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컬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의 잉여현실] 과일샐러드 - 즐거움 속에서 익히기

초등 5학년과 6학년의 인문학 동아리 수업에서 자리바꾸기 놀이를 했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노인까지 모두 좋아하는 일명 과일 샐러드! 과일 이름을 하나씩 정하고 술래가 부르는 과일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리를 바꾸는 놀이다. 이 놀이가 주는 이득은 어마어마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경청과 공감하기, 평등한 관계 맺기, 리더가 되기, 상호 작용하기를 즐거움 속에서 몸으로 익힌다. 또 공동체의 가치를 경험하게 한다.이 놀이의 변형으로, 과일 이름 대신 구체적 특징으로 질문을 바꿀 수 있다. "안경 쓴 사람", "지난 일주일 동안 울어본 적 있는 사람"처럼. 그러면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필요하면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 한 교사 그룹에서는 이 놀이가 2시간 동안이나 이루어졌다. 서로 신뢰가 높을수록 깊고 길게 나눔을 하게 된다.한 시간 놀이를 끝내고 소감 나누기를 하는데 5학년 아이가 별로였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덩치가 큰 아이와 부딪혀 의자에 넘어졌다고 했다. 갈등이 일어났을 때 교사는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큰 아이는 그 순간을 기억했고 자기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황을 재연하고, 역할 바꾸기를 통해 큰 아이가 넘어지는 역할을 해보도록 했더니 자기도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넘어진 친구가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지 모든 아이들에게 물었고 한 여학생이 사과하면 좋겠다고 했다. 큰 아이는 선뜻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부딪혀서 넘어지게 된 건 미안하다. 괜찮냐?"고 했다. 그리고 넘어진 아이는 "괜찮아" 하고 말했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나머지 시간은 원으로 서서 음악과 함께 움직임을 했다. 2교시 겨우 90분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가져가고 싶은 한 단어는 '행복, 함께, 우리, 기쁨, 즐거움, 우정, 연결, 친해진, 공감, 용서, 마음, 친구들, 신나는, 재미'였다. 아이들은 이 말을 어떻게 다 알았을까!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2019-09-09 18:00:00

이춘희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이춘희의 시사로 읽는 한자] 黨同伐異(당동벌이): 진영싸움은 그만하자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고 같은 당끼리는 뭉치고(黨同) 다른 당은 배척하는 것(伐異)을 일컫는 말이다. 원래 이 말은 학문적 파벌 논쟁을 가리켰는데, 후에 와서 정치, 사회적 집단 간의 싸움에 많이 쓰이게 되었다.한나라를 중흥시킨 무제(武帝)는 동중서(董仲舒)의 건의를 받아들여 '백가를 배척하고 유학만을 받들었다'(罷黜百家 獨尊儒術). 즉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다양한 의견을 없애고 유가학설에 능통한 인재만을 관리로 삼아 사상을 통일하고 전제적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한 것이다. 태학(太學)에 오경박사(五經博士)를 설치해서 유가 경전으로 귀족 자제를 교육한 것이 대표적이다.그리고 한 선제(宣帝) 때 이르러 유가는 유일한 통치 사상이 되었다. 선제는 유학자 숙망지(肅望之)에게 태자들을 가르치게 했다. 그런데 당시 유생들은 경전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라 자주 논란을 일으켰다. 선제는 학자들을 황궁의 석거각(石渠閣)에 모이게 하여 토론회를 열었다. 동중서를 대표로 하는 유가학파와 황생(黃生)을 대표로 하는 도가학파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탕무수명(湯武受命·탕무가 하나라를 멸한 것은 하늘의 뜻)을 두고 '하늘의 뜻이다'와 '반역이다'로 해석이 갈렸다. 유생들은 같은 편끼리 무리를 지어 상대를 공격하는 데 몰두했고, 결론은 없었다. 남북조시대 송나라의 범엽(范曄)은 '후한서'(後漢書)의 당고전서(黨錮傳序)에서 이를 '석거분쟁'이라 하고, 당동벌이(黨同伐異)라는 말로 설명했다.후한(後漢) 시기에 들어 외척, 환관, 선비가 각각 세력을 만들어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떠나 무조건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당동벌이로 인해 결국 나라가 망했다.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두고 당동벌이가 심한 것 같다. 대의(大義)를 원칙으로 냉철한 사리 분별이 필요하지 않을까.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2019-09-09 18:00:00

배상식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배상식의 여럿이 하나] '민족'이 뭔가요?

지난주, 한 학생이 찾아와서 문득 이렇게 묻는다. "민족이 뭔가요? 이 개념은 쉬우면서도 너무 혼란스러워요.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학생의 개념적 혼돈이 충분히 이해되어 되받아 물었다. "민족, 종족, 인종 등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죠. 혹시 다문화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이러한 의문이 생겼나요?" 학생이 고개를 끄떡였다.이 학생의 물음처럼 우리의 교육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민족'이란 개념은, 그 본래적인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용어가 사용되는 분야에 따라서 긍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하고 부정적인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를테면 해외 동포 문제나 한반도 통일 문제를 다룰 때는 어김없이 '민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민족'의 의미와 중요성을 긍정적으로 강조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다문화사회와 관련된 문제를 다룰 때는 우리나라 성씨의 절반가량이 외부에서 유입된 성(姓)이며, 역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결코 단일민족이 아니라고 하면서 가능하면 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가르친다.사실 세계사에서 민족이란 개념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대 이후의 일이며,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때 나라가 없어지면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나라가 없어졌으니 그 대신에 민족이라는 용어로 대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민족'이라는 용어는 너무나 친숙하다. 예컨대 '추석, 민족 대이동'이라든가, 혹은 '한민족인 해외 동포'라는 표현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엄밀히 구분해서 종족이나 인종, 그리고 민족은 다른 개념이다. 먼저 종족은 부족이나 씨족처럼 혈연집단을 의미하며, 인종은 인간을 신체적 특징으로 분류할 때 사용되는 범주이다. 그리고 민족은 문화적 공통 특징, 즉 언어'종교'사회 조직'생활 양식 등을 바탕으로 설정한 범주이다. 여기에는 문화적 공통점이라는 특성이 내재해 있다. 이런 이유로 전통문화를 소개할 때 '우리 민족'이라는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물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알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의 사고에 머물러 있어서는 곤란할 것이다.'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생각해 보라. 아마도 197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이 헌장을 외우지 못한 학생들은 교실에 남아야만 했기 때문에 모두가 그토록 열심히 외웠던 추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이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사고이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은 '민족' 대신 '국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국가 간 왕래가 많은 글로벌 시대에서는 이러한 민족 개념이 점점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혈통 중심의 '민족 공동체'보다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문화 공동체' 혹은 '공동 운명체'이다. 2007년 개정 교과서에서부터 '단일민족'이라는 용어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처럼 다문화공동체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낡은 '민족' 개념보다는 '국민'이 더 소중하게 인식되기를 기대해 본다.대구교육대학교 교수

2019-09-09 18:00:00

강판권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나무와 창의성] 10월의 나무: 박달나무

나무 이름은 한글의 발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나무 이름 중에는 한글 이름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무 이름의 한글화는 최근의 일이다. 예컨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구 동대구로의 상징 나무인 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인 개잎갈나무는 히말라야시더, 동구 지묘동의 표충단 주변에 살고 있는 부처꽃과의 갈잎떨기나무인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 불렀다. 그간 우리나라의 나무 이름은 대부분 한자였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나무의 학명을 가장 많이 붙인 사람은 일본의 식물학자였다. 식물의 학명은 나무의 한글 이름과 더불어 식물의 자주화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자작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박달나무는 한자 '단'(檀)의 한글 이름이다. 그러나 박달나무의 '박달'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아울러 중국의 경우 "시경"에 등장하는 '단'은 자작나뭇과의 박달나무가 아니라 느릅나뭇과의 청단(靑檀)을 의미한다. 그래서 "회남자" '시칙' 10월에 등장하는 박달나무도 자작나뭇과의 박달나무인지 모호하다. 다만 여기서는 단을 자작나뭇과의 박달나무로 이해하고자 한다. "회남자" '시칙' 10월에 박달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이달에는 크게 술을 마시면서 겨울 제사를 지내고, 천자는 하늘의 신들에게 내년의 복을 빌고 토지신에게도 대대적으로 빌고 제사 지낸다. 이 일들이 끝나면 조상신들에게도 제사 지내고, 농부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휴식하게 한다. 장수에게 명하여 무술을 강론하게 하고, 활쏘기 말몰이 법을 익히게 하며, 서로 힘을 겨루게 한다. 어업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명하여 하천세와 어업세 등을 거둬들이게 하되 너무 무겁지 않게 한다."회남자"에는 박달나무를 10월의 나무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계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박달나무는 줄기가 회화나무처럼 검다. 그래서 "주례"에서는 겨울의 나무로 삼았다. "회남자"에서 10월의 나무로 삼은 것도 줄기가 검은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검은색은 음양 사상에서 겨울에 해당한다.박달나무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살 수 있는 나무지만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나무다. 박달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는 깊은 산속으로 가야만 한다. 박달나무는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지리지·평안부"의 기록에서 보듯이 단군신화와 관련 있는 나무라서 신성한 존재였다. 물론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단'이 박달나무인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지만 단군과 박달나무를 연결시키는 사례는 적지 않다.주변에서 박달나무를 만날 수 없는 것은 그동안 이 나무를 많이 사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박달나무는 물에 가라앉을 만큼 무겁고 단단해서 홍두깨나 방망이 재료로 많이 활용했을 뿐 아니라 가구재·조각재·곤봉·수레바퀴 등으로 사용했다. 박달나무로 배와 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한 사례는 "일성록" 정조 17년(1793) 12월 11일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내가 처음 박달나무를 만난 곳은 문경새재였다. 박달나무의 줄기는 어릴 때와 나이 들었을 때 다르다. 어린 박달나무는 줄기가 매끈하지만 나이 든 박달나무의 줄기는 불규칙하게 갈라진다.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살고 있는 곳에는 물박달나무도 함께 살고 있다. 물박달나무는 박달나무와 형제지만 줄기가 여러 겹으로 얇게 벗겨진다. 아울러 박달나무의 열매는 하늘을 향하지만 물박달나무의 열매는 땅으로 향한다. 경남 합천 해인사 가는 길에는 박달나무, 물박달나무와 열매 모양이 다른 까치박달을 만날 수 있다.박달나무는 단군과 단기를 비롯해서 박달나무고개 등 인명과 연호 및 지명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이는 그만큼 박달나무가 우리 민족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박달나무에 대한 관심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자존에 무척 중요하다. 대구시내 가로수나 공원에서 박달나무를 만날 수 있다면, 박달나무를 통해 단군신화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대구의 문화행사는 한층 뜻깊고 풍성할 것이다.

2019-09-09 18:00:00

손호석 극작가, 연출가

[매일춘추] 과정도 중요하다

예술가는 결과물을 대중에서 선보이기 위해서 아주 오랜 기간을 투자한다. 공연을 예로 들자면 어떤 공연을 할지 구상하고, 작품을 쓰고, 사람들을 모으고, 연습하는 시간을 보낸 후에야 공연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몇 달 동안 준비해서 며칠간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공연을 하는 시간보다 그 공연을 준비하는 기간이 훨씬 더 긴 것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작품과 연관되지 않은 일상생활이라고 부를만한 시간들도 보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술가의 삶이 얼마나 안정되고 행복한가에 따라 예술가가 선보이는 작품의 내용이나 질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지역이 좋은 예술을 창조해내려면 예술가의 일상생활과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술정책의 대부분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예술가로 분류된다. 상당한 금액이 투자되는 예술 관련 건축물만 봐도 이러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 지역은 좋은 예술회관이 많은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다. 시에서 운영하는 공연장, 미술관과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예술회관만 해도 예술의 결과물들을 보여줄 충분한 장이 마련된다. 그에 반해 예술을 준비하는 공공건물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미술 작가를 위한 창작 스튜디오 몇 군데와 대명동의 연습공간 정도만 떠오른다. 결과물을 보여주는 건물에 비해 그 결과물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건물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일상생활의 영역으로 가면 더 심각하다. 예술가도 먹고, 자고, 아이를 낳고, 휴식을 하고, 공부도 해야 한다. 이것은 예술 활동과 전혀 상관이 없고 그저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믿는다면 예술가들은 균형 잡힌 일상은 포기하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결과물 만들기에 몰두하거나 예술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예술가를 위한 식당, 예술가를 위한 보육시설, 예술가를 위한 임대 주택, 예술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 당장의 결과물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예술가가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돕는 인프라 구축과 프로그램 개발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인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예술을 창조하는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 말이다. 손호석 극작가·연출가

2019-09-09 11:10:01

김태원 대구시의원

[기고] 어린이 교통안전 지키는 옐로카펫

'옐로카펫'은 보행자, 특히 어린이들의 안전한 보행을 돕기 위해 주민참여를 통해 국제아동인권센터가 개발한 어린이 안전보호구역을 말한다.옐로카펫은 2015년 국제아동인권센터가 지역주민, 전문가들과 함께한 '아동이 안전한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어린이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횡단보도가 지목되면서 탄생했다.옐로카펫 사업은 노란색 시설물과 표지판을 만들어 부드럽게 개입해 선택을 유도한다는 뜻을 지닌 '넛지 효과'를 활용해 횡단보도 보행자의 안전한 대기공간을 조성한다. 또한 색 대비 효과를 활용해 운전자에게 아이들이 잘 보이게 함으로써 교통사고를 예방한다.2015년 어린이 안전을 위한 최초의 옐로카펫이 서울시 성북구 길원초등학교 앞에 설치된 이래로 현재까지 전국 900여 장소에 옐로카펫이 설치돼 어린이의 횡단 중 교통사고 예방에 도움을 주고 있다.서울시의 경우 2015년 처음으로 18개소를 설치해 사고 감소의 정량적인 효과에 대한 명확한 검증과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옐로카펫의 설치 효과를 검증한 바 있으며 올해 현재 37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세계 최초의 어린이 안전보장 시도가 한국에서 처음 도입됐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2017년 국립재난안전연구원과 도로교통공단이 발표한 옐로카펫 설치 효과에 따르면 91%의 운전자가 운전 중 옐로카펫이 설치된 구간을 지날 때 감속 및 일시정지 후 주행한다고 대답했다.또,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선집중도가 20~40%에서 60~90%로 증가해 시인성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실제로 2016년 20개 서울시 초등학교 앞에 옐로카펫 사업을 실시한 자치구를 중심으로 횡단 중 교통사고 발생률을 보면 최대 40%의 교통사고가 감소했다.옐로카펫의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결과들이 공개되면서 행정안전부 산하 재난연구원은 2018년 6월 '옐로카펫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국토교통부도 올해 2월 도시지역 설계 가이드라인에 차량방호 안전시설 중 하나로 옐로카펫, 어린이 횡단보도 대기소를 올렸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차 조심하라"는 부모님 말씀을 들으면서 자랐고 부모가 돼서는 어린 자녀에게 똑같은 말을 하곤 했다.요즘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들이 늘면서 전방 주시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2015년 이후로 어린이의 횡단보도 내 사고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시의 경우 2014~2018년 발생한 횡단 중 교통사고 발생건수를 보면 전체 비율이 10%인 데 반해 어린이 횡단 중 교통사고의 비율은 22%로 2배가 넘는다.대구시의 슬로건인 '행복한 시민' 속에는 어린이도 포함된다. 안전한 스쿨존, 통학로 조성은 대구시장의 공약사항이다.대구시는 아직 한 곳에 불과한 옐로카펫 사업을 과감하게 확대 실시하기를 바란다. 옐로카펫은 아동의 교통안전을 위한 작은 축제이기도 하다.어린이 교통사고가 가장 많은 5월 5일을 '옐로카펫 데이'로 정해 옐로카펫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소중한 아이들의 안전도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

2019-09-09 10:28:31

김기수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의 창] '새마을운동'을 대한민국의 브랜드로

지난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은 50명의 석사 졸업생을 배출했다. 영남대는 대한민국의 국제개발협력 실천에 동참하고 나아가 국격 향상 및 인류 공영에 기여하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해 2011년 개발도상국의 지속 가능한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주도할 인재 양성 전문 교육기관으로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을 설립했다.박정희새마을대학원은 개원 이래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등의 67개국에서 온 667명의 학생들을 교육해오고 있다. 이들 학생들은 대부분 개도국의 공무원 또는 이들 국가들의 개발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다. 박정희새마을대학원에서는 새마을운동을 포함한 한국의 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도국에 자조 역량 개발을 촉진할 자기개발 원조 모델을 확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론과 실무 교육 및 정신(태도) 변화를 통한 지도자로서의 실천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대부분의 졸업생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정부 및 비정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마을운동을 소개하고 또한 실천하고 있다. 필리핀과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졸업생들이 직접 새마을운동을 현지 마을에 적용하여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 등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탄자니아에서는 졸업생이 시장이 되어 본인의 시뿐만 아니라 빅토리아호수 연안에 있는 탄자니아, 우간다, 케냐 등 3개국 113개 지방정부 및 자치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빅토리아호수지역 지자체연합(LVRLAC)과 함께 새마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전국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새마을운동 방식의 농촌 개발에 농업관개축산부에 근무하는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졸업생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새마을운동의 효과성에 대한 확신과 전문 지식으로 무장된 두 졸업생의 노력으로 암하라주와 SNNPR주에서 새마을운동을 농촌 개발 모델로 채택해 시행하고 있다.한편 지금까지 선진국을 중심으로 많은 예산이 개도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투입됐지만 수혜국 주민들의 주인 의식 부족과 역량 부족 등으로 인해 대부분 지속 가능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민 참여 유도, 자조와 자립 정신 배양, 교육과 역량 강화, 공정한 평가와 성과에 따른 차등 지원 등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ODA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미국, 유럽, 일본 및 중국의 개도국에 대한 유무상의 원조액에 비해 한국의 원조액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국제사회에서 ODA는 단순히 개도국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미래 개도국과의 외교 및 경제적 협력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개도국에 대한 지원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은 개도국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발전 경험을 '새마을운동'으로 브랜드화하여 앞으로 개도국에 대한 모든 ODA와 경제 지원을 일관성 있게 이 브랜드로 시행하면 적은 예산으로 보다 효과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현재 새마을운동중앙회와 경상북도 새마을세계화재단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개도국 지도자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단기 연수,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에서 하고 있는 개도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새마을운동 기반의 지역사회 개발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화된 이론 및 실무 교육, 그리고 모든 ODA 사업에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는 정책이 함께 시행될 필요가 있다. 단기 연수를 통해서 개도국에 새마을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개발 동기를 부여하고, 정규 학위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심화된 새마을운동과 개발 정책에 대한 교육으로 개발을 주도할 개도국 공무원과 지도자들의 실행 역량을 강화하고, 이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새마을운동의 시행 원리와 전략을 적용하여 ODA 사업을 수행하도록 일관성 있게 지원 및 관리하면 한국의 ODA 사업은 보다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2019-09-09 10:28:05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이른 아침에]같은 땅, 다른 세상

'매장별 재고 및 위치'란 게 있다. 국내 대형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가끔 클릭하는 항목이다. 그런데 이게 창이 열릴 때마다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한다. 책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데 전국을 세 영역으로 나눠 놓았다. 하나는 서울, 또 하나는 수도권,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지방이다. 세상에 무슨 이따위 분류가 있나 싶다. 게다가 '지역'도 아닌 '지방'이란다. 북부권, 중부권, 남부권이라 해도 되고 그게 싫으면 수도권, 비수도권으로 구분해도 될 텐데 말이다. 서울 중심 사고의 전형이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자기네들 중심으로 서울발 부산행 열차를 상행이라 하고 그 반대를 하행선이라 표시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그런데 이런 건 흔하다. 뉴스에서 "국민 여러분 종일 내린 비로 불편하셨죠?"라고 아나운서가 인사를 하면 속으로 '아니거든, 서울 말고 전국이 쨍쨍했거든' 하다가도 이젠 그러려니 한다. 또, 대구 청년이 입사지원서에 어떻게든 서울 친척집 주소라도 적어놓은 걸 보면 참 씁쓸하지만 이 또한 잦다 보니 그러려니 한다. 심지어 이젠 시위조차 광화문에서 해야 뭔가 하는 것 같다고 보지만 이마저 익숙해졌다. 같은 크기, 같은 무게라도 장소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격이다. 이렇듯 서울과 서울 아닌 지역은 같은 땅 다른 세상을 산다. 그리고 그 사이로 넘지 못할 벽을 계속 쌓아 올린다. 주로 서울 사람들이 그런다.요금제를 바꿔볼까? 휴대폰 요금내역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매번 데이터는 모자라고 통화량은 남아서다. 그러다 우연히 꽤 괜찮은 요금제를 발견했다. 가격은 싼데 제공되는 데이터 용량은 오히려 더 크다. 더구나 하루 중 2시간은 데이터가 무제한이다. 곧장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로그인을 했다. 상품을 선택하고 '데이터 프리' 시간대는 하루 중 언제로 할지 심사숙고해 정했다. 그런 다음 여러 차례 '동의'에 체크를 하고 마지막으로 확인 버튼까지 눌렀다. 그런데 웬걸? 가입이 안 된단다. 해당 요금제는 25세 이하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뜬다. 괜히 시간만 버렸다.그런데 가만 보니 다른 요금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연령대에 맞춰 상품이 구성되어 있다. 내가 노렸던 요금제는 야외 활동이 비교적 잦은 20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상품이었다. 한마디로 난 자격 미달이었다. 예외는 없었다. 적어도 휴대폰요금제만 놓고 보면 누구든 나이 따라 정해 놓은 표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 만약 그렇게 살지 않을 거면 손해가 나도 참아야 한다. 모바일 뉴스도 나이에 맞춰 제공된다. 사용자 중심 인터페이스라지만 나이 고정 인터페이스에 가깝다.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 주로 어떤 뉴스를 보는지 알고 싶다면 일일이 찾아 눌러야 한다. 화면을 쓱 미는 정도로는 안 된다. 이래저래 모바일 세계에선 나이가 영역을 가른다. 그리고 벽을 쌓고선 각기 따로 산다.여론조사기관들은 놀랍다. 매번 국민을 보수와 진보로 딱딱 나눠서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이게 가능할까? 보수라서, 진보라서 견해가 다르다는 데 정말 그럴까? 우리에겐 그런 정치적 내력도 없고 그런 걸 배운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자꾸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모든 국민의 정치적 정체성이 칼같이 정돈되어 버렸다. 혹시라도 이게 틀렸다면? 진보와 보수로 국민을 가르는 게 엉터리라면? 하지만 그런 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말하는 사람도 어차피 잘 없다. 그저 두 개의 진영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훅, 스트레이트, 잔 펀치, 큰 거 한방' 등의 단어가 하루 종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권투 중계가 아니라 법무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 중계다. 양 진영은 조국을 지키느냐, 조국을 쫓아내느냐에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것처럼 싸운다. 조국은 조국(祖國)이 아님에도 말이다. 지난 한 달 내내 그랬다. 하나의 건으로 이렇게 많은 뉴스와 논평이 쏟아지는 걸 본 적이 없다. 머릿속이 더부룩할 지경이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며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들은 같은 땅 다른 나라를 산다.정말이지 나라가 온통 이러면, 사는 곳 따라, 나이 따라, 진영 따라 모두가 같은 땅 다른 세상을 산다면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는 없다. 상대를 인정하고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그래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2019-09-08 14:52:38

엄석화 한국가스안전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장

[기고]추석 연휴, 가스안전과 함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핵가족화의 진전으로 가족 친지가 한데 모이는 자리가 드물어 가는 상황에서, 오랜만에 가족 친지가 한자리에 모여 따뜻한 정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삶의 위안과 기대를 안겨준다.이처럼 좋은 명절,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게 있다. 바로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한 가스 안전 실천이다.최근 5년간 추석 연휴와 앞뒤 각 3일을 포함한 기간에 발생한 가스 사고는 모두 11건으로 13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용자가 직접 LPG 용기를 교체하거나 과대 불판을 사용하는 등 사용자 취급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45.4%(5건)로 가장 많았고, 시설 미비가 27.3%(3건)로 뒤를 이었다.사고는 설마 하는 방심 속에 발생한다. 가스 안전은 바로 나와 우리 가족, 이웃을 위해 실천해야 하는 사회규범이다. 추석 연휴 꼭 지켜야 할 가스 안전 수칙은 어떤 것이 있을까?먼저, 귀향길에 오르기 전에는 가정 내 가스레인지 콕과 중간 밸브, 메인 밸브(LP가스는 용기 밸브)가 잠겨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만큼 연휴기간 중에는 음식 준비 등으로 평소보다 가스 기기 사용이 늘어나므로 미리 가스 시설을 점검하고 사용하는 것이 필수다.연로하신 부모님의 안전을 위해 고향집에 가스안전장치를 설치하고, 낡은 가스용품은 교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가스 타이머콕은 사용자가 임의로 시간을 설정하면 그 시간에 맞춰 가스를 자동으로 차단해 주는 안전장치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놓고 외출하거나 잠들어도 과열로 인한 화재 사고를 예방할 수 있어 부모님의 안전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특히 추석에는 많은 음식 장만을 위해 각 가정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어느 때보다 많이 써, 안전사용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작년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인한 사고는 총 24건으로 전체 사고의 16.7%를 차지한다. 우선 휴대용 가스레인지의 불판보다 더 큰 조리기구를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지나치게 큰 조리기구(냄비, 불판)를 사용하면 휴대용 가스 용기에 복사열이 전달되어 내부 압력 상승으로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석쇠에 쿠킹포일을 감아 사용하면 포일이 더 많은 양의 복사열을 휴대용 용기에 전달하기 때문에 위험하다.사용 후 남은 휴대용 용기는 휴대용 가스레인지에서 분리해 화기가 없는 곳에 보관하고, 다 쓴 휴대용 용기는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바람을 등지고 용기를 뒤집어 노즐이 바닥에 닿은 상태로 세워 눌러 잔류 가스를 방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용기에 구멍을 뚫어 분리 배출하면 된다. 잔류 가스를 빼지 않은 상태에서 용기에 구멍을 뚫으면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안전수칙이다.연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고, 혹시 가스 누출이 의심되면 관할 도시가스사나 LPG 판매점 등에 연락해 안전점검을 받은 뒤 사용해야 한다.흔히 우리 주변에서 '이 정도면 되겠지?' '대충대충, 빨리빨리' 등의 말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철저하지 못한 면과 조급성은 안전관리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큰 문제다. 이런 습관들은 안전관리의 최대 적으로 볼 수 있다.안전에는 왕도가 없다. 생활 속 작은 실천이 큰 재난을 막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가스 안전 실천과 함께 가스 사고 없는 즐겁고 풍요로운 추석 명절을 보내시길 기대한다.

2019-09-08 14:45:43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광장] 연귀산(連龜山) 거북바위를 보며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대구도호부 '산천'(山川)조(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연귀산은 부의 남쪽 3리에 있는데, 대구의 진산(鎭山)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마을을 형성할 때 돌 거북을 만들어 산정부에 머리는 남쪽으로, 꼬리는 북쪽으로 향하도록 묻어 지맥을 통하게 한 까닭에 연귀라 부른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연귀산과 거북바위에서 대구의 진산이 연귀산임을 알 수 있다. 진산은 풍수적 용어다. 즉, 마을이나 도읍지 뒤편에서 진호(鎭護)하는 산으로 주산(主山)이라고도 부른다. 연귀산은 현재 제일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조 순조 때는 연귀산에서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를 알리는 포를 쏘았다고 해서 '오포산'으로 불리기도 했다.제일중학교를 방문하게 되면 학교 건물 앞쪽에 머리를 앞산 쪽(남쪽 방향)으로 꼬리는 팔공산 쪽(북쪽 방향)으로 향해 있는 돌로 만든 거북이를 실제 볼 수 있다. 연한 자줏빛을 보이는 모래 질 암석인 자색(紫色) 사암에 거북 형상을 새겨 놓았다. 거북바위는 타원형을 보이며 여러 곳에 성혈(性穴, cup-mark)도 보인다. 과거 대구지역 선사인들의 무덤인 고인돌의 덮개석이라 전해 온다.연귀산 거북바위는 고문헌에 기록된 대구 최초의 유물로 대구를 상징하는 보물이다. 팔공산과 비슬산(앞산) 사이에 위치해 있는 대구분지는 풍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맥이 단절된 모습이다. 그래서 단절된 지맥을 잇기 위해 작은 언덕에 불과한 연귀산에 거북바위를 묻어 지맥을 연결한 것이다. 더욱 신통한 일은 앞산이 약 7천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화산임을 어떻게 알았는지 불기운이 강한 앞산의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해 물의 신에 해당하는 거북이를 만들어 비보(裨補)한 것이다.유럽 여행 중 프랑스를 들를 때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평평한 도시 파리에 있는 해발고도 129m 높이의 '몽마르뜨 언덕'을 어김없이 찾는다. 몽마르뜨 언덕은 군신의 언덕 또는 순교자의 언덕이라 불리는 명소로, 인근에는 유명한 예술인들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지역에는 몽마르뜨 언덕보다 더 가치 있고 대구의 정체성과도 같은 연귀산이 있지만 지역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대구를 상징하는 동물을 거북이로 하고 거북바위가 있는 연귀산에 대구의 대표 광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달구벌 최초의 성인 달성(達城)보다 시대가 앞서는 연귀산을 중심으로 선사시대의 이야기, 역사시대의 이야기, 근대화 골목의 이야기 등을 풀어나간다면 대구가 보다 매력 넘치는 도시가 될 것이다. 대구를 대표하는 역사 관광지로 근대화골목이 지나치게 부각된 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이야기를 간직한 근대화골목이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관광산업 역시 올바른 역사적 토대에서 성장해나갈 때, 우리의 자긍심과 자존감 또한 고취되리라 믿는다.대구 출신 대문장가인 사가 서거정 선생은 그의 한시 대구십영(大丘十詠)에서 연귀산과 거북바위를 읊고 있다. 여기에 서거정 선생의 '귀수춘운'을 소개한다.귀수춘운(龜岫春雲): 연귀산의 봄구름귀잠은은사오잠(龜岑隱隱似鼇岑): 거북 뫼 은은하여 자라 뫼 닮았네.운출무심역유심(雲出無心亦有心): 무심히 피어난 구름 또한 의미가 있네.대지생령방유망(大地生靈方有望): 바야흐로 대지의 생명과 영혼들이 바라듯,가능무의작감림(可能無意作甘霖): 아무 뜻 없이 단비를 내리겠는가?

2019-09-07 01:30:00

1918년 발행된 무정 초판본(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무정'이 최초의 근대소설인 이유

"이광수 '무정'은 한국최초의 근대소설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항상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막상 '무정'(1917)이 왜 최초의 근대소설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다수는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그나마 답을 한다고 해도 근대적 자아라거나, 근대적 문체 등 어려운 말을 주절주절 내뱉을 뿐 명료하게 의미를 설명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정'은 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소설일까? 단순하게 답하자면 '나'나 '당신'같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최초의 소설이기 때문이다.'무정'의 주인공 이형식은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우리가 즐겨 시청하는 TV드라마의 주인공과 비슷한 것도 아니다. TV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대부분 멋진 외모, 화려한 출신배경, 뛰어난 능력, 고결한 품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소설의 영웅에 가깝다. 이 점에서 본다면 고아출신에 역삼각형 얼굴, 영양결핍으로 비쩍 마른 이형식은 모든 면에서 주인공이 되기에는 함량미달이다. 여기에 더하여 성격은 결단력 없이 우유부단하다.그는 사회에 대해서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세속적 욕망, 적당한 수준의 비겁함, 적당한 수준의 교활함, 적당한 수준의 용기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정의감 역시 함께 가지고 있다. 부잣집 데릴사위 자리를 별 고민 없이 감사하게 받아들이는가 하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그 행운을 손에 쥐기 위해서 은인에 대한 은혜 갚음에는 되도록 눈을 감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인간적 도리라든가, 의리에 완전히 눈을 감은 채 오로지 성공을 향해 돌진할 용기도 없다. 언제나 정당함과 부당함 사이에서 멈칫멈칫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멈칫멈칫하면서도 공공의 선(善)을 향한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무정'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완전무결한 영웅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인간을 앉힌 것이다. 유약한 인간이 주인공으로 들어앉았으니 지리멸렬하고, 구질구질한 삶의 이야기가 소설 내용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이 아닌가.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용기와 비겁함 사이에서 주저주저하면서도 힘을 내어 한 발 씩 앞으로 내딛는 그 힘을 통해서 인간은 진정한 영웅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무정'은 인간적 영웅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무정'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그려낸 소설이었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어떤 환상도, 환상을 포장하는 이데올로기도 들어있지 않았다.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는 '무정'의 혁명적 위업은 이처럼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이십대 이광수의 순수하고도 정직한 시선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우리들은 자신이 선함과 악함, 약함과 강함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그 경계를 기억하는 한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초빙교수

2019-09-05 15:43:03

장정옥 소설가

[매일춘추]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 있는가?

책을 한 권씩 낼 때마다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글을 쓰는 동안 작업에 얼마나 즐겁게 몰두했나 하는 물음이다. 새로운 글을 생각하며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이 즐겁기만 할까. 그렇다 해도 소설을 쓰는 순간만은 작가가 행복하고 글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읽는 사람에게 그 느낌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순간이 작가에게 비타민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마침표를 찍고도 마음이 찜찜하면 그 작품은 아직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책도 마찬가지다. 출간을 앞두고 뭔가 미진하고 불안하면, 그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잠시 밀쳐두었다 다시 읽으면 앞서 찾아내지 못한 부분이 보인다.소설을 끌고 가는 것이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작업에서 손을 떼고 밖으로 나간다. 인고의 고통은 육체보다 정신이 괴로울 때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터여서. 그럴 때는 밖으로 나가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며 정신이 쉴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한층 효과적임을 여러 번 경험했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소설 한 편 완성하자면 몸과 영혼이 그 작업을 함께 수긍하며 '됐어, 잘했어!' 하고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끝난다.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 그 괴로운 순간마저 견뎌내는 것이 작가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환담을 나누다 보면 자신의 고민이 의식의 부동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언제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소설이 다가왔고, 책 비슷한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문화의 시작은 이렇듯 자아의 표출에서 출발한다. 농부가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열매를 기다리는 것처럼 작가는 늘 기다리고 캐낸다. 새로운 발상과 적확하고 매력적인 문장을 갈고 닦으며. 문화의 어원을 살펴보면 경작 또는 재배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이 있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듯이 문화는 영혼의 채움을 대신한다. 낯선 여행지에서 그곳의 문화를 만나고, 활자를 통해 세계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책 속에 자아를 내려놓을 시간을 가지는 것도 채움에 대한 헛헛한 갈망 때문이 아닐지.가끔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는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 있는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온갖 책임과 의무를 지고 살아가지만, 책임과 의무만으로 살아가기에 인간의 심성은 너무 감성적이고 미묘하다. 이제 풀잎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안개가 자욱할 시즌이니 영혼의 충전을 위하여, 천천히 활자를 음미하는 기쁨을 맛보면 어떨지. 장정옥 소설가

2019-09-05 11:21:57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춘추칼럼]공공의 존재 이유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과 민간이 만나서 협력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지방분권'이 강조되면서 협치 혹은 거버넌스라는 형태의 구조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혁신'을 가능하게 하려면 민간의 역량을 공공 영역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공공과 민간이 만나게 되면 항상 불협화음이 생기게 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은 별도로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만 놓고 본다면 힘의 불균형과 속도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다.공공이 갖는 가장 큰 힘은 역시 '예산'이다. 지금처럼 불안한 사회에서는 그나마 공적 자금만큼 안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불합리한 지원 제도에도 불구하고 공모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이런 부분도 포함될 것이다. 공공의 모든 사업은 예산을 기초로 한다. 차기 연도 예산을 수립하는 시기가 되면 정부나 지자체 모든 부서는 예산 확보를 위해 '전쟁'을 치른다. 정해진 예산에서 자기가 속한 부서나 사업에 조금이라도 더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때론 눈물겹다. 최근에는 추가경정예산도 치열해져서 사실상 '예산 전쟁'은 1년 내내 전개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동네 곳곳에 '예산 확보'라는 플래카드를 열심히 내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실제로 예산이 없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으며 사업을 진행할 이유도 없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공 조직에서는 매년 정해진 사업과 예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실무자 정체성이 강할수록 이러한 원칙을 더 강조한다. 그렇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매년 하던 사업들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한 예산을 책정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매년 반복되는 보도블록 교체도 비슷한 이유이고, 공공 혁신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이것은 시민들이 공공 영역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시민과 가장 밀접해야 할 공공이 시민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공공 혹은 행정의 존재 이유라는 물음에 가 닿는다. 행정은 시민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국가와 사회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기본적인 책무일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작동할 때가 많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출발해서 사고하거나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라는 틀에 나와 있는 법과 규정을 적용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래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전도되어 위의 규칙으로 아래를 통제만 하는 것이다.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는 복잡한 사례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최근 정부가 도시재생과 생활SOC 사업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조만간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결과는 새로운 시설이나 공간 등 하드웨어의 변화일 것이다. 문제는 하드웨어의 변화까지는 공공이 책임을 지지만 대부분 그 후에는 제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공간 운영의 방향과 주체마저도 공간이 완성된 이후에 고민하는 일이 많다.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처음 예산과 사업 계획이 정해지면 바로 운영 기획과 방향, 주체 등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226개의 전국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시설 중에 현재 제대로 활용되지 않거나 방치되어 있는 시설과 공간은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런데도 지역 예술가들이나 활동가들은 공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이 불균형과 불일치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앞으로 민관 거버넌스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언젠가 공공은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공공 영역의 가장 큰 위험성은 자신의 존재, 즉 정체성을 스스로 완성하려고 할 때이다. 자기 스스로 완결 구조를 갖추려고 하는 순간, 더 이상 공공성이 설 자리는 없게 된다. 공공성은 철저하게 시민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만약 정부나 지자체가 자기 완결성을 갖는 조직이 된다면 대기업과 다를 바 없다.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혁신을 하고 잘못하면 망하기라도 하지만, 공공은 잘 망하지도 않는다. 지금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에 공공의 존재 이유는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2019-09-05 11:21:18

김석 대한전문건설협회 대구시회 회장

[기고]추락재해, 이제는 마침표를!

5G 시대를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참 믿기지 않는 실상이 하나 있다.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971명 가운데 절반인 485명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하였으며, 이 가운데 추락사고 사망자가 60%인 290명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문제는 추락재해가 작업환경에 대한 관심과 주의, 그리고 작은 노력만으로도 예방이 가능한 매우 원시적 인재(人災)라는 점이다. 추락재해 발생위험 상황은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장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설마 괜찮겠지 하는 안이한 태도가 죽음을 부르는 화근이 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실상이 아닐 수 없다.작업현장의 추락재해 예방방법은 상식적일 만큼 아주 단순하다. 특수한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작업자는 안전모, 안전대를 반드시 착용하고 현장에는 작업발판, 안전난간, 안전망, 개구부 덮개를 철저히 설치하면 추락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작업발판이 설치되어 있는지, 작업발판이나 개구부 덮개를 설치한 경우 충분한 강도를 가진 재료로 튼튼하게 설치되어 있는지, 작업발판과 통로의 끝 그리고 개구부의 추락 위험이 있는 장소에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 만일 미흡하다면 필요한 발판과 난간을 설치하면 된다.철골 등 고소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작업자의 주요 이동통로에 안전대 부착 설비를 설치하고 혹시 모를 추락 방지를 위해 안전망을 설치하면 된다. 안전대 부착 설비를 설치한 경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안전대와 부착 설비가 처지거나 풀림 없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하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안전난간 설치와 안전대 사용이 곤란한 추락 위험 장소에는 안전망이 설치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 밖에 선라이트 등 강도가 약한 지붕 위의 작업자가 추락할 위험이 있을 경우 발판 혹은 안전망을 설치하고, 작업자는 안전모와 안전대 등 개인보호구를 올바르게 착용했는지 스스로 체크하면 된다.정부는 추락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난 4월 '추락사고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공공공사는 안전성이 검증된 일체형 작업발판(시스템비계) 사용을 의무화하고, 민간공사는 일체형 작업발판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설치비 등 금융지원사업(국토교통부)과 국고지원사업(고용노동부)을 5월부터 시작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현장의 시공사, 감리사, 발주청 등 사망사고 다발 건설주체 명단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지난해 22개 현장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불시점검을 올해는 200개 이상 현장으로 확대하기도 했다.특히 7월부터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는 국토부로 반드시 신고하고 공공공사 발주청은 공사 착공 전에 감리 배치계획 등을 포함한 건설사업관리계획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7월 1일 시행에 들어갔다. 우리 협회도 정부 추락사고 방지대책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추락사고 예방대책 TF'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협회는 '소규모 건설공사 안전관리 가이드 라인' 리플릿을 제작해 전문건설 회원사와 현장에 배포하는 한편 현장방문 홍보를 펼치고 회원사와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폭넓은 교육활동을 전개하는 등 추락재해 예방을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추락재해라는 원시적 인재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건설업체와 근로자, 그리고 발주기관 등 건설주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2019-09-05 11:14:34

1915년, 종이에 담채, 15.1×4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이도영·고희동·안중식 '기명절지'

올해는 늦장마로 벼 베기가 좀 늦어진다고 하지만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가을에 어울리는 그림이다. 잎이 달린 동그란 무, 갈대에 꿴 쏘가리 두 마리, 뚜껑이 없는 주전자, 붉은 고추, 가지 채 꺾어온 복숭아와 비파, 수염이 긴 옥수수, 알알이 반짝거리는 도톰한 산딸기, 씨가 가득 박힌 수박 등이 있다. 그림이니 만치 계절은 따질게 못된다. 주전자에 뚜껑을 안 그린 것은 술이 가득 들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이 먹거리들은 안주거리거나 비주류(非酒類)의 간식거리일 테다. 아무렇게나 늘어놓아 분방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청신한 담채의 아기자기한 색깔과 형태의 특징을 살린 시원스런 붓질이 시각적 흥겨움을 더한다.골동 그릇과 화훼류를 그리는 기명절지화에서 기명은 술 주전자로, 꽃 대신 술안주와 먹음직스런 음식물류로 실속 있게 구성했다. 주변에 흔한 정겹고 친근한 소재들 속에 출세와 부귀, 장수와 자손 번창을 상징하는 뜻도 담았다. 그런데 복숭아는 반쯤 익은 푸른색 벽도(碧桃)이다. 삼천년 만에 꽃이 피고, 삼천년 만에 열매가 열리고, 삼천년 동안 익기까지 푸른색이어서 벽도라고 한 서왕모의 천도(天桃)를 그린 것이다. 동방삭이 훔쳐 먹고 삼천갑자, 곧 18만 살까지 살았다는 벽도를 그려 부채주인의 장수를 축원한 것이다.세 군데에 화제와 낙관이 있는 세 사람의 합작품이다. 오른쪽은 이도영이, 왼쪽은 고희동이 맡아 부채를 다 완성했는데, 안중식에게 다시 화제를 요청해 안중식이 왼쪽 모서리에 어울리는 시를 써 넣었다. 안중식이 화제에서 '양형(兩兄)'이라고 했듯이 이도영과 고희동은 그가 길러낸 근대기 한국화가들 중에서도 조교 급의 고제(高弟)여서 스승에게 감히 이런 요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셋과 부채주인 등이 시주(詩酒)로 어울린 유쾌한 자리에서 스승은 두 제자가 합작한 그림에 붓을 넘겨받아 화제를 쓰며 흐뭇했을 것 같다.1915년 5월 탄생한 이 부채그림은 근대 화단의 주요 작가 세 명의 손길이 함께 닿았을 뿐 아니라 188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장승업→안중식→이도영으로 이어진 기명절지화의 계보를 떠올리게 해주는 의미 깊은 작품이다. 기명절지화는 이도영이 가장 잘했던 분야인데 가야와 신라의 질그릇,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중국 고동기(古銅器) 대신 그리기도 했고, 당시 귀한 열대과일인 바나나를 넣기도 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으나 1933년 50세의 이른 나이로 타계하여 자신의 세계를 다 완성하지 못했다. 이도영은 타계 전 몇 달간을 대구에 머물러 그의 작품 10점이 영남대학교박물관 '오정·소정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고, 기석(箕石) 허섭(1878~1934)의 산수화에 화제를 남기는 등 대구와 인연이 깊은 작가이다. 미술사 연구자

2019-09-05 10:34:47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매일춘추] 연극예술의 위대성

고대로부터 예술의 존재 의의와 목적에 대해 많은 질문이 제기되어 왔고, 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해왔다. 그 가운데 예술의 영향력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예술은 오로지 그 자신의 내적 가치를 위해 존재하며 외적인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주지도 받지도 아니하는 것과,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 시킬 수 있도록 하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겠다. 예술 일반의 범주 아래, 연극예술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연극은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재구성된 인간의 경험을 몸짓과 언어로 표현하며 우리의 삶을 가장 유사하게 담아내는 종합예술로서 실제 인간의 삶을 모방하고 이를 허구로 가공하여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순간순간 메시지를 전하는 역동적인 예술이며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측면중 후자에 가장 많은 기능을 가진 예술이라 할수 있겠다.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역할로서의 연극적 기능을 가지고 교육이라는 명목아래 많은 대중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이는 내가 직접 무대화할 때와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주었고 내가 왜 연극을 하는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지난 9월 3일 오후 7시 대구 서구문화회관에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퍼블릭 프로그램인 '연극 울고넘는 박달재' 발표회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시민들의 문화참여 기회와 문화향유 기회가 확대되기를 바라면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놀라운 점은 여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30대에서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이 다양했으며 직업 또한 다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극을 처음 접했으며 자기 스스로 '끼'를 가지고 무대에 서고 싶어서 참여했다기 보다는 내성적인 자신의 변화와 또 다른 세계의 경험을 하고 싶어서 참여했다는 쪽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약 4개월간의 교육기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읽고 노래하고 움직이고를 반복하면서 이들은 나이도 잊고 직업도 잊은채 연극 공연이라는 하나의 공동된 목표를 두고서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워 주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고 난뒤 이들의 표정은 묘한 행복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연극이 가지는 매력, 즉 혼자만이 아닌 다같이 참아내고 극복하며 오늘을 성취했기에 나누는 기쁨이었으리라.어는 참가자가 이런 말을 한다. "전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연극을 하는 동안 정말 행복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연극할 때처럼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30이든 70이든 "내년에도 꼭 할꺼에요" 라고 어리광을 부린다.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맨 마지막 대사 때 객석에서 울었어요. 여러분들의 진심이 들려서요. 연극예술은 정말 위대 한 것 같아요. 그러니 여러분 주변에 많이 알려주세요. 같이 할수 있도록." 정철원 극단 한울림 대표

2019-09-05 10:25:44

전영평(가야명상연구원장.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귀촌한담] 가을 오는 학계마을

산골은 벌써 가을이다. 매화산을 등지고 비계산, 오도산, 두무산을 앞장세운 학계마을에서는 할머니들이 앞마당, 공터, 주차장 등에 참깨, 고추, 도라지, 토란줄기 말리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나도 김장배추, 무, 갓 등을 일주일 전에 심어 놓았다.벌새는 꽃댕강 꽃을, 호랑나비는 능소화를 탐닉하고 말벌도 벌통 짓기에 한창이다. 머리칼에 자꾸 걸리는 귀찮은 거미줄도 가을 작품이다. 한밤중 도로에는 노루 가족, 너구리, 뱀 등이 심심치 않게 보이곤 한다. 곤충부터 사람까지 모두 겨울나기 준비에 몰두하는 산골 풍경이다. 마을 귀퉁이 한적한 우리 집 앞에도 이때가 되면 벌초하러 온 자동차로 가득하다. 산골 여기저기 예초기 소리가 서로 어울려 마치 벌들이 붕붕대는 듯하다. 산골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싸늘해지고 있다.군불을 조금 때고 이불을 목까지 당겨 덮으면 금세 잠이 오긴 하지만 새벽 싸늘함에 오금이 당겨지고 목이 따끔해지기도 한다. 역시 가을은 가을이다. 청장년들은 비계산에 버섯 따러 나선다. 이맘때면 송이, 능이, 싸리버섯 등을 채취해서 나눠 먹는다. 엊그제는 능이버섯 잔뜩 넣고 촌닭을 잡아 닭백숙 만들어서 함께 먹었다. 마을회관에도 몇 마리 보내드렸더니 참 맛있게 드셨다며 과일을 내어 주신다.풍요로운 시절이다. 올해는 비도 잘 오고 태풍도 비켜가서 오곡과일이 풍성하다. 다음 주면 벌써 추석이다. 귀촌한 지 5년 동안 몸 안 사리고 온갖 농작물을 심어보았다. 땅도 기름지고 햇살도 좋아서 농사가 아주 잘 된다. 그런데 이제 농사짓기가 머뭇거려진다. 열정이 식어서도 힘이 없어서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그저 나하나 먹고 살만한 정도만 생산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 주려고 마음을 내거나 장마당에 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아무 생각 없이 큰 탐욕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살다 가면 좋겠다. 산골 예초기 소리가 오늘 따라 남의 일 같지 않다.가야명상연구원장'대구대학교 명예교수

2019-09-04 18:00:00

[권미강의 생각의 숲] 신포도와 여우들 그리고 양치기 소년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는 자기합리화를 이야기할 때 종종 인용된다. 포도를 따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여우가 포도를 먹을 수 없게 되자 '신포도'라고 규정해버린다. 누군가로부터 무시당했을 때, 여러 상황 속에서 불안과 수치심, 죄책감이 들 때 인간은 자신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보호한다. 바로 방어기제다. '여우와 신포도'는 방어기제를 가장 잘 나타낸 우화다. 이야기에서처럼 포도가 신포도인지 단포도인지 먹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여우는 포도를 먹지 못한 아쉬움을 '분명 신포도일거야'라며 달랜다. 아쉬움을 넘어 포도를 평가절하하고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안 먹는 것이라고 자신의 무능력을 포장한다.만약 여우가 포도를 따려는 또 다른 동물에게 "그 포도는 신포도이니 먹지 말라"고 한다면 여우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방어기제로 사용한 신포도가 다른 동물에게 전해지면서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또 하나의 이솝우화인 '양치기 소년'이 오버랩된다.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일삼다가 진짜 늑대가 나타나 양을 사지로 몰아넣는 소년의 이야기다.두 이야기 모두 진실과 관련된 것이다. 진실과 상관없이 자신의 것으로 취할 수 없게 되자 거짓으로 자기합리화하는 여우나,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이나 다른 이들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한 정치인과 그를 둘러싼 여론전을 보면서 오래 묵은 이솝우화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신포도라고 정의내리며 자기 합리화에 빠진 사람들이 여우같이 보인다. 신포도라고 규정하며 포도에게 진실의 당도를 밝힐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는다. 자기합리화를 넘어 거짓말로 수많은 신포도를 만들어낸 여우들과, 믿고 맡긴 마을 사람들에게 거짓말로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양치기 소년이 여전히 많은 세상이다.작가

2019-09-04 18:00:00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 소장

[북돋움] 팥빙수의 전설

성성큼 다가온 가을이 반가우면서도 물러가는 더위가 아쉬워 살짝 붙잡아 보았다. 올해 여름의 마지막 빙수를 먹으면서. 형형색색의 빙수들이 있지만 역시 빙수의 꽃은 팥빙수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팥빙수에 전해져 오는 전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팥빙수의 기원을 옛이야기하듯 풀어볼까 한다.옛날옛날 한 옛날, 깊은 산속에 할머니가 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그런 좋은 날이었지. 잘 익은 과일과 달달구수한 단팥죽을 팔러 시장에 가는데 갑자기 눈이 펑펑 내리는 거야. 할머니는 덜컥 겁이 났어. 이렇게 따스한 날에 눈이 오면 눈 호랑이가 나온다고 했거든. 아니나 다를까 새하얗고 커다란 눈 호랑이가 할머니 앞을 가로막아 서더니 이렇게 말해. "맛있는 거 주면 안 잡아먹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눈 호랑이는 할머니가 던져주는 딸기를 먹고는 함박웃음을 지었어. 참외를 먹고는 덩실덩실 춤을 췄지. 수박은 또 어찌나 맛있는지. 호랑이가 수박을 허겁지겁 먹는 사이 할머니는 줄행랑을 쳤어. 하지만 바람처럼 빠른 호랑이를 어떻게 이기겠어? "맛있는 거 또 줘." "네가 다 먹었잖아." "안 주면 잡아먹는다." "그러든지." "그 봇짐 내놔!" "됐다, 이놈아."할머니는 봇짐을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호랑이는 뺏으려고 용을 썼지. 그 바람에 봇짐 안에 든 단팥죽 그릇이 하늘로 높이 치솟더니 눈 호랑이 머리 위로 '툭' 떨어진 거야. 눈 호랑이는 흘러내리는 단팥죽을 맛있게 먹었어. 그런데 이를 어째. 눈 호랑이가 뜨끈뜨끈한 열기에 사르르 녹아 범벅이 되고 말았지. 할머니는 눈 호랑이 범벅을 그릇에 예쁘게 담아 장에 내다 팔았어. 아, 그런데 눈 호랑이 범벅이 맛있다고 방방곡곡 소문이 난 거야. 그게 지금 우리가 먹는 팥빙수라는 사실. 정말이냐고? 팥빙수의 전설이라나 뭐라나.올해 여름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림책 '팥빙수의 전설'(웅진주니어)이 말하는 팥빙수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 그림책을 다양한 연령대에 보여줬더니 할머니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언제부터인가 할머니들이 공공도서관에서 개설하는 그림책 강좌의 주요 수강생이 되었다. 기억력은 감퇴해도 공부를 향한 열정만큼은 젊은 엄마들한테 결코 밀리지 않는다.할머니들이 그림책을 공부하는 목적은 꽤 분명하다. 첫째는 잘 배워서 아이들을 만나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이고, 두 번째는 손주들을 위해서이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책 공부가 어느덧 생활의 즐거움이 되었다고 한다. 어떤 할머니는 공모전에 낸 작품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전해온다.할머니들 사이에 불고 있는 그림책 바람이 무척 반갑다. 전라남도 곡성 서봉마을에서 평생 농사만 짓고 살던 할머니들이 뒤늦게 한글을 배워 쓴 시가 '눈이 사뿐사뿐 오네'(북극곰)라는 제목의 그림책으로 나왔다. 서툴고 투박하지만 할머니들이 정성을 다해 그린 그림까지 더해져 더욱 따뜻하고 정겹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한다.'어매는 나를 낳고 "또 딸이네"/ 윗목에 밀어 두고 울었다/ 나마저 너를 미워하면/ 세상이 너를 미워하겠지/ 질긴 숨 붙어 있는 핏덩이 같은/ 나를 안아 들고 또 울었다/ 하늘에서는 흰 눈 송이가/ 하얀 이불솜처럼/ 지붕을 감싸던 날이었다.' 이 시를 감상하는 동안 할머니들은 "그때는 그랬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순천 할머니들의 그림일기책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는 출간과 동시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가난해서 또는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여든을 앞두고 한글과 그림을 배웠다. 그들이 쓰고 그린 그림일기가 화제가 되면서 책으로 나오고 전시회까지 열렸다. 할머니들의 도전도 박수칠 만하지만 이를 가능케 한 조력자들의 숨은 노력이 더 커 보인다. 내 어머니가 아닌 남의 어머니를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여긴 사람들이다. 가족을 위한 희생과 인내로 한평생을 살아온 그들의 여생에 꽃길이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리라. 할머니들에게 글과 그림을 가르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도서관 관계자들, 할머니들의 작품을 귀하게 여긴 출판사가 없었다면 곡성과 순천 할머니들의 사연은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숨은 의미를 발견하고 용기 있게 세상에 펼쳐 보인 그들의 뚝심이 멋있다.

2019-09-04 18:00:00

서미지 작 '영주 무섬다리'

[내가 읽은 책]'지하차도 건너기' /하모/우주나무/2019

8월 마지막 날. 학이사에서 마련한 교통편으로 청주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열리는 2019년 대한민국 독서대전 덕분에 '지하차도 건너기'라는 책을 만났다. 저자명이 낯설어 들춰본 프로필에 "바다를 건너는 나비처럼 글을 씁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하모 작가의 다른 작품 '알아주는 사람' 과 '소원을 들어주는 가게'는 '우주나무' 출판사 부스에 서서 읽고, '지하차도 건너기'만 사서 대구로 돌아왔다.선택이 즉흥적일 수밖에 없었음에도 강한 끌림이 있었다. 지친 몸으로 서서 훑어 읽기에도 생활 속에 있는 것 같지만 다른 무엇이 담긴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 문장이 간결해서 그런지 화자가 여자아이임에도 무뚝뚝하게 느껴져서 판매자에게 작가님이 남자분이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그 분이 하모 작가가 아니셨길 바랄 뿐이다.)'지하차도 건너기'에서 열 살 소녀 민애린의 목소리는 작고 슬프다. 동물원으로 현장학습을 가는 날. 엄마가 어젯밤 사서 냉장고에 뒀던 김밥을 혼자 먹는다. 엄마가 싼 것 같은 기분이 하나도 들지 않는 '엄마김밥'. 한 줄은 아침이고 나머지는 오늘 도시락이다. 아이는 엄마 냄새가 나는 향수를 뿌리면서 생각한다. '이 향수처럼 상큼한 하루가 되면 좋겠다.' 고.아이는 우리 동네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엄마는 '더 좋은 학교'에 아이를 넣었다. 더 좋은 학교에서 더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만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게 엄마 설명이었다. 아이는 매일 우리 동네와 신도시 사이 기찻길을 넘어 학교에 갔다. 기찻길을 건너는 길은 여러 가지였지만 엄마는 꼭 산일역 육교로만 다니라고 했다.현장학습 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들은 더럽고 위험한 지하차도에 사는 괴물에 대해 떠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곳에 보이지 않는 비밀통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엄마 쥐와 아이 쥐가 벽에 있는 문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하차도에서 보았기 때문이다.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지하차도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괴물에게 쫓기다 우연히 들어간 곳에서 비밀친구들을 만난다. 십 년 묵은 호박으로 호박죽을 끓여 먹는 날. 아이는 백 년 만에 찾아온 손님이 되어 귀한 대접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다."가슴이 벅찼다. '나는 지하차도를 건넜다! 내가 혼자서 지하차도를 건넜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지하차도라는 무서운 공간이 사실은 천년이 되어도 없어지지 않을 판타지 공간이라는 설정이 좋았다. 그렇지만 지하차도에서 판타지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는 장면 그리고 허창우와 늑대 아이의 연결고리가 견고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그러나 한 아이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판타지로 구현하려는 작가를 따라가는 동안 많은 공부가 되었다.가을장마가 치근대는 사이. 풀벌레 소리가 금세 잦아졌다. 이제 저녁마다 놀이터 아이들 소리도 왕창 커져갈 것이다. 그 아이들도 안전한 길을 버리고 지하차도로 건너가려할 때가 온다. 마음이 단단해지는 순간은 아이가 스스로 작은 성공을 이룰 때마다 찾아오는 것임을 자주 잊고 산다. '지하차도 건너기'는 그런 나에게 깜짝 선물한 동화가 되었다.서미지 학이사 독서아카데미 회원

2019-09-04 17:22:48

김성조 경상북도문화관광공사 사장

[기고]가 봤나! 대구경북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ce·지혜로운 인간)만큼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호모루덴스(Homo ludence·놀이하는 인간)가 문화관광 분야에선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온다.호모루덴스의 저자 요한 호이징하이(Johan Huizingga)는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야 놀자"라고 부르면 먹던 밥 숫가락도 내던지고 뛰쳐나가던 때를 생각해 보면 놀이와 인간은 뗄 수 없는 관계다.수많은 놀이 중에서 관광·여행은 쉬우면서도 매력적이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어 다니는 독서다"라는 말이나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여행을 하지 않은 자는 첫 장을 넘기지 않은 것과 같다"는 이탈리아 속담이 잘 말해주고 있다.최근 소득의 증대, 교통의 발달, 가치관의 변화, 풍부한 정보 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요즘 신세대들은 내 집 마련, 내 차 구입만큼이나 나만의 여행을 선호하는 것만 봐도 관광이 대세인 듯하다.이러한 때에 경상북도가 '민선 7기 출범'과 더불어 문화관광 산업을 주요 관심 분야로 선택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경북이 가진 백두대간, 강·바다 등 천혜의 자연환경과 타 시도와 견줄 수 없는 다양하고 빼어난 문화유산을 고려할 때 필연의 선택인 듯하다.요즈음 관광의 또 다른 트렌드는 광장(廣場)이다. 뉴욕 센트럴파크, 파리 콩코드광장, 런던 트라팔가광장, 북경 천안문광장 등 세계 관광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광장이 자리한다. 이 광장에는 늘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난다.우리 경북에는 오직 우리만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전통적인 문화광장(文化廣場)이 있다. ▷수천 년간 치열한 구도(求道)의 광장인 불국사, 부석사, 봉정사 ▷선비들의 학문 연구와 사교의 광장인 소수'도산'옥산'병산서원 ▷양반과 평민이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삶의 광장인 양동'하회마을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빼어난 광장들이 경북에 자리한다. 앞으로 이들이 경북 관광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2020년은 대구경북 관광의 해이다. 대구경북 관광 산업의 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대구경북은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상생의 힘을 보태고 있다.경북문화관광공사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이웃 나라를 대상으로 해외 홍보 사무소 개소, 스포츠, 문화 등 특수목적관광객(SIT)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변화하는 관광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한 개별관광객(FIT) 맞춤형 상품 개발, 생활 패턴 변화에 맞춘 수용 태세 개선 사업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각 시군마다 다양하고 독특한 축제가 있으나 홍보 부족 등으로 그 지방만의 축제로 전락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축제에 상호 교환 방문하여 활성화시키는 축제 품앗이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특히 이러한 대구경북 관광 활성화 여건을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해 '내 고장 바로알기 운동'은 경북문화관광공사가 범도민적으로 펼치는 대표적인 사업이다.'내 고장 바로알기 운동'은 대구경북 시도민이 해외나 타 시도를 방문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내 고장을 먼저 둘러보자는 것이다.우리 지역을 관광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대구경북 구석구석을 잘 알게 되고, 우수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500만 시도민이 우리 지역의 자발적 홍보맨이 될 때 상승효과가 기대된다. 사시사철 관광객이 넘쳐나는 대구경북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내 고장 우선 관광'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본다. 가 봤나 경북! 가 보자 경북!

2019-09-04 11:22:47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매일춘추] 초상

무용은 원시시대 때부터 시작하여 공연예술의 모태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무용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무용은 상류층의 무용과 서민층의 무용이 뚜렷하게 갈라져 있어 궁중무용은 의례용으로 활용되었고, 민속무용은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춤으로 단순한 오락적 차원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이처럼 무용은 여타 공연예술처럼 천민층이 맡아왔으며 무용가들은 사회적으로 대우를 제대로 받아오지 못했었다. 보수적인 기질이 농후한 대구지역에서 1930년대를 시작으로 현대 춤이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이자 춤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지난 3월, 2019년 대구문화재단 문화인물컨텐츠제작지원사업 선정작인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예술감독 박현옥)의 '김상규를 춤추다-강건너 언덕 너머...'는 대구 근대춤의 아버지인 김상규를 기리고 그의 작품을 통해 현재 속에서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보며 동시대의 시·공간성을 추구한 소리(음악)·몸짓(드라마)·춤의 예술형식으로서 지역의 문화예술 창달과 김상규를 통한 대구 현대춤의 자긍심을 일깨우는데 일조한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다.김상규는 어려운 시대적 상황과 보수적 색채가 특히 뚜렷한 대구의 지역적 특색에도 불구하고 무용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으로 대구의 현대무용이 발전할 수 있도록 중추적인 역할을 한 현대무용의 선구자이며 최초의 남성무용가 이자 역사·행정·교육에 관련된 업적을 남긴 대구 무용계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을 육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면적 사고를 중요시 해야 된다 했으며 그것은 다양한 작품안에서 그의 내면적 정신, 자연적 회귀, 윤회, 생명의 본질은 곧 인간 존재에 작용하는 사상으로 춤으로 나타내었다.한 시대의 예술가는 당대의 새로운 예술을 창출해내고 그 예술은 후대에 이어져 또 다른 예술가를 탄생시킨다. 그가 남겨놓은 현대무용의 정신과 자연의 법에 따라 시간이 지나도 더욱 깊이 있는 가치로 피어날 그의 초상. 이러한 예술을 모체로 김상규에 의한 대구 무용의 발전은 현대무용의 정신적 이정표이며 대구 현대무용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 자체이기도 하다. 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의 '강건너 언넘너머' 작품 중 '초상' 을 오는 9월 18일 대구국제무용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바라본 초상은 앞으로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며 역사적 정신을 다음세대에 물려줌으로써 예술의 꽃은 영원히 살아남으리라 기대한다. 김정하 대구가톨릭대 무용학과 외래교수

2019-09-04 11:22:33

전헌호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종교칼럼] 종교의식의 비등점

물은 참으로 재미있는 물질이다. 우선 산소원자 1개와 수소원자 2개가 공유결합을 하여 이루어진 물이 되기까지 수십억 년의 히든 스토리를 갖고 있다. 온도가 낮을수록 밀도가 높아지는 다른 물질들과 달리 4℃일 때 가장 높아서 가장 무겁다. 그래서 4도일 때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온도가 더 내려가 0도가 되면 표면에 떠올라 어는 성질 덕분에 극지방의 바닷속에서도, 한겨울 강이나 호수 속에서도 생명체들이 얼음에 갇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열을 가해서 물의 온도가 올라가더라도 99도까지는 액체였다가 100도에서 형태가 완전히 다른 기체가 된다. 이런 성질을 가진 물이 순환하면서 지구촌의 온 생명체를 살리고 있다.약 38억년이란 긴 진화의 시간을 가진 지구촌의 생명체들은 인간에 이르러 자의식을 지닌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섰다. 이것은 마치 물이 99도에서 비등점인 100도에 이른 현상과 같은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진화는 이후에도 물이 비등점에 이른 차원의 진화를 거듭했다. 죽은 자를 내버려 두지 않고 장례를 치르는 행위를 통해 사후세계에 대한 사유와 동경을 하게 된 시기, BC 약 1만 년 전에 있었던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의 전이,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를 넘어 철기시대로 넘어온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황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문명들은 서로 교류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적고 잉카, 마야 문명은 그 지역으로 미루어 볼 때 앞의 문명들과 교류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런데 이러한 문명이 그곳에서 각자 발전한 것도 물이 비등점에 이른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겠다.BC 500년 전후로 지구촌에서 살던 인간에게 또 하나의 비등점에 이른 도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가, 공자, 노자, 장자, 구약성경의 저자들과 예수, 소크라테스가 시기적으로 전후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각자 살던 곳에서 등장했다. 이전의 도약은 생존과 관련된 영역에 속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인간 삶의 근본적 영역에 대한 사유와 관련된 도약이다.21세기에 들어온 인류는 또 하나의 비등점을 통과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구촌과 우주에 대한 이해, 나노기술, IT, AI, 뇌과학, 분자생물학 등이 나날이 대단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이에 기초한 응용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하고 어디까지 변해갈 것인지 누구도 올바르게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자연자원의 고갈, 생활쓰레기와 산업폐기물, 늘어나는 세계인구와 빈부 차이에 의한 갈등은 지속가능한 개발과 지속가능한 삶을 어렵게 하고, 많은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게 한다.비등점을 통과하는 도약은 종교적 영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시대에 태어나 지구촌의 온갖 문화, 학문, 종교,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정보들로 무장한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많이 다른 의식을 지니고 있다. 이들 중에서 스님, 목사, 신부, 수도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의 의식도 이전 세대와 같지 않다.그래서 전통종교들은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고 구성원을 확보하기가 날로 힘들어지고 있다. 수세적으로 담을 높인 종교단체들은 정체성과 조직을 유지해나가기가 어려워졌다. 모든 종교가 다 같이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마저 보인다. 진정성을 지닌 진리와 활동, 상호 대화와 협력만이 미래를 열어낼 수 있을 것이다. 냉소의 길과 삶의 길, 선택의 귀로에서 저절로 두 손 모으게 된다.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2019-09-04 10:47:01

이정호 변호사

[경제 칼럼] 저출산 문제 해소 방안에 관한 단상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2028년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점차 감소해 2067년에는 4천만 명이 채 되지 않고, 평균 연령은 2019년 현재 40세 초반에서 2067년에는 57세가 된다고 한다. 노령화지수 또한 119.4에서 2067년에는 574.5가 될 것이라 한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숫자로 깨달을 수 있는 지표이다.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저출산 전담기구 설치, 결혼과 출산 친화적 환경 조성, 일 가정 양립 지원 등 일련의 저출산 문제에 대응할 해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하고 다양한 정책 방안을 수립하기도 했다. 정책 근간은 곧 출산 지원, 근로시간 단축, 신혼부부나 청년 주거지원책 등으로 이뤄져 있다.대공황기를 겪은 경제학자 케인즈는 '투자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같은 심리적 요인에 의하여 이뤄진다'고 봤다. 오늘날 여러 경제학자들도 경제 주체의 심리를 중요 요소로 삼아 거시경제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결혼이나 자녀 출산 문제 역시 결혼이나 출산 적령기에 처한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나 기대감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미래가 현재보다 나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어야 각자의 분신을 세상에 맡길 수 있을 것이다. 저출산 해법 역시 미래에 대한 전망과 기대심리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구체적으로 보자면, 무엇보다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 경제 성장기에는 기술 발전을 토대로 산업의 탄생과 성장 등 구세대가 겪지 못한 분야에서의 다양한 경제 참여 기회가 예상된다. 부모는 노동자로 한 세대를 보내더라도 자식은 창업을 통해 일가를 이루고, 기업 오너가 될 가망이 있어 보인다. 부모는 블루칼라로 고생하지만 자식은 화이트칼라로 안정된 일자리에서 고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할 때 미래 희망이 보인다.국내 경제의 성장 속도나 탄력이 힘을 내기가 버거워 보이지만 자식의 경제활동 기회나 여건이 부모보다는 나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이는 출산의 유인이 될 것이다. 경제의 질적 성장을 통해 부모가 겪은 취업이나 창업보다 개선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며, 이를 위하여 경제 정책과 법 제도의 꾸준한 정비와 개선이 필요하다.다음은 안전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제공하는 국방이나 치안서비스 질이 향상돼야 하고, 타인과의 어울림 속에서도 기본적인 생명, 신체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이런 측면에서 남북관계 갈등 해소나 평화 무드는 저출산 해법으로도 역시나 중요하다. 자식을 나보다 더 안전한 환경 속에서 키우고 싶은 것은 부모의 본능이다. 흉악범이나 강력범죄에 대한 선정적 언론 보도와 범국민적 관심은 자칫 범죄가 사회에 만연한 듯한 과다한 불안감을 조장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보도는 안전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자살 모방효과를 줄이기 위해 보도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는 '파파게노 효과'에 대해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복지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 출산 지원, 워라밸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 한부모 아동 지원, 비혼 출산과 양육 지원, 주거 지원 등은 모두 복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자는 방향으로 구성돼 있다.그런데 출산이나 양육 지원 정책들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양육과 교육에 소요되는 비용 절감이다. 진학, 취업을 위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교육 정책과 철학의 빈곤 속에서 가성비가 너무나 떨어지는 구조를 갖게 됐다. 각 가정이 자녀 교육에 투입하는 과한 시간과 노력은 사회를 견인할 수 있는 청소년의 잠재역량을 저하시키는 어마어마한 기회비용을 발생시켰다.결국 저출산 해법의 궁극은 사람들에게 미래 행복에 대한 기대감을 채워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태어남은 그저 생로병사를 거치는 출발점이 아니라 삶의 행복과 가치를 끊임없이 찾아나서는 여정의 시작이어야 한다.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추구하는 방법 역시 다양할 것이지만, 국가가 출산의 가치를 정책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 이상 출산 이후 삶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애프터서비스 역시 어느 정도는 국가의 몫이다. 다양한 저출산 정책이 근원적 효과를 내어 통계청의 2067년도 인구 예측이 오류로 판명 나길 희망한다.

2019-09-03 18:06:07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새론새평]작동하지 않는 정부의 분배 기능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가계의 소득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2019년 상반기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가계소득은 2017년 상반기 6개월 동안 283만3천원에서 2019년 상반기 6개월 동안 257만9천원으로 25만4천원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전 정부 때인 2015년 상반기와 2017년 상반기 중에도 1분위 가계소득이 10만6천원 줄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하락 폭이 더 커진 셈이다.1분위 가계소득이 이렇게 빠진 것은 근로소득의 감소 때문이다. 2017년 상반기 6개월 동안 116만1천원이던 1분위 가계소득이 2019년 상반기에는 84만3천원으로 31만8천원이나 줄어들었다. 반면에 최상위 20%인 5분위 가계소득은 2017년 상반기 1천757만5천원에서 2019년 상반기 1천935만1천원으로 177만6천원이나 늘어났다. 2015년과 2017년 사이에 최상위 가계소득이 59만3천원 늘어난 것보다 두 배가 넘는 규모이다.명목경제가 3% 이상 성장하는데도 최하위 가계의 근로소득이 오히려 감소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일자리가 늘어나는 속도가 둔화되었고, 둘째 폐업 혹은 조업 단축 등으로 기존 일자리가 쪼그라들었으며, 셋째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근로시간이 줄어든 때문이다.이런 현상은 물론 전반적인 불경기와도 연관이 없진 않겠지만 2018년과 2019년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추가 고용을 꺼리게 됨과 아울러 폐업 등으로 기존 일자리를 잃거나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평균 근로시간이 전반적으로 감소하였다. 예컨대 2017년만 하더라도 취업자가 31만6천 명이 증가했었으나 2018년에는 9만7천 명으로 줄어들었고, 2019년에도 고령자 취업을 빼고 보면 취업자 증가 폭은 크게 둔화되었다. 게다가 주 36시간 이하 근로자가 50만 명 이상 늘어나는 데 비해 36시간 이상 근로자는 25만 명이 줄어들면서 평균 취업시간도 지난 2년 동안 거의 3시간 정도 줄어든 것이 근로소득을 줄이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반면에 고소득계층의 소득은 현저하게 늘어났다. 최상위계층인 5분위 가계소득은 2017년 상반기 1천757만5천원에서 2019년 상반기 1천935만1천원으로 지난 2년 동안 177만6천원(약 10%) 늘어났는데 이 중 근로소득 증가가 159만9천원(증가율 12.6%)이나 되었다. 4분위 가계 근로소득도 727만2천원에서 822만6천원으로 95만4천원 늘어났다. 결국 상위계층으로 갈수록 근로소득 증가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소득양극화를 부추긴 셈이다.다른 한편으로는 사업소득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5분위를 제외한 전 소득계층에서 2019년 상반기 사업소득은 2017년 상반기에 비해 감소하거나 거의 증가하지 못했다. 사업소득조차 최상위계층만 크게 늘고 나머지 계층은 줄거나 거의 정체되었다. 앞으로 미중 무역분쟁이 더 격화되고 한일 간의 갈등도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중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의 경기마저 둔화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되면 저소득층의 소득은 더 아래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이렇게 양극화되면 정부는 재정 정책을 통해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특히 저소득층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지출 구조를 효율화해야 한다. 그러나 소득 재분배 기능을 나타내는 이전소득 통계를 보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지난 2년 동안 1분위 가계나 5분위 가계나 이전소득의 증가 금액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최상위계층 이전소득이 더 많이 증가했다. 다시 말해 이전소득의 소득불균형 시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이다.이제라도 이것을 고쳐야 한다. 고령자나 청년, 실업자라고 덜컥 수당을 줄 것이 아니라 재산이나 소득 수준을 꼼꼼히 따져 가려가면서 지급해야 할 것이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 할 소중한 세금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려 주는 게 소중한 것이다.

2019-09-03 16:17:10

이정호 국악작곡가

[매일춘추] 살아 있는 음악

지난주에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재개관 기념공연 시리즈 중 타악페스타 '태양을 두드리다' 공연이 성황리에 이뤄졌다. '날이 밝아오다' 라는 타이틀로 공연의 대서막을 대북가락과 함께 멋진 춤으로 보여준 '장유경무용단', 국악타악기 기반의 깊이 있는 창작음악을 리드미컬하게 연주한 타악집단 '일로', 길놀이 속에 전통연희를 아기자기하게 꾸미며 관객과 함께 즐겨준 연희팀 '오락', 아프리카 음악과 춤으로 젊음의 에너지와 해방감을 무대에서 전해준 '포니케', 브라질 삼바 리듬을 아주 강렬하고 뜨겁게 표현해준 '라 퍼커션'의 연주가 이어지면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는 무대가 됐다.나는 이번 공연의 전체 음악을 맡아 진행했는데, 주로 신경 쓴 부분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며 전통에 머무른 음악이 아니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의 문화라는 것, 그리고 세계화에 발맞춰서 다른 나라의 전통 타악기도 지금 우리의 마음에 충분히 어필이 됨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나라뿐 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디(MIDI) 중심의 전자음악이 홍수를 이루는 이 시대에 어쿠스틱한 음악이 전해주는 생명력 가득한 살아 숨 쉬는 음악, 열정과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넘치는 이 음악으로써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이날 보여준 음악과 퍼포먼스는 인류가 오랜 시간 살아오며 그들의 사상과 본능적인 세포를 갈고닦아 발전시킨 결과물로서 우리나라, 브라질, 아프리카의 지구 각각의 반대편에 살던 사람들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들의 다양한 리듬은 심장박동소리처럼 가슴을 뛰게 했고, 그러한 직설적인 타악 표현이 '살아 있는 음악'으로 만들었다.음악을 듣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일상에서의 쉼표가 된다. 나는 한동안 이런 공연을 직업적인 일로서 공적으로 대하다보니 온 마음으로 공연관람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생명력은 바쁜 일정 속에 오로지 곡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며 소진되고 있었는데, 이날의 살아 숨 쉬는 음악들을 보니 나 스스로에게도 에너지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햇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을텐데, 그 하나의 쉼표를 찍고 간다면 훨씬 좋은 삶의 질을 얻으리라 생각된다.여기 대구문화예술회관은 기획도 하고 공연 자체를 제작하는 제작극장이다. 양질의 공연콘텐츠를 개발해 대구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팔공홀도 다양한 첨단시스템으로 재개관했으니 더더욱 활성화되어 좋은 무대를 보여줄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두류공원 산책로와 붙어있어서, 가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공기 좋은 숲속 산책과 더불어 저녁즈음 펼쳐지는 멋진 공연을 관람한다면 풍부한 마음적 휴식이 될 것이다. 이정호 국악작곡가

2019-09-03 11:24:12

여상도 경북대 교수

[기고] 교수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며칠 전 나는 대형 TV가 설치된 시내의 한 광장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학교수인 어느 장관 후보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서로 쑥덕거렸다. 나도 그것을 보고 있었기에 기다리던 지인이 멀리서 다가오는데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그 지인은 날 향해 '교수님'이라고 크게 불렀고, 주변 사람들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모두 나를 쳐다봤다. 그 순간 나는 웬일인지 교수라고 불리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고개를 숙여버렸다.나는 일평생 스스로 떳떳하게 생각하던 교수라는 내 직업이 이렇게 힘없이 느껴질 때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교수의 논문이 고교생의 대입 준비물로 전락하고, 교수의 연구실이 어린 학생의 현장실습장으로 둔갑해 버리는 모습을 이 땅의 교수들은 지금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영어로 교수는 professor이며 논문은 thesis이다. 즉 교수는 고백하는 사람, 논문은 가설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교수가 수행하는 연구의 결과물은 새로운 사항들이 많기 때문에 감히 완벽한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이럴 것이라고 사료된다는 식으로 타인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이런 출판물을 가설, 즉 논문이라 부른다. 이러한 교수의 논문은 시간이 가면서 대중에게 회자되고 검증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설이 진실로 되기도 하고 가설로만 남기도 한다. 교수의 논문에는 진실, 시행착오, 오류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시행착오와 오류가 무엇인지는 그 논문을 쓴 교수는 이미 짐작하고 있을 수도 있다.그러므로 교수는 늘 부끄러움을 한 몸에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다. 교수는 행여나 자기가 고백한 것들이 오류로 판명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짊어지고 산다. 교수가 발표하는 논문은 자신의 피부에 새겨진 아물지 않은 상처와 같고, 행여나 이 상처를 누군가 건드리기도 한다면 아픈 곳을 때리는 일이 되기 때문에 사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교수가 논문의 표절, 부정 등의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면, 그 사람이 겪는 상실감은 그 누구보다 커진다.하지만 이러한 교수의 논문이 사회적 애물로 전락해 버렸다. 저자의 자격은 고사하고라도, 대학에서 생산되는 논문이라는 것의 기능과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혼돈마저 온다.지금 TV에 나오는 한 사람의 장관 후보자를 가장 원망하는 사람은 수험생과 그 부모들일 것이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분노하는 사람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논문을 통해 어렵게 발표한 다음, 그 논문에 대해 숙고하고 검증을 거듭하는 교수들일 것이다. 교수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그 순간 교수로서의 기능은 종료된다. 지적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교수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그 부끄러움은 당연히 만용으로 돌변하게 된다.어느 일간지에서 '교수 카르텔'이라는 말도 했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이끌어가는 교수들마저 지탄의 대상이 된다면 이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정말이지 참담한 심정이다. 지적 부끄러움과 세속적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껴야 하는 요즘의 교수들은 약간의 우울한 감정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여상도 경북대 교수(화학공학과)

2019-09-03 02:30:00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破釜沈舟(파부침주)- 용감한 자가 이긴다

밥솥을 깨고(破釜) 배를 침몰시킨다(沈舟)는 파부침주는 도망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를 나타낼 때 쓰인다. 배를 불태우고 솥을 깨서 없앤다는 손자병법의 분주파부(焚舟破釜)와 같다. 약자가 불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쓰는 전략이다.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이 죽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장한(章邯)을 파견하여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 기원전 207년 항우(項羽)가 이끄는 초나라 군대는 진나라의 40만 군사가 집결한 거록(鉅鹿)을 향해 북상했다.장수(漳水)를 건넌 항우는 배를 모두 침몰시키고 밥솥을 깨뜨렸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사흘 먹을 식량만 가지고 출발하도록 했다. 배수의 진을 친 항우의 전략은 통했다. 퇴로가 없어진 초나라 군사들은 자신들보다 몇 배나 많은 진나라 군사를 맞아 20만 명을 몰살시켰다.진나라의 장한은 나머지 20만 명의 군사들과 함께 항복했다. 진나라는 무너졌고 항우는 일약 패주(霸主)로 등장했다. 거록 대전은 중국역사에서 소수의 약자가 강자를 이긴 전형적인 전투로 파부침주를 강조할 때 자주 쓰이는 고사이다.현재 미중 무역 전쟁은 두 나라 모두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하다. 뒷걸음을 치면 파멸의 언덕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중국은 약자의 입장에서 중일전쟁 때의 지구전을 들고나와 파부침주의 결사 항전의 태도를 보인다. 한일 양국의 무역 전쟁도 이에 못지않다.한국은 미국이 강력하게 연장을 요구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도 종료시키고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일본도 찔끔 무역규제를 완화하면서도 섣불리 물러설 기미가 없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모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골목길에서 (적을) 만났을 때는 용감한 자가 이긴다(狹路相逢勇者勝'협로상봉용자승)는 중국 속담이 있다. 한국에는 아베 정권과 싸울 파부침주의 각오가 필요한 것 같다.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2019-09-02 18:00:00

구미과학관 관장

[과학둘레] 지난여름의 끝

종이를 세로로 길게 잘라 양 끝을 책 위에 걸치고 중간에 동전을 한 개 올려본다. 종이가 동전의 무게를 못 버티고 무너져버린다. 이번엔 종이 양 옆을 조금 접어 올려 동전을 올려본다. 종이가 동전 하나를 버텨낸다. 종이 아래 다른 종이를 말아 넣고, 부채처럼 접은 종이를 책 위에 걸쳐본다.'와우!' 동전이 많이 올라가고 있었다. 종이와 동전으로 무너지지 않는 다리의 비밀을 알아내는 실험은 '생활과학교실' 콘텐츠 개발을 위한 것이다.숨 돌릴 겨를 없이 바빴던 여름이 지나갔다. 휴가도 미룬 채 분주했던 이유는 9월부터 시작하는 생활과학교실 하반기 프로그램 개발 때문이다. 생활과학교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필자가 근무하는 과학관에서 운영하는 '찾아가는 과학교실 사업'이다.과학교실 운영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은 주로 강사들 몫이지만 그것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온전히 필자 몫으로 자처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질을 높여간다. 학생들이 호기심을 갖고 탐구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과학 원리를 습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누구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굳이 안 해도 될 고생을 왜 사서 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매 학기 수고를 자청하며 힘들어도 적당히 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이 일이 은근히 즐겁기 때문이다. 과학관에서 근무하기 전 생활과학교실 콘텐츠 개발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필자에게는 과학이론을 실험을 통해 알려 주는 수업이 멋진 신세계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과학으로 즐겁게 소통할 수 있을 지 밤새 고민하며 그것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 민재라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청년이 되었을 그 아이는 수업 시작 전 항상 교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에 든 짐을 들어주었다.부모님이 시장에서 통닭집을 한다는 아이의 꿈은 요리사였다. 과학교실에 참여한 후로 과학자가 될까 생각 중이라던 민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프로그램 개발을 대충 넘어갈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다.올여름 무더위와 동행한 또 하나가 있다. 신영복의 '나의 동양고전독법 강의'란 책이다. 책은 자연과학 전공자로서 생뚱맞은 선택이었지만 덕분에 무일(無逸)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무일의 사전적 의미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음, 안일하지 않음, 편하게 놀고 있지 않음을 뜻한다.책에는 군자가 편안함을 취하기에 앞서 노동의 어려움을 아는 무일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군주의 도리를 설명한 서경 주공 편에 나오는 글로, 저자는 무일 편을 능력 있고 편안한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가치관을 경계하는 경구로 읽으라 했다. 어디서든 책임지는 자리는 편하게 누리는 위치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깨어있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자리라야 된다는 의미일 듯싶다.과학은 일상의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손으로 조작해보고, 탐구하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이다. 과학이 우리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이치를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는 거란 걸 함께 나누고 싶은 게 한여름 무일한 가장 큰 이유다.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다리 중 하나인 금문교가 놓여 있는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해협은 넓은 거리, 깊은 수심, 강한 해류, 짙은 안개 같은 요인으로 다리를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지역이었다. 다리는 적당한 지점에 높은 탑을 세우고 강철 줄로 상판을 연결해 들어 올리는 현수교 방식으로 건설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놓았다.무너지지 않는 다리의 비밀은 획일화된 구조가 아니라 상황에 가장 알맞은 형태로 변형하여 다리를 놓는 것이다. 양옆을 세우거나, 아치구조로 받치거나, 트러스구조를 덧대거나, 줄로 당기거나 해야 한쪽으로 쏠리는 무게의 압력을 분산할 수 있다. 다리는 혼자서 갈 수 없는 곳을 스스로 건너가게 해준다는 점에서 교육에 비할 만하다. 과학 교육 또한 지식 전달 위주의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치열하게 보낸 여름의 끝. 그 끝의 시작은 어디일까. 풀벌레 소리 들리는 가을이다. 다리는 혼자서 갈 수 없는 곳을 스스로 건너가게 해준다는 점에서 교육에 비할만하다. 과학교육 또한 지식전달 위주의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체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치열하게 보낸 여름의 끝. 그 끝의 시작은 어디일까. 풀벌레 소리 들리는 가을이다.

2019-09-02 18:00:00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대구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대구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이 카피를 쓴 지 2년이 지났다. 당시 대구 도시 브랜드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며 마지막에 방점을 찍을 강력한 한 줄이 필요한 터였다. '대구시 광고니 당연히 좋은 문장을 써야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저 입에 발린 글을 쓰기는 싫었다. 공감을 얻지 못한 광고는 그대로 버려지기 때문이다.필자는 대구시와 일하며 느낀 감정을 고스란히 광고에 담고 싶었다. 사실 처음 창업을 했을 때 대구의 강한 보수성 때문에 힘들었다. 더욱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제품도 아닌 아이디어를 파는 일이라 그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철옹성 같은 대구도 변해갔다. 정형화된 광고만 선호하던 대구는 생각의 영역을 점점 넓혀갔다. 그리고 진심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 보였다.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쓴 카피가 바로 '대구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이다.이 카피를 쓰고 칭찬도 욕도 많이 들었다. 칭찬은 공무원에게서 들었다. "소장님, 우리는 프로야구 심판과 같은 직업입니다. 잘해도 티가 나지 않고, 못하면 질타를 한 몸으로 견뎌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그들의 노고를 광고 카피에 잘 담아줘서 고맙다는 말이었다. 슬프게도 욕은 시민들에게 들었다. 열심히 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광고에서 자화자찬만 늘어놓았단 비난이었다. 이렇게 늘 광고주와 오디언스(시민) 사이에는 강한 괴리감이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그런 비난에 굴하지 않았다. 맞다고 생각한 부분에서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광고에는 일종의 종교와 같은 힘이 있어서 세뇌 효과가 크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문장이 입에 붙어버렸다. 그리고 페이스북에서 대구에 관한 포스팅에 시민들이 그 카피를 댓글로 달기도 한다. 재미있는 CM송의 멜로디가 입에 붙는 것처럼 우리의 인식에 그 문장이 붙은 것이다.'소통과 혁신의 대구' 엠블럼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그 작업을 맡았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대구가 제일 못하는 것이 소통과 혁신 아닌가요?'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수록 우리는 반드시 그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생각을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가는 곳마다 '소통과 혁신의 대구'라는 엠블럼이 보이면 어떨까? 대구시청에서 '대구는 하루로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라는 카피를 보게 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시민뿐만 아니라 공무원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봤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에 임하기 때문이다. 그 문장을 품고 대구에서 일하고 살아간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 봤다. 마치 'I love New York'이라는 슬로건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뉴욕을 애착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최근 대구시의 도시 브랜드 홍보 활동을 살펴보면 눈부시다. 인기 유튜버와 협업을 통해 대구를 전국에 전파하고 있다. '고담 대구'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란 이미지의 판을 뒤엎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활동이 굉장히 신선했다. 내심 기뻤다. '대구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는 카피를 비아냥댔던 사람들에게 할 말이 생겼기 때문이다.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도시를 브랜딩할 때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되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참고하되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시민들 역시 눈치를 보는 모습보다 '이 방향이 맞으니 믿고 따라오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대구를 더 매력적으로 볼 것으로 생각한다.㈜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2019-09-02 18:00:00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

기획 & 시리즈 기사

[매일TV] 협찬해주신 분들