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종문의 한시산책] 집이 너무 머네-작자 미상

산 앵두꽃이 唐棣之華(당체지화)바람에 살랑, 살랑대고 있구나 偏其反而(편기반이)어찌 그대를 생각하지 않으랴만 豈不爾思(기불이사)집이 멀어도 너무 머네 室是遠而(실시원이) 산 앵두꽃이 바람에 살랑살랑, 살랑대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님(=그대)'의 얼굴이 난데없이 울컥, 떠오른다. 아마도 화자는 산 앵두나무 꽃 아래서 사랑하는 님과 입술을 맞대고 마음을 쏙닥거렸으리라. 생각 같아서는 그 님을 향해 들입다 내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님이 계신 곳이 멀어도 정말 너무 머네, 아아!중국 최초의 시가선집인 '시경(詩經)'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고대 시가의 하나다. '논어(論語)'의 자한편(子罕篇)에 인용되어 있는데, 이 시에 대해 공자는 다음과 같이 평한 바가 있다. "생각이 간절하지 않을지언정 어찌 집이 멀다고 하겠느냐(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인(仁)이 멀리 있는 것은 결코 아니므로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얻을 수가 있듯이, 님에 대한 생각이 정말 간절하기만 하다면 거리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 되겠다."바람도 쉬여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여 넘는 고개/ 산진이(산에서 자란 매)이 수진이(집에서 길들인 매) 해동청(海東靑: 송골매) 보라매(사냥에 쓰는 매)라도 다 쉬여 넘는 고봉(高峰) 장성령 고개/ 그 넘어 님이 왔다하면 나는 아니 한 번도 쉬여 넘으리라(작자미상의 사설시조)". "내 그대를 사랑하면 그댈 패 죽이게 되고, 아니면 그대가 나를 쳐 죽이게 된다 해도/ 그래도 어쩔 수 없네, 이 기겁할 만유인력!(이종문, 引力)" 보다시피 눈에 보이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사랑인데, 님에 대한 마음이 펄펄 끓는다면 어찌 집이 멀겠는가."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시골에 내려와서 정구지 지짐을 굽고 있어요. 내일이 할아버지 생신이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뜨거운 철판 위에 드러누워 있는 보름달 같은 지짐 넙디기 위에 갑자기 선생님의 얼굴이 겹치는 거 있죠. 마음 같아서는 이 지짐 한 넙디기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고 싶지만, 길이 너무 머니 어쩌면 좋아요" 우와! 그렇더냐! 네가 굽는 보름달 속에 나의 얼굴이 떠올랐다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구나. 그러나 우스개 삼아서 사족(蛇足)을 단다면, 길이 너무 멀단 말은 하지 말아라. 마음의 간절함이 부족한 게지. 얼마 전에 함께 읽었던 공자님 말씀 벌써 잊었구나. "생각이 간절하지 않을지언정 어찌 집이 멀다고 하겠느냐".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8-01 10:08:14

김태훈 영남중 교사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공산전투

후삼국시대에 이르러 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은 삼한을 통일하기 위해 전략상 요충지를 선점하고자 치열한 전투를 이어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대구와 관련된 대표적인 전투가 '공산전투'였다. 927년에 들어 고려 육군은 용주(예천군 용궁)와 근품성(문경시 산양면)을 함락하였고, 고려 수군은 강주(진주)를 공격하여 4개의 고을을 점령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 군대는 대야성(합천)까지 차지하였다.이에 위협을 느낀 견훤은 전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근암성(근품성)을 함락하고 고울부(영천)를 점령하였다. 이에 다급해진 신라 경애왕은 왕건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였고, 이를 눈치 챈 견훤은 경주를 기습 공격해서 호국 의식을 강조하려는 팔관회를 거행하고자 포석정에 행차했던 경애왕을 살해하고 헌강왕의 외손자 김부를 왕위에 추대하였다. 이때 신라를 돕고자 출동한 왕건 군대는 공산전투에서 견훤 군대와 접전 끝에 참패하여 위기에 놓였으나 신숭겸, 김락, 전이갑-의갑 형제가 고귀한 목숨을 바친 대가로, 왕건은 극적으로 공산을 탈출하였다.현재까지 대구 지역에는 왕건이 도주하는 과정에서 유래된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가령 '무태'는 왕건이 병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고, '연경'은 왕건이 선비들이 경전 읽는 소리가 낭랑하다고 감탄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해안'은 왕건이 어느 정도 멀리 도망가서 걱정이 사그라지자 그의 굳었던 얼굴이 풀렸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등이 대표적이다.대구에는 공산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하여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던 세 사람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추모하는 장소가 있다.고려 개국 일등공신 신숭겸을 기리기 위한 신숭겸장군유적지(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17)와 충렬공 전이갑-충강공 전의갑 형제를 모시기 위한 한천서원(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동로 117)이 있다. 이곳을 방문하여 세 분의 공신이 걸어온 발자취와 그들이 보여준 애국심과 이타심을 몸소 체험할 수 있기를 권하는 바이다.영남중 교사

2019-07-31 18:00:00

세계 평화의 종

[이재태의 세상속의 종소리] 일본이 만든 유엔 세계 평화의 종

제2차 세계대전 중 전 세계에서 전쟁으로 5천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독일과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군인들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더 많았다. 구소련의 희생자가 2천900만여 명에 이르는 등 폴란드(627만여 명), 독일(569만여 명 )이 그 뒤를 따른다.아시아에서는 600만여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한국인 희생자는 47만여 명이라 한다. 일본인은 군인 230만 명을 포함한 310만여 명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전후 일본 전범들에 대한 처벌은 미흡하였다. 도쿄 전범 재판은 7명에게 교수형, 18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하였을 뿐이다. 광복 74년이 지났으나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의 후유증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종소리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자는 울림이다. 세상의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는 간절함도 담겨 있다. 전범국 일본은 전후 경제 복구와 함께 그들이 전쟁광이 아니라 평화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 노력한다. 저개발국에 대한 경제 지원과 함께 세계에 수많은 '평화의 종각'을 설치하였다. 1954년 일본 유엔협회는 60개 회원국의 동전을 녹여 '일본 평화의 종'을 유엔본부에 설치했었다. '절대적인 세계 평화 만세!'를 새겨두었다. 이 종은 매년 춘분과 총회가 개회되는 날에 타종되면서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유엔본부 방문자들은 기념으로 이 종의 모형(사진)을 구입한다. 일본의 세계 평화의 종 협회는 더 나아가서 세계 20개 이상의 대도시에 '평화의 종'을 설치하였다. 원폭 피해 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도 '전쟁과 핵무기가 사라지기를 기원한다'는 글이 새겨진 평화의 종을 설치하며 전쟁 피해 국가임을 주장하고 있다. 속죄의 종일까? 가해국이 세계 평화를 주장하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용서란 피해자가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경북대 의대 교수

2019-07-31 18:00:00

준비하는 미래 김영환 대표

[시대산책] 남북관계 개선의 헛된 기대를 버려야

지난 7월 27일은 정전협정 6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북한은 1973년 이날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로 정했고 1996년에는 국가 명절인 '전승절'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김정은은 전승절에 앞서 지난 22일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의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발사관을 갖춘 것으로 추정되는 잠수함 건조 시설을 방문한 데 이어 25일 원산 일대에서 한국의 미사일방어체계를 쉽게 뚫을 수 있는 신형 탄도미사일 발사를 참관한 이후 평양으로 귀환하여 전승절 당일에는 '조국해방전쟁 참전열사묘'를 참배했고 국립교향악단의 '7·27 기념음악회'도 관람했다.북한은 이와 동시에 연일 험한 말, 무례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이번 미사일 도발에 대해 "비위가 거슬려도 남조선 당국자는 오늘의 평양발 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며 아주 무례한 어투로 협박했다.전승절인 27일 권정근 외무성 미국국장은 "지금 남조선 당국자들은 저들도 한 판 끼여 무엇인가 크게 하고 있는 듯한 냄새를 피우면서 제 설 자리를 찾아보려고…(하략)"라며 외교부처 고위 간부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려운 무례하고 공격적인 언사로 한국을 비난했다.김정은은 금년 4월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하략)"고 하며 국가 지도자의 시정연설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례하고 경박스러운 어투로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를 모욕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미국과의 핵협상을 앞두고 기싸움을 벌이며 압박하는 용도라고 보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지나치게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태도여서 단순히 협상용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한국과의 관계 설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일각에서는 북한은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여 한국으로부터 투자도 받고 교역도 늘리고 기술 협력도 받아서 경제적 이득을 최대한으로 챙기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북한은 '모든 화의 근원은 남조선(한국)에 있다'는 인식이 확고하며 가능하면 한국과 관계를 멀리 하고 북한 주민의 마음속에서 한국이라는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북한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2가지가 결합되어 있다. 하나는 6·25전쟁 때 미국에 빌붙어서 자기들 부모와 조부모를 죽인 원수라는 것이다. 아기 때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평생을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현재 북한 고위층에는 많이 있다. 일반 주민들도 어릴 때부터 철저히 교육을 받아서 이런 인식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둘째는 화의 근원이 한국에 있다는 생각이다. 30여 년 전 공산주의 진영의 붕괴와 북한 내부에 축적된 모순의 폭발이 동시에 찾아와서 북한은 극심한 경제 붕괴와 외교 고립을 경험했고 그 위기를 버텨낸 이후에는 이미 격차가 많이 벌어진 남북관계 때문에 주민들이 동요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며 지내야 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 이런 고민을 더욱 증폭시켰다.한국 정부와 여당의 핵심 인사들은 북한의 안전보장을 위한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고 끈기 있게 온화한 자세로 대하면 언젠가는 북한도 마음을 열고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이 가능할 것이란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미래에도 북한은 경제개발보다는 체제 유지가 우선이다. 체제 위협의 요소가 한국으로부터 온다는 인식이 바뀌기 어렵고 따라서 남북관계의 개선은 대단히 어렵다고 봐야 한다.진심으로 북한을 도와주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오히려 북한과 거리를 갖고 냉랭한 분위기로 남북관계를 가져가는 것이 좋다. 지금 한국 당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북한에서 일관되게 무례하고 호전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한국 국민의 마음이 크게 상할 수 있고 이렇게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다시 돌리려면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2019-07-31 18:00:00

최성욱 작 '우리 가족의 유토피아 1999'

[내가 읽은 책]유토피아/토마스 모어 지음/전경자 옮김/열린 책들, 2012년

사는 것이 녹록치 않다.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팍팍한 세상사를 안주 삼아 위로를 얻는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 – 유토피아를 갈망하고 있다. '유토피아'가 출간되었을 때 유럽에서는 유토피아라는 섬이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은 토마스 모어가 소설 속에서 말한 가상의 나라이다. 그리스어의 uo(없다)와 topia(장소)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결국 이 세상에 없는 땅이라는 말이다. 유토피아의 역설이다.토마스 모어는 1478년에 영국에서 출생한 정치가이며 인문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문화운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당시 영국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법조인이며 유머가 풍부한 사람이었다. 토마스 모어는 왕과 귀족들, 부유한 상인들의 수탈과 폭압 때문에 고통 받는 농민과 부랑자들을 가슴 아파하며,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을 제시하고자 '유토피아'를 저술하였다.'유토피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제1권은 토마스 모어가 베타 힐테스,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 등 3자의 대담 형식으로 짜여졌다. 라파엘은 왕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단순 절도가 목숨을 앗아 가야 할 정도로 중한 범죄가 아니며, 제아무리 가혹한 처벌로도 먹을 것을 구할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도둑질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면서 잉글랜드 법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토마스 모어도 값비싼 양모를 얻기 위해 농민들을 내쫓고 울타리를 치는 탐욕스런 귀족과 영주들의 사치를 성토한다. 지주와 사유재산 제도를 비판하고 있다.이어서 라파엘이 유토피아의 사람들과 제도에 대해 설명하는 형식으로 제2권을 시작한다. 유토피아인들이 사는 섬은 중앙이 너비 200마일이고 섬 전체가 500마일의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유토피아에서는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곡물과 가축을 산출하여 잉여물은 이웃 사람들과 공유한다. 10년마다 추첨을 통해 집을 바꾸며 산다. 모든 사람들이 유용한 직종에서 일을 하고 아무도 과소비를 하지 않아서 모든 것이 풍족하다.라파엘은 "이 나라(유토피아) 헌정의 주요 목적은, 모든 시민은 육체노동에 투여하는 시간과 정력을 가능한 한 아끼어 이 시간과 정력을 자유와 정신의 문화를 누리는 데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들이 생각하는 삶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p.99) 라고 주장한다. 결혼을 위한 맞선 제도를 소개하는 데 기발한 발상에 웃음이 절로 나지만 공감하는 바도 적지 않다. 책 속에서 직접 확인해 보는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다.이 책은 내용이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지만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한 크기고 양도 많지 않아 읽기 좋은 정도이다. 시대적 비판의식과 이상향에 대한 거대 담론을 담고 있음에도 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읽기에 편하다. '유토피아'는 500년 동안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고전은 생각의 씨앗과 같아서 내 마음 속에서 거대한 나무로 자랄 수 있는 힘이 있다. 나만의 혹은 우리 가족과 공동체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먼저 토마스 모어가 들려주는 '유토피아'를 읽어볼 일이다.최성욱(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7-31 16:15:06

[종교칼럼] 아름다운 여행

팔월의 뜨거운 빛이 온 누리에 가득하다. 햇볕은 기염을 토하며 온 산천을 태운다.그 열기에 맞춰 백일홍도 붉게 탄다. 마당에는 매미 소리 높고 고추잠자리가 유영을 한다.계절은 하는 일과 맡은 역할이 각각 있나 보다. 누각 처마 밑 풍경에 바람이 서성인다.날이 덥다 보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8월이면 괜스레 바람이 든다. 소음이 없는 곳에서 솔바람과 파도 소리를 벗 삼아 나만의 시간을 갖고 사색하며 마음을 비우고 싶다."여행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라고 프랑스의 문인 아나톨은 말한다. 여행은 세상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해지고 감사하게 된다.젊은 시절, 고흥 나로도에 우주센터가 들어서기 전 내나로도 어촌 바닷가에 방을 하나 얻어 민박을 했다. 저녁을 해결하고 양철 지붕에 돌담장이 나지막한 조그만 방에서 밤새 파도 소리를 들었다. 일정한 리듬으로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 힐링사운드는 마음을 한없이 안정되고 평화롭게 해 주었다. 아직 그 감동은 잊히지 않는다.돌아오는 길에 보길도에 들렀다.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인인 고산 윤선도가 1637년 2월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해 제주도로 가다가 보길도의 절경에 매료되어 머물렀다.예송리 해수욕장에 들렀다. 천연기념물 제40호인 상록수림과 작은 조약돌이 펼쳐진 해변은 장관이었다. 파도가 서로 몸을 부대끼며 일렁일 때마다 조약돌끼리 내는 소리가 실내악처럼 감미로웠다. 동글동글하니 모나지 않고 햇빛이 비치면 바닷물에 젖은 채 반짝거리는 돌들의 어울림은 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다음에 들른 곳이 세연정이다. 보길도에는 윤선도의 흔적이 유독 많다. 그중 하나인 세연정은 윤선도가 삶을 마지막까지 경쾌하게 보낸 곳이다. 뒷산에서 흘러내린 작은 계곡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반원을 그리는 곳을 막아 정원을 꾸미고 그 위에 세연정을 지었다. 여기에 높은 학식과 연륜의 눈높이로 쌓은 정원은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부용동과 이곳을 오가며 40수의 장편시조 '어부사시사'를 지었다.그는 아마도 달 밝은 밤이면 이곳에서 해남 금쇄동에서 지었다는 수석송죽월(水石松竹月)을 노래한 '오우가'로 자신을 달래며 자연을 노래했을 것이다. 이 밖에 곡수당과 사당, 낙서재와 동천석실 등이 반긴다.그는 늘 허욕과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 곧은 뜻을 꺾지 않고 직신(直臣)의 정신으로 숱한 상소를 올렸다. 그 때문에 16년이 넘는 귀양살이로 고초를 겪어야 했다. 보길도에는 사람은 가고 문화만 남았다. 행복의 비밀 하나는 그 어느 누구도 영원히 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예부터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갈림길에 선 시기에는 하늘이 반드시 한 인물을 내려보내 목숨을 걸고 예의를 지키게 하여 한 세상에 경종을 울려주고 후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는데 바로 윤선도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그 시대 선비 용주 조경은 말했다.대한민국의 총체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우리는 누굴 기다려야 하나?망월사 백련차문화원장

2019-07-31 13:08:15

이재윤 덕영치과병원장

[기고]GMO로부터 우리 식탁을 안전하게

필자는 6개월 전부터 국제로타리와 GMO(유전자 변형 식물) 재앙에 처한 식품 섭취에 대해 문제점을 인식시키고 홍보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GMO는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하여 식물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변형시킨 것으로 식량 문제 해결에는 획기적인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생태계 교란이나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사회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GMO는 주로 종자 형태로 유통되는데, 세계 최대 유통회사가 미국의 '몬센토'라는 기업이다. 몬센토는 1902년 화학기업으로 출발하여 세계 최초 GMO 콩을 개발하면서 최대 종자회사로 도약한 회사로 우리에겐 DDT 살충제와 월남전의 고엽제를 만든 회사로 유명하다. 현재 약 1만여 종 이상의 작물 유전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 밥상에 오르는 농산물 10개 중 4개가 몬센토가 개발한 종자로 생산된다. 국내에서도 파프리카, 청양고추 등 70개 품목의 종자를 몬센토를 통해 구입하고 있다.문제는 이 GMO 식품이 그 속에 있는 물질로 인해 그것을 섭취하는 인간에게 여러 가지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GMO 식품이 신체에 질병을 일으키는 가장 심각한 원인으로 ①글리포세이트 ②라운드업 레디 단백질 ③Bt 독소 단백질 등을 지목하고 있다.글리포세이트는 몬센토가 생산하고 있는 제초제 '라운드업'의 주요 성분으로, 국제암연구소(IARC)가 인체 발암성 추정 물질 2군으로 분류한 물질이다. 2010년 어느 의학 단체의 연구에 의하면 아르헨티나에서 GMO 콩을 재배하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각종 질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는 미국과 브라질에 이어 GMO 콩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다. 수집된 자료에 따르면 글리포세이트가 뿌려지고 있는 지역에서 유산, 사산, 암, 불임증, 다운증후군, 내분비 질환, 면역 체계 결핍증 등 여러 가지 질병들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GMO 콩이 재배되기 이전과 비교하면 선천성 기형아가 2~5배나 증가했다.변질된 단백질 역시 불안하다. 전문가들은 유전자 조작 식물들 속에 함유된 변질된 단백질이 신체에 치명적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며 당대뿐 아니라 그 2대, 3대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문제가 이렇게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이에 대한 경각심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지금 한국보다 GMO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인구도 많을뿐더러 수입한 대부분의 GMO를 동물 사료 등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봤을 때 식용 GMO 수입은 단연 한국이 세계 1위인 셈이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는 선천성 기형아 급증(7년간 136.6% 증가), 불임증 급증, 자살률 세계 1위, 자폐증 발병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 타이틀을 갖게 됐다. 또한 어린이 4명 중 1명은 정서장애를 겪고 있고, 아동 비만, 대사증후군, 성조숙 아동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유전자 조작 식품 섭취와 관련이 없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우리나라에서 소비하는 유전자 조작 식품은 연간 약 228만t, 1인당 약 43㎏에 해당한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허기'는 우리의 가장 큰 적이었고 극복의 과제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원조를 받는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도 GMO 식품은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무런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여서는 안 될 일이다. GMO 식품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나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9-07-31 11:17:41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매일춘추] 춤추는 글 

필자의 보물이라면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 쓴 일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대청소를 하며 일부 버려졌지만 지금 남아있는 공책의 수는 100여 권 정도이다. 보물을 펼쳐보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편안함을 선사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는 골라보는 재미도 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시절 일기는 나의 마음정화의 수단이었던 것 같다.일기 내용에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내 모든 경험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엄마의 혹독한 교육안에서 외로움과 고독에 울부짖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쓴 해방, 친구와의 다툼에서 어떤 화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숨막힘이, 내가 좋아했던 가수의 노랫말에 열광했던 사춘기 소녀의 간절한 소망은 모든 내 경험의 생각과 느낌이었다.나를 드러내기보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해야만 했던, 때 이른 성숙함의 필자의 어린시절에 일기는 아주 특별했다. 모든 것을 토해낼 수 있는 자유와 위로였다. 때 이른 성숙함을 위로한 자유와 위로는 자신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립심이었고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가장 쉬운 글쓰기인 일기를 권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무용을 전공한 필자에게 글쓰기는 창작의 방법으로 때론 교육의 소재로 사용해 왔다. 무용은 사실 단순히 춤만 추는 것이 아니라 안무의 과정에서 살펴본다면 움직임으로 표현되어질 주제를 설정하기 위해 안무자 경험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몸과 마음(정신) 그리고 감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통합하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 다음단계이다.이러한 글쓰기와 춤의 경험은 개인의 감정을 정리하고 조절 할 수 있는 능력을 명료화하게 된다.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알게 되면서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감정이입으로 소통의 경험도 가능하게 한다. 필자가 제시한 글쓰기는 무용교육에서 창작무용으로 발현되는 과정의 첫 단계로 학습자의 일기와 같은 경험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표현한 뒤 그 글을 무용의 요소를 사용하여 움직임으로 구성하게 된다.특히 이러한 과정은 특수 목적의 사람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한 교육적 혜택으로 다가가는 접근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 이는 무용이 과거 전문성을 가진 기능 교육에서 교양과 문화·체험 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문득 떠오른 지금 이 순간의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써보자. 그리고 눈을 감고 움직이는 내 몸을 상상해본다면, 또는 직접 내 몸을 움직여 본다면, 우리는 지금 자유의 춤을 추고 있다. 김정하 공연예술학 박사

2019-07-31 11:15:54

이장우 경북대 교수

[경제칼럼] 세계화4.0과 지역발전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의 화두는 세계화(globalization) 4.0이었다.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온 세계화 흐름이 또다시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꿀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네 번째 세계화 흐름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디지털화와 함께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며 지역 발전의 형태도 달라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한마디로 제품이, 그리고 최근에는 공장이 국경 사이를 이동했던 것과는 달리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서비스가 자유로이 국경을 이동하는 시대로 돌입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서비스가 싸고 좋더라도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서비스의 국경 이동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모바일 통신 인프라와 함께 AI, 로봇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사람의 물리적 이동 없이도 서비스를 수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사실 주위를 돌아보면 세계화된 서비스들이 이미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음을 알 수 있다. 국제 항공 관련 콜센터 서비스는 상냥한 필리핀이나 인도 사람들로부터 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영어 교습도 인터넷 무료 전화를 이용해 캐나다나 미국 현지인에게 받는다. 명함같이 간단한 디자인을 이스라엘이나 유럽 디자이너에게 맡길 수 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인도나 베트남 개발자에게 인터넷을 통해 의뢰할 수도 있다.이러한 세계화 흐름은 소위 '원격이민'(telemigration)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몸은 지역에 있지만 일은 다른 나라에서 하는 현상을 증폭시킨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우수한 서비스 인력을 보유한 집단이나 지역이 앞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즉 '경쟁력 있는 시민'(competitive citizen)을 많이 보유한 지역이 성공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지금까지 지방자치단체들의 성공 방식을 보면 핵심 인재를 중앙에 보내고, 그 중앙의 핵심 정책을 잘 따라야 지역이 발전한다는 논리를 따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시민 경쟁력'과 같은 내부 자원을 키우고 활용하는 정책에는 취약하다.앞으로 '경쟁력 있는' 지역이란 대규모 공단이 있고 서울대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가 많고, 정치인과 관료를 많이 배출한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생태적으로 쾌적한 주거 환경과 차별화된 교육 시스템으로 성장한 인재들이 지역에 머물면서 전 세계를 향해 스스로 꿈을 키우고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이 고려해야 할 사안들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첫째, 정치·행정·교육·문화예술·사회복지 등에서 활동하는 리더들이 먼저 각성해 세계화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이제는 닫혀 있는 지역이 아니라 모든 개인들이 전 세계로 개방된 세상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사고와 행동을 스스로 해야 한다. 리더의 말 한마디가 바로 전 세계로 파급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둘째, 교육 도시로서 어느 곳에서도 하기 어려운 차별화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인구 150만 명에 불과한 에스토니아는 '디지털 국가'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초등학교 수학도 로봇 프로그래밍을 통해 교육시킨다. 초등학교부터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지역 인재를 키우기 위한 차별화된 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셋째, 주거 환경과 문화적 요소를 기반으로 도시를 브랜딩해야 한다. '살고 싶다'는 생각은 결국 주거생태 환경과 문화적 자부심으로부터 나온다. 지역에 젊은 인재들이 머물러야 경쟁력도 창출될 수 있다. 앞으로는 지역에 머문 인재가 세계화 4.0의 물결을 타고 지역 발전의 동력을 창출할 것이다.넷째, 시민들은 보다 능동적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계화 4.0과 같은 큰 변화는 기존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기도 하지만 수많은 기회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 기회는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의 몫이다.지금까지 제품뿐만 아니라 공장까지 국경을 이동시킴으로써 세계화에 대응했지만 앞으로는 서비스의 '차익거래'(arbitrage)가 세계화의 동력이다. 이때 핵심 주체는 지역과 시민이 될 것이다.지금까지 제품뿐만 아니라 공장까지 국경을 이동시킴으로써 세계화에 대응했지만 앞으로는 서비스의 '차익거래(arbitrage)'가 세계화의 동력이다. 이때 핵심 주체는 지역과 시민이 될 것이다.

2019-07-31 06:30:00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새론새평]나의  극일(克日)교육

초·중·고등학교 12년을 통하여 고맙게 생각하지 않은 스승이 없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스승은 중학교 시절 도덕을 가르치셨던 박중근 선생님이다. 180㎝가 넘는 거대한 키나 엄청난 유도 고단자(아마도 9단?)라서가 아니라 수업시간 내내 항일 정신만 가르쳐주셨다. 수업은 항상 공포감과 긴장감의 연속이었고 때로는 무자비하기도 했지만 뼈에 사무쳐 계시던 선생님의 항일정신은 반백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 선생님 덕분에 평생 일본에 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일본 상품을 사지 않으려고 했으며 또 입으로는 절대로 일본 사람이 아니라 왜놈이라고 부르는 습관을 가졌다.지난 7월 1일 일본은 마치 진주만 공격처럼 중요한 제품의 한국 수출을 막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나 국회는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양국 당국자 간의 실질적 협상 없이 감정을 부추기는 불매운동만 격화되고 있다.우리와 일본과의 교역 구조에는 숨길 수 없는 현실이 있다.첫째는 심각한 무역역조다. 지난 60여 년 동안 우리는 단 한 해도 무역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었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무역 적자가 200억달러보다 적은 적이 한 해도 없었다. 따라서 저쪽에서 안 팔겠다고 한다면 우리도 안 팔겠다고 대항하기엔 역부족이다.두 번째 현실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대부분의 상품이 중간재(349억8천달러)와 자본재(138억4천달러)다. 이 둘을 합하면 488억달러로 전체 수입의 90%에 달한다. 기계, 화학원료, 금속제품들로 대체가 쉽지 않은 상품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제품을 조금이라도 제때에 한국이 수입하지 않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못하거나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어려움이 생긴다.셋째 대일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품목은 농축수산물, 가공식품, 섬유 및 의복인데 이 부문은 수출이 수입 규모보다 커서 일본의 불매운동 맞대응에 취약하다. 예컨대 담배의 경우 우리의 대일 수입은 400만달러인데 대일 수출은 3억달러로 10배 가깝고, 의류의 경우에도 우리의 대일 수입은 4천만달러인데 대일 수출은 8천만달러로 2배나 된다. 화장품도 대일 수입은 3억800만달러인데 대일 수출은 3억2천만달러다. 그러니 만약 우리의 불매운동이 부메랑을 일으킨다면 경제적 피해는 작지 않을 것이다.한일 교역에서 우리가 '보복'할 수 있는 전략은 이론적으로 4가지가 있다: ①한국산 기계나 원료의 대일본 수출규제 ②국산 농축수산물 등의 대일본 수출규제 ③일본산 기계나 원료의 불매운동 ④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그것이다.①항이나 ②항 같은 대일본 수출규제는 한국 기업이나 농어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채택하기 어렵다. ③항은 당장 우리 공장 가동이나 산업의 마비가 우려되므로 어렵다. 결국 남는 것은 ④항밖에 없는데 이 또한 일본이 불매운동으로 반격해온다면 타격이 클 것이다. 결국 일본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되는 셈이다.이렇게 무방비 상태가 된 근본 이유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 기술력과 정신력에서 일본을 이기지 못했다. 기술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고 일본 상품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했다. 저들의 부품이나 소재를 사들이면서 기술적 종속을 탈피할 생각을 못했다. 저들의 기술력을 가볍게 생각했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23명이나 되는 사실을 애써 외면해왔다. 저들은 우리 자동차나 TV를 사지 않는데도 우리는 그들의 물품을 헤프게 사주었다. K-POP이 모든 것인 양 일본 축구만 이기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양 나태해져 있었다.이젠 바꾸어야 한다. 우리 제품이 없으면 저들 경제가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저들이 우리 제품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우리가 저들로부터 살 물건이 별로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반일(反日)정신이 아니라 극일(克日)정신이다. 중학교 은사인 박중근 선생님을 생각하며 내가 극일의 내 몫을 다하지 못한 것을 정말 뼈아프게 반성한다.

2019-07-30 11:18:01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이연(離緣)

나의 대학생 제자가 레슨을 받으러 와서 책상 앞에 앉자마자 대뜸 나의 곡 소아쟁독주곡 '이연(離緣)'이라는 곡에 대해 묻는다. 어떠한 느낌과 영감으로 곡을 썼는지, 과연 이 곡은 누구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그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때 사랑하던 사람이었는지를 숨도 쉬지 않고 물어보고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무언가를 기대하며 나를 바라본다.그래서 나는 이어질 수 없는 인연에 대하여 썼다고 그냥 가볍게 대답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 곡은 내가 그 제자와 비슷한 나이였던 대학생 때 썼는데, 그 당시의 어떤 특정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만남 뒤의 이별에 대해 썼고, 그래서 딱히 언급할 누군가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누군가를 생각하며 곡을 썼다고 하기엔 뭔가 여러 가지로 쑥스러웠다.하지만 이내 그 제자는 스스로의 해석으로 '고백할 수 없었던 슬픈 사랑이야기'일 것 같다며 자기가 '이연'속의 여자의 입장을 상상하며 '비연(悲緣)'이라는 곡을 써보았다고 하였다. 순간 웃고야 말았다. 근데 기분이 좋았다. 나의 곡으로 인해 영감을 얻어서 제자 스스로가 또 하나의 새로운 곡을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곧 그 곡 악보를 보았는데 거기에 적힌 가사가 또 한 번 나를 웃게 만들었다. 가사 속 내용이 손발 오그라드는 민망함이 있어서 그랬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직관적이고 진실된 글이 사랑의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어서 흐뭇하였다.사랑은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된다. 어떤 시절을 지나며 마음속에 추억으로 간직된 세월이 지나버린 풋풋했던 사랑, 현재 진행형으로 발전되고 있는 성숙하고 뜨거운 사랑 등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감정을 가지는데, 아래 글은 소아쟁독주곡 '이연'에 쓰인 곡 해설이다.떠날 이(離), 인연 연(緣)을 조합하여 만든 제목이다. 제목 그대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인연에 대해서 노래 한 것인데 그런 안타까운 사랑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인연이란 것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즉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으로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찾아온다. 아무리 다시 되돌려 보려고 해도 시간은 계속 흐르기에, 세상 만물의 이치 속에 인간의 힘은 한없이 미약하기에 안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연은 더 아픈 것이다.그 아프고 애절한 마음을 아쟁의 구슬픈 선율로 옮겨보았다. 이 이연을 체념한 듯 받아들이는 그 슬픈 마음으로 이 곡을 완성하였지만 모순적으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직까지도 나의 이연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각자 자신만의 해석으로 음악과 문화를 이해해보자.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7-30 11:11:09

독사에 입주변이 물려 심하게 부은 모습 (사진출처: https://theparcvet.com/)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반려견이 뱀에 물렸다면?

캐리(3·슈나우저)가 앞다리가 퉁퉁 부은 채 내원했다. 수풀에 들어간 후 돌아왔는데 다리를 절며 아파했고 점차 붓기 시작했다고 했다. 검사 결과 캐리는 발목 윗부분을 독사에게 물렸고 약물 치료와 독이 퍼져 괴사된 피부조직을 되살리기 위해 한 달 가까이 치료를 받아야 했다. 캐리처럼 독사에 물려 내원하는 반려동물들이 늘고 있다. 생태계가 건강해지면서 뱀의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국내에 서식하는 독사는 살모사와 유혈목이(화사) 두 종류다. 까치살모사, 쇠살모사 등 살모사는 얼룩무늬에 머리가 삼각형인 전형적인 독사의 모습이다. 용혈독(괴사독)과 신경독을 가지며 국내에서 가장 위험한 독사이다.화사, 꽃뱀이라 불리는 유혈목이는 물가에서 잘 발견되며 알록달록한 외모처럼 온순한 편이지만 어금니 안쪽에 독니가 있다. 두꺼비를 잡아먹으면서 부포톡신이라는 신경독을 목부분에 저장했다가 위협을 느끼면 뿜어내는 엄연한 독사이다.독사가 많은 호주에는 사람과 반려견에게 뱀 물림 사고가 빈발한다. 그래서 호주에서는 반려견에게 뱀 회피 훈련(SAT)을 평상시에 시켜 개가 뱀을 피하도록 한다. 개가 뱀을 피하는 훈련은 의외로 간단하다. 뱀의 모형을 이용하여 개가 뱀을 인지하고 관심을 보일려 하면 보호자는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위험 대상임을 경고하고 그 자리를 피하는 과정을 반복한다.개가 산책 중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고 다리나 얼굴이 붓는다면 독사에게 물렸을 가능성이 있다. 개는 달리다가 다리를 물리거나, 뱀을 위협하다가 입 주변이 물리는 경우가 많다.개가 독사에게 물렸을 때 보호자는 침착하여야 한다. 개를 흥분하게 하지 말고 신속하게 동물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하려다 보면 개는 더 흥분하게 되고 독이 더 퍼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물가 주변의 수풀이나 돌이 많고 낙엽이 있는 그늘진 공간은 뱀이 은신하기 좋은 곳이다. 뱀의 서식이 의심되는 곳에 개가 혼자 돌아다니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햇볕이 잘 들고 시야가 탁 트인 낮은 풀이 있는 곳이 뱀이 기피하는 공간임을 기억하자.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SBS TV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년간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 의학 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2019-07-30 09:52:06

송필용 작

[최진석의 새 말, 새 몸짓] 척박한 땅에서는 거친 풀이 자란다.

매일신문을 붓 머리로 하여 전북일보, 경인일보, 광주일보 등에 "국가란 무엇인가"를 발표하고 나서 많은 지지와 격려를 받았다. 그러나 비난도 없지 않았다. 비난을 받을 때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잠깐이나마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생각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을 수밖에 없다.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아야 할 생각이 개수가 준 나머지 몇 개의 생각으로 뭉쳐서 활력을 잃는 것이 더 위험하다. 문제는 지지나 비난이 어느 높이에서 일어나는가가 중요하다. 지지가 되었건 비난이 되었건, '곰곰이 생각'하고 하는 것과 그러지 않고 감(감각과 감성)으로만 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생각을 해야 도달할 수 있는 단계가 있다. 거기서는 지적 개방성이 최소한이나마 작동한다. 이리하여 싸움판 같은 논쟁이라도, 그것이 끝나는 곳에는 협치도 자라나고 합의도 피어나서 사회를 앞으로 미는 전진의 기운이 생겨난다. 최소한의 지적 개방성도 보장되지 않은 정도의 수준에서라면, 논쟁은 그저 비난전에 불과하다.여기서는 한 치의 전진도 없다. 그저 제자리를 뱅뱅 돌거나 과거로 퇴행한다. 내가 보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불행하게도 감각과 감성의 작동 기재에 갇혀 최소한의 지적 개방성도 허용되지 않는 매우 극단적인 양분 상태이다. 한 나라 두 국민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어느 쪽에서나 '내로남불'을 대놓고 하고 얼굴색도 바뀌지 않는다.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에는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이 결사적이다.이젠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차라리 장수하는 비결이 될 지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들어주는 경우가 아주 귀하다. 대개는 어떤 주장을 들으면서 우선 자기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를 결정하고, 거기서 출발한다. '맘'이 과학과 논리를 앞선다. 맘에 들면 맘에 들게 논리를 만들고, 맘에 안 들면 맘에 안 들게 논리를 만든다.그러니 개념의 적용 범위를 무시하거나, 억지스럽거나, 논리적이지 않거나, 인신 공격적이거나, 프레임을 쉽게 씌운다. 국가주의니 획일주의니 패권주의니 하는 등등의 '주의'에 쉽게 갇힌다. 가치가 개입될 여지가 많은 철학이나 정치나 종교의 영역에서는 더욱 심하다.지적인 훈련이 되어 있으면, 논리로 감각을 지배하지만, 지적인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감각에 논리를 복종시킨다. 감각에 논리를 복종시킨다는 말은, 논리를 편의대로 만든다는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적 주장에서 이런 경향이 매우 심하게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지적 독립성이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은 정치의 늪을 피하지 못한다.고도로 지적 훈련을 받은 증명서를 가진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정치가 모든 지적 활력을 다 빨아드린 후 소진 시켜 버리는 블랙홀로 기능한다. 정치라는 블랙홀의 흡인력에 얼마나 저항할 수 있는가가 얼마나 높은 강도로 지적 훈련을 받았는가를 증명할 것이다.이것은 지식인이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지적 훈련을 받은 사람답게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감각과 감성을 이겨내라는 뜻이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금 감성이 배제된(완벽한 배제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다) 객관적인 대화를 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남북관계에서나 한일관계에서나 건강한 논쟁을 할 토양은 사라졌다. 논쟁을 통해 무슨 조그마한 소득이나마 산출할 토양이 아닌 것이다. 근본적인 면에서는 경제지표가 하락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문제이다. 극단적인 이전투구 판에 있으면서도 죽기 전에 바늘 끝만 한 아름다움이나마 거두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다면 이 정도까지 천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어버린 내 나라가 나는 너무 슬프고 무섭다.앞에서 '지적 훈련'이라는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학벌 좋고 가방끈이 긴 사람들끼리의 말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지적 태도라는 것은 인간이 세계와 관계하는 가장 효율적인 한 방식일 뿐이다. 세계를 지적으로 다루는 사람은 세상을 더 넓고 깊게 접촉한다. 좁고 얕게 접촉하는 사람은 넓고 깊게 접촉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피상적인 수준에서 이기고 지는 승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의미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종합한 인생 전체에서의 승리 여부를 말한다. 지구는 평평한가, 둥근가? 배운 것을 즉각적으로 내뱉으며 둥글다고 아주 쉽게 말하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험하지도 않은 것을 자신 있게 말하기란 적잖이 조심스럽다.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전혀 경험되지 않는다. 감각과 본능으로 보면 지구는 평평하기만 하다. 가만히 생각하고 자세히 따져 봐야 둥글다. 지적이라는 것은 지식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하고 자세히 따져 보는 능력을 발휘하는지의 여부이다.지구를 평평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세계를 접촉하는 범위는 좁고 얕을 수밖에 없다. 가만히 생각하고 곰곰이 따져 봐서 지구를 둥근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세계를 넓고 깊게 접촉한다. 삶의 효율성이 누구에게 더 있을지는 길게 말할 필요 없다.이렇게 보면, 지적 태도는 우선 감각과 본능을 극복하는 태도이다. 감각과 본능을 극복한다는 말은 감각과 본능을 소멸시키거나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곰곰이 생각하는 지적 능력으로 감각과 본능을 정련시킨다는 말이다.지적이면 가만히 생각하고 곰곰이 따지면서 반응하기 때문에 덜 감성적이고, 지적이지 못하면 생각을 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정련되지 않은 감각이 그대로 튀어나와 훨씬 더 감각적이며 감성적이다. 지적이면 생각을 하고, 지적이지 못하면 생각을 하지 않는다.학력이 아무리 높아도 지식의 양만 넘쳐나고 곰곰이 따지는 능력이 배양되어 있지 않다면, 지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대신 학력이 낮거나 지식의 양이 적더라도 곰곰이 생각할 줄 알면 지적인 사람이다. 이것은 세계와 반응하는 기술이자 태도이다.곰곰이 생각할 줄 알면 세계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커지는 데도 인간은 왜 곰곰이 생각하지 않은가? 생각이라는 것은 하나의 정신적인 수고이다. 힘이 든다. 감각과 감성은 정신적인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극에 맡겨 본능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면 된다. 특정한 이념에 갇혀도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그 이념만 기준으로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념가들이 더 감성적인 이유이다. 분명한 것은 '이념'이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는 점이다. 이념을 강하게 소유하면, 진실하고 헌신적으로 보일 수는 있지만,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져서 과거를 지키거나, 거기에 자발적으로 갇힌다는 문제가 있다.'이념적이다', '과거에 갇혔다', '생각이 없다', '감성적이다'라는 표현들은 서로 매우 가깝게 있다. 이런 사람들이 만일 권력을 갖게 되면 쉽게 자기 확신에 빠진다. 자기 확신에 빠져, 자기가 만든 진실에 자기가 도취 되어 역사에 철저한 태도로 헌신한다는 느낌을 스스로 제조한다.그래서 현실을 보지 않고 자기 이념을 본다. 현실에서 이념을 생산하는 수고를 하지 못하고, 이념으로(그것이 낡은 이념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제어하려는 무모함을 행한다. 봐야 하는 대로가 아니라 보여지는 대로 보는 승리의 길을 포기하고 '자아 도취에 빠져 몽환적 정치'를 하게 되는 노정은 이와 같다.'일상'과 '현실'이 아무리 피폐해져도 오히려 그 피폐함을 진실에 접근하는 통로로 간주한다. 곰곰이 생각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점은 이렇게 중요하다. 감각과 감성에 의존하는 태도를 갖느냐 지적인 태도를 갖느냐 하는 점은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든다.우리의 근대 역사에는 동학 혁명이라는 불꽃같은 기록이 있다. 우리는 동학의 정신을 잘 살피고 더욱 계발해야 한다. 동학도 없었으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 여기서 우선 김태유 교수의 "패권의 비밀; 4차산업혁명시대, 부국의 길"이라는 제목을 단 유투브 영상을 소개해야겠다.모두 꼭 한 번 보시기 바란다. 김태유 교수에 의하면 동학 농민군이 일본군에 의해 3만명 사살될 때 일본군은 한 명 죽는다. 엄청난 격차다. 무기가 달랐다. 일본군은 전설의 소총인 스나이더 소총을 자신들의 신체에 맞게 개선한 무라다 소총을 썼고, 우리는 여전히 화승총을 들었다.무라다 소총은 엎드린 자세에서 장전하며 1분간 15발을 쏠 수 있었고, 사거리는 800미터였다. 반면 화승총은 2-3분 동안 선 채로 1발을 장전하여 쏠 수 있었고 사거리는 120미터였다. 이런 화승총에 죽창을 곁들인 무력으로는 아무리 큰 결기로 뭉쳤다 하더라도 무라다 소총을 든 적을 이길 수 없다.결국 산업화의 결과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고,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무라다 소총과 화승총의 차이는 산업화의 차이를 상징한다. 그럼 왜 누구는 산업화에 성공하고 누구는 산업화에 성공하지 못하는가?그것은 세계에 반응하는 '태도'가 좌우한다. 무엇을 '제작한다' 혹은 '개선한다'는 것은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소지'하는 태도가 아니라 불편함과 문제를 느껴서 '그 다음'을 '알려고' 하거나 '설명하려고' 하는 강력한 의지가 발현된 것들이다. '이미 있는 것을 그대로 소지'하는 태도를 가지면 곰곰이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주로 감각과 본능이나 감성을 표하는 것으로 자기 태도의 대부분을 채운다.반면에 '그 다음'을 곰곰이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면, 불편이나 문제를 발견한 후 그것을 붙들고 늘어지는 수고를 스스로 감당한다. 이것이 지적인 태도이다. 스나이더 소총을 무라다 소총으로 개선했다는 것은 일단 감각과 본능을 극복하여 지적인 태도로 문제를 대했음을 알 수 있다. 있던 화승총을 별 개선 없이 계속 썼다는 것은 우선 '곰곰이 생각'하는 지적인 태도로 세상을 대하지 못했음을 뜻한다.곰곰이 생각하는 지적인 태도를 우리보다 먼저 혹은 더 철저히 발휘했던 일본은 우리보다 더 인간적으로 살았고, 상대적으로 그러지 못했던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그들에 의해서 짓밟히는 치욕을 살았다.이런 의미에서 헤르만 헤세도 "데미안"에서 이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세계를 그냥 자기 속에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그것을 알기도 하느냐, 이게 큰 차이지. 그러나 이런 인식의 첫 불꽃이 희미하게 밝혀질 때, 그때 그는 인간이 되지." 알려고 하는 태도는 머무르려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향한 욕망이다. 그것이 바로 지적인 태도다.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해주는 근본적인 힘이다. '알려고 하면'(곰곰이 생각하면) 인간의 주체성을 지키며 살 것이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곰곰이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기 약 20여 년 전, 지금 일본의 기초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여러 저술을 통해 일본을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한다. 그의 성공은 바로 우리의 고통이었다.'네이버 열린논단'에서 한 미야지마 교수의 강연 내용에 의하면, 1872년에서 1876년 사이에 후쿠자와 유키치가 출간한 "학문의 권장"이라는 계몽서가 300만부나 팔렸다. 당시 일본의 인구가 3500만명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조금 과장하여 당시 일본인 10명 가운데 한 명은 이 책을 읽었다고도 할 수 있다.후쿠자와 유키치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하는 평가는 뒤로 하고, 그의 시대에 그가 300만의 독서 인구를 가졌다는 그 사실이 부럽고 놀라울 따름이다. 독서는 '곰곰이 생각하는' 훈련이 아주 잘 된 사람들이 남긴 결과(그것이 책이다)를 접촉하여 자신도 '곰곰이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다.우리는 '무라다 소총'과 300만 독서 인구의 존재가 같은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300만 독서 인구와 후쿠자와 유키치는 따로 존재하는 두 개가 아니라 하나다. 300만 독서 인구를 가진 당시 일본 사회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토양이다.우리가 일본에 패배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곰곰이 생각하는 능력'의 차이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 해야 지식이 나오고, 또 거기서 산업이 나오고, 국력이 커지는 이치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곰곰이 생각'하는 지루한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는 미덕이 사라졌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다.그 대신 생각하는 수고를 포기한 감성의 배설과 감각적 판단이 요즘은 난무한다. 이미 소지한 각자의 신념을 지키는 일로만 세월을 보낸 지 이미 수십 년이다. 이제는 프레임 씌우기가 더 자연스러워져 버렸다. 빨갱이라는 프레임 씌우기로 고통받은 적이 있던 사람들은 위치가 바뀌자 친일파라는 프레임 씌우기에 바쁘다.이런 토양에서 건설적인 정치와 외교와 정책이 실현될 수는 없다. 척박한 땅에서는 거친 풀이 자란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더 나은 사람이란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감각과 감성보다는 숙고와 사실에 기대는 사람이다.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건명원 초대원장) ifston@daum.net

2019-07-29 18:00:00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賊反荷杖(적반하장): 도둑이 몽둥이를 든다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고 주인에게 대든다는 뜻이다. "도둑놈이 도둑이야 한다"는 속담과 같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적반하장(賊反荷杖)은 중국의 병서 '삼십육계'(三十六計) 가운데 반객위주(反客爲主)에서 왔다. 이 계략은 동맹군끼리 주도권을 잡기 위한 술수로 쓰였다. 수동적인 상황을 능동적으로 바꾸어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태도를 가리킨다.후한(後漢) 말의 군벌 원소(袁紹)는 한복(韓馥)과 함께 동탁(董卓)을 토벌한 동맹지우(同盟之友)이다. 원소는 하북(河北)에 웅거, 패권을 꿈꾸며 세력을 키우다 보니 군량이 부족했다. 곡창 지역 기주(冀州)에 있던 한복이 사정을 알고 식량을 보내 주었다.원소는 군량을 채우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기주를 차지하기로 했다. 먼저 유주(幽州) 군벌 공손찬(公孫瓚)에게 편지를 보내 함께 기주를 치자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기주를 노리고 있던 공손찬은 바로 원소의 요구에 응했다. 원소는 다시 몰래 기주에 사람을 보내 한복에게 공손찬이 기주를 노리고 있으니, 같이 대적하자고 했다. 그리하여 원소는 기주에 주둔하게 되었고 중요한 곳에 자기 부하를 심었다. 한참 후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한복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기주에서 도망 나왔다. 원소는 반객위주의 계략으로 곡창지 기주를 차지했다. 이런 배은망덕도 없을 것이다.요즘 뉴스를 보면 '적반하장'이 많다. '고유정 사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러시아의 독도 영공 침공' 등등이다. 하나같이 도둑이 큰소리치는 꼴이다. 한일은 잘 구성된 분업체제로 서로 이익을 누려왔다. 일본이 더 큰 이익을 가져갔다.그런데 일본이 갑자기 한국에 경제 보복을 가하면서 큰소리치고 있다. 말 그대로 적반하장이다.도둑이 매를 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달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자신이 도둑인 줄을 알도록 더 큰 매를 들어야 한다.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7-29 18:00:00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건강한 관계맺기- 공격성은 생명력이다

"친구를 때리면 안 돼!"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착하지!"이 말이 아이들의 자발성과 생명력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말일 줄 꿈에도 몰랐다. 사이코드라마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원망과 한탄으로 고통받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얼마 전 친구가 울면서 고통을 호소해왔다. 밝고 건강했던 열두 살 아이에게 갑자기 전신마비가 왔다고 했다. 무슨 일이 아이에게 일어난 것일까? 학교에서 욕하고 괴롭히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아이는 참고 견뎠다. 이런 상황이 2년 동안 지속되면서 아이 마음속에는 미움이 커졌다. 때리고 욕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왜? 착한 아이였고, 엄마 아빠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아이는 일기장에 자신을 나쁜 아이로, 죽고 싶다고 썼다. 아이는 부정적인 감정들과 싸우며, 부모를 어긴 것에 괴로워하다가 스스로를 처벌하는 것이다.우리 아이는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동네 미술학원에 갔었다. 처음엔 착하고 똘똘하다며 선생님들이 예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어린 아기들 방으로 가서 안 나온다고 했다. 아이는 친구가 장난감을 빼앗아 가는데 가만히 있었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다른 놀이에도 다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다.사이코드라마에서는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고 정화에 이르기 위해 소리 지르고 욕하고 바타카(도깨비 방망이)를 치게 한다. 이런 표출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들을 털어내고 소멸시켜 정화하고, 몸의 힘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몸싸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감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온몸으로 한다.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내 몸의 강도를 알고 힘을 조절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싸움과 다툼은 나무들이 바람과 비를 이기듯 서로를 자라게 한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잘 참는 착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용기를 가르치는 것이다.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심리치료사

2019-07-29 18:00:00

인수일 교수 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인수일 교수의 과학산책] 에너지 안보

현재 진행 중인 국가 간 무역 갈등은 한국에 심각한 경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과학기술이 기업과 국가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고 다양한 정책과 전략들이 나오고 있다. 그중 반가운 소식은 대성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성에너지가 지난 25일 적정기술 혁신 프로세스 구축을 위한 '적정에너지 전략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수소에너지 등 5개 분야에 8명의 자문위원을 위촉했다.수소에너지 분야, 환경에너지 분야, 신재생에너지 분야, 에너지 신산업 분야 , 도시가스 분야 등 5개 분야다. 5개 분야에 위촉된 자문위원은 모두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문가들이다. 필자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합류했다.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은 출범식에서 "적정에너지 전략위원회 출범은 대성그룹의 종합에너지 솔루션 기업 비전 달성을 위한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자문위원단과 태스크포스 간 유기적 협업과 정보 교류를 통해 지속 성장의 모멘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대성그룹은 1947년 고 김수근 명예회장이 대구시 칠성동에 연탄 회사를 창업한 것을 시작으로 1957년에는 서울 마장동에 대성연탄을 설립하였다. 김영훈 대성홀딩스(옛 대구도시가스) 회장이 이끄는 대구 지역 대성 계열은 도시가스, 신재생에너지(태양광, 태양열, 풍력 등), 매립가스 자원화(LFG), 생활폐기물 고형연료화(SRF), 바이오가스 등의 사업과 IT, 영화, 방송 콘텐츠 등 문화 콘텐츠 개발 및 보급 사업 등을 한다. 지역과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기술과 에너지 안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기술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지난 6월에 대성에너지 신성장본부 기술개발팀에서 필자를 직접 찾아와 전략위원회의 취지와 비전을 설명하고 자문위원직을 요청했다. 평소 기업 경영은 물론 세계에너지협의회(WEC) 회장으로서 국제사회를 이끄는 리더십으로 유명한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의 경영 철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미중, 한일 무역 갈등에서 촉발된 한국 기업의 위기와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과학기술로 풀어가는 데 미약하나마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자문위원을 수락했다.대성에너지는 우중본 사장을 팀장으로 5개 분야를 망라하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자문위원과 각 태스크포스 간 사업 분야별 핵심기술 및 지속 성장 로드맵 수립을 위한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필자의 역할은 학문적 범주를 넘어서 한국의 대표 에너지 기업에 도움이 되는 시각으로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글로벌 현안을 분석하고 응용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할 것이다.한반도를 위시한 강대국들의 무역과 기술 경쟁에서 에너지 안보는 모든 산업의 근간이기 때문에 이번 '적정에너지 전략위원회' 출범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경영철학과 과학기술을 산업화하고 기술 안보를 전략적 무기로 키워나갈 수 있는 산학협력이야말로 현재 어려운 국제 정세를 대비하는 일이라 하겠다.DGIST 에너지공학전공 교수'(사)초일류달성경제연구소장

2019-07-29 18:00:00

[세월의 흔적]33회 찜갈비

웃지 못 할 이야기 한 토막. 오래전 서울에서 점잖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동인동 찜갈비 맛이 끝내준다'며 앞장서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막상 음식이 나오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그러지고 찌그러진 양재기를 보는 순간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건 '개밥그릇도 아니고' 하면서 마뜩찮게 여겼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며 먹기 시작하였다. 다들 마지못해 한두 점씩 먹는가 싶더니, 그릇을 다 비우고 나자 표정들이 환하게 밝아졌다.찜갈비는 대구를 대표하는 오래된 맛이다. 동인동 찜갈비집은 먹고 살기 위해 가게를 열었다. 그게 돈벌이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하나둘 가게를 차림으로써 마침내 집단을 이루었다. 그동안 입 소문을 타고 전국적인 명물거리로 발전하였다. 이곳 가게 주인들은 이미 오래 전에 '동인찜'이란 공동상호로 특허를 받았다.1960년대 후반의 대구는 갈비와 불고기의 전성기였다. 찜갈비도 그 연장선상에서 생겨난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 그 당시 동인동 일대는 주택가였고, 도로는 포장이 되지 않았으며, 승용차가 비켜가기조차 쉽지 않은 좁은 골목길이었다. 그러다가 1975년 도로가 포장되자 한 집 두 집 가게가 들어서면서 집단을 이루었다. 이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는 1968년에 문을 연 '실비 찜갈비식당'이다.갈비찜과 찜갈비는 비슷한 이름이지만 조리법이 다르다. 갈비찜은 삶은 밤 은행 석이채 같은 재료가 들어가지만, 찜갈비에는 그런 게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고춧가루 마늘 설탕 한약재 같은 재료를 넣고 잘 버무린다. 또한 먹는 방법도 다르다. 먼저 반주 삼아 술을 한잔 곁들이면서 고기부터 먹고, 그 다음 양념에다 뜨거운 밥을 비벼서 먹는 게 좋다. 먹는 동안 입안이 얼얼해지고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리게 마련인데, 반찬으로 나오는 물김치와 백김치로 얼얼해진 입안을 다스리면 개운해진다.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도 찜갈비가 있다. 그렇지만 동인동 찜갈비와는 딴맛이다. 그 비결은 양념에 있다. 마늘이 맛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는데, 마늘의 강한 향을 다스리자면 불의 강약을 잘 조절할 줄 알아야 된다. 불이 너무 강하면 마늘이 푹 익어서 향이 다 날아가 버리고, 너무 약하면 매운 맛이 남아 있어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불길을 다스려야 하는데, 말이야 쉽지만 제대로 배우려면 10년은 족히 고생해야 터득할 수 있다. 다른 지역 주방장들이 몰래 숨어들어 이 집 저 집 다니며 먹어보고 물어도 보았으나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우스갯소리 같지만 양재기도 단단히 한몫을 하였다. 양재기는 다른 용기에 비해 열전도율이 좋다. 빨리 달지만 쉬 식지 않고, 기름이 잘 굳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로 해서 우그러지고 찌그러져 볼품없는 양재기가 동인동 찜갈비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모두 위생적인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바꾸었지만.김종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2019-07-29 18:00:00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신병주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사릉과 정순왕후

지난 7월 조선왕릉 가운데 하나인 사릉(思陵)을 조성할 당시 석재를 채취했던 채석장이 서울시 수유동 구천계곡 일대에서 확인돼 문화재(서울시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릉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사릉은 정순왕후(定順王后·1440~1521)의 능을 말한다. 정순왕후는 남편 단종이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난 비운의 여인이다. 단종이 상왕으로 있을 때 형식적으로 대비가 되었다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면서 노산군부인으로 전락했다.정순왕후는 남편이 왕의 지위에 있을 때 왕비가 된 조선 최초의 왕비였다. 15세의 나이로 1세 연하의 단종과 혼례를 치르고 바로 왕비가 된 것이었다. 대부분 남편이 세자로 있을 때 세자빈으로 있다가 왕비로 지위 상승하는 것과는 달랐다.1454년 1월 22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비로 책봉되면서 탄탄대로가 열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불운이 연속된다. 1457년 6월 단종이 노산군의 지위로 영월로 유배되고 4개월 후 세조에 의해 죽음을 맞으면서 그녀는 고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서울시 창신동에는 '자지동천'(紫芝洞天)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 밑에 샘물의 흔적이 있다. 정순왕후가 '자줏빛 풀이 넘치는 샘물'인 이곳에 흰 옷감을 자줏빛으로 염색해 생계를 유지했다는 일화가 전하는 곳이다.마음의 상처가 컸던 탓인지 그녀는 불교에 크게 의지했다. 궁궐에서 은퇴한 여인들이 자주 찾은 비구니 처소, 정업원을 안식처로 삼았다. 정업원 인근 산봉우리는 그녀가 동쪽인 영월을 바라보며 남편의 명복을 빌었다 해서 '동망봉'(東望峰)으로 불린다. 단종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에도 단종이 자주 올라가 왕비를 그리워했다는 노산대와 왕비를 위해 쌓아올린 돌탑이 남아 있어 부부의 애틋한 사연을 더해주고 있다.18세의 어린 나이로 단종과 이별한 후에도 정순왕후는 64년을 더 살았다. 1521년(중종 16)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사망한 후 무덤은 남양주시 진건읍에 대군 부인의 묘로 조성되었다.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鄭眉壽) 집안 종중의 산이 있던 곳이다. 해주 정씨 집안에서 복위 전까지 무덤을 관리했다.왕비의 위상을 되찾은 것은 노산군부인으로 강등된 지 240여 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이었다.단종이 복권되면서 정순왕후라는 왕비의 지위를 회복했고 무덤의 이름 또한 사릉으로 격상되었다.같은 해 12월에는 단종의 신주를 사릉에 묻게 해 두 사람의 사후 만남을 추진했다. 초라했던 무덤이 왕비의 능으로 격상되면서 격식에 맞는 석물도 사릉에 배치되었다.조선시대에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기록한 행사 보고서인 의궤를 작성하였는데 사릉의 조성 과정을 담은 '사릉봉릉도감의궤'가 남아 있다.사릉을 조성하기 위해 석재를 채취했다고 새겨둔 '사릉부석감역필기'에도 1699년 1월 사릉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석물을 채취하는 업무를 감독한 관리들과 석수들의 이름이 나온다. 이 이름들이 의궤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바위 글씨의 문화재적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대목이다.조선의 왕과 왕비(추존 왕과 왕비 포함)의 무덤인 조선왕릉은 총 42기다.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총 40기가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조선시대 왕릉 주변은 금표 지역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울창한 수목들이 좋은 경관과 함께 잘 남아 있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무더위까지 날려버릴 수 있는 곳, 조선왕릉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9-07-29 18:00:00

이성환 계명대 교수(일본학전공·국경연구소 소장)

[세계의 창] 한국은 '조선'이 아니고, 고통은 탈(脫)일본을 촉진한다

유치원생 손자가 "할아버지, 일본이 왜 우리나라를 못살게 해요" 했다. "한국이 미운가 봐"라고 하자, "왜 미워하는 데?" 더 이상 대화를 잇지 못했다. 어린아이 눈에도 일본의 급작스러운 수출규제 조치가 걱정스러운가 보다. 일본은 왜 이럴까.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 때문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나 일본 정부는 아니라면서도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외교로 풀어야 할 과거사 문제를 경제력으로 덮으려니 대답이 궁색하다. 아베 총리는 한일 간의 신뢰 문제라고 했다. 신뢰가 없어도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장사인데, 일본은 아예 가게를 걸어 잠갔다. 물건을 팔지 않겠다니 누가 그 가게를 믿을까. 이제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만은 '신뢰'라는 단어를 쓰지 못한다. 어쨌든 쌓인 불만을 못 이긴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서의 군사 침략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왜 물건을 팔지 않는가. 안 팔아서 생기는 손해보다 고객의 손실이 더 클 터이니 백기 투항할 것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필요한 물건이 그곳에만 있다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물건은 없다. 발품이 들고 질이 조금 떨어질지 모르나 못 구하지는 않는다. 가게는 어떻게 될까. 손님이 다시 찾지 않으니 폐업하게 될 것이다.(일본 전체는 아닐지라도 그 물건을 파는 가게는 그럴 것이다)일본을 분노케 한 불만은 무엇일까.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위안부 문제는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의 책임이 인정되었고,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은 중국과 미국에 책임을 인정했고,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점은 일본도 인정해 온 것이었다. 이 때문에 과거사 문제는 이번 사태의 빌미이지 본질이 아니다. 한마디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불만은 총체적이다. 식민 지배의 연장선에서 과거에 말 잘 듣던 한국이 언제부터인가 자기 목소리를 내니 얄밉고, 분통이 터진다. 한국도 되돌아보니 과거에 당한 것이 너무 부당하고 억울해 따져야겠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수직적인 한일 간의 역학(力學)이 수평적으로 바뀌고 있는 전환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직 한국을 '조선'이라 여기고 과거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본질이다.게다가 미래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다. 일본은 한반도가 언젠가는 통일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에 물결이 더 빨라졌다. 그런데 자기 '관할'이었던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은 닭 쫓던 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정은에게까지 러브콜을 보냈지만, 욕설만 돌아왔다. 일본은 핵무장을 한 통일 한반도, 그리고 중국에 경도된 통일 한국이 두려워진다. 일본에 대해 역사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통일 한국과 중국이 스크럼을 짜면 일본은 어떻게 될까. 존재감이 커진 한국과 중국이 버티는 아시아에서 일본은 미국에만 매달려 생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일본은 한국을 계속 말 잘 듣는 '착한 조선'으로 두고 싶어 한다. 75년 전에 소멸한 '대일본제국'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영광의 일본이다.미중 무역전쟁에서도 가격을 올리겠다고는 해도 물건을 팔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는다.그래서 일본의 이번 조치는 경제 행위가 아니고 '침략'이다. 물건을 팔지 않으면 고객은 잠시 힘들지 모르나 고객을 잃은 가게는 문을 닫는다. 지금 한국의 기업과 국민은 힘들다. 그러나 지금의 고통에 비례해 한국의 탈일본화가 촉진될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조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금의 한일 관계가 최악의 위기라고 한다. 기존의 한일 관계 틀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최악도 위기도 아니다. 과거의 조선과 일본제국의 관계가 현재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로 바뀌는 산통일 것이다. 견디면 반드시 이기고, 새로워진다.

2019-07-29 11:11:51

이예식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학장

[기고]다문화 가정을 위한 교육적 책무

언어학을 전공한 필자는 사회적 통합이 결국 언어적 통합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집단, 집단 대 집단은 말할 것도 없고 부부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이 언어적 소통이 미비하면 큰 갈등을 겪게 되고 그 갈등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몰고 온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겪고 있는 다문화 가정에서의 폭력 또한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이러한 인식 아래 지난 12일 대구경북 지역 6개 사범대학 학장들은 경북대학교에 모여 다문화 가정을 비롯한 소외계층 자녀들의 의사소통, 학력 증진을 위한 노력에 상호 협력한다는 협약서를 체결하였다. 우리 지역의 모든 사범대학과 그 구성원들이 다문화 가정을 비롯한 소외계층 자녀들의 학력 증진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첫째, 현재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 기관이나 민간단체가 소외 계층, 특히 다문화 가정을 돕고 있지만 여전히 자녀들의 학업 성취도는 매우 낮다. 한 통계자료를 보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학습 부진의 정도가 일반 가정 자녀들보다 2.5배나 더 높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기초학력 미달의 비율을 보면 국어가 13.0%, 수학이 13.5%, 영어가 8.5%인데 비해, 일반 가정의 자녀들의 비율은 국어가 2.0%, 수학이 5.7%, 그리고 영어는 3.3% 정도이다. 이를 보면 국어 때문에 다른 교과 학력도 떨어진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둘째, 학교에서 실패(school failure)할 경우, 졸업 후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학력 미달은 단순한 소통을 넘어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의 저하로까지 이어진다.셋째,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사회적으로 배제된다. 사회적 배제란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연결망에서 소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정치 참여 기회와 교육 기회에서도 배제되어 결국은 사회의 낙오자가 된다는 의미이다.넷째, 사회에서 배제되면 누구든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못할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반사회적 경향을 띠게 되어 이것이 잠재적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외부 노동력 유입으로 인해 이미 오래 전에 사회적 문제가 된 독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를 교육의 문제와 연결시켜 훌륭하게 해결한 바가 있다.선진국이 겪은 사례를 외면하고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면 그들에게 교육과 소통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일 수밖에 없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방치할 경우, 이것은 반드시 사회적 비용으로 우리 사회와 국민 모두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이에 대구경북 지역 6개 사범대학이 먼저 힘을 합쳐 좀 더 체계적이고 실질적으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기초학력 증진을 도우려고 한다. 우리는 다문화 가정의 부모들을 위한 언어교육과 문화 교육을 실시하고, 나아가 다른 소외계층 가정 자녀들의 학력 증진을 위한 사업도 펼칠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도 엄연히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이고, 그들에 대한 교육도 대한민국의 교육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사업에 많은 교육자들과 대구시교육청, 경상북도교육청의 적극적인 지원과 동참을 기대한다.

2019-07-29 11:11:37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매일춘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벌써 올해도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로구나.' 생각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7월도 막바지다. 지난 5월 올해 하반기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나름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보았다.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도 좀 해야 할 것 같고, 예정된 공연들도 무사히 잘 진행해야 하고, 책을 읽으면서 공부도 하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도 마련하고, 새로운 충전을 위해 여행도 좀 다녀오고. 전시도 챙겨 보고, 현대 무용이나 음악회 같은 공연들도 관람을 하고.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적고 나니 한 달이 60일쯤 되거나 하루가 50시간쯤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자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잠을 줄여볼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필자에게는 불가능한 선택지이다. 일단 잠이 줄여지지 않는다. 12시만 넘으면 아무 것도 재미가 없고 오로지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잠을 줄여서 무언가를 해도 전혀 즐겁지 않고 신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잠을 줄이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 방법은 탈락이다.시간을 쪼갠 뒤 집중력을 발휘하여 밀도 있게 시간을 쓰는 것은 어떨까?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현대인들은 이러한 기술을 연마하고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더욱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으로 살다보면 이 일을 왜 하는지는 잊은 채 그저 일을 처리하는 것 자체에 함몰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분명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일을 한다는 기쁨은 사라지고 해내야 한다는 의무만이 남게 될 수도 있다. 그런 건 싫다.그래서 필자는 하고 싶은 일들 중에서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가장 중요하게 고민한다. 모든 걸 다 해내는 것이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고민하게 되면 동시에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도 함께 고민하게 된다. 삶의 우선순위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한다. 하반기에는, 내년에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7-29 11:09:58

이강호 (사) 한반도 통일연구원 고문

[기고]편향과 편견은 재앙을 부른다는데…

중국 현대사 3대 문호의 한 사람인 루쉰은 '한 모퉁이만을 알아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멸한다'고 하였다.한 모퉁이는 편향, 편견과 같은 무리이다. 이 무리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중심을 잃는다. 지진, 해일,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이는 자연계뿐만 아니라 인간계에도 마찬가지다. 사물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되돌아온다.극단이 되어 투쟁이 일어나고 급기야는 재앙으로 이어진다. 편향, 편견, 한 모퉁이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어느 한쪽만 본다. 편향과 편견은 다른 것을 수용하지 않고 자기 것만 고집한다. 흉기와 다르지 않다. 오늘날 이전(以前) 사람들이 남겨 놓은 것을 계승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때로는 이를 전면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한다.자기 생각에 갇혀 있지 않아야 한다. 갇혀 있지 않고 고여 있지 않기 위해서는 우물 안에서 우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편향, 편견으로 내달리면 파멸이 오기 때문이다.권세와 이익에 대한 생각이 가슴에 가득하면 시비(是非) 판단이 흐려지고 일 처리나 주장도 제대로 되지 않을 뿐인데 하물며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중심을 잡아야 한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은 편향과 편견, 한 모퉁이에서 벗어나 근원을 좇는 일이다. 나라의 생명은 미래를 이루는 데 있다.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이 정치인이고 그들의 생명이자 본분이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국정의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미래는 허물어지는 것이다.루쉰이 경고한 것처럼 한 모퉁이만을 알고 하는 정책을 거둬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장 큰 용기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일이 있다. 정당의 역할이다. 정당이 제대로 되었을 때 희망이 온다. 정당이 무기력하다. 더군다나 야당이 무기력하면 안 된다.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의(大義)의 길로 가야 한다. 비판도 큰 비판을 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제도권 정치가 불신당하면 나라가 낭패를 당한다. 백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모든 정치인들이 이를 깊이 통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의 우리나라는 과연 어떠한가? 역사에서 보기 드문 혼란기 중의 혼란기이고 난세 중의 난세이다. 고려시대 말, 조선시대 말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국민은 훌륭한 지도자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지도자는 과연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도자는 높은 애국심과 역사 인식, 그리고 용기,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 도덕성, 도전 정신, 창조적 정신, 개척 정신, 통찰력, 지도력, 결단력, 관찰력, 실행력, 국민 동원력을 높이 갖춘 사람을 말한다.중국의 유방, 모택동, 등소평, 일본의 하루노리, 도쿠가와 이에야스, 미국의 워싱턴, 링컨,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프랑스의 드골, 독일의 아데나워, 우리나라의 박정희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여기에다 지혜와 의(義)와 도(道)를 겸비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것이다. 이러한 덕목을 가진 사람을 찾아나서야 한다. 앞으로 위의 기준에서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편향과 편견, 한 모퉁이가 아닌 크게 보고 넓게 보고 깊게 보고 높이 보는 큰 인물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2019-07-28 15:36:41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 우리가 자초한 일인가?

'배가 고파요.' 홋카이도의 한 탄광에서 발견된 한글이다. 삐뚤삐뚤하면서도 또박또박한 글씨가 까까머리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어두운 벽엔 '고향에 가고 싶다'와 '어머니 보고 싶어'란 글귀도 함께 써져 있다. 그는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까?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 일제는 이른바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했다. 말 그대로 국가는 무엇이든 동원할 수 있고 그래도 된다는 파시즘식의 전시통제법이었다. 이를 토대로 39년엔 '국민징용령'이란 걸 공포했다. 전시노동력 확보를 겨냥한 보다 구체적인 시행령이었다. 이때부터 수많은 한국인이 강제로 동원당하거나 일제의 획책에 속아 각지로 끌려갔다. 서울 사는 어떤 이의 아들은 홋카이도의 탄광에서, 또 대구 사는 어떤 이의 아버지는 오사카의 철공소에서, 그리고 또 경북에 사는 어떤 이의 남편은 사할린의 한 공장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했다. 모두 일제의 군수산업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한국인이 혹독한 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리다 죽어갔고 그 시신마저 불태워지고 버려진 이들은 죽어서조차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여운택, 신천수 두 할아버지는 지옥 같은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지도록 일했지만 임금조차 받지 못했다.지난 1997년, 두 사람은 일본 오사카의 지방재판소를 찾아 자신들을 감시하고 부렸던 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보상금이 아니라, 미지급 임금이 아니라, 회사가 저지른 불법행위로 인해 받아야 했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달라는 거였다. 내용으로 보나 소송 주체로 보나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갈음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한일 양국이 맺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확정했고 이들은 결국 최종 패소했다.터무니없는 판결이었지만 당시 우리는 지금의 일본처럼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수긍되지 않았지만 한 나라의 사법부가 내린 민사소송에 관한 판결을 두고 '행정부가 나서라'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식의 내정간섭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반민주적이기까지 한 발언을 한 적도 없다. 물론 다른 식의 보복도 가하지 않았다.2018년, 일본의 사법부가 그들의 판결을 한 것처럼 우리의 사법부는 우리의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한·일 간 청구권협상에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피해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법적 근거도 조목조목 밝혔다. 뭐가 잘못되었는가?1991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바 있고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가 발간한 백서에도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더구나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는 별개의 사안임을 분명히 했다.일본인들이 우리 땅에 두고 간 재산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해도 된다. 단, 그 대상은 남의 땅이 제 것이라도 되는 양 자신들을 기망하고 오도한 그들의 황실과 정부가 되어야 한다. 만일 한국 기업에 강제로 끌려와 노동을 착취당하거나 죽임을 당한 일본인이 있다면 당연히 한국과 한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게 맞다. 그런 일이 있다면 말이다.2005년 서울중앙지법에 소를 낼 땐 김규수, 이춘식 할아버지까지 원고가 모두 4명이었다. 그러나 3명이 세상을 뜨고 이젠 이춘식 할아버지 혼자만 남았다. 지난 1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이 있은 다음 날 일본은 기습적으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겠다며 요식행위에 불과한 절차를 일방적으로 밟고 있다. 아베 총리는 급기야 '한국은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와야 할 것'이라며 일성을 날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정도면 거의 윗사람이 아랫사람 꾸짖는 모양새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 일각에선 그래도 생존이 먼저이니 일본을 달래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한쪽에선 이번만큼은 물러서선 안 된다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나라가 온통 난리라도 난 듯 들끓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라며 미안해 했다고 한다. 열일곱의 나이에 그 고통을 당하고도 자기를 지켜주지 못한 나라에 다시 미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순 없다. 95세의 할아버지를 다시 고개를 숙이게 해선 안 된다. 할아버지를 지켜내야 한다. 나라가 왜 있는지 증명해야 한다.

2019-07-28 15:36:07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춘추칼럼]남북 관계에서 지자체 역할의 중요성

동서독의 경우 분단 시기 상호 방문에 있어 제약이 많지는 않았다. 동독 내 서베를린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독 주민의 왕래를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갖추었다. 1970년대 초반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을 전후하여 교통조약이 체결되고 우편 통신 관련 조약들도 체결되었다. 서독의 동방정책은 당장의 통일이 어렵기 때문에 분단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 해소에 목표를 두었다.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동독을 대화와 협력의 파트너로서 인정했다. 동독은 정상 국가로서 인정받기 위해 주민 간의 왕래와 접촉을 허용하였다. 서독인들의 동독 왕래에 따른 통행료를 받을 수 있었고 동독을 찾는 서독인들에게 강제적인 환전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경제적 이득도 챙길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서독인들은 안전하게 동독을 여행할 수 있었고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국가가 나뉘어도, 이념이나 제도가 달라도 자유롭게 왕래하고자 하는 의지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핵심적인 기본권이다. 공산권 해체 시기 독일인들의 외침은 국가의 통일이 아니라 여행의 자유였다. 인위적인 장벽에 의해 개인의 이동과 만남이 제약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분단의 장벽 속에 갇혀 있는 남북 주민 간의 이동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은 동서독보다 상황이 훨씬 좋지 못하다. 정전 체제가 존재하는 데다 군사적 대치는 여전하다. 아직 한반도에는 남북 갈등, 남남 갈등, 북북 갈등 등 중층적 이념 대결 구조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 간에는 왕래와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남북 간 교류 협력이 장려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그러한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워졌다. 지금 북한과 새로운 협력을 도모하려 해도 대북 제재로 인해 쉬운 상황이 아니다. 남북 경제협력에 있어서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이 폐쇄된 이후로 이렇다 할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북 제재로 인해 벌크 캐시의 이전이 허용되지 않고 있고 대북 투자와 전략 물자의 이전 금지에 따라 공단은 재개조차 하지 못한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완료 전까지 이러한 대북 제재의 예외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늦추면서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는 한국 정부를 오히려 비난하고 나섰다. 지난해 남북 관계에 비해 올해 남북 관계는 매우 소극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그러한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북중 관계이다. 최근 북한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점차 늘어나는 가운데 북중 경제협력 확대를 모색하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다고 한다. 올해는 북중 수교 70주년이고 최근에는 시진핑 주석이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후 두 나라 정부 간, 민간 간 교류도 확대 일로에 있다. 대북 제재 국면에 남북 관계도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북중 관계는 보다 확대될 것이다. 앞으로 북한이 교류협력의 대안적 기제를 중국에서 찾는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응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한 답답한 상황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 동서독의 사례처럼 어렵더라도 남북 교류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우선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이산가족들의 북한 방문과 왕래, 자유 관광을 허용해야 한다. 당국 간 이것을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여행사와 민간이 자율적으로 이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성공단 재개는 무조건 주장할 것이 아니라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초기 이행 조치로서 검토되어야 한다. 즉 포괄적으로 대북 제재를 해결하기 어려운 미국은 개성공단을 제재의 예외로 하여 북한의 초기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 내는 협상 칩으로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방안을 미국에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북한은 남한을 개혁 개방의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우리와의 접촉면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중국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중국이 북한의 대부분 시장을 선점하면 남북한 통합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도, 북한도 100년을 앞서서 남북 관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또 다른 방안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들 수 있다. 중앙정부에서 막히면 지자체 간 교류 확대를 시도해야 한다. 이벤트 행사보다는 자치단체 간 교류의 큰 플랜을 만들고 계속 북한을 교류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통일부와 시도지사협의회가 이러한 취지를 담은 협약식을 개최했다고 한다. 남북 관계의 경색 국면에서 지방의 이해와 지자체의 역할이 이래저래 중요한 시점이다.

2019-07-26 06:30:00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때때로 자유를 갈망하오

자신에게 물어본다. 누군가를 의식하며 글을 쓴 적이 있는가? 그 누군가는 자기검열이라는 이름의 억압된 자의식과 왜곡된 시각을 이르는 말일 터. 소설 속 인물의 원형이 가까운 곳에 있을수록 천사화하거나 표현이 위축될 가능성이 많다. 작가의 영혼이 온전히 자유로울 때 자유로운 글이 나온다. 자신을 키울 수 있는 이는 자신밖에 없으니,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자기통제의 틀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첫 번째 소설을 발간하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때 평론가 김양헌 선생님이 참석하셨다. 그분이 지금껏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미 병고가 깊을 때였는데도 선생님은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다. 선생님은 유언인 듯 진실한 글을 쓰라고 말씀하셨다. 그날의 마지막 포옹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진실한 글.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 글.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글.자기검열의 틀을 벗어던지기 위해 나를 뚝 떼어서 벽장에 집어넣는다. 자기애보다 큰 훼방꾼은 없다. 무슨 글을 어떻게 쓰건 요점을 분명히 파악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소설 속에는 내비게이션도 없고, 표지판도 없고, 길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에 홀로 서 있는 게 소설이다. 여전히 버겁고 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대지만 오래 가까이하다 보니 이제는 둘도 없는 친구 같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힘으로 나를 토닥여주기도 하고 틈을 보여주기도 한다. 글의 위로를 받다 보면 든든한 친구가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잘 써보자는 각오도 생긴다. 아이들이 자라는데 시간이 필요하듯이 글도 마찬가지, 자라는 것도 늦되고 글도 늦되어서 늘 혼자 달리는 기분이었다. 글을 쓸 때도 그런 기분을 자주 느꼈다.질문을 바꾸어본다.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때때로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있긴 하지만 까뮈의 어머니 같은 절대적인 인물은 없었다. 힘들여 쓴 글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까뮈의 유고작에 씌어 있는 헌사처럼 생애를 통틀어 단 한 사람이라고 손꼽을 수 있는 이에게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귀가 어둡고 글까지 몰랐던 어머니, 까뮈 소설의 원형은 바로 그 어머니의 침묵이었다. 내 영혼을 촛불처럼 밝혀줄 원동력이 무엇인가 돌아보니 그것은 바로 희망을 추구하던 희망 없음의 절대적 고독이었다. 어둠에 갇힌 자신에게서 자유롭고 싶었던 갈망. 어쩌면 나는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정옥 소설가

2019-07-25 11:37:50

모리사키 가즈에(1927- 현존)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우리가 모리사키 가즈에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조선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일본인이 있다. 바로 작가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이다. 그녀는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서 1944년 일본으로 귀국하기까지 17년간을 조선에서 살았다. 유년기와 청소년기 대부분을 조선에서 보낸 셈이니 조선을 고향이라고 부를 만하다. 일제강점기를 기억하는 한국인치고 모리사키 가즈에의 이 발언을 달가워하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그렇지만 모리사키 가즈에는 조선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이루는 원향(原鄕)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라고 말한다. 모리사키 가즈에의 에세이 '경주는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1984)는 고향으로서의 조선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그 기억은 어린아이답게 담백하다. 중국인 식당과 러시아인 상점을 지나서 아버지를 만나러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로 뛰어가던,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열 살 소녀의 마음, 딱 그만큼이다. 그 마음에 제국과 식민지 간의 경계가 있을 리 없다. 글 속의 소녀는 아버지와 함께 강변을 산책하고, 어머니와 조선인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가 하면, 어머니가 만들어 준 치킨라이스를 먹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어떤 선물을 받을 것인가를 기대한다.또한 그 소녀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고, 조선인 학생은 학교에서 일본말을 사용하며, 일본군인들이 대구 땅을 마음껏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별다른 이질감이나 의문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태어나면서부터 봐온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선인 여자와 일본인 남자 간에 태어난 혼혈 아이를 보면서 불쾌감이나 저항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안온한 일상에 감추어진 식민지 조선인의 증오와 분노, 슬픔, 조선인이 당하는 차별에 대해 겨우 열 살을 넘어선 어린 소녀가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경주는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가 이처럼 어린 소녀의 천진난만한 기억으로 채워져 있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어른이 된 모리사키 가즈에가 유년기의 기억에 가하는 차가운 비판이 함께 들어있다.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누린 안온한 일상을 두고 "우리들의 생활이 그대로 침범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식민지 조선 땅을 거쳐 간 일본인 그 어느 누구도 내뱉은 적이 없는 말이다. 또 일제가 일으킨 전쟁에서 죽어간 수많은 조선인들에 대해서 자신을 대신하여 희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 땅에서 태어난 일본인 그 어느 누구도 내비친 적 없는 감정이다.이러니 모리사키 가즈에에게 있어서 조선을 기억하는 일이 어떻게 행복하기만 할 수 있었을까. 그 기억의 과정은 따뜻하지만 고통스러운 것이었음에 분명하다. 일제 강제 침탈로부터 백 년도 더 지난 이 시기, 모리사키 가즈에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그 침탈의 역사를 기억하며, 글을 통해서 속죄를 이야기 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 자체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원죄(原罪)라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은 암울한 한일관계에 작지만 강한 빛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7-25 11:36:10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광장] 뫼비우스의 띠

작가 조세희가 1970년대 후반에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열두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며 첫 번째가 '뫼비우스의 띠'이다. 이것은 첫 단편의 제목일 뿐만 아니라 나머지 단편들을 관통하는 주제를 나타내며 세상사 많은 시시비비가 이 띠의 성격을 닮았음을 시사하고 있다.종이를 잘라 띠를 만든 후 띠의 양 끝을 한 번 꼬아 붙이면 뫼비우스의 띠가 된다. 뫼비우스의 띠에선 어느 지점에서나 띠의 중심을 따라 한 바퀴 이동하면 출발한 곳에서 정반대 지점에 도달할 수 있고, 계속 나아가 두 바퀴를 돌면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우선 뫼비우스의 띠 각 지점에서는 안팎이 구분된다. 안이 없이 밖이 있을 수 없고 밖이 없이 안이 있을 수 없듯이 이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공존한다. 이처럼 선과 악, 긍정과 부정, 옳고 그름처럼 가치가 대립되는 것들도 야누스의 두 얼굴같이 서로 다르면서도 공존함을 시사하고 있다.연작 중 두 번째 단편 '칼날'의 주인공인 주부 신애는 난장이를 불러 수도꼭지를 교체시킨다. 이때 펌프가게를 운영하는 사나이가 나타나 자신의 사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난장이에게 심한 폭력을 가한다. 이를 제지시키기 위해 신애가 식칼을 휘둘러 사나이의 팔에 상처를 입힌다. 여기서 난장이가 수도꼭지를 교체해 주는 행위는 신애 입장에선 선이고 사나이 입장에선 악이다. 그리고 신애가 칼을 휘두르는 행위는 난장이에겐 선이지만 사나이에겐 악이다. 이처럼 어떤 행위가 보는 관점에 따라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띠고 있는 것이다.또한 뫼비우스의 띠에선 특정한 지점에서 이동함에 따라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된다. 이동, 즉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선과 악, 옳고 그름, 강자와 약자의 역할이 뒤바뀔 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연작 중 네 번째 단편은 연작소설과 이름이 같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재개발 지역에서 집을 팔아도 아파트 입주권을 살 형편이 안 되는 난장이 가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결국 난장이가 집을 판 날 막내 영희가 가출을 한다. 영희는 자기 집을 산 사나이를 따라 가서 그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때때로 성적 유린까지 당한다. 남자로부터 신임을 얻은 영희는 잠든 남자를 마취시키고 자기 집 관련 서류와 아파트 입주에 필요한 돈을 챙겨 달아난다. 지금까지 영희는 약자이며 피해자인 선을 나타냈고 사나이는 강자이자 가해자인 악을 상징했다. 그러나 이날 밤엔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뀌었다. 영원히 약자나 강자로 살 수 없고 영원히 선하거나 악하지도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때로부터 40여 년이 흘렀지만 세상은 여전히 시시비비가 넘치고 있고, 옳고 그름에 관한 가치관조차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대립은 발전을 위한 지난한 몸부림이다. 몸부림이 긍정의 열매를 맺기 위해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인정하고, 소통하고, 곡진하게 설득해야 한다.그러함에도 자기와 자기 집단만이 선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자신이 바라보는 동굴 밖 세계만 인정하는 사람들, 권력에 취해 '완장'(윤흥길 작)의 주인공 종술처럼 공격적이지만 없는 것은 대책이고 있는 것은 무능인 사람들도 있다. 오늘 하는 행위가 선하게 보일지라도 절대선(絶對善)은 아니며 긍정적 효과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있을 수 있음을 통감(痛感)해주길 바란다. 오늘 선을 행하여도 내일은 어쩌다 악을, 그리고 훗날엔 다시 선을 행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그래서 동과 서, 여와 야,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견제하며 보듬어주는 세상을 꿈꾼다.

2019-07-25 11:23:17

김평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기고]웅비하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미·중·일·러 4대 강국이 북한을 지렛대로 남한을 흔들어서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고 또다시 남북한을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 하고 있다.특히 2차대전 전범국인 일본은 전범국의 멍에를 벗어 보려고 발버둥치다가 이제 공공연히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면서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근원적 해결 없이 우리나라 대법원의 징용자 판결을 문제 삼아 경제보복을 자행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징용자 판결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말이다.우리 정부 관계자는 7월 17일 외신 기자단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가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삼성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삼성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보복 조치를 철회하라고 밝혔다. 또 "반도체 생산라인 조업 중단으로 끔찍한 결과를 상기시키고 싶지 않다. 세계 수십억 명 소비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도 했다. 일본을 비판하며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오늘날 대일관계가 한국으로선 난제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감정적으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대처함이 더욱 바람직하다.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나 독도 문제 같은 과거사 문제는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일본의 수출규제에는 온 국민의 슬기를 모아 대처해 나가야겠다.오늘날 일본을 있게 한 메이지유신도 도쿠가와 막부를 몰아낸 뒤 시작됐다. 19세기 당시 서로간 앙숙이었던 사쓰마번과 조슈번이 적과의 동맹을 맺어 메이지유신을 탄생시켜 오늘 일본 발전의 모태가 된 것이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도 글로벌시대에 걸맞게 서로 적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으로 손을 맞잡고 서로가 윈윈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최근 일어나고 있는 글로벌 경쟁시대를 볼 때 국가와 국가 간 영토선이나 주권은 힘 있는 나라의 것임을 새삼 명심하고 국가의 힘, 즉 실력을 기르는 데 더욱 매진해야겠다. 도산 안창호 독립투사께서도 "나라를 독립시키려면 실력, 곧 힘을 길러라"고 강조하셨다.이러한 힘, 국력을 바탕으로 이승만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명언을 온 국민이 가슴에 새기고 하나로 뭉칠 때 웅비하는 대한민국은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 되리라 본다.우리는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정보화, 나노화 및 4차 산업화 시대로 너무나 빨리 한꺼번에 달려온 나머지 그 후유증 또한 있게 마련이다. 이제 온 나라가 월남 패망 때처럼 부패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침탈당할 때처럼 사분오열로 분열되어 있고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세기말적 현상이 난무하고 있음을 볼 때 심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이러한 국가적 난제 앞에 우리 모두는 가슴에 손을 얹고 겸손히 반성하며,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국가와 민족 앞에 헌신하는 길만이 바로 자기 자신도 잘사는 길임을 명심해야겠다.풍전등화처럼 국가가 어려울 때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는 굳은 신념과 실천이 웅비하는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처럼 지금이 바로 영웅이 출현해 웅비하는 대한민국을 건설하리라 믿고 확신한다.

2019-07-25 11:05:43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연극 재미없다! 재미있다!

어떤 아주머니 두 분이 어디선가 연극 초대권을 받았나보다. 이 두 분은 연극이란 것을 처음 보기에 들뜬 마음으로 극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공연을 보고 난 후 이 두 분은 "연극은 너무 어렵고 지루해서 재미없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연극 공연만 올라가면 대극장이든 소극장이든 가릴 것 없이 연극을 관람하는 아주머니 한분이 계신다. 이분은 연극 관람하는 것이 자기의 행복이요 기쁨인 것이다. 그리고 이분은 "연극 너무 재미있다"고 말한다.왜 똑같은 연극을 보면서 너무나 다른 양상이 나타난 것일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연극은 가장 대중과 가까이 할 수 있는 예술이면서도 가장 철학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예술이라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관객의 일반적 두 유형 중에서 전자는 부조리극이나 실험극 혹은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연극을 관람한 것이고 후자는 가족 드라마나 보기 편한 리얼리즘극 혹은 유명한 고전의 감동을 순차적으로 느끼면서 관객으로서의 훈련이 되어 진 것이라 여겨진다.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뽑으라면 바로 무대에서 표현하는 배우와 무대에서 관람하는 관객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어떤 이야기가 더해져 바로 연극예술이 성립 되는 것이다. 관객은 연극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관객이 존재하지 않는 연극은 연극으로서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연극은 지금! 이 순간! 표현하는 자나 관람하는 자가 같이 교감하고 느끼며 동화가 되어 갈 때 비로소 성취감을 맛보는 예술장르이기에 관객도 배우와 마찬가지로 보는 것에 훈련 되어져야 하며 연극을 알고 봐야지만 연극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예술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첫 느낌은 평생을 간다는 어느 광고의 말처럼 관객으로서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전자의 유형처럼 그저 연극을 보러 갔을 때 그 실망감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연극은 보기 싫다로 귀결 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바로 연극도 영화처럼 알고 봐야 된다는 것이다. 연극은 영화보다도 더 많은 형식과 장르가 존재하기에 극단들도 관객들로 하여금 자기 취향에 맞게 작품을 선택 할 수 있도록 홍보해야하며 연극을 한번 본 관객이 연극 마니아가 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작품에 임해야 할 것이다.대중화 시대에서 연극이 살아남으려면, 관객을 존재시키려면, 상업화와 같이 상생하려면, 연극예술만이 가진 현장성과 객석과 무대 사이의 교감 그리고 극장 문을 나서고 잠자리에 들어도 가시지 않는 그 묘한 여운을 관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현장예술인들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한편의 잘 본 연극을 통해 한명의 관객이 열 명이 되고 열 명의 관객이 백 명 천명이 되는 그 날을 꿈꾸어 본다.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7-25 11:04:50

권미강 작가

[권미강의 생각의 숲] 인디언의 기도문

인디언들은 스스로 자연이 되어 살아온 사람들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며 산을 깎고 물길을 바꾸고 강을 막아서는 사람들에게 "자기 조상이 묻힌 대지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들짐승보다 못한 자이다"고 꾸짖었다. 대지는 어머니의 품이고 그 위의 모든 것이 책이며 스승이고 선한 세계로 인도하는 성직자라고 믿는 그들은 자연 앞에서 늘 겸허했다.인디언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열두 달 이름이다. 부족마다 다른 이름으로 붙인 달 이름은 그 자체가 자연에 순응하고 어울리겠다는 인디언들의 철학이다. 아리카라족의 1월인 '마음이 깊은 곳에 머무는 달'에서 아라파호족의 4월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과 5월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 크리크족의 7월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 퐁카족의 12월 '무소유의 달'까지 그들의 삶은 지구촌의 빛나는 시였다. 시처럼 빛나던 인디언들은 땅따먹기 하듯 깃발을 세우고 자신들만의 문서를 주고받으며 자본의 탑을 세운 사람들에게 짓밟혔다.인디언 호피족 추장이었던 케웬합테와는 '얼굴 흰 사람들을 위한 기도문'을 통해 백인 침략자들을 영적으로 굴복시켰다. "할아버지 위대한 정령이시여, 얼굴 흰 사람들을 축복하소서. 그들은 당신의 지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우리 인디언들을 없애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들은 힘이 주어졌을 때만 안심을 합니다. 그들을 축복하소서. 그들에게 우리가 이해하는 평화를 보여주소서. 겸허함을 가르치소서.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언젠가는 그들 자신과 그들의 아이들까지 파괴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니까요."36년간 이웃나라를 무력으로 지배하고도 뉘우침 없이 다시 경제 전쟁의 서막을 여는 일본 아베 정권과 반일 감정을 위험한 것으로 치부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인디언의 기도문을 전하고 싶은 날들이다.작가

2019-07-24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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