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선택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란 말이 있다. 즉, Birth(탄생)와 Death(죽음) 사이에는 Choice(선택)가 있다는 이야기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 사르트르의 이 명제는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스스로 하던, 강요를 받던 선택을 피할 수가 없다. 필자도 40년이라는 사회생활 동안 수많은 선택을 해왔다. 그 중에는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지나봐야만 알 수가 있다.30대 중반에 어떤 제안을 받는다. 한 때 직장이기도 했던 회사에서 "이제 나이도 있고 물려줄 자식도 없으니 자네가 들어와 일을 하다가 회사를 물려받으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당시 하고 있던 일도 그리 잘 되는 편이 아니었고 오너의 나이도 예순이 다 되어, 오래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승낙을 하였다. 직책은 상무였지만 경리업무 외에는 영업, 제작, 시공 등 제반업무 총괄책임자로서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했다. 쇠락해 가던 회사는 빠르게 체계가 잡히고 활기를 찾았다. 매출이 증가하고 직원 수도 늘었다. 거래하던 기업체의 CI(기업이미지 통합) 교체 작업으로 대형오더까지 받는다.죽어가던 회사가 커지니 오너는 욕심이 생겼다. 오히려 견제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인척인 사람을 데려와 앉히기도 했다. 뒤늦게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오너와 나는 애시 당초 모순적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그 고약한 이율배반적 구조를 알았다면 그 제안을 거절했어야만 했던 것이다. 떠밀리듯 퇴사를 하고 생소한 분야의 일을 하다가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는다. 나락이었다. 나이 마흔에 슬럼프를 맞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무엇보다도 내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회의와 인간에 대한 믿음의 상실감이 가장 큰 상처였다.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었다. 과연 요즘 내가 그런 입장에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상상을 해 본다. 누구나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초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란 건 다시 벌 수 있지만 사람은 잃으면 끝이다. 실제로 그 일이 있고부터는 소원해지고 말았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함께 하며 한때는 부자간처럼 친밀하게 지냈었는데 말이다.세월은 많이 흘렀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결과적으로 그 때의 좌절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러나 제안을 받아들였던 그 선택은 아직도 많이 후회하고 있다. 법적 구속력도 없는 구두약속을 믿고 덥석 뛰어든, 불찰의 어리석음이 결국 상대방에게 그런 마음을 먹도록 한 것이다. 빌미를 제공한 것은 나 자신이었으니 어찌 보면 귀책사유도 나에게 있다고 봐야한다. 비즈니스에서는 사람을 함부로 믿지 말고 철저하게 따져보고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수필가

2019-10-30 11:02:44

박병욱 대구중앙교회 대표목사

[종교칼럼] 반성

반성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상태나 행동을 돌아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보는 것이다. 소위 역지사지이다. 먼저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역지사지는 타인의 입장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자기를 성찰하고 남을 배려하는 데 의미가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고,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공감하는 것이다.그러면 나의 생각과 나의 느낌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확대되어 나는 더 넓은 자아를 가지게 된다. 반성과 역지사지는 자아의 자기 변화, 자기 혁신의 방법이다.반성은 반사나 반향이기도 하다. 빛과 음향이 되돌아와서 나에게 보이고 들리는 것과 같다. 자기 발견, 자기 객관화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아이들이 듣기 거북한 말을 들었을 때 손바닥을 내밀며 '반사'라고 한다. 말한 이에게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것이다. '너에게 똑같이 적용해 봐. 그거 다 너 자신의 일로 생각해 봐.'반성은 심사숙고이다. 우리는 외출 전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서 앞뒤로 돌아서며 몇 번이나 비추어 본다. 우리의 생각의 모양도 거울에 반사시켜 몇 번을 꼼꼼히 점검해 보자. 내가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판단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여러 번 남의 입장에서 요모조모를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 반성은 지적, 감정적 통제 능력을 발전시킨다. 지적, 정서적 지능을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다.우리의 화내는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자. 이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분노의 결과다. 수십 년간 쌓여온 분노가 이런저런 이유와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다만 표현 방식의 문제이다. 개인의 마음속에 계속 분노가 쌓인다면 그가 어떤 생각, 느낌, 행동을 하게 될지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관계 속에 분노가 계속 쌓인다면 어떤 관계가 될지 불 보듯 뻔하다. 왕따, 학교 폭력, 묻지마 폭력으로 나타나지 않겠는가? 대의명분과 합리화는 달라도 의식과 무의식 속에 담긴 분노와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마찬가지다.사람들은 두려움과 분노의 표출에 너무 정직하다. 모두가 화난 얼굴이다. 누구든 분노가 없을 수 없으나 통제해야 하는 것은 각 인격체의 책임이고 과제다. 집단적으로 통제의 고삐를 거의 놓아버린 형국이다.류마티스관절염은 체내 면역체계의 오류라고 한다. 자신의 몸을 외부 물질로 오인하여 공격하므로 관절 내에 염증이 발생하고 지속되어 점차 관절이 파괴되는 증상이다. 우리는 지금 사회적 류마티스를 앓고 있는 것 같다. 이웃을 예의를 갖추어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파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매우 심각하다. 결사반대 구호를 적은 머리띠를 보면 가슴이 섬뜩해진다. 작은 일에 결사반대를 외치며 자기 목숨을 거는 사람이라면, 더 작은 일 때문에 타인의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협박이 일상화되어 있다.마음의 토양 오염인 분노, 공격성, 공포를 씻어내자. 그 자리에 반성, 역지사지, 공감, 동정, 예의, 배려를 채우자. 각종 언론, 각종 단체, 공직자들에게 분노총량제를 적용하면 어떨까? 기준 이상의 분노 표현이나 분노 유발을 막으면 어떨까? 빅데이터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2019-10-30 09:55:05

이정호 변호사

[경제 칼럼] 정치를 뛰어넘는 실용적 경제정책

올 경제성장률 2% 달성 어려운데과도한 명분이 충돌하는 현실 정치공존의 가치에 입각해 민생을 우선실용적 관점에서 경제정책 접근을곧 올해 마지막 분기가 시작된다. 기업이나 나라나 실적이 부진했다면 만회할 유일한 기간이다. 상장 법인들은 매출이나 영업이익을 내려 갖은 수단을 동원할 시즌이고, 정부 또한 목표한 경제지표들을 이뤄내고자 남은 예산 지출에 무리수를 두기도 쉬운 기간이다.특히나 경제성장률 2%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예측에 민관이 공히 우려가 크다. 남은 분기 동안 정부의 현명한 경제 대응책이 나오겠지만, 정치가 보여주는 혼란에서 그 기대감은 크게 상쇄되고 만다. 정치 현상으로는 분명 옳고 그름을 가리자는 훌륭한 명분들이 각자 담겨 있지만, 법 제도가 그 나름 정비된 민주화 시대에 명분이나 이념은 어쩌면 공허한 것이다.명분을 좇는 정치운동이 경제를 어떻게 망칠 수 있느냐를 극명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중국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시대의 경제 실정을 들 수 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국가 이념이던 사회주의를 공고히 하려는 그 나름의 명분에서 강행된 정책들은 수많은 국민을 고통에 빠뜨리고 중국 현대사에 오욕을 남겼다.그러나 결과적으로 경직된 이념과 명분에서 비롯된 경제정책의 폐해는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해 시장경제를 과감히 인정하고 도입해 나간 등소평의 개혁정책으로 서서히 극복됐다. 흑묘백묘론으로 주창된 실용주의 경제정책은 옛 소련의 붕괴로 일시에 무너진 여타의 공산국가들과 달리 중국이 유연하게 시대 흐름에 맞춰 대처할 수 있는 저력이 됐고, 오늘날 중국이 이른바 G2에 이를 수 있게 된 밑거름이 됐다.대통령 직선제 개헌 뒤 노동법령 내실화, 진보정당 안착, 시민운동세력의 정치 참여 등으로 현재의 정치 패러다임은 안정화됐다고 본다. 이 시기에는 보다 발전적 사회 가치와 규범이 논의되고 기술 발전이 가져올 경제 패러다임 전환에 새롭게 대비해야 한다.정치의 속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더라도 현실 정치는 아직도 과도한 명분의 충돌과 대립의 장으로 남아 있다. 정치에서 명분이 지나치게 앞서면 경제는 그만큼 경직된다. 경직된 경제 현상은 불필요한 국부의 낭비나 자산의 불균형을 즉시 바로잡을 여력이 부족해지게 한다.경제는 옳고 그름의 명분을 적용하기 이전에 각 경제 주체나 산업 분야에 주어진 현안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고른 기회 속에서 모두가 잘살 수 있는 정책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경제정책은 이러한 공존의 가치를 최우선시해야 할 것이다.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함에 있어 그 정책의 주체는 누가 되든 상관없다. 경제 각료의 인사에는 진영이 있을 수 없고, 진영을 넘어서는 목소리를 경청하여 정책이 수립되고 때론 수정, 발전해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이 정치의 명분과 경제의 정책 방향은 분리하여 경제만은 철저히 실용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현대사의 위기를 극복하고 7%대의 거침없는 경제성장률을 지속해 오던 중국조차도 최근엔 6%대로 성장률이 떨어졌고, 미국과의 무역 갈등으로 녹록하지 않은 경제 환경에 직면해 있다. 미, 중, 일 등 주변국과의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 특성이 낮은 성장률 지표와 더불어 향후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심지어 금융 위기 때 못지않은 위기로 진단하는 전문가도 많다. 아마 정부는 성장률을 포함해 당장의 지표를 수치적으로 극복하려 할 것 같고, 슈퍼 예산이라는 내년도 예산의 상당 부분은 이를 해소하는 데 쓰일 것이다.경제 위기를 극복하거나 대처하는 정부의 노력과 능력을 아직은 신뢰하고자 한다. 그러나 향후의 위기 극복이나 경제의 양적, 질적 성장을 위한 노력은 무엇보다 실용적 관점에서 이뤄지길 기대한다. 사실 경제이론에 입각한 경제부양책은 예측도 어렵고 각종 변수에 휘둘리기 쉽다.당장의 지표를 개선하기 위한 근시안적 대응도 적절치 않다. 공존의 가치에 입각해 민생을 우선시하고 정치적 요소를 뛰어넘어 실용적 관점에서 성장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중국의 대약진운동이 명분에 빠져 실제로는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과오를 반면교사할 일이다. 구태의연한 이념이나 명분 다툼으로 역사를 답보케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주요 법안이나 정치적 재판 등 빤한 정쟁 거리가 목전에 있고, 탄핵이라는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전란과 외교적 표류로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진 당쟁의 시대나 자생적으로 나타난 자본주의의 맹아를 고사시키고 근대를 통째로 암흑기에 빠뜨린 세도정치의 시대가 역사 속의 지난 일만은 아님을 늘 잊지 말아야겠다.

2019-10-29 18:20:30

개도 슬픔을 느낄 수 있을까? 펜실베니아 수의과대학 행동학교수 카를로 시라큐사는 개도 어느 정도의 슬픔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사진 출처: shutterstock)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개도 슬픔을 느낄까? 동절기 우울증

신디(7·시추)가 식욕이 없고 슬퍼한다며 보호자와 함께 내원했다. 실제로 신디의 표정은 슬퍼 보였으며 검사받는 내내 무기력해 보였다. 하지만 검사 결과 건강 수준은 의외로 양호했다.겨울이 다가오면 일조량이 줄면서 감성 호르몬이라 할 수 있는 멜라토닌과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드는데 이때 개와 고양이의 계절성 정서불안증(Sessonal affective desorder·SAD) 문의가 증가한다.최근 계절성 일조량 감소가 햄스터와 쥐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햇빛에 덜 노출된 햄스터와 쥐가 우울한 행동을 보일 때 해부학적으로 뇌의 기억장치인 해마가 위축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개와 고양이에게 이 실험이 행해지지는 않았지만 설치류에 비해 뇌가 발달한 특성을 고려하면 인간만큼은 덜하지만 개와 고양이도 계절성 정서불안증이 다발한다고 볼 수 있다.보호자는 신디가 슬퍼하는 이유가 최근 따님이 유학을 가고 동료견과 이별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보호자가 생각하듯이 개도 슬픔을 느낄까?펜실베니아 수의과대학 행동학 교수 카를로 시라큐사(Carlo Siracusa)는 개도 어느 정도의 슬픔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다양한 관계성에서 복합적인 슬픔을 느끼지만, 개와 고양이는 주어진 환경과 호르몬의 부정적인 변화에 따른 단편적인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신디에게 나쁜 상황들이 겹친 데다 일조량 감소에 따른 호르몬의 부정적인 영향이 신디를 더욱 슬프고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신디의 슬픔을 본인의 감정으로 해석하지 말 것을 당부드렸다.개의 슬픔은 부정적인 변화에 의해 단편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개의 슬픔은 환경이 개선되면 비교적 수월하게 치료될 수 있음을 설명드렸다.햇빛이 비치는 따뜻한 시간대에 30분 이상 하루 2회 산책을 권해 드렸다. 햇볕을 쬐는 것 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해주는 두뇌 화학물질인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 근육 활동은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면역기능을 활성화시키며 소화력을 증진시킨다.실내에서 좋아하는 놀이를 개발하도록 권해 드렸다. 부정적인 상황들이 지속되면 동물은 그 공간마저 두려워하게 된다. 좋아하는 간식을 숨기고 찾기, 장난감 던져주기, 종이상자 찢기 등 개들마다 선호하는 다양한 놀이를 유도하여야 한다.마지막으로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반려견에게 투영시키지 않아야 한다. 주인과의 교감을 절대 행복 가치로 여기는 반려견에게 주인의 우울함은 더 큰 불안감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반려견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아픔도 치유되고 있음을 느끼실 것이다.계절성 정서불안증을 앓는 반려견의 경우 무기력, 활력 감소, 수면 습관의 이상, 과체중이나 급격한 체중 감소, 탈모, 편식, 보행 불편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반려묘의 경우 무기력, 비만, 식욕 부진, 눈병, 구내염, 특발성 배뇨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이러한 겨울철 계절성 정서불안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개와 고양이의 잠자리를 창문 가까이 배치하고, 반려견은 낮 시간 30분 이상 산책을 권장하고, 고양이는 창가 전망대를 마련해 주시기 바란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10-29 14:40:09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매일춘추] 생각에 관한 생각

'밤새도록 당신을 들락거리는 생각들/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생각들/ 당신의 천장을 쿵쿵거리는 생각들/ 당신을 미치게 하는 생각들/ 미쳐가는 당신을 조롱하는 생각들/ 당신을 침대에서 벌떡 일으키는 생각들 /당신을 고무(鼓舞)시키는 생각들 순식간에/ 당신의 고무를 무화시키는 생각들(…)백 년 이백 년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생각들/ 당신의 텅 빈 해골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가차 없는 생각들'위 시는 황병승 시인의 '생각들' 부분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생각들의 세계는 무수한 고리들로 이어져 있지요. 생각이 낳은 생각의 연쇄적인 고리로 한 편의 시가 만들어진다면, 시는 수많은 생각들을 먹고 자라는 또 다른 '생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돌려 말하면 토씨 하나가 일으키는 생각처럼 시 또한 '불멸하다' 라는 생각.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아시나요?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서사시 '신곡'의 지옥 편을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지옥의 문 위에 걸터앉아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시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지요.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는데도 도무지 놓아줄 생각이 없는 생각, 혹은 놓아 준 생각이 어디만큼 갔다가 다시 돌아와 지난밤을 간섭하기도 하는 생각.우리가 믿지만 않으면 생각은 해롭지 않다고 해요. 고통스러운 것은 생각이 아니라 생각에 관한 집착이니까요. 바이런 게이티는 생각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 생각을 그대로 믿고 알아보지 않는다는데 있다고 했죠.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도 믿을 게 못 되어서 생각은 허공에서 나와 허공으로 돌아가지요. 생각은 머물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흰 구름처럼 지나가기 위해 오는 것, 이런 생각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보도블록에 떨어진 은행잎이나 가을바람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까요?'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데에도 충분한 형이상학이 있다.' 이것이 생각의 생존 방식이라고 하는데요, 어떤 연구에 의하면 부정적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은 모두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지만, 말하기나 글쓰기와 달리 생각하기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고 하네요. 자신의 경험을 글로 표현한 사람들은 우울감이 낮아졌지만, 자신의 경험을 생각한 사람들의 우울감은 높아졌다고 합니다. 예컨대 자신의 경험을 통합하거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일처리에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겠지요.그렇습니다. 인류는 생각에 대해 생각해 왔는데 지금도 생각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을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이 생각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요. 임창아 시인, 아동문학가

2019-10-29 11:13:48

[세월의 흔적]<36>문패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백년설이 부른 '번지 없는 주막'의 첫 부분이다. 이 노래는 비가 추적거리는 밤, 왠지 한잔 술이 생각날 때 부르면 어울린다. 친한 친구들과 허름한 술집에 앉아서 부르기 딱 좋은 노래인가 하면, 애처롭고 비극적인 정서가 잔잔히 가슴에 스며드는 노래기도 하다. 술집의 풍속도가 많이 바뀌었지만.문패에는 이름과 주소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지번을 부여하는 제도가 없었다. 주소를 숫자로 표시할 수 없었고, 문패가 절실하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농촌은 씨족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어 살았기에 이름이나 택호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도시에 살아도 동장이나 반장에게 물으면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그뿐이랴. 우편배달부는 이름만 대면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꿰고 있었다.그러나 높은 벼슬을 하였거나 충절을 지킨 사람들은 달랐다. 솟을 대문에다 나라에서 내린 표창 내용을 내걸었다. 이것이 문패의 기원인데, 문패란 말은 홍문(紅門)과 패액(牌額)의 준말이다. 홍은 충신․효자․열녀의 일편단심 붉은 마음을 뜻하고, 문은 그런 사람이 나온 가문이나 문벌을 뜻한다. 넓게는 그가 사는 마을이나 고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편제도가 발달하고 편지의 내왕이 빈번해졌다. 아울러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람을 찾거나 우편물을 배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문패가 꼭 있어야 할 필수품이 되었다. 집집마다 문패를 달도록 하는 법이 시행되었고, 그와 함께 문패달기운동까지 벌인 적이 있다.문패는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든다. 장방형의 육면체 나무에다 주소와 성명을 새기는데, 돌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자개를 박아서 만드는 사람도, 대리석으로 만드는 사람도, 더러는 서각(書刻)을 해서 멋을 내는 사람도, 아크릴판에 새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국가유공자의 집' '병역명문가의 집' 같은 특이한 문패가 있고, 집들이를 축하하며 문패를 선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뿐이랴. 세대주의 이름만 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부의 이름을 함께 쓰는 경우도 있다.처음으로 내 집을 짓고 나서 뿌듯한 마음으로 문패를 달았다. 보기에도 좋았을 뿐 아니라 흐뭇하였다. 자개로 된 문패를 가끔 광택을 내는 약품으로 닦기도 하였다. 그 뒤 몇 차례의 이사를 하였고, 그럴 때마다 문패를 소중하게 간수하였다. 그러다가 거처를 아파트로 옮겼다. 문패를 달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였다. 건물 입구에 달아 놓을 수도 없고, 현관에 다는 것도 마뜩찮아서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뜻을 접고 말았다. 끝장에는 깨끗하게 닦아서 서가 한쪽에 세워놓았다. 내 이름 석 자를 내다 걸 데가 없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아, 사람살이가 이래서야. 김 종 욱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10-28 18:00:00

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

[특별기고] 깊어가는 가을, 결혼의 축복을 찾자!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0.98명국가 소멸 위험국으로 지목인구절벽 해소 첫걸음은 결혼청춘들에 가정의 가치 알려야가을은 하늘로부터 위로를 얻는 때이다. 청명한 하늘은 삶에 찌들어 있는 우리의 눈과 마음을 맑게 해준다. 맑은 가을 하늘 때문일까? 주변 곳곳에서 알려오는 결혼 청첩장을 접하며 가문의 축복을 빌어준다.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최악을 달리고 있다. 특히 청춘 남녀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절반 이하(48.1%)로 떨어졌다는 소식은 씁쓰레하다 못해 청년들이 처한 현실에 안타까움마저 든다. 한 국가의 현상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이 2.1명이기에 우리나라는 인구절벽이라는 재앙을 넘어 국가 소멸 위험국가로 지목되고 있다.출산율 감소는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에서 크게 기인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의 큰 축을 담당했던 베이비부머 시절에는 혼기가 차면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야(매년 100만 명 정도 출생) 한다는 생각이 삶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개인적인 가치 실현을 우선시하고 결혼 기피 현상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러한 기피 현상은 청년들의 취업난, 주거 불안정, 구속받기 싫어하는 태도, 그리고 기성세대의 무관심 때문이라 생각한다.그동안 정부에서는 많은 저출산 극복 정책을 내놓았지만 실질적 효과가 미미하다. 그러나 비혼 현상을 지나치고 인구 문제를 논할 수 없고 합계출산율을 높이는 첫걸음은 바로 결혼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016년 달서구청장으로 취임 하면서 인구절벽 해결 해법의 큰 몫을 결혼에서 찾고자 전국 최초 결혼장려팀을 신설하고 또한 조례를 제정했다. 나아가 달서결혼특구 선포, 공공장소 결혼식장 11개소 개방 및 결혼테마공원 조성, 20개의 기관·단체 간 MOU 체결 등을 통해 결혼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결혼 인식 개선 아카데미, '하늘열차 도시철도 데이트' '사랑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생애주기별 교육 정보 제공 등 다양한 서비스를 펼치며 지금까지 550여 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민간활동 등을 포함해 73쌍의 성혼 결실을 맺었다. 지금 달서구의 결혼 장려 정책은 연못의 물수제비 파장처럼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을 오는 성과를 거두고 있어 '신나는 결혼 1번지 달서'의 명성을 키워가고 있다. 이에 나는 결혼 장려 정책의 전국 파급을 위해 여성가족부 장관을 만나 직접 건의도 했었고 국무총리께 서한문을 보내 제안하기도 했다. 머지않아 결혼 정책을 통해 가정의 소중함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는 작은 꿈이 실현되리라 믿는다.결혼은 이기심이나 물질적 조건이 앞서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의 결혼 태도를 성찰하기보다 나보다 더 나은 조건의 배우자를 찾다가 기회를 놓치는 것은 결혼의 본질을 간과한 결과이다. 결혼 조건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서로 채우고 사랑하다 보면 숨어 있는 진주가 발견되듯 우리 인생사에 숨겨져 있는 행복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 청춘들에게 결혼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인 듯한 자세보다 결혼·가정의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하며 숨겨진 축복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혼밥' '혼술'이라는 단어 사용이나 '나 혼자 산다'와 같은 TV 프로그램 방영은 자제해야 할 것이며, 결혼과 출산은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이고 가정은 우리 사회의 행복 세포임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성공 사례처럼 국가와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결혼 장려 문화를 범국민 운동으로 펼쳐 사회풍토를 개선해 나간다면 반드시 인구절벽 위기를 극복하는 큼직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결혼은 결코 어느 한쪽의 이익이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 배려와 존중으로 행복의 나무를 함께 키우는 출발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소중한 가치이자 행복 결정체인 것이다. 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든 청춘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설레는 이 가을에, 사랑하라! 결혼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성을 기울이면 분명코 축복의 샘이다."

2019-10-28 17:38:00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대구는 창업하기 좋은 도시인가요?

"대구에서 창업하면 절대 안 된다!"6년 전 필자가 창업할 때 지인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더군다나 필자의 종목은 만지거나 가질 수 없는 광고 아이디어였다. 그렇다. 봉이 김선달과 같은 황당한 아이템이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상인동 자택에서 광고회사를 창업했다. 하지만 곧 지인들의 만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디어가 생명인 광고회사를 창업했지만, 대구는 무형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낮았다. 그때는 길거리에서 볼펜이나 붕어빵을 파는 분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그것들은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볼펜은 500원, 붕어빵은 1천원이라는 가격으로 인식하지만, 아이디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극도로 낮았다. 더군다나 대구에는 매체 광고 대행사들이 많았다. 버스나 지하철의 광고판을 임차해 그 공간을 쓰는 비용만 받는 회사들이었다. 매체 수수료와 같이 부동산 장사를 하는 회사가 대부분이었다. 광고판 사용료를 받으니 정작 광고 콘텐츠는 무료였다. 광고 카피, 디자인은 공짜인 시장이 바로 대구였다. 설상가상으로 대구에는 기업이 많이 없고 그런 이유로 광고에 대한 인식도 낮았다. 당연히 필자처럼 아이디어를 내는 회사들은 생존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당연했다.대구에서 창업한 후 하루하루가 부단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글 한 줄의 가치, 그림 한 장의 가치가 브랜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설득하고 다녔다. 광고는 공짜라는 인식과 싸우고 다녔다. 나이키의 'Just do it'과 같은 카피를 자기도 쓸 수 있다는 소상공인들과 싸움이었다. 당연히 회사는 배고팠다. 사람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자는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람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대구라는 시장은 창업하기에 척박한 환경이라 볼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앞서 쓴 글처럼 대부분의 아이디어 컴퍼니들이 기업이 많은 서울로 떠난다. 필자는 오히려 그 점을 파고들었다. '그럼 경쟁자가 없는 거구나. 모두 서울로 가니 한강 이남에서는 최고의 광고회사가 되어보자'고 결심했다. 그런 생각으로 뛰었다. 그사이 만질 수 없는 아이디어는 공짜라는 인식도 차츰 변해갔다. 무형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해외 광고제에 참가해 수상한 대가였다. 우리가 팔았던 비싼 광고가 더 큰 매출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였다. 불경기가 왔을 때는 다행히 시청과 경찰청, 교육청과 같은 관공서의 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망할 뻔한 고비를 두세 차례 넘겼다.'대구는 보수적이다'라는 이미지가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으시겠습니까?" 아니다. 창업가는 환경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브랜드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서울이 아니니까' '여기는 지방이니까'라는 생각에 젖어 있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불리한 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뒤집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필자 역시 철옹성같이 단단한 대구의 보수성을 이용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쉽사리 열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신뢰를 얻으면 계속 믿어주는 면이 있다. 모든 것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 대구에서 창업하는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오히려 서울이 아닌 점을 더 잘 활용하라고.

2019-10-28 16:53:47

구미과학관 관장

[과학둘레] 롤러코스터에서 배워본 삶의 한 수

얼마 전 지인에게서 그림책을 선물로 받았다. 태어나서 100세가 될 때까지 그 나이에 일어날 법한 일을 페이지마다 삽화를 곁들여 한두 문장으로 적어 놓은 책이었다. 궁금해 제일 먼저 펼쳐본 필자의 나이엔 이런 글이 있었다. '어릴 때 보았던 그 나이 때 사람들이 네 자신이란 생각은 전혀 안 들지.' 그렇다. 100세엔 무슨 글이 적혀 있을지 또 궁금해 뒷장을 들춰보았다. 심오한 깨달음을 기대한 인생의 마지막 장은 물음표였다. '살면서 무엇을 배웠을까?'놀이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경로로 인생의 부침과 결부해 종종 회자되고 있다. 주로 올라가는 걸 좋은 일이 일어난 걸로, 내려가는 걸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으로 말이다. 롤러코스터 주행을 에너지 측면으로 보면 에너지변환과 에너지보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상에서 모터의 힘으로 높이 올라간 롤러코스터 차량은 나머지 구간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얻게 된다. 높이는 위치에너지다. 충분한 위치에너지는 차량을 멀리 잘 갈 수 있도록 한다. 위치에너지는 내려올 때 속도감을 가진 운동에너지로 변환된다. 첫째 언덕을 가파르게 내려오던 차량은 멈추지 않고 다음 언덕을 다시 오른다. 같은 높이의 두 번째 언덕도 훌쩍 넘어갈 기세다. 에너지가 보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론 같은 높이의 언덕을 넘지 못하고 4분의 3 높이에서 차량이 앞뒤로 왔다 갔다 한다. 처음 가지고 있던 총에너지를 주행하는 동안 바닥마찰과 공기저항으로 일정량 잃어버렸기 때문이다.롤러코스터 주행의 에너지보전은 신영복의 '나의 동양고전독법 강의'에서 주역의 자리(位)를 설명하며 첨언한 '70% 자리가 득위의 비결'이라는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능력이 100이라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는 저자의 생각. 첫째 언덕의 총에너지가 100이라면 다음 언덕의 높이는 처음의 4분의 3보다 낮아야, 즉 70 정도가 되어야 그것을 가뿐히 넘어갈 수 있는 롤러코스터와 묘하게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롤러코스터는 올라갔다 내려오는 경로뿐 아니라 거꾸로 돌고 좌우로 비트는 구간이 있어 타는 사람의 간장을 흔들어 놓는다. 몸이 붕 뜨고 속이 뒤집히는 느낌은 중력과 관성력의 작용이다. 우리가 땅을 딛고 걸어 다니고, 번지점프를 하면 초당 9.8m의 가속도로 지상을 향해 떨어지는 것은 모두 중력 때문이다. 중력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게 하고, 내려갈 때 몸이 뜨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는 우리 몸이 관성으로 인한 관성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관성이란 정지하거나 움직이고 있는 물체가 속도나 방향의 변화에 대해 저항하는 것을 말한다.롤러코스터에서 관성력은 차량의 속도와 방향이 급격히 변할 때 느껴진다. 롤러코스터 차량이 정점에서 가파르게 내려올 때 일시적으로 몸이 떠오르는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이유가 갑자기 방향을 아래로 바꿔 중력가속도로 근접해 떨어지는 차량에 저항하는 우리 몸의 관성력 때문이다. 이때 일상에서 느끼는 중력가속도인 1G(9.8m/sec²)보다 낮은 0~1 사이의 가속도를 경험하며 짜릿한 스릴을 맛보게 된다. 다시 아래로 내려온 롤러코스터가 위로 방향을 바꾸면 이번엔 아래로 향하는 관성력에 의해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이때 우리는 2~5 사이의 중력가속도를 느끼게 된다. 중력가속도의 변화는 적당할 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너무 낮거나 높고 장시간 지속되면 혈액이 머리나 다리에 몰려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이유는 속도의 빠르기가 아니라 속도의 변화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우리가 누리고 싶은 삶은 빠르게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 변화 있는 삶이다. 다음 언덕을 넘지 못해 멈추는 변화가 아니라, 장렬하게 한 번으로 끝나는 변화가 아니라, 에너지가 다하는 순간까지 잔잔하게 이어지는 변화. 평소 다니던 길을 벗어나 낯선 길로 가보는 거 같은 소소한 변화 말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가던 방향을 바꾸어 잠시 관성을 거슬러 보는 것이다. 그곳에 인생의 즐거움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롤러코스터에서 배워본 삶의 한 수다.

2019-10-28 16:52:48

경기대 미디어학부 특임교수

[김구철의 富의 비밀수학] 세이버메트릭스와 우승 '확률'

2019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4대 0, 두산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시리즈전에는 키움의 우세를 점친 전문가가 많았다. 시즌 득실점도 앞서고, 맞대결 성적도 9승 7패로 앞서고, SK와의 플레이오프에서 3전승하면서 키움의 기세가 올랐다는 게 근거였다. 우승 '확률' 키움 52%, 두산 48%라는 숫자도 나왔다. 두산이 1차전에 이긴 다음에는 숫자가 더 구체적이었다.먼저 낙관론. "과거 35차례의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승리팀이 26차례 우승했으니 1차전 승리팀 두산의 우승 '확률'이 74.3%다". 비관론도 있었다. "두산은 9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1차전 이긴 해에는 단 한 차례 우승했으니 우승 '확률'은 11.1%다." 같은 팀 두산의 2019년 우승 '확률'은 왜 이렇게 서로 다를까?간단히 말해 위의 숫자들은 확률이 아니며 기사는 '가짜' 뉴스다. 확률은 '충분한 크기의 표본'과 '동일한 조건'을 기본 전제로 한다. 35차례나 9차례는 확률을 논하기에는 '너무 작은 표본'이다. 다음 35차례든 9차례든 같은 팀이 아니고, 피아 모두 같은 감독이 아니고 같은 선수가 아니니 '조건이 다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①표본이 작고 ②조건이 다르니' 확률을 논할 수조차 없다.요즈음 세이버메트릭스라 해서 통계적 기법을 도입해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성적을 거둔 사례가 국내에도 소개되고 있다. 시즌 중에는 경기 수가 워낙 많아 몇 년의 자료를 축적해 나름 예측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은 다르다. 표본이 극히 적고, 거의 해마다 다른 감독, 다른 선수로 구성된 다른 팀들의 경기가 진행된다. 모두 같아도 타순과 투수 등판 순서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무지한 기자와 캐스터, 해설가 때문에 청소년들이 잘못된 확률 개념을 갖게 될까 걱정스럽다. 확률 운운하지 말고 숫자만 재미로 즐겨라. 하나 더, 스포츠는 숫자만으로 예측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2019-10-28 16:46:02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莫須有(막수유)-생사람 잡기

악비(岳飛)는 금(金)나라와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운 송나라의 유명한 장수다. 그는 소통에 능하지 못해 주위의 미움을 사는 일이 많았다. 또 자신의 청렴과 재능을 과신해서 황제마저도 무시하는 듯한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줄곧 금나라와의 전쟁을 주장하는 그는 주화파(主和派)들에게는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악비를 제거하기 위해 승상 진회(秦檜)는 사람을 시켜 그를 모함하고 뒷조사도 했다. 아무리 파도 죄가 될 만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 악비와 친분이 있는 주전파의 장령 한세충(韓世忠)이 보다 못해 진회에게 "악비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소이까" 하고 따졌다. 진회가 "(털어보면)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莫須有)"라고 했다. 막수유(莫須有)의 유래다. 털면 나올 것이라는 뜻으로 전근대적인 유죄추정(有罪推定)의 원칙이다. 지금은 터무니없이 상대에게 누명을 씌워 모함할 때 쓰인다.남을 모함할 때 막수유만큼 편리한 방법도 없다. 일단 잡아서 가혹한 형벌로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는 자백을 받아내고 처형을 한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은 서양판 막수유였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확립된 현대에도 후진 사회에서는 정적 제거나 국면 전환을 위한 수단으로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요즘 검찰 개혁에 대한 요구가 많다. 과거 검찰이 행한 막수유에 대한 기억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2003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며 이라크를 공격했다. 이라크를 점령해서 뒤지면 대량살상무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였다.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 대량살상무기는 맘에 들지 않는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기 위한 거짓 명분용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에 사과하지 않았고, 이라크전쟁이 독재자를 제거하고 아랍의 봄을 가져왔다고 변명했다. 힘을 가진 자에게 막수유는 이래저래 편리한 구석이 있다. 그러면 상대방의 고통은 어떨까.

2019-10-28 16:34:49

권택흥 대구노동복지포럼 공동대표(전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

[기고] '상생형 대구일자리'를 준비하자

올해 1월 31일,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식이 체결되고, 지난 2월 21일 정부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확산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구미, 밀양, 강원도에서 '상생형 지역일자리' 협약식을 체결하고, 정부에 지정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도 6월 27일 논공공업단지에 입주한 이래AMS가 1조4천억원의 수주를 받고도 신규 투자에 어려움을 겪자 노사상생 협약을 바탕으로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이 설비자금을 지원하는 등 '대구형 일자리'를 성사시켰다.이처럼 '상생형 지역일자리'가 지역경제를 살리는 대안이 될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정부가 밝힌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제조업과 서비스업 분야에서 노사민정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상생 협약을 체결하고, 최소한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면, 정부가 해당 상생형 일자리 모델에 맞게 자금 지원과 복지 인프라 구축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것이다.대구는 현대자동차와 LG화학 유치를 통한 '광주형'과 '구미형'과는 달리 대기업 유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조건에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밀양형'과 '강원형'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밀양형은 금형, 도금, 주물 등 뿌리 기업 30여 개를 하남일반산업단지에 유치해 3천500억원의 투자와 5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스마트 뿌리산단'을 구축한다는 것이다.강원형은 전기차 완성업체인 디피코와 8개 중소기업 간 협업을 통해 소형 전기화물차를 생산한다. 참여 기업들은 661억원을 투자해 580명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정부와 국회에서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가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9월 3일, '상생형 지역일자리 지원센터' 개소식을 하고 투자 애로 해소, 상생 협약 체결 지원 등 전 주기 밀착 지원 서비스 제공을 시작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9월 25일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를 열고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한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해 중앙정부가 행정·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물론 지역 모델들의 지속 가능성, 노사 상생 협약의 안정적인 유지, 전기차에 집중된 중복 투자로 인한 자원 낭비 등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그럼에도 122만 명의 산업종사자 중 제조업 비중 20.6%, 20만9천376개 업체 중 300인 이상 대기업은 130개사로 0.06%, 10인 미만은 19만5천112개사로 93.1%를 차지하고 있고, 지역내총생산(GRDP)과 노동자 임금이 모두 전국 최하위 수준인 대구는 혁신적인 산업 전략과 일자리 전략이 절실하다.특히 대구 제조업의 주력 분야였던 섬유, 자동차, 기계부품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해마다 1만여 명의 청년들이 타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현실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지방정부와 시민사회 모두가 지역경제의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하면 공멸이다.'상생형 지역일자리' 핵심은 기존의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는 달리 지역경제 주체들이 함께 지속 가능한 상생 모델과 일자리를 만들고 책임지는 '사회통합형 공유경제 패러다임'이다. 지금 당장, 지속 가능한 대구공동체를 위해 노사민정이 '상생형 대구일자리' 논의를 시작하자.

2019-10-28 11:10:18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매일춘추] 흰둥이의 목줄

몇 년 전 TV동물농장에서 방영된 내용이다. 시골 한적한 공용주차장에서 털이 덥수룩한 강아지 한 마리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앉아있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면 항상 도망가기 바쁘지만 특정모양과 색깔의 차량이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간다. 하지만 운전자를 확인하고는 부리나케 도망가기 일쑤이다. 아마 자신을 그곳에 버린 주인의 차량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흰색 털이 까맣게 될 정도로 꽤 긴 시간을 떠돌이 생활을 한 것 같다. 언제부터였는지 목줄이 살을 파고들어 목 주변 털에는 빨간 피고름이 맺혀있다. 이를 안타깝게 본 동네주민들이 제보를 했고 제작진과 구조대는 이 강아지를 돕기 위해 먹이를 두고 유인하여 그물로 구조했다. 몇 차례 발버둥 치던 강아지는 지쳤는지 이내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꼬리가 말려 두려운 눈으로 몸을 떠는 강아지에게 사람들은 널 도와주려는 것이니 겁먹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동물병원으로 이송되어 자신의 살을 파고들었던 목줄이 끊어졌다. 그 순간, 강아지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클로즈업 된 TV화면에는 자막이 나왔다.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흰둥이'(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눈물이 왠지 슬퍼보였다. 어쩌면 흰둥이에게 그 목줄은 주인의 마지막 흔적이자 자신을 알아 볼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지 않을까? 흰둥이는 이제 더 이상 주차장에서 기다려야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한 생명을 구한 사람들의 노고와 따뜻한 마음을 비난할 의도는 없다. 덕분에 흰둥이는 새로운 곳에 입양되어 사랑받으며 살게 되었으니까. 순전히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를 즐겨하는 꼴사나운 연극인의 자의적인 해석이다. 다만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하는 행동이 정말 그들을 위하는 일일까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나는 타인에게 도움을 행할 때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시작될까. 동정심? 우월감? 과시욕? 자기만족? 아마 대부분 동정심에서 비롯되는 행동일 것이다. '김씨 표류기'라는 영화에서 김씨는 자살하기 위해 한강에 뛰어내리지만 실패하고 밤섬에서 깨어난다. 우연히 짜장라면 스프를 발견하고 면을 만들기 위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이것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여자 김씨는 그곳으로 자장면을 배달시켜주지만 김씨는 짜장면은 자신에게 희망이라며 이를 거절한다.나의 도움이 타인의 희망을 저버리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에 돕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로 엮여있는 우리의 삶 속에서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할 덕목이다. 다만 나의 가치관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기준의 잣대질로 존중받아야할 개개인의 삶의 가치를 흰둥이의 목걸이처럼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2019-10-28 11:09:38

노동일 경희대 교수

[이른 아침에] 한국 정치 타락과 한국당의 책임

'직업으로서의 정치'(막스 베버)는 잘 알려진 책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정치 관련 서적이지 싶다. 책을 통해 베버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들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을 설명하고 있다. 무려 100년 전인 1919년, 독일을 배경으로 한 책이 아직도 우리에게 통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정치인들은 권력도 없고 책임도 없으며 동종 직업집단인 '길드'와 같이 단지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고 파벌 본능에 빠져 있다." 베버가 진단한 독일의 무기력한 정치 상황이 우리와 흡사한 때문일 것이다.베버는 그런 상황을 타개할 정치 지도자의 덕목으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적 판단을 제시했다. 대의명분에 헌신하는 열정,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책임의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판단하는 덕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이 대의에 헌신하지 않고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을 상실했을 때 정치 타락이 발생한다"고 말했다.이른바 '조국 사태'를 통해 국민들이 목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정치의 타락'이다. 국민과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의에 봉사하는 정치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모두 동종집단인 정파적 이해관계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권력자가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책임의식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어제까지 칭찬해 마지않던 검찰을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정치인들의 권력 남용이 도를 넘었다. 베버가 "정치 지도자가 책임의식이라는 자질로 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지 않으면 지극히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 대로다. 균형감각의 상실은 또 어떤가. 정치인들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들도 궤변과 요설을 서슴없이 쏟아낸다. 우리 모두 진영 논리 속에 이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 정도다.조국 장관 사퇴 후 조금씩이나마 회복의 기운이 돌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표창원 두 초선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정치 전반에 대한 실망도 있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며 느꼈던 좌절감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두 의원 모두 가장 공방이 치열한 법사위에서 조국 옹호에 앞장서야 했던 정신적 분열상을 토로하고 있다. 역시 초선인 조응천 의원도 "조국 사태로 지옥을 맛봤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의원은 소위 '계엄령 문건'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지도부를 향해 "낡은 정치이고 사라져야할 정치 문법"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20명이 넘는 여당 의원들이 불출마 선언을 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그와 비교되는 한국당의 반응은 지켜보는 지지자들마저 당혹스럽게 한다. 나경원 원내대표와 '조국 TF' 의원들이 모여 표창장을 주고받은 것부터 어이없다. 혹시 조국 패밀리의 표창장 의혹에 대한 패러디인가 싶기도 했지만 진짜(?) 표창장 수여식이었다. 50만원 상품권까지 곁들여 박수 치며 웃고 환호하는 장면은 총선 승리 축하 자리를 방불케 했다. 그동안 고생한 의원들과 격려하는 자리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공개된 자리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야 한다."국민 여러분께서 직접 거리로 나와 표출해 주신 뜻을 엄중하게 받들겠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기득권과 불공정을 시정해 나가는 데 지금부터 한국당이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 조국 사태 속에서 보수 야당이 발견했어야 할 대의는 그런 것이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기득권과 불공정을 타파하고 상식을 회복해 달라는 외침 말이다. 상장과 상품권을 돌리고 공천 김칫국을 마시는 모습에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인을 찾기는 어렵다. 하긴 자신들이 모시던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는 수모를 당해도 의원직 사퇴 등 확실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이다. 친박 혹은 친이 정치인들 모두 마찬가지다.광화문의 시민들은 상식을 망각한 정치에 분노한 것이지 한국당을 지지해서 나온 게 아니다. 그 사실을 잊고 잠시 반짝한 지지율에 취한다면 내년 총선 결과는 보나마나다. 한국당은 여당보다 더 처절한 쇄신 경쟁에 나설 때만이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살릴 수 있다. 출발은 책임지는 정치인들이 줄을 잇는 것이어야 한다. 역시 베버가 강조한 대로다.

2019-10-27 16:12:52

이진련 대구광역시의회 의원

[기고]대구시 유관기관장 인사 공정하게

지난 10일 열린 대구시 국정감사에서 대구시 유관기관장 인사에 권영진 대구시장의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실제 지난해 9월 전 대구시의회 부의장이 대구청소년지원재단 대표에 취임했고, 올해 5월에는 권 시장의 전 비서실장이 대구도시철도공사 자회사인 대구메트로환경 사장 자리에 앉았고, 이달에는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인물이 엑스코 사장에 취임해 내정설 등 뒷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또한 낙하산 인사 논란이 있었던 전 경제부시장은 대구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에 취임하려다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얻지 못해 제동이 걸리기도 했고, 대구경북 섬유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에 취업하려던 또 다른 전 대구시의회 부의장도 취업 제한 결정으로 인사가 좌절된 바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아직 대구시장의 대구시 산하 및 유관기관 인사 관행은 시민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물론 권 시장의 국감 답변처럼 "사실이 아니라, 개연성으로 추측한 것"이란 말이 진실이기를 믿고 싶다. 하지만 '배 밭에선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유사한 행위가 반복되는 것은 시민들로 하여금 대구시 유관기관장 인사에 대한 낙하산 우려가 사실이라고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대구시 차원의 투명성 확보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그 시작은 현재 절차가 진행 중인 한국패션산업연구원(패션연) 원장 공모에서부터 보여줄 필요성이 있다.패션연은 지난 7월 1일 원장 채용 공모를 냈지만 지원자 4명이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아 선임이 무산됐다. 이어 8월 21일 재공모에 나섰지만 1차 모집에서 부적격 처리된 4명을 포함한 6명이 지원하는데 그쳤고, 패션연은 서류심사를 열지 않고 후보자 전원에 대해 면접 기회를 주기로 의결했다. 이러한 절차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패션계 일각에서는 특정 지원자 밀어주기가 아닌지 벌써부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물론, 패션연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전문연구기관이고 지역의 원장추천위원회에서는 3배수의 인사를 산자부에 제출하는 것뿐이라 대구시장은 이번 인사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겠지만, 패션연이 대구시에 운영비와 각종 사업과제를 수행하므로 대구시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많은 시민들의 생각이다.따라서 패션연 원장 공모에서도 시민들이 볼 때 낙하산으로 오인될 수 있는 사람이 임용되는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는 방지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구시가 관련 절차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또 시민들의 눈높이에서도 납득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원장이 선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더 나아가 이런 문제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구시 출자'출연기관장 인사검증 시스템을 보완하고 현재 공사공단에만 국한된 인사청문회를 확대하여 더 이상 불공정한 정실 인사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화할 필요성이 있다.권 시장은 지난 2014년 첫 임기를 시작할 때 취임사를 통해 "대구에서만큼은 비정상적인 관피아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시민들에게 약속한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9-10-27 15:44:23

채명 무용평론가

[매일춘추] 무용계 폐쇄성과 춤의 확산?

서너 달 전 화합되지 않은 대구무용협회의 민낯이 언론을 타고 보도되기도 하고, 일간지의 논설로 비판을 받기도 한 적이 있었다. 10월 초에 마무리된 '전국무용제'를 앞두고, 대구무용계의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고 무용계 저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필자도 그 회오리의 중심에 있었다. 무용계를 위한 협회의 공정함을 되찾자는 것이고, 협회운영은 대구시의 공적 재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당연한 것이었다.그 후의 문화계 뒷얘기들은 협회에서 10년간이나 제외되어 불이익을 당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돈 욕심이나 부리는 반란으로 치부되었고,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몫을 나누지 않으려 했다. 그 작은 권력도 나누지 않는 냉정한 세상 논리에 대한 확인이었다. 오히려 공허하게 몇 달이나 애걸과 겁박의 목소리를 높인 측이 오히려 협조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협회의 요구로 2명이 집행위원회에 들어갔지만 회의 한 번으로 끝났다.'전국무용제' 행사를 하면서 진행과정이나 회의 등이 공식적으로 공개되고 이뤄졌어야 했다. 자주 회의를 거쳐, 과정에 대한 체크나 불편함 등이 집행위원회 20명 위원의 의견과 안목으로 개선되었더라면 더 훌륭한 무용제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그렇지만 온실에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무용가들은 나름의 살 길을 찾는다. 소박하게 또는 자신의 역량대로 자신의 그룹을 만들어 자기만의 색깔로 춤 행사를 가진다. 필자는 2010년부터 「한국춤축제위원회」를 만들어 3회에 걸쳐 춤 축제를 열었다. 포부도 크게 모토가 '춤의 바람 불어라'였고, 비전공자 춤꾼들을 무대에 세운다고 언론에 관심을 받기도 했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벌인 행사는 소박했지만, 즐거운 무대였다. 이제 그 힘을 키워 어제 10월 27일 '거리춤페스타'로 다시 축제를 열었다. '한국민족춤협회 대구지회'의 이름으로 대중과의 춤 소통을 위한 거리 춤판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춤 무대였다.지난 주 월요일 21일에는 '대구무용비엔날레'의 발족 기념공연이 동성로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독일 유학파 유연아의 '(사)춤추는 박물관'이 주관하는 무대였다. 첫 걸음에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만의 특색 있는 춤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 본다.전국과 세계의 젊은 안무가들을 위한 '세계안무축제'(조직위원장 박현옥)도 초여름이면 어김없이 판을 열어 6회째로 이어가고 있다.이와 같이 춤은 한 목소리가 아니고 다양한 색깔을 뽐낼 때, 관객들과의 소통은 이뤄지게 된다. 각자 춤꾼 자신만의 고유한 춤 가치관으로 다양한 춤은 확산된다. 무용계 폐쇄성이라는 문제의 답은 결국 소통이다. 채명 무용평론가

2019-10-27 06:30:00

종이에 담채, 49×69㎝, 영남대학교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정황(1735~?) '대구달성'

진경산수는 우리 땅, 우리 산하(山河)를 그린 그림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을 그린 그림에 관심과 애착이 더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대구를 그린 조선시대 그림은 '대구달성(大丘達城)'이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겸재 선생의 손자인 손암(巽庵) 정황의 그림이다.화면의 한 가운데 위쪽으로 석성(石城)인 대구읍성을 그렸고, 그 아래로 『삼국사기』에서부터 나오는 대구의 유서 깊은 지명을 간직하고 있는 높직한 토성(土城) 달성을 나무들이 무성한 둥근 모양으로 그렸다. 달성 오른쪽 아래에 읍성을 손짓하며 내려다보는 두 명의 인물과 동자 한 명이 있다. 겸재 선생이 즐겨 그리던 점경인물이다. 금호강이 화면 바깥쪽으로 둥그렇게 대구 분지를 감싸고 있는데 왼쪽 위의 산 사이에서 흘러 내려 금호강과 합류하는 물길은 신천, 그 아래 정자가 있는 작은 산은 침산일 것이다. 성근 필치지만 읍성과 달성, 금호강과 신천 등이 18세기 후반 도시 경관으로 관망되는 대구의 특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성가퀴가 그려진 성벽 안팎으로 지붕이 빼곡해 감영도시의 번화함이 잘 나타난다. 붉은 색 기둥의 큰 건물이 몇 채 보이는데, 경상도 관찰사가 근무했던 경상감영 정청(政廳) 선화당과 성문 위에 세워진 누각인 문루(門樓)이다. 위쪽의 2층 건물은 읍성의 남문인 영남제일관이고, 아래쪽 아치형 성문 위의 누각은 달서문을 그린 것일 것이다. 동쪽에는 진동문, 북쪽에는 공북문이 있었다. 1736년(영조 12년) 대구읍성을 석성으로 쌓은 후 이 사실을 기록한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에 의하면 4대문 외에 2개의 소문(小門)이 있어 성문이 6개였고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 망경루 등 4개의 망루가 있었다. 감영도시의 위용을 뽐낼만한 읍성이었던 것이다.이 그림에 그려진 대구읍성이 모조리 파괴되어 사라진 것은 1906~07년으로 경상도관찰사서리이자 대구군수인 친일파 박중양(1872~1959)에 의해서였다. 대구읍성이 있었다는 흔적은 성벽이 헐리면서 동서남북에 생긴 동성로(東城路),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 등 길 이름뿐이다. '달성토성', '경상감영', '대구읍성'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왔던 도시 대구의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문화적 유전자이다.할아버지의 진경산수화를 이은 정황이 언제 어떻게 대구를 그리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정조 시대 의관(醫官)으로 대수장가였던 석농(石農) 김광국(1727-1797)은 "정황은 바로 겸재의 손자로 그의 그림은 할아버지에 비하면 소발자국에 고인 물을 강이나 바다와 비교하는 것 같으므로 화가 집안의 전통을 그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조부의 전통을 이은 것이 귀하므로 한 폭을 거두어 소장하였다."라고 했다. 미술사 연구자

2019-10-27 06:30:00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한송정 노래(한송정곡, 寒松亭曲) - 장연우

달 밝은 한송정(寒松亭)의 밤 / 월백한송야(月白寒松夜)파도 잔잔한 경포대(鏡浦臺)의 가을 / 파안경포추(波安鏡浦秋) 애달프게 울면서 오고가는 건 / 애명래우거(哀鳴來又去)한 마리 신의 있는 모래 갈매기 / 유신일사구(有信一沙鷗)고려전기의 시인 장연우(張延祐, ?~1015)의 작품이다. 이런 시를 읽고, "정말 싱거운 시가 다 있군. 이 작품의 주제가 도대체 뭐야? 그래서 도대체 어쨌다는 건데?" 라고 말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그것이 궁금하면 이해의 열쇠가 숨겨져 있는 3, 4구를 되새김질 해보면 되니까.신의가 있는 모래 갈매기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애달프게 울어대며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걸까? 제 짝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품 속의 갈매기는 잃어버린 제 짝을 찾아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갈매기가 신의가 있다고 한 것도 제 짝을 찾아 구슬프게 헤매는 바로 그 일편단심(一片丹心) 때문이다.신의가 있는 것이 갈매기라면 신의가 없는 것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한번 떠난 뒤에 감감 무소식인 작중 화자의 사랑하는 님이다. 요컨대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짝을 찾아 헤매는 갈매기를 노래하고 있지만, 실상 매정하게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님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그럼 왜 난데없이 한송정과 경포대가 등장할까? 님과 함께 놀았던 추억의 현장이기 때문일 게다. 달 밝은 밤에 솔바람 소리가 줄 없는 거문고를 연주하는 한송정을 함께 거닐기도 했고, 파도가 잔잔한 가을날에는 팔짱 끼고 경포대를 돌기도 했고. 한송정과 경포대가 강릉에 있었으니, 이 시의 화자는 아마도 강릉 사람일 게다."한송정 달 밝은 밤에 경포에 물이 잔 제 / 유신(有信)한 백구(白鷗)는 오락가락 하건마는 / 어찌다 우리 왕손(王孫, 님)은 가고 아니 오는고?"위의 한시를 번역한 강릉 명기(名妓) 홍장(紅粧)의 시조다. 비교해보면 한시의 내용은 초장과 중장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럼 종장은 무엇인가? 언어가 끝난 뒤의 여백에 숨어 있는 화자의 마음을 알아챈 홍장이, 미주알고주알 그것까지 죄다 번역한 것이다.이렇게 볼 때 위의 한시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시의 전형이고, 말이 끝난 데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라고 할 수도 있다. 말하지 않고 말한 가운데 숨어있는 마음을 포착하지 못하면, "정말 싱거운 시가 다 있군. 그래서 도대체 어쨌다는 건데?" 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 시조시인 이정환의 '서시'(序詩)의 전부다.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도대체 왜 붉겠는가.이종문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10-26 06:30:00

정순희 작 '가을 바다'

[내가 읽은 책]고래포 아이들/박남희. 아이앤북 2015

어른들이 끙끙대는 문제를 어린이들은 의외로 쉽게 푼다. 어린이만의 단순하고 투명한 셈법 덕분이리라. 저울질에 익숙한 어른들은 문제를 끌어안고 복잡한 셈을 두드린다. 그러다가 결국 불운만 되새김질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고래포 아이들이 풀어내는 답을 통해 불행했던 역사의 해법을 살며시 제시하는 박남희 작가가 고맙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이 동화를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우연한 기회에 구룡포를 여행하던 작가는 먼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힘찬 파도 속에서 일제 강점기 일본의 포경선을 떠올렸고, 이제는 볼 수 없는 귀신고래를 마음속 깊이 품게 된다. 그 후 고래포라는 공간이 태어났고, 웅이, 기득이, 유키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1920년대 고래포는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할 정도로 물고기가 많았다. 그중에 귀신고래는 고래포의 자랑이다. 오래전부터 고래는 고래포의 이웃으로서 누구도 함부로 잡지 않는다. 그러나 포경선이 들어와서 어린 고래와 새끼 밴 고래를 가리지 않고 잡는 바람에 고래 씨를 말린다. 이 일에 앞장선 사람이 고래포어업조합장인 야스다, 유키코의 아버지다.선착장으로 집채만 한 고래가 피를 흘리며 표경선에 실려온다. 고래의 크기를 보고 야스다는 만족한 웃음을 짓지만 주민들은 제 몸이 다친 것처럼 몸서리친다. 주민들 앞에서 고래의 해체 작업이 진행된다. 배와 갈비 사이에서 하얀 젖이 흐르는 것을 본 웅이는 어미 고래임을 알고 하얗게 질린다. 고래의 지방과 뼈들이 착유장으로 옮겨지고 거기서 나온 기름이 군대에 보내진다는 이야기에 고래포 주민들은 일본군을 원망한다.야스다는 어미 고래뿐 아니라 아기 고래도 기어이 잡으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기득이와 웅이는 유키코한테는 비밀로 하고 아기 고래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니가 아무리 유키코하고 친해도 니 마음속에는 기득이와 유키코를 구별하고 있는갑다. 유키코하고도 언젠간 진짜 동무가 되겠지."-p68웅이 누나는 삼총사였던 유키코를 빼고 기득이하고만 의논하는 웅이를 안타까워한다. 웅이에게 유키코는 참 좋은 친구지만 야스다의 딸이라는 이유로 멀리할 수밖에 없다. 아기 고래의 행방을 유키코가 알면 야스다의 귀에 들어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과 우리도 그들의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 때문에 웅이와 유키코처럼 서로 좋은 친구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유키코는 웅이와 기득이가 아기 고래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간다는 걸 알고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한다. 마침내 유키코는 아버지와 살기등등한 주재소 어른들의 눈을 피해 웅이와 기득이에게 힘을 보탠다."나를 보면 우리 아버지가 떠오르겠지. 하지만 나는 나야. 아버지가 아니라고. 난 어릴 때나 지금이나 너희들을 대하는 마음이 같아."-p147친구로서 변함없는 유키코의 말이 바다 건너서도 들려오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도 웅이처럼 유키코의 손을 기꺼이 잡을 수 있으리라.노을빛이 수평선을 물들이던 날, 웅이와 유키코, 기득이가 아기 고래를 지켜내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다.푸른 새벽별의 응원을 받으며 고래포에 선 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일본과 우리도 언젠간 진짜 동무가 되리라 믿는다.정순희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10-26 06:30:0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아날로그와 디지털

'아날로그'(analogue)와 '디지털'(digital)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는 나타내는 방법의 차이'를 뜻한다. '나'라는 실체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초상화를 그리거나 필름을 쓰는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을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초상화 혹은 아날로그 사진은 서로 연결된 선과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아날로그는 '연결된/연속형의'라는 뜻을 얻게 되었다.그러나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으로 전통적 아날로그 방식과는 다른 방법이 등장했다. 화면을 '화소'(畵素, pixel)라는 작은 칸들로 나눈 다음, 각 화소의 색상을 조절하여 사진을 완성하는 방법이다. 가령 1인치(2.54㎝)를 10등분, 100등분, 혹은 그 이상으로도 나눌 수 있는데 각 화소의 칸을 잘게 나눌수록 실물에 더 가까운 해상도(解像度)가 높은 사진을 얻게 된다.색의 3원색에 컴퓨터에서 쓰는 0과 1로만 이루어진 이진법 수를 각각 부여한 후 그 숫자의 조작과 처리를 통해 각 화소의 색상을 조절한다. 이 새로운 방법은 연속된 선이나 면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수치상의/단절형의' 정보를 이용하게 되고, 여기서 디지털이 '수치상의/단절형의'란 뜻을 얻게 되었다. 숫자는 각기 독립적이므로 '수치상의'란 말은 '단절형의'란 말과 사실상 일치한다.단절형의 데이터만을 다루는 것이 컴퓨터 소프트웨어이며 이것의 발달로 스마트폰을 포함한 각종 전자제품이 생겨났고, 인공지능의 출현과 함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 결과, 디지털은 '컴퓨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컴퓨터의 웹사이트에 있는 정보를 이용하는'이라는 뜻도 얻게 되었다. 우리가 '디지털 혁명', '디지털 인문학'이라고 할 때는 바로 이러한 의미이다.디지털의 두 번째 뜻과 함께, 그 대척점에 있는 아날로그 또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은 전통방식의'라는 의미를 얻게 되었다. 컴퓨터의 정보처리에 의존한 '디지털 뮤직'이란 말과 전통적인 녹음테이프나 레코드판에 담긴 '아날로그 뮤직'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다.다시 아날로그의 본래 뜻인 '연속형의', 디지털의 본래 뜻인 '단절형의'를 염두에 두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펴보자. 세상은 아날로그적 연속된 면과 디지털적 단절된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해운대에 서보라. 바다와 육지가 연결되어 있는가, 분리되어 있는가? 을숙도에 가보라. 낙동강과 남해는 어떠하던가? 팔공산 동봉에 올라보라. 바람과 구름은 또 어떠하던가? 김민기의 노래 '친구'의 가사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를 떠올리지 않아도 삶과 죽음조차도 연결된 것 혹은 분리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아날로그는 종합 또는 통섭(統攝)하는 정신이고, 디지털은 분석하는 정신이다. 아날로그가 수학의 적분이라면 디지털은 미분이다. 합치고, 나누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의 큰 몫이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적 시각과 디지털적 시각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디지털적 시각만 가지면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다. 나와 내 가족은 세상과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결국 부정과 불법까지도 서슴지 않을 수가 있다. 아날로그적 시각만 가지면 의타적(依他的)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자기희생적일 수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독립적이지만 지구 표면을 딛고 살고 있고 그래서 너와 나는 지구 표면을 매개로 인연을 맺고 있다. 결국 '같이&따로'이다.

2019-10-25 19:45:25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위기는 곧 기회다

김정은 "금강산 南 시설 없애라" 지시"한국 정부 관광 재개 소극적" 맹비난동서독 통일 전까지 수백만 명 왕래대화 채널 복원'여행 자유 보장해야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 지도하면서 남측과 협의하여 금강산 지구 내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 지도는 남북관계의 시금석인 금강산 관광 사업의 존폐와 직접 연계되어 있어 주목된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이후 거의 10여 년 넘게 사실상 방치되어 왔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이 본격화된 2016년 이후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제재 프레임에 맞물리면서 재개의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의 중단은 유엔 대북제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금강산 관광 사업이 1990년대 말 남북관계의 물꼬를 튼 사업으로 시작되면서 사업 대가나 관광 수익이 현금으로 지급되는 구조가 되면서 대량 현금의 유입을 금지하고 있는 안보리 결의와 맞물려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으로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북한은 우리 측이 대북제재 등을 이유로 금강산 관광 재개에 소극적인 것에 대해 대미굴종행위 등이라며 공개적인 비난의 수위를 높여 왔다.이번 현지 지도 시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이 남북 간 공유물처럼, 남북관계의 상징, 축도인 것처럼 되어 있고 남북관계가 발전하지 못하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그가 이례적으로 선임자들의 잘못된 의존 정책을 운운하면서 강도 높은 비판을 한 이유는 지금 북한이 처해 있는 현실과 연관이 깊다.대북제재로 어려운 경제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 있어서도 관광 사업은 무시할 수 없는 자금줄이다. 중국 등 외국인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한 해 2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완벽한 관광 인프라는 구축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 유일의 폐쇄국가의 체험이 관광테마가 되고 앞으로 관광 특구화 혹은 개방화된다면 북한 관광객들은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원산 갈마, 마식령 지구에 공을 들여왔고 그리고 지난 16일 김정은 위원장이 재방문한 삼지연군은 백두산 관광과 연계된 관광특구로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삼지연군의 경우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최대로 많이 현지 지도를 한 장소라고 할 만큼 정권 차원에서 공적화하는 곳이다.이러한 북한 입장에서는 금강산 관광 지구도 마냥 묵혀 놓을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금강산에 있는 이산가족 면회소이다. 이산가족 상봉 사업도 더 이상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나는 시설 또한 문을 닫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김정은 위원장은 남측과 협의를 통해 남측 시설들을 철거하라고 하였다. 최고 지도자의 지시는 반드시 이행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북한은 이 문제 협의를 위한 후속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위기는 곧 기회다. 우리로서는 수세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엔 안보리 조치에는 정작 관광에 대한 제한은 없다. 중국인들이나 다른 외국인들은 정당한 여행 경비를 지불하고 북한을 방문한다. 차제에 있을 북한과의 협의에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민간 차원의 관광문제를 포괄적으로 협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금강산 관광 또한 사업대가로 대량 현금이 들어가는 사업이 아니라 순수 관광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우리 국민들이 다시 북한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금강산 관광 사업이 중단된 사유이기도 한 우리 국민들의 신변 안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인 절차를 남북이 합의할 수 있다면 관광 재개의 우호적인 여건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남녘 동포들이 오겠다면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 하였다. 무조건 폐쇄하고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문제 해결을 위한 양측의 전향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로서는 금강산 관광을 포함, 북한 지역 관광을 남북 교류 재개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 간 대화 채널을 열고 필요하다면 미국과 우방국들을 설득해야 한다. 동서독은 통일 전까지 수백만 명의 왕래가 있었다. 제한된 조건에서도 여행과 관광의 자유는 보장되었음을 상기하자.

2019-10-24 12:01:21

남해진 박정희 대통령 현창사업회 회장

[기고] 박정희 서거 40주기 "이 나라 이 민족 지켜주소서!"

그날 이른 아침, 서부전선 모 부대 행정병이었던 필자는 엠바고 비보를 접했습니다. 청천벽력의 천붕(天崩)이었습니다. 전 부대에 전투태세 비상이 걸렸고, 시동을 걸어 둔 트럭 위에서 완전군장으로 대기해야 했습니다. 상황은 오전 11시경이 되어서 해제되었습니다.진공의 공허함 그 자체였고, 시쳇말로 완전 멘붕 상태가 되었습니다. 회한(悔恨)이 일었습니다.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3선 개헌이다 유신헌법이다 했을 때, 그 나이에 목이 쉬도록 성토했었던 기억 말입니다.5·16이 있던 해에 첩첩 산골 시골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1963년 대구로 전학했습니다. 대개 봄철이면 먹을 게 없어 송기(松肌)를 만들고 멀건 시래깃국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못 먹은 탓에 부종으로 부스스한 몰골의 시골 사람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포실한 요즘 세대에게는 거짓 전설 같은 보릿고개 얘기이지요.봉산목욕탕 옆 골목 몇 평짜리 조그만 셋방이었습니다. 주인 노부부의 안방과 곁한 벽면 위쪽에 낸 구멍에 한 자 길이 낡은 형광등이 이쪽 방과 저쪽 방에 반반으로 걸려 있었습니다. 전기를 아낀답시고 밤 9시가 되면 주인은 막무가내 불을 끕니다. 촛불을 켜 놓고 눈 비비며 밀린 숙제를 하곤 했습니다.저만큼 '댕댕'거리는 신호음에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지나갑니다. 칠성시장 건널목 초입에는 가치담배와 담배꽁초를 줍고 까서 대담배용으로 파는 할배가 있었습니다. 파리 날리는 좌판에 멍게 해삼 썰어 놓고 잔 소주 파는 할매도 있었습니다. 땟국 전 낡은 옷차림으로 아이스케이크 통 위에 걸터앉아 회전판 돌리며 호객하는 어린 학생도 보입니다.박정희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비판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5·16 쿠데타에 의한 군사 독재와 유신 독재를 밟고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명분 있는 무혈 5·16 군사혁명이 어째서 다른 나라의 유혈 쿠데타와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으며, 산업화에 성공한 박정희 혁명정부가 어찌 '독재'와 '인권유린'이라는 오명으로 폄훼될 수 있겠습니까?기아(飢餓)와 빈곤 상태에서 민주화가 선행된 경우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가난을 몰아내고 기적같이 일군 산업화의 1970년대가 있었기에 80년대의 민주화가 실현될 수 있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사실입니다.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입니다. 어느 모리배들이 누구의 사주를 받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에 저주의 쇠말뚝 쇠꼬챙이 수천 개를 몰래 박았습니까? 이런 비인간적·비도덕적 행위를 한 자들에게 자자손손 복이 내리겠습니까?박 전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앞세우며 극비리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시다 애통하게도 비명(非命)에 가셨습니다. 현대판 전제군주 북한의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로 이제 우리 대한민국과 자유 진영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좌파 사회주의자들이 준동하는 이 나라, 이 시국, 박 전 대통령의 선견지명에 더욱 큰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40년 전 오늘,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를 떠나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애국애족 유지를 받들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영원히 영웅을 안게 되었습니다.어언 서거 40주기. 구미 생가에 단심(丹心)의 자주색 글귀를 새긴 추모 플래카드를 걸었습니다. "그리운 님이시여! 이 나라 이 민족 지켜주소서!"

2019-10-24 11:55:01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매일춘추] 즐거움의 이유

오늘은 필자가 대표로 있는 지오뮤직의 제작 뮤지컬 '북성로 이층집'의 첫 공연이 있는 날이다. 이 작품은 몇 년간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낭독 공연의 형식으로 두 차례 무대에 올려졌었다. 세트와 의상도 없고 춤이나 큰 움직임도 없다. 오직 대본과 악보를 보며 대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배우들만 있을 뿐. 간단한 조명과 함께 배우들이 앉거나 서는 동작 정도로 극의 변화를 주었다.낭독 공연을 보며 필자는 상상했다. 이 무대에 세트가 들어오고 화려한 조명이 비춰지고 배우들이 하나, 둘 움직이고 음악에 맞춰 안무를 하는 모습을 말이다. 이 작품은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까? 내가 상상한 모습일까? 아니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그림일까? 어떤 그림이어도 좋으니 무대에서 이 작품이 살아 숨쉬길 기대하고 기다렸다.그렇게 5년여의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필자가 속한 단체는 올해 상주단체가 되어 공연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드디어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그림을 무대 위에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처음엔 이 작품을 무대 위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이후에는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세 인물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는 독특한 구성의 대본, 그 대본의 특징을 잘 살리는 음악, 장면의 재미를 더하는 안무, 맛깔스런 연기의 배우들까지 만드는 과정의 모든 요소들이 마냥 재미있었다. 그렇게 공연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재밌는 게 아니고 이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서 재밌는 것이 아닐까?실제의 공연은 낭독 공연을 보며 필자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솔직한 마음은 작품이 어떤 모습이어도 좋다. 그렇다. 필자가 정말로 기다리고 기대한 것은 동료들과 함께 작품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할까를 고민하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 등이 모아지고 작품에 녹아드는 일이었던 것이다.우리 팀이 특별한 사람들의 모임이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재밌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과 감정에 귀 기울여 주고 존중할 때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애초에 생각했던 그림 중 상당 부분은 변수가 되었지만 그 변수가 오히려 공연을 더욱 더 살아 숨 쉬게 하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새로운 지식과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 자신이 생동감을 가지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함께 이 작품을 만든 모든 이들의 존중과 배려 덕분에 오늘은 특별한 날이 되었다. 이들이게 존중과 감사를 표한다. 구지영 지오뮤직 대표, 작곡가

2019-10-24 10:15:42

대구 영남중 교사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대구 호족 이재(異才)

조선 성종의 명으로 1478년 편찬한 "동문선"에는 최치원이 908년에 찬술한 '신라 수창군호국성 팔각등루기'가 수록돼 있다. 내용을 간추리자면, 호국의영도장(護國義營都將) 중알찬(重閼粲) 이재(異才)가 신라 말기의 혼란한 사회상을 극복하기 위해 팔각등루를 건립하기로 결심하였다고 적혀 있다.889년 사벌주(상주)의 원종·애노의 농민 봉기를 시작으로 전국적인 농민들의 저항이 들불처럼 번져갔고, 신라 왕실에 반발한 여러 지역의 호족들은 반신라적인 입장에서 자립하여 독자적인 세력권을 형성하였다. 반면에, 수창군 태수로 부임하여 수창군을 통치하던 이재는 친신라적인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최치원이 그를 '나라를 받드는 충신'으로 평가했던 점과 이재 자신이 일으켰던 근거지를 '호국성'으로, 스스로를 '호국의영도장'이라고 가리켰던 점을 들어 확인할 수 있다.이재가 받았던 관등인 중알찬은 6등급 관등 아찬의 중위(重位)인 중아찬(重阿湌)을 의미하는데, 이는 6두품만이 차지할 수 있는 관등이었다. 이에 이재는 6두품의 자격으로 수창군을 다스리던 중에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자, 드디어 수창군 태수직을 포기하고 호국성을 축조하여 호국의영도장(호국성 장군)을 자칭하며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이재의 통치 권역은 호국성을 대구읍성 자리로 추측하였을 경우, 수창군의 대구현·팔리현·하빈현·화원현 및 장산군의 해안현을 포함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권력 기반은 세력권 내외 농민층과 동화사의 승려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수창군 호국성을 거점으로 친신라적 성격이 강했던 대구 호족 이재는 왕건과 견훤의 쟁탈전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세력을 상실하였다.앞으로 대구읍성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호국성의 존재를 상기하며 그 흔적을 찾아내려는 의지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구 호족 '이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연구가 더욱 진척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바이다.

2019-10-23 18:00:00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메이드 인 코리아' 아기천사

미국서 지내던 시절 동네 벼룩시장을 즐겨 찾았다. 여기에서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피노키오 등의 도자기 인물 종들을 구입하며 나의 종 수집이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이 중 몇 개는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이었다. 생활 도자기와 장식품들은 1940~60년대는 일본, 1970, 80년대는 우리나라와 대만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였다. 이후 중국, 태국, 필리핀이 주 수출국이 되었다. 부가가치가 높지 않던 노동집약적 산업들은 경제 발전으로 임금이 상승되자 점차 그다음 수준의 개발도상국으로 터전을 옮겼다.우리의 수출 규모는 정부 수립 당시 연 700만달러에 불과했으나, 2018년 6천억달러를 초과하여 세계 7위이다. 그동안 8천600배 증가하였고, 덕분에 국민소득도 3만 달러를 돌파했다. 우리의 주요 수출품은 1960년대는 지하자원, 누에고치, 오징어, 돼지털, 직물 등이었고 1970년대는 섬유, 라디오, 가발, 신발, 금속제품이었다. 1990년대 들어 가전제품, 반도체, 컴퓨터, 선박, 자동차, 철강 등의 선진국 형으로 변모된다. 현재는 반도체, 자동차, 석유제품, 선박, 디스플레이 및 센서, 무선통신기기와 같은 고부가가치 첨단제품들이다.1970년대 만들어진 '메이드 인 코리아' 아기 천사 종에는 해방 후 고단했던 우리의 역정이 담겨져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이룩한 성취가 자랑스럽고, 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국민 모두가 고맙다. 700년 전 이탈리아 시인 단테는 자신이 옛 사람들의 수고로 부유해진 이상, 자신도 후손들이 그 덕분에 부유해질 만한 것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사회 참여자가 이를 고심하지 않는다면 자기 본분을 멀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2019-10-23 18:00:00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시대산책] 남북 관계 개선의 모든 노력은 헛수고다

지난 10월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남북한 축구 대결이 무관중, 무응원, 무중계, 무득점, 무승부의 5무 경기로 끝났다. 징벌로서 무관중 경기가 치러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무관중 경기를 펼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계층까지도 북한에 대해 큰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23일 자 노동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 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김정은이 실제로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정은의 말을 노동신문에 보도하기 위해서는 세부 표현 하나하나를 다시 보고해서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이라든지 '너절한'이라든지 '싹 들어내라' 등의 매우 공격적이고 거친 표현은 그냥 홧김에 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교하게 계산된 작심하고 한 이야기로 봐야 한다.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와 비교해서도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정부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를 외교나 경제에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을 텐데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너절한 남측 시설들' '오지랖 넓은 중재자' '삶은 소대가리' 등 상상을 넘어서는 거친 표현을 써 가면서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무관중 경기와 같은 몰상식한 행태를 보이면서 한국 정부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금강산 시찰에서 김정은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등의 표현을 쓰면서 금강산 사업의 결정을 주도한 자기 아버지를 대놓고 비판했다. 김정은이 권력 기반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앞으로 자신만의 색깔과 자신만의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김정일은 단 한 번도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시장 확대, 시장 자유화, 자본 보호, 농업 개혁, 기업 자율화, 무역 확대, 인력 수출 확대, 하청 생산 확대, 투자 유치 확대, 기술제휴 확대 등 개혁개방 정책을 지난 8년 동안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물론 대북 제재 여파로 지난 2, 3년 동안 무역이나 인력 수출, 투자유치 등이 크게 위축되긴 했지만 그건 김정은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김정은의 이러한 적극적 개혁개방 태도를 관찰한 일부 외부 인사들은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핵무기도 포기할 것이고 남북 관계도 근본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생각이다. 필자는 김정은이 앞으로도 개혁개방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 나갈 것으로 확신하지만 핵무기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남북 관계도 개선할 의지가 없다고 본다.'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고립될 텐데 어떻게 개혁개방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이야기는 북한의 경제 규모가 중국의 30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하는 이야기다. 북한은 중국 한 나라를 상대로 무역하고 인력 교류하고 투자 유치하고 기술 제휴해도 충분히 빨리 발전할 수 있다. 중국이 결코 북한을 버리기 어려운 지정학적 조건을 고려한다면 이런 전략은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못 믿고 끝까지 핵무기를 놓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경제, 정치, 복지, 문화, 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월등히 발전한 한국의 영향으로부터 북한 주민을 차단하기 위해 남북 긴장이 필요한 것이다. 개혁개방의 성공을 위해서는 체제 안정이 필수고 체제 안정을 위해서는 국방의 측면에서는 핵무기가, 정치의 측면에서는 남북 적대 관계가 필수 요소인 것이다.얼핏 모순으로 보이는 개혁개방-핵무기-남북 적대 관계의 공존이 사실은 북한이 오랫동안 연구한 최적의 생존 기술인 셈이다. 따라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거나 교류 협력을 확대하려는 모든 노력은 헛수고일 뿐만 아니라 김정은의 입장에서도 무척 성가신 일이다.

2019-10-23 18:00:00

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종교칼럼] 가을의 행복

가을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다. 공기는 맑고 쾌청하다.산뜻한 가을 하늘 아래 선남선녀 모두 행복해지려고 한다. 단풍 여행을 떠나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들꽃 같은 미소를 보내며 행복해한다. 나무들이 생존을 위해 가진 것을 물들이고 덜어내듯 떠나는 사람들도 몸과 마음에 무거운 짐들을 덜어내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행복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피어난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나만 생각하고 살아서는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 나와 인연 맺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 달빛과 햇볕이 만물을 위하여 에너지가 되듯이 가족과 이웃을 위하는 선행이 내 행복으로 이어진다.슈만의 '추억'과 신영옥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노래를 들으며 황금 들녘을 산책한다.20대 후반, 해인사 승가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계룡산 남매탑 전설을 책에서 읽고 붉은 옷으로 물드는 가을에 산으로 갔다. 나도 그와 같은 올곧은 선사가 되고자 그 현장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소원을 적어 남매탑 어딘가에 끼워 넣어 놓으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통일신라시대 어느 날 밤 젊은 스님 한 분이 계룡산에서 수도하던 중 목에 뼈가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호랑이를 구해준다. 며칠 뒤 호랑이는 보은의 의미로 젊은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갔다. 스님은 혼절한 처녀를 잘 보살펴 깨어나게 했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 처녀가 상주에 사는 대갓집 따님으로 결혼 초야에 소피를 보려고 밖에 나왔다가 호랑이에게 업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스님은 여인을 상주 집으로 데려다주고자 하였으나 여인은 한사코 거부했다. 자기는 아직 신방을 치르지 않은 처녀의 몸으로 스님의 손길을 받아 생명을 건졌으니 스님의 여자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여러 번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돌아가지 않자 스님은 고심 끝에 수도승으로서 결혼할 수 없는 몸이니 남매의 연을 맺자는 제안을 했고 처녀는 받아들인다. 둘은 부부가 아닌 오누이의 인연을 맺고 지금의 남매탑 자리에 청량암을 지었다. 둘은 수도에 정진하여 나란히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둘이 입적한 뒤에 후세 사람들이 아름다운 신앙을 찬탄하는 의미로 탑을 세웠다. 바로 남매탑이다. 아직도 젊은 시절에 남매탑을 답사한 감동이 크다. 그때 종이에 소원을 적어 탑에 끼워 넣었는데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는지 그 소원을 이룰 뻔했다.봄에는 마곡사, 가을은 갑사가 아름다워 '춘마곡 추갑사'라는 말이 있다. 갑사 계곡 진입로와 일주문까지 2㎞(5리)구간은 '5리 숲길'이라 한다. 오리 숲길은 오래된 느티나무, 팽나무, 단풍나무로 터널을 이룬다.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의 환상적인 사랑을 받는다.만추(晩秋)에 접어들면 고창 선운사의 붉은 단풍도 도솔천에서 도솔암까지 그 아름다움은 천상을 거니는 듯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선운사 옆의 문수사 단풍나무 숲도 숨겨진 보석이다. 문수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 단풍나무 숲이 있는 곳이다. 수령이 100년에서 400년이 넘는 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한다. 둘레가 3m도 넘는 노거수 단풍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인상적이다. 단풍과 낙엽이 보기 좋다고 하지만 가을을 다 말하지 못한다.괴테와 퇴계 이황의 사색의 길처럼 그리움의 계절 자연으로 떠나라. 자연에는 위로와 쉼 그리고 자유와 치유가 있다. 삶에 지친 사람은 잠시라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퍼드덕거리지 않으려면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비워야 한다.가을은 결실과 성찰의 계절이다. 이 가을 자연에서 배운다.

2019-10-23 14:48:15

전창록 경상북도경제진흥원 원장

[기고]로컬 크리에이터와 도시청년 시골 파견제

10월 11, 12일 제1회 '2019 로컬 크리에이터 페스타'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렸다.지역 공동체 복원과 도시 재생의 중요한 동인으로 로컬 크리에이터가 화두가 되면서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3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했다.최근 유행하고 있는 힙지로 열풍에서도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찾을 수 있다. 힙지로는 새롭고 개성이 강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힙'과 '을지로'의 합성어로, 뉴트로 문화에 열광한 밀레니얼들이 인스타에 경쟁적으로 사진을 올리면서 유명해진 을지로 3·4가 일대를 얘기한다.을지로만이 가진 '낡았다'가 몇몇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노력으로 '그래서 새롭다'로 재 해석되면서 낡고 쇠락해가던 을지로 일대가 다시 활기를 찾게 된 현상이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 자원·문화·커뮤니티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거나, 잊히거나 버려진 지역 자원을 발굴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덧입혀 새 생명을 불어넣는 창의적 소상공인들을 말한다.지금 지방은 지방소멸이 큰 화두이다.지난해 6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 위험 지역'은 89곳으로 전체 대상의 39%를 차지한다. 특히 경북은 지난해 9천970명의 청년이 순 유출됐고, 23개 시군 중 19곳이 위험지역일 정도로 지방 소멸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지방 소멸의 대안은 청년의 유입과 정착이다.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광주·군산 등 일부 지역에선 지역 상생형 일자리를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일자리 문제의 해결은 필요조건이다. 여기에 라이프 스타일이 살아 있는 살고 싶은 도시, 매력적인 도시·지역이라는 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 젊은이들이 지역에 머물게 되고 정착하게 된다.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볕 잘 드는 마을이라는 뜻의 산양면 현리라는 마을이 경북 문경시에 있다. 이 마을은 신라 시대 근암현으로 시작해 고려 초 산양현이 된 천 년이 넘은 마을로 비단 같은 금천(錦川)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지난해 8월부터 부산에 살던 20대 청년들이 '리플레이스'란 회사를 만들어 '화수헌(花樹軒)'이란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열었다.20대 대표는 "리플레이스는 낡고 손상된 것을 대체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지금의 청년들은 도시생활과 삶에 지쳐 있다"며 "그래서 그 허물어진 청년들의 마음을 이곳에서 희망으로 대체하고 싶다"고 했다.젊은이들의 감각으로 공간을 꾸미고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디지털로 소통하고 알린 결과 주말에는 예약이 차고, 마을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이 리플레이스팀이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인 것이다. 이들은 바로 경상북도가 시행하는 도시청년 시골 파견제의 시범 사업팀이다.조심스럽지만 이들의 작은 성공에 고무돼 도시청년 시골 파견제 사업은 지난해 1기 100명을 선발하는 사업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고, 올해 2기 선발 중에 있다.1기 사업팀 중엔 경북 의성에서 때묻지 않은 시골을 배경으로 예술성을 강조하며 웨딩사진을 촬영하는 노비스르프 사진관이 있다. 이 사진관은 의성에 새로운 문화를 더하고 있다.지방소멸의 대안인 지역공동체 복원은 일자리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생존을 위한 일자리 문제 해결은 지역공동체 복원의 필요조건이고, 매력적인 지방도시의 존재는 충분조건이다. 도시청년 시골 파견제 창업팀들이 각자 하나의 성공을 넘어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지역의 상생과 부활을 엮는 마중물 역할을 하길 기대해 본다.

2019-10-23 11:14:51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매일춘추] 사람의 향기(하)

암이었던지 여자는 병원에 가서는 석 달이 못 되어 죽었다고 한다. 길지 않았지만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참으로 반듯하게 잘 키워 놓았다. 심성들이 착하고 인사성도 밝다고 소문이 나 있다. 형제는 둘 다 좋은 일자리를 얻고 참한 색시를 만나 일찍 가정을 이뤘다. 청년백수의 시대에 돋보이는 경쟁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는 저들 어머니의 엄한 교육 덕택이라고 볼 수가 있다. 물론 일손이 딸려서겠지만, 초등학생도 되기 전부터 새벽 일찍 깨워 고추를 따러 데리고 다니는 등 자립심을 길러줘 근면 성실이 몸에 배였던 것이다.다소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행동도 신체적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었을까싶다. 여자는 사시(斜視)였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비교적 많이 배웠고, 눈만 아니면 미인 편에 속했던 그녀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만난 시답잖은 남편 때문에 속이 상했을 것이다. 또, 어려서부터 편견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에 상처를 입었으리라. 그 때문에 폐쇄적인 성격이 되었는지 몰라도 마을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지극히 제한된 사람들과만 소통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따지고 보면 가여운 여인이었다. 남편을 잃고 홀몸으로 농사를 지으며 어린 아이들을 키우던 세월도 짧지가 않다. 마을 사람들과는 교류가 없었으니 당연히 도와주는 이도 없었다. 남자를 만난 것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였다. 몸도 마음도 참 고생이 많았다. 그러나 잘 자란 자식들이 그녀가 떠난 후에도 마을 사람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는 것을 보면 그만하면 성공적인 삶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 어렵다는 자식농사를 제대로 지어놨으니 말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한둘이던가.자식들은 어머니 사후에도 홀로 남은 의붓아버지를 잘 모신다고 한다. 여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도 "아버지 잘 모셔라!"였다고 한다. 신산한 세월을 바람처럼 떠돌다가 여자의 집에 둥지를 틀었지만 다시 짝을 잃고 빈집을 지키고 있는 남자는 그래도 자주 찾아오는 아들 며느리들이 있어 외롭지가 않다. 직접 지은 농산물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등 친부자간 못지않은 정을 나눈다. 그 풍경이 얼마나 살가운지 마을 사람들이 부러워할 지경이라고 한다.꼭 피를 나누어야만 가족이던가. 비록 남남으로 만났지만 사랑과 보은을 통해 유대감을 다지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사람의 향기'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라는 말이 있다.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는 뜻이다. 꽃이 아름답기로서니 어찌 사람만 하겠는가! 온갖 살벌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모처럼 듣는 훈훈한 이야기에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장삼철 삼건물류 대표, 수필가

2019-10-23 11:13:19

필자는 CEO에게 남다른 DNA를 목격한 적이 많다. 사진: PIXABAY 제공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광고인이 만난 CEO의 DNA

CEO라는 단어는 참 짧다. 고작 3음절이다. 하지만 그 무게는 한없이 무겁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 무게에 대해서 말하기 힘들다. 필자는 법인 창업자이지만 개인 창업까지 합치면 8년이란 세월을 CEO로 보냈다. 그 시간은 8년이 아니라 마치 80년과 같았다. 아니, 80년 동안 할 일을 8년 만에 압축해서 해버린 느낌이다. 그 정도로 CEO의 삶은 치열하고 고단했다.남들이 내게 "광고인이란 직업의 최고 장점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고 답한다. 다른 직업과는 달리 광고인은 CEO와 미팅할 기회가 많다. 기업의 브랜드에 관해 가장 깊이 있게 고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CEO와의 미팅은 늘 긴장감과 놀라움이 공존한다. 기업의 최고 수장을 만난다는 긴장과 동시에 무언가 특별한 CEO만의 DNA에 놀라움을 느낀다. 이번 칼럼에서는 광고인이 만난 CEO의 DNA에 대해 독자와 공유하려 한다.첫째, CEO는 돈보다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4년 전 필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모 회장님과 미팅할 기회가 있었다. CEO를 거쳐 회장님이 되셨는데 테헤란로에 본인 소유 빌딩이 있을 만큼의 부를 축적하신 분이셨다. 그때 후배 창업가인 필자에게 해주신 시간에 대한 말씀은 지금도 생생하다. "창업하면 집과 회사와의 출퇴근 시간이 5분이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거예요."미팅 내내 필자는 선배 창업가 앞에서 작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투리 시간을 아껴 쓰지 못한 필자의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둘째, CEO는 틀 밖에서 생각한다. 얼마 전 전기차 관련 CEO분과 미팅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의 고민은 전기차와 관련된 법규가 너무 보수적이라 사업을 팽창시키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기술이 핵심이 되는 4차 산업 시대와는 맞지 않은 법규가 너무 많았다. 여기서 대부분 사람은 푸념하며 중단한다. 그리고 틀 안에서 최대한 적합한 방법을 찾으려 한다.하지만 그 CEO는 달랐다. 그는 법을 바꾸려고 했다. 법을 바꾸는 방법을 찾고 실제로 법을 바꾸려 전국으로 출장을 다니는 모습을 봤다. 안 되면 되게 만드는 것, 즉 틀 밖에서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들만의 DNA였다.셋째, CEO는 에너지의 법칙을 이해한다. 올해 여름 필자는 25살에 학원을 인수해 수십억대의 매출을 올린 CEO와 미팅을 했다. 필자는 어떤 브랜드를 광고하기 전에 그 창업가의 인생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버릇이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길래 이런 비즈니스를 하게 되었을까를 알면 광고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그 CEO의 경우, 학창 시절 집이 너무 가난해 창업할 수밖에 없었는데 엄청나게 몰입해 학원 경영을 했다고 한다. 그 몰입이 어느 정도였나 하면 토하고 병원에 실려 가서 링거를 맞고 다시 일하고 토하고 다시 일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고 한다. 물론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일하는 것이 CEO의 DNA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하지만 필자가 감동한 건 그녀가 에너지의 힘을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평범한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노력이 결과를 맺지 못한 채 사라지곤 한다. 100도의 끓는점이 되기 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그 CEO는 그 끓는점이라는 에너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즉, 남들보다 두, 세배가 아닌 열 배를 더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그 CEO는 젊은 나이에 슈퍼카 여러 대를 구입할 만큼 엄청난 부를 이루게 되었다.필자가 만난 CEO들의 DNA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CEO는 평범한 생각과 삶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세상에 남들과 같게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일지 모른다.어쩌면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대로 살아가려 한 것이 아닌지 모른다. CEO가 이루어낸 사회적인 성공과 부를 보며 부러워하지 말자. 다만,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삶을 충분히 사랑한 그들의 모습을 부러워하자.㈜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10-23 10: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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