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하병문 대구시의원(경제환경위원장)

[기고]생활체육의 시대 대구의 현실은?

삶의 질이 높아지는 만큼 건강과 레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오늘이다. 프로축구, 프로야구를 관람만 하던 시대에서 자신의 여가를 활용해 시민 스스로 참여하는 레포츠의 시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전 국민 시민생활체육 활성화를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문화부는 생활밀착형 국민체육센터 20개소 구축, 생존수영 기반 시설을 확보한 수영장형 다목적 체육관 5개소 건립, 어르신 생활체육지도사(2018년 기준 1천800여 명 활동), 저소득층, 장애인 등에게 바우처 예산을 활용한 스포츠 강좌 이용권 제공(2018년 기준 4만3천750명 이용)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그렇다면 과연 최근 5년간 시민들의 생활체육 참여 정도는 어떠할까? 문화부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주 1회 이상 규칙적으로 생활체육에 참여한 사람은 2013년 45.5%에서 2018년 62.2%로 16.7%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놀라운 것은 1회 이상 규칙적으로 생활체육에 참여한 여성의 비율(62.8%)이 남성(61.6%)보다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연령대로 보면 1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에서 생활체육 참여율이 증가했는데, 특히 70대 이상 연령에서 59.8%의 높은 참여율을 보인 것은 100세 시대 건강에 대한 시민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확인하게 된다.반면, 최근 1년간 생활체육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11.8%로 나타났다. 이유로는 시간 부족(70%), 관심 부족(41%), 지출 부담(23.1%), 생활체육 활동 정보 부족(16.9%) 등이었다.이에 따라 시민생활체육 확대는 국가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체육시설이 집중돼 편리한 접근성이 보유된 지역과 인구밀도에 비해 체육시설이 부족해 활성화되지 못한 지역에 대한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대구 역시 생활체육시설은 인구에 비해 매우 불균형하다. 대구 실내체육시설 현황을 살펴보면 달서구 5곳, 달성군 4곳, 수성구 2곳, 동구 2곳, 서구, 남구, 북구는 각 1곳으로 250만 대구시민이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필자가 만나 본 칠곡 주민은 "배드민턴 동아리의 작은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성서다목적체육관까지 가야만 했다"고 했고 또 다른 시민은 "나이가 들어 외부 활동은 어렵고 인근에 실내체육관이 있다면 건강을 위해 가보겠지만 운동을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고 했다.북구의 인구와 범위를 고려할 때 단 1개의 실내체육시설은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이에 따라 ▷접근성 높고 저렴한 공공체육시설 ▷학생들과 어르신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다목적 실내체육시설 ▷생활체육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위한 생활체육지도사의 확충과 지속적 홍보 ▷생활체육 동호인들의 적극적 동기 부여를 위한 지역 생활체육 대회 개최 등은 중앙정부와 대구시가 시민생활체육 저변 확대를 위해 정책 수립에 고려할 사항이다.건강한 100세 시대를 위해 건강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개인의 의무다. 하지만, 시민생활체육의 저변 확대는 국가의 책임이다. 모든 국민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생활체육시설이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대한다.

2019-07-04 10:19:57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대구엔 소극장이 참 많다!

공연을 위해 전국을 다니다 보면 대구는 공연하기 참 좋은 도시 라고들 한다. 그만큼 공연 인프라가 잘 형성되어 있고 공연장들도 소극장에서부터 대극장까지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생적으로 형성된 대명공연거리는 서울의 대학로 다음으로 소극장들이 밀집된 곳이기에 공연문화의 도시를 표방하는 대구로선 그 잠재력이 무한한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대구 남구에 위치한 대명공연문화거리가 형성되기 전 계명대학교의 이전으로 학교 주변상권들이 침체된 상태였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에 문화적 향수가 있는 곳이라 2010년에 접어들면서 소극장뿐만이 아니라 극단, 오페라단, 인디밴드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과 단체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특정기능의 집적화된 예술거리로 거듭나게 되었고, 이 지역을 공연 특화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은 20개에 가까운 소극장들이 운집해 있는 명실상부한 소극장 거리가 됐다.그러나 최근 대명공연문화거리가 소극장은 참 많은데 제대로 기능을 하는 소극장이 있는지, 소극장마다 공연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지, 각 단체마다 콘텐츠는 계속 생산되고 있는지, 관객은 소극장을 찾는지, 도심 관광과 연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대명공연거리를 형성하는데 그것도 10년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나 많은 기대가 있는 듯하다. 애초에 자생적으로 형성된 곳은 그 발전의 속도가 더딘 편인데 최근 들어 대구시의 지원이나 남구청의 도시 재생사업이 진행되면서 빠른 발전과 변화를 원하고 있고 당장의 결과물을 기다리는 초조함마저 들 정도이다. 지금까지 연극과 소극장의 활성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세미나를 열고 여러 방안을 모색해 왔지만 그러한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개선 상황은 미미하거나 오히려 퇴색되고 있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마저 들기도 한다.무엇보다도 답답한 것은 예술가 본인들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극장의 가동률을 올리고 좋은 작품을 만들며 이곳을 대한민국 공연문화의 메카로 만들자." 이제 관계당국은 환경이 조성되었으니 앞으로 10년은 소극장을 살리는데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소극장이 살아야 이곳 대명공연거리가 살고 대구 연극이 발전되고 공연도시로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도 외형의 틀을 갖추는 것에서 벗어나 내실을 다져야 할것이다. 작품의 질을 높이고 배우, 극작가들을 양성하고 공연에 필요한 스텝들의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 술잔을 기울이며 왜 관객이 없을까 한탄만 하기보다 질 높은 공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7-04 10:19:25

허영철 공감씨즈대표

[북한 들여다보기] 북한의 변화, 우리의 변화

북한 인구는 남한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북한 면적은 남한보다 더 넓다. 한국에 온 북한이탈주민은 2019년 3월 말 통일부 집계 기준으로 3만2천495명이며 이 중 84%인 2만7천678명이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출신이다.지난 20년 동안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 지원을 위한 상담을 해보면 북한 지역사회에서도 평양의 대학들을 가기 위한 과외가 이미 20년 전부터 있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북한은 독재 정권이고 출신 성분이 중요한 영향을 받는 차별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완벽하게 통제되지는 않는다. 그 정도로 주민들의 숨통을 틀어막는 사회란 인류 사회에서 유지되기 어렵다. 막힌 물꼬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열리게 마련인 게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북한 관련 단체들은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북한의 고등중학생(한국의 중고등학교가 통합된 교육제도)들은 우리의 수험생처럼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기를 쓴다. 물론 북한의 고등중학생들의 대학 진학은 본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집안의 출신 성분과 당원 여부 등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북한의 대학입학제도에서 재수를 통한 입학은 불가능하다. 대신 다른 형태로 고등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군대에 입대해 8~10년을 복무한 뒤 제대하고 입학하는 늦깎이 대학생들이 북한 대학생 중 다수를 차지한다.북한에서도 자녀가 김일성종합대학에 합격하는 것은 남한에서 서울대에 합격하는 것만큼 온 집안의 경사다. 마을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결국 과외를 시켜서라도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당초 북한이탈주민 지원 활동을 시작할 때는 북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보니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그중 가장 궁금했던 건 1989년 방북한 임수경 전 국회의원에 대해 과연 북한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북한이탈주민 지원 활동을 통해 친해진 몇몇 탈북자들의 얘기는 한결같았다. '당시 임수경의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북한보다 못사는 거지들의 나라라고 배운 남조선에서 온 대학생이 너무 세련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당시 임수경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는 북한 전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대중 강연 연사로 다녔다. 당시 북한에서의 특강 장소마다 남한의 불쌍한 아이들에게 주라고 사탕과 과자를 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임수경 전 국회의원이 "남한 아이들도 이런 거 다 먹고 있다"고 답을 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은연중에 '우리가 사실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지금 세계는 점점 더 정보 통제가 불가능한 시대로 향하고 있으며, 이미 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북한의 휴대폰, 택시, 개성공단 등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북한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그 와중에 아주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북한 방문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했던 임수경 전 국회의원의 방북이 북한 사회가 남한 사회로부터 받은 첫 충격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최근 남북미 정상들의 판문점 만남으로 북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의 희망이 부풀어 올랐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접촉과 교류를 통해서만 변화를 받아들이고 발전해간다.나는 북한의 지도자와 권력층도 더 이상 개혁과 개방의 물길을 되돌릴 수 없다고 자신들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그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경직된 사고도 차츰 변화해 가기를 소망한다.허영철 공감씨즈대표

2019-07-03 18:00:00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코끼리가 상아를 가진 죄

지상 최대 동물인 코끼리의 위용은 상아에서 기인한다. 상아는 오랫동안 변색되지 않고 가공이 쉬워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고급 조각 재료로 이용되었다. 근대 들어 당구공, 피아노 건반, 백파이프, 단추, 체스와 장기의 말 등 생활품으로 쓰이자 상아를 노린 코끼리 밀렵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19세기 말 200만 마리가 넘었던 아프리카 코끼리가 이제 40여만 마리만 남았다. 1989년 코끼리 사냥이 금지되나 이후에도 매년 3만 마리가 밀렵되었다. 결국 상아의 국제 거래도 중지되었고, 세계 상아의 70%를 소비하던 중국도 2017년 동참하였다.카펫에 앉아 명상하는 무슬림 술탄을 조각한 18㎝ 높이의 상아제품 탁상종(사진)이다. 프랑스에서 구입했다. 상아로 장식한 고급 생활품은 20세기 초 아르데코 시기에 유행하였다. 이베이가 2008년 상아제품 거래 금지에 동참하면서, 이제는 이 같은 상아예술품은 구하기 어렵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모두 상아가 있으나, 인도 코끼리 암컷은 느리게 자라서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최근 아프리카 암컷 코끼리의 3분의 1 이상이 상아 없이 태어나고, 나머지도 상아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밀렵으로 큰 상아를 가진 녀석이 먼저 학살당하고, 작거나 상아가 없는 개체만 생존하니 그 유전자가 후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상아는 코끼리가 먹이를 찾아 땅을 파고, 새끼를 지키는 데 필수적인 방어 무기이다. 상아를 잃고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코끼리들은 결국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 많은 동물들이 이미 멸종되었다. 코끼리는 상아를 가진 원죄로 지금도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경북대 의대 교수

2019-07-03 18:00:00

이창호 행복한 찻집 대표

[이창호의 찻잔을 씻으며] 행복의 대가

행복에는 '대가'가 따른다. 행복해지고 싶고, 심지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생기는 세태이다.순순히 대가를 치르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항상 배워야 하는 것 중 하나다. 젊은 시절 원하는 바를 위해 어떤 것이라도 포기하고 달려가던 용기가, 나이가 들며 번번이 눈앞에 놓인 행복의 길을 알면서도 자식을 위해, 가정을 위해 혹은 미래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포기한다.'행복한 찻집'을 운영하며 주인장이 먼저 행복해야 오시는 손님들께도 행복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부단하게 행복하려고 노력한다.그런데 대부분 사람이 행복한 삶을 부러워하고 추구하지만, 힘들어하는 것이 행복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행복의 대가'이다. '행복의 대가'는 우선 아직 오지도 않고 확정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일과 성공에 매달리고, 세상의 모든 태어난 존재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해 늙고 병드는 것에 지나친 걱정을 한다.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많은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미래의 행복을 확정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오만이고 답이 없는 문제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기대감과 스스로 부여하는 책임감을 줄이는 것이다. 생명체가 재생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은 좀 더 사회적인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지, 나의 자식이 다른 아이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다음 세대의 자율을 박탈할 수 있다.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더욱 행복을 추구할 수도 있고,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신의 '행복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행복한 찻집 대표

2019-07-03 18:00:00

야심차게 영업을 나갔지만 시장은 차가웠다. 사진 제공: pixabay

[김종섭의 광고이야기] 가장 보수적인 도시에서 아이디어 팔기-2

대구의 한 병원장님과 미팅할 때의 일이다."난 아무나 만나주지 않아. 견적서 보니 황당해서 한번 보자고 했어."처음 본 원장님은 시원하게 말을 놓으셨다."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당신 같은 사람은 그냥 공짜라도 좋으니 내 광고 한번 걸어주시라고 나한테 부탁해야 해."힘들게 만든 작품을 왜 공짜로 써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건지 의아했다. '광고로 인해 발행하는 매출 상승효과는 그냥 공짜로 가져가겠다는 건가?' 황당해서 다시 물었다."네?""우리 병원 광고하면 다른 병원 광고할 때 이력이 되거든. 당신 보니 이력도 경력도 없는 거 같은데 누가 당신 광고를 써줘?"광고인이 공들여 만든 광고는 그에게 자식이나 다름없다. 누가 자기 자식을 공짜로 주겠나. 공짜라면 내 광고를 쓸지 안 쓸지 고민 정도는 해줄 것이고 아니면 나가라는 식이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처음 광고의 매력에 빠졌을 때 느꼈던 설렘은 현실의 벽 앞에서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한 번은 돈가스집 사장님과 40만 원짜리 광고를 계약했다. 계약서를 쓸 때의 희열을 잊지 못한다. 맨날 공익 광고만 만들다가 광고로 매출을 올릴 수 있다니! 계약서 도장을 찍자마자 나는 무섭게 작업에 매진했다. 우리나라 돈가스집 중에서 최고로 만들어야지 야심에 가득 찼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며 잠이 들었다.다음 날 그 사장님께 전화가 왔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계약을 취소하자는 말이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따지고 들었다. 계약은 약속인데 이렇게 쉽게 어기는 게 어디 있냐고. 그랬더니 "그 작은 회사에서 계약서가 뭐가 중요합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포털사이트에서 우리 회사를 검색하니 가정집이 나왔던 것이다. 제대로 된 회사가 아니라고 판단한 사장님은 다음 날 전화를 걸어 계약을 파기했다."우리가 40만 원 투자할 회사가 아니더군."사장님 말에 나는 이렇게 응수했다."스티브 잡스도 마크 저커버그도 처음엔 자기 집 창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광고회사가 아이디어가 중요하지 사무실이 중요하지 않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자존심도 40만원도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억울해서 가슴이 새까맣게 탔다.나는 세상이 내 아이디어를 봐주길 바랐다. 슬프게도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경험이 많아야 했다. 이력이 다양해야 했다. 스펙도 경험도 이력도 없는 사람이 창업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대구'라는 곳에서. 심지어 가질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아이디어'를 팔겠다고 말이다. 그러니 문전박대와 사기꾼 소리 그리고 계약 취소까지 감수해야 했다. 뭔가 상황을 반전시킬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광고인이 작품 안에서만 창의적이여서만 되겠는가. 광고란 결국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푸느냐가 관건이다. 진짜 광고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때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2019-07-03 15:32:55

여숙이 작 '새로운 만남'

[내가 읽은 책]데미안/헤르만헤세/ 코너스톤/ 2017/민음사

1877년 독일 남부 도시 칼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헤르만 헤세는 파란만장한 청소년기를 보낸다. 시계 공장 수습공으로 일하며 글을 써서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 1904년 첫 소설 '페터카멘친트'를 발표했다. 이후 청소년들의 방황과 좌절을 섬세하게 묘사한 '수레바퀴 아래서', 소년이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여로를 담은 '데미안' 등, 자신의 길을 찾는 작품들을 발표했고, 1943년 '유리알 유희'를 출판, 46년에 노벨 문학상과 괴테 문학상을 수상했다.'데미안'은 주인공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라는 바깥세상의 친구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 된다. 외톨이가 되기 싫어 거짓말을 꾸며댄 것이 소년이 세상에 나와서 맞이하는 첫 고통이 되었다. 과수원에서 친구와 사과 한 자루를 훔쳤다는 이야기를 꾸며냈다. 프란츠 크로머가 맹세할 수 있냐고 몰아 부치는 바람에 맹세까지 한다. 크로머는 과수원 주인에게 이르거나,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한다. 알려주는 자에겐 2마르크를 주겠다고 하니 그 돈을 나에게 주면 넘어가겠다고 한다.이야기를 꾸며냈지만 맹세까지 했으니 돌이킬 수 없고, 무마하기 위해 할머니의 고장 난 은시계를 건네지만 통하지 않는다. 돈이 없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아 고민에 빠진다. 집안에 있는 저금통을 부수고 65페니를 전하지만 다 가져오라고 한다. 나머지 1마르크 35페니는 언제 줄 거야라며 계속해서 괴롭힌다. 100년 전 독일에서도 이런 학폭이 있었다.그러던 중 라틴어 학교에 새로운 학생이 들어온다. 부유한 집 아들로 학년이 높은 데미안. 그는 어른스럽고 신사다우며 완벽해 보였다. 합반 수업을 하면서 개성이 있고 특별해 보이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두려워하는 크로머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떼어내 준다. 그러나 그것은 평생 마음의 부담이 된다. 그리하여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내면 깊숙이 들어와 앉았다.기숙사 생활이 시작되면서 알폰스 베크를 알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젖어들며 술을 접하고 성에 눈 뜬다. 교사 위원회의 경고도 받고 퇴학위기에 처한다. 그때 이상형인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되면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베아트리체의 그림에 매료되어 그림을 그리고 새를 그려 데미안에게 보낸다. 답장에 "새는 알에서 나오려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고 쓰였다. '데미안'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어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아는 명구다.방학이 되어 데미안의 집을 찾고 '에바부인'을 만난다. 그녀는 낯설지 않은 꿈속의 여인이었고 모성애, 엄격함, 아름답고 매혹적인 존재였다. 그들의 만남은 운명적이고 가족 같은 관계로 이어진다. 러시아와 독일의 전쟁이 시작되어 데미안은 전쟁터로 나가고, 싱클레어도 부상을 입어 병상에서 만난다. 그는 언제나 마음속에 있으면서 길을 인도하는 지도자였다.누구에게나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 그 사람은 내게 길을 인도 할 수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만남이 삶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러나 결국은 '나'로 바로 서야 하는 것이 삶이다. 그 바로서기는 위선과 가면의 껍질을 깨는 것이다. 나의 진심이 드러날 때 아름다운 만남이 찾아온다. 성장기 소년이 아니라도 나는 지금 나를 깨우쳐 줄 그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여숙이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7-03 14:01:34

이동군 (주)군월드 대표

[기고] 늦은 부고

아버지가 영면에 드셨다. 팔십 평생 홀로 삼 남매를 꾸려 오신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이제야 당신의 멍에를 내려놓으신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으려 애를 썼다. 분명한 아쉬움과 죄스러움은 상존했다. 다만 아버지는 당신의 자리에서 송구할 만큼 충만했으며, 우리 삼 남매에게는 과분해 마지않는 당신이었으리라. 그렇게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셨기에, 이것이야말로 슬픔을 억눌러야 할 당위(當爲)였다.어느 시인의 말처럼 폭탄을 만들던 사람도, 총부리를 겨누던 서슬 푸른 사내들도, 집으로 돌아오면 자식들의 그네를 고쳐주는 아버지가 된다고 했듯이, 강한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의 '나라'였다. 자식들이 먹먹해하지 않도록 아버지는 묵묵한 걸음을 선택하셨다. 무던히도 고독했던 그 발걸음. 이제는 시름을 떨쳐내고 영락을 누리실 것을 앙망한다.장례식에 별도의 문상객을 받지 않았다. 부의금 역시도 정중히 사절했다. 여기에는 수년 전부터 이뤄진 가족 간 암묵적 동의가 작용했다. 바로 '가족장'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장이란 유족 동의를 토대로 친족 및 고인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는 지인 일부로 (장례) 동참 인원을 한정하는 이른바 '작은 장례식'의 형태를 띤다.평소 소탈하셨던 아버지의 성정 탓도 있겠거니와 조사(弔事)란 퍼뜨려야 한다는 허식(虛飾)을 일정 부분 타개하고자 했다. 더불어 조문과 부의에 관해 상대로 하여금 부담 해소 차원에서와 원론적이긴 하나 잉여 절차와 과한 장례 비용을 줄인다는 명분과 실리를 더해, 아버지를 향한 참된 추모를 영위하고자 했다.물론 오해도 있었다. 가까웠다면 가까운 지인들에게까지 조문을 막았으니 말이다.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버지의 뒤안길이 설혹 외롭지 않으실까 순간순간 감정의 동요가 일기도 했다. 뒤늦게나마 '늦은 부고'를 통해 진심을 전했다. 양쪽 모두에게 서운한 마음 금할 길 없었겠으나 응당 이해하고 아울러 명복을 빌어주더라. 감사하게도 말이다.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평균 장례비는 1천400만원을 육박한다. 화장을 통해 납골당에 모신다고 해도 비용은 적지 않다. 작은 함 한 칸에 1천만원을 넘는 경우도 태반이다. 물론 고인(故人)의 명복을 비는데 금액적 문제가 대수일쏘냐. 아버지가 지내온 치열한 삶의 궤적에 비하면 고인의 걸음걸음 비단길을 펼칠지언정 결코 과할 리 없을 것이다. 다만 통상적 형식에서 벗어나 오롯이 고인을 추모하는 데 집중하는, 말 그대로 소규모 장례식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호응을 얻고 있다. 예전과 비교해 앞당겨진 은퇴 시점과 소가족 구성원이 주를 이루는 시대, 이를 방증하듯 사회적 네트워크는 자연스레 협소해지고, 또 이 같은 상황에 기인함으로써 (장례식) 절차 간소화와 경제적 비용 지출이 사회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형식을 도외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마음만 놓지 않는다면 충분히 공감, 한발 더 나아가 수용할 수도 있는 문제다.아버지는 빈손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렇기에 당신은 유지를 통해 그저 빈손으로 돌아가고자 하셨다. 우리 삼 남매는 조문객을 맞는 대신,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삼 남매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우애를 다졌다. 아버지의 의중이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아버지는 마지막 가시는 그 길목 어귀에서, 우리를 한자리에 모아주셨다.

2019-07-03 11:18:16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그들의 예술 같은 삶

"내가 늘 먹는 세트로 주이소." 어느 늦은 저녁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 나의 귀에 우리네 할아버지와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먹던 햄버거를 내려두고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한참을 쳐다보게 되었다. 어르신은 높다란 의자에 걸터앉으시곤 감자튀김을 드시고 콜라 두 모금에 반 틈 벗겨진 포장사이로 두툼한 햄버거를 한입 베어드셨다. 늦은 저녁시간에 혼자 패트스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드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현대인의 젊은 세대와 다를 바가 없어 사뭇 신기하면서 한참을 쳐다본 나의 고정관념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필자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세계안무축제의 지난 개막초청공연으로 스페인의 정통 플라멩코 작품을 대구에서 최초로 공연하게 됐다. 한 남성 어르신이 티켓예매에 대한 문의를 하셨다. 온라인 예매법을 알려드렸더니 곧 잘 성공하신 모양이다. 많은 관객들이 찾은 공연 날 당일 공연장에 허리가 굽으신 70대 어르신 한명이 공연장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계시는 모습이 나와 통화한 그 어르신 인 듯 했다. 보통 무용공연에서는 안무자와 무용수의 친인척들이 관객으로 공연장을 찾기 마련인데, 그날은 스페인에서 온 아티스트 네명이 출연하는 공연이라 출연진의 친인척도 아니었다.그날의 공연은 기립박수와 함께 막이 내리고 조금 늦은 시간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그 어르신이었다. "아가씨, 내가 처음으로 춤 공연이란걸 봤는데, 내가 이쟈껏 살면서 이런 감동을 받아 눈물 흘려보긴 처음일세. 쟈들이 얼매나 연습을 했을꼬. 세상이 참 멋져졌어. 고맙소." 행사를 준비하는 주최 측 입장에서는 더 큰 감동의 공연리뷰를 들은 셈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멋진 대사로 느낀 감동이 아니라 현란하면서 때론 숨죽여 보게 되는 춤 사위에 받은 잔잔함의 감동을 마음으로 느끼셨나 보다. 그들의 젊은 세대도 우리와 같이 있었을 테고 나또한 그들처럼 노년의 삶을 살게 될 것을 생각하니 지금 우리가 더 많은 기회로 누리고 있는 예술활동이 죄송하게만 느껴졌다.누가 노인을 사회에 뒤쳐진 세대라고 했는가? 우리 사회는 노인에 대한 근거없는 편견과 차별이 자리잡고 있다. 핵가족화로 인해 세대간의 단절이 가중되면서 비노년층 특히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노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 그리고 노인차별은 세대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사회 전면에 스며들고 있다. 대구 노인 인구 비중이 2017년 14.0%로 고령사회에 들어갔고, 2025년 20.5%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인구 추이와 고령 친화적 기반시설을 고려하여 도시환경 재생 변화도 중요하지만 노년들의 삶에 메마른 감동과 정서와 신체로부터 상실된 그들의 상처를 예술로 인해 회복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2019-07-03 11:17:01

종이에 수묵담채, 35×45㎝, 개인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두량 '삽살개'

삽사리, 삽살개라고 했고, 한자로는 방구(厖狗), 방견(尨犬)이라고 썼던 토종개이다. 삽살개는 예로부터 '귀신 쫓는 개'로 액운을 막는 상징으로 여겨져 궁궐에서도 길렀던 것 같다. 영조(재위 1724-1776) 때 도화서 화원인 김두량이 그린 그림이다. 화제는 "사립문에서 밤을 지키는 것이 너의 임무이거늘, 어찌하여 길 위에서 대낮에 이렇게 짖고 있느냐"라는 뜻이다. 사문야직(柴門夜直) 시이지임(是爾之任)여하도상(如何途上) 주역약차(晝亦若此)계해(癸亥) 유월(六月) 초길(初吉) 익일(翌日) 김두량도(金斗樑圖) 이 화제는 영조가 직접 써 넣은 것이다. 왕이 화원의 그림에 어필을 남기는 것은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영조실록'에서 1743년(영조 19년) 6월 2일자를 찾아보니 아무 기록이 없다. 이 날 영조는 창덕궁에 있었는데 그림을 감상하고 이렇게 제발도 쓰면서 하루 쉬셨던 것 같다. 영조는 김두량보다 두 살이 많으니 50세 때였다. 김두량의 호 남리(南里)는 영조가 지어서 하사한 호이다.고개를 들고 누군가를 향해 짖으며 앞으로 가고 있는 개의 옆모습을 화면 가득 당당하게 그렸다. 윤곽선으로 형태를 그리지 않고 털이 뻗친 방향대로 중첩시킨 붓질로 개의 볼륨감과 질감, 색깔까지 나타냈다. 꼬리 털, 엉덩이 털, 몸통 털, 등 털, 다리 털, 가슴 털, 어깨 털, 정수리 털, 귀 털, 볼 털, 코 수염, 수염 등 모든 털 한 올 한 올이 굵기와 길이, 강약과 농담이 다른 생생하게 살아있는 선이다. 털이 없는 귓구멍, 콧구멍, 혓바닥은 붉은색으로 속살을 표현했다.조선 후기 의관이자 수집가인 석농(石農) 김광국(1727-1797)의 그림 모음집인 '석농화원'을 보면 김두량은 개 그림을 특히 잘 그렸다고 했다. 이어서 당시 사람들이 양반화가의 유화(儒畵)로는 겸현위종(謙玄爲宗), 즉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이 으뜸이고, 화원화가의 원화(院畵)는 남리위수(南里爲首), 즉 김두량이 홀로 머리가 된다고 하는데 참으로 옳은 말이라고 했다. 이런 선을 긋는 화가이니 우두머리라는 말이 백번 수긍이 간다.삽살개는 원래 온몸이 긴 털로 덮여 있는 장모견(長毛犬)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털이 짧고 얼룩무늬가 있는 '단모(短毛) 얼룩삽살개'로 매우 희귀하다고 한다. 이 희귀한 삽살개는 혹시 영조의 애견, 곧 퍼스트 독이 아니었을까? 미술사 연구자

2019-07-03 10:43:31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윤리학교실 주임교수

[종교칼럼] 빨리 주는 것이 두 번 주는 것

두 해 반을 써 온 칼럼을 끝맺게 되었다. 캄보디아 뿌삿 지방의 촌구석에서 처음 원고를 쓰던 2016년의 그날, 급히 돈이 필요했다. 손목을 다치고도 말을 못해서 눈물만 떨구던 어린 소녀와, 그렇게 아픈 딸내미를 데려온 앞 못 보는 아버지에게 병원비를 마련해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 신문사에서 원고 청탁이 왔고, 그 덕에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당장 급한 상황에서는 미래의 천금(千金)보다 손 안의 푼돈이 훨씬 큰 법이다. 그래서 옛 라틴 격언은 이렇게 말한다. "빨리 주는 사람은 두 번 주는 사람이다!"(Bis dat, qui cito dat)때맞춰 주는 정성이 두 배의 효과를 낸다면, 때늦은 호의는 차라리 아니 베푼 것만 못할 수 있다. 구약성경의 욥기는, 갑자기 닥쳐온 재난과 불행 앞에서 입에 발린 위로와 지청구밖에 건네지 않는 친구들의 무심한 말잔치를 묘사한다. 정작 필요할 때 입만 바쁜 친구들 때문에 욥의 고통과 회한은 더 깊어질 뿐이다. 구약의 시편도 이토록 쓰라리고 기막힌 상황을 통곡하듯 묘사한다. "나를 모욕하는 자가 원수였다면 차라리 견디기 쉬웠을 것을, 나를 업신여기는 자가 적이었다면 그를 비키기라도 했을 것을, 그러나 그것은 내 동료, 내 친구, 서로 가까이 지내던 벗, 성전에서 정답게 어울리던 네가 아니냐. 홀연히들 사라져버려라!"(시편 55, 12~14)믿었던 이들에게 뒤통수를 몇 번 맞고 나면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고 세상이 삭막하게만 보이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공동체지수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수년째 꼴찌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웃이나 친구 등 사회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현격한 차이로 최하위를 기록한다.전통적으로 '우리'와 '정'(情)을 강조하던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건축학자들은 급격하게 아파트로 옮겨간 주거문화의 변화가 그 원인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이웃 간에도 얼굴 보기 힘들어진 생활 패턴의 변화가 사람들의 심성마저 바꾸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심리학자 김태형은 1997년 외환 위기가 한국인의 마음에 치유되지 않은 집단적 상처를 남겼다고 본다. IMF 시절을 돌이켜 보면 혹자는 금 모으기를 떠올리며 공동체 정신이 발현된 계기로 기억하겠지만, 금 모으기 이상의 영향력으로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것은 비정규직의 확산과 평생직장 개념의 붕괴였다. 누군가는 도산해서 갑자기 거리로 나앉을 때, 또 다른 누군가는 헐값에 매물로 나온 회사며 부동산을 쓸어 담던 기억도 완연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심리가 퍼지고 끊임없이 자기를 개발하라며 몰아치는 자기 학대가 만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서구 복지국가들이 오늘날의 복지 시스템과 노동 문화를 일궈낸 것은 위기의 순간을 함께 견뎌낸 공동체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같은 급격한 사회 변화가 위기로 다가오는 즈음, 우리는 과연 공존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제나 노동시간 제한 같은 공동체 지향의 정책도 소화하지 못해 허덕이는 우리 사회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빨리 주는 것이 두 번 주는 것이라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미루고 나서야 나눔을 실천하게 될까.

2019-07-03 10:23:07

이장우 경북대 교수

[경제칼럼]산업단지의 부활과 문화 융합

지난주 대구3산업단지에서는 입주 기업들이 모여 '융합의 날' 행사를 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업체 간 개방과 소통을 위해 유익한 출발이 아닐 수 없다. 서로 다른 요소들 간 융합은 혁신과 창조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특히 중국 제조업의 굴기로 전통 제조업들의 경쟁력 저하는 대구의 22개 산업단지 대부분에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내일 회사 문을 닫는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정도로 한계 상황에 봉착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융합의 날'에 성공 사례를 발표한 회사는 국수 제조 80년 역사를 가진 풍국면이었다. 저가 경쟁으로 갈림길에 섰던 이 회사는 오히려 40억원이 넘는 자금을 로봇에 투자해 공장을 스마트화했다. 그 결과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루어냈다고 한다.스마트 공장을 통한 위기 극복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투자수익만을 따져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인들은 경제성만 따지면 힘들고 홀대받는 제조공장을 유지하기보다는 매각이나 은퇴가 유리하다고 생각한다.풍국면도 결국 이익 극대화를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사업에 대한 꿈을 재정비하고 미래에 새롭게 도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사 대표는 "인건비 상승과 치열한 가격 경쟁에도 불구하고 로봇으로 버티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 한다"고 투자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시내 중심에서 불과 4㎞ 떨어진 위치적 강점도 의사결정에 중요한 작용을 했다고 한다. 즉 우수한 인재를 구하기 쉽고 소비문화를 수시로 호흡할 수 있다는 강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무릇 융합이라 함은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여 함께 도모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실 이것은 기존 산업단지의 제도와 관습과는 거리가 멀다.산업화 시절 이래로 분업화에 빠져 각자 자기 영역 안에서 자기 일만 하느라, 옆 공장이 무엇을 하는지 산업단지 밖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 밖이었다.'경계 지키기' 문화로 타인을 배척하는 성향도 강한 편이다. 소위 '나와바리'(なわばり·세력권)라는 자기 왕국에 갇혀 미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무지에 빠지기 쉬운 실정이다.융합은 바로 이러한 경계를 파괴하고 소통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제조업에 위기가 찾아오고 이를 극복하려면 산업단지 기업들이 융합해 힘을 합쳐야 함은 당연하다. 여기에 더해야 할 것은 산업단지 안팎으로 문화가 흐르도록 하는 일이다. 그래야 소통할 수 있고 인재들이 스스로 들어와 머물 수 있다.산업단지이기 때문에 생산만 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고정관념을 깨야 하는 것은 물론 지원 시설도 생산 인력을 위한 단순 복지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산업단지도 이제는 단지 밖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한 문화적 공간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지역의 문화 1번지에도 스스로 찾아오게 할 수 있는 대안들을 생각해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대표 행사로 자리 잡은 대구치맥페스티벌과 연계해 산업단지에서 정기적으로 축제를 개최할 수 있다.또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나 대구포크페스티벌 등과 협력해 행사 기간에 일부 프로그램을 산업단지 내에 유치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요즘 판교테크노밸리와 같은 첨단산업단지들도 카페나 작은 공연장 등 문화의 힘을 활용해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대구3산업단지도 도심에 인접한 장점을 살려 문화가 흐르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사업구역과 문화복지시설 등을 발상의 전환으로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업단지 내에 유휴 시설을 문화공간으로 대여 또는 임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들도 제도적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21세기 산업단지는 야간에도 불이 꺼지지 않고 젊은이들이 다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들이 모이고 신사업도 꽃피울 수 있다.그렇게 되면 20세기에 정부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준 산업단지의 가치가 스스로 높아질 것이다. 입주기업들이 공통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출발시킨 '융합의 날'이 지역 혁신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2019-07-02 18:17:32

민경석 대구시수돗물평가위원회 위원장

[새론새평] 붉은 수돗물

선진국 의사 1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2007년도 영국의학저널에서 발표했는데, 19세기 이후 인간 수명을 늘리는 데 기여한 것으로 항생제, 백신 등의 의학기술 발전을 제치고, 상하수도(sanitary revolution)를 1위로 선정했다. 특히 상수도(watersupply)가 인간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2017년 기준 세계보건기구 발표에 의하면, 아직도 지구촌에는 기본적인 식수 서비스를 받지 못해 각종 질병과 기아에 노출되고 있는 인구가 7억8천500만 명 정도이고, 세계 인구의 71%인 53억 명만이 수도관이 구내에 위치하여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고, 오염이 없는 급수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5년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이 물 부족 지역에 살게 될 것으로도 전망하고 있다.공공 상수도는 정수장에서 상수 원수를 수돗물 수질 기준 이하로 처리 후 상수관망을 통해 각 가정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환경부 상수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급수 보급률은 2017년 기준 99.1%로 선진국 수준으로 최고이다. 그러나 최근의 인천시 서구 및 영종도, 서울시 문래동 및 평택시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 사태는 해당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우려를 넘어 분노하게 하였다.인천시 붉은 수돗물 사건은 5월 30일 처음 발생하여, 한 달여가 지난 현재까지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보상 협의 등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부는 사건 원인을 수계 전환 과정에서의 준비 부족과 초동 대처 미흡으로 인한 100% 인재라고 하였다.수계 전환을 위해서는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연결 관로를 점검하고, 역류 구간에서는 관로 모니터링을 통해 서서히 이송하여야 하는데, 준비 없이 일시에 이송하여 충격을 주게 되었다. 그 충격으로 발생한 관내 부착 및 퇴적된 침전물 부상과 탁수가 확산됐다. 인천시는 사전 준비에 크게 소홀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 후 초동 대처가 극히 미흡했다. 붉은 수돗물 사태를 발생케 한 인천시는 물론 환경부도 무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환경부는 늦었지만 위기 대응 매뉴얼을 재정비하고,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재난 예방부터 복구까지 전 과정에 대한 대응 체계를 올해 안에 마련하기로 하였다.서울시는 6월 19일 녹물 신고로 붉은 수돗물이 알려졌는데, 노후관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책으로 138㎞의 노후관을 조기에 교체한다고 발표하였는데, 진즉 노후 수도관을 우선적으로 교체하지 못하고, 사건 발생이 있어야만 대책을 내놓는 상수도 행정이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국민의 수돗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울시뿐만 아니라, 모든 지방자치단체는 상수관망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우선하여야 한다.수돗물의 품질 향상을 위해서는 깨끗한 상수 원수뿐만 아니라, 상수관망 최적 관리 시스템 구축이 중요한데, 일명 상수관망 최적화는 주로 배수 블록 시스템 구축이다. 이는 복잡한 급수 체계를 대중소 블록으로 분할하여 유량 및 수압에 대한 관망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수량의 효율적 관리 및 안정적인 용수 공급, 유수율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환경부 상수도 통계에 의하면, 2017년 기준 배수 블록 시스템 구축은 전국 약 67%인데, 특별광역시 중 부산시와 울산시는 100%이고, 광주와 대전시는 약 55% 내외로 저조하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일선 시군 단위의 지자체는 더욱 열악한데,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지방 상수도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2017년부터 2028년까지 12년간 약 3조원을 투입하여 누수를 줄여 유수율을 제고하여 생산원가를 줄이고, 지방 상수도 재정을 건전화하여, 상수도 사업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소규모 지방 상수도에만 적용하고 있는데,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수돗물의 품질은 상수관망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07-02 15:28:35

[하반기 새로워지는 매일신문 필진] 경제·과학…오피니언 면이 깊고 다양해집니다

매일신문 2019년 하반기 외부칼럼 필진이 새로워집니다. 지역은 물론 전국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하반기 매일신문 지면을 알차게 채웁니다.새 필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과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는 국내·외 각종 이슈와 현안들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과 근거있는 비판,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독자들의 이해와 판단을 도울 것입니다.◇이른아침에(월)이른아침에(월)에서는 합리적 시각과 날카로운 분석, 남다른 혜안을 자랑하는 노동일 경희대 교수와 권은태 (사)대구콘텐츠플래폼 대표가 하반기에도 연재를 이어갑니다.◇세계의 창(화)/다시 쓰는 강철서신(화)세계의 창(화)에서는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가 미국을 중심으로 경제·경영 이슈를 파고 듭니다. 조수정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유럽의 예술과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살펴봅니다. 장동희 새마을세계화재단 대표와 이성환 계명대 교수는 하반기에도 세계의 창을 통해 독자들을 계속 찾아갑니다.화요일에는 또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가 북한의 정치,경제, 삶에 대해 알아보는 '다시 쓰는 강철서신'을 연재합니다. 그는 1986년 '강철서신'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했으며 '주사파 대부'로 불렸으나 1990년대 말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끼고 전향, 북한 인권운동가,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칼럼을 통해 북한, 북한인 등 북한의 정치,경제, 삶을 생생하게 알려드립니다.◇새론새평(목)새론새평(목)에서는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가 한국경제 위기 및 극복방안에 대해 세세한 현황과 함께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합니다. 또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가 우리 사회의 법, 정치, 경제적 이슈를 효율성과 형평성의 시각에서 분석합니다. 정부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타다 택시와 공유경제, 탈원전의 편익과 비용 등 큰 이야기를 여러 각도로 살펴서 독자들의 이해와 판단을 도울 것입니다. 천영식 KBS이사와 민경석 대구시 수돗물 평가위원회 위원장은 하반기에도 뚜렷한 시각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독자 여러분들의 눈과 귀를 밝혀 드립니다.요일별 칼럼으로 ▷월요일 '이른 아침에' ▷화요일 '세계의 창' ▷수요일 '경제칼럼' ▷목요일 '새론새평' ▷금요일 '춘추칼럼' ▷토요일 '광장'을 비롯해,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는 방송·연예계 이야기를 담은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신작 영화를 소개하는 '김중기의 필름통'이 계속 연재됩니다. 토요일 책 면에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는 '이종문의 한시산책'과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도 이어집니다. 이외에 2019년 하반기 지면을 통해 새롭게 합류하는 주요 필진은 다음과 같습니다.▶전헌호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종교칼럼) ▶백옥경 구미과학관 관장(과학 에세이 '과학둘레') ▶김종섭 ㈜빅아이디어연구소 소장(광고 뒤에 숨겨진 이야기 '광고이야기')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인도의 문화와 역사 '불가사의 인도')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북돋움') ▶김태훈 영남중 교사·지역사 체험 연구회(대구 지역 역사 현장과 인물을 재조명하는 '대구의 옛 이야기') ▶이상일 시인 겸 수필가(광장)

2019-07-02 15:09:06

안과검진은 (검안경검사(상), 망막검사(좌) 각막염색검사(좌중) 눈물분비량검(우중), 안압검사(우) 매년 받으실 것을 권장한다. 사진출처: www.oakhamvethospital.co.uk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개와 사람의 시력은 어떻게 다를까?

개의 시력은 약하며 색맹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반려견이 저 멀리 다가오는 주인을 먼저 인식하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왜일까. 이는 개가 색을 구분하고 이미지를 종합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은 약하지만 먼 거리와 어두운 곳에서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는 동체감지 능력과 야간 투시 능력은 사람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이러한 인간과 개의 시각 특성의 차이는 진화에 근거한다. 초기 인류는 과일을 찾아다니고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해서 붉은색을 포함한 다양한 자연의 색을 감지하여야 했으며 현대 문명에 이르러서는 도시와 문화 그리고 패션과 영상에 특화된 시각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개의 선조라 할 수 있는 늑대는 붉거나 노란색의 과일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그보다는 푸른 수풀에 가려진 사냥감을 찾거나 야간에도 작은 동물의 움직임을 간파할 수 있는 동체시력과 야간 투시 능력이 발달하게 됐다.이러한 개의 시각 특성을 고려하면 넓은 공간에서 탐색 활동을 일상화하는 것이 개의 눈 건강과 정신적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반려견들은 실내조명 아래서 평생을 살아야 하므로 보호자는 개의 눈 건강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최근 안구질환으로 동물 병원을 내원하는 반려견들이 많다. 수정체가 노화되어 발생하는 '백내장', 안구 내 안방 수가 증가하여 안압이 높아지는 '녹내장', 안구 내 염증이 확산되는 '포도막염'이 동물에게도 자주 발생한다.인간과 다른 점은 안구질환을 가지는 개는 대부분 결막과 각막질환이 병발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개의 행동 특성상 안구 질병이 깊어질수록 이물감이나 통증을 느껴 눈을 비비기 때문이다.눈곱이 끼고 눈동자가 혼탁한 증상이 나타나야 가족들이 반려견의 눈의 이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때 이미 원발적인 안구질환이 깊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반려견의 안과질환 치료 과정에서도 개가 눈을 비비거나 자해하는 행동을 막아야 한다. 넥칼라를 착용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눈꺼풀을 일시적으로 닫아주는 '안검플랩수술'이 적용되기도 한다.개와 고양이가 눈을 비비는 행동이 보이거나 눈곱이 끼고 보호자가 눈을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면 서둘러 동물 병원을 찾아 자세한 안과 검진을 받길 바란다. 반려동물의 눈병은 보이는 증상 보다 훨씬 심각한 원발성의 안구질환이나 내과질환이 숨어 있을 수 있다.개와 고양이의 안과 검진은 간단하므로 매년 정기검진을 받길 권장한다.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7-02 11:29:34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감정의 언어, 음악의 언어

나는 어떠한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한 '국악작곡가'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을 작곡한다는 것인데, 자신의 예술적 철학이나 사상을 국악적 소재와 편성으로 음악을 표현하는 직업입니다. 첫 원고를 쓰면서 앞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하다가 저는 이 '언어'를 매개체로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저의 '국악'을 소개하려 합니다.얼마 전 '대화의 희열'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는 '감정의 언어화'에 대해 언급하며, 책을 통해 언어화되기 이전의 그 감정에 언어를 부여하면서 자신의 그 감정을 훨씬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음악도 감정으로 듣고 여러 공감을 얻는 것인데, 그것을 더욱 직관적으로 증폭시키며 전달하기 위해 '언어화' 된 '가사'가 있는 음악도 많이 있습니다. 모두가 잘 알고 계시는 대중가요, 오페라, 뮤지컬 등을 비롯하여 전통음악 속에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전통음악 중 민간에서 전해오는 서민적이며 토속적인 음악인 '민속악(民俗樂)'으로 분류되어 있는 판소리, 민요, 굿 음악 등에 가사가 있으며, 그 상대적 개념으로 궁중과 선비계층에서 연주된 '정악(正樂)'에도 가곡, 가사, 시조 창(唱) 등의 성악곡인 정가(正歌)가 있습니다. 정가는 아정(雅正)하고 바른 노래라는 뜻으로 주로 사대부와 선비들이 인격수양을 위해 듣고 불려졌습니다.그중 가곡은 실내악(세악(細樂)) 반주에 맞춰서 시조(時調)를 가사로 하여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여러 음으로 길게 풀어서 노래합니다. 대부분 16박 장단으로 되어 있는데, 음악구성은 대여음-1장-2장-3장-중여음-4장-5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대여음은 전주에 해당하고 중여음은 간주에 해당하므로 악기 연주만 하고, 1,2,3,4,5장은 노래와 악기 연주가 함께 합니다.저는 근래에 전통음악의 여창 가곡 계면 평거 '사랑 거즛말이'를 소재로 한 위촉곡을 의뢰받아 새롭게 곡을 쓰고 있는 중인데, 이 곡의 노랫말은 조선 중기 문신 김상용(1561~1637)의 시조이며,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ᄉᆞ랑 거즛말이 님 날 ᄉᆞ랑 거즛말이ᄭᅮᆷ에 뵌닷 말이 긔 더옥 거즛말이날갓치 ᄌᆞᆷ 아니 오면 어늬 ᄭᅮᆷ에 뵈리오 잠도 안 올 정도로 너무 그리운데, 임은 잠 들어서 내가 꿈에 보인다고 하니 사랑한다는 말도 모두 거짓말이라 탓하며 임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전통음악이 현대인들에게 다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속의 언어를 이해함으로써 우리음악을 감정적으로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은 지금, 여창가곡 계면 평거 '사랑 거즛말이'를 들어보고 함께 공감해보면 어떨까요?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7-02 11:16:07

인수일 교수.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인수일 교수의 과학산책] 무역 전쟁이 아니라 기술 전쟁이다.

며칠 전에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북중국전력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국제 학술회의에 다녀왔다. '광(전기)촉매' 분야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청해서 연구 동향을 살피고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였다. 태양 빛과 촉매로 물을 분해해서 수소를 만들거나 이산화탄소를 에너지로 전환하는 연구가 주된 관심사였고 행사의 중심에는 중국인 과학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베이징의 하늘은 미중 무역 갈등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듯 잔뜩 흐려 있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서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중국의 기세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5월 중순부터 격화된 양국의 무역 갈등이 점차로 무역 전쟁의 양상을 띠면서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고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통에 주변국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미중 갈등이 정점 일 때 중국행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불꽃이 엉뚱한 곳으로 튀는구나 하고 걱정했다. 아니나다를까 전체 수출 물량의 4분의 1을 중국에 보내는 우리나라는 수출 감소 폭이 -20.9%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다행히 두 나라의 휴전 협상으로 주변국들은 잠시 숨을 돌리게 되었지만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과 미국의 주요 우방국에 대한 보복성 제재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잠시도 안심할 수 없다.미국이 관세 문제로 포문을 연 것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서는 아니다. 네이처 지표(Nature Index)는 2025년이면 중국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학문적 기여도가 미국을 추월하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미국을 압도하는 과학자 수와 정부의 과감한 투자 그리고 과학자를 파격적으로 우대하는 정책이 과학에 흥미를 잃고 있는 미국과 서방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화웨이 같은 IT 기업이 5G로 구현되는 초연결성과 초스피드로 세상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IT 기술의 발달은 수백 년에 걸쳐서 뿌리내린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짧은 시간에 위협할 수 있다. 핵심 기술이 테러 집단에 넘어갈 경우 국가 안보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다. 중국 유학생에 대한 감시나 비자 제한 조치 그리고 무역 분쟁이 이러한 우려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중국은 발톱을 숨기고 미국과 화해 무드를 연출할 수도 있었겠지만 화웨이와 같은 중국의 대표적인 IT 전략 기업이 타격을 입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핵무기 하나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인 북한의 모습에서 다른 출구 전략을 모색했을 것이다. 과학기술면에서나 경제규모면에서 과거의 중국이 아님을 드러내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은 다른 형태의 제재를 준비할 것이고 중국은 화약과 나침반을 발명하고도 세계 패권을 차지하지 못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협상가 트럼프 대통령과 이공계 출신 시진핑 주석의 2막이 자못 궁금하다.강대국들의 치열한 패권 다툼과 숨 막히는 외교전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국제 정세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강소국의 입지를 조속하게 마련하고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하려면 과학기술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2019-07-01 18:00:00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捲土重來(권토중래): 다시 도전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군대가 말을 달릴 때 흙먼지를 일으키는 것을 권토(捲土)라 하고, 중래(重來)는 다시 온다는 뜻이다. 말이 달릴 때 일어나는 흙먼지는 멀리서 보면 마치 땅을 마는 것(捲)같이 보인다. 그래서 한번 실패한 후 말고삐를 되돌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모습을 '권토중래'라 하고, 요즘은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이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를 기리며 지은 시에서 유래했다.항우는 키가 8척으로 산이라도 뽑을 듯한 힘과 기개를 가졌으나, 속이 좁아 수하들을 잘 다루지 못했다. 항우는 유방과 함께 진나라를 멸망시켰다.그 후 수년에 걸쳐 유방(劉邦)과 천하를 두고 이른바 초한(楚漢) 전쟁을 벌인다. 항우는 유방에게 승승장구(乘勝長驅)했으나, 수하 장군들의 이반으로 결국 수세에 몰렸다. 유방의 군사에 포위당해 오강(烏江)까지 밀렸다.오강의 어부가 "어서 배에 오르시오. 강동은 사방 천리로 수십만 명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서 왕 노릇을 하며 동산재기(東山再起다시 일어남)할 수 있소"라고 했다. 항우는 "하늘이 돕지 않으니 강을 건넌들 뭘 하겠소. 왕으로 추대되어도 내 마음이 부끄럽소" 하면서 목숨을 끊었다. 서른한 살 때였다.훗날 두목이 오강을 지나면서 지은 시가 '제오강정'(題烏江亭)이다. "승패는 싸움에서 늘 있는 일(勝敗兵家事不期), 수치를 이겨내는 자가 사나이렷다(包羞忍恥是男兒). 강동에 인재 또한 많거늘(江東子弟多才俊), 흙먼지 날리며 다시 일어났다면 달라졌을 수도(捲土重來未可知)".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의 권토중래가 장안의 화제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팀을 이끌다 좌천되었을 때 참지 못하고 검찰을 떠났다면, 그에게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7-01 18:00:00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아이들이 부모를 더 사랑한다

온종일 비가 내렸던 지난 주말, 청도 금천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과 부모들이 1박 2일 평화학교 캠프를 했다. '평화학교'는 드라마·예술치료와 인권, 가치교육을 결합한 치유 프로그램이다. 평화학교는 "당당하게-자신을 믿는 것, 신나게-몸과 마음이 즐거움을 누리도록 두는 것, 사이좋게-다른 사람도 당당하고 신나게 살도록 돕는 것"을 스스로 서로에게 배우는 과정이다.함께 놀고 춤추며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 마음과 손길을 느껴보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하는 시간들은 우리를 영원의 순간으로 데려간다.처음으로 일대일 데이트를 하는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 부모가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우리 딸은 눈이 예쁘다" "우리 아들은 잘 생기고 웃는 모습이 예뻐" 하는 말에 아이들은 속울음을 터트렸다."우리 엄마 손이 더 예뻤을 텐데 고생을 많이 해서 딱딱해졌지만 그래도 예뻐" "엄마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엄마가 원하는 집 사드릴게요" 하는 아이들 앞에서 우리는 웃음과 눈물을 함께 지었다.늘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부모를 더 사랑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못 생겨도, 가난해도, 장애를 가졌더라도 부모로 그냥 받아들인다. 하지만 부모는 차별하고, 자신의 불안과 희망을 아이들이 입고 살도록 강요한다.나는 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행동을 멈출 수 없이 움직이는 아홉 살, 함묵증 거식증에 걸린 6학년, 손목을 긋는 중 1, 내가 누군지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하고 행동을 멈출 수 없는 아이들.공격성을 드러내며 반사회적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상호작용하는 양육자가 없다. 컴퓨터 게임이 아이들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조종하고 통제하며 침범하는 것이 아이 자신을 잃어버리도록 한다.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심리치료사

2019-07-01 18:00:00

전선야곡,오리엔트레코드

[세월의 흔적] <29>'봄날은 간다' '전선야곡' 명곡 산실…오리엔트레코드사

광복으로 혼란스러웠던 시절, 대구에 레코드사가 있었다. 1947년 동성로 옛 자유극장 동쪽에 남선악기사가 있었는데, 그 한쪽 자리에 이병주가 오리엔트레코드사를 설립하였다. 그는 성주 출신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박태준을 만나 서양음악을 접하였다.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연예협회 대구지부장을 지냈으며, 1천여 곡의 대중가요를 만든 작곡가였다.오리엔트레코드사의 1층은 레코드사, 2층은 다방이었는데, 그 2층에서 취입을 하였다. 여러 가지로 어려웠던 시절, 방음을 위해 군용 모포를 둘러치고 야간에 취입하였다. 잦은 정전으로 해서 NG를 내거나 틀린 부분을 지우고 다시 녹음하기를 반복하던 열악한 환경에서 90여 장의 레코드가 발매되었다. 노래로 셈하자면 180여 곡이 되는데, 그 가운데서 30여 곡이 크게 히트하였다.그 시절 국내 음반시장은 침체기였다. 그러나 오리엔트레코드사와 대구의 가요계는 전성기였다. 이재호․박시춘․강사랑 세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신보 제작에 열정을 불태웠다. 또 신세영․남성봉․강남달․고화성․방초향이 앞 다투어 음반 취입을 하였고, 콩쿠르를 통해 도미․방운아를 가수로 발굴하였다. 그 시절 오리엔트레코드사는 대중가요의 산실이자 피란살이를 하던 연예인들의 사랑방이었다. 그 뒤 SP시대가 가고 LP시대가 열리면서 문을 닫았다. 그 시절 대구에서 발표되어 크게 히트한 대중가요 몇 곡을 살펴본다. 1951년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봄날은 간다'를 백설희가 노래하였다. 이 한 곡 안에는 봄과 인생의 비밀이 다 들어 있다. 가사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수많은 풍경이 겹쳐져 있다. 2009년 100명의 시인들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을 설문조사한 결과 1위에 선정되었다. 또한 뒷날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저마다의 창법으로 다시 부를 정도로 우리나라 가요사에 빛나는 절창이다.1952년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의 '전선야곡'을 신세영이 불렀다. 이 노래는 박시춘이 남인수에게 주려고 만든 곡이었다. 그 곡에 탐이 난 신인 신세영이 자기가 부르도록 해 달라고 이병주에게 간청하였고, 반대하는 박시춘을 설득하여 신세영이 취입하였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군가보다 더 많이 불렸을 뿐 아니라, 위문공연을 다니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1953년 강해인 작사 박시춘 작곡의 '굳세어라 금순아'를 현인이 불렀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강해인이 교동시장으로 냉면을 먹으러 가다가 피란민들의 고단한 모습을 보고 가사를 지었다. 박시춘이 하루 만에 작곡하였으며, 현인이 취입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07-01 18:00:00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요절로 끝난 효명세자의 꿈

지난달 28일 국립고궁박물관은 '문예군주를 꿈꾼 왕세자, 효명' 특별전 개막을 알렸다. 순조와 순원왕후의 맏아들로 태어난 효명세자(1809~1830)에 대한 전시다. 22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간 그가 남긴 시문과 활동 공간이던 창덕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이번 특별전에는 '학석집'(鶴石集) 등 효명세자가 지은 시집과 문집, 편지글 등 110여 건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창덕궁 궁궐 전각 중에는 효명세자와 관련된 곳이 많다. 애련지라는 연못 옆의 의두합(倚斗閤)은 효명세자가 공부하던 독서 공간이었다. 의두합에서는 북향의 차가운 건물에 머물며 정치적 구상을 했던 세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담긴 폄우사도 세자가 자주 머물던 곳이었다. 창덕궁 후원 규장각 근처에 세운 연경당(演慶堂)은 세자가 부친 순조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창덕궁 곳곳에서 세자의 이야기가 배어 나온다.효명세자는 왕실의 기대를 크게 받던 인물이었다. 창덕궁 대조전에서 태어나 1812년 4세 때 왕세자로 책봉됐다. 1819년(순조 19년) 11세의 나이로 풍양 조씨 조만명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게 되는데 이 세자빈이 신정왕후다. 훗날 고종을 왕으로 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인물이다.효명세자가 장성하자 순조는 각종 행사에 세자를 동행시켰다. 1827년에는 19세의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할 정도로 신뢰가 컸다. 대리청정을 맡긴 건 젊은 세자의 개혁 성향이 조정에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즈음 안동 김씨로 대표되는 세도정치의 벽이 두꺼웠던 탓이었다.대리청정을 맡은 직후 효명세자는 순조의 기대에 부응했다. 안동 김씨 세력의 핵심들을 정계에서 축출하거나 권한을 약화시키는 데 주력했다. 대신 남인, 소론 등 반외척 세력을 정계로 복귀시키는 탕평 인사를 했다.효명세자는 무엇보다 정조를 닮고자 했다. 정조처럼 능행(陵幸)을 민심 파악과 군사 훈련의 기회로 삼았다. 백성들이 왕에게 청원하는 방식이던 상언(上言)과 격쟁(擊錚) 역시 적극 활용했다. 공교롭게도 순조실록은 효명세자가 용모부터 정조를 꼭 빼닮았음을 증언해 주고 있다. 실록은 '세자는 이마가 우뚝 솟은 귀상에다 용의 눈동자로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으므로 궁중의 상하가 모두 말하기를, 정조대왕과 흡사하다고 하였다'고 했다.효명세자는 대리청정 기간 동안 크고 작은 연회를 총 11회 열었는데 대부분 순조와 어머니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였다. 세도정치의 파행을 극복하고 왕 중심의 지배질서와 왕의 권위를 강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컸다.이때 궁중 행사를 직접 관장하면서 악장과 가사를 만들고 궁중 무용인 정재무(呈才舞)를 다수 창작했다. '춘앵전'을 비롯해 '망선문'(望仙門), '경풍도'(慶豊圖), '만수무'(萬壽舞) 등이 대표적이다.세도정치의 벽을 뚫고 정치와 문화 면에서 왕권의 강화를 꾀하던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1827년 2월 18일 시작된 대리청정이 1830년 5월 6일 세자의 급서로 막을 내린 것이다. 효명세자가 22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조선 왕실에는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순조 사후 왕위는 효명세자의 아들인 8세의 헌종이 계승했다. 최연소 왕의 즉위는 잠시 주춤했던 세도정치가 활개를 치는 계기가 되었고 왕실의 권위는 더없이 추락하게 된 것이다.22세라는 짧은 생이지만 왕실의 부흥을 위해 분투한 효명세자를 현재에 소환한 국립고궁박물관의 특별전, 그리고 그의 자취가 잘 남아 있는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과 폄우사 일대를 찾아보며 효명세자를 기억해 보기 바란다.

2019-07-01 18:00:00

김지영 대구동구사회적경제협의회장

[기고] 대구시 동구 사회적 경제 조례 제정 필요

최근 대구 동구사회적경제협의회와 대구 동구의회 한 의원이 공동으로 논의해 만장일치로 통과했던 동구 사회적 경제 기본 조례가 동구청장의 무리한 거부권 행사로 폐기에 이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국내 거버넌스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단체장이 정책 결정자의 위치에서 사회적 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함에도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사회적기업에 집중돼 있는 차별적 제도나 정책에 대한 장벽을 일소해야 한다. 현재 동구는 사회적기업 육성 조례만 제정돼 있어 보다 근본적이고, 통합적인 사회적 경제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둘째, 대구에서도 2015년 조례가 제정돼 지역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달성군, 달서구, 수성구에서도 이미 제정·시행되고 있다. 또한 전국의 광역·기초 자치단체들은 사회적 경제가 그간 이룬 성과와 잠재력에 주목해 사회적 경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약 442건의 조례를 제정, 시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의 기초 지자체도 165건의 사회적 경제 관련 조례를 제정, 시행하고 있으며 시·도 교육청도 나서고 있다.셋째, 사회적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민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거버넌스적 지원 체계 안에서 가능하다. 사회적 경제 조례 제정을 통해 지역의 사회적 경제 정책의 수립에서부터 민관 협력의 원리가 잘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사회 혁신의 대가 제프 멀건에 의하면 사회적 경제 조직과 정부의 관계를 '벌'과 '나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사회적기업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빠르게 움직이면, 정부와 같은 큰 조직은 창의성은 떨어지지만 상황에 대한 탄성이 있고, 목표가 일어나게끔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넷째, 정부의 사회적 경제 활성화 정책이 정부 부처 합동으로 수립, 발표까지 됐다. 최근에는 행정안전부 주재로 8개 관련 부처와 공동으로 '대구경북 합동 사회적 경제 지역 기반 및 정책 역량 강화 간담회'도 개최됐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는 매우 낮다. 또한 행정과 정책은 소관 법률과 부처, 지역에 따라 각각 이루어지다 보니 분절화의 한계와 파편화의 폐해, 비효율이 심각하다. 이러한 문제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 환경 조성과 지역 내에서의 통합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이번 조례에 대해 무리한 재의 요청과 부결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동구청장에게 있다. 동구청장은 취임 이후 수차례 자신의 구정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회적 경제 지원,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에 대한 내용을 빼놓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동구청은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범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 성과와 결실이 지역 단위, 마을 단위, 협의체 단위에서 확인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그동안 사회적 경제가 지역 내에서 해온 일은 단지 수치로서의 일자리, 경제적 이익만을 위한 사업이 아니다. 오랜 빈곤과 좌절을 딛고 일어난 자활의 상징이며,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립하고 자조하려는 협동의 결과물이다. 또한 우리 사회와 지역을 변화시키는 노력과 혁신의 결실이다. 사회적 경제 조례는 영리에 우선하지 않으며, 사람의 가치를 먼저 살피는 포용적 성장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될 것이다. 동구청과 동구의회는 화답해줄 것을 기대한다.

2019-07-01 11:17:13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매일춘추] 대구 음악극의 미래

요즘 대구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 한창이다. 그리고 가을에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우리 도시가 그저 좋은 작품들을 불러 모으는 것을 넘어 직접 오페라와 뮤지컬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충분한 인적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대형 오페라와 뮤지컬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창작자를 비롯하여 연출부, 프로듀서, 무대감독, 세트 제작, 조명, 음향, 영상, 의상, 분장 등 참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예술인력들이 필요하다.한 도시가 음악극을 만들기 위한 인적 자원을 길러내고 그 수준을 유지하고 또 발전시켜 나가면서 견고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음악극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 이것이 우리 도시가 가진 커다란 매력이다. 대구는 오페라와 뮤지컬을 긴 시간 제작하면서 음악극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들을 충실하게 만들어왔다. 이제 앞으로의 문제는 그 그릇에 어떤 음악극을 담을 것인가? 라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필자는 몇 해 전부터 판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오페라와 뮤지컬에 판소리를 접목하는 시도도 꾸준히 하고 있다. 판소리 외에도 현대무용과 현대미술, 발레와 아프리칸 음악, 재즈와 한국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감상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예술적 역량을 음악극이라는 그릇에 잘 녹여낸다면 세계 어느 도시도 만들 수 없었던 대구만의 특색을 가진 작품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음악극은 기본적으로 장르 통합적인 예술분야이다. 문학과 음악은 기본이요 연극, 무용, 미술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함께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현대의 음악극은 어떤 정형화된 형식미를 따르는 것을 넘어 더욱 다종다양한 장르들과의 결합을 통해 새롭고 신선한 모습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음악극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분야를 넘어 다양한 장르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 융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이다.이러한 생각으로 마음이 맞는 예술가들이 모여 '대구음악극연구회'를 시작하게 됐다. 오페라 제작자, 극작가, 연출가, 작곡가, 안무가. 지휘자, 소리꾼,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대구 음악극의 미래를 함께 모색하기 위해 정기적인 연구 모임을 가지기로 했다. 앞선 세대의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이 다른 도시는 가지지 못한 멋지고 견고한 인프라를 만들어 주셨기에 우리 세대가 그 다음 행보를 고민해 볼 수 있는 것 같다. 함께 잘 고민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 대구만의 개성 있는 음악극들을 시민들에게 소개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7-01 11:15:52

이성환 계명대 교수 (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적과의 대화

1997년 6월 하노이에서 맥나라마 전 미 국방장관, 응우엔 꼬탁 전 베트남 외무장관 등 베트남전쟁 지도자들이 비공개리에 모였다. 왜 더 빨리 전쟁을 끝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적과의 대화'는 이 회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3일째, 이틀간의 토의를 바탕으로 각자 의견을 정리했다. 당시 북베트남 외무부 대미정책국장은, "미국은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와 같았다. 대국은 소국을 장기판 위의 말로 생각하면 안 된다. 소국에도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전쟁 주역인 맥나라마는 "베트남이 소련(현 러시아)과 중국의 앞잡이가 되어 미국을 위협한다고 봤다. 역사적으로나 베트남은 앞잡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존슨 대통령 특별보좌관 바터는 "공습을 통해 베트남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했다. 군사적 위협이 대화를 견인한다는 가설이 잘못됐음을 알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베트남 측은 "폭탄을 퍼부으면서 협상을 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기만으로 생각했다"고 응수했다.맥나라마는 결론적으로 "쌍방에 오해가 있었다. 상대방의 목적과 의지를 알았다면 협상을 통해 해결이 가능했다. 종전 협상은 훨씬 이전에 가능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에 베트남 측이 그것을 언제 알았느냐고 묻자, 맥나라마는 "그저께 밤이었다. 너무 늦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 중에 미국이 한 평화 제안을 믿는가"라고 물었다. 베트남 측은 "지금이라면 당신 말을 믿을 수 있다"고 했다.뒤돌아보면, 베트남에 미국은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가 아니었으며, 베트남은 중국의 앞잡이로 미국을 위협하지 않았다. 베트남은 1979년 중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기도 했다. 이 회의를 통해 베트남전쟁은 서로에 대한 무지와 불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정설이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베트남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는 한 번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런 어리석음은 왜 반복되는가.공교롭게 지난 2월 같은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으나 실패했다. 현재도 양측은 자기중심적 사고로 암중모색을 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중국의 앞잡이로 핵으로 미국을 위협한다고 여기고,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제재가 대화를 촉진시킨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북한은 비핵화를 하는 순간 미국이 자신들을 말살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다.이런 오해를 풀려는 한국의 노력을, 미국은 북한의 대변인이라 여기고, 북한은 왜 같은 민족끼리 외세에 맞서지 않느냐고 따진다. 중국이 가세하려 한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이 한패가 되면, 일본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국은 일본이 한반도의 통일을 방해할 것이라 여긴다. 그러면서 각자는 자기의 셈법만을 고집한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미국에 핵공격을 하리라는 것도, 미국이 북한의 목을 조여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것도 모두 비현실적이다.30년 후, 남북미중이 만나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아마 "그때 알았더라면" "30년 전에도 비핵화가 가능했었다"고 할 것이다. 상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 대화이고, 협상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국제사회이다.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깜짝 조우했다. 1시간의 단독 회동에서 무슨 말이 오갔을까. 사진 찍기용이라는 일부의 의심도 있으나, 실무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20세기 최고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능력 없음이 홀로코스트라는 악을 낳았다고 했다.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다. 비핵화의 당사자들은 악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만 없었다.

2019-07-01 10:28:32

이충호 대구시 여성정책팀장

[기고] 일상이 평등한 도시, 대구를 향하여!

성주가 고향인 필자는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부엌에 들어가거나 빨래를 개는 등의 집안일은 여성이 하는 일이지 남자가 하기엔 무척 흉한 것이라고 배우며 자랐다. 결혼(1990년) 후에도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더러 가사와 육아에 도움을 요청해도 백안시(白眼視)하기 예사였다.세월이 꽤나 흘러 지금은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청소나 설거지로 집안일을 도우려고 애쓰고 있고, 이런 소심한 노력이 노년에 대비한 현명한 처사일 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배려 있는 행동이라고 주변에서 동조와 칭찬으로 격려(?)를 해주시지만, 글쎄 아버지께서 살아계셔서 이 모습을 보셨다면 모자란 놈이라고 꾸짖으셨을까?여전히 '출산율'이 아닌 '출생률'이, '유모차'가 아닌 '유아차'가 성 인지 감수성 관점에서 합리적인 표현이란 말에 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내게 이런 칭찬이 적당한 것일까?보수적이라고 하는 대구경북에서 나고 자란 필자와 같은 남성들이 간간이 가사를 돕고 '출생률'이란 단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거나, 혹은 대구 지역의 성평등지수(3개 영역, 8개 분야, 23개 지표에 대해 남성과 여성 대비 격차 등의 수준에 대해 매년 여성가족부 발표)가 상위권에 진입(2017년 말 중상위권→2018년 말 상위권 진입)했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바뀌어 성평등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그러나 여기, 대구에서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잔치가 벌어진다고 한다면, 그런 큰 변화를 위한 작지만 의미 깊은 한 걸음이며 충분한 자랑거리이자 '사건'이 아닌가?대구시는 7월 5일부터 6일, 양일간 '2019 여성UP엑스포'를 개최한다. 여성UP엑스포는 양성평등주간(7월 1~7일)을 맞아 '일상이 평등한 도시, 대구' 실현을 위해 개최되는 전국 유일의 여성 정책 분야 종합박람회이다.올해 4회를 맞은 이번 행사는 "평등해야 대구요, 행복해야 대구요"라는 슬로건을 걸고 양성평등주간 기념식을 시작으로, 대구시의 여성 관련 정책을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분야별 테마관과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 함께 얘기하고 나눌 수 있는 토론회・토크쇼・강연이 준비되어 있다.또한 슈퍼스타 다문화 경연, 가족원탁회의, 아빠 요리대회 등 여성과 가족, 다문화가정 등 모두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풍성한 프로그램들이 열릴 계획으로 이미 많은 시민들의 사전 접수 열기가 뜨겁다. 올해는 여성가족부 차관의 행사 참여와 특강까지 계획되어 있어, 중앙정부에서 이 행사에 두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남성의 입장에서 이런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여러 가지 질문과 고민에 부딪치게 된다. 행사를 며칠 앞두고 문득 나는 '평등'이 '불편'하지는 않았는지, 내 딸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다시 생각해 보며 부디 이번 행사가 더 많은 여성들이 엄마로서, 자매로서, 딸로서의 모습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얻어가는 소중한 존재의 모습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19-06-30 16:01:41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네 편 내편 편 가르기

'113수사본부'는 꽤 인기 있는 TV 드라마였다.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안방극장에 모여 앉은 이들에겐 우리의 안위와 평화가 마치 이로써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다. 매주 한 번씩 우리 편인 '수사본부'는 우리의 적인 '북한 간첩'을 잡았다.그땐 그랬다. TV도 그렇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그렇고 대체로 둘로 나눠 놓고 보면 쉽고 빠르게 이해가 되었다. 내 편인지 네 편인지, 그래서 둘 중 누가 이기고 지는지를 보며 거기서 교훈을 얻으면 되는 거였다. 이때, 언제나 우린 정의, 상대편은 곧 반대편이며 적이자 악이었다. 그리고 그 악의 정점엔 북한 공산집단이 있었다. 그러니 싸워서 이겨야 했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그러고 보면 나라도 두 부류, 즉 우리처럼 정상적인 나라와 북한처럼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쁜 나라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좋은 나라, 아랍 국가들은 그렇지 않은 나라라는 도식이 부록처럼 따라다니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세계평화를 위해, 정의구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공산당을 무찌르는 거였다. 모두 함께해야 했고 어린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열심히 반공 표어를 만들었고 미술시간엔 공산군이 국군의 총칼에 찔려 죽는 장면을 그렸다. 물론 피가 흐르는 것도 붉은색 크레파스로 정성들여 그렸다. 그때가 열 살 안팎이었다.드라마를 보면 북한은 매주 간첩을 내려보냈다. 여기저기 '의심나면 다시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그러니 봄이 온다고 해서, 꽃이 핀다고 해서 마냥 그런 것만 쳐다보고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보단 혹시라도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있는지, 동네 어귀에 북한이 날려 보낸 삐라가 떨어져 있지는 않은지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착한 아이라면 그래야 했다.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정의와 불의, 단순했던 양자대결구도의 세상에 갑자기 새로운 전선들이 생겨났다. 세상만사를 '건전한 우리'와 '공산 세력' 간의 대결로 보는 이들은 여전했다. 그런데 일각에선 깨어 있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이 있다고 했다. 또 한편에선 우리나라를 '식민지 반봉건사회'로 볼 것인지 아니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로 볼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며 세력을 다투었다. 다자 대결 구도가 된 것이다.그래도 따지고 보면 이들 또한 이쪽 아니면 저쪽, 둘로 나뉘어 싸우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누가 무엇을 주장했는가보다 세간의 관심은 오랜 습관처럼 둘 중 누가 이겼는가에 더 쏠렸다. 그랬다. 누구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세상을 계획대로 바꾸지 못했다. 그게 1980년대였다.그리고 1990년대, 작가 주인석이 "나는 식민지 반봉건사회에 태어나서, 제3세계적 개발독재사회에서 교육받고, 예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젊은 날을 보냈으며, 이제 포스트모던 사회로 이민가고 있다. 나는 혼란스럽다"라고 한 그 90년대도 이미 지난 지 오래다.2019년 지금, 새로운 연결,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류가 등장했다. 거리엔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가 넘쳐난다. 이들은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전에 없던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토록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에도 둘로 나뉘어 싸우는 건 여전하다. 오히려 여느 때보다 극단적이다. 그리고 싸우는 방식이 전에 없이 야비하고 전에 없이 졸렬하며 전에 없이 비겁하다.권력을 지닌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움을 선동하고 권력을 좇는 자들이 이를 추동한다. 그들은 나라야 망하든 말든 국민이야 죽든 말든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때론 교묘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싸움을 부추긴다. 언론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이를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대결이라 하지만 그럴 리 없다.수도권의 한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방송 내내 모든 것의 앞에 보수 아니면 진보를 갖다 붙이기 전까지 언론은 보수정당, 진보정당이라는 말조차 잘 쓰지 않았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저 보는 이가 낯 뜨거울 뿐이다.

2019-06-30 16:01:01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말의 대상과 의의, 그리고 품격

논리철학자 프레게는 말의 '대상'(對象)과 '의의'(意義)를 구분하였다. 가령 '책'이라는 말은 세상에 있는 어떤 대상을 가리키며, "지식을 글로 표현하여…"와 같은 의의가 있다. 또한 '동그라미'라는 말은 세상에 있는 대상인 '○'를 가리키며,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와 같은 의의가 있다.말과 대상의 관계를 자의적(恣意的)이라고 하는데 특정한 대상을 반드시 그렇게 불러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가령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대상을 영‧미인은 'book'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말과 대상의 관계가 자의적일지라도 말은 그 나름의 의의도 갖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좋은 의의를 지닌 말을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 또는 단체의 이름을 지을 때 남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개명할 때도 있다.대체로 대상이 하나의 말을 갖지만 두 개 이상일 때도 있다. 지구보다 태양에 더 가까운 금성이 새벽에 보일 때는 '샛별'이라 부르고 해질녘에 보일 때는 '개밥바라기'라 부른다. '샛별'과 '개밥바라기'는 금성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지만 '샛별'은 "새벽에 뜨는 새로 난 별", '개밥바라기'는 "개의 밥그릇을 연상시키는 해질녘에 뜨는 별"이라는 서로 다른 의의를 지니고 있다.'샛별'과 '개밥바라기'는 의의가 다르지만 어느 것이 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지는 않다. 이런 경우에는 의의의 차이가 가치중립적인데, 이때는 언어 표현을 더 풍부하게 해줄 뿐 특정한 말의 선택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그러나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말들이 가치중립적이지 않을 때는 어느 말을 선택하는가가 논란의 소지가 있고 말의 품격과도 연관되므로 말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특히 감정과 이념이 개입되어 있을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최근에 특정 그룹을 '달빛 기사단' 대신 '달창'(달빛 ○○단), 대통령의 '외교 순방'을 '천렵질'이라고 불러 논란이 되었다. 각각의 전자는 긍정, 후자는 부정적인 의의를 지녔으므로 의의의 차이가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그래서 논란이 된 것이다. 한국이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부르는 상(像)을 일본은 '위안부상'이라 부른다. 이 두 말의 차이도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므로 한일 간에 명칭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은 좋은 말을 써 대중들이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일본은 나쁜 말을 써 혐오의 대상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말은 말을 하는 사람의 품격도 나타내지만 듣는 사람의 품격도 나타낸다. 특히 정치인의 언어는 본인의 인격뿐만 아니라 국민의 품격도 보여주는 것이기에 품위 없는 말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처사이고 청소년들에게도 본이 될 수가 없다. 말의 격(格)에서 인격이 나오기 때문에 감정과 이념이 개입된 영역에서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뿐만 아니라 의의도 특히 더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듣는 이의 출신 지역, 인종, 종교, 계층뿐만 아니라 이념, 학력, 연령, 성별까지 고려하여 역지사지함이 말의 격을 높이는 길이다.김윤나의 '말 그릇'(2017)에 따르면 말은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았다고 한다. 나를 닮은 말을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 나의 말이 막말의 대명사인 '귀태'(鬼胎)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서는 안 된다.

2019-06-28 06:30:00

장혁주(1905-1998)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춘향'이 만들어낸 사랑의 의미

언제부터인가 TV에서 '춘향전'이 사라졌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춘향전'은 명절 단골 연속극이었다. 매년 새로운 배우들로 새롭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기본 내용은 변함이 없었다. 197•80년대라면 시청률 50프로를 넘는 국민 연속극이 심심찮게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 전설적 연속극 사이에서 '춘향전'은 변함없는 힘을 지니고 사람들을 TV앞으로 끌어들였다.일제강점기 동안에도 '춘향전'은 소설로, 영화로, 창극으로 쉴 새 없이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명창들이 모여 부른 '춘향전' 창극이 유성기음반으로 발매되는가 하면 일본 전통극 가부키와 접목시킨 일본화된 '춘향전'이 현해탄을 넘어와 조선에서 일본어로 공연되기도 했다. 장혁주의 일본어 희곡 '춘향전'(1938)은 이와 같은 '춘향전' 열풍 속에서 발표된다.장혁주가 풀어내는 '춘향전'은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복숭아꽃이 질 무렵, 봄비가 지독하게 내리는 밤. 이몽룡이 비에 흠뻑 젖으면서 춘향을 만나러 온다. 희곡 '춘향전'에는 이와 같은 몽룡과 춘향의 열정적인 사랑의 기운이 극 전체에 흐르고 있다. 이몽룡의 사랑은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에도 변함이 없다. 4년이라는 긴 세월, 그가 춘향에게 소식조차 전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춘향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변함없기는 춘향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어떤 잔혹한 운명에도 흔들림 없이 몽룡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낸다.또한 춘향은 봄날처럼 따뜻한 사람이어서 오랜 세월 소식 한 자 전하지 않은 몽룡을 탓하기보다는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몽룡의 편안한 잠자리와 안위를 신경 쓰는 인물이다. 따뜻한 마음과 신념을 지켜내는 강직함이 춘향의 내면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춘향이 만들어내는 사랑은 강하면서도 부드럽다. '춘향전'이 발표된 1938년의 조선은 이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필요한 때였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적인 모든 것을 지워가고 있었다. 조선신문을 탄압하고, 조선말을 없애고, 일본을 위해 이국(異國)의 전쟁터에서 죽을 것을 강요하던 때였다.조선의 현실은 암울했고, 사람들은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조선인이 조선인으로 있을 수 없었던 시기, 소설가 장혁주는 조선전통소설 '춘향전'을 근대 문학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친일을 내걸고, 공공연하게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한 장혁주였던 만큼 그가 어떤 마음에서 일본어 희곡 '춘향전'을 창작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춘향전'이 조선인들이 조선을 기억하고, 일본인들이 조선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춘향전'은 일제가 조선의 기억을 강압적으로 제거해가던 그 순간에도 조선인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잔혹한 시절을 살아남은 '춘향전'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잊힌 역사 속 인물들이 새롭게 조명되는 이 시기, 오랜 기간 조선 문화의 상징적 역할을 담당해온 '춘향전' 역시 재조명되어야 하지 않을까.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6-27 15:34:46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 이제 남북·북미 대화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오늘부터 오사카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G20 정상회의도 국제적으로 중요한 행사이지만 우리로서는 G20 직후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무엇보다 큰 관심사이다.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시기상으로 보나 여건상으로 보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선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있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정확히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하노이 회담이 성과 없이 종료된 이후 북미 간에 이렇다 할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는 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고 미국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제재 해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였다.다만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은 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는 과정에 최근 양 정상 간에 친서 교환이 있었다. 친서의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흥미로운 제안이 오가는 등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와중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격적으로 방북하였다. 중국은 대화의 모멘텀 실종과 함께 미국의 대북·대중 압박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출구전략을 찾던 북한으로서도 시진핑 방북 카드를 활용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한중 회담 전에 북중 회담이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다면 먼저 진행되어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핀란드, 스웨덴 순방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뢰를 통한 대화를 강조해 왔고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상반기가 지나는 시점에 전개되는 이러한 상황들의 핵심은 대화 재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와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계기에 남-북-미 3자 정상 간 깜짝 만남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아직 그러한 분위기까지는 연결되지 못한 것 같다.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두 정상 간의 신뢰는 존재하지만 북미 간에는 아직 물러서긴 곤란한 쟁점들이 존재한다. 실무적으로 이러한 쟁점들을 다시 좁히지 못하면 정상 간 회담이 어렵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북미 실무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의 실무협상 제의에 응하는 것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언급을 하였다. 북한이 결단만 하면 북미 간 실무협상은 다시 재개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며칠 전부터 북한 외무성 등 실무자들이 다시 날 선 비난들을 쏟아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대북 제재 발언을 격렬히 비난하였고 권정근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져와야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고 다시 엄포를 놓았다. 실무회담이 개최되기 전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이번 G20 정상회의 계기로 미중 및 한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방북 결과를 전달할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설득했음을 강조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분명히 한다면 하반기부터는 다시 대화 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남북 분단의 최전선인 DMZ를 방문하여 평화와 대화의 메시지를 발신하길 바란다.이 과정에서 남북 간의 대화도 복원되어야 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내부적인 단속을 강화하고 협상 결렬의 책임을 총화하는 시기를 가졌다. 당국 간 대화뿐 아니라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에 있어서도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언제든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남북이 합의한 교류협력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합의의 이행은 평화를 만들어 내는 신뢰의 힘을 보여준다고 언급하고 남북 관계가 제대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경제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하였다.아직 북미 간 담판이 남은 북한은 전면적으로 남북 관계를 복원시킬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 직후 어떤 형태로든 대화가 재개되는 것이 시급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판단이 중요하다. 남북 간에 담을 쳐 놓고서는 북미 대화가 잘될 수 없다. 지난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및 북중 간 대화가 활발했다는 점을 상기할 때 하반기에는 이러한 국면이 조성되어 조속히 남북 관계가 복원되고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기를 기대한다.

2019-06-27 14:05:10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맑은 가난

대구문인협회 편집회의에 가던 중 예술회관 호수 쪽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았다. 점심시간이었다. 무료급식을 위해 모여든 노인들이 밥을 받아들고 나무그늘을 찾았다. 여느 맛집에 모여든 손님들처럼 식판을 들고 웅성대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식판을 받아든 분들 중에는 그 밥이 아니면 점심을 굶어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혼자 밥 먹는 것이 싫어서 무료급식소를 찾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대구의 평균임금이 전국 광역시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손꼽을만한 대기업 하나 없는 도시여서 청년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바쁘고 나날이 노년층만 늘어나니 실은 평균이란 말이 무의미한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도시에 터무니없이 집값만 비싸다. 아직도 집이 부족한지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쉬지 않고 짓는 새 아파트가 정말 이 도시가 필요로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다른 도시로 출퇴근하는 역외 의존도가 높다는 통계가 홀로서기에 실패한 도시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처럼 들린다. 도시를 빠져나가는 청년들은 붙잡을 길이 없고, 소득꼴찌의 불명예는 도시의 다른 이름 같고, 사방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이 도시의 인상은 쓰임새가 불확실한 5만원권 지폐 같다.5만원권이 발행된 지 10년이다. 큰돈은 계좌이체하고, 친인척 경조사에 부조를 하거나 용돈을 줄 때 말고는 대개 1만원권을 많이 쓰는 주부 입장에서는 5만원권이 있으나마나 한 존재다. 지금까지 발행된 5만원권이 총 39억3400만여 장이고, 금액으로는 196조7024억 원이라고 한다. 그 중의 절반이 은행으로 돌아오고 절반이 시중에 유통이 된다지만, 지하로 숨은 돈이 70%고 시중에 유통되는 5만원권은 불과 30% 정도라는 말도 들린다. 고액체납자들의 싱크대와 인형 뱃속에서 찾아낸 5만원권이 한 집에서만 5억원이라니, 70%가 지하로 숨었다는 말이 웬만큼 맞는 말 같다. 애초에 5만원권의 발행의도가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괜한 것일까. 싱크대나 인형의 뱃속, 마늘밭에 숨긴 돈다발이 건강한 돈이었으면 그렇게까지 숨바꼭질을 해가며 감추고 빼돌리는 블랙코미디를 시도했을지.법정스님이 남기신 '무소유'를 잠깐 들여다본다.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치 않은 것을 갖지 않는 뜻이라고 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 빈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맑은 삶을 가꿀 수는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라고 하신 여운이 짙다. 장정옥 소설가

2019-06-27 11: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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