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매일춘추 필진이 바뀝니다

매일춘추 필진이 바뀝니다

매일춘추 필진이 4월부터 새롭게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6월까지 3개월 간 시대의 고민과 그에 대한 생각을 지면으로 나누게 됩니다. 다섯 명의 새 필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자신의 요일에 독자와 만납니다.월요일은 이나리 소설가가 엽니다. 뒤를 이어 이수영 책방 '하고' 대표, 박세향 연극배우가 각각 화요일과 수요일을 맡습니다. 목요일에는 박소현 피아니스트가, 금요일에는 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이 마무리합니다. 새로운 필진 역시 각자 분야의 전문성을 살려 지면을 채울 계획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2021-03-30 11:35:05

[매일춘추] 영화의 미래

[매일춘추] 영화의 미래

1976년, 영화비평가 앙드레 바쟁은 그간의 논고들을 묶어 현재까지도 교과서처럼 읽히는 위대한 저작을 내놓는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서부터 영화의 존재론적인 가치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대담한 질문의 기저에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과 매력에 대한 긍정과 신뢰가 깔려 있다. 바쟁은 영화가 기존의 다른 예술들과 어떻게 차별화될 수 있는지, 그리하여 다른 고전예술들과 달리 영화만이 구현할 수 있는 미학적 가능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한다.2020년 12월 국내에서 가장 유력한 영화잡지에 실린 특집기사의 제목은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질문, 영화란 무엇인가'였다. 40년의 시차를 두었다지만, 동일한 질문이 품은 뉘앙스가 어쩜 이렇게 180도 달라질 수 있을까 놀랍다. 40여 년 전 바쟁의 질문이 영화의 힘을 긍정하는 자신감에 찬 표현이었다면, 오늘날의 질문에서는 영화 매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과 염려가 읽힌다.'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영화에 대한 전통적인 대전제는 예전부터 논의의 대상이었고, 최근 들어 이 논쟁은 더욱 첨예해졌다. 2018년 칸영화제가 넷플릭스 상영작을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을 때, 반대로 베니스영화제는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넷플릭스 제작 작품 '로마'에게 최고상을 안겨주었다. '어벤저스'같은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라고 일갈하면서 신작을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개봉한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경우를 보면 사안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영화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영화인가'가 더 유효한 질문인지도 모른다.'사냥의 시간', '승리호'처럼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선택한 국내 블록버스터들의 사례가 늘어나면서, 우리도 '극장시대의 종언'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최대 극장 체인 CJ CGV도 3년 내 오프라인 상영관의 30%를 폐점하고 온라인 콘텐츠 제작의 비중을 늘리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니,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의 성장과 극장의 축소는 예견된 미래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물론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이 영화라는 양식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음악의 소비가 단기간에 LP나 CD 시대에서 MP3와 온라인플랫폼으로 이행한 것처럼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 즉각적이고도 전면적인 소비양식의 변곡점에서, '영화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영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드라마와 웹콘텐츠와 달리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 미학적 성취를 위한 치열한 고민 속에 영화의 미래가 있을 것 같다.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1-03-30 11:34:39

[세계의 창] 주택시장의 버블은 한국경제에 매우 위험하다

[세계의 창] 주택시장의 버블은 한국경제에 매우 위험하다

시장경제에서의 가격은 재화와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가장 원하는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시그널이다. 이 시그널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거래 당사자가 거래 대상이 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거래가 실현되기 위한 추가적인 비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 조건하에서 형성된 시장가격은, 우리가 매일 슈퍼에서 사는 물건들처럼 누가 계획하고 지시하지 않아도 기업은 사회가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소비자는 원하는 만큼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의 역할을 한다.재화의 특성에 따라 가격이 시그널로서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주택이다. 주택시장은 슈퍼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시장과는 많이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주택은 완전히 같은 품질의 주택이 존재하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수만 개의 메모리 반도체는 같은 품질이지만, 삼성중공업이 건설하는 래미안 아파트는 위치, 면적, 층수, 방향 등 아파트 고유의 특성과 주위의 교통, 교육, 의료 등 사회자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같은 품질의 아파트는 없다. 둘째, 첫 번째 특성 때문에 구매자가 원하는 주택을 찾기 위한 정보 획득 비용과 탐색 비용 등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거래비용(Transaction costs)이 든다. 셋째, 주거에 대한 수요와 공급으로 이루어지는 주택시장과, 투자와 담보의 대상인 금융시장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갖는다. 즉 주택시장에서 균형이 이루어져 있어도 금융시장에서 주택에 대한 투자 수요가 증가하면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투자 수요가 감소하면 주택가격은 하락한다. 넷째, 토지 이용과 건축에는 수많은 정부 규제가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주택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다고 해서 다른 재화와 서비스처럼 기업이 즉시에 공급할 수 없다.주택시장이 갖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특성 때문에, 2001년에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미국의 조지 아서 애컬로프(George Arthur Akerlof) 교수가 말한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발생해 시장가격으로 주택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이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고 있다.세 번째와 네 번째 특성으로 인해서는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버블이 발생하기도 하고, 주택가격이 폭락하는 버블이 터지기도 한다. 버블의 생성과 붕괴는 경제 전체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사실 일본은 1991년에 버블이 붕괴하면서 막대한 자산 손실을 경험했다. 일본의 국민계정 통계를 보면 버블 붕괴 전인 1990년에 토지자산이 2천456조 엔이었는데, 2019년에는 약 50% 정도 하락한 1천250조 엔으로 기재돼 있다. 이는 30년 동안 1천206조 엔의 토지자산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부동산시장이 금융시장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부동산가격의 폭락으로 금융권은 엄청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다. 부실채권의 정리 과정에서 시중은행들이 도산하거나 합병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일본 정부도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104조 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막대한 부실채권을 처리하는 데 일본은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동안 금융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서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한국도 버블 붕괴 전 일본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가계가 보유하는 자산 중에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고, 이 자산의 대부분이 은행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로 확보된 것이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김세직 교수와 주택금융연구원의 고제헌 연구위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세부채를 포함한 가계부채의 규모가 2016년에 2천78조 원으로 GDP 대비 127%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6년 이후의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의 상승을 고려하면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더 크게 증가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처럼 갑자기 버블이 붕괴하면 한국의 금융권은 치명상을 입게 되고, 주택에 거의 올인한 가계는 자산의 거의 대부분을 잃게 돼 한국 경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주택시장에서 가격 형성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 변화를 서서히 조정하지 않으면 우리의 피땀으로 축적한 자산가치의 대부분이 신기루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2021-03-29 11:38:27

[기고]바이든 정부와 북한인권

[기고]바이든 정부와 북한인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대응 방식은 '전략적 인내'였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톱다운' 방식의 지도자 간 직접 접촉 방식을 취하였다. '전략적 인내'는 소극적 방관에 가까웠고, '톱다운' 방식은 전 세계 언론의 집중적 조명을 받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하였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었고, 트럼프 정부는 외면하였다.조 바이든 정부는 북한의 핵 문제나 인권 문제에 있어 오바마나 트럼프와는 다른 접근을 시도할 것이다. 바이든이 트럼프와는 다른 방식을 취하겠지만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를 답습하기도 어렵다. ICBM 등 북한의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 능력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뒷짐을 지고 있을 수는 없으며, 서구 및 일본·호주·인도 등과 연계해 대중 봉쇄 정책을 시도하는 미국은 그 정당성의 근거로 민주적 가치와 인권 문제를 내세울 것이다. 홍콩에 대한 자유 억압과 위구르 주민에 대한 강제적 중국화 등 중국의 인권유린 정책에 대해 고강도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미국이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트럼프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 인권 문제나 탈북자 문제 등에 있어서 전 정부의 대응 기조를 바꾸었다.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목적으로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의해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해야 하지만, 5년이 되도록 출범조차 않고 있다. 여당이 여당 몫 위원을 추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북한 인권 문제를 입 밖에도 내지 않았으며, 그나마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국가인권위원회도 본질적 문제보다는 여성·장애인 등 소프트한 인권 이슈를 매개로 북한 당국과의 교류·협력 추진에 무게를 두고 있다. 더욱이 작년 말에 서둘러 통과시킨 소위 대북전단금지법은 북한의 인권 의식을 제고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을 봉쇄하고 형사처벌 규정까지 두고 있다.한편 독일 정부는 통일 이후 동독의 인권침해 사범에 대해 철저히 단죄하였다. 지난 1989년 동독 청년 크리스 게프로이가 베를린 장벽을 넘다가 동독군의 총격으로 숨진 사건이 발생하였다. 독일 정부는 통일 이후 직접 총을 쏜 병사뿐 아니라 최고지도자, 국방장관까지 모두 기소했다. 서독은 통일 30년 전부터 접경지대에 기록보존소를 설립하고 동독 정권의 인권침해 자료를 수집하고 수많은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해 가해자들을 처벌했고, 유럽인권재판소도 인권침해 범죄는 시효가 없다고 판단했다.정부는 유엔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공허하게 들린다. 정부의 태도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북한의 핵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미국도 한국도 대화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고, 단계적 접근이든 '스몰 딜'이든 간에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그러나 북한과의 대화를 이유로 북한 인권 문제 거론 자체를 꺼리는 정부의 태도는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타당성을 잃었다. 대북 관계에서나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를 좁힐 뿐이다. 국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북한의 인권침해 사례를 수집해야 하며, 국제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동포인 북한 주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한국 정부가 그나마 체면을 지키는 일이다.

2021-03-29 11:38:16

[매일춘추] 마음의 담장 허물기는 합창으로

[매일춘추] 마음의 담장 허물기는 합창으로

지금부터 20여 년 전 대구시는 이웃 간 소통을 위해 담장 허물기 운동을 펼친 적이 있다. 삭막한 도시환경 개선을 위해 칙칙한 담벼락을 허물고 꽃을 심고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 아름답고 시원한 공간을 마련했다. 이 운동은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벤치마킹했고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성공적인 사례로 꼽혔다.그러나 이 운동으로 눈에 보이는 담장은 어느 정도 허물어졌으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은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물리적 담장 허물기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마음의 담장 허물기를 위한 그 무엇이 필요한 때다. 이쯤에서 필자는 누구든지 참여하여 함께 노래하는 '합창'을 제시하고자 한다.얼마 전 수성문화재단이 마을합창단을 운영하기 위해 '수성하모니 마을합창단' 지휘자 몇몇 분을 선정했다. 곧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합창단이 구성돼 수성구에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동네마다 울려 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지역에는 이웃 간에 닫혔던 마음의 벽이 무너지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참에 특정 지역에 한할 것이 아니라 유네스코가 지정한 '음악창의도시'답게 대구 전 지역에서 시민 모두 합창을 생활화했으면 한다.합창은 악기나 특별한 기술 없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 예술 활동이다. 어느 정도 소리만 낼 줄 알면 남녀노소 누구나 합창을 할 수 있다. 귀로 듣고 서로의 눈을 보면서 노래해 보자.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한층 더 넓어질 것이다. 합창을 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잠시 뒤로 하고 우리가 속한 지역과 직장, 동우회 등 규모가 크든 작든 합창단을 만들어 시행해 보길 바란다. 선진국일수록 합창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는데 이제는 합창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보통 혼자서는 노래를 잘 부르지만 합창단에 처음 들어가서 노래 부를 때는 자신 있게 소리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주위 사람들 소리에 익숙해지고 점차 소리를 내는데 자신감이 생긴다. 특히 연주회 등에 나가서 불렀을 때는 자신이 동참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긍지와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때로는 합창을 하는 동안 내재 된 음악적 감성이 분출되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는데 이것을 통해 얻는 만족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신 건강에 이것보다 더 좋은 명약이 없다.10여 년 전 KBS TV에서 방영한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애당초 합창단의 구성원은 음악과 전혀 관련 없는 연예인들과 합창에 잘 어울리지 않는 대중음악 가수 등으로 구성됐다. 아마 합창단원 스스로 음악적 재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점차 서로를 배려하고 소통해 결국에 값진 결과물을 얻어냈다. 누구든지 그 정도는 가능하다. 합창을 함으로써 우리는 소통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것이 합창의 매력이고 장점이다. 합창은 우리를 또 하나의 경이로운 세계로 이끌어 줄 것이다.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2021-03-29 11:36:48

[매일춘추] 라떼 사서의 도서관 이야기

[매일춘추] 라떼 사서의 도서관 이야기

32년 전 사서가 되었다. 도서관에 출근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열람권을 파는 일이었다. 입관료를 내고 열람권을 구입해야 자료실과 열람실을 이용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입관료는 어린이는 30원, 학생과 성인은 100원이었다. 당시 성인의 시내버스 요금이 170원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직원들이 조를 짜서 돌아가면서 이 일을 맡았다. 입관료 제도는 1992년 1월 15일 폐지되었다. 그때부터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새내기 사서 때는 모든 업무를 수작업으로 했다. 책을 구입하고 정리하여 대출하는 전 과정을 그렇게 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수서에 필요한 정보를 주로 신문이나 출판 관련 잡지를 통해 얻었다. 사서는 구입한 자료의 정리 작업을 할 때 일일이 손으로 쓰거나 타자기로 타이핑했다. 자료 검색의 필수 도구였던 카드목록, 청구기호 레이블, 북카드, 북포켓도 직접 만들었다. 한 권의 책이 서가에 꽂히고 이용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사서들의 손이 많이 필요했다.책을 구입하고 정리하는 부서에는 지금보다 많은 수의 직원이 일했다. 사서는 책을 빌려줄 때도 개인별 대출카드에 등록번호, 서명, 반납일 등을 모두 기록해야 했다. 1993년 도서관 전산화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도서구입과 정리, 대출업무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수작업으로 해오던 작업들이 컴퓨터로 대체되어 자동화되었다. 사서들이 수작업으로 하던 카드목록, 북카드, 북포켓 작성 등 많은 업무가 도서관에서 사라졌다.1990년대까지 도서관 강좌는 서예, 꽃꽂이, 컴퓨터 교육 등 5개 남짓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평생교육 강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공공도서관이 지역평생학습관으로 지정되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사회교육법'이 2000년도에 '평생교육법'으로 전면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강좌가 연간 50~60개씩 개설되었다.사서들은 많은 고심을 했다. 다른 문화기관이나 복지관 등과 차별된 강좌를 열기 위해서였다. 개강 이후에는 출석률은 어떤지, 강사와 수강생 간 소통은 잘 되는지, 교육 만족도는 어떤지 등을 살피는 것도 담당 사서의 몫이었다.2011년부터는 도서관에서 학생들의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더불어 외부기관이나 단체와도 업무협약을 체결해 학생들이 다채로운 체험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2015년부터는 중학교 자유학기제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설했다.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줄 수 있도록 사서직업체험, 독서진로코칭, 인문학으로 진로탐색하기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인도의 도서관학자이자 사서인 랑가나단이 말했다. "도서관은 성장하는 유기체이다." 사서로서 가슴 깊이 공감되는 말이다. 도서관은 지금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시대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화는 늘 두렵고 힘들지만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슬기로운 대처법을 고민해 보는 것이 어떨까.제갈선희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 독서문화과장

2021-03-29 06:30:00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신윤복, ‘상춘야흥'(賞春野興)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신윤복, ‘상춘야흥'(賞春野興)

지난주 앞산에 진달래가 환하게 피었다. 봄기운이 아직 다 올라오지 않은 이른 봄 삼사월이면 우리나라 산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진달래꽃이다. 가깝고 정겨운 이 꽃에 김소월은 사무치는 정한(情恨)을 안으로 삭이며 억눌렀던 이들의 마음을 담았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고 슬픔과 결기를 함께 노래한 '진달래꽃'은 김소월의 대표 시이자 시집 이름이다('진달래꽃', 매문사, 1925년). 나라를 빼앗겨 우리의 이 땅을 무어라고 일컬을 이름이 없었을 때 무궁화가 피는 '근역'이라고 했고, 지금은 나라꽃 무궁화지만 애틋하기로는 진달래꽃이 으뜸인 데에는 소월 시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옛 그림에서 진달래꽃을 즐겨 등장시킨 화가는 신윤복이다.신윤복의 진달래꽃은 김소월과 달라서 그림 속 광경이 봄을 배경으로 일어난 일임을 나타내는 계절 상징물이다. 진달래꽃으로 봄날이라고 꼭 드러낸 그림이 많은 것은 남녀상열지사의 그림이 많기 때문이다. 얼었던 대지가 화창한 양(陽)의 기운을 타고 따뜻하게 부풀어 오르는 이치를 연애의 설레는 마음에 빗대어 춘정(春情), 춘의(春意), 춘색(春色)이라고 했다.'상춘야흥'은 진달래꽃 핀 어느 날의 광경을 그렸다. 갓 끈을 편안히 풀어 놓은 채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음악의 선율에 몰두하고 있는 분이 이 봄맞이 상춘(賞春) 행사의 주최자이다. 청중은 본인과 화면 왼쪽 끝에 앉아 부채를 거꾸로 쥐고 장단을 맞추고 있는 친구 한 사람뿐이다. 두 명의 관객은 도포에 갓을 쓴 평상복 차림인데 풍채가 좋고 눈매가 날카로운 모습이어서 양반 중에서 무반(武班)의 고위 관료인 듯하다. 불려온 기생 두 명은 음악에 관심이 없는 듯 시큰둥한 표정이고, 오른쪽에 서 있는 창옷 차림 두 젊은이는 양반의 수행원이다. 거문고, 해금, 대금을 연주하는 세 명의 악사가 각각 작은 자리 위에 앉아 한창 연주 중이다. 화면의 왼쪽 아래에는 술상을 들고 오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크지 않은 화첩에 양반, 기생, 음악가, 수행원, 하인 등 신분과 성별과 직업이 다른 10명의 인물이 옷차림과 자세와 표정으로 각자의 개성까지 드러내며 그려져 있어 한 장면으로 봄날 야외 음악회 광경을 빠짐없이 보여준다.신윤복은 아버지와 종조부가 화원이었던 화원 명문가 집안 출신으로 그도 화원이었다고 하는데 기록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화가이다. 그는 여성 인물의 형상화와 기녀와 양반 남성 사이의 애정 풍속에 집중했다. 지금은 흥미로운 '풍속화'이지만 그의 주제는 당시로서는 시대의 금도를 넘은 일이었기 때문이다.미술사 연구자

2021-03-29 06:30:00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권력에 대한 신상필벌은 국민의 몫

[노동일의 이른 아침에] 권력에 대한 신상필벌은 국민의 몫

문재인 대통령의 백신 접종 해프닝은 민망하다. 문 대통령의 접종 모습을 공개한 청와대의 기획 의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런 퍼포먼스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에 대한 불신을 잠재우려 했을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반대이거나 최소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물론 일각의 백신 바꿔치기 루머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드러나는 건 단지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낮말은 새가 듣는 정도를 넘어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도 숨길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원수의 '솔선수범'조차 터무니없는 의혹의 대상이 되는 게 민망하다는 얘기다. 오죽 불신이 깊으면 그 같은 극단적 음모론이 소비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렇다.더 민망한 것은 정부의 좀스러운 대응이다. 국민의 의구심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간호사가 주사액을 뽑은 후 가림막 뒤로 들어갔다 나오는 등 외국 지도자들 접종 장면과 너무도 다른 모습을 연출한 때문이다.정부가 불필요한 가림막과 간호사의 행동을 충실히 설명하고 접종 장소에 설치된 CCTV를 공개했다면 가짜 뉴스는 즉시 사라졌을 것이다. 안개처럼 스멀대는 가짜 뉴스에 대한 가장 좋은 대응책은 진짜 뉴스라는 햇빛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 대신 수사 의뢰로 대응하면서 CCTV 동영상은 없다는 해명만 내놓고 있다.사실 이런 종류의 불신은 단순히 백신 자체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1호 참관인' 아닌 '1호 접종자'로 담대하게 나섰다면 어땠을까.국민이 박수와 함께 대통령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백신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등 여러모로 긍정적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각각 94세, 99세인 영국 여왕 부부나, 78세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뜻 백신 접종에 나선 이유가 그것이다.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문 대통령이 처음부터 나서지 않았을 거라는 게 솔직한 의구심이다.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냐"는 여당 의원의 항변이 부지불식간에 속마음을 드러낸 말일 것이다.80%에 육박하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단순히 임기 말 현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급전직하다. 부동산 관련 민심 이반 등 많은 원인이 중첩된 게 사실이다. 그 같은 요인을 넘어 현 정부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는 게 백신 해프닝이다.대통령의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는 흘려 버리고 뒤늦게 진노했다는 메시지를 내놓거나 뒷북 수습에 나서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1년여를 방치한 추미애-윤석열 갈등에 이어 사퇴가 예고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적기를 놓쳐 버렸다. 장관으로 영이 설 리도 없거니와 조롱의 대상이 되며 대통령의 권위와 지지를 떨어뜨릴 뿐이다. 리더십의 요체인 신상필벌이 작동하지 않는 정부를 국민이 지지할 리 만무하다.국민의 마음이 정권과 더욱 멀어지게 하는 것은 청와대의 무감각이다. 이미 리더십 발휘 시기를 놓쳤다면 굳이 공개 접종 행사를 할 이유가 없다. 생중계도 아닌 녹화 동영상 제공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할 일도 아니다.질병관리청의 수사 의뢰 역시 만류했어야 마땅하다. 퍼포먼스 기획 실패가 의혹의 원인임을 인정하고 겸허한 자세로 국민에게 상황을 설명했어야 한다. 부동산 관련 국민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부동산 적폐'로 규정하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4년 내내 계속된 적폐 몰이에 신물이 난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당장 문제가 되는 3기 신도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급조된 공급 대책이다. 먼저 관련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고 범죄를 단죄하는 게 순서다. 전 정권부터 시작된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를 파헤치고 제도 개선을 하는 건 그다음이다. 과거 정부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잘못을 물타기하는 수법은 이제 통하기 어렵다는 사실 역시 잘 모르는 모양이다. 스스로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고, 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하는 권력에 대한 심판 방법은 다른 게 없다. 국민의 신상필벌이 따라야 한다. 국지적이지만 마침 선거가 임박해 있다.

2021-03-29 06:08:56

[기고]장관의 소신과 대통령의 결단

[기고]장관의 소신과 대통령의 결단

필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8년 공무원으로 들어와 40년을 정부에서 일했다. 보람도 있었고, 수많은 사건·사고와 위기를 겪어 고충도 많았다. 가장 어려운 것이 부처 의견과 대통령 뜻이 다를 때의 처신이다. 합리적 정책 결정 과정을 거친 대통령 의사는 거역하기 어렵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 의견, 비선 풍문, 대통령 뜻이라는 비공식적 지시가 내려올 때가 문제다. 노련한 장관은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노하우를 알지만 대부분 갈팡질팡하거나 고민 속에 악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 장관은 소속 부처의 전문성을 토대로 판단하나 대통령은 부처 의견을 뛰어넘는 결정을 할 때가 있다. 국가 차원의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거나 때로는 통치행위적 결정도 있기 때문이다.2013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다. 구제역이 발생해 전국 소, 돼지 약 350만 마리를 살처분해 매몰했다. 당시 소, 돼지의 약 20%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였다. 살처분하지 말고 백신을 사용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농식품부와 전문가들이 완강히 반대했다. 백신을 사용하면 부작용이 우려되고 축산물 수출도 어려우며, 선진국도 살처분 위주로 대응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고민 끝에 백신 사용을 결정했다. 우려와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고 일부 미비 사항은 보완했다. 종전 방식을 계속했으면 엄청난 규모의 살처분과 매몰에 따른 환경오염 등 많은 문제가 추가로 야기됐을 것이다. 정책의 전환은 쉽지 않다. 과거 관행, 선진국 사례, 전문가 의견을 뛰어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코로나19 사태 속에 묻힌 것이 가축 질병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비상이 걸렸다.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종식되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해 가축은 물론 인류 전체가 위기에 직면했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 지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 사람과 동물에 공통 전염되는 '인수 공통 바이러스'가 우려된다. 조류인플루엔자도 사람에게 옮겨올 가능성이 있다. 지구상에는 약 160만 종의 바이러스가 있으며, 정체가 파악된 것은 3천 종 정도에 불과하다. 조나 마제트 UC데이비스대 감염병학 교수는 야생에서 인간으로 옮겨올 수 있는 인수 공통 감염 바이러스는 50만 종이며, 그중 밝혀낸 것은 0.2%에 불과하다고 한다.지금은 전방위 위기 시대이다. 과거 정책과 제도를 탈피해야 한다. 부처 의견을 넘어서는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가축 질병뿐 아니라 당면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응책에도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경상북도에는 소가 70만 마리, 돼지는 약 150만 마리가 있다. 연간 800만t의 축산 분뇨가 방출된다. 소고기, 돼지고기, 계란 등 축산물 가격 안정에 치중하다 보니 가축 질병과 분뇨 처리에 관심이 적었다. 퇴비나 액비 위주 분뇨 처리에 한계가 왔다.2012년부터 해양투기도 금지됐으며 최근엔 토양의 퇴비 부숙도 규정도 강화됐다. 전국적으로 5천200만t에 이르는 축산 분뇨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전망이다. 분뇨 처리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분뇨를 건조, 고체연료화한 후 펠릿이나 땔감으로 사용하여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방안이다. 냄새와 토양오염을 방지하고 하천 녹조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경상북도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정책 전환이다. 농식품부, 산자부, 환경부 등 관계부처 협조도 필요하다. 지방행정의 우수 사례로,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꼭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2021-03-28 15:43:07

[책CHECK] 중딩들은 반.성.중.

[책CHECK] 중딩들은 반.성.중.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리고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가.'중학생들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며 쓴 책이다. 이현민·김민규·장예준·김유민·이태림·권송비·이예지·양다혜·이준현 등 고산중 책쓰기 동아리 'Enjoy Writing Books' 학생 9명이 '성장'이라는 주제로 중학생들의 마음과 일상, 고민, 감정 등을 담았다.대구시교육청 책쓰기 프로젝트에 선정돼 출간된 이 책은 우정과 고민을 담은 단편소설 '큰 꼬맹이' 등을 통해 보통의 중학생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풀어내고 있다. 또 작가와 문학작품 속에 담긴 성장의 의미를 찾으며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책 제목은 '자주 반항하고 때때로 반성하며 매일 조금씩 반짝반짝 성장하는 중딩들의 이야기'라는 의미다. 208쪽. 1만3천원

2021-03-27 06:30:00

[안동을 걷다, 먹다] 26. 안동 하회마을

[안동을 걷다, 먹다] 26. 안동 하회마을

안동에 살기 시작했다. 서울이나 대구 등 대도시에 비해 안동에 사니 편안하다. 안동은 좋다. 날마다 안동을 걷고 안동 음식을 먹는다. 익숙한 그것들이 어느 날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동의 주름살이 보이기 시작했고 안동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동국시와 안동찜닭, 안동간고등어 혹은 헛제사밥의 심심한 내력도 내 귀에 속삭거리기 시작했다.무심했던 안동에 대한 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고 투박한 내 입맛도 호사스럽게 안동을먹게 됐다. 안동에 대한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냥 안동이야기다.26번째 이야기 하회마을과 부용대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봉정사와 하회마을 그리고 유교경판, 모두 안동이 보유(?)하거나 안동에 있는 세계문화유산과 기록유산들이다. 안동과 같은 작은 지방 도시가 유네스코가 선정한 다섯 개 정도의 세계 유산을 자랑한다는 것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안동에는 세계문화유산 외에도 국보가 다섯 개, 보물이 43개나 있어, 말 그대로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문화도시라는 명성에 손색이 없다.'부용'(芙蓉)은 연꽃이다. 하회마을의 옛 이름은 부용촌(芙蓉村)이었다. 마을이 형성된 형상이 연꽃이 핀 모양을 연상케 했다. '북애'(北崖)라고도 불리던 마을 북쪽 강 건너 절벽이 '부용대'(芙蓉臺)가 된 것은 연꽃마을을 내려다보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낙동강이 휘돌아 감싸 안아 '하회(河回)마을'이라고 명명된 이 곳은 원래 부용대에서 바라보게 되면 연꽃이 활짝 피는 모양으로 보여서 오래 전부터 '부용마을'로 불렸다.하회마을을 둘러보고 난 후 부용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방금 둘러본 고택들을 한 눈에 넣어보는 것도 좋지만, 아예 하회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전경을 바라보는 것도 하회마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부용대에서는 내려오면서 서애 류성룡이 지은 옥연정사와 서애의 맏형 류운룡의 겸암정사도 봐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요즘은 옥연정사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예전에는 부용대에서 하회마을로 건너갈 수가 있었다. 나룻배를 탈 수도 있었고 앤드루 왕자가 방문하게 되자 섶다리까지 설치해 놓았으나 지금은 섶다리로는 통행할 수 없도록 했다.아주 오래된 중국 영화 중에 한중 수교 전에 수입 상영된 이라는 영화가 있다. 마오쩌둥(毛泽东)시대의 아픈 기억인 문화대혁명을 소재로 다룬 영화로 문화대혁명 시대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 주요한 스토리다. 이 영화의 무대가 부용진이라는 마을인데 말 그대로 연꽃이 피는 마을이었다. 마오쩌둥 시대의 상처를 정면으로 다룬 이 영화의 배경이자 무대가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성 '왕촌'(王村)이라는 소수 민족 투자족(土家族)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마을 역시 연꽃이 피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부용진(芙蓉鎭)이라고 불렸고 강가에는 늘 연꽃이 피어났다. 영화가 인기를 얻은 후 왕촌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연꽃마을 으로 바뀌었다. 이 영화는 한중 수교(1992년)가 되기 전인 1989년 수입된 최초의 중국(중공)영화로 당국의 특별승인을 얻어 호암아트홀에서 대중에게 상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하회마을은 중국의 부용진을 연상시킨다. 부용진이 한 때 부족 국가를 이뤘던 투자족의 수도격이었다면 하회마을은 풍산 류(柳)씨들이 수백 년 동안 모여 살아 온 씨족마을이었다. 지금도 하회마을 주민의 70% 이상이 류씨 집안 사람들이라고 한다.하회마을은 2010년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오랜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증거로 예술성이 담긴 축제나 행사가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았고 특히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인간과 문화유산이 잘 조화를 이루는 보편적인 사례라는 극찬도 받았다. 하회별신굿 놀이 등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돼있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하회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하회마을 입구 하회장터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은 후 주차장에서 (무료)셔틀버스를 타거나, 하회마을 만송정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1.2km 걸어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하회마을 안으로는 마을 주민 차량이나 공무 외에는 차량 출입이 금지돼있다. 그러나 하회마을을 천천히 걷더라도 1시간 정도면 대충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규모이기 때문에 오솔길을 통해 걸어서 들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오솔길로 들어서서 걷다 보면 낙동강이 보이고 멀리 부용대도 나타난다.지금 하회는 한창 봄이다. 오솔길을 따라 산길을 오르락 걷다 보면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들의 새 순이 순간 순간 올라오는 것을 볼 수도 있고 봉오리를 맺고 꽃망울 터뜨리기 시작하는 벚꽃 군락과 충효당과 양진당 마당의 벚꽃과 목련까지 다 만날 수 있다. 고택에 핀 꽃을 만나는 일은 도심에서 만나는 봄꽃보다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봄마다 철마다 피는 꽃이라도 수백년 역사를 담고 있는 유서 깊은 고택의 봄은 남다르게 다가왔다.하회마을은 계절의 변화를 유감 없이 잘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은 마을이다. 봄이면 봄꽃, 여름이면 짙어진 녹음과 더불어 낙동강의 유량과 유속이 빨라지면서 '물돌이 마을'의 정취를 흠씬 느끼게 해주고, 가을에는 초가 지붕 위로 살포시 드러난 앙상한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홍시들이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들어준다. 하회마을의 겨울은 추울 듯 하지만 눈 내린 풍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하회마을에 갈 때는 아는 만큼 보인다.마을을 둘러보는 코스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마을 중앙에 있는 양진당을 중심으로 한 기념비적인 몇몇 고택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하회를 다 봤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당수 고택들에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어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있어 실제로 관광객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고택은 제한돼있다는 점은 아쉽다.일부 고택들은 아예 관광객들의 접근을 막겠다며 자동차로 골목 입구를 봉쇄한 볼썽사나운 풍경도 노출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회마을에서도 관광객들이 실제로 관람할 수 있는 고택은 '양진당'과 '충효당' '북촌댁'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양진당도 사랑 별채만 개방돼있다. 그나마 별채 마당에는 목련이 활짝 피어 다행이다.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그래서 '서애종택'이라고 불리지만 서애가 살았던 집은 아니다. 지금의 충효당은 서애 사후 지은 집이라고 한다. 이 집의 당호를 '충효당'이라고 지은 것은 '충과 효 외에 달리 할 일은 없느니라'(忠孝之外無事業)이라는 서애가 임종 직전 자손들에게 한 당부에서 나왔다.충효당에는 안동을 방문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있다. 충효당 앞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심은 구상나무가 있었고, 그 옆에는 여왕 방문 20년 만에 하회마을을 다시 찾은 앤드루 왕자의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 표식이 세워져 있었다. 충효당 입구에서는 매화가 소리 없이 지고 있었고, 안채 마당에서는 벚꽃이 아직 한창이었다.한 두 주가 지나면 목련과 벚꽃 개나리와 진달래 등의 봄꽃들은 언제 핀 적이 있었느냐며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충효당과 양진당을 보고난 후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삼신당을 찾았다. 하회마을 삼신당은 수령이 600여년이 넘는 나무로 이 마을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곳이다. 화산 중턱의 상당(서낭당)과 중당(국신당)과 더불어 하당으로 불리면서 마을 사람들의 소망을 비는 삼당을 이루게 된다.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낸 후 다음 날 아침에 이 삼신당에서 제를 올린다. 하회별신굿놀이를 시작하는 곳도 이 삼신당이다. 하회마을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취지와 어울리지 않게 마을 주민들이 지나치게 상업화에 나서 하회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불편과 원성을 사고 있다. 마을 주민의 차량이 수시로 마을 안쪽으로 들어와서 골목길을 휘젓고 다니는 풍경도 세계문화유산 지정 취지와 맞지 않았다.하회마을 입구에서 만나는 가장 볼썽사나운 풍경이 국적 불명의 온갖 전동차와 호객 행위였다. 어느 동남아 관광지에서나 볼 법한 낯선 모습이다. 평온하게 세계문화유산을 찾아 나선 관광객들에게 수백 년 된 좁은 골목길을 마구 달리는 골프장 전동 카트와 주민들의 차량들은 이 마을이 세계문화유산인가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심지어 관광객들이 타고 다니는 전동차가 수백 년 된 담장을 들이받는가 하면 다른 관광객들과 부딪쳐서 인명 사고를 내는 일도 수시로 벌어지고 있고 전동차와 전동차 및 주민 차량이 뒤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도 비일비재 하게 벌어진다.세계문화유산으로 오래 전에 등재된 중국 윈난성 '리장(麗江) 고성'과 산시성의 '핑야오(平遥) 고성을 몇 차례 가본 적이 있다. 고성 내에 수천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면서 고성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어서 그 곳에서는 자동차의 통행은 엄격하게 통제했다. 고성 내의 차량진입은 주민 차량에 한 해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일몰 후에만 그것도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중국도 세계문화유산에 자동차가 통행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유교 마을에 자동차와 전동차가 거리낌 없이 드나드는 풍경은 이해할 수 없다. 중국보다도 못한 문화 의식이라고 손가락질 당해도 어쩔 수 없다.이 마을에 사는 후손들의 밥벌이를 위해 문화유산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문화재청이나 안동시 등이 '나몰라라'하고 뒷짐 지고 있는 것은 당국의 문화 의식 부재와 관리 부실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회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는 데는 걸어서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전동차를 타고 관람할 정도로 드넓은 마을이 절대로 아니다.부디 마을 주민의 차량도 일과 시간 중에는 절대로 마을 안으로 통행해서는 안 된다. 마을 입구에 공동 주차장에 세워두더라도 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그 정도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세계문화유산마을의 자긍심을 갖고 있는 하회마을 주민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닐까 한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2021-03-27 06:00:00

[광장] 수직정원은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환경 정원이다

[광장] 수직정원은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환경 정원이다

얼마 전 여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시에 향후 21개의 수직정원을 조성하고 이들 수직정원이 도시의 랜드마크로서 기능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건축물의 벽면을 식물로 장식하는 수직정원은 현재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는 정원으로 실제 조성되어 있는 곳도 여럿 있다. 나 역시 수년 전 파리에서 수직정원을 보고는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 이제 우리 정치인들도 도시 조경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수직 숲이라고 불리는 '보스코 베르티칼레'라는 80m와 112m 높이로 건설된 2개의 고층 건축물에 수직정원이 조성되었다.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는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전통적인 이탈리아 탑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가구마다 개별적인 숲과 정원으로 조성된 발코니형 테라스를 계획하여 디자인했다"고 한다. 건축가의 이와 같은 적극적인 시도 덕분에 유럽의 도시 중 대기 오염도가 높은 밀라노는 도심 건물군 주변의 대기 오염을 20%나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수직정원은 도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자연을 더하는 방법으로 도시민의 심리적 웰빙을 높이면서 온도를 낮추고 대기질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한다. 수직정원 연구가인 패트릭 블랭크에 따르면 "식물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는 빛과 이산화탄소, 물과 그 안에 녹아 있는 양분으로 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며, 수직정원용 식물의 뿌리는 흙이 아닌 부직포 속에서도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다"고 한다.우리나라의 조경 전문가 역시 수직정원을 조성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수직정원은 벽면에 세워질 수 있는 정원 틀과 식물, 그리고 식물의 뿌리가 살 수 있는 기반이 되는 부직포(흙 대체물)로 구성된다. 여기에 더하여 식물에게 물과 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관수시설과 과도한 물을 제거할 수 있는 배수시설이 필요하다. 이렇게 조성된 수직정원은 단열 효과가 있어서 겨울 추위를 막아주고, 여름에는 자연 냉각 기능을 가동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식물의 잎과 뿌리, 그리고 이들 속에서 살고 있는 모든 미생물이 광범위하게 공기를 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식물의 뿌리가 있는 부직포에 갇힌 오염 입자는 천천히 분해되어 식물 비료가 된다. 이런 기능을 잘 활용하면 수직정원은 중국발 미세먼지를 감소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환경 문제가 인류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는 이때, 수직정원 조성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계속적인 실험을 통해서 우리의 기후 환경에 적합한 식물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직정원의 성공적 사례인 밀라노 고층 아파트의 수직정원 경우, 3년에 걸친 기간 동안 직접 재배를 하는 등의 연구와 실험 끝에 마침내 밀라노 도심에 적합한 식물을 선정했다고 했다.범조경단체가 특정 정당에만 수직정원 조성 정책을 제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여러 정당에 메시지를 넣었을 것이다. 단지 그 제안을 여당 후보가 자신의 선거 공약으로 채택했을 뿐이다. 수직정원은 우리의 미래와 연결된 것이므로 정당, 진영에 관계 없이 조성되어야 하는 사업이다. 조경학회와 협회, 그리고 관련되는 여러 기관과 업체들이 함께 수직정원 조성에 힘써 내가 파리에서 느꼈던 신선함이 우리 도시 전체에 전해지길 희망한다.

2021-03-26 19:05:04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결혼 속에 숨겨진 비밀, 와인계의 스타 보르도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결혼 속에 숨겨진 비밀, 와인계의 스타 보르도

◆ 엘레오노르와 앙리 2세 플랑타주네의 결혼보르도(Bordeaux) 이름만 들어도, 뜨거운 그녀의 입술을 닮은 와인의 빛깔과 향긋한 그녀의 체취가 담긴 와인의 향기가 느껴진다. 보르도의 아름다운 포도밭과 훌륭한 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진정한 비상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가 훗날 영국의 왕이 된 앙리 2세 플랑타주네와 1152년 결혼식을 하면서 시작된다.중세 봉건제도의 관습에 따라 그녀가 상속받은 보르도 지방의 땅을 결혼지참금으로 가져가며 영국과 보르도 와인의 상업 교류가 시작되고, 프랑스를 와인 대국으로 만든 것은 영국이었다. 보르도가 하루아침에 영국 왕실 소유가 되면서 면세와 독점 판매 등의 특혜를 받으며 영국으로 보내진 보르도 와인은 오히려 이때부터 영국을 통해 유럽 전역에 알려지면서 그 명성을 높이게 된다.보르도는 프랑스 남서부 누벨아키텐지방 지롱드주의 항구 도시며, 포도밭에서 강을 볼 수 있는 최고의 땅이다. 보르도 와인은 재배 포도의 종류뿐만 아니라 주로 재배 토양이, 미묘하고 복합적인 맛의 차이에 영향을 끼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와인을 만들며, 세계 최대의 고급와인 생산지로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한 번쯤 마시고 싶어 하는 다양한 와인들이 존재한다.◆세계 최대의 고급와인 생산지,보르도아키텐의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왕실령보다 더 큰 영지를 물려받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상속녀다. 빼어난 미모와 당시 여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독립적이고 개성이 강하며 자유분방했던 그녀는, 프랑스의 루이 7세와 이혼을 하고 29살 때 그녀보다 10살 어린 19살의 앙주 백작 앙리 플랑타주네와 재혼한다.그에 따라 그녀가 루이 7세와 결혼하면서 가져왔던 가스코뉴, 리무장, 아키텐 지역은 앙리 플랑타주네가로 가게 된다. 그리고 한낱 앙주의 백작이었던 앙리는 엘레오노르와 재혼하면서 세력을 키워 훗날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가 되고, 피레네 산맥에 이르는 프랑스 남서부 지방의 방대한 영토는 잉글랜드 소유가 되면서 훗날 백년전쟁의 원인이 된다. 중세 유럽의 역사를 좌지우지한 여인 유럽의 할머니라 불리는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유럽의 거의 모든 왕가가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왕비였으며, 한번 나섰다 하면 불리하던 전투도 뒤집어버리는 초인적인 무용담을 자랑하는 사자심왕 리처드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아들들과 자손들은 대대로 잉글랜드의 왕을 지냈으며 딸들은 시칠리아와 카스티야의 왕비가 되었고,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에게도 그녀의 피가 흐르고 있다.프랑스는 현재 전 세계에 심어진 많은 포도 품종(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피노 누아르,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등)과 다른 생산국에서 채택된 와인 제조 관행과 와인 스타일의 원천이며, 보르도에는 라피트 로칠드, 오브리옹, 라투르, 마고, 무통 로칠드 5대 샤토를 포함하여, 샤토 페트뤼스, 샤토 디켐 등의 세계 최고급 와인과 수많은 그랑 크뤼와 명성 있는 원산지가 존재한다.◆와인의 여왕,보르도 와인보르도 와인은 검붉은 빛깔의 진하며 분명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보르도 와인을 가리켜 여왕의 와인, 와인의 여왕이라고 표현한다. 생전에도 사후에도 루머에 휩쓸린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끝까지 자신의 왕관을 쓰고 자신의 길을 걸었던 생전의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뜻하는 마리아주는 결혼(Marriage)이란 의미의 프랑스 말이다.아무리 맛있는 요리와 좋은 와인이 있더라도 서로의 궁합이 좋지 않으면 좋은 궁합에서의 맛볼 수 있는 입안의 행복함을 느낄 수 없다. 와인이 음식과 부드럽게 섞이면서 서로의 맛을 좀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할 때 마리아주는 최고가 된다. 요즘 졸혼이나 황혼이혼도 변화하고 있는 트렌드다. 결혼도 우리의 인생도 공감과 소통되는 사람을 만나서 동행한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공감과 소통을 위한 헌신의 노력이 필요하다. 글 : 이희수 대한칵테일조주협회 회장(대구한의대 글로벌관광학부 교수)

2021-03-26 15:00:00

[박창원의 기록여행] 한심한 대구독서계…한 달 열람자 600명, 여자는 10명

[박창원의 기록여행] 한심한 대구독서계…한 달 열람자 600명, 여자는 10명

'1월 중 대구도서관 관람자 통계에 나타난 대구독서계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총관람자는 649명 그중 여자는 불과 10명이라는 어느 사회에서도 볼 수 없는 수치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민족이 글과는 인연이 먼 것을 증명함이요 또 그만큼 문화에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말하고 있다.~' (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9년 2월 13일 자)대구의 도서관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문을 열었다. 대구부립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쪽에 있던 옛 경북도청 구내였다. 나라를 뺏긴 설움을 독서로 달래려 한 것일까. 1939년 사례를 보면 한 해 동안 1만5천520명이 입장을 했다. 하루에 40~50명씩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 이용객이 갈수록 늘자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1940년 8월부터는 달성공원 앞의 조양회관을 빌렸다. 남녀별로 독서실도 따로 만들었다. 조양회관은 한적해 독서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일제 강점의 사슬에서 벗어나자마자 대구부립도서관은 문을 닫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했다. 일제의 유산을 끊고 독립된 나라의 새로운 도서관으로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도서관 개관은 더디기만 했다. 예산도 미흡한데다 책도 부족했다. 도서관의 분실된 책을 찾고 부민들을 대상으로 책 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개관이 늦춰지자 한때 임시 도서관을 열 계획도 세웠다.해방 이태가 다 된 1947년 5월 6일 도서관은 개관했다. 오전에 개관기념식을 하고 오후에는 부민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우리의 손으로 도서관을 연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었다. 당시의 신문들은 대구부립도서관의 개관을 전하면서 속관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속간은 일제 때 세운 도서관의 연장이라고 봤다. 대구부립도서관은 개관을 기념해 독서 열기를 띄우려 일주일 동안 독서주간을 설정했다. 언론들도 도서관 개관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무엇보다 도서관 개관을 반기는 이들은 학생들이었다. 날마다 200명이 넘는 열람자 중에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도서관이 아니면 보고 싶은 책을 볼 데가 없었다. 해방 이후 본격적인 학교 교육이 시작되는 시점과 맞물린 이유도 컸다. 그런데도 열람자 중에 여성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여성이 공부하는 것에 얼마나 인색했는지를 알 수 있다.도서관을 찾은 열람자들은 수학과 물리, 화학 등 이학 계통의 책을 즐겨 봤다. 국사와 철학 외에 사회과학이나 문학도 빠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들어온 신간 잡지와 논문 등을 찾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패망을 가져온 원자탄 관련 책의 인기였다. 문학과 경북도의 자연을 기술한 책이 압도적으로 인기였던 해방 전의 독서 패턴과는 달랐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구독서계에 대한 시각이 기대에서 걱정으로 바뀌었다. 도서관 개관 때보다 턱없이 이용객이 줄었기 때문이었다. 1949년 11월의 경우 한 달간 총 관람자는 640여 명에 그쳤고 여자는 10명에 불과했다. 학생들이 도서관 외에 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데다 고달픈 민생고도 도서관을 멀리하도록 했다. 게다가 높은 문맹률도 한 이유였다. 경북도만 하더라도 문맹 퇴치를 위해 5만 명을 상대로 한글 강습을 시도할 정도였다.해방 후 60~70%에 달하던 문맹률이 떨어지면서 도서관 이용객은 차츰 늘었다. 1980년대 초에 문맹률은 5% 정도였다. 까막눈이 사라진 것이다. 불과 40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이야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은 없다. 염치를 모르는 까막눈이 넘칠 뿐이다.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2021-03-26 14:30:00

[기고]돋보기로 본 30년 지방자치의 냉기

[기고]돋보기로 본 30년 지방자치의 냉기

코로나19에 지친 우리들을 위로하는 봄 햇살은 유난히 화사하다. 매화로 시작한 봄꽃들은 지방자치 부활 30주년 오늘을 반겨 주고 있다. 자신이 속한 지역 일을 주민 스스로 처리한다는 지방자치도 역시 민주주의 실현의 꽃이다.이러한 지방자치는 우리나라 제헌헌법에서 도입되었다가 5·16군사정변 후 중단, 그리고 1991년 지방자치법 개정(3.26)으로 지방의회가 부활된 후 30년의 역사를 쌓아 가고 있다.지방자치는 여유적인 장식품이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납세자의 의사 표현 장치이다. 중앙정부의 통치 권능을 지방정부에 배분하는 지방분권을 전제로 하는 지방자치는 국민들의 주인 의식과 권력자의 겸손 수준에 비례한다.급작스럽게 부활된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가정에서 돌봄을 잘 받지 못한 아동처럼 30년 방치의 역사이다.지난해(12.9) 지방자치법이 전문 개정 형식으로 다소 변화를 시도했지만 본질적 요소인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에서는 겨울 냉기 그대로다.법령의 범위 내로 한정된 조례제정권은 지방자치의 핵심인 지방재정 확충에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자치단체 업무의 내부 지침 사항들이 조례로 신분 상승하며 업무 집행에 경직성을 안겨 주기도 한다. 법령에 위반되지 않으면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네거티브적 조례제정권'으로 바꾸어 가야 할 것이다.지방자치의 근간인 재정분권에서는 더욱 한겨울이다. 지난 30년 동안 지방세 비중은 겨우 2.7% 증가(20.9%→23.6%)에 그쳐 아직도 2할 자치 수준이다. 그럼에도 중앙 부처는 각종 공모 방식의 국비 지원을 강화하고 국가 책임인 경로연금 등 복지비를 지방에 분담시켜 기초자치단체의 자치 역량을 고갈시키고(달서구 사회복지 비율 69.2%) 있다. 전국 최대 지방공단을 품은 달서구의 지난 20년간 재정자립도는 33.9%에서 21.7%로 뒷걸음쳐 오고 있다. 특히 자치구에서는 의회 구성을 제외하면 그 자치성이 위협받기도 한다. 일부 업무에서는 광역시와 자치구 업무가 미분화된 가운데 지난해 대구시가 구·군을 통해 징수한 시세가 2조1천369억 원이지만 징수 교부율은 33년간 요지부동 3%(641억 원)이다. 자체 세입으로 직원 급여를 감당치 못하는 2개 자치구를 포함한 대구시 7개 구는 상대적으로 세목이 많고 연간 1천300여억 원을 교부받는 이웃 달성군이 부럽고, 부동산 경기로 지난해 취득세 2천748억 원 추가 세입을 가진 대구광역시도 부럽다. 인구 56만9천 명에 예산 8천631억 원인 달서구는 인구 9만8천 명에 예산 1조470억 원인 상주시도 부럽다. '지방의 재정 자립이 실현될 수 있도록 강력한 재정분권을 하겠다'는 정부 공약이 무색하기만 하다.한편 지난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부지 선정 때 의견 제시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대구 자치구민들에게 대구경북 행정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자치권이 박탈되는 안도 제시되고 있다. 재작년 대구시 신청사 유치에 온 힘을 다한 그 갑갑한 마음에서 테스형을 만나고 싶다. 수도권의 공룡화에 놀란 절박함에 새로운 도약을 꿈꿀 지방자치 부활 30주년에 자치구민들은 자치권 회수라는 벼랑으로 내몰리는 셈이다.지방인구 소멸 위협과 치열한 국제 패권 다툼 앞에서 국가 장래를 고민하며 지방들이 연합으로 머리를 맞대어 중앙권력과 협상을 통해 울림 있는 국가 대개조 차원의 분권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이 솔로몬의 길이 아닌지. 상상력을 키우면 지방자치 강화는 분명 이 시대의 돌파구이자 희망이다.

2021-03-25 14:04:35

[춘추칼럼] 레임덕에 다가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춘추칼럼] 레임덕에 다가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임기 5년 대통령의 레임덕 패턴을 보면 임기 초 정치사회 개혁으로 지지율을 유지한 후 중・후반에 경제로 떨어지다가 임기 말에 권력형 비리로 급격한 레임덕을 맞는다. 결국 경제가 나아지길 기다리던 국민에 대한 배신의 분노가 분출되는 과정이다.3월 들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이 예사롭지 않다. 19일 발표된 한국갤럽조사의 37%에 이어 22일 리얼미터 34.1%,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34.0%, 24일 데이터리서치 31.4%로 35% 선이 무너졌다.레임덕은 경제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사회 개혁에 대한 국민과 대통령 간의 허니문 기간은 각각 다르다. 대체로 정치사회 문제는 임기 초반에 기대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취임 이후 1, 2년 초기에 정치사회 개혁에 집중한다. 그만큼 정치사회 문제에 있어 국민과 새 대통령 간의 허니문 기간은 짧다.반면 경제의 허니문 기간은 길다. 국민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경제가 단기간에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 2년 이상은 감내한다. 특히 코로나19와 해외 경제위기 같은 외부 요인이 있거나 정부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할 경우는 2년보다 더 길 수 있다.그렇다고 5년 내내 기다리지는 않는다. 5년 임기가 끝나 가면서도 경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들은 차기 대권 주자에게 기대를 걸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급격한 권력 누수가 발생한다.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임기 중반 경제로 지지율이 하락한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은 국정 수행의 평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정 운영의 동력이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지지율 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역대 정부에서 사용한 방법은 두 가지다.먼저 경제 부양책이다. 그러나 과거 부양책들은 효과보다 풀린 돈으로 인해 부동산 상승 등 부작용이 더 컸다. 또한 각 경제주체의 부양책에 대한 학습효과로 부양책의 지속 기간도 점점 짧아져 1, 2개월로 끝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부양책을 함부로 쓰기도 힘들다. 그래서 경제적 부작용을 피하면서 대통령 지지율을 유지시키기 위한 두 번째 방법으로 정치사회 개혁으로 되돌아간다. 단 정부 초기와 달리 개혁 강도가 높아진다.문재인 정부도 처음에는 경제였다. 소득주도・혁신・공정성장과 사회경제 개혁 등에 집중했다. 그러나 경제정책들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논쟁에만 휩싸였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검찰 개혁을 강화한다. 이로 인해 국민 시선을 경제에서 벗어나게 했다. 또한 코로나 사태는 경제 외부 요인으로, 경제 성과에 대한 좋은 면책 사유이기도 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는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 다른 정부보다 허니문 기간이 길었다.그렇다고 문 대통령도 경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 정권 초기 경제 성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부동산정책의 무능, 인사에서 내로남불 논란, 검찰 개혁 등 정권 의제에 대한 피로감으로 중도층에 이어 일부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도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이런 가운데 LH 사태가 터졌다. 내부 정보로 투기를 한 사람들 중 현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안정 등 정책 수혜자이거나 현 정부에서 급격히 늘어난 공공기관의 임직원이 적잖은데, 문제는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주요 지지층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데이터리서치의 24일 조사에 의하면 현 정부의 코로나 대책 신뢰도는 53.2%다. 작년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지지율은 정부의 코로나 대책 신뢰도와 동조현상을 보였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는 지금까지의 동조현상이 깨어졌다. 정부의 코로나 대처 신뢰도가 그 나름 높음에도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저 수준인 31.4%까지 하락했다. 바로 이러한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내린 것은 다름 아닌 23.8%에 불과한 부동산정책 신뢰도 때문이다. 결국 이번 LH 사건이 그렇지 않아도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아 오던 부동산정책 신뢰도를 파탄 나게 하고 대통령 지지율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임기 1년여를 남기고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도 이전 대통령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단지 대통령 친인척이나 핵심 권력의 스캔들이 아니라 현 정부의 기강 잡기 실패로 인한 핵심 지지층의 도덕적 해이로 국민의 분노를 산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진퇴양난이다.

2021-03-25 13:42:08

[매일춘추] 직업소명과 윤리의식

[매일춘추] 직업소명과 윤리의식

최근 방영을 시작한 판타지드라마가 실존인물인 조선 태종과 충녕대군 등을 캐릭터로 설정하고 역사적 사실과 다른 연출을 해 방영 중단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접수되었다.지난해 12월엔 한 유명 한국사 강사가 TV프로그램에서 사실관계 오류와 역사왜곡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공중파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전달할 경우 철저한 고증과 자문이 필수이나, 흥미 위주의 접근 방식으로 많은 오해를 만든 것이다. 기획자와 연구자의 전문성과 사회적 역할을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박물관과 미술관(이하 박물관)은 전문성과 대중성을 기반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콘텐츠를 개발·교육하는 곳이다. 박물관 등록을 위해서는 학예사 자격증 소지자 1명을 고용해야 하는데, 자격증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정학예사 1, 2, 3급과 준학예사로 나뉜다. 흔히 학예사와 학예연구사를 혼용하여 사용하기도 하는데, 학예연구사는 공무원 연구직 직렬의 직급명으로 학예사와 구분된다.국립박물관은 업무에 따라 학예연구사(큐레이터), 소장품 관리원(레지스트라), 소장품 보존처리전문가(컨서베이터), 교육사(에듀케이터), 도슨트 등의 인력들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사립 기관은 전문 인력 역할에 대한 인식 부재로 열악한 업무여건 속에서 학예사 한 명이 동시에 여러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도서관은 각 지자체 인구 대비 건립 도서관 수와 건물 면적당 소장 도서 수량 및 사서의 인원에 대한 구체적 조건이 '도서관진흥법'에 명시되어 있는 반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는 기관 등록시 요구되는 조건을 제외하고 인력에 관한 법적 조항은 없다.부족한 인력으로 업무가 과다하게 부여되는 것을 개선하고자, 지난해 12월 전국학예연구사회(회장 엄원식 문경시 학예연구사)를 출범하여 제도적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인력 확충을 위해 인건비·교육비 지원 등 다양한 국비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인력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장기적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학예사들은 처우 개선을 위한 목소리만이 아닌 직업소명과 윤리의식을 갖춰야만 한다. 관람객에게 객관적 검증과 연구를 통해 편중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자리의 무게를 잊지 않고 가치 있는 문화유산 보존에 힘써야 하는 것이 학예사의 책무인 것이다.최현정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 학예실장

2021-03-25 13:41:40

[황환수 프로의 골프 오디세이] 오른발 엄지의 역할

[황환수 프로의 골프 오디세이] <50>오른발 엄지의 역할

골프 스윙을 위해 다양한 기술적 방법들이 동원된다. 굵직한 테마로 나눠본다면 그립과 어드레스, 백 스윙, 다운 스윙, 팔로우, 피니시 등이 존재한다. 일련의 스윙은 과정마다 중요한 테크닉컬한 방법을 동원해 보다 나은 효율성을 꾀하고 완성도가 높아지도록 만들어 간다.이 가운데 백 스윙에서 다운 스윙의 과정을 거칠 때 '체중 이동'이라는 기술적 방법이 존재한다. 이에 체중 이동에 관한 구체적인 방식과 효율적인 체중 이동의 이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먼저 체중 이동은 말 그대로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가는 무게 중심을 뜻한다.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체중 이동 백 스윙 구간 중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이를 옮기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개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다시 말해 발바닥으로 옮겨지는 체중 이동 느낌이 왼발에서 오른발로 이동하지 않고 오른발쪽에서 체중을 막고 버틴다는 개념이 정립되고 있다.골프 스윙의 체중 이동은 상체의 회전에 따라 백 스윙땐 저절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 다운 스윙에는 오른쪽에서 왼쪽다리로 이동하는 것이 상식처럼 굳혀진 스윙메커니즘이었다.그러나 최근들어 이러한 체중 이동 방식은 머리를 고정하고 회전의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오른발쪽으로 옮겨지는 체중 이동이 버티는, 또는 왼발의 체중이 오른발쪽으로 옮겨오지 못하도록 지탱하는 의미로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이 동작의 가장 큰 특징은 백 스윙 때 오른발 엄지와 엄지모음근(엄지아랫쪽 근육들)이 밀려오는 왼쪽 체중의 이동을 저항하며 거대한 탄력을 준비해 다운 스윙의 발사를 준비한다는 사실이다.마치 100m 출발선상에서 상체를 바닥에 수그려 양발을 발사대에 거치하고 총성이 울리면 양발로 차고 앞으로 나아가는 발의 신체 동작과 흡사하게 닮아 있다는 점이다.종전에는 백 스윙때 오른발바닥 전체로 옮겨오는 체중의 무게를 느끼며 또 다시 다운 스윙을 위해 왼발로 옮겨 놓는 형태의 스윙이 보편화된 방법이었다.그러나 최근들어 지면 반력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체중 이동이 아니라 몰려오는 체중을 버티고 막는 형태의 백스윙이 한층 효과적인 비거리와 방향성, 파워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특히 오른 발바닥의 버팀효과는 드라이버 비거리로 고민하는 많은 아마추어들에게 탁월한 효과를 가져다 주는 스윙 스킬로 권장한다. 물론 우드류나 롱아이언들도 마찬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유의해야 할 사항은 비거리가 늘어나길 희망하는 골퍼들은 체중 이동을 막아서 탄성을 확보하는 오른발바닥 엄지의 역할에만 기대를 모두 거는 것은 금물이다.다양한 비거리 확보를 위해 가져야할 기본적인 동작에 덧붙여 이 스윙 스킬이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골프칼럼니스트

2021-03-25 12:39:58

[오정일의 새론새평] 공정하게(?) 부동산 투기를 할 권리

[오정일의 새론새평] 공정하게(?) 부동산 투기를 할 권리

부동산을 수용(收用)해서 개발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투기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하여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를 하는 내부자거래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투기의 목적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가격이 하락하면 손실이 발생한다. 내부자거래는 이러한 위험을 없애 주지만 불법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여야 한다. 내부자거래는 약탈적이다. 내부자의 이익은 외부자의 손실을 초래한다. 외부자는 고객이거나 시민이다. 내부자거래는 약탈적이므로 비생산적이다.정보만으로 투기를 할 수 없다. 투기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는 사람은 영혼을 끌어모아도 투기를 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그 나름의 계획이 있지만 그것을 실현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 수 없다. 개발계획을 미리 알아도 돈이 없으면 부동산 투기를 할 수 없다. 대다수 시민이 투기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보와 돈이 없기 때문이다. 정보와 돈은 소수의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더구나 정보와 돈은 교환된다. 정보를 보유한 집단과 돈을 가진 집단은 공생(共生)한다. LH 사건으로 인해 정보와 돈의 더러운 커넥션(Connection)이 드러났다. 물론 빙산의 일각이다.LH는 중개인이다. LH는 토지를 매입해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 매각함으로써 거래비용을 줄이는 기능을 한다. LH의 사업은 단순하지만 수익성이 높다. 높은 수익성은 수용이라는 행정적 권한에서 나온다. 수용은 강제적이다. 피수용자에게 보상을 하지만 시가에 못 미친다. 토지 시가와 보상가의 차액(差額)은 LH의 몫이다. LH는 수용한 토지에 아파트를 건설해서 분양한다. 분양가에는 LH의 이윤이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LH는 아파트 분양가와 토지 보상가의 차액을 가져간다. 이는 은행의 주된 수익원이 예금과 대출 금리의 차이인 것과 유사하다. 어쨌든 아파트 분양가는 시가에 못 미친다. 시가와 분양가의 차액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의 몫이 된다.불법적 투기에 대한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모든 공직자가 재산을 등록하고 부동산 거래를 신고하도록 하는 법안, 불법적 투기의 형량을 최고 무기징역으로 높이고 투기로 얻은 이익의 5배까지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정부는 부동산감독원을 신설해서 부동산 거래를 감독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대책들은 불법적인 투기가 이루어진 후 그것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사후적(事後的)이다. 사후적인 대책으로는 원상회복이 불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대책들은 거래의 자유와 재산권이라는 시장경제의 근본적 가치를 훼손한다. 신설되는 부동산감독원의 직원들이 투기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부동산감독원은 막강한 권한과 중요한 정보를 보유하게 된다. 권한과 정보는 투기로 연결되기 마련이다.불법적 투기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사전적(事前的)으로 투기의 유인(誘引)을 없애는 것이다. 투기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없으면 불법적으로 투기할 유인이 없다. LH의 사업에는 세금이 투입된다. 따라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 시가와 분양가의 차액을 갖는 것은 부당하다. 공적인 개발로 발생한 이익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정부가 시가와 분양가의 차액을 환수하면 투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LH 직원, 정치인, 관료의 불법적 투기를 비난하지만 개발이익의 환수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분노한 이유가 공정하게 투기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인가? 우리가 바라는 것은 공정하게 투기할 권리인가?부동산을 사용해서 이익을 얻는 것은 정당하다. 부동산 투기로 이익을 얻는 것은 부당하다. 투기로 얻는 이익은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로 준 토지를 독점해서 불로소득을 얻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정의롭지 않은 것을 추구할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부동산 투기를 할 권리를 주장하는가? 탐욕 때문인가? 진정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내 안에 있는 탐욕이다.

2021-03-24 11:24:39

[매일춘추] 봄날의 아기 곰

[매일춘추] 봄날의 아기 곰

땅이 푹신푹신해지고, 물기가 배어나오면 산수유, 매화, 목련이 피고, 분분한 바람엔 온기가 더한다. 산꼭대기 눈과 얼음이 녹아 흐르고, 땅속에선 개구리, 지네, 도롱뇽이 나오고, 나뭇잎 사이, 죽은 가지 틈새마다 숨어있던 온갖 벌레들이 기지개를 켠다.겨울잠을 자던 곰은 수척한 몸으로 어슬렁어슬렁 굴을 빠져나오고, 그 뒤를 쫄래쫄래 아기 곰이 따라 나온다. 새까만 아기 곰은 장난기 가득한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손바닥 같은 발바닥으로 아장아장 걷는다. 숲속 공터 햇살 좋은 곳에서 봄볕을 듬뿍 받으며 나른한 몸을 추스르는 곰 모자는 새로 태어난 것처럼 세상이 낯설다. 아기 곰은 뒹굴고, 깨물고, 얼굴을 비비며 치명적인 귀여움을 발산한다. 봄은 그런 것이다. 아지랑이 겨드랑이 간질간질 하는 것.그러나 봄은 긴 설국의 터널을 지나야 온다. 요즘이야 손쉬운 난방으로 따뜻한 겨울을 나고, 반팔 티셔츠 하나로 실내 생활을 한다지만, 옛사람들에게 겨울은 혹독했을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움집 생활을 하던 초기 인류의 겨울을 상상해 보면, 긴 겨울을 견뎌낸 그들에게 봄은 거의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아니었을까. 봄이 반드시 온다는 확신이 없던 그들에게 마침내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을 때의 감동은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봄날 아기 곰은 그렇게 새롭게 시작되는 생명의 기쁨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옛 사람들의 눈에 곰은 어떻게 비쳤을까. 숲의 지배자였던 곰은 추운 겨울이 오면 동굴에 들어가 꼼짝 않고 엎드려 죽는데, 놀랍게도 봄이 오자 죽었던 곰이 환생하여 사람들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그러니 그들에게 곰은 재생과 부활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곰은 그렇게 죽었다 깨어난 신성한 동물이 된다. 봄의 새로운 생명, 기쁨과 부활, 새 생명의 움틈은 겨울잠에서 깬 곰과 함께 온다.그래서일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의 신화나 설화에는 곰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곰이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단군신화나, 곰의 몸속에 깃든 신을 하늘로 보내는 아이누 이오만테는 모두 그런 곰에 대한 경외감을 담고 있다. 특히 아이누 족의 아이누 이오만테는 대표적인 곰 신앙 축제이다. 아이누 족은 일본 북쪽 홋카이도와 러시아 사할린, 쿠릴열도 일대에 걸쳐 산 독특한 외모의 털북숭이 소수민족이다. 그들의 이오만테는 일종의 종교행사로 신이 곰의 몸으로 인간세계로 내려왔다는 믿음이 핵심이며, 곰의 몸에 갇힌 그 영혼을 다시 신의 나라로 보내주는 제의다.봄날의 아기 곰이 그토록 귀여운 이유는 아지랑이처럼 가려운 봄의 전령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루한 겨울을 견디면 반드시 봄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안다. 지치지도 않는 아이들의 반복되는 질문처럼 그렇게 봄은 매년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봄은 언제나 기쁨이다. 나도 그렇다. 반백년을 맞이한 봄날이건만, 나는 갈수록 봄이 그립다. 작업실 틈새마다 새들이 세 들기 위해 새집을 짓고, 나는 볼을 비벼대는 봄바람을 맞고 서서, 곧 만발할 벚꽃과, 산마다 진달래와, 안개속의 복사꽃을, 꿈결처럼 그리워하는 것이다.영상설치작가 리우

2021-03-24 11:24:18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LH 광고에는 이것이 없었다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LH 광고에는 이것이 없었다

공감.광고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다. 이 재료가 없으면 음식을 만드는데 실패한다. 온갖 신선한 요리 재료가 있어도 맛없는 음식이 탄생한다. 탄산 없는 콜라요, 짜장 없는 짜장면을 먹게 된다. 그런 광고는 맛이 없다. 광고판 앞에서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일 힘이 없다. 그만큼 광고에서 공감이 주는 힘은 절대적이다.요즘 LH 사태가 뜨거운 이슈다. 광고인의 직업병이 발동했다. 그동안 LH가 집행한 광고를 살펴봤다. LH는 대학생 광고 공모전을 여는 등 수많은 광고 창작을 해왔다. 집에 대한 달콤한 광고가 주를 이루었다.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광고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흙수저를 부러워하는 금수저의 모습을 그린 내용이었다. 광고가 논란이 일자 LH는 임대료를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의 장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며 해명에 나섰다. 결국 이 광고는 LH의 자진 철거로 마무리 되었다. 이 광고를 보고 기분이 좋을 청년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을 강렬하게 묘사해 허탈감만 안겨줄 뿐이다.지금 LH 사태도 그러하다. '이렇게 공정하지 못한 투기를 하면 타인들이 울분을 터트리겠지'라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공감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런 광고를 내놓는 것이 이해가 된다.이번에는 두산의 광고를 살펴보자. 두산이 내놓은 '사람이 미래다'는 기업 광고 중 가장 빛나는 캠페인이었다.형용사, 부사처럼 꾸미는 단어도 없이 핵심만 남겨둔 아름다운 슬로건이었다. 짧아서 외우기 쉽고 3음절의 반복이라 디자인하기에도 예쁜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멋진 광고를 만드는 건 정말 힘들지만 그것을 지켜가는 건 훨씬 더 힘들다. 행동으로 그것을 증명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기업의 철학, 가치관, 경영 방식으로 그 문장을 입증해 가야한다. 더 정확히는 위의 덕목을 보고 그것을 광고판에 그대로 옮기는 것이 맞는 순서일 것이다. 하지만 두산은 그렇지 못했다. 구조 조정, 희망퇴직을 통해 사람을 미래로 여기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이것 또한 공감의 문제로 귀결된다. 두산은 스스로 본인들이 만든 광고에 공감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명퇴가 미래다, 사람이 기계다 등과 같은 패러디를 양산해냈다.공감은 이토록 중요하다. LH 사태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광고인인 나는 공감 능력의 결여라고 본다. 공감이 부족한 일은 언젠가 덧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바란다. LH가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날이 오길, 광고인의 공감을 얻는 날이 오길. 그날을 기다려본다. '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의 저자(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2021-03-24 10:30:56

[매일춘추] 대구영화의 티핑포인트

[매일춘추] 대구영화의 티핑포인트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는 장면은 참 비현실적이었다.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을 때부터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봉준호 감독 스스로도 후보지명 뒤 인터뷰에서 이 상황이 "인셉션 같다"고 얼떨떨함을 토로했을 정도니 말이다.기껏해야 국제영화상 정도 수상하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다. 그 전까지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에서 보였던 가시적인 성과라고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외국어영화상 최종후보에 오른 것이 전부였으니, 외국어영화상 수상도 대단한 성과였었다. 그러나 세간의 예상을 기분 좋게 깨버리고 '기생충'은 단박에 최고 영예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움켜쥐었다. 정말 대단한 성취였다.'설국열차', '옥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던 봉준호였기에 그의 성공은 예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언젠가 터지리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큰 폭발을 일으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어느 현상이 아주 미미하게 진행되다 어느 순간 균형을 깨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시점을 일컫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의 실제 예시를, 우리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통해 생생하게 목격한 셈이다.봉준호발 티핑포인트는 올해 아카데미 6개 부분에 후보로 오른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인 '노매드랜드'를 연출한 중국계 여성감독 클로이 자오에게로 이어지며 아시안 웨이브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미나리'의 낭보를 접하고 얼마 뒤,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올해도 전주국제영화제에 대구지역에서 활동 중인 감독들의 작품이 경쟁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장편 부문에는 감정원 감독의 '희수'가, 단편 부문에는 박재현 감독의 '나랑 아니면'이 경쟁작에 이름을 올렸다. 매년 출품되는 수백 편의 작품을 제치고 경쟁작으로 선정된 것도 대단하지만, 영화 제작의 모든 인프라가 수도권에 밀집된 상황 속에서도 해마다 성과를 전해오는 대구 독립영화계의 성취도 놀랍다.주요 영화제에서 주목하는 작품을 매년 배출하는 대구 독립영화계의 저력은 타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 할 만하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로컬시네마가 꾸준히 제작되고 성과를 내는 곳은 전국적으로 대구와 강원 정도가 유일하다. 특히 작년 한 해 대구에서 제작된 독립장편 영화는 5편으로 이들 작품이 만들어 낼 성과도 기대할 만하다.봉준호의 경우가 그랬듯 티핑포인트는 반드시 징후와 조짐을 동반한다. 같은 맥락에서 대구 독립영화계의 계속된 선전은 뚜렷한 조짐이라 할 만하다. 대구영화의 티핑포인트도 분명 머지않았다.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2021-03-23 14:11:28

[의창] 진료실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의창] 진료실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TV 건강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방송 이후 외래 진료 중 많은 환자분들로부터 방송 잘 봤다는 인사를 들었다.그 중 일부 환자들은 만난지 1년이 되지 않았던 분들이었다. 지난 1년간 환자를 치료하면서 수술실은 물론이고 외래나 입원 환자 회진시 마스크를 벗은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아마도 나에게 진료를 받은지 1년이 되지 않는 환자들은 내 얼굴을 TV로 처음 봤을 것이다.자신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얼굴도 모른 채 진료를 보다가 화면 속에서 처음 대했을 때 환자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대학병원 진료실 풍경은 더욱 삭막하다. 마스크는 물론 가림막, 저지선까지 설치돼 있어 멀찍이 앉아있는 환자와 대화를 해야 한다. 이런 진료실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가 의사-환자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의사-환자 관계에서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정서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의사나 환자모두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 원하는 바를 알아차릴 때가 많다. 이런 비언어적 의사소통은 의사-환자간 의료의 질과 만족도를 높이고 치료 순응도와 예후도 개선시킨다는 보고가 있다.마스크를 쓰면 이런 미묘한 표정변화를 알 수 없다. 홍콩의 연구에 따르면 의사가 마스크를 착용하면 의사의 말에 공감하거나 신뢰하는 비율이 감소했다. 놀라운 것은 이미 의사-환자 관계가 잘 확립되어 있는 경우에도 의사가 마스크를 착용을 하게 되면 부정적인 인식이 더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특히 만성적인 질환을 가지고 오래 진료했을 경우 이런 경향은 더욱 커졌다. 코로나19로 의사, 환자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비록 잘 알려진 연구는 없지만 의사도, 환자도 서로의 표정을 읽지 못해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지 못하는 것은 것은 자명할 것이다.진료실 내 거리두기는 어떤가. 무엇보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전통적인 인사방법도 바꿔놓고 있다. 시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회진을 갔더니 환자가 자신을 수개월간 괴롭혔던 가슴통증이 없어져서 이제는 쓰레기도 버리러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손을 잡고 놓아 주지 않아 당황한 적이 있었다. 환자들이 진료에 대한 만족감의 표시로 손을 잡아 신뢰를 표현할 때가 많은데 코로나19 시기에는 허용되지 않는 행태이다.또 의사-환자간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거리는 1m 이내이다. 건강문제는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일수록 더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19는 의사-환자간 적어도 2~3m 이상 떨어져서 대화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의사와 환자 사이에가림막까지 설치돼 있어 어지간히 크게 말하지 않고서야 대화조차도 힘들다. 이렇게 해서는 속에 있는 말을 다 할 수가 없다.코로나19 시기 의사-환자간 신뢰를 다시 구축할 방법은 없을까? 마스크 대신 얼굴이 보이는 투명한 얼굴가리개를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바이러스의 확산방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격진료는 어떨까. 비록 완전한 대면진료는 아니지만 환자의 얼굴을 보며 비언어적 소통이 가능하며 거리두기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아직은 기술적인 준비가 더 필요하다. 무엇보다 나로서는 코로나 19 이전처럼 환자들에게 손을 한번 내어주고 싶을때도 많아 아무래도 어색한 방식이다.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2021-03-23 14:07:20

[관절 클리닉] 발병 연령 자꾸 낮아지는 오십견

[관절 클리닉] 발병 연령 자꾸 낮아지는 오십견

'오십견'은 회전근개파열, 석회화 건염 등과 함께 가장 잘 알려진 어깨 질환이다. 오십견이란 어깨 관절을 감싸고 있는 관절낭에 염증이 생겨 나타나는 질환이다. 두꺼워진 관절낭이 뼈에 달라붙어 나타나기도 한다. 오십견의 또 다른 명칭인 '동결견'은 마치 어깨가 얼어버린 것처럼 굳는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사실 오십견이란 병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병명으로 주로 50대에서 발병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오십견의 정확한 명칭은 '유착성 관절낭염'이다.문제는 이러한 오십견이 30대 젊은층에서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농구·야구 등 어깨 관절을 자주 사용하는 스포츠 활동을 자주 즐길 경우 조기 퇴행으로 오십견이 나타날 수 있다. 무거운 물건을 자주 드는 직업을 가졌거나, 어깨를 사용하는 웨이트 운동을 많이 할 때도 발병 가능성이 높아진다.오십견의 주요 증상은 능동적, 수동적 관절 운동 제한과 극심한 어깨 통증을 꼽을 수 있다. 간혹 일시적인 동통 감소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일주일 이상 어깨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지는 경우, 어깨를 다친 기억이 없는데도 통증이 발생한 경우 오십견을 의심해봐야 한다.질환의 원인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노화에 따른 어깨관절 주위 연부 조직의 퇴행성 변화, 어깨관절의 부상, 같은 동작을 반복하거나 잘못된 자세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최근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의 과도한 사용도 오십견이 생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젊은층에서 오십견이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오십견 치료는 진통소염제를 복용하는 약물치료, 유착된 관절낭에 직접 소염제를 주입하는 주사치료, 스트레칭 등 재활운동, 체외충격파 치료 등이 활용된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스트레칭 등 재활운동 치료다. 스트레칭은 굳은 관절낭을 '찢어주기' 위해 시도한다. 스스로 스트레칭을 해야 하지만 통증이 심할 경우에는 운동 치료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통증이 과도할 경우에는 어깨로 가는 신경을 부위마취(regional anesthesia)해서 관절낭 확장술 및 감압도수 교정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통증이 거의 없고 치료 후에도 즉시 일상생활이 가능해 바쁜 직장인도 걱정 없이 시술 받을 수 있다.이 때는 회전근개 불균형, 미세 파열 등도 같이 치료해야 한다. 프롤로 주사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 등을 통해 어깨 관절의 문제를 모두 치료해 주면 오십견이 재발하지 않고 회전근개 파열, 석회화 건염, 충돌증후군 같은 향후 진행할 어깨 질환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배기윤 대구 완쾌신경과 대표원장

2021-03-23 14:07:03

[경제칼럼] 왜 대구경북 행정통합인가?

[경제칼럼] 왜 대구경북 행정통합인가?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한 찬반 양론이 비등하다. 주장이야 어떠하든 모두 지역 발전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지역의 위기는 코로나19 이전인 글로벌 금융위기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륙과 해양 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대한민국의 주력 제조업인 철강, 조선, 기계, 전자 등 중후장대 산업은 4차 산업혁명의 구조 전환기를 맞아 경쟁력이 점차 약화되었다.지역 주력 산업의 쇠퇴는 지역 경제와 일자리 붕괴를 가져왔고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그런데 정부의 위기 극복 방식은 지역균형발전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보다는 수도권 규제완화 카드에 방점을 두고 있다. 지역 소재 주력 기업과 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데 해결책은 대기업 공장의 수도권 이전 등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이었다. 국가균형발전에 지역의 역할이 강조되는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그나마 괜찮았던 대구경북의 경제성장률이 이제는 전국 수준보다 낮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취업자 등 일자리도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 외부적 충격에 의한 생산성이나 취업자가 감소하였던 것이, 이제는 내부적 구조 변화 실패와 비효율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취업자도 하락 추세로 접어들었다.이러한 시점에서 고령화 저출산 등 생산인구 감소는 미래 지역 경제의 어려움과 주민 삶의 질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미 일부 시군 지역의 경우 내부적 역량으로 새로운 발전의 틀을 만들기는 힘든 상태이다. 몇 년 내 소멸될 지방자치단체가 실제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언급되었던 지방행정제도 개편도 저출산과 인구 감소의 원인과 무관치 않다. 시간의 문제이지 어떤 형태로든 머지않은 시점에 지방행정제도 개편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내부적으로 준비가 필요하다.지역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인 생산성과 일자리(실업률) 지표에서 데이터 기반 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대구의 1인당 생산성이 수십 년간 전국 지자체 중 꼴찌라고 하고, 청년실업률도 높은 축에 들어가는데 현재의 공간구조와 산업 및 일자리 정책을 통해 이를 개선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위 지표들은 행정 경계를 중심으로 생성되지만, 실질적 생산과 구직 활동은 생활권 혹은 경제권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지역내총생산(GRDP)은 지역 경계 내에서 창출된 최종생산물 가치의 합으로 대구 거주 근로자가 구미 소재 직장에서 생산하면 경북(구미)의 생산으로 집계되고, 대구에 거주하면서 경북 소재 대학을 다니는 청년들이 구직 활동을 하면 대구 실업률로 집계된다.이는 거주 지역과 생산 및 경제활동 지역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통계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경제와 산업 및 일자리 정책 수립과 집행의 중요한 한계이다. 데이터 기반 정책을 통한 성과 확보가 사실상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2020년 상반기 기준으로 대구 취업자 중 10.8%인 12만3천 명이 경북 지역에 일자리가 있고, 경북의 취업자 중 2.8%인 3만9천500여 명이 대구에 일자리가 있다. 대구 거주 근로자 중 경북 지역에 일자리가 있는 근로자의 임금은 대구 평균임금보다 1.3배 높다. 구미 지역은 1.7배 정도 높다. 대구의 좋은 일자리는 대구 인근 경북 지역에 많다는 것인데, 1인당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업 성장 전략과 일자리 정책 수립 및 성과 관리는 현재의 행정 경계 구분으로는 한계가 있다. 문화관광 분야나 각종 SOC 유치, 고급 인재 양성과 활용의 정책 수립에서도 다르지 않다.생산가능인구는 앞으로도 감소할 것이며, 축소사회로 진행될 것이다. 행정 경계로 인한 정책의 비효율성은 개선되어야 한다. 행정통합이 미래에 다가올 위기의 완벽한 대응책은 될 수 없지만 차선책은 될 수 있다.행정통합 과정에서 많은 현실적 문제와 갈등이 있을 것이다. 이의 원만한 해결이 지역의 미래 발전 틀을 만들 수 있다. 행정 서비스는 광역화하면서 효율화, 구체화되어야 한다. 행정이 효율성만을 추구할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발전을 위한 큰 변화가 필요하다. 민간 분야의 세계적 자동차 회사나 보험 및 항공 회사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통합하여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2021-03-23 14:06:43

[종교칼럼]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

[종교칼럼]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

​이해인 수녀의 시 가운데 '지혜를 찾는 기쁨'이 있다. "하루의 길 위에서/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지 분별이 되지 않을 때,/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임만 길어 질 때,/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서 삶에 평화가 없을 때,/가치관이 흔들리고 교묘한 유혹의 손길을/뿌리치기 힘들 때, 지혜를 부릅니다./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때에도,/글을 써야 하는데 막막하고/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때에도 지혜를 부릅니다.(후략)"오늘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그런데 이 시대가 부르는 지혜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구약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다. 그가 시편과 잠언의 많은 구절을 지었고, 전도서와 아가서의 저자여서 지혜의 왕이라고 하는 것일까? 시바 여왕이 지혜를 듣기 위해 솔로몬 왕을 찾아왔다는 놀라운 일화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어느 날 밤, 솔로몬이 기도하는 곳, 기브온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뜬금없이 솔로몬에게 너는 왕이 되었는데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물음에 대한 솔로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부국강병을 구하지도 않았고, 자기의 무병장수를 구하지도 않았다. 그가 구한 것은 '듣는 마음'이었다.'듣는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 쇼메아(לב שמע)'이다. 레브는 '마음'이고 쇼메아는 '듣는'이란 뜻이다. 이 말이 영어로는 'listening heart' 또는 'discerning heart'로 번역된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지혜'와 '민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이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이 탁월한 선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솔로몬의 모든 지혜는 하늘의 소리와 백성을 소리를 듣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 비롯되었다.오래전에 다니엘 골만(Daniel Goleman)은 'EQ 감성지능'에서 '21세기부터 다가오는 천년은 우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21세기의 사회적 문제는 자기애와 우울에서 온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애가 지나치면 자신만을 사랑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자기도취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간주하면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강한 분노감과 적대감으로 발전한다. 골만은 자기애와 우울은 결국 공감능력이 부족한데서 온다고 했다. 공감(Einfühlung)의 깊은 뜻은 '안에서 느끼다'가 아닌가. 우리 시대의 모든 불행이 바로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데 있다.지난 몇 주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은 모든 사람들을 분노와 당혹스러움으로 몰아넣었다. 경북 구미의 한 빌라 빈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세 여아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아시아인을 향한 총기 난사 사건은 또 어떤가.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추라'는 소리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매일 같이 매스컴을 통해 쏟아내는 정치인들의 독설은 또 어떤가.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지혜는 마음 다해 '듣는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영국의 소설가 이언 매큐언(Ian McEwan)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이 되었을 때의 느낌을 상상하는 능력은 인간성의 핵심이자 연민의 본질이며, 도덕의 시작이다."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과 교수

2021-03-23 13:21:00

[기고]SOC 국가계획 반영에 TK패싱 안돼

[기고]SOC 국가계획 반영에 TK패싱 안돼

올 상반기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 제2차 고속도로 건설 5개년 계획, 제5차 국도 국지도 5개년 계획 등의 확정을 앞두고 경상북도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이번 계획에는 지역 발전을 앞당길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도로 철도 사업 특히, 경부선과 중앙선(통합신공항) 연결철도와 고속도로가 대거 포함돼 있어 이번 계획에 담기지 못한다면 통합신공항 사업도 그만큼 사업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무엇보다도 대구경북선은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국가철도로 최우선 반영돼야 한다. 이는 통합신공항이 대구경북 내륙뿐 아니라 중부권을 연결하는 거점공항으로 성공하기 위한 핵심 철도망이기 때문이다. 또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반영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예비타당성조사 지연으로 아직 사업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문경~김천 내륙철도도 반드시 건설돼야 한다. 중부내륙선(수서~문경)과 남부내륙선(김천~거제) 사이의 단절 구간 연결은 수도권과 중・남부 내륙권을 연결하는 산업・관광벨트이자 국가철도망의 효율화 달성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에 중앙정부와 국회를 설득하는 등 신규 사업 반영을 위해 관계 공무원들이 사활을 걸고 있다.통합신공항 관련 사업을 비롯한 신규 사업들이 국가 계획에 반영되더라도 예타 통과와 국가 예산 확보까지는 갈 길이 멀다. 특히 지방균형발전 차원에서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정부의 예타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2019년 지역에 대한 배점을 달리하여 문턱을 대폭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는 여전하다. 경제성 분석에 있어 직접 편익뿐 아니라 환경과 지역 등 다양한 간접적 편익도 포함하고 지역균형발전 분석 비중을 현행 30~40%에서 40~50%까지 높여야 한다. SOC 사업에 대한 예타 대상 사업 기준도 총사업비 500억원에서 1천억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 인프라를 지방으로 확대해야 한다.지방자치단체가 사업 효과를 주도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지역균형발전과 관련된 사업은 기획재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 예를 들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주관으로 예타를 수행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가재정법 제38조 제2항에서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정부의 재량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면제 사업에 대한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지역균형발전을 꾀하는 정책은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이 가속화한 1960년대부터 일관되게 추진돼 왔지만 수도권 일극주의는 갈수록 심화되고 국가경쟁력 저하마저 가져왔다.최근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간 재난소득에 관한 온라인 설전이 뜨거웠다. 경북도는 예산 상당 부분이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고령화에 따른 고정된 복지비에 더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어 예산 운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단순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동일 잣대로 보고 재난소득을 단체장의 의지로 보는 이재명 지사의 의견에 필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정부도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예타 면제 사업 선정)와 가덕도 공항 특별법에서 보여준 TK 패싱을 생각하면 수도권 단체장의 사고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상대적인 균형을 맞춰 주고 지방도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이번 SOC 계획 반영에서는 국가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2021-03-22 11:46:04

[세계의 창] 미국의 인종갈등

[세계의 창] 미국의 인종갈등

애틀랜타의 마사지 팔러에서 일어난 총격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계이며 4명은 한인으로 밝혀졌다. 아시아계 혐오 범죄인지 불분명하지만 충격적이다. 중국발 코로나19 감염이 시작된 이후 아시아계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태가 뉴욕, LA 등 대도시에서 일어나면서 동양인 차별이 부각되고 있다.2020년 현재 미국 인구의 인종 분포를 보면 백인(히스패닉 포함) 76.5%, 흑인 13.4%의 순이다. 아시아계는 그다음으로 5.9%에 불과하지만 인구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인종이다. 편견이 없어지지 않으면 인구 증가와 함께 아시아계 차별과 혐오범죄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모든 사회가 인종차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미국과 같은 다인종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는 인종 갈등의 뿌리가 특히 깊다. 17세기 이후 영국에서 종교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신교도의 후예인 WASP(백인-앵글로-색슨-청교도)가 성골이라면 비슷한 시기에 독일로부터 역시 종교적 자유를 찾아 이주해 온 독일계(Tutonic)가 진골에 해당한다. 법조문에 독일어를 병기하자는 입법안이 41대 40으로 1775년 의회에서 부결된 것을 보면 독일계의 영향도 컸다. 이들 게르만 인종이 지배층을 이루고 하층은 보호구역에 갖힌 원주민 인디언과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흑인 노예였다.이후 정치적 격변을 피해 많은 이주자들이 유럽에서 건너왔다. 대량 이민은 현지인과 문화-종교의 차이, (특히 저임금 노동자층과) 경제적 이해 충돌을 낳아 이민자에 대한 박해를 불렀다. 아일랜드는 1845년 시작된 감자 마름병으로 인한 대기근으로 이후 10년간 인구 800만 명 중 100만 명이 사망하고 150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아일랜드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상당 기간 계속되었고 그들의 천주교 성당은 방화를 당하기도 했다. 19세기 말에 대거 이민 온 이탈리아 이민자 역시 천주교도들로서 린치와 성당의 방화를 당하는 등 박해를 받았다.제정 러시아의 유태인은 1880~1924년 사이 벌어진 수천 건의 유태인 대학살(pogrom)로 25만 명이 사망하고 200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이들 러시아 유태인의 사회주의 성향은 미국의 반유대주의 정서를 악화시켰다.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도 유태인의 입학을 제한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 아일랜드계와 이탈리아인, 유태인, 폴란드인 등 동유럽 이민자들은 백인으로 취급받게 되고, 인종 구분은 백인 대 유색인종이 대세가 된다.동양인의 집단이민은 1848~1855년 사이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와 대륙 간 철도 건설로 중국인 노동자가 대거 채용되면서 시작되었다. 골드러시와 대륙 관통 철도 사업이 끝나자 중국인들은 저임금 직장을 찾아 샌프란시스코 등 도시로 이주하였다. 남북전쟁 이후 경기 불황이 오자 현지인들은 임금 하락의 원인을 중국인 탓으로 돌리면서 중국인에 대한 폭행, 살인, 그들의 집과 상점 방화 등을 저질렀다. 미국의 차이나타운은 중국인 이민자들이 함께 거주함으로써 현지인의 위협을 공동 방어하자는 자구 수단으로 형성된 것이다. 반중국인 여론을 배경으로 하여 입법화된 것이 중국인의 이민을 금지한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 1882)이다. 특정 국가나 인종에 대한 이민 금지법으로는 미국 최초다.역시 동양계인 일본계 미국인 약 12만 명은 1942~1945년 사이 수용소에 보내졌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에 따른 여론 악화가 원인이다. 독일과 이탈리아 역시 적국이지만 독일계와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수용소 감금은 없었다.중국인 금지법도 없어지고 2차대전 중 일본계가 당한 고초에 대한 배상과 사죄도 이루어졌다. 흑인 그리고 최근 급격히 증가한 히스패닉 등 유색인종에 대한 법적 차별도 1960년대의 민권법안과 함께 종식되었다. 그럼에도 인종 간 갈등이 계속되는 것은 차별 금지법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를 수용하지는 않지만 인정하는 열린 자세가 있어야 한다. 자기 문화에 대한 긍지를 갖되, 타 문화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거부해야 인종 갈등이 종식된다고 본다. 쉽지 않은 먼 길이다.

2021-03-22 11:29:03

[매일춘추] 세종대왕은 위대한 음악가였다

[매일춘추] 세종대왕은 위대한 음악가였다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은 한글을 창제하신 일일 것이다. 세종은 백성들이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누구든지 익히고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한글을 만들었다. 오늘날 한글은 그 원리나 형태가 과학적이며 쉽고 편리하여 세계에서 우수한 글로 평가되고 있다. 세종은 한글 창제뿐 아니라 집현전을 설치해 학자를 양성하고 과학을 장려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등 여러 분야에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심지어 세종은 음악 분야에도 업적을 남겼고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나라에서 사용하는 음악이 정형화되지 않아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향악과 당나라의 당악, 송나라의 아악 등을 혼합해 사용했다. 이를 본 세종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선의 공식적인 음악을 아악에 두고 정리하도록 박연에게 지시했다. 박연은 아악에 맞는 악기를 새로 제작하고 제정한 아악을 정월 하례에 처음으로 연주했다. 이 곡을 들은 세종은 박연에게 안장을 얹은 말을 하사할 정도로 흡족해 했다.세종의 음악성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는데 세종이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아악을 정리하면서 우리 땅에서 나는 옥돌로 편경을 제작했다. 새로 만든 편경의 이칙음(G#) 소리가 세종의 귀에 조금 낮게 들렸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신하에게 물었다. 박연이 즉시 가서 살펴보니 편경 가장자리에 먹줄이 남아 있었다."먹줄로 그은 부분의 돌을 미쳐 다 갈지 아니하여 소리가 낮습니다"라고 임금에게 아뢰었다. 석공을 시켜 먹줄 부분을 갈고 나자 비로소 음이 고르게 들렸다. 미세한 소리의 높낮이를 구분하는 것이 보통사람에게는 쉽지 않으나 세종은 미세한 소리의 차이를 알아낼 정도로 정확한 음감의 소유자였다.세종은 12율관의 기본이 되는 황종율관(黃鍾律管)을 제정하고 우물 정(井)자 모양의 한 칸을 한 박으로 음의 길이를 표시한 정간보를 창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세종은 나라의 임금으로서 우리 음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아악은 본래 우리 음악이 아니고 중국 음악이다. 중국 사람이라면 평소 이런 음악을 듣고 익숙하여 제사에 연주하는 것이 마땅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아서는 향악을 듣다가 죽어서 아악을 듣게 되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9권, 세종 12년)세종은 선대 임금께서 살아생전 우리의 음악을 듣다가 돌아가신 후 제사를 지낼 때 중국의 아악을 듣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여겨 종묘제례악을 향악화하여 정립했다.세종이 몸소 작곡한 정황을 볼 수 있는데 음률에 밝은 임금은 막대기로 땅을 치면서 하루 만에 모든 음악을 만들었다고 한다. 서양에서 지휘의 시작은 막대기로 바닥을 치며 박을 맞추는 데서 출발한다. 이미 세종은 막대기로 지휘하면서 작곡한 것이다.세종은 종묘제례악에 사용되는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을 만들었다.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으로 만든 여민락(與民樂)은 선율이 웅대하고 화평해 우리 음악 중 으뜸으로 꼽힌다. 이렇듯 세종은 음악으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고 치세를 누리게 했다. 다시 말해 세종대왕은 위대한 음악가였다.유대안 대구합창연합회 회장

2021-03-22 11:26:44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허무 개그로 끝난 수사지휘권 발동

[진중권의 이른 아침에]허무 개그로 끝난 수사지휘권 발동

정치가 법치를 무너뜨렸다. 법치의 파괴자들은 모두 법무부 장관. 조국 전 장관은 검찰을 '쿠데타 세력'이라 음해했고, 추미애 전 장관은 억지 누명을 씌워 검찰총장을 징계했고, 박범계 장관은 민정수석까지 내치며 폭주하다가 망신만 당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대권'의 꿈을 꾸는 이들이라는 것이다.수사지휘권은 독일에서는 발동된 적이 없고, 일본에선 단 한 번 발동됐을 뿐이다. 일본에서는 그 일로 법무대신이 옷을 벗었다. 그런 수사지휘권이 1년 사이에 대여섯 번이나 발동됐다. '선출된 권력'을 등에 업고도 법무장관 셋이 스트라이크아웃을 당했다. 그래도 이 나라에 아직 시스템이 살아 있다는 얘기다.한명숙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증언'이 아니라 '물증'으로 입증된 바 있다. '위증 교사'를 했다는데, 애초에 교사할 '위증'의 실체 자체가 없었다. 위증으로 처벌받은 것은 외려 법정에서 증언을 번복한 한만호 씨. 그의 '비망록'은 이미 당시 재판에서 검토되어 신빙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모해 위증을 했다는 사람은 재소자 김모 씨와 최모 씨. 이 중 김모 씨는 위증 교사는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작년 4월 진정서를 낸 최모 씨 역시 정작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 조사에서는 "한만호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말한 걸 들었다"며 위증 교사는 없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10대 2의 압도적 표차였다. 검찰총장 징계를 주도한 한동수·신성식·이종근·이정현 등 친여 검사들 중에서도 기소에 찬성한 것은 둘뿐. 나머지 둘은 기권을 했다. 부장검사가 모두 7명이니, 박범계 장관의 뜻대로 고검장들 없이 회의를 부장들끼리만 했어도 3대 2로 불기소 결정이 나왔을 거라는 얘기다.애초에 대검에서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합리적 의사결정이 아니었다"고 반발했던 임은정 검사. 한명숙 사건 1심의 수사를 담당했던 부장검사의 설명 후에 질문하라고 하자, "없다, 질문할 자리가 아닌 것 같다"며 사양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기껏 하는 소리가 "만장일치가 아닌 데 감사"한단다.위증을 한 이들이 10년이나 지난 시점에 자신이 위증을 했으니 자기를 처벌해 달라고 진정을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누군가가 검찰을 모해하려고 재소자에게 위증을 시킨 것이다. 이 사건 역시 공작으로 드러난 채널A 사건과 함께 민주당 민병덕 의원의 법무법인 '민본' 변호사의 작품이다.황당한 것은 법무부 장관들이 의도가 불분명한 재소자들의 증언(?)만을 근거로 두 번이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는 사실이다. 법무부가 전과자들과 손잡고 검찰을 때려 대는 나라는 전 세계에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두 장관이 발동한 두 번의 수사지휘권의 근거가 모두 정권 측의 자작극으로 드러났다.도대체 왜 그렇게 한명숙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한명숙의 유죄를 무죄로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은 본인들도 잘 안다. 아니, 그 전에 재심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왜 애먼 수사 검사들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지 못해 안달이 난 걸까? 이 부조리한 욕망의 정체는 대체 뭘까?일단 대통령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한 전 총리도 검찰 수사의 억울한 희생양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에 그를 정치적으로 사면할 의무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검찰 개혁'의 정당성을 말해 줄 가시적 상징을 찾는 여당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진다.정권의 뜻은 분명하다. 무조건 기소를 하라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좋다. 일단 기소만 되면 대국민 사기극을 벌일 최소한의 근거가 마련된다. 설사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가 나오더라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대중이 이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도 남을 시간이다.뭘 얻었는가? 한명숙 구하려다 한명숙의 죄상만 드러냈다.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존재감을 과시하려다 망신만 당했다. 그 과정에서 팔에 권력의 완장을 차고 '검찰 개혁'을 외치는 그자들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 척결해야 할 정치검사임이 드러났다. 이쯤 되면 장관, 옷을 벗어야 하지 않겠는가.

2021-03-22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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