에 다다른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로도 해석되는 황금과 복을 부르는 돼지가 결합된 황금돼지의 축복에 봄기운까지 함께 왔으니 안팎으로 기대감이 크다.농경 문화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첫 절기인 '입춘'은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한 해를 준비하는 날이기도 하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같은 입춘축(立春祝)을 써 붙이는 건 기본이고 어느 지방에선 입춘굿을 하고 농악대가 집집마다 다니며 흥겨운 풍악을 울리며 복을 비는 걸립(乞粒)을 즐겼다. 한 해를 여는 첫 절기부터 흥으로 시작하니 우리는 풍류를 즐기는 민족임에 틀림없다.대중음악으로 세계적인 한류를 이끌어낸 방탄소년단 'BTS'는 우리의 '풍류'를 제대로 알고 콘텐츠로 활용한 아이돌그룹이다. 그들의 노래 '아이돌'의 후렴구를 보면 '얼쑤' '지화자 좋다' 같은 추임새가 나온다. 안무도 전통 춤사위 형식이 가미됐다. '바이스톰'이라는 유튜버는 'BTS'의 국악 버전 '아이돌'을 일일이 분석한 미니 다큐 형식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그 핵심이 바로 '풍류'다.오고무에서 부채춤, 한량무, 탈춤과 사자춤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유의 춤과 접목시킨 'BTS'의 무대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퍼포먼스 자체다. '바이스톰'은 퍼포먼스 속에 기막히게 녹여낸 전통춤과 그 의미를 잘 풀어놓았다. 영어로 소개된 이 영상은 외국인뿐 아니라 전통을 잘 모르는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듯싶다. 노랫말에서는 홍익인간의 의미까지 찾아냈다. 풍류를 아는 민족, 그 자체로 풍류인 민족이 우리 민족이라는 걸 'BTS'는 노래와 퍼포먼스를 통해 세계에 알렸다.이른 봄의 문턱에 서서 세계 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BTS'의 성공을 보며 '풍류'라는 우리 민족의 DNA가 새삼 고맙기 그지없다.프리랜서 작가

2019-02-06 19:30:00

손인선 작 '진주 유등제'

[내가 읽은 책]고시조로 읽는 옛사랑/ 아름다운 사랑이 굽이굽이 맺혔어라/임형선, 채륜, 2018

오래전 교과서에서 만난 황진이의 시조를 다시 만나니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문풍지 우는 소리 들으며, 호롱불 아래서 읽었으면 더 좋았을 고시조집이다. 30년을 기다려 빛을 보게 된 200자 원고지 1,500여 장의 자필 원고가 더 감동시켰다. 이 원고를 쓰기 위해 기울인 정성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겠다. 자료를 찾고 비교하고 고어를 해석해낸 일 만도 대단한 일이다.이 책을 펴낸 임형선 작가는 1987년 '현대시조'로 등단해 '월간문학'과 '부산 MBC'에서 주최한 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동화, 동시조 등 50여 권을 출간했고 함께 지은 시집도 여러 권 있다.이 책의 구성은 1부, 평시조에서 유명씨와 무명씨로 나뉘고 2부 사설시조 엇시조에서 다시 유명씨와 무명씨로 나뉜다. 각 작품마다 원문, 해설, 어구풀이, 작품이 쓰인 배경까지도 소개하고 있어서 읽기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이 서평에는 우리말 풀이로 된 것만 실었다.바람도 불든지 말든지, 눈비도 오든지 개든지 나와는 상관이 없어라임께서 아니 와 계시면 어찌할 것인가 걱정하겠지마는우리 임께서 이미 오신 후이니, 바람이 불든지 눈비가 오든지 내 알바 아니다'무명씨'·고금가곡 192 재밌는 것은 유명씨의 작품은 대상이나 의미를 드러내는 부분도 있지만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표현이 많은 반면에 무명씨의 작품은 솔직하고 직접적이고 대범한 표현이 많다. 시조가 나온 지 오래되어 작자 미상인 경우도 있겠지만 일부러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읊은 시조도 꽤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복면가왕'이 있는데 이름이나 얼굴을 가리면 사람들은 훨씬 대담해진다는 게 진리인 듯하다.바둑이, 검둥이, 청삽사리 중에 저 노랑 암캐같이 얄미울까미운 임 오면 반겨 내닫고, 고운 임 오면 캉캉 짖어 못 오게 한다문밖에 개장사 가거든 칭칭 동여매어 주리라 '김수장金壽長'·교주 해동가요 543나도 모르게 깔깔 웃고 만 작품이다. 개도 질투를 하는가? 아니면 짓궂은 개인가? 주인 입장에서 보면 얄미울 만도 하리라. "개 사요~ 개 삽니다!"하는 개장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뭐든 눈치껏 살아야 귀염도 받고 제명대로 사는 법인데 사람도 동물도 더러 눈치 없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오늘도 날이 저물었도다. 저물면 다시 날이 샐 것이로다날이 새면 이 임 갈 것이로다. 가면 못 볼 것이니, 못 보면 그리워하려니, 그리워하면 병이 들려니, 병이 들면 살지 못하리로다병이 들어 내가(작자) 못 살 것 같으면 나와 자고가면 어떻겠는가'무명씨'·진본 청구영언 506그리워하는 마음은 처음엔 작았더라도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진다. 그렇게 되면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사설시조에는 같은 사랑을 읊더라도 앞부분의 평시조보다 훨씬 자유분방하고 외설적이다. 현대시나 소설에서보다 더 노골적인 표현이 상투 틀고 뒷짐 지고 다니던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한시미학산책'이나 '고문진보' 같은 책이 동양적인 정신을 배울 수 있다면 이 책은 우리 선조들의 일상에 좀 더 깊이 들어가 그들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손인선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2-06 15:51:04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세이렌의 유혹

그리스의 도시국가 중 하나였던 이타카 왕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돌아올 때 죽을 고생을 하고 10년 만에 겨우 귀국한다. 트로이 전쟁은 웃기지도 않는 일로 시작이 된다. 멍청한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가 아내 헬레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하게 되자 그의 형 아가멤논(미케네의 왕)에게 아내를 찾아 달라고 징징대며 하소연하여 일어난 전쟁이다. 그리스 연합군은 10년 동안 트로이에서 고전을 하다 나무 말을 만들어 성에 침투하는 묘책을 써서 겨우 이기게 되고 집나간 여자 헬레네도 되찾게 된다. 연합군의 모든 왕들은 종전 후 바로 귀국을 하지만 오디세우스만은 쉽게 돌아오지 못한다. 오디세우스는 귀국 항해 중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거인 애꾸눈 폴리페모스에게 잡혔을 때 거인의 한개 남은 눈을 불에 달군 말뚝으로 찌르고 도망한 사건 때문에 일이 커진다. 그리스 신들 중에서도 상위 계급인 포세이돈 아들의 눈을 완전봉사로 만들었으니 저주받는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귀국 도중에 식인 거인족을 만나 그의 병사들이 많이 잡아먹히는가 하면 구사일생 몇 안 남은 군인들은 요정 키르케를 만나 마술에 걸려 돼지가 되기도 한다. 화부단행(禍不單行), 운 나쁘게도 몇 안 되는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세이렌(영어로 사이렌) 자매들이 사는 안테모사 바위 옆에 까지 가게 된다. 요정 세이렌들은 강의 신 아켈로스와 무사 여신 멜포메네의 딸들로 페이시노에, 아글라오페, 텔크시에페이아 등이다.이것들의 모습은 그리스 때는 여인의 얼굴에 새의 몸통과 날개, 다리를 지닌 모습으로 그려지고 로마시대에는 몸과 얼굴은 여인이지만 새의 다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모습이다. 중세시대 후반 부터 이 새의 복합체에서 물고기의 꼬리가 합쳐진 인어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세이렌들은 미모에다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항해하는 선원들을 유혹해서 잠들게 한 다음 잡아먹거나 죽이는 잔인한 괴물들이다.오디세우스는 항해 중에 아이아이라는 섬에서 마녀 키르케를 만나 1년간 동거하고 헤어지는데 떠날 때 마녀가 세일렌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선원들은 귀를 밀랍으로 단단히 틀어막게 하고 오디세우스는 돛대에 손과 발을 밧줄로 묶은 덕에 세이렌들의 유혹을 받고도 다가가지 않아 난파하지 않고 귀국을 하게 된다. 대구는 한국 동해의 배후도시일 뿐인데 여기저기 그리스 지중해의 세이렌의 고혹(蠱惑)적인 노랫소리가 사이렌처럼 울린다. 반반한 거리에는 세이렌의 그림이 그려진 많은 커피 집이 있다. 그 가계의 상호도 소설 백경(白鯨)의 선원 이름인 스타벅스인데 본사가 항구 도시 시애틀에 있어선지 모두가 바다와 관계있는 이름들이다.세이렌이 노래를 부르면 뱃사람들은 그들의 목숨을 바쳤지만 대구 세이렌이 노래를 부르면 시민들은 돈을 갖다 바친다. 깔끔하고 고급스런 이 집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나도 어쩐지 고뇌에 찬 지성인처럼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남자들은 세이렌의 미모와 노래에 혹해 모이고 여자들은 스타벅스의 근육질 매력에 모여든다. 사랑방이 없어진 현대의 메마른 도시에는 바다 내음나는 항구와 성욕이 진동하는 요정과 오디세우스의 용맹정진의 향기로 가득한 차집이 있다. 시민들은 리듬 엔 블루스를 들으며 자존(自尊)을 컵에 담아 마신다.권영재 전 대구적십자병원장

2019-02-06 15:36:53

천영식 kbs이사

[새론새평] '샌님 황교안'이 '무적황대'로 거듭 나려면

데뷔 오디션 무난하게 치렀지만꽃가마 원하는 샌님 이미지 여전한국당 넘어 우파의 희망 되려면국민과 황교안의 비전 공유해야설 연휴 주요 화제 중 하나는 자유한국당 2·27 전당대회였다. 정확히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이하 호칭 생략)의 정치적 생존에 대한 관심이다.황교안이냐, 아니냐? 선거가 이렇게 전개되면 여타 후보들은 쉽지 않은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선거 이슈의 각종 프레이밍을 황교안이 선점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선두에게 가산점을 주게 되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 역시 황교안에게 흘러가고 있다. 지나고 보면,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불출마를 압박한 게 황교안에게는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다. 마치 짜고 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펙터클한 안착을 도와주었다. 황교안이 슬쩍 입당해 출마선언을 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자격 시비에 휩싸일 수 있었고 재미도 없었을 것이다.정치 신인 황교안은 데뷔 오디션도 비교적 무난하게 치렀다. 입당의 타이밍이 적절했고, 출마선언문의 내용도 보수 유권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불과 한 달 전 황교안이 출마할 것이냐를 두고 호사가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좌고우면하다가 기회를 놓칠 것이라는 전망이 꽤 있었다. 이런 전망은 대부분 황교안의 고급스러운 이력에서 출발했다. 고물상집 아들이라고 하지만, 엘리트 공안검사 출신에다 무거운 중저음의 목소리만 보면, 바늘 하나 들어갈 게 없는 샌님 스타일이다. 또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기가 막히게 좋은 관운은 정치에서도 '꽃가마'를 원할 것이라는 예상을 만들고 있었다.김영삼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유명세를 탔던 이회창 전 총리도 정치 입문만큼은 선대위원장으로 영입돼 이듬해 대표로 추대됐다. 이게 꽃가마 정치인의 원조가 된 셈이다. 이회창 개인 이미지에 기득권이라는 딱지가 따라붙은 원인도 되었다. 황교안은 적어도 이와는 달랐다.한국당에서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컨벤션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좀처럼 꿈쩍 않던 당 지지율이 3%포인트 이상 올랐다. 조만간 30%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란 기대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게임은 이제 시작이다. 황교안 굳히기가 진행될수록 흔들기 역시 강해질 수밖에 없다. 후발 주자의 반격이 본격화하고 있다. 기울어진 언론 환경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황교안이 가진 내재적 결점이 튀어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그 모든 것을 떠나, 황교안의 비전에 대한 공유가 절실하다. 왜 정치를 하려고 하며,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상태다. 이건 황교안뿐 아니라 우파의 희망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풀어내야 할 시급한 과제다.미국 정치사에서 우파가 폭망했다가 빠르게 되살아난 두 번의 사례를 벤치마킹한다면, 레이건 혁명과 깅리치 혁명을 들 수 있다. 1974년 리처드 닉슨의 하야로 공화당은 적어도 한 세대 이상 집권을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6년 뒤 지미 카터라는 미숙한 약체 정치인을 만난 덕도 있지만 탄핵 이후 공화당 지지층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상태에서 로널드 레이건의 집권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강한 미국을 내건 레이건은 우파의 핵심 가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뛰어난 공감능력으로 대중에게 어필했다. 우파의 가치를 잘 구현할 인물이 아니라, 그 가치를 잘 전달할 사람이 필요했고, 위대한 커뮤니케이터(great communicator)가 된 것이다. 이미 보수층의 지원을 업은 만큼, 황교안을 거부하는 중도층에도 적극 어필하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황교안이 꿈꾸는 미래가 공동체의 비전과 다르지 않음을, 더 나아가 훨씬 더 정상적인 일임을 입증해야 한다. 한국당의 대표는 당이 아니라 공동체의 수호자이다.깅리치 혁명은 한국에서 우파가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하는 것과 같은 기적적(?)인 일과 관계돼 있지만, 당 대표가 된 이후의 과제이다. 이 역시 공감이 원칙이다.샌님 황교안이 누구도 꺾을 수 없는 '무적황대'가 되고 싶다면, 당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서 국민들에게 비전이 공유되어야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황교안이 꿈꾸는 세상을 잘 알지 못한다.

2019-02-06 13:38:47

이광우 이광우교통사고연구소 대표.

[기고] 교통사고 주범 과속, 현실적 대책 세워야

최근 과속 사고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민갑룡 경찰청장은 '시속 220㎞ 이상 주행을 금지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라고 했다. 경찰도 제한속도 100㎞를 초과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필자는 대구 동부경찰서 교통조사계 팀장으로 명예퇴직하기 전 현장에서 과속 사고의 극심한 피해를 직접 확인했다. 과속 사고는 다른 교통사고 유형보다 사건 수 대비 사망률이 월등히 높다. 도로교통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발생한 과속 사고 871건 중 사망은 206명으로 사망률이 23.7%에 달했다. 반면 다른 주요 교통사고인 중앙선 침범은 1만8천288건 중 사망 338명(사망률 1.8%), 신호 위반은 3만9천715건 중 사망 317명(사망률 0.8%)이었다.게다가 과속 사고는 실제 발생 건수에 비해 드러나는 수치가 적다. 과속 혐의 입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에는 과속 단속 카메라의 위치가 입력돼 아무리 빠른 속도로 운행하더라도 단속 지점에 이르면 차는 속도를 줄인다. 또한 기술의 발달로 ABS(Anti lock Brake System)가 기본 장착돼 스키드마크 같은 노면 흔적도 발생하지 않는다. 블랙박스 영상을 현장에서 확보하지 못하는 한 과속 혐의 입증은 쉽지 않다.이 같은 맥락에서 경찰청이 밝힌 대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시속 220㎞'는 과속의 기준을 오히려 높일 뿐이다. 100㎞ 이상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대구 교통사고 중 제한속도 100㎞를 초과해 발생한 교통사고는 수성구청 앞 택시 사망 사고 1건뿐이었다. 경찰청이 밝힌 기준은 과속 사고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과속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똑같다.기본적으로 교통사고는 운전자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다. 특히 과속은 제한속도를 초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운전자가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도 서울 시내에서 한 운전자가 경찰차의 추격을 피해 180㎞의 속도로 도주하다가 경찰차와 부딪치는 교통사고를 냈다. 운전자들은 과속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국가는 과속 사고에 대한 처벌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로 취급해, 과속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과속 사고는 형사처벌 이외에 운전면허 행정처분을 강화하고 과태료 대폭 상향, 차량 몰수 등으로 다스려야 한다. 과속 사고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제한속도를 시속 20㎞ 초과해 운전한 경우에 과속으로 처리된다.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첫째 제한속도 30㎞ 초과 시 음주운전과 같이 운전면허 정지 100일과 과태료 300만원, 둘째 제한속도 40㎞ 초과 시 운전면허 취소와 차량 몰수, 자동차의 가치가 하락했을 때는 과태료 1천만원, 셋째 제한속도 30㎞ 초과 시에는 무조건 가해자 처리, 넷째 고속도로 입출구 시간 확인으로 과속 단속 등이 있다.과속 사고 처벌을 이렇게만 시행한다면 운전자들은 제한속도를 30㎞ 이상 초과하는 일이 거의 없어져 과속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조치는 모든 국민이 안전한 교통 문화를 조성하는 지름길이자, 1년에 200명 이상을 살리는 효과를 불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2019-02-06 13:26:15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매일춘추]누구나 잘하는 것이 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진로에 대한 걱정을 많이 늘어놓는다. 그들의 고민 중 공통되는 하나는 우리 아이가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림을 월등하게 잘 그리거나, 운동을 특출나게 잘 하거나 음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으면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그 길을 지원해주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니 무엇이든 하다가 중간에 멈추게 될 것 같아서 결국은 가장 안전한 방법인 공부를 잘하도록 만들기 위해 더욱 더 사교육과 공부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그런데 세상에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문제는 비교하는 순간 잘 하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잘하는 것이 있어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보다 그것을 더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즉, 비교의 잣대를 '어제의 나'가 아니라 '남'이 되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무능한 인간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타고나기를 위인처럼 태어난 사람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극소수일 뿐 아니라, 심지어 그들조차도 첫 시작 때는 가능성이 보였던 것이 후에 꽃을 피운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을 때가 많다.종종 능력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결과가 금방 나타나는 것,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이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인데, 사실은 성실함, 끈기, 책임감 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능력이다. 천재 화가 고흐도 살아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고 늘 가난에 시달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2천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려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오늘은 내가 훨씬 남보다 뒤쳐지지만 경쟁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나의 갈 길을 쉬지 않고 걸어가면 그 언젠가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해서는 특별하지 않아보여도 그들이 원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기다려 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꽃을 피우는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따라서 떡잎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 자르기부터 하지 말고, 격려라는 양분을 채워주어 멈추지 않고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무한한 신뢰가 요구된다. 처음부터 뛰어난 사람은 잘 없다. 쉬지 않고 시도해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얻을 때,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의 괴리를 마침내 줄여나갈 것이다. 또 설령 그 길이 아니라 할지라도, 다양한 길을 거쳐 간 여정은 한 길만 통과한 것 보다 그 어떤 시련에도 강해지게 만들어 인생을 더욱 깊어지고 풍성하고, 성숙하게 해줄 것이다.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전문가

2019-02-06 13:08:49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야간 통행금지

매일 밤 12시가 되면 대구 하늘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처음에는 낮게 나중에는 고음의 큰 소리가 된다. 그 소리가 나면 거리에는 사람이나 말 구루마나 자동차 등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다음 날 새벽 4시가 되면 다시 인적(人跡)이 나타난다. 소리 하나에 모든 게 없어진다. 이것은 커다란 마술이다.해방 되던 해 9월 7일 부터 맥아더 포고령에 의해 전국에 '통행금지제도'가 시행되었다. 이 제도의 정식명칭은 '야간통행금지'였지만 보통은 '야통' 혹은 '통금'이라고 불렀다. 사이렌이 울렸는데도 길거리를 다니면 파출소에 잡혀간다. 일정 인원이 모이면 경찰서로 데려가 보호실에 대기시켰다가 아침에 분류를 한다. 통금 시작 후 30분 이내 잡힌 사람은 훈계방면이 되고 그 시간 이후 적발된 사람은 즉결 재판소에 가서 재판을 받게 된다.태평양 전쟁 동안 통금에 훈련된 시민들은 별 불평도 않고 받아 들였다. 밤 12시 넘어 도착하는 버스나 열차 승객은 손목에 '통행증'이라는 도장을 찍어주어 별 문제없이 집에 갈 수 있게 했다. 치안이 안정되자 제주도와 울릉도는 1964년, 충청북도는 1965년, 도서지역은 1966년에 통금이 해제되었다. 고속도로 주행 차와 석탄, 시멘트 등의 산업용 자재 운반용 자동차나 생필품 트럭 등도 단속을 하지 않았다. 선량한 시민들은 통금에 걸릴까봐 12시가 다가오면 안절부절 못하고 조바심을 쳤지만 오입 장이들은 오히려 이 제도를 역이용했다. "친구 아버지가 죽었다." "과장 할머니가 죽었다"며 초상집에서 밤샘한다는 핑계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 남을 죽일 수 없을 때 잔업하다 통금 걸려 귀가를 못하겠다며 당당하게 거짓말하고 외박을 하였다.통금은 조선시대부터 시작한다. 태종 때부터 오후 8시(초경 3점)부터 다음 날 새벽 4시 30분(오경 3점)까지 통금을 하였다. 통금 시작을 '인정(人定)'이라 불렀으며 쇠북을 28회 치고, 해금은 '파루(罷漏)'라고 하며 쇠북을 33회쳤다. 세종 때부터 완화가 되어 오후 9시(이경)부터 익일 오전 3시(오경)까지로 단축을 시켜주었다. 이 시절 통금위반자는 경무소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벌을 받는데 초경에 잡힌 사람은 곤장 10대, 이경 이후 단속된 사람은 20대를 맞고 집에 갔다.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대구 동성로는 환희와 광란의 거리가 된다. 통금이 없는 밤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 생일과는 별 관계도 없는 젊은이들이지만 행동을 억압하는 규제가 없어지자 자유의 밤공기를 만끽하기 위해 동성로, 향촌동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어 밤새껏 그들의 축제를 즐겼다.하늘이 만든 천둥 번개는 피뢰침을 만들어 공포에서 벗어난 인간이 스스로 만든 사이렌 소리는 누구도 거역하지 못하고 지시를 따랐다. 해방 후의 혼란과 한국 전쟁의 소란 그리고 군사독재의 횡포도 끝나며 밤하늘의 사이렌도 살아졌다.딱 한군데 경기도 파주군 군내면 조산리에는 아직 통금이 남아있다. 이 마을은 비무장지대에 위치하는 대성동 마을로 속칭 '자유의 마을'이다. 이곳의 민사, 행정 및 구제 사업은 파주시가 아니고 유엔군 사령부에서 관리를 한다. 국방, 납세의 의무가 면제된 상태로 212명이 살고 있다. 밤의 자유를 억제 받는 대신 낮의 자유를 누리고 사는 셈이다. 대성동 마을 사람들이 자유인인가? 마을 밖 사람들이 자유인인가? 야통 사이렌이 살아진 대구의 늦은 밤거리를 걸으며 가져 보는 의문이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2019-02-01 05:30:00

김계희 그림책 화가

[광장] 창조를 이끄는 힘, 몰입

어린이 미술 지도는 쉽고 재미있기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교육 과목이다. 그래서 학교 밖 미술교육 시장에서는 쉽고 재미있는 것에 중점을 둔 커리큘럼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재미는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아직 집중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에게는 특히 그럴 것이다.하지만 재미에 치중한 나머지 그 이상의 몰입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 현재 미술 교육 현장의 한계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몰입을 끌어내지 못하면 아이 스스로 능동적인 연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스케치를 할 때 이미 그려진 도안을 아이가 따라 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도안을 따라 그리게 하면 초반에 드로잉에 빠른 발전이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아이의 상상력이나 관찰력, 실험정신은 막을 내리게 되기 십상이다. 또한 밑그림 자료가 제공되지 않으면 스스로의 힘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힘들어 하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힘이 바탕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모든 분야가 그렇듯, 몰입을 통해 자신 이상의 것을 만들어낼 때 우리는 참다운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기존에 알고 있는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힘은 몰입에서 나온다. 몰입의 시기에는 드로잉이 무척 섬세하고 견고해지며 구성에 자유로움이 깃든다. 이것이 바로 형태나 디테일을 맨 뒤 순서에 두어도 되는 이유다. 가르치는 사람은 기술이나 디테일보다는 단지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에 집중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예를 들어, 아이가 기존의 사물을 그릴 때, 지금까지 그려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그려보도록 제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를테면 세상에 없는 나무, 세상에 없는 꽃, 자신이 디자이너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독특한 의자 등을 그려보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그림에서 독특한 부분을 찾아내어 그것이 얼마나 멋있는지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하고 칭찬을 해 주면 된다. 그럴 때 아이는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어 더욱 새로운 형태를 시도하게 된다.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자꾸 넘어지고 실패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에 페달을 세게 밟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릎을 다쳐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페달을 세게 밟을 수 있도록, 틀려도 괜찮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면 아이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페달을 세게 밟을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핸들에 중심이 잡히고 자전거는 앞으로 달려간다.물론 칭찬과 격려가 아이에게 정확히 전달되려면 아이의 전반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이 있어야 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정면에서가 아닌 보이지 않는 뒤편의 어느 곳을 건드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섬세하고도 지속적인 터치 속에서 아이의 눈도 함께 섬세해진다. 눈이 섬세해진다는 것은 뇌가, 생각이 섬세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형태와 디테일은 스스로 자연스러운 발전을 이룬다.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을 만큼 자신감이 있는 아이는 바퀴가 제대로 구르고 있는지 고개를 숙여 확인하지 않는다.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바퀴가 제대로 구르고 있는지 확인하는 한 자전거는 달릴 수 없다. 가르치는 일을 맡은 모든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눈에 띄지 않게 톡톡 자극하는 것이다.

2019-01-31 18:09:53

김종광 소설가

[춘추칼럼] 동등한 기회와 조건

인도 카스트제도 비웃을 일 아냐특권 대물림 한국과 뭐가 다른가재능 꽃피울 수 있는 기회와 환경흙수저에도 인생 역전 문 열려야스롱 피아비. 부쩍 매스컴을 타서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3쿠션 당구를 제일 잘 치는 여성 중 한 분이다. 현재 한국랭킹 1위, 세계랭킹 3위다. 그분이 캄보디아에 계속 살았다면 당구에 '당'자도 모르면서 평생을 살 수 있었다. 캄보디아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당구 인프라가 거의 없는 나라였다. 그분이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한국인 남편이 그녀를 당구장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당구장에 갔을 때 곧바로 그렇게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남편이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 그분이 자신의 재능을 믿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아내가 성과를 보인 뒤에도 남편이 계속 격려하고 응원하고 최대한 돕지 않았다면, 그분의 성공 신화는 불가능했을 테다. 이런 경우가 희박하기에 뉴스가 되고 화제가 되는 것이다.EBS시사교양다큐 '극한직업'. 방송사의 설명에 따르면 '극한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숭고한 의지와 잃어가고 있는 직업정신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근로자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고 꼭 '작업자'라고 하는데, 어떤 직업이 되었든 천편일률적으로 나오는 피디와 작업자의 대화가 있다. "힘들지 않으세요?"(힘든 사람한테 힘드냐는 질문을 하는 게 왜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아무튼) "그럼, 힘들지 안 힘들어. 안 아픈 데가 없지." "이렇게 힘든데 왜 하세요?" "먹고살려면 해야지." 혹은 "처자식(가족) 먹여 살리려면 힘들어도 참고 해야지." "이렇게 힘든 일을 왜 하세요?"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그 육체적으로 힘들고 성취감을 갖기 어렵고(단순반복이고)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몹시 심하여서 견디기 어려운 추위' 같은 '극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표정과 말에서, (저분들의 노동 덕분에 내가 편안히 산다는 생각은 들어도) 숭고함과 가치는 느끼기 힘들었다. 그런 극한직업에 종사하는 분들 중에도 '스롱 피아비' 같은 분이 수두룩이 있었을 테다. 그분에게도 어떤 분야에서는 특출한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을 발견하고 갈고닦아 꽃피울 수 있는 기회와 환경과 조건이 주어졌다면 그도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종사하며 '숭고한 의지'와 '직업정신의 가치'를 누리는 삶을 살았을 테다.인도 카스트제도를 비인간적이라고 비웃는 분이 많은데, 과연 우리나라가 비웃을 자격이 있는 사회인지 모르겠다. 대대로 금수저고, 대대로 스카이 학벌이고, 대대로 재벌국회고위 공무원·장성·장차관이고, 대대로 건물주고, 대대로 극한직업에 종사한다. 물론 무수한 예외가 있었다. 하지만 '개천에서 난 용'보다 '용 집안에서 난 용'이 훨씬 많았다.개천에서 난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무수한 시련을 극복하며 기회를 쟁취하여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극한의 노력과 행운이 필요하다. 하지만 용 집안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최대한의 기회와 조건을 제공한다. 행운보다 더 강력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극한직업 종사자들은 '먹고사는' '먹여 살리는' 수준이니 자식 세대에 충분한 기회와 조건을 제공할 수 없다. 경쟁에서 밀린 극한직업 종사자들의 자식 세대는 '스롱 피아비 같은' 인생역전의 기회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역시 극한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을 테다. 대대로 부자유전사회인 것이다. 대놓고 세습하는 카스트제도랑, '눈 가리고 아웅' 세습되는 우리나라 사회가 뭐가 다른가.우리 40, 50대 아저씨·아줌마들은 반성해야 한다. 민주화운동 세대라면서,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사회를 더욱더 비민주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민주화운동 세대가 진정 꿈꾸었던 것은 대개의 청년이 부모의 재력·학벌·권력·직업에 상관없이 동등한 기회와 조건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능동적으로 선택하여 숭고함과 가치를 만끽하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사회 아니었던가. 그런데 우리 세대는 '보이지 않는 카스트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잖은가. 지금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동등한 기회와 조건'이다.

2019-01-31 16:32:13

권미향 대구 달서구선관위 홍보주무관

[기고] 황금돼지와 닮은 조합장을 기대하며

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다. 6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과 '돼지'가 만난 해이니 올 한 해에 거는 각자의 기대와 염원은 조금 더 특별해도 좋을 것 같다. 돼지는 행운과 풍요, 다산을 상징한다. 꿈에 돼지가 나오면 아직도 복권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고, 큰돈이 생기고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해 보기도 한다. 또한 돼지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성격이 온화하며 재물 운이 있고 큰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속설에 따라 올해 출산율이 높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런데 돼지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어떨까. 부(富)와 복(福)의 상징과 다소 모순되게도 우둔하고 탐욕스러움이 먼저 연상되며, 우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돼지 캐릭터는 게으르고 느려 터지고 욕심만 많은 먹보로 자주 그려진다.그러나 동물학자들에 따르면 단지 고정관념일 뿐 돼지는 지혜가 많고 포용력이 크고 낙천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아이큐는 65가 넘고 다른 개체와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실제로 다른 동물들보다 깨끗하고 자연 상태에서는 하루 50㎞ 정도를 움직일 정도로 부지런하다고 한다.3월 13일,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실시된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1천400여 농협, 수협, 산림조합의 조합장을 선출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일제히 선거가 치러지며, 선거에 입후보하는 모든 이들은 이번 황금돼지해의 진정한 행운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기를 기대한다.그런데 조합장선거는 공직선거에 비해 선거인 수가 적어 금품수수가 은밀하게 이뤄지기 쉽다. 선거가 치열할 것으로 예상하거나 자칫 의욕이 과하게 되면 후보자들은 조합원에 대한 금품·향응 제공 유혹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고, 조합원들은 혈연지연학연에 얽히고 관행에 젖어 후보자가 주는 금품을 뿌리치기 어렵다.이렇게 돈으로 얼룩진 혼탁선거로 추락하는 순간 탐욕스러운 '전형적인 돼지'와 같은 조합장이 선출되고 그 조합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당선된 조합장은 표를 얻기 위해 자신이 부담한 비용을 조합의 경비로 되돌려 받고 싶은 본전 생각으로 각종 비리의 유혹을 떨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좋은 정책과 조합 경영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조합원의 신뢰를 얻고자 하는 노력없이 돈으로 쉽게 얻은 자리이기에 조합의 미래를 위한 남다른 열정과 애정이 있을리도 만무하다.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건강한 조합을 만드는 것은 물론 높아지는 조합장선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이번 선거에서는 반드시 후보자와 조합원의 인식 전환을 통해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실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조합원은 우선적으로 후보자가 제시하는 공약을 꼼꼼히 비교해 조합 발전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과 튼튼하고 깨끗한 조합 경영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는 적임자를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런 당선자가 바로 행운의 상징인 '황금돼지'를 닮은 모습이 아닐까.조합에 좋은 기운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복덩이 같은 조합장을 선출해 모든 조합이 황금돼지해의 주인공인 한 해로 만들어 보자. 후보자와 조합원 모두 깨끗한 선거 실현에 대한 의지와 실천 노력을 기대해 본다.

2019-01-31 11:48:04

이현석 경산오페라단 예술감독

[매일춘추]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추운 겨울철에는 역시 귤이 제맛이라, TV 등에서 본대로 난로에 구워도 먹어 보고, 껍질을 잘 말려 차로도 먹어 보고, 요즘 귤이 참 맛있는 계절이다.학창시절 배웠던 말들 중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남귤북지(南橘北枳)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이 말의 유래는 제나라의 안영이 초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초나라 왕이 제나라 출신의 도둑을 안영의 앞에 끌고 와 제나라 출신은 순 도둑놈뿐이라며 비아냥거리며 안영의 기를 죽이려 했다. 안영은 이에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을 하며, 본디 귤이 물과 토질이 다른 곳에 오면 귤과는 다른 탱자로 변한다고 얘기했다. 본래 선한 제나라 사람이 초나라에 물들어 살게 되어 도둑이 된 것이라며 오히려 초나라의 왕의 코를 납작하게 하였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어린 시절이지만 참으로 재밌기도 하고 뜻깊은 말이라 여겼던 것으로 기억한다.하물며, 귤도 토양이나 그 지역의 기후 등의 요소에 의해 그 모양과 성질이 달라지는데, 우리의 문화예술은 어떠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일반적으로 문화예술 공연이나 축제 등을 기획할 때, 다른 지역에서 성공한 콘텐츠를 모방하거나 아예 통째로 그 콘텐츠나 공연을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물론, 다른 지역에서 성공했으니 손쉽게 성공이 보장된 것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분명, 각 지역 마다의 특성이 있고 지역성 등이 다르다는 부분을 간과(看過)한 콘텐츠가 무조건 우리 지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어느 지역의 축제를 가더라도 그 지역의 특색이나 그 축제만의 차별성이 없이 다 비슷한 형태라는 지적을 받게 되는 것이다.국내에 지역축제 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매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유럽만 해도 1년에 20만개 이상의 축제가 열리고 있고, 인구 1천600만 명의 네덜란드의 경우만 보더라도 약 5천여 개의 축제가 개최될 정도이니 계량적 숫자만으로의 지적은 아니라, 고유의 개성을 갖고 지역의 차별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주제나 형식이 중복되는 지역축제가 많은 것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당장의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더라도 그 지역만의 특색있는 콘텐츠를 발굴 기획하여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노력을 통해 축제 자체가 지역의 특산물 등을 알리는 홍보의 장으로서 만의 역할을 넘어, 그 자체가 지역의 관광, 산업의 중추적 자산이 된 유럽 등 다른 지역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지역의 특성과 차별성, 그 지역만의 노력과 연구를 통해 귤이 회수를 건너 더욱 그 가치를 높이는 천혜향 등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신중함이 필요한 시기일 것이다.

2019-01-31 11:22:37

박영석 대구문화재단 대표

[기고] '공모의 계절'에 다시 생각하는 '신뢰'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에게는 요즘이 이른바 '공모의 계절'이다. 해마다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공모가 1월과 2월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대구문화재단도 2019년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 공모를 1, 2, 3차로 나누어서 신청 접수를 마감한 상태다. 올해는 분야별로 단체 및 개인을 모두 합쳐 700건이 접수되었다.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소폭 감소한 정도다.공모 접수를 마감한 지역문화예술지원사업은 앞으로 분야별 사업별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2월 한 달 동안 집중적인 심사를 벌인다. 지원 규모가 적은 분야는 서류심사로 지원자를 선정하고 지원 규모가 큰 분야는 개인이나 단체 대표의 프레젠테이션과 면접 등을 거쳐 지원 여부와 지원금을 결정한다. 말로는 간단하지만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엄격하다. 해마다 탈락자를 중심으로 심사의 공정성 문제가 단골로 제기되면서 보완 장치들을 계속 확충하기 때문이다.대구문화재단은 이미 심사의 전 과정을 일반인이 직접 지켜볼 수 있게 하는 심사참관인제를 시행하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심사위원추첨제도 도입했다. 심사위원추첨제는 추첨함에 심사위원 후보 3배수 이상을 미리 넣어 일반인이 직접 추첨을 통해 심사위원을 정하는 방식이다. 심사위원 선정 및 위원회 구성 과정에 재단의 개입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각계로부터 획기적인 조치라는 평가를 받았다.올해부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심사위원후보추천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운영함으로써 공정성을 한층 더 강화했다. 즉 전국에 있는 심사위원 풀(pool)에서 재단이 필요로 하는 7개 분야·사업별 심사위원 70여 명의 3배수 이상인 270여 명의 후보를 추천위원회가 직접 가려내 선정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과정은 재단이 수행해 왔다. 이에 따라 공모사업을 진행하는 재단은 이제 심사위원 후보군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추첨을 통해 최종 심사위원을 확정할 때까지 모든 과정에서 완전히 한발 물러나 있게 된다. 지역심사위원과 외지심사위원의 비율도 5대 5로 정했다. 지역과 외지 비율의 고저는 모두 장단점을 안고 있어 그것에 따른 긍정과 비판도 늘 엇갈려 왔다. 결국 5대 5로 정해 앞으로 심사를 진행하게 된다.이러한 과정을 자세히 모르는 이들 가운데는 재단의 공모사업 심사가 공정하지 못하고 자의적이라는 선입견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각자의 어떤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무책임한 소리다. 이제 재단의 공모사업 심사는 불순한 의도의 개입 자체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구조다. 그러나 신뢰라는 문제는 제도의 개선만으로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가장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재단의 투명한 업무수행과 함께 심사 탈락자의 결과에 대한 수긍과 동의라고 하겠다. 본디 신뢰는 더한 신뢰를 낳고 불신은 더 큰 불신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탈락에 대한 불만을 불신에서 찾고자 하면 끝이 없다. 오히려 문제를 과감히 스스로에게로 돌려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 가는 전향적인 문화가 하루빨리 조성되길 바랄 뿐이다.안타깝지만 올해도 결국 수백 명의 예술가와 예술단체가 탈락될 수밖에 없다. 전체 요구액에 비하면 지원 예산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책인즉명' (責人則明)보다는 '반구저기'(反求諸己)를 기대해 본다.

2019-01-31 04:30:00

임성호한의원 원장

[임성호의 매일보감] 십전대보탕 소고

설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는 반갑고 설레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명절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어릴 적 설레기만 했던 명절이 나이가 들면서 그렇지 않은 것에 동의가 되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어른들이 가장 선호하는 설 선물은 현금, 그다음이 보약이라는 통계가 있다. 오늘은 우리가 쉽게 접하는 보약 중에서 십전대보탕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대보탕은 동의보감에 의하면 기혈양허(氣血兩虛)에 대표적인 처방이라고 적혀 있다. 그 외 어떤 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 말은 식적(食積), 칠정(七情), 담음(痰飮), 어혈(瘀血)이 없을 때 복용하면 효과를 나타낸다. 풀어 이야기하면 식욕이 없거나 자주 체하거나 소화 상태가 나쁠 때, 극심한 노동을 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가슴이 답답하거나 울렁거릴 때, 열이 얼굴로 올라갈 때, 통증이 심하게 발생할 때 또는 통증이 밤에 더 심하게 나타날 때에는 크게 효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며 이러한 증상이 없는 40, 50대 이상 성인이 피로할 때 쓰는 대표적인 처방이다. 처방, 그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을 모르면서 좋다는 말만으로 쓰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한방 생리(生理), 병리(病理), 방제(方劑) 그 속뜻을 모르면서 그저 좋다, 어디에 쓰면 좋은 약재라는 이유만으로 복용하거나 복용을 권하는 것은 건강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온 가족이 모이는 설날, 화목해야 할 자리에 때때로 그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 상처는 한의학에서 '7정' (七情)이라고 일컫는 기쁨, 노함, 걱정, 고민(생각), 슬픔, 공포, 놀람과 상호작용을 통해 몸에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몸에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7정'을 잘 다스려야 가족 간의 불화의 병도 치료될 수 있다. 설날에 부모님께 십전대보탕을 올리는 정성으로 대하면 최고의 처방일 것이다.

2019-01-30 19:30:00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나무와 창의성] 2월의 나무-살구나무

교육의 목적은 피교육자들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피교육자의 창의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창의성 교육에 적합한 교육제도와 교육과정 등을 갖추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해야만 한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자와 교육 현장의 자율성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제4차 산업혁명 시대처럼 유사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환기에는 교육혁명이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은 여전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제도와 교육과정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이 이 같은 위기에 처한 것은 단순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체제를 갖추지 못해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현장은 개인의 힘으로 창의성 교육을 실현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상태다. 현재처럼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가 교육에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를 통제하고 있는 한 창의성 교육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배우는 즐거움 창의성 출발점세계 교육사에서 창의성 교육의 가장 우수한 사례는 중국 춘추 말 공자의 교육 방법을 들 수 있다. 공자가 2천500여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창의성 교육 덕분이다. 공자의 교육 철학은 제자들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정리한 「논어」의 첫 구절, 즉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는 공자의 교육철학을 드러낸 핵심이다. 공자의 제자들이 책을 엮으면서 가장 먼저 이 말을 언급한 것은 배움에서 기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배움의 즐거움은 곧 창의성 교육의 시작이다.행단(杏壇)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창의성 교육을 실시한 곳을 대표한다. 행단은 장미과의 갈잎작은키나무 살구나무가 있는 곳을 뜻한다. 현재 중국 산동성 곡부에 위치한 공부(孔府)에는 행단이 있다. 그런데 행단과 관련해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살구나무가 아닌 은행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은행나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같은 현상을 나무의 '문화 변용'이라 부른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는 수도 장안 곡강 가의 살구나무 공원에서 과거 합격자의 축하연을 베풀었다. 살구나무의 '살구'는 중국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따르면 '개를 죽인다'는 '살구'(殺狗)의 뜻이고, 조선시대 최세진의 「훈몽자회」에는 '살고'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은 '청명'에서 살구꽃을 '술집'으로, 「성경」에서는 아론의 지팡이에 피어난 살구나무 꽃을 부활과 생명으로 표현했다.교육 위기, 공자에게 길을 묻다살구나무는 「회남자」에서 2월의 나무로 등장한다. 중춘(仲春)인 2월의 방위는 동쪽이고, 색은 청색이다. 이 달에는 청양(靑陽)의 태묘(太廟)에서 조회를 하면서 관리를 시켜 가벼운 죄를 지은 자는 풀어주게 하고, 죄수의 손발을 묶은 족쇄를 풀어주게 하며, 볼기를 치는 형벌과 송사를 금지시키고, 고아나 자식이 없는 노인을 보살피게 했다. 살구나무를 2월의 나무로 삼은 것은 속이 비어 있는 살구씨, 즉 행인(杏仁)이 마치 음이 안에 있고 양이 밖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공자의 핵심 사상인 '인'(仁)도 살구 씨처럼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같은 것이다. 공자는 제자들이 각각 지니고 있는 '인'이라는 종자를 드러내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제자들이 공자를 존경하는 이유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공부의 기쁨은 자신의 창의성을 드러내기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에서 출발한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워 열매를 만드는 살구나무의 삶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기 위한 위기의 배움과 같다. 위기의 한국 교육은 아주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살구나무의 삶에서 배워야 한다.

2019-01-30 19:30:00

이다안 작 '일상에서의 탈출'

[내가 읽은 책]일상으로의 회귀 / 무진기행/ 김승옥/ 민음사

'무진기행'은 김승옥의 단편 소설이다. 김승옥은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1945년 해방과 함께 전남 순천에서 성장했다. 서울대 불어불문과를 졸업했으며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생명연습'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같은 해 김치수, 김현, 염무웅, 서정인, 최하림 등과 같이 동인지 '산문시대'를 발간하고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했다.1964년 '역사', '무진기행' 등을 발표하고 '서울, 1964년 겨울'로 제 1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0년대를 대표로 하는 작가로 평가 되었다.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 1회 이상문학상을 받으면서 소설가로서도 주목을 받았다. 이후 신앙생활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다가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을 발표하면서 문학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무진기행'은 현실적인 공간 서울을 떠나 탈속적인 공간 무진에서의 며칠을 그린 소설이다. 서울에서의 나와 무진에서의 나는 동일인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꿈, 세속적인 가치와 본질적인 가치로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일상을 벗어난 무진에서의 일탈은 결국 현실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는 인간 내면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P9) 소설의 첫 대목이다. 서울에서 제약회사에 다니는 윤희중은 며칠 후면 장인의 도움으로 제약회사 전무가 된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아내의 권유로 어머니 묘소가 있고 어린 시절의 자신이 있는 무진으로 내려간다. 무진에서 그를 존경한다는 문학 소년이었던 후배 '박'과 고등고시에 합격해 세무서장이 된 동창 '조'와 음악교사 '하인숙'을 만난다.윤희중은 무진을 떠나 서울로 가고 싶어 하는 하인숙을 사랑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P41) 하인숙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서울로 상경하라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그녀를 서울로 데려 가겠다는 편지를 써 놓고 결국 찢어 버린다. 그리고 서울 행 버스를 탄다.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씌어 있었다." (P41) 윤희중은 현실과 이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을 선택하게 된다. 그 책임은 도덕이라고 믿는 윤리적 책임이고, 현실은 윤리를 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감각이며, 부끄러운 인간의 한 단면이다.오늘도 미세먼지 나쁨이다. 안개에 가린 듯 하늘이 희뿌옇다. TV에서 가능하면 바깥출입을 자제하라는 기상캐스트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이런 날은 무진의 안개를 떠올리며 책상에 앉아 무진기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이다안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1-30 14:10:31

김은혜 이화아동가족연구소 부모교육 전문가

[매일춘추]관계로부터의 자유

우리는 매일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부모자녀, 부부, 친구, 연인, 동료 등 수 도 없이 많은 관계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이 관계라는 것은 우리에게 위안도 주지만, 스트레스의 주원인이 될 만큼 어렵기도 하다. 인간관계와 관련된 책들이 늘 서점 베스트셀러 10위안에 드는 것도 우리가 늘 관계에 목말라하거나 힘들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물론 서로 다른 인간이 만나 관계를 맺는데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긴 해도, 관계가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거나, 보기 싫은 사람을 계속 보거나, 관계가 끝나는 것이 두려워 관계를 위한 관계를 맺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이러한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알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서로에게 집착하거나 소유하려 할 때 그 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권력의 힘이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부모가 자녀를,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을, 연인 간, 친구 간에 내 마음대로 하려 들 때 관계는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사실 '너를 위해'라는 이름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의 깊은 곳에는 나의 만족과 욕심이 있다.인간은 이중적인 존재이다. 사회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존재이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에밀 뒤르켐은 이러한 이중적인 존재를 '호모 두플렉스'라고 명명하여 사회적인 존재에 의해 개인적인 존재가 길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근대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자유로운 '개인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먼저임을 더 강조해왔고, 실로 인간은 나면서부터 독립된 인격체이다. 어린 아이를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아주 어린 아이들도 자신의 삶을 가지고 있는 독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하나의 독립된 객체이기 때문에 소유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소유하려 들 때 튕겨나갈 수밖에 없다.따라서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다면 소유와 집착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각자의 삶을 존중하여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도록 해줄 때 그 사람은 내 곁에 머무르게 된다. 또한, 소유의 마음을 내려놓으면 나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관계를 내 곁에 묶어두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어,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만 한다는 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좀 더 집중하는 것으로 귀결되어 원래의 '나' 다운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 결국은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렇다고 갈등이 아예 없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서로에 대한 소유와 집착을 내려놓은 채 개인의 삶을 존중하며 '잘'싸우고 맞춰가는 시간을 가질 때, 관계의 질은 보다 높아지고 스트레스는 좀 더 낮아지지 않을까.

2019-01-30 13:08:50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종교칼럼]겨울잠

나는 대학 재학 시절 겨울방학만 되면 두문불출했다. 온종일 운동복 차림에 이리저리 뒹굴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하루 한 권 목표로 독서에 열중하였다. 몇 동아리에서 활동했지만, 겨울방학만큼은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전화가 오면 나는 '동면 중'이라 나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이유를 말했다. 길고 긴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새 학년을 맞을까 고민하다 생각해 낸 나만의 겨울나기 방법이었다. 공학도인 나에게 '겨울잠 독서'는 공부가 아니라 놀이와 휴식이었다.동물마다 독특한 겨울나기 방법이 있다. 신천의 황조롱이, 왜가리, 쇠백로와 겨울마다 찾아오는 논병아리, 물닭도 자기만의 겨울나기 방법이 있다.모든 생물에게는 본능적 리추얼(ritual)이 있다. 생명체는 철저하게 리추얼을 따라서 살아간다. 똑같은 모양의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운다. 동물은 어디서 배웠는지, DNA에 프로그램이 저장되었는지 정확하게 계절을 따라 살아간다. 곰, 다람쥐, 개구리, 물고기는 겨울잠을 잔다. 다람쥐의 심장 박동수는 1분에 150회 정도인데, 겨울잠을 자는 동안에는 1분당 5회 정도로 확 줄어들어 에너지 소모가 극소화된다. 숲개구리는 동면 전에 섭취한 녹말을 포도당으로 바꾼 다음 체액에 넣는다. 이 포도당이 부동액 역할을 하여 체액이 얼지 않게 보호해 준다. 겨울철 자동차 냉각기에 부동액을 넣는 것과 같은 원리다. 송장개구리는 체액의 65%를 얼리고, 심장까지 정지시켜 겨울을 난다. 한결같이 생존을 위한 혹독한 과정이다. 겨울잠은 동물의 겨울 리추얼이다.이어령 씨는 동물의 동면은 단순한 피한이나 방한이 아니라 가혹한 경쟁과 노동으로부터 풀려나는 따뜻한 시간이라고 했다. 겨울이 없다면 무한경쟁과 생존경쟁의 정글에서 잠시도 헤어나오지 못 할 것이다. 이것은 자연이 가져다준 사랑이요, 축복이다. 동면은 쉼의 시간, 생명을 비축하는 시간이다. 새로운 전진을 향한 준비다. 동면은 작은 죽음이다. 작은 백신을 통해 큰 병을 이기듯 작은 죽음을 경험하며 큰 죽음을 극복하고 큰 생명으로 나가는 것이다. 동면은 생명의 신비를 맛보는 심층 차원이다. 동면은 존재를 새롭게 한다. 생명체는 동면 중에도 성숙한다. 한겨울이 나이테 한 개를 만들 듯 더 성숙한 계절을 보내자.우리 인생의 리추얼 중 하나는 전진과 휴식이다. 일과 잠은 둘 다 중요하다. 잠을 푹 자야 생기 있는 다음 날을 시작한다.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가장 먼저 '어젯밤 잠을 제대로 잤는가'를 점검한다.겨울나무는 옷을 벗고 존재의 짐을 가볍게 하여 생명을 비축한다. 농부는 꽃눈과 잎눈을 헤아리며 나뭇가지를 자른다. 모두 풍성한 생명을 맺기 위한 배려다. 농부는 가지 접붙임을 한다. 생명을 새롭게 이어 붙이는 것이다.생명이란 자고 쉬고 비우고 가벼워져야 더욱 생명력이 살아서 역동하는 법이다. 가벼워지며, 버리며, 잘라낼 때 생명은 더 강인해진다.생명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 달려만 가는 산업자본주의가 아니다. 성경에서 생명은 하나님의 숨에서 왔다고 했다. 자연의 숨, 하나님의 숨을 들이켜야 생명이 살아난다. 숨 쉴 틈 없이 달려가는 성장 지상주의의 결과는 성장이 아니라 질식이요, 생명의 고갈뿐이다. 숨 고르기, 심호흡이 필요하다.인생의 겨울에 있는 사람들도 겨울의 추위보다는 생명의 따스한 사랑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2019-01-30 12:03:08

진심이 담긴 글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사진 제공 :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가장 좋은 카피는 카피라이터가 쓸 수 없다

"다른 병원에서는 스포츠 스타를 데리고 광고를 하는데 우리는 방법이 없겠습니까?"대구의 한 병원에서 광고 의뢰가 들어왔다. 당시 타 병원에서는 운동선수를 내세워 홍보하고 있었다. 비싼 모델료 없이 효과적인 광고를 하고 싶다는 병원 관계자의 푸념이 이어졌다.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저 스포츠 스타가 병원의 의술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물론 이미지의 힘은 강하다. 운동선수를 모델로 내세우면 강한 이미지가 브랜드에 입혀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달콤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나에게는 소비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필요했다.아이디어라도 구할 수 있을까 해서 늦은 밤 그 병원을 찾았다. 로비에 앉아 있으면서 병원 밖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관찰했다. 그러던 중 한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퇴원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대단한 장면은 아니었는데 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다. 아프지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해 보였다. 내가 그 할아버지가 되어 봤다. '내가 저 할아버지라면 의사 선생님께 얼마나 감사한 마을이 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의 마음을 찾기로 했다. 그 마음을 담은 문장이 세상에서 가장 진솔한 광고일 것이라 생각했다.병원에 요청해 지금까지 받은 감사 편지들을 모두 모아 달라고 했다. 때마침 미국 애틀랜타 출장이 잡혀 편지를 들고 해외까지 갔다. 애틀랜타 숙소에서 짐을 풀자마자 나는 편지를 찬찬히 살펴봤다. 신기하게도 글을 읽을수록 그 병원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 병원에서 병을 고친 생생한 증언이었기 때문이다.여러 사연이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쓴 한 편지에 시선이 멈췄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보아 한글을 갓 배우신 분 같았다. 할머니의 허리 수술을 잘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는데 정확한 문장은 이랬다.'아...아내의 허리를 고쳐줘서 고맙...감사합니다.'이 촌스러운 문장에 내 마음이 무너졌다. 어떤 카피라이터도 이렇게는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유능한 카피라이터라도 자신의 아내를 고쳐준 마음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글씨는 어설펐지만 어떤 문장보다 정성이 느껴졌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더 움직였다.할아버지의 글을 토시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광고판에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진료 과목, 팔짱을 낀 의사 모습이나 약도까지도 넣지 않았다. 흔히들 떠올리는 병원 광고와는 완전 다르게 기획했다. 광고처럼 보이지 않고 진심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병원 광고 시장에서 파격적인 시도였다.마침내 아이디어 발표일이 왔다. 잔뜩 기대한 광고주 앞에서 시안을 공개했다. 야심 차게 발표했지만, 병원 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일반적인 병원 광고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우리는 억대 모델이 없이도 아이디어만으로 소비자들에게 통할 수 있다고 어필했다. 이 문제로 병원은 내부적으로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다. 결국 숱한 진통을 거쳐 이 작품은 광고판에 올라가게 되었다. 진심이 통했는지 병원의 매출이 상승했다. 스포츠 스타와 같은 억대 모델을 기용하지 않고도 진심을 전달한 것이다.진짜 좋은 카피를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진심으로 써라. 할아버지의 글을 보는 순간 나는 더 큰 진심을 내 안에서 끌어낼 수 없다는 걸 확신했다. 그래서 발견하고자 했다. 카피를 쓸 때는 기억하라. 진심으로 쓰든가, 발견하든가.김종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장이' 김종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은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1-30 06:30:00

김영만 군위군수

[기고] 대구공항 통합이전과 지방생존

필자는 '국가가 있어야 개인이 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지난 세기 뼈아픈 역사를 통해 힘없는 국가가 얼마나 비참한 운명에 처하는지 잘 알고 있는 필자에게 이 말은 남다르다.1개 활주로를 민·군이 함께 사용하는 대구공항은 부족한 점이 많다. 군항은 F15K를 보유한 전략적 중요 기지이나 민원으로 훈련 및 임무 수행에 제약이 있으며, 민항은 미주, 유럽 직항로 개설을 위해서는 최소 3.2㎞ 이상의 활주로가 필요하나 안타깝게도 확장할 여건이 되지 않는다.필자는 이러한 제약이 국가 경쟁력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생각으로 통합공항 이전 발표가 있자마자 우리 군위 지역으로 유치를 선언했다.대구공항 존치를 주장하는 일부 대구 시민들을 바라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달구벌로 사시겠습니까? 글로벌로 사시겠습니까?"지금의 지방공항에 만족한다면 대구는 달구벌에 만족해야 한다. 이용객의 85% 이상인 대구 시민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대구공항 통합이전을 통해 대구는 더 크고, 더 멀리 가는 공항을 보유하는 진정 글로벌한 도시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우리나라 제1공항은 인천국제공항이다. 그러나 이런 국제공항에 2017년 12월 성탄 연휴 첫날 짙은 안개로 300여 편의 항공기가 지연 또는 결항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는 해안가 공항의 한계인 해무가 이착륙을 방해했기 때문이다.또 지난해 9월 일본 간사이공항은 태풍 '제비'의 영향으로 침수되어 공항이 일시 폐쇄되기까지 했다. 이는 해안가 공항 건설의 이점을 주장해 온 사람들에게 그 위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대안은 안전한 내륙공항에 있다. 현재 후보지가 그러하다.대구공항 통합이전은 최종 이전지 결정을 앞두고 있다. 언론을 통해 대구시와 국방부가 사업비에 대한 이견이 있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필자는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단일 후보지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관철되지 않았고, 군위 우보 지역과 군위 소보·의성 비안 지역이 후보지로 지정되어 있다.현 상태에서 사업비 판단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는 여타 다른 사업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설계가 아닌 방법의 사업비 도출은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은 접어두고, 최종 이전지를 먼저 결정하고, 사업비는 추후 세밀히 판단하는 것이 상식에 맞다.한 번도 시행해 보지 못한 사업에서 신중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나친 신중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특히 항공 물류 비중이 높아지고 첨단산업이 공항과 직결되는 현대에 대구공항 통합이전은 단순한 이전을 넘어 대구경북, 나아가 지방이 사는 길임을 인식하고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필자는 이전후보지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대구시와 국방부에 통 큰 결정을 촉구한다.

2019-01-29 17:13:41

김주영 소설가

[새론새평]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고국 눈부신 경제 발전에 놀란 교포여기저기 쏟아지는 불만에 더 놀라'지옥'은 마음속에 있는 건 아닌지…저마다 삶에서 보람과 기쁨 찾기를그는 재미 교포다. 미국 생활 십수 년 끝에 최근 고국을 방문했다. 무엇보다 고국의 눈부신 발전에 무척 놀라고 감동 받는다.우뚝우뚝 바라보이는 고층 브랜드 아파트. 미국에선 부잣집에서만 있는 비데가 한국에선 공중화장실에서도 볼 수 있고, 골목마다 중형차들이 가득가득 들어섰고, 아파트 입구마다 차량번호 자동 인식 주차장이 있고, 어디서나 빠른 인터넷, 뛰어난 교통카드, 버스 도착 알림판, 거미줄 같은 지하철에 안전 스크린도어, 수많은 TV 채널, 저렴하고 편리한 택시, 밤낮없이 열려 있는 편의점, 빠르고 정확한 대리운전 서비스, 전화 한 통이면 득달같이 도착하는 배달음식, 거리마다 널려 있는 원두커피 카페들, 손바닥마다 들려 있는 비싼 휴대폰들, 순식간인 배송 서비스, 열쇠는 옛말 비번과 카드키, 해외 여행객들로 붐비는 공항.미국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건강검진과 치과 치료를 마친 후 냉장고가 두 개나 있는 친구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다가 환기를 하려고 창문을 열다가 너무나 매끄럽게 열리고 닫히는 것이 신기해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미국 촌놈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래서 나는야 가슴 뿌듯한 해외 동포. 그러나 진짜 그를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죽겠어, 힘들어, 정치가 개판, 나라가 썩었어,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이 얼마나 살기 힘든지 푸념하고 성토하는 모습들,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등골이 빠진다.전셋값 올라서 살 수가 없어, 여자라서 밤길 나가기가 무서워, 정리해고당하는 나라에 살고 있어, 55인치 대형 TV 속 수많은 사람들도 다들 힘들어 죽겠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미국 대학 등록금은 놀랄 정도로 더 비싸고, 나는 전세는커녕 월세가 3천달러, 미국은 남자도 밤길이 무서워 외출을 삼가야 한다. 보험 병원비도 훨씬 더 비싸고, 밥 한 번 먹어도 팁에 세금 25% 추가. 내 주변의 인텔 등 IT 회사들도 수천 명씩 정리해고된다.치안, 위생, 수질, 기술 도시 인프라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에서 저렇게 죽는소리들을 하는 게 신기하단다. 그래서 진짜 지옥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건 아닌지…….옛날에는 조국이 잘 살게 되기를 기도했었는데, 이제는 조국 국민들 마음에 평안이 깃들기를 기도해야겠다는 것으로 그이 글은 끝을 맺는다. 그는 고대했었던 고국의 발전된 모습을 목격했으면서도 마음속으로부터 진정한 위로와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선진국에서도 엄두를 못 내는 경제적 사회적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어쩐 셈인지 끊임없이 구차한 삶을 호소하는 고국 사람들을 뒤로하고 다시 미국으로 떠나는 그의 등 뒤에 드리워진 어둡고 긴 그림자를 바라본다.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으로 일컫는 미국과 중국을 여행한 경험이 있다면, 그들 나라에서 겪는 불편과 불합리는 열거하기가 차고 넘칠 만큼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회사원들의 연봉이 우리보다 적은 기업체들도 그들 나라에는 널려 있고, 공무원들의 근무 태도 역시 역겨울 정도다. 민원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들의 업무처리는 불친절을 넘어 위압적이다.썩은 통나무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가 대초원을 쏜살같이 달려가는 노루를 부러워한다면, 그 달팽이는 가슴을 쥐어짜는 좌절감과 수치심으로 평생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 가지는 정체성과 특징적 삶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터득한다면, 마음의 평화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사숙고 끝에 정중히 제안했던 국무총리 자리를 한마디로 거절했다는 구상 선생의 '꽃자리'라는 시구가 이 순간 뇌리를 스친다.(중략)/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내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 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2019-01-29 16:23:47

[매일춘추]과학기술의 발전과 예술

4차산업혁명의 길은 그 과정으로만 본다면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그 단어가 명명되는 그 순간 마치 이 명제에 모든 인류가 맞추어져야 할 것처럼 여기어 졌고 매스컴은 이 변화의 속도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 시키고 있으며 그 변화에 맞추어지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한 낙오자가 될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활동을 표준화하는 두뇌연구, 그 표준화된 빅데이터를 학습하는 딥러닝기술, 스스로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우리의 선택을 대신해주는 무인시스템, 생산의 틀을 바꾸어놓을 3D인쇄기술, 사람을 도와 많은 일들을 감당해낼 로봇공학, 스스로의 신경망을 만들어 자신의 오류를 보고 없이 수정해 나가게 될 인공신경망 등등의 단어들을 대면 할 때면 우리의 내면에서는 인간으로서의 무력함과 개별성에 대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이렇게 우리의 생각의 속도를 훨씬 앞서는 과학/인터넷기술의 발전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음악의 아버지 바하는 '완벽한 예술은 기술을 숨긴다.' 라고 했다. 작곡에 있어서 기술적인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창작자의 작품을 보거나 들으면서 그것으로부터 감동이라는 것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이유를 단순히 기술의 완성도가 좋았다 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 작곡가의 음악을 판단함에 있어 그가 남긴 어느 단 하나의 작품으로 그 작곡가 전체를 판단하기는 힘들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작곡가의 작가로서 가지는 방향성이다. 우리는 이것을 작가정신이라고 한다. 어떠한 작품을 지향하고 추구하는가, 어떠한 인생의 무게를 이 작품을 통해 남기고자 하는가, 왜 이런 작품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종합적인 물음을 전재로 작품과 작가 또한 평가 되어져야 한다. 여기서 기술은 그저 작가의 의도를 담아내는 빵틀에 불과하다. 물론 먼 미래에는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를 가진 A.I.가 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키고 더 키워나가야 할 부분은 인간으로서 느껴야 하는 것들을 온전히 지켜나가려는 의지가 아닐까 한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고유영역인 창작성,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자기만족, 예술가로서의 의무와 책임, 인류에 대한 사랑,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예술로의 방향성, 개별적인 음악적 색채감,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 등을 생각한다면 문화라는 거대한 움직임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나 평균적인 수치화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서영완 작곡가

2019-01-29 13:25:07

고양이 갑상샘항진증으로 인한 신체 변화 (좌측:건강할 때, 우측:푸석해진 털과 체중감소) 사진출처: https://phys.org/news/2016-05-guidelines-hyperthyroid-cats.html

나이 든 고양이가 갑자기 활력이 넘치고 살이 빠진다면?…질병 의심돼요

나이 들어 얌전했던 고양이가 갑자기 활력이 넘치고 잘 먹지만 살이 빠진다면 갑상선기능항진증(FHT·feline Hyperthyroidism)을 의심하여야 한다. 이는 10세 이상 고양이에서 다발하며 고양이 내분비계 질환 중 가장 흔히 관찰되는 질병이다.갑상선(샘)은 목의 기관지 양쪽에 위치하는 작은 분비선으로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여 체온을 유지하고 신진대사를 조율한다. 사람의 경우 갑상샘이 항진되면 갑상선호르몬이 과잉 분비돼 에너지를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내며 덥고 땀이 많이 나며, 과도한 영양 소모로 인해 체중이 줄고, 자율신경 기능이 흥분되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며. 정신적으로 신경질적이 되고 불안감이 고조된다.고양이 갑상샘항진증 증상은 다음(多飮), 다뇨(多尿), 다식(多食)이 대표적. 그러나 잘 먹음에도 체중이 줄고, 과도하게 활동하며, 과식으로 인한 구토와 설사가 동반되고, 울음소리가 변하며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타난다.만성화되면 털은 푸석해지고 거칠어지며 몸통의 탈모가 진행되기도 하며 노령묘의 특성상 신장 질환이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원인은 깁상샘의 비대가 주원인이다. 최근 들어 고양이 갑상샘항진증 발병이 증가하는 이유로 요오드함량이 높은 식품의 급여와 더불어 조미료, 감미제, 통조림, 담배, 탈취제, 장난감, 유해성분이 함유된 고양이 모래 등을 통해 흡수되는 미량의 환경호르몬과 중금속 등이 지목된다.진단은 혈액검사를 통해 T4(thyroxine) 수치가 높고 관련된 임상 증상이 뚜렷하다면 확진을 내릴 수 있다. T4 수치를 높일 수 있는 질병이 있는 고양이는 해당 질병을 감별 진단하여 치료 후 검사를 반복해야 한다. 고양이의 갑상선 비대의 정도와 악성 종양 여부를 감별하기 위하여 촉진과 초음파 검사, 세포검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치료는 갑상샘을 억제하는 약물이 처방되며 비교적 예후가 좋은 편이다. 신장 질환이 병발한 노령묘들이 많으므로 신부전과 관련된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고양이에게 약을 지속해서 먹이기 어려운 상태이거나 종양이 의심될 경우 외과적인 제거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선택할 수 있다. 갑상샘항진증 고양이를 위한 처방 사료는 현재 국내에 수입이 되지 않고 있다. 갑상샘항진증 고양이에게 도움 되는 가정 처방식은 요오드(iodine)가 많이 함유된 식품을 피하는 것이다. 고양이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고함량 요오드 식품으로는 고양이 영양제, 건강보조식품, 계란, 우유, 쇠고기, 멸치, 닭고기 등이 해당한다. 갑상샘 기능을 억제하는 고이트로젠(Goitrogen)성분이 많이 포함된 브로콜리는 익히지 말고 갈아서 잘 먹는 음식에 섞어 주면 좋다. 고이트로젠 성분은 가열되면 파괴되기 때문에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염려되는 애견에게는 익혀서 먹여야 한다.고양이 갑상샘항진증은 보호자가 노령묘의 행동을 잘 관찰하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질병이다. 7세 이상의 노령묘는 일주일에 1회 이상 체중을 재보고 갑작스러운 행동의 변화가 느껴진다면 수의사와 상담하실 것을 권해드린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1-29 09:52:53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합동과 닮음

야당 '닮음' 증명해야'미실현 이익도 이익' 어린 시절 도형에서 도형의 '합동'과 '닮음'을 배운 기억이 있다. 두 도형이 똑같으면 합동, 모양은 똑같은데 크기가 다르면 닮은꼴이라 한다. 대응점, 대응변, 대응각도 배웠다. 삼각형의 합동 조건, 닮은꼴이 되기 위한 조건도 외야 했다.세변의 길이가 같을 때(SSS 합동), 두변의 길이가 같고 낀각의 크기가 같을 때(SAS합동), 한변과 양끝각이 같을 때(ASA 합동) 두 삼각형은 합동이다. 세 변의 길이의 비가 같을 때(SSS 닮음), 두변의 길이가 같고 사잇각의 크기가 같을 때(SAS 닮음), 두 각의 크기가 같을 때(AA 닮음) 두 삼각형은 닮은꼴이다. 알고 보면 간단한데 당시에는 왜 그리 어려웠던지.사각형 이상 되면 조건이 훨씬 복잡해진다. 모든 크고 작은 정사각형은 서로 닮은꼴이고, 한변의 길이만 같아도 합동의 조건을 간단히 충족한다. 그러나 직사각형, 마름모꼴, 평행사변형, 사다리꼴 등 갈수록 조건은 까다롭고 복잡해진다. 5각형 이상은 정다각형을 제외하면 조건을 달기조차 어려울 정도다.요즘 우리 정국은 두 여성 여당 의원의 스캔들로 무척 시끄럽다. 야당에서는 과거 정권의 초대형 사건과 '합동이다' '닮은꼴이다' 몰아붙이고, 여당에서는 '전혀 근거없다'고 반박한다. 대통령 부인과 가까운 여성의원은 탈당 후 정면 대결로 사태를 더 키우고 있다.사실 여당 실세 국회의원이 특정 사업을 정부 사업으로 지정하고, 예산 지원을 받아 파이를 키우고, 그 분야 인사에 개입하고, 친인척을 동원하는 구조를 보면 닮은꼴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똑같아 보인다고 합동은 아니고, 닮아 보인다고 닮은꼴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엄밀한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미실현 이익이라 해서 이익 본 게 없다는 주장만큼은 견강부회의 느낌이다.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2019-01-28 19:30:00

김문환 세명대 교수

[김문환의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새해 소망 담는 솟대…새 신앙 신라에서 이집트까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청동기시대 전시실로 가 보자. 대전시 괴정동에서 1969년 입수한 길이 7.4㎝짜리 청동 유물(BC 4세기 추정)이 눈길을 끈다. 반쯤 훼손된 기와집 모양 한쪽 면에 장대 위 새가 새겨졌다. '솟대'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노란 돼지 해가 밝았다. 우리 민속에 섣달인 구랍(舊臘)에서 설날인 원단(元旦)을 지나 정월 대보름까지 무병장수와 풍년의 복을 비는 제(祭)를 올리거나 솟대를 세웠다. 새해를 맞아 저마다의 소망을 담아 비는 의미로 솟대와 새 관련 신앙의 기원을 따라가 본다. ▷삼한시대 소도(蘇塗)의 유습으로 솟대 신앙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한성백제박물관의 삼한시대 풍습 모형을 보자. 큼직한 나무 아래 샤먼(제사장)이 두 팔 벌려 서 있고, 사람들이 무릎 꿇고 샤먼의 말에 귀 기울인다. 주위에 빙 둘러 세운 솟대가 보인다. 무슨 근거로 이런 모형을 만들었을까? '한국민속신앙사전'에서 솟대를 찾아보자.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혀 마을 수호신으로 믿는 상징물. 삼한시대의 소도(蘇塗) 유풍으로서 '솟아 있는 대'로 인식하기도 한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 "소도(蘇塗)에 큰 나무 세워"삼한시대 소도(蘇塗)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중국 진(晉)나라 학자 진수가 280~289년 사이에 쓴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의 삼한을 다룬 '한전'(韓傳)에 다음과 같이 소도를 묘사한다.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國邑)에서는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했는데, 이 사람을 천군(天君)이라 부른다. 또 이들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를 소도(蘇塗)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제사장 천군이 소도에 세운다는 큰 나무가 솟대의 기원임을 알 수 있다. ▷일본, 중국, 페르시아 솟대와 새 신앙…솟대가 변한 도리이(鳥居)일본 오사카 남부의 나라(奈良)현 카시하라(橿原) 고고학 자료관으로 가 보자. 한성백제박물관서 보던 소도와 닮은꼴 모형을 만난다. 새로 분장한 샤먼 아래로 무릎 꿇고 비는 사람들, 주변에는 솟대다. 5세기 솟대 유물도 전시 중이다. 일본의 신사 입구에 높다랗게 세운 나무 기둥 문을 '도리이'(鳥居)라고 부른다. 한자로 풀면 새가 사는 집이다. 솟대의 변형으로 본다. 황하강 상류 난주의 감숙성박물관에 한나라시대 솟대가 기다린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대만 고궁박물원에는 홍산(紅山)문화의 옥으로 만든 새(BC 3500~ 3000년), 양자강 하류 신석기 농사문명 양저(良渚)문화의 옥으로 만든 솟대(BC 2500~2200년)가 탐방객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파리 루브르박물관 페르시아 전시실에서 만나는 2점의 청동 솟대, 2점의 반짝이는 알라바스터 솟대 제작 연대는 BC 3300~3100년이다. 홍산문화와 비슷하다.▷페니키아, 이집트…새가 된 영혼이 영생 얻어 저승으로알파벳의 기원 페니키아 문자를 만든 페니키아와 카르타고인들은 사람이 죽은 뒤 영혼 '루아'가 육신과 떨어져 새가 돼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다. 이는 이집트에서 온 풍습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장례식 때 입을 열어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살도록 해준다는 개구의식(開口儀式)을 치른다. 그러면 '바'(Ba)라고 하는 새 모양 영혼이 미라를 지키고, '카'(Ka)라고 부르는 영혼이 저승으로 영생 심판을 받으러 떠난다. 죽어서 새로 바뀌는 이집트의 영혼 바는 죽어서 새가 돼 하늘과 소통한다고 믿던 삼한의 영혼 신앙과 맥이 닿는다. BC 3000년대부터 이집트, 페르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반도까지 유구한 문화의 흐름이 새삼 놀랍다.

2019-01-28 19:30:00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挂羊頭賣狗肉-양(羊) 대가리를 걸어놓고(挂羊頭) 개고기를 팔다(賣狗肉)

송나라의 황제 휘종(徽宗)은 1082년 개띠 해에 태어났다.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범치허(范致虛)라는 대신이 "폐하께서 개띠인데 지금 도성(지금의 開封)의 도처에서 개를 잡아먹고 있으니 이는 폐하의 명성을 해치는 행위입니다. 금지해야 합니다"라고 상서했다. 휘종은 범치허에게 큰 상을 내리고 전국에 개 도살 금지령을 내렸다.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특히 엘리트 양성소인 태학(太學)의 학생들은 "황제께서 말끝마다 선친인 신종(神宗)을 본받는다고 하는데, 신종께서 자신이 쥐띠라고 해서 고양이 사육을 금지하셨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휘종을 조롱했다고 한다. 그러나 황제의 칙령인지라 백성들은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 상인들은 양고기를 판다고 간판을 내걸고(挂羊頭) 암암리에 개고기를 팔았다(賣狗肉). 괘양두매구육의 유래이다. 줄여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 한다.이 말은 일찍이 제(齊)나라의 재상 안영(안자晏子)의 언행록인 '안자춘추'(晏子春秋)에서는 쇠머리를 내걸고 말고기를 판다(懸牛首於門, 而賣馬肉)는 표현으로 나온다. 겉과 속이 다르게 궁중에서는 지키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 지킬 것을 강요해서는 나라의 기강이 서지 않는다는 뜻이다.이 말들은 나중에 겉과 속이 다르거나, 앞에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뒤에서는 나쁜 짓을 할 때 사용되었다. 양 대가리를 걸어 놓았으면 양고기를 팔아야지 개고기를 팔면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현 정권을 향해 일갈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적폐 청산을 내걸고 상대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자유와 민주, 정의를 내걸고 미국이 중동에서 하는 행동이 그들의 눈에는 양두구육으로 비칠지 모른다.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암살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그 예이다.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2019-01-28 19:30:00

박창원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박창원의 기록여행] 그녀들의 반기

'인권을 유린하는 사회문제라 하여 반기를 높이 들고 부당국의 검진에 항거한 대동권번 기생 아씨 백여 명은~'(남선경제신문 1948년 7월 10일)1948년 6월 하순.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대구의 대동권번 기생들이 다급하게 모였다. 100여 명의 전체 기생 중 70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저마다 앞다퉈 목소리를 높이더니 이내 대구부를 성토했다. 파업과 다를 바 없는 영업 중단도 불사하겠다는 강경 발언에 박수가 터졌다. 무슨 이유로 대구의 기생 아씨들이 한목소리로 분노를 하게 된 것일까.'기생들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동시에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대구부 보건 당국의 일방적인 발표 때문이었다. 기생들은 발끈했다. "병이 있다면 누가 말하기 전에 스스로 진료를 받지 않겠느냐"는 게 기생들의 항변이었다. 기생들은 자신들을 잠재적 병균 감염자로 취급해 강압적으로 검진을 하려는 대구부의 처사에 분개했다. 이는 자신들을 온전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무시한 결과라고 봤다. 기생이기에 당하는 설움이었다. 곧 인권유린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반기를 든 이유였다.이유는 더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들은 서울이나 부산의 기생들과는 다르다고 여겼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영혼을 파는 천한 기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구에 뿌리를 둔 '토종 TK' 기생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들은 노래와 춤, 시문학 같은 예능을 익힌 예기로 함부로 무시당하는 데 잔뜩 화가 나 있었다. 헛말은 아니었다.당시 기생은 되고 싶다고 무턱대고 될 수는 없었다. 일정한 수련 과정을 거쳐야만 자격이 주어졌다. 지금의 학원과 같은 기생 양성소를 수료한 뒤 자격시험인 예기시험을 치렀다. 노래나 춤 등의 예능을 제대로 익혔는지를 테스트해 합격과 불합격을 판정했다. 시험 과목도 만만찮았다. 시조와 성악, 무용, 품행시험, 권주가 등이었다. 권주가라니! 매상을 올려야 하는 기생의 현장실습 과목이었을까.그들은 그 나름 직업인으로서의 긍지가 있었다. 사회적 활동과 공연을 통해 존재 가치를 뽐냈다. 해방 이듬해 대동권번의 교육생들이 창립연주회를 대구극장에서 사흘 동안이나 연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웃이 어려울 땐 재능 기부도 아끼지 않았다. 수해가 났던 1947년에는 기생 130여 명이 이재민 돕기 공연을 펼쳤다. 공연 입장권도 그들이 직접 거리에서 팔았다. 고급 공연의 입장료가 100원이었던 그때 10만원이란 큰돈의 성금을 모았다.그런 기생들이었기에 자신들을 멸시하고 강행하려는 검진에 배신감을 느끼며 반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게 다는 아니었다. 수시로 당했을 인격적 수모를 견디다 못해 폭발한 측면이 컸다. 결과적으로 차별을 거부하는 약자의 저항으로 비쳐졌지만 말이다. 60년이 흘러도 세상은 바뀐 듯 바뀌지 않았다. 기생은 온데간데없지만 다양한 갑질 문화의 계단은 차곡차곡 쌓였다. 분노하면서 체념할 정도다. 잊을 만하면 터지니까.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2019-01-28 1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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