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안중식(1861-1919), ‘탑원도소회지도’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안중식(1861-1919), ‘탑원도소회지도’

안중식이 그린 근대기 아회도(雅會圖)이다. 하늘에 둥근달이 떠 있고 달빛을 받은 하얀 탑이 보인다. 앙상한 잡목과 숲 사이로 드러난 기와지붕 아래 난간을 두른 누마루에 술상이 차려져 있고 8명의 인물이 함축적인 형태로 그려져 있다.화제는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 "임자(壬子) 원일지야(元日之夜) 위(爲) 원주인(園主人) 위창인형(葦滄仁兄) 정(正)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으로 1912년(지금으로부터 108년 전) 설날 위창 오세창(1864-1953)의 집에 지인들이 모여 서로 세배하며 새해 덕담을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밤이 늦도록 자리가 이어지자 참석자 중 한 명인 안중식이 집주인에게 그려 준 그림이다. 모임을 기념하고 길이 남기기 위해서라기보다 대접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즉흥적으로 그린 것 같다.오세창의 집은 탑골공원 근처인 돈의동 45번지의 대지 105평 되는 한옥으로 지금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이 있는 곳이었다. 원래 당호는 여박암(旅泊菴)인데 그림에서처럼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보여 지인들 사이에서 탑원으로 통했던 듯 오세창은 '탑원초의(塔園草衣)'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다. 달밤의 하얀 탑, 기와지붕의 탑원, 8명의 참석자 등 실제와 가상의 풍경인 물안개가 자욱한 호수를 결합해 이들의 고상한 모임에 걸 맞는 정취를 나타냈다.'도소회'는 연초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약술인 도소주를 마시는 것을 뜻한다. 6세기의 '세시기(歲時記)'류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동아시아의 오래된 풍속이었으나 고려시대에 비해 조선시대에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안중식은 이 그림에 왜 '탑원도소회지도'라는 고풍스런 제목을 달았을까? 혹시 이 날 길경, 육계, 방풍, 산초 등 약재를 넣어 만든 도소주를 실제로 마셨기 때문에 안중식이 이런 제목을 붙였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도소주는 동파관을 쓰고 나막신을 신는 고풍(古風)을 즐겼던 오세창이 담가 지인들을 대접했을 수도, 목돈이 생기면 안주거리를 쌀 보다 먼저 장만하고 집에 가양주가 끊이지 않았다는 안중식이 담가 가지고 갔을 수도 있을 것 같다.오세창은 일제의 강제 병탄으로 나라를 빼앗긴 후 탑원에 칩거하며 우리나라 서예가, 화가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하는 작업에 착수해 1917년 『근역서화징』을 탈고한다. 총 1,117명의 서화가에 대한 기록을 모은 위대한 업적이다. 『삼국사기』부터 조선시대 문집에 이르기까지 274종의 서적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펼쳐보며 관련 내용을 일일이 발췌해 작가별로 정리한 것이다. 민족의 역사와 미술문화에 대한 애착, 전통에 대한 존중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18년부터는 손병희, 권동진, 최린 등 천도교 동지들과 기미독립선언을 준비한다. 이 그림 속 인물들 중에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8명 중 한명인 안중식 또한 오세창, 손병희, 권동진 등과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였다는 이유로 삼일운동 후 일경에 잡혀가 경성지방법원에 내란죄로 회부되어 심한 문초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1919년 11월 2일(음력 9월 10일) 5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미술사 연구자

2020-04-19 06:30:00

[광장] 조율(調律)

[광장] 조율(調律)

기타와 같은 현악기나 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는 수시로 조율(調律)이 필요하다. 현악기의 현(絃)이나 건반악기의 건반에 연결된 줄이 온도와 습도에 따라 길이가 변할 수 있으므로, 정확한 음을 내기 위해서는 그 길이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악기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과 몸도 조율이 필요하다. '정신 줄을 놓다'라는 말에 나타나 있듯이 우리말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줄에 비유했다. 마음의 줄을 놓으면 무엇을 깜박 잊거나 실수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영남 방언에 '주책없고 사리 분별력이 없다'는 뜻으로 '오줄없다'라는 표현이 있다. '오'에 '줄'을 합성한 이 말의 어원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오'를 '총명할 오'(晤)나, '다섯 오'(五)로 보는 설이 가장 그럴듯하다. '총명할 晤'로 보면 '총명 줄이 없다'라는 뜻이, '다섯 五'로 보면 '마음을 구성하는 다섯 가닥의 줄이 다 갖춰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이렇듯 마음의 줄을 모두 챙겨 잘 조율해야 함은 말 속에도 담겨 있다.위에서 조율은 마음의 조율을 나타냈지만 마음은 몸에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마음과 몸의 조율'을 뜻하게 된다. 마음은 몸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으므로 그릇이 온전하지 못하면 마음 또한 아프기 마련이고,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면 몸이라는 그릇이 제 기능을 다할 수도 없다. 결국 심신일체(心身一體)이므로 심신을 잘 조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코로나19로 국민들이 두 달 이상 일상을 잃어버린 와중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겹친 '가장 잔인한' 4월이 지속되고 있다. 다행히 많은 나라들로부터 찬사를 자아낼 만큼 국민들은 침착하고 질서 있게 질병에 대응하였고, 의료진들은 살신성인 정신으로 임하여 긴 터널을 벗어나고 있다. 총선도 지난 수요일 무사히 치러졌다. 조만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종료하고 '생활 방역 체계'로 전환할 것이다. 그간은 발등의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일상생활로 돌아갈 때인 지금은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를 때다.지친 몸과 마음엔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절대 휴식은 하루나 이틀이면 족하다. 지나치면 오히려 권태롭고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자신에게 맞는 절대 휴식을 취한 후엔, 마음의 평안을 통해 몸의 평안에 이르는 길인 독서, 몸의 평안을 통해 마음의 평안에 이르는 방법인 운동을 할 것을 제안한다. 독서와 운동엔 여러 종류가 있고 난이도(難易度)도 각기 다르지만 본인에게 맞는 쉬운 것을 택할 것을 권한다.심신이 잘 조율됐다는 느낌이 오면 가만히 눈을 감아보라. 몸이 우주에서 사라진 것같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몸은 정상이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어디든 아프면 소식이 오기 마련인데 기별이 없다면 안녕한 것이고, 정상이다. 이제 조용히 눈을 떠보라. 자신이 우주의 중심에 온전함을 목격할 것이다. 마음은 평온하고, 일에는 자신감이 충만하며, 일터로 달려가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면 마음도 정상이다.조율이 잘된 악기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조율이 잘된 사람은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심신을 조율하여 본인과 가족과 나라를 구하시길 빈다. 아울러 여야(與野) 간에도 조율이 필요하다. 총선도 끝났으니 여야 간 이견을 서로 잘 조율하여 더 이상 '국민이 정치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도록' 지금까지의 정치 후진성을 탈피해 주길 바란다.

2020-04-17 19:04:49

[기고] 4·19혁명을 회고한다

[기고] 4·19혁명을 회고한다

자유당의 장기 집권을 위한 부정선거 음모가 진행되면서 정·부통령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60년 2월 28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야당의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회가 개최됐다.선거 패배를 예감했던 자유당 정부는 고교생들의 유세장 참가를 차단하기 위해 일요 등교를 강행하기까지 했다.독재정권의 간계를 파악한 정의의 학생들은 불의에 항거했다.학교에 모인 학생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경북고등학교와 경북대사대부고 학생들이 주도한 2·28민주화운동이었다.오늘날 우리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자유로워진 것은 이 2·28운동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4·19혁명은 1960년 4월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 조작을 한 것에 반발해 부정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이다.시위는 3월 18일, 데모 대열에서 실종되었다가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떠오른 중학생 김주열 군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더욱 격화됐다.서울에서는 고려대 학생 1천여 명이 구속 학생들의 석방과 학원의 자유 보장, 독재정권의 타도를 외치면서 시가지 행진이 시작됐다.또한 서울 지역 총학생회 간에 물밑 논의를 통해 4월 19일 오전 9시에 일제히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와 중앙청 앞에 집결하는 것으로 행동지침을 정했고, 경무대 앞에는 대학생 2만여 명이 모였다.이에 경찰은 무차별적으로 총을 쏴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날은 비가 와서 희생자들의 선혈로 아스팔트를 붉게 물들였다. 과잉 진압은 국민을 격노케 했다. 학생들의 희생으로 제1공화국은 막을 내렸다.4·19 당시 필자는 대학교 3학년이었다. 뿌리까지 말라버린 민주주의 나무을 소생시켜 보자는 일념으로 학우들과 뜻을 같이하며 교문을 나섰다.당시 총학생회장은 자유당 고위층의 가까운 친척이어서 제외시키고 동료 학생들은 변론부장으로 있던 필자에게 데모대의 총 지휘권을 맡겼다.도지사 관사로 가기 위해 2군사령부 앞을 지날 때, 소총에 칼을 꽂은 병사들이 우리를 격려하는 눈빛을 보여줘 시위의 사기가 진작됐다.광란하는 경찰들이 휘두른 방망이에 수많은 동료들이 부상을 당했고, 소방관들은 우리 시위대를 향해 붉은 염료를 섞은 물대포를 쏘아댔다.시위를 마치고 학교 강당으로 돌아와 부상당한 학우들의 쾌유를 빌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만세를 소리 높이 힘차게 불렀다.부상당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 우리 일행은 어깨띠를 두르고 모금을 위해 거리로 나갔다.시민들로부터 모금한 그 액수는 거금이었으며 매일신문사에 기탁했다.다음 날 아침 필자는 학장님의 지프에 스피커를 장착하고 간부 3명을 대동해 대구 시가지를 누비면서 '자유당 정부는 무너졌습니다. 시민 여러분! 생업에 전념합시다'라는 구호로 하루 종일 가두방송을 했다.스피커 소리에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주었다.4·19혁명은 한국 정치 발전사에 하나의 굵직한 획을 그은 역사적으로 크나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4·19혁명의 성공으로 외국이 우리 민족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세계민주화운동사에 동참하게 되었던 것이다.필자의 학창 시절에 있었던 4·19는 '자유 회복과 질서 의식'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거리의 함성이 귓전에 메아리치는 듯하며, 당시의 일은 나의 생에 가장 보람 있고 값진 추억으로 남아 있다.

2020-04-16 15:47:00

[춘추칼럼]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라

[춘추칼럼]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라

문재인 정부 집권 중반 들어서 치러진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례 없는 압승을 했다. 국민들은 코로나19 국난 앞에 '견제'보다 '안정'을 택했다. 민주당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에서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를 포함해 네 차례 연속 승리한 최초의 정당이 됐다. 180석의 '슈퍼 여당'이 된 민주당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국회까지 독차지하면서 개헌 빼고는 다 할 수 있게 됐다. 모든 법안·예산·정책을 정부·여당 마음대로 추진할 수 있고, 단독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가 가능해 국회선진화법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이번 총선 결과가 주는 함의는 그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주류 세력인 보수 산업화 세력이 진보 민주화 세력으로 교체되어 기존의 '보수·진보 양당 체제'가 무너지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진보 좌파 1.5 정당 체제'가 구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차지하는 의석은 1이고, 그 외 정당들은 모두 합쳐도 0.5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다. 일본 자민당이 1955년 창당부터 50년간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런 정당 체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018년 8월 5일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전국 순회 연설회에서 "2020년 압도적 총선 승리와 2022년 재집권을 통해 앞으로 20~30년은 집권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적이 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서 벗어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용어는 미국의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업의 M&A 경쟁에서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에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에 많이 사용된다. 특정 정당이 선거에서는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을 빗대어 사용될 수 있다.지난 2008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공천 파동에도 불구하고 153석을 획득했다. 여기에 '친박 연대' 14석과 '친박 무소속 연대' 13명을 더하면 범여 의석은 180석을 차지하게 됐다. 그런데 총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현재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와 내전이 시작됐다. 필자가 2010년 10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소속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정권교체라는 응답이 무려 33.6%나 됐다. 박 전 대표는 전략적으로 국민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시종일관 '여당 속의 야당'이라는 이미지 마케팅을 구사했다. 현직 대통령과의 이런 차별화 전략이 2012년 대선에서 인기 없는 여당인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51.6%의 득표로 승리하는 데 기여했다.한국 정치에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하는 것은 철칙이다. 조국, 임종석 등과 같은 현재 권력인 대통령 세력(친문)과 현재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며 미니 대선인 서울 종로에서 낙승한 이낙연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 권력(친이) 간 대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첨예화될 수 있다. 이런 갈등은 문재인 정부 3년 6개월이 끝나는 시점인 올 연말부터 본격화될 개연성이 있다. 여기에 민주당과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만들려다가 민주당으로부터 팽당한 원로 진보 인사들이 중심 된 정치개혁연합 세력과 친문·친조국 세력 간의 갈등도 심화될 수 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진보의 분열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분명, 절대 권력은 절대 분열될 수 있다. 총선 압승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분명, 민주당이 이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긴 것이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압승은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성과에 대해 심판받았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민주당이 승리에 도취해 '협치와 포용'보다 극단과 배제의 정치에 몰입해 갈등과 분열을 가져오면 그것이 바로 승자의 저주가 될 수 있다. 이제부터 통합과 공존의 정치에 앞장서야 미래가 있다.

2020-04-16 15:18:47

[매일춘추] 고정관념의 함정, 그리고 탈피

[매일춘추] 고정관념의 함정, 그리고 탈피

작품을 쓰고, 글을 쓰다보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음악적인 부분이나 문장들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어떤 주제에 대하여 글을 쓰는 순간이면 항상 고정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자신, 혹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고정관념 속에 가둬 놓고 그 사람을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서커스단에서 곡예를 시키는 코끼리가 작은 쇠사슬에 발이 묶여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코끼리가 새끼일 때 작은 쇠사슬에 묶여 훈련을 받았고, 그때 코끼리는 도망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인식은 평생 코끼리를 지배했고, 불가능이라는 인식이 각인된 코끼리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바로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함정이다.우리의 삶에도 그러한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과거의 실패가 각인돼 시도하면 할 수 있는 일에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시도조차 안하는 경우가 있고,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 어떠한 소문을 듣고, 혹은 일부의 사례만을 전해 듣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의식 속에 맹신하게 되고 고정관념으로 굳어져버린 것이다.입증된 것도 자신이 경험한 사실도 아니면서 선입견과 편견, 고정관념을 갖게 되는 것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거짓이거나 진실인 것처럼 뒤섞여 혼재되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정관념이 주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음의 중요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위기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고정관념은 문제없던 사람을 한순간에 형편없는 문제아로 만들기도 하고, 그것을 꽤 오랜 시간 지속시키기도 한다.같은 맥락으로 예술가들 고민의 공통점은 고정관념의 탈피에 있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초연하는 날,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이제까지 듣던 아름다운 선율과는 다른 무용수의 기괴한 움직임과 작품 스타일 때문이었다. 현대음악 작곡가인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아무 소리가 없이 시간이 흐르는데, 음악은 꼭 소리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벗어났기에 사람들의 야유를 받았다.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들의 예술을 보기 위하여 공연장을 찾고, 그 작품들은 후학들에게 예술의 표본이 되었다. 협화음들의 아름다운 소리만이 음악의 전부였던 시절이 지나고 불협화음의 등장이 존재하는 현대음악, 더 나아가 현대 예술이 지금처럼 성행하게 된 것은 고정관념의 탈피가 만들어낸 성과이고, 그것이 곧 새로운 길의 탄생이기도 하다.이것은 곧 우리의 삶에서도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야할 앞으로의 모든 시간들 속에 고정관념으로의 탈피는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만나게 될 예술을 포함한 세상에서의 모든 새로움을 열어주는 지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정관념의 탈피는 여러분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줄 것이다.

2020-04-16 13:48:25

[매일춘추] 군(君)과 꾼

[매일춘추] 군(君)과 꾼

제21대 국회의원 총선이 끝났다. 역대 최고 투표율의 사전투표 기록을 남겼다. 무려 26.69%로 지난 20대 총선 사전투표율이었던 12.2%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 2014년 지방선거에 사전투표가 처음으로 도입된 이래 최고치다.여기서 주목할 건 대구광역시가 17개 권역 중에서 가장 낮은 23.6%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코로나로 가장 주목을 받아왔고, 국가에서 코로나19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이니, 투표소에서 감염을 우려한 탓일 수도 있다.이유야 어떻든 정치적인 요소들이 각종 지원 제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되어 왔는지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출산장려금만 해도 편차가 두드러진다. 이 모든 것들의 기준이 되는 것이 총선이고 대선이다. 정치적 인사들의 역량과 국가의 정치적 사안의 가중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임기 내 국내 정세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만큼 힘든 시기에 그만큼 중요한 선거가 어제 끝난 것이다. 참정권은 행사할 때에만 유효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덕이 뛰어난 임금을 성군(聖君)이라 부른다. 여기서 군(君)은 임금을 뜻한다. 그 외에도 여러 의미로 쓰이다가 후에 친구나 아랫사람을 부르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다. 시류(時流)에 따라 한자의 뜻도 다양하게 변해왔지만, 근본은 하나다. 君자는 尹(다스릴 윤)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尹은 지팡이 내지는 지휘봉 같은 모양을 뜻하는 형성문자다.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분명한 건 하늘의 뜻을 전하는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것이 정설임에는 큰 이견이 없다. 흔히 현재의 대통령을 과거의 임금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엄연히 다르다.임금은 백성은 물론이고 하늘의 뜻을 대변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거기에 비해 대통령은 삼권(三權) 중 하나인 행정부의 수반일 뿐이다. 물론 최고의 통치권자인 국가 원수가 할 수 있는 역량과 권한이야 가공할 만하겠으나, 국민들로부터 탄핵을 받을 수도 있는 자리임은 분명하다.그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뽑는 일이 이번 4.15총선이었으니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던가. 이번 짧은 유세기간 동안 코로나19로 인한 열악한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했을 각 총선 후보자들의 노고와 국민들의 투표가 헛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당선자들은 혼자 옳다는 오만과 객기를 버리고,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인지하여 실천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정치를 하는 이들은 임기응변과 처세술에 능한 '꾼'이어서는 곤란하다.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사람, 즉 정치인이지, 정치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그래야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이번 당선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백성이 아니면 임금이 누구와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그래서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고 하는 것이다. 백성은 먹을 것이 아니면 살아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한다." (정조이산어록, 2008. 1. 25. 고전연구회 사암)

2020-04-16 06:30:00

[신세돈의 새론새평] 국가적 외환위기에 대비한 비상 대책

[신세돈의 새론새평] 국가적 외환위기에 대비한 비상 대책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 벌어진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 및 외환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주가가 폭락하고 국채시장도 급격하게 가격이 흔들리고 있다. 비교적 환율은 안정적이지만 그것도 마냥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의 특징은 전 세계적으로 금융시장과 실물시장의 충격이 빠르게 번진다는 점이다. 금융시장의 파급도 빠르지만 소위 서플라이 체인이라는 공급망의 국가적 연결 때문에 한 나라의 부품 공급이 막히면 전 세계적으로 생산에 차질이 생기게끔 되어 있다.이런 코로나 영향에 따른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한국의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은 계속해서 불안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유통, 관광, 항공 등 서비스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큰 까닭에 만약 이들 기업의 경영 악화와 이로 인하여 재무건전성이 흔들리게 되면 순식간에 회사채 시장 불안으로 번질 가능성도 높다.우리나라는 금융시장, 특히 외환시장이 취약하다. 1997년과 2008년 외환위기에서 봤듯이 겉으로는 튼튼한 것 같아도 실제로는 매우 취약한 것이 한국의 외환시장이다. 이것은 장부상의 외환보유액과 실제 가동할 수 있는 외환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장부상으로는 자산이라고 되어 있어도 실제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현금화할 수 없거나 장부 가치와 실제 가치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경우 그런 일이 발생한다. 이는 국가적으로 외환 관리가 매우 허술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안전성을 강화해야 할 외환보유액을 수익성을 위주로 운용하게 되면 외부적인 충격에 따라 자산 가치가 심하게 출렁거리게 되어 막상 급할 때에는 대규모 손실을 입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다시 1997년 IMF 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외환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외환 당국은 반드시 다음 사항을 지켜야 할 것이다.첫째로, 정부 당국과 전문가 그룹이 함께 참여하는 '외환시장 위기비상대책기구'를 가동해야 한다. 여기에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물론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증권업협회, 은행연합회, 보험업협회, 외국인투자가 등 민간금융 자본시장 대표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이 기구에서는 외환시장의 동향을 시간 단위로 모니터링하고 특히 투기 세력의 투기적 외환 거래를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환율의 안정화를 유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의 교란에 대한 엄중한 관리가 있어야 한다.그다음으로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의 유동성을 점검하고 확충해야 한다. 현재 약 50% 수준으로 알려진 회사채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미국과 독일의 국채 비중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외환보유액의 관리 기준을 수익률 중심에서 안전성 중심으로 조정하고 현금과 예금의 유동성 비중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외환 당국의 자산 운용 비중을 높이고 대신 민간 운용사의 운용 비중을 낮추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외환보유액의 운용 성과를 평가 분석하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셋째로는 외환 당국 외에 시중 금융기관과 민간기업, 개인들의 외환보유액을 충실하게 쌓아 제2선 외환 유동성을 관리해야 한다. 민간은행과 기업의 외환보유를 권장하고 이와 함께 이들 민간 부문의 해외 자산 및 부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상시 관리해야 한다. 이들의 외환보유액은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당국의 제1선 외환보유액과 함께 외환 위기를 막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넷째로 정책 당국은 외환시장 응급상황 발생 시 발동할 긴급 대책을 단계별로 사전에 공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당국의 철저한 대비책을 보고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게 되어 외환시장과 환율시장의 안정이 담보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끝으로 다른 나라, 특히 일본과의 외환 스와프를 확대하고 기존 계약 국가와의 스와프 계약도 확대하거나 계약 기간을 연장하도록 추진해야 한다.

2020-04-15 19:53:46

[기고] 코로나19, 아직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기고] 코로나19, 아직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대구의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대구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이후 폭발적으로 환자 수가 증가한 뒤, 최근 조금씩 사태가 진정되어가는 전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시민들과 의료진, 방역 당국의 노력에 힘입어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수보다 격리해제되는 환자 수가 더 많아졌다.다만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2월 18일 이후 대구에서 코로나19 감염증이 빠르게 확산하는 재난 상황에서 대구에서 근무하는 대다수의 응급의료진은 코로나19 환자들에 대한 검사, 치료 제공과 함께 이로 인한 급성심근경색, 급성기 뇌졸중, 중증 외상, 급성 심정지 등 주요 응급환자들에 대한 응급의료 공백 발생을 많이 우려했던 것이 사실이다.대구의 주요 응급의료센터들도 미처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의 응급실 유입으로 인해 2차 감염 예방과 응급실 방역, 소독을 위해 응급실 폐쇄가 불가피하게 발생했다.또 사회의 모든 관심이 감염병 유행에 집중되면서 시설, 인력, 장비 등 의료 자원이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우선 투입되면서 중증 응급환자들에 대한 진료 역량이 평상시에 비해 저하되어 응급의료 제공에 공백이 발생하는 문제점을 경험했다.하지만 병원들의 빠른 대처와 함께 2월 마지막 주부터 3월 말까지 한 달간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을 때 대구 주요 응급의료센터에는 중증 응급환자들이 주로 내원하였고, 경증 환자들의 응급실 방문 숫자가 현저히 줄어 이러한 응급의료자원 공급과 수요 간의 불균형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하지만 최근 2주 전부터는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환자들이 내원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음주 후 넘어져 얼굴 열상으로 내원하는 경우다. 가뜩이나 어려운 응급실 운영과 발열 환자나 호흡기 증상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응급실 공간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특히 음주로 인한 경증 응급환자들의 응급의료자원 소비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이러한 환자들의 방문은 중증 응급환자들에게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결코 안전 지역으로 볼 수 없는 응급실에서 경증 응급환자들이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우리나라의 코로나19 상황은 진정되고 있는 국면이나 위험 요인들이 여전히 잠재하고 있다. 해외는 아직 정점에 다다르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고, 일본은 도쿄 등 일부 지역에서 최근 환자가 급증하면서 사태가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대한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응급의료자원과 제공 능력이 이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중증 응급환자들에게 집중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예방 가능한, 특히 음주와 관련한 손상 발생을 줄이는 것이 절실하다. 두 달가량 지속된 움츠린 생활로 인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5년 전 국내에서 발생했던 메르스는 병원 감염이 대부분이었고, 지역사회 전파는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 종결까지 8개월가량 걸렸다.코로나19로 인해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대구 시민, 이웃을 위해 시민들의 더 많은 노력이 여전히 필요하다. 대구 시민 여러분, 조금만 더 참읍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0-04-15 18:57:52

[김은아의 북돋움] 사슴이 아닌 노루, 밤비에게

[김은아의 북돋움] 사슴이 아닌 노루, 밤비에게

직업 특성상 장거리 운전을 자주 한다. 그런데 공간지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읽는 속도가 느리다. 내려야 할 IC를 지나치고 길을 잘못 접어들어 되돌아 나오는 것은 예사이다. 이 길이 맞는지 의심되는 농로, 차가 잘 다니지 않는 시골길과 어디인지 모를 도로를 달릴 때는 대한민국 땅이 무척 넓게 느껴진다. 세계지도에서는 손톱 크기밖에 안 되지만 직접 운전해서 다녀보면 멀고 길고 깊다.도시와 어촌, 농촌, 산촌의 자연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계절을 알리는데 이맘때의 초록은 보드라워서 좋다. 그런데 한참 풍경에 취해 가다가도 잘리고 꺾인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나무들, 뼈를 드러내듯 처참하게 파헤쳐진 산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기분 좋게 흘러가던 감상은 그대로 멈춰 버린다. 골프장, 아파트, 도로 건설에 희생당하는 자연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그래서 혼잣말을 한다. '이제 그만 좀 하지.'물론 고속도로 덕분에 장거리 운전이 편해졌고 오가는 시간도 많이 단축됐다.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사는 사람으로서 고마움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은 필요한 만큼만 먹이를 구하고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에만 싸우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없이 변형을 이루며 자연을 침범하고 파괴한다. 너무도 당연한 듯이.코로나19의 역설, 인간이 멈추니 지구가 살아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면서 떠오른 장면이 있다. '숲 속의 노루 밤비'(파랑새)의 후반 어느 페이지이다. 이 책은 1923년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펠릭스 잘텐(1869~1945)이 발표한 동물소설로 인간이 저지르는 자연 파괴 행위를 다루고 있다. 100년 전에도 자연 파괴가 심각했지만 그에 대한 성찰이 부족함을 반성하고자 했던 잘텐의 작품은 시대를 앞선 생태 문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그런데 왜 사슴이 아닌 노루인가? '밤비'(Bambi)를 월트 디즈니가 만들어낸 만화영화의 주인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밤비가 사슴이라고 말한다. 미국에는 노루가 없다. 그래서 잘텐의 책을 영어로 번역할 때 노루인 밤비를 '흰꼬리사슴'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뒤 디즈니가 만화영화를 제작할 때도 영어로 번역된 책을 바탕으로 했기에 밤비는 노루가 아닌 사슴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만화영화가 성공을 거두자 많은 사람들이 '밤비'의 원작자를 월트 디즈니로 착각했다. 감동과 성찰로 가득한 원작소설이 만화영화에 밀려 외면당한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한 김영진 씨는 옮긴이의 말에서 '밤비'가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변형된 매체로만 작품을 만나서는 안 되며 원작을 읽음으로써 더 정확히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인간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엄마를 잃은 밤비는 숲속에서 혼자 그리고 더불어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총과 덫을 가진 사람들을 피해 수많은 고비를 넘는 동안 한 가지 물음에 골몰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다. '인간들은 도대체 왜?' 그런 밤비에게 늙은 수노루는 이렇게 말한다."'사람'은 다른 동물들이 말하는 것처럼 전지전능하지 않아. 세상의 생명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이 '사람' 덕분도 아니고! '사람'은 우리 위에 있지 않다. '사람'은 우리와 나란히 있을 뿐이야. 우리와 마찬가지이지. '사람'도 우리처럼 두려움과 배고픔과 고통을 겪는단다. 우리처럼 공격을 당하고 속수무책으로 땅에 쓰러지지."오래전, 처음 읽으면서 왜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도 같은 문장에 줄 긋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지금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모습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인간이 멈추니 지구가 살아난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지구의 자연이 정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인간의 활동이 비정상적으로 멈춘 결과이기에 마냥 좋지만은 않다. 인간도 움직이고 자연도 살고, 모든 생명체의 터전인 지구도 사는 방법은 없을까?

2020-04-15 18:30:00

[불가사의 인도]인도인의 눈에 비친 한국 여행객

[불가사의 인도]인도인의 눈에 비친 한국 여행객

인도인으로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아 인도 현지 여행 가이드로 일하는 Guru Bandhi 씨는 해학적인 말을 곧잘 한다. 그가 한번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외국인들은 비싼 여행비를 들여 인도에 와서 낯선 인도 문화를 구경하지만, 인도인들은 인도를 찾는 세계 각국 관광객의 쇼핑 문화와 여행 에티켓, 관광지 둘러보기 습관들의 차이점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니 굳이 해외로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을 농반 진반으로 이야기했다.그럼, 인도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의 관광과 쇼핑 문화가 어떨까 궁금했다. 인도인 Guru Bandhi 씨는 한국인들은 자기도취에 빠져 과시욕이 심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관광지에서의 인도 잡상인들은 한국인들의 쇼핑 심리를 꿰뚫어보기에 한국 관광객을 첫째 표적으로 삼는다.그는 필자에게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의 차이점을 쇼핑 문화를 예로 들며 이야기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들보다 주머니 사정이 더 좋지만 그들을 절대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 일본 관광객들은 중국이나 인도 여행에서 가급적 현지 물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백화점이나 시장, 식당 어디를 가든 정찰제 문화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현지 식당은 입구에 손님이 식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음식 메뉴마다 요금표을 붙여 놓아 가격의 투명성과 정직성을 강조한다.음식점 안에 들어가 메뉴판을 자세히 보면 반찬이 모자라 추가 주문할 경우의 가격까지 표시되어 있다. 일본인들은 모든 것이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다. 정직을 생명으로 여기는 일본인들은 중국이나 인도에서 부르는 값에서 반값으로, 또 반의 반값으로 파는 상업 문화를 불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런 상거래 문화에 대한 거부감 없이 잘 걸려들기에 인도나 중국 잡상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객이 되고 있다.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한국인들이 그런 문화에 잘 적응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 관광객 중 일부는 상인들이 제시하는 상품 가격보다도 더 할인가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인도에서 여행자들을 상대로 한 기념품 가게에 가보면 온통 한국인 고객뿐이다. Guru Bandhi 씨는 필자에게 한국인들의 이런 소비 풍조에 대해 궁금해 했다.필자는 그에게 초창기 한국민의 해외여행 풍토에 대해 이야기했다. 1970, 80년대 대한민국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국민들이 시선을 서서히 해외로 돌리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해외 국가들과의 교류가 잦으면서 해외여행 붐이 일었다. 해외여행 초반기에는 휴양이나 힐링 등 해외여행이 주는 긍정적인 요소보다는 관광지 방문이나 상품 구매에 관심이 많았다.일부 몰지각한 국민들이 해외여행 시 현지 방문국의 에티켓 준비도 없이 한국식 놀이 문화나 습관을 보이기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중국 식도락 관광, 동남아 성문화 관광, 일본 밥솥이나 전자제품 구매를 위한 싹쓸이 쇼핑 관광 등이 한동안 세계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필자가 해외여행 중 직접 겪은 일본과 한국인들의 해외여행 문화에 대한 상반된 일화 한 토막을 이야기해 주었다.1990년대 말 홍콩항 앞바다의 호화 선박 빅토리아호 선상 맥주홀 무대에서 악사들이 각국의 유행가를 연주하며 여행객들이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부르며 즐길 수 있는 여흥의 시간을 가졌다. 맨 먼저 중국 음악을 연주하며 중국 노래를 부를 희망자를 받았는데 겨우 한 사람이 나와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들어갔다. 그다음은 일본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 부를 사람을 찾았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그다음으로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이라는 멜로디가 울려 퍼지자 무대 위에는 몰려 나온 한국 여행객들이 합창하고 춤추기도 하고 사회자에게 팁을 주면서 신청곡을 부탁하는 경쟁이 붙었다. 결국 그 유흥마당은 한국인들의 독무대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날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상 위 맥주홀에는 일본 여행객이 한국 여행객보다 더 많았다. 일본인의 가라오케 발상이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보여준 신바람 문화에서 착안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세월이 흘러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면서 한국민의 여행 문화도 다양화되고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과거 추억의 한 페이지라고 전했다.

2020-04-15 18:30:00

[종교칼럼]4월의 아픔과 희망

[종교칼럼]4월의 아픔과 희망

기독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다. 금년에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고난주간과 부활절이 4월에 있다. 이 4월에 인류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2차 대전 이후 가장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계는 문명사적 대전환을 맞이했고, 세계사는 그 분기점조차 코로나 이전(BC·Before Corona)과 이후(AC·After Corona)로 나뉘고 있다. 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말처럼 "구세계는 죽어가고 있으며, 신세계는 태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지금은 괴물의 시대"인 것인가. 큰 혼돈과 깊은 어두움이라는 괴물 앞에 인류는 꼼짝 못하고 있다.혼돈(chaos)은 무질서, 틈, 그리고 공허다. 안정된 질서는 무너졌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다. 혼돈은 방향과 정체성을 상실함이다. 혼돈은 모든 부정성을 함축하고 있지만 그 속엔 새로운 세계와 질서를 생성할 무한한 힘이 있다. 그래서 헤시오도스(Hesiodos)는 혼돈을 '생명을 품은 원초적 물질'이라고 했다. 니체(Nietzsche)의 말처럼 "혼돈은 질서를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니라 혼돈 그 자체가 우주의 본질을 영원히 구성한다". 혼돈으로부터 검은 어둠과 밤이 생겼고, 밤으로부터 빛과 낮이 생겨났다. 그렇다. 혼돈에서 새로운 질서가 일어나고, 새 삶이 탄생하고, 인류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세계가 도래하는 것이다.'황무지'의 시인 엘리엇(ELiot)에게 4월은 '혼돈'이었다. 그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고 "겨울이 오히려 따뜻했다"고 노래했다. 이것은 단지 역설적 표현에 머문 것이 아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4월에 생명을 낳을 수 없으면 그것이 혼돈이고 어둠이다. 희망과 부활의 계절 4월에 부활의 소망을 품을 수 없고, 죽은 것과 다름없는 자신의 영혼을 목도하는 것이 잔인한 일이다. 하지만 희망은 '고통'과 '잔인함', '어두움'과 '혼돈'의 중심에서 잉태되고 있다.코로나19는 단지 고통과 공포와 혼돈인가. 홀로코스트를 온몸으로 겪은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말했다. 그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자원하고, 사랑을 베풀고, 용기를 보여주는 능력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했다. 인류는 자연재해, 감염병, 전쟁 등 수많은 위기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꽃피우며, 오늘을 일궈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 겨울이 깊고, 혹독할수록 봄은 더 찬란하다.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 없는 부활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그저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도 가장 치욕적인 죽음인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신의 아들이 죄인들의 손에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때, 땅에 어둠이 임했고, 땅이 진동했으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둠과 절망 가운데서 용서와 사랑, 부활의 희망을 심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서 미래를 말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코로나19의 두려움과 공포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희망과 부활을 꽃피우자. 신학자 몰트만(Moltmann)은 말한다."부활은 매일 일어난다. 사랑 가운데서 우리는 많은 죽음과 많은 부활을 경험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희망으로 거듭남으로써 부활을 경험한다. 우리는 이미 여기서 생명을 일깨우는 사랑을 통하여 부활을 경험한다."

2020-04-15 11:27:44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동물병원의 동물스태프 이야기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동물병원의 동물스태프 이야기

우리 동물병원에는 동물들도 스태프 마냥 각각의 부서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해리(터키쉬앙고라, 7살)는 원장 대행이다. 접수대나 진료실 의자에 앉아서 내원하신 고객들과 동물환자들을 지켜보곤 한다. 은근히 수의사와 간호사들이 일 잘하나 감시하는 듯하다. 내가 진료 상담을 하면 곧잘 맞은편 쇼파에 앉아서는 상담 잘하나 지켜보곤 한다. 원장실이 비면 원장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주인인양 행세하는 도도함이 있다.샤벳(친칠라, 7살)은 고객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천사 고양이다. 울적한 보호자에게 다가가 꾹꾹이를 해준다. 낯선 고양이가 자신을 위로해주는듯한 행동에 보호자는 엄청 감동받게 된다. 세면대에 앉아서 스태프들에게 "나 물 틀어줘"하며 기다리는 모습에 고양이가 맞나 의심해보기도 한다. 착하고 이뻐서 동물건강정보 팜플렛을 제작할 때는 모델 섭외 일순위다.이쁜 모습들과는 다르게 해리는 미용실에 맡긴 후 버려졌었고, 샤벳은 공영주차장을 배회하던 유기묘 시절이 있었다.다비(아비시니안, 2살)는 SBS 'TV동물농장'에 방송되었던 하천변에 버려진 10마리 품종묘들 중 마지막에 구조되었던 고양이었다. 높은 나무를 오르내리던 날쌘돌이라 자기가 기분내키지 않으면 만질 수가 없다. 가끔 진료실 문틈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들어가도 되나?"라며 물어보는 듯할때가 제일 귀엽다. 의외로 병원을 방문한 고양이 환자들 곁에 다가가 위로해주는 재주가 있다.탄야(코숏, 4살)는 온몸이 까만 고양이다. 탄야도 'TV동물농장' 주인공이었다. 올무에 걸려 다리가 썩은 상태로 구조되었고 어쩔수 없이 한쪽 앞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더군다나 탄야는 난치성 면역질환을 가지고 있다. 두 번이나 집중 치료로 고비는 넘겼지만 언제든 다시 재발할 수 있다. 뚱냥이에 한쪽팔은 없지만 날렵하게 뛰어따니며 가출이 특기다. 터줏대감인 해리랑 샤벳을 괴롭히는 악동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태프들은 유난히 탄야에게 너그럽다. 탄야의 천연덕스러움이 심각한 질병이 있다는 사실을 잊게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의외로 골수 팬들이 많은 이유이다.깜순이(잡종견, 5살)는 조제실 담당이다. 깜순이도 'TV동물농장' 주인공이였다. 폐가에 방치된 유기견 깜순이를 이웃 할머니가 보살펴주던 사연이었다. 하지만 깜순이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극도로 높은 탓에 누구의 손길도 허용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키우기로 하셔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불과 한 달 뒤 다급하게 연락이 오셨다. 날쌔고 경계심 높은 깜순이를 도저히 감당못해 차라리 집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했더니 어느날 항문이 탈장된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하셨다. 두차례에 걸친 큰 수술이 이루어졌다. 다행히 건강은 회복되었지만 마땅한 입양처를 찾을 수 없었다. 1층 입원실 한칸을 잠자리로 정해주고 자유롭게 다니도록 하였다. 병원 스태프들은 깜순이를 그냥 두었다. 깜순이는 간호사들이 자신을 괴롭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진 뒤에야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반기지는 않지만 이젠 수의사와 간호사들의 손길 정도는 허용한다. 이제는 조제실과 처치실을 오가며 좋아하는 간호사 주변을 껌딱지 마냥 따라다닌다. 깜순이가 일을 도와주진 않치만 곁에 얌전히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간호사들은 대견해하고 즐거워한다. 여기까지 5개월이 걸렸다.동물병원 식구가 되어버린 유기견 유기냥이들이 스태프 마냥 동물병원에 기여하는 모습들이 신기하고 즐겁다.개와 고양이는 사람을 신뢰하면서 똑똑해지고 착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해리와 샤벳, 다미, 탄야, 깜순이가 그 증거인 셈이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음을 양지부탁드립니다)

2020-04-14 18:30:00

[경제칼럼] 권역별 생활치료센터 클러스터 구축하자

[경제칼럼] 권역별 생활치료센터 클러스터 구축하자

2월 18일 대구경북 지역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불과 2주일 만인 3월 3일 지역 누적 확진자 수는 4천285명으로 늘면서 코로나19는 급속도로 확산됐다.3천여 명의 확진자가 병상 부족으로 자가 격리됨에 따라, 확진자에 의한 가족 및 지역사회 내 감염 확산 가능성 또한 고조됐다. 이후 확진자 치료 병상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생활치료센터가 도입됐다.확진자의 병적 위중 상태에 따라 중증 환자는 의료시설을 갖춘 전담병원에서 치료하고, 경증 환자는 연수원, 교육원 등과 같은 격리된 생활치료센터에 수용해 치료 및 관리하는 이원적 치료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중앙정부는 공공기관 및 대기업 연수원을 중심으로 3천500여 실의 국가 지정 생활치료센터를 확보했다.경상북도와 시·군에서는 수련원 및 자연휴양림, 인문정신연수원, 경북소방학교 및 소노벨청송(구 대명콘도 청송)을 포함하는 1천여 실의 경상북도 지정 생활치료센터를 확보했다. 대부분의 확진자가 생활지료센터로 이송·격리됨에 따라 확진자에 의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지역사회 감염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생활치료센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대구경북 일부 지역에서는 우리 동네와 우리 시에 생활치료센터 지정을 반대하는 님비(Nimby) 현상으로 인해 생활치료센터 운영이 무산되는 부끄러운 일이 발생했다.그런 반면에 광주광역시가 달빛동맹 정신을 존중해 대구 및 경북 중증 환자를 위한 병실을 기꺼이 내주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민망하고 경외의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돌이켜 보건대, 생활치료센터는 폭증하는 코르나19 확진자로 인한 병실 부족 문제를 해소하는 '신의 한 수'였는지도 모른다.코로나19의 지구상 대유행이 장기화되거나, 일부 감염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오는 9월 이후에 2차 대유행이 발생하거나, 아니면 앞으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 운영 중인 생활치료센터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시설을 확보하고 운영하기 위한 계획을 미리 수립해 둘 필요가 있다.그러면, 아마 바이러스는 '아 대한민국! 너희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하고 우리나라를 비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현재 운영되고 있는 생활치료센터는 그때그때 상황 변화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또한 생활치료센터 관리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입소한 확진자가 무단으로 센터를 이탈해 주변 지역 주민의 공공 안전을 위협하기도 했다.대부분 생활치료센터는 소규모이며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다. 이 때문에 확진자 이송, 의료 장비와 인력의 배치 및 활용에 있어서 상당한 비효율성이 발생하고 있다.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광역생활권역별로 생활치료센터를 집중화하고 시설을 효율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권역별 생활치료센터 클러스터'를 구축해야 한다.권역별 생활치료센터의 거점은 공공기관 및 대기업이 보유한 연수원 및 교육시설을 중심으로 하고, 부족한 생활치료센터 및 부대시설은 인근 민간시설과 클러스터로 통합·연계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아울러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민간시설 사유재산권에 대한 공적 제약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즉, 현행 법률을 개정해 전쟁뿐만 아니라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재앙 발생 시에도 정부나 지자체가 민간시설에 대한 한시적인 동원권 및 시설사용권을 강제로 집행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수용된 민간시설에 대해 국가가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권역별 생활치료센터 클러스터에 사전적으로 참여하는 민간시설에 대해서는 세제적 혜택뿐만 아니라 다양한 건축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경상북도 지정 생활치료센터에 참여한 소노벨청송(민간 콘도시설)은 권역별 생활치료센터 클러스터 구축에 있어서 자발적인 민간 참여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본보기 사례이다.이번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처 방안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더욱 불확실한 미래의 사회적 재앙에 대해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계획과 준비를 해야 하겠다.

2020-04-14 14:22:08

[매일춘추] 1930년대 향토색론과 향토회

[매일춘추] 1930년대 향토색론과 향토회

일제강점기 1922년 만들어진 공모전인 조선미술전람회는 예술가들의 등용문과 같은 체계를 갖추었다. 당시 조선미술전람회가 주목한 취향은 목가적인 농촌풍경과 같은 조선의 정취, 미술의 지방색, 향토성에 관심을 가졌다.1930년대에 들어 향토색론은 몇몇 미술비평가에 의해 좀 더 구체적으로 미학적 관점에서 주장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근원 김용준(1904-1967)이다. 그는 경북 선산 출생으로 중앙고보와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한 화가이기도 하지만 미술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그에게 1930년은 중요한 시점인데, 이때 그는 여러 전시의 창립에 관여하였고, 이들 전시의 창립의 변에서 자신의 관점을 밝혔다. 먼저 동경미술학교 출신자들로 구성된 단체 동미전(東美展)의 창립전에서 그는 '조선의 예술은 서구를 모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며, 민족주의적 입장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진실로 향토적 정서를 노래하고, 율조를 찾는 것'이라면서 조선 미의 본질적 특징을 찾으려 하였다. 또한 같은 해 겨울 백만양화회(白蠻洋畵會)를 발족하면서 그는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이렇듯 김용준이 활발한 비평을 이어가던 1930년에 대구에서 '향토회'가 창립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향토회는 '순수 양화를 연구하는 단체'로 1930년부터 1935년까지 6년간 전시를 개최하였고, 첫해 전시에는 박명조, 서동진, 최화수, 김용준, 이인성, 김성암과 같은 대구 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미술가들이 이름을 올렸다.그러나 그는 주활동지가 서울이어서 이 단체를 통해 그의 향토색론을 구체화시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향토회 활동의 결과로 향토 정조를 구현한 작가가 나타나는 데 일조했다고는 볼 수 있다.그 대표적인 작가가 이인성이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이인성의 작품 '세모가경'에 대해 평론가 윤희순은 향토적인 제재의 나열이 아닌 '세모가경에서 고담적량(枯淡寂凉)한 조선의 공기가 창일함'과 같은 조선의 정서가 작가의 감각에 의해 구현되었음을 칭찬하였다. 이인성의 '가을 어느날'(1934), '경주의 산곡에서'(1935)와 같은 작품에서는 붉은 흙, 민족을 상징하는 소재, 비애의 정서 등 민족적 특징을 묘사하였다. 하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작가의 출중한 재능만큼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상징적 시도들이 과연 당대 사회현실을 반영했던가에 대한 논란을 낳기도 한다.김용준의 향토색론 역시 논란이 되었다. 그의 이론은 분명 민족적 정서나 미감을 정의하려는 것이었고, 비록 식민지배를 당하고 있지만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찬미, 패배주의적 미와 같은 향토적 소재로 소박한 현실에 안주하도록 함으로써 일제강점기 통치자의 논리에 부합되어버리는 한계를 드러냈다.오늘 선거일을 맞고 보니 그들의 예술과 학문의 한계보다는 그들이 처했을 시대의 한계가 더 다가온다.

2020-04-14 14:02:36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기다려, 봄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기다려, 봄

차에서 내리며 잠시 벗은 마스크 뒤의 코끝으로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제야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 어느새 핀 진달래, 봄이 보인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뿐, 봄은 이미 와 있었다. 어쩌면 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빼앗긴, 봄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지 모르겠다.코로나 사태는 지인과의 식사, 마주 앉은 동료와의 회의 등 일상의 평범한 것을 가져가 버렸지만 한편으로 예기치 못한 것을 가져오기도 했다. 시민들의 봉사 덕에 일손이 부족했던 마스크 공장의 생산량이 늘어났다는 소식이 들렸고, 나보다 급한 이웃에게 마스크를 양보하는 '애프터유'(After You) 캠페인이 전개되었고,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타격을 입은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낮춰 주는 '착한 건물주'의 상생 릴레이 등이 이어졌다. 코로나 사태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고, 우리는 여전히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지만,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노력들은 우리 사회를 하나로 연결하는 뜻밖의 나비효과로 이어지고 있다.이처럼 소시민의 노력과 의지로 긍정적 사회 변화를 만들어낸 사례는 디자인 분야에도 있다. 디자이너 사라 헨드렌(Sara Hendren)과 뉴욕 시민들이 만들어낸 뉴욕시 장애인 마크 디자인 변경 프로젝트(Accessible Icon Project)가 그 사례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장애인 마크는 국제표준(ISO)인증 마크와 대한민국 국가표준(KS)인증 마크로 이 두 종류의 마크가 엘리베이터, 주차장 등에 적용되어 우리의 일상 환경을 구성하고 있다.문제는 이 마크(특히 국제표준인증 마크)가 뻣뻣한 팔과 다리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수동적 모습의 사람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마크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이 마크를 반복적으로 마주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로 하여금 장애인을 그 마크 속 형상처럼 수동적인 존재로 인지하게 만드는 부정적 매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 문제를 인지한 사라 헨드렌은 휠체어에 앉아 있어도 금방이라도 앞으로 달려 나갈 것 같은 새로운 모습의 장애인 마크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뉴욕시 거리로 나가 주차장 등의 장애인 표지판 위에 자신이 만든 마크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뉴욕시는 그녀가 만든 마크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뉴욕 시민들은 그녀에게 지지를 보내며 그녀와 함께 길거리에 있는 장애인 표지판들을 하나둘씩 바꾸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어느새 뉴욕시의 길거리는 그녀의 장애인 마크로 채워지게 되었고 2014년 7월 25일, 뉴욕시는 그녀의 마크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46년 동안 유지되었던 뉴욕시의 장애인 마크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아직 이 마크가 미국 전역에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뉴욕을 넘고, 미국을 넘어 각국에서 이에 동조하는 시민의 움직임이 더해진다면! 초기 조건의 작은 차이가 경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나비효과처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 작은 변화가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시간이 지나 거대한 날갯짓으로 증폭되어 세상의 인식을 바꾸는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2020-04-13 18:00:00

[일상중국]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

[일상중국]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뜻의 '爲人民服務'(웨이런민푸우)라는 구호는 중국에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중국의 모든 정부기관과 관공서 입구에 어김없이 붙어 있는 '웨이런민푸우'는 (중국공산당이) 중국 인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는 상징물이다. 이 '웨이런민푸우'는 마오쩌둥 사상의 핵심 가치다. 중국공산당의 존재 이유가 인민을 위한 복무에 있다는 주장의 근거이기도 하다.실제로 '웨이런민푸우'는 중국공산당 당헌에 규정돼 있는 당원의 의무 사항이다. "중국공산당원은 반드시 전심전력을 다해서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개인 일체의 희생을 불사하고 공산주의의 실현을 위해 일생 분투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 우리 식으로는 공무원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뜻이다.마오사상(마오이즘)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웨이런민푸우는 신중국 건국 직전인 1944년 옌안(延安) 시절 한 마오의 연설에서 차용된 것이다.당시 중국공산당의 장스더(張思德)라는 홍군 병사가 전투가 아니라 석탄을 캐러 나갔다가 탄광사고로 사망하자 마오 주석은 그의 죽음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추모하는 연설을 했다."인민의 이익을 위해 죽는다면 그것은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고 '파쇼'를 위해 죽거나 인민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를 위해 죽는다면 털끝보다 가벼운 죽음일 것이다. 장스더 동지는 인민의 이익을 위해 죽었으므로 그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다. 우리가 인민의 이익을 생각하고 대다수 인민의 고통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인민을 위해 죽는 것은 가치 있는 죽음이다."요지는 석탄을 캐다가 죽었지만 그는 인민을 위해 죽었으므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었다.마오의 '웨이런민푸우' 연설은 신중국 건국 이후 중국공산당의 당헌에 채택되면서 중국공산당의 복무지침으로 승격됐다. 마오 사후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 역시 '웨이런민푸우'를 폐기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한술 더 떠, 중국공산당 당헌은 물론 당장(黨章)에도 채택하고 각급 기관의 좌우명으로 삼도록 했다.마오의 시대는 중국공산당이 인민을 위해 복무한 시대는 아니다. '대기근'과 문화대혁명 그리고 권력투쟁으로 점철됐던 마오의 30년은 절대로 인민이 행복한 시대가 아니었다. 그저 정치적 선전선동 구호였을 뿐이며 그 구호는 마오가 '인민을 사랑한 최고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였을 뿐이다.마오의 주치의를 지낸 리즈수이는 "모든 것이 마오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고 자서전을 통해 털어놓기도 했다.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중국 대중소설가 옌롄커가 2005년 한 문예지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제목의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자, 중국 당국은 이 잡지에 대해 판매금지 조치를 내리고 전량 폐기 조치했다. '마오쩌둥 사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 홍콩을 통해 이 소설을 구해서 읽는 열풍이 불었다.소설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마오 사상으로 무장한 순진한 홍군 병사가 사단장의 전속 요리사로 배속된 후 사단장 부인이 '웨이런민푸우'는 나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라며 유혹하는 것으로 마오 사상을 패러디한다.소설가 옌롄커는 소설의 서문을 통해 "그 시대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영혼의 감옥이었지만 이런 감옥이 단지 중국인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권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정치와 국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영혼의 감옥은 필연적으로 견고한 담장을 갖추게 된다"고 지적한다.마오의 '웨이런민푸우'라는 영혼의 감옥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우리의 영혼을 가두는 감옥은 달콤한 이름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가슴 뜨거운 슬로건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가슴에 와닿는 대통령의 취임사 역시 '인민을 위한 복무'보다 더 공허한 말장난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그러고 보면 우리가 중국 마오쩌둥의 시대인지, 문화대혁명의 시대로 되돌아간 것인지 착각할 정도로 그 시대의 도구들이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문혁을 찬양하던 역사학자가 정치세력의 친위세력으로 등장한 데 이어. 홍위병보다 더 '무데뽀'격인 유시민 같은 대깨문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역사는 시대에 따라 발전하고 변화한다지만 홍위병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는 '팬덤정치'가 인민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활개치는 현상이 제발 '착시'였으면 좋겠다.선거와 투표가 대중민주주의의 딜레마인지 여부는 이번 총선을 통해 확인될 것이다.

2020-04-13 18:00:00

[기고] 주권을 포기하지 말고 꼭 투표해야

[기고] 주권을 포기하지 말고 꼭 투표해야

잘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4월 15일은 앞으로 4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어갈 제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중요한 날이다.이날 국회의원을 잘못 뽑으면 내가 죽고 나라가 죽는다. 반대로 잘 뽑으면 내가 살고 나라가 산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 국운이 달려 있는 중요한 문제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남북 관계가 그렇고, 국제 관계가 그렇고, 경제가 그렇고, 교육이 그렇고, 코로나19가 그렇고, 부정부패가 그렇고,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빈(貧)과 부(富), 지역 갈등까지 정말 어려운 시기이다. 이 시기에 나라를 걱정하고, 바로 세워 줄 수 있는 훌륭한 인물들이 당선되기를 모두가 간절히 바라고 원할 것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인물을 누가 뽑느냐? 국민과 유권자가 뽑는 것이다. 그 나라 대통령이 누구냐, 그 회사 사장이 누구냐, 그 가정의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서 나라와 가정이 잘사느냐, 못사느냐? 행복의 차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300명의 국회의원이 받는 세비 32억144만원의 가치를 하느냐? 아니면 놀고먹는 국회의원이 누구냐에 따라서 국운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특히 이번 선거는 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졌기 때문에 14만 명의 청년이 새로이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OECD 회원국과 세계 212개국에서 18세 이상은 이미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 젊은 기분에 첫 투표가 장난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이번 선거는 성인들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 바뀌었다. 선관위에 등록된 정당 중 41곳이 4·15 총선에 참여하고, 투표지 길이가 48.2㎝나 된다. 이 때문에 혼동할 경우를 생각해서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먼저 지역구 정당 대표를 뽑고, 다음에 비례대표에 기표해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번 선거는 깜깜이 선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거리두기 캠페인까지 벌어지고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새 구호가 나올 정도로 사람 모이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마스크를 끼고 있는 입후보자와 유권자가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말도 옳게 못 하고, 악수도 못 한다. 이웃이나 직장 동료끼리도 전같이 선거 정보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 이 때문에 깜깜이 선거가 되었다.그래서 가정에 배달되고 있는 선거 공보를 꼼꼼히 살펴야 할 의무가 생겼다.특히 공약 사항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실천 불가능한 공약을 남발하여 당선되고 나면 헛구호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의 경우 이를 철저히 가려 엄벌하거나 다음 선거에 고시하기도 한다. 코로나 때문에 병의원의 의사나 간호사, 자가격리자 등이 투표하기 어려운 사상 초유의 사건이 터졌다. 이분들을 위한 특별 배려가 필요하다.대구경북은 타 지역보다 혹독한 코로나 후유증으로 지쳐 있다. 한때 정치 불신으로 내 한 사람이야, 투표하나마나,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전국 꼴찌 투표율과 꼴찌 예산, 꼴찌 경제, 재벌 기업 하나 없는 떠나는 대구가 되었다. 4월 15일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필히 주민증, 면허증, 여권 등 국가에서 발행하는 신분증을 꼭 지참하여 빠짐없이 투표해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며느리 고르듯 사위 고르듯 꼼꼼히 살펴보고, 잘사는 대구 경북을 살리는 일꾼을 뽑아야 한다.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정치를 탓할 자격이 없다.

2020-04-13 14:58:05

[세계의 창] 4·15 총선 이후

[세계의 창] 4·15 총선 이후

내일은 투표일이다. 선거 결과는 유권자의 집합적 결정이다. 유권자의 절반이 투표를 하지 않으며, 무엇을 위해 투표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의 승리는 대중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래도 민주주의가 영원할 수 있을까? 리처드 생크먼은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라는 책에서 이러한 의문을 강하게 제기했다. 그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그 이유는 유권자들이 냉철한 이성과 사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러면 대중은 무엇을 근거로 투표하는가. 생크먼은 말한다. 유권자들은 나라와 사회를 위해 누가 더 나은 인물인가, 정당인가를 따지기보다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가진다. 대중은 '지독히 무지'하고 무책임해서, 사실보다는 감정이나 이미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 유권자들의 이런 저급한 논의를 개선하기 위해 시민교육과 신문 읽기를 통해 현명한 유권자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그러면 무지한 유권자들의 투표는 의미가 없는가. 그는 "아니다"라고 했다. 유권자들에게는 "어리석음은 많고 지성과 상식은 드물지만, 그래도 어리석음이 공화국을 심각한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했다. 어리석은 투표라도 하는 게 낫고, 사실에 입각해 이성적으로 투표하자는 일반론이지만, 그의 책이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투표에 앞서 무지한 내가 떠올리는 단상이다.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없지만, 이번 선거는 특히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탄생했지만, 국회는 그 이전에 치러진 선거에 의한 '과거의 것'이었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서로 다른 민의와 시대정신 위에 동거해온 것이다. 정부 공약에서 입법이 필요한 부분은 진척이 어려웠고,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의 여당에 대한 평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문재인 정부 3년에 대한 평가이다. 코로나 정국에 묻혔다고는 하나, 문재인 정권 만 3년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정부 여당에 대한 평가를 할 것이다. 새로 도입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도 중요하다.여당이 만족할 만한 의석을 확보하면, 진보 세력의 공간은 넓어질 것이고, 박근혜 정부의 여당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고 보수 세력이 전멸하고 민주당의 '20년 집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는 지역주의와 남북관계에 대한 집착을 탈피하고 새로운 가치를 정립할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여당이 만족할 만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추진 중인 개혁 정책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정권의 레임덕이 가속될 것이다. 차기 주자가 분명하지 않은 야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당의 차기 주자에게로 권력의 추가 급히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여야 간에 뚜렷한 승패가 없을 경우에도 국회가 좀 더 활성화되는 변화는 있을 것이다. 2년 후 대선을 앞둔 여야는 수권정당의 면모를 보이기 위해 20대와 같이 국회를 공전시키거나 '동물화'하지는 않을 것이다.문제는 군소정당이 부활하여 현재와 같은 의석 분포가 재현될 경우이다. 위성정당의 출현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의미는 퇴색했다. 그럼에도 거대 정당의 독주를 방지하기 위해, '현명한 유권자'들은 연동형의 취지에 맞게 소수정당에도 표를 줄 것이다. 그러면 국회는 이전의 4+1과 같은 형태의 다수파 형성을 통해 운영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사안별로 연합을 하는 형태였으나, 국회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군소정당 출신을 입각시키거나 정책연합을 통해 의원내각제의 연립정권 형태를 띨 수도 있다.지금과 같은 정당제와 선거제도하에서는 국회의 단독 과반이 없는 구조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국회의 연합정권적 운영을 조건으로 하여 개헌을 통해 통치구조를 의원내각제로 바꾸는 것이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부조화를 해소하면서 새로운 정치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해온 야당도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는 승패보다 결과에 대한 해석이 더 중요하다.

2020-04-13 14:52:16

[매일춘추] 일상의 내밀한 아카이브

[매일춘추] 일상의 내밀한 아카이브

일기는 일상 속 나만의 기록이다. 하루 일상과 그 감정들을 마무리하여 쓴 오롯한 개인 아카이브 기록지라 할 수 있다. 가장 개인적이며 내밀하지만 지위와 명성 또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일기가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난중일기' '안네의 일기'가 그 대표적 사례다.난중일기는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5월 1일부터 노량해전으로 전사하기 한 달 전인 1598년 10월 7일까지 이순신 장군이 진중에서 쓴 친필 일기다.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군사령관의 일기로 교전 상황과 전술, 상세한 하루의 날씨, 전장의 지형 그리고 서민 생활상까지 기록하였다. 수사(修辭) 없이 간결하고 유려한 문체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명저로 꼽힌다.안네의 일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의 유태계 소녀 안네 프랑크가 독일 점령군을 피해 2년간 은신하면서 쓴 기록이다. 아버지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을 키티(Dear Kitty)라 부르며 전쟁과 은거의 불안 그리고 사춘기 소녀의 풋풋한 성장 과정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까지 생생하게 써 내려간 것이다. 나중에 혼자 살아남은 아버지(오토 프랑크)가 펴내고 전세계에 공전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이렇게 모든 기록은 당대의 시대상과 가치관, 보편성을 보여준다. 늘 머리맡에 두는 책처럼 가끔 짬이 날 때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난중일기나 안네의 일기는 누구에게나 무리 없이 읽힘에 그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내쳐서 다른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기록도 왕왕 발견한다.'역사 앞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 사학과 김성칠 교수가 직접 보고 겪은 것을 쓴 기록이다. 해방 후 서울의 면면과 한국전쟁의 발발, 인민군 점령시기의 서울 생활, 9.28 수복 등 당시의 전쟁 상황과 생활을 소상히 기록하였다. 당시 공적문서 기록에는 볼 수 없으나 개인의 전쟁 실생활을 마치 눈앞에 보이는 듯 그려놓은 것이다.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의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버금가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내게 주었다.또 같은 시기에 씌여진 이목우 기자의 '시대풍'은 취재 후일담 형태의 일지형식 기록문인데, 지난 8년간 대구문학 아카이브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뜻밖의 신선한 기쁨이다. 이 작품은 1950년대 대구 향촌동의 모습과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구상, 이중섭 등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삶과 애환을 엿볼 수 있어 무엇보다 애잔한 마음이 일었다.코로나19로 모든 국민들이 지쳐가는 상황이다. 성웅 이순신처럼 또는 안네 프랑크처럼 고통스러운 이 전염병의 나날들을 누군가는 '코로나 일기'로 써 내려가고 있을지 모르겠다. 같이 겪지만 각자 다른 상황의 전투 같은 이 날들을 말 그대로 기록으로, 아카이브로 볼 수 있는 날을 생각해 본다.

2020-04-13 14:13:21

[기고] 코로나19가 바꾼 선거문화

[기고] 코로나19가 바꾼 선거문화

이번 총선은 코로나19로 인해 거리 선거운동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악수나 명함 같은 전통 방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선거운동원들은 마스크를 끼고 선거운동을 하며, 후보자들도 악수 대신 주먹 인사를 하거나 소독약통을 메고 방역 유세 등을 하고 있다.선거관리위원회는 유권자들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최고의 방역이 최선의 선거관리'라는 자세로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투표소 전체를 대상으로 투표 전일과 투표가 끝난 후 전문방역업체를 통해 소독을 한다. 선거인은 투표소 입구에서 비접촉식 체온계로 발열 체크 후, 손소독제로 소독하고 위생장갑을 착용해야 투표소에 입장할 수 있다. 특히 투표소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품과 선거인이 접촉하는 출입문 손잡이, 본인 서명용 펜, 기표대 등을 주기적으로 소독하며 투표소는 공기가 정체되지 않도록 수시로 환기시킬 예정이다.투표소 입구에서 발열 체크로 37.5℃ 이상 열이 나거나 호흡기 증상이 있는 선거인은 혹시 모를 감염 예방을 위해 다른 선거인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별도로 설치된 임시기표소에서 투표한다. 무엇보다도 성숙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본인과 타인을 위해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오시길 당부 드린다.또 이번 총선에서 달라진 점은,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로 확대된 것이다. 전국 14만 명, 대구 7천800여 명으로 전체 유권자 1.06%의 교복 입은 유권자가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었다. 선거교육에 많은 준비를 하였으나 못 이루어져 아쉬움이 남지만 선거방송, 유튜브에 많은 영상자료가 게시되어 있으므로 많은 고교생 유권자가 활용하기를 기대한다.두 번째는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별로 배분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된 점이다. 소수 정당이 여당이나 제1야당보다 비례대표 의석을 더 많이 가져갈 수도 있어 이번 총선에는 총 35개 정당이 선거에 참여하였고, 유권자들은 역대 최장 투표용지를 투표소에서 받게 된다. 비례대표선거에 참여한 정당이 많고, 정당을 혼동하여 둘 이상의 정당에 투표하는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유권자는 사전에 선거공보 등을 보고 어느 정당에 투표할지 마음을 정하여야겠다. 정책과 공약 중심의 선거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올바른 선택을 하시길 바란다.개표 방식도 비례투표용지 길이가 48.1㎝로 길어져 투표지분류기를 이용한 기계 개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18년 만에 직접 육안으로 분류하는 수작업 개표를 실시하게 되어, 이전 선거보다 개표 시간이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대구는 두 달여 동안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방역 대응은 전 세계가 놀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위기 대응 능력과 성숙한 시민의식은 뛰어나지만 유독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선거의 참여율은 지난 총선에서는 54.8%로 전국 꼴찌를 하였으며, 이번에도 사전투표에서 역시 최하위를 면치 못하였다.이제는 사전투표도 끝나고 선거일 투표만 남았다. 제21대 대한민국 국회를 이끌어 갈 대표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최우선 과제이다. 이번에 투표하지 않으면, 또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한다. 4월 15일, 대구에 '투표 바이러스'가 널리 퍼져 유권자는 안심하고 투표소를 방문해 소중한 권리를 반드시 행사하길 바란다. 코로나19를 극복한 대구시민의 위대성을 이번엔 투표로 '단디' 입증해 보자.

2020-04-12 16:02:49

[이른 아침에] 마음껏 투표하자

[이른 아침에] 마음껏 투표하자

서울 광진을이 뜨겁다. 종로도 관심사다. PK 지역 판세도 연일 뉴스거리고 강원과 충청 지역 또한 흥미진진하다. 그 밖의 다른 곳들도 만만치 않다. 마치 자신들 지역구에 이번 총선의 운명이 걸린 듯 접전을 벌이며 화제를 낳고 있다. 그런데 TK는 조용하다. 4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유승민이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입증할 수 있을지, 김부겸은 지역과 당색을 넘어 당선의 고지에 오르게 될지, 이른바 '진박'에 밀려난 흰색 점퍼들은 과연 얼마나 살아서 돌아올지, TK 지역은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 게 없다. 우리의 대표를 뽑는 일인데도 예전처럼 설레지 않고 별 재미도 없다는 사람들만 늘어났을 뿐이다.사실, 미래통합당이 대구경북 지역의 공천자를 발표하던 그날, 대구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판은 거의 파투가 나고 말았다.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들이 난데없이 공천을 받았고 지역의 중진 현역은 너무나 간단히 다른 곳으로 지역구를 옮겨야 했다. 몇몇은 당을 위한 험지 출마라는 허울 아래 황망히 고향을 떠나야 했고 표밭을 갈고닦으며 공약 개발에 열중하던 지역의 예비후보들은 제대로 된 평가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싹이 잘려 나갔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던 대구 시민들은 기가 막혔다. 공천 발표 내용 중에 무엇 하나도 그럼직한 게 없었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는 이만큼 공천을 잘하기도 어렵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공천을 진두지휘한 김형오 공관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공관위에는 대구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에게 대구는 장기판, 후보들은 졸처럼 보이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동(洞)도 없고 구(區)도 없고 역사도 없는 도시처럼 취급당한 것과 별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TK가 보수의 성지라는 찬사는 그야말로 말의 성찬일 뿐이었다.지역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화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고 지역 언론들은 마구잡이식 '막천', 특정 인물을 꽂아 넣기 위한 '사천', 기준도 없고 원칙도 없고 전횡만 있는 '기원전 공천'이라며 거듭거듭 비판했다. 지역 인사들 또한 'TK 지역과 지역민들을 이렇게 무시해 놓고도 또 표를 달라고 할 것이냐?'며 미래통합당을 질타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잘못된 공천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바로잡히지 않았고 우리 또한 우리가 가진 유권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한 비판과 성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TK 지역민들만 딱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대개 끝이 났다. 희한하게도 선거철에 유권자가 '을'이 된 것이다.말할 것도 없이 유권자에겐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며 그건 유권자에게 주어진 신성하고도 불가침한 절대적 권리다. 아무도 그것으로 유권자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분히 그 권리를 선택적, 제한적으로 사용해 왔다. 보수를 지키기 위해, 우국충정에 못 이겨 표만 주고 무시를 당해도 참고 30여 년째 GRDP(지역내총생산)가 꼴찌인 것도 참고 갈수록 살림이 쪼그라들어도 참았다. 좋은 것들을 서울에 빼앗기고 경기에 빼앗기고 부산에 빼앗기는 걸 보면서도 한 번도 지지 정당을 바꾸지 않았다.이번 총선, 여든 야든 TK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쪽은 어차피 찍어줄 테니 그렇고 다른 쪽은 어차피 안 찍어줄 거라서 그렇다고 한다. 계속해서 이러면 보통 버림받거나 무시당하게 된다. 지금까지 그만큼 했으면 되었다. TK 정치가 다양해진다고 해서 보수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외연이 확장된다고 해서 진보가 망하는 것도 아니다. 나라가 망할 일은 더욱 아니다. 그러니 호락호락 보이지 말자. 현수막을 보면 다들 지역 발전을 위해 무엇무엇을 하겠다는데 왜 미래통합당의 것에는 대통령 타도와 좌파 척결밖에 없는지 물어보자.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할 건지, 생각하고 있는 대구경북의 청사진은 무엇인지도 들어보자. 이참에 포항 지진의 원인 규명과 피해 복구를 위해 누가 무엇을 했는지도 따져보자.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서는 또 어느 정당 어떤 인물이 대구경북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살펴보자. 대구의 사전투표율이 가장 낮다고 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 투표해야 한다. 4월 15일, 이번에는 아무것도 말고 오직 나와 우리 지역을 위해 마음껏 투표하자.

2020-04-12 15:41:15

[매일춘추] 방구석 1열의 위로   

[매일춘추] 방구석 1열의 위로  

요즘 잘 지내냐는 안부 연락을 심심찮게 받게 된다. 한창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었던 대구에 살고 있기도 하거니와, 공연예술 관계자들인 지인들이 코로나 덕분에 조금 한가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내 건강을 염려하는 그들에게 나는 준비하던 작품과 작업들에 대한 소식을 묻는다. 그때마다 작품이 취소될 때 주로 사용하는 소위 '엎어졌다'는 대답들을 자주 듣는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맘 한편은 묵직해진다.21세기는 글로컬(Glocal) 시대이기에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런던의 웨스트엔드 소식도 SNS만 켜면 쉽게 접할 수 있다. 신작 뮤지컬 소식이나 업계의 동향과 최신 트렌드를 수시로 살피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소식을 접하고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 다양한 매체에 팔로잉이 되어있다.그런데 요즘 올라오는 소식들은 놀라움에 입이 벌어진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극장들이 유래 없는 셧다운(Shut Down)을 시작했고, 공연예술계 대표축제로 손꼽히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조차 올해 축제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또 1947년 시작되어 한 해도 거른 적 없는 토니어워즈도 기약 없는 연기를 결정했다.9.11사태에도 추모를 위해 이틀 정도만 닫았던 브로드웨이의 극장들이 한 달가량 문을 닫는 유래 없는 사태가 시작되면서 더위와 추위에도 괘념치 않고 극장 앞에 긴 줄을 이루던 씨어터 고어(Theater Goer)들과 전 세계에서 모여들던 관람객들이 자취를 감췄으니 무엇을 위해 무엇을 시상해야 할지도 고민스러웠을 듯하다.이런 팬데믹 상황을 예술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예술이란 의식주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기에 정말로 그 걸음을 멈춰야만 하는 것일까?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관계자들도 한 순간에 생존이 걸린 전선에 내몰린 것은 같은 상황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각자의 집을 온라인 무대로 삼으며 노래하기 시작했다.또 각 극장들과 제작사들도 아카이빙 자료를 활용하여 온라인 상영회를 실시하고 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 같은 유명 프로듀서의 작품에서부터 영국의 국립극장(National Theatre)가 제작한 유수의 작품들까지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유명 작품들이 공개되면서 뉴욕이나 런던의 시민뿐만 아니라 대구의 시민들도 방구석 1열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뮤지컬을 포함한 공연은 '산업'이기에 이윤을 추구하는 구조 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주 전만 해도 유료로 판매되던 작품들을 온라인 상영회에 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어쩔 수 없는 고립생활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으로 몸보다 마음이 더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작은 바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는 없으니까.벌써 봄의 끝자락에 만난다는 라일락이 향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겨울과 봄을 지나온 긴 고립의 여정들이 '방구석 1열'에서 만나는 뮤지컬 한 편으로 말미암아 작은 위로를 얻길 기원해본다.

2020-04-12 14:30:00

[기고] 경북대 ‘생활치료센터’ vs. 예일대 1백만 달러

[기고] 경북대 ‘생활치료센터’ vs. 예일대 1백만 달러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4월 10일, 대구의 숫자 "0" - 그토록 반가울 수 없었다. 코로나19 첫 환자 발생 후 거의 두 달만에…. 이제 최악은 벗어난 듯하지만 언제 또 다른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 많은 보건 전문가들이, 우리 상황이 통제되는 요인으로 의료체계-의료진의 우수성, IT 인프라, 시민의식 등에 더하여 경증환자 '생활치료센터'의 운영을 꼽는다. 그런데 이는 대구-서울에서 밀라노-뉴욕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많은 대학이 온라인 강의, 의료진 봉사, 연구의 기여 외에 앞으로도 더 역할을 맡을 영역일지도 모른다.2월 이후 중국과 신천지를 발원으로 대구에서 확진자 수가 일일 700명 이상까지 늘어나던 때, 덜 급한 환자들이 병상을 선점하면서 정작 위중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게다가 실수, 시행착오, 자원부족이 이어졌다. '생활치료센터'는 기존의 법규와 관행을 넘어 급박한 현장 감각에서 탄생한 대구발 아이디어로, 경증환자를 호텔/기업연수원 등으로 옮겨 의료진의 도움을 받게 한 것인데, 시작하자마자 수요가 넘쳐 대구 바깥의 연수시설까지 힘들게 확보해야 했다. 적정한 격리 공간, 접근성, 지원시설, 와이파이까지 갖춘 비상의료용 집단 수용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을 때, 대학의 기숙사는 어쩔 수 없이 차선의 선택이 된다.3월 초 어지럽던 상황, 대구시장이 경북대 총장에게 약 400명의 경증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캠퍼스 내 기숙사를 제공해 주도록 급히 요청했다. 넉넉한 논의를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학생회, 교수회도 쉽사리 동의하지 못했고 실제로 많은 학생과 교수들이 캠퍼스 감염의 위험성을 들며 반대하였다. 시장이 직접 학생들을 찾아와 만나기도 했다. 결국 "지역이 없으면 대학도 없다"는 대의 앞에 경북대가 요청을 받아들였고, 당일 한밤중에 환자들이 급히 이송되었다. 의료진과는 별도로 대학 측은 주말에도 긴급 상황실 운영 등 엄중 관리하였으며, 학생회에서도 직접 환자 봉사활동까지 아끼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3주간 큰 사고 없이 환자의 약 80%가 완치되면서 이제는 모두가 퇴소하고 방역까지 끝났다. 경북대 생활치료센터는 대학기숙사가 의료시설로 전환된 최초·최대의 공간으로, 앞으로 다시 필요없기를 바라는 사례이기도 하다.뒤늦게 최악의 위기를 맞은 미국 북동부가 비슷한 상황이다. 제일 심한 곳은 물론 뉴욕으로 컨벤션 센터와 해군 병원선까지 동원해도 어림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버몬트의 미들베리대, 뉴욕의 NYU, 기타 몇몇 주립대 등에서 캠퍼스에 환자를 이미 받아들였거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매사추세츠의 터프츠대 총장은 일찌감치 칼럼에서 자신이 모범을 보일 테니 다른 학교도 함께 하자고 공개 요청하며 논쟁을 선도하였다.반면, 예일대는 최근 초명문 이미지에 크게 손상을 입었다. 뉴헤이븐 시장이 예일 총장에게, 최일선 전염병 대응집단(first responders)인 의료진, 소방관 등 150명분의 숙소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기숙사 학생들의 짐 치우는 작업 등이 오래 걸린다면서 어려움을 얘기하며 1백만 달러 기부 등을 제의했는데, 뉴헤이븐 시장이 발끈하여 대놓고 모교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같은 동네의 뉴헤이븐 대학으로부터는 "5분 만에" 수용 답변을 받아낸 것도 대조가 되었다. 지역신문 와 등에서까지 비판이 이어지면서, 결국 이틀 만에 당초 요청의 2배인 기숙사 공간을 내놓겠다고 예일대가 밝혔다. 돈과 브랜드로 될 일이 있지만, 꼭 필요한 때는 몸으로도 값하고 희생을 견뎌야 할 터이다. 상아탑 보호와 지역사회 봉사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다.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 - 일각의 불길한 전망대로 제2차 대확산으로 수도권 등 전국에서 환자가 다시 폭증한다면, 우리 사회와 대학은 준비가 되어 있을까.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을 준비해야 한다.이시철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2020-04-12 08:49:28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득신(1754-1822), ‘강상회음’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김득신(1754-1822), ‘강상회음’

일하다 때가 되자 모여 밥 먹고 술도 한 잔 한다. 한 손으로 술병을 잡고 다른 손으로 술잔을 들고 들이키는 분은 밥보다 술이 먼저인지? 반찬이자 안주는 둘러앉은 사람들 한 가운데 놓인 물고기 한 마리다. 등장인물은 모두 8명. 젓가락을 쥐지 않은 사람은 벌써 다 먹었는지, 차례를 기다리는지. 아니면 배탈이 났는지. 먹어야 살고, 먹기 위해 사는 삼시세끼 중 한 끼를 스냅 샷으로 포착했다.밥 먹는 각자의 모습을 짜임새 있게 구성했고, 대 놓은 배와 버드나무는 강가 어부들의 한 끼임을 한 눈에 알려주면서, 수양버들 늘어진 여름날의 서정을 풍겨주는 배경처리이다. 작은 화면에 전달하는 내용이 많은데도 하늘과 물, 땅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여백의 운치까지 살렸다. 인물 묘사도 보통의 솜씨가 아니다. 옅은 윤곽선으로 그린 얼굴은 이목구비를 여러 모양의 점과 짧은 선들로 생기 있게 나타냈고, 몸은 스케치 풍의 빠른 필선으로 옷 주름에 강약을 주어 부피감과 운동감을 표현했다. 강과 땅, 나무를 모두 옅은 청색 선염으로 통일해 청량한 공기가 화면을 흐르는 듯하다.정조 때 화원인 긍재(兢齋) 김득신의 '강상회음(江上會飮)'이다. 그림의 얼개는 '고씨화보'라고 줄여 불렀던 『고씨역대명인화보(顧氏歷代名人畵譜)』(1603년)에 당나라 때 대가인 염입덕의 작품으로 실린 것을 본 땄다. 김득신은 원본에 있는 배 안의 여성 두 명은 조선의 상황에 맞추어 뺏고, 원본에 없는 휘청거리는 대나무 낚싯대와 물새를 추가해 현장감을 더했다. 물론 옷차림이나 머리모양 등은 조선식으로 바꾸었다.중국의 역대 명가 106명의 그림을 판각한 『고씨화보』는 1609년 무렵이면 우리나라에 전해져 큰 인기를 끌었다. 화가의 전기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어 문인들은 돌려 보며 제화시를 지었고, 화가들은 산수, 인물, 화조 등이 망라된 교본(敎本)으로 참조했다. 겸재 정선의 다람쥐 그림, 공재 윤두서의 말 그림도 『고씨화보』에 나온다. 정선의 금강산, 윤두서의 자화상은 여기에 안 나온다. 『고씨화보』는 어떤 미술을 창조할 수 있는가를 조선에 알려준 최초의 세계명화집이었다. 조선후기 화가들의 상상력은 과거의 대가들을 동반자로 하여 높이 솟아올랐다.김득신의 부채그림을 보고 정조가 김홍도와 백중(伯仲)한 실력이라 했다고 『이향견문록』에 나온다. 김홍도, 김득신 뿐 만 아니라 정조, 순조시대 화원들은 풍속화를 잘 그렸다. 선남선녀들의 평소 생활 모습을 그린 것이 풍속화다. 이 그림 속의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누구도 영생할 수 없는 유한한 인생에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일상의 소중함을 그림으로 환기시켜 주는 것 또한 풍속화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감염병으로 함께 밥 먹기조차 쉽지 않은 요즘은 더욱.영광과 좌절을 모두 겪었던 추사 김정희는 생애 마지막 해인 71세 때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여손(高會夫妻兒女孫)"이라고 쓴 작품을 남겼다. "최고의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 최고의 모임은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손자." 미술사 연구자

2020-04-12 06:30:00

[광장] 선거가 뭐라고

[광장] 선거가 뭐라고

인간이 존엄하기 위해서는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들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수많은 권리들이 인간을 존엄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권리 실현을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참정권의 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1789년 인권 역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 대혁명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만들어내고,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에 대해 찬양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시작한 시민들의 권리 찾기는 참정권을 통해 실현되기 시작한다.그러나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여성 참여가 가능한 보통선거는 1946년에야 실현됐다. 자유민주주의의 수호꾼을 자처하는 미국은 1984년 미시시피에서 여성 보통선거에 관한 법을 인정했다. 평등하고 보편적인 참정권이 확보되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해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과정이었다.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기도 하고, 각종 테러에 목숨을 위협당하기도 했다. 이유는 투표하게 해달라는 것뿐이었다.아프리카에서 노예라는 이름으로 신대륙으로 건너와 노예해방이 공식적으로 선언되고도 100년이 지나 흑인들은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이들이 산 채로 불에 타 죽고, 맞아 죽고 법 앞에서 총에 맞아 쓰러져가며 이루어낸 것이다.참정권이 뭐라고 누군가는 달라고 목숨을 걸고, 혁명을 한다. 또 누군가는 그걸 안 주려고 그렇게 애를 쓴다. 대한민국이 1948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해방이 온 것처럼 선물 같은 참정권을 성별과 신분에 상관없이 누릴 수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좀 낯선 참정권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다.우리는 4월 15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바꾼 아름답고 고귀한 참정권을 행사하기로 되어 있다. 학교가 멈추고 노동이 멈추고 꽃놀이가 멈추어 있는 지금이지만 선거는 진행 중이다.코로나19로 인하여 시민들은 다른 소중한 권리를 유보하고 있는 중이다.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조금 유보했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도 행사를 멈추고 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노동할 권리의 제한도 받아들이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존을 위한 시민 스스로의 성숙한 결정인 것이다.유보하는 것은 그 권리를 포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를 공동체의 공존과 공익을 위해 잠시 멈추어 두고 나중에 모든 이들이 함께 제대로 누리자는 의도이다. 일부 재외공관에서 선거는 중지되었다. 자가 격리자들이나 확진자들, 혹은 코로나19로 인해 이동이 힘들거나 두려운 자들에게도 참정권은 현재 제한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천재지변을 이유로 개인에게서 참정권을 박탈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권리를 유보했듯이 선거를 잠시 유보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우리 공직선거법 제196조에 의하면 총선의 경우, 천재지변이나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선거를 실시할 수 없거나 실시하지 못한 때에는 대통령이 선거를 연기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투표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교육의 권리도, 이동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도 유보되는 지금이다. 우리 모두는 참정권의 소중함을 너무나 절실하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획득한 소중한 참정권은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어느 권력이 아닌 최대의 시민들을 위해 보편적으로 제대로 행사될 수 있게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일 것이다.

2020-04-10 18:38:41

[기고] 소방의 새 방향 ‘경북소방 비전 2030’

[기고] 소방의 새 방향 ‘경북소방 비전 2030’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함께 땀 흘리면서 화창한 봄날도 잊고 지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7년간 국가직·지방직으로 이원화돼 있던 소방공무원의 국가직화가 이달 1일 이뤄졌다. 이에 따라 경북소방본부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달라진 소방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소방 국가직화의 의미와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경북소방 비전 2030'을 마련해 시행한다.우선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각종 재난현장의 소방력 동원 및 지원 계획을 재점검하고 소방특별조사 및 소방안전교육을 전화 컨설팅과 사이버 교육, SNS 등으로 대체하는 등 비대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앞으로 10년 동안 '안전이 최우선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4대 목표, 10대 전략'으로 구성한 경북소방 비전 2030은 경북도정이 지향하는 새바람 행복경북을 소방 정책과제로 반영해 우리 지역을 '전국 최고 소방 서비스 지역'으로 구축하는 것이다.경북소방이 마련한 4대 목표를 세부적으로 소개하면 첫째 더불어 함께하는 안전문화 조성과 도민이 신뢰하는 화재예방 시스템 구축이다. '새 생명 탄생 119구급서비스'와 '119아이행복 돌봄터 서비스'로 '아이 낳기 좋은 경북, 아이 행복한 경북' 실현을 추구한다. 대형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화재 취약 대상에 최신 스마트 지능형 영상화재감지시스템을 설치해 신속한 대응체계도 구축한다.둘째, 사물인터넷(IoT) 기반으로 신속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믿음과 신뢰의 프로 소방관을 양성해 현장 중심의 체계화되고 전문화된 조직으로 변화한다. 재난 현장에서의 정보 파악 편의성은 물론 현장지휘가 쉬운 소방드론 운영체계를 구축해 안전하고 신속한 수색·탐색과 구조가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다. 드론 조종 전문교육기관으로 경북소방학교를 지정해 운영할 계획이다.또한 화재, 구조·구급 등 복합적인 현장대응능력을 갖춘 소방관에게 'Fire Field Master'(파이어 필드 마스터)를 부여하고 심정지 환자의 생명을 구한 구급대원에게 수여하는 '경북 하트 세이버 왕'을 확대 선발하는 등 프로 소방관으로서의 자긍심 고취에도 앞장설 예정이다.셋째, 육상 재난 총괄 상황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재난현장 총력 대응 인프라를 구축한다. 현대사회에서 복잡 다양화되고 있는 특수재난에 신속 대응하기 위해 이에 걸맞은 첨단장비 보강과 전문화된 훈련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소방안전 취약지역인 청송·봉화·영양·군위·울릉도에 소방관서 신설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여 지역 간 소방 서비스 불균등도 해소할 방침이다.넷째, 기본과 원칙이 중요시되고 나(Me)가 아닌 우리(We)가 되는 튼튼한 조직 문화로 조직 구성원의 사기 진작에도 노력한다. 경북형 뉴(NEW) 인사혁신 프로젝트를 추진해 출산, 육아장려 등 시대적 트렌드에 맞는 인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성과 중심의 공정한 평가 시스템을 개발해 기본과 원칙이 바로 서는 소방 조직을 만들 것이다. 소통과 공감의 소방정책 콘서트와 심신안정지원팀을 신설, 소방공무원의 마음 돌봄을 통해 사람과 삶이 있는 한 차원 높은 건강한 소방 조직문화를 구현할 것이다.마지막으로 경북소방본부는 '경북소방 비전 2030'을 바탕으로 도민이 소방 국가직 전환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게끔 365일 안전경북 실현을 위한 각고의 노력으로 주민들에게 안전한 하루하루를 선물할 것을 약속드린다.

2020-04-09 15:11:57

[시대산책] 북한 방역의 두 얼굴

[시대산책] 북한 방역의 두 얼굴

북한과 관련해서 우리가 가장 큰 착각을 하는 것이 있다. 북한의 조직력이나 관리 통제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TV에서 북한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행진하는 모습을 자주 보고 1980년대에 형성된 북한 이미지가 현재까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큰 착각이다. 북한 각급 학교의 출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마약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을 본다면 북한의 관리 통제 능력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확산되었을 때 경제 규모나 사육 규모에 비례해서 본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는 북한이다. 관리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방역이 엉망이고 이 병이 북한 전역을 초토화시키고 휴전선을 뚫고 남하한 멧돼지를 통해 한국에까지 큰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북한의 이런 방역 능력 때문에 코로나19가 처음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큰 우려를 갖고 있었다.북한은 1월 29일에 국경을 전면 폐쇄했다. 대만이 2월 7일, 미국이 2월 2일에 중국인들을 입국 금지했고 이는 세계적으로 매우 빠른 조치였지만 북한은 대만보다 9일 먼저, 미국보다 4일 먼저 중국인들을 포함한 모든 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국민들도 입국 금지시켰다. 심지어 중국에서 잡힌 탈북자들의 송환조차 거부했다. 자국민의 입국 금지는 국제법 위반이었지만 이에 아랑곳할 북한이 아니다. 국경 폐쇄 직전 중국을 방문했던 사람과 그 가족, 밀접 접촉자들을 모두 색출해서 1만 명가량을 격리시켰으며 각급 학교의 휴학을 세 차례에 걸쳐 연기했고 모든 집회와 회의를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거의 금지시켰으며 교화소(감옥)의 면회를 전면 금지시켰다. 북한에는 유흥업소가 거의 없지만 이마저도 폐쇄했고 시장과 식당, 상점 등도 거의 폐쇄하였다. 북한에는 종교도 없고 콜센터 같은 것도 없기 때문에 이를 매개로 전염되는 케이스는 당연히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북한은 중국과 매우 가깝고 경제를 비롯해 모든 면에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인데 코로나19 확진자가 0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북한과 경제 교류, 친척 교류, 인력 교류를 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랴오닝성과 지린성이며 이 두 성의 인구 대비 확진자 누적 총수는 10만 명당 0.3명이다. 4월 9일 현재 한국의 10만 명당 확진자 수가 20.1명이고 미국은 130명이며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등은 200명을 넘는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이는 매우 적은 수다. 10만 명당 0.3명이라면 33만 명을 만나면 그중 1명 정도가 감염자라는 이야기인데 북한이 국경을 폐쇄할 때는 그 수가 더 적어서 국경이 폐쇄되기 전에 접촉자가 없었을 가능성도 꽤 있다. 설사 일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곧 격리되었기 때문에 추가로 전염시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북한이 처음 국경을 폐쇄했을 때 이를 상당히 생뚱맞은 조치라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 당시에 그 정도로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나라가 거의 없었고 특히 북한은 경제난이 매우 심한 상태였으며 중국인을 상대로 한 관광을 유일한 출로로 생각하고 있는 조건에서 국경을 폐쇄하는 것은 합리적 정책이 아니라고 봤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경 폐쇄나 국경 폐쇄에 가까운 정책들을 취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북한의 조치가 매우 선구적인 조치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확진자가 없거나 거의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헛방망이질만 계속하던 북한이 오랜만에 시원한 안타를 하나 날리는 것이다. 심각한 인권 탄압, 핵 개발, 국제 룰 무시, 호전적 태도, 경제난, 부정부패 등으로 국제적으로 부끄러울 일만 가득하던 북한에 그래도 자랑거리 하나는 생기는 셈이다.그러나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신뢰를 잃어버린 국가다. 북한 당국의 말을 믿는 국가나 언론은 거의 없다. 북한 당국이 확진자가 0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믿을 수는 없고 수많은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교차 확인하고도 시간이 많이 흘러야 한다. 이것이 1~2년이 걸릴 지 3~4년이 걸릴 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르고 북한에서 감염 확산의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북한 주장을 100% 신뢰할지 의문이다. 북한이 오랜 기간에 걸쳐 국제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렸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는 데에도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자업자득이다.

2020-04-09 15:06:05

[매일춘추] 현대음악의 참된 가치   

[매일춘추] 현대음악의 참된 가치  

음악을 듣다보면 어떤 음악이 좋고 어떤 음악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한다. 때문에 때때로 음악의 호불호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대부분 음악의 가치판단에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이 없고 단지 개인의 취향뿐이라는 결론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음악가들은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완벽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일관성과 체계성을 갖는 규칙들을 통해서 주장을 발전시켜보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밀려드는 예외들과 어려워하는 청중들의 감상평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휴전을 선포하기도 한다.그렇다고 하여 음악가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이 바뀌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벽에 부딪히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현대 음악가들은 본인이 투자하는 연습의 노력이 청중에게 전달되길 바라고, 만반의 준비로 청중을 맞이하게 된다.음악전공자들 사이에서도 현대음악에 대해서는 의견이 대립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누구나 듣기 좋은 음악, 익숙한 음악을 선호했었고, 그것은 청중들에게는 강한 선입견으로 자리잡고 있다. 재미있고 신기한 음향 혹은 음악의 소재들로 청중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보지만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려는 불편한 노력 자체를 청중들은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하여 그 음악에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한 연주회가 유난히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날은 특별히 바이올린의 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회를 갖는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청중들은 모두 넋을 잃고, 그 아름다운 선율에 흠뻑 도취되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는 역시 다르구나.'하지만 청중들이 모두 감동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연주가 그쳤다. 어리둥절해진 청중들이 무대 위를 바라보는 순간, 비발디는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더니 땅바닥에 힘껏 내리치는 것이었다. 바이올린은 산산조각이 나고 놀란 청중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세계적인 명기를 저렇게 깨버리다니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그 때 또 하나의 바이올린을 들고 등장한 사회자가 놀란 청중에게 말했다."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저것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닙니다. 싸구려 바이올린입니다. 여러분께 참된 음악의 가치가 반드시 좋은 악기에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려고 한 것입니다."어떤 작곡가의 음악을 어떤 연주자가 무대에 올리느냐는 게 아니라, 그저 음악으로서 현대 음악가들이 새로운 것을 소개하고자 하는 노력을 청중이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청중들은 직접 만질 수는 없지만 감상에 몰두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창조할 수 있고, 이 경험 안에서 그 에너지를 간접 경험하게 된다.가끔 음악가들은 이 과정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청중들이 지루해지지 않을까 겁이 나서 이 과정을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과는 언제나 좌절로 끝맺는다. 그 좌절은 음악가와 청중이 함께 헤쳐나가야 할 숙제 아닐까.

2020-04-09 11:06:48

[최재목의 아침놀] 눈을 보지 말고 눈물을 보라

[최재목의 아침놀] 눈을 보지 말고 눈물을 보라

인간은 '눈'이 아니라 '눈물' 때문에 위대하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지구적 존재'라 하지만, 나는 '눈물의 존재'로 바꾸고 싶다.인간의 눈은 마그리트가 그린 '가짜 거울'이 잘 말해준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처럼 스스로 '신의 눈'이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뜻한다. 인간의 이성과 그것이 만든 과학기술은 인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이자 또 다른 노예이다. 눈의 본질은 보는 것(분별-심판-단죄-폭력-지배)이 아니라 눈물(동정-배려-용서-포용-참회)에 있다.다니엘 다 볼테라의 그림 '십자가 아래의 여인'이 생각난다. 십자가 위에서 처형당한 예수의 죽음을 통곡하며, 쏟아지는 눈물을 두 손으로 감싼 여인. 이 모습이 인간들의 '조건'이거나 '자화상'이 되면 어떨까. 관자재(觀自在)의 '이성-지혜'도 좋으나 관세음(觀世音)의 '구원-자비'에 더욱 관심이 간다. "성경"의 루가복음에 근거하여 그린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은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균형 잡힌 희망을 제시한다.근현대사에서 우리의 정치는 투쟁이고 상처였기에 더더욱 그렇다. 서로가 가해자였고 동시에 피해자였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논해야 할까. 머리카락은 빠지고 옷도 신발도 다 해진 작은아들의 등에 얹은 아버지의 두 손을 보자. 왼손은 억센-강한 남자의 손이고, 오른손은 여린-부드러운 여자의 손이다. 왼손은 모든 시련을 해결해 줄 아버지의 강한 능력의 손이고, 오른손은 자식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사랑의 손이다. 양 극단화된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점은 돌아온 탕자를 따사롭게 감싸 안고 용서해주는 도량이리라.눈물은 감정의 시편(詩篇)이자 능동적 관계성이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처럼, 희로애락애오욕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자락엔 늘 대롱대롱 눈물이 맺혀 있다. 어떤 눈물이든 이성-논리의 문맥에서 일탈한-도망친 자아의 그림자이다. 뭐라고 말 못할 복잡한 감정은 '눈가'에서 서성댄다. "꽃을 보지 마라! 꽃이 너즐브레 떨어진 저 꽃자리를 보라!"는 말에 나는 동감한다. 눈가의 주름과 눈물을 살피는, 공감의 능력을 상실한 사회는 이미 마비된 신체와 같다. 이성-논리로 무장한 투쟁의 정치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인간에 대해 차릴 기본 예의란 없다.물론 눈물에도 진위(眞僞)와 등급이 있기 마련이다. 황하의 넘실대는 물결 앞에 서서, "아름답다, 강물이여. 저렇게 출렁대는구나! 내가 이 강물을 건너지 못함은 운명이로다!"라며, 뜻을 펴지 못하고 돌아서서 탄식하던 공자의 체념 어린 눈물도 있다. 중국 고대에 창힐(蒼頡)이 문자를 만들자, 혹여 그런 말단허위에 골몰해 굶주릴까봐 밤새 슬피 울었다는 자애로운 귀신의 눈물도 있다.그뿐인가. 로마를 떠나 밀라노에 와서 살 때 집 정원의 무화과나무 아래 꿇어앉아 과거를 반성하며 펑펑 쏟아댄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에 빠진 눈물도 있다. 아니,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피고름 나는 눈물은 민생고에 지친 서민들의 한숨소리 아닐까. 민주(民主)는 민생(民生)이 핵심이다. 나머지는 허울이다.동양의 전통에서 보면 통치자들이 반드시 보살펴야 할 사회적 약자들이 있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이다. '환'은 홀아비, '과'는 홀어미, '고'는 어려서 부모 잃은 아이(고아), '독'은 자식 없는 독거노인을 말한다. 모두 천하에 의지할 데 없는 빈곤층이다. 환과고독-네 글자 가운데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바로 '환' 자인데, 물고기 어(魚) 변에 '눈(目)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양의 글자가 붙어 있다. '환'은 전설상의 큰 물고기 환어(鰥魚)이다. 요놈은 늘 혼자 돌아다니는데 근심이 많아 밤잠을 못 이룬다. 요즘 경제침체로 시름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닮았다. '눈물을 가슴에 묻고 산다'는 뜻의 '회'(懷) 자가 자꾸 눈에 어른댄다.부디 우리 정치여, '밥 한 그릇 따숩게 먹고파하는(食一碗)' 서민들의 눈물과 주름을 살펴라! '일자리'에서 '살 자리' 찾기로 몰입해갔으면 한다.

2020-04-08 18:00:00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광해군 태실

[김태훈의 대구 옛 이야기] 광해군 태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왕가에서 자손이 출생하면, 명당 또는 길지를 선정하여 그의 태를 묻고 보호 시설인 태실(胎室)을 조성하였는데, 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장태문화(藏胎文化)이다. 태실은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아기태실은 국왕의 자녀가 태어나면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터를 지정하여 항아리에 태를 담아 묻어서 만든 태실이며, 가봉태실(加封胎室)은 아기태실의 어느 왕자가 훗날 즉위하면 아기태실에 화려한 석물과 비석을 설치하여 제작한 태실을 일컫는다.대구 지역 조선 왕실의 태실로는 광해군 태실이 유일하다. 광해군 태실은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1동 산 83번지 태봉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광해군 태실의 태호(태를 담은 항아리)와 태지석(태의 주인공이 탄생하고 태를 매장한 날짜를 기록한 비석)은 1991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그러나 광해군 태실은 2003년 10월에 안타깝게도 도굴을 당하였다.광해군(1575~1641, 재위 1608~1623)은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왕자였다. 선조 스스로가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로서 명종의 왕위를 계승한 서자 출신의 국왕이었다. 선조는 의인왕후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여 세자 책봉을 미루고 있었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에 신립이 이끌던 조선군이 충주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파천을 결정한 상황에서 선조는 광해군을 전격적으로 세자로 책봉하였다.곧이어 선조는 분조(分朝·조정을 둘로 나눔)를 실시하였고, 이에 광해군은 서북 지방과 강원도 일대를 옮겨 다니며 민심을 달래고 의병 모집과 전투 독려에 매진하였는데, 이정암(李廷馣)에게 황해도 연안성을 사수하도록 지시하였고 강화도에 주둔했던 의병장 김천일(金千鎰)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왜군의 침략에 대응하였다.임진왜란이 마무리된 이후,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는 선조가 죽은 당일에 광해군을 즉위시켰다.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지지했던 소북파 영수였던 유영경을 제거하였고, 친형인 임해군이 오래전부터 역모를 도모했다는 혐의로 교동으로 유배 보내어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1612년 봉산군수 신율이 이이첨의 사주를 받고 군역을 피하고자 관문서를 위조했던 김제세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김직재와 그의 아들 김백함이 선조의 아들 순화군의 양자인 진릉군을 추대하려 했다고 발설하자, 연루자들이 줄줄이 희생되었다.이듬해에는 양반가의 서얼 7명이 문경새재에서 일으킨 '은상(殷商) 살해 사건'이 계축옥사로 비화되었는데, 그중 한 명인 박응서가 김제남(영창대군 외조부)이 주도하여 광해군과 세자를 살해하고 영창대군을 옹립시켜서 인목대비가 수렴청정을 실시하기로 계획하였다고 토로하였다. 이에 김제남은 처형되고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신분이 강등되어 교동으로 유배되었다가 아홉 살에 생을 마감하였으며 인목대비는 서궁으로 유폐되었다.(광해군은 어머니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추숭함으로써 스스로를 적자로 만듦) 한편 허균은 폐모론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음에도 나중에 의창군(선조의 서자)을 추대하려 했다는 이유로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었다.그러나 광해군은 경기도에 한해서 대동법을 실시하여 지주들에게 토지 1결당 12두씩을 부과하여 백성들의 공물 부담을 줄였다. 또한 광해군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용비어천가」를 복간하였고, 무주에 적상산 사고를 지어 「실록」을 보관하였다. 광해군은 귀양 갔던 허준을 불러들여 「동의보감」을 저술하게 하였고, 흐트러진 사회 기강을 바로잡고자 「동국신속삼강행실도」를 간행하였다.또한 광해군은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의 국교를 재개하였고, 후금과 명의 대립 속에서 조선이 다시금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중립외교정책을 펼쳤으나, 결국 능양군(광해군이 죽였던 능창군의 큰형)에 의해 재조지은(再造之恩), 폐모살제(廢母殺弟), 인경궁·경운궁·경덕궁 건립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어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이런 광해군의 일생을 기억하고 태실의 의미와 형태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하루속히 광해군 태실의 원형을 고증하여 복원해야 할 것이다.

2020-04-08 18:00:00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